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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온 알프스 양치기

2021년 07월호

아프리카에서 온 알프스 양치기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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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언어 사용하는 전통마을에 스며들다”
“현지인이 못 보는 것을 보여주는 이방인”


| 이영기 기자 007@newspim.com


올해 5월 17일 인천국제공항에 머물고 있던 한 아프리카인에게 공항 밖으로 나오는 것을 허락하는 우리나라 법원의 판결이 확정됐다. 그는 인천공항에 도착한 지 423일 만에 공항 밖 한국 땅을 처음으로 밟을 수 있었다. 그의 쌍둥이 형제는 아프리카 고향에서 살해당했고 다섯 자녀는 뿔뿔이 흩어져 소식조차 들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목숨을 잃을까 두렵다고 한다. 살기 위해 동남아행 비행기를 탔고,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할 작정이라고 했다.

여기 같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해 유럽에서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 있다. 그는 “이탈리아인이 결코 볼 수 없는 이탈리아의 장점을 찾아준 사람”으로 불리는 에티오피아 여인 아지투 이데오 구데타(Agitu Ideo Gudeta)다.

비슷한 처지 난민들과 염소 농장 일궈

눈 덮인 언덕에 알프스 전통가옥들이 붙어 있는 이탈리아 북서부 트렌토의 작은 마을에서 그의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 이 마을에는 강인하고 무뚝뚝한 모체니 사람 350여 명이 살고 있다. 인근 지역을 통틀어 1900여 명에 불과한 모체니 족은 900년 이상을 고유언어 모체니어를 사용하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구데타는 이 산골마을을 10년 전에 찾아왔다. 경치에 매료됐을 뿐만 아니라 멸종 위기에 놓인 모체니 염소에 반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유목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목축지를 포함한 농경지 국유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이를 피해 이탈리아로 왔다. 200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3년간 유학할 때 알았던 사람들이 그의 도피를 도와줬다.

그는 유학 당시 관심을 가졌던 모체니 염소를 찾아 산골마을로 들어갔다. 2차세계대전 이후 마을 주민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모체니 염소도 버림받아 겨우 7마리만 남은 상태. 그에게는 이것이 희망이었다. 모체니 염소를 돌보면서 이곳 주민 공동체에 스며들 수 있었다. 모체니 염소를 15마리로 늘리면서 그녀는 정부로부터 버려진 목초지를 사용할 수 있는 허가도 받았다. 모체니 염소 젖으로 만든 치즈를 파는 가게도 열었다. 행복한 (모체니) 염소를 의미하는 ‘라 카프라 펠리체’가 그 가게 이름. 이 마을에서 30년 만에 처음 생기는 가게였다.

그는 계절 따라 모체니 염소를 몰고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전통을 되살려냈다. 반면 여자는 결코 양치기가 될 수 없다는 마을의 전통을 깨버렸다. ‘라 카프라 펠리체’ 치즈의 명성도 쌓였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난민을 불러들여 모체니 염소 농장을 꾸렸다. 알프스에 나타난 흑인 양치기는 이탈리아 산골마을의 잠재력을 일깨웠다. 이탈리아 당국은 그의 행적을 높이 평가해 ‘국제 여성 양치기 날’을 만들고 ‘여성 양치기’들에게 그의 이름을 딴 회원증을 주고 있다.

존경받는 농부이자 기업가, 환경운동가

이 같은 성공적인 정착을 BBC트래블이 알프스의 흑인여성 양치기 스토리로 만들어냈다. BBC트래블은 “많은 언론이 그의 이야기를 성공적인 정착으로 조명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는 우리에게 이곳의 잠재력을 보여줬다”는 트렌토 시장의 말을 전했다. 전통을 지키며 오랫동안 살아온 현지인들은 결코 볼 수 없는 것을 이방인인 그가 그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비극이 찾아왔다. 42살 생일을 사흘 앞둔 지난해 12월 29일 그는 같은 아프리카 난민인 32세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이 남성은 금전적인 문제로 다투다 결국은 그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고 자백했다고 한다. 언론들은 살해 동기에 대해 말을 아끼며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의 삶에 대해 이렇게 공개할 수 있는 것은 BBC트래블이 그의 가족들에게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엔난민기구는 “그는 난민들이 그들의 새로운 삶을 일구는 데 가장 모범적인 모델로 기억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이 사건은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사회에 아쉬움의 충격을 주고 있다. 또 그의 죽음이 그의 성공적인 정착을 가려버릴까 이탈리아 사회는 우려하고 있다. 인터넷엔 1월에만 수백만명이 올린, 그의 삶이 준 영감과 시, 그림, 영상들로 넘쳐났다.

그의 모체니 염소 농장과 치즈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모금운동에 4월 초까지 11만유로(약 1억5000만원)의 성금이 모여들었다. 컨설턴트인 구데타의 한 친구는 이렇게 모금한 돈으로 재단을 설립해 그의 모체니 염소농장 사업을 이어갈 구체적인 방도를 모색하고 있다. 그의 친구는 “농장사업을 이어가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구데타는 자연과 동물 그리고 주변사람에 대한 사랑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난민이지만 이탈리아 산골마을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존경까지 받은 구데타는 밝고 이지적이며 용기 있는 농부, 기업가 그리고 환경운동가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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