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을수록 치매 확률 확 높아져
중증 치매 연간 비용 1인당 3500만원
치매 치료제 일라이릴리 ‘키썬라’ 기대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노인들의 3대 사망원인은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이다. 이 3대 질병은 수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그런데 수명 단축 효과는 작지만 은퇴 생활을 심각하게 망치는 질병이 있다. 바로 치매다. 치매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큰 고통에 빠뜨린다.
치매환자 100만명 돌파...나이 들수록 심해져
고령자는 크게 전기고령자(65~74세)와 후기고령자(75세 이상)로 나눌 수 있다. 전기고령자는 건강과 자산 상황이 양호하다. 반면 후기고령자는 건강과 자산 상황이 악화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후기고령자 삶의 질을 뚝 떨어뜨리는 최악의 질병은 치매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치매 문제로 애를 먹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025년의 일본 추정 치매환자 수(65세 이상)는 471만명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23’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치매환자 수도 2022년에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 중 65세 이상 치매환자 수는 93만5000명이다. 노화가 치매 발병의 중요한 요인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남성보다 여성 치매환자가 더 많다는 점이다.
남성 치매환자 수는 36만3000명(39%)인 데 비해 여성 치매환자 수는 57만2000명(61%)으로 추정된다. 여성 환자가 1.6배 높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높은 걸 감안하더라도 확연한 차이다. 따라서 여성이라면 좀 더 치매 예방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전기고령자의 치매환자 수 비중이 14%인 데 비해 후기고령자의 치매환자 수 비중이 무려 86%에 달한다. 특히 85세 이상의 치매환자 수는 35만9000명이다. 전체 치매환자 중 38%라는 압도적 비율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인류가 과거보다 오래 살게 되면서 치매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치매는 증상에 따라 4단계로 분류된다. 이 중 3단계인 중등도 치매(24만명, 26%)는 치매가 많이 진행돼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도움이 필요한 단계다. 가장 심각한 4단계 중증 치매(14만5000명, 15%)는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1인당 연간 중증 치매 관리비용 3500만원
보건복지부가 추정한 1인당 치매환자 관리비용(직접+간접)은 약 2220만원이다. 통계청의 한국 연간 가구 평균소득 5801만원으로 계산하면 38.3%에 달한다. 소득이 없는 은퇴자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치매 증상이 심할수록 비용은 더 커진다.
중앙치매센터는 가장 심각한 4단계 치매 중증 환자의 경우 연간 관리비용을 3480만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중증 치매환자가 다시 좋아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중증 치매 상태로 5년을 더 살면 1억7400만원, 10년을 더 살면 3억4800만원이 필요하다. 치매가 은퇴생활을 위협하는 최악의 질병인 이유다. 또 돈은 둘째치고 삶의 질 또한 최악으로 추락하게 된다. 결국 국가의 지원이 없다면 치매 기간이 길어질수록 노후 파산 가능성이 증가하게 된다. 정부는 ‘중증치매 산정 특례 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을 통해 치매환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치매환자의 재정적 부담이 해결되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연간 치매 관리비용은 20조8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1% 수준이다. 그리고 이 수치는 앞으로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의 2070년 추정 치매환자 수는 무려 340만명이다. 이에 따라 연간 치매관리비용도 236조원으로 폭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가 대부분
치매는 기억력, 사고력, 판단력 등이 낮아지는 진행성 뇌질환이다. 심해지면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게 된다. 치매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 기타 원인불명의 치매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가장 흔한 유형으로 전체 치매 사례의 약 70%를 차지한다. 알츠하이머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까지는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여 덩어리(플라크)가 생기는 것을 원인으로 보는 ‘아밀로이드’ 가설이 대세다. 혈관성 치매는 전체 치매 사례의 약 20%를 차지한다. 혈관성 치매는 뇌로 가는 혈류의 감소로 인해 발생한다. 이는 뇌경색, 뇌출혈 등의 혈액순환 장애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혈관성 치매의 증상은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하지만 추가로 걷기 등의 운동 기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치매 치료제 개발은 됐지만...아직은 미완성
치매 치료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최종 승인을 받은 치매 치료제는 총 3종류다. 모두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막거나 제거하는 기전의 치료제다. 하지만 2021년에 첫 번째로 승인받은 치매 치료제 ‘아두헬름’은 효능 논란으로 판매가 중단됐다.
2023년 7월에 두 번째로 FDA의 승인을 받은 치매 치료제 ‘레켐비’는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했다.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투여 시 27%의 인지기능 저하 감소 효과를 보였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뇌 부종과 출혈 같은 부작용 비율이 12.6%다. 적지 않은 수치다. 또 여성에게는 효과가 약하다는 후속 분석보고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치매환자는 여성 비중이 높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처방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2024년 7월에 세 번째로 FDA의 승인을 받은 ‘키썬라’(성분명 : 도나네맙)는 미국 일라이릴리가 개발한 신약이다. 키썬라는 앞서 나온 레켐비에 비해 장점이 많다. 먼저 인지기능 저하 감소 효과가 35%로 레켐비의 28%보다 높다. 또 투여 간격도 4주에 1회로 레켐비(2주에 1회)에 비해 환자 편의성이 높다. 치료제 투여 기간도 6~18개월로 짧다. 반면 레켐비는 계속 투여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키썬라는 뇌 부종과 출혈 같은 부작용 비율이 레켐비의 2배가 넘는 26.7%를 기록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레켐비나 키썬라 모두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만 효과가 입증됐다는 점이다. 중증 환자도 아닌 초기 환자가 부작용 위험을 감수하며 치매 치료제 투약을 선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중증 치매 치료제 개발 실패...예방이 최선
지난 2024년 5월에 한국 식약처는 키썬라보다 먼저 나온 레켐비의 사용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하반기부터 시판될 예정이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을 못 받는 ‘비급여’다. 따라서 가격 부담으로 레켐비의 초기 판매량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기준 레켐비의 연간 치료 가격은 약 3500만원(2만6000달러)이다. 키썬라는 그보다 더 비싼 4300만원(3만2000달러)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투여 기간이 짧은 일라이릴리의 키썬라가 가격 측면에서 유리하다. 시장에서는 2030년 키썬라 연간 매출액이 약 2조7000억원(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 다른 치매 치료제 후보로는 노보노디스크의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이 있다. 기적의 비만 치료제로 유명한 ‘위고비’와 같은 성분이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당뇨병 환자들에게 1년 동안 오젬픽을 투여한 임상 2상 결과를 발표했다. 임상 결과 오젬픽이 당뇨병 치료 효능 외에도 인지기능 저하를 18% 감소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무작위 임상 결과가 아니라서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노보노디스크에서도 자체적으로 약 3000명의 초기 치매(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이 결과는 2025년에나 발표될 예정이다. 현재 FDA의 승인을 받은 레켐비나 키썬라 모두 효능 면에서 뚜렷한 한계가 있다. 또 오젬픽의 경우 실제 효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초기 환자가 아닌 중증 치매환자에 대한 획기적인 신약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발 전망은 밝지 않다. 만약 중증 치매 치료제 개발에 계속 실패한다면 인간의 수명 연장과 더불어 치매환자 수는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예방과 조기 발견이 최선이다.
치매 위험인자는 음주가 2.2배...생활습관 바꿔야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치매 위험인자 중 가장 높은 건 뇌 손상으로 2.4배다. 뇌 손상을 제외한 생활습관 중에는 음주가 2.2배로 제일 높다. 또 운동부족 1.8배, 우울증 1.7배, 흡연 1.6배, 비만 1.6배 순이다. 은퇴자들은 좋지 않은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적극적으로 치매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
치매는 조기에 발견될수록 관리가 용이해진다. 치매 진행을 늦추는 약물 치료는 빨리 시작할수록 효과가 좋다. 따라서 의심스러울 때는 최대한 빨리 치매 조기검진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현재 5500만명 이상이 알츠하이머병(치매)을 앓고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집안에 치매환자가 발생할 경우 가족들에게도 심각한 고통을 준다.
길을 잃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등 가정에서 치매환자를 돌보기는 어려움이 많다. 치매는 간병인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요양시설에 입소하게 된다. 이럴 경우 치매환자도 집이 아니라서 불편해한다. 결국 한 사람의 삶이 전반적으로 파괴된다. 치매는 관리비용도 상당하다. 중증 환자의 경우 연간 3480만원이 들어간다. 정부는 2017년에 ‘치매 국가책임제’를 발표하며 치매환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한계는 있다. 하루빨리 더 성능 좋은 치매 치료제가 나오는 것만이 이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