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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가격이 매겨지는 과정은

2020년 01월호

미술품 가격이 매겨지는 과정은

2020년 01월호

| 이현경 기자 89hklee@newspim.com


김환기(1913~1974)의 1971년대 작품 ‘우주(Universe 5-IV-71 #200)’가 지난해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됐다. 지난 2018년 5월 ‘서울옥션 홍콩세일’에 등장한 붉은색 전면점화 ‘3-II-72 #220’가 85억원으로 한국 미술품 최고가를 경신한 지 1년여 만에 대기록을 작성했다. 김환기의 ‘우주’가 세운 132억원 기록은 한국 미술을 해외로 소개하는 데 새로운 계기라 되리라 미술계는 내다보고 있다. 미술작품은 예술적 시선으로 ‘감상’하는 기준도 있지만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치도 있다. 시장에서 미술품 경쟁력은 무엇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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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억원에 낙찰되며 한국미술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김환기의 1971년작 ‘우주(Universe 5-IV-71 #200)’. [사진=크리스티]


공급자가 가격 결정하는 미술시장

국내 미술계에서는 작가로부터 직접 구매한 작품을 판매하는 1차 시장과 소유한 미술품을 되파는 2차 시장이 열린다. 1차 시장은 상업화랑과 아트페어, 미술관이 포함된다.

화랑(갤러리)은 미술품을 전시하고 작품을 사고파는 곳으로 상업을 목적으로 한다. 작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면서 해외 미술전시와 페어에도 진출해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징검다리 역할도 한다. 미술관 역시 전시의 기능을 하며 작가 발굴에도 기여한다. 소장품 구입에 있어서는 상업화랑과 달리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구매한 미술품을 되팔 수는 없다.

상업화랑의 경우 작가가 먼저 판매액을 제시한다. 갤러리 대표는 클라이언트에게 판매될 수 있도록 가격 조정을 하는 역할도 한다. 작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건 작품의 크기와 재료비, 작가가 작품을 위해 쓴 비용과 시간 등이다. 작품의 크기는 보통 대학을 졸업한 신인 작가의 경우 평균 호당 가격(1호는 엽서 한 장 크기로 14.8×10㎝)이 5만~10만원이다. 웬만큼 지명도를 얻으면 호당 20만원까지 올라간다. 국내에서 호당 가격이 가장 높은 작가는 박수근으로 1억5000만~2억8000만원 정도다. 미술시장에서는 공통적으로 작품의 크기 외에도 미술사적 가치, 유명세와 인기, 작품의 질과 작품의 소장 기록, 희소성, 시대상 등이 가격 결정 요인이 된다.

2차 시장은 경매다. 국내에는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주요 경매사로 자리 잡고 있다. 경매에 나온 미술품은 판매자와 경매사 측이 정한 시작가에서 실시간으로 구매자 간 경합을 통해 낙찰가를 정한다. 최근 100억원대를 돌파한 김환기의 ‘우주’도 세계적인 경매사 크리스티가 홍콩에서 개최한 ‘20세기&동시대 미술 이브닝 세일’의 하이라이트 작품으로 꼽혔다. 60억원으로 시작한 이 작품은 10여 분간 뜨거운 경합 끝에 시작가의 2배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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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들. [사진=윤창빈 기자]


미술시장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미술시장 실태조사 결과를 통한 국내 미술시장 현황 분석’(김봉수)에 따르면 시장은 자유경쟁 원칙에 의해 재화·서비스 등이 거래돼 가격이 결정되는 장소다. 이를 미술시장에 접목하면 미술작품이 재화로 거래되고 작품의 가격이 책정되는 곳으로서 시각예술인이 작품을 공급하고, 화랑과 경매사·아트페어가 유통을 맡고, 컬렉터가 작품을 소비하는 형태다.

미술시장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반 제조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공급자가 가격결정권을 가지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같은 상품을 양산하면서도 시장의 흐름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는 데 능숙하지만, 미술시장은 공급자가 가격을 결정하므로 판매로 이어지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일부 미술 관계자는 “시장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는 제조 물가와 달리 미술가들은 ‘못 먹어도 고’라는 식이라 방법이 없다”고 한다.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미술시장연구소 소장)는 미술시장에서 작품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은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시장에서의 가치가 부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인지도에 비해 작품이 턱없이 비싸면 팔릴 수 없다. 공급자의 예술적 가치만 내세울 게 아니라 소비자의 지갑을 열 시장의 가치도 파악해야 한다는 거다. 서 교수는 “아티스틱 밸류(Artistic Value)와 마켓 밸류(Market Value)가 만나야 한다. 시장론에서 보면 작품이 안 팔릴 경우 이를 어떻게 ‘가격’으로 볼 수가 있겠나. 예술적 가치와 시장의 인지도가 만날 때 좋은 가격이 매겨지고 판매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20점을 전시해 그중 60%, 12점이 팔렸다면 절반 이상은 팔았으니 시장가격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작가가 50세가 넘었고 25년간 열심히 그림을 그렸으나, 작품이 팔리지 않는다면 가격으로 인정할 수 없다. 갤러리와 작가가 기획을 잘못했을 수도 있지만, 시장에서만 보면 작품이 팔려야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국내 화랑에서 한국 작가 대신 외국 작가의 전시를 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화랑은 국내 신인 작가나 인지도가 낮은 국내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기보다 해외 시장까지 공략할 수 있는 작품을 앞으로 내건다. 이는 안정적인 투자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선호가 반영된 결과다.

서진수 교수는 “마켓 밸류도 국내와 국제로 나뉜다. 설령 한국과 일본의 경제가 안 좋다고 해도 유럽 경제가 좋으면 유럽 시장에 작품을 팔면 되기 때문”이라며 “투자는 수익률이 담보돼야 하기에 소비자는 작품을 볼 때 감상용 시장에 맞느냐, 투자 시장에 속하냐를 구분한다. 투자 클럽이나 공유경제 참가자들은 위험은 적고 수익성은 지속가능한 작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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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옥션에서 지난해 7월 진행된 김환기의 ‘항아리와 날으는 새’ 경매 현장. [사진=케이옥션]


서 교수는 국내 작가의 시장 우위성을 위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다 나오는 세상이라 아트페어를 찾은 컬렉터들도 ‘아트 프라이스’와 같은 기준표에서 작가를 검색해 투자성이 있는 작품을 산다는 의미다. 이 발표가 컬렉터들에게는 객관적 지표가 된다.

서 교수는 “국내 경매에서 거래가 잘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우리 시장에서는 작품가가 상위에 오른 작가는 제한돼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요즘 검색 시대이다 보니 컬렉터들은 ‘아트 프라이스’가 매년 전하는 세계 500대 작가를 보고 작품을 산다. 한국 작가는 김환기, 이우환을 포함해 8명 정도다. 중국은 200명이 넘는다”며 “박서보미술관이 영국 런던에 세워진다는데 중국 사업가가 투자하는 것으로 안다. 이게 가능한 것도 작가의 국제적 명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술품 거래의 투명성...작품가격의 기준은?

공급자가 가격을 결정하다 보니 일부에서는 투명한 거래를 위해 미술품 가격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는 4개 단체가 미술품의 진위를 평가하고 있다. 이 중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지난해 8월 ‘한국미술품시가감정을 위한 모형과 매뉴얼’을 발표했다. 협회는 거래 작품과 낙찰가격을 수집하고 연구한 사례를 바탕으로 가격 산출 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총 여섯 가지 기준으로 작품가격을 산출할 수 있다. △작가가 매년 개인전에 준하는 전시 활동을 한 경우 작업 경력에 산정 △작업 경력, 학업 특성, 전시 활동내용 △작가의 사회적 인지도를 평가해 53cm × 45.5cm(10호)를 기준으로 하는 통상가격 산출 △작품이 의뢰되면 보존 상태 평가 △의뢰 작품의 크기별 가격 △의뢰 작품의 작품성과 시장성 등을 평가해 최종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그간 경매와 미술시장의 사례를 적용한 작품가격 계산 방식은 P=[KP·1/3(A+E+F)]x(M+V)다. P는 가격이며 KP는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통상가격이다. A는 학업 특성, E는 전시 활동, F는 인지도이며 M은 시장성, V는 작품성이다.

일부에서는 미술작품 가격에 작가의 학력과 전시 횟수가 포함되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화랑 관계자는 “작가 중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작업하는 사람도 많다. 대학을 안 나와도 작품하는 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해야 하나”고 반문했다. 아트미 최동훈 대표도 “예술품 가격을 투명하게 밝혀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는 동의하나 작품가격은 어느 집단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결정돼야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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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작품. ‘3-II-72 #220’, Oil on cotton, 254×202cm, 1972. [사진=서울옥션]


정부 규제가 미술시장 죽인다

‘2018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국내 미술시장 거래 작품 수는 3만5712점, 작품 거래금은 4942억4300만원이다. 이는 전년 대비 24.7% 성장한 결과지만, 해외 미술시장과 비교해 보면 현저히 작은 시장이다.

최웅철 화랑협회 회장은 한국의 경제 수준에 비해 미술경제 수준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문화를 바라보는 수준에 변화가 없다면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기대도 없다고 단언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가 GDP만 놓고 보면 10~12위다. 이 수준이면 미술시장은 3조원대가 넘어야 한다”며 “현재 한국의 미술품 가격지수는 40위권을 넘어간다. 미국 28조원, 중국 18조원, 프랑스 8조원, 일본이 4조원 정도다. 한국은 4000억원대다. 한국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유통법으로 미술품 거래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미술을 장려하고 산업으로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미술문화는 가망이 없다”고 덧붙였다.

미술계는 국내 미술시장이 활성화돼야 해외에서도 한국 미술에 대한 평가와 인정이 시작된다고 본다. 최웅철 회장은 “미술시장은 부동산처럼 한정된 땅으로 거래하는 게 아니라 ‘문화’ 자체다. 매년 새로운 작가가 나오고 미술작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미술시장은 30년째 얼어붙어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 이런 그림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나. 우리가 인정해 줘야 해외에서도 한국 미술에 관심을 갖고 시장에 진입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미술시장은 부자들 사치놀음이라는 시선부터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 회장은 “ ‘미술품의 가격이 비싸다, 싸다’라는 건 동시대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문화를 얼마로 매기느냐, 그리고 어느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가격이 싼 것부터 비싼 것까지, 그게 곧 문화의 크기인데 우리는 미술품 가격이 올라가면 부자들이 미술품으로 비자금을 챙기는 것 아니냐고 한다”고 말했다.

서진수 교수도 미술시장에 사회적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다며 ‘문화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개인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서 교수는 “돈이 많은 컬렉터는 기업이다. 그런데 미술품 손금산입을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조정했는데 이런 걸로는 안 된다. 기업이 사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미술에서 일정 단위의 세금 혜택을 주면 음악에서도 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는 맥락은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투자를 목적으로 사든, 돈 자랑으로 사든, 고가의 미술품이 시장에서 건전하게 거래되는 것을 좋게 본다. 내가 본 사람 중에 작고한 컬렉터들은 100% 작품을 다 놔두고 죽는다. 작품이 어디 가느냐는 거다. 다 후손에게 보여주고 있다”며 “유희면 어떤가. 구겐하임도 침대 밑에 작품을 깔고 잤다. 그런데 베니스, 뉴욕에 가면 그의 컬렉션이 다 남겨져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문화 수준은 나라의 힘을 보여준다. 나라가 부강할수록 국민의 문화적 수준이 높고 문화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도 다르다. 시장에서도 문화 파워는 강하다. 서진수 교수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강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이다. 이들이 전체 시장의 85%를 차지한다. 나머지 15%가 200여 개 나라가 나누는 거다. 문화 국격이 거기서 딱 나타난다”고 말했다.

국내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가 아닌 성장과 진흥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도 성장할 때까지 키워 놔야 큰일을 할 수 있다. 한국 시장만 보고는 돈을 못 번다. 그러니 해외로 나가는 거다. 미술품도 마찬가지다. 해외 진출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국가가 되는 데 100년 걸리고, 문화국가가 되면 허물어지는 데 100년 걸린다. 이 말이 정말 진리다. 현재 우리나라는 100년을 기준으로 보면 25년쯤 와 있는데 70~80년쯤 와 있다고 착각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서 교수는 문화국가 융성을 위해 편중된 문화 투자보다 다양한 문화 후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K팝 하나가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킨다고 세계의 모든 콩쿠르를 휩쓴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며 “세계의 많은 음악가는 베토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다. 이를 알아야 팝 음악의 질도 좋아진다. 이처럼 고미술도 활성화되고 근대미술도 활성화돼야 현대미술도 산다는 걸 인지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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