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3월호
한국 '신용등급 하락' 우려 예사롭지 않다
한국 신용등급 일본보다 2단계 높아
‘1997년 외환위기’로 투기등급인 Ba1 추락도
한국의 재정적자 증가는 정해진 미래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10년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한국에 Aa2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S&P는 AA 등급을 매기고 있다. 둘 다 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향후 전망 또한 ‘안정적(Stable)’이다.
한국 신용등급 Aa2·‘안정적’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살펴보면 최상위 등급인 Aaa 등급은 미국, 독일, 캐나다 등 12개 국가에 부여돼 있다. 두 번째로 높은 Aa1 등급은 핀란드와 오스트리아가 차지했다. 세 번째로 높은 Aa2 등급에 한국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반면 한국과 같은 등급이었던 프랑스는 지난 2024년 12월에 한 단계 낮은 Aa3로 추락했다. 국가 예산안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 끝에 총리가 불신임으로 물러난 영향이 크다. 영국도 2020년의 브렉시트(유럽연합에서 탈퇴) 영향으로 한국보다 한 단계 낮은 Aa3를 부여받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일본이다. 과거 높은 경제력을 과시했던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은 한국보다 2단계나 아래인 A1 등급이다. 중국과 동급으로 평가됐다. 한국과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이 역전된 건 12년 전인 2012년 말부터다.
이 당시 무디스는 ‘신용등급 평가보고서’에서 “일본 정부가 제시했던 재정적자 감축 목표 달성이 불확실해졌다”며 신용등급 강등 이유를 설명했다. 2012년에 일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무려 237%를 기록했다. 현재는 250% 내외로 추정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채비율이 가장 높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의 A1 등급도 무디스의 총 21개 등급 중 상위 5번째이니 크게 낮은 건 아니다. 하지만 경제력이나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감안하면 일반적인 인식보다는 낮은 편이다. 이는 일본의 심각한 국가부채비율이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국가신용등급은 크게 ‘투자 등급(Investment Grade)’과 ‘투기 등급(Speculative Grade)’으로 나뉜다. 무디스의 경우 Aaa~Baa3까지 총 10개 등급을 투자 등급으로 분류해 안정적인 채무 상환 능력을 가진 국가에 부여한다.
반면 Ba1~C까지 총 11개 등급을 투기 등급으로 분류해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국가에 부여한다. 한국에서 비과세 채권 열풍을 일으킨 브라질의 국가신용등급은 2024년 4월 말 기준 Ba2로 투기 등급이다. 2024년 10월에 Ba1으로 상향됐지만 여전히 투기 등급이다. 베트남 역시 Ba2로 투기 등급이다.
한국 ‘1997년 외환위기’로 투기 등급 추락하기도
한국이 지금은 안정적인 국가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는 지난 28년간 눈물과 피땀으로 쌓아 올린 성적표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무디스는 국가신용등급을 투기 등급인 Ba1까지 떨어뜨렸다.
또 다른 신용평가기관인 S&P도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투기 등급인 B+까지 떨어뜨렸다. S&P 신용등급 기준으로는 현재의 브라질이나 베트남보다도 2단계 낮은 피지와 동급이다. 1997년에 한국은 국가부도 직전까지 갈 만큼 위기였다. IMF의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국가 부도를 면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외화 부채는 약 304억달러였다. 외환위기 다음 해인 1998년에 외화 부채 상환에 힘을 보태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 한국 국민 약 351만명이 참여해 당시 시세로 18억달러에 달하는 227톤의 금이 모였다.
이런 눈물겨운 노력 끝에 외환위기 3년 뒤인 2000년 말에 IMF의 구제금융을 모두 상환하면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도 조금씩 상향되기 시작했다. 무디스 기준 ‘1997년 외환위기’ 당시보다 8단계 뛰어오른 지금의 Aa2 신용등급을 부여받은 건 2015년 말이다. 이후 현재까지 10년째 등급이 유지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 “국가신용등급 하락 우려” 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신년사에서 “정치적 리스크가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한번 내려간 신용등급은 다시 올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 총재의 우려와 달리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Aa2로 평가), S&P(AA로 평가), 피치(AA-로 평가)의 한국 국가신용등급 향후 전망은 ‘안정적(Stable)’이다.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과 함께 ‘긍정적(Positive)’, ‘안정적(Stable)’, ‘부정적(Negative)’이라는 전망을 같이 부여한다. 이는 향후 일정 기간(주로 6개월~2년) 동안 신용등급이 변동될 가능성에 대한 예고다. 따라서 ‘안정적(Stable)’ 전망을 부여받은 한국의 신용등급이 단기간에 내려갈 일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창용 총재의 경고는 장기적 관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는 국가신용등급을 결정할 때 경제 성장률, 재정 건전성, 통화 안정성, 물가 상승률, 환율 안정성, 정치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문제는 ‘정치 안정성’이다. 현재의 정치 불안이 장기간 계속되면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할 수도 있다. 만약 1~2년 뒤 실제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내려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신용도가 낮아져 국채 금리가 상승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이자율이 높아져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한다. 은행과 기업의 신용등급도 같이 하락한다. 또 원화 가치도 하락해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 이는 고스란히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직접투자(FDI)도 감소하게 된다. 한국의 주식과 채권에서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는 외화자본 유출과 금융시장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을 피하려면 하루빨리 정치가 안정돼야 한다. 정치적 분열로 신용등급이 하락한 프랑스의 사례가 반면교사다.
장기적으로는 국가부채와 재정적자가 문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0년의 한국 국가채무 증가율은 무려 17.1%다. 전년도의 6.3%와 비교하면 거의 3배에 달한다. 이는 ‘코로나19’ 때문이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풀었다.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그 다음해인 2021년에도 코로나19의 여파로 국가채무가 14.7%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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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는 국가채무 증가율이 10%로 낮아졌지만 한국의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돌파한 기록적인 해다. 코로나19가 극심했던 3년간 한국 국가채무는 무려 345조원 증가한 1067조원까지 급증했다.
다행히도 2023년부터는 코로나19 종식과 현 정부의 건전재정 정책으로 국가채무 증가율이 5.6%로 낮아졌다. 국가채무는 1127조원을 기록했다. 2023년 말 기준 GDP 대비 부채비율도 46.9%로 양호하다. 아직까지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건전한 부채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한국의 재정적자는 매년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가장 큰 원인은 급격한 고령화다. 한국의 만 65세 이상 인구는 1000만명을 돌파해 전 국민의 20%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한국의 재정수지 현황을 살펴보면 2023년 기준 574조원의 총수입과 611조원의 총지출로 통합재정수지는 37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걷은 세금보다 사용한 지출이 더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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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통합재정수지보다 더 중요한 건 관리재정수지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기금, 교직원연금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제외한 수지를 말한다.
예를 들어 1995년생인 30살 직장인이 올해 납부한 국민연금은 먼 미래인 30년 뒤에야 실제 지출이 일어난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수지를 계산하면 엄청난 흑자로 숫자가 왜곡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제외하고 계산된 관리재정수지가 한국의 실질적인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2023년에 한국의 관리재정수지는 -87조원을 기록했다. 2024년 11월 말 기준으로도 -81조원이다. 한국의 관리재정수지는 2020년부터 매년 꾸준히 -100조원을 넘나드는 적자를 보이고 있다. 이를 국채 발행으로 메꾸면 앞으로도 매년 100조원 내외의 국가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앞으로 10년 내에 은퇴할 50대 은퇴예정자만 670만명에 달한다. 해가 갈수록 들어올 세금보다 복지로 써야 할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인구 구조다. 다행히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은 아직 50%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심각한 고령화를 한국보다 20년 먼저 겪은 일본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지난 몇 년간 250%를 넘나들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의 국가신용등급 하락 걱정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2025년 03월호
트럼프 수혜업종 명암...'조선·방산·제약' 뜬다
너무 비싼 미국 약 가격...한국 바이오 섹터 유망
요동치는 자산시장...트럼프 영향력 휘몰아쳐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글로벌 주식시장 움직임은 국가별로 기대와 우려 속에 혼조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들이 당초 계획보다 완화됐다는 분석에 시장의 공포 심리는 다소 누그러지는 모양새다. 한국 증시는 트럼프 정책의 수혜 업종과 피해 업종별로 등락이 엇갈렸다.
최대 수혜 업종은 조선업...밸류에이션은 부담
한국에서 직접적인 트럼프 수혜주로 분류되는 업종은 조선업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일 때부터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다. 한국과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만큼 한국 조선소의 경쟁력은 세계적이다.
중국 군사력을 압도하기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 해군 전력 강화는 필수다. 조선업 강국 한국과의 협력이 중요한 이유다. 문제는 미국 법령(10.U.S.C.8679)에 의거, 한국과 같은 외국 조선소는 미군 함정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대통령이 승인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재임 기간 동안 미군 함정의 MRO(정비·수리·점검)와 관련해 한국 조선소가 큰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석유를 마음껏 시추할 것”이라고 밝힌 점도 호재다. 트럼프는 이를 통해 “물가를 낮추고 미국 에너지를 전 세계에 수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에너지 수출이 증가할 경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의 활성화는 필연적이다.
LNG 운반선 제조능력은 한국 조선업계가 최강이다. LNG 운반선은 영하 162°C의 초저온 상태에서 LNG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운반할 수 있는 화물창 설계 및 제작 기술이 핵심이다. 한국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해 안정성과 효율성이 뛰어난 LNG 운반선을 건조하고 있어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크다.
꼭 미국과의 협력 확대가 아니라도 한국 조선업은 업황 호황으로 이미 몇 년 전부터 수주가 넘쳐나고 있다. 작년부터 한국 5대 조선업 주가가 폭등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주가가 너무 올라 밸류에이션이 높은 점은 부담 요인이다.
HD현대중공업은 울산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로, 대형 선박 및 해양플랜트 건조에 특화돼 있다. 고급 기술과 안정된 품질로 초대형 유조선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LNG, LPG 운반선 등 친환경 선박 건조에서도 강점을 보인다. 2024년에 주가가 123% 상승했고, 2025년에도 8% 상승 중이다.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은 LNG 운반선, LNG-FSRU, 군함, 잠수함 등 방산과 상선에서 강점을 보인다. 또 해양가스 생산 및 저장설비 건조 등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이 높다. 한화그룹 편입으로 재무 안정성이 확보된 점도 호재다. 2024년에 주가가 49% 상승했고, 2025년에도 53% 상승 중이다.
삼성중공업은 부유식 원유생산저장설비(FPSO), 부유식 LNG 생산설비(FLNG)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고부가가치 LNG 운반선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인공지능(AI) 기반의 디지털 조선 기술을 도입한 점도 특징이다. 첨단 조선 기술과 대형 프로젝트 관리 능력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 중이다. 2024년에 주가가 46% 상승했고, 2025년에도 15% 상승 중이다.
HD현대미포조선은 석유화학제품 운반선(PC선), 중형 탱커 및 여객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 특히 고부가가치 중소형 선박 중심의 포트폴리오가 강점이다. 친환경 선박 관련 수주도 증가 중이다. 2024년에 주가는 58% 상승했고, 2025년엔 7% 하락 중이다.
K-방산, 높은 품질·낮은 가격으로 인기몰이
트럼프 취임의 또 다른 수혜 업종으로는 K-방산을 꼽을 수 있다. 현재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위비 지출 목표는 GDP 대비 2%다. 하지만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유럽 회원국들이 무임 승차하고 있다”며 “방위비를 5%로 대폭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발언은 취임 후에도 이어졌다. 현실적으로 5%까지는 어렵더라도 유럽 회원국 대부분은 방위비 확대를 일정 부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교훈을 얻은 전 세계 국가들은 전쟁 억지력과 군사력 유지를 위해 자국의 방위산업을 재점검 중이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낸 게 바로 K-방산이다. 한국은 지정학적 특성상 방위산업 생산설비와 기술력이 상당히 높다.
높은 방산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특히 러시아와 인접한 폴란드 등 유럽에서는 K-방산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3대 수출 장비는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계열 항공기다. 여기에 더해 이미 활황인 K-방산 수출에 트럼프의 미국 우선 정책이 불을 붙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등 한국이 자랑하는 지상 무기체계의 핵심 기업이다. 항공우주 기술을 결합해 전투기 엔진도 개발한다. 폴란드와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시스템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그 외 핀란드, 인도,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호주, 이집트, 루마니아 등에도 K9 자주포를 수출했다. KF-21 전투기 엔진 및 핵심 구성품도 공급한다. 2024년에 주가는 무려 162% 상승했고, 2025년에도 23% 상승 중이다.
현대로템은 원래 전동차 및 철도 기술에 특화된 기업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더 유명한 건 K2 전차, 차륜형 장갑차 등 지상 무기다. 원래 내수기업이었으나 2022년에 폴란드와 K2 전차 대규모 수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수출기업으로 변모했다. 2024년에 주가는 87% 상승했고, 2025년에도 19% 상승 중이다.
LIG넥스원은 유도미사일, 어뢰, 대공미사일 등 다양한 정밀 유도무기를 개발 및 생산하는 기업이다. 레이더, 항공 전자장비, 전자전 장비 등 첨단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LIG넥스원의 간판 무기는 ‘천궁-II’라는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중동 3국으로 수출됐다. 2024년에 주가는 69% 상승했고, 2025년에도 3% 상승 중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FA-50 경공격기, KT-1 훈련기, 수리온 헬기 등 다양한 항공기 플랫폼을 개발 및 생산하는 기업이다. 폴란드, 말레이시아와 FA-50, KT-1 등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군용 항공기뿐 아니라 민수 항공기 부품 생산도 겸업한다. 2024년에 주가는 10% 상승했고, 2025년에는 3% 하락 중이다.
한화시스템은 지상, 해상, 항공 등 다양한 플랫폼에 적용 가능한 통합 시스템 제작 능력이 뛰어나다. 다기능 레이더, 전투 체계, 위성통신 장비 등 첨단 기술력이 강점이다. 아랍에미리트(UAE)의 ‘M-SAM 천궁’ 도입 관련 다기능 레이더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과의 방산장비 수출 계약도 진행 중이다. 우주기술 개발에도 투자하고 있다. 2024년에 주가는 30% 상승했고, 2025년에도 12% 상승 중이다.
美 약값 정책·생물보안법...한국 바이오 섹터 호재
헬스케어와 관련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트럼프 1기 당시의 헬스케어 정책과 작년의 대선 공약을 통해 2기 정책을 예측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백신에 회의적이다. 따라서 백신 매출 비중이 높은 일부 빅파마의 경우 타격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는 글로벌 평균에 비해 너무 비싼 미국 약 가격이다. 현재 미국의 약가 수준은 주요 국가 평균의 2배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1기 때도 ‘사보험처방약 급여관리자(PBM)’를 약가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한 바 있어 PBM의 리베이트 구조를 개선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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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가격을 인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와 제네릭 의약품(복제약)의 활성화다. 이런 경우 한국에서는 바이오시밀러에 강한 삼성바이오에피스(모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수혜를 보게 된다.
또 다른 호재로는 생물보안법(Biological Security Act)이 있다. 이 법안은 미국 내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를 규제하고, 민감한 건강 및 유전자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다. 작년에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통과에 실패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더 지연될 전망이나 여전히 기대감은 살아 있다.
만약 생물보안법이 통과되면 우시바이오 같은 중국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의 타격이 예상된다. 반면 한국의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에는 대형 호재다. 단 의약품 생산처 전환에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생물보안법의 영향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작년부터 한국 제약·바이오 섹터의 수익률은 양호한 흐름을 보였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강력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작년 수주금액은 5조원을 돌파했다. 매출액도 사상 처음으로 4조원을 넘어섰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상위 20개 제약사 중 17곳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올해 4월로 예정된 송도 5공장이 완공되면 총 78만4000리터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세계 최대 생산능력을 갖춘 론자를 뛰어넘는 규모다. 2024년에 주가는 25% 상승했고, 2025년에도 14% 상승 중이다.
셀트리온의 경쟁력은 강력한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에 있다. 대표적으로는 얀센의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적응증: 크론병 등)와 짐펜트리다. 레미케이드는 자가면역질환(크론병 등) 치료제다. 셀트리온은 기존 정맥주사제(IV) 형태의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환자의 투약 편의성 극대화를 위해 자가 주사형 피하주사제(SC) 형태로 새롭게 개발했다.
유럽에서는 이를 램시마SC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미국에서는 짐펜트리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아직 미국 시장 공략 초기인 짐펜트리도 트럼프의 약가 인하 정책에 힘입어 머지않아 1조원 매출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4년에 주가는 7% 하락했고, 2025년에도 -4%로 2년 연속 약세다.
알테오젠은 작년에 한국 제약·바이오 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종목이다. 세계 1위 항암제인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에 제형 변경 히알루로니다제 플랫폼인 ALT-B4를 적용한 계약을 비독점에서 독점으로 전환한 덕이다. 최근에는 항체-약물접합체(ADC) 1위인 일본 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에도 제형 변경 계약을 체결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2024년에 주가는 214% 상승했고, 2025년에도 20% 상승 중이다.
유한양행의 렉라자(해외명 : 라즈클루즈)는 국내 개발 항암제 중 처음으로 작년 초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비소세포폐암 표적항암제로 존슨앤드존슨의 리브리반트와 병용된다. 유한양행은 렉라자 매출액의 10~15%를 로열티로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4년에 주가는 74% 상승했고, 2025년에도 9% 상승 중이다.
HLB의 간암 치료제인 리보세라닙은 캄렐리주맙과의 병용요법으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최근 리보세라닙의 FDA 신약 허가를 위한 마지막 단계인 CMC 실사를 완료했다. CMC 실사는 FDA 심사관이 의약품 생산시설을 직접 방문해 생산시설과 공정을 확인하는 절차다. 올 3월에 FDA 최종 승인을 통과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4년에 주가는 44% 상승했고, 2025년에도 8% 상승 중이다.
반면 피해 업종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전기차 의무화 폐지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표적인 2차전지주인 LG에너지솔루션,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 투자자들은 긴장하고 있다.
작년에 워낙 많이 하락한 만큼 연초 대비 주가는 올라 있는 상태다. 하지만 경계감은 여전하다. 앞으로도 트럼프의 발언 하나하나가 자산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분간 전 세계 투자자들이 트럼프의 입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25년 03월호
트럼프 금리인하 압박...미국·한국 채권투자 적기?
미국 장기채권 ETF 물린 투자자들 올해는 회복 가능?
한국 30년 국채 ETF 투자자는 함박웃음
만기매칭형 채권 ETF도 인기몰이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2025년의 금융시장은 혼란의 연속이다. 한국은 현직 대통령이 구속 상태이고,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0일 취임해 업무를 시작했다. 이런 대혼란 속에서 주식과 채권 중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트럼프는 금리인하 압박…한국은 경기침체 비상
빅테크 기업에 우호적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올해 미국 증시는 상승세다. 추가로 트럼프가 1월 23일(현지시간) ‘세계경제포럼(WEF)’에 원격 참석해 “나는 금리를 즉각 내리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이로 인해 채권 가격 상승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연준(Fed)’은 이론상 독립적이지만 트럼프의 압박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 역시 금리 인하가 절실하다.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의 문제점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세계 1위 선진국인 미국보다도 뒤처진다는 점이다. 2023년부터 한국과 미국의 GDP 성장률은 크게 역전됐다. 2023년에 한국이 1.4% 성장한 데 비해 미국은 2.5%로 2배 가까운 격차를 보였다.
이 추세는 2024년 1분기에 한국이 전년 동분기 대비 3.3% 성장(미국 1.6% 성장)하며 정상화되는가 싶더니 2분기부터 다시 뒤집혔다. 2분기 한국 GDP 성장률은 2.3%인데 미국은 3.0%였다. 3분기 한국 성장률은 1.5%인 데 비해 미국은 3.1%로 격차가 2배 이상 벌어졌다.
특히 작년 4분기엔 탄핵 사태까지 겹치면서 한국 성장률이 1.2%로 크게 부진했다. 미국의 4분기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당연히 한국보다는 높다. 이렇다 보니 한국의 2024년 연간 GDP 성장률도 고작 2%에 그쳤다. 세계 경제의 회복세를 한국이 못 따라가는 형국이다. 2025년 성장률도 2%에 미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비상이 걸린 상태다.
더딘 금리 인하…트럼프 요구로 빨라질까?
2022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유가 폭등과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국은 기준금리를 최고 5.5%까지 끌어올린 후 1년 이상 유지해 왔다. 2024년 9월에서야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5.5%에서 0.5%포인트 인하해 5.0%로 낮췄다. 작년 11월과 12월에 연속으로 0.25%포인트씩 인하해 2025년 1월 말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4.50%다. 트럼프의 압박으로 조만간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한국 역시 3.5%의 높은 기준금리를 2년 가까이 유지해 왔다. 2024년 10월과 11월에 연속으로 0.25%포인트씩 인하해 2025년 1월 현재 기준금리는 3.0%다.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이는 1.5%포인트다. 지난해 8월에 금리 차이가 2.0%포인트였던 점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금리 인하 여력은 충분하다. 다행히 환율도 안정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워낙 경기침체가 심각해 2월 추가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전망한다.
美 장기채권 ETF 물린 투자자들 올해는 회복?
작년에 미국이 기준금리를 큰 폭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고 일찌감치 미국 장기채권 ETF를 매수했던 투자자들은 크게 고전했다. 금리 인하폭이 기대에 못 미친 탓이다. 반면 미국 주식은 폭발적으로 상승해 상대적 박탈감이 심했다. 한국 장기채권은 미국보다 수익률이 양호했다. 부진했던 한국 주식과 비교하면 괜찮은 선택이었다.
금리 인하 예상 시 채권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가 뭘까. 만약 금리가 3%에서 0.25%포인트 인하돼 2.75%가 되면 이후 새로 발행되는 채권 금리는 2.75%로 낮아진다. 이 경우 기존의 3% 이자 지급 채권 수익률이 더 높으므로 시장에서도 이 채권이 더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특히 가장 만기가 긴 30년물 장기채권은 듀레이션(채권의 금리 변화에 대한 민감도)이 길어 금리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1년 만기 채권의 금리가 0.25%포인트 하락할 경우 채권 가격이 0.25%의 변화를 반영해 약간만 오른다.
하지만 30년물 장기채권은 [0.25% × 30년 = 7.5%]로 30배의 이득을 보므로 7.5%에서 약 30% 현가 할인된 5%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된다. 당연히 채권 가격 상승폭이 훨씬 더 크다. 이런 이유로 금리 하락이 예상되면 단기채권보다 장기채권을 매수한다. 반면 거꾸로 금리가 상승하면 장기채권은 큰 폭의 평가손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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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인기를 끈 미국 30년물 국채 ETF는 한국투신운용의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 ETF’다. 순자산총액이 무려 1조92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1년 수익률은 -10.5%로 부진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30년국채스트립액티브(합성 H) ETF’도 순자산 6900억원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수익률은 -13.1%로 부진하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를 3번이나 단행했음에도 미국 30년 국채 ETF들이 큰 폭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유가 뭘까. 시장에서는 더 큰 폭의 금리 인하를 예상, 채권 가격이 선반영돼 크게 올랐던 탓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예상보다 금리 인하폭이 작아 결국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KB자산운용의 ‘RIS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합성 H) ETF’는 엔화 강세와 미국 금리 인하에 베팅하는 ETF로 순자산 4000억원을 끌어모았다. 역시 -11.3%로 수익률은 부진하다. 예상외로 엔화는 계속 약세를 유지했고 미국 금리 인하는 기대보다 약했던 탓이다.
아쉬운 점은 3개의 ETF 모두 원/달러 헤지 방식이라서 달러 강세로 인한 환차익을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년 전에 해당 ETF를 매수했던 투자자들에게는 무척 아쉬운 결과다. 반면 신규 진입을 검토하는 투자자들에게는 ETF 가격이 저렴해진 지금이 좋은 기회일 수 있다.
한국 30년 국채 ETF 투자자는 두 자릿수 수익률
‘미국 30년 국채 ETF’와 대조적으로 ‘한국 30년 국채 ETF’는 두 자릿수의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시장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으로 금리를 인하한 결과다. 또 심각한 경기침체로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불가피한 점도 수익률 고공행진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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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를 끈 ETF는 삼성자산운용의 ‘KODEX 국고채30년액티브 ETF’다. 순자산총액이 5200억원에 달한다. 최근 1년 수익률은 13.9%로 양호하다. KB자산운용의 ‘RISE KIS국고채30년Enhanced ETF’도 순자산 3600억원으로 인기다. 수익률은 12.4%를 기록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국고채30년스트립액티브 ETF’ 순자산은 1500억원이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하다. 하지만 수익률은 가장 높은 18.7%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국은행이 올해 최소 2회, 최대 3회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추가적인 수익이 기대된다.
금리변동 영향 적은 3년물 회사채 매력적
장기 투자 시의 기대수익률은 채권보다 주식이 훨씬 더 높다. 하지만 보수적인 투자자들은 변동성 높은 주식 대신 확정금리가 보장되는 채권을 더 선호한다. 그런데 30년물 장기채권은 금리 변동에 너무 민감한 게 부담이다. 예상치 못한 금리 상승 시에는 평가손실이 너무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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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금리변동성을 낮추려는 투자자는 3년 만기 우량 회사채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안정성을 고려해 더블에이(AA) 등급 이상에 투자하면 신용 리스크가 최소화된다. 최근 시장에서 발행된 3년물 회사채 금리는 대체로 3%대 초반이다. 향후 시장금리가 인하되더라도 3년간 고정금리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만기매칭형 채권 ETF, 낮은 변동성 장점
직접 개별 회사 채권에 투자하기가 부담스럽다면 만기매칭형 회사채 ETF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만기매칭형 ETF’란 만기가 특정 시점에 고정돼 있는 채권형 ETF다. 만기에 도달하면 ETF는 해지되고, 투자자에게 해지 상환금이 지급된다. ETF명에 ‘25-10’과 같이 ‘만기 연월’이 표시돼 있다.
채권 ETF 대비 만기매칭형 ETF의 장점은 낮은 변동성이다.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적합하다. 대표적으로는 미래에셋운용의 ‘TIGER 25-10 회사채(A+이상)액티브 ETF’와 삼성운용의 ‘KODEX 26-12 회사채(AA-이상)액티브 ETF’ 등이 있다. 최근 1년 수익률은 4%대에서 5%대다.
만기를 자동으로 연장해 주는 ETF도 있다. 한국투신운용의 ‘ACE 11월만기자동연장회사채AA-이상액티브 ETF’는 만기 시점이 다가오면 다음해 만기 채권으로 구성 채권을 교체한다. 투자자 편의성이 높다는 것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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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우려되는 투자자는 채권에도 관심 가져야
한국 증시는 2024년의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양새다. 새해 들어 큰 폭 반등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보이고 있다. 올해만큼은 2년 연속 수익률이 좋았던 미국 주식과 낙폭 과대로 반등이 기대되는 한국 증시 사이에서 어느 쪽 비중을 더 높일지 고민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단순 수익률로 비교하면 이미 주식투자 수익률은 1년 채권 금리에 근접한 상태다. 올해 1월 말 기준 미국 나스닥 지수 2%, S&P500 지수 3%, 한국 코스피 지수 5%, 코스닥 지수는 7% 상승했다. 투자자들의 고민은 이런 상승세가 연말까지 이어질지 여부다. 특히 미국 증시는 2년 연속 큰 폭 오른 상태라 올해까지 오르면 3년 연속이다. 과거 사례로 볼 때 드문 케이스가 된다. 언제 조정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채권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다. 향후 금리 인하까지 예정돼 있어 채권 투자의 매력도는 더욱 높아졌다. 1년 만기 단기채권의 경우 한국은 3%대, 미국은 4%대의 수익률을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10~30년 만기 장기채권은 금리 인하 폭에 따라 채권 가격 상승으로 상당한 자본차익을 누릴 수 있다. 투자자들이 주식 외에 채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2025년 02월호
'양강' 삼성·미래에셋....선택은 S&P500 ETF
‘채권의 민족’에서 ‘해외주식 민족’으로 변신 중
부진한 한국보다 미국 주식 ETF 늘리려 안간힘
삼성 대표 ETF ‘코덱스200’에서 ‘S&P500’으로 바뀌나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의 ETF 시장은 지난 2년간 초고속 성장했다. 2023년에 순자산총액이 121조원으로 전년 대비 약 43조원 증가했다. 또 2024년 말 기준 173조원으로 전년 대비 52조원 증가해 ETF가 대세임을 입증했다. 한국 ETF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1위 삼성자산운용과 2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금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하지만 양사 간 점유율이 매년 좁혀지고 있는 게 삼성운용의 고민거리다. 한국을 대표하는 코덱스200 ETF로 재미를 봐 왔던 삼성운용이지만 작년에는 미국 ETF 마케팅을 부쩍 강화했다. 3위 KB자산운용과 4위 한국투자신탁운용의 ETF 자산 증가세도 가파르다. 반면 ETF 점유율이 낮은 중소형 운용사들은 지금 고사 위기다.
ETF 시장의 급성장 배경은 뭘까. 똑똑해진 한국 투자자들이 펀드보다 훨씬 저렴한 ETF의 수수료와 편리성에 매료된 덕이다. 노후 대책의 핵심 수단인 퇴직연금, 연금저축, IRP, ISA 계좌 안에 ‘해외 ETF’ 편입 시의 높은 절세 혜택도 원인 중 하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사 ETF 홍보자료를 쏟아내는 운용사들의 광고 전략도 한몫했다.
‘채권의 민족’에서 ‘해외주식 민족’으로 변신?
재작년까지 한국 ETF 순자산총액 상위 10개 종목의 특징은 채권 투자 규모가 압도적으로 컸다는 점. 하지만 작년 들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여전히 순자산 1위와 3위는 채권 관련 ETF다. 현재 삼성자산운용의 ‘코덱스 CD금리액티브(합성) ETF’가 9조1000억원으로 1위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타이거 CD금리투자KIS(합성) ETF’는 6조3000억원으로 3위다.
하지만 증가율로 따져보면 채권형보다 해외주식형 ETF가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미국 증시의 폭발적 상승 때문이다. 미래에셋운용의 ‘타이거 미국S&P500 ETF’는 전년 대비 235% 증가한 7조3000억원으로 2위를 기록했다. ‘타이거 미국테크TOP10 INDXX ETF’도 97% 증가한 3조2000억원으로 10위를 차지했다.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건 삼성운용의 ‘코덱스 미국S&P500TR ETF’다. 무려 417% 급증해 3조5000억원을 달성했다. 반면 국내 주식형 펀드의 간판 격인 삼성운용의 ‘코덱스200 ETF’는 전년 대비 16% 감소한 5조5000억원으로 부진했다. 상위 10개 상품 중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의 상품이 각각 5개 포함된 것도 눈길을 끈다.
한국 오르면 삼성 유리, 미국 오르면 미래에셋 유리
정리해 보면 작년 한국 상장 ETF 시장은 ‘해외주식 ETF’의 급성장과 ‘국내주식 ETF’의 침체로 요약된다. ETF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운용과 2위인 미래에셋운용 간에도 이 영향으로 희비가 갈렸다. 상대적으로 해외주식 ETF 비중이 높았던 미래에셋운용의 판정승이다.
전통적으로 삼성자산운용은 국내주식 ETF에 강하다. 삼성운용의 한국 관련 상위 8개 ETF의 순자산총액은 16조1000억원이다. 반면 해외 관련 상위 8개 ETF의 순자산총액은 8조원에 불과하다. 국내주식형이 해외보다 2배 이상 많다. 그나마 이것도 많이 완화된 숫자다. 2023년에는 국내주식형이 해외보다 4배 이상 많았다.
이렇게 한국 주식 비중이 높으면 작년과 같이 한국 주식이 약세일 때 타격이 크다. 반면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미국 S&P500 지수나 나스닥100 지수는 미국 증시 활황으로 폭풍 성장했다. 운용사들이 신규 ETF 상품을 개발할 때 투자자들의 선호도도 따져봐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하는 국가를 선점해야 하는 이유다.
미래에셋운용은 삼성운용과 달리 국내보다 해외주식형 ETF에 강점이 있다. 미래에셋운용의 한국 관련 상위 8개 ETF의 순자산총액은 7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해외 관련 상위 8개 ETF의 순자산총액은 23조1000억원에 달한다. 삼성과는 반대로 국내주식형보다 해외주식형이 3배 이상 많다.
따라서 미국 증시가 상승하고 한국 증시가 하락하면 미래에셋과 삼성 간 점유율 격차가 자동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누리는 구조다. 작년에 미래에셋은 이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미래에셋은 가만히 있어도 미국 지수 상승에 힘입어 ETF의 순자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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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삼성의 결단...수수료 파괴로 절반의 성공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면서 국내주식 ETF에 강한 삼성자산운용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에 따라 해외 비중을 높이기 위한 파격적인 전략을 선보였다. 작년 4월부터 핵심 4종의 해외주식 ETF 총 보수를 기존 연 0.05%에서 0.0099%로 낮췄다. △KODEX 미국S&P500TR △KODEX 미국나스닥100TR △KODEX 미국S&P500(H) △KODEX 미국나스닥100(H) ETF가 그 주인공이다. 삼성이 미래에셋에 비해 순자산총액에서 열세를 보이는 미국 대표 지수 ETF 상품들이다.
이번 수수료 인하로 삼성자산운용의 미국 대표 지수 ETF 상품들의 총 보수(0.0099%)는 미래에셋자산운용(0.07%)의 7분의 1 미만으로 낮아졌다. 과거에도 비싸지 않았던 0.05%의 총 보수가 이제는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간 셈이다.
삼성자산운용의 4월 수수료 인하 당시 나머지 운용사들의 반발은 극심했다. 업계 1위가 수수료 경쟁을 하면 중소형사에 너무 타격이 크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점유율 1위를 지켜내야 하는 삼성의 입장도 절박했다. 마케팅 측면에서 봐도 낮은 수수료 전략은 점유율을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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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운용의 수수료 인하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2024년 말 기준 미래에셋운용의 간판 격인 ‘TIGER 미국S&P500 ETF’는 1년 전보다 5조1000억원 증가한 7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또 ‘TIGER 미국나스닥100 ETF’는 1조9000억원 증가한 4조5000억원에 달했다. 각각 235%, 74% 증가한 수치다.
반면 삼성운용의 ‘KODEX 미국S&P500TR ETF’의 현재 잔고는 1년 전보다 2조8000억원 증가한 3조5000억원이다. 증가한 자산 규모는 미래에셋에 못 미치지만 증가율은 417%로 미래에셋의 196%보다 훨씬 높다. ‘KODEX 미국나스닥100TR ETF’도 1년 전보다 1조2000억원 증가한 1조7000억원을 달성했다. 증가율은 196%로 미래에셋의 74%보다 높다.
미래에셋운용이 해외주식형 ETF의 절대 강자임을 감안하면 삼성 입장에서도 선전한 셈이다. 하지만 최근 대세로 떠오른 미국 다우존스 월배당 ETF 상품 등에 삼성이 경쟁사보다 늦게 뛰어든 것은 아쉬운 점으로 지적된다. 전반적으로 볼 때 절반의 성공이다. 여전히 해외주식 ETF 순자산 규모는 삼성운용보다 미래에셋운용이 더 크다.
1위 지켜야 하는 삼성...추격하는 미래에셋
2024년 11월 말 기준 1위 삼성자산운용의 ETF 시장 점유율은 38.1%다.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 점유율 36.5%와 비교하면 격차가 1.6%포인트(p) 차이로 확 좁혀졌다. 2023년 말에는 3.4%p 차이였다. 삼성자산운용은 사상 처음으로 점유율 40%가 붕괴된 데다 매년 미래에셋과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1위 수성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삼성자산운용은 ETF사업부문장을 교체하는 초강수를 던졌다. 지난해 12월 6일에 박명제 전 블랙록자산운용 한국법인 대표를 ETF사업부문장에 새로 선임했다. 기존 ETF사업부문장이 선임된 지 1년 만이다. 박명제 전 대표는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ETF 세일즈를 담당했던 ETF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ETF 전쟁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에서도 ETF 전쟁이 한창이다. 미국 ETF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달리고 있는 블랙록과 뱅가드의 경쟁도 점입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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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인 블랙록의 시장점유율은 6년 전인 2018년에는 40%에 육박했다. 하지만 지난 6년간 점유율이 꾸준히 감소해 2024년 12월 기준으로는 30.6%까지 낮아졌다. 반면 파격적으로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삼은 뱅가드의 ETF 점유율은 28.7%까지 꾸준히 상승해 왔다. 블랙록과의 격차는 이제 1.9%p에 불과하다.
그나마 2024년 2월에 가장 인기가 뜨거웠던 비트코인 현물 ETF를 블랙록이 출시했음에도 뱅가드는 아예 포기했다. 따라서 블랙록이 약 80조원의 이득을 봤는데도 이 정도다. 한국 1위인 삼성자산운용과 미국 1위인 블랙록은 과연 끝까지 현재의 1위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어쨌든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도 대만족이다. 운용사 간 수수료 인하 전쟁으로 한국 투자자들은 더욱 낮은 수수료로 미국의 지수형 ETF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2025년에는 삼성과 미래에셋이 어떤 전략으로 점유율 전쟁을 벌일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한국에서 ETF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5년 02월호
KB운용 vs 한투운용 ‘3위 다툼’ ETF 시장 판도변화 예고
KB운용 간판 ‘RISE 머니마켓액티브 ETF’ 2조원 넘겨
한투운용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 ETF’ 1조8000억 신바람
KB운용 신상품 채권ㆍ국내주식 비중 높아...한투는 해외주식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채권형 ETF를 중심으로 시장점유율 3위를 지키고 있는 KB자산운용의 부진이 심상치 않다. 반면 미국 주식 ETF에 집중하고 있는 4위 한국투자신탁운용의 기세는 엄청나다. 이 추세라면 2025년에는 3위와 4위의 순위가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 한투운용은 지금 상품 개발, 운용, 마케팅의 3박자가 딱딱 맞는 상황이다.
반면 KB자산운용의 ETF 수는 전년 대비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영향으로 2024년의 한국 ETF 시장은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KB운용은 2024년에 2조9000억원의 순자산이 증가했음에도 시장점유율은 8.0%에서 7.6%로 0.4%포인트(p) 감소했다.
물론 착시 효과도 있다. 순위가 높을수록 기존 자산 규모가 커서 웬만큼 순자산이 크게 늘지 않고서는 전체 점유율이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삼성과 미래에셋도 겪고 있는 문제다. 따라서 순자산 증가액이 상당함에도 1위인 삼성자산운용 점유율은 2.2%포인트 감소했고,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도 0.4%포인트 줄어들었다.
하지만 현재 4위를 기록 중인 한국투신운용의 성과는 착시 효과를 감안해도 탁월한 실적이다. 한투운용의 점유율은 2023년 말의 4.9%에서 2024년에는 7.3%로 2.4%포인트 급증하며 3위인 KB운용을 바짝 뒤쫓고 있다. 전체 운용사 중 작년에 ETF 시장 점유율이 2%포인트 이상 증가한 곳은 한투운용이 유일하다.
순자산 증가액도 6조2000억원으로 KB운용의 2배가 넘는다. KB운용과 한투운용 간 순자산 격차는 이제 고작 5000억원 수준으로 좁혀졌다. 2024년 말 기준으로는 한투운용이 KB운용을 일시적으로 뛰어넘기도 했다. 본격적인 3위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KB ‘상장 ETF’ 수 제자리...한투 13개 증가와 대조적
KB운용이 2024년에 새롭게 상장한 ETF는 총 19개다. 이 중 ‘RISE CD금리액티브(합성)’는 대표적인 채권형 ETF로 현재 순자산 1조2000억원을 돌파했다. 또 ‘RISE 200위클리커버드콜’은 대표적인 주식형 ETF로 현재 순자산 2500억원을 넘어섰다. 작년에 KB운용이 신규 상장한 19개 ETF의 순자산총액은 2조2000억원이 넘는다.
KB운용의 2023년 말 ETF 상장 개수가 116개였던 만큼 현재는 19개가 더 늘어났어야 계산이 맞다. 그럼에도 2024년 말 KB운용의 ETF 상장 개수는 119개로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유는 지난 6월에만 무려 14개의 ETF(200IT, 200중공업, 200산업재 등)를 한꺼번에 상장 폐지한 탓이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순자산총액이 50억원 미만인 소규모 ETF는 상장 폐지할 수 있다. KB자산운용은 “선택과 집중을 위해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상장 폐지된 ETF들은 금융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약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한투운용이 2024년에 새로 상장한 ETF는 총 21개다. 작년에 신상품 ETF 개발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았다. ‘ACE CD금리&초단기채권액티브’는 대표적인 채권형 ETF로 현재 순자산 2300억원을 돌파했다. ‘ACE 미국빅테크7+데일리타겟커버드콜(합성)’은 대표적인 주식형 ETF로 현재 순자산 1700억원을 넘어섰다.
작년에 한투운용이 신규 상장한 21개 ETF의 순자산총액은 1조5000억원 수준이다. 한투운용의 2024년 말 기준 상장 ETF 수는 총 91개다. 상장 폐지된 ETF를 제외하고도 전년 대비 13개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 KB운용의 ETF 순증이 단 3개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격차다.
KB 신상품 채권·국내주식 비중 커...한투는 해외주식
일반적으로 채권형 ETF는 법인 비중이 높고, 주식형 ETF는 개인 비중이 높다. 2024년에 양사가 출시한 신상품 ETF의 순자산총액은 KB운용(2조2000억원)이 한투운용(1조5000억원)보다 7000억원 이상 더 많다. 하지만 KB운용은 2조2000억원 중 약 1조7000억원이 채권형 ETF다. 주식형 ETF는 약 5000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한투운용은 채권형 ETF 7000억원, 주식형 ETF 8000억원으로 주식형 비중이 더 높은 게 특징이다. 최근 한국 개인투자자들은 해외주식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만큼 리테일 시장을 공략하려면 주식형 ETF 비중이 높은 게 더 유리하다는 해석이다.
KB운용이 2024년에 신규 상장한 주식형 ETF 중 순자산 1위는 ‘RISE 200위클리커버드콜 ETF’로 순자산총액 2500억원을 돌파했다. 2위는 ‘RISE 미국배당100데일리고정커버드콜 ETF’로 순자산총액은 500억원을 넘겼다.
KB운용의 신상품 전략은 주로 커버드콜, 미국, AI에 집중돼 있다. 상위 7개 주식형 ETF 중 국내 관련 ETF가 2개나 포함된 것도 특이점이다. 반면 한투운용이 2024년에 신규 상장한 주식형 ETF 상위 7개는 모두 해외주식형이다. 이 중 미국 관련 ETF가 6개다.
순자산 1위는 ‘ACE 미국빅테크7+데일리타겟커버드콜 ETF’로 1700억원을 돌파했다. 2위인 ‘ACE 엔비디아밸류체인액티브 ETF’도 1300억원을 넘어섰다. 한투운용은 2024년에 미국, 빅테크, 커버드콜, 반도체를 중심으로 엔비디아, 구글, MS 등 특정 개별주식에 집중하는 신상품까지 다양하게 쏟아냈다.
미국 증시 오를수록 한투운용이 유리
2024년에 자산 증가 폭이 가장 컸던 ETF 전체 현황을 살펴봐도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KB운용은 상대적으로 국내 채권 비중이 높고, 한투운용은 미국 주식과 미국 채권 비중이 높다. KB운용의 ETF 중 작년 순자산 증가 1위 종목은 ‘RISE 종합채권(A-이상)액티브 ETF’다. 작년에만 약 1조원이 증가했다.
또 순자산 증가 3위를 기록한 ‘RISE 머니마켓액티브 ETF’도 2024년에 약 6000억원이 증가했다. 순자산 증가 상위 10개 ETF 종목 중 4개가 국내 채권 ETF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 외 RISE 미국나스닥100 ETF가 약 6000억원, RISE 미국S&P500 ETF가 약 5000억원 증가해 미국 증시 상승의 수혜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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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투운용은 국내 채권형 ETF보다는 미국 주식형과 채권형 ETF 자산이 크게 증가했다. 한투운용 ETF 중 작년 순자산 증가 1위 종목은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 ETF’다. 무려 1조2000억원이 증가했다. 미국 금리 인하 기대감에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든 덕이다.
순자산 증가 2위 종목은 ‘ACE 미국S&P500 ETF’, 3위 종목은 ‘ACE 미국나스닥100 ETF’다. 작년에만 각각 9000억원과 7000억원이 증가했다. 미국, 빅테크, 배당에 포커스를 맞춰 순자산 증가 상위 10개 ETF 중 8개가 미국 관련 ETF다. 한투운용의 미국 집중 전략은 미국 증시 활황과 맞물려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순자산 증가 4위 종목인 ‘ACE 테슬라밸류체인액티브 ETF’는 테슬라 주식 외에도 테슬라 2배 레버리지와 채권에 적절히 분산해 테슬라 집중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켰다. 작년에만 5000억원 증가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테슬라 외에도 엔비디아, 구글, MS 등을 비슷한 스타일의 ETF로 만들어 2024년에 출시해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미국 증시가 워낙 활황이었던 만큼 ETF 수익률도 대체로 우수하다. 대표적으로는 ‘ACE 미국빅테크TOP7 Plus레버리지(합성) ETF’의 1년 수익률이 187%로 1위를 기록했다.
한투운용은 마케팅 차별화에도 성공했다. 2024년에 반도체와 빅테크 관련 세미나를 3차례 진행하며 트렌드 선도에 앞장섰다. 결국 상품 개발, 운용, 마케팅의 3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지면서 전 운용사 중 유일하게 시장점유율이 전년 대비 2.4%포인트 급등하는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냈다.
KB자산운용의 고육지책...수수료 파괴 전략
3위를 지켜내야 하는 KB자산운용은 2024년에 기존 ETF 브랜드인 ‘KBSTAR’를 ‘RISE’로 리브랜딩했다. 또 내실을 갖추기 위해 거래가 잘 되지 않는 ETF들을 대거 상장 폐지해 상품 수를 줄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리브랜딩의 효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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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전략은 바로 수수료 파괴다. 일례로 미국의 대표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KB자산운용의 ‘RISE 미국S&P500 ETF’나 ‘RISE 미국나스닥100 ETF’의 총 보수를 2024년에 연간 0.0010%로 낮췄다. 동일 유형의 한국투신운용 ETF 총 보수의 7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은 수수료보다 거래량을 더 중요하게 여겨 실제 효과는 제한적이다. 그래도 미국 시장 점유율 2위인 뱅가드가 1위 블랙록을 강력히 추격하는 비결 역시 파격적인 수수료 인하 정책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이든 미국이든 낮은 수수료 전략은 점유율을 높이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ETF의 아버지’로 불리는 배재규 사장 취임 이후 3년 만에 ETF 빅3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치열한 ETF 전쟁에서 지난 3년간 한국투신운용의 진격은 인상적이다. 이 기세가 이어진다면 2025년에는 한투운용이 3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투운용의 ETF 포트폴리오로 볼 때 가만히만 있어도 미국 증시가 추가 상승하면 자연스럽게 ETF 순자산총액도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에 들어갔다는 것이 강점이다. 반면 한투운용에 비해 미국 비중이 낮은 KB운용은 대응하기가 몹시 까다로운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실적이 워낙 탁월했던 만큼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배 사장의 연임을 기정사실로 여긴다. 2025년에도 질주하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을 막아내고 3위를 지켜내야 할 KB자산운용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025년 02월호
ETF 낙오한 자산운용사 운명은? 유일한 생존자는 ‘조선 ETF’
ETF 점유율 1% 이상 운용사 고작 8개
증권사 80% 이상 흑자, 운용사 절반 이상 적자
ETF 점유율 낮으면 미래 없다는 공포감 팽배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에는 2024년 9월 말 기준 총 483개의 자산운용사가 있다. 60여 개에 불과한 증권사와 비교하면 무려 8배에 달한다. 증권업계의 2024년 실적은 양호하다. 9월 말 기준 영업이익이 흑자인 증권사는 60개 중 50개로 80% 이상이다. 적자를 기록한 증권사는 10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산운용사는 다르다.
금융감독원의 2024년 3분기 자산운용회사 영업실적 잠정치에 따르면 483개 중 222개 사만 흑자를 봤다. 나머지 261개 사는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회사 비율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일반 공모펀드 시장의 수수료가 하락하면서 운용사 간 부익부빈익빈 현상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소비자들은 수수료가 비싼 공모펀드 대신 저렴한 ETF로 계속 갈아타는 중이다. ETF 시장은 철저한 승자독식 시장이다. 전체 483개 자산운용사 중 ETF 시장에 뛰어든 운용사는 고작 26개 사에 불과하다. 이 26개 중에서도 시장점유율 1% 이상을 차지한 운용사는 고작 8개다.
신한자산운용 7위서 5위로 껑충, 한화는 7위로 추락
운용사들 상당수는 장기적으로 ETF 시장을 선점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될 것을 우려한다. 따라서 ETF 점유율 경쟁은 치열하다. 2024년에 가장 눈에 띄는 ETF 점유율 순위 변화는 전년도에 7위였던 신한자산운용이 5위로 무려 두 계단이나 뛰어오른 점이다.
신한자산운용의 ETF 순자산총액은 2023년 말 2조6500억원에서 2024년 11월 말 기준 5조2000억원으로 약 2조5500억원 급증했다. 이에 따라 시장점유율도 0.9%포인트나 상승한 3.1%를 기록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2.4%포인트 점유율 상승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반면 5위였던 한화자산운용은 2024년에 두 계단이나 하락한 7위로 떨어졌다. 2024년 7월 한화자산운용은 특단의 대책으로 15년간 사용해온 ETF 브랜드 ‘ARIRANG(아리랑)’을 버리고 ‘PLUS(플러스)’로 리브랜딩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2024년 11월 기준 시장점유율은 간신히 2%에 턱걸이해 전년도보다 0.4%포인트 감소했다.
점유율 6위인 키움투자자산운용은 전년 대비 0.1%포인트 상승한 2.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특이하게도 국내 운용사 중 유일하게 ETF 브랜드가 2개다. ‘KOSEF’는 기존 브랜드이고 2022년부터 액티브 ETF에는 ‘히어로즈’를 쓰고 있다. 2024년 ETF 순자산은 1조1000억원 증가한 3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가장 심각한 건 점유율 8위인 ‘NH아문디자산운용’이다. 11월 기준 시장점유율은 1.1%에 불과하다. 전년 대비 0.5%포인트 하락했다. 상위 8개 운용사 중 유일하게 순자산도 약 2000억원 감소한 1조8000억원의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 이에 NH아문디운용은 최근 길정섭 대표이사를 새로 선임하며 전열을 재정비 중이다.
신한운용 11월까지 신상품 ETF 18개 출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2024년에 순위를 두 계단이나 상승시킨 신한자산운용의 비결은 뭘까. 일단 3년 전에 신한자산운용이 ETF 브랜드를 ‘SMART(스마트)’에서 ‘SOL(솔)’로 교체한 리브랜딩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신한운용은 신상품 개발에도 상당한 에너지를 쏟고 있다. 2024년에만 총 18개의 신상품을 출시했다. 이 중 5개가 1000억원 이상의 대형 ETF로 성장했다.
순자산총액 상위 5개의 신상품 중 1위인 ‘SOL 26-12 회사채(AA-이상)액티브 ETF’를 제외하면 나머지 4개가 전부 미국 관련 ETF다. 2위 ‘SOL 미국배당미국채혼합50 ETF’가 1683억원, 3위 ‘SOL 미국AI소프트웨어 ETF’ 1652억원, 4위 ‘SOL 미국테크TOP10 ETF’ 1382억원, 5위 ‘SOL 미국AI전력인프라 ETF’가 1007억원의 순자산총액을 기록했다.
순자산 증가 1위는 ‘조선 TOP3 플러스’
미국 증시의 랠리에 힘입어 신한운용의 미국 관련 신상품에도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렸다는 평가다. 신상품 ETF뿐 아니라 기존 ETF로의 자금 유입도 상당했다. 2024년에 순자산이 가장 많이 증가한 상위 7개 ETF의 순자산증가 합계액은 1조89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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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ETF는 2024년에만 순자산총액이 4539억원 증가한 ‘SOL 조선TOP3플러스 ETF’다. 놀랍게도 국내주식형이다. 한국 증시 부진으로 대부분의 운용사들은 채권이나 미국 주식 관련 ETF의 순자산 증가 폭이 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2024년에 한국 조선주는 글로벌 조선업 시장의 호황과 주요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로 주가가 큰 폭 상승했다. 특히 ‘SOL 조선TOP3플러스 ETF’는 2024년 누적 수익률이 62%다. 한국에 상장된 조선주 관련 ETF 4개 중 수익률이 가장 높다. 이에 투자자 자금도 몰려 조선주 ETF 중 가장 많은 4700억원의 순자산총액을 기록했다.
순자산 증가액 기준 2위는 ‘SOL 미국배당다우존스(언헤지) ETF’다. 2024년에만 4069억원이 증가했다. 이 상품은 미국의 대표적인 배당성장주 ETF인 일명 ‘슈드(SCHD, Schwab US Dividend Equity ETF)’와 동일한 지수를 추종해 은퇴자와 은퇴준비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는 신한자산운용이 업계 최초로 이를 월배당 ETF 구조로 출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파이어족이나 은퇴를 준비하는 직장인들이 현금흐름에 주목하면서 월배당 상품에 대한 수요가 커진 덕이다. 이런 분위기를 잘 간파해 선제적으로 상품을 출시한 신한자산운용은 ETF 중위권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순자산 증가 순위 6위를 기록한 ‘SOL 미국배당다우존스(H, 헤지) ETF’까지 합치면 순자산 총액이 1조원이 넘는다. 신한운용의 대표 ETF라 할 수 있다. 신한운용의 ETF 단일 상품 중 아직 1조원을 돌파한 상품은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너무 많은 운용사...ETF 시장 진입 못하면 위험?
한국은 지금 너무나 많은 483개의 자산운용사가 난립해 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적자라는 점도 문제다. 100위권 이내 상위 자산운용사의 최대 고민은 ETF 시장 진출이다. 현재 ETF 시장에서 1% 이상의 의미 있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운용사는 8개에 불과하다. 이 안에 들어가지 못한 대형 운용사들의 고민이 크다.
ETF 시장은 지난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한국과 미국에서 그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저비용과 높은 투명성 덕분에 개인투자자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투자 상품이다. 미국에서는 로빈후드(Robinhood) 같은 플랫폼의 대중화로 ETF에 대한 접근성이 더욱 높아졌다.
삼성과 미래에셋의 점유율이 거의 80%에 육박하는 한국의 상황에서도 다른 운용사들이 ETF 시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ETF 시장에서 자리 잡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공포감에 빠져 있다. 문제는 한국 시장의 경우 점유율이 최소 3%는 넘어야 의미 있는 수익 달성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반면 미국 ETF 시장에서는 1%의 점유율만 확보해도 대단한 성과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워낙 운용자산 규모가 크다. 그래서 미국도 운용사 간 ETF 전쟁이 한창이다. 미국의 운용사들이 점유율 30.6%의 블랙록과 28.7%의 뱅가드가 버티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ETF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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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점유율 순위는 3위 스테이트 스트리트 13.7%, 4위 인베스코 6.2%, 5위 찰스 슈왑 3.8%, 6위 퍼스트 트러스트 1.8%, 7위 JP모건 체이스 1.8%, 8위 디멘셔널 1.6% 순이다.
주목할 점은 미국 점유율 1.8%에 불과한 디멘셔널의 총 운용자산(AUM)은 무려 234조원(1669억달러)이다. 한국 1위인 삼성자산운용 순자산총액 63조원의 4배에 달한다. 미국 ETF 시장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구조다.
한국의 ETF 시장도 지난 몇 년간 급성장했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한국 8위인 NH아문디자산운용의 순자산총액은 1조8000억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는 규모의 경제를 온전히 누리기 어려운 구조다. 심지어 8위조차 진입하지 못한 대부분의 한국 자산운용사들 고민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025년 01월호
바이오 ETF 美보다 한국 수익률 더 높았다 2025년은 한국 제약·바이오 시장 전환점
한국 바이오 주식...대형주 수익률 좋아
중소형 바이오 기업은 자금난 심각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2024년 11월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되면서 한국 금융시장의 혼란이 지속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불거지면서 한국 증시는 혼돈 양상이었다. 12월에는 코스피 지수가 2400포인트마저 붕괴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작년 한국 증시 수익률은 해외 주요 증시 대비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도 미국보다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 중인 섹터가 있다. 바로 K-바이오 섹터다. 2024년 11월부터 주가가 큰 폭 조정받았지만 바이오 섹터의 최근 1년간 수익률은 양호하다.
이는 지난 1년간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연속으로 호재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먼저 지난 2023년 12월에는 리가켐바이오와 얀센의 기술 이전 계약이 체결됐다. 리가켐바이오의 첫 단독임상개발 ADC 약물인 ‘LCB84’ 관련 계약이다.
2024년 2월에는 알테오젠이 머크 키트루다에 ‘피하투여 제형(SC)’에 대한 독점계약변경까지 호재가 연이어 터졌다. 또 8월에는 유한양행 ‘렉라자(해외명 : 라즈클루즈)’의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 승인, 10월에는 펩트론과 일라이 릴리의 플랫폼 기술계약 체결까지 굵직한 딜이 이어졌다.
현대차증권의 여노래 애널리스트는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특이점을 맞이했다”는 입장이다. “2015년 이후 신약의 기술 이전에만 의존하던 국내 바이오텍이 제형변경 플랫폼 기술 수출과 신약의 글로벌 승인이라는 새로운 성과를 입증하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한국 바이오 ETF 수익률 미국 제쳐
한국에 상장돼 있는 주요 바이오 ETF 수익률을 살펴보면 미국보다 한국 수익률이 더 양호하다. 코스닥150 구성종목 중 바이오 기업에 분산 투자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코스닥150바이오테크 ETF’의 최근 1년 수익률은 무려 54%다. 2024년에 수익률이 뜨거웠던 알테오젠 주식 비중이 30%에 육박하는 덕을 톡톡히 봤다.
수익률 2위를 기록한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TIMEFOLIO K바이오액티브 ETF’도 32%의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포트폴리오 내 상위 종목으로는 알테오젠, 셀트리온, 펩트론, 삼성바이오로직스를 10% 내외로 편입했다.
삼성액티브자산운용의 ‘KoAct 바이오헬스케어액티브 ETF’ 수익률도 29%로 양호하다. 포트폴리오 내 상위 종목으로는 알테오젠 13%, 리가켐바이오 11%, 삼성바이오로직스 11% 수준이다. 수익률 상위 국내 바이오 ETF들은 각각의 차별화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특이한 건 국내 바이오 ETF 수익률이 미국 바이오 ETF 수익률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미국 첨단 바이오 주식에 투자하는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S&P바이오(합성) ETF’ 수익률은 48%로 양호하다.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 인사이트, 이그젝트 사이언시스 등 140여 개 종목에 동일 비중으로 투자한다.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나스닥바이오 ETF’ 수익률은 33%로 국내 바이오 ETF보다 부진하다. 포트폴리오 내 상위 종목은 길리어드 사이언스, 버텍, 암젠, 리제네론, 아스트라제네카 등이다. 글로벌 유명 제약회사들이지만 2024년만큼은 한국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들에 비해 수익률이 낮은 편이다.
제약·바이오 섹터 수익률 견인한 대형 종목
2024년에 한국 제약·바이오 섹터의 수익률을 견인한 건 대형 종목들이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에서 강력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2024년 연간 누적 수주금액은 5조원을 돌파했다. 예상매출액도 사상 처음으로 4조원 돌파가 가능할 전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상위 20개 제약사 중 17곳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2025년 4월로 예정된 송도 5공장까지 완공되면 총 78만4000리터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현재 세계 최대 생산능력을 갖춘 론자를 뛰어넘는 규모다. 주가도 2024년 초의 76만원에서 28% 상승했다. 한때 100만원을 넘기기도 했다.
알테오젠은 2024년에 한국 제약·바이오 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종목이다. 연초의 9만8500원에서 184% 폭등했다. 최근 주가가 조정받고 있지만 워낙 많이 오른 만큼 자연스러운 조정이라는 평가다. 주가 상승 이유는 세계 1위 항암제인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에 제형 변경 히알루로니다제 플랫폼인 ‘ALT-B4’를 적용한 계약을 비독점에서 독점으로 전환한 덕이다.
특허 만료를 앞둔 머크의 키트루다는 제형 변경을 통한 특허 연장이 절실해 정맥주사(IV) 제형에서 피하주사(SC) 제형으로의 변경이 가능한 알테오젠의 플랫폼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추가로 최근에는 항체-약물접합체(ADC) 1위인 일본 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에도 제형 변경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장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HLB의 간암 치료제인 ‘리보세라닙’은 ‘캄렐리주맙’과의 병용요법으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2024년 5월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기대했으나 의외의 보완요구서한(CRL)을 받으면서 주가가 크게 조정받았다. 하지만 최근 미국 FDA 임상시험 현장 실사를 통과해 최종 승인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2024년에 주가는 42% 상승했다.
유한양행의 ‘렉라자(해외명 : 라즈클루즈)’는 국내 개발 항암제 중 처음으로 올 초에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 비소세포폐암 표적항암제로 존슨앤드존슨의 리브리반트와 병용된다. 유한양행은 렉라자 매출액의 10~15%를 로열티로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4년 초 주가는 6만원대였으나 11월 말 기준 68% 폭등한 상태다.
리가켐바이오의 핵심 사업은 차세대 항암제로 각광받고 있는 항체-약물 접합체(ADC)의 연구개발 및 기술 이전이 주력이다. 얀센에 2조2000억원 규모로 기술 이전한 ‘LCB84’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 약 10여 건의 기술 이전을 통해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24년 초 6만5000원이었던 주가는 11월 말 기준 47% 상승했다.
투자자 관심 줄어든 중소형 바이오 기업
다양한 호재로 주가가 급등한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들과 달리 대부분의 중소형 바이오 기업들은 2024년에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다. 지난 3년간의 고금리로 인해 투자심리가 위축돼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게 줄었다.
특히 바이오 기업들은 장기적인 연구개발 비용 조달을 위해 자본시장에 의존하는 경우가 흔하다. 많은 바이오 기업이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운영 자금을 조달했는데 주가 하락으로 인해 CB 상환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유동성 위기로 이자를 내지 못해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연구개발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중소형 바이오 주식보다 확실한 호재와 자금력이 탄탄한 대형 제약·바이오 주식으로 투자 대상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바이오 ETF 역시 중소형사보다는 대형사 편입비중이 높은 상품을 고르는 게 안정적이다.

2025년 01월호
베이비부머 최대 관심사는 헬스케어 주가 조정에도 기대되는 이유
제약비용 낮추려면 바이오시밀러는 필수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최대 수혜 주목
금리 인하에 ‘생물보호법’까지 날개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의 제약·바이오 주식은 2024년에 양호한 수익률을 보였지만 11월부터 수익률이 확 꺾였다. 그럼에도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 K-바이오는 여전히 유망하다. 가장 큰 이유는 본격적인 고령화 때문이다. ‘유엔 세계인구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인구는 약 80억9000만명이다.
바이오 산업 장기 우상향은 정해진 미래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는 23년 전인 2002년에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고령화는 전 세계 평균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미국은 총 3억3700만명의 인구 중 5965만명이 65세를 넘었다. 노인 인구 비율은 17.7%다. 한국도 총 5175만명의 인구 중 994만명이 65세를 넘었다. 노인 인구 비율이 무려 19.2%다. 따라서 한국은 2025년부터 노인 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노인 인구 비중이 늘어날수록 해당 국가의 의료비용은 급증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의료비용을 적게 쓰는 젊은 연령층보다 나이 많은 고령층의 의료비가 폭증하는 건 상식이다.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제약·바이오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베이비부머 최대 관심사는 헬스케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모두 초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이 선진국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본인의 건강과 수명 연장에 진심이다. 건강 관리도 보유재산이 넉넉해야 가능하다. 미국 베이비부머 세대는 1946~1964년생이다. 이 중에는 구매력이 상당한 중간 부유층이 많다.
이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미국 헬스케어 시장은 매년 초고속 성장 중이다. 미국 의약품 시장은 전 세계에서 4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앞으로도 중산층 이상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인의 수명 연장에 투입하는 금액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본인의 수명 연장보다 자녀들에게 남겨줄 상속재산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한국 역시 2025년부터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평생 의료비 지출의 약 60%가 65세 이후에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다. 따라서 한국 베이비부머 세대 역시 머지않아 최대 관심사가 헬스케어로 바뀔 예정이다.
트럼프 핵심 과제는 ‘규제 완화’와 ‘약가 인하’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 역시 작년 11월부터 주가가 대체로 약세를 보였다. 이는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11월 14일에 ‘코로나 백신 음모론자’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를 미국 보건복지부(HHS) 장관으로 지명한 영향이다. 케네디 주니어는 대형 제약사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 왔다.
또 같은 달 19일에는 미국 건강보험을 총괄하는 보험청(CMS·메디케어·메디케이드센터) 수장에 유명 건강 프로그램 ‘닥터 오즈 쇼’의 진행자인 메멧 오즈 박사를 지명했다. 그는 방송에서 대체의학에 가까운 주장을 자주 해 논란이 있었다. 이에 따라 미국 제약 정책의 장기 방향성이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22일에 식품의약국(FDA) 국장으로 마티 마카리 존스홉킨스대 외과 전문의를 지명하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많이 완화됐다. 마티 마카리는 과학적 근거 기반의 허가 규제를 지지하는 등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텍에 대해 좀 더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인물이다.
트럼프의 핵심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신약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FDA의 승인 절차를 간소화해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혁신적인 치료제의 출시 속도를 높일 수 있다. 한국의 제약사보다는 미국 대형 제약사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두 번째는 약가 인하 정책이다. 직접적인 규제보다 시장 경쟁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책에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미국이 폭증하는 의료비용을 낮추기 위해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보다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사용을 촉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바이오시밀러는 특허가 만료된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을 뜻한다. 이 분야는 한국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나 셀트리온이 강점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2차전지 등 트럼프의 관세 부과 우려로 떨고 있는 수출 업종과 달리 한국의 대형 바이오 기업들이 트럼프 정책에 기대감을 갖는 이유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사상 최대 매출
이미 한국 증시에서 바이오 기업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훨씬 더 커진 상태다. 한국 증시 시가총액 상위 6개 종목 안에는 바이오 주식이 2개나 포함돼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4위, 셀트리온이 6위로 올라섰다.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위상이다.
시가총액 3위인 LG에너지솔루션(89조원)과 4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69조원)의 시총 격차는 약 20조원이다. 시가총액 5위인 현대차(46조원)와 6위인 셀트리온(41조원)의 시총 격차는 5조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대차와 셀트리온의 영업이익 격차는 현대차가 무려 10배 더 많다. 그만큼 시장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의 향후 성장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은 각각 2024년에 사상 최고 매출액을 달성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24년 3분기 누적 매출액은 3조2909억원으로 전년 대비 21% 증가했다. 2024년 연간 매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4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셀트리온의 2024년 3분기 누적 매출액은 2조4937억원으로 전년 대비 39% 급증했다. 2024년 연간 매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2023년의 양사 영업이익률도 각각 30%로 상당히 높다. 제조업 평균 마진율이 5%에도 못 미치는 현실로 볼 때 바이오 산업의 수익성이 다른 업종에 비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셀트리온 영업이익률이 2024년 들어 12%로 낮아진 건 2023년 12월에 ‘셀트리온 헬스케어’와의 합병에 따른 비용 발생이 원인이다. 이는 일시적 요인으로 올해부터는 다시 영업이익률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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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 최대 수혜
셀트리온의 경쟁력은 강력한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에 있다. 대표적으로는 얀센의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적응증: 크론병 등)’, 애브비의 휴미라 바이오시밀러인 ‘유플라이마(적응증: 류머티스 관절염 등)’, 로슈/바이오젠의 리툭산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적응증: 림프종·백혈병 등)’, 로슈+제넨텍의 허셉틴 바이오시밀러 ‘허쥬마(적응증: HER2 양성 유방암)’ 등이 있다.
셀트리온 바이오시밀러 중 가장 기대가 큰 의약품은 얀센의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와 ‘짐펜트리’다. 레미케이드는 자가면역질환(크론병 등) 치료제다. 셀트리온은 기존 ‘정맥주사제(IV)’ 형태의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환자의 투약 편의성 극대화를 위해 자가 주사형 피하주사제(SC) 형태로 새롭게 개발했다.
유럽에서는 이를 ‘램시마SC’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미국에서는 ‘짐펜트리’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램시마는 2024년에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한다. 아직 미국 시장 공략 초기인 짐펜트리도 머지않아 1조원 매출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2년에 설립된 생명공학 회사다. 주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을 개발, 생산, 상용화하는 데 주력한다. 다수의 바이오시밀러 품목이 FDA 판매 허가를 받아 미국과 유럽 등에서 판매 중이다.
얀센의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는 ‘렌플렉시스(적응증 : 크론병 등)’, 로슈의 ‘허셉틴’ 바이오시밀러는 ‘온트루잔트(적응증 : 유방암 등)’, 암젠의 ‘엔브럴’ 바이오시밀러는 ‘에티코보(적응증 : 류머티스 관절염)’라는 약품명으로 출시됐다.
그 밖에도 애브비의 ‘휴미라’는 ‘하드리마(적응증 : 건선 등)’, 노바티스의 ‘루센티스’는 ‘바이우비즈(적응증: 황반변성 등)’, 리제네론의 ‘아일리아’는 ‘오퓨비즈(적응증: 황반변성 등)’, 얀센의 ‘스텔라라’는 ‘피즈치바(적응증: 크론병 등)’라는 이름의 바이오시밀러로 판매된다.
지금 세계 각국 정부는 늘어나는 의약품 비용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국가의 재정은 빠듯한데 노령화로 인해 의약품 지출비용은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오리지널보다 가격이 저렴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사용을 권장하는 추세다. 앞으로도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매출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리 인하에 ‘생물보호법’까지 날개 단 바이오
한국은행이 예상 밖으로 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하한 2024년 11월 28일에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주가는 각각 5% 폭등했다. 바이오 산업은 연구개발(R&D) 비용이 크고 신약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특성상 금리 인하의 대표적인 수혜 업종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성공에 따라 자국 우선주의에 따른 관세 부과 우려로 한국의 주력 수출업종인 자동차, 반도체, 2차전지 관련 회사들은 모두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우려보다 기대감이 더 큰 모습이다.
트럼프가 대중국 강경책을 쓸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에 ‘생물보안법(Biological Security Act)’은 기회 요인이다. 이 법안은 미국 내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를 규제하고, 민감한 건강 및 유전자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다. 아직 미국 상원의 벽은 넘지 못한 상태다. 2025년 초에는 상원 통과가 예상된다.
법안이 실제 시행될 경우 중국의 대표적인 의약품 CMO/CDMO(위탁개발생산) 기업인 우시 앱텍, 우시 바이오로직스와 중국 유전체 기업인 BGI 지노믹스 등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반면 글로벌 최강의 CMO/CDMO 경쟁력을 갖춘 삼성바이오로직스에는 초대형 호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 규모는 글로벌 톱 수준이다. 2025년 4월 완공 예정인 송도의 제5공장까지 합치면 ‘총 생산능력(Capa)’은 무려 78만4000리터로 늘어난다. 이렇게 대규모의 생산능력을 보유하면 ‘규모의 경제’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즉 생산단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2024년 11월 27일 홍콩에서 투자설명회를 개최한 셀트리온 역시 서정진 회장이 직접 CDMO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서 회장은 “약 1조5000억원을 내부 자금으로 준비해서 12월 중 CDMO 법인을 만들고 2025년에는 생산시설 착공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공장을 신속하게 짓기 위해 20만리터까지는 한국에 짓고 그 이상은 비즈니스상 유리한 곳에 추가 건설을 검토할 것”이라고도 했다.
K-바이오 원투 펀치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의 매출액 성장은 이미 정해진 미래다. 이들 외에도 알테오젠, HLB, 유한양행, SK바이오팜, SK바이오사이언스, 리가켐바이오, 한미약품, 펩트론 등 한국 바이오 주식 중에는 호재 있는 종목들이 많다. K-바이오 기업 주가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올해가 기대되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제약·바이오 시장의 경쟁 강도는 높아지겠지만 기회 요인도 상당하다. 2024년에 한국의 제약·바이오 섹터는 다른 섹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여 왔다. 투자자들은 다양한 호재가 살아 있는 2025년에도 제약·바이오 섹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4년 12월호
대기업 명예퇴직 확산…은퇴 준비자들 ‘연금 금융사’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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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준비자’만 672만명...퇴직연금 수익률 중요
원리금 보장형 많은 은행...수익률 저조
ETF 매매도 불편한 은행...고객 방어 난감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10월 말부터 본격 시행됐다. 은행업계와 증권업계 간에는 온도차가 극심하다. 은행업계는 자금 이탈 우려에 긴장감이 감돈다. 반면 증권업계는 자금 유치 기대감에 화색이 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란 한 금융회사의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금융회사로 옮길 때 고객이 보유 중인 상품 그대로 이전할 수 있게 해 주는 제도다. 지금도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다른 금융회사로 계좌를 옮길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제도하에서는 본인이 운용 중인 퇴직연금 계좌 내 투자 상품을 전량 매도해 현금화해야 이전이 가능했다. 이 과정이 번거롭다 보니 퇴직연금 이전 건수가 저조했다. 본격적으로 실물이전 제도가 도입되면 은행업계와 증권업계 간 퇴직연금 이전 건수가 과거보다 훨씬 더 증가할 전망이다.
노후 준비 허술한 은퇴자들...퇴직연금 갈수록 중요
최근 주요 은퇴 게시판에는 요즘 대기업들이 진행 중인 명퇴 관련 문의가 많아졌다. “만52살인데 이번에 명퇴금 4억원 받아 은퇴하는 게 좋을까요?”, “40대 후반인데 이번에 명퇴금 받아 퇴직연금 운용하면 월 300만원 가능할까요?” 등의 은퇴 관련 문의가 부쩍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9월 말 기준 60세 이상 인구는 1425만명이다. 놀라운 건 이 만60세 이상 인구 중 47.4%인 675만명이 여전히 취업자로 분류된다. 한국인 중 절반 가까이가 60세 이후에도 은퇴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이들 60세 이상 취업자 중 상당수는 주 직장에서 이미 정년 퇴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퇴직 후 조건을 낮춰 새로운 직장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근로시간이 적고 급여도 낮은 기간제 근로종사자도 상당수다. 한국인이 나이 들어서도 은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 유지다. 그만큼 퇴직연금, 개인연금, 국민연금의 3층 노후 준비가 허술한 은퇴 예정자가 많다는 의미다. 문제는 ‘만60세 이상 계층’의 뒤를 이어 순차적으로 퇴직이 예정된 ‘만50~59세 계층’이다. 현재는 1973년생이 만50세, 1964년생이 만59세를 넘은 상태다. 이들은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은 주 직장에서 앞으로 10년 이내에 질서정연하게 순차적으로 퇴직할 예비 은퇴자들이다. 따라서 은퇴가 임박한 직장인일수록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 위해 실물이전제 도입
그런데 정부는 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를 도입했을까. 이는 전반적인 퇴직연금 수익률이 극도로 부진한 탓이다. 이에 따라 금융업권 간 경쟁구도를 만들어 수익률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최근 5년간 퇴직연금 연 환산 수익률은 고작 2.35%에 불과하다. 최근 10년 수익률은 더 부진해 2%를 살짝 넘는 2.07%의 처참한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무위험 상품인 은행예금 이율보다도 못하다. 2024년 상반기를 지나면서 수익률은 다소 개선됐지만 여전히 절대 수치는 낮다. 이런 부진한 수익률로는 앞으로 10년간 쏟아져 나올 672만명의 은퇴 예정자들 노후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긴장하는 이유다.
업권별로 살펴보면 2023년 말 기준 최근 5년간 수익률은 금융투자(증권 등) 업권이 2.93%로 가장 높았다. 생명보험 업권은 2.34%, 은행 업권은 2.15%, 근로복지공단은 2.14%, 손해보험 업권이 1.74%를 기록했다. 금융투자(증권 등) 업권의 수익률이 가장 높다.
은행 점유율 50% 넘지만 수익률은?
부진한 수익률에도 퇴직연금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2023년 말 기준 총 퇴직연금 규모는 382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8% 급성장했다. 올 연말에는 4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퇴직연금 시장을 선도하는 업권은 은행이다.
은행은 전체 퇴직연금 시장의 절반 이상인 51.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뒤이어 금융투자(증권 등) 22.7%, 생명보험 20.5% 순이다. 반면 평균 수익률은 금융투자(증권 등)보다 낮은 게 약점으로 지적된다.
은행과 증권의 수익률 격차는 ‘원리금보장형’ 차이?
모든 업권 중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이 가장 높은 업권은 금융투자(증권 등)다. 2023년 말 기준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은 26.7%,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은 73.3%다. 반면 은행 업권의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은 고작 9.9%에 불과하다. 나머지 90.1%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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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사의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은 은행보다도 작은 7.6%를 기록했다. 나머지 92.4%가 원리금보장형 상품이다. 손해보험사는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이 1.4%,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이 무려 98.6%다. 이렇게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높으면 마이너스 위험도 낮아지지만 고수익을 얻을 기회도 사라진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은행 예금보다도 못한 이유는 전체 퇴직연금 상품 중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87.2%나 되는 현실 때문이다.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은 고작 12.8%에 불과하다. 이렇게 원리금보장형 상품에만 집중된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한국인의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은 요원하다.
실적배당 상품 부족한 은행...고객 방어 난감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도입 검토 초기부터 은행 업권의 반발은 거셌다. 실적배당형 상품에서 은행은 증권사보다 라인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대세로 떠오르는 ETF 매매가 은행에도 허용된 건 불행 중 다행이지만 매매 방식은 여전히 증권업에 비해 불편하다.
만약 고객이 퇴직연금계좌 안에 ETF를 편입하려 한다면 증권사의 경우 실시간으로 ETF 매수가 가능하다. 반면 은행은 각 은행 시스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무리 빨라도 15분 지연된 가격으로 ETF 매매가 체결된다. 따라서 실시간 ETF 매매를 원하는 고객에게는 은행 시스템이 불편하다. 치명적인 약점이다. 또 펀드 라인업도 은행은 증권사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은행은 보수적 성향이라 내부 퇴직연금 상품 심의가 까다로웠던 탓이다. 이에 따라 최근 주요 은행들은 퇴직연금 이전제에 대비해 황급히 펀드 라인업을 대거 보강했다. 또 증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금 상품이 많은 것도 은행에는 불리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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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퇴직연금 적립금 순위는 2024년 9월 말 기준 1위 신한은행(42조7000억원), 2위 국민은행(39조5000억원), 3위 하나은행(37조원), 4위 기업은행(26조2000억원), 5위 우리은행(25조원) 순이다. 이 중 2023년 말 대비 3조3000억원(9.8%)의 적립금이 증가한 하나은행이 눈에 띈다.
증권 퇴직연금 적립금 순위는 1위 미래에셋증권(27조4000억원), 2위 현대차증권(16조8000억원), 3위 한국투자증권(14조5000억원), 4위 삼성증권(14조1000억원), 5위 NH투자증권(7조2000억원) 순이다. 이 중 눈에 띄는 건 2023년 말 대비 2조8000억원(15.3%)의 적립금이 증가한 미래에셋증권이다.
미래에셋증권은 퇴직연금 도입 초창기부터 전사적 역량을 퇴직연금에 쏟아부어 증권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적립금 규모가 은행 수준으로 성장했다. 심지어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보다도 적립금 규모가 더 크다. 따라서 이번 퇴직연금 실물이전제 도입 시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되는 증권사로 꼽힌다.
보험업계 상대적으로 느긋...수익률 부진은 고민
반면 보험업계는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보험사 퇴직연금은 ‘보험계약’과 ‘신탁계약’으로 나뉘는데 보험계약은 실물이전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 20% 내외인 신탁계약만 방어하면 된다. 하지만 수익률 부진은 고민이다. 보험업계 내부에서도 일정 규모의 이탈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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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 퇴직연금 적립금 순위는 1위 삼성생명(48조6000억원), 2위 교보생명(12조8000억원), 3위 한화생명(6조원), 4위 미래에셋생명(5조8000억원), 5위 푸본현대생명(1조3000억원) 순이다.
화재보험 퇴직연금 적립금 순위는 1위 삼성화재해상보험(6조5000억원), 2위 KB손해보험(3조5000억원)이다. 생명보험과 화재보험 회사 중 전년 대비 눈에 띄게 적립금이 증가한 회사는 없다.
증권사들 점유율 상승 호재 맞이 분주
지난해와 올해의 증시 활황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퇴직연금 수익률이 양호했던 증권사들은 요즘 표정 관리 중이다. 주요 증권사들은 이미 전사 역량을 총동원해 ‘퇴직연금 실물이전’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한 증권사 지점 직원은 “아무래도 실적배당형 상품에 강점을 가진 증권사가 은행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최근 투자자들이 ETF 월배당 상품에 관심이 많으므로 이를 활용해 은행 고객 유치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10년간 은퇴 예정자만 무려 672만명에 달한다. 한국 직장인들의 퇴직연금 관심도가 과거보다 크게 높아진 이유다. 이런 가운데 10월 말부터 시행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금융사 간 점유율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을지에 금융권 관계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폭풍전야다.
퇴직연금 이전제도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거대한 머니무브의 시작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은퇴가 임박한 퇴직연금 가입자일수록 수익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부진했던 수익률에도 또박또박 수수료만 챙겨 왔던 일부 금융기관들이 긴장하는 이유다.

2024년 12월호
年 1%p 수익률이 부른 노후 삶의 차이...나도 이참에 갈아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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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 개선 필요
고용주가 교육 격차 해소에 앞장서야
증권사 ETF 라인업 탄탄...은행, 보험 가입자 ‘들썩’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퇴직연금 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각하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거래 당사자 가운데 한쪽이 다른 쪽보다 해당 상품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은 상태를 뜻한다. 퇴직연금으로 투자 가능한 상품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가입자 간 수익률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다.
투자상품 지식이 높은 가입자는 미국 S&P500이나 나스닥100 ETF를 통해 지난 몇 년간 2배의 수익률을 달성한 경우도 흔하다. 반면 ‘원리금 보장’에만 집착해 연 3%에 불과한 수익률에 만족하는 가입자도 상당하다. 심지어 중국 관련 ETF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가 아직도 손실 중인 투자자도 수두룩하다.
한 퇴직연금 가입자는 “퇴직연금은 용어도 어렵고 상품 종류가 워낙 다양해 가장 익숙하고 안전한 예금 상품을 선택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또 다른 가입자는 “미국 주식이 좋다고 해서 예금으로 가입한 퇴직연금을 미국 ETF로 옮기려고 계속 타이밍을 보고 있는데, 달러가 계속 강세고 미국 주식도 사상 최고치라 교체를 망설이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퇴직연금도 투자상품의 일종이므로 상당한 투자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이 장벽이다.
유명무실한 퇴직연금 교육...정보격차 해소 요원
심각한 건 아직 본인 회사의 퇴직연금 제도가 DB형(확정급여형)인지, DC형(확정기여형)인지 용어조차 제대로 모르는 가입자도 많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 정상적인 본인의 퇴직연금 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가입자 교육이 절실하다.하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퇴직연금 교육은 한마디로 부실하다.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에 의거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회사(고용주)는 가입자에게 매년 1회 이상 퇴직연금 교육을 실시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 교육이 상당히 형식적이다.
만약 회사(고용주)가 은행, 증권, 보험사 등의 퇴직연금사업자와 계약 후 교육을 위탁하면 최초 1회의 집합교육이 진행된다. 이후에는 매년 온라인이나 이메일 교육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이마저도 실무에 바쁜 직장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는 어렵다. 또 이런 형식적인 교육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DB, DC 제도 설명과 세제 혜택만 설명하다가 끝난다. 실제 구체적인 상품 안내까지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퇴직연금 가입자 간 정보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다.
퇴직연금은 단기 수익률보다 장기 수익률 중요
이러다 보니 직장인 스스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 본인의 퇴직연금 계좌에 어떤 상품이 들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다. 반면 퇴직연금에 일찍 눈을 뜬 직장인들은 적극적인 운용전략으로 상당한 수익을 본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2023년 말 기준 지난 5년간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연 환산 수익률은 2.12%인 데 비해 ‘실적배당형 상품’은 4.18%를 기록했다. 두 가지 유형의 수익률 차이가 연간 2.06%에 달한다. 게다가 2024년은 글로벌 증시 호황이라 수익률 격차가 더 확연하다. 올해만큼은 실적배당형 상품을 선택하지 않은 가입자들에겐 아쉬운 한 해다.
2024년 9월 말 기준 적립금 상위 5개 은행(신한은행, KB국민은행,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우리은행)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단순평균 수익률은 시사점이 높다. 먼저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최근 1년 수익률은 3.6%에 불과하다. 반면 실적배당 상품의 수익률은 13.3%다. 격차가 무려 9.7%에 달한다.
이렇게 최근 1년 수익률만 살펴보면 원리금보장 상품에 비해 실적배당 상품이 우월해 보인다. 하지만 심각한 폭락을 겪었던 2022년 수익률이 포함된 최근 3년 수익률을 살펴보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실적배당 상품 단순평균 수익률은 0.7%에 불과한 데 비해 원리금보장 상품 수익률은 2.3%로 1.6%포인트나 더 높다.
반면 기간을 더 길게 5년으로 늘리면 수익률은 다시 역전된다. 원리금보장 상품의 5년 단순평균 수익률은 2.1%로 실적배당 상품 4.2%의 절반 수준이다. 결국 실적배당 상품의 장기 수익률이 원리금보장 상품보다 더 높지만, 3년 이내의 짧은 기간에는 변수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24년 9월 말 기준 적립금 상위 5개 증권사(미래에셋증권, 현대차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단순평균 수익률 역시 다르지 않다. 최근 1년 원리금보장 상품 수익률은 4.3%, 실적배당 상품 수익률은 13.1%다. 5년 기준으로도 역시 실적배당형이 4.6%를 기록해 더 높다.
퇴직연금은 최소 20~30년 이상 운용해야 하는 장기 상품이다. 연 1%의 수익률 격차도 복리효과로 30년 뒤에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하물며 지금같이 예금상품과 투자상품 수익률 격차가 매년 2~3% 이상 벌어지게 되면 은퇴 후 퇴직자가 수령하는 연금 격차는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다. 소홀히 다뤄지는 퇴직연금 교육의 개선이 중요한 이유다.
고용주 관심 중요...가입자도 정보격차 해소 노력을
퇴직연금 DC형(확정기여형)은 가입자 개개인이 직접 본인의 퇴직연금 안에 들어갈 금융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가입자 간 심각한 정보격차를 해소하려면 회사(고용주)가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은행, 증권, 보험 등의 퇴직연금사업자는 계약 후에도 회사(고용주)가 요청 시에는 퇴직연금 운용 상품 관련 세미나를 진행해 준다. 더 적극적으로는 특정일을 정해 부스를 운용하며 가입자 간 1대1 상담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렇게 가입자들이 실질적인 퇴직연금 운용전략을 교육받을 수 있게 앞장서서 움직이는 회사(고용주)는 많지 않다. 업무시간에 교육을 진행하면 회사 업무에 지장이 있으니 각자가 알아서 운용상품을 선택하라는 입장이다. 또 은행, 증권, 보험 등의 퇴직연금사업자 입장에서도 종업원 수가 적은 회사의 운용상품 세미나 요청까지 지원하기에는 인력 부담이 크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특정 회사가 운용상품 관련 세미나를 요청할 경우 웬만하면 진행해 준다. 하지만 요청이 몰릴 경우 인력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고용주 외에도 가입자 스스로가 퇴직연금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 세미나를 통해서도 상품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주요 퇴직연금사업자 중에는 온라인 ‘줌’ 등을 활용해 상품 설명이나 세미나를 진행하는 경우도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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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입자 중 상당수가 아직도 자신의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전히 원리금보장 상품 선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2023년 말 기준 무려 87.2%인 333조원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 중이다. 그나마 증권사(금투)의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이 26.7%로 가장 높다. 은행은 9.9%, 생명보험은 7.6%, 손해보험은 1.4%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퇴직연금 이전제 활용해 적극적 운용 나서야
이런 이유로 정부는 10월 말부터 도입하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로 수익률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가입자들이 예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에서 벗어나 미국주식 ETF 등의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갈아타는 촉매제가 될 거라는 분석이다. 회사별로는 총 몇 개의 퇴직연금사업자와 계약돼 있을까. 보통 은행, 증권, 보험 업권별로 1개씩 총 3개의 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한 경우가 가장 흔하다. DC 상품의 경우 회사와 계약된 사업자 간에만 퇴직연금 이전이 가능하다.
만약 가입자가 퇴직연금 이전을 원할 경우 회사 내에서 퇴직연금 업무를 담당하는 인사팀이나 재무팀에 신청하면 된다. 그런데 퇴직연금 이전업무를 실시간으로 365일 열어놓는 회사는 드물다. 업무 과부하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반년에 1회 또는 1년에 1회 특정기간을 정해 퇴직연금 이전을 신청받는 경우가 제일 흔하다. 따라서 퇴직연금 실물이전을 원하는 가입자는 회사 내부의 퇴직연금 관련 공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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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가능 상품은 특정금전신탁 형태의 원리금보장 상품(예금, GIC, ELB, DLB 등)과 공모펀드(MMF 제외), ETF 등이다. 다만 이관회사와 수관회사에서 동일 상품 라인업을 제공해야 실물이전이 가능하다. 이전 불가 상품으로는 퇴직연금사업자의 자체 상품(디폴트옵션), 지분증권, 리츠, 사모펀드, ELF, 파생결합증권, RP, MMF, 종금사 발행어음 등이다.
퇴직연금 DC형(확정기여형)과 달리 IRP(개인형 퇴직연금)는 소속회사와 상관없이 언제든 모든 금융기관으로 이전이 가능하다.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신청할 수 있다. 이전 절차가 간편한 만큼 금융기관 사이에서도 IRP 이전 관련 사전 마케팅이 치열하다.
증권사 ETF 라인업 탄탄...일부 가입자 이전 움직임
실제 은행과 보험사의 퇴직연금 예금(만기 1~3년) 가입자 중 일부는 이번 제도 도입에 따라 ETF 라인업이 풍부한 증권사로의 이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리금보장 상품 라인업은 은행이 탄탄하다. 하지만 실적배당형 상품은 증권사가 더 다양하다. 특히 최근 대세로 떠오른 ETF 상품 라인업은 은행보다 증권사가 월등히 많다. 은행은 증권사 라인업의 3분의 1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고객이 퇴직연금계좌 안에 ETF를 편입할 때 증권사는 실시간으로 ETF 매수가 가능하다.
반면 은행은 은행별 시스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무리 빨라도 15분 지연된 가격으로 ETF 매매가 체결된다. 실시간 ETF 매매를 원하는 고객에게는 은행 시스템이 불편하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증권사로 옮기려는 고객들의 수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한국에서 60대 이상의 취업자 수는 무려 675만명이다. 취업률이 47%가 넘는다. 이들이 나이 들어서도 은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 유지다. 그만큼 퇴직연금, 개인연금, 국민연금의 3층 노후 준비가 허술한 은퇴 예정자들이 많다는 의미다. 현재 퇴직연금 가입자 간 수익률 격차는 심각하다. 노후 연금의 허리 역할을 하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연 1%라도 끌어올려야 20~30년 뒤에 편안한 은퇴가 가능하다. 유명무실한 퇴직연금 교육의 개선이 절실한 이유다. 10월 말부터 도입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변화의 시작이다.

2024년 12월호
미국 ETF로 연금자산 ‘10억 만들기’
미국인 14억 연금 흔해...한국과 다른 이유
워런 버핏 유언도 S&P500에 투자해라
미국주식 25년 장기 수익률은 최소 300%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요즘 한국 직장인 사이에선 ‘연금 자산 10억 만들기’가 유행이다. 그 중심에는 퇴직연금과 연금저축이 있다. 만25세에 취업한 직장인 기준으로 퇴직연금과 연금저축을 30년 이상 불입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14억 연금 부자 미국인 50만명...비결은?
한국에서 현재 연금 자산 10억원을 달성한 사람은 거의 드물다. 반면 401K 은퇴계좌에 14억원(100만달러) 이상을 보유한 미국인은 무려 49만7000명(2024년 2분기 기준)에 달한다. 피델리티에 따르면 1년 전에 비해 31% 늘어난 사상 최대치다. 미국인들이 은퇴자산을 크게 늘릴 수 있었던 비결은 미국 S&P500과 나스닥100 관련 주식에 집중 투자한 덕이다. 반면 한국인들의 퇴직연금은 여전히 87%가 원리금보장 상품에 머물러 있다. 이런 구조로 은퇴 시점에 연금 10억원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인 중 상당수는 해외주식 활황으로 쏠쏠한 수익을 봤다. 이에 현재 30대, 40대, 50대 직장인 중에는 퇴직연금 계좌 안에도 미국 S&P500이나 나스닥100 ETF에 집중 편입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워런 버핏이 S&P500에 투자하라고 유언한 이유
이런 변화의 핵심은 결국 수익률이다. 한국인들의 미국 S&P500과 나스닥100 ETF 사랑은 엄청나다. 한국에 상장된 미국 주식 ETF 중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S&P500 ETF의 순자산총액은 4조9600억원, TIGER 미국나스닥100 ETF는 3조8800억원이다.
삼성자산운용, 한국투신운용, KB자산운용까지 상위 4개사만 다 합쳐도 15조원이 훌쩍 넘는 엄청난 규모다. 이는 한국 투자자들이 절세 혜택을 감안해 본인의 퇴직연금과 연금저축에 S&P500과 나스닥100 ETF를 대거 편입한 덕이다.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도 유언장에 “내가 죽거든 재산의 90%는 미국 S&P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에 투자하고 나머지 10%는 미국 국채에 투자하라”는 유언을 남긴 바 있다. 이는 주식에 대해 잘 모르는 배우자를 위한 포트폴리오다. 그만큼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S&P500 지수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다.
연금자산 장기투자...변동성 견딜까?
그런데 평범한 직장인이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주식시장에서 25~30년 이상 장기 투자하는 게 가능할까. 최근 몇 년간은 워낙 증시가 호황이라 많은 직장인들이 미국주식 장기 투자에 확신을 보인다. 하지만 시계바늘을 25년 전으로 돌려보면 주식 장기 투자가 결코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주식투자 수익률은 기준점이 어느 연도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IT 버블의 정점인 2000년도를 투자 시작점으로 가정해서 25년간의 수익률을 계산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2000년의 IT 버블 붕괴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이전의 나스닥 지수 폭등부터 살펴봐야 한다. 나스닥 지수는 1998년 10월의 1344포인트를 바닥으로 2000년 3월의 5133포인트까지 불과 17개월 만에 4배 가까이 폭등했다. 문제는 이 당시의 주가 상승은 정말 비이성적이었다는 점이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신경제’라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면서 회사 이름에 ‘닷컴’만 포함됐으면 사업성에 상관없이 미국이든 한국이든 미친 듯이 폭등했던 대버블의 시대였다.
그 이후 갑작스러운 IT버블 붕괴로 촉발된 주가 하락은 2000년 3월부터 시작돼 무려 31개월간 진행됐다. 심지어 이 하락 기간에 9.11 테러까지 터졌다. 증시의 숨통이 끊어질 듯한 복합 위기 상황이었다. 나스닥 지수는 이때부터 2000년 -39%, 2001년 -21%, 2002년 -32%로 3년 연속 폭락했다. 미국 S&P500 지수 역시 2000년 -10%, 2001년 -13%, 2002년 -23%로 3년 연속 약세를 보였다. 최고점 대비 지수 하락률은 더 극적이다. 이 당시 S&P500 지수의 최고점 대비 하락률은 -50%였다. 나스닥 지수의 최고점 대비 하락률은 무려 -78%다. 한국증시도 심각했다. 2000년 한 해에만 한국 코스피 지수는 -51%, 코스닥 지수는 -79% 대폭락했다.
이후 주가는 잠시 회복됐지만 2000년대 후반기에 다시 시련의 시기가 찾아왔다. 2008년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S&P500 지수의 최고점 대비 하락률은 단 1년 만에 -58%, 나스닥 지수는 -55%를 기록했다. 만약 2000년 초에 나스닥 지수 4069포인트로 투자를 시작했다면 9년이 지난 2008년 말까지도 1577포인트에 머무르는 끔찍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평범한 직장인 중에 9년 누적수익률 -60%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퇴직연금을 통한 주식 장기 투자가 생각보다 어려운 이유다.
미국주식 불패 신화는 2009년부터 시작
미국주식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체질이 확 바뀌었다. 2009년 한 해 동안 S&P500 지수는 23%, 나스닥 지수는 44% 대반등에 성공했다. 이후 2017년 말까지 9년간 S&P500과 나스닥 지수가 소폭이라도 마이너스를 보인 해는 각각 한 해에 불과했다. 그 한 해마저도 S&P500 지수는 -1%, 나스닥 지수는 -2%의 미미한 하락을 보였을 뿐이다.
이 9년간 S&P500 지수의 누적수익률은 196%다. 같은 기간 나스닥 지수 누적수익률은 338%다. 같은 기간 한국 코스피 지수의 누적수익률은 199%, 코스닥 지수 누적수익률은 140%에 달한다. 본격적인 주식투자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미국주식 25년 장기 수익률은 최소 300%?
2018년부터 2024년까지 6년 9개월간 미국 증시에는 두 차례의 큰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코로나19 전염병의 확산으로 2020년 1분기의 일시적인 주가 대폭락이다. 하지만 이후 연준의 제로금리 정책에 힘입어 주가는 오히려 급등세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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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변화는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2022년에 발생한 증시 조정이다. 2022년에 S&P500 지수는 -19%, 나스닥 지수는 -34% 폭락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50% 이상 대폭락과 비교하면 양호한 조정이다. 이후 2023년과 2024년에는 다시 전 고점을 돌파하며 새로운 신고가를 경신 중이다. 정리해 보면 2000년 IT버블 당시의 최고점에 주식투자를 시작했더라도 지난 25년간 미국 S&P500 지수의 누적수익률은 무려 288%를 기록했다. 나스닥 지수는 한때 -70% 이상 폭락했음에도 25년 누적수익률은 345%다. S&P500 지수 수익률을 능가한다. 가장 고점이었던 2000년도가 아니라 더 낮은 지수대에 미국주식에 투자했다면 수익률은 훨씬 더 높아진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결이 좀 다르다. 한국 코스피 지수의 25년 누적 수익률은 149%로 그나마 양호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코스닥 지수 수익률은 -71%로 심각하게 부진하다. 이는 2000년의 IT버블 당시 코스닥 지수가 워낙 비이성적으로 폭등했던 영향이 크다. 어쨌든 한국주식에 장기 투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설명되는 데이터다.
고평가 논란 미국 증시...계속 투자해도 될까?
달러/원 환율의 움직임도 중요하다. 지난 25년간 달러/원 환율은 대체로 1000원에서 1400원 사이에서 움직였다. 현재 환율 1400원 레벨에서는 상당한 환차익이 발생 중이다. 지금도 수많은 직장인들이 본인의 퇴직연금 계좌에 한국주식 대신 미국 S&P500과 나스닥100 ETF를 집중 편입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증시 고점 논란이 한창이다. 미국 지수가 신고점을 경신한 만큼 언제 조정받아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과거 사례에서 봐 왔듯이 미국 시장이 유망해도 진입시기에 따라 수익률 격차가 크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고점 논란이 고민될 수밖에 없다. 특히 기존 보유자보다 신규 진입을 고려 중인 직장인들의 고민이 더 크다. 일단 1400원의 고환율부터 문제다. 또 사상 최고가를 기록 중인 미국 S&P500이나 나스닥100 ETF를 선뜻 퇴직연금 계좌에 편입하기에는 심리적 부담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권하는 건 적립식 투자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미국 증시가 인기 있는 건 고배당,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 미국에 몰려 있는 강력한 인공지능 기업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장기적인 달러 강세 전망 등 복합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반면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며 “만약 현재의 미국 주가지수가 부담스럽다면 적립식 투자를 통해 투자시기를 분산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라며 미국주식 ETF의 효용성을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10~20년 뒤에는 퇴직연금으로 ‘연금 자산 10억 만들기’에 성공한 직장인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을까. 트럼프 당선 이후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한국 은퇴 예정자들의 미래가 미국 증시에 달려 있는 이유다.

2024년 11월호
5년 뒤 세계 최대 제약사는 로슈? 국내서도 ETF에 담았다
공격적 M&A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
‘허셉틴’ 등 주력 3종 특허만료 비상
삼성·미래에셋 비만 ETF도 로슈 비중 6% 베팅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로슈(Roche)는 1896년에 스위스 바젤에서 설립된 글로벌 제약 및 진단 회사다. 세계적인 헬스케어 기업 중 하나로 13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로슈의 대표 의약품은 20개도 넘는다. 그중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의약품을 꼽는다면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이 대표적이다.
영화 리빙 프루프(Living Proof)로 본 허셉틴
허셉틴은 표적항암제(2세대) 방식의 유방암 치료제다. 기존 세포독성항암제(1세대)는 정상 세포와 암세포를 구분하지 않고 공격해 부작용이 심했다. 반면 표적항암제인 허셉틴은 특정한 종류의 유방암 세포만을 공격해 치료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은 줄였다.
영화 ‘리빙 프루프(Living Proof)’는 암 연구자이자 종양학자인 데니스 슬래먼(Dennis Slamon) 박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가 1980~1998년까지 허셉틴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과정에서 겪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HER2 유방암은 암세포가 HER2라는 특정 단백질을 과도하게 발현해 빠르게 성장하는 유형의 유방암이다. 과거 HER2 양성 유방암은 예후가 좋지 않은 치명적인 암으로 여겨졌다. 치료제를 연구하던 슬래먼 박사는 허셉틴이 암을 공격하면서도 정상 세포를 덜 손상시키는 잠재력을 발견한다.
하지만 슬래먼 박사는 허셉틴 개발에 필요한 연구 자금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초기 임상시험에서 약간의 성공이 있었음에도 제약회사와 투자자들은 충분한 자금 지원을 주저한다. 그는 자금을 모으기 위해 기업을 설득하고, 때로는 환자들의 지원에 의존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슬래먼 박사는 다양한 임상시험을 수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몇몇 환자가 허셉틴 덕분에 생명을 구하는 극적인 순간이 묘사된다. 그러나 임상시험은 항상 순조롭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슬래먼은 실험 실패와 환자의 죽음 등으로 정서적 고통을 겪는다.
영화는 유방암을 앓고 있는 여성 환자들의 이야기를 병행해 그려낸다. 그들은 허셉틴이 자신들에게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기대로 치료에 참여한다. 특히 한 환자가 허셉틴 덕분에 암을 극복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결국 슬래먼 박사는 허셉틴의 기나긴 임상 1, 2, 3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1998년에 FDA의 최종 승인을 받아낸다. 슬래먼 박사와 ‘로슈+제넨텍’의 신약 개발 성공으로 HER2 양성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치료 옵션이 생긴 셈이다. 이후 수십만 명의 유방암 환자가 허셉틴 덕분에 생명을 건진 것으로 알려진다.
특허는 만료됐지만...공격적 M&A로 성장동력 확보
허셉틴은 뛰어난 의약품이지만 로슈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이미 특허가 만료됐다. 이에 따라 현재 미국에서 승인된 대표적인 허셉틴 바이오시밀러는 암젠과 엘러간 등이 공동 개발한 ‘칸진티’, 화이자의 ‘트라지메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온투르잔트’, 셀트리온의 ‘허쥬마’ 등 4종이 대표적이다.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허셉틴의 매출액은 급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로슈에게는 허셉틴만 있는 게 아니다. 로슈는 제약 부문과 진단 부문에서 혁신적인 의약품과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로슈는 특히 암 치료제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최근 글로벌 초대형 제약사들의 공통적인 전략은 공격적 인수합병(M&A)이다. 로슈 또한 오래전부터 다양한 M&A를 통해 제약 사업과 진단 사업을 키우며 성장해 왔다.
로슈가 1997년에 약 110억달러(13조3000억원)에 인수한 ‘베링거만하임’은 진단 기기와 시약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로슈가 베링거만하임을 인수함으로써 지금의 강력한 로슈 진단사업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로슈는 2001년에 일본의 쥬가이제약(Chugai)과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쥬가이제약 주식 50.1%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사실상의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 인수금액은 약 13억달러(1조7000억원)로 추정된다. 이후 쥬가이제약은 독립적으로 연구와 운영을 하고 있다. 또 로슈의 연구개발 네트워크와도 협력해 다양한 신약을 개발 중이다.
2008년에 약 34억달러(4조4000억원)에 인수한 ‘벤타나 메디컬 시스템즈’는 병리학적 진단 분야의 선도 기업이다. 특히 암 진단에 사용되는 조직 분석 및 자동화된 진단 기기를 개발하는 데 주력해 왔다. 로슈는 이 인수를 통해 ‘진단사업부’를 강화하고, 진단 기술과 치료제를 연결하는 동반 진단 분야에서의 경쟁력도 강화했다.
로슈의 역대 M&A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건 ‘제넨텍’ 인수다. 2009년에 약 468억달러(60조원)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인수합병을 진행했다. 제넨텍은 항암 치료제 분야에서 강력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회사다. 따라서 인수 이후 로슈가 항암제 시장에서 세계적인 리더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밖에도 2014년에는 83억달러(10조8000억원)에 ‘인터뮨’을, 2018년에는 ‘플랫아이언헬스’와 ‘파운데이션 메디신’을 각각 19억달러(2조5000억원)와 24억달러(3조1000억원)에 인수했다. 또 2019년에는 ‘스파크 테라퓨틱스’를 47억달러(6조1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 왔다.
로슈 매출액 1~7위 주력 의약품은?
로슈의 매출 상위 주력 의약품들은 대부분 ‘항체의약품’이다. 항체의약품이란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에서 항체가 병원체(바이러스나 세균)를 공격하는 원리를 이용해 만든 의약품이다. 항체는 특정한 물질(항원)을 찾아내고, 그것과 결합해 공격하거나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다.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약이 항체의약품이다. 예를 들어, 암 환자에게 투여하는 항체약은 암세포만 찾아가서 공격하게끔 설계돼 건강한 세포를 덜 손상시킨다. 대표적인 항체의약품으로는 허셉틴(Herceptin, 유방암 치료제)과 리툭산(Rituxan, 림프종 치료제) 등이 있다.
2024년 상반기 기준 로슈 매출액 순위 1위 약품은 ‘오크레부스(Ocrevus)’로 5조3000억원(34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오크레부스는 다발성 경화증의 진행을 늦추는 항체 약물이다. B세포를 표적으로 삼아 신경 손상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기존 치료법보다 재발률을 낮추고 환자 삶의 질을 개선한다.
2위는 ‘헴리브라(Hemlibra)’로 3조4000억원(21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혈액응고 장애를 가진 혈우병 A 환자들에게 사용된다. 특히 응고 인자 VIII 결핍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주사형 항체 치료제로 출혈 발생을 예방한다.
3위는 ‘퍼제타(Perjeta)’로 3조원(19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허셉틴과 함께 사용하는 표적항암제다.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게 투여해 암세포 성장을 막고 치료 효과를 높인다. 허셉틴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치료제다.
4위는 ‘티센트릭(Tecentriq)’으로 2조8000억원(18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비소세포 폐암, 방광암 등을 치료하는 면역항암제다. 종양세포가 면역 반응을 회피하지 못하게 해 자신의 면역 시스템이 암을 공격하도록 돕는다.
5위는 ‘바비스모(Vabysmo)’로 2조8000억원(18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황반변성 및 당뇨병성 망막병증 등의 안과 질환을 치료하는 항체 약물이다. 안구 내 혈관 신생을 억제해 시력을 보호한다. 황반변성을 방치하면 시력을 상실하게 된다. 바비스모는 기존 강자인 바이엘과 리제네론의 ‘아일리아’ 치료제를 맹추격 중이다. 2023년에만 전년 대비 매출액이 324% 폭증한 3조7000억원(24억스위스프랑)을 기록했다. 2024년 상반기 증가율도 93%로 엄청난 성장성을 보이고 있다. 로슈가 야심 차게 출시한 떠오르는 신약이다.
6위는 ‘악템라/로악템라(Actemra/RoActemra)’로 2조원(13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류머티스 관절염 및 중증 코로나19 치료제로 사용된다. 인터루킨-6를 차단해 염증을 치료하는 면역 억제제다.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의 염증 반응을 줄이고 증상을 완화한다.
7위는 ‘졸레어(Xolair)’로 1조7000억원(11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IgE 항체를 표적하여 알레르기성 천식과 만성 두드러기를 치료하는 약물이다. 염증을 유발하는 히스타민 분비를 억제한다.
로슈 매출액 8~15위 주력 의약품...특허 만료로 비상
로슈 매출액 8~15위 순위를 살펴보면 눈에 띄게 매출이 급감하고 있는 삼총사가 있다. 매출 11위를 기록한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이 첫 번째 주인공이다. 매출 12위를 기록한 대형 B세포 비호지킨 림프종 치료제 ‘맙테라/리툭산’이 두 번째 주인공이다. 매출 13위를 기록한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 ‘아바스틴’이 마지막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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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잘나갔던 로슈의 주력 의약품 허셉틴, 맙테라/리툭산, 아바스틴의 매출이 급감하는 이유는 특허가 만료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로슈에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하지만 로슈 역시 이날에 대비해 다양한 신약을 개발해 매출 감소를 상쇄하고 있다.
로슈 매출순위 8위인 ‘에브리스디(Evrysdi)’는 2024년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25% 급증한 1조3000억원(8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에브리스디는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다. 환자의 근육 기능을 향상시키는 먹는(경구용) 약물이다. 척수성 근위축증의 진행을 늦추고 생존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또 눈에 띄는 약물은 매출액 9위인 ‘페스코(Phesgo)’로 2024년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60% 급증한 1조3000억원(8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페스코는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제다. 로슈의 기존 대표 의약품인 퍼제타와 허셉틴을 한 번의 주사로 투여할 수 있는 복합 제제다. 두 약품의 장점을 결합해 치료 효과가 더 크다.
페스코는 ‘피하주사(SC)’로 투여할 수 있는 고정 용량 제형으로 제공된다. 약 5분 만에 투여가 가능하다. 그래서 약 90분이 소요되는 기존의 정맥 주사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더 많은 환자를 빠르게 치료해야 하는 의사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다. 바쁜 환자들 입장에서도 선호도가 높다.
경쟁 약품으로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치산쿄 가 공동 개발한 HER2 표적 항체-약물 접합체(ADC) ‘엔허투’가 있다. 페스코는 현재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는 적응증을 확대해 더 넓은 암 치료 영역으로 진출할 가능성도 크다.
로슈의 또 다른 유망 약품으로는 매출액 15위를 기록한 ‘폴라이비(Polivy)’를 꼽을 수 있다. 2024년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54% 급증한 8000억원(5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CD79b 항체와 약물을 결합한 항체-약물 복합체(ADC)로 비호지킨 림프종 환자에게 사용된다.
폴라이비는 암세포를 표적으로 직접 공격해 항암 효과를 극대화한다. 비호지킨 림프종(NHL), 특히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불응성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항체-약물 접합체(ADC)다. 항체와 항암제를 결합해 특정 암세포를 정밀하게 공격하는 방식이라 최근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비호지킨 림프종의 치료 영역에서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을 위한 신약 수요가 높기 때문에 차세대 항체-약물 접합체로서 시장에서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로슈는 폴라이비의 적응증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폴라이비는 1차 치료제로도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을 경우 매출과 시장점유율이 더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폴라이비의 경쟁 약물로는 노바티스의 CAR-T 세포 치료제가 있다. CAR-T 기술을 통해 환자의 면역세포를 변형해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혁신적인 치료법이다.
CAR-T 치료제는 혁신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비용과 복잡성 때문에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기는 어렵다. 폴라이비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투여 과정이 간단해 CAR-T 치료제를 사용할 수 없는 환자에게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향후 적응증 확대로 인해 더욱 큰 시장 기회를 확보할 가능성도 크다.
로슈의 또 다른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 치료제인 ‘컬럼비’도 기대되는 의약품이다. 이 약물은 ‘이중특이성 항체’ 면역세포를 동시에 타겟팅해 암을 공격하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특히 CAR-T 치료나 다른 표준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재발성 및 불응성 DLBCL 환자들에게 효과가 좋다. 컬럼비는 한국에서도 2023년 말에 승인됐다.
비만치료제 시장에도 뛰어들어
로슈에게는 이미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핵심 의약품 외에도 활발하게 임상이 진행 중인 신약 후보가 수십 가지나 대기 중이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비만 치료제다. 비만 치료제 시장은 이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가 꽉 잡고 있다.
하지만 로슈 역시 강력한 체중 감량 효과가 기대되는 비만 치료제의 임상 성적표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미 1상에서 25% 수준의 감량 효과가 보고되며 시장의 기대감을 증폭시킨 바 있다.
로슈가 개발 중인 비만약 후보물질 ‘CT-388’(실험물질명)은 로슈가 2023년 말에 바이오기업 ‘카모트 테라퓨틱스’를 약 3조5000억원(27억달러)에 인수하면서 손에 넣은 비만 치료제다.
이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은 임상 1상 시험에서 24주 동안 위약(가짜 약) 대비 평균 18.8%의 체중 감소 효과를 입증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로슈는 2024년 7월부터 CT-388로 임상 2상 단계에 진입했다.
현재 로슈의 파이프라인은 대부분 항체의약품에 집중돼 있다. 만약 비만 치료제가 성공할 경우 파이프라인 다각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로슈는 내부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2028년에 비만 치료제를 시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삼성자산운용의 ‘KODEX 글로벌비만치료제TOP2 Plus’ ETF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글로벌비만치료제TOP2Plus’ ETF에서도 약 6~7% 수준으로 로슈홀딩스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놓은 상태다. 그만큼 로슈의 비만 치료제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로슈 주식 매매 시의 주의사항은?
로슈는 스위스에 ‘Roche(코드번호 ROG)’라는 이름으로 상장돼 있다. 그런데 로슈 지주사인 로슈홀딩스는 미국 장외시장(OTCMKTS)에 ‘Roche Holding(코드번호 RHHBY)’이라는 이름의 ADR 형태로 상장돼 있다. 이 로슈 홀딩스 안에는 ‘로슈(Roche)’와 ‘제넨텍(genentech)’, 일본의 ‘쥬가이제약(Chugai)’ 등이 속해 있다.
한국에서 로슈 주식을 매수하는 방법은 다소 복잡하다. 미국 주식이 HTS나 MTS를 통해 자유롭게 매매되는 것과 달리 스위스에 상장된 ‘Roche’ 주식은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가 전화 주문으로만 주문 수탁을 하므로 매수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하다. 심지어 미국 장외시장에 상장된 ‘Roche Holding’의 경우 대부분의 한국 증권사에서는 매수 중개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한국인이 직접 해당 주식을 매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미국에도 투자할 종목이 많은데 굳이 스위스에 상장된 로슈 주식을 매매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도 있을 것이다. 스위스 주식의 경우 스위스프랑으로 환전해 매수해야 한다. 따라서 안정적인 통화로 인기가 높은 스위스프랑과 성장성 높은 로슈 주식에 동시에 투자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으로 제약·바이오 회사 주식이 주목받고 있다. 만약 로슈의 기존 주력 약품과 임상이 진행 중인 수많은 신약들로 인해 멀지 않은 미래에 로슈의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할 거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라면 로슈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2024년 11월호
실명 막는 '아일리아' 특허만료 위기? 비만치료제 ‘리제네론’으로 돌파
고용량 ‘아일리아 HD’ 성장세에 기대감
특허만료 방어 위한 공격적 소송 전략
차세대 항암제 ‘리브타요’ 매출급증 주목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리제네론 파마슈티컬스(Regeneron Pharmaceuticals)’는 1988년에 설립된 미국 생명공학 회사다. 전통의 제약회사 업력은 100년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리제네론의 업력은 고작 35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리제네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독자적인 기술 플랫폼으로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덕이다.
리제네론은 신약 개발 매출 외에도 또 다른 수익모델이 있다. 대형 제약사와의 협업을 통한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와 기술 이전 제품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받는 독특한 수익모델이다. 이는 바이오텍 기업의 가장 이상적인 사업구조로 평가받는다. 요즘에는 흔한 방식이지만 이 분야의 선구자가 바로 리제네론이다.
리제네론은 신약 개발의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인 혁신적인 플랫폼을 개발했다. 그 핵심은 ‘벨로시수트(VelociSuite)’라는 통합 기술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으로 신약 개발 과정을 혁신적으로 개선했다. 예를 들면 벨로시수트에 포함된 기술 중 ‘벨록이뮨(VelocImmune)’ 기술은 유전자 변형 쥐를 사용해 인간 항체를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리제네론은 이런 기술 플랫폼으로 ‘아일리아(Eylea)’와 ‘듀피젠트(Dupixent)’ 같은 블록버스터 신약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냈다.
리제네론 성공으로 이끈 안질환 치료제 ‘아일리아’
리제네론과 바이엘이 공동 개발한 ‘아일리아(Eylea)’는 2011년에 습성 황반변성(wAMD)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당시 리제네론은 상대적으로 작은 생명공학 회사였기에 이 승인은 중대한 성과였다. 리제네론은 아일리아의 개발을 위해 수년간 연구와 임상시험에 집중해 왔다.
황반변성은 노화로 눈의 망막 중심부에 위치한 황반이 손상돼 시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마치 카메라의 필름에 상이 맺히는 부분이 손상돼 선명한 영상을 볼 수 없는 것과 유사하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시력상실 원인 1위로 지목된다. 황반변성은 건성(약 85%)과 습성(약 15%)으로 나뉜다.
건성은 시력 상실이 느리게 진행되며 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없다. 건성에서 습성으로 악화될 경우 문제가 커진다. 습성 황반변성은 황반 아래에서 비정상적인 신생 혈관이 자라 시력 상실을 유발한다. 습성은 전체의 15% 비율로 적지만 실명 위험이 매우 높아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습성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는 주로 ‘유리체 내 주사 방식’으로 투여된다. 이는 눈 안의 유리체(젤 같은 물질)에 직접 약물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망막 내 비정상적인 신생 혈관의 성장을 억제해 시력을 보호한다.
아일리아가 습성 황반변성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을 당시 이미 노바티스와 로슈가 공동 개발한 ‘루센티스(Lucentis)’가 점유율 1위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일리아는 루센티스와 차별화된 치료 방식을 제공했다.
루센티스는 계속해서 매월 1회씩 투여해야 했지만, 아일리아는 초기 3개월만 매월 1회씩 투여한다. 이후부터는 2개월에 1회로 주사 빈도를 줄일 수 있다. 환자와 의사 입장에서 주사 빈도가 적어지면 치료 부담이 줄고 병원 방문 횟수도 줄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이에 따라 몇 년 뒤부터 아일리아의 매출액이 루센티스의 매출액을 앞지르며 리제네론의 주가 상승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노바티스와 리제네론 간의 마케팅 경쟁은 제약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아일리아의 2023년 리제네론/바이엘 합산 매출액은 무려 12조2000억원(94억달러)이다. 전 세계 의약품 매출 순위 11위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특허만료 위기...소송과 ‘고용량 아일리아’로 반격
문제는 특허 만료다. 아일리아의 주요 물질특허는 미국에서 2024년 5월, 유럽에서 2025년 11월에 각각 만료될 예정이었다. 워낙 인기 있는 약품이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준비하는 제약사도 많다. 한국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 5월에 ‘아필리부’(미국제품명 오퓨비즈)라는 이름의 바이오시밀러를 가장 먼저 국내 시장에 출시했다. 셀트리온도 ‘아이덴젤트’라는 제품명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을 준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제네론은 아일리아를 지켜내기 위해 미국에서 다양한 방식의 공격적인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 아일리아와 유사한 바이오시밀러가 침투하는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전략이다.
또 다른 전략으로는 기존 아일리아의 성능을 개선한 신약 출시다. 리제네론은 기존 용량을 4배로 늘린 고용량 ‘아일리아 HD’ 신약을 개발했다. 이 신약은 2023년에 FDA의 품목 허가를 받았다. 아일리아의 표준 용량은 2mg이지만 아일리아 HD는 8mg의 고용량으로 처방된다. 기존 아일리아는 최초 3개월만 매월, 이후부터는 두 달에 한 번씩 주사를 맞는다. 반면 고용량 아일리아 HD는 주사 간격을 최대 16주(3~4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환자들의 편의성이 크게 개선되는 셈이다. 고용량임에도 안전성이 기존 아일리아와 유사한 수준인 것도 장점이다.
아일리아는 특허 만료 외에도 또 다른 악재가 있다. 바로 경쟁 약품의 등장이다. 기존 경쟁 약품인 루센티스 외에 최근 떠오르는 경쟁 약품은 로슈의 ‘바비스모(Vabysmo)’다. 아일리아는 VEGF(혈관 내피 성장 인자) 억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바비스모는 VEGF 외에도 추가로 Ang-2(안지오포이에틴2)도 억제하는 이중 작용 기전이다. 이를 통해 혈관 안정성을 높이고 염증을 억제해 시력 보호 효과를 강화한다. 주사 간격도 16주(4개월)로 고용량 아일리아 HD보다도 살짝 더 길다. 최근 바비스모의 매출액이 급증하는 이유다.
아토피·천식 치료제 ‘듀피젠트’도 효자상품
하지만 리제네론에는 아일리아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일리아보다 더 많이 팔리는 약이 있다. 바로 리제네론/사노피가 공동 개발한 아토피·천식 치료제 ‘듀피젠트’다. 듀피젠트의 2023년 리제네론/사노피 합산 매출액은 무려 15조원(116억달러)이다. 전 세계 의약품 매출액 6위를 기록한 슈퍼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매출액이 전부 리제네론에게 인식되는 건 아니다. 협업 매출로 간주되는 금액은 약 5조원(38억달러)이다.
듀피젠트는 ‘인터루킨-4(IL-4)’와 ‘인터루킨-13(IL-13)’ 경로를 차단하는 단일클론 항체(하나의 항원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항체)다. 이런 기전으로 면역질환 치료에 널리 사용된다. 이 경로는 알레르기성 염증과 관련이 있어 아토피 피부염, 천식, 비부비동염 등의 제2형 염증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듀피젠트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등으로의 적응증 확장을 통해 상당한 추가 매출을 노리고 있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리제네론의 대표 의약품이다. 시장에서는 듀피젠트의 2030년 예상 매출액을 약 26조원(200억달러)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토피 피부염 발병 원인과 치료
듀피젠트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적응증은 중증 아토피 피부염이다. 피부의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심한 가려움증과 피부염증을 동반한다. 일반적인 아토피 피부염보다 더 심한 증상을 보여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토피 피부염의 발병은 유전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피부 장벽 단백질인 필라그린(filaggrin)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피부가 외부 자극에 더 쉽게 반응하게 된다. 면역학적 요인으로는 제2형 면역 반응(Th2)과 관련된 질환이다. 인터루킨-4(IL-4), 인터루킨-13(IL-13) 같은 염증성 사이토카인(면역세포로부터 분비되는 단백질 면역조절제)이 과도하게 분비되며 염증을 유발한다. 면역 반응이 조절되지 않아 증상이 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은 심각한 수면 장애, 우울증에 빠진다. 지속적인 가려움과 불편감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다. 대인관계와 직업생활에도 방해를 받는다. 특히 2차 감염이 자주 발생한다. 이로 인해 상처 부위로 세균이 침투해 염증을 악화한다. 경증 아토피 피부염은 국소 스테로이드와 같은 염증 억제제를 사용해 치료한다. 반면 중증 아토피 피부염은 생물학적 제제인 듀피젠트를 사용해 인터루킨-4(IL-4)와 인터루킨-13(IL-13) 경로를 차단한다.
이는 기존 치료법에 비해 장기적인 염증 억제 효과가 크고 부작용이 적다. 듀피젠트의 등장으로 과거에는 치료가 어려웠던 중증 아토피 피부염도 증상 완화와 재발 방지 효과가 크게 개선된 셈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듀피젠트 매출액이 매년 급증하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듀피젠트의 인기는 상당하다. 안타깝게도 아토피 피부염의 약 85%는 만 5세 이하 때부터 증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간 성인과 만 6세 이상의 소아 및 청소년 중증 아토피 피부염에만 보험 급여가 적용돼 왔다. 만 5세 이하 영유아 환자는 급여 적용이 안 돼 부모들이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해야 했다.
특히 만 2세 이하 환자는 임상 근거 부족으로 제대로 된 치료제 사용이 어려웠다. 그런데 2024년 8월부터 듀피젠트의 급여 범위가 만 6개월 이상까지로 확대됐다. 한국에서도 영·유아에 대한 효능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에 따라 요건에 맞는 영유아들은 기존 치료비의 10% 가격으로 듀피젠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듀피젠트의 경쟁 약품으로는 애브비의 신약 ‘린버크’가 있다. 최근 린버크의 매출액 증가율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아직 듀피젠트의 매출액보다는 크게 낮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아토피 피부염 시장에서 듀피젠트의 독주가 지속될 전망이다.
원투 펀치만으론 부족...차세대 신약 ‘리브타요’ 주목
리제네론의 재무제표상 2023년 아일리아 매출액은 7조7000억원(59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6% 감소했다. 다행히 듀피젠트 등의 사노피 협업매출은 4조9000억원(38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33% 급증했다. 2023년 전체 영업이익도 5조3000억원(40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15% 감소한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최근 발표된 2024년 2분기 실적은 크게 호전됐다. 주력인 아일리아 매출액은 1분기 대비 9% 증가한 2조원(15억달러)을 기록했다. 듀피젠트 등의 사노피 협업매출도 1조5000억원(11억달러)으로 1분기 대비 24% 증가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2분기 영업이익도 13% 급증한 1조7000억원(13억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리제네론의 주력 매출 의약품을 살펴보면 원투 펀치인 아일리아와 듀피젠트 외에 ‘리브타요(Libtayo)’가 눈에 띈다. 리브타요는 리제네론과 사노피가 공동 개발 중에 권리를 인수한 면역항암제다. PD-1 면역관문억제제로 분류된다. 암세포가 면역 시스템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막아 면역 시스템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 치료제다.
피부 편평세포암종 환자에게 사용되는 최초의 전신치료제로 2018년에 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후 특정 유형의 비소세포 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와 특정 유형의 자궁경부암 환자로 적응증을 넓혀 나가고 있다.
리브타요의 2023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93% 폭증한 1조1000억원(9억달러)을 기록했다. 2024년 2분기에도 1분기 대비 13% 증가한 4000억원(3억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리제네론의 차세대 신약으로 주목 받는 중이다. 경쟁 약품으로는 같은 PD-1 억제제이자 전 세계 매출액 1위를 달리고 있는 머크의 ‘키트루다’가 있다.
기대되는 신약은 근육감소 부작용 해결한 비만치료제
리제네론은 현재 30여 개가 넘는 신약 후보물질들을 임상시험 중이다. 그중 가장 기대되는 신약은 새로운 유형의 비만 치료제다. 리제네론은 고용량 미오스타틴 항체인 ‘트레보그루맙’을 이용한 비만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미오스타틴은 근육 성장을 조절하고 근육 발달을 억제하는 중요한 단백질이다. 트레보그루맙은 미오스타틴을 차단함으로써 근육 성장을 촉진하는 동시에 잠재적으로 지방량을 감소시켜 준다.
따라서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나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가 해결하지 못한 근육 감소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다. 현재 리제네론은 미오스타틴 항체인 트레보그루맙을 세마글루타이드와 병용해 평가하는 임상을 진행 중이다. 임상 결과는 2025년 하반기 중에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삼성자산운용의 ‘KODEX 글로벌비만치료제TOP2Plus’ ETF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글로벌비만치료제TOP2Plus’ ETF에서도 3~5% 수준으로 리제네론 파마슈티컬스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놓은 상태다. 그만큼 리제네론 비만 치료제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으로 제약·바이오 회사 주식이 주목받고 있다. 리제네론이 현재 임상시험 중인 30여 개 신약 중 실제 몇 개나 최종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미래에 리제네론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할 거라 믿는 투자자라면 리제네론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2024년 11월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 주가 추락...공격적 M&A로 부활할까
제약회사 최초 면역항암제 개발한 항암제 강자
정해진 미래...특허절벽으로 최대 위기
살길은 M&A뿐...공격적인 연속 M&A 진행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은 긴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1887년에 해밀턴대학을 졸업한 ‘브리스톨’과 ‘마이어스’가 뉴욕의 클린턴 제약회사를 인수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1989년에는 스큅 박사가 설립한 ‘스큅&선즈’와 합병하면서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이 탄생했다.
BMS의 성장 역사는 M&A의 역사
BMS는 140여 년에 달하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제약회사 중 최초로 면역항암제의 임상 개발을 시작해 다양한 항암제 파이프라인을 보유 중이다. 인수합병(M&A)으로 출발한 회사답게 설립 이후 수많은 M&A를 통해 성장을 가속화해 왔다.
BMS는 2009년에 ‘메다렉스(Medarex)’를 약 3조1000억원(24억달러)에 인수했다. 이 M&A는 대성공이었다. 주력 제품인 ‘옵디보(Opdivo)’는 다양한 암 치료에 사용되는 면역항암제(PD-1 억제제)로 자리매김했다. ‘여보이(Yervoy)’는 또 다른 면역항암제(CTLA-4 억제제)로 옵디보와 병용해 전이성 흑색종 및 기타 암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BMS의 M&A가 언제나 성공만 한 건 아니다. 2012년에 9조1000억원(70억달러)에 인수한 ‘아밀린 파마슈티컬스(Amylin Pharmaceuticals)’ M&A는 기대보다 밋밋한 성과를 보였다. 아밀린의 주력 약품인 당뇨병 치료제 ‘바이에타(Byetta)’는 GLP-1 수용체 작용제 중 최초로 상용화된 약물이다. 하지만 새로운 GLP-1 수용체 작용제인 노보노디스크의 ‘오젬픽(Ozempic)’과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Mounjaro)’ 등 더 좋은 제품이 출시되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바이에타는 경쟁에서 밀려 매출이 급감한 상태다.
BMS의 M&A 중 가장 거대하면서도 성공적인 사례는 2019년에 진행한 ‘셀진(Celgene)’ 인수다. BMS는 면역항암제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무려 97조원(740억달러)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셀진에 쏟아부었다. BMS의 M&A 중 역대급이다.
셀진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Revlimid)’와 차세대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포말리스트(Pomalyst)’가 주요 파이프라인이다. 다발성 골수종이란 골수에서 비정상적인 형질세포(백혈구의 일종)가 과도하게 증식하는 암을 말한다.
셀진의 또 다른 파이프라인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오테즐라(Otezla)’는 건선 및 관절염 치료제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약품은 BMS의 셀진 인수 후 규제 당국의 요구에 따라 암젠(Amgen)에 17조5000억원(134억달러)에 매각됐다. 암젠이 가져간 오테즐라는 2023년 매출액이 3조원(22억달러)으로 양호하다. 꾸준히 암젠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대신 BMS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셀진 인수대금을 사실상 낮추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이 밖에도 셀진이 임상 중인 신약 후보물질만 50여 개에 달해 추가적인 파이프라인 확대가 기대된다.
BMS가 심혈관 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 확보를 위해 2020년에 17조원(131억달러)에 인수한 ‘마이오카디아(MyoKardia)’도 성공한 M&A다. 마이오카디아는 심혈관 질환 치료제에 특화된 회사다.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oHCM)’이란 심장의 좌심실 벽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져 혈액이 심장에서 나가는 경로가 좁아지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심장이 충분한 혈액을 펌프하지 못해 흉통, 호흡 곤란, 실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장 근육이 비대해지면서 판막을 막아 혈류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치료약이 없어 많은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런데 마이오카디아의 주력 약품인 ‘캄지오스(Camzyos)’는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의 ‘먹는 수술약’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 최근 한국에서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위한 약가 협상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주력 의약품 줄줄이 특허만료
이렇게 탄탄하고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보유 중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이지만 최근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바로 주력 의약품들의 특허 만료 때문이다.
BMS의 의약품 중 압도적인 매출액 1위는 화이자와 공동 개발한 ‘엘리퀴스’다. 2023년 매출액은 15조9000억원(122억달러)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혈액희석제(항응고제)다. 쉽게 말해 혈전(피떡) 등으로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약이다.
한국인 사망원인 2위와 3위를 차지한 ‘심장 질환’과 ‘뇌혈관 질환’도 결국 혈전으로 혈관이 막혀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엘리퀴스는 앞으로도 수요가 폭증할 수밖에 없는 의약품이다. 하지만 엘리퀴스의 특허 만료는 2026년이다. 매출 1위 제품의 특허 만료가 임박함에 따라 투자자들의 BMS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다.
BMS 매출액 2위는 면역항암제 ‘옵디보’다. 11조7000억원(90억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옵디보의 미국 특허 만료는 2028년으로 아직 시간이 있다. 매출액도 전년 대비 9% 성장하며 꾸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매출액 3위는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다. 7조9000억원(61억달러)의 매출액으로 전년 대비 무려 39% 감소했다. 이는 레블리미드의 미국 특허가 이미 2022년에 만료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네릭 의약품이 대거 등장하면서 매출액이 급감했다.
BMS의 2024년 상반기 매출액을 살펴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매출액 3위인 레블리미드는 특허 만료로 인해 2024년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한 3조9000억원(30억달러)의 부진한 매출액을 기록했다. 매출액 4위를 기록한 차세대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포말리스트’도 2022년에 미국 특허가 만료됨에 따라 향후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매출액 5위를 기록한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 ‘오렌시아’ 역시 이미 2019년에 미국 특허가 만료됐다. 매출액 6위인 면역항암제 ‘여보이’도 2025년에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라 얼마 남지 않았다. 매출액 7위인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은 2024년 들어 특허가 만료됐다. 이에 따라 상반기에만 전년 상반기 대비 10% 급감한 1조원(8억달러)의 부진한 매출 실적을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매출액 8위인 ‘레블로질’의 선전이다. 레블로질은 BMS가 2019년에 인수한 셀진과 엑셀러론 파마가 공동 개발한 의약품이다. 2020년에 골수이형성증후군과 베타 지중해빈혈 등의 치료제로 FDA의 승인을 받았다.
골수이형성증후군(MDS)은 골수가 비정상적인 혈액 세포를 생성하는 희귀 질환이다. 이 질환은 골수에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같은 혈액 세포를 정상적으로 만들지 못해 빈혈, 출혈, 감염 위험 증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주로 고령자에게 발생하며, 일부는 급성 골수성백혈병(AML)으로 진행될 위험이 있다.
치료법으로는 수혈이 있다. 레블로질을 주사제로 투여해 치료할 수도 있다. FDA는 레블로질을 골수이형성증후군 1차 치료제로 승인했다. 한국에서도 2022년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용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은 비급여라 가격이 상당하다.
올 상반기 레블로질의 매출액은 1조원(8억달러)으로 전년 상반기 대비 무려 77% 급증했다. 수요가 폭증하면서 당분간 매출 상승세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레블로질의 미국 특허 만료 연도는 2031년으로 아직 여유가 많다. 향후 상당 기간 BMS의 효자 약품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살길은 M&A뿐...신약 보유 회사 인수 후 상업화 강점
BMS의 주력 의약품 중 상당수가 특허 절벽이라 BMS 내부적으로도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BMS가 잘해 온 건 좋은 신약 파이프라인을 가진 회사를 선별해 M&A하는 전략이었다. 이후 해당 신약으로 FDA의 최종 승인을 받아 상업화하는 데 탁월한 강점을 발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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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BMS는 2020년 이후에도 그동안 잘해 왔던 M&A를 계속 강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 일환으로 BMS는 2022년에 표적항암제 포트폴리오 확보를 위해 약 2조5000억원(19억달러)에 ‘터닝포인트 테라퓨틱스(Turning Point Therapeutics)’를 인수했다.
터닝포인트의 주력 제품은 ‘오그티로(Augtyro)’다. 오그티로(성분명 레포트렉티닙)는 2023년 11월에 ROS1 표적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FDA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ROS1 돌연변이 폐암은 전체 폐암의 2%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틈새시장 공략인 셈이다.
9월에 FDA 승인 받은 조현병 치료제...게임체인저?
BMS가 2023년에 조현병 포트폴리오 확보를 위해 무려 18조원(140억달러)에 인수한 ‘카루나 테라퓨틱스(Karuna Therapeutics)’도 대박이다. 주력 약품인 조현병 치료제 ‘코벤피(Cobenfy)’는 2024년 9월 26일에 FDA의 최종 승인을 통과했다.
조현병 치료 계열 신약이 FDA의 승인을 받은 건 ‘클로자릴(Clozaril)’ 승인 이후 무려 35년 만이다. 특히 코벤피는 조현병에 대해 세계 최초로 무스카린 수용체를 표적으로 삼는 새로운 방식이라 큰 기대를 모은다. 기존 조현병 약물과 달리 도파민과 세로토닌 수용체를 직접 차단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조현병은 정신 질환이다. 환자에게 현실과의 접촉이 끊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환각(환청·환시), 망상, 혼란스러운 사고, 이상한 행동 등이 있다. 따라서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신약 코벤피는 기존 약물과 차별화된 작용 메커니즘을 통해 조현병의 부작용인 양성 증상(환청·망상 등)과 음성 증상(감정적 둔화·무기력 등) 모두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에서는 조현병 시장 규모를 연간 약 10조원(75억달러)으로 추정한다. BMS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2400만명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 미국에만 약 280만명의 환자가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상당 기간 코벤피는 BMS의 효자 약품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BMS의 신약 코벤피가 앞으로 조현병 시장에서 얼마나 높은 점유율을 가져올지가 관전 포인트다. BMS에서는 10월 중에 코벤피를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벤피의 FDA 승인 발표 당일에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의 주가는 3% 상승한 52달러를 기록했다.
M&A 통한 다양한 신약 파이프라인...성공적
BMS가 2023년에 약 6조2000억원(48억달러)에 인수한 ‘미라티 테라퓨틱스’의 주력 의약품은 ‘크라자티(Krazati)’다. 크라자티는 KRAS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아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경구용(먹는) 의약품이다. KRAS G12C 변이가 있는 비소세포폐암(NSCLC) 치료제로 2022년에 FDA의 승인을 받았다.
KRAS G12C 변이는 폐암, 대장암 등 여러 암종에서 발견된다. 저분자 KRAS G12C 억제제 크라자티는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거나 내성이 있는 환자에게 효과적이다. KRAS-타깃 항암제 시장 규모는 2030년에 5조2000억원(40억달러)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BMS는 또 2024년 말에 ‘레이즈바이오(RayzeBio)’를 5조3000억원(41억달러)에 전격 인수했다. 레이즈바이오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표적물질에 결합시켜 종양세포를 사멸시키는 악티늄 기반 방사성의약품(RPT)을 개발하는 회사다.
악티늄 기반 방사성 의약품은 알파방사체의 에너지가 강하고 방사선 투과 범위도 짧아 치료 효과가 강력하고, 표적화된 전달이 가능해 정상세포의 손상이 적은 게 장점이다. BMS는 레이즈바이오를 통해 차세대 항암제 개발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BMS는 M&A 외에 기술이전 계약에도 진심이다. 2023년 말에 중국의 항암제 개발 기업 시스트이뮨과 선급금 1조원(8억달러)을 포함해 최대 11조원(84억달러)에 달하는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요즘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항체약물접합체(ADC) 관련 빅딜이라 더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ADC 항암제 후보물질 ‘BL-B01D1’를 공동 개발해 비소세포폐암, 유방암 등의 치료제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최근 주목받는 CAR-T 세포 치료제 파이프라인도 있다. 대표적인 약품은 ‘브레얀지(Breyanzi)’다. 브레얀지는 암의 일종인 불응성 거대 B세포 림프종 치료제다. 이 암은 몸의 면역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B세포가 악성화돼 빠르게 증식하는 질환이다.
B세포 림프종 중에서도 기존 치료(화학요법, 방사선 치료)에 효과가 없거나 재발한 형태의 암이다. CAR-T 세포 치료제인 브레얀지는 환자의 T세포를 추출한 후 유전적으로 변형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의 치료제다. 기존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에게 효과적이다.
브레얀지 역시 BMS가 셀진을 M&A하면서 손에 넣은 신약이다. 2021년에 FDA의 승인 이후 혈액암 등으로 적응증을 확대 중이다. 향후 큰 폭의 매출 증가가 기대된다. 이렇게 BMS는 다양한 종류의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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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절벽으로 폭락한 주가 반등할까
공격적인 M&A 전략에도 불구하고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의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BMS의 주가는 2022년 11월에 76달러로 정점을 기록한 후 하락을 거듭해 왔다. 2024년 9월 주가는 50달러 내외다. 고점 대비 하락률은 34%로 부진하다.
투자자들이 두려워하는 건 BMS의 연속 M&A에도 불구하고 주력 의약품인 엘리퀴스, 레블리미드, 포말리스트, 오렌시아 등의 공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투자자들의 우려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BMS의 공격적인 M&A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BMS는 현재 강력한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지금의 주가 하락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특히 BMS의 배당수익률이 4%대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BMS가 특허절벽을 극복하고 미래에 다양한 신약들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 투자자라면 BMS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2024년 10월호
한국인들은 왜 테슬라에 열광할까?
테슬라, 한국인 보유금액 압도적 1위
한국인 “테슬라를 자동차 회사로 평가 안 해”
변동성 롤러코스트...강심장만 투자 가능?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인들의 테슬라 사랑은 유별나다. 현재 글로벌 증시에서 테슬라의 시가총액 순위는 10위권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테슬라의 위상은 글로벌 순위와는 크게 다르다. 한국인이 보유한 해외주식 중 압도적인 1위가 바로 테슬라다.
한국인의 유별난 테슬라 사랑?
한국인은 2024년 8월 말 기준 테슬라 주식을 17조원(126억달러) 보유하고 있다. 그에 비해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인 애플 주식 보유금액은 6조8000억원(51억달러)에 불과하다. 격차가 2.5배다. 글로벌 시가총액 2위인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보유금액은 4조7000억원(35억달러)에 그친다.
한국인의 해외주식 보유순위 2위는 16조2000억원(120억달러)을 보유한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올해 글로벌 증시에서 가장 수익률이 좋은 주식이다. 8월 말 기준 수익률은 무려 140%다. 인공지능 붐을 제대로 탄 셈이다. 이에 따라 올해 한국인의 엔비디아 순매수 금액도 1조5000억원(11억1000만달러)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비하면 현재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의 경우 오히려 차익실현 매물이 1조1000억원(7억9000만달러)이나 쏟아져 나왔다. 또 글로벌 시가총액 2위인 마이크로소프트 순매수 규모도 6000억원(4억4000만달러)에 그쳤다.
흥미로운 건 테슬라에 대한 한국인들의 무한애정이다. 올해 테슬라 수익률은 -13%로 크게 부진하다. 하지만 거꾸로 순매수 규모는 상당하다. 올 8월 말까지 한국인은 테슬라 주식을 1조1000억원(8억1000만달러) 순매수했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와 2위인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보다 테슬라 주식 선호도가 훨씬 더 높다. 한국인들이 이렇게 유별나게 테슬라를 사랑하는 이유가 뭘까? 테슬라가 실적에 비해 저평가된 걸까?
자동차 회사로서의 테슬라는 성장 둔화 중
일반인들의 인식에 테슬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기차 회사다. 베스트셀링 카인 ‘모델3’와 ‘모델Y’가 유명하다. 테슬라의 전체 매출 중 자동차 매출 비중은 2023년 기준 85%로 압도적이다. 이렇게 테슬라가 전기차 회사라는 관점에서 테슬라 실적을 살펴보면 과거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다.
테슬라의 자동차 매출액은 2022년에 96조원(715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50% 급성장했다. 반면 2023년 매출액은 111조원(824억달러)으로 성장률이 15%로 둔화됐다. 워낙 단기간에 급성장한 만큼 성장률이 둔화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2024년이다. 테슬라의 2024년 1분기 자동차 매출액은 23조원(174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13%로 부진했다. 2분기 자동차 매출액 역시 27조원(199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7%의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수치로만 보면 자동차 부문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다.
2024년 들어 영업 마진율 뚝...평범해진 테슬라?
테슬라는 2021년에 총 93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2022년에는 137만대, 2023년에는 185만대로 2년 전보다 2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따라 2022년의 영업이익은 무려 18조원(137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100% 넘게 성장했다. 영업마진율도 16.8%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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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23년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 결과 전기차 판매량이 늘었음에도 영업이익은 12조원(89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35% 감소한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 영업마진율도 한 자릿수인 9.2%로 뚝 떨어졌다.
2024년 들어서는 영업이익 감소폭이 더 두드러진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조6000억원(12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56% 감소했다. 2분기 영업이익도 2조2000억원(16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33% 줄었다.
2분기 영업마진율은 6.3%로 하락했다. 이 정도면 평범한 일반 자동차 제조업과 별 차이 없는 수치다. 한때 16.8%라는 엄청난 영업마진율을 기록했던 테슬라가 과거와 달리 평범해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미국 점유율 50% 붕괴...생산가능 대수는 늘어
전기차 시장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증거는 미국 시장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테슬라는 ‘전기차’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2024년 2분기에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시장점유율은 50%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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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동안 전기차에 소극적이던 내연기관 자동차 제조사들도 적극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탓이다. 글로벌 자동차 조사기업인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2024년 2분기에 테슬라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분기 대비 6.3% 감소한 49.7%로 낮아졌다.
반면 한국의 기아차 판매량은 전년 동분기 대비 135.5% 폭증하며 시장점유율이 5.4%로 뛰어올랐다. 점유율 2위인 포드, 4위인 현대차, 5위인 BMW의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모두 전년 동분기보다 큰 폭 증가한 점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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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도 문제다. 테슬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외에 중국 상하이와 독일 베를린에도 전기차 생산 공장을 보유 중이다. 테슬라의 IR 보고서상 연간 전기차 생산가능용량은 약 235만대다.
테슬라의 2024년 2분기 실적발표 때 경영진은 전기차 최대 생산가능용량이 300만대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설사 300만대를 제조한다 해도 이를 모두 판매하는 건 불가능하다. 최근 소비자들의 전기차 수요는 정체 상태다. 전기차 수요 둔화가 일시적인지 아니면 장기간 지속될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전기차 원가 낮출 4680 배터리 성공할까?
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당연히 배터리다. 테슬라는 그간 일본 파나소닉과 LG에너지솔루션 등에서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받아 전기차를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주력 제품인 ‘모델Y’에 중국 CATL사의 LFP(리튬인산염철) 배터리를 장착한 모델도 선보였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혔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는 대부분의 부품을 외부에서 조달하지 않고 수직계열화하기를 원한다. 이를 통해 낮은 원가로 경쟁사와의 가격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전략이다. 특히 배터리는 전기차의 가장 핵심부품인 만큼 직접 개발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이에 따라 지난 2020년에 고성능 신개념 배터리인 ‘4680 배터리’의 자체 생산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론 머스크의 의도만큼 성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생산은 하지만 생산량이 생각만큼 늘지 않고 있다.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테슬라는 1분기 대비 ‘4680 배터리’ 생산량이 50% 이상 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량이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건식 공정’ 방식이라 제조가 까다로워 양산 수율(양품률)이 낮고 불량률이 높은 상황이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등도 현재 ‘4680 배터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테슬라가 건식 공정 방식의 ‘4680 배터리’ 양산에 확실하게 성공할지는 아직 예측 불허다. 하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테슬라 전기차의 원가경쟁력은 획기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LG에너지솔루션 등의 협력사와 투자자들은 테슬라의 ‘4680 배터리’ 양산 성공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 아냐...한국인 열광하는 이유?
종합적으로 볼 때 테슬라의 전기차 부문 성장성은 명백히 둔화되고 있다. 중국의 BYD가 만들어낸 저렴한 전기차가 전 세계를 휩쓸 기세다. 또 그간 전기차에 소극적이었던 포드, BMW, 벤츠, 현대차, 기아차 등이 대거 전기차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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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테슬라 전기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는 주가도 급등세를 보였다. 2020년 초에 28달러로 시작한 테슬라 주가는 2021년 11월에 사상 최고가인 414달러까지 14배 넘게 폭등했다. 반면 전기차 성장성이 둔화된 2023년 초에는 주가가 102달러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올해는 로보택시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2024년 7월에 271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8월 말에는 다시 215달러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한국 투자자들은 테슬라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의 근거는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를 자동차 회사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2023년 기준 테슬라 전체 매출 중 자동차 매출 비중은 무려 85%다. 그런데도 테슬라가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테슬라는 도대체 어떤 회사일까?
테슬라는 천재 엔지니어인 일론 머스크를 중심으로 한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이다. 한국 투자자들은 일론 머스크의 사명과 테슬라의 미래 기술 발전에 대한 엄청난 기대감과 확신을 가지고 있다. 테슬라에는 전기차 외에도 미래가 기대되는 비밀병기가 많다.

2024년 10월호
"테슬라는 플랫폼·에너지 회사다"
머스크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 아냐”
에너지 매출이 전기차 매출 추월?
최종 목표는 인공지능 회사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테슬라의 올 2분기 실적발표 후 투자자들이 가장 실망한 부분은 ‘로보택시(Robotaxi)’ 공개가 연기됐다는 사실이다. 8월 8일 공개를 약속했던 로보택시는 10월 10일 공개로 연기됐다. 로보택시는 테슬라를 제조 회사에서 플랫폼 회사로 변모시킬 게임체인저로 평가받았기에 투자자들의 아쉬움은 크다.
FSD(완전자율주행)는 플랫폼 기업 될 게임체인저
테슬라는 전기차 제조 기술 외에도 자랑거리가 많다. 그중 하나가 ‘오토파일럿’과 ‘FSD(Full Self-Driving)’라는 이름의 테슬라 완전자율주행 장치다. 오토파일럿은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차선을 벗어나지 않고 따라가는 기능이다. 이 정도는 대부분의 경쟁사들도 갖추고 있는 기능이다.
하지만 FSD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자랑한다. FSD는 알아서 차선도 바꾸고 신호등도 감지하며 설정한 목적지를 스스로 찾아가는 완전자율주행 시스템이다. 오토파일럿과 달리 FSD의 이용료는 유료다.
FSD는 테슬라를 제조 기업에서 플랫폼 기업으로 바꿔줄 핵심 수익모델이다. 플랫폼(Platform)이란 이용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웹사이트 등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구글의 유튜브(20억명), 메타의 페이스북(30억명), 텐센트의 위챗(12억명) 등 사용자 수가 10억명 이상인 서비스를 운용하고 있는 글로벌 회사들을 플랫폼 기업이라고 표현한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은 스마트폰 제조 기업이다. 하지만 iOS 운영체제를 가진 강력한 플랫폼 기업이기도 하다. 애플 iOS 사용자 수는 10억명을 훌쩍 넘는다. 단순 제조업은 원가부담이 있어 고마진이 어렵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면 제조원가 부담이 확 낮아진다. 최초 개발비 외에는 추가 비용이 거의 없다. 많이 팔면 팔수록 고마진이 가능하다. 애플은 iOS 앱 서비스 개발자들에게 매출의 약 30%를 수수료로 받는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앱 역시 마찬가지다.
테슬라도 애플처럼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테슬라 FSD의 일시불 가격은 무려 1만2000달러(1600만원)다. 테슬라는 지난 4월부터 미국과 캐나다에서 FSD 일시불 가격을 8000달러(1100만원)로 내렸다. 또 월 이용료도 기존의 199달러에서 99달러로 전격 인하했다. 가격 인하의 가장 큰 목적은 FSD 사용자 확대다.
애초부터 머스크는 FSD를 테슬라 전기차에만 장착할 생각은 없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앱처럼 다른 자동차 제조사에도 오픈해야 진정한 플랫폼 기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대형 완성차 제조업체들과의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다. 단시일 내에 결과가 나오긴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FSD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무인택시가 바로 로보택시다. 테슬라는 FSD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 완전자율주행에 기반한 무인 로보택시 서비스를 준비해 왔다. 테슬라가 로보택시를 직접 운영하는 ‘에어비앤비’ 방식이든, 아니면 FSD가 장착된 테슬라 차량 소유자가 로보택시를 운영하는 ‘우버’ 방식이든 로보택시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새로운 수익모델인 만큼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상당하다.
하지만 감독기관 입장에서 완전자율주행 방식은 단 한 번의 사고만 발생해도 비난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기술이 정말로 완벽하지 않은 한 10월 10일에 로보택시가 공개되더라도 최종 승인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또 ‘모델3’나 ‘모델Y’보다 저렴한 보급형 전기차인 ‘모델2’의 공개도 2025년으로 확 밀린 상태다. ‘모델2’는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 전기차와 경쟁할 예정이다. 대량 판매를 통해 테슬라의 매출액을 크게 늘려줄 또 다른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애초 계획보다 공개가 늦어지고 있다.
테슬라 사명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
테슬라의 사명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 사명을 실현하는 데 있어 전기차 외에도 중요한 분야가 바로 ESS(에너지저장장치)다.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환경 파괴는 일론 머스크가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달로 오히려 에너지 수요는 더 증가하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데이터센터 증설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반도체 공장 건설도 활발하다. 그런데 글로벌 전체적으로는 지구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활용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전기가 생산되면 이를 저장할 수 있는 ESS 수요도 폭증할 수밖에 없다. 테슬라에는 기회 요인이다.
테슬라의 최근 3년간 실적을 살펴보면 에너지 분야 성장세는 강력하다. 테슬라의 에너지 부문 매출액은 2021년 약 4조원(28억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2년 뒤인 2023년에는 8조원(60억달러)으로 100% 이상 매출이 급증했다. 테슬라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로 성장했다.
2024년 1분기 테슬라의 에너지 부문 매출액은 2조원(17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7%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2분기 매출액은 4조원(30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100% 급성장했다. 테슬라의 2분기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2%로 급증했다. 자동차 부문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이 생긴 셈이다.
테슬라 메가팩, 파워팩, 파워월 수요 폭증
테슬라는 자체적인 기술력을 활용해 고성능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만들어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메가팩(Megapack)’이다. 메가팩은 ‘대규모 에너지 저장 시스템(BESS, Battery Energy Storage System)’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거대한 배터리다. 메가팩은 길이 약 9m, 높이 약 3m, 무게는 약 40t이다. 모듈형 설계라 여러 개의 메가팩을 연결해 더 큰 용량도 구축할 수 있다. 하나의 메가팩으로 수백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만큼 용량이 크다.
2023년에 출시된 2세대 메가팩은 약 4000kWh를 저장할 수 있다. 한국 아파트 구조에서 한 가구가 한 달에 쓰는 전력량은 약 300KWh 내외다. 메가팩 한 개로 1년 동안 생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메가팩은 가정용이 아니다. 주로 발전소나 전력망 등에 사용된다.
메가팩은 빠르게 충전하고 방전할 수 있어 전력 수요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변동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ESS는 필수다.
메가팩은 전력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할 때 과잉 전력을 저장하거나 부족한 전력을 공급해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여준다.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는 피크 시간대의 전력 사용료도 낮출 수 있다. 정전이 발생했을 때도 메가팩으로 비상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메가팩의 인기가 폭발하는 이유다.
‘파워팩’도 에너지 저장 장치다. ‘메가팩’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가정용인 ‘파워월’보다는 크다. 파워월은 가정용 에너지 저장 장치다. 가정에서 태양광 발전 시스템과 연동해 자가 소비를 늘리고 전기요금을 절감해 준다.
테슬라의 메가팩은 현재 미국 네바다 주의 ‘기가팩토리’와 캘리포니아 라스롭의 ‘메가팩토리’에서 생산된다. 최대 생산량은 연간 약 40GWh다. 중국 상하이에 새로 짓고 있는 ‘메가팩토리’에서도 연간 약 40GWh 전력 생산이 목표다. 공장이 완공되면 지금보다 생산능력이 2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이렇게 많이 만들어내면 다 팔 수 있을까? 전혀 문제없다. 여전히 수요가 많다. 테슬라는 2024년 7월에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인 인터섹트 파워(Intersect Power)와 사상 최대 규모인 15.3GWh의 메가팩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2030년까지 공급하는 장기 계약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회사와 크고작은 계약이 계속 체결되고 있다.
전기 수요 폭증...‘메가팩’이 자동차 매출 넘는다?
인터섹트 파워와 공급 계약한 메가팩의 매출 추정액은 약 5조원(35억달러)이다. 몇 년간 나눠서 인식되는 매출이지만 절대 규모가 상당하다. 메가팩은 마진율도 상당하다. 전기차 시장은 치열한 경쟁으로 마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메가팩 마진율은 약 25%로 높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 사용량은 급증하고 있다. 과거의 인터넷 검색 방식에서 생성형 인공지능 검색 방식으로 변경 시 전기가 10배 더 소요된다. 기후 변화도 큰 변수다. 앞으로도 전기 사용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의 전력 수요가 지금보다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역시 미래에는 에너지 대란을 피하기 어렵다. 주요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송전’이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멀리 있는 공장이나 일반 가정 등으로 수송하는 과정을 말한다. ‘배전’이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변전소를 통해 수용가에 공급하는 일을 말한다.
진짜 문제는 송·배전에 있다. 산업단지가 새로 생겨나면 전기 사용량이 늘어난다. 전력을 추가로 더 생산해야 한다. 그런데 전력을 생산하더라도 이를 운반할 송전 선로가 크게 부족하다. 땅 주인 중 그 누구도 자기 땅 위에 송전선이 지나가는 걸 원치 않는다. 민원이 폭주한다.
게다가 한국전력은 적자 문제로 송전 선로를 건설할 자금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필수적인 송전 선로 건설도 크게 지연되고 있다. 산업단지만의 문제도 아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갈수록 가정용 전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웬만한 대도시의 송전망은 전부 지중화돼 있다. 이 송전망을 확충하는 공사에도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아파트에 있는 변압기 증설도 필요하다. 다 비용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도 재생에너지 활성화와 함께 대용량 ESS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테슬라의 에너지 사업부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테슬라는 자동차 사업에 이어 에너지 사업에서도 시장 선두 주자 입지를 굳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테슬라의 에너지 매출이 자동차 매출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한다.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로 출발했지만 전기차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진화된 테슬라의 중간단계는 거대한 에너지 회사다. 하지만 테슬라의 최종 단계는 에너지 회사가 아니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를 최종적으로 자율주행, 인공지능, 로봇이 결합된 휴머노이드 회사로 만드는 게 목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있다.

2024년 10월호
테슬라 '휴머노이드 로봇' 인류 구원할 수 있을까?
머스크 보유기업 보면 미래가 보인다?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건 휴머노이드 로봇
인공지능으로 돈 벌기...테슬라가 유리한 이유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테슬라를 이해하려면 먼저 CEO인 일론 머스크를 알아야 한다. “일론 머스크가 상상하면 모두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의 천재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머스크는 독특한 행동으로도 유명하다.
천재 ‘일론 머스크’의 돌출 행동
2018년 3월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테슬라 ‘모델X’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냈다. 운전자는 사망했고 차량은 폭발해 화재가 발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테슬라의 신용등급을 B3로 한 단계 강등했다.
당시 모 헤지펀드 CEO인 존 톰슨은 “테슬라는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지만 그런 기대를 걸 수 없다. 일론 머스크가 마법을 부리지 않는 한 4개월 내에 파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자 2018년 4월 1일에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파산을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몇 시간 안에 중요한 뉴스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고 곧 “최후의 수단으로 부활절 계란을 대량 판매하며 자금 마련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는 글을 올렸다. 놀랍게도 이것은 만우절 농담이었다.
2018년 8월에는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에 “테슬라를 주당 420달러에 인수해 비상장 회사로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자금은 확보돼 있다”고 밝혔다. 전일 주가 344달러 대비 22%의 프리미엄을 붙여 매수하겠다는 구상이라 발표 이후 주가는 바로 11% 폭등했다.
하지만 머스크가 자금원이라고 밝힌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는 테슬라에 투자하지 않았고 시장에서는 머스크의 주가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증권사기 혐의로 머스크를 고소했다. 당시 머스크는 합의를 통해 벌금 270억원(2000만달러)을 내고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2018년 9월에는 일론 머스크가 코미디언 ‘조 로건’의 인터넷 방송에 출연했을 때 로건에게서 마리화나를 섞은 담배를 건네받았다. 머스크는 “음, 이거 합법적인 거 맞죠?”라고 물은 뒤 “거의 피워본 적이 없다”며 몇 모금 피운 뒤 위스키도 마셨다.
테슬라 공장이 있는 캘리포니아 주는 마리화나가 합법이지만 인터넷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마리화나를 피우는 모습은 주주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머스크는 평소 마리화나를 멀리해 왔다. 조심성 없는 행동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산 셈이다. 2018년은 테슬라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라 머스크의 스트레스도 컸다. 그럼에도 CEO의 이런 돌출 행동은 주주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테슬라가 한창 잘나가던 2022년에는 평소 본인이 많이 사용해 왔던 ‘트위터(SNS)’를 다소 충동적으로 인수하기도 했다. 2024년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를 공개 지지했다. 또 X(옛 트위터)를 통해 머스크와 트럼프의 대담을 직접 생중계하는 이벤트도 펼쳤다.
그의 화끈한 행동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는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어쩔 셈일까? 테슬라 비즈니스의 대부분이 일반 대중에게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좋은 전략이 아닌 건 분명하다. X의 비즈니스 역시 마찬가지다.
머스크는 2021년에 한 라이브 방송에 출연해 “혹시 저 때문에 감정이 상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저는 전기차를 재창조했고 사람들을 로켓선에 태워 화성에 보내려 합니다. 이런 제가 차분하고 정상적인 사람일 거라 기대했나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기 객관화에도 뛰어나다.
‘머스크’의 사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머스크를 돌출 행동만으로 평가절하하면 천재에게 투자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일론 머스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원대한 사명부터 알아둘 필요가 있다. 머스크의 ‘사명’ 중 가장 거대하면서도 당황스러운 건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머스크는 이 황당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테슬라’보다 먼저 ‘스페이스X’를 창업했다. 머스크는 ‘언젠가 지구가 멸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화성 이주’가 그의 사명이다.
그는 이런 황당한 계획을 진행하기에 앞서 먼저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머스크가 약 42%의 지분을 보유한 스페이스X는 재사용 가능 로켓인 ‘팰컨 9’을 개발해 로켓 제작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스페이스X는 팰컨 9을 활용해 우주선과 위성을 우주로 발사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주도하던 우주 개발에 민간기업인 스페이스X가 참여해 우주 개발 비용을 크게 낮췄다. 엄청난 성과다. 이를 통해 수익도 창출하고 있다.
또 스페이스X의 자회사인 ‘스타링크’는 전 세계 어디서든 스타링크 위성을 통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유료다. 현재 약 6000여 개의 스타링크 위성이 우주에서 활동 중이다. 스타링크 시스템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도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머스크는 돈을 버는 데도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다. 스페이스X는 우주여행 상용화도 연구 중이다. 100여 명이 탑승할 수 있는 초대형 스타십 로켓도 계속 개발 중이다. 물론 아직까지 스타십 로켓은 화성 근처에도 못 가고 있다. 그런데도 머스크는 인류가 화성에서 살아가는 방법까지 미리 연구 중이다.
‘머스크’의 보유 기업을 보면 ‘사명’이 보인다?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 외에 보유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분야에 진심인지 알 수 있다. 먼저 약 13%(스톡옵션 포함 시 약 20%)의 지분을 보유한 테슬라다. 머스크에게 ‘전기차’는 자신의 최종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 과정’에 불과하다.
머스크는 테슬라를 통해 전기차의 대중화에 성공했다. 추가로 태양에너지와 배터리 기술을 발전시켜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를 통해 테슬라의 사명인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또 약 50%의 지분을 보유한 ‘뉴럴링크(Neuralink)’를 통해 인간의 뇌에 마이크로 칩을 심어 뇌 기능을 향상시키고 신경 질환을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인류의 지능을 높이고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노력이다. 뉴럴링크는 최근 척추 손상을 입은 2명의 환자 뇌에 ‘텔레파시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칩을 이식받은 사람은 생각만으로 휴대폰과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다. 무선으로 신호를 전달해 TV 채널 조작, 인터넷 검색, 게임 등이 모두 가능하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활용도는 무궁무진하게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약 25%의 지분을 보유한 ‘엑스닷에이아이(xAI)’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인공지능이 안전하게 발전하는 것에도 집중한다. 머스크는 ‘인공지능이 인류를 해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론 머스크는 최근 X에 “테슬라가 xAI에 50억달러(6조8000억원)를 투자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하루 동안 온라인 투표를 진행해 68%의 찬성표를 얻었다. 법적 구속력 없는 투표지만 xAI의 지배구조를 더 강화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xAI는 대규모 언어모델인 ‘그록(Grok)’을 자체 개발 중이다. ‘그록2.0’이 생성형 AI인 ‘챗GPT’나 ‘클로드’의 성능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그록은 미래에 테슬라의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인 ‘옵티머스’의 두뇌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또 완전자율주행 기술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는 실패일까?
머스크가 약 70%의 지분을 보유한 X(옛 트위터)는 뜨거운 감자다. 머스크는 2022년에 트위터를 인수한 후 지금까지 약 80% 이상의 직원을 해고했다. 이 해고로 기업 운영의 효율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해고에 자유로운 미국에서도 비판이 있을 정도다. 또 무리한 감원으로 X의 운영 안정감이 낮아졌다.
머스크는 X 인수 후 과거보다 유저들의 발언을 좀 더 자유롭게 방치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정치적 논란이나 옳고 그름의 대립이 더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논란이 잦아지면서 광고 수익으로 운영되는 X를 싫어하는 광고주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X에 치명적인 악재다.
이 틈을 노려 페이스북 CEO인 저커버그는 X와 비슷한 유형의 ‘스레드(SNS)’를 출시해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또 X가 논란이 될수록 테슬라의 브랜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X 인수 초기부터 머스크의 인수 결정은 실수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머스크의 거대한 그림은 X가 쌓아온 트위터 피드 데이터에 있다. 지금 인공지능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 양질의 데이터 부족이다. 과거와 달리 무료로 데이터를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 트위터 피드 안에는 어마어마한 데이터들이 축적돼 있다. 이 데이터 안에는 실제 트위터를 사용했던 사람들의 실시간 대화, 관심사, 트렌드 등이 다 쌓여 있다. 인공지능을 진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무기를 손에 넣은 셈이다.
머스크 사명 중 인류에게 필요한 건 휴머노이드 로봇
이렇게 일론 머스크가 걸어온 과정과 그가 지분 투자한 회사들을 살펴보면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그는 과거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왔던 인류의 발전을 실제 현실에서 성공시키려 한다. 그런데 ‘인류의 화성 이주’와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중 실제로 인류에게 도움 되는 건 뭘까?
당연히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화성에 관심 있는 인류는 머스크 외에는 많지 않다. 반면 로봇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전 세계적인 저출산 현상으로 일할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산업용 로봇은 사람을 대신해 공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전투용 로봇도 유용하다. 로봇이 카페 종업원 역할도 할 수 있다.
특히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가사용 로봇’과 ‘간호용 로봇’ 수요는 폭증하게 된다. 가장 부유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늙어가고 있다. 이들의 집안일을 돕고 간호해줄 휴머노이드 로봇은 앞으로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은 더 심각하다. 한국은행은 돌봄 인력 부족 규모를 2032년에는 최대 71만명, 2042년에는 최대 155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돌봄 인력 외에 산업 현장에서도 노동자 부족 현상은 심각하다. 외국인 노동자 구하기도 어렵다. 결국 휴머노이드 로봇 수요 급증은 정해진 미래다.
테슬라의 야심작 ‘옵티머스’의 등장
일론 머스크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 중 상장 회사는 테슬라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다 비상장사다. 머스크는 테슬라를 전기차 회사로 생각하지 않는다. 테슬라의 중간단계는 에너지 기업이다. 하지만 최종 단계는 자율주행, 인공지능, 로봇이 결합한 휴머노이드 회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머리, 몸통, 팔, 다리 등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 로봇을 말한다. 테슬라가 자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의 능력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1세대에 비해 걷는 속도가 빨라졌고 손 동작도 자연스러워졌다. 옵티머스가 테슬라 공장에서 배터리를 정리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는 목표를 과다하게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100% 믿을 수는 없다. 그래도 옵티머스 가격 목표를 약 2700만원(2만달러)으로 책정한 건 고무적이다. 머스크가 아니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다. 과거에는 수억 원의 가격이 책정된 바 있다.
전기차의 부품 중 가장 비싼 건 배터리다. 휴머노이드 로봇 부품 중 가장 비싼 건 관절을 컨트롤하는 액추에이터 가격이다. 머스크는 테슬라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옵티머스도 대부분의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수직계열화 방식을 택했다. 액추에이터를 자체 생산할 경우 가격 경쟁력은 상당히 높아진다.
옵티머스의 또 다른 강점은 두뇌다. 테슬라에는 슈퍼컴퓨터 ‘도조(Dojo)’가 있다. 도조는 전 세계에서 운행되는 테슬라 차량에서 수집된 막대한 도로 교통 데이터와 영상자료 등을 분석하는 슈퍼컴퓨터다. 도조는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활용된다.
이 도조가 휴머노이드 로봇인 옵티머스의 인공지능 능력 강화에도 활용된다. 머스크가 투자한 또 다른 회사 엑스닷에이아이(xAI)의 대규모 언어 모델인 ‘그록(Grok)’도 옵티머스의 두뇌 개발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인공지능으로 돈 벌기...테슬라가 유리한 이유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이 부각되면서 빅테크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니’, 앤트로픽의 ‘클로드’ 간 경쟁이 치열하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하지만 경쟁이 격화되면서 제대로 된 유료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테슬라는 뛰어난 인공지능 기술 외에도 천재 엔지니어인 일론 머스크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제조 기술을 갖추고 있다. 인공지능만으로 소비자에게 높은 사용료를 받아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결합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는 높은 가격의 유료화가 가능하다.
인공지능을 두뇌에 심고 몸체도 생산하니 비싼 가격을 책정해도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이 덜하다. 다른 인공지능 빅테크 기업들이 따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로봇 제조는 아웃소싱할 경우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빅테크 기업들이 직접 제조하기도 어렵다.
테슬라 전기차마저도 자동화 시스템 도입 후 상당 기간 수율이 안 나와 고생했다. 현장에서 수개월간 직원들과 같이 먹고 자며 에러를 직접 해결한 게 일론 머스크다. 테슬라만에만 존재하는 경험치다. 머스크는 언제든 주 100시간 이상 일할 준비가 돼 있는 전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이자 CEO다.
물론 저출산이 심각한 중국도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의 경쟁력은 파격적인 가격이다. 따라서 미래에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커진다 해도 전기차 시장처럼 테슬라가 독주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옵티머스는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주가 급등락 견딜 수 있다면 천재에게 베팅해 봐?
테슬라 경영진은 지난 2분기 실적발표 때 옵티머스를 2025년부터 테슬라 공장에 투입할 계획이라며 2026년부터는 외부 판매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장기적으로 옵티머스의 가치가 테슬라의 다른 모든 사업부 가치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인류가 기대하는 진정한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먼 미래에 집안일과 간병일을 할 수 있는 진정한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이 양산된다면 수요는 넘쳐난다. 전 세계 인구는 약 80억명이다. 장기적으로는 산업용과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 수요도 인구 수와 비슷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옵티머스만 믿고 테슬라 주식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 달리 테슬라의 주가 움직임은 훨씬 더 난폭하다. 테슬라 주주가 되면 400달러를 돌파했던 주가가 1년 만에 102달러까지 무려 75% 폭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주식은 꿈을 먹고 오른다지만 당장의 테슬라 실적도 좋은 편은 아니다. 따라서 테슬라 주식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면 5년 이상의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합리적인 전략이다.
지금껏 인류가 발전해온 건 천재들의 덕이 크다. 테슬라는 천재 엔지니어인 일론 머스크가 ‘사명’을 가지고 회사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더 기대가 크다. 테슬라가 인류의 미래를 풍요롭게 바꿔줄 거라고 믿는 투자자라면 테슬라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2024년 10월호
베이비부머, 헬스케어 관심 집중...삼성바이오로직스 수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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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총 상위 7위 내 바이오 종목 2개 진입 눈길
구매력 높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 ‘헬스케어’ 관심
삼성이 ‘신약 개발’ 말고 ‘위탁개발생산’ 시작한 이유?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존재감은 강력하다. 그럼에도 삼성 브랜드를 가진 모든 회사가 다 1등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상장된 지 8년밖에 안 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눈부신 성과는 눈에 띈다. 이는 삼성의 뛰어난 전략과 제약·바이오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맞물린 대성공 사례다.
특정 국가의 시가총액 순위를 살펴보면 그 나라의 주력 산업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부동의 1위는 삼성전자다. 2024년 8월 말 기준 시총은 무려 444조원이다. 2위는 SK하이닉스로 시총 126조원을 기록했다. 한국 증시의 원투 펀치가 모두 반도체 분야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3위는 LG에너지솔루션으로 시총은 91조원이다. 2차전지 분야도 한국의 주요 산업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 초에 공모가 30만원에 상장된 후 한때 주가가 63만원까지 폭등하며 SK하이닉스를 제치고 시총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영향으로 업황이 부진해지면서 다시 시총 3위로 내려앉았다. 그런데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상장사였던 LG화학의 배터리 부문을 물적 분할한 회사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신규 회사는 아니다.
4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시총은 70조원이다. 한국의 대표 자동차 회사인 현대차보다도 순위가 높은 게 눈에 띈다. 6위인 셀트리온도 바이오시밀러 회사다. 한국 시총 상위 7개 종목 중에 바이오 회사가 2개나 진입해 있다. 한국의 주력산업이 바이오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령화 맞물려 베이비부머 의약품 소비 폭증
한국의 건강보험 총 진료비는 2023년에 드디어 100조원을 돌파해 107조원을 기록했다. 여기서 주목할 건 ‘의약품비’다. 2023년의 총 의약품비 청구금액은 25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급증했다. 이렇게 증가율이 가파른 이유가 뭘까?
한국의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는 이미 대부분 은퇴했다. 이들을 포함한 한국의 만65세 이상 노인 인구 수는 2024년 7월에 드디어 1000만명을 돌파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건 만65세 이상 노인의 의약품비다. 2023년 노인 의약품비 청구금액은 11조8000억원으로 전체 의약품비 청구액의 45.7%를 차지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의료비가 급증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노인 의약품비 지출의 폭발적인 증가 추세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인구 구조상 앞으로도 노인들의 의약품비 증가세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미국 역시 고령화가 심각하다. 미국의 ‘메디케어(Medicare)’는 65세 이상 미국 국민과 일부 장애인을 위한 연방정부의 건강보험 프로그램이다. 2022년 기준 가입자 수는 무려 6200만명이다. 전체 인구 중 20%가 메디케어에 가입한 셈이다.
아이큐비아(IQVIA)는 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를 2027년 기준 2500조원(1조9000억달러)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약·바이오 시장은 더 확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구매력 높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 ‘헬스케어’ 관심
한국의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에게는 만성 질환, 관절염, 심장병, 뇌졸중, 당뇨병, 고혈압 등의 건강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이에 따라 정기적인 의료 검사와 약물 치료 필요성이 증가한다. 이 세대는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필수 의약품 소비에 돈을 쓰고 있다.
하지만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는 다르다. 무려 950만명이나 되는 이들은 가장 부유한 세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부유한 만큼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이전 세대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한다. 본인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쓸 준비가 돼 있다.
따라서 2차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늙어가는 10년 뒤부터 제약·바이오 트렌드가 바뀔 확률이 높다. 의료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새로운 치료법과 좋은 신약이 이미 대거 등장했다. 수명과 관련 있는 필수 의약품 외에도 건강 유지를 위한 예방 의료 지출이 커질 전망이다.
이미 의약품 시장은 변해 가고 있다. 기적의 비만 치료제로 불리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나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 가격은 연간 2000만원 수준이다. 이런 고가에도 비만 치료제는 불티나게 팔린다. 두 회사의 비만 치료제 모두 2024년 2분기에 사상 최고 매출액을 경신했다.
비만 치료는 수명과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다. 예방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구매력 있는 베이비부머들은 예방적 치료나 미용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 사보험사의 의약품 보장 범위 확대로 비싼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것도 헬스케어 산업에는 호재다.
삼성이 ‘신약개발’ 말고 ‘위탁개발생산’ 시작한 이유?
삼성그룹은 오래전부터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바이오 산업을 점찍었다. 이에 따라 2011년 4월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신규 설립했다. 그런데 왜 삼성은 신약개발이 아니라 CDMO(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 위탁개발생산)부터 시작했을까?
제약·바이오 시장의 꽃은 신약개발이다. 새로운 블록버스터(1조원 이상 매출) 신약을 개발해 전 세계로 판매하는 건 모든 제약 회사의 꿈이자 사명이다. 신약개발이 성공할 경우 그 과실은 달콤하다. 머크 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는 2023년에만 33조원(250억달러)의 매출액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의약품 매출액 2위인 애브비 사의 ‘휴미라’는 19조원(144억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휴미라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류머티스관절염, 건선, 크론병 등의 치료제로 쓰인다.
이렇게 단일 의약품 한 개만으로 수십 조원의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신약개발이 매력적인 이유다. 또 높은 매출액에 걸맞게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의 시가총액도 어마어마하다.
2024년 8월 말 종가 기준 글로벌 제약 회사 시가총액 1위는 일라이릴리로 1232조원(9124억달러), 2위는 노보노디스크로 636조원(3조1800억덴마크크로네), 3위는 존슨앤드존슨으로 539조원(3993억달러), 4위는 애브비로 468조원(3468억달러), 5위는 머크(MSD)로 405조원(3002억달러)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승자들의 잔치일 뿐이다. 문제는 신약개발은 실패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신약개발 과정은 후보물질 발굴, 스크리닝(거르기), 물질 최적화, 독성실험, 임상 1~3상, 허가 및 출시 등의 절차를 따른다. 따라서 후보물질 발굴부터 독성실험까지 최소 4년 이상, 임상부터 허가까지는 최소 6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흔하다. 아무리 빨라도 10년은 걸린다는 뜻이다. 비용도 최소 1조~3조원이 소요된다.
최초 후보물질 탐색부터 도출까지만 해도 1만분의 1에 불과한 낮은 확률이다. 간신히 후보물질을 찾아내 임상 1상을 시작해도 성공 확률은 낮다. 미국 바이오협회에서 분석한 임상시험 현황 데이터에 따르면 1상부터 승인까지의 성공률은 7.9%(2012~2020년)에 불과하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력인 CDMO(위탁개발생산)는 주요 제약사로부터 의약품 개발, 생산 및 품질 관리 등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안정적인 사업이다. 이미 과거부터 수많은 반도체 공장을 정밀하게 만들어 운용해온 삼성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유리한 분야다.
또 CDMO는 신약개발처럼 실패할 가능성도 낮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바로바로 매출과 수익이 인식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 세계 주요 제약사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신약개발 대신 안정적인 CDMO 사업을 선택한 삼성의 전략은 영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증시 상장 7년 9개월 만에 시가총액 69조원을 달성하며 당당히 1위를 달리고 있다. 전통의 제약사인 유한양행 시총이 11조원, 한미약품 시총이 4조원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성공적인 결과다.
하지만 신약 대신 CDMO 사업을 택한 게 반드시 옳은 전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SK그룹의 바이오 회사나 전통의 제약사인 유한양행을 제치고 시가총액 3위를 기록한 ‘알테오젠’ 같은 성공 사례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가가 무섭게 상승한 바이오플랫폼 기업 알테오젠은 히알루로니다제를 사용해 정맥주사제형 치료제를 피하주사제형으로 바꾸는 Hybrozyme™(하이브로자임) 기술 개발에 성공해 대박을 쳤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이고 편의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하이브로자임 플랫폼 기술을 통해 개발한 물질 ‘ALT-B4’는 올 초에 세계 판매 1위 항암제인 ‘키트루다’에 적용하는 기술수출 계약을 머크(MSD)사와 체결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추가로 2곳의 글로벌 제약사와도 계약해 올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신약개발은 실패 확률도 크다는 점에서 소수의 성공 사례만으로 선뜻 도전하기는 어려운 분야라 할 수 있다.
상장 당시 인기 없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질주
제약·바이오 사업 경험이 부족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6년 11월에 증시에 신규 상장을 진행하자 투자자들은 반신반의했다. 공모가가 너무 비싸 매력이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그 당시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 경쟁률은 45 대 1에 불과했다. 요즘같이 수백 대 1이 기본인 상황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모가는 13만6000원으로 결정됐고 상장 당일 종가는 14만4000원이었다. 결과적으로 투자자 누구나 마음만 먹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상장 당일에 공모가 수준에서 마음껏 수량 제한 없이 매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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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기 없던 주식이지만 대반전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4년 8월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는 100만원을 터치했다.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무려 635%다. 하지만 이 달콤한 수익률은 엄청난 고통을 견뎌낸 대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8년 11월에 분식회계 의혹으로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들어가면서 무려 18거래일 동안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회사와 공장 압수수색, 계속되는 경영권 승계 관련 조사와 재판 등으로 투자자들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이런 과정으로 볼 때 삼성바이오로직스 공모주를 상장 후 8년간 지속적으로 보유한 투자자라면 7배의 높은 수익률을 보상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2021년 8월에 100만원 넘는 고점에 매수한 투자자라면 3년간의 마음고생 끝에 이제서야 겨우 본전에 근접한 상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최근 각종 호재를 발판으로 다시 전 고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래 전망을 궁금해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는 이유다.

2024년 10월호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전자 뛰어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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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수주와 탄탄한 실적...호재 만발
삼성바이오에피스 바이오시밀러 폭풍 성장
미국 생물보안법 시행은 초대형 호재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의 의약품 시장 규모는 약 30조원이다. 전 세계 의약품 시장 추정 규모는 약 2000조원(1조5000억달러)이다. 한국 시장은 전 세계 시장 규모의 1.5%에 불과하다.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해외 진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FDA 최종 승인 신약 9개 불과
신약개발은 리스크도 크고 기술적 장벽도 높다.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이 까다로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최종 승인을 받은 사례는 지금껏 총 9건에 불과하다. 문제는 신약이 FDA의 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다 잘 팔리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내 9개의 신약 중 아직 블록버스터(연 매출 1조원 이상)급으로 성장한 것은 없다.
그만큼 세계 시장의 장벽은 높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FDA의 승인을 받은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렉라자는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이중 특이성 항체 ‘리브리반트’와의 병용요법으로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
1차 치료제는 특정 질환 진단 후 가장 먼저 사용되는 치료제다. 따라서 초기 시장 진입 때부터 많은 환자에게 노출된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렉라자가 사상 처음으로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셀트리온의 신약 ‘짐펜트라’도 강력한 블록버스터 신약 후보다. 짐펜트라는 기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램시마’의 피하주사(SC) 제형 버전의 신약이다. 2023년에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아 2024년 3월부터 미국에서 판매 중이다. 기존 정맥주사형 약물 대비 소비자들의 편의성과 안정성이 높아져 인기다.
하지만 렉라자와 짐펜트라가 각각 1조원의 매출벽을 돌파한다 해도 여전히 글로벌 시장 관점에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아직은 한국 제약사들이 전 세계 시장에서 신약으로 경쟁하기는 어려움이 많은 환경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신약개발 사업에 신중한 이유다.
CDMO(위탁개발생산)가 대세인 이유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반기 보고서에서 2024년 바이오 의약품 시장 규모를 약 590조원(4370억달러)으로 추정했다. 이는 전체 제약 시장의 37% 수준으로 2028년까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약개발이 아니라 위탁개발생산이 주력인 회사다. 따라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이해하려면 먼저 위탁개발생산 관련 용어인 ‘CMO’, ‘CDO’, ‘CDMO’를 알아야 한다.
‘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란 제약 회사로부터 위탁받아 의약품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제품의 대량 생산, 포장, 품질 관리 등이 포함된다. 주로 이미 개발된 의약품의 대량 생산을 담당한다. 제약사들이 자체 생산시설을 갖추지 않고도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다.
‘CDO(Contract Development Organization)’는 의약품의 개발 단계만을 지원하는 ‘위탁개발’을 말한다. 주로 연구개발, 임상시험을 위한 소규모 생산, 공정 최적화 등을 담당한다. 대량 생산은 포함되지 않는다. 대량 생산은 별도의 제조 조직(CMO)과 협력해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CDMO(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는 CMO와 CDO를 합친 개념이다. CDMO는 의약품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 초기 연구, 임상시험 물질 생산, 최종 대량 생산까지의 전 과정을 담당한다. 따라서 제약사들에게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글로벌 CDMO 시장...대형사 간 경쟁 치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동물 세포 기반 항체의약품’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바이오 CMO 사업을 영위한다. 동물 세포 기반 항체의약품은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동물 세포에서 생성된 단백질, 특히 항체를 주성분으로 하는 의약품이다. 이 의약품들은 주로 암, 자가면역질환, 감염질환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따라서 동물 세포 기반 항체의약품은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대형 생산설비를 보유한 소수의 초대형 CMO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시설 규모는 글로벌 톱 수준이다. 2025년 4월 완공이 예정된 송도의 제5공장까지 합치면 총 생산능력은 무려 78만4000리터로 늘어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MO 사업에서 압도적인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송도 제5공장까지 누적 5조9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대규모 생산능력을 보유하면 ‘규모의 경제’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즉 생산단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5공장까지 완성돼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미 확보해 놓은 송도 토지는 여전히 빈 곳이 넘쳐난다. 더 미래에 6공장, 7공장, 8공장까지 완공될 경우 생산능력 측면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로 올라서게 된다. 삼성은 반도체 산업에서의 초격차 전략을 바이오 산업에서도 그대로 활용했다. 이 전략은 대성공이다.
현재 생산시설 규모 세계 1위는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론자’다. 삼성의 공격적인 확장에 대응해 론자는 2024년 3월에 글로벌 제약사인 ‘로슈’의 미국 생산공장 33만리터를 인수했다. 따라서 총 생산능력이 77만5000리터로 확대됐다. 론자 역시 규모의 경제를 누리기 위해 생산능력 확대에 적극적이다.
이와 별개로 대형 제약사인 로슈의 미국 공장 매각은 바이오 의약품의 직접생산보다 위탁생산 트렌드가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우시바이오도 생산능력 확대에 적극적이지만 미국의 생물보안법에 발목을 잡힐 우려가 크다.
안정적인 수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실적
아무리 공장을 늘려도 수주물량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다면 거대한 생산능력은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다. 다행히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상위 20개 제약사 중 무려 16개 사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거래 중이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수주 잔고도 탄탄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연도별 CMO 신규 수주 금액은 2021년 1조9000억원(14억달러), 2022년 2조7000억원(20억달러), 2023년 3조3000억원(25억달러)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기준 누적 수주금액은 16조원(120억달러)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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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보다 해외 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24년 상반기 매출액을 살펴보면 한국 매출 비중은 3.5%에 불과하다. 유럽 비중이 61.8%, 미국 비중이 27.4%로 대부분의 매출이 글로벌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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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전반적인 실적도 양호하다. 2023년에 CDMO 항체의약품 매출액은 2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바이오시밀러 매출액은 1조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54% 급증한 서프라이즈 실적을 보였다. 2023년 전체 매출액은 3조69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 급증했다.
영업이익 또한 1조11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제조업으로는 드물게 30%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 중인 것도 눈길을 끈다. 한국 시가총액 1위 회사인 삼성전자의 2024년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12% 수준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수익성이 3배 가까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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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상반기 실적은 더 화려하다. CDMO 항체의약품 매출액은 1조2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 특히 바이오시밀러 매출이 전년 대비 무려 73% 급증한 8100억원을 기록한 점이 눈길을 끈다. 상반기 전체 매출 합계는 2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 추세면 2024년 총 매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4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 또한 66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7% 증가한 호실적을 보였다. 최근 외국인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을 집중 매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 통해 바이오시밀러 폭풍 성장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실적을 살펴보면 주력인 CMO 사업 외에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매출액이 큰 폭 성장한 게 주목된다. 이는 2022년 4월에 지분 100% 확보를 통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한 ‘삼성바이오에피스’ 덕분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2년에 설립된 생명공학 회사다. 주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의 개발, 생산, 상용화에 주력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란 특허가 만료된 ‘생물학적 의약품’과 동등한 효능과 안전성을 갖춘 복제 의약품을 말한다. 오리지널보다 가격이 저렴한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생물학적 의약품은 세포, 단백질, 호르몬 등 생물학적 물질로 만들어진다. 이와 동등한 효능을 갖춰야 하는 바이오시밀러는 미세한 환경 변화에도 제품의 특성이 달라질 수 있어 제조가 까다롭다. 따라서 원래의 생물학적 의약품과 동일하긴 어려워 유사 구조의 제품을 만든다. 규제 절차도 엄격해 광범위한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반면 ‘화학적 합성 의약품’의 구조는 간단하다. 따라서 이를 복제하는 제네릭 의약품의 경우 제조 과정이 비교적 단순하다. 제네릭 의약품은 원래의 약물과 화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구조다. 이에 따라 승인 절차도 간단하다. 이렇게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 의약품 간의 난이도 차이는 현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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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강력한 기술 경쟁력을 갖췄다. 현재까지 총 8개의 바이오시밀러 품목이 FDA 판매 허가를 받아 미국과 유럽 등에서 판매 중이다.
과거 블록버스터 신약이었던 존슨앤드존슨의 ‘레미케이드’(적응증: 크론병 등)는 ‘렌플렉시스’라는 이름의 바이오시밀러로 만들어 판매된다. 로슈의 ‘허셉틴’(적응증: 유방암 등)은 ‘온트루잔트’, 암젠의 ‘엔브럴’(적응증: 류머티스관절염)은 ‘에티코보’라는 약품명으로 판매된다.
그 밖에도 애브비의 ‘휴미라’(적응증: 건선 등)는 ‘하드리마’, 노바티스의 ‘루센티스’(적응증: 황반변성 등)는 ‘바이우비즈’, 리제네론의 ‘아일리아’(적응증: 황반변성 등)는 ‘오퓨비즈’, 얀센의 ‘스텔라라’(적응증: 크론병 등)는 ‘피즈치바’, 알렉시온의 ‘솔라리스’(적응증: 발작성 야간 혈색 소뇨증)는 ‘에피스클리’라는 이름의 바이오시밀러로 만들어졌다.
지금 세계 각국 정부는 늘어나는 의약품 비용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국가의 재정은 빠듯한데 노령화로 인해 의약품 지출비용은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오리지널보다 가격이 저렴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사용을 권장하는 추세다. 앞으로도 바이오시밀러 분야의 매출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 생물보안법 초대형 호재...수혜주는 삼바?
지난 2024년 3월에 미국에서는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이 상원을 통과했다. 이는 외국의 바이오 기업이 미국인의 개인 건강과 유전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법안이다. 법안의 실제 목적은 중국 바이오 기업의 미국 활동을 막아 바이오 보안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아직 최종적으로 법안이 통과된 건 아니다. 하지만 실제 법안 통과 시에는 ‘우시 바이오’ 같은 중국 바이오 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반면 CDMO 사업에서 우시 바이오와 강력한 경쟁 관계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규모의 반사이익을 보게 된다.
현재 생물보안법의 하원 표결은 2024년 9월로 예정돼 있다. 생물보안법의 연내 통과가 가시화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로의 수주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본격적인 시행연도는 2032년부터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장기적인 생산능력 확보 계획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스케줄이다.
전 세계의 베이비부머들이 다 같이 늙어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수명을 늘릴 수만 있다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연평균 6%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한국 정부도 첨단 바이오 기술 연구개발(R&D) 예산 규모를 올해의 1163억원에서 내년에는 1283억으로 늘리며 바이오 산업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 60살인 사람은 10년 뒤에 반드시 70살이 된다. 국내 주식 전체 시가총액 순위 4위로 뛰어오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10년 뒤에는 삼성전자마저 제치고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제약·바이오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을 확신하는 투자자라면 국내 1위 바이오 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9월호
"우리는 '마처세대'"...한국 부유층 '60년대생'의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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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커뮤니티엔 부모님 간병 걱정 한가득
죽기 5년 전에 쓰는 병원비가 최대
노인 1명에 1년 1700만원...적자 불 보듯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요즘 은퇴 커뮤니티에는 본인의 노후 걱정뿐 아니라 부모님의 간병을 걱정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특히 60대에 진입한 1960년대생들의 고민이 가장 크다. 이들은 80대의 부모와 20대의 자식 사이에 제대로 끼인 세대다. 일명 ‘마처 세대’라는 신조어로 불리기도 한다. 부모 부양의 ‘마’지막 세대이자 부양 못 받는 ‘처’음 세대라는 뜻이다.
60대 노인이 80~90대 간병하는 세상
지난 6월에 ‘재단법인 돌봄과미래’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 1960년대생 중 15%가 부모와 자녀 모두를 부양하는 이른바 ‘마처 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지출 비용은 164만원이다. 연간으로 따져보면 2000만원에 육박한다.
꼭 ‘이중 부양’은 아니더라도 60년대생의 44%는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월평균 지원금은 73만원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간병이다. 지금은 60대 노인이 80~90대 노인을 간병하는 세상이다.
이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늙어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2025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한국보다 훨씬 먼저 진입한 일본도 ‘노노간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의 은퇴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흔한 질문 중 하나가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셔도 되는지”다. 이 질문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진다. 종합해 보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치매’가 심하거나 ‘스스로 대소변을 해결 못 하는 상황’이라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좀 더 많은 편이다.
“요양원에 치매 환자가 많은지 여부”를 묻는 질문도 있다. “우리 부모님은 정신이 멀쩡하지만 거동이 불편해 어쩔 수 없이 모시려는데 치매 환자가 많으면 적응하기가 어떨지”에 대한 걱정이다.
요양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치매 환자가 아예 없는 경우는 없다. 한국은 2017년에 ‘치매 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국가가 앞장서서 치매 환자를 관리한다는 뜻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 벌써 110만명 돌파
부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존엄한 노후를 보낼 권리가 있다. 이런 취지로 혼자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65세 이상 노인의 존엄한 노후 보장을 위해 만든 제도가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어느덧 시행 16주년을 맞았다. 이 제도 덕분에 한국 노인들의 의료비 부담은 대폭 경감됐다.
하지만 아무나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65세 이상 노인이나 65세 미만의 노인성 질병(치매·뇌혈관성질환·파킨슨병 등)을 가진 사람만 가능하다. 내년부터는 1960년생도 신청 가능한 나이가 된다.
이들이 공단에 ‘장기요양 인정’을 신청하면 공단 직원의 조사 결과와 의사소견서 등을 참고해 적정 등급을 판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2023년 기준 장기요양보험 혜택 인정자는 110만명에 달한다. 전체 노인 인구 중 11.1% 비율이다. 아직은 10명 중 1명꼴이라 부담이 크지 않다. 하지만 노령화가 진행될수록 이 비율은 급격히 높아지게 된다. 질병의 정도에 따라 1~5등급이나 인지지원등급(6등급)으로 분류된다.
장기요양보험의 가장 큰 장점은 재가급여와 시설급여 혜택을 받는다는 점이다. 재가급여란 방문요양, 방문목욕, 방문간호, 주·야간보호, 단기보호, 복지용구 등의 혜택을 말한다. 본인의 집에 거주하면서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시설급여란 등급에 따라 요양원 등의 노인의료복지시설에 입소할 수 있는 혜택을 말한다. 1~2등급은 입소가 가능하다. 이런 재가급여와 시설급여 혜택은 당사자 본인이나 간병을 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된다.
노인 1명에 연 1700만원 들어...적자는 불가피
이런 복지정책을 운영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2023년에 장기요양보험 급여비용으로 총 14조5000억원이 지출됐다. 1인당 연평균 급여 총 비용은 무려 1727만원이다. 이 엄청난 금액을 소득이 없는 노인이 다 부담할 경우 노후 파산도 걱정해야 할 수준이다.
다행히 수급자의 본인부담금은 재가급여의 경우 15%, 시설급여의 경우 20%에 불과하다. 또 재산이 적은 경우 더 감경될 수도 있다. 따라서 실제 연평균 본인부담금은 총 비용 1727만원의 9%에 불과한 155만원이다. 월 13만원꼴이니 저렴하다.
요양원 등의 시설급여 비용을 별도로 계산해 보면 ‘장기요양 1등급’의 시설급여 본인부담금은 월간 약 50만원이다. 연간으로는 약 600만원이다. 게다가 시설급여의 경우 식사재료비, 상급침실 이용비 등은 전액부담이라 추가적인 비용이 더 들어간다. 그래도 총 비용의 5분의 1이니 상당한 혜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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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원이다. 2023년의 공단부담금은 2년 전보다 무려 30.7% 폭증한 13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재가급여에 62.5%인 8조2000억원, 시설급여에 37.5%인 4조9000억원이 지출됐다.
심각한 건 노인인구 급증으로 시간이 갈수록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점. 현재 근로자는 본인의 소득에서 건강보험료율(7.09%)과 장기요양보험료율(0.9182%)을 합친 8%(회사가 절반 부담)를 ‘합산 건강보험료’로 납부한다.
장기요양보험료율만 따로 살펴보면 채 1%도 안 되는 셈이다. 이 정도의 낮은 보험료율로 제도가 지속되는 건 불가능하다. 재정 붕괴는 정해진 미래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에 노인장기요양보험은 5000억원의 재정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2026년부터는 적자로 돌아선다. 2032년에는 적자 규모가 2조3000억원으로 확대된다. 보험료율을 대폭 올리거나 혜택을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다. 이것만 믿고 있다가는 본인의 노후가 흔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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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요양보호사...심각한 문제 될 수도
2023년 기준 장기요양기관 수는 2만8366개소(재가 2만2097개소, 시설 6269개소)다. 노인 장기요양제도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련 업무 종사자도 대규모로 필요하다.
사회복지사,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영양사 등 관련 종사자들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필요한 인력은 요양보호사다. 2023년 말 기준 요양보호사는 61만명으로 2년 전 대비 20.2% 증가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요양보호사의 처우는 낮고 업무강도는 높다. 일할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든다. 반면 노인들은 급증하고 있다. 결국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은 불가피하다. 아예 사람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장기요양보험 재정 전망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전국 요양원 시설과 시스템 개선 필요
요즘 병원에는 늙으신 부모의 진료를 위해 동행하는 60년대생들이 즐비하다. 이런 동행도 부모가 거동할 수 있을 때의 얘기다. 거동이 불편해지면 고민이 깊어진다. 시설에 모시려 해도 마음이 편치 않다. 또 직접 모시기엔 직장생활에 지장받을 정도로 버겁다.
한국의 노인장기요양제도는 세계적 기준으로 살펴봐도 잘 만든 제도다. 그럼에도 이 제도만으로 모든 노인들의 간병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인정기준이 엄격해 제도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환자들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사적 간병인을 써야 한다. 요즘 간병인 구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1개월 비용이 약 400만원으로 훌쩍 뛴다. 특히 80대의 부모와 20대의 자식 사이에 낀 60년대생들의 고통이 크다.
‘효’와 ‘정’을 중요시하는 유교 문화의 한국에서 부모의 간병은 중요한 문제다. 실제 현실은 냉정하다. 이론과 달리 부모의 간병에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사람은 죽기 5년 전에 평생 의료비의 절반 이상을 쓴다는 비공식 통계도 있다.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의 병원비를 외면하기는 힘들다.
국가는 자녀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안심하고 부모를 모실 수 있도록 전국 요양원들의 시설과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재정 문제다. 한국의 소중한 노인장기요양제도가 재정 문제로 후퇴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