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가 궁극적으로 30조달러 규모의 글로벌 노동시장 가운데 3조달러를 차지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인공지능(AI) 기술의 진화가 로봇 산업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면서 노동시장과 경제 생산성까지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얘기다.
모간 스탠리는 보고서를 내고 2030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이 4만 개까지 늘어난 뒤 2040년이면 800만 개로 껑충 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2050년까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사람과 같이 움직이는 로봇이 6300만 개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테슬라, 막강한 인에이블러
모간 스탠리는 휴머노이드 로봇 테마를 주도한 종목이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설명한다. 로봇의 개발과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와 생태계 제공에 무게를 두는 이른바 ‘인에이블러(enabler)’, 로봇으로 인간을 대체해 생산성을 높이는 ‘베네피셔리(beneficiaries)’가 공존한다는 얘기다.
두 가지 측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을 주도할 종목으로 모간 스탠리는 테슬라(TSLA)와 도요타(7203), TSMC(TSM), 엔비디아(NVDA), SK하이닉스(0660), 맥도날드(MCD), 아마존(AMZN), DHL 그룹(DHL) 등 8개 톱픽을 제시했다. 특히 테슬라와 관련, 휴머노이드 로봇 비즈니스가 궁극적으로 자율주행차 사업 부문보다 몸집을 크게 확대할 것으로 모간 스탠리는 예상한다.
모간 스탠리는 이번 보고서에서 테슬라를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표적인 ‘인에이블러’라고 평가하고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먼저, 데이터 부문이다. 이례적인 운전 여건으로부터 갖가지 사례들을 축적, 데이터의 양적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급속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고 모간 스탠리는 강조한다.
주요국 각 거점에 구축한 대규모 제조 인프라와 노동집약적인 생산 여건 역시 휴머노이드 로봇의 도입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비교적 단순하면서 반복되는 작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테슬라 공장의 특성상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력을 대체할 여지가 높고, 근로자들의 작업 패턴에서 대규모 데이터를 확보해 휴머노이드 로봇을 훈련시키기에 유리한 환경이라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테슬라가 갖춘 핵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프라의 수직 통합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을 선도하는 데 든든한 동력이라고 모간 스탠리는 강조한다.
모간 스탠리는 테슬라에 ‘비중 확대’ 투자의견과 함께 12개월 목표주가를 310달러로 제시하고 있다.
엔비디아, AI 로봇 생태계로 승부
모간 스탠리가 테슬라만큼 휴머노이드 로봇의 강력한 ‘인에이블러’로 지목하는 업체는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다. AI 칩을 앞세워 몸값을 3조달러 선까지 높인 업체가 인간형 로봇 시장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2024년 3월 GTC(GPU Technology Conference)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위한 그루트(GR00T)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지난 수년간 로봇 시뮬레이션 플랫폼 아이작과 로봇 전용 칩셋 젠슨 토르, 로봇 훈련을 위한 옴니버스까지 로봇 비즈니스에 공을 들였다.
테슬라와 달리 휴머노이드 로봇을 직접 생산해 판매하지는 않지만 로봇을 개발, 제작하기 위한 생태계를 제공한다는 것. 두 업체의 대표가 사람을 닮은 로봇의 가능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지만 비즈니스 측면의 접근에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엔비디아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BYD 일렉트로닉스와 지멘스, 테라다인 로보틱스, 알파벳의 AI 로보틱스 자회사 인트린직 등 100여 업체들이 아이작 플랫폼을 채택했다.
모간 스탠리는 반도체 종목들 가운데 한국의 SK하이닉스와 대만의 TSMC 역시 ‘인에이블러’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의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아마존의 물류센터에서 작업하는 인간형 로봇. [자료=블룸버그]
도요타·아마존도 유망주
일본 자동차 메이저 도요타도 휴머노이드 로봇 선두주자로 꼽힌다. 이 업체는 지난 2017년 사람을 닮은 로봇 T-HR3를 처음 공개했다. 사람의 동작을 모방했던 T-HR3는 2019년보다 어려운 작업을 해낼 정도로 정교해진 모습으로 진일보했다.
이어 도요타연구소(TRI)가 선보인 푸뇨(Punyo)는 이른바 ‘소프트 로봇’으로 불리는데 손에 쥔 사물의 촉감을 느낄 수 있고, 가방을 여러 개 든 채 팔꿈치로 문을 여는 동작까지 가능해졌다. 도요타는 최대한 인간의 모습에 가까운 로봇을 개발해 제조 현장과 헬스케어 등 다양한 영역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모간 스탠리는 도요타가 자동화 및 모빌리티 분야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업체가 커다란 기술 혁신을 이룬 ‘인에이블러’인 동시에 휴머노이드 로봇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수혜자라고 판단한다.
사람을 닮은 로봇의 대표적인 ‘베네피셔리(beneficiaries)’ 가운데 하나는 세계 최대 패스트 푸드 업체인 맥도날드(MCD)다. 미국의 시간당 임금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인력을 로봇으로 대체해 비용절감 효과를 본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맥도날드는 2023년 4월 사상 첫 무인 매장을 미국 텍사스 주에 출범시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아마존 역시 물류센터의 자동화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 로보틱스 연구개발(R&D)에 10년 이상 통 큰 투자를 단행했고, 결실을 거두기 시작했다. 업체는 지난 2009년 물류센터에 자율주행 로봇을 도입한 자포스(Zappos) 인수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인수합병(M&A)과 로보틱스 개발을 지속했고, 2022년 물류센터의 물품을 대부분 처리할 수 있는 로봇 팔 스패로우(Sparrow)를 선보였다. 이어 2023년에는 최초의 물류센터 휴머노이드 로봇인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디지트(Digit)를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디지트의 성능이 한층 강화되면 밤새 트럭에서 물품들을 물류센터로 옮긴 뒤 분류해 근로자들이 아침에 출근한 뒤 곧바로 배송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경지에 이를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를 통해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한층 향상될 뿐 아니라 휴가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 근무 만족도 역시 높아질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독일의 물류택배 업체 DHL 그룹 역시 휴머노이드 로봇의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 업체는 2023년 상반기부터 스트레치(Stretch) 로봇을 일부 미국 물류센터에 투입, 택배 물품들을 트레일러에서 컨베이어로 옮기는 작업을 맡기고 있다.
로봇을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테슬라나 플랫폼을 제공하는 엔비디아뿐 아니라 아마존을 포함해 인간형 로봇의 도입으로 수익성 개선을 이뤄내는 업체들까지 투자자들에게도 작지 않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모간 스탠리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