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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대는 北·日 관계...기시다-김정은 평양 정상회담 열리나

2024년 04월호

꿈틀대는 北·日 관계...기시다-김정은 평양 정상회담 열리나

2024년 04월호

|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newspim.com

북한 김정은의 행보를 관찰해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하나가 일본 관련 사안이다. 일제 브랜드인 렉서스 차량을 몰고 지방 시찰에 나서고,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는 자리에서는 니콘 쌍안경을 들고 나타난다. 김일성의 이른바 ‘항일 무장투쟁’을 북한 체제의 뿌리로 내세우고 반일과 반제국주의를 표방하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상교양에 주력하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최고지도자의 이미지다. 김정은 스스로 철저한 반일의식에 사로잡혀 있거나 어느 정도 우호적인 인식이 없다면 벌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서는 북한과 일본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평양발 대일 비난의 수위가 낮아지는 건 물론이고 양측이 뭔가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듯 탐색전을 노골적으로 벌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이런 양상은 더욱 짙어지는 모양새다. 구체적인 상황 진전을 불러일으킬 듯한 발언을 한 건 기시다 후미오 총리였다. 그는 지난 2월 9일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정상회담 추진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북일 간에 정상회담과 관련해 모종의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내용이라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기시다 총리는 “제가 스스로 필요한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해 뭔가 구체적인 움직임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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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7일 북한 포병부대의 훈련 모습을 참관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여정 담화 통해 “기시다 총리 평양 올 수도”

기시다의 발언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더 놀랍고 흥미로운 모습이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같은 달 15일 담화를 통해 “이번 발언이 과거의 속박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조일관계를 전진시키려는 진의로부터 출발한 것이라면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물밑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김여정은 “(기시다)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북일 정상회담 분위기를 먼저 띄우려는 듯한 분위기까지 감돌게 했다.

김여정의 담화에는 조건이 달려 있다. 그는 “일본이 우리의 정당 방위권에 대해 부당하게 걸고드는 악습을 털어버리고 이미 해결된 납치 문제를 양국 관계 전망의 장애물로 놓지 않는다면...”이란 언급을 담화에서 내놓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일본의 문제 제기와 납치 일본인 문제를 회담이나 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삼지 말라는 언질로 보인다. 그렇지만 김여정 담화의 전반적인 맥락은 북일 간 대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김여정은 이 담화 말미에 “어디까지나 나 개인적인 견해일 뿐 나는 공식적으로 조일관계를 평가할 위치에 있지는 않다”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김여정이 오빠와의 긴밀한 교감 아래 이런 담화를 냈을 것이란 점에서 김정은 또한 북일 관계 개선 추진과 정상회담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북일 간의 이 같은 유화적 분위기는 지난 1월에도 감돌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시카와현에서 발생한 지진과 관련해 기시다 총리에게 위로 전문을 발송했는데 ‘총리 각하’라는 깍듯한 표현을 쓴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은 “당신과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에게 심심한 동정과 위문을 표한다”고 밝혔고, 이런 내용은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를 통해 북한 주민들도 접할 수 있었다.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나 접근을 굳이 주민들에게 감추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식민 지배 등을 언급하면서 앙앙불락하던 북한의 대일 태도를 고려할 때 최고지도자가 일본 총리에게 이런 형태의 전문을 보낸 건 주목받을 만하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 대해 극렬한 대남 비방을 퍼붓고 남북 관계를 ‘적대(敵對)’로 가져가고 ‘국가 대 국가’로 설정하는 상황이라 일본에 대한 이런 태도는 더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남북 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북일 접촉을 탐색하는 듯한 김정은과 여정 남매의 콜라보가 어떤 함의를 갖는지를 두고 서울의 대북 전문가 그룹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대남 적대관계 주장하며 일본과는 화해기류 탐색

북한과 일본은 한국이 알아채기 힘든 상황이나 국면에서 비밀 접촉 등을 통해 관계 진전이나 정상 간 접촉을 시도해 왔다. 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은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의 여세를 몰아 성사됐지만 현재와 같은 한반도 긴장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북한과 일본이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북일 양측은 이미 관계 개선이나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로드맵을 갖고 있다. 지난 2014년 5월 만들어진 스톡홀름 합의가 대표적이다. 당시 송일호 북한 외무성 조일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와 이하라 준이치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북일 관계 개선 문제를 위한 접촉을 벌인 뒤 관련 내용을 합의문으로 발표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는 국장급 사전 협의가 극비리에 진행되기도 했다.

최근의 북일 관계 개선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스톡홀름 합의라는 토대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급격한 사태 진전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다. 특히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김정은과 북한 당국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정황도 감지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김정은의 친형인 정철이 대일 접근을 위한 막후 채널 가동을 총괄하고 있다는 첩보다.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용희 사이에서 태어난 2남 1녀 가운데 장남인 정철은 한때 후계 1순위에 꼽혔다. 그렇지만 호르몬계 이상 질환으로 인해 후계자 낙점에서 밀리고 동생 정은에게 자리를 내준 것으로 우리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릭 크랩튼의 광팬으로 알려진 정철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던 2015년 공연 관람을 위해 현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권력과 거리를 두고 음악에 심취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철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 사안을 관할하고 있는 건 그가 국가보위부 부부장 직을 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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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건군절을 맞아 지난 2월 8일 국방성을 방문한 김정은이 딸 주애와 함께 사열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 형 정철이 북일 관계 진두지휘”

이런 첩보 내용은 북한의 대일 접근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강력한 추진력을 갖고 진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여정이 나서 공개적인 담화 등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물밑에서의 교감이나 민감한 사안의 조율은 정철이 담당하는 구조다. 최종 결정권자인 김정은과의 직접적인 소통이나 형제간의 의기투합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향배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북일 수교는 김정은에게 탈출구가 될 수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문제도 말이 아닌 한계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을 김정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으로부터의 지원은 ‘대남 적대’ 등으로 인해 당분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북일 수교는 단순한 정치·외교 사안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사활이 걸린 중대사일 수 있다. 막대한 규모로 추산되는 일제 강점기 피해 보상인 ‘북한판 청구권 자금’을 챙길 경우 북한 경제난 해결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한국은 1965년 일본과의 수교를 결정하면서 청구권 자금으로 무상 3억달러, 차관 2억달러를 받았는데 현 시점에서 북한은 최소 100억달러에서 200억~300억달러까지는 챙길 수 있을 것이란 추산이 나오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포기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북한과 일본은 김정은 체제 들어서도 관계 정상화와 관련해 물밑 접촉은 물론 공개적인 제안성 언급을 통해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대개 일본이 납치자 문제 해결을 전제로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면 북한이 원론적 차원에서 반응을 보이는 방식이다. 평양 쪽 반응이 그리 냉담하지 않다는 점은 일본 입장에서 희망적이었고, 한국과 주변국들은 이런 분위기에 관심을 보이며 사태 진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물론 북일 관계 정상화가 비단길만 깔려 있는 건 아니다. 납치 일본인 문제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북한은 요코타 메구미(1977년 실종 당시 13세 중학생)를 비롯한 일본 국민을 상당수 납치해 공작에 활용했는데, 이들의 소재 확인이나 귀환 문제는 일본 정치권과 국민에게 매우 민감한 현안이다. 최근 국내 지지율이 10%대로 하락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기시다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에 힘을 싣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정일이 고이즈미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납치 문제를 시인하고 사과했다는 점을 들어 북한은 이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은 북한이 은폐하거나 부인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일본 측은 모두 17명으로 파악되는 납북자 중 2002년 9월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일시 귀환 형태로 데리고 온 5명을 제외한 12명은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남은 납치 일본인은 8명뿐이며 모두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4명의 납북자에 대해 “납치한 일이 없다”고 밝히고 있어 해법 마련에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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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린 시절 생모 고용희와 함께한 모습. [사진=뉴스핌 자료사진]


북송교포 출신인 생모 고용희 영향 받은 듯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 어떨지에 대해서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생모인 고용희가 북송 재일교포 출신이란 점은 북일 관계 개선 추진과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제주 출신인 부친 고경택은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고, 여기에서 태어난 고용희는 재일 조총련계 인사들의 귀국사업에 따라 북송선인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으로 향했다.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일하던 고용희는 김정일과 만나 2004년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28년간을 함께했다.

사실 북송 재일교포 출신이란 배경은 양날의 칼일 수 있다. 고용희가 그 소생들에게 일본에서 당했던 차별이나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만행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김정은과 정철·여정 모두 일본에 대한 반감이 상당할 수 있다. 어쩌면 오늘처럼 일본에 대해 반감이 비교적 덜한 상태의 반응을 보이거나 우호적으로까지 비춰지는 분위기를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고용희는 일본에서의 생활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방향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건넨 것으로 보이고, 당시 어려웠을 북한의 경제 상황 속에서 일제 학용품이나 가전제품 등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일본의 발전상 등을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분위기는 김정은 남매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인식을 갖는 계기가 됐을 수 있다.

김정은과 여정이 일상생활에서도 일본에 대한 거부감 없이 행동하는 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김정은이 일제 렉서스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을 직접 몰고 수해 현장에 나타났다는 보도가 관련 사진과 함께 나오고, 일제 니콘 쌍안경으로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는 장면도 포착된다. 후계설까지 나오는 딸 주애가 자리한 식탁에 일제 깨소금이 올라 있는 모습도 드러났다. 김정은이나 그 일가가 일본에 대한 반감이 강력하다면 벌어지기 어려운 광경이다.

일각에서는 고용희의 부친 고경택이 일본에서 군복을 만드는 히로타 군수공장의 관리직으로 일했다는 점을 들어 문제 소지가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김일성 항일 투쟁’을 부풀려 과장·왜곡해온 북한 최고지도자의 외가가 실은 독립군이나 항일세력을 토벌하는 일본군의 군수품 생산에 종사했다는 건 치명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이른바 ‘백두혈통’ 운운하며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쳐 우상화에 몰두해온 북한 체제의 핵심축이 사실은 ‘후지산 줄기’ 또는 ‘한라산 줄기’라는 의구심이 생길 것이란 지적이다. 물론 북한 체제의 특성상 이런 속사정을 주민들이 접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김정은이 결심하면 별다른 정책 부담이나 저항 없이 이행될 것이란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북일 관계 정상화나 수교 문제는 한국에 새로운 숙제를 던질 수 있다. 북한 비핵화나 억제, 위협 대응을 위한 한미일 공조는 물론 남북 관계에서도 새로운 대처가 필요할 것이란 점에서다. 북일 접촉과 관련한 한일 정보·정책 공조는 물론 남북 관계 해법 등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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