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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부동산으로 거둔 수익으로 ‘그림’ 산다

2021년 04월호

주식, 부동산으로 거둔 수익으로 ‘그림’ 산다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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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투자 아이템으로 부상하며 미술시장 활기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장기불황 딛고 국내 아트마켓 회복세 진입

10년 넘게 침체기에 빠졌던 국내 미술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올 들어 완연한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코비증시’에서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둔 투자자들과 부동산으로 목돈을 챙긴 이들이 그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30~40세대 신규 컬렉터들이 속속 진입하며 아트마켓에 활기가 넘친다.

우선 지난 3월 3~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39회 화랑미술제’가 역대급 판매실적을 올리며 이를 입증했다. 화랑미술제는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 소속 화랑들이 참여하는 아트페어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플랫폼이지만 근래에는 매출이 저조했다. 매년 9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에 비해 규모가 작고, 국내용 아트페어여서 답보 상태였던 것. 특히 코로나19 속에서 열린 작년에는 관람객이 크게 줄고 판매실적도 저조했다. 그런데 올해는 수억원대 미술품까지 날개 돋친 듯 팔리며 관람객은 작년의 3배, 매출은 2배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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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타계한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그림이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열린 화랑미술제에서는 유명 작가와 젊은 작가의 작품이 성황리에 거래되며 경기 회복을 예고했다. [사진=한국화랑협회]


이 같은 깜짝 호황은 낙찰률 90%, 낙찰총액 110억원을 기록한 지난 2월의 서울옥션 경매에서 이미 예고됐다. 이 경매에서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의 전성기로 꼽히는 1977년도 작품이 무려 10억4000만원에 팔리는 등 김창열 회화 7점이 모두 낙찰됐고, 이우환의 추상화도 다시 반등하며 경기회복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

서울옥션의 2월 경매가 큰 성과를 거두자 라이벌인 케이옥션은 3월 경매의 규모를 대폭 키웠다. 케이옥션은 최근 10년간 총액 규모 최대치인 총 169점, 170억원어치의 작품을 경매에 올렸다. 이번 경매에는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추정가 13억~20억원)를 비롯해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이 1970~2000년대까지 시대별로 9점이 출품돼 컬렉터를 끌어모았다. 손이천 케이옥션 이사는 “올 들어 대체 투자처를 찾으려는 유동자금의 유입과 MZ세대의 시장 진입이 활성화되며 국내 미술시장도 회복세가 완연하다”고 밝혔다.

미술시장 회복의 원인과 향후 전망

15년 가까이 불황에 허덕이던 한국 미술시장이 올 들어 호황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투기 규제책으로 부동산을 처분한 여유자금과 주식투자로 벌어들인 수익금이 미술시장으로 일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저금리 시대에 ‘매력적인 제3의 투자처’를 찾는 시중의 유동자금이 유망 블루칩 작품에 쏠리면서 활기를 보이고 있는 것. 특히 1가구 2주택 중과세로 종부세 등 부동산세금이 급등하자 집 한 채를 정리하고 대체투자 품목인 그림을 사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또한 최근의 주식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린 투자자 중에는 아트테크에 도전하는 이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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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화백의 뒤를 잇는 이배의 숯드로잉. 전시에 나오면 곧바로 솔드아웃된다.


이들에게는 올 들어 잇따라 베일이 공개된 ‘이건희컬렉션’의 파급력도 크게 작용했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사들인 1만3000여 점의 미술품이 높은 수익을 올리며 잠정평가액이 수조원대에 달한다는 소식은 엄청난 화제를 양산했다. 이에 “똘똘한 강남아파트 못지않게 앞으론 똘똘한 그림이 효자가 될 것”이란 말이 확산되고 있다. 이건희컬렉션 중 알짜 작품의 경우 30~50배 올랐다는 뉴스에 고무된 이들은 앞다퉈 블루칩 작품 찾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KIAF와 아트바젤홍콩 같은 대규모 아트페어가 취소되면서 장기간 억눌렸던 문화 욕구와 미술품 구매 욕구가 새봄을 맞아 폭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호황기였던 2006, 2007년을 방불케 하는 판매실적이 나오고 있다는 것.

화랑미술제를 주최한 한국화랑협회의 윤여선 홍보이사(갤러리가이아 대표)는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고 문화예술욕구도 큰 중산층이 서울에서 오랜만에 본격적인 아트페어가 열리자 열띤 반응을 보여 줬다”며 “올해 화랑미술제에는 초보 수집가들을 위한 백만원대 작품은 물론이고 억대 작품까지 고루 팔리며 활기를 띠었다”고 밝혔다.

최근 아트마켓에 발을 들인 신규 컬렉터들은 가격 상승 여지가 높은 블루칩 작품에 큰 관심을 표명했는데, 블루칩 작품의 폭이 넓어지고 국제적으로 검증되면서 시장 활성화를 견인 중이다.

실제로 최근 작고한 물방울 화가 김창열, 추상화 거장 이우환, 단색화 대가 박서보·하종현·정상화, 신체드로잉 화가 이건용 등 블루칩 작가들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김창열의 경우 벨기에 브뤼셀과 뉴욕에 갤러리를 둔 알멘 레시(Almine Rech) 화랑이 런던 지점에서 지난 3월 초 ‘김창열 개인전’을 개막했고, 이건용의 경우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이 기획한 ‘한국아방가르드미술전’에 출품이 확정돼 있는 등 국제 미술계에서 기반을 넓히고 있다. 이 밖에 해외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한국 작가들의 숫자가 확대되고 있는 것도 청신호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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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국내 미술품경매사도 고객 응찰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사진은 블루칩 작품이 대거 출품된 케이옥션의 3월 경매 프리뷰 현장. [사진=케이옥션]


그림에 대한 이해가 깊고 글로벌 아트마켓 정보에 밝은 이들은 바로 이처럼 해외에서 평가받는 작가에 주목한다. 세계성을 띤 작가들은 국내 시장 변동에 출렁이지 않고 안정적으로 가격이 상승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검증된 작가의 작품은 국적과 상관없이 금이나 달러화 같은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며 불황기에도 꾸준히 거래되고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크리스티코리아의 이학준 대표는 “이른바 미술시장 고수들은 대안투자로서 미술품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지니고 해외에 기반을 갖는 작가들이 늘며 미술 투자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지난해 1~5월 코로나19로 오프라인 경매가 중단됐을 때도 크리스티 경매의 VIP컬렉터를 위한 프라이빗 세일 판매액은 오히려 전년보다 120% 증가했다.

한편 한국의 근현대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단색화 작품을 컬렉션 중인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김남준)을 비롯해 셀럽들이 미술품 투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시장 활성화의 한 요인이다. 유명 인사들이 미술에 열광하면서 젊은 전문직 종사자 등이 신규 컬렉터로 시장에 잇따라 유입되고 있다. 이들은 젊고 발랄한 현대미술에 관심을 표명하며 아트토이, 팝아트의 거래를 부추기고 있다. 한편 코로나19로 ‘집콕’이 장기화되며 인테리어용 미술품을 찾는 젊은 고객이 는 것도 호황세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최근 발표한 ‘2021 미술시장 전망’에서 최근의 흐름을 ‘미술시장 호황세 초기 진입단계’로 진단했다. 미술에 투자하려는 유동자금이 풍부해 안전성이 검증된 단색화 작품과 블루칩 작품에 투자가 몰리고 있는데, 향후 시장을 주도할 작가층이 다변화되고 국제성을 획득할 경우 지난 2006, 2007년 같은 호황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마케팅 전문가로 문화예술마켓도 연구 중인 김상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도 긍정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 명품 소비, 해외 아트페어 참관이 1년 이상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모처럼 대면 미술 이벤트가 열리자 욕구가 분출됐다. 이 같은 ‘리벤지 쇼핑’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부동산 투자에 한발 늦은 젊은 층과 주식투자에 서툰 투자자들이 대체투자처로 미술을 택해 본격적으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렇듯 바닥을 치고 모처럼 활기를 보인 미술시장이 그 여세를 이어가려면 국제 무대에서도 통할 유망 작가를 발굴해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 아울러 전속작가제 도입, 거래 투명화, 장기적인 투자마인드 확립 등도 이뤄져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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