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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수해로 큰 인명피해...흔들리는 김정은 리더십

2024년 10월호

압록강 수해로 큰 인명피해...흔들리는 김정은 리더십

2024년 10월호

|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newspim.com


지난 7월 말 압록강변을 휩쓴 수해가 북한 체제를 뒤흔들고 있다. 김정은까지 나서 부인했지만 엄청난 규모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데다 복구 작업 등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어 민심이 술렁이고 있는 것이다. 자칫 김정은 통치에 위기 요소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되는 분위기다.

홍수 피해가 알려진 건 지난 7월 31일 북한 관영매체들이 신의주 일대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가 발생해 큰 인명 피해가 난 사실을 보도하면서다.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압록강 유역인 평안북도와 자강도 지역에서 “큰물과 폭우로 인한 엄중한 피해들이 연속 발생했다”면서 김정은이 같은 달 29~30일 노동당 중앙위 제8기 22차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신의주 현지에서 진행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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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7일 압록강 범람으로 침수된 평안북도 신의주시 일대를 고무보트를 타고 둘러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5000명 주민 한때 고립됐다 헬기로 구조

회의에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월 28일 김덕훈 총리 등 간부들과 침수지역을 돌아봤다. 이 일대에는 27일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압록강 수위가 위험계선을 넘었고 신의주와 의주군에서 5000여 명의 주민이 위험지역에 한때 고립됐다 헬기로 구출되기도 했다.

중앙통신은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신의주시와 의주군에서는 무려 4100여 세대에 달하는 살림집과 근 3000정보의 농경지를 비롯해 수많은 공공건물과 시설물, 도로, 철길들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그러나 구체적인 인명 피해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김정은은 회의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며 “통일적인 지휘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초기에 능히 최소화할 수 있는 재해 위험이 증폭됐다”고 강조한 뒤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을 지시했다. 회의에서는 우리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리태섭 사회안전상이 문책성 해임을 당하고 후임에 노동당 군정지도부 제1부부장인 방두섭이 임명됐다. 또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지낸 리히용을 평안북도당 책임비서로, 평안북도당 책임비서 박성철을 자강도당 책임비서로 각각 보임했다.

하지만 사태는 좀처럼 수습되지 못하고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는 게 고위 탈북인사들의 전언이다. 엘리트와 주민들 사이에서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올인하면서 재난 대비를 소홀히 한 김정은이 책임을 간부들에게 떠넘기는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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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말 압록강 일대에 내린 집중호우로 완전 침수된 평북 의주군 일대. 열악한 북한의 방재시설이 재난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복구 맡은 돌격대 식량 도둑질로 주민 불만

신의주와 의주군 등 수해 현장에서는 복구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북한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선전과 실제 주민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현지 주민들은 돌격대원들이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옥수수와 감자 등 농작물을 도둑질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북한 선전매체들은 미담 만들기를 통해 김정은에 대한 불만 요소 차단에 나서고 있다. 노동신문은 8월 28일 자 보도에서 “어느 날 신의주시 선상동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이 돌격대원들의 식생활에 보탬을 주려는 생각으로 얼마간의 남새(채소)를 가져다준 적이 있었다”며 “그는 절대로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는 돌격대원들에게 일부러 성까지 내며 무작정 들려주고 돌아섰다”고 전했다. 신문은 “하지만 다음날 아침 출입문을 열던 그는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며 “출입문 앞에 자기가 가져다 주었던 남새와 함께 생활에 필요한 물자들이 놓여 있었던 것”이라고 소개했다.

노동신문은 “험지에 와서 부족한 것이 많은 속에서도 피해지역 인민들을 도와주기 위한 좋은 일을 솔선 찾아하고 있다”고 보도해 돌격대에 대한 식량과 물자 공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엿보게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미 자유아시아방송(RFA)은 8월 29일(현지시간) “압록강 유역을 휩쓴 폭우로 양강도 삼수군과 김정숙군, 김형직군의 농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며 “수해복구가 한창인 이곳 농촌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까지 겪고 있는데 농작물 도둑이 기승을 부려 올해 알곡 생산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복수의 양강도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돌격대 나갈 땐 가마솥도 떼 간다”

RFA는 “농작물 도둑질은 아직 여물지 않은 옥수수를 이삭째 뜯어가거나 감자를 줄기째 뽑아 굵은 감자만 추려 가져가는 식으로 농작물에 큰 피해를 남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돌격대의 경우 국가에서 주는 식량으론 배를 채울 수 없는 데다 부식물은 자체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농작물 도둑질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돌격대뿐 아니라 큰물 피해로 텃밭을 잃은 농촌 주민들도 끼니 해결을 위해 너도나도 도둑질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돌격대로 생활한 경험이 있는 탈북민 A 씨는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북한에서는 돌격대를 나갈 때 집안 가마솥을 떼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면서 “수해복구나 건설공사에 동원하면서도 식량은 물론 최소한의 생활물자조차 보장해 주지 않고 자체적으로 마련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수로 전력망이 훼손되면서 신의주 등 피해지역의 야간조명이 크게 줄어든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수해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 6월 26일에 촬영한 야간 조도 영상에는 신의주 중심부부터 남신의주역을 거쳐 신압록강대교 인근까지 철길을 따라 야간 조명이 밝게 비추고 있지만, 8월에는 신의주 중심부에만 부분적으로 조명이 보일 뿐 전반적으로 암흑 상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성학 한국 한반도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의주 일대가 어두워진 이유는 폭우 때 압록강변을 따라서 설치된 야간 철조망 등 전신주나 전선들이 유실 및 훼손돼서 전력선이 망가진 때문”이라고 RFA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수재민들은 가족과 집을 잃은 고통 속에서 북한 당국이 조직하는 행사 등에 연일 동원되며 시달리고 있다. 김정은 지시로 평양에 임시 체류하고 있는 신의주 등지의 주민들은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이들은 폭염과 뙤약볕 속에 김일성 생가 방문 등 체제선전성 행사에 연일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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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수립 76주년 기념행사가 9월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자리에 불참해 수해복구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 지시로 수재민 1만3000명 평양 임시 이주

노동신문은 8월 30일 “어머니당(노동당)의 각별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 즐거운 평양 체류의 나날을 보내는 수해지역 학생들이 유서 깊은 혁명의 성지 만경대를 방문했다”며 이곳을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탄생하신 고향집 뜨락”이라고 소개했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8월 15일 수재민들을 한자리에 집결시켜 체제선전성 발언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들 수재민은 김정은 지시에 따라 평양의 임시 거주시설로 이날 이주한 어린이와 노약자, 여성 등으로 1만3000여 명에 이른다. 신의주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은 “큰 홍수로 압록강 지역에서 많은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하자 김정은과 북한 당국이 수습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듯하다”며 “식량과 복구 물자·장비를 투입하지 않고 돌격대에만 의존하려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주민 불만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의 수해 뒤처리는 불똥이 김정은에게 튀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상교양 시간에는 홍수 사태와 관련해 주민과 간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내용이 집중적으로 다뤄지는 것으로 내부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대북 인권단체인 VOC(Voice of One Calling)가 입수해 공개한 북한의 ‘정치사업 자료’는 “큰물 피해 복구와 재발방지 사업에 한 사람같이 떨쳐나서자”면서 이번 수해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이 문건은 “이번에 조성된 피해 상황은 대피지역에서 이탈해 제멋대로 행동하거나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을 올바르게 확정하지 못하는 현상, 재난 시 이용할 필수 구조장비들을 제대로 구비해 놓지 않은 현상 등이 얼마나 엄청난 후과를 산생시키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강조했다. 또 “큰물이 나거나 태풍이 오는 경우 대피하는 지역을 다시 명확히 확정하는 것과 함께 재해 구제용 장비와 기재, 물자들을 시급히 비축하기 위한 사업을 강하게 내밀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수해 방지시설 마련하지 않아 재난 되풀이

사실 신의주 지역 수해는 압록강 유역에 대한 기본적인 수방시설 투자조차 이뤄지지 않은 데 따른 것이란 게 북한 인프라 분야를 연구해온 대북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맞은편 중국 단둥의 경우 지형 자체가 북측 지역보다 2~3m 높은데, 여기에다 강물이 넘는 걸 막기 위해 둑을 쌓거나 물막이용 펜스를 쳐놓아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핵과 미사일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관심을 집중해온 김정은이 주민 생명이 달린 수해 방지시설 구축을 도외시하면서 여름철 집중호우에 따른 압록강 범람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주민 구조 작전을 벌인 공군 헬기부대를 찾아 영웅 칭호와 무더기 표창 수여를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하고 있다. 수해 현장을 찾아서는 “용납 못할 인명 피해”라며 심각한 수준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음을 밝혀놓고 며칠 뒤 “한 명도 피해가 없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북한 선전매체들은 김정은이 청년들을 동원해 수해복구에 나서고 있다면서 이를 대대적으로 찬양·선전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8월 7일 “기적의 영웅신화를 또다시 창조할 맹세를 다지며 앞을 다투어 피해복구 전구로 탄원하는 청년전위들의 거세찬 대하에는 1950년대에 전선으로 용약 달려나가던 조국 수호자들의 드높은 애국열기가 그대로 맥동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한류 드라마·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중고교생을 포함한 청년세대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움직임을 주도한 김정은이 재난 복구에 청년들을 내모는 건 몰염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대로 된 수해 방지 시스템을 갖추려 하기보다는 청년과 군인들을 현장에 투입해 땜질식 복구를 하려는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형 재난을 당하고도 민생과 안전보다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와 대한적십자사가 재난 상황에 대한 인도적 조치로 식량과 의약품 등을 긴급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거부하는 건 김정은이 주민의 삶보다는 체제의 체면이나 남북 간 정세구도에 더 집착한다는 걸 보여준다. 민생보다는 자신의 권력 지탱에 필요한 미사일과 핵을 거머쥐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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