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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왜 ‘거미’ 조각에 빠져드는 걸까

2025년 03월호

세계는 왜 ‘거미’ 조각에 빠져드는 걸까

2025년 03월호

글로벌 미술계 ‘여성주의 미술’ 강세 속
페미니즘미술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 집중 조명
8월 호암미술관, 9월 국제갤러리서도 회고전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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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 설치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형 거미 조각상.


2025년은 전 세계적으로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1911~2010)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아시아 각지에서 부르주아의 대규모 회고전이 잇따라 열려 ‘20세기 최고의 여성미술가’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뜨거울 전망이다.

일본 도쿄의 최대 사립 미술관인 모리미술관은 지난해 9월 루이스 부르주아의 회고전을 개막해 해를 바꿔 1월 말까지 성황리에 개최했다. 모리미술관의 부르주아 회고전 타이틀은 ‘나는 지옥을 여러 번 다녀왔다. 하지만 그곳은 황홀했다. (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였는데 이 같은 기이한 제목은 고통과 절규, 환희를 오가며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양가적으로 직조해낸 부르주아의 예술 세계를 압축한 것이다. 일본에서의 부르주아 전시는 무려 27년 만이어서 일본 전역에서 구름 같은 관람객이 몰려든 바 있다.

스위스계 톱 갤러리인 하우저앤워스는 홍콩 지점에서 ‘루이스 부르주아: Soft Landscape’라는 제목으로 오는 3~5월 부르주아 전시를 연다. 그런가 하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현대 미술관인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은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형 거미 조각 ‘마망(Maman:엄마)’을 미술관 전면에 다시 설치하기로 했다. 영국 정부는 과거 화력발전소였던 건물을 뮤지엄으로 개축해 2000년 문을 열었는데, 거대한 동굴 같은 터빈홀을 채울 작가로 미국의 부르주아를 지목했다. 이에 작가는 높이 9m가 넘는 초대형의 거미 조각 ‘마망’을 설치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작품”이란 반응이 쏟아지게 했다. 이미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꼽히던 부르주아였지만 이 파워풀한 거미 조각으로 현대미술의 지축을 흔들어놓고 말았다. 그리고 25년이 흘러 테이트모던은 부르주아의 ‘마망’을 최초로 선보였던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되살리고자 미술관 전면에 검은 거미를 다시 세우기로 했다.

런던에서 부르주아의 검고 임팩트 넘치는 ‘거미’ 조각이 공개된 후 전 세계 미술관들은 이 조각을 수집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결국 높이 9m의 ‘마망’ 오리지널 버전은 캐나다 온타리오미술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일본 도쿄 롯본기힐스 모리미술관, 한국 리움미술관에 컬렉션됐다. 부르주아재단의 소장용 에디션(AP)을 제외한 ‘마망’의 에디션은 5점이어서 이제는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작품이 됐다.

물론 부르주아의 ‘거미’ 조각은 사이즈에 따라, 형태에 따라 여러 버전이 있다. 그중 ‘마망’과 똑같은 형상의 작품으로 높이 3m의 중간 크기 조각은 한국의 신세계백화점 이명희 회장이 수집해 신세계 본점 옥상정원에 수년간 설치한 바 있다(이후 제프 쿤스의 매끄러운 대형 조각으로 대체됐다). 이 중간 사이즈의 ‘마망’ 또한 현재는 수집하겠다는 미술관과 기업은 많으나, 팔겠다는 곳은 거의 없어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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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거미 조각 앞에 선 부르주아. 98세로 숨지기 직전까지 작업했다.


아픈 개인사 직시해 미술로 풀어낸 ‘고백예술’

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프랑스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급 태피스트리를 제작, 복원하는 공장을 운영했던 루이스의 아버지는 스타일리시한 멋쟁이로, 끝없이 외도를 일삼았다. 루이스는 자신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며 10년간 함께 살던 영국인 가정교사가 아버지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를 묵인한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깊은 고통에 빠져들게 됐다.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와 번뇌 속에서 부르주아는 오랜 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런 다음 불안, 억압, 성과 젠더 같은 이슈를 다양한 예술적 방식으로 미친 듯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아버지와 남성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을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으로 표현한 ‘아버지의 파괴’(1974) 등이 있다. 또 자식들을 위해 가정을 깨지 못했던 어머니의 이른 죽음은 1999년 연약하지만 알을 품은 채 끈질긴 힘을 뿜어내는 거미 조각 ‘마망’을 탄생하게 했다. 부르주아는 “내 작품은 정신분석의 한 과정”이라고 토로했는데 트라우마와 불안, 배신과 외로움을 테마로 한 그의 작품은 이후 ‘고백예술’로 지칭되기도 했다.

원래 부르주아는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했지만 끓어오르는 예술혼에 이끌려 미술로 전향했다. 1938년 미국인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주해 1940년대 후반부터 조각에 집중했다. 1960~70년대 페미니즘 열풍과 맞물려 주목받기 시작했고 198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마침내 개인전을 가졌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잇따라 가진 부르주아는 유행 사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며 다양한 작업을 쏟아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개인사를 파고들어 보편적인 이야기로 끌어올림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거울처럼 자기의 내면을 비춰보도록 한 점은 압권이다. 추상표현주의, 페미니즘미술 등으로 작업을 규정 지으려던 미술사학자들의 시도를 무색하게 할 만큼 폭넓은 주제와 매체, 조형적 형식을 넘나든 부르주아는 ‘20세기 조각계의 외로운 늑대’라는 별칭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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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호암미술관이 개최하는 루이스 부르주아 전에 출품될 대표작 ‘마망’. 1999. [사진=호암미술관]


호암미술관, 작가가 남긴 글과 작품 나란히 전시

한국에서도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규모 전시가 8월과 9월에 막을 올린다. 특히 국내에서는 프리즈·키아프가 열리는 8월 말~9월 초에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한 해 가장 공들인 기획전을 선보이는데, 국내 대표 미술관과 갤러리가 모두 부르주아를 선택해 화제다. 용인의 호암미술관과 서울 삼청로의 국제갤러리 두 곳에서 부르주아의 개인전이 동시에 열린다.

삼성문화재단은 호암미술관에서 오는 8월 부르주아의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인다. 호암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9m 높이의 ‘마망’(1999)과 3m 높이의 작은 ‘마망’을 비롯해 ‘밀실 XI(초상)’ 등 리움이 컬렉션한 부르주아의 주요작이 망라된다. 또 그동안 접할 기회가 없었던 부르주아의 초기 회화 등 총 90여 점이 미술팬에게 공개된다. 미술관은 “부르주아의 일기와 정신분석 일지 등 작가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글을 함께 전시해 작품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국제갤러리는 9월 초 부르주아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가족, 모자 관계, 커플 등 다양한 관계를 변주하며 표현한 드로잉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가 꾸며진다.

부르주아는 2010년 98세로 숨지기 전까지 작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의 대표작인 ‘거미’ 조각은 물론 독특하고 탄탄한 작품들은 아트마켓에서 최고의 블루칩으로 꼽히며 대기 고객이 줄을 이을 정도다. 말년에 한 기자가 ‘성공’에 대해 묻자 부르주아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성공? 그게 뭔지 난 모르겠어요. 내가 성공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아니라 ‘진정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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