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머니 이탈 가속→수출주 쏠림 완화”
엔화 ‘나쁜 약세’ 해소, 내수주에 ‘기회’
일본 증권사, 서비스·소매업 증익 기대
| 이홍규 기자 bernard0202@newspim.com
최근 일본 주식시장의 주춤한 시세를 기회로 삼아 일본 내수주에 투자할 것을 권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종전부터 존재했던 내수주의 실적 향상을 둘러싼 기대감은 불변으로 판단되는 가운데 주식시장 시세 하락의 동인으로 지목받는 엔화 가치의 반등이 되레 내수주에 우호적인 요인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관점에서다.
바겐 세일 기회
일본 내수주가 ‘바겐 세일’ 상태에 있다며 매수를 적극 주장한 인물은 자산운용사 컴제스트에서 그로스재팬펀드를 공동 운용하는 리처드 케이 펀드매니저다. 그는 일본 주식시장의 시세 하락을 계기로 해외 ‘핫머니 이탈’이 가속돼 시장 여건이 ‘리셋’되고 있다고 봤다. 여건의 리셋은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창출하고는 하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내수주에 그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일본의 우량 내수주로 구성된 닛케이평균내수주50지수(이하 내수주지수, 닛케이225평균주가지수 구성 종목 중 내수 매출 비율이 높은 50개 종목으로 구성)는 최근 일본 주식시장의 하락세와 함께 가파른 낙폭을 그렸다. 내수주지수는 최근 1년 사이 우상향하며 올해 3월 연중 최고가를 찍은 뒤 횡보하다가 7월 말부터 하락했다. 8월 초순까지 2주 정도 20% 낙폭을 보였다.
하락 이유는 일본 주식시장 전체가 미국 주가의 폭락세에 휩쓸려 무너진 영향이 크다. 특히 일본 주가의 낙폭은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컸는데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상이라는 요인까지 가세한 것이 이유가 됐다. 이에 따른 엔화 가치의 가파른 절상이 수출주가 많은 일본 주식시장에 하중을 가했다. 닛케이225평균주가지수의 7월 말부터 8월 초순의 저점까지 낙폭 역시 20%였는데 최고가를 기록한 7월 초중순 대비로 보면 30%로 확대된다.
종전까지 일본 주가가 가파르게 오른 점도 이유가 됐다. 일본 주가지수는 세계 주식시장에 폭락장이 오기 전까지 1990년의 최고가를 넘어서는 ‘전인미답’의 고점을 밟고 있던 터였다. 닛케이225평균주가지수는 7월 초중순 연중 최고가까지 연초 이후 상승률이 26%였고, 미국 S&P500의 경우는 7월 중순의 연중 최고가까지의 상승률이 19%였다. 달러당 엔화 가치가 1986년 이후 38년 동안 보지 못했던 160엔대까지 미끄러지며 주식시장을 부양했다.
핫머니 이탈과 쏠림 완화
케이 매니저는 일본 주식시장에서 핫머니 자금의 이탈이 상당히 이뤄졌다고 보고, 이런 외국의 단기 투기성 자금의 유출은 주식시장의 건전성 측면에서 좋은 현상이라고 했다. 관련 자금의 투자처는 주로 반도체 등 수출주에 집중됐는데 이들이 이탈함으로써 특정 업종으로의 투자금 쏠림 현상이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그에 따르면 핫머니 자금이 일본에 들어온 것은 중국 시장의 리스크 회피와 더불어 시세 추종, 워런 버핏의 투자 효과가 컸다고 한다. 장기적인 가치 등을 따져 전략적인 판단으로 투자금이 들어왔다기보다는 트렌드를 따라 기계적으로 배치됐다는 얘기다. 이 같은 자금은 주식시장의 낙폭을 부풀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앞서 로이터통신이 인용한 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7월 26일까지 한 주 동안 외국인 투자자는 1조5800억엔어치의 일본 주식을 순매도하기도 했다. 작년 9월 29일 이후 10개월 만에 최다 순유출액이었다. 또 파생상품 계약의 순매도액은 1조100억엔으로 파악됐는데 이 역시 작년 10월 6일 이후 약 10개월 만에 최다로 집계됐다. 핫머니 자금의 이탈 현상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케이 매니저가 수출주를 기회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엔화 가치의 추가 반등에 따라 힘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서다. 달러당 엔화값은 올해 7월 초순 약 162엔에서 8월 초순 145엔까지 한 달 동안 10% 뛰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현지 외국계 은행 간부 사이에서는 114엔대로 되돌려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케이 매니저는 120~130엔 선에서의 등락을 예상한다.
엔화 반등 효과 기대
엔화의 추가 반등이 예상되는 것은 2022년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을 계기로 시작된 소위 ‘엔 캐리’라는 약세 추진력이 빠져서다. 미국은 9월 정책금리 인하가 전망되고 있는 한편 일본은 7월 말 금리를 인상했다. 저금리의 엔화를 조달한 뒤 고금리의 달러를 운용해 금리차 이익을 노리는 엔 캐리의 동력이 급히 실속했다. 수출 기업에서는 160엔대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달러 매도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내수주에 엔화 반등은 호재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마냥 호재는 아니다. 그동안 일본 내수주의 시세를 부양한 축 가운데 하나로 엔화 약세에 힘입어 호조를 보였던 인바운드(해외에서 일본을 방문한 관광객)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일본을 방문해 호텔·교통수단·음식·쇼핑 등 여러 소비 부문에서 수요를 일으켰다.
다만 과도한 엔화 약세가 수입물가 상승을 일으켜 가계 소비를 위축시키고 인바운드 효과를 상쇄했다는 점에서 엔화 반등은 어쨌든 반길 일이다. 올해 춘투(春鬪)를 통한 임금 인상 선순환(임금 인상→가계소득 증가→소비 증가→임금 인상)의 기대감이 희석되기 시작한 것도 과도한 엔화 약세 때문이었다. JP모간에 따르면 152엔을 넘으면 소비에 대한 하락 압력이 커지고, 157엔을 넘으면 실질임금의 플러스 전환이 어려워지는 등 엔화가 ‘나쁜 약세’ 구간에 있었다고 한다.
실적 상향
따라서 적정 수준의 엔화 가치 반등은 인바운드 수요를 살리는 한편 위축됐던 가계 소비도 다시 기지개를 켜게 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케이 매니저의 설명이다. 픽텟재팬의 마쓰모토 히로시 운용본부 시니어 펠로우는 엔화의 과도한 약세로 소매판매액에 ‘변조’가 있었다며 명목상으로는 전년 대비 증가세지만 물가를 고려하면 마이너스라고 지적했다.
일본 증권사들은 엔화 반등, 수입물가 진정에 따른 실질임금의 상승을 상정하고 내수주의 실적 전망을 상향하고 있다. 일본 주요 증권 3사 모두 2024 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서비스와 소매업의 경상이익 증가를 기대한다. 소매업은 노무라증권이 7.2% 증가, SMBC닛코증권이 6.7% 증가, 야마토증권은 9.8% 증가를 예상했다. 서비스업에서 SMBC닛코는 33.7%의 증익을 기대했다.
SMBC닛코는 “7~9월 국내 실질임금 상승률이 플러스로 전환되고 엔화 강세 기조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돼 내수 소비 관련 업종에 호재가 될 것”이라며 인바운드 역시 추진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경상이익은 일본 기업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는 손익지표로 영업이익에다 금융수익(이자수익, 배당금 등)을 더하고 금융비용을 뺀, 즉 금융 활동의 결과를 가감한 금액이다.
고베물산 주목
케이 매니저가 주목할 내수주로 꼽은 종목은 고베물산(神戸物産, 종목코드: 3038)이다. 고베물산은 프랜차이즈 체인 슈퍼마켓을 운영(일본 전국 1048곳)하는 기업으로 관련 슈퍼마켓은 주로 대용량의 식품 및 식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고베물산은 수입 상품을 많이 취급해 종전까지 엔화 약세에 따라 실적에 압박을 받았다. 그럼에도 결산에서는 수익성의 견고함을 드러내 호감을 샀다.
고베물산의 가장 최근 월간 실적 보고서를 보면 6월 매출액은 424억4900만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8%, 순이익은 28억2700만엔으로 26% 각각 증가했다. 엔화 약세에 의한 비용 상승의 부정적 영향이 있었음에도 안정적인 실적을 보였다. SMBC닛코는 고베물산에 대해 “특별히 걱정은 없다”며 “(엔저 영향은) 가격 인상으로 대부분 흡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고베물산의 견고한 경영 상황은 최근 하락장에서 빛을 발한다. 고베물산 주가 역시 주식시장 전반의 급락세에 휩쓸린 적이 있지만, 두드러진 낙폭은 8월 2일 하루뿐으로 그 하락률도 3%에 불과했다. 종전까지는 일본 주식시장의 강세장에서 소외돼 왔지만 최근의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서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베물산의 최근 5년 주가 추이를 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상승했다가 엔화 약세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2022년 들어 횡보 국면이 펼쳐져 왔다. 케이 매니저는 고베물산의 견실한 경영 상황이 엔화 약세로 저평가돼 왔는데 이제는 엔화 반전으로 주가 수준이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엔화 강세에서 강점을 보일 수 있는 기업”이라고 했다.
케이 매니저는 개별 기업 투자나 추가로 종목 물색에 따르는 시간 등이 부담된다면 일본 소형주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가 거론한 관련 ETF는 ‘아이셰어스 MSCI 일본 스몰캡 ETF(SCJ)’다. 일본 내수주가 많이 담긴 이 ETF의 가격은 8월 초순까지 연초 이후 5%가량 하락했다. 다만 관련 ETF는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상품으로 가격 표시가 달러다. 따라서 엔화 강세가 전개될 경우 환율 면에서 불리할 수 있다.
환율 변동의 영향을 중립화하는 ETF도 있다. 위즈덤트리재팬 헤지드 스몰캡 에쿼티 펀드(DXJS)다. 관련 상품은 월간 선물 계약을 통해 환율 변동을 중립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