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의료기기 수출기업 쉬엔비의 강선영 대표를 만난 곳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핫플로 유명한, 팝업의 성지 성수동의 쉬엔비 본사였다.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최근 완공한 쉬엔비 본사는 지상 11층에 지하 3층까지 있는 건물이다. 생산시설까지 모두 입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성수동에 생산시설까지 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직원들 출퇴근을 위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성수동은 2호선 성수역·뚝섬역에다 수인분당선 서울숲역까지 있어서 서울시내뿐 아니라 인천, 수원 등지에 살고 있는 직원들까지 출퇴근이 가능한 곳이다. 직원들이 입사한 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는 게 아니라면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경영자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강선영 대표는 말 그대로 맨손에서 시작한 사업가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정말 혼자 힘으로 25년 넘게 기술혁신 중소기업을 세우고 운영해온 ‘철의 여인’이다.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필요로 하는 미용의료기기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이노비즈 협회) 여성경제위원장을 두 차례(6대·8대)나 맡을 정도로 리더십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의료기기산업협회의 더마융복합위원회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가운데 짬을 내 인터뷰에 응하며 본인의 일과 인생 이야기를 과장 없이 솔직하게 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을 정말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온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K뷰티 경쟁력이 높은 만큼 미용의료기기 산업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고,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전망 있는 산업에서 운 좋게 성공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강 대표의 진솔한 얘기를 들어보면 그만의 강한 끈기와 성실함, 투지가 오늘날의 쉬엔비를 만들었고, K뷰티의 핵심에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사옥에서 끊임없는 기술개발 의욕을 불태우는 강 대표와의 만남은 필자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됐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로 회사 가치 높여”
Q. 제조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고 더욱이 기술기반 제조업체는 더욱 힘들 것 같은데 미용의료기기 산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대학에서 전공한 것과 관계가 있는지.
대학 전공은 사회복지입니다. 전공과 별 관련은 없습니다. 사실 저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조부모님 손에서 컸기 때문에 제 힘으로 대학을 다녀야 해서 일찍부터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죠. 당시에는 자격증이 중요하다고 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부기, 주산, 타자 등 자격증이란 자격증은 다 취득했습니다. 그러다가 미용사 자격증을 따게 됐고, 당시 미용사 자격증이 있으면 피부미용관리까지 할 수 있어서 에스테틱 숍을 열기도 했죠.
원래 제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어요. 가정형편상 의대에 갈 수 없었고, 대신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병원 같은 요양원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런 꿈을 꾸기도 한 것 같아요. 그것도 제가 돈을 벌어 대학을 다녀야 했기에 서른이 넘어서 학업을 마쳤죠. 막상 요양원 쪽은 실제 하지를 못했고 사업으로 돈을 번 것은 헤어와 피부미용이었어요. 그래서 석사는 미용향장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의료기기공학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습니다.
저희가 만들고 있는 피부미용기기는 의료기기로 분류되고 의사들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만 제조 판매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나라마다 심사기준이 다르고 엄격해서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가 50개입니다. 피부미용 쪽은 트렌드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을 해야 합니다. 매년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기본 개발에 보통 3년이 소요됩니다. 3개 개발팀을 두고 팀별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방식으로 연구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지만 R&D에 매년 30%를 투자하고 있죠.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학회도 빠지지 않고 참석합니다. 학회를 연간 21회에서 25회 정도 찾아갑니다. 제가 직접 설명회를 하기도 하고요. 해외에서는 개발자를 중시하기 때문에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회사 대표의 얘기를 듣고 싶어 하죠. 학회에는 주로 의사들이 참여하고요.
“무작정 날아간 미국, 기회를 발견하다”
Q. 사업 성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일이 있었는지.
에스테틱 숍을 하다가 사업 부진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해외에 나갈 생각을 했죠. 처음에는 일본을 갈까 했는데 보증인이 없어서 어려웠고, 마침 미국 LA 지역에서 헤어숍을 하는 지인이 초청을 해줘 그곳에서 6개월 정도 피부미용 일을 할 수가 있었죠. 그때 미용의료기기를 처음 사용해 보았는데 성능이 좋았습니다. 6개월이 지나 비자 관계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그 기계를 가지고 와 계속 사용해 보다가 직접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어서 제작업체에 부품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제작을 요청하니 그대로 만들어 주었는데 성능이 괜찮았어요. 이후 본격적으로 수원과학대 산학협력과정에 참여해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1996년 사업을 시작할 무렵 전기전자제품 제조사는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만 할 수 있도록 규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인과 동업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규정이 바뀐 2001년부터 저 혼자서 성환E&B라는 업체명으로 제품 개발과 판매를 했죠. 그때 만든 것이 다이아몬드 필링기와 크리스탈 필링기였습니다. 이후 고주파 기기가 등장하면서 그쪽으로 개발이 집중됐습니다.
의료기기로서 각국의 심사를 받아야 했는데, 유럽 인증(CE)를 먼저 받고 나서 미국 FDA 승인 신청을 2011년에 처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2014년 인증에 실패하고 재신청을 거쳐 2016년에 승인을 받았습니다. 장장 5년이 걸렸죠. 실패한 이유는 임상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미국 시장에서 승인받으려면 미국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당시 저희 회사 규모로는 미국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을 할 수가 없었죠.
그런 상황에서 무작정 미국 미용의료기기 관련 학회에 당시 제가 만든 의료기기를 가지고 참석을 했습니다. 좀 무모할 정도였죠. 그 학회에 참석했던 한 미국 의사가 제 기기에 관심을 가지고 먼저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피부과 의사가 아니라서 임상을 할 수 없었죠. 고맙게도 그분이 피부과 의사 친구를 소개해 주면서 임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FDA 승인 신청을 다시 할 때 돈이 없어서 변리사를 쓰지 못하고 미국 의사와 제가 직접 신청서를 작성해 넣었는데 마침내 2016년에 승인이 난 것이죠. 지금은 전 세계 82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경영은 매일 전쟁터, 부딪치면서 풀면 된다”
Q. 사업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가장 어려웠던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
사업은 날마다 전쟁을 하듯 힘든 일이 생깁니다. 요즘도 출근하면 어제는 개발부, 오늘은 생산부 이런 식으로 매일같이 문제가 터지죠. 그러나 그런 일은 해결하면 되는 일이죠.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손실이 발생해서 사업을 축소하고 직원들이 떠나고 했을 때입니다. 당시 홈쇼핑을 통해 가정용 제품을 팔았는데 판매수수료와 반품 관련 조건 문제로 손해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중소기업은 홈쇼핑이라는 유통 플랫폼과의 관계에서 너무 일방적으로 열세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점은 정말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엔지니어 2명이 떠나지 않고 곁에 남은 덕분에 성수동으로 회사를 옮겨오고 재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전 사옥에서 17명이 근무를 했는데 현재 80명까지 직원이 늘어서 이곳 새 사옥으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저는 요즘도 잠을 하루에 5시간밖에 자지 않습니다. 새벽형 인간인데, 새벽에 일어나 매일 다니는 절에서 기도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영을 하고 출근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죠. 어쨌든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몸을 단련하는 시간을 매일 가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허·상표권 보호가 정말 중요”
Q. 쉬엔비는 작지만 강한 기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자사 기술에 대한 보호장치는 잘 마련돼 있는지.
사업 초기 단계에서 상표권, 특허권을 등록해 두지 않았다가 곤란을 겪은 일이 있습니다. 비바체(Vivace) 판매총판 역할을 하며 미국 진출에 도움을 줬던 미국 대리점에서 저희 허락 없이 ‘Vivace’라는 상표권을 무단으로 등록해 지금도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일로 저희는 모든 상표권을 한국과 미국에 출원, 등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제품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자 중국에서 일부 카피 제품들을 만들어 판매까지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리 특허를 등록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지금은 무조건 모든 제품 특허를 출원, 등록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면 전에는 제가 네이밍을 했는데 지금은 직원들 공모를 통해 결정하고 있습니다. 직원들 호응이 좋습니다.
“어디에나 어려움은 있다. 한 우물을 파라”
Q. 후배 사업가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난관에 부딪치기 마련이고 그럴 때 포기하고 다른 일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어려움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업을 한다고 해서 쉬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죠. 꾸준히 계속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게 됩니다. 특히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은 기술이 핵심이기 때문에 꾸준한 노력이 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결국 다른 회사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꾸준함인 것 같습니다.
“미용의료 강국의 기틀을 만드는 데 기여한 보람”
Q. 기업을 경영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점은.
학창시절 제 꿈이 의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제가 비록 의사는 되지 않았지만 의사분들이 의료 활동을 하는 데 저희 제품이 없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의사들 의료 활동 기반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아울러 우리 회사는 중소기업이지만 15년 이상 장기 근무하는 직원들이 많습니다. 저는 우리 회사에 오래 근무하는 직원들은 집 한 채씩 다 마련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게 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해서 직원들 삶의 터전인 기업을 소중하게 지켜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