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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 내고 90원만 받아” 그래도 핫한 ‘마이너스 채권’

2019년 12월호

“100원 내고 90원만 받아” 그래도 핫한 ‘마이너스 채권’

2019년 12월호

전 세계 거래 국채 1/3이 마이너스 채권
금리 내릴수록 이익...주식·채권으로 자금 이동도
폭탄 돌리기 이후 버블 붕괴 리스크 대비 지적도


| 백진규 기자 bjgchina@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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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을 내고 1년 후 90만원을 돌려받는 조건에 돈을 맡길 바보가 있을까. 그런데 현실에는 존재한다. 바로 마이너스 채권이다. 남의 나라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국내 투자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몇몇 시중은행에서 벌어진 DLS·DLF 사태가 바로 독일 국채의 마이너스 금리 때문이었다. 마이너스 채권에는 누가 투자하고, 또 어떻게 진화한 것일까. 우리나라도 마이너스 채권을 발행하는 날이 올까.

전 세계 거래 국채 1/3이 마이너스 채권

마이너스 채권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발생한 기현상 중 하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2014년 6월 처음으로 마이너스 정책금리를 도입한 이래 스웨덴, 스위스, 일본 등이 합류하면서 발행 물량이 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란 쉽게 말해 예금이나 채권 투자자가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거꾸로 수수료(보관료)를 내는 것이다. 따라서 만기까지 보유하면 투자자는 손해다. 그런데도 마이너스 금리 폭이 오히려 더 확대되면서 발행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구제금융을 졸업한 그리스가 올해 -0.02%에 국채를 발행하면서 글로벌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도 놀랐다.

마이너스 채권이라고 해서 표면금리가 마이너스인 건 아니다. 통상 채권은 발행 후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약속한 이자를 받고 만기에 원금을 돌려받는다. 반면 마이너스 채권은 표면금리를 0.0%로 하고, 발행 당시 액면가보다 비싼 금액을 받아(할증 발행)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 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1년 만기 1만원짜리 채권을 1만100원에 매입하면 약 ‘-1%’ 효과가 나는 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전 세계 마이너스 채권은 모두 14조8000억달러 규모로 지난해 말 대비 44% 급증했다. 전 세계에 거래되는 국채 가운데 마이너스 채권 비중은 무려 36.8%에 달한다.

올해 들어 채권 금리가 빠르게 내리면서 마이너스 채권도 늘었다.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2018년 11월 0.4%였다가 올해 8월 -0.71%까지 떨어졌고, 지금은 반등세로 돌아서 11월 6일 -0.31%를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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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채권 발행 왜? “돈 풀고 환율 유지”

마이너스 채권 발행의 주된 목적은 유동성 확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디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등에서 양적 완화를 시행했으나, 경기 둔화 우려에 시중 유동성이 다시 중앙은행으로 유입됐다. 결국 강제로 돈을 풀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것이 마이너스 채권으로 이어졌다.

반면 스위스와 스웨덴은 유럽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으로 인한 자국 통화가치 절상을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낮춘 경우다. 소규모 개방경제로 수출, 여행 등 의존도가 높은 국가여서 통화가치가 오르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만기 보유 시 손해가 확정돼 있음에도 마이너스 채권은 왜 팔릴까. 박종훈 SC제일은행 전무는 경기 둔화와 디플레이션을 그 이유로 꼽았다.

“올해 사과를 10개 주면 내년에 8개로 돌려주겠다면 누가 거래하겠어요. 그런데 올해는 사과가 100개 열렸지만 내년엔 50개밖에 안 열린다고 가정해 봐요. 그럼 이런 이상한 거래를 하려는 사람이 생깁니다.” 돌려받는 현금이 줄더라도 디플레이션이 심화되면 화폐가치가 올라 오히려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사과는 썩지만 돈은 썩지 않는다. 현찰을 들고 있거나 은행에 예금을 하면 더 이익 아닐까. 이를 막기 위해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들은 시중은행과의 예금 금리도 마이너스로 떨어뜨렸다. 만약 시중은행에 현찰을 따로 보관하려 한다면 창고와 보안 비용이 더 많이 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유럽 양적 완화 기대...당분간 마이너스 금리 지속

갈수록 원금이 줄어드는 마이너스 채권은 누가, 왜 살까? 마이너스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면 손해다. 하지만 보유 기간 중 금리가 더 하락(가격 상승)했을 때 되팔면 매매차익을 얻을 수 있다. 글로벌 은행과 증권사들이 핫머니로 활동하면서 마이너스 채권 가격은 더 높아졌다. 올해 8월 말 기준 바클레이즈(Barclays) 은행은 독일 국채에 투자해 1년 새 10%가량의 수익을 얻기도 했다.

우리나라 기관투자자들은 주로 글로벌 채권지수를 추종하는 과정에서 마이너스 채권을 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바클레이즈 채권지수를 벤치마크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수에 담긴 마이너스 국채에는 거의 다 투자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올해 8월 말까지 해외채권 투자 수익률은 18.8%다. 지난해(4.2%)보다 4배나 높다.

“인덱스 전략에서 일부러 ‘마이너스 채권은 빼고 담겠다’고 하면 액티브 전략이 된다. 유럽 채권의 약 1/3이 마이너스여서 억지로 피해서 담는 게 더 어렵다. 채권 가격 상승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와 유로화의 환헤지 프리미엄을 고려해도 투자자들은 꽤 높은 수익을 얻었을 것이다.” 위계태 미래에셋생명 고객자산운용팀장의 설명이다.

수급 측면에서 당분간 마이너스 채권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올해 9월 유럽중앙은행은 시중은행에 대한 예치금리를 기존 -0.4%에서 -0.5%로 낮추고, 오는 11월부터 매월 200억유로를 들여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보험사 등 금융기관들도 마이너스 채권을 담고 있는 걸로 안다”며 “이들은 아마도 경기 둔화로 인한 ECB 양적 완화와 글로벌 디플레이션 심화 등을 기대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마이너스 채권이 더 늘어날 경우 위험자산 선호도가 다시 높아지면서 금융시장 판도가 바뀔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유로존·일본·스위스 등이 마이너스 금리에 들어간 시점을 기준으로 주식, 부동산, 채권, 환율 등 자산가격 변화를 분석했다. 마이너스 금리 이전 1년간 주식 가격은 3.7% 하락했으나 시행 후 가격은 14.3%나 올랐다. 채권은 마이너스 금리 시행 2년 전부터 1년 전까지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다가, 그 후로 플러스 전환했다. 부동산 가격은 마이너스 금리 이후 10.4% 올랐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마이너스 금리 시행 직전에는 경제 상황이 안 좋아서 주식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나, 시행 후에는 경기 부양 기대감과 위험자산 가격 반등 기대감으로 주식 수익률이 반등하는 등 변화가 감지됐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하락한다고 무한정 채권시장에 돈이 몰릴 수는 없다”며 “기관들 입장에선 주식 비중을 늘린다든가, 아니면 신흥국 투자 비중을 늘리는 등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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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폭탄 돌리기?...글로벌 금융 리스크 우려도

“마이너스 금리가 혼란스럽지 않은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다.” 워런 버핏의 파트너 찰리 멍거(Charlie Munger)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이 2016년 주주들과의 대화에서 한 말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경기를 부양하고 디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지만, 전통적인 경제 관념과는 어긋난다. 그만큼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선 국제금융센터는 시장 참여자들이 과도한 수익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0.4% 금리에서 독일 은행들엔 연간 24억유로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일부 유럽 은행들은 이미 기업고객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며 “장기채권 비중이 높은 보험이나 연기금 역시 수익률이 둔화되고 역마진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글로벌 자본이 채권시장에 집중되면 여타 수익성 있는 투자 기회에 자본이 유입되지 못하고, 결국 전반적인 생산성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대로 저금리가 지속될 경우 투자 대상이 줄어 위험자산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리스크를 키울 것이란 의견도 있었다. 김성식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은 “연금·보험 등 장기성향 투자자들이 레버리지론과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대체투자 등 위험도가 높은 투자처로 옮겨가고 있어 적절한 모니터링과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이너스 금리가 영원할 순 없는 만큼 ‘폭탄 돌리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오건영 신한AI 팀장은 “마이너스 채권은 경기 둔화를 예상해 누군가 더 낮은 금리로 채권을 사줄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라며 “폭탄 돌리기가 끝나는 시점에 갑자기 버블이 꺼지면서 금리가 갑자기 위로 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이너스 채권, 우리나라도 발행 가능?

전문가들은 당분간 디플레이션 우려에 마이너스 금리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봤다. 다만 우리나라의 마이너스 채권 발행 가능성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국제금융센터는 실질금리 및 기대인플레이션 하락으로 인해 영국·미국 등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확산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고 분석했다.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기축통화국이 아닌 경우 자본 유출 우려가 있어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했다. 오석태 SG증권 전무 역시 “미국은 가능하겠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통화 국제화 정도가 낮은 국가들은 마이너스 금리 실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연준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 혹은 이보다 낮게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장해 연준 위원 및 경제학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반면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마이너스 채권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되는 얘기고 아무도 생각 못하던 것”이라며 “돈을 아무리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글로벌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국가 금리가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전 세계적인 제로 금리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14개 국가가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 중 기축통화국이 몇 개나 있나”라며 “우리나라는 신용등급도 우수하고 경상수지도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자본 유출 우려도 낮은 데다 일부 자본 유출이 있다고 해서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마이너스 금리가 심화하면 현대화폐이론(MMT) 도입이 앞당겨질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현대통화이론이란 정부가 부채 상환을 고려하지 않고 돈을 무한정 찍어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많은 경제학자가 ‘헛소리’라고 반박해 왔으나 최근 지지 세력이 점차 늘고 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마이너스 금리와 MMT 모두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정책”이라며 “다만 마이너스 금리는 이미 도입돼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음 카드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금리가 하락할수록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결합된 MMT 시행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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