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아트&투자] 중동서 활동 중인 전시기획자 이규현...'K-아트'의 매력 전파 일등공신
2025년 01월호
[이영란의 아트&투자] 중동서 활동 중인 전시기획자 이규현...'K-아트'의 매력 전파 일등공신
2025년 01월호
“이집트 등 아랍권서 코리아 열풍 거세
K - 아트의 독창성과 경쟁력 멋지게 알릴 터”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 런던 등지에는 한국인 아트디렉터들이 여럿 포진 중이다. 그러나 비서구권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을 무대로 활약하는 이규현(52) 이앤아트 대표의 도전은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다. 이집트 카이로에 머물며 글로벌 전시기획자로 활동 중인 이 대표는 지난해 10~11월 피라미드 앞에서 열린 국제미술제에 한국 작가를 처음 진출시켜 큰 호응을 일궈냈다. ‘K-아트’의 매력을 중동에 널리 알린 이 대표를 뉴스핌 월간ANDA가 만나봤다.
Q. 이집트의 미술제에 한국작가를 처음 입성시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기자 피라미드에서 매년 가을 하는 ‘포에버 이즈 나우(Forever Is Now)’라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미술전시회로, 전 세계 여러 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국제전이다. 이집트 문화부, 관광유물부, 유네스코 등이 후원한다. 현대미술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하는 일을 하면서 남편(외교관) 직장 때문에 이집트에서 살다 보니, 2023년에 이 전시를 접했다. 4500년 전에 지어진 ‘고대 불가사의’인 피라미드 앞에서 펼쳐지는 이 멋진 축제에 한국미술도 선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강익중 작가로 제안서를 냈다.
Q. 강익중을 특별히 택한 이유는.
강익중 작가는 원래 한글을 소재로 다양한 작업을 해왔는데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집트인 사이에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대단하기 때문에 ‘이집트에도 한 번 와 보시라’고 했더니 정말 한걸음에 뉴욕에서 달려(?)왔다. 이집트의 대학과 문화센터에서 강의와 워크숍을 해서 크게 인기를 얻었고, ‘포에버~’ 현장도 함께 둘러봤다. 다음해 전시에 제안서를 내보고 싶다 했더니 작가가 반색했다. ‘전 세계는 하나’라는 주제를 추구하는 작품이 피라미드와 잘 맞겠다는 생각에 주관사인 아르데집트(Art D’Égypte)에 제안서를 냈고,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최종 선정됐다. 뉴욕을 무대로 활동 중인 작가 강익중이 자신의 설치작품 앞에 섰다. [사진=강익중스튜디오,이앤아트]
Q. ‘네 개의 신전’의 작품 컨셉은.
‘포에버~’전의 총괄 디렉터인 나딘 압델 가파는 ‘네 개의 신전’을 “전 세계를 다시 묶는 작품(Reuniting the whole world)”이라며 환호했다. 한마디로 잘 표현한 것 같다. 작품의 외벽은 ‘아리랑’을 한글, 아랍어, 상형문자, 영어 네 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내벽은 전 세계인 5016명의 꿈 그림으로 표현했다. 작품의 겉에서는 남북한에서 똑같이 부르는 ‘아리랑’을, 작품의 안에서는 전 세계 아이들과 어른들이 어떤 꿈을 꾸며 사는지를 보여주었으니, ‘우리는 하나’라는 주제를 감각적으로 온전히 보여준 것이다.
Q. 강익중은 뉴욕서 활동하는 작가라 3개국을 오가야 했다.
현대미술은 제작과 설치가 복잡다양하기 때문에 기획자는 운송, 설치, 철거라는 복병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런 줄 알고 있었지만 이집트로 작품을 가져와 피라미드 앞에 설치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작년 내내 이집트와 주변국 정세가 불안했고 수에즈 운하에서 선박이 사고를 당하거나 수송이 몇 달씩 지연되는 경우를 봤기에 작품을 비행기로 운송했는데 통관이 안 돼 애를 태웠다. 설치 당일 오전에 아슬아슬하게 피라미드 앞에 작품이 도착했다.
Q. 사막 위라 설치가 힘들었을 텐데.
모래 위에 높이 5m 철골을 세우고 드로잉 5016개를 하나하나 매다는 작품이다. 설치 방법도 복잡하고 기후변수가 많기 때문에 이집트 설치 회사들은 모두 고사했다. 결국 한국인이 대표자인 현지 회사를 찾아가 “한국작가가 피라미드에서 처음 하는 전시니 맡아 달라”고 사정했다. ‘애국’하는 의미로 일을 하자고 설득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사막바람이 혹독했다. 철골은 옆으로 기울고, 드로잉은 달면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철골을 강제로 다시 세워 용접해야 했다. 드로잉은 전시 내내 바람에 떨어져 다시 매달곤 했다. 이 또한 ‘대지미술(Earth Art)’의 일부분이라 생각한다. 한국과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집트 학생들이 앞다퉈 아리랑 배우기 행사에 참가했다. [사진=이앤아트]
Q. 12개국 작품 중 사랑을 독차지했다는데.
가장 관객이 많았고, 일반 관객들과 유명인사들이 이 작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이집트 내에서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화제였다. 워너 브라더스가 ‘포에버~’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으면서 이 작품을 배경으로 삼았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셰이크이자 관용부 장관인 나흐얀 빈 무바라크 알 나흐얀, 프리미어 리그 리버풀의 레전드인 축구선수 마이클 오언 등이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려 더 유명해졌다. 관객들이 열광하자 주최측은 “내년에도 한국작가를 하자”고 바로 제안했다.
Q. 이집트서 한국 열풍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이집트 젊은이들은 한국인만 보면 ‘사진 찍자’며 다가온다. 이번 작품에 나온 이집트 사람들의 꿈 그림 중에는 태극기와 비행기를 그린 것이 여럿 있다. 한국에 가보는 게 꿈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문화원에서 하는 한국어 수업은 대기자만 1년에 1000명이 넘고, 카이로의 명문대인 아인샴스대학에서 제일 커트라인이 높은 과도 한국어과다. 전시 첫날 KBS 정용실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아리랑 배우기’ 행사가 있었는데, 학생들이 졸라대는 바람에 한국어과 교수님은 수업을 전시장에서 했다. 피라미드 앞에 세워진 강익중 작가의 ‘네 개의 신전’. 현지인과 관광객들 사이에 큰 호응을 받으며 K - 아트의 경쟁력을 널리 알렸다. [사진=이앤아트]
Q. 기획자로서 어려움도 많고 보람도 많았을 텐데.
솔직히 이렇게 변수가 많고 힘든 작업인 줄 알았으면 시작했을까 싶다. 하지만 장소가 피라미드이다 보니 전 세계 관광객들이 매일 물밀듯 찾아왔다. 말 그대로 6개 대륙 사람들이 다 찾아와서 작품을 즐기는데, 그것을 보는 기획자로서 보람은 국내서 전시를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앞으로 한국 현대미술가가 피라미드 앞에서 전시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Q. 강익중 작가가 고향(청주)서 가진 40주년전도 주도했다.
작가가 1984년에 뉴욕으로 가서 활동을 시작했기에 2024년은 40주년이었다. 그 회고전을 작가의 고향인 청주시립미술관에서 했고, 피라미드 전시도 마침 같은 해에 열렸다. 2024년은 강익중의 해였다.
Q.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경쟁력은.
일단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에서 최고조다. 서구에서도 그렇지만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은 훨씬 크다. K-팝과 음식 등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고, 문학과 미술 등 순수예술에 대한 사랑도 얼마나 큰지 모른다. 한국 현대미술은 집단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고 작가마다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주제의식이 강하다.
Q. 역량 있는 아트디렉터의 필요성은.
나는 가족들에게 내가 하는 일이 ‘연예인 매니저랑 비슷한 일’이라고 농반진반 얘기하곤 한다. 스스로를 ‘아트디렉터’라기보다 ‘아트마케터’라고 얘기한다. 내가 하는 일은 문화 마케팅이다.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어떤 맥락으로 어느 곳에서 가장 잘 진가를 인정받을지 파악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알리는 일이다.
Q. 글로벌 전시기획자의 덕목은.
솔직히 ‘글로벌 전시기획자’에 대해 운운할 정도의 경력은 안 된다. 하지만 이번에 전 세계 기획자, 작가들과 섞여 일해 보니, 세계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고, 다른 나라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한다면 글로벌 기획의 일을 잘할 것 같다.
Q. 기자 대신 예술벤처를 창업했다.
원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온라인으로 중개하는 벤처기업이 목표였는데 작품 세일즈에 소질이 없어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 현대미술 기획과 홍보를 하고 있다.
Q. 우리는 중동에 별반 관심이 없다.
나는 아부다비에서 3년, 이집트에서 4년 살았는데 중동국가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정말 좋아한다. 우리가 중동 문화에 관심이 없는 걸 생각하면 짝사랑이라 하겠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일도 하고 있는데 동남아국가 경우도 비슷하다. 한국 현대미술을 중동과 동남아에 알리는 일과 함께, 그들의 예술을 한국에 알리는 일도 하고 싶다.
Q. 현대미술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모든 현대문화는 동시대인들의 관심을 잘 읽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대미술도 관객의 시각을 자극하는 ‘시각예술’이면서 또한 동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시대성과 장소 특수성이 중요하기에 매우 매력적인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