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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정재의 절대악

2020년 09월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정재의 절대악

2020년 09월호

‘신세계’ 콤비 다시 뭉쳐...모두를 떨게 하는 빌런
서늘한 킬러 연기 위해 하루 한 끼만 먹고 관리

|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배우 이정재가 신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돌아왔다. 이번엔 황정민도 함께다. 지난 2012년 큰 사랑을 받았던 ‘신세계’ 콤비가 다시 만난 것이다. 자연히 영화판이 들썩인다. 그가 연기한 레이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빌런으로 모두를 벌벌 떨게 한다.

인터뷰 차 만난 이정재는 깔끔하게 손질된 투블럭이 아닌 장발의 희끗한 헤어 덕에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속 레이와는 꽤나 인상이 달라보였다. 그는 이전에 한국에서 전혀 볼 수 없던, 잔인한 본성이 일상에 배어 있는 인물로 레이를 그려냈다. 대본상에 글로만 쓰여 있던 레이를 직접 빚어낸 그는, 그간 전혀 해보지 않은 역을 맡아 다양한 연구와 시도를 반복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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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엔터테인먼트]


‘절대악’의 디테일...타투부터 핑크가발까지

‘다만악’ 속 이정재가 빚어낸 레이는 자신의 친형을 죽인 킬러 인남(황정민)을 쫓는 무자비한 칼잡이다. “악 중의 악을 표현했다”는 평가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레이의 행동의 이유들을 나름대로 설명했다.

“단순하게 형을 죽인 사람이라면 악일 이유가 없죠. 사실 레이는 장례식장에서 그리 슬픈 표정이 아니에요. 알아차리셨다면 정확해요. 의도했거든요. 과연 레이가 복수 때문에 인남을 쫓는 건가? 아닌 것 같아요. 너무 일차원적이죠. 장례식장엔 그저 죽음을 확인하러 갔겠죠. 그럼 쫓아갈 이유가 생긴 거고요. 레이는 항상 누군가를 사냥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어요. 생각 자체가 보다 잔인한 인간이죠. 그게 묘한 표정이나 분위기로 잘 보인다면 행동에서는 달리 행동을 안 해도 극대화해서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레이의 모든 것을 만든 건 이정재다. 홍원찬 감독이 “이정재가 아니었다면 레이는 힘든 캐릭터였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 레이의 외형, 눈빛, 서늘한 분위기와 행동 하나하나까지 숱한 고민을 거쳐 빚어냈다. 이정재는 “원래 과한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레이에겐 필요했다”고 털어놨다.

“레이가 독특하고 묘했으면 했어요. 더 서늘해 보이길 원했죠. 일반적인 킬러 이미지론 어려울 것 같아 여러 시도를 해봤어요. 아주 작은 디테일도 조금 더 다르게 하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목에 타투도 들어가고, 동시에 의상이나 헤어도 거기 맞춰갔어요. 개인적으로 신경 쓴 건 흰 구두. 옷은 다 바뀌더라도 그것만큼은 고집했죠. 화면에 흰 구두만 나와도 ‘레이가 여기까지 왔구나’ 느낄 수 있게끔요.”

실제로 이정재는 목에 가득한 타투, 깔끔하게 넘긴 헤어, 선글라스와 착장까지 모두 직접 신경 썼다. 심지어는 파격적인 핑크 가발까지, 테스트 과정에서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과연 레이라는 인물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인물인지, 표현의 한계를 명확히 해야 했다.

“레이는 최대한으로 상상력을 가미할 수 있는 캐릭터였고, 끝을 가늠할 수 없었어요. 인물의 한계와 울타리의 범위를 알 수 없었죠. 그걸 정해야 했고 많은 고민과 선택을 거쳐 범위를 좁혀 나갔어요. 처음엔 타투가 계속 지워지니까 계속 커버하고 액션 신을 찍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그걸 수정하면서 한 컷씩 찍을 수가 없잖아요. 안 되면 핑크 가발은 어떠냐 얘기가 나왔죠. 막 싸우다 가발이 떨어졌을 때 화상 흔적이 보이는 설정은 어떨까 했죠. 그러던 중에 타투가 지워지지 않는 솔루션을 찾았어요. 하하. 핑크 가발도 쓰고 보니 좀 묘하더라고요. 나중에 한번 써먹어 보고 싶어요.”

악역을 곧잘 소화해 온 이정재이지만 레이 같은 캐릭터는 또 처음이었다. 그는 “레이는 생각이 다른 사람 같았다”고 극중 레이가 갖고 있는 묘한 눈빛의 이유를 짐작했다. 말이 없고 서늘하지만, 아주 일상적인 행동에서 그의 섬뜩함을 느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중 몇 가지 행동 묘사는 캐릭터의 주인인 이정재가 직접 요청했다.

“서늘한 킬러가 아이스커피를 들고 다니면서 빨대로 빨아먹어요. 더 섬뜩하지 않을까 했죠. 태국 촬영에선 레이가 약간 표범 같은 몸짓으로 셔터 밑으로 들어가길 바랐죠. 동물적인 몸동작으로 들어가서 빠르게 제압하고 얼음 뒤집어쓰면서 ‘아 되게 덥네’ 하는 식인 거죠. 그런 얇은 것들이 2시간 동안 잘 쌓여서 캐릭터가 됐어요. 얼음 씹어먹는 것도 과장해서 표현한 거예요.(웃음) 얼굴 한가득 제 피가 아니라 남의 피인데. 얼음으로 문질러서 다 씹어먹는 게 ‘보통 애가 아니구나. 이상한 애구나’ 와 닿게 보여드리려 했죠.”

어쨌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그린다는 건 배우에게 즐거운 일인 듯했다. 이정재 역시 동의했다. 처음으로 레이가 모든 스태프 앞에 섰을 때, 감탄과 놀라움의 탄성이 들려왔을 때가 바로 그 짜릿한 순간이었다.

“촬영 직전에 ‘이 모습으로 합시다’ 하고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서 결정됐을 때가 기억나요. 레이의 최종 캐릭터가 완성되고 헤어, 메이크업, 타투, 의상까지 하고 딱 서서 스틸카메라로 찍었거든요. 그때 반응이 가장 좋았죠. ‘아 이 느낌이다’ 하는 생각을 했고 제가 보기에도 확실히 새롭더군요. 이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게 연기를 맞게 잘 해내자는 생각이 들었죠. 스태프도 보고 놀랐다고 하니까 참 뿌듯하긴 하더군요. 하하.”

황정민과의 재회, 부담감 넘어선 도전의 결과

‘다만악’은 캐스팅 단계부터 황정민, 이정재의 재회로 수많은 영화팬의 관심을 받았다. 약 7년 전 ‘신세계’에서는 정통 누아르의 정수를 그렸던 이들이 이번엔 속도감 넘치는 추격 액션으로 만났다.

“만약에 ‘신세계’와 비슷한 장르였다면, 혹은 ‘신세계’에서 했던 캐릭터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면 고민했겠죠. 근데 ‘신세계’는 누아르고 이건 완전히 액션영화니까 차별성을 느꼈어요. 그때의 그 캐릭터와 ‘다만악’의 캐릭터가 전혀 다른 매력이 있죠. 황정민, 이정재가 만났을 뿐 완전히 다른 걸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각자의 캐릭터에 집중하고 잘 그려내면서 부담감을 덜려 했죠. 그렇다 보니 좀 더 독특하고 좀 더 보지 못했던 캐릭터로 가고 싶었어요. 정민이 형은 더 부성애 쪽으로 감정을 펼쳐낸 것 같고요.”

촬영장에서도 굳이 레이처럼 굴려고 한 건 아니지만, 이정재는 레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돌이켰다. 아무래도 서늘하고 예민한 킬러를 연기하기 위해 마른 체형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 그는 “조금만 살이 올라도 분위기가 달라진다”면서 3개월간 혹독한 관리를 했음을 털어놨다.

“정민이 형이 처음엔 ‘이것 좀 먹어봐’ 자꾸 권하시다가 워낙 안 먹으니까 나중엔 안 하셨죠.(웃음) 힘을 주지 않아도, ‘나 무섭지’ 일부러 안 해도 눈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려니 다이어트를 해야 했어요. 체중이 많이 줄지는 않았는데 얼굴은 좀 빠지고 근육량이 늘어나 슬림해졌죠. 하루에 한 끼밖에 안 먹고 종일 배가 고프니 예민해지는 건 사실이에요. 옆에서 뭐 먹으면 다른 데 가서 먹으라고 하고.(웃음) 촬영 끝났을 때 시원한 맥주 한잔 하고 싶은데 다 참아야 했죠. 그런 게 그리웠어요. 악역 하고 나면 금방 빠져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선 그 느낌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전작들도 그랬고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보이나 봐요.”

‘도둑들’과 ‘신세계’, 또 셀 수 없는 작품들을 거치며 이제는 ‘이정재=악역’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이정재가 악역을 하면 흥행한다는 공식이 충무로에서 회자될 정도. 그는 악역을 자꾸만 하게 되는 이유와 매력을 언급하며, 이번 영화 속 특별한 악역의 쓰임을 언급했다.

“아무래도 악역이 더 상상력을 집어넣을 여지가 있죠. 새로운 걸 해볼 수 있고 표현이 더 풍부해질 수 있어 재밌어요. 더 흥미롭게 봐주실 수도 있고요. 악역이 아니라면 무엇인가를 좀 더 표현하고 싶어도 ‘과한 건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죠. 저도 가끔은 그걸 즐겨요. ‘악역인데 뭐 이 정도 해도 되지 않아?’ 하기도 하죠. 하하. 레이는 구원을 받는 인물은 아니에요. 구원을 얻기보다 ‘내가 쟤를 구원해 줘야지’ 생각하면서 연기했죠. 전 레이가 100% 살 줄 알았어요. 하하. 아이러니하게도 레이가 인남을 구원해 줬다는 생각이지만, 보시는 분들께 맡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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