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PTV 시장은 3사 과점으로 경쟁강도 느슨
IPTV 시장, 과점 완성되며 급격한 가격인상
넷플릭스 대공세로 영화관도 타격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글로벌 OTT(Over the Top) 최강자인 넷플릭스가 2016년 한국에 첫 진출한 후 8년이 훌쩍 지났다. 과연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케이블TV를 끊고 대표적인 OTT(인터넷을 통해 드라마, 영화 등의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 회사인 넷플릭스로 대이동하는 코드커팅이 발생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는 IPTV(통신사의 자체 통신망을 통해 제공되는 인터넷 TV)라는 강력한 방송 서비스가 존재해 코드커팅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20, 30대의 1인가구 중심으로 일부 코드커팅이 있었지만 우려만큼 숫자가 크지는 않았다. 한국 IPTV 3사가 넷플릭스의 파상 공세를 견뎌낸 비결은 뭘까.
한국의 초기 IPTV 시장, 적자 늪에 허덕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9년 초 한국에서는 IPTV라는 혁신적인 상품이 나왔다. IPTV 등장 이후 드라마를 본방 사수하거나 비디오를 다시 반납하는 귀찮은 일은 없어졌다. 드라마를 언제든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혁신이었다.
그런데 2009년도에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IPTV들은 이렇게 콘텐츠들을 퍼주고도 돈이 남았을까. 당연히 아니다. IPTV 3개 회사인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는 초기에 엄청난 적자를 감수했다. 서비스를 개시한 첫해의 IPTV 3개사 매출액 합계는 2204억원에 불과했다. 각 회사는 적자를 감수하고 2000억~4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초기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그 이유는 월정액 요금을 내는 유료고객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유료고객들은 한번 확보되면 3년 약정 때문에 최소 3년간은 이탈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IPTV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며 평생고객이 되는 전략이다. 한국의 경우 IPTV 요금과 인터넷 요금이 합쳐진 결합상품이 대세였다.
게다가 아예 핸드폰 요금까지 결합한 상품을 패키지로 파는 경우가 많았다. 약정기간 3년이 다가오면 어디서 알았는지 모를 문자와 전화가 쇄도했다.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가 비공식적으로 현금 30만~50만원을 보상해 주며 경쟁사 고객들을 다시 빼 내오는 경쟁은 치열했다. 하지만 3개사만 경쟁했으므로 완전경쟁시장은 아니다. 과점시장이라 그만큼 마진도 컸다.
한국의 유료방송 시장은 여전히 성장 중
먼저 유료방송 가입자 수 현황을 살펴보자. 한국의 유료방송 가입자 수 증감 추이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몇 가지 강력한 특징이 있다.
첫째, IPTV의 약진이다. 한국에서 IPTV는 2009년에 처음 도입됐다.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의 2023년 6월 말 기준 가입자 수는 14년간 급성장해 2081만명을 기록했다. 점유율도 과반을 훌쩍 넘긴 57%를 차지했다. 소비자들이 지금도 꾸준히 IPTV에 가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폭탄을 맞은 건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 등)과 위성방송이다. 지난 5년 6개월간 가입자 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종합유선방송은 9%, 위성방송은 10%의 감소세를 보이며 점점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둘째,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여전히 증가 추세다. 한국의 유료방송 전체 가입자 수는 2018년 3249만명에서 2023년 6월 말에는 386만명 증가한 3635만명이다. 5년 6개월간 12%가 증가했다. 증가율이 낮긴 하지만 계속 성장 중이다.
의아한 건 통계청이 추정하는 한국의 전체 가구 수는 2000만 가구 내외라는 점이다. 가구 수보다 유료방송 가입자 수가 월등히 많은 3656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과거의 가구별 방송 시청보다 최근에는 개인별 방송 시청이 많은 추세의 영향이다. 향후 유료방송 시장이 가입자 수 3635만명을 넘어 어디까지 성장할지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유독 성장세가 가팔랐던 IPTV 시장은 3개 사업자인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가 사이 좋게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 이 3개사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서로 가입자를 뺏기 위해 현금 사은품까지 지급하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럼에도 과점시장의 특성상 경쟁강도는 느슨하다.
한국 IPTV 시장은 3사 과점으로 경쟁강도 느슨
이렇게 평화로움이 유지되던 시장에 드디어 글로벌 큰손이 뛰어들었다. 바로 넷플릭스다. 글로벌 OTT 최강자 넷플릭스가 2016년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한국 소비자 중에 IPTV를 끊고 넷플릭스 OTT로 넘어가는 코드커팅을 단행한 소비자는 많지 않다.
대신 넷플릭스를 추가로 가입하는 형태가 더 흔하다. 이유는 한국에서 IPTV 월정액은 여전히 저렴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월 2만원 미만이라 선진국보다 훨씬 싸다.
이 낮은 가격으로 셋톱박스 설치까지 알아서 다 해준다. 지상파 생방송과 종편 생방송의 무제한 시청과 한정적인 무료 VOD까지 시청할 수 있어 유용하다. 이런 강점을 살려 통신사들은 인터넷과 IPTV를 결합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료방송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가입자 수 2000만명을 돌파했다.
또 초기에는 넷플릭스를 경계하던 IPTV들이 몇 년 전부터는 아예 경쟁을 포기하고 공생관계로 돌아선 것도 IPTV의 가입자 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LG유플러스와 KT의 경우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주요 OTT 서비스가 아예 자사의 IPTV에서 구동되도록 메인 화면까지 친절하게 바꿔놓은 상태다.
SK브로드밴드도 3년간의 지루했던 넷플릭스와의 망 사용 분쟁을 종결하고 협업을 통해 가입자 증가에 나설 태세다. 이런 구도로 인해 소비자는 IPTV를 통해 편리하게 OTT를 시청할 수 있는 상황이다.
IPTV 시장, 과점 완성되며 급격한 가격 인상
문제는 유료 VOD 가격이다. 2009년에 처음 도입된 IPTV는 드라마를 본방 사수하지 않아도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혁명적인 신상품이었다. 하지만 ‘VOD 다시보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면 이런 장점은 희석돼 버린다.
IPTV가 도입됐던 초창기에는 각 통신사들이 가입자 확보를 위해 적자 판매를 지속해 유료 VOD 가격이 저렴했다. 하지만 과점이 완성되면서 VOD 가격은 거침없이 상승했다. 15년 전인 2009년과 비교해 보면 최신 드라마와 영화 VOD 다시보기 가격은 340% 폭등했다.
이런 가파른 가격 상승은 KT, SK, LG 등 3개사가 과점하는 느슨한 형태의 경쟁시장이라 가능했다. 그래서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한국의 유료 VOD 가격은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공세가 본격화된 이후로는 VOD 가격 인상에 부담을 느끼면서 최근 2년간은 동결 상태다.
또 한국 IPTV는 넷플릭스 같은 OTT와 비교하면 요금 책정에 불합리한 점이 있다. 예를 들면 한 가정에서 TV를 2대 사용할 때 각각 셋톱박스를 설치해 추가로 셋톱박스 임대비용이 들어간다. 심지어 거실에 있는 첫 번째 IPTV에서 유료 VOD를 결제해도 안방에 있는 두 번째 IPTV에서 동일한 VOD를 시청하려면 또다시 돈을 내야 한다.
IPTV 3개사는 비싼 개별 VOD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저항을 완화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방송’ 세트상품 출시를 통해 가격을 인하했다. 이 세트상품은 추가 월정액을 내면 해당 방송의 유료 VOD 서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방송사 세트상품은 개별 VOD 가격보다는 훨씬 저렴했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요 방송사별로 상품이 나눠져 있어 원하는 인기 드라마를 모두 시청하려면 2, 3개의 상품에 가입해야 했다. 이에 최근 일부 IPTV사는 지상파와 종편을 통합한 월정액 요금제를 새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 VOD 가격은 별도다. 그래서 한국 IPTV VOD의 평균 가격은 비싸다. 한국 시장에 진입한 넷플릭스는 이런 소비자들의 불만을 놓치지 않았다.
넷플릭스의 대공세로 영화관도 타격
넷플릭스의 약진에는 영화관의 관람료 폭주도 한몫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8년에는 평일 낮 기준 영화 관람료가 1만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종료 후인 2022년부터 평일 낮 기준 1만4000원으로 폭등했다. 무려 40% 인상률이다. 심지어 주말 관람료는 1만5000원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영화관이 아닌 OTT를 통해 공개하는 작품이 늘었다. 스크린에서 상영된 영화도 홀드백(영화관 상영 종료 후 타 플랫폼에 업로드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기간이 많이 단축됐다. 이게 영화관과 달리 OTT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이유다.
일단 넷플릭스의 가격 체계는 단순하고 저렴하다. 넷플릭스는 월정 요금만 내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시청할 수 있다. 만약 넷플릭스의 1만7000원 프리미엄 요금제에 가입 후 가족이나 친구 4명과 계정을 공유 시 1인당 비용은 4250원에 불과하다.
넷플릭스 스스로도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고 생각했는지 최근 들어 한 가구에 거주하지 않는 공유 이용자는 매달 5000원의 추가비용을 내는 정책을 새롭게 시행했다. 대신 약 5분간 광고 시청 시 월 5500원으로 구독료를 낮춰주는 광고형 스탠다드 요금제도 추가로 신설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부담을 낮췄다.
한국 OTT 업체의 대위기...왜?
이렇게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 진출 초기부터 질주하자 한국 유료방송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그래서 부랴부랴 등장한 게 바로 티빙,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같은 한국의 토종 OTT 업체들이다.
이 한국 OTT들의 강점은 넷플릭스가 제공하기 어려운 예능, 다양한 한국 드라마, 각종 한국 영화 등을 알차게 포함해서 넷플릭스보다 약간 저렴한 구독료를 강점으로 점유율을 늘려 왔다.
그렇다면 한국의 OTT 서비스 이용률은 얼마나 늘었을까. 2023년 기준 OTT 서비스 이용률은 무려 77%까지 올라왔다. 2018년의 42.7%와 비교하면 성장폭이 엄청나다. 이제 한국 국민 10명 중 8명은 OTT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보면 된다. 외견상 한국 OTT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IPTV 매출 상황은 어떨까. 방송통신위원회의 ‘2023년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IPTV의 전체 매출액은 2020년의 4조2836억원에서 2년 뒤인 2022년에는 14.2% 증가한 4조8945억원을 기록했다. 양호한 매출액 증가세다.
반면 기존 IPTV의 ‘가입자 1인당 연간 매출액’은 2020년의 23만1000원에서 2022년에는 23만7000원으로 고작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 IPTV의 수익성 지표는 뚜렷이 악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놀라운 건 IPTV 3사의 상황은 토종 OTT 업체인 티빙, 웨이브, 왓챠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라는 사실이다. 외견상 양호해 보이는 한국의 토종 OTT 업체들은 지금 엄청난 위기에 빠져 있다. 티빙, 웨이브, 왓챠는 과연 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