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영제(影帝), 즉 영화의 황제로 불리는 배우 양조위가 4번째로 부산을 찾았다. 올해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그는 여전한 아우라로 관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나이가 들어도 그 시절의 매력을 간직한 스타, 양조위는 양조위다.
양조위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방문했다. 레드카펫에서 뜨거운 플래시 세례를 받은 데 이어 공식 기자회견으로 한국의 많은 팬들과 취재진에게 인사를 했다. 수수한 꾸밈새로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이 느껴지지만 미소를 짓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하다. 마치 홍콩영화의 전설이었던 그의 전성기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꽃중년’ 열풍으로 이어지는 양조위의 전성기
양조위는 중국에서 ‘영제’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과 아우라를 지닌 배우다. ‘중경삼림’, ‘화양연화’, ‘해피 투게더’ 등으로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전 아시아에 수많은 영화팬들을 거느렸다. 2000년 ‘화양연화’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색, 계’, ‘무간도 트릴로지’도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며 지난해 ‘화양연화 리마스터링’과 더불어 마블 신작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로 한국에 다시 ‘꽃중년’, 양조위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게 돼 정말 영광스러워요. 부산국제영화제에 벌써 4번째 방문했지만 올 때마다 많이 달라졌어요. 부산이란 도시가 예전보다 굉장히 현대화되고 발전했죠. 높은 건물이 많이 생기고 바닷가도 더 아름다워졌어요. 호텔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보행로도 생기고 수영장도 예쁜 장식들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처음 왔을 때 좁은 길에서 작은 무대를 세워서 개막식을 했는데 어제(10월 5일) 같은 성대한 개막식을 개최하게 된 것도 발전되고 달라진 부분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어요.”
양조위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과 더불어 이번 영화제에서 ‘양조위의 화양연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과 만났다. 그는 직접 자신의 출연작 중 6편의 영화를 선정했다. ‘2046’(리마스터링), ‘동성서취’, ‘무간도’, ‘암화’, ‘해피투게더’(리마스터링), ‘화양연화’(리마스터링) 6편이 상영되며 그중 ‘암화’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 작품이다.
“다양한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서 서로 다른 장르를 골랐어요. 6편 중에는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의 작품도 많죠. 유진위, 왕가위 감독님 등의 작품을 많이 봐주셨으면 해요. 더 찾고 싶어도 못 찾는 영화도 있어요. 대만에서 찍은 ‘비정성시’도 선보이고 싶은 영화였죠.”
코로나19 팬데믹 탓도 있지만 양조위는 성대한 축제나 행사에 자주 참석하지 않는 편이다. 덕분에 지난 개막식 레드카펫에선 수많은 부산 관객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그는 오랜 친구 같은 부산, 부산 관객들의 인상을 언급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런 성대한 행사에 참여 안 한지 오래돼서 레드카펫 오르는 데 긴장을 많이 했어요. 여러분과 부산 팬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죠. 예전엔 부산영화제가 규모가 크지 않아서 좁은 길에서 작은 무대를 세웠고 영화관 가는 길에도 많은 팬들이 몰려왔던 기억이 나요. 좁은 길에서 열정적인 팬들 덕에 신발이 벗겨진 적도 있었죠. 그때부터 부산 팬들의 사랑을 늘 느꼈고 알고 있었죠.”
특히 양조위의 전성기를 잘 알지 못하는 MZ세대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샹치’ 개봉 당시 2030 관객들은 “샹치 보러 갔다가 양조위에 입덕했다”, “엄마한테 양조위랑 사귀고 싶다고 했더니, 네가 뭔데 양조위랑 사귀냐고 한다”는 등의 재치 있는 후기들을 SNS에 남기기도 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먹히는 매력적인 ‘꽃중년 아저씨’로 자리매김한 소감을 밝히며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최근에 많은 젊은 팬들이 저의 작품을 사랑해 주셔서 얼떨떨해요. 오기 전에 생각을 못해서 사실 ‘화양연화’ 특별전 작품을 선정할 때는 젊은 팬층을 고려하지 못한 점도 있어요. 여기 오니 더욱 그런 분위기가 느껴져요. 여러분이 주신 편지를 읽어보면 최근에 저를 좋아하게 돼서 예전 작품들을 찾아본다는 말씀도 봤고, 왕가위 감독님의 작품이 다시 개봉해서 영화관에서 보고 또 저를 찾아보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더 다채로워질 양조위의 ‘화양연화’
양조위는 90년대 홍콩영화 전성기 때부터 20년 넘게 최정상을 지킨, 현역으로도 활동 중인 배우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와 작품에 출연해 왔지만 그는 여전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해 공개된 마블 영화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로 호평받았던 것도 그 연장선이다.
“사실 제게 악역 대본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배경이 복잡하고 많은 생각을 하는 역할에 관심이 있고, 개인적으로 연쇄살인마를 해보고 싶어요. 샹치 웬우도 굉장히 악역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연기를 해보니 막상 안 그랬어요. 꼭 미국에 데뷔한다,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는 의미보다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인연이 된다면 미국이 아닌 한국, 일본 어디든 갈 수 있죠. 사실 굉장히 비밀스럽게 준비하느라 많은 정보를 공개해 주지 않았는데 ‘샹치’ 감독님과 통화하면서 진심을 느꼈어요. 이 사람을 믿어도 되겠다 싶어 도전을 결정했죠. 마블작을 선택한 이유도, 배우라면 되도록 다양하고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미국 작품을 도전한다면 더 많은, 글로벌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라 좋은 경험이었죠.”
특히 ‘샹치’에서는 주인공 샹치 역의 시무 리우와 부자 호흡을 맞춘 양조위. 이 영화는 마블의 새로운 장을 여는 새 히어로 샹치의 등장을 알리는 작품으로, 새로운 무기 ‘텐링즈’의 지배자 웬우 역을 양조위가 열연했다. 쿵푸 등 중국무술 동작과 결합된 익스트림 액션으로 기존 마블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쾌감을 빚어낸 그는 아내를 잃고 최악의 복수를 벌이는 매력적인 빌런 연기로 전 세계에 ‘영제’의 명성을 재차 떨쳤다.
“ ‘샹치’에서는 아버지 역을 하게 돼서 저도 너무 반가웠어요. 드디어 이미지 전환을 할 수 있는 역이라 좋았죠.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역을 도전할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거든요. 저의 연예 인생을 전반 후반으로 나눈다면 전의 20년이 배우는 단계고 후반 20년이 그걸 발휘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후반에 접어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고도 연기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왔어요. 제작, 연출 계획을 묻기도 하시는데 저는 아직 연기가 좋아요. 배우로서 생활을 여전히 즐기고 있고, 아직도 할 일이 많아요. 지금으로선 최소 몇 년간은 계속 연기에 집중할 것 같아요.”
스스로 연기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듯, 양조위는 지금 시점에서 첫 데뷔 시절의 드라마 매력을 다시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드러냈다. 또 그는 홍콩영화 스타로 아시아 콘텐츠의 글로벌 인기를 이끌었던 경력자로서 현재의 K-콘텐츠 열풍에 함께 기뻐하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K-드라마나 영화에도 당연히 함께하고픈 게 그의 마음이다.
“저는 방송국 출신이고 드라마로 데뷔를 했어요. 최근 들어 다시 드라마를 찍으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져요. 드라마 배우로 데뷔 시절부터 좋아해준 팬들이 많은데 그런 모습을 또 궁금해할 것 같아서 드라마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죠.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으니 이전에 젊은 나이에 할 수 없었던 나이 든 역할도 해보고 싶고요. 요즘 한국 연예계 소식을 들으면 저도 굉장히 기쁘고, 배우 송강호 씨와 전도연 씨를 좋아해요. 언어 문제만 해결될 수 있다면 한국 작품에 도전해볼 기회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