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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면서도 선망의 대상...북한의 겉과 속 다른 對美 인식

2024년 08월호

미워하면서도 선망의 대상...북한의 겉과 속 다른 對美 인식

2024년 08월호

주민에겐 반미 강요하면서
김정은 경호 차량은 미국산
“미국과의 수교가 살길”


|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newspim.com


북한에서는 이맘때 반미 열기가 가장 뜨겁다. 김일성이 남침 전쟁을 시작했던 6월 25일부터 정전협정 체결이 이뤄진 7월 27일까지를 ‘반미 공동투쟁 월간’으로 지정해 반미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8월 한미 합동 군사연습을 빌미로 한 북한의 대남, 대미 비난이 거칠어지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 힘을 더한다.

북한은 6.25에 대해 “신생 공화국과 발톱까지 무장한 제국주의 연합세력 사이의 보통 상식을 벗어난 대결, 사실상 보병총과 원자탄의 대결”이라고 주장하며 대미 응징 의지를 다지고 있다. 6.25로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음에도 ‘미제를 타승(打勝)한 전쟁이라며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7.27을 ‘전승절’로 주장하며 김정은의 전용차량 번호를 ‘1953-727’로 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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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한 아우루스 리무진에 오르고 있다. 차량 번호판에 정전협정 체결일을 상징하는 1953-727이란 숫자가 보인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 차량 번호판은 ‘전승절’에서 따와

일반 주민뿐 아니라 엘리트나 외교관 등도 이 같은 반미 전선에서 예외는 아니다. 고위 탈북 인사들은 북한 주민들이 절대 방문해서는 안 될 나라가 4곳이라고 말한다. 미국과 일본, 남조선(대한민국), 이스라엘이다. 불가촉(不可觸)의 금기에 미국이 첫손으로 꼽힌다는 얘기다. 태어날 때부터 이런 식의 세뇌와 사상교육에 시달리다 보니 주민들은 뼛속부터 반미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 체제와 그 속에 사는 인민들이 반미 그 자체인 것이다.

군대와 병사들의 반미 세뇌와 사상교양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북한군 탱크 앞부분에는 ‘조선 인민의 철천지원쑤인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미국을 불구대천의 ‘원쑤’(원수의 북한식 표기)로 여길 것을 강조하면서 군의 주적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한때 북한 관영 선전매체에는 워싱턴 D.C. 미 의사당 건물을 북한 미사일이 타격하는 장면을 묘사한 포스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광경은 군대만이 아니다. 놀이공원에서는 성조기와 미군 모형을 세워놓고 사격을 해서 점수를 따는 놀이시설이 빠짐없이 세워져 있다. 학교와 공장·기업소, 농장 등에서 이른바 반미 사상교양이 연일 이뤄지고 있다. 곳곳에 세워진 계급교양관에서도 ‘미제의 만행’을 주제로 한 전시물이 세워져 동원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황해남도 신천군에 있는 신천박물관이 대표적이다. 주민들을 학살했다는 시점에 미군이 이곳에 주둔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반미의 거점으로 여겨지고, 2015년 7월 신천박물관을 방문한 김정은은 “계급교양과 복수심의 발원점으로 미제의 야수적 만행 역사의 고발장”이라고 주장했다.

김일성·김정일 장례차는 미제 링컨 컨티넨탈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도 드러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반미의 나라’라고는 믿기지 않을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1994년 7월 사망한 김일성이 왜 장례 운구차로 미제 링컨 컨티넨탈을 사용했는지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2011년 12월 숨진 국방위원장 김정일도 마찬가지로 같은 차량에 시신이 실려 마지막 길을 갔다. 대북 정보 당국도 그 배경을 파헤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한 관계자는 “김정은이나 최고 핵심 측근이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귀띔했다.

김정은 체제 들어서도 이런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경호·의전 차량으로 최근 미국 포드 사의 승합차 트랜짓을 여러 대 구매해 운용 중인 것으로 관영 선전매체인 조선중앙TV 영상을 통해 확인된다. 미국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신형 차량의 반입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이란 해석도 나오지만 최고지도자와 권력 핵심층이 반미에 진심이라면 벌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도요타의 차량까지 가세해 미·일의 승합차량이 김정은 합동경호를 펼치는 셈이다.

심상치 않은 조짐은 집권 초기에 이미 감지됐다.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관람한 공연에 미키마우스와 백설공주, 곰돌이 푸가 등장한 것이다. 청년 지도자가 관람하는 공연에 미국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디즈니의 캐릭터가 나타나고 영화 록키의 주제가가 울려퍼지는 건 이전까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이런 모습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공공연하게 미국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문화가 번져나가는 조짐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4월 말 평양 3대 혁명 전시관에서 개막한 ‘2024 봄철피복전시회’ 관련 TV 영상에는 디즈니의 유명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에 등장하는 캐릭터 랏소베어(Lots-o’-Huggin’ Bear)를 가슴에 새긴 아동 의류가 포착됐다.

이 옷은 마네킹에 입혀져 앞줄에 배치돼 있었는데 그만큼 북한이 전시회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조선피복공업협회 부서기장 윤홍길을 조선중앙TV에 등장시켜 이번 행사에 출품된 의류들이 전문 창작단과 피복제작단이 직접 만들어낸 것이란 주장까지 펼쳤다. “270여 개의 피복제작단이 출품한 다양한 피복 제품 5만여 점이 출품됐다”면서 “지난 시기와 달리 옷 도안 구역을 따로 꾸리고 전문 창작 단위들과 피복 제작 단위들에서 창작한 옷 도안들을 전시해서 전시장의 양상을 조화롭게 했다”는 주장이지만 이 캐릭터 아동복은 북한이 어떤 라이선스 계약도 없이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해적판 디즈니 아동복 버젓이 선보여

지식재산권 침해뿐 아니라 대북 제재로 인해 미 캐릭터의 복제 등이 불가능한 데다 해당 업체들도 북한과 어떤 종류의 계약도 맺은 사실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의 무단 사용과 관련해 주민들에게는 반미 교양과 선동을 강화하면서 정작 아동복 등에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캐릭터를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건 모순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는 청바지 등 옷차림을 양키 문화라면서 단속하고 심할 경우 노동교화소까지 보내면서 북한 당국이 주최한 전시회에는 미 자본주의 문화의 선봉장 격인 디즈니 캐릭터를 내세우고 김정은이 디즈니 캐릭터가 등장하는 공연을 본다는 건 난센스란 얘기다.

이처럼 김정은이 미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동경에 가까운 입장을 나타내게 된 배경을 그의 10대 시절 스위스 조기 유학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형 정철, 여동생 여정과 함께 베른의 국제학교에 머물면서 서방의 문물을 접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특히 전미농구협회(NBA) 스타 마이클 조던 등을 좋아해 그의 유니폼과 농구화 등을 사 모으는 광팬으로 자리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에도 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을 평양으로 초청해 농구 경기를 갖도록 하는 등 친분을 유지했다. 엘리트와 주민들 입장에서는 미국을 상징하는 NBA 선수가 방북해 환대를 받고 김정은의 생일에 맞춰 경기장에서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부르는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느꼈을 공산이 크다.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김정은 입장에서는 아킬레스 건이 될 수 있는 사안도 있다. 바로 이모인 고용숙과 그의 남편 리강이 지난 1998년 미국 시민권을 얻어 동부 지역에서 세탁소를 하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용숙 부부는 김정은이 12살이던 1996년부터 약 2년간 생활을 직접 보살펴 주는 역할을 해 누구보다 최고지도자의 어린 시절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으로의 탈북·망명은 충격적일 수 있다.

탈북 망명한 외교관 등이 “김정은이야말로 최고의 탈북자 집안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1997년 2월 북한 공작조에 피살) 씨가 한국으로 망명해 북한 권력 내부의 내밀한 이야기를 폭로하는 등 김 씨 패밀리에서의 탈북이 잇따른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한영의 모친인 성혜랑 씨도 이후 딸 남옥과 함께 서방국가로 망명해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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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2월 17일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식에 간부들과 함께 도열한 김정은. 운구차로 미제 링컨 컨티넨탈이 쓰였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이야말로 최고의 탈북자 집안”

이런 내막을 북한 주민들이 조목조목 알고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인터넷 등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데다 북한 공안기구들이 철저한 단속과 탄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김정은 출생의 비밀이나 기구한 가족사 등을 발설한다는 건 체제에 도전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주민들의 일상을 옥죄는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는 수령과 당의 권위를 훼손시키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융화묵과하지 말고 비상사건화하여 대응할 것을 지침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미와 관련한 북한 체제와 김정은의 이율배반적인 양상은 반일 문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김 씨 세습정권의 이른바 정통성을 ‘항일 무장투쟁’으로부터 담보받으려 하는 모습이 역력하지만 내막을 따져보면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일제 강점기 때는 김일성의 항일 활동을 통해 해방을 맞았고, 6.25 전쟁에서는 미국에 패전을 안기며 승리했다고 주장하면서 “한 세기에 두 개의 제국주의를 타승(打勝)했다”고 선전하지만 실상은 딴판이란 얘기다.

김일성의 항일만 강조하고 찬양·선전하다 보니 북한에서는 3.1절도 없고 유관순 열사나 김좌진·홍범도 장군도 찾아보기 어렵다. 소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은 철저히 은폐·왜곡되고 극동 브야츠크 병영에서 1941년 2월 출생한 김정일은 ‘1942년 백두산 탄생’으로 조작돼 이른바 백두혈통 운운하는 세습체제를 굳히는 데 쓰였다.

문제는 이 같은 항일과 반일 프레임이 김정은 집권 이후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생모 고용희가 북한에서 ‘째포’라고 천대받는 북송 재일교포 출신이란 점도 드러내기 어려운 대목이다. 한때 노동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고용희의 생전 영상을 편집해 ‘평양의 어머니’로 우상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불발에 그친 것도 이런 여론의 확산이 김정은 체제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한 때문으로 파악되고 있다.

자칫 고용희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북송교포란 점과 김정은의 외할아버지 고경택이 제주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점이 알려질 경우 엘리트와 주민 사이에서는 “백두혈통인 줄 알았는데 한라산과 후지산 줄기의 잡탕밥”이란 비아냥이 나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고경택이 군수업체인 히로타군복공장의 간부였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항일 운동을 했다고 우상화 선전을 펼쳐왔는데, 그 집단을 추격하고 소탕하는 일본군의 군복을 외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백두혈통인 줄 알았는데...한라산·후지산 줄기”

김정은이 일본에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듯한 정황이 북한 관영 선전매체를 통해 포착되고 있는 대목도 흥미롭다. 지난 2020년 8월 초 수해를 당한 황북 은파군 대청리에 김정은이 직접 차량을 몰고 나타나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당시 그가 운전한 건 일제 렉서스의 최고급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LX570 모델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김정은은 지난해 3월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참관할 때 일본 니콘 사의 18X70 IF 계열 쌍안경을 들고 나왔다. 또 2022년 12월 소년단대회에 참가한 어린이 5000명에게는 일본 세이코 사의 ‘ALBA’ 모델 시계를 선물하기도 했다. 심지어 지난해 8월에는 딸 주애와 함께 한 식사 테이블에 일본 식품회사인 아지노모토(AJINOMOTO)가 만든 아지시오 소금이 올라 있는 장면이 TV 화면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이 또한 주민들에게는 반일을 강요하면서 김정은과 그 일가는 일본 제품을 즐기는 등 우호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김정은이 어린 시절부터 생모인 고용희로부터 일본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정보와 설명을 접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에서 조총련 간부로서 상당히 여유 있는 생활을 했을 것이란 점에서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우호적인 정서를 더 많이 접했을 것이란 진단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김정은의 인식이 향후 북일 관계 개선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기한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5월 17일 담화를 통해 북한의 잇단 신형 방사포 공개 등이 대남 타격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최근에 우리가 공개한 방사포들과 미사일 등의 전술무기들은 오직 한 가지 사명을 위하여 빚어진 것”이라면서 “그것은 서울이 허튼 궁리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 쓰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7월 8일에는 담화를 통해 우리 군의 K-9 자주포 사격훈련을 비난하면서 “위험천만한 국경 일대에서의 실탄사격 훈련도 서슴지 않고 있다”며 도발 명분을 축적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와 올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적대(敵對)’로 규정하고 ‘국가 대 국가’로 가져가겠다고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실제 북한이 최근 들어 쏘고 있는 미사일은 시험사격 등에서 사거리를 300km 안팎으로 설정하는 등 한국을 겨냥한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일련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북한이 오는 11월 미 대선을 의식해 대미 비난의 수위를 조절하면서 대남 위협은 고조시키는 차별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트럼프의 귀환에 대비하고 하노이 노딜의 충격파를 뒤늦게 수습해 보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트럼프와의 시즌 2를 준비하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주민에게는 사상교육과 세뇌를 통해 반미와 반일을 강조하면서 정작 김정은과 그 핵심 지배층은 미국·일본을 선망하는 이중성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젊은 층을 비롯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접하면서 북한 세습독재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조금씩 키워나가고 있다. 폭압적인 통치 행태가 반발의 표출을 어느 정도 막거나 지연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100년 집권’을 꿈꾸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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