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끄집어내는 마음의 열쇠, 관시의 촉매
5천년 인문 서정이 녹아든 중국 대표 소프트 자산
| 이지연 중국전문기자 delay@newspim.com
바이주(白酒·고량주), 황주(黃酒) 등 중국에는 수천 년 연륜을 자랑하는 술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말도 까마득한 고대 상(商)나라에서 비롯됐고, 뛰어난 시와 문장 역시 술을 빼놓으면 논하기 힘들 정도다. 5000년 중국 역사는 말 그대로 술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흔히 술을 가리켜 진심을 끄집어내는 마음의 열쇠라고들 한다. 우리 말의 취중진담과 비슷한 의미로 중국에도 ‘주후견진정(酒後見真情)’이라는 말이 있다. 술을 마시면 진심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중국인들과의 비즈니스나 사적인 관계를 맺을 때도 적당한 술은 최고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바이주, 황주 등 중국의 술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술은 곡물을 주원료로 한 증류주 바이주다. 바이주는 향에 따라 크게 농(濃)향형, 장(醬)향형, 청(淸)향형, 미(米)향형으로 나눌 수 있다.
농향형은 깊고 풍부한 향이 특징이며 뒷맛이 오래 남는다. 쓰촨(四川)성과 장쑤(江蘇)성 일대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바이주 대부분이 농향형이다. 주원료는 수수, 쌀 등 곡물이며 보리나 완두 혹은 밀을 사용한 대곡누룩으로 고온 당화발효해 제조한다. 술밥을 혼합해 찐 후 술지게미를 배합한 다음 지하창고에 저장해 발효시키며, 약한 불로 증류한 술을 저장하고 혼합하는 등 기타 양조 공정을 거쳐 술을 완성한다.
장향형은 무색투명하고 침전물이 없으며 깊은 장향이 특징이다. 마오타이(茅台)주가 대표적인 장향형에 속하므로 마오(茅)향형으로도 불린다. 밀을 고온 발효시켜 고온 대곡 혹은 종곡(纵曲)누룩을 만들며, 당화발효제로는 에스테르효모를 사용한다. 이것들을 고온 상태로 쌓아두고 1년을 한 주기로 두 번 원료를 투입해 8차 발효시킨 술밥으로 양조를 시작한다. 이후 7회에 걸쳐 증류시킨 뒤 여러 차례 나눠 술을 얻어내며, 이 술을 장기간 저장한 후 최종적인 술을 얻는다.
청향형은 잡향 없이 깨끗하고 산뜻한 맛이 일품이다. 산시(山西)성 펀주(汾酒)가 청향형의 대표로 꼽히기 때문에 펀(汾)향형으로도 불린다. 보리와 완두로 제조된 대곡누룩을 당화발효제로 사용하며, 찐 수수를 술밥으로 쓰는 공정으로 항아리 안에서 고체 상태로 발효시킨 후 증류해서 술을 만든다.
미향형은 주재료가 쌀이어서 마신 후에 살짝 단맛이 돈다. 혹자는 벌꿀향이 난다고 하여 밀(蜜)향형이라고도 부른다. 쌀로 만든 소곡누룩을 당화발효제로 사용하며 별도의 다른 원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미생물 발효를 하는데, 액상증류를 거쳐 초여과막기술(Ultrafiltration membrane)을 이용해 술을 걸러낸다.
바이주 외에 찹쌀이나 쌀을 주원료로 한 황주, 과실주, 약주 등도 지역에 따라 명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중국 내뿐만 아니라 한국 등 해외에서도 유명한 중국의 지역별 명주와 연원, 주요 특징 등을 상, 중, 하에 걸쳐 10종씩 시리즈로 소개한다.
산둥(山東)성–이핀징즈(一品景芝, 일품경지)
1957년 징즈진 양조장에서 최초로 참깨향 바이주를 발견한 것에서 유래한다. 산둥성 안추(安丘)시 징즈(景芝)진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참깨향 바이주다. 장(醬), 농(濃), 청(淸) 세 가지 향을 모두 품고 있는 명주로, 풍부하고 깊은 맛과 함께 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장쑤(江蘇)성–양허다취(洋河大曲, 양하대곡)
중국의 번영, 즉 한당성세의 한 축을 담당했던 당나라 때부터 이미 유명세를 떨쳤으며 고증된 역사만 400년 이상이다. 장쑤성 쑤첸(宿遷)시 중국장쑤양허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양허다취는 ‘물은 술의 피, 누룩(曲)은 술의 뼈’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뛰어난 물맛을 자랑하는 ‘미인천(美人泉)’ 물을 사용하며, 풍부하고 강한 농(濃)향과 함께 양허다취만의 독특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청나라 건륭제가 쑤첸의 행궁에서 머무를 당시 양허다취를 맛보고 “술맛이 향기롭고 순하여 진정으로 훌륭한 술이로다(酒味香醇, 真佳酒也)”라고 찬탄하면서 양허다취를 황실 진상품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안후이(安徽)성–구징궁주(古井貢酒, 고정공주)
서기 196년 조조가 보저우에서 생산한 구온춘주(九醞春酒)를 한헌제(漢獻帝)에게 진상한 것에서 유래한다. 안후이성 보저우(亳州)시의 전통 농(濃)향형 바이주로, 수정처럼 맑고 향긋한 향이 일품이어서 ‘술 중의 모란(酒中牡丹)’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남북조 시대에 보저우에서 물맛이 뛰어난 우물을 발견했다고 전해지는데, 1000년 이상의 세월을 품은 옛 우물의 물로 술을 빚어 구징(古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구징궁주(000596.SZ)는 바이주 업체 최초로 중국 증시에서 A주식(내국인 대상)과 B주식(외국인 대상)을 모두 발행하기도 했다.
저장(浙江)성–구웨룽산(古越龍山, 고월용산)
4000년 역사를 지닌 소흥주(紹興酒)로, 송나라 때 소흥주라는 정식 명칭이 생기며 황실에 대량으로 진상됐다. 바이주 대표가 마오타이주라면 황주(黃酒) 혹은 미주(米酒)의 대장은 구웨룽산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일한 국빈만찬용 황주이기 때문에 황주 중의 국주(國酒)로 불린다. 도수는 높지 않으며 영양가가 풍부한 편이다. 이 브랜드는 상하이증시 상장사(600059.SH)이기도 하다.
푸젠(福建)성–룽옌천강(龍巖沈缸, 용암침항)
명나라 말, 청나라 초 조주사 오노관(五老官)이 ‘신라제일천(新羅第一泉)’이라는 샘물을 발견하고 그곳에 양조장을 지은 것에서 유래한다. 푸젠성 룽옌(龍巖)시에서 생산되는 황주로, 적갈빛의 호박색 광택을 띠며 뒷맛이 오래 남는다. 침전물이 항아리 바닥에 남아 있다 하여 천강(沈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도는 높지만 산뜻한 단맛이 돌며 깊으면서도 누룩 특유의 쓴맛도 느껴진다. 룽옌천강 브랜드 중에서도 ‘신뤄취안(新羅泉, 신라천)’은 구웨룽산과 함께 최고의 황주로 꼽히는 술이다.
광둥(廣東)성–주장솽정주(九江雙蒸酒, 구강쌍증주)
청나라 도광년간(1821~1850)에 처음 등장했으며, 1952년 주장진의 양조장 12개가 합쳐졌다. 쌀과 황두로 만든 누룩으로 빚은 술로, 빛깔이 옥과 얼음처럼 깨끗하고 맑다. 뒷맛이 깔끔하면서도 단 것이 특징이다.
광시(廣西)성–구이린싼화주(桂林三花酒, 계림삼화주)
남송 시대 사사공주(師司公廚)에서 생산되다가 청나라 말 전문 양조장이 생기며 민간에 보급됐다. 미향형 바이주의 대표로 ‘미주의 왕(米酒之王)’이라는 별칭이 있다. 삭힌 두부, 구이린 고추장과 함께 구이린의 세 가지 보물(桂林三寶)에 속할 정도로 광시 지역의 명물로 꼽힌다.
옛날에는 ‘서로(瑞露, 상서로운 이슬)’라고 불렸으며, 송나라 때 구이린에서 벼슬을 지낸 범성대(範成大)는 싼화주를 맛보고 “술의 묘함이 극에 달했다”며 극찬한 바 있다.
후베이(湖北)성–바이윈볜(白雲邊, 백운변)
1952년 세워진 후베이성 바이윈볜 양조장서 유래됐다. 서기 957년 주선(酒仙) 이백(李白)이 현재의 후베이성 쑹쯔(松滋)시 근처 호수에서 야경을 감상하다 술을 마시고 즉흥시를 지은 데서 ‘바이윈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대표적인 겸향형(兼香型) 바이주로서 마오타이주의 장향, 루저우라오자오(滬州老窖)의 농향, 펀주(汾酒)의 청향이 하나로 합쳐져 깨끗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후난(湖南)성–주구이주(酒鬼酒, 주귀주)
1956년 세워진 지서우(吉首) 양조장서 유래한다. 복욱(馥郁)향형 바이주의 효시로, 첫 맛은 농향, 중간 맛은 청향, 뒷맛은 장향이 감도는 오묘한 맛이 일품이다. 1997년 선전증시에 상장(000799.SZ)됐다.
허난(河南)성–쑹허량예(宋河糧液, 송하량액)
춘추 시대 고송하(古宋河, 현 大沙河) 근처 조집진(棗集鎮, 현 鹿邑縣)에서 처음 생산됐다. 허난성에서 유일하게 ‘중국 명주’ 타이틀을 획득한 농향형 바이주로, 수당 시대부터 이미 유명세를 떨쳤다. 무색투명하며 목 넘김이 부드럽고 깨끗한 것이 이 술의 특징이다.
기원전 571년 노자가 바이주를 마시고 별안간 깨달음을 얻어 도교를 창시했다는 설이 있는데, 당시 노자가 마신 것이 오늘날의 쑹허(宋河) 물을 사용한 술이었다고 한다. 쑹허량예는 ‘황왕제주(皇王祭酒)’로도 불린다. 이는 청명절에 당고조 이연(李淵)과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조상에 제사를 지낼 때마다 조집진 고을에서 빚은 술을 사용한 데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