5월 말 발사 실패 후 절치부심 모양새
‘전승절’ 열병식과 수해방지가 발등의 불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변수 될 가능성”
|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newspim.com
올여름 김정은의 고민이 깊어 보인다. 지난 5월 31일 정찰위성 발사를 내세워 로켓을 쏘아올렸지만 완전 실패한 이후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당장 스타일을 구긴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핵·미사일로 자초한 대북 제재와 압박 국면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전략 마련에 부심하는 듯하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기지에서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으로 주장하는 우주발사체를 쏘아올린 건 지난 5월 31일 오전 6시29분이다. 하지만 2단 로켓이 점화되지 않는 문제로 위성 탑재부인 3단 추진체 등이 서해상에 추락하면서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우리 군이 발사체뿐 아니라 위성체까지 인양해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김정은으로서는 더 스타일을 구긴 측면이 있다.
이례적으로 북한도 공개적으로 즉각 실패를 인정하고 나섰다.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 위성운반 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하여 발사했다”며 “발사된 천리마-1형은 정상 비행하던 중 1계단 분리 후 2계단 발동기의 시동 비정상으로 하여 추진력을 상실하면서 조선 서해에 추락했다”고 설명했다. 또 “국가우주개발국은 위성 발사에서 나타난 엄중한 결함을 구체적으로 조사 해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학기술적 대책을 시급히 강구하며 여러 가지 부분 시험들을 거쳐 가급적으로 빠른 기간 내에 제2차 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성 발사가 실패한 상황은 북한에 큰 충격을 안겨줬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부문에 공을 들여온 김정은에게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김정은은 지난 4월 18일 딸 김주애와 국가우주개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제작·완성된 정찰위성 1호기를 계획된 시일 안에 발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한 달 가까이 지난 5월 16일에는 위성발사준비위를 찾아 “정찰위성 발사는 절박한 요구”라고 밝히는 등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지난 5월 31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기지에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쏘아올리고 있다. 3단 추진체의 머리 부분이 뭉툭한 위성탑재 부위가 눈길을 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위성발사 한국에 선수 빼앗기자 서둘러 버튼 누른 듯
그렇지만 ‘탑재 완료’까지 알린 위성 발사는 시간이 더 걸리는 듯 보였고, 결국 지난 5월 25일 한국이 독자 기술로 개발한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고 차세대 소형위성 2호를 목표 궤도인 고도 550km에 정확하게 올려놓았다. 김정은의 수차례 공언과 발사 예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선수를 빼앗기는 모양새로 체면을 구긴 것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더 이상 발사가 지연되다가는 한국에 완전히 뒤처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예고 기간 첫날 서둘러 발사를 지시했다가 실패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대북 감시망을 가동해온 국가정보원도 발사 실패 당일인 5월 31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누리호 발사 성공에 자극받아 통상 20일가량 소요되는 준비 과정을 수일로 단축하며 조급하게 발사를 감행한 것도 실패의 한 원인”이라고 밝혔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재발사를 통한 위성 확보 발걸음을 늦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발사 실패 이튿날인 6월 1일 담화를 통해 “확언하건대 공화국의 군사정찰위성은 머지않아 우주 궤도에 정확히 진입하여 임무 수행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여정은 이 담화에서 미 백악관이 북한 위성발사체에 대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 밝힌 것과 관련해 “그 누구도 위성 발사에 대한 우리의 주권적 권리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남들이 다 하는 위성 발사를 놓고 그 목적 여하에 관계없이 탄도로켓 기술 이용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사회 결의에 걸어 우리만이 해서는 안 된다는 그러한 억지 논리는 우리 국가의 우주 이용 권리를 심히 침해하고 부당하게 억압하는 분명코 날강도적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우리는 정권 종말, 제도 전복을 입버릇처럼 떠들어대는 미국과 그 앞잡이들과는 대화할 내용도 없고 대화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으며 그들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연장선에서는 자기들 스스로에게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으며 우리와 대결을 추구하며 나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더욱 공세적인 자세에서 우리 식대로의 대응을 계속해 나갈 것”이란 주장도 펼쳤다.
북한의 실패 직후 전문가들은 위성 발사가 2개월 정도 기간에 급조된 신형 발사대에서 쏘아올려진 것으로 판단했다. 장영근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미사일센터장은 북한이 공개한 영상들을 토대로 “새 발사대는 발사준비 징후를 최소화하기 위해 급조한 흔적이 역력하다”며 “고정 발사대로서 장기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임시 발사대의 성격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사방에는 짧은 시간 내 급조를 위해 야간 건설 작업이 가능하도록 조명시설을 구축한 게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노동당 전원회의 사흘간 이례적으로 침묵한 김정은
정찰위성 발사 실패 문제는 지난 6월 16~18일 사흘간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전원회의에서도 다뤄졌다. 그만큼 북한 입장에선 중대한 사안이란 얘기다. 대실패로 인한 불편한 심기 때문인 듯 노동당 총비서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회의 내내 침묵했다. 회의 석상에서 장광설을 쏟아내며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역정을 내거나 비판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김정은이 집권 이후 15차례의 당 전원회의에서 연설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위성 추락 사고 보름 남짓 만에 열린 당 전원회의 분위기도 험악했다. 이례적으로 실패 직후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 사고 발생”이라며 관련 보도를 즉각 내놓은 북한은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서도 “가장 엄중한 결함은 군사정찰위성 발사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위성 발사 준비 사업을 책임지고 추진한 일꾼(담당 간부를 지칭)들의 무책임성이 신랄하게 비판됐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북한은 회의 석상에서 강한 재발사 의사를 재차 드러냈다. “발사 실패의 원인과 교훈을 철저히 분석하고 빠른 시일 안에 군사정찰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해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둔 것이다.
이는 물론 김정은의 위성에 대한 강력한 집착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정찰위성을 쏜 당일에도 발사대에서 1.3km 정도 떨어진 곳에 관측대를 만들어 김정은과 관계자들이 지켜본 것으로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그만큼 각별한 관심과 의지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이처럼 정찰위성에 유달리 집착하는 모습을 놓고 중국의 길을 따라가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마오쩌둥이 미국 유학 중이던 과학자 첸쉐썬(錢學森)을 귀국시켜 이른바 양탄일성(兩彈一星), 즉 수소폭탄·원자폭탄·인공위성을 개발해 일련의 체계를 갖춘 것처럼 북한도 이를 통해 한·미의 대북 압박에 맞서겠다는 뜻이다. 과거 북한 매체들도 ‘양탄일성’ 등의 보도를 내놓으며 이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관심을 표한 바 있다.
핵 무력 법령화를 공언한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전술핵탄두를 직접 김정은이 공개하고 나서는 전례 없는 도발적 행태를 보인 북한은 한반도와 주변 지역을 실시간으로 살피는 감시경을 갖추려 하고 있다. 지상 약 300~150km 저궤도 위성으로 알려진 만리경-1호를 여러 개 쏘아올린 뒤 적어도 2시간에 한 번씩 미국 항공모함 등의 움직임을 포착·추적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리병철 당 군사위 부위원장이 5월 29일 자 입장발표를 통해 미국의 대북 정찰능력을 언급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적들의 군사적 행동 기도를 실시간 장악할 수 있는 믿음직한 정찰정보 수단의 확보를 최대 급선무로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은 이와 같은 도발적인 행태를 보이면서도 ‘평화적 우주공간 이용’을 내세우는 자가당착적 모습을 드러낸다. 또 외무성이나 김여정 명의의 담화 등을 통해 북한에 가해지고 있는 대북 제재에 강한 불만을 표출한다. 언뜻 들으면 북한 주장도 그럴 듯하다. ‘왜 북한에만 유독…’이란 기류가 우리 일부 지식인과 여론 사이에서도 제법 솔깃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우리 군이 6월 15일 오후 8시 50분께 북한 정찰위성 잔해 일부를 인양하고 있다. [사진=합참]
정찰위성 발사는 탄도미사일 기술 고도화일 뿐
하지만 이는 북한의 일방적 궤변에 불과하다는 게 우리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 그룹의 견해다. 핵과 탄도미사일 관련 국제사회의 룰이나 질서를 어지럽혀 온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자가당착에 빠져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으로 이어진 김 씨 패밀리 3대 세습 독재체제는 집요한 핵 보유 야망의 실현을 가능케 했다. 전문가들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서 중요한 3대 요소로 기술과 자금 그리고 최고지도자의 의지를 꼽는데,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이어가면서 핵·미사일 야욕을 대물림했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과정은 기만과 은폐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를 기망해 가면서 비밀리에 핵 개발을 추진했고, 여기저기 숨겨가면서 핵을 손에 거머쥐었다. 1990년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관 추방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한 한·미에 대해 북한은 원자력 발전을 의미하는 ‘평화적 핵 동력 공업’ 운운하며 버텼고, 결국 경수로 발전소를 챙기고 발전용 중유도 지원받았다. 그런데도 비핵화 합의와 파기·위반을 되풀이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결국 핵과 그 투발 수단인 미사일 개발을 마치자 태도를 돌변해 ‘서울 불바다, 워싱턴 타격’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서 사용해온 수법을 ‘정찰위성’이란 이름으로 다시 써먹겠다는 얘기다. 이러니 미국 등 국제사회가 한번 산 말(馬)을 다시 돈을 주고 사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국제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위성 실패 이후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는 핵과 미사일로 만신창이가 된 경제와 민생이 생생히 드러났다. 북한은 “우리의 전진에 엄청난 장애를 조성했다”며 한·미의 대북 대응조치에 불만을 드러냈고, “올해 제시된 알곡고지를 성과적으로 점령할 수 있는 조치들을 각방으로 취했다”며 상반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음을 내비쳤다.
안타까운 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위성 발사까지 시도하면서 주민들의 식량 문제도 해결 못해 전전긍긍하는 북한의 현실이다. 대북 정보당국은 북한이 올봄부터 아사자가 속출하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도 로켓 한 번 발사에 주민 몇 달치 식량을 탕진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이나 권고에는 귀를 막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에 쓴 자금이 지난 한 해만 1조원에 이르고, 이는 북한 전체 주민 2500만명이 40~50일간 먹을 수 있는 쌀값에 해당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경제와 관련한 우리 정부 부처의 관망은 어둡다. 통일부는 노동당 전원회의 평가 자료에서 “난관의 원인을 외부 및 하부 단위에 미루는 것으로 보아 ‘5개년 계획’ 이행이 부진하며 만회에 대한 자신감도 감소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또 ‘핵에는 핵’ 등의 언급을 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하반기에도 핵 무력 증강 노선과 주요 계기 시 도발을 지속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한·미 당국은 북한이 ‘위성 발사’를 내세운 ICBM 도발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고 판단해 대북 제재와 함께 북한의 태도 및 노선 변화를 압박할 군사적 대응조치까지 선보이고 있다. 한반도와 주변 정세를 어지럽히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처하려는 한·미의 움직임에 북한은 ‘군사적 모험책동’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진핑이 공들인 아시안게임 잔칫상 엎는 건 부담
핵과 미사일 도발 행보를 이어온 김정은의 머릿속은 지금 온통 정찰위성 조기 재발사를 통한 체면치레나 실패 만회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공산이 크다. 여의치 않을 경우 7차 핵실험이나 각종 탄도미사일 도발과 함께 재래식 무기의 보강이나 국지도발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위기 국면으로 북한이 치닫지 않게 하기 위한 철저한 대비책과 함께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란 지적도 나온다.
물론 북한이 마냥 고강도 도발로 치닫기에는 쉽지 않은 환경도 있다. 당장 오는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릴 아시안게임(9월 23일~10월 8일)이 문제다. 시진핑이 공을 들여왔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아시안게임 기간 중은 물론 이를 전후한 시점에 미사일 도발 등에 나서기는 어려움이 따른다. 북한이 45개 참가국에 포함돼 일찌감치 선수단 명단을 제출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이 전격적으로 유화 공세를 펼치고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7.27 행사 이후 즉각 위성 발사나 7차 핵 실험 같은 도발적 행보가 어려울 경우 아시안게임 국면을 틈타 대남·대미 유화 국면을 조성하려 들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북한이 일본과 제3국에서 비공개 접촉을 했다는 설이 흘러나오는 것도 한·미·일 대북 공조에서 ‘약한 고리’로 여겨지는 일본을 상대로 모종의 공세를 펼치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에게 올여름은 도발의 고삐를 계속 죄어 나가느냐, 아니면 유화 공세로 돌아서서 생존을 모색할 것이냐의 분수령이 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