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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리움 빈자리 채우는 기업미술관들

2020년 07월호

삼성 리움 빈자리 채우는 기업미술관들

2020년 07월호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복합리조트 목표로 예술투자 맹공
아모레퍼시픽은 새 뮤지엄 개관, 삼탄 한미약품은 미술관 신축


| 이영란 기자 art29@newspim.com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미술관을 꼽으라면 너나없이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을 꼽을 것이다. 서울 한남동에 자리 잡은 리움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2대 이건희 회장 부부의 오랜 집념이 결집된 국내 최대의 사립미술관이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1만5000여 점의 컬렉션에 완벽한 운영체계를 갖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2017년 초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와 연루돼 구속되며 모든 기획이 취소됐고, 개점휴업에 돌입했다.

리움 외에도 국내에는 금호, 대림, 성곡미술관 등 기업미술관이 서른 곳이 넘는다. 그러나 리움만큼 괄목할 만한 활동과 작품 수집을 이어간 예는 없다. 따라서 리움의 빈자리는 매우 크게 느껴진다. 특히 화랑가는 리움이 컬렉션을 중단하자 불황의 그늘이 한층 짙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문화기업들이 2, 3년 전부터 활동을 시작해 관심을 모은다. 리움의 빈자리를 채우며 우리 미술계에 청신호를 던져주는 기업으로는 호텔 및 카지노 사업을 전개 중인 파라다이스그룹과 세계 정상의 뷰티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꼽힌다. 또한 에너지 기업인 삼탄, 제약 기업인 한미약품도 서울 강남북에 본격적인 미술관을 신축 중이어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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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의 파라다이스시티가 설치한 미국의 인기 작가 카우스의 TOGETHER, 높이 6m에 달하는 목조각이다. [사진=박명래, 파라다이스시티]


1.디즈니를 꿈꾸던 소년, 영종도에 예술천국 만들다

파라다이스그룹의 전필립 회장이 인천 영종도에 동북아 최초로 복합리조트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는 이가 많았다. 아트와 엔터테인먼트를 혼합한 ‘아트테인먼트(Art-tainment)’를 비전으로 내걸고, 축구장 46배의 부지(10만평)에 2조원대의 예산을 투입해 아트시티를 건립한다고 하자 “과잉투자 아니냐”, “투숙객이 아니면 누가 가겠느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2017년 4월 럭셔리한 호텔과 카지노, 컨벤션센터가 1차로 조성됐고, 2018년에는 플라자, 스파, 클럽, 원더박스(가족형 오락공간), 공연장 등 다양한 관광∙문화시설이 추가되며 ‘파라다이스시티(PARADISE CITY)’가 완성됐다. 전필립 회장과 부인 최윤정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은 리조트 곳곳에 2700점에 달하는 미술품을 설치하고, 뮤지엄의 문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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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필립(위) 회장과 최윤정(아래) 이사장. [사진=파라다이스문화재단]


120m 길이의 윙(wing)이 3개 방향으로 뻗은 Y자 형태의 파라다이스시티 중심에는 ‘Fun City’라는 예술광장이 있다. 1500평에 달하는 광장에는 미국의 떠오르는 아티스트 KAWS(카우스)의 6m 높이 티크(원목) 조각 ‘투게더’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이 내방객을 반긴다. 호텔 로비에는 데미안 허스트의 페가수스(말) 조각과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조각 등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작품들이 놓였다.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인 오수환, 이강소, 김호득, 이세현의 회화와 뮌의 키네틱아트도 내걸렸다. 이처럼 미술관 또는 외국에 가서야 볼 수 있는 거장들의 작품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참신한 예술 스폿에 흥미로운 위락시설과 고급 식당, 쇼핑몰이 곁들여졌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파라다이스시티는 오픈 첫해에 120만명의 인파가 내장해 투숙객이 아니면서도 리조트를 즐기려 영종도를 찾은 이가 많았음을 입증했다. 서울 도심서 공항철도로 40분이면 닿을 수 있어 새로운 데이트 명소로 떠오른 데다 가족 단위 고객이 상당했던 것이 그 요인이다. 또한 해외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커플 중에는 파라다이스시티서 하룻밤 숙박하며 멋진 작품과 리조트를 원 없이 둘러본 뒤 허니문에 오르는 이들도 있다. ‘영종도 찍고, 해외로!’인 셈인데 이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이 ‘월트 디즈니’였던 전필립 회장은 입버릇처럼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 꿈은 마침내 실현됐다. 리조트에서 가장 환상적인 장소인 ‘Fun City’가 이를 잘 말해준다.

파라다이스시티에서는 예술품이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다. 예술이 주인공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다. 2700점에 달하는 작품들은 드넓게 조성된 리조트에서 ‘메인’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리조트에 맞춰 새로 제작된 것으로, 미술품이 대중과 지근거리에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 구입에만 1단계로 300억원이 투입됐고, 컬렉션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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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의 전시 모습. 제프 쿤스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보인다.


Fun City 광장 한쪽에 조성된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는 미술관이지만 따로 문이 없다. 4개의 대리석 기둥만 있을 뿐이다. 투숙객은 물론이고, 누구나 회원 가입만 하면 편하게 입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윤정 이사장은 남편과 피렌체의 시뇨리아광장을 찾았을 때 르네상스 조각과 건축이 어우러진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근처 미술관으로 하나둘 발길을 옮기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에 부부는 리조트에 예술광장을 만들고, 광장서 바로 연결되는 ‘문 없는 미술관’을 만들었다. 그리곤 ‘열린 문화플랫폼’, ‘소통하고 체험하는 뮤지엄’을 미션으로 내걸었다.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는 지난 2년간 비중 있고 진지한 기획전을 개최해 왔다. 2018년 9월의 개관전(’무절제&절제’)을 필두로, 작년 봄에는 세계적 아티스트 11명의 ‘빛’ 작업을 모은 ‘프리즘 판타지’전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하반기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작가 그룹인 랜덤인터내셔널의 쌍방향 미디어아트를 소개해 비평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올 10월에는 대규모 미디어아트 융합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이 미술관은 다양한 장르에 걸쳐 격이 다른 예술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여 대중에게 색다른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아울러 한국의 뛰어난 현대미술을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는 지렛대 역할도 추구하고 있다.

2. 글로벌 뷰티 기업, 용산에 뮤지엄을 짓다

세계적인 뷰티 기업 아모레퍼시픽이 서울 용산에 멋진 신사옥을 지으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약칭 APMA)을 개관했다. 롯데가 잠실 롯데월드타워 7층에 롯데뮤지엄을 개관한 지 넉 달 만인 2018년 5월 서울 도심에 비중 있는 사립미술관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이에 미술계에서는 리움의 빈자리가 이들을 통해 채워질 것이라며 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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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신본사 야간 전경. 지하1층과 1층에 미술관이 들어섰다.


특히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먼저 문을 연 롯데뮤지엄보다 컬렉션이라든가 전문성에서 앞서 있어 관심을 모은다. 이렇다 할 소장품이 없는 롯데에 비해 아모레퍼시픽은 창업자인 서성환(1924~2003) 회장과 아들인 서경배 회장의 수집품이 5000점에 이르고, 그 수준도 꽤 높은 편이다. 미술관 면적 또한 롯데에 비해 크고, 큐레이터 진용도 우수해 기대를 품게 한다. 리움 학예실장 출신인 전승창 APMA 관장은 “소장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줄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아모레퍼시픽을 이끄는 서경배 회장은 지난 2016년 미국의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알아주는 미술 애호가다. “가업을 잇지 않았다면 미술평론가가 됐을 것”이라고 토로한 그는 도자기, 서화, 공예품을 수집한 선대 회장과는 달리 변화무쌍한 현대미술품을 좋아한다. 화장품 기업의 오너답게 아름다움을 파고든 작업과 현대적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미술관의 소장품이 됐는데, 미술관 측은 핵심에 해당되는 컬렉션을 두 차례에 걸쳐 공개한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건물 자체부터 대단히 예술적이다. 지하 7층, 지상 22층, 연면적 18만8900㎡(5만7150평)의 아모레퍼시픽 신본사는 영국 출신의 스타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서경배 회장은 더 높고, 더 웅장한 건축안도 있었으나 은근하면서도 간결한 치퍼필드의 설계안을 최종 낙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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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건축과 미술에 관심이 많은 기업인이다. [사진=아모레퍼시픽]


APMA는 개관전으로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 작가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인터랙티브 작품을 한데 모은 ‘디시전 포레스트’전을 열었다. 작가는 70톤의 모래를 쏟아부어 인공해변을 만들고, 3D 원형조각 ‘블루 선’ 등 최첨단 작업을 선보였다. 관람객과의 교감을 통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는 점이 독특했다. 이후 열린 바바라 크루거 전, 조선의 병풍전 또한 스펙터클하면서도 내실 있는 전시여서 호평을 받았다. 올 하반기에는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이 열린다. 아모레퍼시픽이 수집한 회화, 도자, 금속∙목공예 등 1500여 점의 전시품을 통해 한국고미술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할 계획이다.

3. 삼탄, 강남에 날렵한 뮤지엄 세운다

오랫동안 우리 예술계에 소리 소문 없이 기여해온 삼탄(ST인터내셔널)은 매우 유니크한 뮤지엄을 신축 중이다. 삼탄은 서울 도산대로에 새 사옥을 짓고 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뮤지엄 등을 설계한 스위스의 건축듀오 헤르조그&드뫼롱(HdM)이 디자인한 삼탄의 신사옥은 그 형태가 예사롭지 않다. 대로변에 접한 쪽은 11층이고, 이면도로 쪽은 낮게 설계돼 삼각뿔 형상이다. 이 같은 건축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아 랜드마크가 될 전망이다. 사옥은 2021년 6월 완공되며, 건축비는 600억원대다. 이 건물 지하와 지상 4개 층에 ‘젊은 미술’을 담을 송은아트스페이스가 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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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말 청담사거리에 모습을 드러낼 삼탄의 신사옥. 지상과 지하 등 총 4개층에 아트센터가 들어선다. [사진=송은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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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술계의 슈퍼스타 제프 쿤스와 함께한 유상덕 삼탄 회장.


현재 청담동에 단독건물로 운영 중인 송은아트스페이스는 송은문화재단(이사장 유상덕)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유망 작가를 발굴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또 해외 협력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외국작가전 등도 개최해 왔다.

내년 여름 삼탄&송은문화재단 신사옥에 송은아트스페이스가 새롭게 조성되면 국제 무대에서는 널리 알려졌으나 국내에선 별반 소개되지 않은 유력 해외 작가를 심도 있게 소개할 예정이다. 아울러 역량 있는 국내 작가를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대중에게 흥미로운 교감의 장을 다채롭게 마련할 계획이다.

4. 한미약품, 북촌에 제2의 사진뮤지엄 건립

서울 올림픽공원 앞 한미약품 사옥(한미타워) 19, 20층에 위치한 한미사진미술관은 지난 2002년부터 국내외 사진작가의 작업을 심도 있게 소개해 왔다. 또 개화기 한국 역사사진과 국내작가 사진, 세계 사진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외국 예술사진 등을 꾸준히 수집해 컬렉션이 8000점에 달한다. 이에 ‘사진계의 리움’이라 불릴 정도로 사진예술에 있어서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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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에 일부 개관한 MoPS 한미사진미술관 삼청 별관. 본관은 신축 중이다. [사진=박기호. 한미사진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은 한미약품 임성기 회장의 부인이자 사진작가인 송영숙 관장이 설립한 뮤지엄이다. 송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리움 같은 곳들이 별반 신경 쓰지 않던 사진예술을 살뜰히 챙기며 특화된 미술관을 만들었다. 의대생이던 오빠가 사진을 찍는 게 멋져 보여 사진동호회가 있는 숙명여대(교육학)로 진학했고, 사진가 주명덕 등의 지도를 받으며 작가의 꿈을 키워 대학 4학년 때 오빠와 ‘남매전’을 열었다. 그는 결혼과 출산으로 활동을 접었을 때를 제외하곤 줄곧 사진계와 호흡해 왔다. 미술관을 세운 뒤론 수집의 폭을 넓히고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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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숙 가현문화재단 이사장·한미사진미술관 관장.


송 관장은 2023년 미술관 개관 20주년을 앞두고 서울 삼청로에 독립된 미술관을 건립 중이다. 내년 말이면 삼청공원 옆에 ‘MoPS(Museum of Photograph Seoul) 한미사진미술관 삼청’이란 새 뮤지엄이 위용을 드러낼 전망이다. 사비를 출연해 짓고 있는 600평 규모의 새 미술관이 오픈하면 보다 다각적인 사진전시와 연구, 교육, 출판사업이 이뤄지게 된다.

송 관장은 “서구의 유명 사진뮤지엄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사진예술사의 귀한 구슬들을 열심히 찾아내 정성껏 꿰며 컬렉션을 일궜더니 이제는 외국 딜러들이 좋은 작품이 나오면 가장 먼저 연락해 온다”며 “전문성을 더욱 다지고 혁신적인 발상을 곁들여 세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사진미술관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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