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강도 상호관세가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를 결국 침체로 몰고 갈 것이란 우려에 ‘리세션 트레이드(Recession Trade)’ 가 주목받고 있다. 관세 패닉 투매로 미국 증시가 5년래 최대 폭락을 기록하고 뒤이어 아시아와 유럽 등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이 초토화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정책이 미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필요한 약’이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월가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급히 상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12개월 내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을 기존 35%에서 45%로 상향 조정했고, JP모간도 미국과 글로벌 경기 침체 확률을 60%로 전망하며 투자자들에게 방어적인 포트폴리오 전략을 권고했다. 투자자들도 경기 침체 시기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알려진 국채, 방어주, 금과 같은 자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리세션 트레이드’란
리세션 트레이드는 경기 침체 또는 둔화 국면에서 방어적인 수익을 추구하거나, 금리 하락 등 정책 반응을 선반영해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핵심은 침체가 예상되는 시점에 민감도가 낮은 자산에 대한 비중 확대이며 채권, 방어주, 배당주, 금이 대표적이다. 특히 장기물 국채에 대한 투자 비중 확대는 가장 보편적인 리세션 트레이드 전략으로, 경기 둔화→금리 인하→채권 가격 상승이라는 전형적인 수익 구조를 노린다. 경기 둔화가 예상될 때 투자자들은 주로 TLT(20년물 이상 장기 국채 ETF), IEF(7~10년물 중기 국채 ETF) 같은 국채 ETF에 주목한다. 실제로 4월 초 미국 국채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채권 가격은 반등 흐름을 보였다. 모간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경기 둔화 조짐과 더불어 정치 불확실성까지 감안하면, 향후 6개월간 TLT와 같은 장기국채 ETF는 방어력과 수익성을 모두 갖춘 자산”이라며 비중 확대를 권고했다.
XLV(헬스케어 섹터 ETF), XLP(필수소비재), XLU(유틸리티) 같은 방어주 관련 ETF도 매출의 경기 민감도가 낮아 불확실한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미국 대형 헬스케어 기업들은 고령화와 정책 수혜를 동반하며 구조적 성장까지 겸비하고 있다. 여기에 배당 수익률이 높거나 안정적으로 배당을 늘리는 기업들, 즉 VYM(고배당 ETF)이나 SCHD(배당 성장 ETF)도 시장 불확실성 국면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안이다. 실제로 관세 발표를 전후로 ETF 자금 흐름은 성장주에서 방어주, 기술주에서 고배당주로의 자금 이동을 보여줬다. 글로벌 ETF 리서치 기관인 EPFR에 따르면, 3월 말 이후 헬스케어와 필수소비재 ETF로의 유입액이 12주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반면 고베타 성장주 중심의 ETF에서는 순유출이 나타났다.
실물 자산인 금도 빠지지 않는다. 금은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자 시장 불확실성 국면에서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금값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이다. GLD(SPDR골드 ETF), IAU((iShares골드신탁 ETF) 같은 금 ETF, 또는 GDX(금광업체 ETF)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수요를 반영한다. 골드만삭스는 강력한 ETF 유입 및 지속적인 중앙은행 수요를 반영해 올해 말 금 가격 전망을 온스당 3300달러로 상향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2년 안에 금 가격이 350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모간스탠리 역시 연말 금 전망치를 3400달러로 높게 제시했다. 극단적 리스크 회피 전략으로는 초단기 국채나 머니마켓펀드(MMF) 등 현금성 자산으로의 이동이 있다. 이는 투자 기회를 위한 대기 자금 역할도 겸하며, 실제로 BIL 같은 초단기 국채 ETF는 고금리 수익과 유동성을 동시에 제공해 기관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 금과 현금은 시장이 방향성을 잃었을 때, ‘정지’ 대신 ‘준비’라는 태도로 접근하게 해주는 전략적 자산이다.
통화 시장에서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다. 특히 일본 엔화(JPY)와 스위스 프랑(CHF)은 전통적인 안전 통화로, 경기 침체 시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뚜렷하다. 일본은 막대한 대외 순자산을 보유한 채권국으로서 글로벌 불확실성이 고조되면 자국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에서 자금을 회수하면서 엔화 매수세가 강화된다. 여기에 평소 고금리 통화에 투자했던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반사적으로 엔화가 상승하는 효과도 나타난다. 스위스 프랑 역시 정치적 안정성과 신뢰도 높은 금융 시스템 덕분에 유럽발 위기나 글로벌 리스크 오프(위험 회피) 국면에서 강세를 보인다. 반면 미국 달러는 리세션 초기에는 여전히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수요가 몰리지만,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현실화되면 약세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월가에서는 “엔화 매수·호주달러 매도 전략” 내지 “스위스프랑 매수·유로 매도 전략” 같은 전형적인 리스크 회피 전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노무라 등 주요 투자은행들도 하반기 연준의 완화적 기조 전환이 가까워질수록 엔화와 프랑의 매력이 부각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는 국면에서 이러한 통화 전략은 리스크 헤지와 수익 창출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유효한 대응책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투자자들은 현재의 리세션 트레이드 환경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현재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해 있으며, 정책금리를 상당 기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연준 점도표와 연준 위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물가 목표(2%)를 향한 신뢰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경기 둔화를 감수하더라도 금리 인하에 소극적일 것임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도 쉽게 하락하지 않고, 리세션 트레이드의 핵심 축인 채권 매수 전략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방어주나 메가테크 같은 자산은 이미 전방위적 리스크 회피 수요에 의해 선반영된 상태여서, 진입 타이밍이 늦을 경우 기대수익률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더 나아가, 경기 둔화가 실제로 진행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경우에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리스크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금리도 못 내리고, 주식도 못 오르는 전통 자산 배분의 딜레마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리세션 트레이드를 고려한다면, 노동시장 급랭→소비 위축→인플레 둔화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신호가 동반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연준의 태세 전환(비둘기적 전환)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