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전문가 김순응 대표 "미술품 거품 꺼지는 시간 길 것...유행만 좇다간 낭패 불 보듯"
2024년 10월호
미술시장 전문가 김순응 대표 "미술품 거품 꺼지는 시간 길 것...유행만 좇다간 낭패 불 보듯"
2024년 10월호
뉴스핌TV KYD ‘리더에게 듣는다’ 출연
김소전 오르앤아트 대표와 대담
| 정리=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미술시장의 침체가 심각하다. 키아프, 프리즈서울에 발맞춰 각종 전시와 미술축제가 폭발적으로 열리고 있지만 시장 상황은 싸늘하다. “미술품을 구입하면 연 10% 수익을 보장한다”며 초보 컬렉터를 유인하던 업체가 고발됐는가 하면, 유명작가 위작이 암덩이처럼 늘어나며 불황장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이에 뉴스핌 월간ANDA는 미술시장 전문가인 김순응 대표와의 대담을 마련했다. 하나은행 자금본부장을 역임하고 국내 대표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사장을 거친 김 대표는 우리 미술계의 문제점과 전망, 향후 전망을 날카로운 고언을 곁들여 진단했다. 현재 미술품컨설팅 업체 김순응아트컴퍼니의 대표로 있는 김 대표와의 대담은 미술 어드바이저로 활동 중인 김소전 오르앤아트 대표가 맡았다.
김 대표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뉴스핌TV 주최로 국내 미술시장의 현황과 문제점, 향후 전망을 짚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선 국내 미술시장 침체가 꽤 장기화하고 있는데요, 지금 상황 어떻게 보시나요?
불과 3년 전만 해도 시장이 무척 뜨거웠죠. 하지만 저는 “앞으로 빙하기가 올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전 쓴소리를 많이 해서 미술계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통합니다. 달콤한 소리, 듣기 좋은 소리는 경계해야 하고, 쓴소리는 경청해야 한다는 게 제 소신인데 당시 워낙 호황이다 보니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요. A라는 작품이 사고 싶어 누군가에게 의견을 물으면 “진짜 그림 잘 보시네요. 이거 사두면 돈 됩니다”라고 달콤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아요. 반면에 “좀 더 살펴보고 결정하세요”라고 조언하는 이는 드뭅니다. 여기서 꼭 주의할 것은 그림은 사고 난 후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살 때 신중해야 합니다. 호황기에는 나만 그림을 못 산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서 미술시장에 거품이 생기고, 거품이 꺼지면 폭락의 희생자가 생기는 거죠.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오랫동안 4000억~5000억원 규모였는데 갑자기 거품이 생기면서 2021년에 1조원을 넘어섰어요. 그러나 1, 2년 새 약 5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대단한 불황이죠. 지금 글로벌 아트마켓도 침체이긴 하나 약 4~5% 떨어졌습니다. 록펠러가의 3세가 1960년 900만원에 샀다가 47년간 소장해오다 2007년에 675억원에 판 마크 로스코의 유화. 전액 사회에 기부했다.
Q. 유독 국내 미술시장 불황이 심대한 이유는 뭘까요?
코로나 사태 후 세계 자산시장의 돈이 화랑으로 튀었죠. 각국 정부에서 돈을 많이 풀었고 금리가 낮은 수준이다 보니 미술시장에 돈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코인, 부동산, 주식으로 번 돈이 미술시장에 많이 들어오면서 국내 미술시장도 급속도로 팽창했습니다. 이제 그 돈들이 빠져나가면서 불황에 들어서게 된 거고요.
Q. 최근 MZ세대들도 미술시장으로 많이 유입됐잖아요. ‘영끌’이다 ‘빚투’다 하는 용어까지 나오면서 시장이 들끓었는데.
그 점에 대해 제가 경고를 많이 했습니다. “미술투자로 돈 번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 아니다”라고요. 경험 있는 컬렉터들은 잘 알지요. 하지만 젊은 사람들과 초보자들은 사방에서 그림값이 계속 올라간다 하니까 조바심에 급하게 그림을 산 거죠. 그러나 우리 미술시장은 워낙 규모가 작기 때문에 쉽게 과열되고, 돈이 빠져나가면 아주 빨리 식습니다.
Q. 그림값이 떨어지니까 불미스러운 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사기사건도 발생했고요.
제가 40여 년간 미술 쪽에 관심을 갖고 시장을 분석해 봤는데 작품값이 올라갈 때는 불미스러운 일이 잘 드러나지 않아요. 가격이 내려가면 속속 드러나죠. 눈이 녹은 다음에 세상의 추한 모습이 다 드러나는 것처럼요. 미술시장에도 고수익을 보장해 준다며 유사 수신업체가 등장했고, 폰지 사기도 생겨났습니다. “그림을 사면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투자하게 한 뒤 수익을 돌려주는 게 아니라 계속 새로운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데 쓰고, 돈이 모이면 앞선 투자자들에게 일부 메워주는 피라미드 폰지 사기가 대표적이죠. 이런 업체가 시장을 휘저으면서 최근 법적 분쟁과 항의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림값은 얼마나 오를지 아무도 모릅니다. 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가격 상승을 보장하겠다는 화랑이나 경매사는 나중에 큰 손해를 끼칠 공산이 크니 손절해야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빈살만 왕자가 5000억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구세주’. [사진=크리스티]
Q. 위작 문제도 심각합니다.
미술품이라는 게 큰돈이 되다 보니 가짜는 동서고금 횡행했어요. 그런데 최근 국내의 위작 문제는 좀 심각합니다. 누구나 다 알 만한 유명작가의 위작 사건이 몇 년 전 터졌잖아요. 워낙 작품값이 비싼 작가인데, 그 작가 위작을 만든 조직이 검거되고 거래내역도 밝혀졌죠. 위작 제작과정의 시연도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해외에 머물던 작가가 귀국해 위작을 보고 나선 “이건 내 그림이다. 나만의 고유한 호흡과 테크닉으로 만든 내 거다”라고 했습니다. 예상을 뒤엎는 발언이었죠. 그 후 숨겨져 있던 가짜그림들이 대놓고 시장에 나오고 있고, 가짜 제조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진국에선 작품의 진위를 판단할 때 작가의 말보다는 작품의 유통경로, 즉 어디서 전시를 했고 어떤 경로로 손바꿈이 이뤄졌는지 프로브넌스(provenance)에 더 비중을 둡니다. 작가 진술은 마지막에 참고로 듣는 정도지요. 반면에 우리는 작가 진술을 중시하다 보니 위작이 진품으로 둔갑하게 됐습니다. 결국 “가짜가 진짜보다 많이 나돌더라”, “일본, 중국서 위작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위조범과 거래 화랑이 큰 처벌을 안 받은 데다 가짜그림을 보유한 소장자들도 침묵을 지키고 있어 문제입니다. 조용히 갖고 있다가 잠잠해지면 팔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가짜를 만들어 팔아도 크게 문제되지 않으니 미술계 모럴 해저드가 심각한 상태입니다.
Q. 미술품 조각투자에 대해서도 경고를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최근 한 미술품 조각투자 업체가 고객에게 30~40%의 손실을 줬다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미술품 조각투자라는 비즈니스 모델은 미술시장이 한창 호황이던 2006~2007년에 나왔다가 다 실패로 돌아가고 없어졌어요. 피카소 작품 값이 계속 올라가고, 바스키야, 워홀도 천정부지로 오르니 재벌이나 살 수 있는 이런 그림들을 잘게 조각내 판다면 누구나 살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전략이죠. 그러나 미술작품의 미래 가격을 예측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같은 피카소라도 수준에 따라 천양지차예요. 시대에 따라, 트렌드에 따라 끊임없이 변합니다. 게다가 피카소나 워홀의 최고 수준 작품은 우리 조각투자 업체에까지 들어올 리가 없어요. 그래서 이런 사태가 터질 거라 예견했는데 결국 터졌습니다. 여타 조각투자 업체들도 비슷한 상황일 겁니다. 최근 들어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가장 핫한 작가로 꼽히는 니콜라스 파티의 파스텔화. 초기에는 그 역시 작품값이 낮았으나 지금은 수억, 수십억원을 호가한다. [사진=하우저앤워스]
Q. 애꿎은 젊은 투자자와 일반 투자자만 손해 보게 됐네요.
안타까운 일이죠. 조각투자 회사들은 이러한 시장 변동성, 가격 등락에 대해 헷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 회피책이 있느냐가 관건인데 거의 무대책입니다.
Q. 투자자 손실도 문제지만 미술투자의 대중화도 가로막지 않나요?
그렇지요. 미술품 조각투자는 대중을 잘못된 길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미술의 대중화라는 그럴듯한 구호를 내세웠으나 오히려 가로막고 있지요. 미술에 대한 안목을 기르려면 유망작가의 좋은 작품에 주목해야 하는데 조각투자사들이 내건 작품은 모두 유명작가 작품들입니다. ‘우리가 유명 작품을 잘게 조각내서 투자하게 해주고 돈도 벌어주겠다’고 선전했지요. 그런 조각을 산다고 해서 미술애호가가 될까요. 오히려 젊은 작가들 작품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Q. 취지는 좋아 보이나 실상은 반대네요.
결국 미술품 조각투자는 초보자들에게 미술품을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시키고 돈까지 잃게 하고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림을 수집해 돈을 번 사람들은 대개 작가들이 젊었을 때 그 작가 작업이 좋아서 저렴한 가격대에 샀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 어마어마하게 비싼 값이 된 경우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화가인 김환기 화백이 뉴욕으로 이주해 물감과 캔버스 살 돈조차 없어 고생할 때 그림을 사주며 격려하던 이들이 지금 수익을 거둔 게 좋은 예죠. 김 화백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우주’도 재미교포 의사인 김마태 박사가 1971년 화가를 후원하기 위해 구입해 거실에 수십 년간 걸어두었던 그림입니다. 2019년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돼 결과적으로 큰 이득을 취했지만 작가를 도와주기 위해 나선 것이 결실을 본 셈이죠.
Q. 대표님께서는 은행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40여 년간 작품을 수집해 오셨잖아요. 컬렉션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많은 작품을 수집하셨는데 수익은 거두셨나요?
저는 젊은 시절부터 그림을 보면서, 또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을 많이 받고 힐링도 했습니다. 1978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월급을 받으면 인사동으로 달려가 그림을 샀죠. 그때 아무 생각 없이 산 작품들은 모두 수업료가 됐어요. 무작정 산 그림을 정리하려 했으나 팔지 못해 애를 먹었지요. 그때는 경매회사도 없었거든요. 그 후 정신을 차리고 미술사 공부, 작가 연구, 미술투자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그 뒤 수집한 작품들은 크게 실패한 게 없습니다.
Q. 국내 미술시장의 불황이 언제쯤 끝날 거라 보시나요?
40년 넘게 시장을 지켜보면서 미술도 사이클을 그리는 걸 확인했습니다. 제 경험상으론 미술장의 호황은 굉장히 짧아요. 대개 2~3년 반짝 호황이었다가, 5~6년 길게는 10년 이렇게 불황이 이어지는 사이클입니다. 지금 침체기는 꽤 오랫동안 이어질 듯한데 그 이유는 워낙 거품이 컸고, 그 거품이 꺼지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악성 매물이 많이 나올 겁니다. 빚까지 내서 미술품을 샀던 이들이 견디기 어려워서, 또는 작품값이 떨어지니 실망해 투매하듯 던지는 악성 매물이 어느 정도 정리돼야 새로운 모멘텀이 생길 겁니다.
Q. 대표님께선 국내 미술시장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지적을 해오셨습니다. 컬렉터들이 자신만의 취향이나 성격 없이 유행을 너무 좇는다고 하셨죠.
우리나라 컬렉터들은 미술을 보는 관점과 구입 패턴이 너무 획일적입니다. 다양성이 결여돼 있죠. 예를 들면 미술품과 속성이 비슷한 게 럭셔리 패션인데 한국인들은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에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니까요. 하지만 선진국의 진짜 고수들은 남들이 다 하는 건 피합니다. 그럼에도 국내에선 ‘밴드왜건 효과’라고 같은 마차에 꼭 올라타야 직성이 풀립니다. 패션에서 에루샤만 찾듯 그림도 마찬가지죠. 근래에 단색화가 유행하고 추상화가 대세니까 너도나도 그쪽에 열광합니다. 성숙된 미술시장은 추상, 구상이 밸런스를 갖고 골고루 발전합니다. 추상이 대세라고 해서 구상이 죽진 않아요. 반면에 국내에선 한쪽이 대세면 한쪽은 완전히 죽어요. 그러다 보니까 쏠려 있던 쪽의 가격이 급락하면 대안이 없지요. 시장 자체가 죽는 겁니다. 이제라도 스스로의 안목에 자신감을 갖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합니다.
Q. “컬렉터 중에는 작품을 ‘귀’로 구입하는 이들이 많다”는 말씀도 하셨죠.
작품을 눈으로 사는 게 아니라, 귀로 산다는 얘기는 미술계에서 유명한 말입니다. 영국의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가 한국에 처음 들어와 작품을 많이 팔았잖아요. 그때 소위 에루샤 같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죠. 전문가들이 보기에 질이 떨어지는 작품이 적지 않았지만 잘 팔렸어요. 예를 들어 같은 피카소 작품이라도 수천억원에 팔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수십억원 또는 수억원 대에 팔리는 작품도 있거든요. 이걸 분별해 내는 게 ‘안목’이죠. 우리가 좀 대접을 받으려면 우리의 눈이 날카로워져야 하고, 안목을 갖춰야 됩니다.
Q. 연중 최대 미술 이벤트인 키아프서울과 프리즈서울이 열렸습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프리즈가 한국에 진출한 지 벌써 세 번째네요. 프리즈와 바젤이 막강한 이유는 뭔가요?
제가 처음 미술에 입문했던 30, 40년 전만 해도 아트페어가 굉장히 다양했어요. 세계 주요 도시마다 아트페어가 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바젤과 프리즈가 세계 아트페어를 평정했습니다. 둘 다 기업형입니다. 이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페어에 참여하는 갤러리와 출품작을 굉장히 엄격하게 심사합니다. 그걸 어떤 식으로 전시할 거냐도 따집니다. 이 같은 엄격한 심사기준과 높은 수준의 작품 때문에 좋은 고객들이 모입니다.
Q. 잘 들었습니다. 오늘도 쓴소리 많이 해주셨는데 우리 미술시장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만드는 보약이 됐으면 합니다.
길게 보면 쓴소리가 발전의 디딤돌이 되더라고요.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애정과 열정 때문에 하는 쓴소리이니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K팝과 K엔터테인먼트, K푸드, K뷰티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데 미술도 곧 그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국내 미술시장의 수준이 올라가야 해서 문제점을 꼬집어 봤습니다. 미술과 함께 충만한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