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아니어도 들어갈 수 있는 실버타운 ‘시니어 레지던스’ 인기
토탈케어 수요 노리는 민간형 임대...‘골드시티’도 공급 대기
| 이동훈 기자 donglee@newspim.com
부자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실버타운’을 이제 온 국민이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동안 부자들만 누릴 수 있던 ‘그들만의 리그’에서 ‘국민 실버타운’이 탄생할 예정이다. 곧 다가올 초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노인 복지가 정부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상태다. ‘시니어 레지던스’는 노인 주거복지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성큼 다가오고 있는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정부가 내놓은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은 노인 복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로 인식되고 있다. 기존 실버타운은 중산층 이상의 노령자가 선택할 수 있는 ‘호사스러운’ 주거 상품으로 꼽힌다. 3~5년 보증금만으로도 500만~1억원에서 최고 10억원이 들며 월세와 생활비, 식대까지 포함하면 월 300만원 이상이 거뜬하게 들어간다. 실버타운의 인기는 도심과 가까울수록, 서울과 가까울수록 더 높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한 시니어 레지던스는 싸고 품질 좋은 이른바 ‘가성비 갑’ 실버타운의 양성을 기대하게 한다. 다만 여전히 분양형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다는 것은 약점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공공임대형을 확대해 누구나 큰돈 들이지 않고 주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공공의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버타운, 노인 주거 서비스의 대안으로 성장
우리나라 실버타운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 시작했다. 수원 유당마을이 그 첫 번째로다. 이후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 붐을 타고 비주택 상품으로 분양형 실버타운이 시장에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노블카운티, 서울시니어스센터 강서 등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실버타운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현대판 고려장’이란 인식이 있어 실버타운에 들어갈 여유를 가진 중산층 이상에게도 관심을 얻지 못했다. 지금도 요양원에 비견되며 여전히 현대판 고려장이란 인식은 존재한다. 하지만 20년 이상 실버타운이 운영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여가 생활이나 의료 서비스와 같은 기존 실버타운 주거 서비스가 보다 확대됐고, 이를 기반으로 한 이른바 ‘토털 케어’라는 모토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곳이란 인식이 뚜렷해지면서 ‘부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점도 실버타운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다.
현재 운영 중인 주요 실버타운은 국내 최초 유당마을을 비롯해 더클래식500, 삼성노블카운티, 노블레스타워, 서울시니어스타운 등이 있다. 이들 실버타운은 입지, 서비스, 방 넓이 등에 따라 가격에 큰 차이를 보인다. 현존 실버타운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서울 광진구 더클래식500 56평형의 경우 3년 보증금 10억원에 월세, 공동관리비, 세대관리비, 식대를 포함하면 월 5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내야 한다.
그럼에도 실버타운에 입주하려는 노령층은 적지 않다. 실제 수도권 주요 실버타운은 평균 3년에서 최대 5년을 기다려야 입주할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수요에 비해 부족한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기존의 고가 실버타운부터 중산층 이하 서민층도 들어갈 수 있는 시니어 레지던스의 개념을 꺼냈다. 기존 중산층 이상의 전유물이었던 실버타운과 함께 공공임대인 고령자 복지주택, 민간임대인 실버스테이를 통틀어 일컫는 것이 바로 시니어 레지던스다.
실버타운 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는 2015년 폐지됐던 분양형 실버타운을 다시 합법화했다. 89개 인구감소 지역에서 분양형 실버타운을 다시 공급할 수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분양형 실버타운은 여전히 공급할 수 없다. 다만 임대형은 토지, 건물의 사용권만 보유해도 지을 수 있도록 해 실버타운 공급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시니어 레지던스 확대에 따라 중산층 이하도 실버타운에 거주하기가 쉬워질 전망이다. 그동안 고가 실버타운은 주로 40평형대 이상 넓은 주택 면적으로 구성됐다. 이번 방침에 따라 그동안 실버타운에서 외면받았던 15평형 규모의 소형 시니어 레지던스가 다수 공급될 예정이다. 또 주택연금을 받고 있는 노령층은 앞으로 주택연금을 받으면서도 실버타운에 거주할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특별법 제정이 아직 시도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같은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경기 상황에 따라 실버타운을 포함한 시니어 레지던스가 더 확대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서울이나 수도권 주요 도시의 도심과 가까운 물량만 인기를 보일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서진형 광운대 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분양형 실버타운의 경우 수익률이 나와야 하는데 인구감소지역은 투입비용에 비해 수익률이 떨어지게 돼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며 “수도권에 공급될 임대형 서비스 레지던스는 민간 업계의 이윤 극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이를 지원하는 정부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구감소지역, 서비스 레지던스에 기대
서비스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에 따라 일단 수도권 도심 근처 임대형 시니어 레지던스가 인기를 끌 것으로 예측된다. 의료 서비스 등이 유리한 대형 병원 인근지역에 민간 임대형 시니어 레지던스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들 임대형의 경우 높은 수익 창출을 위해 고급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입주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따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와 공공 차원의 적극적 개입이 요구된다. 돈이 없어서 노후가 더 불편한 상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공 시니어 레지던스는 오히려 저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지금과 같은 고급 실버타운은 보다 합리적인 임대료 책정이 요구된다. 레지던스 서비스 비용이 크게 오를 것인 만큼 노령층의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자택을 비롯한 모든 재산을 시니어 레지던스에 쏟아부어야 할 정도다. 서울시니어스타워 관계자는 “민간이 운영하는 시니어 레지던스는 결국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저소득층 노령세대를 위해서는 정부와 공공이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에 따라 서울시가 추진하는 공공 시니어 레지던스에도 관심이 모인다. 서울시 공공임대형 시니어 레지던스인 골드시티는 강원도 삼척과 같은 인구감소지역 지자체와 연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지방에 은퇴자가 살기 좋은 도시를 지어 지방 이주를 희망하는 서울시 주택 보유 은퇴자 등에게 주택연금 등과 연계해 주택과 기반시설을 공급한다. 이때 이주 희망자가 보유한 기존 주택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매입 또는 임대해 청년·신혼부부 등에게 재공급하는 사업이다.
골드시티는 도심 주변에 살고 싶어 하는 노령층의 바람과 달리 서울 진입이 힘든 강원도 등에 지어지는 만큼 당장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많다. 하지만 공공 사업인 만큼 서울시나 강원도와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의지를 갖고 특히 의료 서비스 문제만 제대로 보장한다면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인기를 끌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특히 노령층 초입인 65세 이상, 75세 이하 노령층의 경우 오히려 골드시티를 더 선호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SH공사는 골드시티에 대해 서울 노령층의 관심도가 높다고 밝힌 바 있다.
더욱이 골드시티는 정부의 인구감소지역 시니어 레지던스 지원 정책과 맞물려 더 강화될 가능성도 나온다. SH공사 관계자는 “정부 지원에 따라 골드시티도 전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시니어 레지던스의 미래는 결국 가격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웬만한 요양병원도 한 달에 150만원 이상이 들어가는데 토털 케어를 해주는 시니어 레지던스는 이보다 비쌀 수밖에 없으며 서민들의 이용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