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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고 얼얼한 ‘마라 열풍’ 한국 상륙 중국 ‘매운맛’ 본고장 쓰촨

2019년 12월호

맵고 얼얼한 ‘마라 열풍’ 한국 상륙 중국 ‘매운맛’ 본고장 쓰촨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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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해소에 그만...매운맛 큰 인기
매운 음식, 천민의 상징에서 국민 애호 요리로

| 강소영 중국전문기자 jsy@newspim.com


중국식 매운맛인 ‘마라(麻辣)’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마라탕(麻辣燙), 마라샹궈(麻辣香鍋) 등 예전에는 생소했던 중국요리를 제공하는 식당들이 도처에 생겨났다. 최근 서울 광화문, 여의도 등 사무실 밀집 지역의 ‘마라’ 요리 음식점은 점심 때마다 몰려든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올해 한국 외식업계의 최대 키워드를 ‘마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마라는 산초라고 불리는 향신료와 고춧가루, 기타 각종 재료가 더해져 나는 맛이다. 달고 감칠맛이 나는 우리나라 고추장보다 매운맛이 더 강하다. 특히 산초로 인해 혀끝이 얼얼해지고 입안 가득 화끈거리는 느낌이 도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음식에선 많이 느낄 수 없는 미각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낯설어하거나 거부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색함’을 참고 몇 번 먹다 보면 마라 특유의 강한 중독성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나라 식당에서 제공하는 마라탕과 중국식 샤부샤부인 훠궈(火鍋)는 대부분 쓰촨(四川) 현지보다는 맛이 순한 편이다. 쓰촨에서는 작은 고추와 산초가 듬뿍 들어간,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맵고 입안이 얼얼해지는 마라탕이 보편적이다. 마라탕과 훠궈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양고기, 닭고기 외에 오리 부산물 등 우리에겐 다소 ‘난이도’가 높은 식자재가 자주 쓰인다. 서울 대림동 등 중국인 밀집 지역에서 비교적 ‘정통’에 가까운 쓰촨요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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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외식업계를 강타한 ‘마라탕’(위). 한 직장인이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마라탕에 첨가할 재료를 고르고 있다.


중국 매운맛의 본고장 ‘쓰촨’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듯 중국에서 매운맛으로 유명한 고장은 쓰촨이다. 마라의 풍미 역시 쓰촨의 대표적 맛이다.

사실 쓰촨 사람들이 매운맛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차오위(曹雨) 중산(中山)대학 이민족군연구센터(移民族群研究中心) 부연구원이 저술한 ‘중국의 매운 음식 역사’에 따르면 중국에 고추가 전해진 것은 1700년대다.

중국에서 고추 사용에 대한 최초 기록은 청나라 강희(康熙) 60년으로 파악된다 . 당시 구이저우(貴州) 사람들이 간을 할 소금이 없어 고추를 사용했다가, 가경제(嘉慶帝)에 이르러 인근 주변으로 빠르게 확산됐다고 한다. 쓰촨에 고추가 유입된 것도 이 시기다. 쓰촨에서 고추를 이용한 요리와 매운맛이 보편화된 것은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서였다. 고추가 쓰촨요리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 식자재가 된 것이 불과 100여 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쓰촨 식문화에서는 오래전부터 ‘매운 풍미(辛香)’를 즐기는 전통이 있었다. 중국 매체 제몐(界面)이 란융(藍勇) 시난(西南)대학 역사학과 교수의 저서 ‘중국 쓰촨요리 역사(中國川菜史)’를 인용해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파촉(巴蜀·쓰촨 지역의 옛 지명) 지역에서는 산초와 생강을 이용해 맛을 내는 요리가 많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산초, 생강, 고추가 만나 현재 쓰촨 특유의 마라 풍미가 탄생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쓰촨에서 매운맛이 유독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사회적 변화의 영향도 있다. 원말 명초 두 차례의 전란으로 쓰촨의 인구가 급감하게 됐다. 특히 ‘삼번의 난(三藩之亂)’이 발발한 이후 쓰촨 인구는 6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청나라 정부는 다양한 이민 정책을 펴 후난(湖南), 광둥(廣東), 광시(廣西), 장시(江西) 등 다른 지방 사람들이 쓰촨으로 이주해 살도록 장려했다. 이를 통해 쓰촨 고유의 음식 문화에 다른 지방의 특색이 더해지게 됐고, 매운맛 요리가 여러 지역 출신 사람들의 밥상에 자주 오르게 됐다.

지리적 요인도 작용했다. 교통이 불편한 쓰촨에서 다른 지역의 식자재를 공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타지에서 온 이주민들은 할 수 없이 쓰촨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고추를 주 식자재로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쓰촨의 매운맛이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쓰촨=매운 요리’의 공식이 성립된 것은 민국(民國) 시기(1912~1949)이다. 국민당 정부가 1932년부터 충칭(重慶)으로 수도를 옮긴 후 대량의 인구가 쓰촨으로 유입됐다. 인구 밀집도가 높아지고 전란으로 삶이 피폐해지면서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수요가 늘었고, 고추를 대량 사용한 매운 음식이 더욱더 쓰촨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게 됐다.

훗날 항일전쟁이 끝나고 쓰촨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대거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쓰촨의 ‘매운맛’이 전국 각지로 퍼지게 됐다. 이후 쓰촨은 ‘중국 매운맛’의 본고장이자 중국 4대 요리의 한 맥을 차지하는 중국 대표 음식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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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민의 음식에서 중국 대표 요리로

매운 요리는 원래 하층민들이 즐겨 먹던 요리였다고 한다. 고추를 처음 사용한 것도 구이저우성의 토착민들이었다. 소금을 구하지 못해 대체재로 사용한 작물이었다. 물자가 풍부한 귀족 계층이 사용할 이유가 없는 식자재였다. 또한 귀족 신분으로 출신이 천박한 음식을 즐겨 먹을 수도 없었다.

중국 전통 의학 측면에서도 고추는 건강에 좋은 음식이 아니다. 중의학에서는 고추가 자극적이고 몸에 마른 열을 낼 수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귀족 가문들의 특색을 담은 음식인 ‘관부채(官府菜)’는 자극이 적고 순한 맛의 요리가 주를 이뤘다. 또한 고상하고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정신을 추구하는 귀족들에게 성적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고추는 가까이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귀족을 흠모하는 부유 계층들의 식탁에도 ‘관부채’를 모방한 음식이 올라갔다. 고추를 먹지 않는 것은 일종의 높은 신분과 고상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청대 말기 정치가 증국번(曾國藩)의 일화는 이 같은 문화를 잘 보여준다. 후난(湖南) 출신인 증국번은 원래 매운맛을 즐겼다고 한다. 후난에서도 고추를 사용한 매운 음식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가 양강총독(兩江總督)으로 있을 때 일이다. 증국번의 기호를 파악해 잘 보이고 싶었던 한 관리가 증국번의 요리사에게 뇌물을 주고 정보를 캐려 했다. 그러나 요리사는 뇌물을 거절하고, 증국번에게 올릴 요리에 고춧가루를 뿌려 대령할 것을 조언했다.

‘고귀한 신분의 증국번이 천한 것들이나 먹는 고춧가루를 즐겨 먹다니...’ 관리는 의구심을 품었지만 요리사의 지시에 따랐다. 결과는 대성공, 모든 요리에 잔뜩 뿌려진 고춧가루를 보고 증국번이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매운 요리가 ‘천민’ 딱지를 떼게 된 것은 신중국 성립 이후다. 1949년 고관대작의 음식을 전담하던 요리사들이 대거 민간 외식업계로 쏟아져 나왔다. 더 이상 식재료에 제약을 받을 필요가 없어진 요리사들이 고추를 널리 사용하게 됐다.

현대사회에 이르면서 매운맛의 인기는 더욱 올라가게 됐다. 도시화로 인해 빨라진 생활 리듬, 치열한 경쟁, 취업하려는 노동자들의 이주 등이 더해져 ‘자극’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난 탓이다.

강한 자극을 즐기는 사람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고춧가루는 요리 분야를 넘어 간식 시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과자 등 각종 간식에서 매운맛을 강조한 제품이 늘고 있다. 매운맛은 어려운 공정 없이 저렴한 고춧가루를 사용해 강력한 풍미를 낼 수 있어 식당과 가공식품 제조업체들도 앞다퉈 ‘매운 음식’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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