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계에 ‘웹툰 열풍’이 일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와 디즈니+, 그리고 토종 OTT 티빙이 웹툰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한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에 발 벗고 나섰다. ‘D.P.’, ‘지금 우리 학교는’을 비롯해 최근에는 ‘무빙’, ‘중증외상센터’가 큰 호응을 얻으며 성적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대세는 웹툰 IP...영상화되는 웹툰
드라마계에서 웹툰을 기반으로 드라마를 제작한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2018년 연재 당시 토요웹툰 상위권에 머물며 인기를 끈 ‘금수저’는 MBC에서 동명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OTT가 국내에 출범하고 시장이 커지면서 OTT업계에서 웹툰 IP를 기반으로 한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에 몰두했다.
그중 웹툰 원작 시리즈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곳이 바로 글로벌 OTT 넷플릭스다. 이들은 좀비 학교물 ‘지금 우리 학교는’과 군무 이탈자 체포조(D.P.)의 이야기를 그린 ‘D.P.’ 시즌 1·2를 비롯해 ‘사냥개들’, ‘마스크걸’, ‘지옥’, ‘스위트 홈’, ‘더 에이트 쇼’ 등 웹툰 원작 시리즈를 통해 높은 성적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특히 지난 1월 공개된 동명 웹툰 원작 ‘중증외상센터’는 공개와 동시에 엄청난 흥행을 이어갔다. 작품은 전장을 누비던 천재 외과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유명무실한 중증외상팀을 심폐 소생하기 위해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중증외상센터’는 다른 메디컬 드라마와 달리 러브라인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며, 제목처럼 중증외상센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의사와 병원의 갈등,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외과전문의에 중점을 두면서 통쾌한 이야기로 인해 1월 27일부터 2월 2일까지 1190만 시청 수(시청시간을 작품의 총 상영시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공개 10일 만에 글로벌 TV쇼 (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또 2주째 ‘대한민국의 TOP10 시리즈’ 1위를 비롯해 태국과 대만, 말레이시아, 칠레, 페루 등 전 세계 17개국에서 1위를 석권했다. 뉴질랜드, 이탈리아, 프랑스, 인도, 일본 등 63개국에서도 TOP10 리스트에 오르며 신드롬급 인기를 자랑했다.
디즈니+에서는 강풀 작가의 원작으로 단숨에 대세 OTT 반열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디즈니+는 2023년 초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위험에 맞서는 초능력 히어로물 ‘무빙’을 선보이며 한국 진출 3년 차에 효자 작품을 만들어냈다.
‘무빙’은 공개 당시 전 세계 디즈니+와 훌루(Hulu)에서 글로벌 히트작으로 등극했으며, 그해 전 세계 디즈니+ 로컬 콘텐츠 부문 전체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제29회 미국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최우수 외국어 드라마 부문에 노미네이트됐고 2023 아시아 콘텐츠 어워즈 & 글로벌 OTT 어워즈, 제59회 대종상영화제 시리즈 2개 부문, 제60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최다 수상, 제3회 청룡시리즈어워즈 최다 수상 등 다양한 시상식에서 수상 행렬을 이어가며 화제성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받기도 했다.
히어로물 ‘무빙’으로 성공 궤도에 오른 디즈니+는 강풀 작가의 또 다른 웹툰 ‘조명가게’로 연타 흥행에 성공했다. ‘조명가게’는 강풀 작가의 ‘미스터리 심리 썰렁물’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유일한 곳인 조명가게에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누적 조회수 1.5억 뷰를 돌파한 웹툰이다. 디즈니의 글로벌 흥행작이자 강풀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무빙’. [사진=월드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강풀 작가는 ‘무빙’에 이어 ‘조명가게’ 시리즈에 작가로 참여해 극본 집필을 맡았다. 원작 작가가 직접 극본을 맡다 보니 더욱 탄탄한 스토리 덕에 ‘조명가게’는 공개 후 12일간 전 세계 시청 기준 2024년 공개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최다 시청, 디즈니+ 출범 이후 공개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두 번째 최다 시청을 기록했다.
웹툰 원작을 기반으로 한 시리즈가 신드롬급 인기를 얻으면서, 토종 OTT도 이에 질세라 앞다퉈 웹툰 IP를 활용한 시리즈를 제작했다. 먼저 tvN은 지난해 국극을 배경으로 한 동명 웹툰 ‘정년이’로 자체 최고 시청률 16.5%(닐슨, 전국 유료플랫폼 가입 기준)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이후 ‘그녀는 흑염룡’을 공개했고, ‘견우와 선녀’ 역시 공개를 앞두고 있다.
티빙은 ‘방과 후 전쟁활동’에 이어 지난 2월 ‘스터디 그룹’으로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 작품은 원작 웹툰의 만화적이고 쾌활한 맛을 살리며 빠르고 리드미컬한 액션의 타격감으로 ‘고교 액션물’이라는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했다. 또 신예들의 열연에 입소문을 탄 이 작품은 티빙 주간 유료가입 기여자 수 1위를 기록하며 신규 이용자들의 유입을 이끌어냈다. 티빙에서 선보인 웹툰 원작 ‘스터디그룹’ 포스터. [사진=티빙]
웹툰까지 정주행...시리즈·원작 동시에 성공
토종·글로벌 OTT뿐 아니라 MBC, 채널A, tvN 등 다양한 지상파, 종편·케이블에서도 웹툰 IP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 제작을 연달아 선보이고 있다. 다수의 웹툰 원작 시리즈가 작품성, 화제성, 흥행성 측면에서 모두 호평을 받자 원작도 재조명되고 있다.
강풀 작가의 ‘조명가게’는 지난해 12월 시리즈 5, 6화가 공개된 후 15일까지 추이를 집계한 결과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의 원작 웹툰 조회 수가 187배, 매출은 159배가 늘었다. 글로벌 흥행을 견인한 ‘무빙’ 역시 ‘조명가게’로 인해 같은 기간 집계 기준으로 조회 수 2배, 매출은 3배로 늘어났다.
또 ‘중증외상센터’의 경우 넷플릭스 시리즈 공개 후 10일(1월 24일~2월 2일)간 웹툰 국내 합산 조회 수가 넷플릭스 시리즈 티저 공개 전 10일(12월 29일~1월 7일) 대비 68배 증가했다. 웹툰의 영상화가 확대되면서 IP를 제공한 원작의 수요가 다시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지금까지 영상화로 제작된 웹툰은 누적 조회 수가 ‘억’에 달하는 작품들이다. 인기가 보증된 웹툰의 경우 원작 팬을 자연스럽게 시리즈로 끌어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작 팬의 경우 시리즈와 원작의 차이점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생기고,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시청자의 경우 이미 탄탄한 스토리를 보장받은 원작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작품 선택에서 실패를 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솟는 제작비로 작품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업계에선 웹툰이란 돌파구가 생긴 셈이다. 웹툰의 경우 흥행이 보장되다 보니 성적, 흥행 면에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아시아 10개국 넷플릭스 TOP10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던 시리즈 ‘D.P.’의 원작 ‘D.P 개의 날’을 집필한 김보통 작가는 “웹툰의 방대한 이야기를 4~8부작의 시리즈로 압축해 만들다 보니 담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주된 이야기가 공개된 후 프리퀄, 스핀오프, 영화 등 후속작을 만드는 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웹툰의 경우 그림과 글이 다 나온 작품이다. 보통의 작품을 제작하려면 스토리 라인 구축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에 영상화하기에 용이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웹툰) 작가는 직접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기 때문에 원작 작가가 극본에 참여해 더욱 빠른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 또한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웹툰 원작이 드라마나 시리즈, 영화에서 원작으로 자리 잡은 건 이제 꽤 됐다. 이전에는 소설이나 웹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면 이제는 웹툰인 셈”이라며 “OTT, 드라마계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웹툰이나 웹소설의 IP를 경쟁적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