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투자의견 하향 점증, UBS는 “130달러”
“’하드웨어 의존’ 서비스 마진 정점 찍어”
신기술 ‘침묵’ 관행, ML 개발·접목 이력
| 이홍규 기자 bernard0202@newspim.com
올해 들어 여타 대형 기술주와 달리 주가가 하락 중인 애플(종목코드: AAPL)을 둘러싸고 월가에서 등을 돌리는 애널리스트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의 성장률 감속이 우려될 뿐 아니라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주된 이유다. 관련 의견 중에는 주가가 현재보다 30% 가까이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에는 종래 애플이 수년 동안 신사업으로 추진했던 전기차 개발마저 백지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낙담의 표정도 읽힌다. 전기차 개발의 단념은 언론 보도를 통해 가늠이 가능했던 터라 충격이 덜하다지만 인공지능(AI) 경쟁에서의 ‘열위’ 구도 고착화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번 애플에서는 과거 독창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설계로 신규 시장을 열고 열세를 극복한 ‘뒤집기 저력’을 기대할 수 없는 걸까.
미국 투자전문매체 벤징가(Benzinga)에 따르면 연초부터 3월 4일까지 월가에서 애플의 투자의견을 하향한 곳은 3개인 반면 상향한 곳은 1개에 불과했다. 관련 집계치에 반영되지 않은 UBS 등의 투자의견까지 포함하면 하향 건수는 더 많다. 애플의 주력 수입원인 아이폰 매출액 성장률이 중국 시장 판매 부진 등으로 저조할 것으로 보여 실적 정체기가 예상되는 데다 국면의 반전을 꾀할 AI 전략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된 이유다. 애플은 골드만삭스가 높은 확률로 주식시장의 성과를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되는 종목 목록을 모아둔 ‘확신’ 목록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투자자 생각도 비슷하다. 애플의 주가는 올해 들어 3월 4일까지 9% 하락해 중요 지지선으로 불렸던 180달러까지 반납했다. 전기차 시황의 부진으로 주가가 침체기에 있는 테슬라를 제외하고 다른 대형 기술주가 AI 열풍을 타고 상승세를 연출 중인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1월 미국 주식시장에서 애플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 자리에 올라선 마이크로소프트의 연초 이후 3월 4일까지 상승률은 10%다. 애플과 함께 이른바 ‘매그니피센트(Magnificent) 7’ 종목으로 분류되는 엔비디아의 경우 72%로 훨씬 크다.
UBS는 애플의 주가가 3월 4일 종가 175.1달러보다 26% 낮은 130달러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봤다. 이유는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진입(관련 추산에 따르면 세계 보급률은 70%, 미국은 82%, 심지어 인도도 62%라고 한다)해 장기간의 성장 정체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고 △앱 스토어와 클라우드 등 서비스 사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고는 하나 매출 창출 구조가 스마트폰 등에 의존하는 형태여서 이 역시 추가 성장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었다.
UBS는 주식시장에서 형성된 애플에 대한 밸류에이션이 과해 보인다고 했다. UBS는 애플 매출액의 80%가 스마트폰 등 소비자 단말(하드웨어)에서 발생하는 만큼 기업가치 산출에 ‘인(人)당’이라는 개념을 차용했다. 관련 분석에 따르면 애플의 하드웨어 구매를 감당할 수 있는 세계 인구가 12억명 정도(연간 소득 1만2000달러 초과)로 추산되는데 이러면 애플 기업가치는 인당 2300달러로 평가된다고 한다. 인구당 연간 800달러의 지출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는 과해 보이는 금액이라는 게 UBS의 분석이다.
서비스 사업은 애플의 이익률 견인차다. 서비스 매출총이익률은 70%대로 하드웨어 35%의 2배다. 하드웨어와 달리 제조비용이 들지 않는 특성 덕이다. 이 때문에 애플의 서비스 사업 성장은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릴 동력으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UBS는 서비스 사업의 매출총이익률은 70%가 정점이라고 봤다. 애플 서비스 사업의 성장은 하드웨어에 의존하는데 하드웨어 사업의 장기 정체기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UBS는 “하드웨어 판매 기업임에도 주식의 밸류에이션은 마치 소프트웨어 회사와 같다”고 했다.
UBS는 애플이 장기 정체기를 피하려면 잠재시장 규모가 큰 곳을 대상으로 한 신규 서비스나 하드웨어를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관련 시장이라면 당장 유력한 것이 AI이지만 현재 스마트폰 시장의 AI 경쟁에서는 삼성전자의 갤럭시S24에 주도권을 내준 것으로 보이고 시야에 들어오는 전략도 없다고 했다. 골드만삭스가 애플 주식을 ‘매수 확신’ 목록에서 제외한다고 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UBS는 애플의 생산거점인 중국과 관련된 지정학적 리스크와 구글과 관련된 법무부의 소송도 주가 할인 요인이라고 했다.
구글은 아이폰의 웹 브라우저인 사파리의 기본 검색엔진으로 구글을 쓰도록 하기 위해 연간 180억~200억달러를 애플에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법무부는 구글의 관련 지급이 검색엔진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행위로 보고 독점금지법 소송을 진행 중이다. UBS는 소송 결과에 따라 양측의 계약 관계가 무산되면 애플의 주당순이익은 약 8% 줄어들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중국은 애플의 매출 비중 20%, 시장 점유율 20%, 제조물량의 90%를 차지하는 만큼 지정학적 위험에 취약하다고 했다.
UBS 등 월가의 의견을 보면 비관론의 릴레이를 끊을 수 있는 당장의 실마리는 AI 전략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2월 혼합현실이라는 분야를 겨냥한 ‘비전프로’ 헤드셋이 출시됐으나 고가인 데다 아직 구매자가 애플 애호가나 얼리어댑터 등에 한정돼 있어 유의미한 매출 기여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AI 기술은 이미 시장성이 검증된 스마트폰 등에 탑재되는 형태다. 호응을 얻으면 단기간 안에 하드웨어 판매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앱 수입의 확대 등 서비스 매출액의 빠른 향상도 가능하다. 현재 월가에서 AI 전략에 대해 ‘명확성이 부족하다’,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애플이 이런 지적을 받는 배경에는 제품이나 기술을 공식적으로 공개하기까지 침묵을 지키는 전략적 관행이 있다. 지난 1년 동안 관련 질의에 ‘상당한 투자’를 해오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월 28일에는 ‘구상을 연내 공개하겠다’고 한발 나아간 발언을 했지만 구체안은 언급되지 않았다. 통상 애플이 신기술이나 새 제품에 대해 말을 삼가는 것은 기대감을 조성하고 공개 시점에서 소비자 관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미완성 기술을 섣불리 홍보했다가 브랜드 이미지에 금이 가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침묵 배경의 전략적 목적 존재 여부를 떠나 애플은 AI 분야에 상당한 투자를 해온 게 사실이다. 식킹알파에 따르면 애플은 2023년 한 해에만 AI 스타트업 32곳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또 종전부터 머신러닝(ML)에 초점을 두고 내부 개발을 진행해 관련 기술을 아이폰에 접목해 왔다. △ML을 통한 이미지 인식과 이에 따른 사진 분류 △사용자의 키보드 타이핑 패턴 학습을 통한 단어 제시 △사진 촬영 시 여러 장을 고속으로 캡처한 뒤 ML을 통해 선명도와 색상 정확도가 가장 높은 사진을 자동 선택하는 기능 등이 아이폰에 접목돼 활용되는 ML 기술이다.
ML은 데이터를 학습한 뒤 패턴을 인식하고 예측을 수행하는 알고리즘을 뜻한다. 생성형 AI는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개념으로서 ML에서 진보된 형태로 사뭇 다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관련 기술의 토대는 ML에 있기에 애플이 관련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애플은 생성형 AI 구현을 위해 ‘Ajax’로 불리는 독자적인 LLM(대규모언어모델)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 이력이나 침묵을 유지하는 관행에 비춰볼 때 애플에 AI 전략이 부재하다는 얘기는 섣부른 판단일 수 있는 것이다.
애플의 생성형 AI 개발은 지난 2월 전기차 사업의 백지화를 기점으로 더 탄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2월 27일 블룸버그통신은 애플이 전기차 개발을 중단하기로 하고 관련 프로젝트에 투입된 약 2000명의 인력 중 상당수를 생성형 AI 개발 부서에 배치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통상 애플은 매년 6월 개최되는 WWDC(세계개발자컨퍼런스)에서 신규 iOS(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를 공개하는데 전문가들은 올해 6월 발표될 ‘iOS18’에서 애플의 생성형 AI 기능이 공개될 것으로 기대 중이다. 모간스탠리는 “애플이 생성형 AI라는 더 중요한 사안으로 자산의 용도를 변경한 것은 긍정적인 전개”라고 했다.
애플의 생성형 AI 기술의 매출 잠재력 원천은 대규모로 보급된 하드웨어의 수에 있다. 딥워터애셋매니지먼트의 진 먼스터 매니징 파트너에 따르면 현재 애플의 활성 디바이스(일정 기간 인터넷에 연결되거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등 활동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장치) 수는 22억대이고 14억명의 활성 사용자(일정 기간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한 개인이나 계정)가 이를 소유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활성 사용자 중 20%가 월 10달러의 AI 제품을 서브스크립션 형태로 구매한다면 연간 330억달러 매출총이익(매출총이익률 80% 상정)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영업이익을 2023년 연간(1550억달러) 대비 16% 늘리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고 한다.
하드웨어 사업과 더불어 애플의 ‘양륜 경영’의 한 축으로 불리는 서비스 사업도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웨드부시의 대니얼 아이브스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애플에 생성형 AI가 도입될 경우 현재의 앱스토어는 다양한 분야의 AI 애플리케이션을 사고파는 AI 앱스토어로 변모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AI 앱스토어를 통한 연간 서비스 매출액 추가분은 50억~10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서비스 부문의 연간 매출액은 1000억달러 정도인데 AI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매년 5~10%의 증액 효과를 누리게 되는 셈이다. 앞서 UBS가 단점으로 지적한 하드웨어 기반의 경제권은 오히려 공고해질 수 있다.
과거 애플은 기술이나 제품에 대한 사용자 친화적인 설계로 새로운 시장을 열거나 수세에 몰린 상황을 타개한 저력이 있다. 2001년 출시된 애플의 아이팟은 휴대용 음악재생 기기 시장을 재정의하는 한편 아이튠즈와 함께 디지털 음원 유통 방식을 변화시켜 당시 경영난에 빠진 애플을 구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밖에 휴대전화 시장의 혁신을 일으킨 아이폰(2007년), 태블릿PC 시장을 만든 아이패드(2010년), 무선 이어폰 시장을 재정의한 에어팟(2016년) 등이 대표적 예다. 생성형 AI 개발을 둘러싸고 침묵을 유지하는 애플에 대해 사용자 친화적인 설계의 고심 흔적이라는 기대 섞인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