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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체육觀’ 보여준 故 자크 로게 전 IOC 위원장

2021년 10월호

‘남다른 체육觀’ 보여준 故 자크 로게 전 IOC 위원장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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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기 기자 007@newspim.com


“쎄울, 코레아~!!”라는 1988년 올림픽 유치국 발표가 독일 바덴바덴에서 전해오자 서울은 환호로 가득찼다. 그때가 1981년.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였다. 사마란치 전 위원장은 외교관 출신으로서 올림픽에 스폰서십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방송중계권료를 비약적으로 키우면서 IOC의 재정 확대에 지대한 공과 함께 IOC가 부패의 온상이 되는 데도 주역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010년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1년 뒤 그의 후임자 자크 로게(Jacques Rogge) 위원장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피영창~”이라고 발표했다. 그때 로게 위원장은 이미 위원장 직을 10년째 맡아오고 있었다. 사마란치와 달리 로게는 2013년 위원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올림픽에서 약물퇴치에 앞장섰고 뇌물 근절에 힘써 ‘미스터 클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개최지를 발표한 ‘도쿄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8월 29일, 그는 모국 벨기에 데인저(Deinze)에서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로게의 후임 IOC 위원장 토마스 바흐는 “로게 전 위원장은 스포츠는 물론 선수들과 함께하는 것을 사랑했고 그 열정을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전했다”고 애도했다. 특히 바흐는 “로게는 IOC 현대화와 개혁을 이끈 뛰어난 위원장이었다”고 회고했다.

올림픽 선수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 IOC 수장이 된 로게는 1942년 5월 2일 벨기에 겐트(Ghent)에서 엔지니어인 아버지 찰스 로게와 어머니 수잔 로게 사이에서 태어났다. 5개 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언제 어디서나 선수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고향 겐트의 한 종합병원에서 정형외과장을 지내며 스포츠의학과 교수로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요트 국가대표로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1972년 뮌헨올림픽,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등 세 차례나 선수로 올림픽에 참가했고 럭비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1992년에 벨기에 보두앵 국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2002년에는 백작 작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IOC 위원장 재임 기간에 그가 가장 노력을 쏟아부은 분야는 도핑 퇴치와 뇌물 근절이었다. 부정부패, 약물, 승부 조작 등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했다. ‘미스터 클린’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이런 엄격한 태도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우사인 볼트가 남자 육상 100m 경기에서 우승하며 기뻐하는 몸짓을 보인 데 대해 그는 “경쟁 선수들을 좀 더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는 “전형적 꼰대”라는 별칭도 얻었다. 나중에 그는 “오해가 좀 있었던 것 같다”며 “우사인 볼트가 뛰기 전이나 후나 별 문제는 없었고 그저 경주하는 동안 그런 자세를 보이는 건 약간 무례하지 않은가 싶었다”고 해명했다.

남다른 체육觀 “스포츠는 스포츠”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할 때 외신들은 그가 인권단체 등으로부터 중국과 러시아 등의 인권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을 받았었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에 대해 로게 전 위원장이 국가 또는 정부와 올림픽 스포츠 간의 관계 정립에 대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평가하는 외신도 있다.

지난 1980년 벨기에 올림픽 대표팀을 이끈 로게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관련해 미국과 동맹국에게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도록 촉구할 때 그의 입장이 잘 드러났다. 그는 올림픽에 꼭 참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벨기에가 미국의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에 선수단을 이끌고 갔다. IOC 위원장이 된 이후에 그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이 체육인으로서 의무라 생각했고 스포츠 발전을 위해 정부와 협력을 해야 하지만 정치와 독립성은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보이콧 요구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 2007년 중국의 인권을 둘러싼 정치적 문제에서 나온 보이콧 요구였다. 그는 유력 외신 기고문에서 “인권단체 등이 베이징올림픽과 인권을 연관시켰고 또 그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올림픽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변화의 촉매제이고 IOC가 중국 정부에 대해 올림픽 준비에 필요한 것 이상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기대는 잘못된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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