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민호, 김수현, 송중기, 전지현, 박신혜는 대륙을 사로잡은 인기 한류스타다. 국내에서 출연한 영화, 드라마가 현지로 넘어가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중국 활동으로 연결됐다. 그렇게 중국으로 건너간 이들은 현지에서 콘서트, 예능 출연, 광고 촬영 등의 활동을 펼치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반면 다른 노선으로 대륙의 톱스타가 된 배우들도 있다. 추자현, 홍수아, 채연 등이 그렇다. 앞서 언급한 한류스타들과 달리 한국 작품을 거치지 않고 바로 중국 시장으로 진출한 케이스다. 현지 연예인들과 함께 섞여 대중적으로 중국 팬들에게 다가갔고, 마침내 ‘차이나 드림’을 이뤄냈다.
‘차이나 드림’ 한류스타의 중국 내 인기, 어느 정도일까
‘시청률의 여왕’ 추자현·‘대륙의 첫사랑’ 홍수아
추자현은 ‘차이나 드림’에 성공한 대표적인 배우다. 지난 2005년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2011년 드라마 ‘회가적 유혹’(‘아내의 유혹’ 리메이크 작)에 출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회가적 유혹’은 방송 당시 평균 3.64%(최고 5.16%)로 전국 시청률 1위를 기록, 중국 역대 시청률 5위 안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추자현은 15편의 중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서 온 백설공주’, ‘시청률의 여왕’으로 사랑받았다. 최근에는 출연 드라마 ‘행복재일기’가 또 한 번 시청률 1위에 등극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국내에서 코믹 이미지로만 소비되던 홍수아도 중국으로 넘어가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지난 2014년 중국 영화 ‘원령’을 시작으로 드라마 ‘억만계승인’(‘상속자들’ 리메이크 작, 2015), ‘온주량가인’(2015) 등 굵직한 작품의 주연을 맡았다. 특히 ‘온주량가인’에서 남자 주인공의 첫사랑을 연기하며 ‘대륙의 첫사랑’으로 자리매김했다. 덕분에 ‘제2의 판빙빙’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홍수아는 현지 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중국 영화 ‘방관자’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잊힌 그룹 테이크 출신 이승현도 중국에선 손꼽히는 인기 배우다. 테이크 탈퇴 후 중국으로 향한 그는 영화 ‘나나의 장미 전쟁’(2010), ‘머니게임’(2015)과 드라마 ‘전민공주’(2013), ‘여인천하’(2013), ‘신경화연운’(2014) 등 다수의 작품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며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대륙 내 인기 척도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반영하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팔로워 수도 317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대표 한류스타 박해진 역시 중국 작품으로 인지도를 쌓았다. 한국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2006)로 현지 관계자들의 눈에 띈 그는 ‘첸둬둬의 결혼 이야기’(2011), ‘또 다른 찬란한 인생’(2012), ‘연애상대론’(2014) 등 여러 편의 중국 드라마에 출연, 시청자들에게 꾸준히 얼굴을 비쳤다. 물론 앞선 배우들과 달리 한국 작품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별에서 온 그대’(2013)가 중화권에서 히트하면서 입지가 달라진 것. 박해진은 이를 발판 삼아 현지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며 대륙의 인기 스타로 급부상했다. 일례로 지난 5월 중국 우정국에서는 그의 얼굴이 새겨진 우표를 발행했다. ‘원몽중국(중국의 꿈을 이루다)’ 사업의 일환으로 박해진은 한류스타 최초로 중국 내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 100명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박해진. <사진=마운틴무브먼트>
‘왜’ 중국으로 가는가
설 자리 없는 한국 연예계·10배 이상의 출연료
이들이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국내에 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추자현의 경우, 지난 1996년 드라마 ‘성장 느낌 18세’로 데뷔한 후 오랜 시간 조연으로만 활동했다. 과감한 누드 화보와 노출 연기(영화 ‘사생결단’)를 선보이며 주목받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한국 연예계에서 그의 자리는 많지 않았고 결국 추자현은 중국 시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국 현지화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는 배우 홍수아. <사진=드림티엔터테인먼트>
홍수아 역시 중국 진출 계기에 대해 “연기가 하고 싶어서 갔다. 데뷔 이미지 때문에 섭외가 별로 없었다. 배우에게 연기할 수 있는 기회만큼 소중한 건 없기에 갈증이 심했다”고 밝혔다.
많은 개런티도 영향을 줬다. 중국 내에서 유명세를 타면 한국보다 회당 몇 배의 수입을 더 챙길 수 있다. 실제 추자현은 드라마 회당 출연료가 최고 1억원에 이른다. 국내는 물론 중국 진출 초기인 2005년과 비교해도 10배 이상 뛰었다. 홍수아는 한국에서보다 3~4배 남짓 많은 금액을 받는다.
쏟아지는 국내 아이돌 사이에서 뒤로 밀려난 채연은 대륙에서 여전히 인기 스타다. 지난 2008년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그는 그간 ‘니부재애아’, ‘원래아일직흔쾌락’ 등 중국어 음원을 꾸준히 발표했다. 이후 채연은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로 자연스레 활동 영역을 넓혔다. 특히 최근에는 영화 ‘벽력재현’에 캐스팅돼 국내에서 하지 못한 스크린 데뷔도 앞두고 있다. 채연의 1회 출연료는 이미 3500만원을 넘어섰고 광고료는 3억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인지도가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점도 이들의 중국 진출을 부추기는 요소다. 대중의 기호와 시장 상황이 다르다는 게 호재로 작용한다. 조금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SBS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멤버들의 중국 진출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런닝맨’ 수출 이후 현지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건 메인 MC 유재석이 아니라 이광수, 지석진이다. 특히 이광수는 현지 광고모델료가 4억원대에 달한다. 웨이보 팔로워 수 역시 813만명으로 신(新)한류스타로 손꼽히는 김우빈(538만), 지창욱(372만) 그리고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엑소-K(397만)를 뛰어넘었다.
어떻게 성공했는가
중국 대중정서를 흡수하라, 그리고 노력하라
이들이 한류스타로 입지를 다지지 않고도 중국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첫 번째 비결은 중국 작품에 출연, 현지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배우들이 대륙 진출에 성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 작품에 출연했다고 해서 100% 현지화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좋은 결과를 얻은 몇몇 배우를 살펴보면, 언어를 완벽히 습득해 중국 문화와 정서를 그대로 흡수하는 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추자현이 좋은 예다. 그는 코디네이터 등 개인 스태프까지 현지인으로 채용하는가 하면 촬영장에서는 중국어로 대화하려 애썼다. 추자현은 “연기는 표정, 행동, 목소리 모든 걸 필요로 하기에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먼저 언어를 배웠다. 언어를 익혀야 자주 소통하고 중국의 촬영 현장이나 그들의 문화를 배울 수 있다. 또 내가 언어를 잘 알아야 장면과 대사를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고, 그래야 중국 시청자들도 내 연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그룹 메이트로 음악 활동을 했던 이현재도 비슷한 케이스다. 가수 활동이 지지부진해지며 중국으로 간 그는 첫 영화 촬영에 앞서 중국어 대사를 모두 암기했다. 후시 더빙으로 만들어지는 현지 제작 특성상 타국 배우는 대부분 대사를 외우지 않지만, 그는 정공법을 택했다. 당연히 대중이 받아들이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이현재는 스크린 데뷔작 ‘소시대3-자금시대’(2014)로 한국인 최초로 중국 아이치이(愛奇藝) 주최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중국 연예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보통 그 나라 작품에 출연하는 걸 놓고 우리는 현지화라고 말한다. 중국 현지화에 성공한 배우들을 보면, 사실 중국에서 작품 운이 좋기도 했고 마스크나 분위기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지 연예인처럼 그곳에서 열심히 노력한 것이 가장 큰 점수를 딴 요인이 아닌가 한다. 그 점이 중국 대중의 마음까지 흔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내 인기, 한국에서도 이어질까
정일우·이다해·권상우 등 국내 활동 부진
안타깝게도 이런 중국 내 위상이 한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앞서 말한 대로 서로 다른 대중의 성향이 낳은 어두운 면이다. 국내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 이후 중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친 배우 정일우는 송중기와 예능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할 정도로 현지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국내 상황은 사뭇 다르다. 배우 이다해, 권상우 등도 중국에 비해 국내 활동이 두드러지지 못하다. 한국에서 배우로서 입지나 인지도가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중국 내 인기와 비교했을 때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나마 양국에서 모두 활발하게 활동 중인 스타는 장나라와 박해진 정도다. 출연한 중국 드라마 대부분이 시청률 1위에 오른 장나라는 2007년 이후 줄곧 주연 자리를 꿰찼다. 물론 국내에서도 꾸준히 주연급으로 활약하며 배우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해진 역시 올 초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을 히트시키며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기황후’(2013), ‘힐러’(2014)를 연이어 선보인 후 중국에서 드라마 ‘선풍소녀2’, ‘나의 남신’을 촬영 중인 배우 지창욱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주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대륙의 인기와 국내 인기가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중국 내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대중과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성공적인 중국 진출로 최근 국내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홍수아는 “한국 관계자들이 중국에서 출연한 주연작들을 보고 가능성을 본 듯하다. 그 덕에 국내 작품에도 주연급으로 캐스팅되고 있다”며 “선입견 없이 바라봐주는 중국 제작진 덕분”이라고 전했다.
중국으로 뛰어드는 톱스타들
이민호부터 손예진·김태희까지
연예계 ‘차이나 드림’과 현지화 성공 사례가 심심찮게 들리다 보니 역으로 이를 활용하는 스타들도 있다. 이미 국내외에서 최정상급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들이 직접 중국 영화, 드라마 시장에 뛰어들며 현지화에 시동을 건 것. 이들은 국내 작품이 아닌 중국에서 제작하는 작품에 출연하며 팬들과 직접 소통하기 시작했다. 한류스타도 인기 아이돌도 예외는 없다.
대표적으로 이민호는 차기 작을 중국 영화로 정했다. 그간 밀려드는 러브콜에도 국내 작품만 고집하던 그는 영화 ‘강남 1970’(2014) 다음 작품으로 정혼렁(鍾漢良), 탕옌(唐嫣)이 출연하는 ‘바운티 헌터스’를 택했다. 엄밀히 따지면 한·중 합작 영화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개봉한 ‘바운티 헌터스’는 중국 6000개 이상 스크린에서 선을 보였다. 국내에서 배우 겸 가수로 활동 중인 빅뱅 멤버 탑 역시 장바이즈(張柏芝)와 중국 영화 ‘아웃 오브 컨트롤(Out of Control)’에 출연, 현재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영화 ‘아웃 오브 컨트롤’ 기자회견에 참석한 빅뱅 탑(왼쪽)과 장바이즈. <사진=YG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는 한류 아이돌이 대거 포진된 소속사답게 엑소, 소녀시대, 에프엑스 등 소속 아티스트를 계속해서 중국으로 보내고 있다. ‘무신 조자룡’으로 중국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던 소녀시대 윤아는 스크린 데뷔작도 현지 작품으로 골랐다. 특히 윤아는 중국 영화 출연을 위해 비슷한 시기 제안받은 한국 드라마 출연을 고사하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 소속사 측은 “대본, 캐릭터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배우에게 잘 맞고 좋은 작품을 선택한 것”이라며 “중국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 모두 현지 상황에 맞춰 열심히 촬영에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드라마 ‘무신 조자룡’에 출연한 소녀시대 윤아. <사진=호남위성TV·SM엔터테인먼트>
이 외에도 배우 손예진(한·중 합작 영화 ‘나쁜 놈은 죽는다’), 김태희(드라마 ‘서성 왕희지’), 유인나(한·중 합작 영화 ‘웨딩 다이어리’), 이정재(한·중 합작 영화 ‘역전의 날’), 이현우(드라마 ‘가장 아름다운 첫 만남’)를 비롯해 아이돌 그룹 애프터스쿨 나나(드라마 ‘상애천사천년’), 씨스타 다솜(한·중 합작 영화 ‘이상한 동거’) 등 국내 최정상 인기 스타들이 한·중 합작 영화부터 현지 영화·드라마까지 다양한 작품에 출연,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 연예계 한 관계자는 “어느 순간부터 국내 인기 아이돌이나 한류스타들도 현지화를 노리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이미 인기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지화 성공 사례가 늘고 중국의 대우도 달라지다 보니 과거보다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출연에 응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본인들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 국내보다 더 많은 개런티를 받는 데다 그곳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당분간 이러한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