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안 먹는 MZ세대 영향 매출 역성장
샴페인 최고 명품은 ‘돔 페리뇽’
마릴린 먼로가 즐겨 마신 ‘뵈브 클리코’ 명성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 소비자들이 ‘루이비통’이라는 브랜드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뭘까. 거리에서 3초마다 목격할 수 있다는 의미의 ‘3초백’으로 유명한 루비이통 명품 백이다.
그런데 프랑스 증시에 상장된 LVMH(루이비통 모엣 헤네시) 그룹은 실적 발표 때 ‘와인 및 증류주’ 부문을 명품 백 등의 ‘패션 및 가죽제품’ 부문보다 앞에 배치한다. 패션보다 주류가 더 중요한 걸까. 그건 아니다.
알고 보면 문어발 기업 LVMH
단지 LVMH 그룹이 스스로를 단순한 패션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LVMH의 2023년 ‘패션 및 가죽제품’ 매출액은 59조원(422억유로)이다. ‘와인 및 증류주’ 매출액 9조원(66억유로)의 7배에 육박한다. 따라서 LVMH를 패션 회사라고 부르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LVMH의 2023년 전체 매출액 121조원(862억유로) 중 패션 및 가죽제품 매출 비중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9%다. 일반적인 상식보다는 LVMH의 사업이 훨씬 더 다각화돼 있음을 알 수 있다.
LVMH가 영위하는 사업들을 모두 살펴보면 어질어질할 정도로 많은 종류와 유명 브랜드들의 집합이다. 이 브랜드도 LVMH 계열이었나 싶은 것도 꽤 된다. 브랜드 종류만 무려 70개가 넘는다.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루이비통 외에도 셀린느, 크리스찬 디올, 지방시 등 수많은 패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향수 분야에서도 겔랑, 아쿠아 디 파르마 등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브랜드가 즐비하다. 시계&보석 분야에서도 티파니앤코, 불가리, 태그호이어 등 명품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브랜드가 넘쳐난다.
이 밖에도 글로벌 상위권 면세점인 DFS, 글로벌 1위 화장품 편집숍인 세포라, 프랑스 파리의 유명 백화점인 르봉 마르셰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의외의 분야라서 눈길을 끄는 건 27개나 되는 와인, 샴페인, 코냑 등 주류 브랜드다.
루이비통 이름 뒤에 왜 술 회사 이름이 붙었을까?
LVMH의 상표를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왜 루이비통 상표에 당당하게 ‘모엣 헤네시’라는 술 회사가 포함돼 있을까. LVMH라는 상표는 1987년에 명품 업체인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코냑으로 유명한 ‘모엣 헤네시(Moët Hennessy)’의 합병으로 탄생됐다.
모엣 헤네시에 대해 살펴보려면 일단 약간의 술 공부가 필요하다. 프랑스는 와인과 샴페인 수출 규모가 상당하다. 와인 종류는 ‘레드’나 ‘화이트’ 외에 ‘스파클링’도 유명하다. 스파클링 와인이란 병 속에 당분을 넣고 2차 발효해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거나, 인위적으로 탄산가스를 집어넣어 사이다처럼 기포가 있는 와인을 말한다.
샴페인도 스파클링 와인의 일종이다. 하지만 감히 그 누구도 스파클링 와인에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붙일 순 없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제조된 와인에만 붙일 수 있는 존귀한 명칭이다. 따라서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만든 스파클링 와인에는 샴페인이란 이름을 쓰지 못한다. 그러니 물량이 제한적이고 가격이 비싸다. 고급스러운 이미지 마케팅까지 더해 샴페인은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돔 페리뇽’의 역사
‘루이비통 모엣 헤네시’라는 상표의 중간에 있는 ‘모엣’은 샴페인 계열사인 ‘모엣&샹동’의 앞 글자다. LVMH의 샴페인 브랜드 중 모엣&샹동보다 더 유명한 건 바로 ‘돔 페리뇽’이다.
한국의 백화점, 마트, 코스트코 등에서 판매되는 ‘돔 페리뇽 블랑’의 평균 가격은 35만원 수준이다. 더 상위 레벨인 ‘돔 페리뇽 로제’의 경우 55만원 내외다. 면세점 찬스를 이용하면 좀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비싼 술이다.
돔 페리뇽의 역사는 300여 년이고 대중화된 지는 150년 정도 된다. 세계의 왕실, 상류층, 연예인들이 즐겨 마시는 샴페인으로 알려지며 유명해졌다. 명품 행사장에도 자주 등장해 ‘루이비통’이나 ‘샤넬’ 같은 고품격 명품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돔 페리뇽은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도 등장한다. 중국이나 일본 부자들 사이에서는 과거에 피라미드 이벤트(샴페인 잔 100개를 피라미드로 쌓아 올린 뒤 위에서 돔 페리뇽을 붓는 퍼포먼스)가 유행하기도 했다. 돔 페리뇽은 2023년에 두 가지의 새로운 빈티지(해당 와인을 만든 포도를 수확한 해)를 출시했다. 또 창의적이고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이면서 기록적인 한 해를 보냈다.
샴페인 회사 중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또 다른 회사는 ‘뵈브 클리코’다. 어차피 이 회사도 LVMH의 브랜드다. 뵈브 클리코의 샴페인은 마릴린 먼로의 말로 더 유명해졌다. “나는 샤넬 NO.5를 입고 잠이 들고 ‘파이퍼 하이직’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해요.” 이 샴페인을 욕조에 받아 목욕을 즐겼다는 소문도 있다.
파이퍼 하이직 샴페인은 명품 행사장에서 ‘하이힐 잔’에 따라 마시는 퍼포먼스로도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유명 호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뵈브 클리코 샴페인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뵈브 클리코의 샴페인 가격은 모엣&샹동의 라인업보다는 다소 저렴하다.
돔 페리뇽보다 더 비싼 샴페인은?
돔 페리뇽은 상당한 고가 샴페인이지만 이보다 더 비싼 샴페인도 많다. 예를 들면 LVMH의 또 다른 브랜드인 ‘크루그(Krug)’는 세계 3대 샴페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기장 기본 모델인 크루그의 ‘그랑 퀴베’ 가격도 40만원이 넘는다.
크루그의 연간 생산량은 고작 60만병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크루그가 소량 생산한 일부 빈티지 샴페인의 경우 부르는 게 값이다. 일부 빈티지의 경우 가격이 수백만원을 훌쩍 넘는다.
루이비통의 주류 계열사로 모엣&샹동과 뵈브 클리코, 크루그 같은 샴페인 회사만 있는 건 아니다. 루이비통 모엣 헤네시라는 상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헤네시’는 코냑 회사다. 헤네시의 코냑 분야 전 세계 점유율은 약 40%다.
코냑이란 프랑스 코냐크 지방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를 원료로 한 브랜디를 말한다. 가장 유명한 ‘헤네시 X.O’의 가격은 구매처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30만~40만원 수준이다. 헤네시도 생산물량에 제한을 두는 명품 법칙을 쓴다. 그러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샤토 슈발블랑’이나 ‘샤토 디켐’ 등도 모두 LVMH의 브랜드다.
LVMH, 주류 매출 감소로 고민
과거 LVMH 그룹 전체에서 ‘와인 및 증류주’ 분야의 매출 비중은 10% 수준이었다. 하지만 점점 매출이 정체되면서 2023년에는 비중이 8% 밑으로 뚝 떨어졌다. 특히 2023년은 유일하게 와인 및 증류주 분야만 역성장해 경영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LVMH의 와인 및 증류주 부문의 매출은 2022년 9조9000억원(71억유로)을 기록했지만 2023년에는 7000억원 감소한 9조2000억원(66억달러)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영업이익 또한 3조1000억원(22억달러)에서 2조9000억원(21억달러)으로 2000억원이 감소했다. 대신 영업이익률은 명품 기업답게 32%라는 높은 수치를 유지했다.
주류 부문 매출액을 다시 ‘샴페인 및 와인’ 분야와 ‘코냑 및 증류주’ 분야로 세분화해 살펴보면 코냑 및 증류주의 2023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무려 13.4% 감소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주류 부문의 매출이 부진한 이유는 보합을 유지한 샴페인 때문이 아니다. 코냑 및 증류주의 매출 감소 영향이 가장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가장 판매량이 급감한 주류는 헤네시로 대표되는 코냑이다. 2021년에는 무려 1억260만병이 판매됐다. 하지만 이때를 정점으로 2년 뒤인 2023년에는 판매량이 8320만병으로 급감했다. 2년 전 대비 19% 감소했다. 전년 대비로도 12% 줄었다.
코냑뿐 아니라 샴페인 판매량도 전년 대비 6% 감소한 6650만병에 그쳤다. 같은 기간 와인도 7% 감소한 5270만병이 판매됐다. 전반적으로 술 자체가 과거보다 덜 팔리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2023년의 지역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가장 부진한 지역은 미국이다. 전년 대비 무려 5% 감소한 32%로 매출 비중이 축소됐다. 미국 소비자의 수요 위축이 주류 매출 감소의 가장 큰 원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 중국 시장에서도 수요가 다소 감소했다. 이 빈자리를 채운 건 유럽, 아시아태평양, 라틴아메리카 지역이었다.
MZ 세대 무알코올 인기...매출 더 떨어질까?
결론적으로 LVMH의 ‘와인 등 주류 부문’ 매출은 2023년에 큰 폭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주류 부문 매출이 증가하려면 술 가격을 올리거나 술을 사먹는 사람이 증가해야 한다. 하지만 불황이라 술 가격을 크게 올리기는 어렵다. 또 술 먹는 사람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최근 MZ 세대를 중심으로 무알코올과 저알코올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맥주 시장에서는 이미 변화가 뚜렷하다. 주류 전문 시장조사기관인 영국 IWSR은 무알코올 시장 규모가 앞으로 수년간 연평균 9%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LVMH의 미래 성장성에 상당한 의문이 생긴다. 성장이 멈춘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많다. 하지만 전체 매출에서 주류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8%에 불과하다. LVMH의 최대 강점은 사업 다각화다.
글로벌 최고 명품 회사인 LVMH와 연예인 걱정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LVMH는 투자자들의 우려와 달리 2023년에도 ‘패션&가죽’ 분야에서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