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중국 선전증권거래소 상장 기념 타종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한 남성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검정색 작업점퍼와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이 남성은 중국 최대 민영택배업체 순펑익스프레스(順豐速運)의 왕웨이(王衛∙47) 회장이었다. 이날 거래소에 울려퍼진 타종 소리는 상장의 날개를 단 순펑의 새로운 도약과 왕웨이라는 신흥 부호의 탄생을 알렸다.
지난 2월 24일 선전증권거래소 상장 기념 타종식에 참석한 왕웨이 회장(사진 맨 오른쪽)과 ‘갑질 사건’ 해당직원(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진=바이두>
‘중국 택배업계 거물, 제2의 마윈(馬雲), 자수성가형 부호’. 이는 왕웨이에 대한 간략한 소개사다. 그중에서도 왕웨이의 이름 앞에는 ‘베일에 가려진’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많이 따라붙는다. 순펑 창업 후 23년간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는 지난 2011년 단 한 차례에 불과했을 정도로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려온 탓이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 좀 한다는 중국인들에게 왕웨이는 이미 유명 인사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진정한 갑(甲)의 품격을 지닌 리더’로 불린다. 순펑 택배직원이 한 운전자로부터 일방적 폭행을 당하는 ‘갑질 사건’이 발생했던 지난해, 왕웨이는 해당 직원의 편에 서서 직접 가해자의 사과를 받아내며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왕웨이는 상장 당일에도 그 해당 직원과 함께 타종식에 참여하며 ‘직원이 기업의 최고 자산’이라는 경영철학을 다시금 실천했다.
‘태풍을 만나면 돼지도 난다’는 말처럼 순펑은 택배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이끈 전자상거래 시대를 만나 업계를 주름잡는 최고의 기업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왕웨이의 뛰어난 사업가적 DNA와 직원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간미는 순펑의 성공을 이끌어낸 최고의 원동력으로 평가된다.
염색공장 ‘배달원’에서 ‘택배왕’이 되기까지
왕웨이와 택배의 인연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 부모를 따라 홍콩으로 건너간 왕웨이는 고교 졸업 후 염색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며 일찌감치 생계 전선에 뛰어든다. 당시 홍콩과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를 오가며 염색직물 샘플을 배송하는 일을 한 것이 순펑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창한 ‘남순강화(南巡講話, 남방 경제특구 개혁개방)’ 정책은 왕웨이의 인생이 큰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가 된다. 수많은 홍콩 공장들이 광둥성 중심의 주장삼각주(珠三角)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홍콩과 중국을 잇는 물류 업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 1년 뒤 왕웨이는 부친에게서 10만 홍콩달러를 빌려 친구 5명과 함께 광둥성 순더(順德)현에 순펑익스프레스(順豐速運)를 창업한다.
직접 소포를 짊어진 채 오토바이를 타고 홍콩과 중국을 오가는 배송사업을 시작한 왕웨이는 2~3일 걸리던 배송시간을 당일로 앞당기고 ‘박리다매’를 통한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하며 고객을 빠르게 늘려간다. 그 결과 3년 만에 20여 개 성과 직할시, 101개 지방급 도시(地級市)로 영역을 넓혔고, 1997년 무렵에는 선전과 홍콩 지역의 물류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순펑의 몸집이 어느 정도 불어나자 왕웨이는 전국구 영업망 확장을 위해 기업들과의 합작에 나선다. 당시 택배시장은 독점 경쟁이 매우 심했던 만큼, 왕웨이는 경쟁 업체들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고 전해진다. 외부 공식 행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항상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다닐 정도였다고. 현재의 순펑 제국을 일궈내기까지 적지 않은 위기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02년 각 합작기업들로부터 지분을 회수한 순펑은 전과정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국 유일의 민영 택배업체로 부상한다. 당시 모토로라가 순펑에게 물류 도급을 맡기려 했으나 왕웨이는 거액의 제안을 뿌리치기도 했다. 무거운 중량의 화물 배송으로 남길 수 있는 수익이 매우 적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순펑은 소규모 택배 배송을 중심으로 하는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하게 된다.
왕웨이는 2003년 위기를 또 한 번의 기회로 이끌어내며 뛰어난 사업가적 안목을 발휘한다. 당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발하면서 중국인들의 여행이 금지됐고, 관광객 급감으로 불황을 맞은 항공업체들은 앞다퉈 순펑과 항공기 임차 계약을 맺기 시작한다. 당시 인터넷 전자상거래 시장 확대 속에 택배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전용기 배달 서비스까지 도입하며 순펑은 속도 경쟁력을 높이게 된다.
전자상거래 시대가 배출한 ‘제2의 마윈’
왕웨이에게는 전자상거래 시대가 낳은 ‘제2의 마윈’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계와 함께 택배산업이 폭발적 성장을 이뤘고, 그 과정에서 마윈의 뒤를 잇는 왕웨이라는 재계 거물이 탄생한 것이다.
지난해 순펑의 택배업무 거래량은 25억8000만건으로 전년 동기비 31%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벌어들인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574억8300만위안, 41억8000만위안으로 각각 전년 동기비 19.5%, 279.55% 늘었다.
중국 택배시장은 순펑과 나머지 업체의 두 부류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순펑은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순펑은 직원 34만명, 운송차량 1만6000대, 항공기 30대, 해외영업점 1만2260여 개를 보유하고 있는 명실상부 중국 최대 택배업체다.
순펑은 지난 2월 24일 코드명 순펑홀딩스(順豐控股, 002352 SZ)로 선전증시에 입성, 성장의 ‘제2막’을 열었다. 상장 첫날 시가총액 2300억위안을 돌파한 순펑은 단숨에 선전증시 상장사 중 시총 1위 기업으로 올라섰고, 왕웨이의 몸값도 껑충 뛰었다.
중국 후룬(胡潤)이 발표한 ‘2017년 중국 부호순위’에 따르면 왕웨이의 자산은 1860억위안으로, 왕젠린(王健林) 완다그룹 회장과 마윈 알리바바 회장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이는 아시아 최대 부호로 이름을 날렸던 리카싱(李嘉誠, 1750억위안) 회장을 앞서는 수준이다. 왕웨이가 보유한 부동산만 216개에 달하며, 그중 대다수인 163개는 선전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왕웨이가 안정적인 성장 가도만을 달려온 것은 아니다. 순펑은 택배 서비스가 닿지 않는 곳곳으로 물류업무를 확대하겠다는 목적 아래 지난 2012년 온라인 쇼핑몰인 순펑베스트(順豐優選)를, 2014년에는 쇼핑몰과 편의점을 결합한 형태의 ‘헤이커(嘿客)’를 오픈하며 O2O 시장으로 진출한다. 2014년 5월 기준 전국에 들어선 헤이커는 518개에 달했다. 하지만 중국 소비자는 헤이커를 외면했고, 결국 지난 2013년부터 2015년 9월까지 약 3년간 총 16억600만위안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직원 최우선’ 경영, 90도로 인사하는 리더
왕웨이의 성공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확고한 경영철학, 직원 최우선주의, 독실한 불교 신앙이 그것이다.
왕웨이는 ‘거절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여기에는 실무경영 중심의 다소 외골수적인 그의 경영철학이 녹아 있다. 단적인 예로 왕웨이는 인터뷰를 안 하는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1년 4월 창업 18년 만에 인민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 최초이자 마지막이다. 순펑의 자체 내부간행물 ‘소통(溝通)’을 발행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단 한 번도 그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없다.
연말 우수직원 시상식에서 수상 직원에게 90도로 인사하는 왕웨이(왼쪽) 회장. <사진=바이두>
그는 광고 홍보도, 기업 상장도, 외부로부터의 자금 유치도 철저히 거절하며 오로지 회사 경영에만 매달려왔다. 최초 인터뷰 당시 왕웨이는 기업이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상장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연일 상장 거부 의사를 밝혔던 그가 올해 상장에 나선 이유는 최근 중국 택배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자본과 인력 공급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지난 2004년 글로벌 물류업체 페덱스가 40억~50억위안에 인수를 제안했을 때도 왕웨이는 이를 거절했다. 당시 왕웨이는 매출액 13억위안 정도였던 순펑의 기업가치가 50억위안까지 오를 것으로 호언장담했고, 그 후 10여 년 만에 60배로 불리는 데 성공했다.
‘직원을 기업 최대 자산’으로 여기는 그의 경영철학은 순펑 성공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그의 직원사랑은 지난해 4월 17일 발생한 ‘갑질 사건’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순펑 직원 하나가 택배 배송 중 검은색 승용차와 경미한 접촉사고에 휘말렸고, 운전자로부터 일방적으로 수차례 뺨을 맞은 것. 해당 직원이 속수무책으로 폭행을 당하는 영상은 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고,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공분을 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 회장은 자신의 SNS에 “나 왕웨이는 모든 이에게 말한다. 이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규명하겠다. 그렇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순펑의 리더가 될 자격이 없다”라는 글을 게시하며 해당 직원의 편에서 택배기사를 폭행한 사람을 비난하기에 이른다. 이 글은 20만명이 넘는 중국인들의 공감을 얻었고, 결국 택배 직원을 폭행한 남성은 처벌을 받고 해당 직원에게도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 사건은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왕웨이라는 기업인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된다.
순펑 상장 타종식에 참석했던 해당 직원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왕 회장과 함께 단상에 올라 종을 치며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눴고, 매우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매년 열리는 최우수 직원 시상식에서 수상 직원에게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 눈을 맞으며 도시락을 먹는 택배기사의 얘기를 꺼내며 눈물을 훔치는 인간미는 모든 경영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를 두고 마윈 회장은 “왕웨이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경영인”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순펑은 직원의 복지나 월급이 동종 업계와 비교해 월등히 좋은 것으로도 평판이 나 있다. 지난해 기준 순펑의 정규직 평균 월급은 8600위안, 비정규직은 6400위안 정도였다. 순펑 상장 당일에도 전 직원에게 13억위안에 달하는 훙바오(紅包·보너스)를 나눠주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왕 회장은 독실한 불교 신자로도 유명하다. 앞서 내부간행물 ‘소통’은 왕웨이의 사무실에는 불향(佛香)이 가득하고 9개의 불상이 놓여 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는 과거 순펑 사내 연설을 통해 “안하무인이었던 자신은 한때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어머니와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고 현재의 순펑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