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승리로 위험자산 선호 증가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 전망
SEC 위원장 해임 예고로 기대감 증폭
| 김현영 기자 kimhyun01@newspim.com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가 확정된 직후 미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고 미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는 등 ‘트럼프 트레이드’가 확연한 가운데 금값은 크게 하락했다. 반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가격은 사상 최고치로 고공행진을 펼쳤다. 이처럼 명암이 엇갈리는, 대표적인 안전자산 금과 대표적인 위험자산 암호화폐의 앞날이 트럼프 2기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공약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불확실성 해소로 안전자산 수요 약화
그간 미국 대선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미국 밖에선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됨에 따라 전통적 안전자산인 금의 매력이 높아졌다. 국제 금값은 10월 30일 트로이온스(1ozt=31.10g)당 2801.8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쓰며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했다. 그러다 지난 11월 6일 47대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로 기울자 트로이온스당 2700달러 선 아래로 한참 떨어져 3주 만에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개표 결과 초박빙일 거란 예상을 깨고 트럼프의 완승이 확실해지면서 선거 관련 불확실성이 단숨에 해소됐고, 중동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빠르게 해결하겠다는 ‘스트롱 맨’ 트럼프의 공약으로 글로벌 지정학적 위험이 누그러질 것이란 기대감을 키웠다. 트럼프는 러-우 전쟁과 가자 전쟁의 장기화를 바이든 행정부의 실책으로 지적하며 재선에 성공하면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에 더해 트럼프의 경제 공약이 달러 강세를 유발할 것이란 관측에 달러 매수세가 강해지고 달러 가치가 상승한 것도 금값 하락의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달러 강세가 금값 하락 유발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이 가시화하자 달러 강세를 점친 외환 투자자들이 달러 매수에 몰려들면서 11월 6일 주요 통화 대비 미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105.44까지 치솟았다. 이는 7월 3일 이후 4개월 만에 최고치다.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 공약을 이행하려면 연방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널리 예상되는 가운데 ‘트럼프 2.0 행정부’ 출범에 앞서 달러를 확보하려는 매수세가 거셌다.
이미 대선 유세 기간부터 ‘법인세 감면’에 집중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 공약이 ‘법인세 인상’을 내건 카멀라 해리스 현 부통령의 공약보다 재정 부담을 키울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재정 부담이 예상되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과 공격적인 관세 정책이 달러 강세를 불러올 것이란 전망이 강화되면서 달러 가치가 올랐다.
달러 가치 상승에 따라 상대적으로 비싸진 금에 대해서는 매도세가 일면서 국제 금값은 한때 트로이온스당 2660달러 선마저 무너졌다. 달러로 거래되는 금값은 통상 달러가 상승하면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 다른 통화 보유자들에겐 금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지기 때문이다.
무역 마찰 시 금값 상승 가능성
한편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이 무역 마찰을 빚으면서 안전자산 선호도가 다시 높아지면 금값이 상승 추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10~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고, 특히 중국에 대해선 60% 이상의 고관세를 예고하며 ‘무역 전쟁’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번 대선 결과로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걷혔지만 글로벌 금융 정세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미국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금 보유량을 늘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다시 금 수요 증가와 금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동 긴장과 금리 인하가 금값 견인 전망
주요 금융기관들은 향후 6~12개월 내 금값이 트로이온스당 2900~3000달러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씨티그룹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앙은행들이 적극적으로 금을 사재기하면서 금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6~12개월 금값 전망치를 트로이온스당 3000달러로 제시했다.
골드만삭스도 전 세계적인 금리 인하 추세와 여전한 지정학적 위험, 중앙은행들의 수요 증가 전망 등을 바탕으로 내년 초 금값 전망치를 2900달러로 제시했다. UBS는 재정적자 확대, 감세 정책, 관세 인상 등에 대한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을 고려할 때 내년 3분기 말까지 금값이 29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금광 기업 및 ETF 주가 하락
금값 하락 여파로 뉴욕증시에 상장된 금 채굴 기업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가격도 동반 하락했다. △뉴몬트(종목코드: NEM) △바릭골드(GOLD) △애그니코 이글 마인스(AEM) △알라모스 골드(AGI) △골드필드(GFI) 등 주요 금광업체 주가가 11월 6일 2.4~3.8% 하락했고, 금 선물 ETF인 ‘SPDR 골드 셰어스(GLD)’와 ‘아이셰어즈 골드 트러스트(IAU)’가 3%대 낙폭을 보였다.
금광주로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ETF 중에서는 ‘밴엑 골드 마이너스 ETF(GDX)’와 ‘밴엑 주니어 골드 마이너스 ETF(GDXJ)’, ‘아이셰어즈 MSCI 글로벌 골드 마이너스 ETF(RING)’가 각각 3.4~3.7% 하락 마감했다. 이들 주식과 ETF는 금 가격 상승에 따라 방향을 바꿔 오를 수 있는 종목들이기도 하다.
암호화폐 규제 완화 기대감 상승
한편 재선에 성공하면 미국 정부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전략적으로 비축하고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암호화폐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 덕분에 11월 6일 암호화폐 대장 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7만6000달러 선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업계는 트럼프 당선인이 그간 암호화폐 업계 단속을 주도해온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게리 겐슬러를 즉각 해임하겠다고 공언한 데 주목하며, 암호화폐 유권자 시대가 도래했다고 반기는 분위기다.
비트코인 ETF 및 채굴업체 주가 급등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종목코드: COIN) 주가가 31% 폭등하는 등 암호화폐를 직접 채굴하거나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기업, 또 암호화폐에 대거 투자한 기업의 주가가 일제히 고공행진을 펼쳤다. 코인베이스와 마찬가지로 암호화폐 거래를 지원하는 로빈후드 마켓츠(HOOD)가 19.63%,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으로 알려진 마이크로스트래티지(MSTR)가 13.17% 급등 마감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도 트럼프의 재집권 소식을 반겼다. 블랙록이 운용하는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와 그레이스케일이 운용하는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트러스트(GBTC)’가 각각 9.8% 상승 마감했다. ‘피델리티 와이즈 오리진 비트코인 펀드(FBTC)’와 ‘아크 21셰어스 비트코인 ETF(ARKB)’도 9.7~9.9% 뛰는 등 이날 상당수 비트코인 ETF가 52주 최고가 또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트럼프 “미국을 암호화폐 수도로”
한때 비트코인 회의론자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암호화폐 업계에 친화적인 여러 공약을 내세우며 비트코인 지지자로 돌아섰다. 지난 7월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는 “미국을 글로벌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고 비트코인을 전략 준비 자산으로 매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비트코인 준비금을 조성해 미국 정부가 공급량을 확보한다는 공약으로 풀이됐다.
공화당이 백악관과 의회 상·하원 모두를 장악해 정치적 걸림돌이 해소되며 친암호화폐 정책 추진에 한층 탄력이 붙고, 새로운 트럼프 행정부의 거시경제적 정책 변화가 암호화폐 수요를 뒷받침할 것이란 기대감도 번지고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 당선인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관세 인상은 궁극적으로 기업 수익에 타격을 입히고 정부 적자를 확대할 우려가 있다.
그레이스케일은 11월 6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장기적으로 재정 적자가 발생해 미국 달러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고, 투자자들은 이러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비트코인이나 금 현물로 눈을 돌릴 수 있다”면서 암호화폐 규제 완화 전망 외에도 “트럼프 당선인의 재임 기간에 예상되는 거시경제적 정책 변화가 비트코인 수요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