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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4월호

연기상 휩쓴 오영수·이정재·정호연 ‘오겜’ 효과는 계속된다

|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미국 골든글로브에 이어 미국배우조합(SAG) 시상식에서 3관왕에 오르면서 K콘텐츠들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정호연의 시상식 패션이 화제가 되는 것은 물론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소년심판’ 등 넷플릭스 후속 시리즈가 글로벌 스트리밍 순위 상위권에 오르며 ‘오징어 게임’ 효과가 지속되는 모양새다. 골든글로브 최초 남우조연상 오영수 지난해 국내 콘텐츠 중 최초로 넷플릭스 전 세계 1위에 오르며 사랑받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정호연, 이정재가 미국배우조합상 주연상 수상에 성공했다. 정호연과 이정재는 지난 2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 바커행어 이벤트홀에서 열린 제28회 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각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날 정호연은 ‘더 모닝쇼’ 제니퍼 애니스톤, ‘더 모닝쇼’ 리즈 위더스푼, ‘핸드메이드 테일’ 엘리자베스 모스, ‘석세션’ 사라스누크와 겨뤄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정재 역시 ‘석세션’의 브라이언 콕스, 키에라 컬킨, 제레미 스트롱과 ‘더 모닝쇼’의 빌리 크루덥 등 세계 최고의 배우들과 경합했다. 정호연은 예상치 못한 수상에 깜짝 놀란 듯 눈물을 흘리며 수상대에 섰다. 그는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배우들을 보면서 배우의 꿈을 꿨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한국어로 소감을 말했다. 이어 영어로 “저를 꿈꾸게 하고 문을 열어주셔서 감사하다. ‘오징어 게임’ 크루 정말 사랑하고 감사하다”면서 감격스러워했다.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이정재 역시 “세상에 너무 감사하다. 너무 큰 일이 제게 벌어졌다”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수상 소감을) 진짜 많이 써왔는데 읽지를 못하겠다.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을 사랑해준 전 세계 관객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징어 게임’ 팀 너무 감사드린다”면서 환히 웃었다. 미국배우조합상은 미국 최대 배우 노동조합인 스크린 액터스 길드(SAG)가 매년 개최하는 시상식이다. 앞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앙상블상을 수상했으며, 배우 윤여정이 지난해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국적을 초월해 배우들에게 연기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의미가 깊다. 한국 배우들이 주연상을 석권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오징어 게임’은 이번 시상식에서 정호연, 이정재의 수상과 더불어 스턴트 앙상블상을 사전 수상하며 3관왕에 올랐다. 작품상 격인 앙상블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아쉽게 수상은 불발됐다. 이정재와 정호연, ‘오징어 게임’ 팀의 낭보에 문재인 대통령도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수상 직후 공식 SNS 메시지를 통해 “매우 반가운 마음으로 축하한다”며 “기생충의 앙상블상과 윤여정 님의 여우조연상에 이은 큰 영예다. 비영어권 드라마 배우로는 사상 최초라는 것이 더욱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하셨던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며 “3.1절을 하루 앞두고 국민들께 의미 있는 선물을 줘 고맙다”며 특별한 감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SAG 수상 이후 귀국한 이정재는 미국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남우주연상을 추가하며 또 한 차례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정재는 3월 6일(현지시간) 진행된 제37회 미국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시상식에서 TV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저에게 이렇게 의미 있는 상을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감격스런 소감을 남겼다. 그는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시는 것이 시즌 2는 언제 나오냐는 것인데 조금만 기다려 달라.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면서 “너무 감사드릴 분들이 많은데 제일 첫 번째로 ‘오징어 게임’ 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넷플릭스에도 감사드리고, ‘오징어 게임’을 사랑해 주시는 모든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남겼다. ‘오징어 게임’의 성과는 앞서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배우 오영수가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조연상 수상에 성공하면서 뜨겁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린 가운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1번 오일남’으로 출연했던 배우 오영수가 남우조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며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 ”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넷플릭스 K콘텐츠 열풍...‘K컬처’ 전방위 확산 특히 몇 년간 한국 드라마, 영화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꾸준했지만 ‘오징어 게임’ 이후로 판도가 완전히 바뀐 모양새다. 넷플릭스에서 최초로 전 세계 스트리밍 1위를 차지한 바통을 그대로 후속 K콘텐츠 시리즈인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이 이어받았다. ‘오징어 게임’의 탄탄한 작품성과 메시지에 매료된 글로벌 시청자들이 K콘텐츠 전체에 대한 선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지옥’과 ‘지금 우리 학교는’은 ‘오징어 게임’에 이어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에 오르며 “한국 콘텐츠는 볼 만한 콘텐츠”라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지옥’이 공개된 이후 CNN은 “올해는 한국 드라마가 압도적”이라고 평했으며, NBC도 “미국의 모든 회사가 한국 가수, 배우, 영화제작자 등 한국 인재들을 불러모으려 혈안이 돼 있다”면서 전 세계적인 K콘텐츠 열풍을 보도했다. @img4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개 후 단 3일 만에 1억2479만 시청시간을 기록하며 ‘오징어 게임’을 넘어선 기록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전 K콘텐츠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이 첫 공개 3일간 기록한 6319만시간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한국은 이런 걸 정말 잘 만든다”면서 “ ‘부산행’을 본 사람이라면 좀비에 대해선 한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걸 알 것”이라고 보도했으며,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 ‘오징어 게임’처럼 악몽 같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깜짝 놀랄 만한 효과를 준다”고 호평을 이어갔다. 콘텐츠 자체의 흥행 외에도 ‘오징어 게임’의 다양한 요소들이 해외에 K컬처로 전파되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극중 ‘달고나 뽑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딱지치기’ 등을 즐기는 해외 시청자들이 다수 등장하는가 하면, 출연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 역시 화제를 모았다. 올해 베이징동계올림픽 기간에는 쇼트트랙 선수 곽윤기가 네덜란드 대표팀 선수들과 ‘딱지치기’를 즐기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정호연의 수상 당시 ‘댕기머리 패션’ 역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가 미국배우조합상 여우주연상을 시상할 당시 선보인 자수 드레스와 댕기머리를 직접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며 한국의 전통 패션에 많은 이의 관심이 쏠린 것. 정호연은 시상식에서 루이비통의 글로벌 앰배서더로서 한국적인 느낌의 자수를 놓은 맞춤 제작 드레스와 댕기머리 헤어 장식을 선보이며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각인시켰다. 그는 브랜드에 댕기 제작을 직접 요청하는 등 이번 시상식 패션에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K콘텐츠 시장은 전에 없는 흥행세를 기록하며 팽창 중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이재규 감독은 “ ‘오징어 게임’이라는 훌륭한 작품이 문을 열어줘 좋은 기회를 만났다”면서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의 호황기를 인정하고, 좋은 타이밍에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한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한국 콘텐츠와 스타, K팝, 한국 문화를 즐기는 일이 세계적인 유행이 된 것 같다”면서 “한국의 이야기, 창작자들이 가진 경쟁력이 어느 정도 증명됐다고 본다”고 현재의 상황을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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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4월호

에미상에 빛나는 영화감독 사진작가 알렉스 프레거

| 조용준 논설위원 digibobos@newspim.com 에미상(Emmy Award) 수상에 빛나는 영화감독이자 유명한 사진작가인 알렉스 프레거(Alex Prager, 1979~) 작품전이 국내서 열리고 있다. 서울 롯데뮤지엄은 함축된 순간의 경계를 넘어 시대를 초월한 감정을 농밀하게 표현하는 알렉스 프레거의 첫 번째 대규모 기획전 ‘빅 웨스트(BIG WEST)’를 2월 28일부터 6월 6일까지 개최한다. 1979년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알렉스 프레거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정식으로 사진과 영상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으나, 2001년 장 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에서 컬러 사진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 사진작가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1939~)의 전시를 보고 깊이 감동한 것이 사진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미국의 평범한 풍경을 작품에 담고, 삶과 일상 속의 낭만을 포착한 윌리엄 이글스턴의 작품을 보고 압도적인 감정을 느낀 알렉스 프레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첫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에 대한 독학을 시작했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고 밤새 암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작업에 몰두했다. 알렉스 프레거는 2007년 첫 연작 ‘폴리에스터(Polyester)’를 시작으로, 2008년 ‘더 빅 밸리(The Big Valley)’ 연작을 발표하며 할리우드의 화려한 낭만을 담은 듯한 세계와 특유의 내러티브를 구축했다. 로스앤젤레스 특유의 과장된 화려함과 허풍 섞인 극적 캐릭터들은 프레거 작품세계 전반에 걸쳐 탐구의 대상이자 주제로 나타난다. 초기 연작인 ‘폴리에스터’, ‘더 빅 밸리’, ‘더 롱 위켄드(The Long Weekend)’에 등장한 주인공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런던 전시의 오프닝에서 질문을 받은 프레거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2010년 단편영화 ‘절망(Despair)’을 발표하며 영화계로 진출했다. 같은 해 이 영화를 포함한 작품으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최된 ‘뉴 포토그래피(New Photography)’ 전시에 참여하며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알렉스 프레거는 영화를 ‘움직이는 사진’이자 ‘완전한 감각을 가진 사진’으로 정의하고 영화 작업에 매진했다. 또한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1920~1993), 시드니 루멧(Sidney Lumet, 1924~2011), 장 르누아르(Jean Renoir, 1894~1979),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cock,1899~1980) 등 다양한 감독과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알렉스 프레거는 ‘절망’을 시작으로 영화와 함께 촬영한 스틸 컷의 형태로 연작을 선보이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압도적인 군중의 모습을 담은 ‘페이스 인 더 크라우드(Face in the Crowd)’, 로스앤젤레스의 풍경과 정체성을 담은 ‘플레이 더 윈드(Play the Wind)’,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촬영한 ‘라 그랑드 소르티(La Grande Sortie)’ 등을 발표하며 정교한 연출과 서사를 통한 작품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동시에 2011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을 위해 제작한 13부작 영화, ‘터치 오브 이블(Touch of Evil)’(브래드 피트, 게리 올드먼 외 출연)이 2012년 미국 TV방송계의 최고 상인 에미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하게 영향력 있는 영화제작자로서도 자리매김했다. 알렉스 프레거는 영화, 패션 등 다양한 프로젝트까지 진행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외 전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프레거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알렉스 프레거의 예술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총 100여 점이 출품되며, 특히 작가가 제작한 대표적인 영화를 전시장에서 볼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미장센 기법(Mise-en-Scène)을 작품에 적용한 알렉스 프레거는 작품 전반에 내재된 미국적인 감성과 일상적 이미지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모호하고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영화적 연출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한다. 작품 속 섬세한 인물의 표정 연기와 유추가 어려운 미스터리한 화면 구성, 그에 반하는 화려한 색감은 장편영화에서 복선의 한 장면처럼 팽팽한 긴장감과 복합적인 감정선을 그리며 그 순간의 현장과 현실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회화의 시각 요소와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그리고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의 요소를 접목한 알렉스 프레거의 스타일은 작품 속 등장인물의 시선과 관람자의 시선을 교차시킴으로써 작품과 관람객을 연결해 관람객이 각자 다른 해석과 엔딩을 맞이하게 한다. @img4 알렉스 프레거는 동시대 정치적, 사회적 상황들로 인해 겪는 여러 감정의 문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 내러티브를 완성한다. 켜켜이 쌓인 다양한 감정들이 뜨겁게 대립하고 또 조화하면서, 삶이라는 영화의 주제가 되고 나 자신이 이 영화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된다. 이번 전시는 ‘세상은 무대, 모든 사람은 태어나 배우로서 삶을 연기하며 살아간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인생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잊지 못할 영화 같은 순간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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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4월호

‘소년심판’ 김혜수 소년범죄 사회적 담론을 던지다

|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 그동안 드라마·영화계에서 성인들의 범죄물은 많았지만 법적으로 미성년자들의 범죄인 ‘소년 범죄’에 대해서는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매스컴만을 통해 접했던 소년 범죄의 실상을 넷플릭스가 ‘소년심판’을 통해 다뤘다. “소년범을 혐오합니다”...김혜수의 ‘소년심판’ ‘소년심판’은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가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소년 범죄와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작품에서 김혜수는 연화지방법원 소년형사합의부 우배석 판사이자 소년범을 혐오하는 심은석을 연기했다. “심은석은 소년 범죄, 범죄의 가해자인 소년범을 혐오해요. 드라마도 ‘소년범을 혐오한다’라는 강렬한 대사로 시작하고요. 하지만 판사로서 역할을 보면 단지 혐오하는 데서 그치지 않아요. 혐오하되 냉철하게, 집요하게 사안을 들여다보죠. 또 법관으로서 합당한 판결을 하기 위해 안팎으로 뛰기도 하고요. 이 태도는 ‘소년심판’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고 생각했어요. 소년 범죄를 어떻게 봐야 하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심은석을 통해 보여준 것 같았죠. 작가님이 취재를 정말 공들여 했다는 걸 느꼈고, 법관 유형과 현실적인 고뇌를 캐릭터를 통해 풀어내려고 노력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심은석이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가, 어떤 태도를 가진 법관인가에 대해 집중하며 촬영했어요.” 국내에서는 소년 범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경찰물에서 가끔 형사미성년자로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상 처벌하지 않는 촉법소년에 대한 에피소드는 있었지만 ‘소년 범죄’처럼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이들의 범죄에 대해 다룬 작품은 처음이다.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소년 범죄나 소년범을 다루는 구성 방식이 참 좋았어요. 에피소드별로 색깔도 달랐고요. 사건과 가해소년, 피해자와 그 가족, 가해자와 가족, 신념이 다르지만 법을 지켜가는 판사들까지. 민감한 사안임에도 어느 한쪽을 변호하지 않고 다각적인 시선으로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가 느껴졌거든요. 쉽지 않은 소재,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정말 의미 있는 대본이더라고요. 촬영하면서도 대본이 주는 메시지가 너무 명확했어요. 그래서 이 감정이 시청자의 가슴에 닿으려면 정말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모두가 함께 기획하고 참여하면서 ‘진심을 잃지 말자’며 준비했어요. 매 순간 진심을 다했죠.” ‘소년심판’에는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단순히 소년 범죄 에피소드를 다루며 시청자의 공분만 사게 하는 작품은 아니다. 촉법소년부터 청소년들이 비행에 빠지게 되는 배경, 보호처분을 받은 후 이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첫 에피소드부터 강렬했어요. 피해자와 그 가족, 가해자와 그 가족까지 다뤄서 인상적이었고요. 실제로 판사님을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가 소년 범죄에서 강력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나머지를 차지하는 그 많은 범죄에 대해 우리가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저희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다뤄서 좋았어요. 가정폭력으로 비행에 빠지게 된 아이들과 실제 비행을 하게 된 이후 관리나 아이들의 갱생, 처우를 위해 애쓰는 분들. 그분들이 제도적인 지원을 받기보다 신념과 의지에 따라 개인적으로 희생하는 분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죠. 강력범죄의 강렬한 에피소드만큼 작품에서 다룬 여러 이야기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왔어요.” 소년들의 범죄를 다루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소년범을 연기한 배우들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했다. 법의 무서움을 모르는 소년범과 갱생이 안 된다는 일념으로 그들을 혐오하는 심은석의 팽팽한 대치 또한 긴장을 유발하는 포인트이기도 했다. “감독님이 캐스팅에 대해 얼마나 긴 시간 신중하게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드러냈는지 배우들을 보고 알게 됐어요. 특히 백성우와 한예은 역을 맡은 이연과 황현정 배우는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사건 중심에 있는 역할이었는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뿜더라고요. 황현정 배우는 실제 나이도 어리고 첫 작품인데 이걸 준비하면서 해외 사례 논문까지 읽고 작업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태도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어요(웃음). 또 성폭행 피해자 역을 맡았던 강채연 배우. 정말 심신이 피폐해진 연기를 하느라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장면을 하는 동안 숨죽이고 그 인물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인상적인 배우가 정말 많았어요.” “사회·우리의 역할에 대해 짚어보길 바라” ‘소년심판’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청소년 범죄의 현주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의 시선으로, 그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려는 차태주(김무열)의 시선으로 범죄 이면까지 들여다본다. 김혜수는 “작품을 통해 내가 편협했다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사실 저 역시 소년 범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어요. 그런데 작품에 참여하고 실제 법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쩌면 제가 스스로 믿고 있었던 관심이 분노하고 가슴 아파 하는 감정적인 접근에 그친 것 같더라고요. 제가 바라본 소년범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편협했다는 걸 정말 크게 느꼈어요. 이제는 소년 범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많은 환경, 인격이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아이들이 범죄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어른들은, 사회는,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떤 제도적인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했죠. 소년 범죄를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이 조금 더 다각적이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소년심판’은 청소년들이 비행에 빠지게 된 환경과 소년보호법의 허점 등 소년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그러다 보니 시리즈 공개 직후 여러 커뮤니티에서 작품에 관한 이야기와 소년법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 김혜수는 이런 부분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작품 하나가 세상을 변화시키진 않지만 소년 범죄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예요. 실제 현행 소년법과 사례를 짚어가며 어떤 부분이 개정돼야 하는지, 실질적인 법 기준은 어떤지 찾아보며 토론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 부분에 대해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드라마 이전에도 그런 분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 이런 부분이 조금 더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았거든요. 이 작품을 준비하고 촬영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소년심판’을 통해 사회와 우리의 역할에 대해 짚어보고 고민하길 간절히 바랐거든요. 제가 했던 어떤 작품보다 많은 대화가 이어져서 너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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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호

호황 미술시장에 번지는 아찔한 위작주의보

지능적 첨단 전술에 업계 고수도 속아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호황의 미술시장에 위작주의보가 발령됐다. 2022년에도 ‘불장’이 계속되면서 유명작가의 블루칩 작품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매수자는 많으나 팔겠다는 사람이 없어서다. 그러자 위작들이 슬슬 나돌고 있다. 지난 2016년 위작 수십여 점이 확인됐던 이우환 화백의 가짜 그림이 마켓에 흘러 들어왔다는 소식이다. 뿐만 아니라 나라 요시토모, 쿠사마 야요이 같은 해외 유명작가 작품도 위작이 보고되고 있다. 최근 들어 위작은 그 수법이 대단히 교묘하고 입체적이어서 업계 전문가까지도 속기 일쑤다. 다종다기한 위작 유통의 현황을 소개한다. 1. 아트토이 등 대놓고 베껴 파는 유통업체 참다 못한 아티스트가 뉴욕 법원에 고소장을 냈다. 십자눈의 귀여운 캐릭터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 중인 KAWS(본명 브라이언 도넬리)는 자신의 작품을 악의적으로 베껴서 팔아온 ‘홈리스 펜트하우스’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작가는 이 업체가 자신의 저작권과 상표권을 무단으로 침해하며 160종에 달하는 짝퉁 아이템을 수년째 팔아왔다면서 징벌적 손해배상금 1000만달러를 요구했다. KAWS 법무팀은 펜트하우스를 상대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다. 홈리스 펜트하우스 앱을 접속하면 KAWS의 1m 크기 조각 ‘컴패니언’이 3490달러에 팔리고 있다. 이는 15만달러를 호가하는 오리지널 조각의 4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짝퉁이기에 품질은 조악하지만 KAWS 조각을 싼값에 살 수 있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들은 조각뿐 아니라 KAWS의 100달러짜리 아트토이를 비롯해 여러 가짜 작품을 팔았다. 현재 미술계에서 가장 ‘힙한 작가’ 중 한 명인 KAWS는 서울 석촌호수에 28m짜리 풍선 조각을 띄워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 그는 초대형 조형물에서부터 손에 쏙 들어오는 아트토이, 회화까지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한다. 짝퉁 업체들은 시중에서 특히 잘 팔리는 중간 크기 조각과 컬렉터블 아이템, 아트토이, 러그 등을 베껴 팔아왔다. 홈리스 펜트하우스는 스스로를 ‘아이코닉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부른다. 또 예술가, 뮤지션, 자유사상가들이 모인 문화적 멤버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짝퉁 업체치고는 매우 당당한 태도다. 이들은 KAWS 외에도 타카시 무라카미, 쿠사마 야요이, 제프 쿤스 등 인기 많은 아티스트의 작품을 대놓고 복제해 50분의 1 내지는 100분의 1 가격에 팔고 있다. 물론 에르메스, 샤넬 등 럭셔리 명품 브랜드의 짝퉁도 판매 중이다. 문제는 이곳에서 만든 조각, 아트토이, 판화 등이 각국으로 퍼져나가며 진품으로 팔릴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아트토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한 전문가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컬렉터블 아이템과 피규어, 토이 중 짝퉁이 적잖이 유통되고 있다. 보증서까지 위조하기 때문에 속기 쉽다”고 지적했다. @img4 2. 모사가가 만든 위작...조지 콘도의 경우 ‘21세기 피카소’로 불리며 미국 월가의 슈퍼컬렉터를 비롯해 수많은 팬을 두고 있는 조지 콘도(1957~)의 위작이 뭉텅이로 확인돼 마켓에 적신호가 켜졌다. 콘도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집가로 꼽히는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과 데이비드 가넥, 그루폰의 창업자 에릭 레프코프스키 등이 오래전부터 작품을 보유 중이다. 그의 신작이 나오길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워낙 많아 경매에 혹시라도 작품이 나오면 10배씩 오르곤 한다. 즉 추정가 5, 6만달러 작품이 40만달러에 낙찰되는 식이다. 최근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은 지난 2018년 말 소더비 경매에 나온 콘도의 흑백 드로잉을 비롯해 일련의 콘도 작품이 위작으로 보인다며 압수했다. 그리스의 개인소장자가 보유해온 것으로 알려진 콘도의 드로잉은 많은 이가 응찰하려 했던 작품이다. 당시 소더비는 8만~12만달러의 추정가를 매겨 11월 경매에 올렸다. 그러나 경매 당일 돌연 드롭됐다. 진위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더비와는 달리 뉴욕 근교의 작은 경매장에 출품됐던 다른 작품들은 거래가 성사됐다. 역시 그리스 소장자가 갖고 있던 작품이었다. 작품을 직접 확인한 작가는 “이것들은 내가 그린 게 아니다”라고 했다. 콘도를 전속작가로 두고 있는 하우저앤워스 갤러리의 크리스토퍼 카니자레스는 “불법적으로 콘도의 가짜 작품을 만드는 조직이 있는 것 같으니 주의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미술품 전문변호사인 리처드 골럽은 “유명작가에게는 거의 대부분 모조품이 나돈다. 콘도의 경우도 수요가 폭발하자 위조책들이 가짜를 만든 뒤 이리저리 소장경로를 조작해 진품처럼 만들었다. 검찰수사팀이 사기단을 색출해 수사가 거의 마무리됐지만 뭔가 수상하다 싶으면 꼭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3. 인스타그램을 통한 페이크 아티스트 만들기 작가의 이름이 그럴듯하다. 작품도 그럴싸하다. 그런데 있지도 않은 가짜 예술가다. 자칭 아트컬렉터임을 내세운 이탈리아의 사기꾼 집단이 모리츠 크라우스(Moritz Kraus)라는 페이크 아티스트를 만들어낸 뒤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품을 팔아 돈을 갈취한 사례가 최근 밝혀졌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을 교묘하게 활용해 ‘치고 빠지는 식’으로 위작을 팔았는데 네티즌들은 속절없이 넘어갔다. 평소 떠오르는 유망작가에 관심이 많은 미술수집가 알렉스 D가 당사자다. 그는 한 화랑이 보내온 이메일에서 미니멀한 그림을 그리는 모리츠 크라우스의 푸른색 회화를 접했다. 작품값은 적당했고, 이미 그림을 산 소장자들이 꽤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온라인에 작가에 대한 내용이 별로 없는 게 좀 걸렸지만 활발히 활동하는 인스타그램 그룹이 눈에 띄었다. 특히 이탈리아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적극 추천 중이었다. 이에 알렉스 D는 괜찮다고 판단하고 작품을 샀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이 도착했다. 그런데 작가도 가짜, 그림도 가짜였다. 크라우스의 주변에는 베로나의 와인메이커(사르토리), 패션사업가(리날디), 젊은 상속인(페리), 이탈리아 태생의 스위스 사업가(로나티) 등 내로라하는 컬렉터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소장한 크라우스 작품을 올리며 작가를 한껏 띄웠다. 하지만 크라우스라는 작가는 물론이고 후원자들도 가짜임이 확인됐다. 누가 총책인지는 아직 모른다. 알렉스 D를 포함해 2명의 유럽 수집가는 미술 매체인 아트넷에 “크라우스의 가짜 작품을 수만달러에 샀다”고 제보했다. 크기에 따라 1000~3000유로에 불과한 형편없는 그림에 잘못 베팅한 것이다. 지난해 여름 시작된 이 치밀한 작전이 들통난 것은 밀라노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페데리코 바바소리 때문이었다. 바바소리는 자신이 취급하는 그림을 로나티라는 낯선 인물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하곤 곧바로 전속작가에게 문제의 이미지를 보냈다. 작가는 ‘내 그림이 맞긴 한데 디지털로 조작됐다’고 답했다. 이에 바바소리는 로나티의 프로필을 샅샅이 뒤졌고, 4명의 인물이 가짜 작가의 언론 인터뷰까지 주선하는 등 사기를 쳤음을 확인했다. 바바소리가 집요하게 추궁하자 이들은 “모든 것이 ‘약간의 흥행’일 뿐”이라며 꽁무니를 뺐고, 계정은 사라졌다. 그러나 크라우스 작품은 여전히 온라인에 나돌고 있다. 일본 도쿄의 랩 시모키타자와라는 곳에서 쇼를 했다는 소식도 더해졌다. 아시아 컬렉터를 대상으로도 사기를 칠 작정인 듯했다. 바바소리는 이탈리아 검찰에 고소했지만 수사는 별 진척이 없는 상태다. 크라우스의 작품을 속아서 산 컬렉터는 “미술시장을 조작하는 게 얼마나 쉬운지 보여주는 묘기였다.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의 젊은 컬렉터들도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인스타그램을 통해 외국 작품을 턱턱 사고 있는데 송금하기 전에 이중, 삼중으로 체크할 필요가 커졌다. @img5 4. 프라이빗 아트클럽 멤버십에도 가짜가 미국에서는 인스타그램을 통한 특이한 예술 사기행각이 화제가 됐다. 러시아 여성 안나 델비(Anna Delvey, 1991~)는 런던의 미술학교(세인트마틴)를 중퇴하고 갤러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곤 뉴욕으로 옮겨와 독일인 상속녀 행세를 하며 호화판 생활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팬들이 늘어나자 “상류층을 위한 ‘회원제 아트클럽’을 만들겠다”며 맨해튼 빌딩 매입까지 추진했다. 갤러리, 스튜디오, 바를 갖춘 프라이빗 아트살롱을 런던, 두바이, 홍콩에 오픈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기행각이 들통나 현재 감옥에 수감 중이다. 가짜 작품 판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초고가 회원권 판매까지 시도했으니 통 큰 사기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예술계에는 다종다기한 위작과 짝퉁, 사기가 판을 치고 있으니 작품 거래 시에는 보증서와 작품의 경로를 철저히 살펴야 한다. 또한 믿을 수 있는 거래처를 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차’ 하고 한탄할 때는 이미 늦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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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호

이용해 yh&co 대표 변호사 “K콘텐츠, 이제는 제값 받아야죠”

|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 황준선 사진기자 hwang@newspim.com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메가히트를 하면서 한국의 콘텐츠 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팽창 중이다. 기존과 콘텐츠 지형이 달라지면서 천문학적 수익에 따른 창작자들의 저작권 분배 문제가 대두된다. 세계적인 흥행작이 나왔다면 응당 적절한 몫이 국내 창작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용해 yh&co 대표 변호사가 맡는 일이다. 이용해 변호사와 최근 서울 상암동 인근 카페에서 만나 20년 넘게 SBS PD로 일하다 로스쿨에 진학하고, 법무법인 화우를 거쳐 콘텐츠·미디어 전문 로펌을 설립한 근황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변호사는 현재 달라진 한국 콘텐츠 시장의 위상과 국내 크리에이터들이 마땅히 챙겨야 할 권리, 넷플릭스와 디즈니+ 같은 거대 해외기업이 일하는 방식 등을 얘기했다. 급속도로 변화하고 커지는 시장 안에서 콘텐츠·미디어 전문 법률가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예전에 PD로 일할 때와는 많이 다르죠. 그땐 현장에서 일을 하고 같이 뛰어다니고 밤도 새우고 그랬어요. 변호사는 내부에서 이메일로, 화상회의로 일하고 클라이언트를 만나도 거의 사무실에 있죠. 가장 큰 차이는 새로 부가가치를 만드는 일을 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게 PD와 제작사가 하는 일이라면, 변호사는 그걸 잘 지켜지게 하는 일을 해요. 부가가치들이 잘 분배되게, 권리를 가져올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이 변호사는 법무법인 화우 시절부터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 산업에 이해가 높은 덕에 관련 업무들을 두루 맡아 왔다. 넷플릭스 ‘킹덤’부터 ‘오징어 게임’ 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한국 콘텐츠 비즈니스&프로덕션 리걸로서 자문 업무를 수행해 왔다. 파라마운트픽쳐스에서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3’, 아이치이 ‘간 떨어지는 동거’, 디즈니+ ‘그리드’ 등 해외 OTT 업체들이 한국 제작사, 창작자들과 일하는 것을 도왔다. “예전과 지금 콘텐츠 시장이 가장 달라진 건 첫째 부가가치의 규모가 굉장히 커졌다는 점, 그리고 계약할 때 넷플릭스, 디즈니+ 같은 상대가 너무 프로페셔널이라는 점이에요. 만약 부가가치가 100억원 창출됐다면 드라마 만든 사람들이 제대로 자신의 권리로 가져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변호사 역할이죠. 예전엔 부가가치를 만드는 데 급급해 그걸 누가 가져가고 2차 파생되는 것들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변호사의 눈으로 보니 그게 보여요. 콘텐츠 IP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고, 그걸 창작자들이 잘 가져갈 수 있게 돕게 되니까 오히려 일이 재밌어졌죠.” 이 변호사는 그간 국내에서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라는 명칭에 씌워진 오해를 아쉬워했다. 실제로 예전에는 대부분 의뢰인이 연예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인 형사, 민사 사건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콘텐츠 전문 변호사의 영역과는 선을 그었다. “예전의 엔터 전문 변호사가 한 일은 기존 형사, 민사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죠. 콘텐츠 산업을 잘 이해하는 입장에서 산업적으로 PD와 제작사를 돕는 역할을 하는 이가 많지 않았고 전문성도 떨어지는 축이었다고 봐요. 예전엔 그냥 PD, 업체 대표들이 주먹구구식으로 표준계약서를 만들기도 했어요. 그러니 소송이 많아요. 지금은 상대방이 선수라 계약으로 모든 걸 정해놔요. 넷플릭스만 해도 내부 변호사가 1000명이 넘죠. 저도 함께 일해 봤지만 산업을 굉장히 잘 아는 사람들이고 모두 비즈니스 리걸들이에요. 그들과 직접 협상하고 딜을 해야 하죠. PD들이나 업체에선 산업을 알아도 법률을 모르고, 법률가들은 산업을 몰라요. 우리나라 제작사, 창작자들도 정확히 법률자문이 가능한 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이죠.” 특히 과거에는 방송사, 국내 제작사가 주도해 만든 콘텐츠 IP를 국내에 유통하고 해외 판권을 따로 판매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현재의 OTT 기반 콘텐츠 시장에서는 한번 저작권을 넘기면 사후에는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넷플릭스에서는 전 세계에 동시에 공개되기 때문에 해외 각국으로 따로 판권 수출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플랫폼의 변화가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산업 자체의 성격을 바꿔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예전엔 한국에만 계약하지만 지금은 한 번에 팔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창작자들에게 법률적인 조언, 관리가 필요해요. 글로벌 플랫폼들도 국내에 이런 전문 변호사들이 있다는 걸 알면 협상을 제대로 하려는 태도를 갖추게도 될 거고요. yh&co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서포트하는 전문 로펌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의 콘텐츠 퀄리티나 감독, 작가, 제작사 역량은 늘 성장해 왔고 잠재력은 늘 있었어요. 이제 한 방에 전 세계로 통하는 고속도로가 뚫린 셈이죠. 예전엔 국내 방송용 만들고 iptv에 팔고 해외 판매도 모두 따로 했어요. 그래서 시간차라는 제약이 생기고 콘텐츠의 파급 효과에도 한계가 있었죠. 지금은 콘텐츠 하나가 괜찮으면 바로 전 세계에서 반응이 와요. ‘오징어 게임’이 아무리 괜찮아도 넷플릭스 아니었다면 전 세계적 히트가 가능했을까 싶죠.” 문제는 너무 갑작스레 시장이 커지고 전 세계 플레이어들이 한국을 주목하면서 어마어마한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가운데 사후에 수익, 권리의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이 변호사는 “ ‘오징어 게임’으로 수조원을 벌었는데 우리나라는?’이라는 의문이 시즌2에서는 보완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미 한국 콘텐츠와 글로벌 OTT가 만나서 큰 부가가치를 창출해 냈고, 만드는 사람들의 역량과 별개로 플랫폼은 외국 거다 보니 수익·권리 문제, IP 문제를 조율해야 해요. 파생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전혀 정리되지 않았죠. 저는 ‘오징어 게임’ 시즌1 때는 넷플릭스 고문 변호사로서 업무를 도왔지만 지금은 굉장히 중립적인 태도를 지켜야 해요. 시즌1 계약이 잘못됐다고 보지는 않아요. 그 당시의 현실이었고 다소 폭력적인 소재, 한국에서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리스크를 넷플릭스가 감수한 거고 이 정도의 흥행엔 당연히 넷플 덕분도 있죠. 하지만 시즌2부터는 제대로 계약이 돼야 하는 거죠. 그때의 한계를 감안하고 계약을 한 것이고, 이번에는 제값 받고 해야 할 거예요. 굉장히 많이 달라지게 될 겁니다.” 이용해 변호사와 yh&co는 ‘오징어 게임’의 싸이런 픽처스를 대리하면서 황동혁 감독의 미국 법률 전문가와도 협력한다. 플랫폼을 상대로 프로덕션, 디렉터의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계약과 관련한 자문을 주고받는다. 이 변호사는 “이 모든 걸 미국에서는 이미 변호사들이 담당하고 있다”면서 한국에도 전문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비용을 아끼는 건 제로도 아니고 마이너스”라면서 법률 자문에 인색한 업계의 관행에 아쉬움도 드러냈다. “미국 크리에이터들의 계약 조건을 보니 엄청 좋아요. 시즌1에서 받지 못한 보너스를 이번에 받게 될 거예요. 넷플릭스는 오리지널로 방영할 땐 IP를 다 가져가요. 그 조건은 바꾸기 힘들어요. 하지만 후속 시즌, 세일즈 등 넷플뿐만 아니라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통용되는 보너스들이 굉장히 다양하죠. 넷플이 보장하고 있는 수수료도 콘텐츠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얼마든지 있고요. 초반엔 ‘제작비 10% 보전’ 정도만 알고 그 외 권리는 몰라서 못 받기도 했죠. 계약서가 오면 그대로 다 하겠단 식이에요. 무엇이든 딜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충분히 경험 있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단순히 뒤에서 조언하는 게 아니라 직접 계약을 주도하고 사인까지 하는 게 변호사 역할이죠. 미국처럼 이제 미디어 콘텐츠 전문 변호사가 나섰어요. 현실과 산업을 이해하고 경험도 있어야 해요. 우리 콘텐츠들의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어라 디스카운트 되던 예전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제대로 대우 받아야죠. 어느 시상식 상도 좋지만 수익을 제대로 보장받는 게 가장 중요한 권리잖아요.” 최근엔 감독, 작가, 배우 등 직접 저작권자들 외에 다양한 창작자들의 권리와 관련한 이슈들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각계에서도 OTT 업체를 어떤 방향으로 규제할 것인지에 관해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물론, 지난 1월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과 관련해서도 산업 전반의 ‘법적 이슈’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OTT는 방송법의 규제를 받지 않아요. 방송이 아니고 전기통신법 규제를 받는 부가통신사업자죠. OTT 콘텐츠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심사만 받아요.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사는 받지 않죠. 수위나 등급, 내용이 있어 그래서 더 자유롭기도 하고요. 작가나 배우들이 iptv에서 방송되거나 재방송되면 재방료를 받았는데 방송 3사와 작가협회, 방송실연자협회 등과 단체협약으로 진행돼요. 여기는 단체협약이 없으니 재방료 받을 근거가 없죠. 한 번에 다 공개되잖아요. 그래서 출연 계약할 때 제대로 받아야 할 것들을 챙길 부분은 있다고 봐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콘텐츠 업계에서는 굉장히 큰 문제예요. 준비가 전혀 안 돼 있고 사고도 많이 나죠. 코로나 이후 대중 공연이 활성화되면 더 와닿을 거예요. 화우 시절에 한 콘텐츠 기업의 해당 부분 컨설팅을 하기도 했어요. 앞으론 콘텐츠 법률 전문가가 현장에서 더욱 절실해질 겁니다.” 넷플릭스 초기작인 ‘킹덤’부터 ‘오징어 게임’까지 다수의 작품 프로덕션 리걸로 활약한 그는 파라마운트픽쳐스, 아이치이, 스튜디오드래곤, CJ ENM, 초록뱀미디어, JTBC 스튜디오 등 다수의 국내 엔터, 콘텐츠 기업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다. 국내외 협업이 늘어날수록 제작 환경이 다르고 법률이 달라 생기는 미세한 리스크 관리까지도 두루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와 같은 콘텐츠, 미디어 전문 영역은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최근엔 MBC에서 독립한 김태호 PD와도 방송사 PD 선후배이자 업계의 신뢰받는 전문가로서 협력하게 됐다. “해외 콘텐츠를 한국에서 촬영할 당시 로컬 카운슬러로 포괄적인 자문을 담당했어요. 병역 문제, 비자 문제, 국제학교를 둘러싼 소재, 세금 등 다양한 이슈가 있을 수 있고 전문성이 중요해요. 애매모호한 자문은 도움이 하나도 안 되거든요. 김태호 PD도 글로벌 플랫폼들과 같이 일하고 싶어 하고 모든 업체에서 관심을 보였어요. 회사 설립 과정에서부터 최근 티빙과 계약하는 걸 도왔죠. 글로벌 OTT 업체와도 앞두고 있는데 영문 계약이기도 하고 예산이 굉장히 큰 건이에요. 김 PD는 음악 예능에 장점이 뛰어나요. 비즈니스적으로도 굉장히 파워풀한 콘텐츠죠. 음반, 공연 등 2차적으로 나오는 산업적 결과들이 무궁무진하지만 그래서 법률적, 비즈니스적 어드바이스가 모두 필요해요. 절대 따로 놀 수가 없죠. 산업과 법률을 모두 아는 전문 변호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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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호

임만혁 ‘동서양을 아우르는 조형의 진폭과 개성’

| 조용준 논설위원 digibobos@newspim.com 화가 임만혁(54)의 그림을 보노라면 모든 아티스트에게 개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결국 모든 예술행위란 타인과 구별되는 그 무엇의 작품으로 타인의 시선과 감정을 ‘장악’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며, 종국에는 인정받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타인과 ‘다르게 하기’가 자신의 관념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배척당할 것이요, 너무 일반적이라면 평범하다 하여 또 거들떠보지 않게 되는 것이니, 그 균형대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행위가 모든 예술가의 숙명일 터다. 임만혁을 다른 화가와 구별 짓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목탄(木炭)이다. 목탄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소묘 재료다. 가볍고 편리하며 용이하게 지울 수도 있어서 구도의 밑그림이나 습작 및 스케치에 매우 적합하다. 그런데 누구나 사용하는 그 목탄이 임만혁만의 개성의 가장 큰 요소다.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깨우침을 얻느냐가 평판을 가름하는 것이나, 그 또한 오랜 기간의 고민과 갈등, 천착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임만혁은 원래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러다가 다시 동양화를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바로 인물화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사람과 소, 개, 말 등 흔히 볼 수 있는 주변의 가축을 그리길 좋아했다. 미대에 진학하고 나서 사람 얼굴을 생생하게 표현한 인물화(초상화가 아니다)를 그리고 싶었는데, 유화로는 그게 힘들었다. 유화로는 인물의 정신세계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동양화는 옛날부터 그런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단순한 선, 코믹한 얼굴에도 그 사람의 심상(心象)이 배어나온다. 마침 중앙대 한국화과에 김선두 교수님을 비롯해 인물화의 대가들이 몇 분 계셨다. 그래서 대학원을 들어갔다.” 동양화를 다시 배운 것이 임만혁 껍질벗기(탈피)의 첫 번째였다면, 두 번째가 바로 목탄 사용이었다. “한국화에서 목탄 사용은 일종의 금기사항이다. 그런데 나는 남들보다 한국화를 늦게 배운 터라 그 세월의 간극을 쫓아가려니 매우 막막했다. 그래서 목탄을 한번 사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실험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이러한 작품세계를 두고 “임만혁은 전통이나 외래 사조에 주눅 들지 않은 자유로운 사유로 인해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한다. 전 세대의 작가들이 전통이나 외래 사조에 짓눌려 제대로 자신의 조형세계를 펴 보이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그의 동·서양화를 아우르는 조형의 진폭은 이 시대의 하나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임만혁은 한국화의 전통대로 한지에 아교칠을 한 다음 목탄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채색을 덧칠해 간다. 여기에 목탄 작업이 덧붙여지는데 자세한 노하우는 그만의 비밀이라서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인물에 대한 자세한 관찰, 그리고 목탄 작업의 두 가지 요소가 임만혁 그림의 개성이다. 건조하면서도 날카로운 흔적을 남기는 목탄은 현대인의 예민한 감수성을 표현하기 좋았다. 가느다란 팔다리, 퀭한 눈, 커다란 머리를 가진 임만혁 특유의 현대인의 모습이 한지에 그리는 목탄 작업으로 인해 탄생했다. 이 독특한 표현법은 단박에 미술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은 임만혁에게도 통용된다. 그의 행운은 2002년 시카고 아트페어에서 시작됐다. “2000년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동아미술상을 수상하고, 드디어 뭔가 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 이후 1년 동안 어느 곳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실망이 커서 7년 동안의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강릉으로 내려갔다. 그런 즈음 한 화랑(박여숙 화랑)에서 아트페어에 출품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의가 들어왔다. 상업 화랑에서 연락이 올 줄 꿈에도 몰랐는데, 아트페어 출품 제안까지 받으니 꿈만 같았다. 그렇게 작품을 출품하고 나서 전화를 받았다. 아트페어에 내놓은 작품 10점이 모두 팔렸다고 했다. ‘솔드 아웃(sold out)’이란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개인전도 한 번 열지 못한 무명화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2002년 젊은 작가들이 선망하는 성곡미술관 주최 ‘내일의 작가’ 공모에도 당선되고, 박여숙 화랑의 전속작가가 되어 5년 동안 월급을 받았다. “대학원 다닐 때 돈이 없어서 송탄의 미군부대 앞에서 비디오테이프도 팔고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그랬던 적도 있는데, 생계 걱정 없이 그림만 그리게 되니 너무 좋았다.” 이후 네 번의 개인전도 열었고, 2008년에는 상하이 개인전도 열었다. 임만혁 그림의 가장 큰 주제는 가족이다. 동물들이 늘 등장하지만, 동물들은 가족을 돋보이게 하는 부차적 오브제일 따름이다. 가족들은 양과 말, 닭의 등을 타고 새의 날개 위에 올라앉기도 한다. 그의 실제 가족은 이제 11살 된 아들과 부인, 그렇게 셋이지만 그림에서는 딸을 포함해 네 명이 주로 등장한다. 그림 속 가족의 모습은 처음에는 약간 어두웠으나, 그의 나이가 들면서 점차 밝아지고 있다. “인물화를 어떻게 그릴까 고민할 때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이란 생각을 많이 했고, 그래서 가족이 떠올랐다. 일상에 녹여낸 가족으로 인간 군상을 표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그림에서 가족들은 거의 한 방향을 바라본다. 그게 가족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사람의 얼굴과 인상을 어떻게 기억해 내고 그림으로 옮기는지 물어보았다. “어려서부터 사람들 얼굴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왜 저런 표정을 지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일단 표정을 마음속에 넣고 그걸 화면에 옮기는 작업을 반복 연습한다. 그래야 손이 인상을 기억한다. 상상으로의 변형도 그렇게 이루어진다. 한지에 그림을 그리려면 일필휘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 드로잉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종이가 장악된다.” 전업작가 20여 년에 스무 번 개인전을 여는 화가의 노하우다. 2월 10일까지 서울 강남 청화랑에서 열린 전시회는 임만혁의 스무 번째 개인전이었다. 올해가 호랑이 해라서 이번 전시회에는 호랑이 그림이 두 점 걸렸다. 호랑이라고는 하지만 임만혁 특유의 풍자와 재치가 살아 있는 너무나 귀여운 호랑이다. 그의 호랑이 그림에 몹시 정감이 갔다. 마치 민속화의 호랑이가 현대적인 색감으로 우리 곁에 튀어나온 듯했다. 임만혁은 강릉에 살고 거기서 작업한다. 취미는 낚시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 물고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취미 때문일까? 그에게 다음에는 물고기와 함께하는 가족의 그림을 보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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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호

엔터업계 인수합병 IP콘텐츠‧메타버스 사업 진출

|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단순 매니지먼트 업체가 아닌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거듭나면서 현재 화두로 떠오른 대체불가능토큰(NFT)과 메타버스, 지식재산권(IP)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RBW·하이브·초록뱀미디어...계속되는 인수합병 최근 들어 엔터업계에 인수합병 바람이 불었다. 하이브가 플레디스와 쏘스뮤직, KOZ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운 가운데 그룹 마마무 소속사 RBW도 오마이걸이 속한 W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데 이어 핑클과 신화, 젝스키스를 탄생시킨 DSP미디어를 품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RBW는 최미경 DSP미디어 대표가 보유한 39.13%의 지분을 90억원에 인수했다. RBW는 이를 포함한 DSP미디어의 지분 51%를 인수하면서 자회사로 편입했다. 인수합병을 알린 RBW와 DSP미디어는 지난 1월 28일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에 나섰다. 인수합병은 엔터사 외에 제작사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과 ‘펜트하우스’, OTT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어느 날’의 제작사 초록뱀미디어도 지난해 12월 윤여정과 이선희, 이승기, 이서진, 박민영이 소속된 후크엔터테인먼트의 지분 100%를 440억원에 인수하며 자회사로 편입했다. 초록뱀미디어의 자회사 스카이이앤엠 역시 김희재와 김나영, 김원효, 김숙 등이 소속된 블리스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합병한 데 이어 지난 1월 13일 장동민, 장도연, 유세윤 등 국내 정상급 방송인을 소속 아티스트로 두고 있는 엘디스토리를 인수합병하기도 했다. 고현정이 속한 아이오케이컴퍼니도 지난해 7월 신혜선 등이 소속된 YNK엔터테인먼트 지분 100%를 인수했다. 같은 해 9월에도 김강우, 김하늘, 장서희가 속한 킹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종합 엔터사로 변신, NFT·메타버스 사업 진출 이처럼 엔터사들이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우면서 소속 아티스트들의 IP를 이용한 콘텐츠 제작과 NFT, 그리고 메타버스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국내 ‘빅4’ 엔터사로 불리는 YG엔터테인먼트도 세계 최대 가상자산거래소이자 블록체인 인프라 공급자인 바이낸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NFT를 포함한 신규 사업 분야 진출 소식을 전했다. 바이낸스가 플랫폼과 기술 인프라를 제공하고, YG는 콘텐츠를 공급하게 된다. YG는 바이낸스 스마트 체인 기반의 게임 개발을 추진하고 메타버스 등 다양한 디지털 에셋 솔루션을 검토하며 새로운 팬 경험 서비스를 전개할 계획이다. RBW의 자회사로 들어가는 DSP미디어는 K팝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음원 및 아티스트 IP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현재 음원시장에 유통 가능한 음원 IP만 1000여 곡 이상이다. RBW는 DSP미디어를 인수함으로써 음원 IP 분야 내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점한다는 계획이다. RBW는 이를 활용해 NFT굿즈 제작에도 나설 예정이다. RBW 김진우 대표는 “이번 인수로 음원 IP를 활용한 NFT 등 메타버스 관련 신규 사업을 규모와 속도 양쪽 모두 챙기면서 준비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초록뱀미디어는 소속 연예인과 드라마 IP 캐릭터를 아바타로 만들어 메타버스와 NFT로 노출하는 등 ‘원 소스 멀티 유즈’ 사업을 추진한다. 최근에는 버킷스튜디오와 4억5000만원을 투자해 합작법인 ‘메타커머스’를 설립했다. 메타커머스는 초록뱀미디어에서 제작한 영상물·미술품·OTT 등 콘텐츠와 이를 통해 노출되는 상품에 대한 PPL 권한을 가지며, 메타커머스를 통해 해당 권한을 갖게 된 버킷스튜디오는 초록뱀미디어의 영상 콘텐츠 내 노출된 상품을 빗썸라이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엔터사들이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고정 지출은 늘어나지만 새로운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또 가수들이 속한 엔터사의 경우 국내외 투어를 개최하며 수익을 내 왔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연 개최가 어려워지자 MZ세대 팬들을 겨냥해 NFT, 메타버스를 활용한 소속 아티스트 상품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예전에 엔터사의 인수합병은 매니지먼트 사업을 확장하는 뜻이 강했지만, 이제는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인수합병을 통해 그들의 IP를 이용한 NFT와 메타버스 등 신사업 분야에 투자하는 경향이 크다. IP가 곧 새로운 수익구조가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소 엔터사의 경우 팬데믹으로 인해 수익을 내기가 더욱 어려워지자 일부 지분을 팔고 대형 엔터사의 자회사로 들어가 당장의 어려움을 막는 경우도 있다”며 “NFT와 메타버스가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많은 엔터사가 진출하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해 수익구조로 확장시킬 것인지는 더 고민해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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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2월호

역대급 호황 속 ‘화랑 vs 경매회사 갈등’ 점입가경

1차시장 vs 2차시장 대립, 그림 어디서 사야 할까 숙제는 쌓였는데 과실만 따먹으려는 대결...시장혼란 가중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화랑 vs 경매사, 극심한 대립 시장은 ‘역대급 호황’인데 플레이어 간 갈등이 심상치 않다. 연초부터 미술시장의 주역인 화랑과 경매회사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잘나가는 줄만 알았던 아트마켓에 전운이 감도는 까닭은 뭘까. 먼저 공격에 나선 곳은 한국화랑협회(회장 황달성). 국내 164개 갤러리가 소속된 화랑협회는 경매회사들이 미술품 경매를 무분별하게 남발해 1차 시장(화랑)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며 규탄성명을 냈다. 한국화랑협회는 지난 1월 3일 “국내 양강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케이옥션이 매년 50~80회씩 경매를 열며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작가로부터 아직 물감도 마르지 않은 작품까지 받아와 경매에 올리는 바람에 가격 형성이 흔들리고, 시장 간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협회는 미술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던 지난 2007년 경매회사로부터 ‘메이저 경매는 연 4회로 제한하고, 화랑과의 상생을 도모한다’는 신사협정을 도출한 바 있다. 그런데 양대 경매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주장이다. 황달성 회장은 “경매회사들이 온갖 이름을 붙여 거의 매주 경매를 열면서 이윤을 독식하고 있다. 외국에선 메이저 경매가 상하반기 각 2회씩, 연 4회 열리는데 우리는 메이저 경매를 매월 열기도 한다. 이 같은 무분별한 운영으로 미술시장이 심각하게 왜곡됐기에 이에 항의하는 뜻에서 우리도 직접 경매를 열겠다”면서 사실상 선전포고를 날렸다. 협회는 1월 26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회원 화랑들만 참여하는 경매를 개최한다. 일반인은 화랑협회 회원 화랑을 통해서만 응찰이 가능하다. 이 경매는 수수료 없이 진행된다. 2회부터는 양대 경매사의 수수료(15~18%)보다 훨씬 낮은 5%의 수수료를 받을 예정이다. 고객들로선 수수료가 없다는 점이 구미가 당기긴 하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서는 강공전략이 편하지만은 않다. 화랑협회의 선전포고에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공식 대응을 하지는 않고 있다. 특히 1월 말 코스닥 상장을 앞둔 케이옥션은 일체의 논평을 거부했다. 서울옥션 측은 “글로벌 미술시장이 급변하면서 외국 유력 경매사와 화랑이 속속 상륙해 영업 중인데 15년 전 협정을 내세우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대중친화적 경매 등으로 미술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췄고 시장활성화를 이끌었는데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반박했다. @img4 1차 시장과 2차 시장으로 나뉘는 아트마켓 전 세계적으로 미술시장은 1차 시장과 2차 시장으로 구분된다. 아티스트가 작품을 완성해 전시회(또는 아트페어)를 통해 판매하는 것이 1차 시장이고, 이후 손바뀜이 일어나는 것이 2차 시장이다. 1차 시장(First market)은 화랑이 주도하며, 2차 시장(Secondary market)은 경매회사들이 주도한다. 물론 드물게 1차 시장에서 작가가 직접 작품을 팔기도 하고, 2차 시장에도 개인 딜러(화상)가 일부 활동하긴 하나 예외적인 경우다. 전 세계 미술품 경매가 소더비, 크리스티 양대 산맥에 의해 견인되듯, 국내 또한 1998년 설립된 서울옥션과 2005년 설립된 케이옥션이 전체 경매시장의 91%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미술시장이 호황에 접어들며 양사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발표에 의하면 2021년 경매시장 매출은 3294억원으로 집계돼 2020년(1153억원)에 비해 2.86배 늘어났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2.1배 증가했다. 지난해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거둔 매출은 2997억원으로, 이는 한국 미술시장 전체 매출 9157억원(예술경영지원센터 집계)의 3분의 1에 달한다. 게다가 두 회사는 올해도 여러 호재를 앞두고 있다. 서울옥션은 올 초 ‘유통 거함’인 신세계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신세계는 제3자 유상증자를 통해 서울옥션 주식 85만6767주를 280억원에 취득했다. 지분율은 4.82%. 신세계를 이끄는 정유경 총괄사장은 전망이 유망한 아트 비즈니스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각적인 사업을 펼치기 위해 서울옥션과 손잡았다. 즉 고객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하도록 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최신의 미술 아이템을 다양한 경로로 판매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복안이다. 1월 말 코스닥에 상장하는 케이옥션 또한 강력한 성장 로드맵을 전개할 예정이다. 코스닥 상장을 통해 조성된 자금으로 기존 사업 강화와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물론, 해외 소싱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즉 외국의 유력 화랑 및 경매업체로부터 우수하고 경쟁력 있는 작품을 확보해 ‘자기자본 투자에 의한 작품 판매’ 비중을 대폭 높일 예정이다. 고가의 블루칩을 해외에서 들여온 후 이를 특별한 고객들에게 판매하겠다는 전략인데 ‘똘똘한 외국 작품’을 선호하는 VVIP고객이 많아 귀추가 주목된다. @img5 건강한 미술생태계 위한 상생, 가능할까 결국 2차 시장의 주역인 경매회사들이 이처럼 시장 주도권을 더 힘껏 움켜쥐려 하자 화랑들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굴지의 일부 대형 화랑을 제외하곤 서울옥션, 케이옥션에 비해 자금력, 정보력, 고객확보력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취약하다. 경쟁이 안된다. 미술시장이 호황이라고는 하나 대부분의 화랑은 영세성을 면치 못한다. 작가들로부터 신작을 받아와 전시회를 꾸리고, 이를 판매하는 전통적 방식의 비즈니스만으로는 입지가 날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투자수익을 중시하는 MZ세대와 신규 컬렉터들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1차 시장에서의 작품 구입보다는 2차 시장인 경매에서의 작품 구입을 더 선호한다. 서울옥션이 경매수수료를 기존 15%에서 18%로 올린 것도 시장 내 경쟁우위 영향이다. 더구나 경매사들은 ‘프라이빗 세일’ 등의 명목으로 투자 메리트가 확실한 작품들을 한정된 상위 고객만에게만 보여주고 판매하는 거래 행태가 날로 강화되고 있다. ‘알짜 고객을 경매사들이 다 쓸어간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미술은 1차 시장인 화랑이 유망한 작가를 발굴해 그들의 예술 세계를 선보이고 육성하는 시스템도 반드시 필요하다. 화랑들이 좋은 작가를 키우지 않는다면 경매 또한 팔아야 할 작품이 동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을 투자의 측면으로만 바라볼 경우 예술은 간데없고 그저 팔리는 작품만 양산될 우려도 있다. 미술 선진국의 화랑과 경매사들은 이 같은 점을 간파하고,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상생을 위해 룰을 지킨다. 고객 또한 훌륭한 작가들이 커나갈 수 있도록 화랑의 활동을 지원하고, 1차 시장에서의 작품 구매를 중요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막 호황에 접어든 우리 미술계도 최소한의 신의를 견지하며 상생하려는 노력을 가져야 국제 수준의 마켓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미술비평가 정준모 씨는 “한국이 아시아 미술시장을 주도할 나라로 꼽히며 주목받는 상황에서 화랑과 옥션업계가 대립하는 것은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뿐이다. 화랑들은 경매를 탓하기 전에 선진 경영기법으로 시대 변화에 부응했는지 돌아봐야 하며, 경매사들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시장 활황을 주도하는 것과 함께 양질의 미술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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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2월호

‘K-르네상스’ 시작 알린 ‘흙의 연금술사’ 김지아나

| 조용준 논설위원 digibobos@newspim.com 4차산업혁명이라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K-컬처의 세계적인 부상과 확산은 참으로 경외스럽기도 하려니와 그 의미가 중차대하다. 문화의 거의 모든 지평에 ‘K’ 자가 붙으면 그것이 곧 세계의 주류를 이끄는 대세가 되고, 세계인이 동참을 희망하는 트렌드를 이끈다. 이제는 국악까지 K-팝과 구별되는 소위 ‘조선팝’이라는 이름으로 도약 중이다. 물론 아직 차디차게 얼어붙은 동토(凍土)에 묻혀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분야도 있다. 한때 찬란한 역사를 자랑했지만 1592년 임진왜란 이후로 위세와 주도권을 상실한 우리나라 도자(陶磁)문화 이야기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라는 굳센 망령에 사로잡혀 과거의 영광만을 반추하는 한탄 속에, 그 이후를 모색하는 작업이 가능할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동대문 DDP 갤러리 문(門)에서 열리고 있는 김지아나 개인전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곳’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봄’을 느꼈다. 그것도 확연한 봄을!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서 그의 작품들을 보는 순간, ‘왜’라 할 것도 없이 이은상 시조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노래가 떠올랐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김지아나(50)의 작품들은 찬연한 봄꽃이다. 계절로는 겨울의 복판이지만 전시장은 이미 봄꽃이 만발해 있었고, 나비들이 여기저기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봄처녀가 봄나물을 잔뜩 캐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성큼성큼 다가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환영은 곧 이 나라 도자문화 회생을 알리는 소리, 얼어붙은 땅덩어리들이 봄 기운에 쫙쫙 갈라지는 커다란 해빙의 소리로 전율을 일으켰다. 김지아나의 작품은 언뜻 보면 거대한 벽화를 연상시킨다. 꽃이 피어 있는 들판처럼 보이는 벽화다. 그것은 흙이 모태지만 회화와 조각, 설치미술을 아우른다. 다시 말해 회화와 조각, 설치미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애당초 그의 작품에 이런 장르의 한계를 붙이고 구속하는 행위가 무의미하다. 이런 탈장르의 해탈, 물성(物性)의 자유로운 변환이 새로운 지평을 열고, 그 신기원적 지평은 비로소 이 땅 도자문화의 힘찬 부활을 알린다. 바야흐로 K-르네상스의 출발이다. 김지아나에게 어떻게 흙과 친해지게 됐는지 먼저 물어보았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됐다. 처음에는 방송무대 디자인 전공을 선택했다. 그런데 9월 입학이라 반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차에 평소 관심이 있던 마렉 체쿨라(Marek cecula) 작가 도자작업실을 무작정 찾아갔다. 어려서부터 지점토로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마도 그런 미지의 끈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준 것 같다. 동양에서 온 조그만 계집애가 일하겠다고 한 게 신기했던 모양인지 보조원으로 일하게 해줬다. 물론 월급도 없고 점심식사 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너무 즐겁게 일했다.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청소만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내가 궁금했는지, 그제서야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해 이것저것 질문도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마렉 체쿨라가 바로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세라믹학과장이었다. 나는 원래의 전공을 포기하고, 그 교수 추천으로 파슨스 세라믹학과로 학교와 전공을 바꿨다.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교수는 작업실을 항상 깨끗하게 정리정돈해 놓았는데, 나 역시 그곳에서 일하면서 작업실 세팅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 내 작업실 역시 그곳처럼 정리가 돼 있다.” 물론 흙과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 그는 흙을 이기려고 했다. 선생님들은 “그거 그렇게 안 돼. 원래 안 돼”라고 말렸지만, 그는 흙을 이겨서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려 했다.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흙과 친해지려면 먼저 흙을 알아야 한다고. 친구를 만들려면, 친구와 친해지려면 친구를 잘 알아야 하듯이 역시 흙의 본질과 물성을 깨달아야 비로소 흙에게 다가서고, 흙으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그래서 그는 흙을 아는 작업을 시작했다. 흙은 똑같은 게 아니라 다 다른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런 흙들이 “나 같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종류의 도토(陶土)를 일일이 실험하면서 그 특성을 알고자 노력했다. 참으로 많은 끈기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그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어떻게 흙으로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지 참으로 놀라운데, 그건 순전히 그가 흙의 본질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2005년 국내로 들어와 2006년 서울대 박사과정에 들어간 것도 한국과 동양의 흙을 알기 위해서였다. 2005년 귀국하면서 미국에서 작업하던 흙을 가져왔는데 세관에서 통과가 되지 않았다. 세관에서는 흙도 생물이기 때문에 검역을 거쳐야만 한다 했다. 그때 또 깨달았다. “그렇구나. 흙도 살아 있는 생명체구나.” 미국과 유럽의 흙이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한국에서의 작업을 위한 흙은 또 어디서 사야 하는지, 어떤 흙을 사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걸 가장 빨리 효율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대학원 진학이었다. 사실 그가 국내에 들어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떡 장인에게서 무려 1년 동안 떡 만드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바로 이런 대목이 김지아나 작가의 남다른 면모일 터이다. 물을 섞은 가루를 쳐대서 숙성시키고, 그 재료로 떡을 조물딱 조물딱 주물러서 모양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필시 자신의 성형 작업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몰드를 이용해 작업을 많이 하지만, 동양은 다르다. 조선에서는 물레대장이 물레를 차면서 흙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서 모양을 만들어냈다. 물레대장의 손솜씨야말로 도자 작업의 기초였다. 바로 그런 바탕을 김지아나는 떡을 만들면서 습득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광주요에서 만든 그릇 ‘해어화(解語花)’ 시리즈였다. 해어화는 양귀비의 별명이고, 말을 알아 듣는 꽃이라 해서 뛰어난 미인을 뜻하기도 한다. 김지아나는 그릇이 테이블에서 양귀비처럼 말을 걸어준다고 느꼈다. 그가 요즘 추구하는 작업은 ‘흙의 회화’다. 투광성이 강한 자기(포슬린)를 구워서 벽에 걸거나 허공에 매달거나 하는 작업이다. 그는 포슬린의 도편에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물감의 스밈과 안료의 배어듦을 표현한다. 안료를 가득 머금은 도편들을 잇대서 형상화하고, 계란 껍질처럼 얇게 만들어 붙인다. 그런 흙의 회화는 그림과 달리 광선의 농도에 따라, 광선의 방향에 따라 그야말로 천변지변(天變地變)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그는 ‘관계’라는 단어를 매우 좋아하는데, 자신이 만든 도편과 햇빛의 무궁무진한 관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 전시를 동대문 DDP에서 연 것도, 이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철학 속에 자신의 작업을 배치하는 ‘관계’를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평론가 윤진섭은 김지아나의 작품에 대해 “이미 90년대부터 그는 원소로서의 사물의 근본적인 형태와 나타난 현상 간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한 것은 구(球)와 디테일로서의 파열”이라면서 “무수한 형태의 흙편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유비로서 판상(板上)에서 하나의 소우주를 이룬다”고 묘사했다. 사실 그렇다. 그의 도편들은 우주의 집약체다. 그는 “산다는 것은 이런저런 일상의 파편이 모여 어떤 강한 색채의 덩어리로 폭발하면 서서히 빛으로 옅어져 또 다른 색깔로 바뀌는 순간의 고리들이다. 인간들은 한 줄기 빛에서 서서히 변화하는 붉고, 노랗고, 파란색의 향원으로 살아가면서 결국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라고 피력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보고시앙 재단은 1992년 설립된 세계적인 문화예술 후원 단체다. 보고시앙 재단은 2019년 김지아나를 아시아 지역 첫 전속작가로 선정하고 후원을 시작했다. 또한 브뤼셀 아트 로프트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어 세계 컬렉터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사실 김지아나 작가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뉴욕, 마이애미, 브뤼셀, 룩셈부르크, 상하이, 홍콩 등에서 초대 개인전 17회를 열었고, 100회 이상의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회를 가졌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프랑스 소시오테 빅, 생투엥 셀리오 등에서 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김지아나는 올해 가나화랑이 선택한 전속작가가 됐다. 가나화랑의 전속작가는 세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받기 위해선 줄을 서서 꽤 기다려야 한다. 국립과천과학관에 10m가 넘는 대형 작품이 설치될 예정이고, 대유위니아의 성남연구개발(R&D)·디자인센터 역시 그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브뤼셀의 컹브흐(Cambre) 공원도 대형 작품 설치를 위해 코로나19가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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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2월호

‘경관의 피’ 조진웅 “주인공 강윤처럼 ‘연기’에 수단·방법 가리지 않아요”

|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2022년 첫 개봉작 ‘경관의 피’가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며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켰다. 조진웅은 코로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를 찾아준 관객들에게 연신 감사를 표했다. 배우로서, 또 제작자로서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는 그처럼 한국 영화 역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과도기에 있다. 한층 세련된 범죄물...조진웅·최우식 브로맨스 폭발 올해 1월 5일 개봉한 ‘경관의 피’는 지난 연말 급격한 코로나 확산으로 위축된 극장가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다. ‘킹메이커’ 등 대형 영화가 줄줄이 개봉을 미룬 상황에서 새해 첫 타자로 나서게 됐고, 3주 넘게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던 ‘스파이더맨’을 누르고 개봉 당일 정상에 올랐다. 조진웅은 이에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개봉할 수 있나’ 싶었죠. 물론 하면 되는 거지만 열심히 찍은 영화인데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많이 보러 와 달라고 말씀드리기도 좀 그랬어요. 그래도 무사히 개봉했고 아직 긴장되고 어리둥절합니다(하하). 무대인사 하면서 이런저런 유쾌한 에피소드도 많았는데, 거의 1년 만에 관객들과 만나자 정말 울컥하더군요. 정말 보고 싶었고 잘 맺어진 작업을 선보일 수 있게 돼서 행복합니다.” ‘경관의 피’는 출처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고급 빌라, 명품 슈트, 외제차를 타며 범죄자들을 수사해온 광역수사대 반장 강윤(조진웅)의 팀에 어느 날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인 신입 경찰 민재(최우식)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윤은 민재가 자신의 뒤를 파는 두더지, 즉 언더커버 경찰임을 알게 된다. 독특한 설정과 이야기로 공개 이후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올해 한국 영화 부활의 신호탄으로 주목받았다. “시나리오가 굉장히 치밀하게 잘 짜인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규만 감독님은 제 동문이자 선배죠. 학교 다닐 때부터 잘 지냈던 사이예요. 후배들에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분이기도 합니다. 시나리오가 굉장히 방대한데 이걸 또 두 시간 내로 임팩트 있게 모아 잘 만들어 주셨죠.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대본 보고 저는 박강윤이란 인물을 빨리 현장으로 가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감독님 만나서 얘기도 많이 나누고, 시사회 날 영화 봤는데 나름대로 우리가 노린, 꾀하고자 한 부분들을 정확히 짚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조진웅이 연기한 강윤은 이전의 범죄수사물에서 그려진 경찰과는 꽤 괴리감이 큰 인물이다.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정조준하면서도, 그 길을 향해 가는 데 있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조진웅은 그런 강윤의 방식이 자신이 연기를 대하는 태도와 닮았다고 털어놨다. “강윤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이 제가 작업을 하는 방식과 그리 다르지 않아요.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죠. 저도 밤이든 새벽이든 궁금한 게 있으면 찾아가고 어떻게 캐릭터를 완성시킬까 치열하게 고민하거든요. 이게 굉장히 비슷했고 감정 이입이나 이런 부분은 감독님과도, 협연하는 배우들과도 소통을 많이 해나가는 과정을 거쳤어요. 쉽지는 않았죠. 경계에 서서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하는 인물이었고, 특히 협업이 되지 않으면 캐릭터를 만드는 건 쉽지 않았거든요.” 조진웅이 전작 ‘시그널’과 ‘독전’에서 해왔던 경찰 역할, 또 후배들과 호흡하게 된 부분에서 이번 작품과 비교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는 “모든 차별점은 대본을 분석하는 것에서 나온다”면서 확연히 변별력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마주하는 배우에 따라 조금씩 결이 달라지는 ‘브로맨스 케미’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전작보다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은 있을 수가 없죠. 전혀 결이 다른 인물들이니까요. 이번에도 최우식 씨와 작업할 때 실제로 저보다는 후배잖아요. ‘진짜 밥은 먹었냐’ 이렇게 챙기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이 우리 둘의 화학 작용을 뒷받침하는 경로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시너지가 자연스레 나왔죠. 동시에 우식 씨가 그 캐릭터를 잘해 내려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고 그걸 지켜보는 게 선배로서 굉장히 흐뭇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게 되기도 했고요. 그런 것이 연기에도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경관의 피’가 다른 범죄물과는 가장 다른 지점이 바로 두 배우가 연기한 강윤과 민재의 관계였다. 극중 강윤은 민재가 언더커버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수사에 참여시키고 회유하는 역할로 아주 낯설면서도 동시에 설득력 있게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조진웅 역시 연기하는 입장에서 그 부분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강윤만의 방식이 있고 신념들이 충돌하죠. 그래도 나름 선배인, 계급이 높은 경찰로서 ‘어쨌든 정의를 향해 가는 건 같지 않으냐. 소신을 바꾸라는 게 아니고 목적지는 같은데 길이 다를 뿐’이라고 아우르는 입장인 거예요. 거기서 휴머니티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했죠. 제 해석이 그랬고 감독님도 아주 듬직한 형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 위법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어떻게 표현하고 밀어붙일 수 있을까. 쉽지는 않았죠. ‘이 사람이 악인가?’라고 생각할 정도의 여지도 있어야 했고요. 그럼에도 작업자들은 헷갈리면 안 돼요. 그럼 바로 무너지죠. 그 경계선을 어떻게 표현하고 담아낼 것인지 매 순간 고민했어요. 자칫 놓치면 캐릭터가 완전히 무너지고 흐지부지될 수 있어 긴장감이 컸죠.” 현장을 책임지는 노련한 배우이자 제작자 ‘경관의 피’는 물론 조진웅이 참여한 영화, 드라마 현장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는 후문이 흘러나오곤 한다. 이에 대해 그는 “현장은 무조건 즐겁고 재밌어야 한다”면서 이번 작품에서도 내용이 무겁기에 더 유쾌하게 분위기를 조성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특히 절친한 배우 권율 덕분에 많이도 웃었다고 전했다. “장면도 힘들고 내용도 무거운데, 현장 생활까지 머리 싸매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현장을 즐겁게 이끌고 싶다는, 나름 주연으로서 임무들이 있어요. 현장 분위기가 고스란히 장면으로, 또 장면이 작품으로 엮여서 자연스럽게 전달돼요. 특히 권율 씨와는 굉장히 친한데, 회사도 같고 아끼는 동생이에요. 그 텐션이 어디 학원을 다니나 싶을 정도로 웃겨요(하하). 극중에서 대면할 땐 굉장히 심각한 신이고 검거하고 막 기가 부딪혀야 했어요. 오히려 친하니까 더 자유롭게 동선이나 시선을 응시하는 호흡이 자연스레 맞춰졌어요. 상대 배우가 친해서 나오는 그런 재미가 분명 있거든요.” 실제로 조진웅은 ‘경관의 피’를 비롯해 현재 촬영 중인 ‘데드맨’에서도 그의 전용 음악이 있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촬영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권율뿐만 아니라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형사팀 배우들에게도 “정말 한 팀처럼 잘 맞았다”고 고마워했다. 한층 날이 선 연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완벽하게 세팅해준 감독, 스타일 팀, 분장 팀에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는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니까 날이 선 모습을 지켜내려 노력했죠. 감독님과 의상, 분장 팀에서 고생 많이 하셨어요. 모든 옷을 제작하고, 지쳐 있을 때나 인간적인 면이 도드라지는 장면 등 인물의 디테일한 비주얼 표현에 딱 맞는 구현을 해주셨죠. 그럴 땐 제가 놀기 좋았어요. 신명나게 했죠. 그래서 기존 경찰 캐릭터와는 좀 다른 점이 어필된 것 같고 제 연기도 힘을 입어서 더 날을 세울 수 있었어요.” 조진웅은 끝으로 원칙을 지키는 민재와 효율성을 추구하는 강윤 중에 후자를 고르면서 “연기자란 그런 것 같다”고 평소의 연기관을 언급했다. 현재 OTT 작품 제작에도 나선 그는 이제 현장을 책임지는 배우에서 제작자로도 영역을 확장한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마주하는 순간 울컥했다는 그는 올해 부디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져 모두와 웃으며 만나기를 희망했다. “연기를 할 때는 방법이나 수단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캐릭터를 파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어느 지점에 도달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연기에 원리 원칙이 어디 있겠어요. 정답도 없죠. 끝까지 들어가 봐야 해요. 각종 미디어 분들과도 대면할 기회가 예전엔 많았는데 지금은 못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그래서 요즘 무대인사에서 관객들을 뵈면 최선을 다해 웃겨드리고 싶어요. 이런 때에 극장까지 와주시는 게 보통 일 아니죠. 정말 감사하고, 지금은 OTT 작품을 개발 중인데 좋은 플랫폼에서 만나길 기대합니다. 연기 못지않게 더 참신한 작업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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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2월호

‘미래 먹거리’ NFT 시장에 뛰어드는 엔터기업들

|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 최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화두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NFT(대체불가능토큰)’이다. 이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팬덤 문화가 빠르게 변화하는 추세에 발맞춰 새로운 수익 구조를 창출해 냈다. 국내 ‘빅4’로 불리는 하이브와 SM, JYP, YG엔터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중소 엔터사도 NFT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엔터사 ‘NFT’ 잰걸음...영화업계도 나섰다 최근 엔터 업계는 NFT 열풍이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하이브를 비롯해 굵직한 아티스트들을 두고 있는 엔터사들이 일제히 블록체인 기반 사업 진출 계획을 밝히고 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지난해 11월 사업설명회에서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의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하이브는 두나무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방탄소년단 등 아티스트의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NFT 사업과 메타버스를 진행한다. 하이브는 올해 상반기 NFT 기술을 접목한 방탄소년단의 포토카드 발행을 시작으로 하반기에는 한정판 MD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트와이스, 있지(ITZY) 등을 보유하며 ‘걸그룹 명가’로 불리는 JYP는 엔터 업계에서 NFT에 대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다. JYP는 지난해 7월 NFT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JYP도 두나무와 K팝 NFT 플랫폼 사업을 위한 업무제휴를 맺었다. YG는 자회사 YG Plus를 통해 NFT 시장에 진출하며, YG Plus는 소속 아티스트 IP를 활용해 하이브와 두나무가 설립할 NFT 합작법인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메타버스(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의 강자로 떠오른 SM도 NFT 사업에 진출한다. 현재 소속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담아낸 SMCU라는 메타버스형 콘텐츠를 내세운 SM도 올해 NFT 상품 출시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엔터사가 NFT 사업을 시작하고 나섰다. 특히 FNC엔터테인먼트는 더판게아(판게아)와 공동으로 아티스트 관련 디지털 콘텐츠를 NFT로 발행하는 ‘모먼트 오브 아티스트(Moment of Artist)’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는 국내 각양각색 아티스트들의 의미 있는 순간을 담은 영상 콘텐츠를 디지털 컬렉터블로 제작해 글로벌 팬들에게 판매하는 플랫폼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자는 SF9으로, 지난해 11월 22일 발매된 미니 10집 ‘루미네이션(RUMINATION)’을 발표한 이들의 컴백에 맞춰 멤버들의 소중한 순간을 담은 콘텐츠를 디지털 컬렉터블로 제작했다. 또 단순한 스틸 이미지가 아니라 멤버들이 직접 쓰는 손글씨, SF9의 세계관이 반영된 오브제, 뮤직비디오 메이킹 영상 등 디지털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 NFT 기술과 접목돼 공개됐다. ‘롤린(Rollin’)’과 ‘운전만 해(We Ride)’를 통해 단숨에 ‘역주행 돌’로 불린 브레이브걸스 역시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통해 NFT 형식으로 한정판 일러스트를 발행했다. 메타버스 세계관을 담은 이번 ‘M.브레이브걸스’는 작품 400개가 1분도 채 안 돼 완판됐다. 엔터사뿐 아니라 영화 업계도 NFT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나섰다. 미디어그룹 NEW의 영화사업부는 국내 최초로 영화 IP를 활용해 제너러티브 아트 형태의 NFT를 출시했다. 박소담 주연의 범죄 오락 액션 영화 ‘특송’에서 영감을 받은 아트웍 NFT는 지난해 12월 29일 선판매 수량 1000개가 1초 만에 품절됐다. 이어 1월 2일까지 진행된 메인 거래까지 총 3000여 개 수량이 공개와 동시에 판매가 완료되면서 콘텐츠와 미래 산업의 만남에 성공적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팬덤 세대 변화 발맞춰...가속화되는 NFT 시장 앞서 연예기획사는 음반, 공연, 소속 아티스트의 출연료 등으로 수익을 창출했지만 이제는 아티스트와 팬덤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면서 종합 엔터사로 거듭나고 있다. 여기에 Z세대를 중심으로 ‘메타버스’ 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디지털 콘텐츠나 수익이 ‘미래 먹거리’로 떠올랐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NFT는 고유의 가치와 소유권을 증명하는 데 사용한다. 현재 희소성과 고유성을 중요시하는 팬덤의 심리와 맞닿아 있는 것이 NFT인 만큼, 엔터사들이 이 사업에 발 빠르게 뛰어들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인 디지털 콘텐츠는 복제와 다운로드가 가능하지만 NFT는 ‘세상에 하나뿐인 자산’을 소유한다는 장점이 있어 팬들이 소유한 아티스트의 NFT가 곧 희소성을 나타낸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소속사 입장에서는 음악과 굿즈를 NFT와 결합해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킬 수 있다. 또 팬덤 문화가 희소성과 한정판에 대해 열광하고 있는 만큼, 굿즈와 콘텐츠들에 NFT 기술을 결합하면 ‘세상에 하나뿐인 콘텐츠이자 상품’이 돼 팬들의 니즈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박송아 대중문화평론가는 “NFT는 엔터 사업의 다각화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대형 기획사들은 기술 기반의 회사들과 합작을 통해 직접 플랫폼을 구축해 가며 기존의 IP와 막강한 팬덤으로 새로운 산업을 전개해 수익구조의 다변화를 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NFT는 문화적 파급력과 대규모 경제효과로 이어져 K팝 시장에도 큰 영향력을 보일 것”이라며 “콘텐츠에 NFT 기술을 더하면 디지털 소유권과 희소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어 콘텐츠의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향후 NFT의 저작권과 소유권 충돌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있어 이에 맞는 법 체계도 필요하다. 보다 투명하고 합법적인 절차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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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호

주연화 홍익대 교수 "아트컬렉션, 전쟁이 시작됐다"

“지금까지의 미술시장은 잊어라...새로운 장이 왔다”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던 현대미술, 아시아가 곧 패권 쥔다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세계 미술시장에 호황의 새 시대가 왔다. 한국 미술시장 또한 예전의 시장이 아니다. 바야흐로 아트컬렉션에 ‘전쟁’이 시작됐다. IT와 벤처로 큰돈을 번 슈퍼리치들은 미술품을 투자대상으로 보고 매수에 박차를 가한다. 고소득의 MZ세대 또한 블루칩 작품 투자에 나섰다. 이렇듯 엄청난 장이 예고되지만 한국 시장의 토대는 아직 허약하다. 이에 월간ANDA는 20년간 세계 미술계를 누벼온 주연화 교수(홍익대)로부터 한국 아트마켓의 현황과 전망을 들어봤다. Q. 한국 미술계에서 20년간 글로벌 마켓을 최전선에서 두루 경험한 전문가로 꼽힌다. 아트마켓에 들어온 계기는. 대학 시절 전공은 철학이었다. 딱딱한 철학 강의만 듣다가 우연히 수강한 미술사 수업에 흠뻑 매료돼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이후 유학을 준비했는데 지도교수 추천으로 천안의 한 갤러리(아라리오)로 면접을 보러 갔다. 취업할 생각은 없었지만 천안 거리에 키스 해링, 데미안 허스트 같은 유명 작가의 대단한 조각들이 놓여 있는 걸 보고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초짜 큐레이터임에도 저돌적으로 일했다. 밤새 일 생각을 거듭하다 새벽 5시에 출근할 정도로 일중독이었다. 나를 뽑았던 김창일 아라리오그룹 회장은 해외출장마다 데리고 다녔다. 김 회장은 ‘천안을 뉴욕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각국의 중요한 현대미술품을 수집했다. 가고시안, 화이트큐브 같은 톱 갤러리의 거물 딜러, 세계적인 작가들과 일했으니 내게는 고생은 컸지만 더없이 값진 경험이자 훈련이었다. Q. 미술시장 전문가로서 최근과 같은 호황을 경험한 적이 있나. 한편에선 거품론도 나오는데 호황은 지속될까.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호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미국발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시장이 곤두박질쳤다. 2012년부터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성장으로 다시 좋아졌고, 2017년 중국이 성장의 고삐를 죄면서 살짝 조정을 받았다. 한데 근래 들어 핀테크, 온라인 비즈니스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신흥부자들이 등장하고,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미술 투자도 늘었다. 이 흐름을 주목한 젊은 부유층이 가세하며 시장의 사이즈가 갑자기 커졌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로막혔던 시장이 다시 풀리며 ‘불시장’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2007년에 유입된 고객들은 자신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묻지마식 투기(스페큘레이션)를 했다. 그러나 요즘 신규 컬렉터들은 다르다. 본인 취향도 분명하고, 공부도 많이 한다. Q. 신규 컬렉터가 모두 현명한 투자를 하는 건 아닐 텐데. 물론 예외도 있다. 별로 신통치 않은 작가인데도 ‘투자 메리트가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 작품을 허겁지겁 구매한 경우도 종종 본다. 믿을 만한 갤러리나 딜러로부터 작품을 사면 생기지 않는 일일 텐테 안타깝다. 하지만 요즘 신규로 편입된 컬렉터들은 대부분 실력이 만만찮고 자금력도 탄탄해 호황은 이어질 것이다. 작품별, 작가별로 약간의 숨고르기가 있을 수 있겠으나 시장 사이즈가 확연히 커져 그 폭은 작을 거라 본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마켓이 공히 호황인 점도 활황세를 유지하게 하는 요인이다. 단 급격하게 거품이 낀 작품, 국내 시장에 국한된 작품은 가격이 빠질 것이다. 그렇지 않은 작품은 가격이 더 오를 것이다. Q. 글로벌 미술시장의 최근 20년간 두드러진 변화를 요약하자면. 10년, 20년 후 어떻게 예측하나. 극단의 자본주의, 세대의 전환, 디지털의 확장과 동시에 아날로그에 대한 열망, ‘피지털’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아트마켓은 현재 물리적 세계와 비물질적 세계, 오프라인과 온라인,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 중이다. 그 가운데 디지털 공간에서 미술을 전시하고, 소유하고, 유통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들이 더욱 확장될 것이다. 양극화 현상도 커질 것이다. 모두가 공평하게 가격이 오르는 시장은 불가능하다. Q. 미술품 투자자를 감상이 주목적인 경우, 즐기면서 투자수익도 기대하는 경우, 투자가 목적인 경우로 분류했는데. 과거에는 감상과 향유가 목적이었다. 미술품을 재판매한다는 개념도 별로 없었고, 재판매할 수 있는 채널도 많지 않았다. 수집을 위한 수집, 곧 진정한 컬렉터들의 시대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판매 채널이 크게 늘어 누구나 리세일이 가능해졌다. 이에 작품감상을 즐기면서 투자수익도 기대하는 컬렉터들이 늘었다. 시장이 호황일 때는 투자를 최우선시하는 그룹이 급증하는데, 이들은 컬렉터라기보다 ‘트레이더’이다. 투기 목적의 고객은 시장이 안 좋아지면 가장 먼저 작품을 손절하고 빠져나간다. Q. 신규로 시장에 진입한 MZ세대와 IT 및 금융계 고객은 기존 고객과 어떻게 다른가. MZ세대와 IT 및 금융계 고객을 동일시할 순 없다. MZ세대는 정보 취득력이 좋고, 취향도 분명하다. 예산이 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타나면 주저없이 구매한다. 하지만 중장년 고객보다 작품을 보유하는 기간은 현저히 짧다. 2021년 UBS리포트에 따르면 현재 MZ세대의 평균 작품보유기간은 3~4년에 불과하다. 한편 IT계 컬렉터들은 온라인 세일을 즐기고, NFT아트 같은 새로운 형태의 작품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이들이 디지털 아트만 구입하는 건 아니다. 자코메티 조각 같은 최고의 블루칩에도 거침없이 투자한다. Q. 시각예술 부문을 정책적으로 육성해온 영국이 전통의 미술강국 프랑스를 눌렀다. 영국 현대미술이 한동안 강세였다가 최근엔 프랑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심은 언제든 이동하는 법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상하이에서 8년간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자면 영국-독일-미국에서 이제는 아시아 작가로 판도가 이동 중이다. Q. 아시아 미술시장에서 중국미술과 일본미술, 한국미술이 차지하는 비중과 특징은. 중국이 대부분, 그리고 일본, 인도 순이다. 이들은 글로벌 시장이다. 물론 중국 작품 중 상당수는 ‘내수용 작품’이지만 워낙 로컬 시장의 사이즈가 커서 글로벌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은 가능하면 글로벌로 나가야 하는데 여전히 ‘로컬형 작품’이 많다. 이를 뚫는 게 관건이고, 결국은 작가와 화랑에 달렸다. Q. 베이징과 상하이의 미술 현장을 수년간 경험하며 그 특징을 연구했다. 중국 미술시장은 글로벌 넘버원이 될 수 있을까. 최근 NFT아트의 주요 구매자들은 대부분 아시아계 핀테크 거부들이고, 이들은 화교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필립스 경매를 통해 NFT아트를 구매한 아시아계 거부들은 이제 자코메티, 앤디 워홀 같은 ‘웨스턴 아트’를 사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톱 갤러리들은 홍콩과 상하이에 지점을 열거나 현지인력을 기용해 중국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크리스티, 소더비의 딜러들도 아시아를 수시로 찾아 신흥부호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0세기 초중반 유럽에서 미국으로 시장이 넘어왔듯, 이제 아시아로 그 흐름이 움직이고 있다. 시장적 측면에선 중국이 ‘글로벌 넘버원’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미 마켓의 축이 중국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국제적인 미술관, 갤러리, 작가, 비평, 아카데미가 부족하고, 미술계 전반의 질적 수준이 ‘진정한 넘버원’이라 하기엔 곤란하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Q. NFT아트가 부상 중이다. 일부 문제도 있으나 확산이 예고되는데. 블록체인은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기술이다. 이에 기반한 디지털 이미지의 NFT화는 지식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어서 앞으로 확장될 것이 틀림없다. 물론 문제점도 있다. 과도한 가격상승이라든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NFT아트를 유통하는 업체의 등장이 그것이다. Q. 20년 현장경험 중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기억나는 순간이 많다. 우선 2005년 런던에서 아라리오 베이징의 개관을 알리는 이벤트를 열었던 때가 생각난다. 베이징에서 대형 창고건물을 개조해 현대미술 갤러리로 만들었는데, 그 과정을 독립영화처럼 찍은 후 런던의 미술계 인사들을 모아놓고 맥주파티를 하며 공개했다. 그러자 런던 바닥에 아라리오 베이징에 대한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졌다. 색다른 홍보로 첫 출발을 효과적으로 알린 것이다. 2011년에는 갤러리현대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간의 경험을 살려 외국 미술관 공략과 해외 아트페어 진출에 주력했다. 2012년 갤러리현대는 ‘프리즈 뉴욕’(아트페어)에 처음 참가했는데 이때 실험미술가 이승택의 작품(1959년 작)을 아주 특색 있게 전시해 영국 테이트미술관에 판매했다. 그러자 테이트의 이사진(보드멤버)과 슈퍼컬렉터들이 앞다퉈 이승택 작품을 샀다. 개인적으로 외국의 정상급 미술관에 작품을 팔았던 첫 경험이었고, 이승택 작가로서도 해외 미술관과 세계적 컬렉터들에게 작품을 판매한 첫 사례였다. 2014년 중국에서의 일도 기억에 남는다. 아라리오가 중국 베이징에서 대규모로 운영하던 갤러리가 적자누적 등으로 철수가 결정된 때였다. 나는 회사를 설득해 베이징이었던 본거지를 상하이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힘들게 개척했던 중국에서의 기반과 평판을 허무하게 잃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상하이로 옮김으로써 아라리오는 글로벌 아트마켓의 최전선에 설 수 있게 됐고, 국제경쟁력도 다지게 됐다. 나 자신도 상하이에 체류하며 중국미술의 잠재력과 역동성을 속속들이 경험할 수 있었다. Q. 시장전문가로 그치지 않고 대학 강단에도 섰는데. 미술관 학예사를 생각하고 미술계에 들어왔는데 시장전문가가 됐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실무자를 뛰어넘어, 시장 전체를 분석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싶어 학업을 병행하게 됐다. 20년간의 미술시장 경험과 인사이트를 후배들과 공유하고 싶었는데, 박사학위를 받고 홍익대에서 강의하게 됐다. 현장업무도 흥미롭지만 이제 연구와 강의에 집중하려 한다. 1년 내내 해외 프로젝트와 아트페어를 위해 외국에 머무는 날이 더 많았다. 한 달에 대여섯 번씩 여행가방을 쌌다 풀었다 한 적도 있다.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좀 더 넓은 세계에 도전하려 한다. 물론 미술경영이라는 학문은 실용학문이기에 현장을 늘 주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단에 서면서도 현장과의 끈은 놓지 않을 것이다. Q. 미술시장을 정확히 꿰뚫어 보려면 미술사를 알아야 하는데. 이론의 중요성은.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다. 미술품은 ‘상품’이 아니다. 미술품이 지닌 복합적인 가치들, 즉 미술사적 가치, 미학적 가치, 경제적 가치 등이 입체적으로 평가돼야 한다. 미술사적 가치를 모른다면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살필 수 없게 된다. Q. 국내외에서 롤모델이 될 만한 컬렉터를 지근거리에서 많이 접했을 것이다. 그들의 특징은. 작가가 그 작품을 만든 심리와 컨셉트를 정확히 읽어낼 줄 안다. 그리고 다양한 작품들을 정말 끝없이 보고, 공부도 줄기차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잘 아는 김창일 회장이 바로 그런 예다. 말레이시아의 컬렉터 아즈만을 좋아한다. 열정을 가진 수집가로 자신의 취향이 분명하고, 일반 대중과 작품을 공유하려 한다. 필리핀의 컬렉터 폴리노도 좋아한다. 그는 아트페어 때마다 “우리 필리핀 작가 작품 없느냐?”고 묻는다. 한국의 슈퍼컬렉터들도 해외 갤러리를 찾아다니며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진다면 유수의 갤러리들이 한국 작품을 소개할 것이다. 그런 컬렉터를 보고 싶다. Q. 개인적으로 컬렉션을 하고 있나. 어떤 작품인지 귀띔해 달라. 자연스럽게 조금씩 사왔다. 끌리는 작품을 주로 샀는데, 가끔 안 사곤 못 배길 작품을 만나곤 했다. 그동안 고객의 컬렉션만 신경 써 왔는데 앞으론 나의 컬렉션도 방향성을 만들고 싶다. 정강자의 1970년대 강렬한 자화상, 김순기의 타겟 페인팅, 이우환의 1980년대 ‘바람’, 케이지 우에마츠의 1970년대 사진 등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모았다. 미술사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 게 컬렉션에서도 나타난다. 앞으로도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들을 꾸준히 수집할 것이다. 주연화 교수는 이화여대 철학과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글로벌MBA, 서울대 미술경영 박사를 취득했다. 갤러리현대 기획실장, 아라리오갤러리 한국 중국 총괄디렉터, 아라리오상하이법인장을 역임했고, 독일국가브랜드혁신회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19년 코로나로 한국에 귀국 후 현재는 아라리오 총괄디렉터와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 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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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호

“호랑이 한 마리 몰고 가세요” 범띠 해 호랑이 전시회 안윤모 화백

| 조용준 논설의원 digibobos@newspim.com 호랑이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과 매우 가까이 있었다. 잡귀를 물리치는 부적의 역할을 한다 해서 사람들은 호랑이 그림을 벽에 거는 관습도 있었다.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해서 호랑이는 다정스럽고 친숙한 모습으로 일반 가정의 한 벽을 자연스럽게 차지했다. 호랑이들은 근엄하고 용맹한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바보같이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럽게 등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랑이 그림에 질리지 않고 친근함을 오래 이어갈 수 있었다. 2022년은 호랑이의 해다. 범띠 해를 맞아 서양화가 안윤모(60)가 ‘세상 밖 호랑이의 외출’이라는 제목으로 호랑이 그림과 조각 개인전을 연다. 12월 15일(수)부터 2022년 1월 10일(월)까지 서울 강남 삼성동 청화랑이다. 안윤모는 이번 전시에 의인화된 호랑이를 주제로 우화적 방식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표현한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그림에선 전반적으로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진다. 호랑이들은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유채꽃 들판, 혹은 목련이 활짝 피어나 있는 나무, 동백꽃 나무 아래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속삭이거나, 자작나무 숲에서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한다. 심지어는 커피를 마시거나 골프를 치기도 한다. 그런 호랑이 옆에는 늘 까치가 등장한다. 까치는 호랑이 머리 위에 앉아 있거나, 곁에 앉아서 호랑이에게 수다를 떨며 잔소리를 한다. 전통 회화에 나오는 민화 속의 까치는 호랑이 그림에 빼놓을 수 없는 새다. 일명 ‘까치호랑이’ 라고 불리는 이 까치가 호랑이와 함께 등장하는 것은 이미 민화의 한 형태로 유형화됐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하여 우리와 아주 친숙한 새이고 호랑이는 악귀를 물리치는 동물이므로 자연스런 친숙함으로 함께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안윤모는 “조선시대에 호랑이 그림들이 그 시대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해학적 표현이었다면, 지금 나의 호랑이 그림들은 희락(喜樂)의 해학적 표현으로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찾아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윤모의 그림에는 늘 동물이 등장한다. 아니, 동물이 그림의 주제다. 다만 그 동물들은 사람처럼 일상을 이어가는 그런 존재들이다. 이번에는 주제가 호랑이지만, 2019년의 개인전 ‘커피와 예술’에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의 주체는 부엉이들이다. 부엉이들은 대나무 숲에서, 튤립 밭에서, 벚꽃나무에서 옹기종기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번 호랑이도 그렇지만 부엉이는 안윤모의 단골 소재다. 2014년의 개인전 제목은 아예 ‘부엉이, 돌아오다’였다. 이 전시회에서 부엉이들 역시 악기를 연주하고, 자동차와 배로 여행도 즐긴다. 그런데 그의 부엉이들은 늘 커피와 함께한다. @img4 사실 안윤모는 유명한 커피 마니아다. 바리스타도 아니고, 커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지만, 커피를 즐기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마니아다. 그래서 유명한 강릉커피 테라로사를 소개하는 한 TV 프로그램에 안윤모가 인터뷰어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번 ‘세상 밖 호랑이의 외출’에서도 테라로사 커피를 마시는 호랑이가 등장한다. 안윤모는 1996년 ‘커피 소사이어티’ 전을 시작으로 2000년 ‘커피와 상상력’, 2008년 ‘커피홀릭’, 2011년 ‘커피 한잔의 은유’, 2019년의 ‘커피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커피와 관련된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2000년 ‘커피와 상상력’전을 열면서 ‘느림에 관한 미학’에 대해 말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는 커피 한 잔을 편안히 앉아서 마실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게다가 90년대 후반부터 전파된 테이크아웃의 문화는 커피를 카페에서 거리로 내몰았고, 커피의 여유 또한 바쁜 걸음에 밀려나게 됐다. 한 손엔 커피를, 다른 한 손엔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풍경들이 익숙해진 세상.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커피를 통해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좀 더 천천히 사색하는 시간을 갖자고 역설한 전시였다.” 그의 이런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른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롯이 그 여유 속에서 사색을 즐기고, 동시에 그 각성 속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다는 작가는 때로는 그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때로 커피를 마시는 양과 닭이 등장했지만, 부엉이가 주된 테마로 등장하는 까닭은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상징히듯 부엉이가 지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이에게는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밤을 새우는 부엉이일 수도 있지만, 커피 마시는 부엉이는 시대에 대한 각성의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안윤모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나비가 되다’ 프로젝트다. ‘나비가 되다’는 국내외 자폐 등 발달장애 아동들과 함께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프로젝트로 벌써 10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다. “항상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왔다. 40대가 되면서 그림 작업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니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러다 2010년 서울대병원에서 우연히 본 발달장애 아이들의 그림이 일반인들의 그림과 매우 달라서 정말 좋았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전시회를 갖는 전국 투어를 시작하게 됐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평소 자신의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일반인과 소통이 힘들다. 이에 안윤모는 아이들 어머니들과 그림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왔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가수 윤도현의 노래 ‘나는 나비’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이후 안윤모의 작품 세계에는 자유롭게 나는 나비들이 가득 들어서게 됐다.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미술로 소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비를 주제로 다룬 작품을 만들어 왔다. 발달장애 아이들의 고운 날갯짓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며 나비를 소재로 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2010년 ‘나비가 되자’ 프로젝트를 시작해 2012년까지 전국을 순회했다. 이런 그의 활동은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아 2013년 인도네시아 애니카 린덴 센터에서 처음 ‘나비가 되다’ 해외 전시를 하는 월드 투어가 시작됐다. 2014년에는 뉴욕의 현대미술관, 록펠러 프리저브 퀸즈 뮤지엄, 베레리 굿맨 갤러리 등에서의 전시로 이어졌다. 또한 벨기에 브뤼셀의 유엔 유럽본부와 보자(Bozar)아트센터에서도 개최됐다. 이 전시회에는 자폐성이 있는 국내외 청소년과 어린이는 물론 인도네시아·에티오피아·유럽 등 해외 어린이들이 그린 나비 그림 등 모두 3000여 점의 작품을 거대한 규모의 설치미술로 소개했다. 이후 이 프로젝트는 2016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017년 홍콩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2018년 태국 방콕과 케냐 나이로비 전시로 이어졌다. “월드 투어는 원래 한두어 번쯤 하고 그만두려 했는데, 계속 요청이 들어와 지금 13년째 하고 있다. 대만에서도 전시가 시작돼 2022년 9월까지 이어질 예정이고, 지금은 멕시코 전시를 협의 중이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바빠서 도저히 쉴 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화랑에서의 이번 ‘세상 밖 호랑이의 외출’은 무려 그의 84번째 개인전이다. 아마도 가장 많은 개인전 횟수 기록의 국내 작가인 듯하다. 그룹전을 포함하면 1350회가 넘는다. 거장 마티스는 자신의 작업과 관련해 “50년 동안 나는 잠시도 작업을 중단해본 적이 없다. 나의 첫 일과시간은 9시에서 12시까지다. 그다음에 점심에 잠깐 낮잠을 자고 오후 2시에 다시 붓을 들어 저녁 때까지 작업을 한다. 나는 당신이 이 말을 곧이들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예술가의 작업은 늘 노동이다. 안윤모의 작품 역시 이런 노동, 그러나 즐거운 노동을 통해 탄생한다. 안윤모는 호랑이가 가진 해학과 풍류, 유머를 통해 코로나19의 거칠고 힘든 풍랑을 헤쳐나가는 용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정말 유쾌하고 발랄한 호랑이들이 못된 바이러스들을 싹 거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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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호

'지옥' 세계관을 만들어낸 유아인 "부담됐지만 즐겼다"

|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 해외 OTT 넷플릭스가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1월 19일 공개된 후 하루 만에 TV프로그램 부문 전 세계 1위(플릭스 패트롤 기준)에 ‘지옥’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동명 웹툰이 원작인 이 작품에서 배우 유아인은 사이비 종교 새진리회의 초대 의장 정진수를 연기하며 작품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아인이 그려낸 ‘지옥’ 세계관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을 선고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를 틈타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유아인이 맡은 정진수는 종교단체 새진리회의 의장이자 사람들에게 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지옥행 고지’라고 주입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에 정진수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란 정보만 갖고 연상호 감독과 여러 토론을 통해 구체화시키고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어요. 사이비 교주와는 조금은 동떨어진, 반전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사이비 종교 영상이나 음성을 보고 들었을 때 여러 매체에서 다룬 것처럼 ‘믿습니까!’ 하는 건 없더라고요(웃음). 오히려 조곤조곤 말하면서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다고 할까요. 정진수가 그런 분들과 비슷한 힘이 있을 것 같아서 소스를 많이 따왔죠.” 이번 작품에서는 유아인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의 분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극중 정진수는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분량으로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야 했기에, 유아인에게도 이번 작품은 많은 고민을 안겼다. “정진수는 출연 분량이 적지만 핵심적으로 극의 에너지를 만들어야 했어요. 그래서 수위를 어느 정도로 가져갈지 고민이었죠. 다른 인물들에 비해 선이 굵은 캐릭터이고, 다른 인물들은 땅에 발을 붙이는 것 같다면 진수는 약간 떠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차이를 가져가되 다른 배우들과 어떻게 조화롭게 어우러질까 하는 고민이 컸습니다.” 정진수는 혼자 죽으러 떠난 티베트 고원에서 지옥의 사자들이 행하는 시연을 목격한다. 이후 자신도 고지를 받았지만, 이를 철저히 숨긴다. 그는 고지와 시연이 죄인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재해에 가까운 것임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안고 살아온 공포를 다른 이들도 느끼게 하기 위해 ‘새진리회’를 창설해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신의 의도’로 만들어냈다. 이처럼 정진수가 ‘지옥’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인물인 셈이다. “많은 장면에 등장하고, 빌드업돼 힘을 쌓아가는 게 아니라 어려웠어요. 최소한의 등장으로 최대치의 긴장감과 효과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정진수가 미스터리에 싸인 인물인데 극 전체에 마수를 뻗친 인물이잖아요. 평소 작업보다 훨씬 더 긴장했던 것 같아요. 조금도 실패하고 넘어갈 수 없는 장면들이었거든요. 또 웹툰이란 원작이 있었기 때문에 표현이 단순해지면 제 해석의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에 부담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래도 이 작품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인물이라 정말 즐기면서 했어요(웃음).” 새진리회를 창설하고 ‘지옥’의 세계관을 만든 정진수는 3부에서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6부의 결말에서 고지를 받았던 박정자(김신록)가 부활하면서 시즌2에 대한 관심과 생각보다 이른 죽음을 맞은 정진수의 부활을 원하는 시청자도 많다. “일 덜 하면 좋잖아요. 하하. 사실 많은 분이 아쉬워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죠. 저 역시도 아쉬움을 넘어 재등장을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에요. 시즌2를 한다면 저는 살아날 것 같지 않나요? 하하.” 정진수가 3부에서 죽음을 맞은 후 ‘지옥’의 4부부터는 이전과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1~3부가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4부부터는 현상을 맹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지옥을 그려낸다. “6부작인데 많은 분이 1, 2막으로 나눠 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만큼 작품 스타일이나 톤이 상당히 다른 상태인 두 파트가 하나의 시즌으로 묶인 작품인 것 같아요. 제가 등장했던 초반까지 시청자들이 이 작품에 대해 불안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1~3부가 격정적으로 흘러갔다면, 4부부터는 안정적인 드라마로 느껴지더라고요. 초반은 인간들의 이야기, 괴물들을 통해 만들어진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이 펼쳐졌다면, 4부에서는 그 펼쳐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그려진 것 같아요. 결국에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준 것 같고요.” 국내에선 ‘지옥’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이를 추종하는 사이비 종교단체가 더해지면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지옥의 사자로 일컫는 괴물이 나타나고, 천사의 고지를 통해 사람들이 지옥에 가고. 이런 것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미디어를 통해 중계되는 게 정말 폭력적이고 비현실적이죠.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해서 괴물을 인간으로 바꾸면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란 생각도 들더라고요. 우리가 많이 목격하게 되는 혐오나 폭력, 집단의 광기가 작품 속에서 다른 형태로 일어나는 것 같지만, 작품 내용을 현실로 끌고 와보면 비슷한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전 ‘지옥’이 묵직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선 굵은 역할이 주는 부담...캐릭터 선입견 깨졌으면”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지옥’에서 유아인이 선보인 연기는 큰 호평을 받았다. 최소한의 분량이었지만 최대의 효과를 낳았다. 차분하지만 설득력 있는 어조로 관객들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연기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아요. 가장 좋았던 건 한국 분이 유튜브 댓글에 ‘세계 무대에 내놓으려면 유아인이 제격’이라는 말을 해주셨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국가대표가 된 기분이랄까. 그래서 기분이 좋았고, 한편으로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연기는 갈수록 어려워져요. 많은 분이 박수를 많이 쳐주셔서 저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다는 부담감도 있고요. 실질적으로 저에게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는 칼날 같은 시선도 느껴져요.” 유아인은 이번 작품뿐 아니라 영화 ‘베테랑’, ‘사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선 굵은 역할을 주로 맡아 왔다. 이전의 작품을 통해 사랑을 받은 캐릭터들은 그에게 남다른 부담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번 작품으로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고 이런 건 없어요. ‘사도’나 ‘베테랑’ 같은 작품에서 강렬한 인물을 맡으면서 큰 사랑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저를 가두는 선입견을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했거든요. 그 이후에 다른 시도와 실험을 하면서 제 가능성을 스스로 다져나가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이번에 정진수라는 독특한 에너지를 가진 인물을 연기하면서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힘이 더 세고, 광기가 있다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한 배우로서 제 스스로의 성장을 그리는 과정을 봐주신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저 총체적으로 저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신다면 너무 감사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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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호

코로나 불황에도 불티…연말연시 ‘아이맥스 전쟁’

|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코로나19로 영화계가 오랜 침체를 겪는 와중에도 연일 매진을 기록한 영화와 극장이 있다. 바로 CGV 아이맥스관에서 상영한 블록버스터 영화다. 뜨거운 인기로 아이맥스 재상영이 결정됐던 ‘듄’을 비롯해 ‘블랙위도우’, ‘이터널스’까지 코로나 팬데믹에도 특별관 효과를 누렸다. 연말연시에도 아이맥스관 선점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매진 30초 컷” 치열한 예매 전쟁 지난해 7월 개봉해 여름 극장가 성수기의 물꼬를 튼 마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블랙위도우’는 코로나로 어려운 와중에도 3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선전했다. 당시 영화팬들 사이에서 가장 관심사는 ‘블랙위도우’의 아이맥스 상영 회차 티켓을 구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블랙위도우’는 296만의 최종 스코어를 기록한 것은 물론 같은 달 최고 흥행 영화로 기록됐다. 이 같은 현상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007 노 타임 투 다이’,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듄’, ‘이터널스’까지 대형 외화들이 개봉할 때마다 이어졌다. CGV에서 운영 중인 아이맥스관을 필두로 4DX관, SCREEN X관과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돌비 애트모스관 등 특수 상영관 상영작에 영화팬들의 선호가 도드라진다. 마블 스튜디오 작품 같은 고정팬을 거느린 작품의 경우, N차 관람에 나서는 이들은 거의 모든 특수관을 섭렵하며 차이점을 비교하고 즐기는 문화도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일반관 스크린보다 월등히 큰 사이즈의 스크린에 초고화질 해상도를 자랑하는 아이맥스관의 경우 치열한 예매 전쟁이 벌어진다. 각 영화관에서 별도로 예매 오픈 일시를 공지하지 않는 탓에 새로고침을 반복하며 일명 ‘존버’를 하는 세력도 상당하다. 일부 이용자들은 예매 오픈 시 알람을 해주는 텔레그램 방을 생성해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업계에서도 N차 관람의 열풍에 특수관 상영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에도 아이맥스관에서 개봉한 ‘베놈2’, ‘007 노 타임 투 다이’, ‘듄’이 차례로 월간 흥행작 순위 1~3위를 차지했다. 극장 관계자는 “아이맥스 전용 카메라로 촬영된 작품은 아이맥스관에서 보려는 충성도 높은 팬층이 두껍다”고 말했다. 연말연시 ‘아이맥스관’ 선점 경쟁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듄’은 11월 말 극적으로 아이맥스관 재상영을 결정하면서 1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했다. 개봉 당시 2주간의 아이맥스 상영 기간 연일 매진을 기록한 덕에 이룬 성과나 다름없다. 11월 첫 주 개봉한 ‘이터널스’에 밀려 더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팬들의 아쉬움을 풀 기회였다. 지난해 11월 말 전국 일부 아이맥스관에서 다시 상영되기 시작한 ‘듄’은 12월 1일부터 국내 최대 규모인 용산 아이맥스관에서 관객들과 다시 만났다. N차 관람 중이던 ‘듄’ 마니아들은 연일 600석이 넘는 좌석을 거의 매 회차 매진에 가깝게 팔아치우며 뜨거운 반응을 쏟아냈다. 아이맥스 상영 당시 평일 오전 회차도 20석만 남겨둔 채 좌석이 모조리 팔려나가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같은 달 5일 이후 아이맥스 상영이 막을 내리자 “단 며칠만이라도 더 열어 달라”는 의견이 온라인상에 쏟아지기도 했다. 특별관 상영 열풍은 특히 코로나 시대 대부분의 영화를 OTT나 안방에서 관람하는 문화가 생겨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말 그대로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를 감상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청각적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특별관이야말로 코로나 시대 극장의 존재 이유라는 의견이 관객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연말 성수기를 맞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비롯해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매트릭스: 리저렉션’까지 대형 영화들이 줄줄이 극장가에 걸렸다. 지난해 12월 15일 ‘스파이더맨’을 시작으로 ‘킹스맨’이 22일, 그 이후 ‘매트릭스’가 차례로 개봉하며 각 작품 팬들은 아쉬움을 쏟아냈다. 아이맥스 상영 전용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몰린 탓에 각 작품마다 상영 기간을 최대 1주일 정도밖에 할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CGV의 경우 전국에 아이맥스관이 17개밖에 없는 탓에 개봉 시기를 두고 각 작품들 간에 치열한 선점 경쟁이 벌어졌음은 물론이다. 멀티플렉스 극장 입장에서 수익성으로 보나, 코로나 시대 영화팬의 니즈, 서울 외 지역 격차를 고려할 때 전국적인 특별관 확대가 절실하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투자는 더 어려워진 상황. 한 극장 관계자는 “코로나 때문에 특별관이 극장의 존재 이유로 떠올랐지만, 코로나를 겪으며 극장 산업의 손해가 커 재투자가 어렵다”며 “극장 매출이 증가하고 여유분이 있어야 재투자가 가능할 텐데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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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호

열풍 미술시장, 호황 언제까지? 일각선 거품론도

14년 만의 호황에 업계 들썩, 블루칩은 입도선매 MZ컬렉터, 가격 안 오르면 경매에 토해낼 수도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뜨겁게 달아올랐던 2021년 미술시장이 마감을 앞뒀다. 무려 14년 만의 활황이다. 오랫동안 침체를 거듭했던 화랑, 경매사들은 역대급 호황에 매우 고무됐다. 올해 화랑미술제, 아트부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대구아트페어는 판매액과 관람객 수에서 기존 기록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미술품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연간 낙찰액도 급증했고, 갤러리들의 전시도 호응이 뜨거웠다. 일부 인기작가 작품은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팔려나갔다. 추상작업을 하는 화가 김태호(73)는 최근 한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그 남성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는데 포탈에 검색해 보니 작가님 작품에 투자하면 좋다고 해서 연락했다. 그림을 사겠다”며 9500만원을 송금했다. ‘그림을 본 뒤 결정하라’고 해도 ‘상관없으니 적당한 걸로 보내 달라’고 해 50호짜리 작품을 보냈다고 한다. 김 작가는 “50년간 그림을 그렸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올해 같은 그림 열기도 처음”이라고 했다. 지난 11월 3일 키아프에선 백화점에서나 볼 법한 ‘오픈 런’(매장 개점 전부터 기다렸다가 열자마자 뛰어 들어가 구매하는 일) 현상까지 생겼다. 일부 고객들이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점찍어 둔 작품이 있는 화랑부스로 돌진하는 것이다. 곳곳에서 출품작을 놓고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화가 김선우의 ‘도도새 그림’을 사려고 30만원짜리 VVIP입장권을 사서 오픈런을 한 어떤 고객은 작품이 온라인 프리뷰를 통해 팔렸음을 확인하고는 거세게 항의했다. “그럴 거면 왜 VVIP 티켓을 팔았느냐”며 화랑 직원을 몰아세웠다. 자신이 사고자 하는 작품을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MZ세대 컬렉터 중에는 작품을 안 보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이 온라인 세일이다. 디지털 환경에 친숙한 젊은 세대들은 작품의 이미지만 보고도 구매를 결정한다. 내 눈에 꽃히고, 투자 메리트만 있다면 주저하지 않는 것. 올해 키아프에서 베를린의 페레스프로젝트 등 외국 화랑들은 온라인 사전전시(또는 인스타그램)를 통해 출품작 전부를 팔아치웠다. 한국 젊은 고객의 적극성에 외국 관계자들도 놀랐다. MZ세대들은 ‘온라인 컬렉팅’을 거리낌없이 수용하며 미술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있다. 이들에겐 페어 개막일은 ‘내가 산 작품을 관람하고, 인증샷을 찍어 인스타에 자랑하는 날’이 됐다. 작품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가격을 흥정한 뒤에도 하루이틀 더 고민해야 구매를 결정하는 기존 고객과는 천양지차인 것. 게임에 익숙하고, 소비와 투자를 즐기며, 커뮤니티로 정보를 공유하는 MZ세대가 미술시장에 대거 진입하며 시장의 파이가 놀랄 만큼 커졌다. ‘이건희컬렉션’이 화제가 되며 ‘미술품을 사 모으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투자수익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됐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못 간 데 대한 보복소비가 미술 투자를 부추겼고, BTS의 RM 같은 인플루언서들이 SNS를 통해 ‘K아트’에 대한 관심을 키운 것도 MZ세대를 자극한 요인이다. 2040 젊은 구매층의 증가는 통계수치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1년간 서울옥션의 40대 신규회원은 전년 대비 87%, 20~30대는 8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회원가입 후 저울질만 한 게 아니라 응찰에도 참여했다. 경쟁업체인 케이옥션도 마찬가지여서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미술품을 낙찰받은 고객 중 31%가 40대였고, 30대가 21%를 차지했다. 20대까지 포함하면 전체 낙찰자의 56%가 2040세대였다. 그동안 미술시장의 주고객은 50~60대였으나 IT와 스타트업으로 부를 일군 신흥부자와 부동산·주식·암호화폐 투자로 수익을 거둔 이들이 가세하며 시장은 크게 확대되고 판도도 달라졌다. 젊은 고객의 유입은 해외에서도 진행형이다. 세계적 아트페어인 아트바젤의 후원사인 스위스의 UBS는 매년 미술시장 리포트를 내놓는데 ‘2021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미술품을 수집하는 고액 자산가 컬렉터 약 2600명 중 56%가 40세 이하의 MZ세대였다. 특히 25~40세 고액자산가 컬렉터는 지난 2년간 평균 300만달러(약 36억원)를 미술품 구매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세계 1위 경매사인 크리스티도 올 상반기 신규고객의 31%가 밀레니얼 세대라고 보고했다. 한국의 MZ세대들은 더 과감하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곧바로 결정하고, 가격도 깎지 않는다. 깎아도 5% 이내다. 이들은 국내 경매뿐 아니라 소더비, 크리스티의 온라인 경매에도 보란 듯 참여해 작품을 수집한다. 또 프랑스의 미술전문 온라인 아트플랫폼인 아트시 등을 통해 1000만~3000만원대 미술품을 척척 구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생존작가 작품일 경우 양도세나 보유세 같은 세금이 없고 투자수익도 짭짤하다는 소문이 나자 컬렉션에 나서는 이가 많다. 작게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크게는 수억원을 내고 미술품을 산 뒤 이를 자랑하고 향유하며, 투자하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고가 그림을 산 고객은 ‘쉬쉬’ 하며 구매 사실을 철저히 감췄는데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것이다. ‘1타 수학강사’ 현우진(34) 씨는 MZ세대 컬렉터 중 가장 화제를 모으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10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세계적인 블루칩 작가 쿠사마 야요이(90)의 추상화 ‘Gold Sky Nets’(2015)를 36억5000만원에 낙찰받았다. 그리곤 SNS에 작품 이미지를 포스팅하며 ‘네 번째 Nets’라고 썼다. 경매사 측은 낙찰자를 밝히지 않는 게 불문율이지만 고객이 이렇게 만천하에 밝히는 것은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씨는 지난 7월 서울옥션 대구경매에서도 쿠사마의 녹색 추상화 ‘Infinity Nets’를 31억원에 낙찰받았다. 그리곤 이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오징어게임’의 복장을 하고서였다. 절친 몇 사람만 불러 조용히 자랑하는 기존 컬렉터와는 달리,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공감을 유도하는 신세대식 행동이었다. 그는 올 들어 쿠사마의 추상화를 4점이나 산 ‘찐팬’이다. 이를 위해 120억원이나 썼다. “도대체 연봉이 얼마길래 초고가 블루칩 작품을 줄기차게 사느냐”는 궁금증이 제기됐는데 미국 스탠퍼드대학 수학과 출신인 그의 연봉은 200억원대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 씨는 국토부 발표 ‘2021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중 최고가 주택인 ‘더펜트하우스 청담(P129)’에 거주 중인데 애경그룹 오너, 박인비 프로, 고소영-장동건 부부가 이웃이다. 호황기에는 인기작가들의 작품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게 마련이다. 단색화 거장이자 블루칩 작가인 박서보(90)의 작품은 최근 들어 가격이 수직상승 중이다. 2005년까지만 해도 박서보 그림은 대형작품을 기준으로 경매에서 3000만원에 팔린 게 최고 기록이었다. 2006년 호황기로 접어들며 1억5000만원에 낙찰됐는데 서양과 중국의 거장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이었다. 하지만 단색화가 국제적으로 조명받고, 해외 유력 화랑과 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지면서 작품값이 급등했다. 최근에는 ‘금보다 비싼 작품’으로 꼽힌다. 지난 10월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1986년 작 ‘연필 묘법’이 12억원에 낙찰됐다. 또 다른 단색화 거장인 윤형근, 정상화의 경우도 2005년 이전까지는 경매에서 1000만원대에 머물렀다. 그러던 것이 2007년 호황 때 한 차례 올랐고, 최근 경매에서는 대작의 경우 10억원 안팎에 거래된다. 15년 전에 비하면 약 100배 오른 셈이다. 이들 단색화 블루칩 외에 이건용, 김구림, 이강소 등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약진도 눈부시다. 허리에 해당되는 50, 60대 작가 중에는 ‘숯의 화가’ 이배가 ‘포스트 단색화’ 주자로 두각을 보이고 있다. 30~40대 작가들 중에도 그림값이 폭등하는 이가 적지 않다. 우국원, 문형태, 김선우 등이 그들로서 10년 전 작품값이 100만~200만원대였으나 최근에는 1억원을 육박하거나 넘어서고 있다. 그림만 나오면 곧바로 사겠다는 대기자도 넘쳐난다. @img4 내러티브가 있는 그림으로 SNS와 대중매체에서 인기를 얻은 우국원(45)은 2019년에만 해도 가격이 700만~8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스타들이 소장한 것이 알려지면서 최근 케이옥션 경매에서 2점이 각각 1, 2억원대에 팔렸다. 1m가 조금 넘는 오리그림은 2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우국원은 지난해 경매기록이 0건인데 올해는 25억원어치(28점)가 판매됐다. 경매에 나왔다 하면 20회 이상 경합을 보이며 추정가의 10~15배를 뛰어오르고 있다. 문형태와 김선우도 마찬가지다. 2019년 500만원대에 팔린 김선우의 회화는 지난 9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1억1500만원에 거래됐다. 2년 만에 약 20배 오른 셈이다. 이러니 갤러리들은 “경매에서 가격이 너무 올라 작품 팔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미술품이 감상의 시대를 넘어 투자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미술품을 활용한 재테크인 ‘아트테크’도 친숙한 용어가 됐다. 20~40대 구매자의 진입과 투자를 목적으로 한 작품 구매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NFT(대체불가능토큰) 시장까지 더해지며 단타 투자가 크게 늘고 있다. 그간 미술 투자는 그림에 대한 ‘향유와 애호’가 전제조건이어서 ‘10년 이상 장기투자’가 정설이었다. 작가 관리를 철저히 하는 갤러리 중에는 판매계약서에 ‘작품을 3년 내에 되팔 수 없다’는 규정을 넣기도 한다. 투기를 막기 위한 조처인 것. @img5 하지만 시장이 뜨거워지면서 그 같은 룰이 무너지고 있다. 화랑이나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산 뒤 곧바로 되파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경매에서 그림을 산 뒤 페어에 내놓는 경우도 많다. 지난 8월 경매에서 31억원에 팔리며 ‘국내 생존작가 최고가’를 경신한 이우환의 회화 ‘동풍’이 불과 두 달 만에 키아프에 나와 재판매되자 전문가들은 아연실색했다. ‘낙찰서류의 잉크도 안 말랐을 텐데. 자동차도 아닌 예술품을 어찌 저리 돌리냐’며 혀를 찼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2006~2007년의 호황 때도 눈이 아닌 귀로 그림을 사는 경향이 확산됐고 투기세력이 유입되며 시장이 폭망했다. 학습효과를 받았음에도 당시의 패착을 반복하는 조짐이 벌써 보인다”며 “대선 이후 각종 경제정책의 변화로 유동성 변화가 올 듯하나 호황세는 2, 3년은 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화랑과 경매사, 작가들의 체질 개선이 잘 이뤄지느냐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일각에서는 벌써 거품론이 제기되고 있다.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작가 작품값이 6개월 만에 10배 뛰는 등 단기간에 가격이 급등하고, 묻지마 투자가 횡행한다는 진단이다. 미술에 대한 관심, 시장의 확대는 환영할 일이나 투기적 시장과열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미술평론가 김종근 씨는 “MZ세대가 한국 미술시장을 확장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들을 진정한 컬렉터 멤버로 키우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몇 년 안에 이 작품이 두 배로 오르느냐? 가격상승을 보증해 줄 수 있냐?’고 묻는 구매자 중에는 가격이 안 오르면 수집품을 경매에 미련 없이 내던질 이들이 많다. 결국 거품이 허무하게 꺼지며 또다시 폭망을 되풀이할 우려가 크다. 이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컬렉션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트컬렉터는 작품이 좋아 컬렉션하는 사람과 되팔아 이익을 남기는 투자자로 양분할 수 있다. MZ세대 등 젊은 층은 후자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모처럼의 호황으로 영세했던 국내 미술계가 도약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미술시장의 주체가 시장의 내실을 다지고, 확장성을 제고하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14년 전의 전철을 되풀이할 공산도 있다. 내년부터는 한국 미술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매료된 해외의 유력 화랑과 시장관계자들이 더 많이 몰려들 전망이다. 이들에게 안방 시장을 고스란히 내주지 않으려면 한국 미술시장 플레이어들의 역량 제고와 체제 정비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고수들과 맞서 싸우려면 실력이 관건이니 말이다. 너무 낙관하지도, 너무 비관하지도 말고 상황을 정밀 분석하고 전략을 잘 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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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호

안보현, OTT로 전 세계 시청자 홀리다

|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 배우 안보현이 국내외 OTT를 점령했다. 넷플릭스의 ‘마이네임’에서 마약수사대 에이스 형사 전필도로, 티빙 ‘유미의 세포들’에서는 게임개발자 구웅을 연기하며 전혀 다른 캐릭터와 연기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티빙 ‘유미의 세포들’...안보현이 연기한 ‘구웅’ 국내 OTT 티빙은 인기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드라마로 제작했다. 세포들과 함께 먹고 사랑하고 성장하는 평범한 유미(김고은)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안보현은 유미의 첫 번째 남자친구 구웅을 높은 싱크로율로 소화해 냈다.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이 결합됐는데,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질 세포가 어떻게 나오는지 감이 안 왔어요. 저 역시 너무나 궁금했죠. 대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리딩하면서 고민도 많았고요. 그래서 첫 촬영 때 이입을 많이 못하기도 했어요(웃음). 처음엔 힘들고, 자칫 만화 채널 투니버스처럼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편해지더라고요.” 안보현이 맡은 구웅은 원작에서 장발의 헤어스타일에 수염을 기르는, 약간의 패션 테러리스트 기질이 보이는 인물로 그려졌다. 안보현이 구웅을 맡았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걱정 어린 목소리가 있었지만, 스틸컷 공개와 동시에 이는 기우임을 입증했다. “원작이 워낙 강렬하잖아요. 처음에 감독님, 작가님이랑 인사하고 대면했을 때 굳이 원작 캐릭터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짧은 머리로 가도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이전에 웹툰 원작 ‘이태원 클라쓰’를 해보기도 했고, 유미의 첫 번째 남자친구로 시작을 하는 건데 원작을 보셨던 분들의 기대치는 만족을 시켜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구웅의 시그니처인 긴 머리, 수염, 슬리퍼는 꼭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막상 긴 머리에 수염을 한 제 모습을 봤는데 저도 보기 힘들더라고요(하하). 작품을 위해 많이 내려놓고 캐릭터에 이입하려고 노력했는데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큰 힘이 됐어요.” 극중 구웅은 연애를 하면서도 1순위는 자기 자신인 인물이다. 그렇기에 연애를 하면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상대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캐릭터를 연기하며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는 어느새 구웅에게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웅이가 유미의 집에 처음 갔는데 배탈이 나는 장면이 있었어요.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가는데 변기가 넘치거든요(하하). 다른 드라마에서 애인의 집에서 화장실을 쓰는 경우는 있지만 변기가 막힌 경우는 없었잖아요. 저는 넘치는 변기를 뚫지 못했을 것 같은데 구웅은 가능한 인물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웅이를 완전히 인정했어요. 받아들이지 않고 ‘구웅은 이런 게 가능한 인물이야’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6화를 계기로 제가 구웅한테 녹아들었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시즌1은 원작의 큰 틀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시즌1에서는 유미의 성장과 첫 번째 남자친구 구웅과의 만남부터 이별이 그려졌다. 안보현은 작품을 시작하면서부터 결말이 그려진 인물을 연기해야 했기에 아쉬움이 더 묻어났다. “원작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하하). 저도 웅이를 너무 좋아하고,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 것 같아요. ‘유미의 세포들’이 시즌1 하나로 끝날 작품은 아니잖아요. 원작에서도 그렇듯, 유미가 저와 헤어지면서 더 재미있어지고 새로운 캐릭터가 나오니까 제가 이미 웅이가 돼 버려서 애틋해서 그런지 아쉬움이 많이 남긴 하죠.” 마지막 회에서 유미와 구웅의 결별이 그려질 때 웅이의 감정 서사가 자세하게 그려지지 않아 시청자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웅이를 연기한 안보현은 “시청자들의 해석을 위한 열린 결말인 것 같다”고 답했다.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기도 하고, 원작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각색은 됐지만 웅이의 성향과 캐릭터를 원작에서 고스란히 가져와서 그런 에피소드들이 나온 것 같아요. 만약 웅이가 자존심을 내세워 이별을 택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텐데 자신이 늘 1순위였던 구웅이 자신보다 소중한 존재가 유미임을 알게 되잖아요. 그러고 나서 이별을 택하는데 웅이가 유미를 위해 보내준 건지는 시청자들의 해석을 위해 열린 결말로 하신 것 같아요.” ‘유미의 세포들’ 시즌2는 구웅과 헤어진 유미의 다음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원작에서 두 번째 남자친구로 나오는 유바비(진영)와의 연애가 나올 예정이다. 이에 안보현은 “시즌2를 웅이의 마음으로 볼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구웅, 바비, 순록 중에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전 그래도 구웅을 택할 거예요. 제가 구웅을 하면 어떨지 너무 궁금했고 도전하고 싶었거든요. 큰 애정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저도 녹아들었는데 시즌2 방송이 되면 웅이의 마음으로 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촬영하면서 유미가 바비랑 있는 걸 보면 질투를 느끼기도 했고요(하하). 그래서 시즌2에서 유미가 웅이랑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저도 이렇게 애정을 가진 작품인 만큼 너무 큰 추억이 된 작품이 됐어요. 누군가 힐링이 필요하다고 하면 추천해 주고 싶은 대표작으로요.” 쉼 없는 연기 활동...tvN ‘군검사 도베르만’ 도전 이번 ‘유미의 세포들’은 ‘마이네임’과 비슷한 시점에 공개됐다.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했기에 이를 접하는 시청자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없었을까. 그는 “오히려 좋았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됐는데 우려는 없었어요. 외국 분들은 ‘유미의 세포들’에 출연한 걸 보시고 제가 ‘마이네임’에도 나왔다는 걸 모르시더라고요(웃음). 각 캐릭터가 다르고 다채로워서 좋았어요. 보시는 분들도 ‘안보현이 저런 캐릭터가 가능하구나’라는 걸 느껴주셨던 것 같고요. 동시에 한 게 저한테는 오히려 좋았던 것 같아요(하하).” 2016년 영화 ‘히야’로 데뷔한 걸로 알려졌지만, 그는 올해 연기 8년 차를 맞았다. 크고 작은 조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며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졌다. 그리고 공백기가 없을 정도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선보였다. “데뷔하고 연기를 시작하면서 두 달 이상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태양의 후예’(2016) 이후부터 쉰 적이 없어요. 작은 역할부터 계단을 밟아가는 것처럼 성장한 것 같아서 감사하죠. 또 여기까지 잘 버텼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도 있고요. 거짓말처럼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현장 가는 게 너무 좋아요. 큰돈을 벌고 싶다는 것보다, 이 직업이 신기하고 재밌거든요. 한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변호사, 형사, 게임개발자도 할 수 있잖아요(웃음). 이 모든 게 배우로서만 승화시킬 수 있는 작업이라서 쉬지 않고 더 하고 싶어요.” 올해에만 두 작품을 선보인 안보현은 특별한 휴식 없이 tvN ‘군검사 도베르만’ 출연을 확정 지었다. 국내 최초 군법정 액션을 그린 이 작품에서 안보현은 군복 벗을 날만을 학수고대하는 군검사 도배만을 맡았다. “저도 처음이라 기대가 커요.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군검사라는 게 저한테는 너무 생소했거든요. 넷플릭스 ‘D.P.’를 통해 군대 장르물에 많이 관심을 가지시는데 이 작품은 군대 안에 검사가 있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선과 악을 지켜가며 군 검사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성장 드라마인 거죠. 저도 처음 시도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임하려고 해요(웃음). 작품을 통해 강인한 군검사가 있다면 어떤 모습인지 보여드리고 싶어요. 기대해 주세요(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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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호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TV+' 3파전…가장 잘하는 '킬링 콘텐츠' 대격돌

|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넷플릭스가 장악한 국내 OTT 시장에 해외 콘텐츠 공룡 디즈니와 애플TV가 뛰어들었다. 이제는 세계 주류로 우뚝 선 K콘텐츠 생산에 나서는 3대 글로벌 콘텐츠 기업의 킬링 콘텐츠와 차별화 전략에 관심이 모이는 시점이다. 넷플릭스 선점한 국내시장...디즈니+, 애플TV 진출 누가 뭐래도 올해 OTT 업계 부동의 승자는 넷플릭스다. 상반기부터 ‘승리호’, ‘스위트홈’의 흥행을 거쳐 하반기 ‘오징어게임’으로 정점을 찍었다. 넷플릭스의 강점은 다소 폭력적이거나 수위가 높은 소재를 택해 자유로이 표현할 자유를 크리에이터에게 보장한다는 점이다. 자연히 장르물에 특화된 콘텐츠가 넷플릭스의 대표작들이 됐다. 전 세계 유료 구독자들도 넷플릭스의 무기다. 올해 3분기 기준 넷플릭스 누적 가입자 수는 2억1000만명이 넘는다. 누구나 넷플릭스를 깔고 이를 통해 콘텐츠를 감상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국내 시청자들은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도 더 이상 지상파와 케이블TV를 통해 보지 않는다. 이제 온라인 플랫폼에 공급된 케이블 드라마와 예능들을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한다. 넷플릭스의 지위가 공고해지는 와중에 해외의 거대 콘텐츠 기업들도 속속 국내 진출을 선언했다. 지난 11월 12일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는 월트디즈니 사의 OTT 서비스로 디즈니 스튜디오, 픽사 등의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키즈 콘텐츠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마블 스튜디오, 스타워즈, 내셔널 지오그래픽, 20세기 스튜디오 작품 등 계열사 콘텐츠들도 전 세계에 걸쳐 충성도 높은 팬층을 거느렸다. ‘애플TV+’는 지난 11월 4일 국내에 본격 론칭했으나 국내에는 OTT 업체나 콘텐츠 기업이란 인식이 확고한 편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승승장구해 온 애플사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을 거란 업계의 기대감은 높은 편이다. 앞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이 애플TV+의 ‘파친코’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국내 사용자들에겐 처음 소개됐다. 디즈니+, 독보적 키즈 콘텐츠·‘마블作’ 서비스 해외 론칭 이후 지난 11월 국내에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에선 먼저 총 9개 시즌이 동시에 공개되는 마블 최고의 웰메이드 오리지널 시리즈 ‘완다비전’으로 구독자들을 끌어모았다. 엘리자베스 올슨과 폴 베타니 주연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작품으로 디즈니+에서 처음 선보이게 된 마블작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MCU에서 가장 강력한 히어로인 완다와 비전 스토리를 통해 더욱 거대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엘리자베스 올슨은 2014년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때부터 연기한 완다로 돌아온다. 적수 없는 키즈 콘텐츠 외에도, ‘마블민국’이라 불리는 국내 팬층이 애타게 디즈니+의 론칭을 기다려온 이유다. 마블 스튜디오 사장이자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인 케빈 파이기는 “완다와 비전은 MCU에서 가장 강력하고 복잡한 히어로이며, ‘완다비전’은 MCU의 스토리텔링을 확장해 주는 완벽한 포인트”라며 마블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실제로 ‘완다비전’은 MCU 작품들과의 연결고리가 되는 새로운 비전으로서의 역할과 회당 제작비 약 300억원의 초대형 스케일을 자랑한다. 보고 또 봐도 발견되는 이스터에그의 향연은 물론 미스터리한 스토리에 액션을 더해 ‘어벤져스: 엔드게임’ 직후의 시점으로 마블 팬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세계관을 그려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흥행작이 디즈니+ 론칭과 함께 국내 마블팬들을 자극했다. MCU 최고의 빌런이자 인기 캐릭터인 ‘로키’의 모든 것을 담아낸 오리지널 시리즈 ‘로키’가 바로 그것.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탈출에 성공한 로키가 세상의 시간을 어지럽힌 죄로 TVA에 체포된 후, 살기 위해 또 다른 시간 속 로키를 잡아야 하는 미션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로키는 MCU 빌런 최초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앞서 해외 공개 이후 뜨거운 호평과 함께 시즌2 제작까지 이미 확정됐다. 국내에서도 두꺼운 팬층을 거느린 ‘로키’는 해외 공개와 동시에 89만 가구가 시청한 기록을 세우며 이미 화제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디즈니+의 첫 한국 오리지널은 SBS ‘런닝맨’의 스핀오프 예능 ‘런닝맨: 뛰는 놈 위에 노는 놈’이다. 올해 공개를 예정 중인 이 프로그램은 ‘런닝맨’의 멤버 김종국, 하하, 지석진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게스트들과 함께 방송에서는 선보이지 못한 차별화된 소재와 업그레이드된 미션을 수행한다. 매주 변화되는 특별한 게스트들을 통해 유쾌한 케미스트리, 예측 불가한 아이디어와 프로그램의 경계를 허무는 기발한 소재들로 찾아온다. 애플TV+, 해외 오리지널 본격 양산 주목 애플TV+에선 지난 11월 한국 출시와 동시에 첫 오리지널 ‘Dr. 브레인’을 공개했다. 이선균 주연의 첫 시리즈 ‘Dr. 브레인’이 순차적으로 공개된 데 이어 톰 행크스 주연의 ‘핀치’, 제니퍼 애니스톤과 리즈 위더스푼이 주연 및 총괄 제작한 ‘더 모닝 쇼’, 제이슨 모모아, 데이브 바티스타, 알프리 우다드가 출연하는 ‘어둠의 나날’ 등이 애플 오리지널로 공개를 앞두고 있다. 아직 일정이 나오지 않았지만 배우 윤여정, 이민호 주연의 ‘파친코’ 역시 기대작이다. 이 밖에도 월 페렐 및 폴 러드 주연 및 총괄 제작의 ‘의사 그리고 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덴젤 워싱턴과 프랜시스 맥도먼드 주연의 ‘맥베스의 비극’, 마틴 스코세이지 및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안톤 후쿠아 제작 및 윌 스미스 주연의 ‘해방’, 여러 장르를 혼합한 영화이자 마허샬라 알리, 나오미 해리스, 글렌 클로즈, 아콰피나가 출연하는 ‘백조의 노래’, 줄리안 무어 제작 및 주연의 ‘샤퍼’ 등 화려한 오리지널 라인업이 준비된다. 애플TV+의 차별점은 넷플릭스, 왓챠와는 달리 업계 최초 오리지널 콘텐츠만 제공하는 영상 콘텐츠 구독 서비스라는 점이다. 다만 애플TV 앱을 통해서는 왓챠, 넷플릭스 등 타 OTT 서비스를 불러와 애플TV 플랫폼에서 바로 감상이 가능하다. 바로 이 점이 가장 주목받는 기능으로 가입자들을 대거 이끄는 유인책으로 꼽힌다. 휴대폰에 해당 앱 하나만 있어도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타사 OTT에 바로 연동돼 애플TV 플랫폼 안에서 더욱 편리한 기능과 UI를 통해 한꺼번에 콘텐츠 관리와 관람을 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상영 중인 최신 영화들도 기존 OTT에 시간차를 두고 출시됐던 것과 달리 애플TV에서는 가장 빠르게 작품을 대여, 구매해 감상이 가능하다. 기존에 넷플릭스, 왓챠 등에서는 극장 상영이 다 끝난 뒤에야 해당 판권사와 사후 계약을 통해 정해진 기간 동안만 서비스할 수 있었다. 애플TV 애플리케이션 안에서 모든 OTT 서비스 호환이 가능하고, 애플TV+ 4K 하드웨어를 통해 가장 생생한 기술적 환경을 구현한다. 애플은 그동안 가장 잘해 왔던, 늘 색다른 사용자경험을 선사한다는 전략을 이번에도 폭넓게 구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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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호

분청사기 굽는 도예가 허상욱

| 조용준 논설위원 digibobos@newspim.com 도자기 그릇 하면 유럽 브랜드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일 터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브랜드는 멸종 직전에 몰려 있고, 대형 백화점이나 럭셔리 편집숍의 생활자기 판매장에는 거의 유럽 브랜드 제품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러니 국내 제품들은 이들 사이에 초라하게 끼어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형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려청자를 몰랐던 고종 임금 지금 우리 자기들이 처해 있는 곤궁한 지경은 고려청자를 모르고 있던 고종의 일화를 연상시킨다. 조선이 시나브로 망해가던 어느 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고종 황제에게 고려청자를 보여줬다. 그러자 고종이 이렇게 물었다. “이 도자기는 어느 나라 거요?” 이토가 말했다. “이 나라 고려 시대 것입니다.” 그러자 고종이 말했다. “그런가요? 이런 물건은 이 나라에는 없는 거요.”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참 기가 막힌 일화다. 조선의 왕은 정작 청자를 모르고, 조선 각지의 무덤을 파서 도굴해 이를 일본으로 실어나른 이토가 청자를 더 잘 알고 있던 것이 처참하기만 한 당시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것을 제대로 모르고, 이를 굳이 알려주려 하지도 않는 비극적인 도자문화의 상황은 지금이라고 많이 나아졌다고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도자기 하면 청자와 백자부터 떠올리지만, 정작 청자와 백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주방이나 거실 한쪽에 청자와 백자 제품 하나라도 있기나 한가? 왜 이렇게 됐을까. 생활자기로서 국내 제품들이 외면받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우리 자기가 시선을 못 끄는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인 문제다. 세련되고 현란한 서구의 문물에 길들여지고 한껏 눈이 높아진 우리 소비자들 시선에 우리 제품들은 너무 낡고 둔탁하며, 심지어는 조악한 느낌마저 든다. 그럼 이런 현실에서 탈출할 방도는 없을까. 사지선다형 항목을 잘 고르는 방법을 최고의 목표로 상정한 듯한 교육과 그런 시스템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이 나라 특성상, 우리의 디자인 수준은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기 어렵다. 도자 디자인 쪽에서는 특히 그렇다. 여전히 도자 몸체를 성형하는 ‘물레대장’과 그 몸체에 그림을 그리는 화공의 작업이 분화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도자 디자인의 발전은 매우 요원하다. 분청사기, 현대 도예가 나아가야 할 미래 학교와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것에는 분청사기(粉靑沙器)도 있다. 분청사기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줄임말로 고려 말에서 임진왜란 30~40년 전까지(1392~1592년 무렵) 만들어진 도자기다. 분청사기의 흙은 고려청자와 같은 일반 점토질이다. 철분이 섞여 거칠어진 겉면을 하얀 분(백토)으로 분장했다고 해서 분청사기로 불린다. 형태와 장식 면에서 청자와 백자가 귀족적이라면, 분청은 소박하고 서민적인 해학이 물씬 느껴진다. 문양은 크게 과장됐으나, 규범에 구애받지 않은 즉흥적 표현이 보는 사람에게 천진난만한 자유를 선사한다. 마치 장자(莊子)가 말하는 거대한 새 ‘붕(鵬)’이 창공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듯 아스라하고 힘찬 날갯짓이다. 이런 분청에 대해 영국의 세계적인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Howell Leach, 1887~1979)는 “속물적 근성이 없는 자연스러움의 극치”라고 찬양하면서 “현대 도예가 나아갈 길은 조선의 분청사기가 이미 다 제시한바, 그것을 목표로 해서 나아가야 한다”고 그 가치를 평가했다. 그렇다. 분청은 우리 도예가 나아가야 할 미래이고, 현재의 척박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큰 분야다. 우리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머그(mug)의 예를 들어보자. 머그 없는 집은 거의 없지만, 유럽산 제품 아니면 정체 불분명의 조악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런 것 대신 도예가 허상욱의 분청 머그 하나를 대체해서 놓아보자. 아마, 매우 세련되면서도 그윽한, 그러면서도 현대적 미감이 더해진 편안한 느낌의 분위기로 확 바뀔 것이다. 동양적 미학의 절정, 허상욱의 모란무늬편병 허상욱의 작품에는 분청이 주는 편안함과 자유로움, 해학의 미감이 잘 녹아 있다. 허상욱이 오로지 분청 작업만을 고집하는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앞에서 분청 머그를 예로 들었지만, 허상욱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모란 무늬(문양)의 편병(扁甁)이다. 편병은 몸체의 양쪽 면이 편평하고 납작한 모양에서 생긴 말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술이나 물 등을 담아 휴대하는 용도로 꾸준하게 제작됐다. 모란이 가득 들어 있는 허상욱의 모란무늬편병은 서양의 것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동양적 미학의 절정을 이룩해 낸다. 그렇지만 고루하지 않고 세련되게 화사하며, 정감이 있다. 묵으로 그린 단색의 화초가 마치 가장 화려한 색조로 피어나는 느낌이랄까. 늦봄, 뭇 꽃들이 진 자리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모란의 크고 화려한 꽃송이는 탐스럽고 찬란한 인생의 아름다움, 풍요와 번영을 상징한다. 살아서는 부귀영화와 환희를, 죽음 후에는 영원한 안녕과 번영을 기원한다. 그런 꽃이 옅은 갈색 바탕의 편병에 가득 피어나 있다. 살아 있을 때에는 감상의 즐거움과 심상의 편안함을, 죽어서는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는 편병이다. 편병에 가득한 모란을 형상화하는 기술은 ‘박지(剝地)’라는 기법이다. 질(태토)로 그릇을 빚은 후 배토로 분장을 하고 문양을 그린 뒤, 배경 부분을 긁어내어 무늬를 드러낸다. 서양에서는 이탈리아 말로 스그라피토(Sgraffito)라고 한다. 분청 작업에는 박지 말고도 음각, 상감, 인화, 귀얄, 덤벙 등 많은 기법이 있는데, 허상욱은 박지로 문양을 내길 즐겨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리움미술관에서 보물 1070호 박지 모란문 장군(물, 술, 간장 따위의 액체를 담아서 옮길 때 쓰는 길쭉한 모양의 항아리)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얻은 감동과 영감을 잊을 수 없었다. 내 박지 작업은 그 보물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라 할 수 있다. 문양을 그린 다음에 긁어내는 작업이 참 재미있고,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주로 모란꽃을 그리는 이유는 “작은 꽃들은 옹색한 느낌이 들어 큰 꽃을 찾다 보니 모란이 제일 적당했다”고 했다. 물론 모란이 지니는 상징성도 큰 이유가 됐다. 허상욱의 박지 작품 가운데는 어문(물고기 무늬) 장군도 있다. 예부터 분청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양은 물고기와 연꽃이다. 쏘가리 종류라고 생각되는 물고기는 혼자 있거나, 연꽃과 같이 노닌다. 허상욱의 장군에는 물고기와 새, 연꽃이 함께 등장한다. 허상욱은 특히 쌍어문(雙魚文)에 관심이 많은데, “아무래도 선조인 허왕후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한다. 가야 수로왕의 왕비로 인도에서 온 허왕후를 이야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쌍어문이다. 가락국의 국장(國章)이자 신앙의 상징으로 사용된 쌍어문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물고기가 인간을 보호하는 영특한 존재로 여겨 사용하던 문장이다. 이후 인도에 전파되고, 힌두교의 여러 신상(神像) 중 하나가 되어 널리 사용됐다. 지금도 가야의 옛땅이었던 경남의 여러 불교사원에는 쌍어문이 남아 있다. 김해의 은하사, 계원암, 합천의 영암사에 쌍어문이 그림이나 조각으로 있다. 쌍어신앙은 조선시대까지 계속돼 선비들이 사용하던 묵(墨)에도 그려지고, 여인네들의 노리개에도 달리게 됐다. 2000년 전 한 여인의 국제결혼이 이렇게 지금까지 우리 문화 속에 살아 숨쉬고, 이윽고는 허상욱의 장군에도 등장하게 됐다. 소박한 분청 사발에 어느새 퐁당 들어와 앉은 물고기 한 마리. 화장토에서 올라온 질박한 백색과 질이 내는 묘한 청회색의 호수를 유유히 떠다니는 물고기 꼬리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나 역시 덩달아 그 물에서 둥둥 헤엄치는 듯하다. 물고기는 마음을 묘하게 울린다. 허상욱은 대학에선 도예과를 나왔지만, 군대를 다녀와 복학생 시절 방송국에서 미니어처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일이 재미있어서 그 길로 계속 갈 수도 있었는데, 3학년 때 호암미술관에서 분청사기를 보고 그만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청자나 백자보다는 분청이 제일 만만해 보였다.” 물론 이런 그의 생각은 곧 엄청난 잘못임을 깨달았지만, 분청의 자유분방함이 만만하게 보이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은 분청사기를 만드는 도예작업이 그의 삶의 모든 것이 됐다. 1997년 경기도 양평에 작업실과 집을 짓고(결혼도 그때 했다) 현재까지 25년 넘게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부인이 대학 캠퍼스커플이었기 때문에 그의 도자 일에 대한 불평은 전혀 없다고 한다. 그의 수상을 보면 1993년 산업미술가협회공모전 입선과 한국출판미술대전 동상을 시작으로, 1994년 전국대학미전 은상, 1996년 소사벌미술대전 최우수상, 2003년과 2005년 세계도자기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입선과 특선, 2006년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공모전 특선 등이 죽 이어졌다. 상복도 많은 편이다. 지난 10월 15일부터 11월 7일까지 연 서울 효자동 솔루나(Soluna) 갤러리의 ‘허상욱 분청 스펙트럼: 환희, 의미와 확장’전까지 1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국제전시회도 런던 사치갤러리 등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다. 현재 런던의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폴란드 바르샤바의 국립민속박물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현재 재료의 다양성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미래지향적인 재료 찾기다. 그는 새로운 재료를 찾는 것이 “고고학자가 발굴하듯 과거의 무엇을 탐구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화장토의 새로운 가능성 찾기나 은 도금 실험도 이런 차원의 노력이다. 분청에 은을 입히는 작업은 3~4년 전부터 해오고 있는 작업이다. 재벌구이한 몸체에 은을 바르고 800도 정도에서 3벌구이를 한다. “최근 꽃병 주문이 늘어났다. 아무래도 코로나로 인해 바깥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이런 새로운 수요가 생긴 것 같다. 이처럼 대중의 소구력은 늘 변한다. 21세기의 분청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물음을 늘 달고 산다. 새로운 시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화려한 유럽 브랜드의 꽃병도 좋지만, 허상욱의 분청 편병이나 장군에 꽃을 꽂아보면 어떨까. 틀림없이 꽃을 돋보이게 만들 것이다. 플로리스트들에게 허상욱의 분청을 눈여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분청은 오래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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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호

‘매의 눈’ 아트컬렉터 설원기 교수와 10문10답

“작가가 보이고, 성숙함이 보이는 그림 고르세요”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미술품 수집가는 극소수였다. 대부분이 ‘현대미술은 도무지 모르겠다’며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그러나 MZ세대가 등장하며 일상에서 미술을 향유하는 경향이 자리 잡고 있다. 자금 여력이 있는 층은 컬렉션에 적극 나서기도 한다. 최근 주식 및 가상화폐 투자로 돈을 번 이들 중 미술품 투자에 눈을 돌린 이도 많다. 그 여파로 국내 미술시장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까. 때마침 ‘매의 눈’을 지닌 컬렉터로 정평이 난 설원기 교수(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가 자신의 소장품을 모아 서울 북촌의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화가이자 교육자, 수집가인 그의 전시는 오늘날 큰 이슈로 부상한 아트컬렉션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음은 설 교수와의 10문10답. Q. 어떤 계기로 소장품 전시를 하게 됐나. 컬렉션 공개를 꺼리는 이가 많은데.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컬렉션 전시가 여러 차례 열렸다. 예전 세대들은 수집품 공개를 꺼렸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작품을 살 때도 화랑이라든가 전문가 조언에 의존하기보다 자기 취향대로 고른다. 나를 사로잡는 그림이라면 주저 없이 수집한다고 할까. 나는 이런 추세가 무척 고무적이고 반갑다. 소장가의 서로 다른 취향을 보여주는 전시가 늘었으면 하는 뜻에서 장(場)을 펼치게 됐다. Q. 소장품이 얼마나 되나? 모두 82점이 출품됐다. 이번 원앤제이에 나온 82점이 모두 내 소장품은 아니다. 82점 중 38점이 내 컬렉션이고, 나머지는 국내외 작가 35명이 전시에 맞춰 출품한 것이다. 그래서 타이틀을 ‘1+1 소장가의 시선’으로 달았다. 내가 수집한 작품은 근작도 있지만 10~20년 전 작품이 많고, 작가들이 낸 작품은 신작이 많아 작업의 변화 과정을 자연스럽게 살필 수 있다. 20여 년에 걸친 내 컬렉션은 100여 점으로, 충남 아산의 작업실에 보관 중이다. 대체로 작은 그림들이고, 값비싼 작품은 별로 없다. 요즘 ‘억’대 작품이 비일비재하지만 이번에 나온 작품의 구입가 중 450만원이 최고가다. Q. 컬렉션에 차세대 블루칩 작가 작품이 많던데. 내 컬렉션을 보고, 함께 나온 작가 작품을 구입한 미술팬이 많았다고 들었다. 비슷한 것도 있고, 세월이 흘러 확 달라진 그림도 있었는데 반응이 좋았다니 반가웠다. 그러나 내 안목이 꼭 최고라고 생각진 않는다. 화가로 데뷔한 지 40년이 넘고(설원기는 미국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뉴욕서 활동하다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예술교육자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지만 다른 이들이 모두 내 취향을 좇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가까운 곳에 두고 오래 음미할 작품을 고르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Q. 그래도 이번 전시를 보니 유망 작가를 쏙쏙 찾아낸 안목이 대단하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통찰력이 완벽하진 않다. 오랜 기간 남보다 많은 작품을 접한 건 사실이고, 그 때문에 끌리는 작업은 분명히 있다. 추상화도 있고, 인물화도 있고, 평범한 풍경화도 있다. 장르는 별 상관이 없는데 작품 자체보다는 ‘그 작업을 한 사람이 뚜렷하게 보일 때’ 작품을 산다. Q. ‘작가가 보이는 작품’이란 어떤 것인가. 작품은 작가를 거울처럼 고스란히 비춰준다. 시대가 급변하고, 작품 제작기법이 빠르게 바뀌어도 말이다. 나는 스테인리스스틸로 거대한 강아지와 꽃 조각을 만드는 미국의 제프 쿤스 작업이 멋있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보면 즐겁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작가가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영국 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에선 작가가 또렷이 보인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미학 또한 끝없이 진화한다. 그 진화 속에 작가가 우뚝 서 있다면 진보하는 것이고, 현대적이라 생각한다. 진화하면서 독특함을 뿜어내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런 작품을 만나면 설레고, 집에 걸고 싶어진다. Q. 그런 설레는 작품이 많았나. 2013년 도쿄 분카무라미술관에서 스페인 거장 안토니오 로페스 가르시아의 개인전을 관람했다. 뒷마당의 모과나무, 고향 풍경, 주변 인물을 그리는데 뛰어난 묘사력에도 미완성처럼 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그런데 부족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의 진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에 모든 과정 속에서 작가가 보였다. 여건만 됐다면 샀을 것이다. @img4 Q. 컬렉션 중 드로잉 작품의 비중이 많다. 우리 미술시장에선 드로잉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측면이 많다. 밑그림 정도로 낮게 보는데, 외국에선 미술의 주요 장르로 본다. 드로잉이야말로 작가를 잘 드러내는 장르라 늘 주목한다. 김범의 검은 드로잉은 자화상 같아서 망설임 없이 샀다. 한진, 빈우혁, 이순주, 황지윤의 드로잉도 모두 작가들의 모습이 투영돼 있어 좋았다. Q. 당신이 고르면 블루칩 아티스트가 된다는 말도 있다. 과찬이다. 단지 제자들 전시는 빼놓지 않고 가서 둘러본다. 꼭 내 제자가 아니라도 학교 졸업 후 첫 개인전을 여는 작가들의 작업은 눈여겨보고 끌리면 산다. 손현선의 무덤덤한 작품(‘흐르는 면’)은 작가의 자유로운 생각의 흐름이 좋아 샀고, 일본인 작가 곤도 유카코의 회화는 놀랍고도 신비로워 수집했다. 어둠이 깔린 주차장을 포착한 김현정의 ‘끈적한 밤, 목소리’는 뻔한 풍경을 깊은 감성으로 남다르게 표현한 게 좋아 결정했다.(그는 젊은 작가 한진, 노은주, 빈우혁, 구지윤, 이호인, 이은새 등도 주목했는데 모두 차세대 블루칩 작가로 부상 중이다. 또 서용선, 안창홍, 안규철, 김근중, 김지원 등 미술계에서 명망이 높은 중견작가 작품도 여러 점 수집했다.) @img5 Q. 작품을 작가로부터 직접 사는지. 나는 작품을 가능하면 화랑에서 산다. 이번에 소개한 컬렉션은 모두 갤러리를 찾아 구입한 것들이다. 미술 발전에 화랑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 딱 한 점, 문진영의 드로잉(2005년 작)은 작가에게 샀다. 물감 살 돈이 없다고 해서 그의 드로잉 몇 점을 사준 적이 있다. 문진영은 이번에 7년째 작업 중인 유화를 출품했는데 붓질 하나하나에 치열한 분투가 보이더라. Q. 미술을 투자대상으로 여기는 수집가도 있다. 투자를 앞세운 컬렉터를 문제시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런 컬렉터도 나름대로 순기능을 한다고 본다. 실제로 미술의 역사가 그랬다. 작품을 산다는 건 작가를 지원하는 것이고, 투자가 목적이었던 컬렉터도 오랜 세월 예술을 접하다 보면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자신의 방식대로 작품을 수집하면 된다. 남의 시선이나 트렌드에 얽매이지 말라고 조언하겠다. 컬렉션은 그 작품에 자신을 쏟아부은 작가를 곁에 두는 것과 매한가지니 내가 끌리는 작품을 고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작품에서 작가의 성숙함이 보이면 더할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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