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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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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호

“남조선→대한민국·괴뢰로” 北, 대남 호칭의 숨겨진 의미

|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newspim.com 최근 북한의 대남 비난 문구를 살펴보면 기이한 대목이 있다. 기존에 남한을 호칭하는 대표적 표현인 ‘남조선’이 사라지고 대신 ‘대한민국’이 등장한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이나 한국 등의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걸 금기시해 왔다. 탈북민들은 과거 대북 지원 식량 포대에 ‘대한민국’이란 글자가 크게 씌어 있었지만 그게 남쪽에서 보낸 쌀인 줄 몰랐다고 말한다. 그만큼 대한민국이란 말은 생소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대한민국이란 말이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에 수시로 등장한다. 지난 11월 8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대남 비난을 퍼부으면서 “삐라 살포는 《대한민국》 종말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남측을 ‘괴뢰 지역’ 등으로 깎아내리는 표현도 동원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이란 말을 버젓이 쓴 대목이 가장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지난 7월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이 첫 사용 북한의 대한민국 호칭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남 비난의 수위를 한껏 올리면서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운 지난 7월 처음으로 나왔다. 첫 포문을 연 건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이다. 그는 같은 달 10일 노동당 부부장 자격으로 낸 담화에서 “이제는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가 미 국방성이나 미 인디아태평양사령부 대변인이라도 되는 듯 자처해 나서고 있다”며 비난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김여정은 대남 비난 언급을 늘어놓은 뒤 “《대한민국》 족속들의 체질적 특질인 듯하다”는 등의 비야냥까지 입에 올렸다. 저급한 그의 발언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는 없겠지만 대한민국 언급 뒤에 ‘족속’ 운운하는 표현을 썼다는 건 북한의 의도나 대남 인식을 엿보게 한다. 이후 북한의 대한민국 표현은 관영 선전매체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지난 10월 17일에는 조선중앙통신이 한미연합 공중훈련을 위해 미 핵전략폭격기 B-52가 한반도에 전개된 것을 빌미로 논평을 내고 “미국과 《대한민국》 깡패들이 우리 공화국을 향해 핵전쟁 도발을 걸어온 이상 우리의 선택도 그에 상응할 것”이라며 핵 선제타격을 위협했다. ‘깡패’ 라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북한 관영 매체가 대한민국을 언급한 건 주목되는 움직임이다. 통상 북한은 우리를 ‘남조선’이라 불러왔다. 자신들의 정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줄여 ‘조선’이라 표현하고 있으니, 그 남측 지역을 ‘남조선’ 혹은 ‘공화국 남반부’라고 칭해온 것이다. 여기에는 ‘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점당한 지역’이란 의미가 숨겨져 있다. 북한이 노동당 규약 등을 통해 ‘전국적 범위에서의 혁명’을 강조해 왔고, 최근 들어 영토완정(完整)이란 언급을 자주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금기시하던 ‘대한민국’ 표현 관영 매체가 사용 북한 매체뿐 아니라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대한민국이란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는 9월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9차 회의 연설에서 대미 비난 발언을 하면서 “《대한민국》과의 공모 밑에 우리 국가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목적으로 한 ‘핵협의그루빠’를 가동시킨 데 기초하여 침략적 성격이 명백한 대규모 핵전쟁 합동 군사연습을 재개했다”고 주장했다. 또 “뿐만 아니라 일본, 《대한민국》과의 3각 군사동맹체계 수립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지도자와 그 일족의 이런 발언은 조선중앙TV를 통해 중계되고 노동신문을 통해서도 공개돼 주민들도 이를 접할 수 있다. 주민 입장에서는 금기시하던 대한민국이나 한국 표현 사용에 어리둥절해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를 대한민국으로 지칭하고 나선 북한의 숨은 의도는 다소 낯선 표기부호인 ‘《 》’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신문·잡지 등의 글이나 문헌에서 이를 적지 않게 사용하는데 주로 인정하기 싫거나 부인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단어를 입에 올리거나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 이용된다. 즉 대한민국의 경우도 실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거론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를 씌워 등장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북한이 우리 체제를 인정하려는 의미’라는 해석을 제기한다. 또 ‘국가 대 국가로서의 위상으로 남북관계를 가져가려는 것’이란 풀이도 있다. 하지만 이는 희망 섞인 일방적 기대에 불과한 데다 김정은 정권의 숨겨진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우리 체제를 깎아내리고 남북 간 완전한 단절이나 절연(絶緣)을 통해 대남 대립각을 극단적으로 가져가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국가정보원 차장을 역임한 한기범 북한연구소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이 남한 정부와는 같은 민족임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적대 관념의 표출로, 대남 핵 선제공격 위협과 공세적 전쟁준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괴뢰(傀儡)’는 본래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인형’이란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유래해 ‘남이 부추기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사용된다. 북한의 조선말사전(2006, 사회과학출판사)은 괴뢰에 대해 ‘①제국주의를 비롯한 외래 침략자들에게 예속되어 그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조국과 인민을 팔아먹는 민족반역자 또는 그런 자들의 정치적 집단 ②=꼭두각시’라고 설명하고 있다. 뜻은 유사하지만 북한의 경우 본래 뜻보다 더 정치적인 의미와 함께 한국 정부에 대한 부정과 대남 비난의 함의를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남북대결 축구경기 TV중계도 ‘괴뢰’ 자막 괴뢰라는 표현은 ‘남조선’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조선중앙TV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북 여자축구 8강전 경기를 이틀 뒤인 9월 30일 녹화중계하면서 스코어 화면에 기존의 ‘남조선’ 대신 ‘괴뢰’라고 올렸다. 북한 쪽은 ‘조선’으로 표기했다. 중앙TV는 “경기는 우리나라(북한) 팀이 괴뢰 팀을 4 대 1이라는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타승한 가운데 끝났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의 선전매체들도 경기 소식을 전하면서 ‘괴뢰’라는 표현을 써 앞으로도 이런 기류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시대착오적이다. 남북은 과거 냉전 시기 체제 대결을 벌이면서 상대를 ‘괴뢰’로 깎아내리며 비방선전을 펼치기도 했다. 우리도 1980년대까지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나 아웅산·대한항공기 테러 등의 도발 때 국민의 격앙된 대북 감정이 반영된 ‘북괴(北傀)’라는 표현을 쓰며 김일성과 김정일 화형식 등을 벌인 적이 있다. 하지만 냉전은 종식됐고 남북한의 체제 대결도 한국의 압도적 경제발전과 국제적 위상 격상으로 사실상 무의미한 수준에 이르렀다. 북한이 괴뢰라는 표현을 써도 그저 해프닝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 국민들은 핵과 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남북 체제 대결에서도 심한 열패감을 보이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이런 치기 어린 행동에 안쓰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철 지난 괴뢰 논란보다는 굶주리는 주민을 제대로 먹이고 인권을 보장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얼굴을 내밀 수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만드는 게 김정은 정권이 택할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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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호

날개 꺾이는 KF - 21 공군·국회·방산업계 “계획대로 40대 초도생산”

20조원 초대형 국책사업 ‘휘청’ KIDA 사업타당성 조사 전문성 ‘의문’ 당초 40대→20대 줄면 타격 심각 | 김종원 국방안보전문기자 kjw8619@newspim.com 한국형 전투기 KF-21(보라매) 초대형 국책사업이 초도 양산 단계부터 휘청거리고 있다. 전투기 개발과 양산, 운용·유지비용까지 20조원이 넘는 혈세가 들어가는 국가 명운이 걸린 사업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KF-21 초도 생산 물량에 대한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당초 계획했던 40대에서 20대로 줄여야 한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져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KIDA, 선행연구 때부터 ‘발목’ 비판 특히 KIDA는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선행연구를 비롯해 사업타당성에 대해 사업 단계마다 발목을 잡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국책연구기관으로서 국방안보 분야에 대한 전문성 논란이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국민과 국가 안위, 국가 명운이 걸린 대형 국책사업들에 대해 KIDA가 선행연구와 사업타당성 조사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전문성을 갖췄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까지 계속돼 왔다. 이번 KF-21 초도 양산에 대한 사업타당성 조사는 국회 최종 보고를 거쳐 12월쯤 보고서가 나온다. 2024년 2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계획이 심의·의결되면 상반기 중 최종 계약이 체결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들과 소요군인 공군,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방위사업청, 전투기를 개발·제작하고 있는 방산업체들까지 반발과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 여야 의원들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기호·성일종·안규백 “공군 전력공백 심화” 군 출신인 한기호 국방위원장은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한국형 전투기 KF-21에 대해 얼마나 연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40대에서 20대로 줄이기로 한 논리와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한 위원장은 “소요군인 공군에서 40대가 필요하다고 했다면 전력공백을 막기 위해 계획대로 40대를 생산해야 한다”면서 “공군 전력의 전체적인 소요량이 있는 것인데 줄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40대 기준일 때 한 대당 가격이 800억원인데 20대로 하면 1000억원 가까이 된다”면서 “대량 생산을 하게 되면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국방위 여당 간사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초도 양산 물량을 줄이면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면서 “항공기 생산은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의원은 “경제적 논리로 판단했을 때도 앞으로 갈수록 부품 생산 가격이 높아져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어 당초 40대 계획대로 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성 의원은 “현재 공군의 F-4·5가 노후화돼 자꾸 사고가 나고 있다”면서 “KF-21 국산 전투기로 대체해야 하고 20대와 40대는 생산단가 차이가 많이 난다”고 설명했다. 전 국방위원장인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F-21의 초도 양산 물량 축소는 공군 전력공백 문제를 심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면서 “장기적인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KF-21이 공대지·공대공 미사일의 기술적 통합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초도 양산 물량인 40대 그대로 추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엄동환 방사청장은 “공군과 방사청, 체계개발 업체, 이 분야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 40대 양산 계획이 타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사청은 “사업타당성 연구와 관련해 최종 토론회를 가졌지만 추가적인 논의를 통해 국익에 최선인 결론이 도출될 수 있도록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KIDA 결론과 관련해 “국방부·방사청·공군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며 당초 40대 계획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제작단가 상승으로 대규모 혈세 투입 우리 군은 오는 2026~2028년 기간 KF-21 전투기 40대를 초도 생산한 뒤 2032년까지 80대를 추가 양산해 모두 120대를 공군에 인도할 계획이다. 다만 KIDA 측은 △KF-21 사업 성공의 불확실성 △기술적 완성도가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초도 생산 물량 감축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미 전투기 플랫폼을 개발해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근거로 사업의 불확실성을 지적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기술적 미완성 문제도 당연히 새로운 전투기 플랫폼을 만들면 끊임없는 시험평가와 시험비행을 거쳐 기술적·체계적 통합과 보완을 통해 최종 항공기를 완성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미 시작된 사업에 대해 사업 성공의 불확실성을 제기하고 기술적 미완성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초도 양산 물량 축소는 체계개발 업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물론 에이사(AESA) 레이더와 통합 전자전 체계,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등 KF-21의 주요 장비와 무장을 개발 중인 한화시스템과 LIG넥스원, 500여 개에 달하는 협력업체 등 방산업계 전반에도 심각한 타격이다. 대내외적으로 KF-21의 안정적 개발과 수출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 국책연구기관이 근거가 부족한 기술적 미완성과 사업 성공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생산량을 절반이나 축소하는 것은 KF-21 전투기 자체는 물론 국가 신뢰도를 추락시키는 국익 훼손이다. 초도 양산 물량이 20대로 줄어들고 후속 물량 결정이 지연될 경우 공군의 전력공백과 업체들의 생산공백이 불가피하다. 현재 관련 방산업체들은 40대 물량을 기준으로 재료비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20대로 축소되면 제작단가 상승으로 이어져 정부의 대규모 추가 예산이 소요돼 국민 혈세가 투입돼야 한다. KF-21 개발은 한국 공군의 전력 강화와 국내 항공산업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추진됐다. 이번 물량 축소는 노후화된 F-4·F-5의 빠른 대체를 기다리고 있는 공군과 묵묵히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항공산업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공군은 전력공백 우려가 있는 만큼 초도 양산 40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방침이다. 현재 KF-21 사업은 시제 1호기부터 6호기까지 330여 차례 시험비행을 거쳤다. 지난 5월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고 순항 중이다. 소요군인 공군과 사업담당 방사청, 방산업계, 국회 여야 의원들까지 거세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어떤 결론이 날지 초미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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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호

담배 규제 '구멍 숭숭' 청소년들, 액상 담배 대리구매 성행

전자담배 규제 사각지대 악용 SNS상 대리구매 활개 현행법상 담배 아닌 합성 니코틴 액상...“규제 허들 높여야” | 송현도 기자 dosong@newspim.com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규제 사각지대를 악용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액상 담배 대리구매와 신분증 위조가 성행하고 있다. 엑스(옛 트위터) 등 SNS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댈구(대리구매)’해 준다는 계정이 다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액상형 전자담배 불법 구매가 마약 불법 구매 등의 노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며 실효성 있는 규제를 주문하고 있다. ‘대리구매’ 횡행...전자담배 판매점 운영자도 이들은 익명을 보장하면서 연령에 상관없이 전자담배 구입이 가능하다며 구매를 유도했다. 뉴스핌 월간ANDA 취재진이 이들에게 “미자(미성년자)라도 구입 가능하냐”, “익명 보장되는 거냐”라는 질문을 하자 “가능하다”, “별도의 인증 절차가 필요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원하는 전자담배 액상과 기기를 선택하고 계좌에 선입금하면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전했다. 심지어 판매 계정 운영자 중에는 “실제 전자담배 판매점을 운영하면서 부업으로 대리구매를 하고 있다”고 밝힌 이도 있었다.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는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여성가족부 장관이 고시하는 유해물건이며, 액상은 청소년 유해물질이다. 따라서 청소년에게 판매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암암리에 구매가 횡행하고 있다. 또한 합성 니코틴 액상의 경우에는 성인 인증이 된 온라인 계정이 있다면 구매 시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구매가 가능하다. 취재진이 성인 인증된 계정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와 합성 니코틴 액상을 구매한 결과, 구매 과정에서 별도의 신분 확인 과정 없이 수일 만에 택배를 통해 기기와 액상을 받을 수 있었다. 현행법상 담배는 우편 판매 및 전자거래의 방법으로 판매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합성 니코틴의 경우 현행법상 담배가 아닌 일반 화학물질로 분류돼 온라인 판매가 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청소년이더라도 온라인으로 성인 인증만 하면 얼마든지 액상과 기기를 구매할 수 있다. 앞선 전자담배 대리구매 계정 중에는 계정 소개란에 “신분증 위조도 가능하다”고 밝힌 계정 운영자도 있었다. 이런 규제 구멍으로 인해 청소년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제18차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남학생 4.5%, 여학생 2.2%로 2021년(남 3.7%, 여 1.9%)보다 증가했다. 또한 담배 구매 용이성의 경우 2021년에 74.8%, 2022년에 68.9%를 기록했다. 전문가 “전자담배도 담배, 실효성 있는 규제를” 현재 정책당국 의뢰로 건강증진개발원이 주기적으로 대리구매를 포함한 담배 온라인 광고를 모니터링하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하고 있지만 규제 사각지대로 한계점이 노출된 상황이다. 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포함한 광고·판매 사이트가 청소년에게 전자담배를 파는지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만약 의심 사이트가 적발될 시 방송통신심의위에 삭제 조치를 협조 요청한다”고 전했다. 다만 “법령 해석 문제가 있는데 청소년이 구매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남아 있어야 한다. 법령상 모호한 부분이 있어 상황에 따라 법적 처벌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전자담배도 담배로 법령 규정을 통해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 부분을 논의 중인 상황이며 해결되면 적극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 지금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부분이 있어서 한정적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액상형 전자담배 불법 구매 등은 마약 불법 구매 등의 노출로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실효성 있는 규제를 요구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전자담배가 금연 보조수단으로도 사용되는 만큼 원천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막는 것은 반대가 심할 것 같다”면서도 “다만 미성년자에 대한 규제 허들이 낮아서는 안 된다. 니코틴 자체는 중독성이 강한 물질이기 때문에 청소년이 이에 중독되는 것은 소비자 건강에도 저해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리구매와 같은 불법 구매는 이후에 마약 등의 불법 구매 패턴과 흡사하기 떄문에 깊은 연관성이 있다”며 “담배 자체가 중독 여부를 주변에서 알기 어렵기 때문에 더 적극적인 규제가 요구된다. 따라서 당국은 청소년이 중독에 노출되지 않게 모니터링에 머물지 않고 더 실효성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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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호

솜방망이 처벌에 전청조 '전과 10범' ..."사기죄 형량 강화" 한목소리

사기범죄자 중 5범 이상 24%...1년 이내 동종 범죄 재범 34% 양형기준 1억 미만 6개월~1년 6개월...최고 13년 처벌 강화와 신속한 피해 회복 필요 | 박우진 기자 krawjp@newspim.com 전펜싱 국가대표 남현희(42) 씨의 재혼 상대로 알려졌던 전청조(27) 씨가 사기 등으로 전과 10범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기죄에 대한 형량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기범죄가 증가하고 재범이 많은 원인으로 범죄 자체의 특성도 있지만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경찰에 따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된 전청조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이가 최소 20명, 피해액은 26억원 이상이다. 일반인들은 이번 ‘전청조 사기’가 허술한 점이 많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전청조가 지난 수년간 사기죄를 저지른 데 비해 처벌이 너무 가벼워 향후 또 어떤 사기를 저지를지 모른다며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재범을 막기 위해 사기범죄 형량 제고와 함께 피해자 회복에도 관계기관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기범죄 발생건수 해마다 증가...5범 이상도 다수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사기범죄 발생 건수는 32만5848건으로 전년(29만4075건)보다 10.8% 증가했다. 최근 5년간 발생 건수를 보면 2018년 27만29건에서 2020년 34만7675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사기범죄자 중에는 5범 이상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사기죄로 검거된 범죄자 16만9528명 중에서 범죄 전과를 알 수 없는 범죄자가 7만1800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이어 5범 이상이 4만750명으로 전체의 24%를 차지했다. 통계청 ‘재범자 재범 종류 및 기간’ 통계를 보면 지난해 사기범죄자 중 전과가 있던 사람은 7만2550명이고, 동종 재범자는 3만3063명으로 45%를 차지했다. 이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른 기간을 보면 1년 이내가 1만1224건(34%)으로 가장 많았다. 사기범죄가 증가하고 재범이 많은 원인으로 범죄 자체의 특성도 있지만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 6월까지 사기범죄 피해액은 121조원에 이른 반면 회수된 금액은 약 6조5000억원으로 전체의 5.3%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기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지금보다 형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현재 일반 사기의 경우 높은 형량을 선고받는 사례가 많지 않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사기 피해 금액에 따라 1억원 미만은 기본 6개월에서 1년 6개월, 1억~5억원 미만은 1~4년이다. 사기 피해액이 300억원 이상이면 기본 6~10년이 적용된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피해액이 50억원 이상이면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이 가능하지만 피해액이 상대적으로 적으면 낮은 형량을 받는 게 현실이다. 사기·절도범죄 직업화 특성...“엄한 처벌 내려져야”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기, 절도범죄는 직업화되는 특성이 있는데 엄한 처벌 대신 너그러운 판결이 내려지면서 범죄를 키우는 결과를 낳고 있다”면서 “범죄자들도 처벌이 약하다 보니 ‘교도소에 잠시 쉬러 간다’고 생각하게 되고, 출소 후에 고도화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처벌을 강화하고 실제 법 집행을 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형량 강화뿐 아니라 사기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게 관계기관과 협력을 강화하고 피해 회복 절차를 간소화해 신속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며 “금감원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신속하게 계좌추적이 이뤄지고 범죄사실이 입증될 경우 피해 보상이 되도록 하면 피해도 줄이고 범죄도 근절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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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호

대북전단금지법 위헌 결정...한류 열풍 北 MZ세대 흔드나

한류 콘텐츠 담은 USB 대북 살포 가능해져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사형 등 가혹 처벌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건 남조선식” 단속 |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newspim.com 북한을 겨냥한 전단 살포 행위를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 조항이 위헌 결정을 받으면서 대북 정보 유입에 탄력이 붙게 됐다.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는 전단뿐 아니라 한류 드라마와 가요 등을 담은 USB 등이 대형 풍선을 타고 북한에 본격 상륙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26일 남북관계발전법 24조 1항 3호 등에 대해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이 헌재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건 2년 9개월 만의 일이다. 대북 인권기구와 탈북민 단체 등은 반색하고 있다. 문제의 조항은 북한을 향한 전단 살포 등이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행위로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헌재의 재판관 7명은 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유남석·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북한의 특성상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표현의 내용은 상당히 포괄적”이라면서 “심판 대상 조항에 의해 제한되는 표현 내용이 광범위하고 그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된다”고 밝혔다. 이 법을 만든 주요한 근거 중 하나가 된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 보장에 대해서도 재판관들은 “전단 살포를 일률적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경찰관이 경우에 따라 경고·제지하거나 사전 신고 및 금지 통고 제도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다른 수단이 있는데도 표현의 자유를 일괄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게 판결의 취지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만들어 한류 차단 안간힘 북한은 문재인 정부를 압박해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도록 하고, 자체적으로는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 한류 드라마와 영화·가요 등을 주민들이 접하거나 즐기는 행위를 가혹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위헌 결정으로 북한 주민들을 외부 정보로부터 고립시키고 김정은 독재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두 개의 축 가운데 하나가 무너진 것이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오는 12월 시행 3년을 맞지만 북한은 이를 관영매체를 통해 거론하거나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은밀하게 내부적으로 단속의 고삐를 죄고 있다는 의미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한국의 영화·가요 등 문화 콘텐츠가 북한의 사상과 체제를 좀먹는 ‘반동적’ 이란 인식하에 이를 철저히 배격하고, 유입·배포한 사람은 물론 듣거나 본 주민도 처벌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한류 문화를 접하다 적발된 경우에도 매우 가혹한 형벌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반인권적이란 비판이 잇따르지만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법 제27조는 “남조선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 노래, 그림, 사진 같은 것을 보았거나 들었거나 보관 시 5년부터 15년까지의 노동교화형(우리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호기심에 한류를 접한 경우에도 최소 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규정 때문에 법 시행 초기부터 외부 문화에 민감한 어린 학생이나 젊은 층이 대거 체포돼 혹독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대북 전문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본보기 식으로 형벌을 가함으로써 한류에 접하는 걸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다. 한류 문화 콘텐츠를 북한 내부에 반입하거나 복제 등의 방식으로 유포한 경우에는 더욱 엄한 처벌이 이뤄진다. “남조선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를 유입, 유포한 경우 무기노동교화형(무기징역)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집단적으로 남조선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를 시청, 열람하도록 조직하였거나 조장한 경우에는 사형”으로 명시하고 있다. 한류뿐 아니라 포르노물이나 미신과 관련한 사안도 강력한 처벌 대상에 올라 있다. “성(性) 녹화물 또는 미신을 설교한 도서와 사진, 그림을 보았거나 보관한 자는 최소 5년에서 최고 15년까지의 노동교화형”에 처하고 마찬가지로 “제작 및 유입·유포한 경우에는 무기 노동교화형이나 사형”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한 대목이 이를 잘 드러낸다. 국제사회의 비판이 제기되는데도 북한은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2021년 9월부터는 ‘청년교양보장법’ 등을 제정해 젊은 세대들의 사상 교육 책임을 노동당과 교육기관에 돌리고 있다. 북한판 MZ세대(20~30대 청년)들을 이른바 ‘황색바람’으로 불리는 외부 사조에 오염되지 않고 수령과 노동당에 충실한 인간형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류 드라마·영화 접한 뒤 “속았다” 깨달아 이처럼 북한이 한류 문화의 유입 차단에 혈안이 된 건 이를 그대로 뒀다가는 체제의 안위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들이 한류 드라마와 가요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발전상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눈을 뜬다면 체제 이반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게 북한 당국의 판단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의 경우 남한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북한 당국이 자신들을 속였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체제 이탈의 단초를 한류 문화가 제공했다는 것이다. 한류 차단을 위한 다급함은 북한 관영 선전매체에서도 드러난다. 노동신문은 지난해 9월 30일 자 보도에서 “우리 식이 아닌 말투와 외래어가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우리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기 위해 적대 세력들은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침식시키고 사람들을 정신 도덕적으로 부패 타락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젊은 층 사이에 이성 친구를 ‘남친’이나 ‘여친’으로, 남편을 ‘오빠’로 부르는 등 ‘남조선 식 어투·호칭’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판 MZ세대에 대한 사상교양의 중요성과 대책 필요성을 가장 절감하는 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 할 수 있다. 1984년 출생한 그는 2011년 12월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급병으로 사망하면서 권력을 넘겨받았다. 27살의 나이에 최고 권력자가 된 그는 젊은 청년지도자로서 이전 집권자와 달리 개혁·개방에 나서고 민생을 챙기는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어릴 적 스위스에서 유학한 경험이 서방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줬을 것이란 측면에서였다. 그렇지만 핵 실험과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고,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한 권력 핵심 간부들을 숙청·처형함으로써 북한 체제 내부와 국제사회에 실망감을 안겨줬다. 질풍노도와 같이 갈팡질팡하는 정책 행보를 보였고, 경제 문제의 해결 등에 별 성과를 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 자신이 MZ세대에 해당하는 김정은으로서는 북한이 처한 현실 속에서 청년세대들이 어떤 생각과 인식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걱정을 꽤나 심각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핵·미사일에 집중한 정책 노선은 전례 없이 강도가 높고 촘촘한 대북 제재를 자초했다. 제재 해제 등을 겨냥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국제사회의 스폿라이트를 잠시 받았을 뿐 실속 있는 진전이나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이후 김정은은 대남 대립각을 세우고 미사일 도발에 올인했다. 지난해 9월에는 핵무력 법령화를 통해 핵 선제 사용을 위한 일종의 독트린을 마련했고, 올 들어서는 헌법에 핵 고도화를 명문화하고 전술핵 무기체계의 운용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도 김정은은 한류 유입 차단에 상당히 신경 쓰는 모양새를 보인다. 외부 사조의 차단뿐 아니라 북한 TV 콘텐츠를 젊은 층의 눈높이에 맞추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김정은 찬양 콘텐츠에 싫증난 북한 신세대 북한 TV의 프로그램이나 편성이 변화하고 있지만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게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무엇보다 볼 만한 콘텐츠가 없고, 여전히 김일성 체제와 김정은에 대한 충성 유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기 때문에 인기가 시들하다는 얘기다. 영화에 광적인 관심을 가졌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의 경우 음악이나 악단 정치에 치중해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러다 보니 이른바 ‘장마당 세대’(식량과 생필품, 문화콘텐츠 등을 노동당의 공급이 아니라 시장에서 자체로 구매해 소비하는 계층)로 분류되는 젊은 층의 경우 남한 드라마와 영화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초강력 단속에도 불구하고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한류 문화에 대한 북한 주민, 특히 청년세대들의 관심을 줄어들게 하거나 뿌리 뽑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청년세대의 가슴속에는 이미 한국과 서방세계의 문화와 문물이 깊이 파고들어 자리 잡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당장의 배고픔이나 제재의 고통을 참고 사회주의를 지키자거나 혁명과업을 완수하자는 구호를 외치라고 강조하는 건 무리수일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북한은 형법 개정을 통해 “퇴폐적이고 색정적인 음악이나 춤·사진·녹화물(비디오테이프)·CD를 반입·유포하거나 이를 반복적으로 듣고 본 사람은 2년 이하의 노동단련형에 처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가요와 드라마·영화 등 한류 문화 콘텐츠가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파고들었다는 판단에서다. 우리 관계당국이나 탈북민의 전언에 따르면 북한에 한류 문화는 물론 음란 비디오·CD 등이 급속히 유입되고 있고 유통망이 점차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중국과의 국경 도시인 평북 신의주나 함북 무산·회령 등이 주요 반입 루트라고 한다. 중국 조선족과 북한 주민이 결탁한 밀반입 조직이 가동된다는 말도 있고, 북한 군부의 간부나 그 가족이 외화벌이를 위해 이들의 뒤를 봐주다가 당국의 단속에 걸려 정치범 수용소까지 끌려간 경우도 있다는 얘기가 북한 관련 전문 매체를 통해 심심치 않게 들린다. 1980~90년대에는 외부로부터의 가요·영화나 음란 비디오·서적의 유입이 주로 재일교포나 외국을 드나드는 상사원·외교관 등 특권층에 몰려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밀수 조직을 통해 일반 주민은 물론 청소년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예 북한 내부에 대량복제 시설을 갖춘 조직이 당국의 비호 아래 사업을 벌여 큰돈을 챙기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핵 보유국’ 운운하지만 주민 40% 만성적 굶주림 단속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에는 비디오테이프 등이 부피가 크고 쉽게 눈에 띄는 형태였기 때문에 적발하기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한류 드라마 등을 보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면 ‘정전 후 덮치기 식 단속’을 주로 썼다고 한다. 비디오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밖에서 두꺼비집을 내려 정전을 하는 방식이다. 비디오의 특성상 테이프를 보던 중 정전이 되면 꺼낼 수 없게 돼 꼼짝없이 현장을 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이제는 USB나 마이크로SD 같은 작은 저장매체가 등장했고, 시청에 소형 노트북과 같은 형태의 값싼 중국제 노트텔까지 이용하기 때문에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집권 이후 핵과 미사일 도발에 집착해온 김정은은 민생을 챙기겠다는 스스로의 대주민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핵 보유국 운운하지만 주민의 40%인 1100만명 정도가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국제기구의 공통된 지적이다. 잇단 도발로 대북 제재를 자초하다 보니 경제는 만신창이가 됐고 국제사회에서도 고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화로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무기 판매와 정찰위성 발사 기술 도입 등을 추진 중이지만 그럴수록 체제 위기와 제재·압박은 강화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런 국면에서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이 한국의 발전상과 풍요로운 삶, 문화에 매료되면서 균열은 불가피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3대 세습을 통해 물려받은 독재체제를 갈라파고스와 다름없는 고립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지속하려 시도하지만 외부 세계를 향해 일렁이는 주민들의 가슴속 불덩이를 다스리기는 더 이상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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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호

최첨단 미사일 방어망 ‘아이언 돔’ 무력화…北 위협 ‘맞춤형 대응’ 시급해졌다

하마스, 수천발 미사일 기습 발사 이스라엘 최첨단 방공망 속수무책 북한 장사정포 MDL 인근 전진배치 | 김종원 국방안보전문기자 kjw8619@newspim.com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과 핵·미사일 위협에 한국은 과연 안전한가. 중동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의 2023년 10월 7일(현지시간) 새벽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보면서 한국 국민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무엇보다 하마스의 공격 행태가 상상을 초월했다. 21세기 최첨단 무기들이 하늘과 땅, 바다에서 전쟁을 하는 현대전과는 양상이 너무나 달랐다. 수천 발의 로켓을 한꺼번에 쏟아부으면서 행글라이더를 탄 정예 특공대가 진입했다. 전자 시멘트벽에 폭발물을 설치해 장벽을 뚫은 다음 오토바이를 타고 빠르게 이동한 뒤 불도저가 간격을 넓히고 사륜구동 차량이 차례로 진입했다. ‘한국형 아이언 돔’ LAMD 2026년까지 개발 먼저 도착한 특공대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남부 본부를 공격하고 통신을 방해했다. 수백 명의 인질을 납치해 가자지구로 빠져나갔다. 최첨단 무기체계와 미사일 방어망인 ‘아이언 돔(Iron Dome)’으로 무장한 이스라엘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나고 자국민이 인질로 잡혀가는 수모를 겪는 참담한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와 북한의 정예화된 군은 비교조차 안 된다. 당장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군사분계선(MDL) 인근 북측 지역에는 시간당 1만6000여 발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1000여 문의 각종 포가 배치돼 있다. 이 가운데 사거리 54㎞의 170㎜ 자주포 6개 대대 200여 문과 사거리 60㎞의 240㎜ 방사포 10여 개 대대 140여 문 등 340여 문의 장사정포가 서울과 수도권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북한은 개전 초 시간당 1만6000여 발의 장사정포를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퍼부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군은 ‘한국형 아이언 돔’으로 불리는 장사정포 요격체계(LAMD)를 2026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LAMD를 수십기 배치해 170㎜ 자주포와 240㎜ 방사포 등 북한 장사정포를 요격한다. 이에 한국군은 KTSSM(한국형 전술지대지 미사일)과 K-9 자주포 등으로 북한 장사정포 갱도 진지를 무력화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300㎞ 이상 원거리에서 장사정포 진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KTSSM-Ⅱ를 2027년 11월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군은 고도화·현실화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3축 체계인 △킬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의 조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국군의 방공망은 15∼40㎞ 고도의 하층부 미사일은 ‘한국형 패트리엇’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M-SAM-Ⅱ) ‘천궁-2’와 패트리엇 미사일(PAC-3)로 요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M-SAM Block-II보다 요격 성능과 교전 능력을 향상시킨 개량형 블록-Ⅲ도 오는 2034년까지 개발한다. 천궁은 한꺼번에 40개의 미사일을 동시 요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적의 40~70㎞ 탄도미사일은 ‘한국형 사드’로 불리는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L-SAM)가 잡는다. 북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KAMD의 핵심 무기다. 한국군은 2022년 11월 L-SAM 첫 요격시험에 성공했다. 40∼150㎞ 고도의 상층부 미사일은 경북 성주기지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로 요격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여기에 더해 40∼70㎞ 고도 구간에 L-SAM을 실전 배치하면 다층 방어망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4년 말까지 L-SAM 체계개발을 마치고 2027∼2028년께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북한 미사일을 고도 50∼60㎞에서 요격하는 미사일 방어체계인 L-SAM-II 개량형도 오는 2035년까지 일정으로 개발하고 있다. L-SAM-II는 기존 L-SAM 유도탄 대비 요격 고도가 상향된 고고도 요격 유도탄과 공력 비행 미사일을 장거리에서 요격할 수 있는 활공단계 요격 유도탄이다. 모든 요격 시스템 ‘포화공격’ 감당 힘들어 이스라엘은 현재 아이언 돔 미사일 방어 시스템으로 10개 포대를 배치해 운용하고 있다. 요격 거리는 40∼70㎞, 요격 고도는 10㎞이다. 1개 포대는 3~4개 발사대를 갖고 있다. 1개 발사대에서는 최대 20발의 요격미사일 쏠 수 있다. 이론상으로 한꺼번에 600~800개 요격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아이언 돔의 요격률이 90%로 알려져 있어 가장 높게 잡는다면 500~700개의 적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무기체계 권위자인 권용수(해사 34기) 전 국방대 교수는 “이스라엘이 운용 중인 전체 아이언 돔의 모든 시스템이 동시에 정상 작동한다고 가정할 때 이론상 최대 가능 발수는 800발”이라면서 “동시에 1000발 이상의 포화공격을 받게 된다면 효과적으로 요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아이언 돔의 군사적 효용성은 하마스의 미사일 공격을 얼마만큼 제대로 요격했느냐가 관건이다. 한꺼번에 3000~5000발의 미사일이 동시에 날아온다면 사실상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권 전 교수는 “아이언 돔을 포함해 모든 요격 시스템은 시스템 성능 때문에 제한된 요격 능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면서 “아무리 잘 만들어진 시스템이라도 포화공격에 대해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간 여객기를 이용한 9.11 테러와 골판지 드론이 활약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하마스는 패러글라이더와 대량 로켓 공세로 스마트 국경 시스템과 아이언 돔을 무력화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전략전술 개발을 등한시한 채 최첨단 무기체계만 맹신하는 게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반면교사”라고 지적했다. 비행 전 단계 다층방어 ‘전구광역방어’ 절실 한국군의 최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기습적으로 대량 장사정포 공격을 해오면 사실상 막을 방안이 많지 않다”면서 “일단 1차 공격을 받은 후에 2차 대량응징보복(KMPR)에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고 고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스커드나 노동미사일과 같은 재래식 탄도미사일 공격은 현 한미 자산으로도 충분히 탐지·추적·요격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북한의 최근 핵·미사일 고도화와 섞어쏘기 형태의 공격 현실화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에 심각한 도전이라고 지적한다. 현재와 같은 종말단계 다층방어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비행 전 단계에서 다층방어가 가능한 전구광역방어(theater wide defense)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북한의 심각한 핵·미사일 위협은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와 외교, 경제 등이 포함된 포괄적 안보 차원에서 전문가 지식을 기반으로 대응 방법과 수단을 찾고자 하는 시스템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특히 적의 위협 양상이 바뀌면 아무리 좋은 무기체계라도 막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번 하마스 공격처럼 수천 발을 쏘는 것에 맞춰 아이언 돔을 개발한 것이 아니다. 북한은 계속 싸우는 방법을 바꿔가면서 무기체계와 위협요인들을 고도화해 나가고 있다. 아무리 최첨단 무기체계로 무장하고 있어도 적이 싸우는 방법 자체를 바꾸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은 전술핵공격잠수함을 진수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잠수함을 태평양까지 끌고 나가서 미국을 향해 전술핵무기를 쏘는 것이 아니라 연안 근처에서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가 한국과 주일미군을 겨냥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이번 하마스 공격처럼 북한이 어떤 공격과 위협 양상을 강구하고 있느냐에 따라 한국군도 맞춤형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한국군이 최첨단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도입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북한의 공격과 위협 양상을 사전에 미리 파악하고 연구하면서 어떻게 싸울지를 강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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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호

흉기난동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요 피의자들 하나같이 젊고 ‘히키코모리’ 특성 있어 과거 논문서도 ‘사회적 고립’ 주요 공통점으로 꼽아 | 조민교 기자 mkyo@newspim.com | 송현도 기자 dosong@newspim.com 대도심의 연쇄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은 눈·코·입을 검은 마스크로 가리거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걸음걸이가 빠른 젊은 남자만 봐도 두려움에 떨며 도망간다. 일반적이지 않은 범행 동기와 지목되지 않은 피해자의 특징으로 인해 누구나, 언제든지, 어느 장소에서라도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이상동기 범죄, 즉 ‘묻지마 범죄’를 막기 위한 단기 대책이 쏟아졌다. 경찰은 도심 곳곳에 장갑차를 배치하거나 중무장한 경찰특공대를 동원했다. 호루라기와 호신용 스프레이가 불티나게 팔렸고, ‘묻지마 범죄 피하는 법’ 등 대비책을 설명한 영상이 게재됐다. 그러나 유사한 범죄가 계속해서 발생해 일상에 공포를 안기고 있다. 피의자들, 젊은 은둔형 외톨이 지난 7월 신림역 인근에서 흉기 난동이 발생했다. 피의자는 33세 남성 조선으로, 신림동 일대 골목을 뛰어다니며 일면식도 없는 타인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이후 조선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현장 인근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체포됐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분당 서현역에서 유사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피의자는 22세 남성 최원종이었다. 또다시 일면식도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범죄가 행해졌으며,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인근 공공장소에서 일어났다. 이후 서울 신림동 등산로에서 대낮에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인한 사건이 벌어졌다. 피의자는 30세 남성 최윤종으로, 양손에 금속 너클을 끼우고 피해자가 의식을 잃을 때까지 폭행했다. 이후 피해자의 목을 조른 것으로도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수사당국은 주요 피의자들의 신상을 모두 공개했다. 그 결과 이번 흉기 난동 피의자들은 대부분 젊고, ‘은둔형 외톨이’ 기질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은둔형 외톨이는 집 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보통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핵가족화, 인터넷 보급 등 사회 구조와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최근 급증 양상을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9∼34세 청년 가운데 6개월 이상 사회로부터 고립된 청년은 53만8000명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9년 집계된 33만4000명에 비해 불과 2년 만에 20만4000명이 증가한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우울증, 성격장애, 강박증, 공격적 폭력성 등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사회 부적응, 가정 붕괴, 부모의 폭행, 왕따, 인터넷게임 중독 등의 상황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빈번히 발견된다. 전문가들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김상운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기 어려워서 문제가 생기는 거 같다”며 “대인관계가 원만하면 통제가 가능한데 우리가 다루는 범인들은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상균 백석대 교수(전 한국범죄심리학회장) 또한 “원인이 어찌 됐든 범행 당시 현실적 요소를 고려하면 대인관계나 사회적 관계 등이 대단히 미흡했던, 사회 부적응자란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사회적 고립’ 주요 공통점 과거 관련 논문에서도 ‘사회적 고립’을 묻지마 범죄 피의자들의 공통점으로 꼽았다. 또 이들에게는 ‘사회적 고립’과 연결된 6가지의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우선 2013년 ‘묻지마 범죄에 대한 심리적 이해’ 논문과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발간된 ‘동기 없는 범죄 수용자 재범 방지를 위한 치료적 개입 및 제도화 방안 연구’ 등을 참고하면, 묻지마 범죄의 발생 원인에는 사회적 원인과 개인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존재했다. 사회적 원인으로는 빈부격차의 심화와 고용 불안정, 실직 등이 있었다. 특히 경제적 양극화가 두드러질 경우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고,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대한 비관이 사회 전반에 대한 막연한 분노로 나타나 묻지마 범죄라는 극도의 폭력적인 양상으로 표출됐다. 실제 묻지마 범죄 사건의 피의자 조선과 면식도 없는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의 경우 “세상이 뜻대로 안 된다”(조선), “아버지의 재혼으로 배신감을 느꼈다”(정유정) 등 사회에 대한 불만이 범행의 동기였다고 진술했다. 개인적 원인으로는 사회적 고립과 자아존중감의 위협, 스트레스로 인한 판단력과 도덕성의 상실, 인지적 합리화나 외부 귀인 등이 있었다. 이로 인해 이들에게는 △인지적 왜곡 △분노 표출 및 감정 조절의 결여 △대처 기술의 결여 △관계의 결여 △사회에 대한 반감 △정신 이상과의 관계 등 공통점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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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호

해외선 '묻지마 범죄' 연구 큰 성과

해외 연구 ‘정신 질환’에 집중...우리나라와 비슷한 유형 많아 ‘사회적 고립’이 ‘정신 질환’으로 이어지는 특성 | 조민교 기자 mkyo@newspim.com | 송현도 기자 dosong@newspim.com 해외에서는 일찍이 묻지마 범죄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다른 나라들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양상의 묻지마 범죄가 자주 일어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2008년 6월 8일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25세 남성이 트럭을 몰고 돌진해 세 사람을 치어 죽이고 트럭에서 내려 흉기로 7명을 살해하는가 하면, 24살 남성이 행인 8명을 살상하는 묻지마 살인 범죄가 연이어 발생했다. 또 18살 소년이 남자를 선로로 떠밀어 살해하는 등 살해 대상이 ‘누구라도 좋았다’며 불특정 대상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일명 도리마(지나가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범죄가 일어났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총기 소지가 가능해 대량 총기 난사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미 의회 연구소(2013년) 자료에 따르면 1983년 이래 미국에서 발생한 대량 총기 난사 사건은 총 78건으로, 이로 인한 사망자는 547명에 달한다. 해외 연구자료에서는 대부분의 묻지마 범죄 피의자들이 ‘정신장애적인 면모’를 가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난 2014년 ‘도리마 살인사건의 범행 패턴 유형과 범인상의 추정’ 논문에 따르면 일본은 1974년부터 2013년까지 ‘요미우리신문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57건의 사건을 분석하고 이를 정신장애형, 강도형, 복수형 3가지로 분류했다. 이 가운데 가계 빚, 전과가 있는 복수형이나 강도형과 달리 ‘정신장애형’의 범인은 20대나 50대, 무직으로 정신장애를 갖고 있으며 범행에 계획성을 보이지 않은 채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화나 원한을 계기로 사건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의 묻지마 범죄자 유형과 가장 비슷하다. 미국의 경우 광란 총기 난사 사건 중 10개 사건을 분석하고 피의자를 트라우마 타입, 정신증 타입, 정신병질 타입으로 나눴다. ‘트라우마 타입’은 불우한 가정에서 신체적·성적 학대를 경험했거나 범죄 전력 또는 약물중독 문제가 있는 부모가 많았으며, ‘정신증 타입’은 정신분열 증상 혹은 성격 장애를 갖고 있었다. ‘정신병질 타입’은 자기애적 성향이 강하고 공감 능력과 도덕관념이 떨어지는 특성을 보였다. 전문가들 또한 피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정신 질환’이 있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김상운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들에 대한 공통점으로 정신병질이 있는 거 같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 많다”며 “조현병의 경우 상담만 잘 받으면 범죄까지 이어지지 않는데 이를 관리하거나 케어할 사람이 없어 중단되면 결국 타인에 대한 위협과 망상 등이 겹쳐 공격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 또한 “(공통적으로) 정신질환 병력이 있다. 학창 시절에 치료를 받은 병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걸 방치하면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상균 백석대 교수(전 한국범죄심리학회장)는 “사회적 관계 문제 등도 있어 정신질환의 병력을 가진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서현역 사건 같은 경우에는 망상형에 좀 가까운 건데 망상형 중에서 ‘누군가 나를 죽이려 한다’ 같은 피해망상 가진 사람이 사실은 범죄 우려가 많은 것은 맞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다만 “상호작용이 어려운 사람이 혼자 외톨이로 지내다 보니 사회 부적응과 사회 불안과 겹쳐 이번과 같은 폭발성 범죄로 이어지지 않았겠느냐”며 “조현병, 망상조현병 정신질환의 병력이 직접 범죄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고립과 불행한 유년 시절 등이 100%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정신질환자들에게서만 이런 범죄가 일어난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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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호

전문가들 "사회적 차원 예방체계 마련 시급"

‘사회적 고립’ ‘정신 취약문제’ 현행 제도 걸음마 수준 전문가들, 한목소리로 “사회적 지원제도 강화해야” | 조민교 기자 mkyo@newspim.com | 송현도 기자 dosong@newspim.com 한국과 해외 연구를 종합해 보면 ‘묻지마 범죄’ 피의자들은 대부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성인이 되어 사회적 고립을 겪고, 심한 경우 정신병적 질환을 경험했다. 이들의 억눌린 감정이 제때 발견되거나 치료받지 못해 묻지마 범죄 등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성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피의자들에게 다수의 공통점이 발견되는 만큼 이를 해소할 사회적 차원의 예방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 와 있나 흉기 난동 사태 이후 사회적 고립과 정신 취약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됐지만 현행 제도는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코로나 이후에 사회적 고립자들이 많아지면서 현실과 매체 속 폭력 상황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 취약계층 비율이 높아졌다”며 “특히 정신질환자의 경우에는 사회적 고립을 겪으면서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범사회적 차원에서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심화한 사회적 고립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정부·지자체 역시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이다. 대통령실 직속 국민통합위원회(통합위)는 지난 9월 6일 고립·은둔 인구 규모와 원인, 지속 기간 등을 파악하는 주기적 전 국민 실태조사 도입을 제안했다. 서울시 역시 지난 4월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을 통해 1000여 명의 신청자를 받아 그중 500여 명에게 직무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의 경우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어 제도적 허점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대구시는 지난해 10월 청년 사회적 고립 지원 제도 관련 조례를 통과시켰지만 정작 지역 내 고립 청년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한 점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시민단체 우리복지시민연합은 논평을 통해 “조례 제정 후 대구시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조례에 포함된 기본계획·실태조사·지원시설 설치 등에 대한 회신 내용이 텅 비어 있었다”며 “조례 통과 후 3년 후에 관련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비판했다. 중증 정신질환자 입원에 대한 현행 대응 체계 역시 한계점이 지적되는 상황이다. 현행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하에 보호의무자의 동의나 시·군·구청장 신청에 따라 위해를 끼칠 위험성이 큰 정신질환 환자를 의료기관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게 정해 놓았다. 하지만 이를 판단하는 기준을 가족 등 보호자나 의료계 일선에 떠넘긴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등은 서현역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지난 8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법관이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게 하는 ‘사법입원제’ 추진을 검토 중이다. “사회적 지원 강화해야 ‘묻지마 범죄’ 예방 가능” 김상운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행 순찰 활동 등의 대응체계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며 “치료와 상담을 통한 정신취약군에 대한 관리가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말했다. 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정신취약계층의 매체 통제에 대해 언급하며 “이미 심리학계에서는 분노조절 훈련을 지원 방안 중 하나로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AR, VR 등 첨단 기술을 통해 관련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며, 정부 차원에서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도 같은 취지의 대책이 요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히키코모리 관리를 위해 당사자에 대한 개인 치료, 집단 치료, 주간 보호(주간 시간 동안의 관리), 교육기관에 의한 지원, 취업 지원, 약물치료, 방문 지원, 전화상담, 인터넷상담 등 구체적 지원을 하고 있다. 보고서는 “해외에서는 지역 전문기관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실제로 대응이 어려운 사례를 검토해 지원 계획을 세우는 등 사례관리회의를 필수적으로 개최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정신보건 시설 및 취업지원 시설, 복지기관, 교육기관 등을 적극 활용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필요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역사회 내의 사회복지적 서비스 및 교육을 통한 구제가 체계적으로 이뤄진다면 묻지마 범죄의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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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호

김정은 격노 발언에 얼어붙은 평양 “장성택 충격파 또 덮칠 수도”

경제 안 풀리자 총리 희생양 삼아 질책 태풍에 터진 제방 찾아 “틀려먹은 것들” 충성형 관료 조용원·최선희는 승승장구 |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newspim.com 북한 김정은의 불쾌지수가 다시 급상승 중이다. 식량난을 포함한 경제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자 노동당과 내각 간부들을 질책하며 강도 높은 경고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핵 운용 독트린(doctrine) 성격의 ‘핵무력 법령화’를 운운하면서 핵과 미사일 도발에 주력해온 김정은이 갈수록 꼬여가는 경제 문제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최근 들어 분출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노동당 총비서를 겸한 김 국무위원장은 경제 문제를 내각에 맡기는 듯한 모습을 취해 왔다. 50대 후반 나이의 전문관료인 김덕훈을 3년 전 총리에 앉히면서 상당한 권한을 주었고 노동당과 군부의 입김에서 벗어난 경제 정책 추진을 주문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정은의 질책에서 첫 번째 타깃이 된 건 김덕훈 내각 총리다. 6호 태풍 카눈의 피해 현장을 돌아보기 위해 8월 중순 동해안 지역인 강원도 안변군을 찾은 김 위원장은 군 헬기와 병력을 동원해 무너진 제방을 보수하고 논에 공군 항공 전력을 투입해 농약을 뿌리도록 하는 등 재해 복구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며칠 후인 같은 달 21일 서해 쪽에서 간석지 둑이 터져 바닷물에 농경지가 침수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폭발했다. 현장을 찾은 김정은은 허리춤까지 물이 들어찬 논에 들어가 관계자들을 질타하며 불만을 쏟아냈고, 그 발언이나 사진·영상은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조선중앙TV를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평양에서 멀지 않은 해안도시인 남포 인근 안석간석지 제방 붕괴 현장에서 김정은은 “정말 틀려먹은 것들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분노를 터뜨린 김정은의 발언 내용과 검열 및 처벌 지시가 알려지면서 북한 노동당과 내각의 간부들이 떨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번 피해는 결코 자연재해 현상으로 인한 악재가 아니라 철두철미 건달꾼들의 무책임성과 무규율에 의한 인재(人災)”라면서 “당 중앙의 호소에 호흡을 맞출 줄 모르는 정치적 미숙아들, 경종을 경종으로 받아들일 줄 모르는 지적 저능아들, 인민의 생명·재산 안전을 외면하는 관료배들, 당과 혁명 앞에 지닌 책무에 불성실한 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와 규율조사부, 국가검열위원회와 중앙검찰소가 책임 있는 기관과 당사자들을 색출하여 당적, 법적으로 단단히 문책하고 엄격히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 김정은의 질타는 전례 없이 강도가 높고 간부들의 무능과 부패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는 점에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김 위원장은 “며칠 전 안석간석지 논이 침수됐다는 보고를 받고 당 중앙위원회 비서들을 현지에 파견하여 직접 복구사업을 지휘하도록 했고 군대까지 동원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는데 어떻게 내각과 성(내각 부처), 중앙기관의 책임일꾼(고위 간부를 의미)들은 현장에 얼굴도 내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이어 “내각 총리는 관조적인 태도로 현장을 한두 번 돌아보고 가서는 부총리를 내보내는 것으로 그치고, 현장에 나온 부총리라는 사람은 연유(휘발유의 북한식 표현) 공급원 노릇이나 했다”고 비판했다. 주목되는 건 김덕훈 내각 총리에게 비판의 초점이 맞춰진 대목이다. 김정은은 “지금 내각에 사업체계가 올바로 세워져 있지 않으며 실속 없는 일꾼들이 등용되어 유명무실하게 틀고 앉아 산하단위들에 대한 지도도 제바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몇 년 어간에 김덕훈 내각의 행정경제 규율이 점점 더 극심하게 문란해졌고, 그 결과 건달뱅이들이 무책임한 일본새(업무 스타일)로 국가경제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나라의 경제 사령부를 이끄는 총리답지 않고 인민 생활을 책임진 안주인답지 못한 사고와 행동에 유감을 금할 수 없다”며 “총리의 무책임한 사업 태도와 사상 관점을 당적으로 똑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언급으로 볼 때 김정은의 김덕훈에 대한 신임은 사실상 사라진 상태로, 대대적인 검열을 거친 뒤 본보기식 숙청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김정은이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불만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2009년 11월 화폐개혁 실패의 문책 차원에서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이 처형된 전례를 거론하는 분석과 전망까지 나온다. 당시 후계자이던 김정은은 주민들의 장롱 속 달러를 끌어모아 경제를 살리려는 화폐개혁을 전격적으로 단행했지만 장마당에서 현금 동원력을 거머쥔 ‘돈주’들의 반발 등으로 여의치 않자 박남기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결국 박남기는 본보기식 처형을 당했다. 주민들의 불만이 김정은에게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박남기가 쓰인 것이다. 이번 제방 붕괴 사태를 계기로 김정은이 ‘당적, 법적 문책과 처벌’까지 지시한 데 따라 북한 내부에는 대대적인 검열과 책벌 등 숙청 피바람이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간석지건설국과 국가건설감독성 등에 대한 집중검열 사업이 시작됐다는 게 북한 매체들의 전언이지만 김덕훈 총리와 고위 간부들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덕훈은 2020년 총리에 오른 뒤 핵과 미사일에 집중하는 김정은을 대신해 북한의 민생경제를 챙기는 역할을 해왔다. 김정은이 상당한 재량권을 준 듯 김덕훈은 단독으로 간부들을 수행하고 공장·기업소와 농장 등을 시찰하는 모습을 보였고, 노동신문 1면 등에 사진과 함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마치 최고지도자가 현장을 방문하는 것과 유사한 장면까지 연출되고 있다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도 나왔다. 고위 탈북인사는 “태풍 카눈으로 서해뿐 아니라 강원도 안변 등지의 제방 붕괴 사태가 벌어지고, 김정은이 현장에 나와 피해 복구를 촉구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김덕훈에게 불똥이 튀었다”고 말했다. 총리에게 경제 권한을 전적으로 넘겨주는 듯해 보이지만 결국 최고지도자의 민생 실패 부담을 떠맡는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특히 노동신문 등 관영 선전매체를 통해 김정은의 격노를 자자구구 전하는 것도 결국 최고지도자의 책임이 아닌 노동당과 내각의 간부들이 문제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이 당과 내각 간부들을 혼쭐내는 모습을 보면서 주민들은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는 김덕훈 총리뿐 아니라 북한 노동당과 내각 내부에 대대적인 숙청과 기강확립 바람이 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당 중앙의 호소에 호흡을 맞출 줄 모르는 정치적 미숙아들, 지적 저능아들, 책무에 불성실한 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면서 “책임 있는 기관과 당사자들을 색출해 당적, 법적으로 단단히 문책하고 엄격히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장성택 처형 때의 악몽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 사망으로 27살 나이에 권력을 거머쥔 김정은은 노간부들을 부담스러워했다. 심지어 후견 세력으로 김정일이 내세운 노동당과 군부 간부까지 숙청했다. 급기야 고모부인 장성택을 반역죄로 몰아 처형하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았다. 여기에 이복형 김정남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살하면서 북한 내부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노동당과 군부의 고위인사들이 “이복형과 고모부까지 처단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이라며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김정은이 격노하는 모습을 보인 직후 정찰위성 발사 실패라는 악재까지 터지면서 평양 권력층의 분위기는 더 얼어붙고 있다. 북한은 8월 24일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우주개발국은 24일 새벽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 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하여 제2차 발사를 단행했다”면서 “로켓 1계단과 2계단은 모두 정상 비행하였으나 3계단 비행 중 비상폭발 체계에 오류가 발생하여 실패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실패는 지난 5월 말 1차 위성발사 추락에 이은 것으로 김정은 리더십에 적지 않은 손상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점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김정은이 간부들에 대한 질책과 책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갈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덕훈 총리가 경제난과 재난 대책 부실로 큰 곤경에 처한 것과 대조되는 북한 권력 내 모습도 드러난다. 최고권력자 김정은과 여동생 김여정이 보는 앞에서 온몸을 던져 일하는 모습을 과시하면서 자리 보전을 하고 있는 고위 간부들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첫 주인공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조직담당 비서인 조용원이다. 최측근 실세 중 한 명인 그는 김정은의 강원도 안변군 오계·월랑 농장 방문에 수행했다. 김정은과 일행은 태풍 피해를 입은 논둑길에서 벼이삭을 만지작거리며 농사 작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농작물 생육후반기 비배관리를 과학기술적으로 진행하며 올해 농사를 안전하게 결속하기 위하는 데 모든 힘을 총집중해야 한다”고 말한 뒤 농약 살포를 위해 공군 헬기까지 동원하도록 지시했다. 수행한 김덕훈 총리와 당 비서 김재룡 등이 김정은의 말을 열심히 메모하던 순간, 조용원은 신발을 벗어던지더니 갑자기 논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부총리 겸 농업위원장인 주철규와 함께 벼 생육 실태 등을 꼼꼼히 살폈고, 김정은에게 이를 보고했다.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TV에는 진흙으로 범벅이 된 조용원의 발과 젖어버린 양복바지가 드러났지만, 이에 아랑곳 않는다는 듯 그는 맨발 차림으로 논둑길을 걸어 김정은을 수행했다. 모든 장면은 메신저 백을 멘 채 캐주얼 차림으로 동행한 노동당 부부장 김여정도 목격했다. 대북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역시 처세의 달인 조용원다운 행동”이란 평가가 나왔다. 당 간부로서 60세가 넘도록 한 번의 부침도 없이 승승장구해 온 조용원의 진면모를 보여준 장면이란 얘기다. 김정은 집권 이후 본격 부상한 조용원은 이름처럼 ‘조용한 남자’로 알려져 왔다. 군부대 방문이나 공장·협동농장 방문 등 김정은의 이른바 현지 지도에 빼놓지 않고 단골 수행했지만 공개된 사진에서 조용원을 찾기는 어려웠다. 카메라 앵글의 반대편에서 김정은과 핵심 간부를 지켜보며 옅은 미소만 짓고 있던 그의 모습은 서로 김정은에게 더 밀착하고 사진에 등장하려 아등바등하던 남들과 달랐다. 조용원은 2021년 1월 당 8차 대회에서 노동당의 핵심 중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면서 단박에 명실상부한 최고 실세에 올랐다. 정치국 후보위원이 정(正)위원을 거치지 않고 상무위원으로 수직 상승하는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인 데다 김정은을 위원장으로 한 5인방 그룹인 상무위 멤버가 됐기 때문이다. 천재들만 입학이 가능하다는 김일성대 물리학부를 졸업한 조용원은 1995년 강원도당 조직부의 지도원으로 배치됐다. 이후 평양의 중앙당 조직부 종합과 지도원으로 발탁돼 북한 권력의 핵심 기구 중 하나인 조직지도부에 발을 들여놓았다. 책임지도원과 부과장, 과장 직을 차례로 거친 조용원은 김정은 집권 이후 시찰 담당 부부장으로 발탁되면서 지근거리에서 최고지도자를 수행하는 중책을 맡으며 신임을 쌓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은이 최근 간부들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심하게 질타하고 있는데 조용원은 그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며 “맨발로 직접 논에 뛰어든 것도 자신이 최고지도자와 당의 의도를 제일 잘 받드는 인물임을 인증받으려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평양에서 잘나가는 인물 가운데 또 한 사람은 최선희 외무상이다. 최선희는 9월 6일 북한 최초의 전술핵잠수함 진수식(進水式)에서 주인공 격인 진수자(sponsor)를 맡아 권력 내 확고한 지위와 존재감을 과시했다. 진수자는 선박의 탄생을 알리는 진수 행사에서 탯줄을 자르듯 배와 도크를 연결한 밧줄을 도끼로 절단하는 인물로 대개 여성이 맡는다. 조선중앙통신은 같은 달 8일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첫 전술핵공격잠수함인 ‘김군옥영웅함’의 진수식이 열렸다고 전하면서 최선희가 깨진 샴페인 병을 들고 활짝 웃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과 리병철 북한군 원수, 김덕훈 총리, 김명식 해군사령관 등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장면이다. 이는 북한이 이번 잠수함 진수식에서 도끼로 밧줄을 자르는 액싱(axing) 의식과 함께 샴페인 브레이킹(champagne breaking) 행사를 치렀음을 보여준다. 진수하는 함선 머리 부분에 샴페인병이 부닥치게 해 깨뜨리는 의식으로 무사 운항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서구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이런 진수 의식에서 액싱은 주로 여왕이나 퍼스트레이디, 또는 선주의 부인 등이 맡는 게 관례다. 우리의 경우도 지난해 7월 울산에서 열린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8200t급)의 진수 때 김건희 여사가 진수도끼로 진수선을 자르고 윤석열 대통령과 와인병을 깨뜨리는 의식을 가진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북한의 진수식에서는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나서지 않았다. 김정은이 군부대 방문이나 열병식 등 공개 행사 때 데리고 다니는 딸 주애나 여동생 김여정도 후보군에 오를 수 있지만 나서지 않았다. 북한이 첫 전술핵잠수함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행사를 떠들썩하게 관영 선전매체를 통해 보도한 걸 보면 이른바 ‘백두혈통’이라며 내세우는 김주애나 김여정을 내세울 법도 하지만 최선희가 최종 낙점된 것이다. 이를 두고 최선희의 북한 권력 내 확고한 지위를 보여주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1964년 생으로 알려진 최선희는 북한 경제관료 출신의 최영림 총리의 딸로 입양됐으며 통역사로 첫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외무상을 맡아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전략을 총괄하는 등 핵심 측근으로 부상했다.이듬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관계자들이 숙청되고 책벌 받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최선희는 이와 무관하게 승승장구하고 있다. 퍼스트레이디 격인 리설주가 진수자 역할을 맡지 않은 걸 두고는 지나친 부각이 엘리트나 주민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측면을 고려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고위 탈북인사는 “와인을 깨는 진수 행사는 외교관 출신인 나도 낯선 장면”이라며 “아직 여성의 역할에 대해 봉건적이고 보수적인 인식이 팽배한 북한에서 리설주가 나서 행사의 주인공이 되는 장면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애의 경우도 아직은 아버지를 수행·보좌하며 ‘미래 세대의 대표자’라는 이미지를 연출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첫 전술핵잠수함 진수자로 나서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월 말 해군절을 맞아 김정은이 해군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동행하고 축하연회에도 참석했던 리설주와 김주애는 이번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김여정의 경우도 주변을 맴도는 장면이 카메라 앵글 구석에 담겼다. 북한의 절대권력 체제는 8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으로 인해 노동당과 내각·군부의 간부들은 절대복종이나 충성이 아니면 곧 죽음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고 체제에 저항하거나 모반을 꿈꾸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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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호

강구영 KAI 사장 취임 1년 인터뷰 “KAI, 세계 10대 항공우주기업 도약할 것”

“정부 지원 시너지로 4대 방산 강국 발돋움” “FA-50 판매 폴란드 교두보, 유럽 시장 공략” “확장성 4.5세대 ‘국산 KF-21 전투기’ 도전장” | 김종원 국방안보전문기자 kjw8619@newspim.com “정부 지원과 시너지를 내 세계 4대 방산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세계 항공우주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다.” 취임 1년을 맞은 강구영 KAI 사장(대표)은 지난 9월 폴란드 국제방산전시회 ‘2023 MSPO’에 참가해 가진 현지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초음속 국산 경공격기 FA-50에 이어 4.5세대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의 본격적인 유럽 시장 공략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강 사장은 “KF-21의 성능을 확장하고 있다”면서 “21세기에 만든 유일한 4.5세대 항공기로서 근본이 다르고 앞으로 나아갈 기종”이라고 말했다. 강 사장은 “KF-21은 5세대, 6세대 유무인 복합체계까지 갈 수 있다”면서 “확장성을 봤을 때 앞으로 30년, 50년, 60년 심지어 100년까지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 사장은 “KF-21이 나오는 2030년대 중반에는 경쟁 기종이 없다”면서 “6세대로 가기 때문에 4.5세대는 KF-21밖에 없어 국가에서 꿈을 갖고 세일즈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사장은 “한국도 KF-21 항공기 플랫폼을 가지면 독자적인 후속 군수지원 사업을 통해 장기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폴란드 의지+한국 기술력=성공 모델 승산 충분 Q. 폴란드 MSPO 방산전시회 참여 성과와 의미는. 폴란드 라돔 에어쇼를 통해 우리 성과를 확대해야 한다는 소명이 생겼다. 지금까지 계약 이행을 했지만 그를 기반으로 해 주변 인근국에 FA-50을 필두로 성과를 확대할 기회를 가진다. FA-50은 성공했기 때문에 KF-21로 수출 대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MSPO를 활용해서 우리의 새 제품을 폴란드뿐만 아니라 주변국에 인식시키는 성과를 만들겠다. FA-50 갖고 유럽 전역에 확장할 기회를 찾는다. KF-21을 새로운 제품으로 부각하는 의미가 있다. Q. 폴란드를 거점으로 한 유럽 시장 공략인가. 폴란드도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가 동유럽이나 유럽 전체적으로 확장할 때 허브로 활용할 수 있다. 폴란드도 욕심이 있다. 100년 전 항공기를 만든 나라다. 2차세계대전 이전에 항공기를 잘 만들었다고 한다. P-11과 P-37이 그것으로, P-37은 2차대전 때 알려진 전투기다. 그때의 자존심을 한국을 통해 다시 건설하겠다는 의지가 있다. Q. 폴란드 국영 방산업체 PGZ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우리가 플랫폼을 폴란드에 팔았지만 후속산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체계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번 PGZ와의 MOU를 통해 FA-50의 후속산업과 장비·군수 지원, 기타 관계되는 후속산업을 진척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Q. 폴란드 방산업체와의 협력 가능성은. 폴란드가 과거 항공산업의 자존심이 있다 보니 다행히 PGZ라는 국영 방산회사를 만들었다. 정비와 통신, 무장, 탄약 기술을 갖고 있다. 국가에서도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PGZ를 중심으로 방산 협력을 하면 정비와 후속 군수지원, 지상 장비 정도는 공동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겠다고 일차적으로 판단했다. 그게 잘되면 이차적으로 공동 연구개발 포함해서 제작과 생산, 공동 판매까지 확대될 수 있다. 폴란드 의지나 한국 기술력으로 보면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폴란드 정부가 의지 갖고 밀어주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 Q. 폴란드가 미그(MiG)-29를 FA-50PL로 대체하는데 두 기종을 비교한다면. 형상으로 보면 대형과 소형의 비교다. 세대로 보면 MiG-29는 3세대다. 한국도 T-50은 3세대로 볼 수 있는데 지금은 4세대로 봐야 한다. 세대 차이나 급수 차이를 보면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같이 날고 있다. MiG-29가 갖고 있는 기동성과 안전성, 소프트웨어 파워 측면을 보면 한국이 훨씬 낫다. FA-50은 자동제어 시스템이 잘돼 있어 기동성과 안전성이 MiG-29보다 뛰어나다. 공대지 무장을 보면 무기를 실을 수 있는 능력도 뛰어나다. MiG-29를 대체할 수 있냐고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갖는데 충분하다. 폴란드에서 타보고 판단했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FA-50의 특징은 3세대 비행기로 출발했지만 4세대, 4.5세대로 갈 수 있다.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암람(AMRAAM)을 통합하면 4.5세대로 봐야 한다. 성능 면에서는 소형 그룹에서 최강이며 라이트급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기종이다. 미들급으로 가는 것이다. 암람까지 통합하면 미들급에 하이급까지 갈 수 있다. 성능이 그만큼 우수하다. 최대 장점은 가성비다. 같은 급은 아니지만 4.5세대를 보면 유로파이터와 라팔, F-16V, 그리펜은 시간당 운용비가 2만~3만달러(2600만~4000만원)를 넘어간다. FA-50은 3분의 1 정도로 보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동률(availability)이다. 한국 기종을 따라올 항공기가 없다. 전 세계 전투기 중에서 최고 가성비다. 세계 최고급이다. 한국 공군에서는 지속적으로 85~90%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성능도 중요하지만 운용 측면에서 가성비와 가동률을 보면 최고 특징을 갖고 있다. 항공기, 정부 간 산업·기술·금융 지원·협력 필요 Q. 한국 공군에서 폴란드 조종사와 정비사 교육은 잘 되고 있나. 항공기를 납품하는 것 못지않게 실제 운용할 수 있는 인력 교육도 굉장히 중요하다. 폴란드 인원들이 한국 공군에 와서 조종사와 비행, 교육, 정비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수십 년간 러시아 항공기를 운용했지만 거기서 볼 수 없었던 정말 효율적인 측면과 고도의 기술력을 보고 배울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 조종사 양성과 항공기 운용, 정비 체계를 온전히 배우려는 교육열이 엄청 뜨겁다. 지금까지는 전반적으로 아주 순조롭게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조종사는 32명 중 4명이 교육을 마쳤고 4명이 교육 중이다. 정비사는 156명 중 75명은 1차로 교육이 끝났고 현재 2차로 교육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FA-50PL 기종이 2025년 말에 폴란드에 도입되는데 그때까지는 정비사들 교육이 완료돼야 한다. 조종사들은 조금 늦게 진행되는데 2026년까지 32명을 추가로 교육할 예정이다. Q. 한국산 항공기 수출 확대를 위한 향후 계획은. KAI가 잘 만들어야 한다. FA-50은 성능개량을 통해 4.5세대까지 확장해야 한다. KF-21도 마찬가지로 오는 2026년까지 성공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2028년 2차 성능개량을 하고 2032년까지 3차 성능개량을 해서 완벽한 성능을 갖춰야 한다.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KUH)도 마찬가지고 소형무장헬기(LAH)도 2024년부터 육군에 납품해 운용 노하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경쟁력 있는 항공기를 잘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출 부서도 열심히 해서 지역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일단 동남아시아는 구축이 돼 있어 성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유럽과 남미, 중동 등은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북미에서 미국과 오세아니아 등 신시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잘 만든 팔거리를 갖고 수출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도움도 많이 필요하다. 지금 기업만 판로를 개척하기에는 사업과 시장의 규모가 너무 크다. 항공기 플랫폼만 하기에는 산업과 기술 협력, 금융 지원이 필요해 정부 대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지금 정부에서 엄청나게 많이 밀어주고 있다. 정책·조직·예산적으로 많이 지원해 주고 있다. 잘 만들고 마케팅을 열심히 하고 정부에서 밀어주면 잘될 것이다. 꼭 성공시켜서 세계 4대 방산 강국으로 가도록 노력하겠다. KAI는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항공우주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00년 쓸 KF-21 전투기, 국가 꿈 갖고 세일즈 Q. 미국 훈련기 대규모 수주 사업 상황은. 지금 사활을 걸고 전방위로 뛰고 있다. 지금 상황은 정보요청서(RFI)와 제안요청서(RFP) 과정을 거쳐 계약하는 게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준비하는 데는 여유가 생겼다. 충분히 세밀히 준비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원팀 출발식을 했다. 국내에서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록히드 마틴과 협업하는 과정을 밟아야 하며 서로 공감하고 있다. 미국으로 가서 록히드 마틴과 한미가 원팀을 출발시키는 과정을 걷고 있다. 그게 진행되면 내년에 정부에서 공군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를 미국에 보낼 생각이다. 미국 내 분위기 활성화 차원이다. 2024년까지 어느 정도 분위기 조성을 해놓고 2025년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미 훈련기 사업 자체가 약간 지연될 것 같다. Q.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의 수출 전략은. 아직 최대치까지 검증을 안 해 봤지만 성능을 확장하고 있다. 속도와 G성능, 기동 성능도 확장하고 있다. 최대치까지 안 갔을 뿐이지 거의 성공한 거다. KF-21과 비교되는 항공기들은 20세기 기종이다. 지금 4.5세대 경쟁 기종들은 F-16V와 그리펜, 라팔 전투기로 35년 전 만든 항공기다. KF-21은 21세기에 만든 유일한 4.5세대 항공기다. 근본이 다르고 앞으로 나아갈 항공기다. 지금 경쟁 항공기들은 성능 확장을 할 수가 없다. 수명 주기가 4.5세대로 끝나야 한다. 하지만 KF-21은 5세대, 6세대, 유무인 복합체계까지 갈 수 있다. 확장성을 봤을 때 앞으로 30년, 50년, 60년 심지어 100년까지 쓸 수 있다. KF-21이 생산되는 2030년대 중반에는 경쟁 기종이 없을 것이다. 다 단종될 것이다. 모두 6세대로 가기 때문에 4.5세대는 KF-21밖에 없다. 5세대 외 항공기를 사고 싶은 나라들은 KF-21밖에 없다. KF-21이 팔릴 수밖에 없다. 국가의 꿈을 갖고 세일즈를 해야 한다. Q. 항공기 유지보수 수출 기대 효과는. 수명 주기 비용은 2세대까지는 플랫폼 판매로 끝난다. 정비가 간단하기 때문이다. 자국이나 해외에서 정비해도 비용이 많이 안 든다. 소프트웨어가 많아지는 3세대부터는 소프트웨어 파워가 하드웨어 파워보다 세진다. 3세대에서는 소프트·하드웨어 파워를 50 대 50으로 보면 된다. 4세대는 70%가 소프트웨어 파워다. 5세대로 가면 80~90%다. 앞으로 6세대로 가면 99%다. 항공기 세대가 올라갈수록 결국은 정비와 성능 개량이 중요해진다. 소프트웨어는 5년마다 바꿔야 한다. 정보화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술이 빨리 개발되기 때문에 계속 신속히 바꿔줘야 한다. 그런 비용이 많이 늘어날 것이다. 3세대는 수명 주기를 30년으로 보면 플랫폼 가격이 1000억원이며 수명 주기 동안 2.5배면 2500억원 정도 든다. 4세대는 플랫폼이 2000억원 들면 3~4배 정도다. 5세대 F-35 스텔스 전투기는 5~6배 정도이고 8배까지 본다. 플랫폼이 1000억원 정도면 8000억원의 운용유지 비용이 들어간다. 파는 것보다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기종이 바로 F-35다. 싸게 팔고 후속 사업에서 이익을 거두는 개념이다. 한국도 플랫폼을 가지면 이 수익을 가질 수 있게 된다. KF-21을 팔면 한국이 독자적인 후속 군수지원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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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호

"탈출해야 할 연옥" 간호사 25% 현장 떠났다

간호면허 소지자 2명 중 1명 탈임상...‘장롱면허’ 전락 “밥 한 끼도 못 먹어”...과도한 업무에 끼니 거르기 일쑤 | 송현도 기자 dosong@newspim.com “데이는 건강을 망치고, 이브닝은 인간관계를 망치고, 나이트는 인생을 망친다는 간호사 격언이 있어요. 지금 임상 현장은 탈출해야 할 연옥(煉獄) 같아요.”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만난 간호사 이모(25) 씨는 다크서클로 얼룩진 눈가를 비비며 간호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씨는 2년째 매일 3교대로 암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씨의 근무일지에는 3교대로 쪼개진 근무 일정(듀티 일정)과 환자 예후를 적어놓은 메모가 빼곡했다. 이 씨는 “오늘은 그나마 담당한 환자가 8명으로 적은 편이다. 평소에는 평균적으로 20명의 간호를 전담하고 있다”며 “업무가 끝난 이후에도 환자 케이스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간호 업무 외 일정 역시 챙겨야 해 수면 시간도 줄이면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조만간 간호사를 그만둘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절반이 임상 현장 이탈 월간ANDA 취재에 따르면 환자를 일선에서 치료하는 임상 현장에 배치된 간호사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하는 ‘탈(脫)임상’ 현상이 만연하다. 지난 3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진행한 ‘산별 총파업 요구 관련 현장 사례조사’에 따르면 전국 주요 31개 의료기관 가운데 5곳이 넘는 기관이 간호사 1년 사직률 25%를 넘겼다. 사직률이 35.6%에 이르는 기관도 있다. 탈임상 현상은 이미 고질적인 문제로 고착화됐다.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간호사 면허 소지자 48만1211명 중 임상 현장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25만4227명으로 52.8%에 그쳤다.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절반이 임상 현장을 이탈한 것이다. 의료계는 신규 간호사 인원을 증원해 부족한 간호인력을 충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의 평균 신규 간호사 면허자 증가율은 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2%보다 4배 이상 높지만 정작 면허소지자 중 임상 간호사는 OECD 가입국 평균인 68.2%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다. 국가시험에 합격한 간호사들이 즉시 임상 현장에 투입되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 의료계는 여타 선진국에 비해 간호사의 임상 근무를 유지하지 못하고 경험이 부족한 신규 간호사로 부족한 인력을 채우는 ‘하석상대’를 고집하고 있다. 업무 강도 비해 급여·복지 등 처우 열악 간호사들은 간호 직역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현장 업무와 열악한 임상 현장을 문제로 꼽으며 건강 이상 등을 호소하고 있다. 탈임상을 앞둔 170여 명의 간호사가 모인 비공개 채팅방을 통해 취재한 결과, 간호사들은 “밀린 업무 강도보다 월급과 복지 처우가 너무 적다”, “급박한 업무와 수직화된 서열 구조로 태움이 빈번해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오프(휴일)에도 일은 일대로 시키면서 그에 합당한 임금을 요구하자 모르쇠로 일관하더라”며 노동법과 복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장에 대한 비판을 늘어놨다. 특히 간호사들은 “밥도 못 먹고 일한다”며 식사도 못할 정도의 열악한 노동 강도를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전국 200개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보건의료노동자 4만80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1주일에 한 번 이상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응답자는 50.5%로 전체 응답자의 절반을 차지했다. 또 끼니를 거르는 날이 주 5회라는 응답이 2020년 조사 당시 5%가량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9.6%로 두 배가량 늘었다. 동일 조사에서 이동 시간과 휴게 시간을 포함해 평균 식사 시간이 30분 미만인 노동자가 64.8%로 과반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업무 시간에 치여 식사하지 못하는 현상이 더욱 심화하는 추세다. 일선 간호사들은 개개인의 업무 능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업무량과 턱없이 부족한 인원 배치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서울권 대학병원 외과계 병동 3년 차 간호사인 김모(25) 씨는 “부족한 간호인력 배치, 간호행위를 벗어나는 업무 범위로 경험 많은 5년 차, 10년 차 간호사들도 밥을 쫄쫄 굶어가면서 일하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김 씨는 “단순히 간호사 개개인의 업무능력 미달이 문제가 아니라 간호업계 구조 자체가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을 만큼 간호사를 착취하는 것 아니냐”며 “현장에 대한 미래가 보이지 않아 탈임상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탈임상을 준비하고 있는 9년 차 간호사 김모(32) 씨는 “간호사는 병원 입장에서 필수적인 소모품 취급을 받고 있다”며 “의사는 돈을 벌어다 주는 직무이지만 간호사는 많을수록 병원 운영비에 부담이 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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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호

현장이 '연옥' 된 까닭은? 업무 떠넘김·태움 여전

‘불법 의료 논란’ PA간호사...간호사 위치 여실히 보여줘 간호사 간 직장 내 괴롭힘 ‘태움’ 문제도 여전 | 송현도 기자 dosong@newspim.com 간호사들이 격무에 시달리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의료계가 지금껏 유지해온 ‘업무 떠넘김’이 꼽힌다. 취재진과 마주한 간호사들은 하나같이 직역 업무 독립을 강조했다. 간호 직역을 넘어선 업무가 당연시되는 환경은 간호사가 간호 업무만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총파업에 참여한 한 간호사는 “의사의 이름으로 대리 약 처방을 하거나 다른 직역의 의료인이 해야 할 검사·처방을 하는 행태는 임상 현장에서 만연하다”며 “저 역시 최근까지 간호사 업무를 벗어난 직무를 수행하는 일이 너무 당연하다고 알고 있었다. 이건 요즘 대두되는 PA간호사뿐만 아니라 일선 간호사들 대부분이 겪고 있는 아이러니”라고 전했다. 한국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 PA간호사 올해 상반기 간호법 제정 논란 중에 급부상한 ‘PA간호사’는 의료계에서 간호사의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PA란 본래 진료보조사(Physician Assistant)로 미국·일본 등 해외 의료체계에서는 법적으로 석사 학위 등을 거쳐서 병원에 투입되도록 제도화돼 있다. 하지만 한국 의료계에서는 의사 업무 일부를 비공식적으로 담당하는 간호사를 암묵적으로 PA간호사라고 부르고 있다. 간호계에서는 간호사의 불분명한 업무를 대표하는 직책으로, 의사 단체에서는 퇴출돼야 할 불법 의료 직책으로 규정돼 한국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PA간호사의 법적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이지만 정작 의료 일선에서는 이미 한 직책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법적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PA간호사의 의료행위는 자칫 의료사고 시 간호사를 불법 의료인으로 전락시킬 여지가 다분하다. 지난해 10월 병원에 사직계를 낸 임상 경험 14년 차의 박모(36) 씨는 PA간호사를 두고 ‘유령 같은 직책’이라며 “보통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 등 기피과를 중심으로 PA간호사가 배정되는데, 그 경우 병동 소속이나 간호 업무 소속이 아닌 뜬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이런 업무 떠넘김 관행을 인식하고 있지만 해결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모순된 제도가 의료 사각지대를 심화시킨다고 밝혔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이미 정부 시행하에 대학원 5학기를 수료한 전문간호사 인력이 양성되고 있는데 이수한 사람에 대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의료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거나 해당 인력을 합법화하는 양성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규 간호사 응급사직률도 계속 상승 추세 ‘태움’으로 대표되는 내부 괴롭힘도 여전히 탈임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낮은 연차 간호사들 사이에서 태움 문제는 여전한 숙제다. 태움이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폭언과 폭행 등을 동반해 괴롭히는 행위를 뜻한다. 신규 배치되는 간호사들 사이에서 업무 적응과 태움 스트레스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고 급하게 간호 현장을 이탈하는 ‘응급사직’ 현상도 두드러진다. 서울 강남의 종합병원 일반내과 1년 차 간호사 김모(24) 씨는 “업무 부적응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인력이 부족해 내가 조금만 잘못하면 티가 나고, 환자들 근처에서 큰소리로 꾸짖음을 당하다 보니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고 밥을 먹어도 바로 토하기도 했다”며 “조만간 응급사직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 씨와 같은 신규 간호사의 응급사직률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대한간호협회의 ‘병원간호사회, 병원 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 28.7%였던 신입 간호사 사직률은 2016년 35.3%, 2018년 42.7%, 2020년 47.4%에 이어 2021년 52.8%까지 올라갔다. 사직 이유로는 업무 부적응(32.6%)이 1위로 꼽혔다. 이미 간호계는 태움으로 인한 홍역을 한 차례 치른 지 오래다. 지난 2018년, 2019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극단적 사태가 수면 위로 오르면서 정부 차원에서 간호사들의 과도한 괴롭힘을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시행한 바 있다. 일부 간호사들은 외부적 제도 확충에 앞서 간호사 사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탈임상 후 일반 회사에 재직 중인 임상간호 경력 4년 차 심모(27) 씨는 “4년 차에도 태움이 계속되는 등 구조적 시스템에 한계를 느껴 탈임상을 결심했다”며 “신규 간호사 때 18명의 환자를 담당하는 등 중노동에 시달렸는데도 아무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노조 대의원에 선출돼서 인력 충원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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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호

해외 원정시험도 불사…임금 현실화 등 실질대책 필요

해외 취업 위한 ‘원정시험’도 증가...이유는 임금·노동환경 해외 유출로 국내 의료공백 우려...“빠른 대책 수립 필요” | 송현도 기자 dosong@newspim.com “간호사들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권리가 존중받지 못하는 탓이에요.” 간호사 백소연(31) 씨는 4년간 국내 대형병원에서 근무한 뒤 2020년 미국으로 이주해 미셸이라는 이름으로 조지아 주의 한 대형병원 항암주사센터에 근무 중이다. “확실히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실감한다”고 밝힌 백 씨는 “제 프리셉터(사수)는 30대 후반까지 트럭 정비사를 했는데 벌써 12년 차 간호사다. 그뿐만 아니라 쉽게 취업과 부서 이동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 커리어를 키우고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확실하다”며 자신 역시 전문간호사(NP)가 되기 위해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 씨가 꼽은 미국 임상의 또 다른 장점은 간호사의 업무 처우다. “병원 내에서 다른 직군과 수평적으로 소통하면서 상호 존중하는 등 간호사에 대한 직업적 대우와 사회적 인식이 좋다는 점 역시 이곳 생활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백 씨는 국내 임상 경험에 큰 불만은 없었다고 회고하면서도 “한국 임상은 화장실 제때 못 가고 밥 못 먹으며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태반이다. 아파도 눈치를 봐야 하고 혼자 12명의 환자를 보면서 뇌가 정말 12개로 쪼개지는 바쁨을 경험한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도저히 1인분의 일이 아니다’라고 느낄 만큼 업무량이 많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임상 환경에 대해서는 “캘리포니아의 경우 부서에 따라 환자 대 간호사의 비율을 법으로 정해 간호사의 업무 과다 방지책을 마련했으며, 또한 미국 간호계는 전반적으로 식콜(sick call) 제도에 따라 간호 충원 인력팀이 상시 배치돼 있다. 덕분에 일선 간호사들이 병동 눈치를 보지 않고 업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높은 임금, 원만한 임상 현장...해외 진출 인기 최근 국내 의료계를 탈임상한 간호사들이 해외 간호계로 진출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각종 간호사 전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국제 간호면허자격증 엔클렉스(NCLEX) 관련 스터디 모집글과 노하우 전수글이 가득하다. 해외로 진출한 간호사들에 의해 한국보다 높은 연봉과 업무 처우를 자랑하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해외에만 시험장이 열려 있는 탓에 자격증 취득 과정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수험생은 꾸준히 생긴다. 설립된 지 30여 년이 된 한 엔클렉스 전문 학원은 “수강을 원하는 신청은 계속 접수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간호사들은 시험을 치기 위해 휴가를 써서라도 ‘해외 원정’을 나가는 상황이다. 백 씨는 “해외에 나가서 시험 치른다는 것 자체가 비용적으로나 업무 여건상 부담이 정말 크다”며 “한 번에 못 붙으면 휴가를 다시 내고 비행기·호텔 다시 예약하고 공부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외 임상 환경에 미련이 없는 간호사들에게 해외 진출은 높은 임금과 상대적으로 원만한 임상 현장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조만간 엔클렉스 시험을 칠 예정이라고 밝힌 간호사 김모(26) 씨는 “국내 임상 현장은 간호사 처우 개선에 대한 미래가 없는 것 같아 탈임상 후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국내 시험장이 없어 가까운 일본의 오사카에 갈 생각으로 공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불합리한 간호 관행 타파, 혁신적 제도 개선을 전문가들은 국내 간호사의 해외 진출 현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 다년간의 교육을 통해 양성한 고급 보건인력의 유출은 의료 공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에서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학원 교수는 “우리가 돈을 들여서 키웠는데 왜 외국으로 가냐. 국가 자원을 통해 애써 키운 인재가 다른 곳으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선 간호업계 관계자 역시 “최근 들어 눈에 띌 정도로 빠져나가는 추세”라며 “간호사 한 명이 맡은 과도한 병상 수와 간호직역 외 업무 등이 국내 간호사들이 현재 임상에 회의를 느끼는 점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구태의 간호 관행을 타파하고 혁신적인 현장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출신인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숙련되고 유능한 인력이 외국으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 보건의료 현장에서 일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급선무”라며 “빠른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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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호

美·日 무기까지 대놓고 베끼는 北...‘짝퉁공화국’ 그늘 더욱 짙어진다

김정은이 러 국방장관 안내한 무기전시장 미 ‘글로벌 호크’ 카피한 무인정찰기 등장 일본 자위대 본뜬 전술차량까지 운용 중 |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newspim.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7월 26일 방북 중인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일행을 이끌고 ‘무장장비전시회-2023’ 행사장을 찾았다. 북한이 ‘전승절’로 선전하는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최신 무기체계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전시장이다. 국방장관급 인사의 방문에 김정은이 직접 나선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눈길을 끈 건 그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극초음속미사일 ‘화성-18나’ 등을 설명하면서 마치 방산 마케터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모습이었다. 그런데 북한 선전매체들이 공개한 영상자료를 살피던 한미 정보 당국의 대북 파트 관계자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김정은이 쇼이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전시장 뒤편으로 대형 무인기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동체 한가운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공군’이란 글씨가 또렷했다. 외관은 미군이 운용 중인 RQ-4 ‘글로벌 호크’ 전략 무인정찰기와 흡사했다. 북한은 미군의 MQ-9 ‘리퍼’ 무인공격기를 그대로 베낀 듯한 무인기도 선보였다. 미군의 무인정찰기와 공격기를 본떴다는 건 북한이 이들의 이름을 ‘샛별-4’와 ‘샛별-9’로 각각 명명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모델 숫자까지 동일하게 붙였다는 건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카피하겠다는 의도를 엿보게 한다”고 말했다. 美 정찰기·공격기 모델 숫자까지 그대로 베껴 글로벌 호크를 닮은 북한판 무인정찰기는 이튿날 밤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정전협정 체결 70주년 기념 열병식 행사에도 등장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같은 달 28일 행사 장면을 편집해 내보내면서 4대의 정찰기가 운반 트럭에 실려 행사장을 지나는 모습을 부각시켰다. 김정은이 쇼이구 장관에게 무인기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자 통역이 이를 쇼이구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TV 화면에 비춰졌다. 북한은 또 미리 촬영한 무인정찰기의 평양 상공 비행 모습도 함께 편집해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김정은이 그만큼 무인정찰기의 첫 공개에 공을 들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특히 러시아 축하사절로 온 쇼이구 일행에게 북한이 새로 개발한 무기체계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쟁 상황임에도 현직 국방장관이 평양을 찾았다는 건 그만큼 화급한 북·러 간의 현안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친선관계를 강조하면서 쇼이구 일행을 환대하는 데 엄청난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7.27 행사장에서 김정은이 등장한 이후 가장 먼저 이뤄진 순서가 바로 쇼이구 일행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러시아어 장내 통역방송까지 제공해 가면서 쇼이구 장관을 맞았다. 전통적으로 러시아보다 더 혈맹으로 강조되고 우선시되던 중국은 뒤로 밀린 분위기였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쇼이구와 맞은편에 자리한 리훙중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우리의 국회 부의장 격)은 쇼이구가 먼저 소개되자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쇼이구 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양측 국방장관 회담을 진행하는 등 군사협력을 다지기 위한 부산한 행보를 보였다. 조선중앙통신은 7월 26일 평양에서 진행된 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호상 관심사로 되는 지역 및 국제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완전한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양측이 러시아 무기 지원에 대해 긴밀하게 논의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대 32시간 체공 가능한 美 정찰기 성능과는 큰 차이 물론 북한이 개발한 짝퉁 글로벌 호크와 관련해 군사전문가들은 미 정찰기의 성능이나 제원과는 큰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글로벌 호크의 경우 최대 32시간 공중에 떠서 정찰활동을 벌일 수 있으며 최대 항속거리는 2만2000km에 달한다. 감시정찰 능력을 판가름하는 전자광학(EO) 카메라 및 영상 레이더(SAR)의 성능도 차이가 클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미군의 경우 위성을 활용해 이를 운용할 수 있지만 북한은 아직 여기에 이르지 못한다. 다만 북한이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의 군사기술을 해킹 등을 통해 절취해 무기체계를 빠르게 모방하고 있고, 특정 분야의 기술 개발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있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고도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해도 근접 지역의 정찰이나 무인 공격에 이를 활용할 경우 우리 군의 대응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군 관계자는 “한·미가 운용 중인 글로벌 호크와 유사한 모양의 북한 정찰기나 공격기가 전쟁 상황이나 교전 시에 등장할 경우 혼선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판 글로벌 호크는 서방의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38노스는 8월 4일자 분석 글에서 “미사일 개발 등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북한이 이런 무인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은 놀라운 게 아니다”라며 “다만 이들 무인기의 외형이 미군의 첨단 무인기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성능이 어떤 수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샛별-4형이 SAR은 물론 정찰 관련 센서에 요구되는 고고도 플랫폼 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북한 지역에서 수백㎞ 떨어진 해상이나 한국 영내까지 관찰해 수집된 정보를 지상에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사실 북한이 탄도미사일 등 무기체계나 군사 관련 장비를 해외로부터 카피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 육상자위대가 운용하고 있는 전술차량을 그대로 본뜨다시피 해 ICBM 시험발사장 등에 이동발사대(TEL)를 호위하는 임무를 부여해 투입하고 있다. 지난 7월 27일 밤 김일성광장 열병식에도 이 차량은 등장했고, 군부 최고 핵심인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사열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이나 일본의 무기체계를 노골적으로 본뜨는 북한의 모습은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주민들에게 반미 사상을 세뇌하고 일본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미·일의 것을 따라 한다는 건 체면을 구기는 일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북한 군부와 군수공업 분야는 더욱 그렇다. 日 자위대 카피한 전술차량 타고 열병 행사 하지만 북한은 이런 상식을 벗어나는 행보를 보인다. 누구보다 김정은이 그 선봉에 서 있는 형국이다. 북한 매체들에도 이런 모습은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6월 23일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김정은이 미국과 일본이 만든 캐릭터 디자인에 호감을 가지며 적극 도입할 것을 지시한 에피소드가 올라오기도 했다. 이 글은 김정은의 평양 양말공장 방문 사실을 전하며 “제품견본실에 진열된 발목에 깜찍한 고양이가 그려진 ‘키티’ 양말을 보며 곱다고 말씀하시면서 ‘뿌’ 양말도 있는가라고 말씀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뿌’는 곰돌이 푸를 의미한다. 헬로키티는 일본의 캐릭터 업체 산리오가 1974년에 출시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오리지널 캐릭터로 일본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또 1977년 만들어진 장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곰돌이 푸(원제는 Winnie the Pooh)는 연작 시리즈로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디즈니 사의 대표적인 캐릭터다. 북한이 미·일의 상품 캐릭터까지 김정은이 관심을 갖고 챙긴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은 이례적이다. 대북 제재와 미·일과의 교역 제한 문제 등으로 인해 북한은 라이선스 계약 없이 양말이나 가방 등에 무단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만일 김정은이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 깊은 반감이 있다면 미국의 정찰기를 그대로 모방하고 이름까지 티 나게 붙이는 건 어려웠을 수 있다. 과거 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도요타 등 일본 수입차를 없앤다며 단속에 나선 일도 있다. 김정은이 일본 제품이나 관련 캐릭터 등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해 현장에 직접 일제 렉서스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최고급 모델인 LX570을 몰고 나타나고, 노동당 간부와 군 병사들을 만날 때도 이 차를 애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지난 3월 화성-17형 ICBM 시험발사를 참관할 때는 일본 니콘 사의 18X70 IF 계열 쌍안경을 들고 나왔다. 앞서 지난해 12월 소년단대회에 참가한 북한 어린이 5000명에게 김정은이 선물한 시계는 일본 세이코 사의 ‘ALBA’ 모델이었다. 북송 재일교포 출신 생모 영향으로 반일 감정 덜한 듯 이런 김정은의 성향은 생모 고용희로부터 영향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재일 조총련 출신 북송 교포인 고용희는 1960년 대 말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이주했고 만수대예술단에서 활동하다 김정일의 눈에 들어 28년간 함께 살았다. 당시 북송교포들은 ‘째포’라 불리며 멸시받았지만 수령의 후계자로 자리 잡아 가던 김정일의 간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사정은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의 경제 사정 등으로 미뤄볼 때 고용희는 자신의 소생인 김정철과 정은, 여정을 키우면서 ‘코끼리밥솥’이라 불린 일본제 전자제품은 물론 톰보우 학용품 등을 조총련을 통해 조달해 아이들 교육 등에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한 사회 곳곳에는 해외 유명 브랜드의 짝퉁이 넘쳐나는 모습을 보인다. 평양의 유명 백화점에도 버젓이 등장해 있고, 이 모습이 관영 TV를 통해 그대로 공개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19일 북한 대외선전매체인 ‘조선의 오늘’ 홈페이지에는 상품 전시회 소식이 실렸는데 명품이나 유명 브랜드 디자인을 카피한 제품이 대거 포착됐다. 한 진열대에는 샤넬 로고가 박힌 짝퉁 가방이 놓여 있고, 버버리 무늬를 도용한 가방과 디올 디자인을 갖다 쓴 향수병, 일본 스포츠 기업 아식스 디자인이 적용된 운동화 등도 포착됐다. 북한은 일찌감치 국제사회에서 ‘짝퉁’ 문제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경제난 속에 핵과 미사일 개발 자금이나 김정은 통치를 위한 달러벌이를 위해 가짜 담배는 물론 정밀 위조지폐인 슈퍼노트 제조로 악명을 떨쳤다. 미국 재무부가 북한을 타깃으로 집중적인 단속과 차단을 벌인 결과 지금은 돈줄이 막혔고, 해킹 등으로 무대를 바꾸고 있다. 북한은 이제 러시아와의 무기 마케팅으로 돈벌이에 나서려 하고 있다. 정상적인 무역거래나 국제금융망 편입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행한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 편들기를 하며 돌파구를 마련해 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다급하다 보니 푸틴의 반인도적 전쟁 행위나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인명 살상도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을 비아냥거리고 우롱하는 비상식적 언행까지 벌이고 있다. 그 전면에 선 인물이 김정은이다. 그는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모스크바로 귀환한 직후인 지난 8월 3일부터 5일까지 초대구경 방사포(다연장로켓, MLRS)를 비롯한 주요 무기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을 집중 시찰한 것으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전하고 있다. 통신은 김정은이 주요 군수공장을 방문해 노동당 군수공업 정책의 핵심목표 수행정형을 살폈다면서 “초대형 대구경 방사포탄 생산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공장이 최근에 이룩한 기술 및 생산공정 현대화 정형과 현행 생산실태를 구체적으로 요해했다”고 밝혔지만 여느 시찰 때와 느낌은 달랐다. 누가 봐도 러시아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을 위한 준비 차원에서 무기 생산라인을 독려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제사회로부터 각광받는 K-방산이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첨단 기술력과 높은 신인도를 바탕으로 러브콜을 받는 한국과 북한의 사정은 너무 달라 보인다. 주민들을 집단적인 굶주림으로 내몰며 3대 세습으로 점철된 북한 체제는 ‘짝퉁공화국’이란 오명을 쓸 수밖에 없는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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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호

북한 무인기 위협 심각...軍 실질 대책 서둘러야

“北, 스텔스 무인기 2024년 개발 가능성” 중대형+소형 ‘벌떼작전’ 군사적 효용성 “김정은, 무인기 핵탄두 장착 원할 것” | 김종원 국방안보전문기자 kjw8619@newspim.com 2014년 3월 경기도 파주시 한 야산에서 발견된 북한 소형 무인기는 청와대와 경복궁 일대, 서울시청, 주요 지하철역 등 서울 핵심 시설을 상공에서 근접 촬영했다. 무인기 경로가 파주~문산 축선 일대로 밝혀져 우리 군의 방공망이 무방비로 뚫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군사전문가들은 무인항공기가 만일 북한 군이나 당국이 운용하는 무인정찰기라면 남한에 대한 비대칭 전력으로서 우리에게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북한이 무인정찰기나 무인항공기에 소형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폭탄을 장착해 정확히 떨어뜨리고 싶은 곳을 타격했을 때는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북한 무인기가 유유히 대한민국 심장인 서울 한복판까지 내려와 청와대 상공을 비롯해 국가 주요 핵심시설을 찍자 우리 정부와 한미 정보 당국, 군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부랴부랴 북한 소형 무인기용 탐지 레이더를 전력화한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2014년 무인기 침투 때도 대책 마련 ‘난리법석’ 그로부터 8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우리 군이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4년 당시 박근혜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 그리고 2023년 현재 윤석열 정부까지 그동안 한 해 수십조의 국방예산을 쏟아부으면서 무더기로 내려온 무인기 한 대도 격추 못 시켰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내 무인기 전문가는 “북한이 빠르면 오는 2024년 ‘7.27 전승절’에 스텔스 무인기를 보란 듯이 들고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전문가는 “북한의 무인기 전력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면서 “당초 중대형 무인기를 오는 2025년까지 개발할 것으로 봤는데 그 시기가 2~3년이나 앞당겨졌다”고 분석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의 스텔스 무인기 위협이 1~2년 안에는 현실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 무인기 위협의 고도화·현실화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도 스텔스 무인기 개발 중 스텔스 무인기는 미국이 전력화해 운용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이 앞다퉈 개발 중이다. 한국도 스텔스 무인기를 야심차게 개발하고 있다. 북한 고위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12월 북한 소형 무인기 침투 당시 “북한이 무인기를 스텔스화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휴전선 일대에 촘촘히 무인기 요격 시스템을 배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랜드연구소 군사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2023년 2월 북한이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스텔스 무인기를 내놓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북한인들이 스텔스 무인기 기술을 구하려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이 무인기는 핵무기 운반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렇게 갖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러시아 침공으로 인한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실상 ‘드론 전쟁’, ‘무인기 전쟁’이 현실화한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 군이 말로만이 아닌 실질적인 대책과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미래전이 아닌 당장 현대전의 게임 체인저인 ‘무인기 전쟁’, ‘드론 전쟁’에서 한참 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북한은 올해 ‘7.27 전승절’을 계기로 고고도 무인정찰기 ‘샛별-4형’과 공격형 무인기 ‘샛별-9형’을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했다. 미국의 고고도 무인정찰기 ‘RQ-4 글로벌 호크’, 공격형 무인기 ‘MQ-9 리퍼’와 판박이였다. ‘북한판 글로벌 호크’ 샛별-4형은 한국 공군이 미국에서 4대를 도입해 운용 중인 RQ-4, ‘북한판 리퍼’ 샛별-9형은 MQ-9 리퍼와 기체 모양은 물론 무기체계에 붙이는 번호까지 동일하다. 무인기 전문가들은 “북한이 무인기에 붙이는 숫자까지 미국과 똑같이 단 것은 미국과 대적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북한 무인기 실체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북한의 무인기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평가,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국내 전문가는 “북한의 무인기 기술과 성능이 좋고 나쁘고를 따질 때가 아니다”면서 “글로벌 작전을 해야 하는 미국은 그 사이즈에 맞춰 최첨단 무인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비교 분석했다. 그는 “다만 북한은 남북 군사분계선(MDL)과 서울·경기도 인근을 중심으로 무인기를 띄워 작전과 임무를 하기 때문에 미국과 비교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진단했다. 北 ‘저비용 고효율’ 무인기 최대 1000대 추정 북한이 2022년 12월 소형 무인기를 서울 한복판인 용산 대통령실 인근과 수도권, MDL 인근에 다수 침투시키듯 ‘드론 벌떼작전’, ‘무인기 벌떼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전격 공개한 첨단 무인기부터 저비용 고효율의 소형 무인기까지 대규모 전력화를 통해 남한을 위협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 무인기 전력은 300∼400대에서 많게는 1000대까지 개발해 운용하는 것으로 우리 군은 추정하고 있다. 북한은 남측에 비해 공군 전력의 열세를 상쇄하기 위해 무인기 개발에 집중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방현’ 시리즈의 무인기를 개발해 생산했다. 방현 시리즈는 중국의 ‘D-4’를 개조한 것으로 ‘방현-Ⅰ’과 ‘방현-Ⅱ’가 있다. 정찰과 공격 임무를 함께 하는 다목적 무인기 ‘두루미’도 개발했다. 탑재된 장비와 무기들의 수준은 미국보다 질적으로 떨어지겠지만 군사적 효용성 측면에서는 ‘저비용 고효율’ 벌떼작전을 하는 북한의 전략이 위협적이라는 평가다. 글로벌 작전을 해야 하는 미국과 남한을 겨냥한 북한의 무인기 전략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미군이 자칫 북한의 무인기 전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을 찾은 윌리엄 져니 미국 태평양해병대사령관(중장)은 2023년 6월 해병대 발전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반도 안팎의 동맹 지원에서 미 해병대의 역할을 증진하기 위해 추가적인 무장과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고 밝혔다. 져니 사령관은 추가적인 무장과 전력을 설명하면서 ‘MQ-9A 무인기’를 언급했다. ‘하늘의 암살자’로 불리는 미군의 무인 공격기 MQ-9A 리퍼는 길이 11m, 날개 폭 20m, 무게 4.7t에 최대 속도 시속 480㎞, 항속 거리 5900㎞, 비행 시간 27~34시간에 이른다. 정보 수집과 정찰, 감시 외에 AGM-114 헬파이어 공대지 미사일 4발, GBU-12/38 유도폭탄 2발 등을 탑재해 공격 임무도 수행한다. 특히 적 수뇌부 암살 특수작전에 투입된다. 미군은 2022년 10월 주일미군 기지에 MQ-9을 정식 배치했다. 한국군은 현재 육군과 해병대가 60~80km를 정찰할 수 있는 사단급 무인기(UAV) ‘KUS-FT’를 전력화해 운용하고 있다. 폭 4.2m, 길이 3.4m로 10km 밖의 물체를 정밀하게 확인하고 표적을 자동 추적한다. 2대가 동시 비행하면서 24시간 연속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사단급 무인기 도입 수량을 줄이는 대신 ‘차기 사단급 무인정찰기’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 다음 단계로 군단급 군단-Ⅰ송골매(RQ-101)는 2000년 자체 개발해 2005년 전력화했다. 최대 6시간 동안 반경 80~110km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지상에 있는 조종사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를 보며 조종한다. 군단-Ⅱ 무인기는 시험평가가 마무리됐고 최종 의사결정만 남은 상태다. 군단-Ⅰ송골매 도태에 대비해 성능이 훨씬 뛰어난 차기 군단-Ⅱ 전력화를 서두르고 있다. @img4 軍 “드론작전사령부 창설, 바로 임무 수행 준비” ‘한국형 리퍼’ 국산 중고도 무인기(MUAV)는 이제 개발이 끝나 양산 준비를 하고 있다. 길이 13m, 폭 26m로 미 리퍼보다 강력한 1200마력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최대 24시간가량 체공할 수 있다. 리퍼처럼 대전차 미사일 등 무기도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게는 13km, 낮게는 6km 상공에서 100km 밖을 들여다보며 고해상도 영상을 획득할 수 있는 감시체계 성능도 지녔다. 유인 정찰기에 비해 크기가 작으면서도 24시간 떠 있을 수 있어 은밀성이 높다. 북한 관영 매체는 이번 ‘7.27 전승절’ 소식을 전하면서 “새로 개발·생산돼 우리 공군에 장비하게 되는 전략 무인정찰기와 다목적 공격형 무인기가 열병광장 상공을 선회하면서 시위 비행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매체는 무인기가 실제로 미사일을 장착해 발사하는 장면까지 공개했다. 사실상 전력화를 거쳐 실전 배치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과시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북한 무인기 대책과 관련해 “북한이 새로 공개한 무기체계에 대해 우리 군은 탐지·타격에 필요한 능력과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북한 무인기 위협에 대비한 드론작전사령부 창설 준비와 관련해 “전략적·작전적 수준의 탐지와 감시, 타격, 심리전, 전자전 등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창설 준비단이 현재 무기체계가 전력화되면 바로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경호 방위사업청 대변인은 “방사청은 북한의 다양한 무인기와 드론 위협에 대비해 실전적 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다”면서 “그 일환으로 헬기탑재형 휴대용 드론건 사업을 추진 중이며, 적기 전력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軍 무인기 획득 프로세스 개선해야” 그동안 국내외 전문가를 비롯해 정치권에서도 북한의 중대형 무인기 위협에 대한 우려를 수도 없이 전달했다. 우리 군의 무인기 획득 프로세스에 적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며 개선을 지적했다. 북한이 중대형 무인기인 고고도 무인정찰기와 무인공격기를 전격 공개함에 따라 북한의 무인기는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 군은 북한의 위협에 대해 ‘따라잡기’가 아닌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한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갖고 나오면 SLBM을 개발하고, 북한이 장사정포를 전방에 배치하면 장사정포 요격체계로 대응한다. 북한이 무인기를 침투시키면 무인기를 개발하고,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띄우면 군사정찰위성을 쏘아올린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인 전략자산을 한반도로 전개해 맞서고 있다. 사실상 ‘북한 따라잡기’, ‘북한 흉내내기’ 대응에 급급했다. 이젠 대한민국도 군사 전략과 무기체계 개발을 ‘추격형’이 아닌 ‘선도형’으로 전면 수정할 때가 됐다. 그래야 진정한 자주국방을 할 수 있다. 북한의 무인기 위협에 대해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경각심을 갖고 실질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현실화됐다고 부랴부랴 대책을 모색하는 행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드론전쟁 시대’에 무인기 개발과 생산, 전력화를 더 이상 늦출 수는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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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호

학생 줄어도 사교육 시장 '활황'…기승전 '대학입시'

10년간 5000만원 이상 금품 받은 교사 130명 ‘불안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된 수능 킬러문항 교육에 정치 개입, 오히려 혼란 불러와 | 김범주 기자 wideopen@newspim.com 사교육 공화국. 영어유치원부터 대학입시, 취업까지 연령대별로 다양한 학원을 경험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학생들은 학교 선생님의 가르침보다는 학원의 ‘족집게’ 강의에 더 귀를 귀울인다. 교육에 투입되는 ‘돈’의 규모는 어떠한가. 유·초·중등에 쓰이는 공교육 예산은 81조원이다. 반면 지난해 학부모가 사교육에 지출한 비용만 26조원이다. 이 같은 모순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정부가 ‘사교육’ 단속에 나섰지만 핵심은 교육을 통한 ‘신분사회의 재탄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따라서 대입제도·직업구조 개편 등 보다 근본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교육 현장의 실태를 살펴보고 공교육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 지난 6월 28일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 10여 명이 급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언급한 지 2주가 된 시점이었다. 연봉만 수백억원에 달하는 ‘일타강사’에 대한 세무조사도 이뤄졌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까지 점검을 예고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국세청 조사 후 ‘사교육 이권 카르텔’에 대한 실체도 드러나고 있다. 현직 교사가 사교육 업체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문제를 제작해 판매하는 행위가 드러났다. 대치동의 유명 학원들이 지난 10년간 5000만원 이상 금품을 제공한 고등학교 교사만 1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교육 업체와의 유착, 금품 수수 등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현직 교사들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국가공무원법상 ‘영리 업무의 금지’, ‘성실 의무’ 위반 혐의로 징계도 받을 수 있다. 입시학원은 왜 ‘문제 수집’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교사들은 처벌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이 같은 배경에는 상위권 여부를 가르는 이른바 ‘킬러 문항’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현 정부의 시각이다. 입시학원들이 킬러 문항을 불안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취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정치권에서 입시 등 대입제도 개편을 추진했을 때 사교육비가 오히려 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 정부가 내놓은 ‘교육 공정성 강화’ 방안이 대표적이다. 국가 차원에서 도출한 공론화 결과에도 2019년 10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수능 중심의 정시 선발 비중 확대를 지시하면서 오히려 학생들이 경쟁으로 내몰렸다는 지적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겨냥한 킬러 문항도 사교육 대책의 본질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제거하고 교육과정 내에서만 문항을 출제한다고 해서 사교육비가 줄진 않는다”며 “사교육 업체들은 새로운 문제 유형이라는 상품을 선물로 받았다”고 지적했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사교육은 ‘쑥쑥’ 교육계가 학령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해 11월에 치러질 2024학년도 수능 응시생은 역대 최저인 41만명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능이 처음 도입된 1994학년도(71만6326명)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물수능’ 논란으로 재수생은 역대 최대 비율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를 살펴보면 수능 응시생은 2000학년도 86만8366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꾸준한 감소세를 기록해 왔다. 2005학년도 처음으로 50만명대로 접어든 후 2010학년도 60만명대를 회복했지만, 2020학년도에 처음으로 40만명대로 주저앉은 후에는 꾸준히 비슷한 수준을 기록해 왔다. 수험생 수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지만 지난해 사교육비는 25조9538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사교육 참여율은 78.3%,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41만원으로 이 또한 역대급이다. 고교 1학년 월평균 사교육비가 가장 많은 70만6000원이었다. 소득이 높을수록, 성적이 좋을수록 사교육비 지출도 많았다. 월평균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 참여율은 88.1%로 300만원 미만 가구(57.2%)에 비해 크게 높았고, 상위 성적 10% 이내 학생의 월평균 학원비는 59만원으로 다른 분포에 비해 가장 높았다. 수험생을 둔 학부모의 지갑은 매달 얇아졌지만 사교육 업계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국세청 조사를 받은 사교육 업체 중 대표적으로 메가스터디, 시대인재의 성장세는 주목할 만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시대인재 법인인 하이컨시의 지난해 매출은 연결 기준 2748억원으로 전년 대비 45% 뛰었다. 영업이익은 270억원으로 전년 대비 73%올랐다. 지난 3월에는 초·중·고 상위권 학생 중심 수업을 하는 대형 종합학원 ‘다원교육’을 흡수하기도 했다. 지난해 메가스터디교육은 전년 대비 18.7% 성장한 836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35.7% 증가한 1344억원이었다. 이정열 교사노조연맹 정책위원은 “우리나라에서 교육의 성공이란 본인의 자녀가 다른 학생들보다 더 높은 성적을 받는 것을 말한다”며 “이 같은 구조에서는 서울의 최상위권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면 모두 실패로 간주되며, 대부분이 실패를 겪게 된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목표 자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현재와 같은 수준의 지나친 변별을 포기하지 않으면 모두의 성장을 추구하는 공교육은 제자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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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호

전직 삼성전자 엔지니어 집유에서 철창 신세 왜?

해외 경쟁업체 이직 위해 자료 촬영·유출 혐의 법원 “가볍게 처벌하면 기술 탈취 방치 결과” 법조계 “국외 유출은 막았어도 심각한 문제” | 이성화 기자 shl22@newspim.com | 배정원 기자 jeongwon1026@newspim.com 해외 경쟁업체인 인텔로 이직하기 위해 반도체 초미세 공정 관련 국가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삼성전자 엔지니어가 최근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삼성전자 측은 당시 기술 유출 정황을 재빠르게 포착해 기술 유출을 막았다. 해당 엔지니어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실형이 선고돼 법정구속됐다. 형량이 세진 것에 대해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기술 유출 범죄를 엄단하려는 움직임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서울고법 형사7부(이규홍 부장판사)는 지난 6월 14일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국외 누설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삼성전자 엔지니어 최모 씨에게 징역 1년6월과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최 씨는 1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 항소심이 실형을 선고하면서 철창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경쟁사 이직 위해 범행...모니터링 과정서 ‘들통’ 최 씨는 지난해 1월 16~17일 회사 내부 시스템을 통해 파운드리 반도체 공정기술 관련 자료 등 총 33개의 영업비밀 파일 링크를 자신의 사내 이메일로 전송한 다음 자택에서 재택근무용 원격접속시스템에 접속해 중요 내용을 촬영하는 방법으로 자료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최 씨의 범행은 퇴직예정자에 대한 삼성전자 정보보호부서 모니터링 과정에서 발각됐다. 최 씨의 개인 이메일 등에 대한 포렌식 결과 최 씨는 2021년 12월 31일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힌 뒤 장기 휴가 중이던 이듬해 1월 인텔에 지원해 불합격을 통보받았고, 기술 자료를 촬영한 다음 날 인텔의 다른 부서로 지원해 면접 일정이 잡힌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해 4월 삼성전자가 최 씨를 고소하면서 수사에 착수, 같은 해 10월 최 씨를 부정경쟁방지법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최 씨 측은 재판에서 해당 파일에 대한 열람 권한이 있었고 열람·촬영 행위와 인텔 지원 사이의 연관성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해당 자료들을 외국에서 사용할 목적이나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이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최 씨에게 징역 5년과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최 씨의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해당 기술자료들이 실제로 경쟁사나 국외로 유출되지 않아 현실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 기술자료 중 일부는 최 씨가 개발에 관여하고 작성한 점, 최 씨가 아무런 범죄경력이 없는 초범인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기준에 따르면 지식재산권 범죄 중 국외 영업비밀 침해 행위는 실제 피해가 경미한 경우,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회수된 경우를 감경 요소로 삼고 있다. 유출은 막았지만...“가볍게 처벌하면 기술 탈취 방치” 항소심은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은 것은 최 씨가 아닌 삼성전자 측이 신속하게 범행을 적발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특히 범죄 행위로 인한 기업과 국가 피해 가능성을 더욱 고려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직했다면 국가핵심기술 등 자료가 인텔 측에 누출됐을 여지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피해 회사가 범행을 신속히 적발해 조사했기 때문에 현실적인 피해가 방지됐을 뿐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취득·유출한 자료를 폐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피고인이 취득·유출한 반도체 관련 기술자료는 피해 회사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다년간 연구해 개발한 성과”라며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국가핵심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범죄를 가볍게 처벌한다면 기업들로서는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 기술개발에 매진할 동기가 없어지고, 해외 경쟁업체가 인재 영입을 빙자해 우리나라 기업이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온 기술력을 손쉽게 탈취하는 것을 방치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2019년 8월 산업기술보호법에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유출·침해 행위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된 점, 삼성전자 측이 최 씨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최 씨가 범행을 부인하는 점 등도 양형에 고려했다. 법조계는 최 씨에 대한 실형 선고 이유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기술유출 범죄를 엄단하려는 법원 안팎과 산업계 등의 움직임이 본격화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규웅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통상 기술유출 사건은 범행의 경위, 방법, 규모, 유출된 기술의 중요성, 범행으로 얻은 수익, 피해의 정도, 국외 또는 국외 유출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볍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실형이 선고된다”고 설명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최근 기술유출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재판부도 경각심을 줘야겠다는 입장일 수 있다”며 “이 사건은 경쟁사로 기술이 유출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회사 밖으로 기술을 가지고 나간 이상 유출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실제 피해가 발생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회사 핵심 부서에서 근무하며 중요 비밀을 취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피고인이 회사가 숨겨놓은 비밀을 빼갔다고 하면 죄질이 더 좋지 않다”며 “기술 개발과 전혀 상관없는 제3자가 훔치는 것보다 더 불리하게 작용해 2심에서 뒤집힌 것 같다”고 봤다. 실제 삼성전자는 임직원들로부터 매년 ‘영업비밀 보호 서약서’를 받고 정기 보안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보안서약서를 작성·제출해 사전 승인받은 임직원만 재택근무용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영업비밀 등 정보 자산을 임의로 복사·촬영·녹음·출력·전송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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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호

권력자 개입 최소화가 관건...오픈 프라이머리에 법제화 대안도

‘눈치’ 봐야 하는 중앙집권적 공천제가 문제 당내 민주주의 확립이 근본 해결 방법 | 지혜진 기자 heyjin@newspim.com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거대 양당의 공천 시스템에 이목이 쏠린다. 공천 시스템은 양당 후보가 되려는 예비후보자들이 경쟁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일종의 ‘게임의 룰’이다. 공천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결국 탈당 및 무소속 출마로 이어지는 등 결과에 대한 반발과 당내 분란을 일으켜 선거 패배의 단초가 된다. 국민의힘은 김기현 대표가 일각에서 제기되는 ‘검사 공천설’을 일축하며 시스템 공천을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띄운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공천 룰 변경을 시사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공천 파동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당 지도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전략공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 완전국민경선제 등 제도 개혁 방안과 함께 결국 입법으로 ‘사천’의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된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천과 관련해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에 닥친 공통의 문제가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거라는 추측이고, 민주당은 이 대표 등 지도부가 영향을 끼칠 거라는 우려”라고 지적했다. 각 당 권력자들의 막대한 공천 영향력이 당내 민주주의 저해를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박현석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치 양극화와 정당 민주주의: 국회의원 공천제도의 쟁점과 개혁방안(2023)’ 논문에서 “중앙집권적 공천제도 아래에서 의원들은 차기 총선의 공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소신과 차이가 있더라도 지도부의 입장을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중앙집권적 공천제도가 정당 지도부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원인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공천제도가 정치인의 행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현재와 같은 거대 양당 체제에서는 공천제도 개혁을 통해 당내 민주주의라도 활성화해야 정치 양극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당제 체제에서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 현안별로 이합집산이 가능하겠지만, 거대 양당 체제에서는 당내에 이견이 많고 주류와 비주류가 공존해야 정당 사이의 정치적 대립과 교착 상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 교수는 “의원들이 공천을 의식하니 대의기구로서 역할보다 당지도부나 대통령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 그걸 바꿔야 한다”며 “전략공천이 없을 순 없지만 지도부나 권력층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전략공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천개혁 방안으로 각광받아 온 대표적인 해법 중 하나는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다. 정당의 공천에 국민이 직접 참여해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의 한 방식으로, 소수에 의한 공천 독과점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2월 KBS라디오에서 “총선 리스크를 없앨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미국처럼 공천권을 국민이 행사하면 된다”며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나 오픈 프라이머리가 바람직한 해법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낮은 경선 참여율로 인한 대표성의 왜곡, 후보자들 간의 거친 상호 비방과 조직 동원, 당 밖 지지 획득 경쟁으로 인한 당내 구성원들 사이의 결속과 연대의 약화, 인물 중심의 국민경선에 따른 정당 간 이념 및 정책 차별성의 둔화 등 여러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공천에 미치는 권력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천의 시스템화 내지는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 교수는 “국회에서 법률로 공천에 최고위원회라든지 대통령실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못박아야 하는데 (이는) 이상적인 이야기”라면서도 “입법화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행 공직선거법 42조 2항은 정당이 공직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당헌 또는 당규로 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두루뭉술하게 규정하고 있다. 최 교수는 “지도부 등 권력이 공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세부적인 것까지 규정할 수 있다면 공천개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결국 어느 당이 더 개혁공천에 가깝게 공천했느냐에 따라 총선의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유권자들은 알아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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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호

"시스템 공천" 외치지만...'권력자 줄 세우기' 우려 여전

공관위에서 후보자 추천...필요시 전략공천 검토 권력자에 권한 집중...‘시스템 공천’ 도입 불신 | 송기욱 기자 oneway@newspim.com 내년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는 이미 총선 준비가 한창이다. 지역구 출마를 노리는 정치인들은 각 당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전략을 가다듬고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 새로 여의도 입성을 노리는 정치 신인들이나, 고배를 마셨던 원외 인사들도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천 룰’이다. 게임의 룰인 공천은 신뢰도가 핵심이다. 자신이 잘못된 공천 룰에 의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었다고 느끼는 정치인은 모든 것을 불사하고 반발한다. 공천 파동이다. 공천 결과에 반발,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하거나 당내 비리 등을 폭로하기도 한다. 공천 잡음의 크기와 선거 결과는 비례했던 것이 역사다. “공천 시스템이 불공정했다”고 평가받는 정당에 유권자들은 표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정권교체에 성공했지만 여소야대의 무력감을 절박하게 느낀 국민의힘과 차기 정권 수복을 위해 총선 승리가 절실한 더불어민주당 모두 ‘공정한 공천’과 ‘시스템 공천’을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야, 공관위에서 후보자 추천...필요 시 전략공천도 국민의힘은 당내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관리위원회를 둔다. 위원회는 당대표가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10명 내로 구성한다. 위원장과 부위원장 역시 당대표가 임명하는 구조다. 비례대표도 마찬가지다. 공관위가 설치된 후 후보자 추천 공고가 나오면 해당 지역 출마 의사가 있는 후보자들이 서류를 제출한다. 이후 공관위의 1차 심사를 거쳐 후보자를 선출한다. 한 지역구에 공천을 원하는 후보자가 다수일 경우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자를 추천한다. 공관위는 또 후보자가 당선된 적이 없거나 당세가 약하고 경쟁력이 없는 지역에 전략공천 후보자를 내세울 수도 있다. 다만 이는 전체 선거구의 20%를 초과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공관위를 설치한다. 위원장을 포함해 20명 내외로 구성되며 이 역시 당대표가 임명한다. 후보자가 다수일 경우 경선을 진행하는 것도 같은 방식이다. 다만 민주당은 전략공천이 필요한 경우 전략공관위를 별도로 설치해 운영한다. 위원회는 전략 선거구와 인준을 심사해 당대표에게 추천, 당대표가 확정 짓는 방식이다. 이 역시 전체 선거구의 20%를 초과할 수 없다. 당대표에 좌지우지...‘시스템 공천’ 무색 1963년 김종필 당시 총리가 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며 ‘공천권은 당 총재에게 있다’는 내용을 당헌에 포함시킨 이래 공천권은 당대표가 쥐어 왔다. 이에 따라 당대표의 의중에 따라 공천이 좌우된다는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당대표가 자기 편을 만들고 반대 계파를 배제하는 행위로 당내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당시 이해찬 등 ‘친노(친노무현)’ 의원들을 대거 컷오프시킨 뒤 자신은 비례대표 2번으로 ‘셀프 공천’하며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여당의 경우 공천권은 대통령의 의중이 크게 반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대표와 대통령 간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20대 총선에서 벌어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비박(비박근혜)계’인 김 전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를 밀어붙이고 있었으나 당시 ‘친박(친박근혜)계’의 반대 속에 끝내 무산됐다. 다만 김 대표는 여론조사 반영 비율이 높은 상향식 공천으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입장은 강경하게 고수했다. 갈등 속 김 전 대표는 일부 인사의 공천 추천장에 날인을 거부하며 잠적했다. 해당 사건은 이른바 ‘옥새런(run)’, ‘옥새 들고 나르샤’ 등으로 회자됐고 180석을 자신하던 새누리당은 그해 총선에서 패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마찬가지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권파들은 항상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공천을 해왔다”며 “이번에도 국민의힘은 입맛에 맞는 후보를 뽑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에 충성하는 인사의 공천 가능성은 높다”고 예상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당시부터 시스템 공천을 통해 어느 정도 개입을 막은 상태다. 부적절한 후보를 정량, 정성평가를 통해 걸러내며 지도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다. 당헌에 명기된 공천 심사기준을 살펴보면 ‘심사 배점은 정체성 100분의 15, 기여도 100분의 10, 의정활동능력 100분의 10, 도덕성 100분의 15, 당선 가능성(공천적합도 조사) 100분의 40, 면접 100분의 10으로 반영한다’고 돼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역시 최근 내년 총선에서 ‘시스템 공천’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지난 6월 16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검사 공천’ 우려가 나오자 “터무니없는 억측”이라며 “능력 있는 사람, 시스템 공천을 통해 주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들이 공천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시스템 공천 방식에도 허점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후보에 대한 자격 심사가 일반적인 원칙이지만 결과적으로 당 지도부의 입김은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민의 여론을 반영할 수 있는 상향식 공천 제도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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