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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여성 정책가 지금까지 없던 이유

2020년 02월호

문화예술계 여성 정책가 지금까지 없던 이유

2020년 02월호

| 이현경 기자 89hklee@newspim.com


지난해 문화예술계에는 여성 정책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국공립미술관장에 여성이 임명됐고, 문화재위원의 여성 비율은 전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문화예술계도 이제야 여성들에게 중요한 자리를 내주고 기회도 주고 있다는 평이 나오지만, 여전히 문화예술계 유리천장은 두껍다. 지금까지 여성 정책가들이 배출되지 못한 것은 남성 중심 사회 풍토가 여전하고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정책 역시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예술가의 경우 프리랜서 비율이 높아 복지 수혜 범위가 좁은 데다 특히 여성 예술가들이 사회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는 문제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019년 미술계 여성 정책가 활약

지난해 미술계에서 주목할 부분은 여성 미술관장의 대거 포진이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 최은주 대구미술관장,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안미희 경기도미술관장이 임명되면서 여성 파워를 보여줬다.

이와 관련,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달진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 빼고 국내 상징적인 미술관 관장이 모두 여성이다. 지난해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감독, 참여 작가도 모두 여성이었다. 대단한 발전을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가 이불은 호암예술상을 받았다. 과거 백남준, 이우환이 휩쓴 상인데 여성이 당당하게 예술상을 받았다. 이는 정말 엄청난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확대됐다. 특히 미술계에서는 유난히 여성 미술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제야 여성 미술인들이 인정을 받았다”고 반겼다.

남달랐던 여성 미술가들의 활약에 뜨거운 박수를 보낼 만하지만 이런 결과가 이제야 나온 배경은 무엇인지 의문도 든다. 이에 대해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어느 장르보다 열려 있는 미술계는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성적 구분이 인위적으로 작동된 적은 없었다”면서도 “종사자 비율을 따져보면 여성의 진출이 다소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차원에서 2019년처럼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건 사회적, 문화적 젠더 의식의 새로운 확립보다 성별 구분 없이 능력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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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 문화재청장. [사진=문화재청]


권력층은 남성이 점령...여성에겐 기회조차 없다

지금까지 여성 정책가의 출현과 활동을 쉽게 볼 수 없었던 것은 남성 위주 사회에서 여성에게 고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를 살펴보면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낮은 젊은 여성이 많다. 2018년 불거졌던 문화예술계 미투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부분 권력층은 남성이 점령하고 있었고, 갑을 관계에 따라 을로 구분된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에 쉽게 노출돼 있었다.

지난해 초 문화재청의 문화재위원회 여성 비율을 40%까지 높이겠다는 정재숙 문화재청장의 의지가 전해졌다. 그러나 문화재청 내부 인사들은 “여성 문화재위원을 뽑기가 쉽지 않다. 문화재 관련 학계에 종사하는 여성이 적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정재숙 청장은 반드시 여성과 젊은 층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18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여성 참여율 40% 미만 위원회 125개 중 115개 개선권고기관이 발표됐고 여기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도 포함됐다. 문화재위원회의 여성위원 비율은 15.8%였다.

현재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위원회를 구성할 때 특정 성비율이 60%를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 여가부는 2018년 상반기부터 정부위원회 성별 참여율에 대한 개선권고 기준을 20% 미만에서 40% 미만으로 상향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법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다만 달라진 점이라면 여성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문화예술위원회 비상임위원 8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여성 위원을 단 1명도 선발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문화예술계가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비상임 예술위원 선임 절차를 중단하고 대안 검토에 들어갔다.

신임위원 추천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전에 성별, 연령 등 균형적 추천에 대한 고지와 함께 위원 추천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받고 이에 부합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응모한 여성들의 숫자가 매우 적은 등 제약이 있어 결과적으로 여성 후보를 내지 못한 점은 유감”이라고 언급했다. 또 “향후 공론화의 장이 구성되고 논의가 진행돼 문예위원 선정을 위한 적정 대안이 도출되길 바란다. 문화예술계 여성들의 적극적인 응모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이 같은 사태에 대해 “무엇보다 양성평등기본법을 준수해야 한다. 법은 만들어놓고 지키지 않으면 소용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성 지원자가 추천위원이 평가한 기준에 못 미친 것일 수 있어도 전문성이 없는 게 아니다. 전문성에 대한 기준을 한 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문성은 단순히 객관화할 문제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김 소장은 현재는 여성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단계로 정부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소장은 “특별 성비율을 40% 미만에 두라는 건 전문성이 없는 여성으로 40%만 채우라는 게 아니다. 기회가 없어 제 능력을 발휘 못한 전문 여성에게 기회를 주라는 것”이라며 “여성도 전문가 영역에서 요구하는 인력이 되도록 남성과 동등하게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 이는 정부 조직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 홍유숙 대표도 여성 위원 40% 확보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홍 대표는 “연구된 역사, 기록된 역사는 지금껏 남성 위주의 시각이었다. 그래서 역사를 다시 해석해 봐야 할 부분도 있다”며 “문화재위원회 여성 위원 40% 확보는 꼭 필요하다. 여성의 시각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장에 전문인력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다. 2000년대 이후 여성 학자들이 나오고 있다. 찾으려면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과연 했을까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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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최은주 대구미술관장. [사진=서울시립미술관, 경기문화재단, 대구시]


여성 경력 단절 해결돼야...진입도 재진입도 없다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이 된 여성은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물론 남성도 육아로 인해 일을 그만두면 경력 단절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남녀 비율 차이가 너무 크다. 남성의 경우 단 3%. 여성은 56.8%가 생애 한 번 경력 단절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 전 전문직으로 일한 여성이라도 임신과 출산을 한 후 돌아갈 곳은 없다. 직업에 귀천이 있겠냐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했을 때는 막막하다. 엄마가 되면 30대는 계산원, 40대는 서빙, 50대는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게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이라는 말도 있다.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그리고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문화예술계 여성이 마주하는 경력 단절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시각예술가 최선영 씨는 현재 남편과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다. 일반 회사원과 다르게 시간에 제약 없이 남편과 공동 육아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임신 당시 생계를 위해 나간 방과후 강사 활동은 어려움이 따랐다.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생활비가 부족했다. 미술 방과후 강사의 월급은 40만~50만원이다.

최 작가는 “임신했을 때 입덧이 너무 심해 버스를 15분 이상 탈 수 없었다. 택시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에 많으면 40만원 정도 받는 일을 하기 위해 나가야 했는데 몸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더 힘들어지니까 방과후 수업 외에도 여러 일을 더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출산 후 여자들은 정서적으로 힘들다. 나의 경우 혼자 새벽마다 멈춰 있는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을 보면 세상은 굴러가고 미술계도 변하고 있는데 나만 밤마다 모유 수유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우울했다”고 회상했다.

사실 문화예술계는 심각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문화는 여성의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또한 정책은 기업과 공기업,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마련되는 데다 그중에서도 과학기술인, 기업인은 남성 중심으로 편성돼 있다. 프리랜서, 자영업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정책과 법규도 부실하다. 양성평등 정책과 예산은 늘 쪼들린다.

최유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정책확산전략실 실장은 정부가 직접 나서 경력이 단절된 여성 예술가들의 사회 진입과 재진입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법은 지자체와의 협업에 있다고도 했다. 최 실장은 “문체부가 진행하는 ‘문화도시 선정’은 지자체가 엄청나게 관심을 보이는 사업이다. 여기에 문화예술인을 참여시키는 거다. 지역에서는 문화예술산업을 하고 싶어 한다. 공간은 있는데 예술적 공간을 만들 사람이 부족하다. 이때 여성 예술가를 지원하면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민간이 함께할 양성평등정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투 논란 이후 정부 8개 부처에 양성평등정책관이 배정됐다. 문체부에도 양성평등정책관실이 개설됐지만 여성에 대한 정책은 리포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최유진 실장은 “여성가족부가 내놓는 정책을 모니터링해 리포팅해야 한다. 리포팅하는 건 정책 과정에 참여한다는 의미다. 또한 민간 거버넌스에 중요한 파트로 들어갈 수 있다. 협업 네트워크 조직이 된다면 기존 추진 정책을 모니터링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끼워넣는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 실장은 여가부 홈페이지에 ‘여성인재 등록’을 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혼자 전시한 것은 개인 업적이지만 공공예술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면 공적 경력이 인정된다. 이런 게 두세 개 쌓이면 실질적으로 여성인재 DB로 구축돼 지자체부터 광역자치단체 위원회까지 활동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무궁무진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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