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출신 영업맨! 금융위원장 지낸 관료! 상고 출신 글로벌통! 전략통!
2024년 금융 환경 어두워...부동산PF·기업 및 가계부채 등 건전성 위기
| 한기진 기자 hkj77@newspim.com
2024년 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은 ‘건전성 관리’ 역량을 시험받는다. ‘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 코로나19 대출 지원 및 고금리로 인한 취약계층 부실, 기업 및 가계 부채 축소, 특별대손준비금 및 경기대응완충자본 등 자본 규제...’ 성장보다 내실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금융 환경이다. 경제 상황이 좋으면 회사는 스스로 굴러간다. 그러나 각종 부실 요인들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회사는 휘청거린다. 위기를 잘 관리해서 금융회사를 안정적으로 경영하는 CEO의 진짜 실력이 필요하다.
함영주(하나금융지주), 진옥동(신한금융지주), 임종룡(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실력 대결이 펼쳐진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는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선임돼 후발 주자로 나선다. CEO 4인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각각의 개성이 분명하다. 함영주는 시골 출신 영업맨! 임종룡은 금융위원장 지낸 관료! 진옥동은 상고 출신 글로벌통! 양종희는 전략통! 2024년 누가 승자일까?
내년 은행 대출증가율은 올해보다 0.1%포인트 낮은 3.4%로 예상된다. 가계대출은 증가세로 전환되겠지만 부동산 시장의 더딘 회복과 당국의 대출 규제 기조가 유지되면서 소폭 증가가 불가피하다. 신용대출은 고금리 부담으로 감소세가 지속되고, 기업대출도 대기업 대출이 회사채 시장 회복으로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영업이 쉽지 않은 환경이다.
류창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내년 금융 산업은 완만한 경기회복으로 성장성은 전반적으로 개선되겠으나 수익성은 고금리 기조의 지속 기간에 따라 업종 간 차별화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류 연구위원은 “특히 시장 조달에 의존하는 여전업의 경우 유의가 필요하며, 전쟁 등 경제 불확실성이 확산될 경우 전체 금융업의 위험이 커질 수 있는 만큼 무리한 성장보다는 내실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M&A 고민이 많은 함영주 회장
함영주 회장은 비은행 계열사 M&A(인수합병)가 큰 숙제다. 하나금융은 순이익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로 경쟁사 대비 매우 크기 때문이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은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72%, 77%다. 함 회장이 지난해 3월 취임 당시 △글로벌 위상 강화 △비은행 부문 강화 등을 핵심 전략으로 꼽았던 이유다. 취임 3년 차에는 함 회장이 그룹의 경쟁 우위를 위해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지난 3분기 실적에서 하나금융의 비은행 계열사들이 부진했다. 하나증권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투자자산 손실인식으로 2분기 적자에 이어 3분기에도 489억원의 순손실을 냈고, 하나캐피탈과 하나카드 또한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감소하는 등 비은행 전반의 실적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나저축은행과 하나생명의 3분기 누적 순익도 전년 대비 각각 84%, 15% 감소했다.
함 회장은 KDB생명 인수 직전까지 갔으나 포기했다. 그러나 동양생명, ABL생명, MG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등이 매물로 거론된다. 함 회장의 M&A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종룡 회장, 긴축경영 결과는?
임종룡 회장은 취임 직후 강력한 긴축경영을 펼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금융지주 임원(8명)과 우리은행 부행장급 임원(20명), 영업본부장(60명)의 전담 운전기사 제도 폐지다. 최고경영자와 대외 업무를 담당하는 임원을 제외하고는 자가 운전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할 경우 대리운전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우리은행은 임원 자율 선택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해당 임원의 절반가량이 대리운전을 이용하거나 전담 운전기사 계약 만료 시 대리운전으로 바꾸기로 한 비용 절감 조치다.
긴축경영 중이지만 우리금융은 4대 금융지주 중 가장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2조43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4% 감소했다. 같은 기간 KB금융은 8.2% 증가한 4조3704억원을 기록하며 리딩 금융사의 왕좌를 지켜냈다. 이어 신한금융이 3조8183억원으로 2위를 수성했다. 하나금융은 2조977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 늘었다.
이런 가운데 우리금융은 은행 의존도가 4대 금융지주 중 가장 높아 이자 장사로 수익을 기대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실제로 올 3분기 우리금융의 그룹 전체 수익 중 은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94.2%로 전년 대비 5.1%포인트 올랐다. 예대마진도 우리은행이 4대 은행 중 KB국민은행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우리은행의 예대마진은 0.82%포인트다.
진옥동 회장은 은행+카드 통합 중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리딩 금융’의 자리를 공고히 할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올해 3월 취임 이후 KB금융과 실적 격차를 벌려야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오히려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던 하나금융의 추격을 받고 있다. 신한금융의 3분기 누적 당기순익은 3조818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 감소했다. KB금융은 8% 늘어난 4조3704억원으로 신한금융보다 5000여 억원 많다. 4% 성장한 하나금융의 2조9779억원과는 약 9000억원 격차로 좁혀졌다. 은행뿐만 아니라 보험, 증권, 신용카드 등 비은행 계열사의 실적이 부진하다.
신한금융은 현재 비대해진 계열사 효율화를 위해 지배구조 통합을 검토하고 있다. 운용사 등 비주력 비은행 계열사 교통 정리가 주로 거론되는 가운데 중장기 과제로 신한은행-신한카드 통합이 거론된다. 신용카드 업황이 악화돼 은행과 통합을 검토하는 것이다. 신한카드의 올 3분기 말 기준 순이익 규모는 469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나 줄었다. 시중금리 급등으로 조달비용이 늘어났고, 고금리 지속에 따른 자산 부실화로 충당금이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영향이다. 진 회장의 은행-카드 통합은 이런 위기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고육지책으로 통한다. 신용 거품이 붕괴하며 터진 ‘2002년 카드 사태’ 이후 국민카드, 우리카드 등 은행계 카드사는 대부분 은행에 다시 흡수 통합됐다.
양종희의 비전은?
양종희 KB금융 회장 내정자의 ‘2024 비전’은 드러나지 않았다. 분명한 점은 윤종규 현 회장의 가장 큰 업적인 ‘리딩 금융’ 자리를 공고히 할 책임이 있다. 윤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1조원대였던 그룹 순이익을 지난해 4조3900억원대로 끌어올렸다. 특히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리딩’을 놓치지 않았던 신한금융을 제친 것도 윤 회장의 공이다. 회장 자리에 오른 이후 꾸준히 LIG손해보험, 현대증권, 푸르덴셜생명을 차례로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M&A에 나서면서 ‘종합 금융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현대증권 인수가 완료된 2017년, 9년 만에 KB금융이 리딩 금융을 차지했고, 2018년과 2019년 신한에 잠시 내줬던 1위 자리를 2020년 되찾아왔다.
비은행 계열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양 회장 내정자는 그룹 성장을 위해 비은행 부문 강화에 나설 전망이다. 금융그룹 간 은행 경쟁력 차이는 거의 없지만 비은행 부문에서는 순익 영향력이 매우 크다. 신한금융과의 ‘리딩’ 경쟁에서도 ‘비은행’이 결정적 요건이다.
또한 양 부회장 앞에는 ‘부코핀은행 정상화’ 라는 과제도 놓여 있다. 지난 2018년 인수한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은 인수 이후 줄곧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KB금융이 적지 않은 금액을 쏟아부은 만큼 2025년까지는 정상화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리딩’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지만 해외법인에서만큼은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KB금융은 해외법인 부문에서 연간 5000억원대 적자를 내고 있는데 그 원인이 바로 부코핀은행이다.
양종희 부회장 역시 최종 회장 후보로 낙점된 이후 “부코핀은행 정상화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코로나로 인해 정상적인 금융기관들도 힘든 시기였던 만큼 부실 은행을 인수한 이후 더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영업력 강화 등을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