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부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사라진 소녀
목격자 “배 안에 감금돼, 선실 벽을 손톱으로 긁어 붉게 물들었다”
북한이 보낸 유골은 DNA 불일치...요코다 메구미는 어디에?
|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
1977년 11월 15일 한 소녀가 사라졌다. 소녀의 나이는 13세, 학교 배드민턴부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당시 일본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했고, 소녀의 부모는 증발하듯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딸을 그리워한 채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야 했다. 소녀의 부모가 딸의 실종이 단순한 사고가 아닌, 북한에 의한 ‘납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20년 뒤의 일이었다.
소녀의 이름은 요코다 메구미(横田めぐみ). 납치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다. “조선어 배우면 일본으로 보내 줄게” 약속 믿었지만 좌절
하굣길 실종사건으로 취급되던 메구미의 사건이 실은 북한에 의한 납치라는 사실을 밝힌 이는 1997년 망명한 북한 공작원 출신 안명진이었다. 그에 따르면 요코다 메구미는 니가타(新潟)현의 해안가로 끌려간 뒤 공작선에 태워져 40시간 동안 배에 감금돼 있었다. 안명진은 “요코다 메구미는 격렬하게 울부짖으면서 선실 벽을 손톱으로 긁었다”며 “북한에 도착할 때쯤엔 손이 뻘겋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고 했다.
요코다 메구미를 납치한 건 ‘신광수(辛光洙)’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또 다른 납북 일본인 피해자 하라 다다아키(原敕晁)를 납치한 인물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납북 피해자이자, 요코다와 북한의 숙소에서 함께 지냈던 소가 히토미(曽我ひとみ)의 증언에 따르면 “요코다는 배드민턴부 연습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집 근처 길모퉁이에서 남자에게 붙잡혀 끌려왔다고 했다”며 “너무 무서웠다고 회상했다”고 전했다.
메구미는 납치된 직후 “조선어를 배우면 본국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믿고, 납치 직후부터 1986년까지 북한에서 북한어를 배우며 공작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요코다는 소가 히토미와 7개월가량 평양에 함께 살다가 1980년부터 1984년까지는 다른 납북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요코다는 ‘일본에 돌려보내 주겠다’는 북한의 말이 거짓말임을 알게 됐고, 이에 좌절해 신경쇠약으로 두 차례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납북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1990년대 들어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자주 읊조렸다. 같은 납북 피해자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는 “돌아갈 때까지 조금 남았으니 참자고 다독여 줬다”며 “하지만 요코다 메구미는 결국 자살을 시도해 정신이 불안정하니 입원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그 준비는 우리 부부가 도와줬다”고 했다.
이후 메구미는 1986년 8월 한국인 김영남(金英南)과 결혼, 1987년 김은경을 낳았다. 이후 1993년 3월 평양 승호구역 49예방원에서 우울증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다 병원에서 목을 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북한 측의 설명에 따르면 말이다.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있는 어린 시절의 메구미. 조작된 유골, 진실은 어디에?
2000년대 초반 납북 일본인 문제가 대두되며 일본과 북한은 외교 마찰을 빚는다. 결국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일본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 김정을 국방위원장의 면전에서 납북 피해자 문제 사실 여부를 물었다. 김정일은 “북한 특수기관들의 조총련계 공작원들이 공모해 일본인 13명을 납치했다”며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후 북한은 제3차 북·일 실무자회의를 통해 메구미의 남편으로 알려진 김영남이 평양에서 가져온 메구미의 유골을 일본 측에 넘겨줬다. 하지만 DNA 검사에서 해당 유골은 메구미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골에선 복수의 DNA가 검출됐다. 게다가 북한의 설명도 허술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하스이케 가오루는 “1994년까지 메구미를 봤었다”고 증언했고, 소가 히토미의 남편이자 2004년 탈북한 찰스 로버트 젱킨스는 “49예방원은 외국인이 들어갈 수 없는 시설이었다”고 밝혔다. 다른 탈북자들도 1995년경 메구미가 김정일의 아들(김정은이나 김정남)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는 목격담을 진술했다. 무엇보다 북한이 요코다 메구미가 화장됐다고 밝힌 ‘오봉산화장소’는 1999년에야 건설됐다는 복수의 증언도 나왔다.
또 복수의 탈북자들이 함경남도 요덕수용소에 적어도 2003년까지 중년 일본인 여성이 수용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메구미가 2000년대 초반까진 생존했을 거란 주장이 나왔다. 북한은 이 같은 의혹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1993년에 사망했다는 발표를 1994년 4월로 정정하는 등 미심쩍은 행보를 보였다.
북한 공작원이자 18살 때부터 한국에서 간첩으로 활동하다 체포당해 전향한 김동식(金東植)은 “공작원 시절 연락부에 있을 때 가메이(亀井)나 다나카(田中)라는 이름을 쓰는 일본인 교사가 있었고, 이들은 공작원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었다”며 “일본에 돌려보내면 국가 기밀이 노출될 염려가 커서 ‘사망확인서’를 조작해 죽었다고 거짓말하면서 돌려보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자 이용수 씨도 “2004년 초 조선노동당 일본 담당자가 메구미 씨에 관해 ‘알아선 안 될 것을 너무 많이 알았기 때문에 돌려보내고 싶어도 돌려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며 “메구미 씨가 실은 살아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환자 입퇴원 대상’이 허술하게 ‘사망’으로 수정됨. 요코다 메구미의 김정은 생모설은 일본 내에서 꽤 많이 퍼져 있는 상태다. 13살 어린 소녀를 왜 납치했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인은 한국인과 용모가 비슷하면서 세계 각국으로 입국하기 쉬운 여권을 갖고 있다”며 “일본인으로 위장해 한국에 잠입하는 것이 꽤 획기적이라고 생각했고, 공작원에게 일본어를 가르칠 교육관이 필요해 일본인을 납치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메구미의 남편 김영남도 한동안 대남 공작원을 통솔하는 교육관으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교육관으로 쓰기 위해 납치했다는 설명은 메구미에겐 적용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교육관으로 쓰기 위해서라면 13살짜리 여중생보다는 좀 더 나이가 많은 대상을 납치하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선 어두울 때 납치해서 확인해 보니 어린애였고, 도로 풀어주기가 힘들어서 그냥 데리고 올라갔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배적인 견해는, 공작원이 마침 지나가던 메구미에게 자신의 정체가 노출됐다고 여겨 납치했다는 의견이다.
돌아오지 않는 메구미...살아 있을까?
메구미의 생사가 의문에 싸여 있다 보니, 일본 내에서는 음모론도 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김정은의 생모가 고용희가 아니라 요코다 메구미라는 설이다. 김정은(金正恩)의 ‘은’자가 일본에서는 ‘메구미’로 읽히기 때문에 등장한 음모론이다. 이 음모론에 따르면 요코타 메구미는 사실 일본 덴노(天皇·일왕) 가문의 후손으로 고귀한 혈통의 아내를 바라던 김정일이 납치해 북으로 데려왔고, 그 피를 이어받은 김정은을 낳았다는 것이다.
2014년 11월 한국 모 일간지가 요코다 메구미가 약물 과다투여로 사실상 북한에 의해 타살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해당 일간지는 “일본 정부가 이미 메구미의 사망 사실을 알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은밀히 요코다 메구미의 사망 배경을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메구미의 부모 요코다 시게루(왼쪽)와 사키에. UN 본부를 방문해 증언하는 메구미의 남동생
일본 정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일각에선 이 보고서 유출이 일본의 출구전략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즉, 요코다 메구미는 이미 사망했고, 일본 국민들이 받을 충격을 줄이기 위해 포석을 깔았다는 것이다. 히지만 납북자 문제 해결을 대대적으로 내걸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는 일이라 그러긴 힘들다는 시각이 많다.
수십 년간 딸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메구미의 부모 요코타 시게루(横田滋)와 사키에(横田早紀江)는 “자살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거짓말이며, 메구미의 남편과 딸을 인질로 잡고 죽은 것처럼 위장해 비밀 임무에 종사시키고 있다”는 생존설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메구미의 남은 가족들은 그녀의 송환을 위해 대대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모는 물론 남동생인 요코다 다쿠야(横田拓也)와 데츠야(横田哲也)도 납북 피해자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난 5월 4일 남동생 요코다 다쿠야는 미국 유엔본부를 방문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도 했다.
북한이 대화 자세를 보이고 있는 지금, 메구미의 가족들은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있다. 지난 5월 9일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세 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북한에서 석방됐다는 소식을 듣고 요코다 사키에 씨는 “미국인을 석방할 수 있다면 일본인 피해자도 석방할 수 있다”며 간절한 마음을 내비쳤다. 40년간 잃어버린 딸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한은 과연 풀어질 수 있을까. 다가오는 북·미 정상회담에 걸린 기대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