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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택배기사의 죽음에 드러난 ‘중국굴기’의 민낯

2020년 02월호

어느 택배기사의 죽음에 드러난 ‘중국굴기’의 민낯

2020년 02월호

영화 ‘북경 자전거’ 상기시키는 배달원의 참사
취약계층 농민공의 여전한 소외와 위험한 질주


| 베이징=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


2019년 12월 3일 저녁 중국 난징(南京)에서 40대 후반 택배기사 우더훙(吴德宏)이 갑자기 숨을 거뒀다. 사망 당시 ‘와이마이(外賣, 배달·테이크아웃)’ 근무복을 입은 채였다. 막 식사를 하려 한 듯 곁에 따뜻한 밥이 있었고, 전동차 배터리가 충전 중이었던 걸로 봐 식사 뒤 다시 배달 일을 나갈 작정이었던 듯했다. 우씨는 철거를 앞둔 달동네 1200위안(약 20만원)짜리 월세방에서 이날 저녁 8시 돌연히 그렇게 한많은 중년의 생을 마감했다.

주변 얘기에 따르면 그는 20만위안(약 3400만원)의 빚이 있었으나 이 가운데 이미 17만위안이나 갚았을 정도로 무척 성실한 사람이었다. 2020년에는 중고 자동차를 마련해 공유차 기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공유차 기사가 되면 월 5000위안(약 85만원) 안팎의 저수입과 오토바이 총알배송이라는 목숨 건 질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를 죽어라 일하게 했다.

4일 새벽 그의 휴대폰에는 인공지능(AI) 배송 시스템이 공지하는 두 개의 문자가 도달했다. 배송 지연에 따른 귀책사유를 알리면서 지급금에서 ‘7.45위안과 5.35위안을 공제한다’는 문구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문자가 찍힌 그 시각 택배기사 우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주문 접수와 택배기사 통보, 배송 착수 및 실시간 배송경로 확인, 배송지연 귀책사유 통보 등 AI 배송 시스템은 늦은 새벽 시각 우씨 신변에 생긴 변화와 상관없이 그렇게 무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사건 발생 꼭 한 달 만인 2020년 새해 1월 3일 중국 당국은 취업과 창업을 촉진하고 직업교육과 직업분류 체계화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16가지 새 직업’을 발표했다. 여기에 처음 등장한 인터넷 배송원(網約配送員)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의 새로운 직업과 덧붙여진 의미 설명이 중국 네티즌 사회에 널리 눈길을 끌었다.

이번 발표에서 당국은 인터넷 배송원에 대해 “모바일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고객 주문 접수 및 검사 요구를 수행하고, 플랫폼 스마트 계획노선에 따라 정해진 시간 내 주문 물품을 지정 장소에 차질 없이 배송하는 복무 인원”이라고 정의했다. 정확히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돌연사한 택배기사 우씨가 가졌던 직업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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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이 인터넷 주문 배송원이라는 명칭으로 택배기사를 16개 신직업의 하나로 지정했다. 중관촌이 자리한 베이징 하이뎬구의 한 분식집에서 택배기사가 배송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중국에서 이런 인터넷 택배기사는 속칭 ‘와이마이샤오거(外賣小哥)’로 불린다. 쉽게 말해 ‘배달오빠(아저씨)’라는 뜻이다. 당국의 표현대로 모바일 인터넷 발전과 급변하는 사회적 요구와 더불어 생겨난 신시대 새로운 직업군이다. 현재 이런 ‘배달오빠’는 중국 전역에 걸쳐 수백만명이 넘고 신경제의 고용 창출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요즘 중국 음식점이나 커피숍에 가만히 앉아 유심히 보면 매장 손님만큼이나 택배기사의 발길이 더 분주한 곳이 많이 눈에 띈다. 지난달 4일 베이징 중관촌이 있는 하이뎬구의 한 분식점에서 식사를 하는데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10명이 넘는 택배기사가 들락거렸다. 그사이 손님은 기자를 포함해 딱 3명뿐이었다.

가정과 사무실에서 음식과 커피를 주문해 소비하는 ‘와이마이 배달’ 수요가 그만큼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택배기사 수요를 전제로 하는 O2O 공유경제는 중국에서 갈수록 활기를 띠고 있다. 조리실 정도만 간신히 갖춘 배달 전문 식당과 매장이 아예 없는 주문 전용 커피 체인점도 몰라보게 늘어났다. 택배기사가 인터넷 주문 배송원이라는 ‘명함’을 갖게 된 사회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당국이 인터넷 주문 배송원이라고 이름 붙인 ‘와이마이샤오거’가 IT 신경제 시대 들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직업은 아니다. 그동안 이 직업은 그냥 배송의 일반적 명칭이면서 다소 비인격적인 느낌이 나는 ‘콰이디(快递, 택배)’로 불렸다. 인터넷 시대 변화라는 의미 부여를 하면서 좀 세련되고 전문성이 느껴지는 이름으로 다듬어진 것일 뿐이다.

20년 전인 2001년 자전거를 소재로 농민공(農民工) 택배기사의 애환을 다룬 영화 ‘북경 자전거(17歲的單車, 17세 소년의 자전거)’가 중국에서 제작됐다. 당시 30대 왕샤오솨이(王小帥) 감독의 이 영화는 중국 고도 성장의 어두운 이면, 농민공의 소외된 삶과 좌절을 그렸다. 이 영화의 주인공 시골뜨기 쿠웨이가 바로 요즘 말로 하면 ‘와이마이샤오거’, 즉 배달오빠다.

택배회사가 대여해준 자전거는 쿠웨이에게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만큼 소중한 삶의 도구요 생존 수단이다. 하루빨리 내 자전거를 소유해 부자가 되는 게 그의 꿈이다. 쿠웨이는 자전거에 생을 걸고, 지난 12월 난징에서 돌연사한 택배기사 오씨는 공유차 마련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 자전거에서 오토바이 전동차로 바뀌었을 뿐 농민공 출신 ‘배달오빠’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왕 감독이 북경 자전거를 찍을 때만 해도 거리를 가득 메운 자전거는 베이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풍물이었다. 교통수단으로서의 베이징 자전거는 전동차에 밀려 잠시 사라지는 듯했다가 신경제 시대가 열리면서 공유자전거로 부활했지만, 택배 수단으로서의 자전거는 전동 오토바이로 완전히 대체됐다. 물론 택배의 도구가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바뀌었을 뿐 농민공 택배기사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도시사회의 취약계층으로 소외된 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 도시주민 생활 모습은 지금 모바일 신기술에 기반한 뉴비즈니스 O2O 공유경제의 발전으로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한 변화를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 농민공들은 물에 뜬 기름처럼 숨막히는 소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세밑에 비운의 생을 마감한 어느 택배기사의 죽음을 소재로 왕샤오솨이 감독이 북경 자전거의 속편 영화 ‘북경 오토바이’를 제작한다면 카메라 앵글이 어디에 맞춰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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