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09월호
청자에 화사한 봄꽃 가득... 도예가 최수진의 '청춘예찬'
| 조용준 논설위원 digibobos@newspim.com
청자에 봄꽃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그 종류도 여러 가지다. 자목련, 백목련, 벚꽃, 양귀비...
기실 최수진 개인 도예전 ‘靑瓷에 春을 그리다’는 지난 5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열렸다. 그래서 작가는 일부러 작품 도록 제목의 ‘靑’자와 ‘春’를 더 크게 써서 아래 위로 읽히게끔 배치해 놓았다. 따라서 전시 제목은 ‘청자에 청춘을 그리다’라고도 읽힌다. 봄은 청춘이고, 청춘은 역시 봄꽃처럼 화사하다.
그런데 최수진 도예전의 여파는 봄에만 머물지 않고 이 뜨거운 여름에도 계속 진행 중이다. 봄꽃을 넣은 최수진 청자의 매력이 알음알음 알려져 여기저기서 작품 구입 문의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7월 말에 코엑스에서 열린 ‘2022 경기도자페어&핸드아티코리아’에서도 최수진 부스는 문전성시, 작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도자 갤러리 ‘살롱 드 화려(華麗)’에서는 아예 최수진 작가의 상설전을 열고 있다. 차와 도자기에 대한 살롱 클라스를 진행하기도 하는 이 갤러리는 특별히 한 공간을 할애해 최 작가의 찻잔이나 다관 등을 진열하고 상설 판매도 하기 시작했다.
최수진 도예전 ‘靑瓷에 春을 그리다’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봄을, 청춘을 느끼게 해준다. 청자에서 삶의 환희가 피어난다. 그러나 우리 삶의 환희가 어디 봄에만 피어나는 것일까. 여름이면 더 파릇파릇 생명력의 물기가 오르지 않던가.
우리에게 청자는 오랫동안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자기였다. 청자의 색깔도 박물관 청자의 색만 비색인 줄로 여겼다. 그래서 우리에게 청자는 고색창연한 물건이다. 아름답지만 뭔가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자기였다. 대개는 현대적으로 재현한 청자도 무늬가 대부분 상감으로 구현돼서 나이 많은 어르신의 감각에 어울릴 듯한 물건이라는 선입견이 먼저 다가왔다.
또 하나, 청자에는 흔히 균열이 있다. 이를 빙렬(氷裂)이라고 한다. 빙렬은 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굽는 일이 끝난 다음 자기가 식기 시작하면서 태토(질)와 유약의 수축도가 달라서 생긴다. 유약이 녹은 유리질에 금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청자에 빙렬이 없으면 청자가 아니라는 고정관념도 생겼다. 그러나 청자에 꼭 빙렬이 있어야만 할까. 빙렬이 없는 청자가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을까.
최수진의 청자에는 빙렬이 없다. 최수진은 일부러 빙렬을 만들지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미적 세계에 빙렬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청자에는 꼭 빙렬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도 오래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청자에 화사한 꽃들을 넣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최수진은 그가 원하는 발색(發色)을 위해 모든 작품을 다섯 번 이상씩 구웠다. 한두 번의 굽기로는 색이 연해서 제대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색을 얻기 위해 일일이 다섯 번 이상 굽는 고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니 자그마한 잔 하나라고 만만히 여길 것이 아니다.
도자기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들이 왕왕 최수진 청자에 대해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비색(翡色·청자에서 나타나는 엷은 녹색 혹은 청색)은 무엇인가?”그러면 최수진은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내 마음의 비색이 바로 비색이다.”
최수진은 청자에 온전한 꽃을 피워내기 이전, 음각의 꽃 수술에만 릴리프(relief·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로 노란색 포인트를 주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아주 작은 부분만 노란색 강조점을 주면 작품 전체가 놀랍도록 화사해지고, 그 릴리프가 없느냐 있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나타났다.
그런 강조 포인트는 이번에 전시한 거의 모든 작품에도 등장한다. 무늬의 한 부분을 돋을새김으로 강조해 만지면 매끄럽지 않고 까칠한 느낌을 주는 작업을 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는 작품에 대한 작가의 고집과 정성을 대변한다. 작품에 하나라도 더 심미성에 ‘감각의 즐거움’을 더한 것이다.
사실 청자에 꽃 그림을 그려 넣는 일은 서양의 ‘포슬린 페인팅(porcelain painting)’ 기법이다. 최수진은 청자에 꽃을 넣기 위해 오래전부터 이를 따로 익혀 왔다. 지난 2019년 11월에 열었던 4번째 개인전 ‘청자, 꽃을 피우다’는 어찌 보면 청자에 꽃을 넣겠다는 방향성만을 잡은 것인지 모른다. 꽃 작업에 대한 선언이자 프롤로그였다고나 할까. 그러니 좀 더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진정한 꽃작업은 이번이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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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시작이었고, 여름꽃이나 가을의 단풍, 겨울 자작나무가 청자에 등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 그의 작업은 매우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장에서 모듈로 찍어내듯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또 한 번의 개인전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 오랜 기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의 다음 작품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최수진은 단국대 도예학과에서 학사·석사를 마치고 현재 박사 과정 재학 중이다. 도예학과 외래교수로도 출강하고 있다. 이번이 다섯 번째 개인전이다. 어렸을 적부터 점토로 무엇인가 조물딱조물딱 만들기를 좋아했던 소녀의 꿈이 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정말 훌륭한 청자 작품을 만들어냈다.
최수진은 최근 제1회 경상북도 우리그릇 전국공모전에서 청자 다관으로 특선을 수상했다. 또 지난 5월에는 제21회 사발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8월 25일부터 28일까지는 이탈리아 마투레스에서 열리는 여류 도예가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9월 이탈리아 파엔차 비엔날레의 전시도 앞두고 있다. 최수진은 지금 한창 봄날이다.
“흙은 나를 표현해 주는 또 하나의 일상이다. 그중 화려하면서도 따스함을 지닌 청자는 단연 내가 닮고 싶은 삶의 기준이고, 매번 나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준다. 사람들은 흔히 일이나 현상이 무르익게 되거나 번성하게 됨을 지칭할 때 ‘꽃을 피우다’라고 말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찬란한 꽃을 피웠던 청자가 이 시대에 나의 손끝에서 다시 피워나길 꿈꿔 본다.” - ‘작가노트’ 중에서.

2022년 08월호
‘계란 후라이’로 피운 꽃나무 최현주 개인전 ‘상상의 기억’
| 조용준 논설위원 digibobos@newspim.com
그림 제목이 ‘마릴린 먼로를 사랑하는 스파이더맨’이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보면 계란 후라이 꽃이 활짝 피어난 나무다. 이 묘한 조합은 대체 무엇인지.
갤러리 마리(서울 종로구 경희궁 1길)가 7월 5일부터 8월 5일까지 최현주 개인전 ‘상상의 기억’을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놓인, 평범한 물체로 구성된 사물들을 통해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고자 한다.
스파이더맨은 사랑하는 마릴린 먼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벚꽃나무에서 그네를 타고, 고무 오리는 잎이 무성한 호수의 귀족이 되고, 계란들은 생명과 재탄생의 상징이 된다. 이는 꿈속에서나 가능한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억압된 무의식, 현실적인 연상을 뛰어넘어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환상적인 것에 무제한적인 도전을 하는 듯하다
우리는 전시에서 사물에 대한 각성과 세상 속에서의 우리의 겸허한 위치를 느끼는 동시에 탄생과 재생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마주하게 된다. 난데없이 등장하는, 매우 당황스러운 오브제인 계란 후라이들(더구나 계란 후라이로 이루어진 꽃나무나 부케라니!)은 매우 뜬금스럽기도 하지만, 최연주 그림에서는 여러 기능을 하고 또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삽입돼 재탄생의 주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부화되지 않은 형태의 알은 정의할 수 없는 잠재력, 아직 정형화되지 않은 생명력을 나타낸다. 이 알들은 생명의 근원이자 활력의 표현이며, 명확한 기능을 가짐과 동시에 계속해서 정체성이 진화해 나가는 상태를 표현한다. 즉, 이들은 정의되지 않은 잠재력과 확립된 정체성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현주 개인전은 아이와 같은 영감으로 가득하다. 작가의 어릴 적 순수하고 즐거웠던 경험이 우리 곁을 지켜주는 따뜻함과 행복함을 공유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작가 최현주는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1년 홍익대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갤러리 담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을 비롯해 2022년 갤러리 마리에서의 ‘상상의 기억’까지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뜻밖의 발견-세렌디피티’(사비나미술관), ‘원더풀 픽쳐스’(일민미술관), ‘ASOLO 비엔날레’(이탈리아) 등 수많은 그룹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삼성전자 등에 주요 작품들이 소장돼 있다.
다음은 작가의 작품세계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일문일답이다.
Q. 전시명 ‘상상의 기억’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나.
A. ‘상상’이란 것과 ‘기억’이라는 단어는 언뜻 유사한 느낌이 들지만 상상은 비현실적인 미래, 기억은 현실 기반으로 과거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서로 상반된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기억을 단지 상상해 내는 것이 아닌, 상상했던 것들을 기억해 작업한 작품들을 보여주려고 했다. 즉 ‘상상의 기억’이란 유년 시절 내가 꿈꿨던 꿈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생각으로 제목을 지었다.
Q. 그렇다면 작가는 특별히 어떤 기억들을 떠올리고 싶은가.
A. 내가 관심 갖게 된 사물들은 어린 시절 가족들로부터 시작됐다. 할아버지가 키우신 새들의 소리와 모양, 여러 꽃들, 아버지가 보여주셨던 마른 해마, 상어 지느러미, 생소한 열대 과일들은 어린 나에겐 모든 것이 관찰과 재미있는 상상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특히 맏딸로 엄마의 식사 준비를 도우며 접한 각종 채소, 생선, 닭, 계란 등을 가까이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면서 그 사물의 본질에서 벗어나 상상의 세상에서 다른 의미로 재탄생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잊고 획일화되고 상상의 즐거움이 사치였던 회색의 시간을 지나 주부가 되고 여행을 다니고 작업을 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은 다시 기억됐고 새로운 생명력으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Q. 작가에게 ‘계란꽃’은 어떤 의미인가.
A. 채소나 과일이 땅에서 자란 것이라면 ‘계란’이라는 것은 새나 닭, 즉 동물에서 나온 생명으로 확연히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계란’이라는 것은 우리가 먹지 않았다면 아마 생명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접시 위의 따뜻한 계란 후라이를 바라보며 나는 이율배반적이게도 생명으로 만들어진 후라이를 미안함보다는 아름다운 꽃으로 생각하게 됐고, 먹고 없애는 인간의 잔인한 행위에서 작품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작업에 계란 후라이는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기도 하고, 생명을 키우는 땅이 되기도 하고, 사랑을 전달하는 행복한 비행사가 되기도 한다. 이런 계란 후라이라는 대상을 통해 행복한 상상력을 끊임없이 이어나갈 수 있었고, 관람객 또한 즐거운 상상력에 동참하면 좋겠다.
Q. 작가의 그림 속 사물이나 장소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A. 화가인 남편(추니박)을 만나면서 많은 곳을 여행하며 작업하는 삶을 살았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소재는 많은 여행과 나의 삶에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새로운 사물들에 상상력이 더해져, 어린 시절의 기억에 더해져 지속적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내게 여행은 단지 장소성의 변화라는 물리적 이동만이 아니라 그 과정 안에서 새롭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상상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여행 외에도 일상에서 마주한 사물들 중 유독 관심을 갖게 되는 대상으로부터 계속해서 내 작업의 모티브들은 새롭게 생겨난다.
Q. 계란꽃에 핀 야생화는 어떤 의미인가.
A. 산과 들, 절벽에서 자생으로 생명력 있게 자라나는 야생화는 강렬한 화려함보다는 낮은 자세로 관찰해야 볼 수 있는 작고 소박한 꽃들이다. 하지만 사람이 가꾸지 않아도 춥거나 더운 날씨에서도 살아 나갈 수 있는 강인한 생명을 갖고 있다.
계란 후라이에서 피어난 꽃들은 사진 동우회로 활동하시는 엄마(80)가 10여 년간 찍어온 야생화 사진들을 보고 작품에 그리고 있다. 나는 자연에서 사생을 해서 작업을 하지만 이 야생화 꽃만은 엄마의 사진을 보고 그린다. 그런 방식으로 엄마와 소통할 수 있는 콜라보 작업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Q. 작가의 작품엔 정원, 상상, 꽃, 기억, 사랑 등에 관한 주제가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A. 정원, 상상, 기억, 사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결혼과 육아, 삶이라는 현실을 맞이하며 더욱 강하게 생겨난 거 같다.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들이 그림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했고 이 주제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됐다.
계란 후라이 꽃들, 여행을 통해 갖게 된 추억, 가족·친구와의 사랑과 죽음, 생명의 존귀함, 끝없는 상상 등의 주제들은 각각 개별적인 것이 아닌 서로 핏줄처럼 유기적으로 연관돼 한장 한장 글이 쓰여 책이 되듯 그림 안에 저의 해석을 통해 표현되고 서로 연결돼 나간다.
Q. 아크릴과 캔버스 작업을 하는데 현대 동양화적 분위기가 풍긴다. 그 이유는.
A. 재료에 다한 구별로 전공을 이야기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동양화의 전통성에서 현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관심이 많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집중하며 난을 치듯 선에 의해 여백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표현된 공간의 아름다움이 동양화적 느낌을 갖게 하는 것 같다.
Q.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작가의 어떤 점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감상하길 바라는가.
A. 1층부터 2, 3, 5층까지 이어지는 작품들을 관람하며 작품 안에 숨어 있는 작은 이야기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가져보면 좋겠다. 가시를 쥐고 있는 손가락 사이, 주전자에서 나오는 물줄기에 같이 나오는 단어들, 모래사장에 쓰인 글 등 곳곳에 나의 기억과 상상력들을 관람객과 공유하고 싶다. 이 공유를 통해 즐거운 기억과 여운을 갖는 관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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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할 계획인가.
A. 내게 작업은 공기와 같은 것이다. 나 자신과 분리될 수 없는 어떤 고난에 처하면 희망에 대한 절실함을 더욱 강렬히 느끼는 것처럼 그 둘은 분리될 수 없다. 나는 주위에 대한 관심과 관찰, 내 삶 안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계속해서 새롭게 인식하고 새로운 방식과 더욱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할 계획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오히려 삶의 무게가 가벼워짐을 느낀다. 더욱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고, 작품에 대한 열정적인 마음을 즐거운 상상력을 통해 작품으로 보여드리고자 한다.

2022년 08월호
나홀로 뜨거운 아트마켓 정점 찍고 조정기 접어드나?
MZ세대 고객 대거 유입...하반기 완만한 호황 전망
신진작가군의 불안한 가격랠리는 주의해야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경제 적신호에도 잘나가는 아트마켓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미술시장이다. 지구촌 아트마켓은 온갖 악재에도 나홀로 뜨겁다. 해마다 6월이면 세계 최고의 슈퍼리치들과 ‘큰손’ 컬렉터들이 일제히 모여들어 인구 17만의 스위스 도시 바젤을 열기로 몰아넣는 아트바젤(Art Basel)은 올해도 대호황이었다. 수십억, 수백억 원짜리 작품이 척척 팔려나가며 방문객들을 들뜨게 했다.
특히 세계 톱 갤러리인 하우저앤워스는 공식 개막도 하기 전인 VIP프리뷰에서 미국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3.35m 크기 조각 ‘거미’를 4000만달러(약 517억원)에 팔아치워 화제를 불러모았다. 페어 출품작 중 최고가 기록이다. 다른 메이저 화랑들도 투자가치가 높은 미술품을 들고 나와 컬렉터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독일의 유명 갤러리 에스더 쉬퍼는 스위스 작가 우고 론디노네(58)의 조각과 그림을 사겠다고 몰려드는 고객들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특히 한국에서 온 컬렉터들은 VIP프리뷰 전에 솔드아웃된 론디노네의 작품을 어떻게든 구매하겠다며 전시장을 떠나지 못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축소됐거나 온라인 페어로 대체됐던 ‘아트바젤’과 ‘아트바젤 홍콩’은 올 상반기 닷새간의 오프라인 장터에서 각각 조 단위 판매액을 기록했다. 정확한 매출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아트바젤 홍콩은 1조원대, 아트바젤은 2조~3조원대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경매시장도 선전하고 있다.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 세계 3대 경매사들의 최근 1년간 경매실적은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됐다. 크리스티는 지난 5월 뉴욕 경매에서 앤디 워홀의 ‘블루 마릴린’을 1950만달러(약 2500억원)에 낙찰시켰다. 이로써 크리스티는 2017년 4억5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팔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도르 문디’(구세주)에 이어 가장 비싸게 팔린 미술품 1, 2위를 모두 취급한 경매사가 됐다.
미술시장 바로미터인 경매시장, 거래둔화 신호
국내 미술시장 또한 인플레이션 공포, 고물가, 금리 인상 같은 악재에도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 주식시장은 얼어붙고, 코인은 깨지고 있으나 아트마켓은 승승장구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7월 발표한 K-ARTMARKET 리포트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미술시장은 역대 최대인 5329억원의 거래액을 기록했다. 아트페어와 화랑이 호황을 주도했고, MZ세대와 신규 컬렉터가 대거 진입하면서 1970~80년대생 미술가들의 감각적인 작품이 완판 러시를 이루고 있다.
미술품을 감상하고 소장하려는 고객층이 증가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자 백화점과 유통업체도 아트 비즈니스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신세계, 롯데, 현대백화점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미술품 전시와 판매 사업을 경쟁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또 직접 아트페어도 개최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미술품판매사업 강화를 위해 국내 1위 경매사인 서울옥션 인수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술품 경매시장은 몇몇 불안한 시그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국내 미술품 경매는 ‘역대급 호황’이었던 작년에 비해 거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또 블루칩 작품들이 잇따라 유찰되는 등 조정기를 예측케 하는 신호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유가 및 원재료 가격 상승, 고금리, 인플레이션 징후 등으로 미술품 역시 안전한 투자재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최근 발표한 ‘2022년 6월 미술시장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메이저 경매의 평균 출품작 수가 감소세로 선회했다. 즉 2021년에는 회당 167점이었는데 올해 6월에는 회당 126점으로 24.5% 감소했다.
센터 측은 “경매시장은 올 상반기부터 거래량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경매사는 판매 가능한 작품만 경매에 올리기 위해 하반기에는 선별을 더욱 강화할 것이고, 양질의 작품을 보유한 컬렉터들은 시장 위축이 예상되자 위탁을 미루고 관망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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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역대 최대 거래 규모를 기록한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에서 최고 낙찰률을 보였던 유명 작가들의 고가 작품이 최근 들어 줄줄이 유찰되며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케이옥션 경매에 나왔던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With Winds)’(1990)는 추정가가 6억2000만∼9억원이었으나 유찰됐다. 작년이었다면 추정가를 훌쩍 뛰어넘으며 낙찰됐을 공산이 매우 큰 작품이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경매에 나왔다 하면 거의 낙찰됐던 쿠사마 야요이 작품도 고가 작품은 안 팔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작품만 팔리고 있다. 김환기·김창열·박서보 등 인기작가들 작품도 중저가 소품 위주로 낙찰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으로 미술품 가격은 전반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술계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작가의 작품, 실제 가치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된 작품은 거품이 꺼질 여지가 크다. 주연화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급격하게 가격이 오른 작품, 국내시장에서만 통용되는 작품은 조정을 받을 것이다. 반면에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은 향후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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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감정연구센터 이호숙 대표는 “국내 미술시장은 아시아 최대 규모로 열리는 9월의 ‘2022 프리즈 서울’로 인해 성장세가 계속될 것이다. 현재 안팎으로 기대감이 매우 크다. 공격적인 구매 성향을 지닌 국내 컬렉터들은 이 매머드 쇼에서 유수의 해외 갤러리와 직접 컨택하며 (작품을 척척 구입하면서) 플렉스하려 할 것이고, 외국 화랑들은 한국 컬렉터들을 주요 클라이언트 리스트에 올리고 싶은 욕망 때문에 적극 호응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런데 문제는 ‘악화되는 경제 상황이 미술시장에 파급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는 윌리엄 괴츠만 예일대 교수의 분석을 감안할 때 2022 프리즈 서울은 ‘미술시장의 찬란한 정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파티가 한창일 때 파티가 끝난 후 뒤처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몫이라 믿는 게 늘 문제의 시작”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미술품 투자는 빠르게 고수익을 내고자 할 경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안정을 추구한다면 수익을 양보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현 시점은 수익을 우위에 둘 것인지, 안전하게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다. 또 시장 전반의 거래량과 유동성을 예의주시하며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결국 전문가들도 쉽지 않은 게 미술 재테크인 것이다.

2022년 08월호
‘종이의 집’ 김홍선 감독 “원작 특성은 살리되 한국미 넣었죠”
|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
스페인의 강도단 이야기가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이의 집’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각색됐다. 리메이크답게 큰 틀은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한국 특유의 색깔들을 담아냈다.
통일을 앞둔 한반도가 배경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종이의 집’이 리메이크됐다. 드라마 ‘보이스’, ‘손 the guest’ 등의 작품으로 선 굵은 장르물을 선보였던 김홍선 감독은 스페인 조폐국을 점거한 강도단을 다룬 원작의 큰 틀은 해치지 않는 선에서 통일을 앞둔 한반도라는 새로운 배경을 한국판에 담아냈다.
“2018년에 리메이크 기획을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원작이 이 정도의 글로벌 히트작은 아니었어요(웃음). 당시에도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한국에서 리메이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원작이 히트를 하고, 그때부터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부담이 없다고 하면 당연히 거짓말이고요.”
원작은 ‘교수’라고 불리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한 범죄 전문가들이 스페인 조폐국을 점거, 수억 유로를 인쇄해 도주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동경제구역’이라는 부제가 더해진 한국판은 한반도를 배경으로 천재적 전략가와 각기 다른 개성 및 능력을 지닌 강도들이 기상천외한 변수에 맞서며 벌이는 사상 초유의 인질 강도극을 그렸다.
“일단 리메이크라는 것 자체가 원작의 대중성과 특성을 가져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국판을 제작하지만 그 특성은 그대로 가져오려고 했고요. 기본적으로 큰 틀은 흔들고 싶지 않았던 거죠. 원작이 워낙 재미있었거든요.”
원작과 새로 탄생한 ‘종이의 집’의 차이점은 바로 통일을 앞둔 한반도가 배경이라는 것이다. 그 외의 이야기는 원작을 고스란히 따라갔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독창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리메이크를 할 때 원작의 특성을 그대로 가져가지 않을 거면 다른 작품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한국판을 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총기 사용이었고요. 원작에서는 총기 사용이 빈번한데, ‘과연 대한민국에서는 총기를 사용하는 은행 강도가 일어날 수 있을까?’ 이거였거든요. 큰 설정은 가져오되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인지를 철저히 따졌죠.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원작에서 강도단은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가면을 쓴다. 반면 한국판에서는 하회탈을 쓴 강도단이 등장한다. 그리고 조폐국에도 한옥 등 한국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조폐국은 한옥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성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밖에서도 쉽게 들어가지 못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갇힌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한국적인 문양을 살리려고 최대한 노력하며 만들었죠.”
작품의 큰 틀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모두의 호평을 받은 부분도 있다. 바로 캐스팅이다. 유지태와 김윤진, 박해수, 전종서, 이원종, 김지훈, 김성오 등 개성 강하고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해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우선 캐릭터와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게 1순위였죠. 원작이라는 틀이 있어서 최대한 캐릭터가 잘 맞는 사람과 작업하려 했고요. 원작 느낌을 살리면서도 한국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들이 필요했거든요. 가장 많은 고민을 한 건 바로 유지태 배우였고요. 교수 역할에 대해 스스로도 고민을 많이 하셨거든요.”
김 감독이 가장 삼고초려한 배역이 바로 유지태가 맡은 교수 역할이다. 극 전체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인물인 데다 비상함까지 겸비해야 한다. 또 원작 캐릭터가 가진 ‘너드미’가 가장 큰 고민의 요인이었다고.
“교수라는 캐릭터 자체가 너무 틀이 정해져 있는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유지태 배우와 캐릭터를 놓고 굉장히 많은 대화를 했죠. 제일 어려운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원작 캐릭터가 가진 너드미를 살릴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죠. 그러다 서로 결정한 게 새로운 한국 교수의 이미지를 하자는 거였고요.”
“새로운 등장인물 나오는 파트2, 재미있을 것”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원작 시즌 1, 2에 대한 내용을 총 12부작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파트1 내용의 6화가 최근 공개됐다. 파트2 공개일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촬영은 이미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이다.
“파트를 나누는 건 저희가 아닌 넷플릭스의 전략이었어요(웃음). 촬영은 지난해 이미 다 끝나서 지금 후반 작업 중이고요. 모든 공개 시점과 파트를 나눈 부분은 넷플릭스의 결정에 따랐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작은 벌써 파트5까지 공개됐다. 방대한 스토리에서 김 감독이 선보이는 스토리는 원작의 시즌 1, 2에 해당한다. 방대한 양을 최소한으로 줄이다 보니 남다른 고충은 있었지만 파트2에 대한 재미를 강조했다.
“많은 내용을 12부로 압축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큰 틀은 유지하면서도 우리 이야기를 넣어야만 했거든요. 원작이 가진 장점도, 단점도 있는데 단점을 줄여보고자 했죠. 그러면 진행이 빨라질 것 같더라고요. 파트2에는 새로운 등장인물도 있어요.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정말 재미있다는 겁니다. 하하.”

2022년 08월호
계속되는 연예계 학폭 논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다
|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
연예계가 학교폭력(학폭)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스포츠계에서 시작된 학폭 논란이 연예계로까지 번졌다. 이로 인한 n차성 폭로글이 더해지면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가요계에서는 데뷔 무산과 활동 중단 사태도 이어지고 있다.
빠르게 번지는 연예계 학폭 논란
지난해부터 연예계는 학폭 논란으로 심한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 JTBC드라마 ‘SKY캐슬’로 이미 한 차례 논란에 휩싸였던 조병규는 지난해 1월 해당 의혹이 제기된 후 1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두 차례나 학폭 의혹을 받았다. 소속사 측과 배우는 해당 사실을 부인했고, 첫 번째로 피해를 주장한 글쓴이는 해당 글을 삭제하고 선처를 호소,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피해자가 등장해 조병규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소속사 측 역시 “조병규의 학교 폭력 의혹을 추가로 제기한 유포자에 대해서는 선처 없이 대응할 방침이다.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조병규로 물꼬가 트인 연예계 학폭 논란은 빠르게 번져갔다. 이후 여섯 명의 피해자가 더 발생했고, 이들은 각 박혜수, 김소혜, 세븐틴 민규, 김동희, 진해성, (여자)아이들 수진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IST엔터테인먼트가 새롭게 선보이는 신인 보이그룹 ATBO의 경우 데뷔도 하기 전에 빨간불이 켜지기도 했다. 최종 멤버로 확정됐던 양동화가 과거 학폭 논란에 휩싸였고, 소속사 측은 이를 인정하며 “멤버 데뷔와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하이브 최초 걸그룹’이란 타이틀을 얻은 르세라핌 멤버 김가람 역시 과거 논란으로 인해 데뷔 전부터 구설에 휘말리면서 데뷔 3주 만에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소속사 쏘스뮤직은 ‘악의적 음해’라며 그의 학폭 의혹을 부인했지만, 피해자 A 씨가 김가람과 피해자가 재학했던 중학교 명의의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 결과 통보서를 근거로 내놓으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소속사는 김가람 역시 학폭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학폭위에서 5호 처분(교육이수 6시간, 동조 제9항에 따라 학부모 특별교육이수 5시간)을 받았다는 것으로 인해 대중은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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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큰 사랑을 받은 남주혁도 인기를 다 누리기도 전에 같은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 6월 자신이 남주혁에게 학폭을 당했다는 피해자 A 씨는 “욕설을 하며 때리는 일도 매일 일어났다”며 “급식 시간에 몸으로 밀며 새치기를 한 것은 기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소속사 매니지먼트 숲은 모든 사실을 부인하며 “제보자를 상대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장을 제출했다. 신속한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남주혁의 실추된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소속사의 강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남주혁에게 학폭을 당했다는 세 번째 동창생이 등장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소속사 측은 해당 사실을 모두 부인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소속사들의 강경 대응으로 인해 피해를 주장했던 글쓴이들은 해당 글을 지우고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였던 이들이 가해자로 바뀌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소속사의 시름 역시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아티스트의 학폭 논란이 발생하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여러 차례의 확인을 거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학폭 관련 글이 올라오면 소속사 측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티스트와 해당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또 피해자에게 연락을 취한 후 자세한 야야기를 듣고 학교 및 당시 담임선생님, 그리고 연락이 닿는 같은 반 학우들에게 확인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사람이 학우들과 사이 좋게 지내지 못했던 것처럼,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더 친하고, 덜 친한 학우들이 있고 그중에 의견 차이 등으로 말다툼을 하기도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러한 다툼을 부풀려 지금 학폭 바람이 불고 있으니 예전 다퉜던 악감정을 되살려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기 위해 거짓 폭로글도 넘쳐나는 상황”이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특히 “거짓이라고 밝혀져도 이미지가 중요한 아티스트들은 이미 타격을 입기에 피해는 고스란히 아티스트의 몫이 된다. 학폭 바람에 휩쓸려 악의적인 글이 올라오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호소했다.
박송아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학폭은 스타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진위 파악이 어려워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 반박하기 어렵다. 그래서 의혹 제기만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우려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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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n차 폭로...“제작 단계부터 인성 중시를”
예전엔 학폭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질 경우 사건이 일단락됐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학폭 피해를 본 소속사들이 법적 대응을 예고하며 강경 대응을 시사하고 있지만, n차성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박 평론가는 n차 폭로의 원인을 이전과 달라진 SNS 매체의 발달로 꼽았다. 그는 “과거에는 학교폭력을 밝힐 수 있는 매체가 없었다면, 이제는 익명성 가진 학폭 증언글이 피해자 또는 제3자가 퍼오는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고 있다. 피해자 혼자 떠안을 수밖에 없던 문제를 대중화해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왔기에 학폭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소속사는 배우나 가수를 발굴, 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실력과 외모보다는 인성을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이라며 “대중과 미디어에 노출되는 직업인 만큼 도덕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07월호
혁신템? 디지털 쪼가리?...혼돈의 NFT 아트마켓
코인 폭락 여파...전망 엇갈려
메타버스 보편화될 때까지 논란 불가피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대체불가토큰(NFT) 마켓이 코인 폭락으로 혼란에 빠졌다. 작년 하반기부터 올 초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수직상승하던 시장이 3월을 기점으로 급락세에 돌입했다. 지난 5월 3일 자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NFT 거래량이 5월 들어 하루 1만9000건 수준으로 지난해 9월에 비해 92%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최대의 NFT 거래장터로 한국인도 많이 이용하는 오픈시(OpenSea)도 거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3월 월간 이용자는 약 25만명으로 1월에 비해 절반 아래로 뚝 떨어졌고, 전반적인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의 ‘최초 트윗 NFT’는 지난해 봄 290만달러(약 35억원)에 팔리면서 큰 화제를 모았는데 1년 만에 400만원대로 떨어지며 그야말로 찬밥 신세가 됐다. 6월 현재는 입찰가가 78달러까지 하락한 상태다.
글로벌 NFT 마켓을 이끄는 최고 대장주로 꼽히며 마돈나, 스눕 독, 저스틴 비버 등이 구매해 더욱 유명해진 ‘지루한 원숭이 요트 클럽(BAYC)’도 최근 한 달 새 20% 이상 값이 떨어졌다. BAYC는 특정 NFT를 소유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를 운영해 ‘하이엔드 NFT’로 군림했으나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NFT 하락세를 피해 가진 못했다.
이 같은 하락세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릴라 이미지를 독특하게 변주한 국내 최고 인기 NFT ‘메타콩즈’ 또한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메타콩즈는 NFT에 입문하려는 투자자들에게 ‘넘사벽’이었다. ‘K-NFT’의 대표주자로 작년 말 첫 민팅(분양) 시 20만~30만원이었던 가격이 불과 한 달 만에 가장 싼 콩즈가 500만원을 상회하며 20배로 뛰자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희귀 콩즈는 가격이 수백 배씩 뛰었는데 미처 못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추격매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그 인기가 시들해져 240~250달러를 제시해도 매수자가 나서지 않는 콩즈가 많다.
물론 좀비고릴라 형상의 희귀템인 ‘콩즈 #4250’ 같은 경우는 여전히 종전 거래가 263만달러(약 33억원)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새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최고가에 산 이들은 받아줄 선수(?)를 만나지 못해 ‘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혼란은 사실 예고된 일이었다. 올 들어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대부분 50% 이상 폭락하면서 가상화폐로 거래되는 NFT 가격도 급속히 냉각됐다. 특히 테라-루나 코인 폭락사태로 최대 NFT거래소인 오픈시의 NFT 거래량이 급감했다.
‘미래의 예술’로 칭송받으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NFT 아트 또한 최근 들어 거래가 뚝 끊겼다. 돈이 될 거라 믿고 뒤늦게 크게 베팅했던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NFT 아트라는 미래 유망시장을 남보다 먼저 선점하기 위해 법인 설립을 서두르고, NFT 개발을 위해 전문업체와 MOU를 체결하는 등 바쁘게 움직였던 미술유통업체들은 주춤하고 있다. 국내의 한 메이저 갤러리는 NFT 아트만을 선보이는 전용공간을 만들려 했으나 이를 보류했다.
클릭 한 번으로 고수익? 과도하게 확산됐던 낙관론
미술계는 NFT 아트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이 우세했다.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했던 디지털 이미지에 고유성을 부여해 거래도 하고 투자도 할 수 있게 한 NFT는 기존 미술시장과 궤를 달리하며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작가와 고객을 다이렉트로 연결해 준다는 점에서 신예 작가들은 환호했다. 또 메타버스가 넓게 확산될 경우 심미성을 갖춘 NFT 아트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돼 아티스트와 관련업계를 들뜨게 했다.
반면에 NFT 아트의 가파른 성장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NFT 시장은 아직 기반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초기 시장이며 최근의 가격 급등은 ‘거품’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주연화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NFT 아트는 커뮤니티 구축과 관리, 시스템과 법령 정비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본말이 바뀌었다. ‘NFT 아트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에 앞서 시장이 먼저 달궈졌다”고 진단했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NFT 아트는 현대인의 욕망이 빚어낸 변종상품이다. 인기 있다는 NFT는 수천만, 수억원을 호가하는데 그 마켓은 ‘폭탄 돌리기’나 다름없다. ‘누군가는 나보다 더 비싼 값에 사주겠지’라는 생각에 가치판단도 없이 맹목적으로 뛰어들어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얼마 전 박수근, 김환기의 NFT가 나온다는 광고가 요란했으나 실제론 저작권자로부터 허락도 받지 않은 것으로 판명났다. NFT에 투자하면 떼돈을 번다는 말에 몰려든 투자자를 대상으로 사기가 횡행할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한 예로 경기도의 모 의료기기 업체는 서울의 한 미술컨설팅 업체와 손잡고 피카소, 앤디 워홀 작품 130억원어치를 수입해 와 이를 NFT로 제작해 팔려 했다. 그러나 저작권자와 아예 접촉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
엄청난 돈이 NFT 시장으로 쏠리고 있지만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미흡한 상태다. 게다가 모든 NFT가 투자 메리트가 있는 건 아닌데도 착시효과가 퍼져 있다. NFT는 말 그대로 어떤 대상을 표상하는 ‘토큰’일 뿐이다. 해당 토큰의 예술적 가치가 확실해야 NFT의 가치도 롱런할 수 있다. 신통찮은 NFT 아트는 반짝했다가 금방 가치가 추락하며, 아예 발행 초기부터 외면받는 예도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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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양대 산맥의 NFT 비즈니스
그러나 한쪽에서는 새로운 강자들이 시들해진 NFT 시장을 살리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계 최대 화랑으로 미국, 유럽, 아시아에 17개의 분점을 두고 있는 가고시안은 최근 뉴욕 본점에서 일본의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60)의 개인전 ‘역사를 관통하는 화살’을 개막했다. VIP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 고도의 전략을 펼친 이 전시에 작가는 최신 NFT 프로젝트들을 소개했다.
무라카미는 NFT 마켓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기성 미술가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데미안 허스트(57)를 비롯해 많은 미술가들이 NFT 아트에 도전했다가 대부분 쓴맛을 본 것과 대비된다. 그는 NFT 거래를 통해 무려 4100만달러(약 5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에는 ‘클론X’라는 이름의 NFT 2만개를 발행했다. 그중 희귀템은 가격이 수억원대다. 또 낮은 가격대의 ‘플라워’ 시리즈는 1만1664개를 제작했는데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무라카미 역시 작년 4월 성급하게 내놓은 첫 NFT는 실패했다. NFT 아트와 가상화폐의 맥락을 제대로 꿰뚫지 못한 상태에서 출시했기 때문으로, 이번엔 아예 문법을 확 바꿨다.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가인 제프 쿤스(67)도 NFT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달에 대해 인류의 끝없는 열망과 기술적 진보를 표현한 ‘Moon Phases’라는 조각 125점을 제작해 올해 말 아폴로17호 달 여행 50주년 기념일에 맞춰 우주로 쏘아올릴 계획이다. 그리고 이 조각의 디지털 이미지를 NFT로 발행해 뉴욕의 메가 화랑인 페이스를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앞으로 NFT는 ‘메타버스’로 가는 출입증이라는 측면에서 제도와 법령이 다져진다면 다시 동력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가상에 구축된 디지털 신세계에서 사유재산권에 준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영국의 사전 출판사 콜린스는 NFT를 “예술과 기술, 상업의 독특한 결합으로서 요즘의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정의했다. 본 적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이 ‘신종템’ 때문에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판이 우리 앞에 열렸다. 혁신이냐, 투기냐 논란 많은 NFT의 실체가 판가름날 날도 멀지 않았다. 디지털 세계는 음속 이상으로 빠르게 변화하니 말이다.

2022년 07월호
'한지 바느질 채색 동양화'로 주목...김순철 "꽃으로 피운 열망의 에너지"
| 조용준 논설위원 digibobos@newspim.com
그의 화폭에는 꽃이 피어난다. 엄청나게 큰 꽃 단 하나다. 그러나 그 꽃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심상(心像)의 꽃이다.
한지(韓紙)에 바느질로 수를 놓고(繪繡) 그 위에 꽃이나 의자, 달항아리 등을 앉히는 독특한 작업을 하는 동양화가 김순철(1965~)이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김순철의 작품들은 지난 KIAF나 ‘화랑미술제’ 아트페어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전시되는 족족 팔려나가 갤러리에서 준비한 작품 모두 소진됐다.
그도 그럴 것이 김순철 작품들은 매우 개성적이면서도 뚜렷한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투박한 전통 한지에 꼼꼼히 바느질을 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독특한 작업 방식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작품 세계는 오랜 고민과 훈련의 결과물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기 우리나라 동양화단에서는 젊은 화가들 중심으로 평면적이고 전통적인 기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려는 실험이 왕성하게 일어났다. 김순철도 그런 흐름 속에서 전통적 동양화의 오래된 틀에서 뭔가 새로움을 창출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화학적인 실험보다는 물리적인 실험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바느질과의 결합이었다.
바느질은 매우 한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작업이다. 이는 서양의 자수와도 다르다. 우리 전통 복식에는 바느질로 모란이나 학 등의 그림을 넣었다. 따라서 바느질에 의한 그림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 이전의 그림이다. 바느질 자체가 그림이 된다. 따라서 바느질과의 결합이야말로 매우 탁월한 착안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김순철은 1997년부터 바느질로 그림을 그리는 ‘회수(繪繡)’ 작업을 시도했다. 그리고 1998년 전시회에 이렇게 만든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돌아온 건 선배나 스승들로부터의 꾸중이었다. 왜 멀쩡한 바탕에 구멍을 뚫어 훼손하느냐는 질책을 들어야만 했다.
사실 한국화에선 바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회사후소(繪事後素)’. “그림 그리기는 흰 바탕을 마련한 뒤에 할 일이다.” 논어(論語) 제3, 팔일 편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 말이 동양화에선 ‘바탕을 갖춘 뒤에 꾸밈을 더해야 한다. 바른 바탕을 갖추지 않고 겉모습만 꾸미려 든다면 결국 얼마 못 가 추한 몰골이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로 통한다.
따라서 전통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바탕에 바느질을 하는 행위가 곱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순철은 바느질 작업을 그만둘 수 없었다. 바느질은 일종의 마음을 다잡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예전 우리 어머니들은 바느질로 모질고 고된 세상사의 고민을 털어냈다. 투전판에서의 놀음이나 주색잡기에 빠져 돌아오지 않는 서방을 기다라는 기나긴 저녁, 바느질로 시름을 잊고 슬픔을 이겨냈다.
그런데 김순철에게는 바느질이 자기 자신 내면과의 소통이자 타자와의 연결 통로였다. 실은 끊어진 것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화면의 앞뒤를 왕래하며 겹겹이 쌓여 저부조 형태로 수용적 기호의 형상을 이루고, 그 시간 속엔 이미 지나간 기억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설렘이 공존한다. 실의 집적체로 쌓여가는 한 땀의 바느질은 차마 풀어 떨쳐버리지 못하는 내밀한 자신과의 소통의 언어이다. 그것은 단순한 행위지만 외연과 오랜 기억 속에서 상처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무의식의 내면을 끌어내어 같은 시간상에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 한다.
“바느질에서의 뒷면은 나만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내 마음속과 같다. 앞면, 겉면은 밖으로 노출되는 우리의 일상이다.”
“한지 위에 바느질. 고단하게 반복되는 되새김질은 이러저러한 많은 생각들을 동반하게 되고, 그 시간보다 더 길고 깊은 스스로의 잠행에 들게 한다. 한땀 한땀 이어지는 행위의 흔적들은 끊임없이 거듭되는 일상의 짧고 긴 호흡이며, 무의식에 감춰지거나 억눌린 상처의 기억들이다. 긴 시간이 소요되는 지루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미세한 감정의 결들을 드러내는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이 되기도 하며, 섣불리 풀어버리지 못하는 내밀한 속내를 삭히는 자정(自淨)의 시간이기도 하다.” - 김순철 ‘작가 노트’ 중에서.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원 류철하는 김순철 작업을 이렇게 평론한다. “밀도를 표현하기 위해 두터운 한지 위에 채색을 가미하기도 하고 도드라진 형상을 문지르며 표현미를 가미하기도 한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낭만성이 풍기는 한지의 성질 위에 모노톤의 형태미와 질감으로 시간 속에 정지한 공간감, 공간 속에 부여된 시간 의식을 형식실험하고 있다. 대체로 작가의 작업 속에서 화면의 바탕을 이루는 형상층은 존재와 일상을 아우르는 시간으로, 충일하게 형상화된 윤곽들은 시간 속에 부여된 자아의 내면과 공간의식으로 해석하면 흥미롭다. 존재와 일상의 무의미를 되묻고 내면의 시간을 형태화된 감각적 형태미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순수조형의 탐미가 가져온 조형의 형식실험은 안과 밖, 부재와 실존을 아우르는 반복된 실존증명이면서 화면과 공간을 확장하는 새로운 표현 가능의 발견이다.”
그럼 이런 심상의 오브제로 삼은 대상이 왜 꽃이었을까. 처음부터 꽃은 아니었다. 김순철 초기 작업에는 항아리나 그릇이 주조를 이루고 꽃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우연찮게 2003년 독일 쾰른 아트페어에 항아리를 오브제로 한 회수 작품을 내놓았다. 그냥 추상화는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아 선택한 오브제였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이후 한동안 항아리가 작품의 주된 대상이 됐다. 그러다가 2007년부터는 꽃이 대부분이다.
“많은 분들이 묻는다. 무슨 꽃이냐고. 그러나 이 꽃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내 마음의 꽃이다. 어느 날 밭의 배추들을 보게 됐는데, 내 눈에는 그게 꽃으로 보였다. 땅에서 잎사귀들을 온통 펼치고 피어나는 것은 배추의 몸부림이다. 종족 번식을 위한 희열의 행위이자 일종의 절규다. 그런 배추들이 내게는 꽃보다 훨씬 꽃다운 형상으로 다가왔다. 배추 그 자체가 최고의 절정이자 열락에 흔들리는 꽃의 기호, 상징이다.”
그래서 김순철 작품에 등장하는 꽃은 색상과 크기만 다르지, 꽃 모양은 거의 동일하다. 마음속의 꽃이라서다. 그런데 그렇게 동일한 모습의 꽃을 나타내는 게 사실은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다. 또 꽃의 끝부분은 보통의 꽃처럼 뭉글하지 않고 뾰족하게 나와 약간 흐트러져 있다. 바로 환희의 절정의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김순철은 이러한 꽃이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의 열망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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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철이 요즘 그리는 꽃은 보라색이 많다. 보라색은 올해 처음 그렸다. “작업을 하다 보니 보라의 기운에 매우 마음이 좋아진다. 보라에도 청보라, 붉은 보라 등 수십 가지가 있는데 파동과 에너지가 다 다르다. 앞으로 모든 색깔로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김순철은 앞으로도 꽃과 의자, 항아리, 접시만을 오브제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인가 좋은 기운이 담기길 바라는 상징적, 수용적 기호다. 꽃 역시 간절한 열망의 에너지가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의 형상이다. 그의 작품명이 모두 ‘About Wish’인 것도 그러한 연유다.
김순철은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천안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곳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22년 07월호
배우 송강호의 '영화와 삶' 천만 전문 배우서 칸 빛낸 국보급으로
|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배우 송강호가 최초로 칸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000만 관객 달성 영화를 네 편이나 보유한 대표 흥행배우에서 ‘기생충’과 ‘브로커’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국보급 배우로 거듭났다.
‘브로커’는 송강호와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 등이 출연한 CJ ENM의 글로벌 프로젝트다. 연출을 맡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세계적 거장이다. 이들의 만남은 기획 단계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올해 칸에서 송강호가 값진 결실을 맺었다. 경쟁 부문에 함께 진출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감독상과 함께 최초의 성과였다.
고레에다와 첫 만남, 인격의 깊이와 혜안에 감동
“칸에 직접 간 건 6번째예요. 작품으로는 7번째인데 ‘괴물’로 초청됐을 때 감독 주간에 진출해서 봉준호 감독이 혼자 갔었죠. 17년 전쯤인 2007년에 ‘밀양’으로 전도연 씨와 함께 처음 갔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긴장도 되지만 정말 축제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수상의 어떤 긴장감이나 부담감보다는 뭔가 이 최고의 영화제에서 우리 작품이 소개된다는 그 자체가 늘 즐겁고 행복했죠. 대신 작년 심사를 할 때는 좀 부담은 됐어요. 영화들을 다 봐야 하고 늘 회의해야 하는 일정들이 좀 부담스럽긴 했어도 마음은 편했죠. 기본적으로 최고의 영화제 그 자체를 즐기잔 마음으로 서게 돼요.”
‘브로커’의 상영이 끝나고 12분의 기립박수가 이어지며, 해외의 호평도 따랐다. 덕분에 폐막식에도 초대를 받은 후 송강호는 강동원이 예측한 그의 수상 가능성에 쉽게 동조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인터뷰를 통해 송강호는 현지에서 시간상 다 하지 못한 진한 감사의 뜻을 영화와 관련된 모두에게 재차 전했다.
“정말 일일이 거명하자면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 등 배우들 포함해서 특별출연해 준 뛰어난 한국의 훌륭한 배우들, 아기까지도. 자기의 어떤 배역에서 빛나는 보석 같은 연기들이 모이고 최고의 스탭진이 그걸 받쳐서 하나의 덩어리로 완성됐죠. 그래서 칸 초청이 성사됐고 상도 받았어요. 이 모든 분들이 만들어주신 거지 제가 혼자 뭘 잘했다고 받은 게 아니란 걸 잘 알아요. 작은 장면의 모든 분들 덕분에, 제일 막내 스탭들의 열정과 재능으로 브로커라는 작품을 완성했어요.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레에다 감독 역시 자신의 수상보다도 송강호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제 일처럼 기뻐하며 여러 차례 축하를 보냈다. 송강호는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짙은 애정을 드러냈다. 동시에 영화를 찍으며 다시 보게 된, 그의 침착함에 대해 존경심을 보냈다.
“6, 7년 전에 부산영화제 때 첫 미팅을 통해 ‘브로커’ 내용을 들었죠. 2007년도에 ‘밀양’으로 칸 갔다와서 그해 호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처음 인사를 했어요. 전부터 감독님 작품을 좋아했고 존경했는데 우연찮게 만난 거죠. 감독님에 대해서 저도 선입견이 있었는데 뭔가 정교하고 완벽한 시나리오를 들고 시작하지 않을까. 현장에선 오히려 머릿속엔 다 있지만 방법, 촬영 공간을 모두 열어두셨어요. 해방감을 주면서 자유롭게 배우와 감독이 서로 소통해 가면서 만들길 원하셨죠. 그게 약간 신선하고 놀랐던 기억이 나요.”
칸에서 최고의 찬사를 들었고, 배우로서 최고 영예인 연기상도 받았지만 송강호 역시 국내 개봉을 앞두고서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고레에다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자신감도 내보였다.
“저도 참 긴장이 돼요. 설레기도 하고 어떻게 봐주실까. 아무래도 상업적인 장르 영화가 아니다 보니까 단순한 재미를 느끼시기보다 뭔가 각박한, 어려운 시기를 관통해서 따뜻한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다가가지 않을까요. 너그러이 즐기고 받아주시길 기대하고 있죠. 처음 뵈었을 때부터 감독님의 덕이라고 할까요. 뿜어져 나오는 인격의 깊이감이 정말 따뜻했어요. 언제나 어느 장면이든 어느 곳에든 무슨 얘기든 정말 침착한 시선을 유지하시죠. 침착함이 주는 깊이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예요. 배우로서 감독을 신뢰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생경하지만 거기서 오는 에너지가 기대되는 느낌이랄까요. 연출의 어떤 장면들을 옆에서 지켜볼 때 역시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 과정이 정말 매일 즐거웠어요.”
감독님의 특징을 언급하며, 송강호는 어린 아역배우들의 얘기를 자연스레 꺼냈다. 고레에다 감독은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을 비롯해 전작들에서도 다양하게 아이들과 작업하며 놀라운 결과물들을 선보였다. 이번 영화 ‘브로커’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극중 해진 역의 승수 군이 ‘태어나 줘서 고마워’란 대사를 할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때까지는 철부지 개구쟁이였는데 작품의 감정을 이해하고 어떻게 컨트롤할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할 줄 몰랐어요. 그 친구의 철부지처럼 순수한 면 때문에 모두가 즐겁게 작업하기도 했거든요. 감독님의 탁월한 능력인 것 같아요. 일본 작품들의 어린아이들도 늘 놀라웠죠. 어떻게 아이들과 소통하기에 저런 자연스럽고 순수한 연기가 나올까. 직접 해진을 통해서 그걸 보게 되니까 사람에 대한 혜안이랄까. 기본적으로 그런 것들이 없이는 안 되는 무언가가 있어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깊이감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게 감독님께 있죠.”
‘브로커’가 들추는 곳...“침착함 속 뜨거움 느끼시길”
‘태어나 줘서 고마워’라는 대사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리고, 보육원에서 자라고, 가정에서 버림받은 이들에게 다가오는 꽤 직설적인 위로다. 배우들이 여러 차례 언급한 만큼 실제 영화 속에서 꽤나 인상적이기도 하다.
“상현의 입장에서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이 말을 내 딸에게, 또는 상현이란 인물이 어릴 때 못 들었던 말로서 특정 상대를 지정하기보다 그 말 자체가 주는 울림과 여운, 현장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묘한 떨림들을 그냥 느꼈죠. 관객들이 보고 이 숨소리와 표정은 뭘까. 본인이 한이 맺힌 말처럼 들렸을까. 조금 전에 만나고 온 딸에게 차마 못한 말을 들었을까. 얼마든지 상상하고 자유롭게 생각하시길 바라요.”
특히 극중 상현이 딸과 만나는 신을 고레에다 감독이 정말 좋았다고 언급하면서, “송강호는 태양 같은 존재”라는 봉준호 감독의 조언이 재차 조명되기도 했다. 송강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재차 현장에서 보석 같은 포인트를 잡아준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칭찬해 주셔서 감독님께 감사해요. 딸과의 신은 신촌에서 찍었는데 특별히 어떤 장면이고 어떤 감정이다, 말씀도 안 하시고 제가 묻지도 않았어요. 그냥 느끼는 그대로 연기했죠. 딸로 나온 친구가 연기를 잘해 줘서 좋았던 기억이 나요. 사실 딸이 ‘진짜?’라고 하는 대사가 원래 없었는데 저 모르게 감독님이 촬영 때 시키셨나 싶어요. 그런 연출을 가끔 하신대요. 그 대사를 해줌으로써 상현의 잠재된 서러움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 애달픔이 순간적으로 덧입혀졌죠. 감독님의 디테일한 감정 연출, 딸 배우의 연기가 저를 도왔어요.”
상현 역으로 출연한 송강호가 생각하는 ‘브로커’의 주제의식은 이형사(이주영)의 대사 한마디에 담겨 있다고 했다. 그는 전작들의 표현들로 인해 누군가는 오해했을지 모를 고레에다 감독의 ‘따뜻함’에 대해 다시 강조하며 관객들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가득 안고 돌아갈 수 있길 바랐다.
“ ‘브로커는 우리인 것 같다’는 대사가 이 작품을 가장 뜨겁게 만들어요. 가장 말하고 싶은 한 줄의 주제죠. 진정한 브로커는 누구냐고. 감독의 깊은 철학을 느낄 수 있어요. 현실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되 그 차가움이 주는 뜨거운 감성을 관객들이 느끼실 거라 상상하고 장담도 할 수 있죠. 결국은 우리가 이 자리에,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서 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현실적으로, 가장 침착한 시선으로 응시한달까요.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뜨거움을 느끼시길 바라요. 모처럼 극장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셨음 해요.”

2022년 07월호
티빙·웨이브도 손잡았다…토종 OTT, 해외 OTT와 협업 바람
|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
오리지널 콘텐츠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점차 몸집을 키워 나가고 있다. 그간 자체 콘텐츠로 승부를 봤다면, 이제는 해외 OTT와 손을 잡으면서 더 많은 이용자 수 확보에 나섰다.
티빙, 파라마운트+와 협업...브랜드 전용관 론칭
국내 OTT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티빙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최정상 파라마운트+의 콘텐츠를 독점으로 공개한다. 티빙은 최근 “티빙과 파라마운트+가 브랜드관 오픈부터 콘텐츠 교류, 오리지널 콘텐츠 공동 투자 등 플랫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방위적 협력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 16일 오픈한 ‘티빙 파라마운트+ 브랜드관’에서는 파라마운트+의 최신 라인업과 독점 콘텐츠가 최초로 공개됐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앰블린 텔레비전의 저스틴 팔비, 대릴 프랭크와 343 인더스트리의 키키 울프킬과 함께 제작에 참여한 Xbox 게임 원작 블록버스터 시리즈 ‘헤일로’를 비롯해 ‘슈퍼 펌프드: 우버 전쟁’, ‘옐로우재킷’, ‘메이어 오브 킹스타운’, ‘1883’ 등 파라마운트+ 오리지널 및 독점 콘텐츠를 국내 최초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이 밖에 ‘미션 임파서블’, ‘탑건’, ‘트랜스포머’, ‘대부’, ‘포레스트 검프’ 등 파라마운트 픽쳐스의 대표작과 함께 ‘CSI’, ‘NCIS’ 등 CBS 인기 시리즈, ‘스폰지밥’과 같은 애니메이션, 코메디 센트럴의 ‘사우스파크’, MTV의 영 어덜트 시리즈 및 쇼타임 등 다양한 작품 감상도 가능해졌다.
티빙과 파라마운트+는 이번 브랜드관 론칭을 시작으로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방위적 협력을 확장할 예정이다. 지난 2월 파라마운트+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를 시작으로 총 7편의 티빙 오리지널에 공동 투자해 글로벌 시장에 선보인다는 계획을 전하기도 했다. ‘욘더’는 이준익 감독의 첫 OTT 진출작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티빙은 파라마운트 산하 스트리밍 채널인 플루토TV에도 ‘K콘텐츠 바이 CJ ENM’이라는 이름의 브랜드관을 오픈하면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유통시킬 글로벌 플랫폼을 확보하기도 했다.
양지을 티빙 대표는 “국내 대표 OTT 티빙의 독보적인 오리지널 콘텐츠와 파라마운트+의 방대한 콘텐츠가 더해져 더욱 탄탄한 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며 “앞으로 티빙과 파라마운트+의 전방위적 협력을 통해 티빙의 강력한 콘텐츠 경쟁력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로 도약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웨이브, HBO맥스와 콘텐츠 독점 계약
토종 OTT 중 한 곳인 웨이브는 지난해 7월 워너미디어의 OTT HBO맥스와 콘텐츠 독점 제공 계약을 체결했다. 드라마 ‘쇼윈도: 여왕의 집’, ‘엉클’, ‘꽃 피면 달 생각하고’, ‘트레이서’ 등으로 많은 이용자를 확보한 웨이브는 HBO맥스의 콘텐츠를 추가하며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OTT 중 유일하게 ‘왕좌의 게임’, ‘체르노빌’을 비롯해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 HBO맥스의 인기작을 시청할 수 있다. 웨이브와 워너미디어의 계약기간은 1년으로 만료를 앞두고 있다. 또 HBO 모기업인 워너미디어는 HBO맥스의 한국 진출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으나, 현재 웨이브와 재계약을 논의 중인 상황이다.
이에 웨이브 관계자는 “아직 계약이 만료되지 않은 상태이며, 현재 HBO와 재계약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HBO와의 협업이 이용자 수에 영향을 준 것은 맞으나 웨이브 내에도 여러 콘텐츠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HBO와의 협업으로 인해 이용자 수가 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용자 수 증가에 대한 정확한 수치 또한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해외 OTT가 국내에 단독 론칭하지 않고 국내 OTT와 먼저 협업을 하면서 자신들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박송아 대중문화평론가는 해외 OTT사가 국내와 협업하는 이유로 기회비용과 리스크, 즉 직진출(D2C, Direct to Customer)을 요인으로 꼽았다. 박 평론가는 “OTT 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를 가져다 팔면 몇백억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으나, 콘텐츠를 팔지 않고 업체의 D2C에 넣어 한국에 직진출하면 고스란히 다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이 이상의 매출을 시장에서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국내 OTT사와 협업을 맺고 국내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일부의 콘텐츠 제공 비용을 받고 콘텐츠의 파워를 체크해 본 후 론칭을 재고할 수도 있다”며 “대표적인 게 디즈니 플러스인데, 물론 콘텐츠가 강력하긴 하나 과연 콘텐츠도 서비스도 소비자의 구미를 충족시킬 수 있냐 따져보면 처참한 결과가 증명됐다”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국내 OTT 업체와 협업해 서비스를 운영한다면 우선 그들의 구독자와 마켓 셰어는 이미 간접적으로 확보하고 시작할 수 있고, 그들의 노하우와 서포트를 통해 한국 시장에 더 효율적으로 침투할 수 있기에 먼저 협업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022년 07월호
[이달의 재물운세]
◆쥐띠(子)
72년생 : 90%, 품대운세 90%
84년생 : 40%, 증여운세 60%
96년생 : 90%, 횡재운세 60%
◆소띠(丑)
61년생 : 80%, 금융운세 90%
73년생 : 80%, 횡재운세 60%
85년생 : 70%, 주식운세 70%
97년생 : 90%, 횡재운세 90%
◆범띠(寅)
62년생 : 90%, 주식운세 90%
74년생 : 90%, 문화운세 90%
86년생 : 70%, 품대운세 80%
98년생 : 80%, 품대운세 80%
◆토끼띠(卯)
63년생 : 80%, 주식운세 90%
75년생 : 70%, 품대운세 90%
87년생 : 80%, 금융운세 80%
99년생 : 80%, 주식운세 90%
◆용띠(辰)
64년생 : 90%, 상속운세 60%
76년생 : 80%, 금융운세 60%
88년생 : 70%, 상속운세 70%
00년생 : 30%, 금융운세 30%
◆뱀띠(巳)
65년생 : 70%, 횡재운세 70%
77년생 : 60%, 금융운세 70%
89년생 : 90%, 금융운세 90%
01년생 : 70%, 주식운세 70%
◆말띠(午)
66년생 : 70%, 문화운세 90%
78년생 : 60%, 횡재운세 70%
90년생 : 90%, 증여운세 90%
◆양띠(未)
67년생 : 60%, 주식운세 70%
79년생 : 60%, 주식운세 80%
91년생 : 90%, 문화운세 60%
◆원숭이띠(申)
68년생 : 50%, 상속운세 50%
80년생 : 70%, 부정기수입운세 60%
92년생 : 90%, 문화운세 40%
◆닭띠(酉)
69년생 : 80%, 증여운세 80%
81년생 : 80%, 문화운세 90%
93년생 : 80%, 금융운세 80%
◆개띠(戌)
70년생 : 50%, 상속운세 50%
82년생 : 50%, 정기수입운세 50%
94년생 : 50%, 주식운세 40%
◆돼지띠(亥)
71년생 : 80%, 금융운세 90%
83년생 : 80%, 주식운세 90%
95년생 : 80%, 부정기수입운세 70%

2022년 06월호
대한민국은 지금, ‘아트페어 공화국’
전국서 150~200개 페어 연중 열리며 호황세
몰링문화 즐기는 MZ세대 ‘아트몰링’도 즐겨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요즘 한국은 아트페어 공화국이다. 아트페어가 매월, 매주 쉼없이 개최되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한반도 어딘가에선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아트페어만 100개가 넘고, 끼리끼리 열리는 비공식적 아트페어까지 포함하면 150개는 거뜬히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물 들어올 때 배 띄워야 한다”며 무턱대고 행사를 밀어붙이다 엎어진 신생 페어까지 포함할 경우 200개는 될 것이라고 시장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이에 비평가들은 “올해는 설날과 추석 빼고 1년 내내 아트페어가 열릴 것이다. 화랑들이 본업(전시)은 뒷전인 채, 모두 장터로 모인다”며 비꼬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아트페어가 닷새 일정으로 열리니 150개일 경우 1년 내내 아트페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자 메이저 화랑과 경쟁력을 갖춘 강소 화랑들은 아트페어 운영위 측의 페어 초대를 거절하기 바쁘다. 물론 평판이 좋은 특급 아트페어는 흔쾌히 참가한다. 영세 화랑들도 이런 페어에는 어떻게든 참가하려고 기를 쓴다. 물론 심사에서 매번 탈락하지만 말이다.
올 9월 서울 코엑스에서 영국의 프리즈(Frieze) 아트페어와 공동으로 열리는 ‘키아프-프리즈’의 경우 부스비가 엄청나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다수 화랑이 참가를 희망해 경쟁률이 사상 최고였다. 아쉽게 이 최정상 아트페어의 문턱을 넘지 못한 화랑들은 운영위에 항의하고 각계에 투서까지 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에 최근 급조된 아트페어라든가 콘텐츠가 부실한 아트페어에는 화랑들이 “노”를 외치기 바쁘다. 수준이 떨어지는 페어에까지 굳이 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아트페어도 날로 옥석이 가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좁은 땅덩이에서 아트페어가 이렇게까지 많이 열리는 걸까. 우선은 최근의 ‘미술 불장’ 여파로 페어에서 장사가 썩 잘되기 때문이다. 화랑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보다 보따리를 싸서 페어에 마당을 펼치면 수천, 수만 고객이 모여들어 작품을 사가니 화랑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고객의 입장에서도 여러 곳을 일일이 돌아봐야 하는 ‘화랑 투어’보다 원스톱 작품 감상과 구매가 가능한 ‘아트페어 투어’가 훨씬 편리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한국에 아트페어가 유난히 많은 것은 한국인들의 성향에도 기인한다. 현대 한국인들은 단독매장보다는 여러 브랜드가 모여 있는 대형 백화점을 훨씬 선호한다.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를 선호하듯 말이다. 아트페어는 말하자면 백화점에 해당되는 미술장터다. 수십 또는 수백 개의 화랑이 저마다 이거다 싶은 작품을 들고 나와 넓은 공간서 판매 경쟁을 펼치는 것이 백화점과 꼭 닮았다.
특히 최근 들어 미술시장 호황을 이끌고 있는 MZ세대의 경우 편의성을 갖춘 대형 쇼핑몰에서 쇼핑과 여가를 즐기는 ‘몰링(Malling)’이 체질화됐듯, 아트페어에서 감각적 체험을 즐기며 작품도 사는 ‘아트몰링’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경매사 비난했던 화랑들, 아트페어 홍수엔?
작년 말 화랑들은 미술품경매기업을 향해 “경매가 너무 자주 열려 화랑을 고사시킨다”며 맹폭을 가한 바 있다. 그런데 올 들어 경매 못지않게 온갖 아트페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것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국내 미술계가 온통 아트페어와 경매로 들썩이며 쏠림현상이 심한데도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현재 일정 수준을 갖춘 국내 아트페어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문화체육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시각예술지원팀은 국내서 열리는 아트페어를 매년 평가분석해 네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그 평가에 따라 해마다 총 114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나눠주고 있다. 그나마 이들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아트페어는 일정 수준을 갖춘 믿을 만한 페어다.
첫째는 국제화된 아트페어다. 정부예산 1억5000만원이 지원되는 이 아트페어에는 한국화랑협회가 개최하는 키아프와 부산의 자존심인 아트부산이 해당된다. 키아프와 아트부산은 국제적 수준에 도달했거나 근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해당 지원금이 각각 전달됐다.
다음은 성장형 아트페어다. 아직 정상권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잠재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아트페어가 이에 포함된다. 대구아트페어, 어반브레이크(서울),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가 이 카테고리에 선정돼 각각 3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다음은 ‘특성화된 아트페어’다. 여러 종류를 늘어놓는 백화점식 아트페어가 아니라 나름대로 뚜렷한 콘셉트를 갖춘 아트페어가 이에 해당된다. MZ세대를 겨냥해 참신한 작품을 선보이는 더프리뷰 성수와 조각을 주로 다루는 조형아트서울이 이 카테고리에 포함됐다. 또 올 하반기 서울 강남과 연희동에서 개최되는 ‘Circuit Seoul #2’와 ‘더 보이드..’의 경우도 특성화 아트페어로 선정돼 3000만~4000만원의 정부 돈을 받았다. 이 밖에 지속가능한 아트페어 카테고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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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점은 2020년 11월의 아트부산
아트페어가 올 들어 폭발하듯 급증한 것은 2020년 11월 아트부산에서 비롯됐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이 페어가 엄청난 관객을 빨아들이며 ‘대박’을 치자 전국적으로 열풍이 확 번졌다. 지난해 아트부산은 관객 8만명, 매출 35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관객 10만명, 매출 746억원이라는 역대급 실적을 거두며 기염을 토했다. 그 여파로 부산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아트페어가 20여 개로 늘었다.
부산뿐 아니다. 전국이 아트페어 열기로 요동치며 대한민국은 가는 곳마다 아트페어가 성시를 이루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집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공식화된 아트페어는 약 100개다. 여기에 추가할 아트페어들이 적지 않다. 백화점들이 여는 아트페어와 경매사들이 개최하는 아트페어, 그리고 미술시장에 새로 진입한 기획자들이 꾸민 소규모 페어까지 합산할 경우 200개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의 경우 4월 벡스코에서 페어를 성황리에 마친 뒤 울산 현대백화점으로 장소를 옮겨 ‘BAMA 어게인’이란 이름으로 후속 페어를 개최했다. 이처럼 연계페어, 위성페어까지 모두 카운트할 경우 200개는 거뜬하다는 논리다.
최근 아트페어 확산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제껏 아트페어 개최지로 거론되지 않던 곳에서도 페어가 열린다는 점이다. 제주도 서귀포와 울산 등이 대표적인 예다. 또 포항, 창원 등 아트페어가 열리지 않았던 도시 등 전국 구석구석으로 미술장터가 파고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 한강 둔치의 반포공원에서도 야외 페어가 열릴 예정이며, 10월에는 연희동의 연희예술극장 같은 공연장에서도 아트페어가 시도된다. 문제는 중소형 페어 중에는 재원 조달과 작품 확보가 잘 안 돼 엎어지는 예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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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도 아트페어 하나가 통상 닷새씩 열린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시장은 올 들어 아트페어가 1년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화랑들이 본업인 기획전 개최는 뒷전인 채 전국(또는 전세계)을 누비며 장사에만 너무 몰두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미술시장이 뜨거우니 때맞춰 장사를 하는 것도 좋으나 화랑은 유망 작가를 발굴해 키우고, 그들의 예술세계를 전시를 통해 제대로 선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다. 본령은 뒤로 밀어둔 채 돈벌이에만 급급한다면 우리 현대미술계는 빈 수레가 될 우려가 크다.
화랑업은 일반 유통업과는 달리 문화예술사업으로, 우수한 작가를 조명하고 육성해 한국현대미술의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역할이 우선시돼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지나치게 골몰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정도를 추구해야 한국미술의 미래가 있다. 장사도 좋은 작품, 역량 있는 작가가 풍부해야 잘되기 마련이다.

2022년 06월호
MZ세대 작가 태킴 현대인 ‘다중적 페르소나’에 주목하다
| 조용준 논설위원 digibobos@newspim.com
해리성정체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解離性正體障碍), 즉 다중인격은 한 사람 안에 둘 또는 그 이상의 각기 구별되는 정체감이나 인격 상태가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존 쿠삭 주연의 영화 ‘아이덴티티’에서 주인공은 모두 11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중 하나의 인격이 살인을 저지르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처럼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다중인격은 실제로도 존재한다. 킴 노블(Kim Noble)이라는 화가는 실제로 100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인데, 그중 20개의 인격이 화가라고 한다. 이 사실 자체만으로 충격적인데, 20개의 화가 인격이 그리는 그림 스타일이 모두 완벽하게 다르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여러 명의 다중인격은 몰라도 적어도 둘의 아이덴티티, 혹은 둘의 페르소나는 요즘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른바 ‘부캐 문화’가 그것이다. 부차적인 캐릭터, 즉 제2의 캐릭터를 뜻하는 ‘부캐’는 제1의 캐릭터를 뛰어넘는 뜻하지 않은 재능으로 대중의 갈채를 받으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방송에서 언급되는 부캐 문화는 대중적으로도 ‘멀티 페르소나’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하나의 지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MZ 세대의 화가 태킴(Tae KIM·1986~)은 바로 이러한 ‘다중 페르소나’라는 현대적 징후를 주제로 작업한다. 사실 MZ세대들은 그들의 ‘태생적 아이덴티티(natural born identity)’ 자체가 다중적일지 모른다.
작가 태킴은 “90년대 인터넷의 보급 이후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이들 세대는 이후 생물학적·공간적·제약 등을 뛰어넘어 다양하게 발현되는 가상공간 속 자아들을 만나며 성장해 왔다. 이들은 또한 여러 플랫폼에 걸처 생존하며 타인의 다중 자아들과 교류한다”면서 “현실의 물리적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세계 속에서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자아로 변신하는 것뿐 아니라 원하는 구미에 맞춰 다양한 자아의 이상적인 형태를 취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졌다”고 강조한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가상공간의 아바타는 기본적으로 다중 페르소나에 대한 욕구와 현상을 일반화하는 징표다. 이런 현상을 태킴은 ‘빌려 입은 피부’ 혹은 ‘대여하는 나’라는 표제어로 표현한다.
청와대 바로 옆 공근혜갤러리에서 지난 4월 27일 시작해 5월 22일까지 열리는 태킴 개인전 ‘빌려 입은 피부’는 영상·조각·회화 그리고 NFT 모두 4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우리는 캐릭터와 ID를 빌려 가상공간에 접속한다. 다양한 ‘가상의 피부’를 빌려 활동하는 유저들은 가상의 활동 속에서 점차 신체라는 것과 동떨어져 간다. 작가는 분리될 수 없는 신체와 정신의 혼합체인 몸의 표현을 위해 얼굴 인식으로 아바타를 빌려 입는 행위를 통해 질문한다. 관람자는 화면을 바라보는 순간 디지털 회화로 만들어진 아바타와 동기화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인식 당한다.
이처럼 ‘빌려 입은 피부’는 작가가 직접 그리고 프로그래밍한 총 4개의 아바타로 구성된다. 각 화면에 담긴 아바타들이 일상적인 움직임을 보이다가 관객이 다가가면 행동과 표정, 입 모양을 관객과 동일화해 움직이는 얼굴인식 회화 작품이다. 그 발상이 그야말로 MZ세대답다.
이는 현실의 인물과 가상공간의 아바타가 일체화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가상공간에서 다양한 아바타를 빌려 다중의 인격체를 갖고 활동하는 현대인들의 실상을 담아냈다.
청와대가 개방되는 5월 10일(화)부터는 이 작품을 활용한 특별 이벤트도 진행된다. 태킴은 청와대를 상징하는 파란 왕관을 머리에 쓴 ‘20220510 아바타’를 특별 제작해 개방일인 10일부터 1주일 동안 전시한다. 이 작품 역시 모니터에 설치된 아바타가 관객을 따라 똑같이 고개를 흔들고 입을 움직이는 얼굴인식 프로그램이다.
2021년 온택트 전시에서도 선보였던 ‘얼굴 없는 게이머-익면의 여러분’ 영상 작품은 실제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공간 저 너머의 상대 게이머들을 상상해 실크 위에 그려낸 회화다.
나의 아바타는 가상세계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 활동하고, 또 나는 익명의 아이디(ID)에 숨은 그 누구를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지만, 각자 본인의 신체적인 얼굴은 화면 건너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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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을 기초로 한 사회 관계의 형성은 인터넷 보급 이후 비대면을 통한 관계 형성으로 점차 연결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 강조되는 비대면 연락의 사회적 일반화는 얼굴을 직접 만나지 않더라고 형성될 수 있는 인간관계라는 새로운 형태의 현대인 관계를 증명한다.
대상과의 깊은 교류를 하지만 정작 실체 신체적 특성을 모르고 시도하는 게임 상대의 초상화 작업은 다중자아를 담고 있는 신체의 특성을 몰라도 대상을 어디까지 담을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다. 작가는 게임에서 대화를 나눈 목소리와 게임 케릭터, 게임을 운영하는 스타일 등으로 추측한 정보값만으로 해당 인물들을 그렸다. 작품의 타이틀은 이들이 사용하는 ID다.
NFT 생성 기술을 활용해 자동 생성한 ‘조합된 자아’는 초연결사회 속 ‘빌려 입은 자아’를 통한 교류와 실제 신체적 특성과의 괴리감을 통해 가상에서 형성되는 자아와 ‘빌려 입는 캐릭터들’을 통한 비자연적인 자아의 형상, 그것과 교류하는 것이 익숙한 현대인의 새로운 자아의 인간관계를 바라본다. 인간의 손을 거친 조합이 아닌, 기계가 조합한 확률에 따라 형성되는 새로운 현대인의 자아의 형태를 제너레이팅 페인팅(자동생성 회화)으로 탐구한다. 각기 인간의 요소를 담아 조합되는 자아의 수 3.703447349231616e+17(37경 344조) 중 사람이 인식하기 쉬운 단위의 1000개로 한정해 작업했다.
공근혜갤러리는 오프라인 전시가 종료되는 마지막 주 5월 20일 금요일 오전 9시부터 NFT 작품 3점을 하루 동안 판매할 예정이다.
작가는 MZ세대에 일반화돼 있는 ‘굿즈(Goods) 문화’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굿즈 문화는 평면으로 만나는 대상을 물질적으로 실제 소유하는 행위를 통해 만족감을 준다. 화면을 통해 경험하는 타인과의 유대감, 소유욕은 실제 감정보다 더 강렬하지만, 이런 찰나의 감정과 욕구는 인간이기에 촉각을 원하는 생물학적 욕구로 이어진다.
작가는 손으로 만지고 소유하기 원하는 인간의 자연적·신체적 욕구를 손으로 빚어 복제하는 포슬린 작업으로 질문한다. 18세기 유럽에서 유사 인간으로 아이들 놀이 대상으로 제작된 비스크 인형은 사용자로 하여금 영혼을 가진 사람과 사물의 중간의 회색지대에 존재한다.
작가는 비스크 인형을 제작해 가상의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물질을 소유할 수 있는 행위를 제공함으로써 현대인에게 결핍된 소유감을 충족시켜 주고자 했다. 이는 ‘당근’, ‘ㅠ’ 등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되는 단축어로 이름을 붙인 15개의 도자기 인형으로 구성된다. 그의 굿즈들은 이상적인 가상공간과 현실 속에서 순환하는 현대인의 새로운 긴장관계를 담아낸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태킴은 동양화의 탄탄한 붓질을 바탕으로 회화, 조각, 영상, NFT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영역을 다양하게 확장해 가고 있는 MZ세대의 대표 작가다. 역시 서울대 동양화과에서 석·박사, 영국 런던 ‘Slade School of Art MFA painting’을 졸업했다.
2021년에는‘Art in Culture’ 미술전문가 9인이 선정한 영파워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선정됐으며, 2022년에는 영국의 미술전문 잡지 ‘트레뷰셋(Trebuchet)’에 장장 6페이지에 걸쳐 인터뷰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현재 영국·독일·미국 등으로부터 전시 러브콜이 쇄도하며 미술계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2022년 06월호
‘골때녀’ 종횡무진 안혜경 “축구로 또 다른 세계를 얻는 기분”
|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 정일구 사진기자 mironj19@newspim.com
배우 안혜경이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휘 중이다. 출연자도 시청자들도 푹 빠진 축구의 매력에 홀려 본인도 알지 못했던 ‘거미손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안혜경은 지난 5월 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뉴스핌 월간ANDA와 인터뷰에서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하게 된 계기와 매회 동료들과 뜨겁게 열정을 불태우는 소감을 얘기했다. “운동선수만큼 운동하고 지낸다”면서 웃는 그의 표정에서 긍정적인 에너지와 활력이 넘쳤다.
“요즘은 일상이 운동 아님 방송 딱 두 개로 나뉘어요. 방송하는 날 빼곤 운동하는 날이고 집, 운동장, 촬영장을 오가죠. 제 또래분들 다 비슷하겠지만 학창 시절에 공으로 해봤자 피구, 발야구가 다였는데 축구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축구 경기를 보는 건 좋아하지만 ‘축알못’이기도 했고요. ‘불타는 청춘’에서 양평 갔다가 작은 운동회를 했는데 피구, 제기차기 하다가 축구까지 하게 됐어요. 거기서 시작한 여자 축구가 파일럿이 되고, 여기까지 왔네요. 이렇게 오래 축구를 할 줄은 몰랐어요.”
‘불청’ 당시 우연찮게 선보인 여자 연예인들의 축구 경기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설 파일럿 때도 8%가 넘는 시청률로 대박이 났다.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뛰는 모든 멤버는 물론 시청자들도 “여자가 이렇게까지 뛸 수 있나”, “저 나이에도 이렇게 열정이 넘치나”라는 평을 남길 만큼 출연자들은 모든 걸 쏟아낸다.
“ ‘불청’ 때는 정말 재밌게 예능으로 했어요. 골이 안 들어가도 재밌고, 몸개그도 하고요. 우리가 선수처럼 잘 차려고 했던 건 아니니까 잘 차면 환호하고 박수치고. 그때부터 제가 골키퍼를 했거든요. 자원해서 나섰고 솔직히 뛰는 게 어렵기도 했어요. 언니들은 공을 맞는 걸 무서워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 이후에 ‘불청’ 제작진이 그대로 ‘골때녀’를 만들고 저흰 자연스럽게 불청팀에서 온 ‘불나방’ 팀이 됐어요. 개그맨, 모델, 국가대표 출신 스포츠인 각 부류의 연예계 인사들이 다 모인 여자 축구 리그를 만들었죠.”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와서는 축구에 제법 진심이 됐다. 특히 시청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내주는 것은 물론 4050 여성들이 축구를 비롯한 팀 스포츠에 다수 도전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불나방’ 팀 외에 다양한 여성 동료들로 구성된 다른 팀 멤버들과도 정이 쌓였다.
“저희 팀 보고 4050세대 분들이 우리도 집에만 있을 게 아니라 땀 흘리면서 같이 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게 된 것 같아요. 축구 센터에 성인여자 축구교실이 엄청 많이 생겼다고도 하더라고요. 다른 멤버들도 한두 번 방송국에서 마주친 분들 있었지만 친해질 계기는 없었거든요. 새롭게 만난 멤버들이랑 프로그램 덕분에 많이 친해졌죠. 또 2002년도 월드컵 때 뛰었던 선수들을 직접 감독님으로 만나니까 너무 좋아요. 그때 열광하면서 응원하던 분들이고 코치, 감독으로 모시게 돼 뿌듯하고 기쁘죠.”
전혀 생각지 않았던 종목인 축구에 도전하면서 얻은 점도 많다. 덕분에 안혜경은 어린 시절부터 여자아이들에게도 축구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팀 스포츠를 통해 얻는 귀한 경험과 성취감이 삶을 더욱 활력 있게 만들어준다는 경험담도 덧붙였다.
“헬스나 요가 같은 개인 스포츠랑은 확실히 달라요. 저도 팀 스포츠는 거의 안 해봤죠.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 같이 잘해야 하는 거잖아요. 누구 이름을 그렇게 목놓아 불러본 적이 없어요. 나 혼자 돋보여서도 안 되고 팀의 조직력과 구성과 화합이 중요해요. 제 몫을 분담해서 가장 잘해 줬을 때 팀이 가장 빛나죠. 또 뭘 해도 잘했다 응원해 주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분위기가 너무 든든하죠. 실수해도 ‘괜찮아’ 한 마디에 느껴지는 뭉클함이 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줘요. 처음으로 승부차기를 차고, 막아봤을 때의 짜릿함도 기억에 남네요. 그 엄청난 긴장감과 온몸에 소름이 돋는 그런 느낌은 축구를 하면서 처음 느껴봤어요.”
거의 1주일에 4회씩 연습에 나가고 방송을 준비하지만, 다른 팀들의 열정도 만만치 않다. 원더우먼이나 탑걸 팀 등 상대적으로 연령이 어린 친구들과 붙을 때의 체력차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 그럼에도 부상 위험을 무릅쓰고 온몸을 던진다는 출연자들의 태도가 제법 진지하게 느껴졌다.
“주변에서 정말 반응이 많이 와요. 훈수 놓는 사람도 많죠. 하하. 부상 위험은 당연하지만 그냥 몸빵이에요. 공격수나 수비수들은 달리다 넘어져서 십자인대가 파열되기도 하죠. 인대 끊어지고 발톱뼈 부러지고. 저는 다행히 골키퍼라 다치는 게 손가락, 손목 골절이나 다이빙할 때 멍 드는 정도죠. 항상 ‘우리 다치지만 말자. 다치면 못 나와.’ 하면서 화이팅해요. 다들 방송에서 즐겁게 운동하고 건강하게 보여드리고 싶단 생각으로요. 확실히 생활에 활력이 많이 생겼어요. 사람들이랑 어울리다 보니 이기주의로 흐르는 걸 조금은 막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생기죠. 또 시야도 넓어지고요. 그동안 굉장히 한정적인 공간에서 정적인 활동을 주로 했다면, 많은 사람과 만나고 부딪히게 되니까 단순히 스포츠만이 아니라 이걸 통해서 또 하나의 세계를 얻는 기분이에요.”
‘불청’에 이어 ‘골때녀’로 이제 예능으로 친숙해진 얼굴이지만 안혜경의 본분은 배우다. 그는 “늘 경기가 있으니 연습하고 운동하지만 내심 한편으론 드라마에 갈증이 있다”고 털어놨다. 8년째 소속돼 활동 중인 극단 웃어의 무대를 놓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연기에 끈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요. 무대라도 놔버리면 이제 연기로 돌아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단 생각에요. 다 때가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방송을 활발히 다시 하게 된 게 ‘불청’ 덕분이고 예능으로 열심히 활동했지만 자연스럽게 드라마는 조금 멀어졌죠. 그래도 늘 하고 싶어요. 꾸준히 단역으로든 카메오로든. 또 독립영화도 했는데 절 찾아주셔서 다 감사했어요. 예전에 ‘떴다 패밀리’라는 SBS 주말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집안의 구성원으로 다층적인 면을 연기할 수 있어 좋았어요. 극중에 딸도 되는 거고 3남매 중에 맏이도 됐다가 결혼했으니 아내도 되고, 딸도 있어서 엄마도 될 수 있었죠. 다른 작품보다 잘되진 않았지만 여러 가지를 많이 해봐서 좋았던 기억이 나요.”
2001년 MBC 공채 기상캐스터로 데뷔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배우로 전향한 지는 제법 오래됐어도 여전히 첫 번째 이미지를 다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자평이다. 안혜경은 “연기자로 더욱 각인되는 게 제가 해나갈 숙제”라면서 낙천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연극 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에너지가 그 든든한 발판이 돼줄 터였다.
“아직도 첫 기상캐스터 이미지를 깨기가 힘들다 느끼긴 해요. 김혜은 선배가 제 직속이었는데 이제 기상캐스터로 아는 분은 없죠. ‘범죄와의 전쟁’에서 이미지 변신하셨을 때 그 파급효과가 정말 대단했던 것 같아요. 아직 한 방이 부족해요.(웃음) 그래서 계속 변신하고 싶고, 연극에선 일부러 다양한 역을 해봤어요. 지체장애인 역, 충청도 공장직원 역할 등등. 관객들은 저인 줄 못 알아보시기도 하죠. 하고 싶은 거랑 할 수 있는 건 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사람마다 때가 있다고 하니까 묵묵히 가보려고요. 여전히 잘하고 싶은 건 연기예요. 그 숙제를 여전히 풀어나가는 중이죠. 저는 성격이 낙천적이어서 흰머리가 없어요. 하하. ‘골때녀’도, KBS 예능 ‘아마존’도, 앞으로 만나게 될 작품도 더 잘할 수 있게끔 방법을 좀 더 찾아볼 생각이에요.”

2022년 06월호
[이달의 재물 운세]
◆쥐띠(子)
72년생 : 90%, 주식운세 80%
84년생 : 80%, 품대운세 80%
96년생 : 70%, 품대운세 80%
◆소띠(丑)
61년생 : 90%, 상속운세 60%
73년생 : 70%, 금융운세 90%
85년생 : 70%, 상속운세 70%
97년생 : 40%, 주식운세 50%
◆범띠(寅)
62년생 : 90%, 횡재운세 90%
74년생 : 80%, 횡재운세 60%
86년생 : 50%, 상속운세 50%
98년생 : 90%, 문화운세 60%
◆토끼띠(卯)
63년생 : 80%, 금융운세 80%
75년생 : 80%, 문화운세 90%
87년생 : 80%, 자영업운세 60%
99년생 : 50%, 정기수입운세 50%
◆용띠(辰)
64년생 : 50%, 증여운세 70%
76년생 : 30%, 증여운세 80%
88년생 : 70%, 문화운세 90%
00년생 : 70%, 부정기수입운세 60%
◆뱀띠(巳)
65년생 : 80%, 금융운세 90%
77년생 : 60%, 금융운세 70%
89년생 : 90%, 금융운세 90%
01년생 : 90%, 주식운세 90%
◆말띠(午)
66년생 : 70%, 주식운세 70%
78년생 : 90%, 횡재운세 60%
90년생 : 90%, 문화운세 40%
◆양띠(未)
67년생 : 60%, 정기운세 70%
79년생 : 30%, 금융운세 30%
91년생 : 70%, 주식운세 70%
◆원숭이띠(申)
68년생 : 50%, 상속운세 50%
80년생 : 80%, 자영업운세 70%
92년생 : 80%, 주식운세 90%
◆닭띠(酉)
69년생 : 90%, 증여운세 90%
81년생 : 60%, 횡재운세 70%
93년생 : 80%, 문화운세 80%
◆개띠(戌)
70년생 : 50%, 품대운세 70%
82년생 : 90%, 주식운세 90%
94년생 : 60%, 주식운세 80%
◆돼지띠(亥)
71년생 : 80%, 상속운세 70%
83년생 : 40%, 부정기수입운세 60%
95년생 : 80%, 금융운세 80%

2022년 06월호
BTS ‘병역 특례’ 끝나지 않는 찬반 논쟁
|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
세계적인 그룹으로 발돋움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병역 특례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2018년 처음 불거진 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이 문제가 하이브의 첫 입장과 더불어 황희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언으로 인해 다시금 찬반 논쟁에 불이 붙고 있다.
하이브, “조속한 처리 원해”
K팝 가수 중 유일하게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을 휩쓴 가수가 바로 방탄소년단이다. 국위 선양에 기여하고 있는 만큼 병역을 면제해 줘야 한다는 주장이 4년째 거론만 되고 있다.
그간 멤버들의 병역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고수해온 소속사 하이브가 이번엔 적극 나섰다. 지난 4월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진형 커뮤니케이션 총괄(COO)은 “법안이 계속 바뀌다 보니 멤버들이 향후 계획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제 곧 새로운 국회가 꾸려지는데 그러면 기약 없는 논의가 진행된다. 이런 불확실성이 어려움을 준다. 조속한 결론을 내려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탄소년단 멤버 진은 1992년생으로, 올해 병역법 개정이 불발될 경우 내년에 입대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하이브에서도 기약 없는 기다림 대신 작심 발언을 택한 셈이다.
하이브가 강력한 입장을 보이자 정치권에서도 방탄소년단 병역 특례에 대한 발언이 나오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관련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성 의장은 “빨리 검토를 하자는 양당 간사 간 협의가 있었다”며 “정부 쪽에서는 ‘가능하면 빨리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의사가 왔다”며 이번 임시국회 중 관련 법안을 처리할 가능성을 내보였다.
현행 병역법에 따르면 대중문화 예술인들은 병역 특례 적용 대상이 아니다. 예술계 종사자의 경우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입상자,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자로 ‘순수예술’ 분야만 해당한다.
국내외 병역 특례를 받는 체육, 예술대회는 42개에 이르지만 대중문화는 그간 순수문화예술 장르와 비교해 위상이 낮다고 평가돼 병역 혜택이 연관된 것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대중문화계에서 ‘대중문화예술인 예술요원 편입제도’ 신설을 촉구하고 있다.
“대중문화예술 성과 객관적 시각 필요”
방탄소년단의 군 면제와 관련해 아직도 여론은 분분하다. 국내에서는 유독 군 문제가 예민한 부분인 만큼 20~30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과를 내면서 순수예술가 못지않게 국위 선양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이들이 빌보드 1위를 하면서 경제유발 효과가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국가대표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약 2600억원의 효과가 나는 것에 비해 약 6.5배 높은 수치다.
그러다 보니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음콘협)를 비롯한 대중음악계는 대중음악 예술인의 병역특례법안(대중문화예술인 예술요원 편입제도) 통과를 희망하고 있다. 음콘협 등은 방탄소년단에게 예술체육요원의 자격을 부여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대체복무는 4주 기초군사훈련을 포함해 34개월간 자신의 특기 분야에서 활동하고 544시간 봉사활동을 이수하는 것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제도다.
해당 부분에 대해 조속한 해결점이 나오지 않자, 황희 전 장관은 임기를 1주일 남겨놓은 지난 5월 “대중문화예술인에게 병역 특례가 주어지지 않는 점은 불공정할 수도 있는 대목”이라며 브리핑을 열었다.
황 전 장관은 “오늘날 대중문화예술인은 국위 선양 업적이 너무나 뚜렷함에도 병역 의무 이행으로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분명한 국가적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반대 여론이 거센 20대 남성들을 향해 “청년들에게 호소드린다. 지금이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와 소속사에게도 제안드린다. 국민과 20대 청년들이 납득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여에 적극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방탄소년단이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군 문제는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미국 보수 싱크탱크 카토연구소의 국제정치·사이버전 전문가인 브랜든 발레리아노 선임연구원과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의 분쟁해소 전문가 알레이디스 니센은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을 통해 ‘BTS가 진짜 아미(Army)에 입대할까’라는 기고문을 싣기도 했다.
이들은 “한류와 병역 의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며 “BTS가 입대할 경우 콜라보 작업, 콘서트 투어, 팬미팅, 빌보드 차트 진입 등이 모두 중단될 위험이 있지만, 이들의 입대는 결국 국가와 자신 둘 다를 위해 봉사할 수 있고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론은 나뉘고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과 평론가들은 ‘대중문화예술인 예술요원 편입제도’ 신설 필요성에 입을 모았다.
박송아 대중문화평론가는 “BTS만 놓고 보는 게 아닌, 대중문화예술의 성과를 다른 예술 분야들과 형평성에 맞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대중예술문화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선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며 “BTS를 위한 개정안이 아닌, 현재와 앞으로의 문화예술인에게 걸맞은 새로운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22년 05월호
경험도 쌓고 정보도 얻고 ‘그림 분할구매’ 열풍 뜨겁다
돈 되는 그림에 직진...MZ세대가 주역
분할투자, 안전하긴 하나 큰 수익 어려워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1분 18초. 업체 측도 깜짝 놀랐다. 그렇게 순식간에 구매가 마감되리라곤 예상 못했다.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서울옥션블루의 소투(SOTWO)가 지난 3월 진행한 이우환 화백의 ‘대화(Dialogue)’라는 타이틀의 그림 2점이 소투의 기존 공동구매 대비 각각 최단시간 ‘1분 18초’(Dialogue 2019)와 최고금액 ‘12억원’(Dialogue)으로 조기 마감됐다. 한국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이우환의 인기와 함께, 미술품 공동구매가 이제 국내 미술시장에서 확실히 안착 중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서울옥션블루의 유나리 이사는 “이우환 작품은 공동구매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이지만 이번 결과는 MZ세대의 뜨거워진 미술 열풍을 확인하는 ‘1분18초’였다”고 밝혔다. 이어 “이우환 공동구매 회원의 60%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였고, 그중 58%가 여성 회원으로 2030여성고객의 파워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12억원 규모의 이우환 작품 공동구매액 중 52%인 6억1000만원을 MZ세대가 구매했고, 이들의 1인당 평균 구매금액은 58만8292원으로 집계됐다. 60만원쯤은 그림에 손쉽게 투자하는 MZ세대의 자유로운 재테크 문화도 엿볼 수 있는 결과였다.
MZ세대의 공격적인 미술품 구매 열기는 해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미국의 아트마켓 컨설팅 기관인 아트이코노믹스는 지난해 상반기 밀레니얼 컬렉터가 세계 고액자산가 컬렉터 중 무려 64%를 차지했다고 보고했다. 이들의 미술작품에 대한 지출은 평균 37만8000달러에 달했다. 이는 전체 세대 중 최고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평균 11만8000달러를 쓴 X세대 컬렉터보다 훨씬 많았고, 베이비부머 컬렉터의 4배에 달하는 액수다.
텐트족까지 등장한 MZ세대 미술품 구매 열풍
공동구매는 아니지만 MZ세대의 미술품 구매 열풍은 최근 갤러리 앞에 텐트까지 치게 만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서울 평창동의 프린트베이커리에서 지난 3월 열린 화가 청신의 작품전은 ‘샤넬 오픈런’을 연상케 했다. 감각적인 회화로 신세대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청신의 개인전 오프닝 전날 밤, 갤러리 근처에 ‘텐트족’이 등장했다. 그림을 사겠다고 ‘야외취침’도 마다하지 않은 극성 고객이었다. 상업 갤러리에 텐트족이 등장하고 새벽부터 긴 줄이 이어지자 화랑 측은 ‘선착순 1인당 1점’ 원칙에 대기번호를 발급해야 했다. 유명 작가가 아님에도 2030 고객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이에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MZ세대들은 그들만의 리그가 확실히 있다”고 평했다.
미술품 투자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분할투자라는 새로운 기법이 각광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MZ세대들이 아트테크 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되면서 최신의 온라인 플랫폼이 속속 등장 중이다.
그중에서도 ‘미술품 조각투자’는 현재 신규 고객들 사이에 가장 핫한 키워드다. 조각투자, 즉 분할투자란 혼자서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의 작품을 여러 조각으로 쪼개 공동으로 매입하는 것을 가리킨다. 조각투자 플랫폼은 공동구매한 작품의 가격이 오르면 되팔아 투자자들에게 조각 수에 비례해 수익을 나눠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수수료가 부과된다. 그간 슈퍼리치들만 살 수 있었던 최고의 블루칩 작품을 비록 몇 조각이긴 하나 보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MZ세대의 호응은 대단히 뜨겁다.
예·적금 수익률의 ‘10배?’ 분할투자 플랫폼 속속
미술품 공동구매(분할투자)는 미국과 유럽에서 2010년대 중후반 시작됐다. 피카소, 반 고흐 등 일반이 쉽게 살 수 없는 고가의 작품을 블특정 다수가 함께 사들인 후, 적정 시기에 되팔아 수익을 나누는 기법이다. 현재 마스터웍스, 코아트, 마에케나스 등이 이를 시행하는 업체다. 국내에서도 MZ세대를 중심으로 미술품 분할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최근 2, 3년 새 플랫폼이 여럿 등장했다. 현재는 아트앤가이드(열매컴퍼니), 소투(서울옥션블루), 테사(테사), 아트투게더(투게더아트) 등이 국내에서 손꼽히는 플랫폼이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은 아트투게더로 지난 2018년 10월 출범했다. 2019년 1월에는 ‘프로라타 아트(PRORATA ART)’가 탄생했고, 아트앤가이드, 테사(TESSA)로 이어졌다. 또 서울옥션은 자회사를 통해 소투(SOTWO)라는 분할투자 플랫폼을 만들었다.
국내 1호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인 아트투게더는 ‘피카소를 만원에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광고문구를 내걸고 투자자를 모았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거장의 작품을 만원에 산다는 문구는 꽤나 솔깃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분할투자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아 업체는 피카소 원화가 아닌 판화를 첫 아이템으로 내걸었는데, 피카소라는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확보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후 업체는 김환기, 쿠사마 야요이의 유화와 판화 등 총 119점의 공동투자를 진행했다.
최근 MZ세대 미술고객들이 분할투자(공동구매)에 큰 관심을 보이며 시장의 또 다른 흐름으로 자리매김하자 다수의 금융사와 유관업체들이 투자 및 협업에 나섰다. 아트앤가이드를 운영하는 열매컴퍼니는 지난 3월 롯데와 한화그룹으로부터 170억원의 투자를 받았고, 테사 또한 지난 3월 NH농협은행과 MOU를 체결했다. 아트투게더는 미술품경매사 케이옥션과 손잡았고, 서울옥션은 자회사인 서울옥션블루에 플랫폼을 만들었다.
이들 업체는 미술품 공동구매가 아트컬렉터로 가기 위한 입문 과정으로 단단히 뿌리내릴 것이라 보고 있다. 최근 1, 2년간 급증한 회원 수가 이를 입증한다. 테사의 경우 회원 수가 8만5000명으로 크게 늘었고, 여타 플랫폼도 근래 들어 회원 수가 빠르게 증가 중이다. 아울러 투자하는 작품도 국내 인기작가는 물론 해외 블루칩까지 그 폭이 확대되며 높은 수익률 실현이 기대되고 있다. 즉 바잉파워가 생기면서 쿠사마 야요이, 조지 콘도, 뱅크시 등 인기작가 작품이 잇따라 리스트업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공동매입한 간송의 국보
현대미술품만 공동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 즉 고미술품도 분할투자가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간송미술관의 국보 불감이다. 간송미술관이 지난 1월 케이옥션 경매에 내놓았다가 유찰됐던 국보 2점(시작가 각각 28억원, 32억원) 중 ‘금동삼존불감’이 최근 외국계 암호화폐 투자자 모임에 팔렸다. ‘헤리티지 다오(DAO)’라는 투자그룹은 이 문화재를 공동으로 사들인 뒤 지분 51%를 원소장처인 간송미술관에 기부했다. 아울러 간송 측에 유물 보존과 전시 등도 일임했다. DAO는 ‘탈중앙화 자율조직’이라는 뜻으로,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공동출자로 펀드를 만들어 공동구매나 투자, 대체불가능토큰(NFT) 발행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간송재단은 국보 판매와 헤리티지 다오의 지분 기부 등 상세한 사항에 대해 함구 중이다. 국보를 매입한 주체는 싱가포르에 주소를 둔 불***로, 세부 조건 등이 공개되지 않자 문화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투자그룹은 지분 절반을 간송에 넘기는 대신 NFT 발행 등 제반 권리를 획득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간송 측이 공익재단이 분명히 있는데도 상속세가 없는 국보·보물을 유족의 개인 소유로 해놓고, 경매를 통해 이를 잇따라 처분해온 점이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지금까지 수백억원에 달하는 국가 재정을 지원받았으면서 자금난을 이유로 국보를 외국계 투자그룹에 매각한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미술품 공동투자도 명암 있어...엑시트가 중요
미술품 공동구매에도 명암이 있게 마련이다. 직접투자가 아니라서 크게 손해볼 것도 없고, 소액투자를 통해 미술품 거래 경험을 쌓는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공동구매 투자자들은 한 번에 평균 50만원 안팎을 투자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술시장에서 향후 가격 상승이 확실시되는 유명 작품에 소액을 투자한 후, 가격 추이를 살펴보는 것은 유익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아트마켓의 각종 정보를 챙기며, 안목을 기른다는 점도 긍정적 측면이다.
그러나 투자하고자 하는 미술품의 향후 전망과 진위 여부, 매각 타이밍(엑시트) 등 철저히 고려돼야 할 요소 또한 적지 않다. 아울러 업체의 유동성과 거래투명성, 신뢰도는 반드시 검증돼야 할 대목이다. 최근 테사라는 업체가 쿠사마 야요이의 판화를 매각한 후 고객들에게 투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개별 고지를 하지 않아 반발을 산 바 있다. 업체 측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투자금 지급이 며칠 지연됐고, 앱에는 이를 고지했다’고 했으나 고객과의 소통에 소홀했던 것은 비판받아야 할 태도다.
한편 고가의 단일 작품에 투자할 경우 분산투자 및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지금 당장은 그 작가가 대세여서 충분히 투자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나, 미술시장에도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는 늘 있는 법이다. 아울러 작품의 가치 산정, 즉 밸류에이션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이뤄졌는지도 잘 따져봐야 한다. 단지 경매에서의 가격을 참조해 높은 금액에 블루칩 작품을 매입했을 경우 가격 하락 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고객들이기 때문이다. ‘예적금 수익률의 10배’ 같은 솔깃한 선전문구를 내거는 플랫폼일수록 주의가 요구된다. 미술시장도 주식, 부동산 시장과 마찬가지로 오를 때가 있으면 내릴 때도 있게 마련이다. 상황 변화로 일어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믿을 만한 업체, 경쟁력 있는 플랫폼과 거래하는 게 중요하다.
그간 국내에서 ‘아트펀드’ 등이 여럿 생겨났고, 많은 기관이 이에 참여했으나 5년 이상 사업을 지속하지 못하고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결국 미술품 투자마켓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기본에 충실한 투자’가 관건이다.

2022년 05월호
‘피아노의 카니발’을 사진으로 사진작가 구본숙의 창조적 재해석
| 조용준 논설위원 digibobos@newspim.com
슈만(Schumann)은 장 파울의 소설 ‘장난꾸러기 시절’로부터 영감을 얻어 ‘나비’(1831년)에서 상상의 가장무도회가 주는 인상을 그렸다. 그로부터 4년 후에 나온 ‘카니발(Carnaval, Op.9)’(1835년) 역시 가장무도회를 그렸다.
모두 21개의 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는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인물들과 더불어 파가니니, 쇼팽, 슈만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미래의 부인인 클라라 비크까지 출연한다.
먼저 1곡 ‘서두’. 축제의 서막을 알린다. 팡파르가 울리는 듯 포르테시모로 즐거운 화음이 가득 펼쳐진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3박자의 흐름은 경쾌함과 기대감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2곡은 ‘피에로’다. 슈만의 ‘카니발’엔 부제목이 있다. ‘네 개의 음표에 의한 작은 장면들(Schwänke auf vier Noten)’이다. 그 네 개의 음표가 2곡에서 나타난다. A, E-flat, C, B 음이다. 이는 독일식으로 A, S, C, H로 쓸 수 있는데, 이 알파벳은 슈만이 한때 사랑했던 약혼녀 에르네스티네 폰 프리켄의 고향인 아슈(Asch)를 상징한다. 이 상징적인 음은 10번 곡 ‘ASCH-SCHA’의 토대가 되고, 나머지 곡들에서도 심심치 않게 튀어나온다.
전체 곡은 약혼녀를 버리고 클라라에게 향하는 슈만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아니마토로 생기 있게 연주하라는 14곡은 ‘재회’다. 슈만은 이 곡에서 클라라와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환희를 표현한다. 그리고는 15곡 ‘판탈롱과 콜롱비네’에서 즐겁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곡은 프레스토로 빠르게 흘러가고, 스타카토와 레가토 연주가 번갈아 나타나며 즐거운 대화를 연상케 한다.
이렇게 전체적인 스토리는 카니발의 시작과 슈만의 등장을 거쳐 스핑크스 앞에서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친 뒤 클라라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약속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끝이 난다. 슈만의 카니발엔 이처럼 자신이 의도한 많은 이야기를 상징으로 풀어내 놓았다. 피아노곡으로 자신의 하고 싶은 이야기, 자신의 욕망을 분출한다.
사진작가 구본숙(53)의 욕망은 이런 슈만의 가면무도회를 자신의 사진으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슈만의 카니발에 주목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이었다. 하루키 단편소설집 ‘1인칭 단수’는 8개의 단편소설을 모았는데, 그중 하나의 제목이 ‘카니발’이다. 그리고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만약 무인도를 간다면 슈만의 카니발을 들고 가겠다.’ 그때부터 슈만의 카니발이 내 열망을 부추겼다. 사진으로 그 욕망을 풀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문제였다. 카니발을, 피아노곡을 어떻게 사진으로 시각화할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할 때, 구본숙에게는 우리 고유의 ‘색동’이 먼저 떠올랐다. 카니발의 첫인상은 흥청거림 혹은 활기참이다. 구본숙은 색동 역시 흥청거림과 활기참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평소엔 고위층과 기생한테나 허용되던 화려한 색상이 축제나 명절, 혼례 때는 누구한테나 허용됐다는 평등적 요소를 대중의 축제 카니발과 연계함으로써 음악적 사고 확장을 사진 작품으로 연결시켰다.
3월 24일부터 31일(목)까지 평창동 갤러리 ‘수애뇨339’에서 열린 구본숙 사진전 ‘카니발’에는 모두 20개의 작품이 걸렸다. 모두 21개 곡인데 작품이 20개인 까닭은 8번곡 ‘응답과 스핑크스’의 ‘스핑크스’ 대목에서 슈만이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음악적 암호를 의도적으로 설치해 놓아 일종의 수수께끼가 되어버리자 대부분 피아니스들이 이를 생략한 채 연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본숙의 사진에서는 색동의 색상 배열의 규칙적인 반복성이 가지는 안정감과 채도가 높은 순색을 등간격으로 배치함으로써 경쾌하고 선명하며 명랑한 정서를 자아낸다. 빨강과 파랑과 노랑으로 건너가는 그 사이에 무한한 울림, 창조적 확장이 존재한다.
피아니스트들이 작품의 모델로 나선 것도 ‘명랑한 해석의 확장’이다. 오색을 두른 왕, 기생, 광대, 여인 등을 각 곡의 주인공으로 각각 정했는데 모델이 필요했다.
“피아노곡인 만큼 피사체가 피아니스트면 좋겠다 싶어 먼저 피아니스트 김태형에게 제안했는데, ‘그거 재밌겠는데’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른 분들에게도 얘기를 꺼냈더니 모두 흔쾌히 응해 주셨다. 덕분에 아주 즐거운 작업이 됐다. 피아노 연주는 그냥 건반만 두드리는 것이 아니고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연출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피아니스트들은 사진기 앞에서 얼어붙지 않고 자신들의 표정을 잘 나타냈다.”
그렇게 피아니스트 김태형(경희대 교수)은 피에로, 김규연(서울대 교수)은 어우동 모자를 쓴 기생, 조재혁은 왕, 이효주는 지체 높은 여인, 정지원은 어릿광대로 변신했다. 김규연 교수는 흔히 요부(妖婦)로 번역되는 7번째 곡 ‘코케트(Coquette)’를 사진으로 표현하기 위해 조선시대 여인들이 나들이할 때 사용했던 전모(氈帽)를 썼다.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나중에 부인이 되는 클라라를 담은 11번째 곡 ‘키아리나’를 위해 신윤복의 ‘미인도’처럼 가체(加髢·부인들이 머리를 꾸미기 위해 다른 머리를 덧붙인 것)를 얹었다. 슈만의 클라라에 신윤복의 미인을 대체시킨 것이다.
사진작가가 이렇듯 피아니스트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많은 교분을 쌓은 까닭은 구본숙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상주 사진작가이자 예술감독으로 2004년부터 2019년까지 일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김선욱·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이유라 등 수많은 연주와 인물 사진을 찍었다. 음악과 관련한 여러 사진 작업에도 참여했다. 지난해에도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3중주 1번을 주제로 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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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구본숙은 “클래식은 1도 몰랐던” 체육과 운동선수 출신이다. 농구를 했다. 그런데 ‘으뜸과 버금’ 비디오 대여점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진과 학생에게 한두 달쯤 사진을 배웠고, 사이판에 놀러가서 스노클링하는 부부 관광객들 사진 찍어주다가 흥미를 느꼈다.
“사이판 호텔 침대에 누워 있는데 벽도 하얀색, 커튼도 하얀색, 시트도 하얀색이어서 그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뭔가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에 돌아와 바로 캐논 EOS 5를 샀다.”
그렇게 사이판 여행과 ‘캐논 EOS 5’가 구본숙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금호재단 예술감독도 사간동에 있던 금호아트홀에서 영상기록을 담당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경력이 쌓여서 발탁이 됐다.
구본숙은 지난 2016년 개인전 ‘Heterophony’를 열었다. 제주도와 오대산 월정사 부근에서 틈틈이 담은 사진들이었는데, 제목은 ‘헤테로포니’라니.
헤테로포니(Heterophony)는 동일한 선율을 한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동시에 연주하는 것, 즉 같은 선율을 여러 사람이 함께 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약간씩 서로 다르게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헤테로포니 음악은 화성적 바탕 위에서 작곡된 것이 아니라, 즉흥적 집단 연주에서 한 선율에 다양성을 주기 위해서 발생한다. 이는 플라톤이 처음 사용한 용어였는데, 음악학자 슈툼프(C. Stumph)에 의해 즉흥연주 형태의 다성음악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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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숙은 이 사진전에서도 풍경에 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작업을 덧입혔다. 제목에 페르마타, 게네랄 파우제, 톤 클러스터, 리피트 마크 등의 음악적인 용어들이 등장한다. 찰나의 사진들이 음악의 용어와 어우러져서 깊은 울림을 줬다. 무채색에 가까운 톤의 색감이나, 안개가 드리운 풍경, 자작나무의 흔들리는 순간의 모습들이 마치 다양한 음악 용어처럼 마음에 다가오게 했다.
구본숙은 말한다. “헤테로포니가 자연과 음악의 만남이라면, 이번 사진전 카니발은 음악과 인간의 만남이다. 앞으로의 작업은 음악과 자연, 인간이 만나는 지점을 표현하고 싶다.”
슈만 카니발의 21번째 곡은 ‘아니마토 몰토’로 발랄하게 이어지면서 긍정적이고 희망에 찬 모습을 담는다. 마지막은 ‘스트레토’로 양손이 서로 바통을 잇듯이 음을 주고받으며 ‘카니발’의 끝을 장식한다. 구본숙이 앞으로 펼쳐낼 ‘아니마토 몰토 비바체’를 기대한다.
구본숙 사진전 ‘카니발’은 서울 전시가 끝나면 4월 20일부터 밀양 청학서점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2022년 05월호
기획전문가 김유열 EBS 사장 “지식콘텐츠 허브로 거듭날 것”
첫 EBS 내부 출신, 기획개발 탁월
“K - 지식 콘텐츠 글로벌 진출 타진”
저출산·독서율·교육문제 탐구 지속
|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지식·교육 전문 콘텐츠 허브를 만들고 본연의 교육·사회적 기능을 다하겠습니다.”
최근 뉴스핌 월간ANDA와 만난 김유열 EBS 사장의 말이다. 김 사장은 교육 격차와 같은 교육 현안의 심각성에 공감하며 다양한 신기술을 접목한 플랫폼 개발·운영 등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또 시장에서 유행하는 프로그램보다는 공익적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EBS의 사명임을 강조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 정상화 등 정책 지원을 당부했다.
김 사장은 EBS 내부 출신 첫 사장답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그려 나갔다. 그는 “지향점은 꽤 분명하다. EBS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장 교육적인 내용을 창의적으로 구현할 때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고 말한다. “’대학입시의 진실’이란 프로그램을 기획했었는데, 과거와 달리 왜 저소득층이나 시골 지역 학생들이 SKY를 못 갈까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죠. 학력고사부터 수능시대까지 6부작 다큐멘터리였는데, 방영 이후 실제 대학입시제도가 바뀌었습니다. 학종문제가 드러나면서 수능 비중이 확대됐고, 다큐임에도 삼성 언론상 보도부문까지 받게 됐어요.”
근본적인 문제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차별화한 콘텐츠로 사회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것. 이것이 EBS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PD 출신으로 콘텐츠 기획·개발의 대가로 평가받는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식 콘텐츠로 승부...저출산·교육혁신 등 탐구
김 사장은 EBS의 DNA로 사회 순기능 역할을 해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 근본문제를 저출산, 독서율 저하, 교육혁신으로 보고 EBS의 집중탐구 콘텐츠로 삼았다. “비판보다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작업을 집요하게 한다면 실낱같은 가능성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공영방송사니까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정부 전체 1년 예산 600조원 중에서 46조원가량이 저출산 정책에 들어갈 정도입니다. EBS의 다큐 제작능력이나 문제의식을 갖고 도전한다면 3년 내에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그는 EBS가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의문이 풀릴 때까지 집요하게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EBS는 교육·학술 다큐에 강점이 있어요. 그동안 다큐 프라임을 통해 문제 해결에 많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여성학 등 모든 가능한 학문적 성취와 해외 모범·실패 사례를 아카데믹한 방법으로 샅샅이 파헤쳐야죠. 콘텐츠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회성으로 5부작, 10부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집요하게 다루는 게 중요해요. EBS의 저출생 관련 다큐가 출생률 반전의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꼭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30년 현장경험과 소신에서 우러나온 얘기다. 그는 ‘딜리트 전략’을 통해 10년 동안 EBS 시청률 600% 상승을 이끌었다. 잘할 수 없는 것은 비우고,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것. 편성본부장 시절 EBS 본질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을 모두 제거하고, 어린이와 다큐로 프로그램을 단순화했다. 프라임 타임대 EBS에서는 다큐멘터리 방송이 나오게 함으로써 교양과 다큐를 사랑하는 시청자는 언제든지 EBS에서 다큐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사내서 손꼽는 혁신 성공 사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 90년대 말, 밀레니엄을 앞두고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킨 ‘노자와 21세기’는 PD 시절 그가 기획한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 과학기술 문명인 자본주의에 대응하고, 인류의 지혜를 알아보는 강연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이 한때 10%를 넘나들 정도였다. “모든 언론이 천문학적 제작비를 들여 지구촌을 연결하는 휘황찬란한 디지털 판타지로 달려가는 사이, EBS는 인류의 원형질로 파고들었죠. 편당 320만원의 제작비로 인류의 원형질에 잠재된 DNA를 깨웠다”고 말한다. 본질을 파고든 덕에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짜릿한 성공을 이끌었다.
‘군학일계’ 추구...K - 지식 콘텐츠 글로벌 진출 타진
EBS는 교육시장의 성장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며 드라마틱하게 성장해온 조직이다. 그가 입사할 30년 전 당시 177억원이었던 1년 재정이 지난해 3475억원으로 20배나 성장했다. “가파르게 성장해온 EBS 출신 첫 사장으로서 얼마나 주변 기대에 부응할지 요즘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30년간 지켜봐 온 동료나 선후배들의 기대가 가장 큰 부담”이라고 말한다. 대내외적인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 콘텐츠 홍수 속에서 거대자본을 확보한 글로벌 OTT업체와도 경쟁해야 한다. 그의 생존전략은 화려한 기교보다 교육방송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 독특한 콘텐츠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23조원 매출 가운데 20조원을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는데, 같은 방식으로는 국내 어느 미디어도 경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유니크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학(鶴)을 지향하고, 누구나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1등이 되기는 어렵고 비용과 시간도 많이 필요하죠. 그래서 학보다 닭이 되는 역설의 전략 즉, 군학일계(群鶴一鷄) 전략입니다. 수십만 마리 화려한 학 가운데 평범한 닭 한 마리가 있는 이미지를 상상하면 확연히 돋보일 것입니다. 군학일계 전략은 다름의 전략, 차별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유니크한 콘텐츠를 만들어 서비스한다면 EBS만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대한 콘텐츠를 위해 반드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죠.”
‘꼬마요리사’, ‘방귀대장 뿡뿡이’, ‘펭수’, ‘아기성장보고서’, ‘자본주의’, ‘학교란 무엇인가’, ‘한반도의 공룡’ 등 역대 성공작은 모두 교육성이 강했다. 타 방송·미디어와 다른 독창적이고 차별화한 영역을 구축하면서 사랑받았던 것.
EBS는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EBS가 디스커버리에 공급하는 방송사가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미국 제작단가는 10배 정도는 비싸요. BBC 다큐는 편당 36억원이 들어갔죠. EBS는 편당 6억원만 받고 제작해도 그들보다 10배 품질을 낼 수 있죠. 이런 하이엔드 전략을 당장 우리 돈으론 할 수 없으니 제작시장을 개척해 보고 싶어요. 넷플릭스가 한국을 침략하면 우리도 글로벌로 가야죠.”
그레이트 마인드, XR 등 플랫폼 개발
그는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교육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EBS는 지난 2월부터 세계 석학 전문 동영상 글로벌 플랫폼 ‘그레이트 마인드(thegreatminds.com)’ 운영을 시작했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6개 언어 자막을 제공하고, 시즌별로 석학 40~50명 강의 영상을 제작·탑재할 계획이다. 국내 공공기관이나 기업과 협력관계를 구축해 세계 최대 규모 석학 강연 영상 플랫폼으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다.
“그레이트 마인드는 전 세계에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테드(TED)’ 같은 콘셉트로 국내는 무료, 해외에서는 유료 구독 모델로 갈 겁니다. 유명 연사들의 섭외만으로도 많은 화제가 됐죠. 저출생, 독서율, 교육혁신 문제 3부작 다큐도 이미 제작 중이고, 올해 하반기 편성 개편을 마무리하면 내년 봄부터 선보일 겁니다.”
“EBS에선 인터넷 사이트를 8개나 직영 중입니다. 방송사일 뿐 아니라 대형 출판사이면서 IT 회사예요.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방송사는 세계적으로도 전무하죠. EBS는 작은 방송사지만 생각은 작지 않아요. 완전히 다른 전략으로 EBS를 한국의 유니크한 지식 밸류 콘텐츠 허브로 구축할 것입니다.”
EBS가 매일 내놓는 다양한 양질의 교육 콘텐츠는 오랜 기간 활용할 수 있다. 그는 허브 역할을 하는 ‘교육 전문 포털 플랫폼’을 구축·운영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교육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어 방송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허브 구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생각이다.
교육격차 해소 ‘앞장’...역할 맞는 수신료 인상 기대
EBS는 이미 초·중·고 무료 학습 사이트와 모바일, 초·중·고 AI 학습 시스템, 쌍방향 화상강의 시스템, 온라인 클래스를 완비했다. 내년이면 교육용 메타 캠퍼스도 구축·운영한다. 또 체험이 중요한 안전교육과 예술·체육활동을 위한 확장현실(XR) 콘텐츠를 기획 중이다. 김 사장은 “EBS의 콘텐츠와 첨단 학습 시스템을 활용하는 정책이 강화된다면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교육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EBS는 코로나19로 교육 시스템이 위협받는 가운데 제 기능을 발휘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가 재난 상황에서 기존 운영했던 소프트웨어 교육 플랫폼 ‘이솦’을 기반으로 초·중·고생 300만명이 동시에 접속 가능한 플랫폼인 ‘EBS 온라인 클래스’를 긴급 구축해 성공적으로 운영한 것.
당시 상황실장을 맡아 현장을 진두지휘한 김 사장은 위기 속에서 교육부,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7개 시도교육청 등 유관부처와 LG CNS, SKB 등 민간기업과 함께 초·중·고 학생들의 원격교육 지원에 최선을 다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그는 코로나19 이후에도 학력격차 회복을 위해 공동학습시스템(LMS), 화상강의, 인공지능을 결합한 통합시스템을 운영해 희망하는 17개 시도교육청에 교육회복 지원을 위한 ‘맞춤형 멘토링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최근 ‘수신료 인상’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김 사장은 EBS의 목소리를 냈다. “현행 수신료 2500원에서 3% 수준을 배분받아 70원을 받은 지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가장 공적인 역할을 하는 방송사를 더 대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BS가 전체 70%를 자체적으로 상업수익을 내서 해결하는 구조라서 고상하기까지 해야 하는 구성원들이 늘 버겁죠. 수신료가 현실화돼서 EBS의 역할만큼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신료는 국민이 내는 것이잖아요. 수신료위원회 같은 독립기구나 시청자가 핵심인 곳에서 배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공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품격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절박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2022년 05월호
‘버추얼 휴먼’ 갈수록 각광 대중문화 업계 대세로 자리 잡다
|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
대중문화 업계에 새롭게 떠오른 인물이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가상인간 ‘버추얼 휴먼’이 그 주인공이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인기를 끈 로지를 시작으로 한유아, 루이 등이 광고는 물론 가요, 드라마계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가수, 광고모델 데뷔...대세가 된 ‘가상인간’
최근 버추얼 휴먼이 가수는 물론 광고모델과 홈쇼핑 쇼호스트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버추얼 휴먼의 시작을 알린 로지는 SNS 스타 인플루언서로 활동을 알려 벌써 12만6000명(4월 기준)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이후 로지는 신한카드 CF모델로 활약한 뒤 지난 2월에는 가수로 데뷔하며 가요계로 영역을 확장했다. 로지의 데뷔곡 ‘후 앰 아이(Who Am I)’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 MZ세대는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로지의 매혹적인 음색과 함께 따뜻한 노랫말을 느낄 수 있다.
리릭 비디오는 발매 9일 만에 90만뷰를 돌파하면서 빠른 속도로 상승세를 보였다. 또 틱톡에서도 ‘후 앰 아이’ 챌린지 열풍이 불며 ‘#로지rozy’ 해시태그는 조회 수 1000만뷰를 돌파하기도 했다.
로지가 가수로 데뷔하자 다른 버추얼 휴먼도 가수 데뷔에 나섰다. 게임사 스마일게이트가 걸그룹 에스파의 아바타를 만든 자이언트스텝과 협업해 탄생한 한유아는 YG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인 YG케이플러스가 매니지먼트를 맡아 가수 데뷔를 앞두고 있다.
지난 2월 25일 발매된 유아의 ‘아이 라이크 댓(I Like That)’ 티저 영상은 4월 기준으로 유튜브 조회 수 4만5000뷰를 돌파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한유아는 가수 외에도 국제구호개발 NGO 희망친구 기아대책 홍보대사에도 위촉됐으며, 톱스타 계열에만 올라야 촬영할 수 있는 패션잡지 화보를 장식하기도 했다.
또 LG전자가 개발한 래아킴은 가수 윤종신이 대표 프로듀서로 있는 연예기획사 미스틱스토리와 업무협약을 맺고 신곡을 준비하고 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제작사 네오엔터디엑스가 제작한 리아는 라이브커머스 방송에서 김에 이어 삼각김밥을 판매하며 버추얼 휴먼 영역의 무한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리아의 경우 중국의 한복공정에 대응하는 프로젝트의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리아는 해당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숏폼 영상과 한복 화보를 진행했으며, 제작사 측은 리아를 모델로 한복 화보와 댄스 뮤직비디오 등을 제작해 한복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계획을 드러냈다.
리아뿐 아니라 가수로 데뷔한 로지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한복 디지털패션쇼에 모델로 등장, 해당 영상은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등장해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Z세대·알파세대에 거부감 없는 것이 특징”
로지, 한유아, 래아킴, 리아 등 많은 버추얼 휴먼이 모델뿐 아니라 가요계, 쇼호스트 등으로 진출하면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또 한유아의 경우 YG케이플러스에서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만큼 가수뿐 아니라 연기에도 나설 예정이다.
국내에 버추얼 휴먼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8년 사이버 가수 아담은 앨범 20만장 판매고를 올리며 화제를 모았지만 많은 인력과 제작비가 투입되는 모션 캡처 기술로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워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트렌드도 맞춰 변화하고 있다. 많은 기업과 엔터사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 버추얼 휴먼을 광고, 가요, 연기 등 대중문화 산업에 활용하며 수익을 내고 있다.
이에 시각특수효과(VFX) 및 콘텐츠 전문기업이자 버추얼 휴먼 사업을 확장 중인 덱스터스튜디오 관계자는 “버추얼 휴먼은 위험 요소가 적기 때문에 많은 기업에서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배우나 가수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있다. 학교폭력, 음주운전 등 사생활 논란 등이 발생할 수 있지만 버추얼 휴먼의 경우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특히 광고와 대중음악 산업 쪽에서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버추얼 휴먼의 경우 실제 인물의 사진이나 영상에 인공지능 딥러닝 기술로 생성한 가상 얼굴을 합성했기 때문에 불쾌한 골짜기(인간이 자신과 유사한 존재를 마주할 때 느끼는 불편함)를 최소화한 것도 특징”이라며 “또 알파세대(기술적 진보를 경험하며 자라난 2010~2024년 출생)는 디지털에 익숙하기 때문에 버추얼 휴먼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 그래서 Z세대와 알파세대에 더욱 각광을 받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2년 04월호
英거장 ‘호크니 vs 티보’ 아트마켓 대장주인 까닭은
미술애호가와 접점 이루며 최고 블루칩 등극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첫눈에 보면 대단히 평범한 그림이다. 그냥 누구나 그릴 법한 풍경화요 정물화다. 그런데 전 세계 톱 컬렉터들이 이들의 작품을 소장하길 원한다. 수집할 만한 작품이 나오길 기다리는 웨이팅 리스트도 엄청 길다.
지구촌에 수많은 미술가가 있지만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85)와 얼마 전 타계한 미국 작가 웨인 티보(1920~2021)는 지극히 낯익은 회화로 글로벌 아트마켓의 주목을 받아왔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편안하고 따뜻한 그림을 그린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친근한 그림’이란 것이 공통점이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자신이 머무는 곳의 주변 풍경과 지인들을 밝고 싱그럽게 표현한다. 웨인 티보는 우리 주위에서 자주 접하는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도시풍경을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두 아티스트 공히 구상회화를 일평생 추구해온 것이 공통점이다.
호크니와 티보의 또 다른 공통점은 어두운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심각하고 절망적인 세계를 들춰내기보다는 ‘생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외치듯 밝은 톤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작품에 담고 있다. 이를테면 ‘나이듦’과 같은 묵직한 주제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이를 어둡게 표현하기보다는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때문에 두 작가의 작품은 누구나 한두 점씩 갖길 원한다. 내 공간에, 나의 사무실에 걸기 더없이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이에 미술품 경매에 두 작가의 작품이 나오면 이를 손에 넣으려는 이들로 경매장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결국 낙찰가는 언제나 추정가를 훌쩍 웃돈다.
영국 현대미술의 리더 호크니
데이비드 호크니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아이패드 드로잉은 특별한 작업도구 없이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어서 노(老)작가는 거실에 놓인 꽃병도 그리고, 창가 풍경도 스케치한다. 그의 이 디지털 드로잉은 100여 장 또는 500여 장씩 프린트돼 수백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비록 아이패드 드로잉이지만 호크니 작업의 특징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인기가 높다.
호크니 작품은 초보 수집가들이 큰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디지털 드로잉에서부터 미술관용 대형작품까지 작품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고 작품 수도 많다. 수많은 영국의 현대미술가가 그를 쫓고 있지만 호크니는 최고의 블루칩 작가다. 경매 낙찰가에서도 이는 여실히 확인된다.
그가 1972년에 그린 ‘예술가의 초상’은 지난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1016억원에 팔렸다. 당시 뉴욕 록펠러센터 경매장은 수집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열기도 대단했다. 그동안 호크니 작품은 수십~수백억원대를 호가하며 인기를 구가했는데 마침내 1000억원을 돌파하며 ‘세계에서 작품값이 가장 비싼 생존작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종전까지 생존작가 세계 최고가는 미국의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66)의 대형 스테인리스 조각 ‘풍선강아지’가 세운 652억원이었다. 호크니는 이를 두 배 가까이 상회하며 홈런을 날린 것이다. 그 때문일까. 요즘 아트컬렉터들은 호크니 작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예술가의 초상’은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살이 수영장과 인물 위로 투영된 그림이다. 작품 속 두 인물 간에는 왠지 모를 긴장감이 드러나 있고,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이 그림은 호크니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영장’ 시리즈와 ‘두 명의 초상화’ 시리즈가 한 화폭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져 세계 최고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1972년 뉴욕의 갤러리 전시에 이 작품은 불과 2000만원에 팔렸다. 1983년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이자 슈퍼컬렉터인 데이비드 게펜은 매물로 나온 그림을 8억원에 사들였다. 걸작을 낚아채는 탁월한 눈을 가졌던 게펜은 ‘예술가의 초상’을 12년간 소장해 오다가 영국의 억만장자 조 루이스(토트넘 구단주)에게 수백억원에 팔았다. 게펜은 이 그림으로 최소 50~80배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게펜 같은 파워 컬렉터가 보유했다는 소장 이력 또한 낙찰가를 뛰어오르게 한 요인이다.
스무 살 때부터 붓을 잡은 호크니의 인기는 2000년대 들어 더욱 강력해졌다. 특히 ‘데뷔 60년’의 해인 2017년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호크니 열풍이 뜨거웠다.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테이트 브리튼이 작가의 전(全) 시기 작업을 조망한 대규모 회고전을 2~5월 성황리에 주관했고, 파리 퐁피두센터와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 전시를 이어받아 대성공을 거뒀다. 한국에서도 지난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호크니 전시가 성황리에 열렸다.
보통 ‘팝아트’는 미국이 아성이지만 호크니는 영국 팝아트의 저력을 입증한 작가다.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자연과 도시, 그 속 현대인의 희열과 고독을 누구보다도 강렬하면서도 탄탄하게 표현하며 “사진의 부상으로 회화는 죽었다”라는 말을 깨부순 거장이다. 그는 미술사학자 마틴 게이퍼드와의 대담에서 “우리는 세상을 기억과 함께 본다. 내 기억과 당신 기억은 다르기 때문에 한 장소에 있다 해도 같은 걸 보는 건 아니다”라며 심리적 부분까지 담아낸다는 점에서 회화는 여전히 중요한 장르라고 역설했다. 감각적이되 피상적이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되 세련된 그림이란 점에서 호크니의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 상향곡선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달콤한 그림에 깃든 정서, 미국의 티보
그깟 케이크 그림인데 100억원이라고?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평생에 걸쳐 케이크· 아이스크림 같은 디저트들을 화폭에 옮겨온 미국의 웨인 티보의 ‘진열장 안의 케이크’(2011)가 지난 201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약 100억원에 낙찰되며 개인 경매최고가를 세웠다. 그의 나이 99세, 우리 나이 100세에 이룬 기록이다.
생전에 티보는 “그림 소재로 취급받지 못한 것들을 찾아내려 했다”고 말하곤 했다. 함께 일했던 큐레이터(마리아 프라터)는 “그림을 핥고 싶을 정도”라고 찬사를 터뜨렸다. 지극히 달달한 그림이지만 그의 케이크 그림은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화가는 이를 “고독한 공존”이라 칭했다. 이는 다분히 시니컬한 정서이기도 하다.
자수성가형 작가인 티보는 가난한 10대 시절 식당에서 일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만화가가 꿈이었기에 디즈니스튜디오 수습직원이 됐고, 2차대전 중에는 공군 공보부서에서 포스터도 제작했다. 화가로 정식 데뷔한 건 마흔이 되어서였다. 젊은 시절 숱하게 나르던 디저트를 그린 그림으로 개최한 1962년 뉴욕 첫 전시는 모든 작품이 솔드아웃됐다. 무명의 작가였지만 반향은 대단했다. 무엇보다 작품값이 비싸지 않았고, 내 집 식탁 옆에 걸기에 제격인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각박한 현대사회 속에서 위로를 얻고 싶어 하는 이들의 마음을 파고든 것도 한 요인이었다. 이후 작가는 끈질긴 투혼으로 미국 정물화를 대표하는 최고의 대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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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톤으로 부드럽게 표현한 디저트 연작과 함께 티보는 캘리포니아의 도시 풍경도 즐겨 그렸다. 특히 가파른 언덕으로 이뤄진 샌프란시스코의 도심을 그린 회화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꼽힌다. 많은 화가와 사진가들이 도전한 대상이지만 티보는 대단히 함축적으로 이를 표현해 성가를 이뤘다.
티보는 그림의 소재가 톡톡 튀고 대중적이어서 팝아트 작가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화가는 “나는 특정 양식으로 분류되기보다 ‘그냥 구식 화가’로 남고 싶다”고 했다. 남들은 모두 첨단 트렌드를 좇지만 자신만이라도 ‘올드 패션’을 고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디저트 회화는 결코 촌스럽거나 시대착오적이지 않다. 오히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봐도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티보의 초창기 작품(1962년)인 ‘케이크들(The Cakes)’은 ‘최고의 팝아트 컬렉터’로 알려진 레온 크라우샤의 소장품이라는 이력이 더해져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50억원에 낙찰됐다. 케이크라는 평범한 주제 속에 미국의 풍요와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낸 이 그림은 물감을 다루는 티보의 남다른 역량을 엿보게 한다. 그는 물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물론 도넛에 뿌려진 설탕막까지 묘사하려는, 모든 대상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능력의 작가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실제 그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두껍게 바른 물감이 마치 추상화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보면 달콤한 케이크가 눈에 들어오며 형언키 어려든 행복감을 선사한다.
최근 들어 ‘아트테크’라는 용어가 대중에게 널리 회자되며 미술품 컬렉션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호크니와 티보의 경우는 대중의 심미안과 접점을 이루며 작품이 ‘최고의 블루칩’으로 등극한 사례다. 그러나 이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아직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은 ‘감상과 향유’라는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미술 투자는 작품을 소장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심미적 만족감과 예술적 경험이 핵심이다. 재테크 여부도 따져야겠지만 작가를 아끼고 후원하며 함께 성장할 방법을 찾는 수집가가 많아진다면 미술 생태계는 한결 풍요로워질 것이다. 작품값이 오르고, 작가가 스타가 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