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 3사가 불황 여파를 정면으로 맞으면서 시장 역성장의 충격파가 상당하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극장 영화 홀드백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관 총 관람객 수는 1억2312만5369명, 2023년엔 1억 2513만6265명이었다. 코로나 이후 3년, 기대했던 회복세는커녕 간신히 현상 유지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영화 개봉 편수가 줄고, 관객 수가 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시장이 역성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선 지난해 한국 영화계가 1000만 영화를 두 편 배출했으나 그 뒤로 흥행작이 나오지 못한 것을 주된 위기 요인으로 꼽았다. 상반기만 해도 2월 장재현 감독의 ‘파묘’, 4월 ‘범죄도시4’로 쌍천만 영화들이 포진하면서 하반기 극장가 회복세에 기대감을 띄웠지만 그게 다였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했다. ‘핸섬가이즈’, ‘베테랑2’, ‘탈주’, ‘파일럿’, ‘소방관’ 등 몇몇 작품만이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다.
멀티플렉스 3사의 위기는 무엇보다 실적에서 드러난다. CGV는 759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법인의 성과가 반영된 결과다. 국내 사업에선 7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롯데시네마도 국내 사업은 저조했으나 베트남 사업 호조로 간신히 3억원의 흑자를 내는 데 그쳤다. 메가박스는 해외 사업이 없는 탓에 13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코로나 당시 OTT 중심으로 콘텐츠 제작이 재편되면서 ‘지난해는 그 여파가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닥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영화 개봉이 미뤄지고 개봉작들도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하면서 영화 산업에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이는 제작 편수 급감으로 이어졌다. 예전에 비해서도, OTT 콘텐츠 시리즈와 비교해서도 볼 영화가 없으니 자연히 관객들도 영화관을 찾지 않고 있다.
극장 업계에선 ‘올해가 더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이끈 ‘파묘’나 ‘범죄도시’ 같은 작품의 개봉이 올해는 예정돼 있지 않다. 영화 부문에서 수년째 위기를 겪어온 CJ ENM에서도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 외에는 딱히 개봉 시기와 작품 라인업을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에선 강하늘·유해진 주연의 ‘야당’, 연상호 감독의 ‘얼굴’ 등을,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선 ‘전지적 독자 시점’ 등을 선보이지만 초대형 흥행작을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CGV 관계자는 “코로나 때는 좋아질 것이란 낙관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더 나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젠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야 할 때인 것 같다”면서 “극장과 배급, 제작 등 영화 업계와 정부가 모두 머리를 맞대는 등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롯데컬처웍스 측은 “관객들이 볼 만한 영화, 좋은 콘텐츠가 가장 시급하다”면서 “막혀 있는 투자나 경색된 자금줄을 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 때보다도 긴급한 상황이 아닐까 한다. 긴급 처방이 필요한 때라고도 생각된다”고 밝혔다.
영화 시장 역성장을 극복하기 위해선 관객 수를 늘리고 상생하기 위한 방안이 시급하다. 이에 업계에서는 “정부에서 별도 예산을 편성, K무비 발전과 확산을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영화업계는 지난 2020년부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성장세가 꺾인 뒤 타개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고갈된 영화발전기금 재원의 다양화 요구는 오래된 목소리다. 또한 OTT 플랫폼으로 직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극장 개봉작 홀드백 제도를 요청해 왔다.
홀드백 제도는 결과적으로 도입되지는 못했다. 지난해 논의는 활발했으나 이 과정에서 제작, 배급, 극장 등 다양한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 상충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하 부처의 관계자들은 필요성에 공감했다. 하지만 일부 배급사들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제도 시행에 제동이 걸렸다.
한 멀티플렉스 극장 관계자는 “업계에서도 대부분 제도 취지와 방향성에 대해선 공감하는 바가 있다”면서도 “일부 배급사가 홀드백 도입에 찬성하지 않으면서 제도화가 이뤄지지 못했다. 당장의 손해를 면하는 방식으로 눈앞의 이익을 좇기보다 영화 생태계 유지를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에도 홀드백 추진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지난해 흥행 잭팟을 터뜨린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비롯해 해외의 블록버스터 필름 제작, 배급사들 역시 비슷한 방향성을 가져가고 있다. 디즈니+ 같은 일부 자사 OTT 플랫폼이 아닌 경우 6개월에서 1년 넘게 홀드백 기간을 가져간다. 프랑스 같은 국가에선 자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극장 개봉작의 15개월 이상 홀드백 지침이 확고하다.
영화 입장권 부과금 원상회복 문제도 논란이 길었다. 영화발전기금 재원은 현재 100% 극장 티켓값에 포함된 3%의 비용으로 충당해 왔다. 지난해 정부에서 영화 입장권 부과금의 준조세 성격을 들어 본격 폐지를 논의했고 ‘소비자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로 올해부터 폐지됐다.
하지만 지난 2월 27일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을 되살리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원상복구됐다. 부과금이 폐지된 이후 정부에서 의도했던 티켓값 인하 효과가 전무했기 때문에 시행 과정에서의 논란과 비판만 남기게 됐다.
영화 부과금 원상회복과 별개로, 별도 예산을 편성한다면 어려운 영화계와 K무비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시각도 있다. 영화발전기금의 재원이 영화 티켓 판매에서 나오는 부과금에만 의존하면서 코로나 때 관객 수가 급감하자 큰 타격을 입었던 경험이 반영된 입장이다. 영화 종사자들은 최소한의 정부 예산을 편성해 안정적으로 영화계를 지원할 수 있는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전체 예산이 600조원이 넘는다. 그 가운데 0.01% 정도 되는 예산이라도 영화계, K무비의 발전을 위해 안정적으로 집행하고 필요한 곳에 사용된다면 어떨까 싶다. 숨통이 트이는 이들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급감한 관객 수 회복과 영화업계 전체가 상생하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영화 관련 별도 예산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