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홍보가 달라졌다. 과거 한국의 남산, 동대문, 강남의 전경을 깨끗한 화면에 담아 ‘웰컴 투 코리아(Welcome to Korea)’를 외치며 끝나 아쉬움이 남았던 홍보 영상이 한국의 소리와 남다른 몸짓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한국 홍보의 올바른 예’가 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내놓은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컨템포러리밴드 이날치와 안무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를 섭외해 서울, 부산, 전주, 안동 등 여러 지역의 관광지를 소개하는 이 시리즈 영상은 공개된 지 5개월 만에 조회 수 3억회를 돌파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이 기세에 이어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한국의 서원 9개소를 홍보하기 위해 최초로 웹드라마 ‘삼백살 20학번’을 제작해 호응을 얻고 있다. 9개의 서원을 극에 자연스럽게 녹여 웃음과 재미를 전하면서 서원 홍보를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 홍보의 좋은 예’로 꼽히는 이 영상에는 흥행을 이끈 공통점이 숨어 있다. HS애드가 제작한 한국관광공사의
대세로 자리 잡은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소리꾼과 베이스, 드럼 연주자가 모인 컨템포러리 밴드 이날치의 노래가 한국 관광홍보 영상에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관심도가 높아졌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리듬에 전통 소리꾼들의 깊은 목소리가 전통 소리에 관심 없던 이들의 마음까지 훔쳤다. ‘범 내려온다~’로 시작하는 노래는 이날치의 트레이드마크로 대중 사이에서 유행이 됐다. 화제를 모으면서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무산됐지만 국내 흥행이 지속되면서 각종 광고에 등장하는 등 이날치의 매력을 알아보는 이가 많아졌다.
영상에서 흥이 넘치는 이날치의 노래를 더욱 빛나게 해준 것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다. 대중에게는 생소한 안무팀이지만 현대무용계에서는 이미 실력과 지명도가 높은 댄스그룹이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역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춤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의 몸짓을 보고 “아직도 도깨비가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이것이 조선의 힙이다”라며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따라해 보면 만만치 않은 이들의 안무는 엄청난 연습량으로 만들어졌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인 김보람은 “우리 춤을 보고 ‘도깨비 같다’, ‘B급 감성이다’라고 하는데 우리 춤은 그냥 장르 그 자체”라며 “엄청난 연습으로 안무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 ‘Feel the Rhythm of Korea’ 캠페인. [사진=HS애드]
트레이닝복에 한복을 걸치는 패션으로 한국의 새로운 멋을 보여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이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공연할 때 입는 의상으로, 이들의 색깔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새로움과 멋을 선호하는 젊은 층에 화제를 일으키며 따라 하는 이가 많아졌다.
웹드라마 ‘삼백살 20학번’에 등장하는 배우들도 모두 신예다. ‘삼백살 20학번’은 1720년에서 온 ‘서원’의 도령 3인방 전강운(노상현), 김신재(공재현), 허창(이세진)이 2020년 대한민국 서원으로 떨어지게 되고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서원 관리자의 딸이자 매력 넘치는 서연(최지수)과 만나면서 펼쳐지는 성장 드라마다. 도령 3인방인 전강운, 김신재, 허창은 매회 엉뚱함과 귀여움, 남성다움 등 다양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 여기에 도령 3인방을 이끄는 서연 역의 최지수는 요즘 20대의 발랄함과 ‘사이다’ 같은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삼백살 20학번’에서 서원을 검색하는 모습.
쇼트폼 플랫폼으로 부담 없이 즐긴다
유튜브나 동영상 플랫폼으로 공개되는 만큼 10분 내외의 짧은 콘텐츠로 기획한 것이 인기를 끄는 데 도움이 됐다.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서울, 전주, 부산, 강릉, 안동 영상은 1분 40초 정도로 짧은 편이다. 서울 편에 등장하는 청와대, 리움미술관, 덕수궁, 자하문터널,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는 익숙한 관광지이지만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안무가 관광지를 돋보이게 한다. 다른 도시 편들에서도 이날치의 소리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움직임은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이 영상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삼백살 20학번’은 편당 10~15분 내외의 짧은 영상으로 이뤄진 6부작 웹드라마다. 6편을 다 봐도 1시간이 채 안 되는 분량이어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휴대폰으로 보기 쉽다. 매회 등장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과 관계의 변화가 다채롭게 펼쳐져 다음 회를 기대하게 한다. 나아가 시대를 뛰어넘는 인물들의 우정과 서원마다 다른 풍경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한다. 새로운 얼굴임에도 이들의 매력적인 캐릭터와 차진 연기가 서원을 홍보하는 드라마임에도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삼백살 20학번’ 포스터. [사진=문화재청]
메시지 챙기고 재미까지 살린 홍보 영상
정부 홍보 영상의 목적은 분명하다. 관광 홍보라면 ‘한국을 꼭 방문하시라’, 문화유산을 알리고 싶다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는 이렇습니다’가 될 거다. 하지만 이 메시지만 추구한다면 보는 이들의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번에 화제가 된 한국관광공사의 ‘Feel the Rhythm of Korea’와 문화재청의 웹드라마 ‘삼백살 20학번’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됐다.
특히 ‘Feel the Rhythm of Korea’를 통해 한국의 멋을 제대로 알게 됐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K팝 가수들보다 훨씬 나은 홍보 효과에 대중은 “앞으로 정부가 이 같은 영상을 꾸준히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은 놀이 문화로 발전했다. 흥겨운 한국의 소리와 ‘조선의 힙’을 보여주는 트레이닝복과 한복, 갓 패션의 조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라 하고 싶게 한다. 온라인에서는 ‘Feel the Rhythm of Korea’를 패러디한 대학 홍보 영상부터 댄스팀의 커버 영상까지 2차 콘텐츠가 재생산되면서 놀이 문화처럼 확산되고 있다.
웹드라마 ‘삼백살 20학번’도 웃음 포인트에 힘을 줬다. 특히 요즘 20대의 생각과 말투를 담은 장면이 재미를 준다. 요즘 젊은이들이 선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이들의 술자리 문화 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 외에도 1700년대에서 온 도령 3인방에게 접근하는 ‘도를 아십니까’ 무리의 이야기까지 깨알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면서도 9개의 서원을 정리한 지도와 서원의 풍경을 다각도로 담는 등 홍보 영상의 본질도 잊지 않는다. 홍보 영상의 메시지와 절묘한 웃음 포인트가 적절히 어우러지면서 ‘삼백살 20학번’은 순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