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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유리벽을 뛰어넘은 아폴로11호의 여인

2021년 06월호

이중 유리벽을 뛰어넘은 아폴로11호의 여인

2021년 06월호

‘흑인’ ‘여성’ 이중 유리벽 허문 영웅
비범한 능력을 평범하게 삶아낸 여성


| 이영기 기자 00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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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해 지구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못지않은 몸살이 있었다. 남북전쟁 때 노예제를 유지하려는 남부군의 로버트 리 총사령관 동상이 곳곳에서 철거됐고, 영국에서도 시티오브런던 전 시장인 윌리엄 벡퍼트의 동상이 그가 노예무역을 했다는 이유로 철거됐다.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미국 경찰의 과도한 제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는 사건의 여파였다.

#2 서울 정동길 이화여자고등학교 건물에는 윤여정의 사진이 들어간 커다란 현수막이 붙었다. 현수막에는 ‘자랑스러운 이화인 윤여정 선배님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를 품다!’라는 글귀가 들어가 있다.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를 통해 다수의 여우조연상은 물론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3 1969년 7월 21일 밤 10시 56분 20초. 미국 우주선 아폴로11호가 달에 도착했다. 달 표면에 인류 역사상 처음 내린 사람은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었다. 아폴로11호 3인방인 마이클 콜린스는 달에 내리지 않고 달 궤도를 돌면서 이들을 지휘했다. 지난 4월 콜린스는 세상을 떠났다. 두 동료와 달리 ‘잊힌 우주인’이 된 그가 지구인을 감동시킨 점은 묵묵하게 자기 인생을 살아가며 할 일을 한 것이다.

이 스포트라이트 세 개가 한 곳으로 집중되면 오롯이 드러나는 인물이 있다. 바로 1년 전 2월 24일 101세로 세상을 떠난 미국 여성 캐서린 존슨(Kathereine Johnson)이다.

그녀는 웨스트버지니아대학 수학과 대학원생 흑인 여성 1호였다. 흑인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한 1960년대 그녀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있었다. 그녀는 아폴로11호가 발사되고 달에 착륙하고 다시 지구로 되돌아오는 궤도를 직접 계산했다. 그녀는 암스트롱과 올드린 그리고 묵묵히 그의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콜린스와 함께 아폴로11호의 4인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화성에 도착해 임무수행에 나선 이동형 탐사로봇 로버의 개발에 한몫한 미국 조지아테크 4학년 흑인 여학생 브레나 아이비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이와 달리 존슨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1917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녀에게 ‘대통령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하면서 그녀는 살아났다. 그녀를 그린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가 나왔고, 이듬해인 1917년에 그 영화는 베스트 픽처 등 3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수상 후보로 올랐다. 수상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 자리에 나온 98세의 존슨은 윤여정처럼 끊이지 않는 발수갈채를 받았다.

‘인종차별·남녀차별’ 이중 유리벽 허문 여걸

‘히든 피겨스’의 배경은 소련과 경쟁하던 1960년대 미국 NASA의 휴스턴 우주센터다. 그곳에서 존슨은 사무실과 1km가량 떨어져 있는 흑인 전용 화장실을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남성 직원의 넓은 사무공간보다는 좁은 여성들의 사무공간. 그 와중에 흑인 사무공간은 말할 것도 없다. 커피 포트도 따로 사용하고, 회의에도 참여할 수 없는 존재. 그녀는 흑인차별과 여성차별이라는 이중의 벽에 갇힌 존재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인종 간, 남녀 간의 극적인 갈등 장면은 없었다. 존슨은 너무나도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그녀의 내면은 강했다. 오히려 그녀를 둘러싼 이중의 유리벽을 무시했다. 때마침 미국 정부가 인종차별과 남녀차별을 적극적으로 허물기 시작한 시기라서 존슨은 NASA에 취직할 수 있었고 그것이 그녀에게는 큰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NASA에서는 화장실 인종차별을 금지하면서 “NASA에서 모든 사람의 오줌 색깔은 똑같다”라는 백인 부서장의 말 한마디가 그나마 가장 큰 울림을 줄 정도였다.

NASA에서 쌓은 그녀의 신뢰감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하는 일화가 있다. 1962년 지구 궤도를 돌기 위해 준비하던 존 글렌은 자신이 탈 우주선의 궤도를 존슨이 직접 검토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글렌은 피와 살이 없는 기계가 한 계산을 믿고 마냥 우주로 날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글렌은 “존슨이 궤적 계산에 착오가 없다고 한다면 나는 우주로 날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수 궤도를 검토하고 또 재검토한 후 존슨은 계산에 착오가 없다는 답을 내놨다. 이를 믿고 글렌은 우주로 날아갔다. 1961년 미국 최초 유인 우주탄도 비행, 1962년 글렌의 유인 지구궤도 비행, 1969년 아폴로11호의 달 탐사 등의 궤도와 달 착륙, 지구귀환 궤도를 모두 존슨이 직접 계산했다.

존슨은 NASA의 전신 미국국립항공자문위원회(NACA)에 소위 ‘스커트 입은 계산기’라는 계산원으로 취직했다. 이후 NASA로 전환된 그곳에서 그녀는 1986년까지 33년간 일했다. 휴스턴 우주센터는 지금 ‘존슨센터’로 개명해 그녀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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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든 피겨스’


수학 천재로 키운 부친의 ‘맹모삼천’ 교육열

교회 계단이나 부엌의 접시와 포크 개수 등 셀 수 있는 것이면 뭐든 세는 습관을 그녀는 갖고 있었다. 그래서 10살 때 이미 고등학교를 다녔다. 15살로 대학에 진학했을 때 이미 수학 과목이라는 과목을 모두 섭렵해 버렸고, 그래서 미국 흑인으로는 3번째로 수학박사 학위를 가진 쉬폐 클레이터 교수의 눈에 띄게 됐다. 기하학에 특히 강한 존슨을 위해 클레이터 교수는 특별 교과를 개설할 정도였다.

18살 때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존슨은 공립학교 선생으로 일자리를 얻었다. 그즈음 비교적 진보적인 웨스트버지이나 주에서는 대학원 과정에 흑인을 입학시키는 획기적 정책이 수립됐다. 존슨과 다른 흑인 남성 2명이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 생활 1년 이후 결혼과 함께 학업을 그만뒀지만 수학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였다. 세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자 존슨은 다시 학교 선생으로 복귀했고, 이후 흑인도 뽑는다는 NACA에 입사한다. 그때 존슨의 나이는 34세.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는 여성이라면 결코 질문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어야 하는 당시 분위기에 존슨은 젖어들지 않았다. 주변의 질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남자들과 토론했다. 그 덕에 존슨은 미국이 우주로 사람을 보내기로 한 1962년 NASA에서 그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존슨의 뒤에는 훌륭한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흑인 여자 아이를 교육시키기 위해 직업을 바꾸고 이사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존슨이 수학에 재능을 보이자 흑인에게는 중학교까지만 교육받도록 제한하던 그린브리어 카운티를 떠나 웨스트버지니아대학 부설 고등학교로 그녀를 보냈다. 학기와 방학 중에 가족들은 아버지 일터가 있는 곳과 학교 옆으로 이사를 다녔다. 이는 맹모삼천 못지않은 교육열과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한 열렬한 투쟁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101년을 살아낸 존슨이 강조한 말은 “내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했다” 이 한마디.

한국과의 인연을 찾아보면 그녀와 60년을 해로한 두 번째 남편 짐 존슨이다. 그녀보다 2년 앞서 세상을 떠난 그는 미 육군 장교였고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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