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부작용 크지 않다”...스마트워크 확산
노동법 등 제도적 정비 필요...훨씬 유연하게 근로
|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
# A전자회사 김모 과장은 벌써 한 달 넘게 재택근무 중이다. 업무용 노트북을 이용해 본인 인증만 거치면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것과 다름없이 일할 수 있다. 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 회의도 문제 없다. 무엇보다 출퇴근에만 왕복 3시간을 허비했는데 집에서 일하니 훨씬 여유로워졌다. 그에 따른 업무 효율성도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 지방의 중소기업 B사는 최근 화상회의 시스템을 새로 구축했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서울 사무소와 수시로 연락하고 회의를 해야 하는 B사로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처음엔 직접 대면이 아닌 화상회의가 낯설고 불편했지만 이 또한 적응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젠 오히려 화상회의가 편해진 듯도 하다.
코로나19가 기업 환경을 바꿔놓고 있다.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재택근무, 시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가 확산하는 추세다. 1997년 근로기준법 등을 통해 유연근무제가 등장한 이후 정부 및 사회 각계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하던 도입률이 코로나바이러스 하나에 탄력을 받는 모습이다.
유연근무제,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급증세
유연근무는 단시간 근로, 시차출퇴근제, 집중근무시간제, 요일근무제, 재택근무 등 육아 및 가사노동을 직장 일과 병행해 수행하려는 근로자를 위한 탄력적 근무 형태를 말한다. 우리나라 유연근무제도는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 제도적 기반은 마련돼 있으나 그 활용은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미흡한 단계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올 들어 유연근무제를 채택하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유연근무제 도입 중소·중견기업에 지원하는 간접노무비 신청이 최근 급증세다. 이 제도는 중소·중견기업이 시차출퇴근제, 재택근무제, 원격근무제, 선택근무제를 실시하는 경우 근로자 사용 횟수에 따라 노무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2016년 시작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화하면서 지원 절차를 간소화한 올해 2월 25일 이후 4월 3일까지 2374개 사업장에서 2만8283명의 근로자가 신청했다. 이는 올해 1월 1일부터 2월 24일까지 신청분 250개 사업장, 1909명 대비 사업장 수는 10배, 근로자 수는 15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신청 실적을 유형별로 보면 재택근무가 약 60%, 시차출퇴근 약 35%, 선택근무 약 4%, 원격근무가 약 1%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체 인력의 3분의 1이 교대로 재택근무를 시행 중인 정부 부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통계를 보면 공무원의 재택근무를 위해 필요한 정부원격근무서비스(GVPN) 가입자가 지난 3월 기준 8만6953명이다. 지난해 12월 말 1만9425명에서 올해 1월 2만454명, 2월 2만6388명이던 것이 3월 한 달에만 6만명 넘게 가입했고, 이후 4월 6일까지 6일간 2789명이 추가됐다.
코로나19, 우리 사회 변화의 물꼬 될까
코로나19 영향이 컸지만 이를 계기로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제를 상시화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일례로 고용노동부가 간접노무비와 함께 지원하고 있는 재택근무 인프라 구축비 신청이 지난 2월 25일 이후 57건이 몰렸다. 대개 그룹웨어 화상회의 시스템 도입과 관련된 신청이다. 중견·중소기업이 원격근무 인프라 구축에 투입한 비용의 50%(2000만원 이내)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재택근무 인프라 구축비 수혜 기업은 2018년 11곳, 지난해 28곳에 그쳤다.
재택근무에 들어간 직장인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생각보다는 부작용이 크지 않은 것 같다”면서 “근태나 성과 측정 등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재택근무를 포함한 유연근무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많다”고 했다.
이에 정부와 기업 모두가 유연근무제 확대에 대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코로나19의 전국적 감염이 지속되면서 재택근무 도입 및 운영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재택근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배포하기도 했다. 현장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쉽고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재택근무와 관련한 주요 질문과 답변을 담았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도 재택근무 상시화까진 아니더라도 스마트워크 등 새로운 근무체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에 따른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경영 위기감이 커지면서 최근 재택근무를 종료한 현대차와 SK, LG, 포스코 등이 그들이다.
스마트워크는 고정된 근무 장소, 정해진 근무 시간에 따라 일하는 방식 대신 IT 기기 등을 활용해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유연한 근무 방식을 뜻한다. 즉 직장에서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던 관행이 여러 가지 형태로 바뀌는 것으로서 이동·현장 근무(모바일 오피스), 재택근무, 원격사무실 근무(스마트워크 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주요 기업들은 화상회의나 원격근무가 가능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문서 없는 보고와 회의시간 단축 그리고 업무상황 상시 공유 등의 도입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재택근무 등 업무환경 변화를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인 역시 한 달 넘게 재택근무 중인 최 회장은 “연구와 데이터 축적을 계속해 체계적인 업무 시스템으로 정착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했다.
유연근무제 정착, 부작용 해소·제도 정비 필요
그렇다면 유연근무제가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까. 아직은 최근의 유연근무제 확산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시적인 조치로 여기는 분위기가 짙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를 계기로 비대면 접촉 근무가 우리 사회의 대세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 때문에 최근 들어 크게 부각돼서 그렇지 유연근무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며 “어찌 보면 이번 계기가 유연근무제 도입의 적기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 회사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전 세계 원격근무자가 2016년 전체의 38.8%에서 2022년에는 42.5%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카카오, 네이버 등 국내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을 중심으로 재택근무를 정식 근무 형태로 인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만 유연근무제 정착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적용 중인 나라들에서 그에 따른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기도 하고, 법·제도적 정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의 강승훈 박사는 “일단 좋든 싫든 많이 실험을 해본 건 사실이고 어느 정도 도입의 계기가 되긴 했을 텐데, 쉽게 정착될 것 같진 않다”며 “스마트워크 등은 도입했다가 취소하기가 어렵다. 시행했다가 취소했을 때 구성원들의 이탈이 있었다는 사례가 해외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집에서 일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을 경우 상황이 바뀌게 되면 문제가 되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한다는 얘기다. 또한 사람들이 협업을 하지 않는다거나 회의·출장 등을 거부하게 되는 케이스들도 있다는 전언이다.
강 박사는 “스마트워크를 도입한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모든 직무에 적용하긴 어려울 것 같고 당장은 혼자 해도 되는 직무 중심으로 이뤄질 것 같다”면서 “노동법 같은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 큰 방향으로는 지금보다는 훨씬 유연해질 것 같긴 한데 전면적으로 바뀌기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