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하반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에 걸쳐 인하했지만 대출이자 부담 완화가 절실한 서민들은 그 덕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은행권의 예·적금 금리도 내렸지만, 대출금리의 경우 금융당국의 서슬 퍼런 가계대출 관리 압박에 은행권이 쉽사리 내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에 더해 계엄과 대통령 탄핵 국면 등 불안정한 정국 영향으로 환율과 국고채가 들썩이면서 계엄 전 증권가에서 나왔던 새해 추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희박해지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추가 기준금리 인하는커녕 대출금리가 치솟아 우리 경제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최지환 기자]
한은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한 2024년 12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요 정기예금 상품 최고 금리는 12월 9일 은행연합회 공시 기준 연 3.15~3.55% 수준으로, 한은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지난 10월 12일(3.35~3.80%)과 비교하면 하단이 0.20%p, 상단이 0.25%p 낮아졌다.
반면 대출금리 변동은 지지부진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5대 은행의 분할상환 방식 만기 10년 이상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평균 금리는 4.25~4.46%인데, 첫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된 10월 말(4.02~4.15%)과 비교하면 오히려 오름세다. 이에 5대 은행의 예대금리차도 평균 1.04%p로, 8월(0.57%p)부터 석 달 연속 상승했다.
수신금리는 하락하고 대출금리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실제 금융소비자들로서는 금리 인하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전만 해도 증권가에서는 올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적어도 두 차례는 더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과 내란죄 수사 등 거센 ‘계엄 후폭풍’에 이마저도 향방이 묘연해졌다. 불안한 정국에 따른 원/달러 환율 급등이 가장 큰 복병이다. 금리를 내리면 미국과의 금리차가 벌어지면서 달러 유출이 나타나고 환율이 더 오를 우려가 있다. 한은도 지난해 10, 11월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까지 환율을 최대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아울러 불안한 정국은 최종적으로 대출금리를 밀어올릴 공산도 크다.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로 국고채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가 올라가면서 이에 연동된 은행채 금리와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선례상 불안정한 정국에 따른 고금리는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결국 경기 악화를 불러온다. 실제로 한은에 따르면 2016년 10월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시발점이 된 최서원 씨(당시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가 촉발된 때 102였던 소비자심리지수는 2016년 12월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을 때 94.1까지 떨어졌다. 이후 이듬해 1월 93.3으로 소폭 반등했고, 그해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가 이뤄짐으로써 4월 101.2로 회복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치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이 장기화하면 유출되는 자금이 많아져 금리와 환율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과거 외환 위기 및 글로벌 금융 위기 때에도 금리가 치솟은 바 있다”며 “환율을 감안하면 기준금리 인하에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출금리 하락을 위한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 변경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연말 은행권은 금융당국이 요구한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맞추느라 준거금리 중 하나인 가산금리를 내리지 못했다. 가계대출 총량이 다시 설정되는 올해 초에는 가산금리를 인하할 가능성도 있지만, 금융당국이 올해부터는 2금융권까지 가계대출 취급계획을 연간·분기·월별로 제출받겠다는 한층 강화된 관리 계획을 밝힌 터라 급격한 인하는 어려울 전망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소득은 일정한 상황에서 갚아야 할 이자는 많다 보니 소비가 위축되고 경제 침체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라며 “탄핵 정국으로 경기 침체가 더욱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상태에서는 대출금리를 조속히 내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 살리기다. 금융당국도 가계부채 관리와 같은 미시적인 문제보다 국가경제 위기 탈피를 위해 움직여야 할 시점”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