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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호

이태식 건설기술연구원장 “깜짝 놀랄 건설 신기술로 강소기업 육성”

국내 지자체·중소건설사 협업·기술이전으로 키워 해외 건설연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허브’ 역할 극한환경 엔지니어링 기술이 신성장 동력 초고속 운송수단 하이퍼루퍼 기반기술 다수 보유...5년내 상용화 전망 | 김승현 기자 kimsh@newspim.com | 김학선 사진기자 yooksa@newspim.com “건설기술 연구·개발(R&D)은 중견·중소 건설사엔 생명줄이나 다름없습니다. 건설 신기술 R&D 여력이 없는 작은 건설사들을 강소(强小)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건설기술연구원이 필요합니다. 국내 17개 지자체와 건설연이 구축한 해외 네트워크를 연계해 기술력을 갖춘 우리 중소 건설사의 해외 진출을 이끌 것입니다.” “과잉 개발, 인구 축소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건설업의 새로운 먹거리는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기술이 마련할 것입니다. 남·북극이나 심해, 이를 더해 우주 개발까지 겨냥한 중장기 포석을 놓는 것입니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본원에서 월간 ANDA와 만난 이태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원장은 건설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해외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건설연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건설연은 우리나라 건설 분야의 최고 ‘싱크탱크’로 꼽힌다. 이태식 원장은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지금도 건설토목 분야에서 대학생을 가르치는 정통 ‘엔지니어’ 출신이다. 건설연 존재 의의는 강소기업 육성 이 원장은 고부가가치 산업인 설계,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중견‧중소 건설사들을 양성하고 이들의 발전을 돕는 것이 건설연의 존재 이유라고 말한다. 이 원장이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전문 기술을 갖춘 중견‧중소 건설사를 키우는 일이다. 그는 “아직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프로젝트 사업은 토목‧건축 분야로 우리 대형 건설사들은 직원 1인당 20억원의 생산성을 내기 힘들어 토목건축 경쟁력이 없어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대형사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게 중견사들”이라고 말했다. 건설연이 건설 신기술 R&D를 선도해 전문 건설사들을 강소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연의 다음 역할은 이들 강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것이다. 전문건설회사, 엔지니어링회사를 하나의 큰 ‘프로젝트 팀’으로 묶어 해외 사업을 수주토록 한다는 복안이다. 이 원장은 최근 이란에서 이룬 성과를 소개했다. 건설연은 지난 5월 이란 타드비르(Tadbir)경제개발그룹과 인프라, 에너지, 수자원, 건축, 교육훈련 등 분야의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또 지난달 1일에는 파라과이 정치·경제의 중심지인 센터 주(州)를 스마트시티로 개발하는 기술을 전수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그는 “이란 고위 종교지도자들이 기술 이전 없는 외국 회사와 일하지 말라고 지시함에 따라 기술 이전을 약속한 우리를 중심으로 일을 하겠다고 했다”며 “건설연은 일과 자리를 만들고, 일은 작더라도 알찬 건설사들이 하도록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주택보급률이 100%에 이르면서 뚜렷한 사양세를 보이는 국내 건설의 미래 신성장 동력에 대해서도 이 원장의 주장은 확고했다. 남극 대륙, 우주 건설과 같은 극한 환경 개발을 위한 엔지니어링 기술이 우리나라의 미래 신성장 동력이라는 것. 지구의 육지는 30%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육지의 70%가 산지여서 인간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기술은 가까운 시일에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특히 이 원장은 앞으로 극지 개발 분야에서는 우주 개발이 새로운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10년 뒤 자리를 차지하려면 우리도 지금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꿈 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를 일”이라고 운을 뗀 그는 “우주 개발은 토목 분야 전문가가 나서서 해야 한다는 게 미국 등 선진국의 시각”이라며 “미국 NASA 2인자가 와서 2020년 이후 달과 화성을 개발하는 문제를 우리 연구원과 함께 연구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말했다. 건설연이 추진하고 있는 최첨단 기술도 소개했다. 최근 건설연의 주력사업은 ‘하이퍼루프(Hyperloop)’다. 하이퍼루프는 미국 테슬라의 CEO(최고경영자)인 엘론 머스크가 제안한 신개념 초고속 운송수단이다. 진공 상태에 가까운 튜브에 캡슐 형태 열차를 자기부상 방식으로 운행한다. 이 열차의 운행속도는 항공기 수준인 시속 1200km에 달한다. 이 원장은 “하이퍼루프 사업은 경제성 확보가 가장 중요한데 우리는 경제성 있는 지반공학, 기존 운송 네트워크와의 접속 기술, 태양광에너지 연계 기술 등 기반기술을 갖춰 건설 효율성을 20% 이상 끌어올렸다”며 “관계 부처에서 우리 교통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사업으로 보고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R&D·상생 네트워크 ‘건설혁신센터’ 창립 건설연은 최근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지방자치단체와 직접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 정부는 전국 각지에 대기업과 지역을 연결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했지만, 이 분야에서 건설 부문은 빠져 있다. 이에 건설연은 지난 4월 건설창조혁신센터라고 할 수 있는 ‘건설산업혁신센터’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기술 세일즈맨’ 역할을 맡아 중소 건설사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건설산업혁신센터(센터장 정성철)의 임무다. 연구소가 연구·개발만 하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판단에서 건설연 전체 800명 전문인력이 만들어낸 기술을 전담직원 100명이 이전한다. 건설연이 개발한 기술을 직접 중소 건설사에 유무상으로 넘겨 그들의 역량을 높인다. 또 17개 지자체와 협업해 지방의 기술개발 역량을 키운다. 건설연이 30년 넘게 쌓아온 해외 네트워크와 지자체, 중소 건설사를 연결해 이들의 해외시장 진출을 돕는다. 그 첫발로 전라남도와 경상북도가 손을 잡고 추진하는 창조경제를 지원한다. 지난 9월 6일 국회에서 두 지자체와 ‘건설산업 창조경제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에 따라 건설연과 지자체가 힘을 합쳐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중소 건설사 지원 시스템이 구축된다. 건설연은 우선 기술 이전을 통해 지역 내 건설사들의 경쟁력을 높인다. 이후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역 중소 건설사 해외 진출을 도모한다. 지역 중소 건설사는 매출을 늘려 지역 생산을 증대하고 고용도 확대한다. 정성철 센터장은 “17개 지자체는 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욕구는 크나 현실적으로 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로 인해 기술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것이 경제력 양극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번 협약에 제안된 과제는 총 43건(전남 14건, 경북 11건, 건설연 18건)이다. 건설·건축·환경 분야에서 전남은 제로에너지 주거를 위한 BIPV-T 융합 에너지 시스템 개발 등을, 경북은 산업 육성을 위한 산학연 매칭 프로그램 운영 등을, 건설연은 차세대 초고속이동체계(하이퍼루프) 기반기술 개발 과제 등을 제안했다. 정 센터장은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한 기술 개발이 급격히 진행되는 추세에서 수도권 업체의 기술력이 크게 신장하고 지방 기업은 수도권 기업의 단순 하도급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체제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가 건설연의 역량 활용을 요청하면 원격 또는 현장 방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건설 정책·기술 관련 지자체 부설 연구소’를 운영한다. 건설연은 정부가 1조6000억원을 투입하는 연구·개발 9대 국가 프로젝트(인공지능, 가상·증강현실, 자율주행차, 경량소재, 스마트시티, 정밀 의료, 탄소 자원화, 미세먼지 관리 시스템, 바이오 신약),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하이퍼루프 등 신사업 기술을 개발하고 테스트베드를 구현한다. 이태식 원장은 “건설연이 보유한 고급 인력과 노하우를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지역의 건설행정 고도화 및 재해·재난 대응에 활용하는 등 O2O 방식으로 새로운 지자체 협력 모델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가 선진국으로부터 받은 기술을 이제는 개발도상국에 전수해야 하는데, 그것이 우리 연구원이 할 일”이라며 “해수면 상승과 같은 미래 문제에 대비하는 인프라 개념을 고민해야 하며, 새로운 대토목 공사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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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호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 “조직도대로 해”...권한위임 후 승승장구

아마존’ 제프 베조스 혁신에 감명...계열사 ‘도전과 혁신’ 전향적 지원 ‘철저한 성과주의’로 최고실적 견인...”인재와는 몸값 흥정 안해” 근면성실한 ‘학습왕’...서경배·황영기·하영구 회장과 두루 친분 | 김연순 기자 y2kid@newspim.com 미국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회장이 설립한 블루오리진(2000년)은 지난해 11월 우주선 발사체를 미국 텍사스 발사장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실험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제프 베조스 회장은 1994년 아마존을 설립한 이후 IT, 유통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140년 전통 신문인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데 이어 우주 경쟁까지 뛰어들었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을 얘기할 때 제프 베조스 회장을 떠올리는 이는 많지 않다. 조 회장이 지난 1989년 한일증권(현 메리츠증권 전신) 입사 이후 30여 년간 금융 외길을 걸어온 데 반해 베조스 회장은 금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영역에서 삶의 궤적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조스 회장 역시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 설립 직전까지 금융회사(뱅커스트러스트 부사장)에 근무하며 금융업에 종사한 경력이 있다. 무엇보다 베조스 회장은 조 회장의 대화 속에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면 조 회장과 베조스 회장을 이어주는 가장 긴밀한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바로 ‘혁신 경영’이다. 외부에 노출되는 일이 거의 없어 ‘은둔형 경영자’로 알려진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사실 조 회장은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의 넷째 아들이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막냇동생으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지난해 어려운 금융 환경 속에서도 메리츠금융그룹 계열 4개사의 당기순이익이 5000억원을 돌파하면서 조 회장의 경영 방식과 리더십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동시에 한진그룹에서 가장 먼저 홀로 서기에 나서 계열 분리 당시 네 형제 중 가장 적었던 1450억원의 주식 자산을 1조2000억원(조양호 회장의 6배)으로 불려 한진가(家) ‘최고’가 된 것도 화제가 됐다. 최근 한진 사태와 맞물리면서 조 회장에 대한 재조명 분위기가 높아졌지만, 그의 경영철학과 개인사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조 회장 스스로가 외부 노출을 극히 꺼리기 때문이다. 최측근들을 통해 베일에 가려진 조정호 회장을 새롭게 조명해본다. “아마존에서 혁신을 보다” 조정호 회장은 ‘아마존’이라는 회사에 관심이 많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태블릿 출시, 워싱턴포스트 인수, 드론 택배 시스템 등 인터넷 전자상거래 기업으로뿐만 아니라 ICT업계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행보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우주 경쟁에 뛰어든 데 이어 항공기를 여러 대 구입하면서 물류 부문에서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조 회장은 미국 아마존의 혁신과 도전에 대해 계열사 사장(CEO)들과 자주 얘기를 나눈다. ‘아마존의 혁신’은 메리츠금융지주 사장단 회의에 자주 등장하는 얘깃거리다. 관련 책뿐 아니라 기사도 꼼꼼히 챙긴다. 그룹 계열사의 한 CEO는 “처음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베이만 못했지만 제프 베조스가 개선책을 끈질기게 찾아나가면서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개선해낸 것에 대해 (조 회장이) 인상 깊게 생각한다”면서 “베조스의 혁신적인 정신과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실행력 등에 대해 (조 회장이) 사장들과 같이 얘기를 나눈다”고 전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의 경영철학과 전략이 조 회장에겐 벤치마킹 대상이자 롤모델인 셈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의 ‘거대점포화’는 메리츠금융그룹에서 추진한 대표적인 혁신 사례다. 당시 메리츠종금증권은 전국 19개 지점을 5개 대형 점포로 개편, 최악의 업황 속에서도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내면서 경영 정상화에 성공했다.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은 “업계에서 대형점포화에 대해 우려가 많았지만, 그것을 강력하게 응원해준 분이 조정호 회장”이라고 회고하면서 “(조 회장은) 도전과 혁신에 대해선 전향적으로 지원한다”고 전했다. “대기업에서 창업세대 외에 기존 2~3세대를 보면 대부분 현실안주형이 많습니다. 도전과 혁신을 대부분 주저하죠. 하지만 (조 회장은) 철저하게 계열사들의 도전과 혁신을 장려하고 응원합니다. 증권, 화재, 자산운용에서 혁신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조 회장의 다른 측근 인사도 그의 혁신 의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조 회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계열사 CEO들과 페이퍼(서류) 회의를 진행한다. 나머지는 모두 ‘응접실 회의’다. 회의를 위한 별도 준비서류는 없다. 조 회장을 포함해 CEO들이 편안한 복장으로 만나 모든 사안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는 자리다. 또 메리츠금융그룹은 직원과 CEO가 SMS(문자)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엔 조 회장도 예외가 아니다. 조 회장 역시 웬만한 내용은 서류 대신 문자로 보고받고 결재한다. 메리츠 기업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중간관리자 직책이 없다는 점이다. 메리츠의 모든 사업조직은 팀장과 팀원으로만 구성된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직원 개개인의 자율성으로부터 나오는데, 중간관리자 권한이 강해질수록 직원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를 위해 문서 작성을 80% 줄이고 대면 결재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정시 퇴근을 의무화해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고,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는 30분 회의 방식을 도입해 효율을 높였다. 올해부터는 부서보다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해 소통하고 협력하는 벽 없는 조직 만들기도 실행 중이다. 그룹 계열사 CEO의 증언은 조 회장이 지향하는 메리츠금융그룹의 조직문화를 잘 대변해준다. “회장님은 유연하고 혁신적인 조직을 항상 강조합니다. 의전, 격식, 형식을 일절 따지지 않죠. 회장과 미팅한다고 해서 문 앞에서 기다리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인재경영+성과주의로 이룬 최고 실적” “최고 인재와는 몸값 흥정 안 한다. 성과에는 파격적으로 보상한다.” 평소 조정호 회장이 즐겨쓰는 말 중 하나다. 이렇다 보니 우수한 인재에겐 파격적인 대우가 따른다. 직급, 근속연수를 따지지 않고 성과에 비례해 보상하기 때문에 메리츠금융그룹 내에서 파격적인 보상은 다반사다. 지난해 탁월한 실적을 낸 일부 임원은 조 회장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부·차장급 직원 중에도 자신의 연봉보다 10배 이상 많은 성과급을 받은 사람이 수십 명에 달한다. 다른 증권사 영업직원들이 인센티브를 적용받는 손익분기점이 본인 연봉의 2~3배라면, 메리츠종금증권은 과감히 손익분기점을 영업직원 연봉에 맞췄다. 본인 연봉만큼만 실적을 내면 연봉을 초과하는 부분의 50%를 인센티브로 가져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조 회장이 아마존만큼 눈여겨보는 곳은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탈’이다. 3G캐피탈은 브라질의 작은 주식 브로커 회사로 출발해 버드와이저 등 세계 최대 맥주회사와 하인즈(케첩), 버거킹을 인수하며 이름을 세계 무대에 각인시켰다. 조 회장이 주목하는 3G캐피탈의 혁신은 인재경영, 성과주의, 비용절감이다. 이 정신을 바탕으로 3G캐피탈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고, 이는 메리츠금융그룹 전체를 관통하는 조정호 회장의 경영철학과 일맥상통한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룹 계열사의 CEO는 “(조 회장이) 그룹 차원에서 많이 얘기하는 부분은 성과주의와 도전, 인재경영에 대한 것들”이라며 “(조 회장은) 3G캐피탈이 철저한 성과주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룹 각 계열사 CEO에 대한 철저한 권한 위임도 오너 기업 중 조 회장만이 가진 경영철학 중 하나다. 지난 2014년 영입한 존 리 대표는 메리츠자산운용을 맡는 조건으로 조 회장에게 ‘더 코리아펀드’ 팀을 함께 영입하고 경영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조 회장은 당시 이런 파격적인 조건을 받아들였다. 조 회장의 최측근은 조 회장의 권한 위임 스타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재벌 총수들이 기업을 컨트롤하는 방식은 대부분 두 가지입니다. 전문경영인이 있지만 실제로 총수가 다 관여해 총수에게 문제가 생기면 조직이 마비되는 경우가 하나고요. 전문경영인을 앉혀놓고 위임을 하되, 그 밑에 심복을 심어놓고 감시하고 견제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조직도대로 합니다. 조직도대로 위임하고 리스크 관련 가이드라인과 약속을 위배하지 않는 한 지주에선 사전에 계열사에 일일이 관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조 회장의 방식이고, 우리나라 오너 중에는 이런 방식의 경영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메리츠금융은 형식과 권위주의를 탈피한 이후 인재경영을 통해 높은 성과를 내고 철저한 성과주의와 권한 위임으로 차별화된 성장을 이끌어내고 있다. 물론 기반에는 ‘주주가치 제고’라는 대원칙이 자리한다. 그룹 계열사 대표는 “ ‘주주가치 제고’가 그룹에서 행하는 모든 것의 원칙”이라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 다 평가받고 보상받는다”고 말했다. 메리츠금융그룹 계열사들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5000억원 선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메리츠그룹의 이익 규모는 비은행 금융지주사 그룹인 한국금융그룹(3568억원)과 은행 지주계열인 DGB금융(3083억원)을 크게 앞질렀다. 또 2011년 3월 말 자산총액 11조6257억원으로 메리츠화재에서 인적분할해 만들어진 메리츠금융지주는 5년 만인 2016년 상반기 기준 자산 규모가 36조8652억원으로 놀랄 만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img4 ‘근면성실·학습왕’ 조정호 회장, 서경배·황영기·하영구 회장 등과 친분 조정호 회장은 1958년 10월 인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4남으로 태어났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 고(故)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의 동생이다. 조 회장은 청소년기 유학길에 올라 미국 보스턴의 대처고(高)와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또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에서 금융 전공으로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대한항공 차장으로 입사해 구주지역본부에서 일하다가 한일증권으로 옮겼다. 한일증권에서 이름이 바뀐 한진투자증권에서 전무로 일하다가 한진그룹 계열 동양화재해상보험으로 옮겨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한진그룹에서 가장 먼저 홀로 서기에 나서 한진투자증권과 동양화재를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로 사명을 변경하고 메리츠증권 회장에 올랐다. 부친인 조중훈 창업주가 세상을 뜨자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한불종금 등 3개 금융회사를 계열분리했고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메리츠종합금융 등 3개 계열사를 토대로 메리츠금융그룹을 출범시켰다. 부인을 포함해 처가 가족관계 역시 화려하다. 조 회장은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차녀 구명진 씨와 결혼해 슬하에 조원기 씨, 조효재 씨, 조효리 씨 등 1남 2녀를 뒀다. 장인 구자학 회장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자의 아들이고, 장모 이숙희 씨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둘째 딸이다. 이를 두고 조정호 회장이 한진과 삼성, LG의 3대 그룹을 연결하는 인간고리 역할을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렇다 보니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숙희 씨 조카)을 포함해 삼성, LG 등 재벌가 2세들과 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과도 각별한 사이로 전해진다. 조 회장의 한 측근은 “조정호 회장이 정말로 인정하는 사람 중 한 분이 서경배 회장”이라면서 “권위적이지 않은 서 회장과 잘 알고 친한 사이”라고 전했다. 금융권에선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등과 친분이 있다. 금융인들이 멤버로 있는 월가회 모임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또 조 회장의 측근인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사장(뱅커스트러스트 뉴욕, 서울 부사장 출신)과 두터운 인맥인 황영기 회장(뱅커스트러스트 인터내셔널 동경지점 국제자본시장부 부사장 출신)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회장과 같은 ‘뱅커스트러스트’ 출신인 점은 우연 같은 인연이다. 조 회장 측근들의 말을 종합하면 조 회장의 라이프스타일과 생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조 회장은 그룹 오너지만 항상 아침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합니다. 이 원칙은 변함이 없습니다. 누구보다 근면 성실하죠. 놀라운 건 항상 공부한다는 겁니다. 오랜 유학생활을 통해 영어가 네이티브(native) 수준인데 블룸버그뿐 아니라 포브스 등 경영 관련 잡지와 서적들을 폭넓게 탐독하고 끊임없이 학습합니다. 이렇다 보니 최신 경영 트렌드와 현상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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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호

한국가스공사 사장 이승훈

해외자원개발 재시동...“도입연계형 LNG 사업에 집중” 26개 해외사업 전면 재조정...“민간기업과 동반진출 확대” 가스 도매시장 개방 환영...“2025년 이후 경쟁체제 바람직” | 최영수 기자 dream@newspim.com 한국가스공사 등 자원공기업 3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자원개발사업을 강도 높게 추진하다가 국제 유가가 급락한 후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자원공기업 3사 중 ‘맏형’ 격인 한국가스공사도 지난 수년간 해외사업 구조조정과 경영 혁신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특히 지난해 7월 이승훈 사장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이후 해외사업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시절인 지난 1990년대 정부로부터 한전을 비롯한 5대 공기업의 경영 진단 용역을 맡은 바 있어 공기업 현실에 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추진될 당시에는 산업부 전기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서 변화를 주도했다. 지난 4월부터는 해외자원개발협회 회장을 맡아 해외자원 부실 개발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보다 발전적인 해외사업을 모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승훈 사장을 만나 가스공사 경영혁신의 현주소와 해외자원개발사업의 발전 방향을 짚어봤다. 올해 1분기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달성하고 부채비율을 대폭 낮췄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무엇이었나?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자원 개발과 운전자본 증가로 인해 부채비율이 크게 증가했으나 2013년을 정점으로 하향 추세로 전환됐다. 부채감축계획을 통해 2013년 389% 수준에서 지난해 말 321%로 떨어졌고 2017년까지 300% 이내로 낮출 계획이다. 실제 부채는 얼마나 줄었나? 지난해 총 4조7000억원을 감축해 현재 부채는 32조3000억원이다. 내년까지 10조5000억원을 더 줄여 2020년까지 부채비율을 250% 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미수금도 2012년 5조5000억원에서 올 상반기 현재 1조6000억원 수준으로 줄였다. 경영에 부담을 주는 미수금을 내년 상반기까지 전액 회수하고, 해외자원 개발사업을 조기에 정상화해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다. 지난해 남다른 혁신에도 불구하고 정부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다. 부진한 이유와 대응책은 무엇인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전사적인 경영혁신과 획기적인 부채감축 등 경영개선 노력 부분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자원개발사업 수익이 감소하고 국내 가스시장 성장이 정체되면서 낮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취임 후 1년 3개월 정도 지났다. 공기업 사장을 처음 맡으면서 느낀 점은? 40여 년간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만 하다가 기업 경영을 처음 맡으면서 취임 후 6개월 정도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이제는 가스공사 가족의 일원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밖에서 보던 공기업과 가장 달랐던 점은 무엇인가? 공기업은 공익만을 위해 국민과 국가에 무조건 봉사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 물론 공익이 최우선 목표지만 동시에 기업의 이익을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며, 그것이 경영자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에너지 공기업 기능조정의 일환으로 가스 도매시장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작용 우려도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시장경제론자로서 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2024년까지 가스공사의 장기 계약물량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민간기업들이 직도입을 하게 된다면 자칫 국내 에너지 수급질서가 혼란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공정한 경쟁구도가 형성되려면 2025년 이후의 수요량을 정확히 예측해 도입을 허용하되, 가스공사든 민간기업이든 도입단가가 낮은 순서대로 도입을 허용하면 공급물량이 남을 우려도 없을 것이다. 셰일가스 혁명 이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이 가스공사에 미치는 영향은? 셰일가스 혁명의 여파로 저유가 시대가 장기화되고 있다. 저유가가 가스공사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국내사업과 해외사업 포트폴리오에 따라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동시에 존재한다. 국내사업은 국내 LNG 도입대금 및 운전자금 감소로 부채비율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는 반면, 해외사업은 수익 감소로 재무구조가 악화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LNG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 이에 맞춰 경영전략도 새롭게 짜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저유가 시대가 장기화할 경우 가스공사 경영에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공존하기 때문에 사업별, 시기별로 구분해 대응하고 있다. 우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는 저유가를 활용해 운전자금 최소화(단기 차입금 축소)에 주력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내년 이후에는 해외사업 수익성 제고 및 리스크 관리에 주력할 계획이다. 특히 전체 26개 해외투자사업(22개 자원개발사업, 4개 하류사업)을 재평가해 전략가치와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대상으로 투자계획을 조정하고 단계적 자산매각, 프로젝트 펀드 유치 및 유동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img4 자원공기업 중 한 곳으로서 해외자원 부실 개발의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구조조정 성과는? 지분 매각, 자산 유동화 등을 통해 핵심자산 위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자원개발사업 투자 규모 및 시기를 조정하고, 비핵심자산 매각, 자본 확충 등 부채감축 계획을 이행해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을 전년 대비 60%p 낮췄다. 구체적으로 북미 가스전 사업 투자 규모 및 시기를 조정하고 LNG 캐나다 사업 지분을 5% 매각한 데 이어 미얀마 사업 육상배관사업도 유동화했다. 앞으로도 지난 6월 정부가 제시한 해외자원개발 추진체계 개선 방안에 따라 적극 추진하겠다. 해외자원개발협회 회장직도 맡고 있는데, 향후 가스공사의 해외사업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나? 자원개발사업 구조조정 성과를 바탕으로 투자 여력을 확보해 핵심사업 중심으로 해외사업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신규 해외자원개발 투자는 재무 여건, 국제 유가 향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내 천연가스 가격 및 수급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도입연계형 LNG 사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탐사사업은 LNG 사업과 통합 개발 가능한 전략적 지역을 선별해 중장기 관점에서 추진할 계획이다. 민간기업과의 협력 강화 및 동반진출 계획은? 국내 관련 기업과의 해외 동반진출을 견인하는 차원에서 천연가스 인프라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가스공사의 국제적 신인도와 민간기업의 사업 역량을 결합해 해외 수주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관련 민간기업들의 많은 참여와 협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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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호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 인터뷰

‘부실 공룡’을 개혁한 혁신의 마법사 에너지빈국에서 에너지강국을 꿈꾼다 | 최영수 기자 dream@newspim.com 지난 2012년 12월 한국전력공사의 제19대 수장으로 조환익 사장이 취임할 당시만 해도 한전은 ‘공룡 화석’ 그 자체였다. 고유가 속에서 전기료를 제때 인상하지 못해 빚이 산더미처럼 쌓인 부실 공기업의 대명사였다. 직원들의 사기도 바닥까지 떨어져 말 그대로 앞이 보이질 않았다. 위기 속에서 지휘봉을 잡은 조 사장은 직원들에게 ‘공룡’의 습성을 버리고 ‘뱀의 3가지 좋은 습성’을 배우라고 강조했다. 취임 초기인 2013년 뱀의 해를 맞아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뱀은 늘 낮은 자세로 땅 위를 기어가며 세상과 소통한다. 때론 나무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피며 통찰력을 갖는다. 무엇보다 더욱 성장하기 위해 과감히 허물을 벗어 혁신(革新)한다. 조 사장은 취임 초기 정부와 국회, 언론과 부지런히 소통해 2013년 1월 전기료 인상을 실현,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탈피할 기반을 조성했다. 또 세계 에너지시장의 변화를 주목하면서 에너지 신산업에 발 빠르게 투자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과감한 혁신으로 부실 공룡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조 사장의 노력은 국제 유가 하락과 더불어 한전이 흑자 구조로 돌아서는 계기가 됐고, 이제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올해 초 연임에 성공한 후에는 에너지 신산업을 통한 ‘에너지 강국’을 꿈꾸며 뛰고 있다. 조 사장을 만나 지난 임기의 성과를 조명해보고 한전의 남은 과제를 해결할 전략을 들어봤다. Q. 올해 초 연임한 후 약 8개월이 지났는데 앞서 3년 임기보다 더 분주하게 보낸 것 같다. 올해 경영 상황을 자평하면? A. 세계 경제 침체로 글로벌 전력회사들의 실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한전은 효율적인 전력망 운영과 전사적인 자구 노력으로 부채 감축을 통해 재무 여건을 개선했다. 또 한발 앞선 에너지 신산업 투자를 통해 성장동력을 확보해 시장 가치를 높여온 결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Q. 미국 포브스지가 한전을 ‘세계 1위 전력회사’로 선정했는데, 남다른 혁신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A. 제가 사장으로 취임하기 이전인 2012년 한전은 포브스 종합순위 580위, 글로벌 전력회사 30위를 기록했지만 올해 종합순위 97위, 전력 유틸리티 분야 1위를 달성했다. 그동안 프랑스의 EDF 등 유럽의 메이저 전력회사들이 1위를 독점했는데 한전이 아시아 전력회사 중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성과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전의 위상을 확고히 입증해 해외사업 수주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Q. 에너지밸리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데, 애초 계획보다 성과가 훨씬 좋다. 중간평가를 한다면? A. 한전은 전라남도, 광주시 등 지자체와 협력해 빛가람(나주)혁신도시에 에너지밸리를 조성, 에너지 분야 글로벌 허브로 만듦으로써 에너지 신산업을 국가의 신성장동력으로 삼고자 한다. 현재 133개사와 에너지밸리 투자협약을 체결했으며 이 중 54개사가 투자를 실행한 상태다. 2020년까지 500개 기업을 유치해 에너지밸리를 성공적으로 조성한다면 빛가람혁신도시가 대한민국의 전력수도로 성장할 것이다. Q. 투자 유치 못지않게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A. 한전은 에너지 관련 기업 유치, 특화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네트워크 구축과 에너지 분야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등을 추진 중이다. 또 국내기업뿐만 아니라 해외기업까지 유치 대상을 확대했으며, 다양한 형태의 기업들이 자생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 한전을 중심으로 혁신도시에 위치한 기초전력연구원 분원, 혁신산단의 에너지밸리 R&D센터와 같은 에너지 분야 연구소와 투자기업, 그리고 지역대학 간 R&D 네트워크를 구축해 매년 약 100억원 규모의 R&D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Q. 혁신도시에 이전한 공기업과의 시너지 효과는? A. 혁신도시에는 한전을 비롯해 14개 공공기관이 이주해 있는데, 이들 공공기관과 스마트그리드 스테이션 연계를 통한 에너지 관리를 시작으로 재난 및 공공 서비스 등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시티화를 추진 중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빛가람혁신도시가 최적의 기업 환경을 갖춘 에너지 분야 선도적인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Q. 파리기후협약으로 신기후체제가 출범하면서 에너지 공기업의 선도적인 역할이 중요해졌다. A. 신기후체제가 출범하면서 깨끗하고 스마트한 에너지를 통해 환경 문제도 해결하고 새로운 투자 기회를 만드는 ‘에너지 빅뱅’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이런 변화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만들어 세계 에너지 신산업 시장을 향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과감한 투자로 에너지 신산업의 플랫폼을 만들고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한다. 스마트그리드, 에너지저장장치(ESS), 원격검침 인프라(AMI)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2조원 규모의 신산업 펀드를 조성하는 마중물 투자를 선행하고 있다. Q. 정부의 에너지 신산업 육성 의지가 강하다. 한전도 올해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대폭 늘릴 계획인데. A.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해외에서 더욱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중국(130만kW)과 요르단(9만kW)에서 풍력사업, 일본(3만kW)에서는 태양광사업 등 해외에서 총 142만kW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1기가 통상 100만kW인데 원전 1기 반 정도의 신재생발전소를 해외에서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향후 세계 신재생에너지 시장 규모는 풍력과 태양광을 중심으로 2040년까지 약 24억kW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한전은 이런 세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태양광·풍력 중심으로 신재생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오는 2025년까지 총 780만kW(매출 4조6000억원)까지 해외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Q. 가파도에 가보니 마이크로그리드(MG) 사업이 실감 난다. 향후 사업계획과 해외 진출 전략은? A.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란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 등을 에너지 관리 시스템으로 제어·운전할 수 있는 소규모 전력망으로, 에너지 신산업을 이끄는 전력 분야의 신기술이다. 장거리 대규모 송전선로가 필요 없다는 게 큰 장점이며, 2020년까지 400억달러(약 44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은 그동안 가사도, 가파도 등에서 마이크로그리드 자체 기술을 확보했으며, 이를 통해 해외 진출을 모색했고 최근 캐나다에서 좋은 결실을 맺었다. 지난 6월 말 준공한 캐나다 사업은 캐나다 파워스트림(PowerStream)사와 2년간 50억원을 공동 투자해 온타리오 주 북부지역인 페네탱귀신 시를 마이크로그리드로 구축했다. 이곳은 배전 자동화 및 운영 시스템 없이 운영되던 지역이었으나, 한전이 자체 개발한 MG시스템과 ESS, 국산 자동화개폐기를 설치해 한전형 MG를 제공했다. 특히 양사는 공동 사업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전 세계 마이크로그리드 시장의 절반 규모인 북미 시장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수주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좋은 성과가 기대된다. Q. 한전이 해외 전력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성과는? A. 한전은 1995년 필리핀 말라야화력발전소 성능 복구 사업 수주를 시작으로 해외사업을 시작해 20년 넘게 필리핀에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리한과 세부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필리핀 전체 발전전력의 약 13%를 생산할 만큼 성장했다. 현재 전 세계 21개국 36개 사업을 수행하며 지분 기준 6866MW의 해외 발전설비 용량을 보유하고 있다. 해외사업 매출은 2015년 말 기준 4조9000억원에 달해 해외사업만으로도 이미 글로벌 에너지 리더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더불어 요르단 푸제이즈 풍력발전사업(2015.12), 일본 홋카이도 태양광발전사업(2016.4) 등 해외 신재생 사업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해 글로벌 에너지 벨트를 구축해가고 있다. Q. 전력시장 개방으로 전기료 인상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있는데. A.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전력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정도다. 전력 판매시장의 민간 개방은 국가별로 사회적 여건과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고 대응해야 할 사안이다. 특히 최근 스마트그리드, ESS, 전기차 등 에너지 분야 신기술의 발달과 e-프로슈머의 등장으로 새롭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개방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따라서 판매시장 민간 개방으로 전기요금, 소비자 선택권, 서비스 품질 등 국민 이익이 증진되는 부분이 있다면 개방을 거부할 수는 없다. 다만, 일부 개방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필수재인 전력 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해 서민층 보호, 요금 안정 등 전력 부문의 공공성이 유지돼야 한다. 특히 신규 판매사업자가 수익이 발생하는 고객만을 선별해 사업하는 체리피킹이나, 전력 인프라에 대한 투자 없이 시장에서 수익만을 추구하는 무임승차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론화 과정과 국민적 합의를 통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Q. 전력시장이 개방되면 한전도 업(業)의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 같은데. A. 점점 업종 간 벽이 허물어지고 융복합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한전은 안정적 전력 공급이라는 기본적인 책무를 다함과 동시에 업(業)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세계 1위 전력회사의 위상에 걸맞게 한전은 사업 영역을 다변화하고 빛가람 에너지밸리에서 에너지를 집적해 미래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대표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 Q.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을 에너지 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청사진이 있다면? A. 지난해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되고 국내외 전력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분야 신산업이 태동하고 있다. 에너지 정책의 변화는 물론 전력산업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이런 변화의 물결 앞에서 가치 창출을 주도하며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만들어 세계 에너지 신산업 시장을 선점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전은 이런 도전적인 빅 리그에 진입해 한국의 대표 선발투수 역할을 할 것이다. 에너지 신산업에 과감히 투자해 마중물 역할을 하고, 청정기술 개발로 탄소를 감축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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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호

백팩 메고 지하철로 출근하는 국회의원 채이배 지하철 인터뷰

“이런 모습이 기사화되지 않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변화 만들 것” | 김나래 기자 ticktock0326@newspim.com | 이형석 사진기자 leehs@newspim.com ‘작고 소중한 성공의 경험을 축적해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백팩을 메고 수행비서 없이 홀로 지하철로 출근하는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20여 년간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말이다. 그는 시민운동을 처음 시작한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은 변화’가 ‘더 나은 사회’로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고 믿고 있다. 그는 지난 1998년부터 시민운동을 해왔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와의 인연으로 소액주주 운동에 눈을 뜨게 돼 잘나간다는 삼일회계법인을 박차고 나왔다. 그는 경제개혁연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에서 재벌 대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 교수와 시작된 인연은 지난 대선 때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도 닿아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 세법, 상법, 공정거래법에 정통한 채 의원은 정책을 통한 사회 변화에 앞서 20대 국회에 신선한 정치 풍속도를 만들고 있다. 국회의원이라는 물질적 특권보다는 국민의 신뢰라는 특권을 누리고 싶다는 채 의원의 지하철 출근길을 월간 ANDA가 동행 취재했다. # 오전 7:20 고려대역 4번 출구 백팩을 멘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과 함께 출근하는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기자와 밝게 인사한 뒤 채 의원은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지하철 개찰구 문을 나섰다. 그는 조찬 모임이 있는 경우는 자가 운전으로 출근하지만, 1주일에 서너 번 지하철을 이용한다. 광흥창역에서 국회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한 지도 석 달째다. 매일 타고 다녔던 지하철이라 오히려 더 편하다는 것. 지하철 문이 열리자 채 의원은 “오늘은 생각보다 혼잡스럽지 않다. 연달아 지하철이 와서 그런 것 같다”며 여유를 보였다. # 오전 7:38 청구역 채 의원은 지하철로 출근하는 동안 주로 페이스북을 한다. 그는 페북을 보여주며 “아침 출근시간에 책을 보고 싶지만 지하철 공간이 좁고 시간도 짧아서 페북을 많이 한다. 가끔 페북을 하다가 광흥창역을 지나쳐 내리지 못할 때가 있다”며 “출근길 페북에 올라온 기사 중 관심 있는 기사가 많아 꼼꼼히 챙겨본다”고 말했다. 가끔 박지원 대표의 페북에도 ‘좋아요’를 누르며 당론에 관심의 힘(?)을 보탠다. 국회 생활이 어떠냐고 묻자, “여전히 아직도 적응 중인데 일은 점점 쌓여가고 있어 국감을 한 번 하면 (일이) 조금은 사라질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소문난 일벌레다. “보좌진이 가끔 토요일에 출근해보면 채 의원이 혼자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채 의원은 “토요일에 늦잠 자고 나오면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아 차분하게 일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평일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책상에 앉아서 일할 시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말에 하루는 최대한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하지만, 당에서 하는 행사가 있으면 그것도 어려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 오전 7:40 약수역 국회 정무위 소속인 채 의원은 등원하자마자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 등의 법안을 쏟아냈다. 당에서는 제3정책조정위원장과 당 정책연구소인 국민정책연구원 부원장으로 광폭 행보 중이다. 채 의원이 등원 3개월 동안 발의한 법안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계열사 지분 20% 단일화, 증권 집단소송 절차 간소화, 상법 개정안, 정부 현물출자 때도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국가재정법 개정안 등이다. 경제법안 외에도 현행 만 15세 이상~29세 이하인 ‘청년’의 범위를 만 34세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청년고용촉진특별법’과 ‘중소기업인력지원특별법’ 개정안, 대학 내 사전투표설치법 등을 발의했다. 채 의원이 발의한 법안들이나 당내 행보는 하루아침에 불쑥 나온 것이 아니다. 18년 시민운동의 결실이다. 시민운동은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해결이 어려운 것이 많기에 웬만한 인내심으론 버티기 어렵다. 채 의원은 “시민단체에 있을 때부터 준비해온 법안들을 꾸준히 내고 있다”며 “요즘에는 보좌진의 생각이나 주변 사람들의 민원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답했다. 그는 최근 청각장애인의 금융 서비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있었다. 그는 당직자에게 청각장애인이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이용할 때 ARS(자동응답시스템) 전화가 오는데, 이를 개선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검토하고 있다는 것. 채 의원은 “보좌진과 상의하니 ‘나는 귀머거리다’라는 청각장애인의 웹툰이 있는데 그걸 보라고 하더라. 그 웹툰에도 이런 부분이 나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쉽게 바꿀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그동안 청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 같아 금융위와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 오전 7:43 이태원역 채 의원은 최근 페북에서 ‘당신의 든든한 빽’이라는 사진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둘러멘 백(bag)에 뭐가 들었는지 묻자, “당에서 어딜 가자고 할지 몰라 항상 면도기와 칫솔, 치약을 들고 다닌다”며 “든든한 백에 생존을 위해 간단한 건 다 있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채 의원 가방에서는 우산, 수첩, 서류, 배터리 2개, 화장지, 책 등이 나왔다. 그는 ‘법의 지도’라는 책을 꺼내보이며 최근 의원들에게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 의원은 “법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얻게 되는 책”이라며 “기본적인 법의 원리뿐 아니라 정치, 자본시장, 재정, 금융, 글로벌 등 다양한 분야의 법을 아우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책을 읽다가 중간중간에 중요한 아이디어들은 접어서 표시를 해둔다. # 오전 7:55 광흥창역 시민운동가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하니 어떠냐고 묻자, “수많은 직업 중 하나가 국회의원이어서 유난스럽지 않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국회에 취직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그런 생각이 묻어나온 것일 수 있다. 그는 직업적으로 의정 활동을 하되, 국회의원이 되기 전의 삶과 최대한 비슷하게 살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의원을 해보니 시민단체에서 ‘국회’로 공간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다른 점은 더 다양한 의제와 의견을 조율하는 조정자의 역할이 추가됐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채 의원은 국회에 등원하면서부터 ‘조용한 시민운동’을 홀로 실행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차량유지비와 유류비 지원 등으로 매월 145만원 정도를 받는다. 하지만 채 의원은 하루 왕복 2700원의 지하철을 이용하고 추가 교통비 정도만 사용한다. 또 수행비서 대신 정책비서를 고용했고, 등원할 당시 축하화분도 당 지도부 것 외에 일절 받지 않았다. 그는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개혁이 된다”며 “일상에서 기존 국회의원들과 달라진 모습들이 조금씩 자연스럽게 알려지다 보면 그런 분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img4 # 오전 8:00 광흥창역 2번 출구 채 의원은 광흥창역에서 국회 셔틀버스를 타는데 간혹 놓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역 근처의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국회에 출근한다. 그는 “광흥창역에서 국회로 가는 마을버스는 사람이 많아 타기 어려워 셔틀버스를 놓치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데, 서강대교가 은근히 멀어 20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처음에 채 의원이 지하철을 타고 셔틀버스를 이용할 것이라고 선언하자 보좌진이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보좌진은 같이 탄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만류했다. 그래도 그는 편한 지하철과 셔틀버스를 타고 다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그는 여전히 당시의 고집에 만족한다. 채 의원은 “불편한 것은 곧 익숙해질 테고 난처한 상황이 오면 그때 해결하면 된다고 말했다”며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어도 국회의원인지 잘 모른다”고 웃으며 말했다. @img5 # 오전 8:05 국회 셔틀버스 승차 우리나라 국회의원과 북유럽 국회의원을 대조적으로 비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북유럽 국가 중 스웨덴의 경우 국회의원 전용주차장이 없고 자전거와 지하철을 이용한다. 스웨덴의 의원실은 6평 남짓이다. 국회의원이 직접 일정을 관리하고 자료까지 챙겨야 한다. 한 명의 정책보좌관이 4명을 보좌하기 때문이다.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도 직접 다리미질을 한 일화가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채 의원은 “배지를 달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게 오히려 특별한 일로 비쳐지는 게 신기하다”며 “그렇다고 북유럽 국가 국회의원과 우리나라 국회의원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다. 나의 경우 지역구가 없고 일정이 국회 안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가능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어떤 좋은 사례가 있어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면 그게 대세가 되는 것”이라며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 오전 8:25 국회 도착 국민의당의 역할에 대해 채 의원은 “합리적인 중재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많은 이해관계의 상충 속에 미래지향적으로 상호 조율하도록 끌어가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의당은 적극적으로 중재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채 의원은 “국민의당은 제3당으로서의 일을 하고 있다. 20대 국회 원 구성도 우리가 주도했고, 추경을 먼저 제안한 것도 우리 당”이라며 “청문회 합의 과정에서 협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힘을 실어준 것도 우리다”라고 설명했다. 자칫 ‘여당 편’을 들어준다고 비칠 수 있지만 협의할 수 있도록 한발 물러서고, 대신 철저하게 문제점을 지적해 고쳐나가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국회는 항상 협상을 하는데, 무관한 것을 서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떼어놓고 협상을 해야 문제를 진정성 있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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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호

증권맨에서 최대 증권사 오너로 ‘샐러리맨 신화’ 박현주

전국 1등 지점장 박현주...전무후무 ‘증권맨’ 등장 펀드 전성시대, ‘박현주’ 세 글자에 열광하다 여전히 ‘아픈 손가락’ 인사이트펀드 ‘인간 박현주’? ‘경영인 박현주’만 봐라 | 박민선 기자 pms0712@newspim.com | 김학선 사진기자 yooksa@newspim.com “실세 중에 실세였죠. 그런 특혜를 받은 직원은 박현주 전에도, 후에도 없었어요.” 20년도 훌쩍 지난 일이지만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박현주 지점장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입사 1년여 만에 주식운용과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데 이어 서른두 살의 나이에 최연소 지점장이 됐다. 당시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30여년 전 자본시장에 뛰어들었던 젊은 증권맨 박현주. 그는 지금 국내 최대 증권사의 오너가 됐다. 20년 만에 회사는 1000배 넘는 성장을 일궜다. “나는 1등 지점장 박현주입니다” “당시 30여 개 증권사는 매월 말이면 모든 점포 실적을 집계해 서로 교환했어요. 1등 지점은 항상 동원증권 중앙지점이었으니 이 바닥에서 ‘박현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고 봐도 됩니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박 회장이 최연소 지점장, 1등 지점장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증권맨들 간 ‘워너비’였다고 회고했다. 20대에 주식운용과장 자리에 오른 박현주는 당시 사내 스타였다. 장 마감 후 그가 시장을 분석하며 그날 증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단다. 그가 특정 직원의 이름을 부르며 관심을 표하기라도 하면 “좋겠다”는 부러움과 질투 섞인 푸념이 들리곤 했다. 이런 그가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점장 때부터다. 중앙지점장 시절이던 1992년 11월 박현주는 동원증권 사상 최초로 1000억원의 주식 약정을 기록하며 지점을 전국 1위로 끌어올린다. 압구정지점장이 될 때까지 2년 연속 전국 증권지점 중 약정 규모 1위 기록을 세운 그는 1995년 최연소 강남본부장(이사)으로 발탁된다. 박현주에 대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애정은 각별했다. 새롭게 금융업에 진출해 뿌리를 내리던 동원그룹으로선 박현주의 활약이 더없이 반갑고 귀했다. 동원증권 출신 한 인사는 “전국 1등 지점을 이끌면서 회사에 기여한 부분이 상당히 컸다. 그러니 인력 배치부터 그의 요구 사항 대부분이 받아들여질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그는 “주식 매매든 영업력이든 업무에 관해서는 이견이 없을 정도로 탁월해 회장의 신임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회장과의 이런 달콤한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샐러리맨으로 만족하지 않았던 그는 소위 ‘박현주 사단’으로 불리는 8명의 동원증권 직원과 함께 오랫동안 구상해온 창업 준비를 본격 시작한다. 은밀히 진행한 일이었지만 비밀은 새어나갔다. 김 회장이 박현주를 불러 사실 여부를 추궁했는데, 그 자리에서 박현주는 이를 부인했다고 한다. 결국 김 회장은 ‘괘씸죄’를 적용해 ‘박현주 사단’에 속한 직원들을 한 직급씩 강등시키는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 더없이 좋았던 동원증권과 박현주의 관계가 지금도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게 된 사건이다. “김정태(전 국민은행장)처럼 좋은 인연을 이어간 사람이 있는 반면, 큰 타격을 줄 정도로 직원들을 대거 데리고 나간 경우도 있었다... 떠날 때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재철 평전’에 실린 이 구절을 두고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박현주를 염두에 둔 말로 해석하고 있다. 그를 붙잡기 위한 숱한 만류가 있었지만 박현주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여 후인 1997년 7월, 100억원의 자본금을 마련해 미래에셋캐피탈을 만든다. 사업가 박현주는 그렇게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고 나왔다. 미래에셋 주춧돌을 쌓아가다 IMF 위기 직후 시장의 공포심과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컸다. 투자시장에 대한 신뢰 하락 등까지 겹쳐 녹록지 않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감각, 탁월한 추진력, 든든한 동지의 삼박자를 갖춘 박현주는 거침이 없었다. 그가 만든 첫 작품은 국내 최초 뮤추얼펀드, 그것도 폐쇄형 상품이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설립 직후인 터라 창업 멤버들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박현주 펀드 1호’는 판매 2시간여 만에 500억원 완판에 성공, 대박을 냈다. 박현주를 비롯한 모든 창업 멤버들은 이 펀드의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런 노력이 결실로 이어져 수익률은 1년도 되지 않아 100%를 넘어섰다. 미래에셋그룹 한 고위 관계자는 “미래에셋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까지 많은 변곡점이 있었지만 국내 투자시장으로서도, 미래에셋으로서도 새로운 길을 여는 가장 의미 있는 첫 기록이었다”고 평가했다. 국내서 펀드 열풍이 달궈지던 2000년대 초반 박 회장은 해외로 영역 확장에 나선다. 홍콩, 싱가포르, 인도 등 글로벌 무대를 향해 또 한 번 무작정 뛰어든 것. 박 회장은 지난 4월 미래에셋대우 상반기 경영전략 회의에서 “맨 처음 해외로 진출할 때 싱가포르에 갔다. 낮에도 바다가 까맣게 보였고 답이 없어 보였다. ‘내가 여기에 왜 왔나’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기억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매년 3~4개월씩 해외 곳곳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판 노력은 하나둘 결실로 돌아왔다. 금년 6월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은 35개국에서 181개 상품(12조2000억원)을 판매하고 있다. 실체조차 없던 ‘펀드매니저’ 문화를 만들고 바꾼 것도 미래에셋이다. 미래에셋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던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90년대만 해도 한국투자신탁, 대한투자신탁 문화가 전부였는데 미래에셋이 펀드매니저의 기본 자세와 책임에 대해 분위기를 바꾼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이 매니저들의 업무 집중과 체력 관리를 위해 내렸던 ‘금연령’ 및 ‘금주령’은 유명하다. 미래에셋의 성장은 이렇듯 금융투자시장 곳곳에 변화를 가져왔다. 박현주 신화를 만든 성공 방정식 미래에셋캐피탈 창업 후 19년 만에 미래에셋그룹이 이룬 성장은 경이적이다. 미래에셋그룹 20여 개 계열사의 자기자본은 현재 약 11조원(2016년 6월 말 기준). 창업 당시 100억원이 20년도 채 되지 않아 1100배의 성장을 달성한 것이다. 미래에셋 금융계열사(미래에셋대우 포함)가 보유하고 있는 고객자산은 무려 366조원에 달한다. 미래에셋 안팎에선 미래에셋의 성공이 박 회장 특유의 집중력과 추진력 그리고 그를 돕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입을 모은다. 하나. 타고난 재능을 키워준 스승들 박 회장의 부친은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벼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난 박 회장은 중학교를 수석 졸업했을 정도로 학업에서도 모범적이었다. 맏형인 박태성 워싱턴대 의대 소아신경외과 교수, 동생 박정선 명지전문대 유아교육과 교수를 비롯해 박 회장의 자녀들까지 가족 모두 ‘머리는 타고났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런 그에게도 방황의 시절은 있었다. 광주일고 합격통지서를 받던 날 새벽, 건강했던 부친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박 회장은 이 충격으로 적잖은 방황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아들을 바라보던 모친은 “대학 진학이 힘들면 여기에서 농사 짓고 살자”며 혼자 힘으로 기울었던 가세를 일으켰고, 결국 아들은 마음을 다잡고 고려대에 진학했다. 박 회장은 2007년 자신이 쓴 책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어머니는 인생의 스승이자 최고의 조언자였다. 시골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 어머니는 생활비를 1년에 한 번만 주셨다. 돈을 계획적으로 쓰고 관리하는 습관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고 언급했다. 대학 진학까지 그의 기질을 다져준 것이 어머니였다면, 투자시장에서 기본기를 닦게 만든 것은 ‘백 할머니’로 불리는 명동 사채시장의 큰손 고(故) 백희엽 씨였다. 70년대부터 큰손 반열에 오른 그는 당시에도 가치투자의 정석이라고 불릴 만큼 전문적인 기업 분석력을 바탕으로 한번 사들인 종목은 2~3년 이상 보유하며 투자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친이 보내준 생활비를 손에 쥔 박 회장은 주식에 발을 들인 뒤 명동 증권가를 기웃거렸다. 백 할머니를 찾아가 무작정 따라다니며 “주식 좀 알려달라”고 매달렸다. 백 할머니 사무실로 출근하고 기업 탐방 때도 할머니 뒤를 따라다녔던 그는 훗날 “이때 ‘우량주는 반드시 제값을 한다’는 투자 원칙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덕분에 그는 대학원생 시절 투자자문사를 설립했을 정도로 투자가로서의 기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둘. 꽂히면 간다...‘경주마’ 본능 미래의 변화를 미리 짚어내고, 정확히 판단하고, 과감하게 추진하는 박 회장의 능력은 많은 기록을 남겼다. 1999년 다음커뮤니케이션에 투자해서 1000억원가량의 대박 수익을 거둔 것이 그렇고, 해외법인 설립과 부동산으로의 투자 영역 확대가 그렇다. 2005년 SK생명보험 인수에 이어 2015년 대우증권 인수, 그리고 최근 PCA생명 인수전 참여 선언까지. 결정을 하기까지는 신중하지만 한번 내린 결정을 과감히 밀어붙이는 그의 추진력은 경주마를 연상케 한다. 최근 미래에셋 배지를 새롭게 단 미래에셋대우 임직원들은 그의 추진력에 혀를 내두른다. “익히 들어왔지만 실제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적잖이 놀랍니다. 빠르고 정확한 데다 단호합니다. 추진력에선 어떤 리더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끝없는 도전 정신도 높이 살 만한 부분이다. 최현만 미래에셋그룹 수석 부회장은 “투자운용업에 대한 회장님의 자세는 한 번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빈틈이 안 보였다. 오로지 투자운용업을 바라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오늘날 미래에셋이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고 했다. @img4 셋. 불가능을 현실로...‘승부사’ 기질 박 회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인 ‘승부사’의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낸 ‘사건’은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든 대우증권 인수전이다. 박 회장이 적어낸 인수가액이 공개됐을 때 경쟁사 곳곳에선 탄식이 터져나왔다. ‘상대가 박현주였음을 간과했다’는 뒤늦은 후회도 있었다. 대우증권 장부가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한다면 2조원 안팎에서 승부가 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예상이었지만 박 회장은 이러한 ‘평범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2조4000억원이라는 거금을 적어냈다. 박 회장 스스로도 “그 금액을 쓸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사실 대우증권 인수에 대한 그의 본심은 2015년 12월 ‘본게임’ 전까지 전혀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해 여름까지 인터넷전문은행 사업 진출에 올인하는 듯 보였던 미래에셋이 돌연 포기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카카오와 컨소시엄 구성에 실패한 데 따른 결정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하반기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 결정 역시 자기자본을 확충해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인가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 혹은 미래에셋생명 등 계열사 지분 취득에 사용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들이 이곳저곳에서 그려졌다. 되돌아보면 박 회장에게 이 모든 추측은 ‘평범한 발상’이었다. 대우증권 인수 실패 시 대안을 내놓으라는 주변 지적에 대해 박 회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되레 직원들에게조차 “대우증권을 누가 살 것 같냐”는 속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신년사에서 미래에셋그룹의 자기자본을 3년 내 10조원까지 만든다고 했죠. 사실 그게 대우증권 M&A 얘기였습니다. (인수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한 1년 된 셈이죠.” 지난해 말, 대우증권 인수 확정 후 기자들 앞에 선 박 회장은 “말하지 않는 게 제일 힘들다는 사실을 배웠다”며 대우증권 인수는 철저한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자산운용업에 기반을 둔 5위 증권사 미래에셋이 1위 대우증권을 인수한다고? 대부분이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사건’을 만들기 위해 박 회장은 차근차근 디딤돌을 쌓았던 것이다. 넷. 박현주의 사람들 한번 눈에 든 사람은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내 사람으로 만든다. 박 회장의 인재 욕심은 유명하다. 하지만 미래에셋 출신 인사들은 그 못지않게 박 회장을 인복(人福)이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성장세가 처음부터 컸던 것은 아니다. 2002년 설정액 2조원 수준에서 2007년 50조원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초창기 멤버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말 그대로 창업자 정신을 갖고 회사를 키우겠다는 의지가 뜨거웠던 시기다.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몰려드는 자금을 바라보며 같이 웃고 울던 원년 멤버들은 그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박 회장의 뛰어난 능력은 항상 돋보였고, 그래서 좋은 인재가 주변에 많았죠. 미래에셋이라는 회사를 멋지게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유독 박 회장 곁엔 많았습니다.” 하지만 창업 20년이 가까워진 지금, 함께했던 원년 멤버들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공동 창업멤버였던 송상종 대표, 삼고초려 끝에 미래에셋의 전성기를 함께 구가했던 김영일 매니저, 이병익 매니저, 선경래 매니저 그리고 23년을 함께했던 구재상 부회장까지 많은 이들이 미래에셋을 떠났다. “당시 나를 포함한 우리 팀에서 관리한 펀드 운용 규모가 10조원 수준이었어요. 매년 수수료로만 700억원가량 벌어들인 거죠.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대우가 따르지 않았어요. 수익률이 떨어지던 한때는 임원들 임금을 깎기도 했어요. 이런저런 서운함을 느낀 사람이 많았죠.” “사람과의 정에 연연해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본인 회사의 성장과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철저한 경영인이죠. ‘함께’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음을 느끼고 떠난 이가 많아요. 물론 그렇기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미래에셋을 떠난 이들은 하나같이 경영인으로서 박 회장은 최고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인간 박현주’에 대한 질문엔 유난히 말을 아꼈다. 아픔으로 남은 인사이트펀드 지난해 12월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 인수를 확정 지은 뒤 나간 기사와 관련해 한 독자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을 미래에셋 인사이트펀드 투자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인사이트펀드로 인해 손실을 입은 투자자가 얼마나 많은데 박 회장이 투자 대가이고 명인이냐”며 분노를 드러냈다. 최소 가입금액 1000만원, 선취수수료 1%, 연간 보수 2.49%. 지금 기준으로도 콧대 높은 조건들이었다. 해외법인들의 사업을 확장하고 네트워크를 구성하던 시기에 필요한 비용이었다. 이 펀드는 출시 반년 만에 4조8000억원까지 불어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운도 미래에셋을 돕지 않았다. 중국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았던 인사이트펀드는 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전이된 글로벌 증시 하락세를 버텨내지 못하고 가라앉기 시작했다. ‘반토막 펀드’라는 오명이 딱지처럼 붙어버린 이 펀드는 2009년 이후 현재까지 매년 수천억원대의 순유출세를 기록 중이다. 수익률도 마이너스 영역에 머물고 있다. “미래에셋이 쌓아가던 투자자 신뢰의 30% 이상을 그때 잃었던 것 같다.” “100% 성공만 할 수는 없겠지만 인사이트펀드는 미래에셋에, 그리고 박 회장에게 가장 아픈 상처다.” 전·현직 미래에셋인들 모두가 같은 평가를 내리는 부분이다. 박 회장은 “환헤지를 하는 구조로 만든 것이 문제였다”며 “환율이 그렇게 갈 것을 예측 못한 것은 잘못이고 부족했다”고 아쉬움을 보였다. 인사이트펀드의 현 설정액은 5000억원 남짓. 투자자들은 “미래에셋뿐 아니라 한국 자산시장을 위해 ‘인사이트펀드’는 반드시 좋게 하겠다”던 그의 약속이 지켜지길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img5 박현주 ‘1인 체제’, 눈길 끄는 가족사 박 회장의 가족관계는 또 다른 관심거리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캐피탈, 미래에셋컨설팅,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대주주로 미래에셋그룹을 지배하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미래에셋자산운용 지분 33%를 보유 중인 미래에셋컨설팅의 경우 박 회장(48.63%)을 비롯해 부인 김미경 씨(10.2%)와 세 자녀가 각각 8.19% 지분을 갖고 있다. 동생 박정선 씨(5.69%)와 두 조카(송성원, 송하경 각 1.37%)의 지분까지 합하면 친족들의 지분율은 무려 91.86%에 달한다. 경영자로서 박 회장의 활동이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먼 훗날 미래에셋그룹의 후계구도를 점쳐보는 이가 많은 이유다. 특히 미국 코넬대 인문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한 뒤 올해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시작한 장녀 하민 씨는 후계구도를 두고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이다. 맥킨지컨설팅 한국법인(인턴), 미국 부동산투자컨설팅 업체 CBRE 등을 거쳐 지난 2013년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입사해 해외부동산투자본부에서 호텔 투자 업무를 맡은 바 있다. 당시 직원들 사이에서도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근무하는 데 있어선 여느 직원처럼 평범하면서도 성실했다고 관계자들은 전해왔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미국법인 본부장을 맡고 있는 토마스 박은 박 회장의 큰형인 박태성 교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시카고대 MBA 졸업 후 골드만삭스에서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활동한 경력을 살려 미래에셋그룹의 해외 비즈니스에서 핵심 키맨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출신 한 관계자는 “해외 비즈니스에 있어 전문성을 갖고 있고, 실제 굵직한 업무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박 회장의 신임을 계속 받아온 사람”이라며 “앞으로 미래에셋그룹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img6 운용에서 증권·보험으로...‘불가능’에 도전하다 미래에셋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중심으로 하던 무게 추는 증권과 보험으로 영역을 확장해 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설립 17년 만에 초대형 증권사로 재탄생했다. 지난해 상장 이후 성장세를 본격화하고 있는 미래에셋생명은 최근 PCA생명 인수전에 뛰어들며 업계 상위권으로 진출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나섰다. 투자 대상 역시 달라졌다. 주식형펀드를 통해 잡은 기틀을 바탕으로 국내 및 해외 부동산시장을 비롯한 대체투자(AI)의 선두에 있는 미래에셋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박 회장은 연내 1조원 규모의 벤처투자펀드도 내놓을 계획이다. 향후 10년간 벤처에 1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그의 구상이 실현되는 시발점인 셈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은 거침없이 이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래에셋 계열사들이 대그룹 반열에 오를 정도로 성장하면서 진출 가능한 영역이 더욱 많아졌다는 데 의미를 둔다. “우리가 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려면 불가능한 꿈을 꿀 줄 알아야 합니다. 상상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시간이 가면서 큰 꿈을 갖고 증명하겠습니다.” 이는 지난해 말 대우증권 인수에 성공한 뒤 기자간담회에서 강조한 말이다. 적잖은 성장통과 좌절, 시기와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2016년 자본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미래에셋, 박현주의 변화와 도전에 대한 안팎의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국내 최대 증권사의 오너로 최선봉에 오른 그의 성공이 국내 자본시장의 한 단계 도약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이도 많다. 미래에셋의 살아 있는 성공신화를 만들어온 박현주. 그의 전성기가 오늘이 아닌 내일이길 기대해본다. 박현주 인물 관계도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사업가인 박현주 회장의 인맥은 대부분 금융계 인사들로 미래에셋그룹과 연계돼 있다. 광주일고 출신 가운데에는 고(故)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대표적이다. 어느 날 불쑥 찾아와 "과장 자리를 달라"던 박 회장 특유의 패기를 알아보고 그를 동원증권에 영입한 김 행장은 박 회장의 친형과 동창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기질이 많이 닮아 동원증권 시절 김 행장이 박 회장을 아꼈다는 이야기도 언급되곤 한다. 특히 김 행장이 동원증권 대표이사 재직 시절 창업을 위해 나가겠다는 박 회장을 놔줬다는 이유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그와 6개월간이나 말조차 섞지 않았던 일화도 있다. 송상종 피데스투자자문 사장과 장인환 전 KTB자산운용 대표는 박 회장과 광주일고 52회 동창으로 80년대 후반 동원증권에 함께 근무하던 시절 '3인방'으로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또 다른 동창 오규택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박 회장의 동생 박정선 씨와 결혼해 가족의 연을 맺었다. 정찬형 포스코기술투자 대표(전 한국투자신탁운용 부회장)는 광주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함께 다니며 학창 시절의 상당 기간을 함께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으로는 이찬근 블루런벤처스캐피탈매니지먼트 한국대표,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 장옥수 전 부국증권 사장 등도 있다. 업계 인맥은 대부분 전·현직 미래에셋그룹 임원에 포진해 있다. 최현만 미래에셋그룹 수석 부회장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박 회장의 눈에 들면서 1997년 서초지점장 시절 미래에셋캐피탈을 함께 설립한 대표적 인물이다. 또 한 명의 핵심 인사로 꼽히는 구재상 케이클라비스자산운용 부회장도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장 시절 박 회장과 함께 퇴사했던 창업멤버 중 한 명으로 2012년까지 미래에셋그룹의 성장을 이끈 주축이었다. 최 부회장과 같이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정상기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은 구 전 부회장의 뒤를 이어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이끌며 현재 그룹 내 서열 3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미래에셋에서 투자교육을 담당했던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도 박 회장의 곁을 지키던 인사 중 하나다. 동원증권 영업이사 시절 박 회장을 당시 최연소 지점장으로 발탁했던 유성규 전 미래에셋증권 부회장은 2001년 미래에셋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현역의 마지막을 미래에셋에서 마무리했다. @im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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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호

이진복 국회 정무위원장 인터뷰

“여소야대 국회서 기업구조조정, 금융개혁 등 추진 중요한 시기” “모든 정책 결정은 의원들의 협의 통해 결정돼야” 서민경제 전문가로 노련한 정무감각 바탕 광폭행보 | 김나래 기자 ticktock0326@newspim.com | 이형석 사진기자 leehs@newspim.com “서별관 회의 관련 내용을 비공개로 열람하는 것도 어렵겠어요?” “‘서별관 회의’라는 전제를 붙이니까 한계인 듯합니다.” 지난 6월 29~30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여당 출신인 이진복 정무위 위원장의 의사진행 발언이다. 그 순간 야당 의원들과 보좌진의 눈이 커졌다. 여당 출신의 위원장이 야당이 요구하는 서별관 회의록을 금융위원장에게 비공개로 요구하는 풍경이 익숙하지 않아서다. 때로는 여당의 입장을 반영하면서도 마냥 여당 편만 드는 게 아니라 야당의 목소리도 가져가는 위원장으로서의 면모를 각인시켰다.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어느 때보다 정무위원장의 노련한 ‘정무 감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20대 국회 첫 정무위원장인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3선·부산 동래)은 여소야대 돌파를 위해 제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20대 국회 정무위가 다뤄야 할 민감한 경제 이슈가 많다.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인 금융 개혁,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 시행까지 현안이 산적해 있다. 또 야당은 부채 탕감, 반재벌, 금융노조, 일감 몰아주기 근절 등 전방위적인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18대 정무위 활동으로 ‘서민경제 전문가’의 타이틀을, 정계에서는 ‘계파를 넘는 정치인’과 ‘노련한 정치’라는 평가를 받는 이진복 위원장을 국회 정무위원장실에서 만났다. “철저한 의회주의로 20대 정무위 1년 이끌어갈 것” “20대 국회 정무위 초반 1년은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경제 민주화, 금융 개혁, 해운·조선업 등의 기업 구조조정뿐 아니라 김영란법도 소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시기다.” 이진복 위원장은 정무위 1년의 막중한 책임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부산 출신인 이 위원장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보좌관부터 차곡차곡 정치 이력을 축적해왔다. 2002년 동래구청장에 당선됐으나 2006년 재선에 실패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무소속 친박연대로 당선돼 20대 국회까지 3선의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는 18대 정무위에서 카드수수료 인하, 중복보험료 환급, 저축은행 피해 구제 등 서민금융 분야에서 활약한 바 있다. ‘서민경제 전문가’로서의 경제 감각에다 정치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한 정무 판단이 더해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여소야대의 국면을 조율하는 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정면 돌파’다. 그는 자신을 ‘철저한 의회주의자’로 표현한다. ‘모든 정책 결정은 국회에서 의원들의 회의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는 원칙하에 정무위 소속 의원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위원회를 운영할 방침이다. 갈등과 대립이 있을 때는 합리적 조율의 힘을 발휘하겠다고 다짐한다. “일하지 않고 꼼수 부리는 국회는 여든 야든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정무위 현안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다 보니 하나씩 실타래를 풀고 있는 중이다. 조선·해운 구조조정 성공 위해 회계 외부감사 시스템 근본적 진단 필요 최근 조선·해운 구조조정은 정무위의 시급하고도 중요한 현안이다. 야당은 서별관 회의로 공격하는 반면 여당에서는 국책은행 운영 실패에 따른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책은행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며 “국책은행의 실패를 논하기 전에 현재 문제점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어떤 방향으로 개편을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우조선이 2013~2014년 영업이익 기준으로 1조5342억원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는데, 산업은행은 ‘재무이상치 분석 시스템’이 있음에도 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부실을 키운 것을 예로 들었다. 최근 정부가 산업은행 전·현직 임직원 비금융자회사 재취업 금지, 임금 반납, 임원 연봉 삭감 등의 자구계획을 내놓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사후약방문’식이 아니라 외부감사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진단이 필요하다는 게 이 위원장의 생각이다. 이 위원장은 “국책은행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 정무위원회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금융시장, 투명성 확보되면 굳건 이 위원장은 지난 8월 폴란드·헝가리·불가리아 등 중유럽 3개국의 금융 시스템을 들여다봤다. 그는 이들 국가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새로운 대외 환경을 위기가 아닌 기회 요인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완벽하게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정부의 스트레스 테스트 등 두 가지를 실행하고 있어 중유럽이 새로운 활력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한국 금융시장의 경우도 감독 시스템은 잘 구축됐지만 내부적으로 곪은 곳이 없도록 투명해져야 한다는 것이 이 위원장의 생각이다. 투명성만 확보된다면 국내시장도 굳건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개혁, 갈 길 멀어...인터넷은행과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 숙제 금융 개혁 평가를 묻자, 이 위원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 개혁의 양대 축인 인터넷 은행의 경우 결국 은산분리 문제에 대해 여야가 공감대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중국의 경우 알리바바와 텐센트 같은 글로벌 기업이 인터넷 은행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의 한국 진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인터넷 은행 관련 규정을 살펴보면 기업이 은행의 지분을 4% 이상 가질 수 없도록 돼 있다. 대기업 계열기업의 경우 이 규제를 풀어주면 안 되고 의결권도 제한해야 한다는 게 이 위원장의 생각이다. 대주주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대주주와의 부당한 거래 방지 제도를 마련하고 있고, 필요하면 좀 더 제도를 강화하는 복안을 준비 중이다. 한국거래소 지주회사 전환은 이 위원장의 최대 관심 법안이다. 그는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거래소지주회사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9월 이 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거래소지주회사법안은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로 바꾸고 유가증권, 코스닥, 파생상품 시장을 개별 자회사 형태로 분리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여야 정무위원들이 필요성에 공감하고 실제로 통과시키기로 잠정 합의까지 했다. 하지만 본사 소재지를 ‘부산’으로 명기하도록 하는 내용이 정쟁으로 이어져 끝내 폐기됐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본사 소재지를 ‘해양파생 특화금융중심지’로 표현해 논란의 소지를 제거하고 재발의했다. 이 위원장은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 성공 여부를 묻자 “11월 국회 법안소위에서 논의할 예정”이라며 “쟁점 사항이 없는 법안인데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영란법에서 시민단체 빠진 것은 개선...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도입돼야 이 위원장은 정무위 소관 부처의 법안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을 하고 있고, 헌재의 합헌 결정 또한 존중돼야 한다는 것. 그러나 여전히 시행 과정에서 농축산업·요식업 등 소상인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시민단체가 빠진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공공기관, 유치원을 포함한 교육기관, 언론사의 정규직뿐 아니라 계약직 등 비정규직에 이르기까지 국민 대부분을 감시하는 법안인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진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정무위에서 개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 활성화와 민생경제 안정을 위한 규제 개혁을 추진할 행정규제기본법에 대한 논의도 할 예정이다. 또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이 제조물 결함 등으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소비자 입증 책임을 완화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하는 ‘제조물책임법’도 관심 대상이다.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와 같은 ‘여신전문금융법’과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을 위한 ‘금융소비자보호법’도 그의 법안 버킷 리스트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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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호

민성기 한국신용정보원장 “빅 데이터로 보험사기,가계부채 획기적으로 줄인다”

| 송주오 기자 juoh85@newspim.com | 이형석 사진기자 leehs@newspim.com 지난해 5조원을 넘어선 보험사기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동안 생·손보협회로 분산돼 있던 정보를 한국신용정보원에서 취합해 중복 가입자, 보험금 수령인 등을 분석하면서 가능해졌다. 신용정보원은 또 금융사 대출정보를 받아 적정 수준의 대출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이를 통해 과다 채무를 걸러내 1200조원이 넘어선 가계부채 해결에도 도움을 줄 계획이다. 지난 1월 출범한 신용정보원은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여신금융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보험개발원 등 여러 기관에 나뉘어 있던 개인 정보를 취합해 분석, 가공한 뒤 금융사에 제공한다. 신용정보원이 국내 금융정보의 빅 데이터 개발과 생성을 담당하는 셈이다. 8월 하순 서울 중구 YWCA빌딩 한국신용정보원 본사에서 만난 민성기 원장은 빅 데이터 활용에 대해 들뜬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개인신용정보법 개정으로 신용정보원이 각 협회에서 받은 정보를 빅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금융사에 대한 기여가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보험 분야에서 빅 데이터의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했다. 내년에 ‘보험사기다잡아’ 서비스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보험사기다잡아’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는 생·손보사와 공제기관의 정보를 활용, 입원급여나 고액사망급여 상품에 중복으로 가입했는지 등을 파악, 보험사기 예방을 간접 지원한다. 민 원장은 “과거에는 각 협회가 정보를 갖고 있어 중복가입자 등을 파악할 수 없었다”면서 “중복가입 여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보험사기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결국 보험사의 재정 건전성이 개선돼 보험 소비자의 보험료 인하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연내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가계부채 해결에 도움을 줄 서비스로 평가했다. DSR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자동차할부금, 임대보증금, 카드론 등 모든 금융사의 대출금에 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을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신협,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의 대출정보까지 포함된다. 민 원장은 “기존 대출 내역을 파악, 심사에 참고할 수 있어 과다 대출자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가계부채 해결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용정보원은 향후 맞춤형 정보 제공을 위해 일종의 수요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민 원장은 “핀테크 업체, 금융사 관계자들과 만나면 어떤 형태의 정보를 원하는지 묻고 있다”며 “금융사 등의 수요를 파악, 이를 만족시킬 데이터를 생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취급하는 만큼 보안 강화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내·외부 망을 분리했으며 금융보안원, 안랩 등 외부 전문기관으로부터 전산 시스템에 대한 관제를 연중 내내 받고 있다. 또 정보보호팀에서는 매일 개인 정보 동향을 체크, 전 직원과 공유하고 분기마다 전문가를 초청해 정보보안 교육을 받고 있다. 특히 개인 정보를 취급하는 직원들의 경우 보안시험 통과를 의무화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다른 업무로 전환 배치된다고 민 원장은 설명했다. “빅 데이터 제공으로 금융 경쟁력 높일 것” 민 원장은 국내 금융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지난 1980년 한국은행에 입사해 지금까지 줄곧 금융계에서 종사해온 금융통이다. 한은에서 정책기획국과 조사국, 금융결제국, 금융시장국 등을 두루 거쳤으며 시중은행 연합체인 은행연합회로 자리를 옮겨 일선 은행들의 실상도 파악했다. 국내 최초의 신용정보전문기관 초대 사령탑으로 민 원장이 낙점된 배경이다. 민 원장은 초대 책임자로서 “소비자, 금융사, 정책 당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첨단 인프라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일례로 신용정보원의 비전 ‘국민에게 신뢰받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첨단 금융 인프라 기관’은 전 직원 대상의 설문조사로 나온 결과물이다. 또한 매달 생일을 맞은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일선에서 느끼는 애로사항 등을 지속적으로 청취하고 있다. 민 원장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모델이기 때문에 직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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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호

중식 대가 여경옥 롯데호텔 도림 주방장

배달원으로 시작해 중식 최고 셰프 되기까지... 중국 요리를 정말 맛있게 먹는 그만의 팁은? | 함지현 기자 jihyun0313@newspim.com | 김학선 사진기자 yooksa@newspim.com “춘장이 처음에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됐는지 아세요?” 롯데호텔의 중식당 도림에서 만난 여경옥 주방장(상무)은 잠시 테이블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을 이어갔다. “춘장은 실수로 태어났어요. 옛날 중국에서 밀가루를 저장해뒀는데 날씨가 더워지는 바람에 상해버린 겁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버리기 아까워 소금을 뿌려서 놔뒀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좋은 냄새가 나더랍니다. 발효가 된 것이죠. 그 당시 사람들은 파나 마늘을 생으로 먹고 있었는데, 이 발효된 장을 한번 찍어 먹어보니 맛이 일품이었던 겁니다. 파를 찍어 먹는 장이라는 뜻에서 파 총(蔥)자와 된장 장(醬)자를 합쳐 총장(蔥醬)이라고 부르던 것이 지금의 춘장이 된 것입니다.” 여경옥 셰프는 화교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세 살 위인 형을 따라 중식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어느덧 38년. 지금은 최고의 중식 셰프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실수로 탄생한 짜장면 “야사(野史)이긴 한데 이런 얘기도 있어요. 예전 진시황이 밀가루 음식이 유명한 산둥(山東) 지방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함께 간 신하가 밀가루 음식을 한번 드셔보시면 어떻겠냐고 권해서 진시황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진시황의 악명이 워낙 높아 아무도 음식을 하려고 나서지 못하던 중 한 명에게 불호령이 떨어진 겁니다. 네가 만들라고. 이 사람이 벌벌 떨면서 면을 삶고 고기를 넣어 볶아내던 찰나 실수로 춘장을 팬에 쏟아버렸어요. 당시만 해도 춘장은 파를 찍어 먹는 용도로만 쓰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워낙 독촉을 해대는 바람에 다시 만들 시간은 없고 죽었다는 생각으로 그대로 진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춘장 볶은 향이 워낙 좋거든요. 진시황이 향에 반해 음식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요리사는 장을 튀긴 소스를 부은 면, 즉 짜(炸 튀길 작)장(醬 장 장)면(麵 면 면)이라고 답했고, 진시황은 맛있게 먹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역사만큼이나 풍부한 중국 음식의 문화를 알아야 그 맛도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 셰프. 그는 중국 음식의 역사에 대해 말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밝은 표정을 지었다. 과거에는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었지만 이제는 좋은 사람과 재미있게 먹는 것이 맛을 배가시킨다고 믿고 있다. 22살에 신라호텔 중식당 입사 여 셰프의 중식 사랑은 지난 1978년 배달원으로 월급 2만5000원을 받던 시절부터 이어진다. 처음 그의 길잡이가 돼준 형은 바로 여경래 한국중국요리협회 회장. 당시 20살 남짓의 나이에 크지 않은 중식당의 막내급으로 함께 일하던 두 형제가 훗날 중식의 대가들로 성장한 배경에는 한눈 팔지 않고 중식 한길만 걸어온 뚝심 외에 끈끈한 형제애가 있다. 여 셰프의 요리사 여정은 화려하다. 그는 호텔 중식당이 한창 흥하던 1980년대 22살 나이에 신라호텔 중식당에 입사해 25년간 근무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2007년에는 형과 함께 형제들의 성씨를 중국어 발음으로 한 중식당 ‘더 루이’를 오픈했으며, 현재는 업계에서 흔치 않은 ‘상무’ 직함을 달고 롯데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의 입맛을 사로잡기도 했다. 호텔 근무 중 청와대 출장을 나갔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의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의 요리를 맛봤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직원을 통해 음식을 잘 먹었다는 격려를 해주기도 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달달하고 간단한 새우나 고기를 좋아한다고 그는 귀띔했다. 이 같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요리의 본질에 대한 고집을 갖고 있다. 위생이나 건강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먹는 사람이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맛’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요리를 먹고 맛있다는 표현을 해주는 손님들을 보면서 과연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를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잡곤 한다. 후배양성 교육기관 설립 구상중 여 셰프는 후배 양성에도 관심이 많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후배를 키워낼 교육기관 설립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새롭게 성장하는 그들로부터 받는 자극이 새로워서다. 젊은 셰프들이 요리 대회나 TV에 나와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선보일 때 특히 그렇다. 재능을 가진 이들이 셰프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대중매체에 비치는 셰프의 화려한 모습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요리복을 벗은 그의 모습은 어떨까. 셰프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았을 때도 그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것을 즐긴다. 남의 요리를 많이 먹어봐야 자신도 발전할 수 있다는 철학이 반영된 취미이기도 하다. 집에서는 아내를 위해 파채를 곁들인 우럭찜을 종종 해주는 다정한 남편이기도 하다. 여 셰프는 평소 후배들에게 “긍정이 긍정을 낳는 만큼, 요리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조언한다. 인터뷰 내내 호탕한 웃음을 보였던 그는, 어쩌면 중식에 대한 애정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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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호

[라이징 엘리트] 금융위 박주영 금융소비자과장 “금융약자를 생각하기에 고된 업무도 즐깁니다”

크라우드펀딩 소액대출 등 금융약자 배려 정책경험 풍부 ‘금융소비자보호기본법’ 국회 통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 | 송주오 기자 juoh85@newspim.com | 김학선 사진기자 yooksa@newspim.com “금융 약자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돕는 업무를 주로 해왔네요.” 정부서울청사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박주영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과장은 17년의 공직생활을 되짚으며 이같이 말했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와 너털웃음이 매력인 박 과장은 지난 7월 6일 투자금융연금팀장에서 금융소비자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소비자과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소비자의 금융권익 향상을 담당하는 부서다. 금융산업이 복잡해지고 광범위해지면서 소비자 보호 강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금융위원회에서 추진 중인 금융 개혁도 궁극적으로 소비자 권익 향상이 목적이다. 그만큼 금융소비자과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금융 약자 배려 정책 경험 풍부...“소비자 권익 높이겠다” 박 과장은 앞서 투자금융연금팀장으로 재직하면서 금융 약자를 위한 정책 역량을 입증했다. 대표적인 성과로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을 들 수 있다. 이는 온라인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증권을 발행하는 제도다. 크라우드 펀딩이 활성화되면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중무장한 벤처기업들이 필요한 자금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고 투자자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발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난 1월 25일 출범한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은 모집액 170억5907만329원, 발행금액 92억4618만1185원을 기록하고 있다(7월 27일 기준). 펀딩 성공률은 54%다. 펀딩 성공률이 당초 기대보다 다소 낮지만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 일색이다. 김영각 현대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펀딩에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품화에 성공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과장은 이런 소식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은 스타트업 업체가 수출에 성공하고 추가 펀딩까지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뿌듯했던 적이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아울러 그는 이전 부서인 서민금융과에서 소액대출 정책 입안에도 참여하는 등 금융 약자를 위한 업무를 많이 해왔다. 박 과장은 “금융회사는 자사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비자 권익이 침해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면서 “시장의 자율성이 강조되는 만큼 소비자 권익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박 과장은 우선 소비자의 권익과 금융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금융소비자보호기본법’(금소법)의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삼았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무산된 바 있어 박 과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그는 벌써부터 금소법 통과를 위해 국회와 관계부처를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법의 취지와 목적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명감’에 시작한 공직생활...금융전문가의 길을 걷다 박 과장을 공직으로 이끈 것은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일종의 사명감이었다.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그는 25살이던 1999년 제43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관료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첫 부서는 금융과 무관한 중앙인사위원회(현 인사혁신처)였다. 서울대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까지 밟은 박 과장으로선 금융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결국 그는 2005년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로 둥지를 옮겼다. 박 과장은 금감위에서 굵직한 정책 입안에 참여하며 실력을 쌓았다.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여신전문금융업법, 대부업법, 상호저축은행법 등이 그의 손을 거쳐간 정책들이다. 박 과장은 “돈을 추구하는 것은 공무원의 자세가 아니다”며 “공익을 생각하기 때문에 업무가 고되지만 이는 숙명”이라고 덤덤하게 말하고서 서울청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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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호

[인터뷰] 의사 출신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의 국민행복론

“원격의료로 국민건강 효과적 관리...사각지대 환자 고통 이해해야” 맞춤형 보육, 반드시 필요한 정책...서울시 청년수당 “무조건 반대 아냐” “사회안전망 더욱 촘촘히 할 터...복지사각지대 해소에 초점”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하고 의료 해외진출법 국회 통과에 선봉 | 이진성 기자 jinlee@newspim.com | 이형석 사진기자 leehs@newspim.com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뚝배기 장관’으로 불린다. ‘옳다’고 믿는 정책에 대해선 어떠한 반대에도 절대 휘둘리지 않고 추진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정 장관은 지난해 복지부 장관 취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뚝배기(뚝심·배짱·기백)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뚝배기 장관으로 불리는지 몰랐다”면서 “의사 출신 장관이 아닌 국민 보건·복지를 책임지는 장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장관에 취임한 지 1년. 그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자신이 강조한 대로 뚝배기 장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의 정책 추진 과정을 월간 ANDA를 통해 털어놨다. 원격의료, 공공의료 사각지대 해소 정 장관은 지난해 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 의사로 30여 년을 지냈다. 정형외과를 찾는 환자들은 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다. 이 중에는 노인이 상당수 차지한다. 정 장관이 원격의료를 추진하면서 매번 “환자 고통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혀온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 분들은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어도 주위의 도움 없이는 병원 가기가 쉽지 않다”면서 “특히 만성질환의 경우 (원격의료가)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실제 있었던 사례도 소개했다. “GP(경계 초소)에 근무하는 한 병사가 두통과 메스꺼움이 있어 군 의무사령부 전문의와 원격진료를 한 적이 있다. 군의관은 증상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해 즉각 후송 조치 했고 검사 결과 뇌 혈관종을 발견해 조기에 치료한 적이 있다.” 그는 “이 같은 사례 외에도 지금까지 시범사업을 통해 원격의료가 임상적으로 유효하고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일부 의료계에서 지적하는 복약순응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복약순응도는 환자가 약물 복용을 처방에 잘 따르는 것을 말한다. 의료계에서는 환자들이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도서벽지 주민과 격오지 부대 장병 및 만성질환자 등 1만200여 명이 시범사업에 참여했다”면서 “원격의료 서비스 때 복약순응도는 이전보다 의미 있는 수준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앞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더욱 확대한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효과가 분명한 만큼 원격의료의 효과를 더 많은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도서벽지 주민과 노인요양시설 입소자, 장애인, 격오지 군부대 장병, 원양선박 선원, 소규모 산업단지 내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시범사업을 확대 추진할 것”이라며 “원격의료 시행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심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맞춤형 보육, 현장 의견 적극 수용” 정 장관은 지난 7월 시행된 맞춤형 보육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맞춤형 보육 제도는 일·가정 양립 제도의 일환으로 어린이집 이용 자녀(0~2세 영아)에 대해 가정이 필요한 만큼 보육시설을 적정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장시간 양육이 불가능한 맞벌이 가정과 구직 및 취업 준비, 돌봄 필요 가구, 다가구 등에 대해서만 종일반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존 종일반 혜택을 받았던 전업 가정 등은 형평성을 내세우며 예산을 삭감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반발했다. 이 같은 반대 움직임에 시행일 전날까지도 정 장관은 학부모와 어린이집 등을 찾아 설득해야 했다. 정 장관은 맞춤형 보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맞춤형 보육은 아이와 부모의 보육 필요에 맞게 다양하고 질 높은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라며 “실제 현장에서는 영아들의 어린이집 이용이 과도하게 늘어났고, 장기간 보육이 필요한 경우 어린이집 이용이 불편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맞춤형 보육이 기존 보육 현장의 관행을 새롭게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들은 신중히 검토해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정 장관은 “아직은 도입 초기 단계로 다소 애로사항이 발생할 수 있고 완벽하지 못하다”면서 “앞으로 학부모와 어린이집 관계자, 지자체 등 현장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해 제도가 더욱 내실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해외진출법 가장 뿌듯” 정부 부처 장관 가운데 가장 바쁜 1년을 보낸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정 장관일 것이다.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국가 방역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분당서울대병원장을 역임한 정진엽 정형외과 교수를 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정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으로 승격시키는 등 우리나라 감염병 대응체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의료 해외진출법을 통과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정 장관은 “가장 뿌듯했던 일을 꼽자면 지난해 해외진출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우수한 의료 시스템을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해외진출법 통과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이란 등 여러 국가를 방문하면서 한국의 의료 수준 및 시스템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청년수당 논란 “무조건 반대 아니다” 정 장관에게 최근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는 청년수당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지자체가 청년들의 복지에 앞장서는 상황에서 복지부가 반대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서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은 서울시에 1년 이상 거주한 만 19~29세 청년 중 3000명을 선정해 월 50만원의 현금 급여를 최대 6개월까지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 장관은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서울시가 협의 요청한 ‘청년활동지원사업’에 대해 1차 협의 결과 사업 설계가 미흡한 항목에 대해 변경 보완해 재협의해 달라고 요청했다”면서 “서울시가 수정안을 내놓았지만 보완 수준이 미흡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시가 복지부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사업을 강행해 더 이상 협의를 진행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복지부는 사업 취지에 맞게 급여가 청년의 취업과 창업 등 구직활동에 국한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는 자기소개서에 기재할 수 있는 개인 활동까지 포괄적으로 급여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은 이에 대해 “무분별한 현금지급에 그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시가 급여의 용처를 제한하지 않는 한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안전망 더욱 촘촘히 구축 정 장관은 월간 ANDA를 통해 국민들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국민 부담이 큰 4대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지속 확대할 것”이라며 “3대 비급여 경감 정책도 철저히 추진해 의료비로 인한 가계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의료계와 지혜를 모아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도화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그는 “제도화를 통해 국민 모두가 언제 어디서든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어려움에 처한 모든 분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구축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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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호

[파워리더] ‘제네시스 신화’ 창조 나선 정의선

40년 전 할아버지의 ‘포니 신화’ 재현 질주 세계적 인사 영입해 디자인 경영 강화 경영능력 검증된 겸손한 후계자...‘GBC시대’ 눈앞 |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 | 김학선 사진기자 yooksa@newspim.com “한국에 고급차가 있는가?” 올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모터쇼 현장에서 현대자동차 행사장을 찾은 한 현지 기자가 질문했다. 벤츠와 BMW, 포드 등 100년 역사의 명차들이 경쟁하는 미국 시장에서 팔릴 만한 수준 높은 차를 한국에서 만들 수 있겠냐는 비아냥이 묻어 있었다. 떠들썩하던 장내는 일순 조용해졌다. 정적을 깬 것은 당당하면서 강한 인상을 풍기는 단상 위의 남자. 그는 강한 어조로 “제네시스”라고 짧게 답했다. 주인공은 세계 5대 자동차 브랜드인 현대차의 후계자 정의선 부회장이었다. 정 부회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현대자동차는 고객에게 더 좋은 상품을 제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문화를 쌓아왔다”며 “그러한 현대자동차만의 특별한 문화를 바탕으로 럭셔리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세계 고객들 성원 덕분에 현대자동차가 세계 자동차시장을 주도하는 회사로 발전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통해 ‘럭셔리’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날은 현대차의 첫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 G90(국내명 EQ900)가 베일을 벗는 날.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제네시스 G90가 공개되자 전 세계에서 모인 800여 명의 취재진은 함성과 박수를 쏟아냈다. 정 부회장이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의 세계 첫 발표를 미국에서 한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미국은 현대차가 처음으로 자동차를 수출한 곳.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76년 1월 개발도상국 최초의 독자 모델인 포니 생산에 성공했고, 그해 7월 미국에 수출을 시작했다. 저가차의 대명사였던 포니가 40여 년 만에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로 진화한 셈이다. 고급차 시장은 전 세계 자동차회사의 기회이자 도전이 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전 세계 고급차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긴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연평균 10.5% 성장하며 대중차 증가율(연평균 6.0%)을 크게 상회했다. 정 부회장은 “오는 2020년까지 6개의 제네시스 브랜드 상품 라인업을 선보일 것”이라면서 “우리가 가진 기술과 자원 그리고 재능을 최대한 활용해 제네시스 브랜드의 ‘럭셔리’에 대한 타협 없는 헌신을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치찌개 즐기며 사원 챙기는 후계자...아부하는 직원에게는 ‘옐로카드’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차의 상무로 재직하던 2000년대 초반. 한 회식 자리에서 정 부회장이 자리를 돌며 직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고 소주를 따랐다. 또 직원들에게 담배 있느냐고 묻고는 담배를 준 직원과 같이 피웠다. 당시 자리를 함께했던 한 현대차 직원은 “같이 피우자고 하는데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라며 웃었다. 정 부회장은 전통적인 한국식 입맛이어서 소탈한 소주와 김치찌개 등을 즐겨 먹는다. 직원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찾아다니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은 요즘도 여전하다. 정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많은 배려를 하면서도 임원들의 아부는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현대차그룹의 한 임원은 “업무를 마치고 회식 자리에서 술이 좀 거나해진 임원이 정 부회장에게 과도한 아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정 부회장이 ‘나한테 잘할 생각 하지 마시고 회사 일을 잘하세요’라고 말해 냉랭한 분위기가 생기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그의 소탈함과 원칙주의적 성격은 할아버지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두루 닮았다는 게 재계의 전반적인 평이다. 정 명예회장은 평소 직원들과 씨름 시합을 하며 막걸리를 마시는 소탈한 경영자였다. 정몽구 회장은 ‘불도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업무 추진력이 강하다. 정 부회장은 할아버지의 소탈함과 아버지의 추진력, 이 두 가지 면을 갖췄다는 평가다. 1970년 서울에서 정몽구 회장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정 부회장은 어릴 때 할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과 오전 5시경 아침식사를 같이 했다. 세간에 잘 알려진 대로 현대가 전통의 ‘밥상머리 교육’을 받은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정 부회장을 서울 청운동 본가에서 지내게 했다. 장손으로서, 미래의 3세 경영자 수업이 이미 그때 시작된 셈이다. 이런 교육 덕분에 정 부회장은 ‘겸손하고 예의 바른 후계자’란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그룹 한 임원은 “아버지 그림자도 안 밟는다는 얘기는 정 부회장을 두고 하는 것 같다. 정몽구 회장과 동행하는 자리에서는 항상 정 회장으로부터 뒤쪽 왼편으로 1m 떨어져 있다”며 “직원들에게도 존댓말 쓰는 것은 물론이고 운전기사한테도 하대하지 않는다”며 성품은 타고나는 것으로 단언했다. @img4 감각적 인사ㆍ디자인 경영으로 글로벌 위상 높여 정의선 부회장은 1994년 현대정공(현대모비스)에 과장으로 입사했지만, 경영학 공부에 대한 욕심에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MBA)에 입학했다. 1997년 학업을 마치고서는 일본 무역회사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를 거쳐 1999년 현대차 자재본부 이사로 다시 입사한다. 자동차 제조사에서 부품 조달과 자재 관리, 협력업체 관리 등을 알아야 완성차를 볼 수 있다는 현대 가문의 전통을 따랐다. 정 회장도 이 같은 과정을 거쳤다. 현대차 관계자는 “수만 개의 부품이 자동차를 완성하는 만큼 부품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후 정 부회장은 국내영업, 기획 등 다양한 업무를 거치며 경영자로서의 기반을 닦아나갔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2001년 초 상무로 승진해 구매실장을 맡았다. 2002년 초에는 전무에 올라 국내영업본부 영업담당과 기획총괄본부 기획담당으로 재직했다. 같은 해 하반기부터 현대캐피탈 전무를 겸임하며 금융 분야까지 발을 넓혔다. 2005년에는 기아차 사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정 부회장은 회사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 필요한 인재를 더 필요한 자리에 배치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다. 10년 전인 2006년. 당시 37세 젊은 나이의 정 부회장은 기아차 사장으로 있으면서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 영입에 성공했다. 현대·기아차의 엔진,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오르자,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눈길을 돌린 것. 2006년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판매 순위는 7위였으나 2007~2009년 6위에 올랐고 2010년부터는 5위를 유지하고 있다. 정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이 오늘날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위상을 높였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한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 부회장에 대해 “국내 3, 4세 후계자 가운데 가장 안정돼 있고 가장 침착하면서도 남의 얘기를 잘 들을 줄 알는 후계자로 평가한다”며 “CEO로서 경청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경륜이 쌓이면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의 수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인을 통해 성공한 정 부회장은 BMW의 고성능 브랜드 M 시리즈를 개발한 알버트 비허만 부사장을 또 영입했다. 비허만 부사장은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 시리즈 개발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루크 동커볼케 전 벤틀리 수석디자이너를 전무로 임명했다. 아울러 람보르기니 브랜드 총괄 출신인 맨프레드 피츠제럴드도 전무로 영입했다. 이들은 제네시스 디자인과 전략 등을 맡게 됐다. 올해 5월에는 벤틀리 외장 디자인을 해온 이상엽 씨를 스타일링 담당 상무로 데려오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피터 슈라이어 디자이너를 영입할 때부터 질적 성장을 강화해왔다”며 “질적 성장에 속도를 낸 현대차그룹의 가장 큰 결과물이 제네시스 브랜드”라고 말했다. @img5 스피디한 운동 선호...지금은 서킷서 고성능차 ‘담금질’ 정 부회장이 운동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학창 시절 수영과 스키, 축구를 잘했고 지금은 대한양궁협회 회장으로서 한국 양궁 선수단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골프 실력은 아마추어 이상이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재계 인사는 “정 부회장은 말수가 적은 반면, 움직임이 큰 운동을 선호한다”면서 “특히 스키는 선수급 실력을 갖췄는데 빠른 스피드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의 ‘스피드 사랑’은 현대차의 미래 사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바로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인 N 시리즈다. N 시리즈는 BMW의 M 시리즈처럼 고성능 모델로 이뤄진 현대차의 별도 브랜드이다. 이니셜 N은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의 영문 첫자에서 따왔다. 모터스포츠업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서너 달에 한 번씩 전남 영암서킷을 방문해 N 브랜드 모델을 직접 타보고 함께 온 연구 임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9월 N 브랜드를 론칭하고 첫 차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1995년 정도원 삼표 회장의 장녀 지선 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재계에서 소문난 잉꼬부부로 꼽힌다. 정 부회장은 국내외 행사에 지선 씨와 자주 동행하며 부부애를 과시하고 있다. 이들 부부를 본 주변에서는 이구동성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중얼거린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초월한 진리. 재계 한 관계자는 “몇 년 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본 적이 있는데 부인과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재계 라이벌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 부회장의 인맥은 화려하다. 사석에서 정 부회장은 두 살 위인 이 부회장을 형이라고 부른다. 이 부회장과 만나는 모임에는 재계 2, 3세 맏형 격인 이웅열 코오롱 회장, 조현준 효성 사장 등도 자주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부회장의 휘문고 동문은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겸 앵커, 공연기획가 송승환, 가수 이승환, 탤런트 이동건, 차인태 전 MBC 아나운서, 농구선수 서장훈, 주유소 습격 사건 등을 제작한 김상진 영화 감독 등이다. 정 부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89학번이다. 고려대 학맥으로는 허창수 GS 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등이 있다. 또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정몽진 KCC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 범현대가의 오너 경영인들이 대부분 고려대 출신이다. GS그룹 대주주 일가도 고려대 출신이 많다. 허창수 회장 외에 허정수 GS네오텍 회장,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등 폭넓게 포진해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과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도 고려대 동문이다. 정 부회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재계 후원회인 ‘박물관의 젊은 친구들(YFM, Young Friends of the Museum)’ 회원이다. YFM에는 박세창 금호아시아나 사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윤석민 SBS미디어홀딩스 부회장, 홍정욱 헤럴드 회장 등이 활동하고 있다. @img6 2021년 글로벌비즈니스센터 완공...정의선 시대 도래 지난 2월 어느 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베이징현대의 딜러들이 모여들었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중국에서 현대차를 판매하는 딜러들이 한국으로 초청된 것이다. 2006년부터 해마다 중국 딜러를 대상으로 딜러 대회를 가졌으나 한국으로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자리에서 정 부회장은 “신공장 건설 등으로 미래의 중국 시장을 대비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제고해나갈 계획”이라며 “현대차가 중국 내 최고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img7 코엑스와 큰길을 사이에 두고 있는 한국전력 부지는 현대차가 내년 상반기 착공할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가 들어설 곳이다. 정 부회장은 오는 2021년 GBC가 완공된 후 현대차그룹 총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배운 경영능력을 본격 발휘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글로벌 경쟁 격화로 인한 판매 감소, 강성 노동조합과의 임금·단체협상 등 안팎으로 어려움에 놓여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수입차 업체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고 해외 판매도 녹록지 않다. 올 상반기 현대차는 매출 41조273억원, 영업이익 3조1042억원을 달성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매출은 7.5%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7% 뒷걸음질쳤다. 다행히 기아차는 매출 27조994억원, 영업이익 1조4045억원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매출은 14.7%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0.8% 뛰었다. 이 같은 시점에서 재계는 정의선 부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 부회장의 크고 작은 판단이 현대차그룹과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중요한 결정은 여전히 정몽구 회장의 몫이지만, 정 부회장이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경제의 주축인 자동차산업을 이끌어가는 현대·기아차가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며 “그룹 대내외 소통을 늘리고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 난관을 뚫을 혜안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im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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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호

[인터뷰] 조경태 기재위원장 “4차 산업혁명 못 따라가면 후진국 될 수도”

“기업 부실화 원인과 책임 규명은 국회 의무” “최저임금 인상해야...업종, 나이, 숙련도 등 차등 고려 필요” “법인세율,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서도 인하” | 이윤애 기자 yunyun@newspim.com | 이형석 사진기자 leehs@newspim.com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각국은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견인할지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 경쟁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적 흐름을 무시하거나 놓치게 될 경우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추락할 수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현재 2만7000달러에서 1만달러대로 떨어질 수 있다. 위기감을 갖고 한국 경제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새누리당 소속 조경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 위원장은 월간 ANDA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의 현실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기재위는 거시경제와 경제정책 전반을 다루는 상임위로, 20대 국회에서는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 법인세 논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대응 등 주요 이슈가 산적해 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간 경제정책 싸움의 최전선으로 새누리당에서는 유승민 의원과 김광림·이종구·추경호 의원, 더불어민주당은 ‘경제민주화 아이콘’인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와 박영선·송영길 의원 등 여야의 거물급 정치인이 대거 모여 있다. 이 가운데 조 위원장의 기재위행(行)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조 위원장은 지난 13년간의 의정활동 기간 단 한 차례도 기재위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비전문가’이기 때문이다. 4선인 조 위원장은 이전 국회 때는 농림해양수산위, 정무위, 지식경제위, 산업통상자원위에서 활동했다. 조 위원장은 “(지난 13년간) 주로 경제 관련 상임위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경제 전반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는 기재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최악의 청년 일자리 문제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인 노인 빈곤율 등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 기재위에서 이 과제들을 관심 있게 다룰 것이다”라고 밝혔다. “‘저성장 늪’ 탈출 해법, 최저임금 인상” 조 위원장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늪에서 탈출할 해법으로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여당으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미 수출 중심의 성장 전략은 한계에 부닥쳤다. 내수경기 활성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살펴야 하는데, 소비 진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특히 임금의 양극화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고연봉의 대기업 정규직, 공기업 정규직들이 있는가 하면,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임금을 받는 국민들이 있다. 저임금을 받는 국민들은 소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대폭 높여나가야 한다.” 하지만 최저임금 상승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켜 고용 감소와 실업의 부메랑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조 위원장은 이에 대해 “앞서 강조한 것처럼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또 최저임금을 우리나라만 한정해 보지 말고 미국이나 독일, 영국 등 다른 나라의 경향들도 입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미국 일부 도시에서 불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 바람을 예로 들었다. “미국의 시애틀과 로스앤젤레스, 뉴욕,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인 시간당 7.25달러(약 8240원)보다 높은 10달러(약 1만1000원)로 인상하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는 2배가 넘는 15달러(약 1만7000원)로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라 예측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다른 나라를 입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이 업종, 나이, 숙련도 등의 구분 없이 단일화돼 있는데 다른 나라들은 매우 상이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 직업과 숙련도에 따라 최저임금이 다른데 직업의 구분이 매우 세세하다. 영국은 근로자의 연령이 높을수록 더 높은 최저임금을 받는다. 21세 이상 근로자의 법정 최저임금이 19세 미만 수습 근로자보다 2배 이상 높다. 우리도 장기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20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기업 부실화 책임 규명, 국회 의무” 조 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 비롯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이 문제는 기재위 내에서도 여야 간에 청문회 개최 여부를 두고 벌써부터 신경전이 상당하다. “이 문제는 무겁게 들여다봐야 한다. 구조조정에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정부는 과거 논란이 있던 퍼주기식 방식은 지양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회는 기업 부실화에 대한 책임을 규명해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뿐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을 이뤄내야 한다.” 양대 야당이 경쟁적으로 법안을 발의하며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데 대해서는 여야 간에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법인세율 인상 문제는 역사성을 우선 따져봐야 한다. 역대 정권에서 법인세를 어떻게 다뤘는지 살펴보면, 김대중 정부에서 30%를 27%로, 노무현 정부에서 27%를 25%로, 이명박 정부에서 25%를 22%로 낮춰 지금에 왔다. 국민의정부 때부터 법인세율을 낮춰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기업들의 투자 활성화가 주요한 목표였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OECD 평균보다 법인세율이 높다. 물론 높은 나라와 낮은 나라별 장단점이 각각 있을 것이다. 2014년 기준 영국 21%, 룩셈부르크 22%, 독일·캐나다 15%, 멕시코 30%, 미국 35%, 프랑스 33%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법인세율을 낮췄을 때와 높였을 때의 효과를 살펴 어떤 것이 국민적 관점에서 좋을지 합당한 결론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 브렉시트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의 대응책과 관련해선 신중론을 폈다. 또 정부의 대응을 긍정 평가했다. “단기간에 문제의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끈기 있게 영향을 주시해야 한다. 환율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데, 그 부분은 한국은행을 통해 적절하게 정부가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 영국과의 무역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 다만, 영국이 전 세계 금융에 영향력을 행사하니 자칫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부가 대체로 현재까지는 침착하게 잘 대응하는 것 같다.” “새 지도부 구성 후에도 계파갈등 지속하면 쓴소리 할 수도” 조 위원장은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야당 출신으로 여당의 텃밭인 부산 사하을에서 내리 3선을 했다. 정치생활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정책보좌역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전 더민주당 대표를 향한 거침없는 쓴소리로 당내에서 미움을 받기도 했다. 결국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겨 4선에 성공했다. 조 위원장은 그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996년부터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지만, 두 차례 낙선한 후 세 번째 도전에서 당선됐다. 그 과정에서 줄곧 지역주민들과 같이 호흡하고 그분들의 이익을 대변하려고 노력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저거 부산 사람 맞냐? 혹시 전라도 사람 아니냐?’는 비아냥이 ‘그래 이제 네 진심을 알겠다’는 격려로 바뀌었다.” 조 위원장이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부산대 토목공학과 박사과정 중이던 1995년 우연한 기회에 부산 전통시장에서 노점상 단속반들의 폭압적인 철거 과정을 목격했다. 노점상인 70대 어르신들과 힘없는 아주머니들의 울부짖음에 제 가슴은 분노로 가득 찼다. 이것이 정치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자’란 생각을 갖고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조 위원장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 당적을 변경한 것이 내내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그는 “야당에 있을 때 쓴소리, 바른 소리를 많이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윤리위원회에 징계 회부되고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경고로 돌아왔다. 구성원으로서 몸담을 수 없을 만큼의 압박과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당적을 옮겼을 때도 지역주민들은 당이 아닌 사람을, 저라는 사람의 노력과 능력을 보고 뽑았다며 (당적 변경을) 잘했다고 평가해주는 분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새누리당 내 불거진 계파 갈등에 대해 ‘쓴소리’, ‘바른 소리’를 예고했다. 그는 “여야 할 것 없이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책임정치를 해줬으면 한다. 친박, 비박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서로를 공격하고 탓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건 유감스런 장면이라 생각한다. 전당대회를 마치고 새 지도부가 구성된 후에도 만약 당이 변하지 않는다면 저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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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호

[匠人에게 묻다] 4대째 이어가는 안성주물 대표 김성태

가마솥 만드는 주물장 전수자 “가마솥은 우리나라 문화예요” | 한태희 기자 ace@newspim.com “가마솥은 우리나라 문화예요. 가마솥에 밥해 먹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없잖아요.” 가마솥이 한국 문화라고 단언하는 김성태(53·사진) 주물장 전수자. 그는 가마솥을 전문으로 만드는 ‘안성주물’의 대표다. 부친인 김종훈 주물장(86·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5호)의 뜻을 이어받아 지난 2001년부터 경기도 안성에서 안성주물을 운영해오고 있다. 오늘날 집에서 가마솥으로 밥을 해 먹는 사람은 드물다. 전기밥솥이나 압력밥솥을 많이 쓴다. 가마솥은 옛날 물건 취급 받으며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그래도 김 전수자는 꿋꿋하게 가마솥을 만든다. 전통을 지키는 일을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외국은 가족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한솥밥’ 먹는다고 하잖아요. 한솥밥 먹는 사이라고 하면 굉장히 가까운 사이잖아요. 관계를 이어주는 게 식사, 밥이고요. 가마솥은 의식주 중 식을 만드는 거예요. 전통이라는 것은 한번 잊혀지면 100년, 200년 답이 없어요. 지금 안 쓴다고 잊어버리면 누가 만들겠어요? 그래서 이것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김 전수자가 처음부터 가마솥 만드는 일에 열과 성을 바쳤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아르바이트로 부친 일을 도왔다.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01년이다. 2000년쯤 안성주물은 어음 문제 때문에 공장 문을 닫는다. 김 대표는 이를 계기로 가마솥 만드는 일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해보자는 부친의 부름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김 전수자는 지금도 어음이라면 몸서리부터 친다. “주물 기술? 온몸이 기억...경영은 빵점” 사람들은 철을 다룬다고 하면 대장간을 떠올린다. 매질을 해서 그릇을 만드는 대장장이. 하지만 ‘안성맞춤’의 본고장인 안성은 주물로 유명한 곳이다. 주물은 이미 만들어진 틀에 쇳물을 부어 가마솥 등을 만드는 기법이다. 매질을 해서 만드는 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섞지만 안성주물은 순수 철을 사용한다. 철을 녹일 때도 전기용광로가 아닌 바람을 불어넣는 전통 용광로를 사용한다. 그만큼 숙달된 기술이 필요하다. 용광로에서 녹아 걸쭉해진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가마솥을 만든다. 모든 공정이 수작업이다. 간단한 과정 같지만 몸이 기억하지 못하면 어려운 작업이다. 거푸집에 사용되는 흙의 습도부터 쇳물 온도까지 모든 걸 온몸으로 측정해야 한다. “현대식 용광로는 탄소 함유량을 맞추기 위해 뭐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데이터가 있잖아요. 전통 용광로 방식은 이런 데이터가 없어요. 도공이 도자기 구울 때 장작 불꽃만 봐도 안의 온도가 몇 도인지 알잖아요. 저도 머리에 박혀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봐서 쇳물 다루는 기술을 빠르게 습득한 거죠.” 기술만큼은 장인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경영은 한참을 배워야 할 듯싶다. 100년을 이어온 공장이지만 자기 공장 없이 임대해서 쓰고 있다. 그래도 직원 월급은 안 밀리고 매년 올려주고 있다며 그는 뿌듯해했다. “평생을 했어도 자기 공장 없이 임대공장이에요. 경영은 빵점이죠, 빵점. 그래도 전통을 이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돈 바랐으면 다른 일을 했어야죠.” “장사꾼 취급에 화나지만 누군가 이어갔으면” 4대째 주물 기술을 이어오는 김 전수자. 쇳물 붓는 날이면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다. 땀으로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다. 몸이 피곤해도 김 전수자는 이 일을 고수한다. 전통을 지킨다는 사명감과 자부심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이 일을 물려주고 싶지가 않다고 한다. 장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장인이 만든 제품을 흥정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1만원짜리, 4만8000원짜리 가마솥 값을 깎으려는 사람을 보면 그래서 괴롭다. “아버님이 헤어날 방법이 없을 때 제가 들어와서 했지만 제 자식한테는 절대 안 물려줄 거예요. 일 자체가 힘든 것보다 문화와 전통을 대하는 시각이 하나의 장사치, 장사꾼으로 보는 게 힘듭니다.” 그는 정부도 변해야 한다고 따끔하게 지적한다. 문화재 복원 사업을 최저가 입찰에 맡기는 국가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것. 김 전수자는 몇 년 전 경복궁 복원 사례를 꼽는다. 문화재청은 드라마 ‘대장금’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경복궁 소주방(조선시대 대궐 안 음식을 만들던 곳)을 복원했다. 소주방에 진열될 가마솥이나 수저를 공급할 업체도 선정했다. 최저가 입찰을 통해서다. “일반 제조도 아니고 문화를 지키는 거잖아요. 문화재 복원을 하는데 무슨 최저가 입찰을 하냐고요.” 자식에게도 이 일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김 전수자. 그래도 누군가는 이 일을 이어갔으면 하는 속내다. 가마솥이라는 한국 문화가 이대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문화나 역사라는 것은 한번 잊혀지고 나면 되살리기 힘들다는 게 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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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호

[파워 리더] 삼성의 뉴 카리스마 이재용

조용하고 차분한 이미지 속 뚝심있는 글로벌 리더 경영승계ㆍ사업재편ㆍ문화혁신으로 새 삼성 담금질 “가시적 성과에 집착...장기적 비전 안 보인다” 지적도 | 김신정 기자 aza@newspim.com | 이형석 사진기자 leehs@newspim.com “삼성전자가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가 뭡니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말 주요 경영진을 모아놓고 던진 질문이다. 이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돌직구에 권오현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경영진은 선뜻 답을 하지 못했고, 회의장에는 정적만 흘렀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올 3월, 서울 강남의 삼성 서초타워에 있던 삼성전자 직원 700여 명이 수원 본사로 옮기며 삼성전자의 수원디지털시티 시대가 막을 올렸다.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 삼성SDS, 삼성전기 등도 새 둥지를 찾아 서초사옥을 떠났다. 그렇게 삼성그룹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평소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지만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강한 추진력도 지녔다. 이는 해외유학 시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이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당시,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박사학위를 따고 경영에 참여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실무에 목말라 있던 이 부회장은 고집을 부려 박사과정을 수료만 한 채 귀국, 삼성전자 경영기획팀에 입사하게 된다. 삼성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아버지의 권유라도 자신의 뜻이 확고하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성격도 지녔다”고 전했다. 이런 이 부회장은 요즘 안팎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안으로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며 ‘통합 삼성물산’ 출범 등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밖으로는 미국의 애플, 중국의 화웨이, 샤오미 등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삼성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세뱃돈 모아 친구 등록금 내준 금수저...외유내강 학창시절 1968년생인 이 부회장은 국내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다니고, 석·박사 과정은 해외에서 마쳤다. 서울 경기초(1981년)와 청운중(1984년), 경복고(1987년)를 거쳐 서울대(동양사학과ㆍ87학번)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 교복 자율화가 되면서 사복을 입게 됐는데, 청바지에 티셔츠를 즐겨 입는 등 옷차림은 다른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또 고급 승용차를 타고 학교까지 가긴 했지만 정문에서 멀찌감치 내려 걸어갈 정도로 티를 내지 않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해 핸드볼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평행봉도 제법 잘했다고 한다. 또 학급 반장과 총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리더십도 강했다. 이 부회장의 경복고 시절 2학년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은 이 부회장에 대해 동문들에게 이렇게 회고했다. “1985년이었죠. 반에서 등록금을 오랫동안 내지 못해 학교를 그만둬야 할 친구가 있었어요. 담임인 내가 행정실에 대신 내주러 갔는데, ‘선생님네 반 얼굴 하얀 반장 학생이 몇 시간 전에 내고 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 반 반장(이 부회장)은 자기가 대신 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물어보니 세뱃돈 모아 놓은 통장에서 꺼낸 돈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반장이 동년배 친구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 부회장은 대학에서도 동기들 사이에 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평범하게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 4년 내내 할아버지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삼성 초기에 사용하던 낡은 갈색 가방을 들고 다닌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부회장과 대학 동창인 한 재계 인사는 “일반 학생, 친구들과 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소탈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서울대 학부 졸업논문으로 ‘암창사절단의 구성 과정과 그 정치적 의의’를 제출했다. 암창사절단은 일본에서 1800년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직후 미국, 유럽 등으로 나가 경제, 교육, 문화, 군사 등 다양한 정보를 습득해 근대화에 기여한 사절단이다. 미국 유럽 등으로 나가 공부한 유학생들은 나중에 일본을 이끄는 주요 지도자로 부상한다. 대학 시절 이 부회장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부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직후인 1991년 삼성전자(총무그룹)에 잠시 입사하게 된다. 하지만 근무를 오래 하지는 않았다. 곧바로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1995년 일본 게이오(慶應)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에서 1년간 공부하고 2001년 하버드 경영대학원(비즈니스스쿨)으로 옮겨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 부회장이 일본으로 먼저 건너간 데는 할아버지와 부친의 영향이 컸다. 고(故)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모두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에 다녔다. 당시 일본은 북아시아의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었기에 일본 유학은 흔한 일이었다. 일본 유학을 함께 했던 한 교수는 “과거 역사적으로 아픔이 있는 나라지만 상대방인 일본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본에 유학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특히 삼성 오너 일가의 경우 일본의 문화와 사회 특성은 물론 소니, 파나소닉 등 당시 최대 전자기업의 문화를 배우려는 의도가 컸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친절한 서비스와 철두철미하고 경직된 삼성 조직문화는 일본 기업으로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유학 시절에도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 삼성가(家) 자녀인지 모를 정도로 평범하고 조용하게 생활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학교 구내식당에서 여느 학생들과 함께 끼니를 때우는 이 부회장을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한 동문은 이 부회장에 대해 “한인 유학생들 사이에서 티 안 나게 생활해 뒤늦게 삼성가 사람인 것을 알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img5 광범위한 국내외 인맥 #2014년 4월 어느 주말. 현대차그룹이 소유한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 이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함께 나타났다. 동반 라운딩을 하기 위해 각자의 지인을 동반하고 자리를 함께한 것이다. 당시는 삼성과 현대차가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 입찰을 앞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때. 하지만 재계 자녀 모임에서 오래 우정을 쌓은 두 사람은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아마추어 수준을 뛰어넘는 이 부회장과 정 부회장의 골프 실력은 용호상박. 스마트한 외모의 이 부회장이 숏게임에 특히 능하다면, 남성의 이미지가 강한 정 부회장은 소문난 장타로 알려져 있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재용 부회장의 인맥은 광범위하다. 학교 인맥부터 재계 인맥, 해외 인사들까지 두터운 인맥을 자랑한다. 이 중 사촌지간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는 경기초교부터 서울대까지 같이 다닐 정도로 돈독한 사이다. 매제인 김재열 제일기획(스포츠사업총괄) 사장과는 초·중·고를 함께 다녔다. 이 부회장과 정 부회장은 ‘보이지 않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정 부회장은 활달한 성격으로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인 반면, 이 부회장은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종종 비교 대상이 되곤 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늘 붙어다니던 두 사람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떨어지게 된다. 정 부회장은 서울대 서양사학과에 들어갔지만 1년 정도만 다니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반면, 이 부회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이 부회장의 또 다른 ‘절친’(절친한 친구)으로는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있다. 당시 정·재계 인사들의 자녀들이 많이 다녔던 경복고에서 두 사람은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이런 이유로 방과 후 이 부회장은 이해욱 부회장의 집에 자주 찾아가곤 했는데, ‘저녁식사는 항상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대림산업의 가족문화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바쁜 경영활동으로 자주 집을 비웠던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달리 온 식구가 매일 저녁을 함께 하는 대림가(家)의 문화가 새로우면서도 부러웠다고 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들의 오랜 우정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귀띔했다. 이 부회장의 또 다른 경복고 동문으로는 8년 선배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4년 후배인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등이 있다. 조현준 효성 사장과는 경기초 동창이다. 재계에서는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과 친분이 깊다. 사석에서 ‘형, 동생’ 하는 사이로 정 부회장이 두 살 아래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동문으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 이현승 코람코자산운용 대표이사 등이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동문으론 민선식 YBM 사장과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등이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사업을 하려면 상당한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오너 자제들이 과거 국내서 학사를 마치거나 일단 입학은 하되 중퇴하고 해외로 나가 석·박사를 취득하면서 여러 네트워크를 쌓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이 부회장은 지난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재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나서게 된다. 이건희 회장과 ‘같은 듯 다른’ 이재용식 경영 스타일 이 부회장은 지난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승진한 후 2007년 글로벌고객총괄책임자(CCO) 전무, 2010년 1월 최고운영책임자(COO) 부사장을 거쳐 같은 해 12월 삼성전자 COO 사장이 된다. 2001년 상무보에서 사장이 되기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그 뒤 2년여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회장의 더딘 승진은 리더에게는 확실한 기초가 필요하다는 이건희 회장의 의중이 담겼다. 이 회장은 이 부회장에게 유년 시절부터 인간미, 도덕성, 에티켓 등 3가지를 중점적으로 교육시켰다. “과장·부장이라도 무시하지 마라, 모두 인격이 있다. 항상 아랫사람과 소통하려고 노력해라.” 이렇게 ‘부드러운 리더십’을 심어준 것도 다름 아닌 이 회장이었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로부터 ‘아랫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다. 이건희-재용 부자의 믿고 맡기는 경영 스타일은 매우 닮았다. 이 회장은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실무진을 믿고 업무를 전적으로 위임하는 편인데, 이 때문에 과거에는 삼성에 장수 CEO가 많았다. 이런 경영 스타일은 이 부회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져 실무진에게 일을 전적으로 맡긴다. 신뢰를 보인 만큼 책임을 물을 때도 확실하다. 다만, 경영구상 방법에 있어선 확연히 다르다. 이 회장은 발상의 전환이 빠르고 시야가 넓은 반면, 이 부회장은 한번 생각하고 마음먹은 것은 바꾸지 않는 확신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물고기 잡는 법으로 따지면 저인망식인 반면, 이 부회장의 스타일은 낚시형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회장은 큰 그림을 보며 공공정책 연구 등 공공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인 반면, 이 부회장은 가시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img4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설 당시 그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재입사 직전인 지난 2000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뒤, 이 부회장은 삼성 구조조정본부 지원에 힘입어 자본금 100억원 규모의 ‘e삼성’이라는 벤처투자회사를 세운다. 이 부회장이 벤처기업을 세운 데는 니콜러스 네그로폰테 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연구소장의 영향이 컸다. 삼성의 한 전직 임원은 “어느 날 비행기 안에서 이 부회장이 네그로폰테 교수를 만났고, 이때 인터넷 벤처사업에 처음 눈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벤처 버블’이 꺼지면서 8개월 만에 200억원 적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문을 닫게 된다. 결국 손실은 여러 계열사가 분담했고, 그 후 배임 혐의 등으로 특별검사 수사를 받게 된다. 지금까지 ‘e삼성’ 벤처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회사는 삼성 계열 투자정보회사인 FN가이드뿐이다. 갓 유학을 마친 뒤 야심차게 세운 벤처기업이다 보니 경험보다는 의욕이 너무 앞섰다는 평가다. 지금까지 젊은 경영인들 사이에선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젊은 경영인일수록 열정과 도전정신이 충만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패기가 있지만 동시에 과감성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칫 공격적인 투자로 기존의 가진 것도 잃게 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곧 명예 회복에 성공한다. 2004년 삼성과 소니의 합작사인 에스엘시디(S-LCD)의 등기이사를 맡아 삼성이 LCD 부문에서 세계 정상급의 기술과 생산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결국 삼성전자는 2006년 사상 처음으로 소니를 꺾고 세계 1위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하게 된다. 삼성의 이 부회장 체제는 지난 2009년 부사장 승진 이후부터 사실상 시작됐다. 2008년 당시 이 회장은 삼성 특검으로 일선에서 물러난다. 삼성 특검 이후 이 부회장은 해외 순환근무를 통해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신흥시장과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다니며 주요 거래선을 만나 경영 폭을 넓히기 시작한다. 이 부회장의 이런 해외활동은 삼성이 글로벌 기업들과 우호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4년 10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를 접견한 뒤, 같은 해 9월엔 사티아 나델라 MS CEO를 만났다. 2013년에는 에릭 슈미트 구글 CEO와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과도 만나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조 케처 지멘스 회장, 랜들 스티븐슨 AT&T 회장과 회동했고, 9월에는 코닝의 경영진과 BMS의 지오바니 카프리오 CEO와도 미팅을 가졌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행보는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중국 왕양(汪洋) 부총리와 리커창(李克强) 총리,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등이 그가 최근 만난 글로벌 인사들이다. ‘이재용 체제’ 2년...“잘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 ‘이재용 체제’ 2주년을 맞은 삼성은 전방위적으로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4년 11월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등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2조원에 팔았다. 지난해 10월에는 삼성SDI 케미칼 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등 나머지 화학 계열사들을 3조원에 롯데그룹에 넘겼다. 지난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서 행해진 자율적인 기업 간 거래로는 최대 규모다. 이 부회장은 삼성을 이끌며 과거 문어발식 확장 대신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자’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마디로 ‘선택하고 집중하자’는 거다. 여기에는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1등을 못하는 사업은 정리한다’는 이 부회장의 경영철학은 GE의 잭 웰치 전 CEO와 매우 닮았다. 삼성 전직 임원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이 부회장은 GE로부터 초대받아 미국 GE크로톤빌 연수원에서 한 달가량 최고경영자 양성과정 교육을 받게 되는데, 그때 GE로부터 많은 교감을 얻었다”고 한다. 또 이 부회장은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반대에 맞서며 삼성의 지주 역할을 해온 제일모직(옛 에버랜드)과 삼성물산의 합병도 성사시켰다. 통합 삼성물산 출범으로 경영권 승계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수십 차례가 넘는 계열사 재편작업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부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삼성의 사업재편 구도는 크게 전자·바이오·금융 3대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유례 없는 기업 간 ‘빅딜’을 성사시킨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지금도 삼성그룹 비주력 계열사들의 매각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내부적으로 직원들과 스킨십 강화를 위한 현장경영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5월 평택 반도체공장 기공식 참석을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에는 업황 장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제도 삼성중공업 조선소를 직접 찾아 박대영 사장 등 경영진과 면담을 하기도 했다. 지난 12월에는 송도 바이오로직스 3공장 기공식에도 참석했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사업장 방문도 잦아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미국 비즈니스카운실 회의에 참석한 뒤 실리콘밸리에 있는 삼성전략혁신센터(SSIC)와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 둘러보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미국 실리콘밸리 방문에 이어 같은 해 4월과 5월에는 미국과 유럽 사업 현황을 점검했다. 이 부회장의 책임경영 행보도 달라진 변화다. 이 부회장은 책임경영 일환으로 올 초 사재를 털어 지난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삼성엔지니어링의 ‘구원투수’로 나서기도 했다. 또 지난해 6월 23일 메르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대국민 사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국민 여러분께 사죄한다”며 두 차례나 고개를 숙였다. @img6 “큰 그림이 없다”...미래에 대한 삼성 여전히 ‘안갯속’ “이 부회장은 그야말로 럭키(Lucky)한 오너 3세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고 능력이다.” 재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한마디로 삼성은 그동안 환율과 스마트폰 인기 상승이라는 우호적인 대외적 환경에 의해 큰 수혜를 입었다는 얘기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글로벌고객총괄책임자로 경영에 직접 참여한 지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삼성전자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이 기간 연결 매출은 99조원에서 229조원으로 2.3배나 껑충 뛰었고, 연결 순이익도 8조원에서 30조원으로 3.8배나 증가했다. 이런 성과는 환율 상승과 스마트폰 인기의 효과가 컸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연평균 환율은 2007년 달러당 929.22원에서 2013년 1094.58원까지 올랐다. 6년 가까이 달러/원 환율은 평균 1100원대를 유지했다. 증권가에 따르면 달러/원 환율 상승 시기엔 삼성전자의 실적이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경우가 많은 반면, 환율 하락 시기엔 ‘어닝 쇼크’를 기록한 사례가 많았다. 이런 탓에 재계 내부에선 이 부회장의 삼성 체제에 운이 따라줬을 뿐 아직 이렇다 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종종 나온다. 아버지 이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며 삼성이 잘하는 일이든 못하는 일이든 우선 큰 판을 짜고 미래를 계획한 반면, 이 부회장은 단기간의 성과에 치중해 멀리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삼성의 연구개발(R&D)과 기술력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삼성종합기술원(종기원)의 입지 축소가 대표적이다. 지난 1987년 말 개원한 삼성 종기원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최근 기업 안팎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매출의 약 7%를 R&D비용으로 쓰고 있는데, 해마다 그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2014년 삼성전자의 총 R&D비용은 15조3255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엔 14조8487억원으로 줄었다. 올 1분기엔 3조8117억원만을 R&D비용으로 지출했다. 특히 과거 이 회장 시절엔 각 계열사 CEO 대부분이 공대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데 비해 지금은 관리직 출신이 대거 차지하고 있는 점도 삼성 종기원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이 부회장이 삼성의 장기적인 미래 먹거리 찾기에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이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밀고 있는 바이오 사업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며 “바이오 사업 특성상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을뿐더러 당장 스마트폰을 대체할 사업이 없다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그동안 ‘럭키’했던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당장 오는 2018년 금융위기설에 어떻게 대응할지, 또 상속 승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더 나아가 미래의 삼성을 어떻게 이끌지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거세게 위협해 오고 있는 지금, 글로벌 파워리더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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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호

[인터뷰] 유일호 경제부총리 “앞서가는 방법의 비밀은 시작하는 것”

구조조정 진두지휘 “경제위축 막기 위해 가능한 정책수단 총동원” 금배지 접은 ‘대표적 경제통’, 의원에서 경제사령탑으로 ‘월간 안다’ 창간 축하 메시지 “온라인 넘어 글로벌 언론 도약 기대” |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 “뉴스핌의 ‘월간 안다’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뉴스핌 ‘월간 안다’ 창간에 맞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구조조정 작업을 비롯해 어려운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누구보다 바쁘게 뛰고 있는 유 부총리는 ‘월간 안다’에 관심을 표명했다. 답은 현장에서 유 경제부총리는 요즘 구조조정 문제로 전국 각지를 누비고 있다. 그는 “최근 우리나라 최대 조선사인 울산 현대중공업을 찾아 선박 건조 현장을 둘러봤다”며 “주력업종의 현황을 점검하고 지역경제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여러 사람한테서 좋은 말씀을 들었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당시 울산광역시장과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조선업 종사자 고용방안’ 등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 및 지역경제 위축 방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전달했다. “급격한 경제여건 변화로 우리 산업의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에 적기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채권단, 지역사회, 정부 모두가 힘을 모아 우리 산업의 변화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정부는 원활한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용불안, 지역경제 위축 등의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가능한 정책수단을 총동원할 생각이다.” 그는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해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성장 둔화와 브렉시트(Brexit)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고, 대내적으로는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고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어려운 여건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연초부터 소비·재정 절벽이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고 일자리 여건은 악화되고 있다. 민간 부문의 활력은 좀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내년 말까지 조선업종에서만 6만명이 실직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이처럼 한국호(號)가 경험하지 못한 최대 위기 상황에서 유 부총리가 꺼낸 카드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포함한 확실한 재정 보강이다. 이를 통해 경제 활력을 제고하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유 부총리는 부실을 털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싹틔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는 “한계기업·취약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향후 우리 경제를 이끌 유망 신산업에 80조원에 달하는 민간의 투자수요가 실행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사실 유 부총리에게 구조조정은 낯설지 않은 작업이다. 이미 한 차례 경험이 있어서다. “구조조정 안 하면 살아갈 길이 없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유일호 부총리는 비상경제대책위원회 기획단의 일원으로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한국 경제 대수술에 참여, 위기의 극복에 일조했다. 그는 당시 재정경제원, 산업자원부, 한국은행 등에서 차출된 6인의 구조조정 실무단 멤버로 활동했다. 자민련 부총재 출신 김용환 위원장을 필두로 이헌재 기획단장 등 내로라하는 경제전문가들로 꾸려진 비대위는 신속 과감하고 적확한 시술로 한국 경제를 거침없이 손봐 나갔다. 좌초 위기에 몰린 한국호 구조개혁을 담당했던 비대위에서 일해본 유 부총리의 경험이 박근혜 정부에서 중간계투 경제사령탑으로 나서 다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는 이렇게 강조한다.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차 말해왔다. 이거 안 하면 앞으로 우리나라가 살아갈 길이 없다. 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는 바로 그것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만큼 기대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 한발 한발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차근차근 해나갈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힘들고 아프더라도 이건 꼭 해내야 한다.” 유 부총리는 20여년 만에 다시금 구조조정 메스를 들고 우리 경제의 환부를 도려내기 시작했다. 의원→장관→의원→부총리 사실 유 부총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19대 국회의원 유일호는 2015년 3월 국토교통부 장관에 취임했으나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8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장관직에서 물러나 국회로 복귀했다. 국토부 장관으로서 뉴스테이법으로 불리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성사시키는 등 재임 중 성과도 적지 않았기에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그런 그가 여의도로 귀환한 지 한 달 만에 경제부총리로 임명돼 다시 세종시로 내려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연말 경제부총리로 대통령 당선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유일호 의원을 선택했다. 재계에서는 박 대통령이 자신의 경제철학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유 의원을 경제정책 사령탑에 기용함으로써 집권 후반기에도 금융·교육·노동·공공 4대 개혁과 경제 활성화를 흔들림 없이 강력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유 부총리는 20대 국회의원 출마를 포기하고 세종시로 내려간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지하게 고민한 후 내린 결정이다. 총선 때문에 국토부 장관을 일찍 그만둬야 했던 것이 아쉽기도 했고 국가를 위해 제대로, 좀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쉽게 결정한 것이 아닌 만큼 꼭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결국 잘한 선택이었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 대표적 경제통 유 부총리는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故)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의 외아들로 18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을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19대 총선에선 민주당 천정배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한 바 있다. 국회에서는 조세·재정 분야 전문성을 살려 기획재정위와 정무위에서 주로 활동하며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내수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는 데다 수출은 역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대내외 경제여건 또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유 부총리는 “우리 경제는 3월 이후 생산·내수지표가 개선되고 있다”면서도 “하반기에는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기업 구조조정 본격화 등으로 경제여건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엄중한 상황인 만큼 위기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정책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점 과제는 단연 일자리다. 고용여건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전년 동월 대비 10만명을 상회하던 제조업 취업자 증가폭이 2개월 연속 절반 수준으로 둔화되고, 청년실업률은 아직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특정 업종과 지역을 중심으로 고용불안이 점차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유 부총리는 정부 각 부처가 일자리 부처라는 자세로 일자리 중심 국정운영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매월 업종별·산업별 고용현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해당 산업에 대한 종합적인 경쟁력 강화 및 일자리 대책을 마련하고, 경제정책의 성과가 일자리, 특히 청년고용과 연계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저력을 믿는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화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그가 ‘인생의 책’으로 꼽는 논어(論語). 무궁무진한 지혜의 보고(寶庫)에서 유 부총리가 인생의 큰 교훈을 얻었다고 말하는 ‘학이편(學而篇)’의 한 구절이다. 주변의 다양한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소신껏 당당히 걸어가겠다는 유 부총리는 한국민의 저력을 믿는다고 했다. “우리는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더 큰 시련도 기업과 근로자, 시민사회와 정부,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이겨낸 저력이 있다”며 “브렉시트 등 중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중대한 변곡점이 될 수 있는 흐름에 한발 앞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반기 경제정책과 관련, 추경 편성이 일자리와 민생 안정에 특화됐다며 국민의 이해를 구했다. ‘안다’의 활약을 기대하며 그는 경제전문매체 ‘뉴스핌’에 대한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뉴스핌은 2003년 4월 창간 이후 13년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온라인 경제전문매체로 성장해왔고, 글로벌 자산관리(GAM, Global Asset Management) 기사를 특화해 그동안 우리 경제에 대해 시의성 있는 화두를 제시해왔다”며 “앞으로도 경제 관련 전문성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경제언론으로 도약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산업을 육성하는 등 경제의 체질 강화를 모색해야 하는 우리 경제가 다시 힘차게 비상할 수 있도록 뉴스핌의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 부총리는 “소설 ‘톰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은 ‘앞서가는 방법의 비밀은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뉴스핌이 시작하는 ‘월간 안다’의 창간은 뉴스핌의 온라인 시대를 뛰어넘어 더 넓은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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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호

[기업인 탐구] 비운의 우주인서 벤처 기업가 변신한 고산

3D프린팅 에이팀벤처스 CEO·청년창업 도우미로 인생2막 “나의 도전은 진행형...내가 인정하기 전까지 실패 아니다” | 김연순 기자 y2kid@newspim.com | 이형석 사진기자 leehs85@newspim.com 지난 2006년 12월, 3만6000 대 1의 경쟁을 뚫고 한국 첫 우주인에 선발되면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청년이 있다. 하지만 그 청년은 우주선 발사 불과 1개월을 앞두고 훈련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2008년 3월 이소현 씨로 전격 교체된다. 그래서 ‘비운의 우주인’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그 사람.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다. 10여 년 전 서른 살의 풋풋한 청년 예비우주인에서 이제 40대 3D프린팅 벤처사업가로 인생 제2막(?)을 살고 있는 고산 대표를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에이팀벤처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10여 년 전 우주인 고산 얘기로 자연스럽게 거슬러 올라갔다. 일반 연구원(삼성종합기술원)에서 우주인으로의 도전, 이후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공공정책) 유학, 창업도우미, 벤처사업가 등 사연 많은 인생길의 시작이 ‘우주인 고산‘이기 때문이다. 고산 대표는 당시 우주인 도전 이유, 우주인 전격 교체 등과 관련해 비교적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에서도 암벽 등반, 복싱대회 출전처럼 여러 도전을 즐겨 했고 (우주인도) 여러 도전 중 하나였어요. 우주인 찾는 모집광고 문구가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었는데, 신기하고 재미있겠다 싶어 도전한 겁니다.” 그는 “우주인 경험 이후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했다. “가보니까 우주인이 널려 있었고, 우리는 정말 과거에 살고 있었다는 걸,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밖에는 큰 세상이 있는데, 우리의 무언가가 확장될 수 있고, 첨단에 설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산 대표는 우주인 탈락 후 러시아에서 귀국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2년간 의무근무를 마치고 2010년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로 유학을 떠난다. “우주인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도 느꼈지만 과학자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우주인을 선발했으면 다음, 다다음 단계 로드맵이 있어야 하는데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느꼈습니다.” 고산 대표는 ‘국가적인 정책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배경 지식을 쌓기 위해 정책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하버드 케네디스쿨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뒤 돌연 귀국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청년창업을 돕는 비영리법인 타이드인스티튜트를 세웠다. 실리콘밸리 창업문화 체험 후 청년창업 지원 비영리법인 설립 하버드대학 유학 전 실리콘밸리에 있는 싱귤래리티대학에서 10주간 창업 관련 교육을 받은 것이 타이드인스티튜트 설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미국 가서 경험해보니 실리콘밸리의 창업 문화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정신, 문화가 한국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년간 하버드에서 공부하면서도 창업을 지원하는 정책 혹은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타이드는 기술(Technology), 상상력(Imagination), 디자인(Design),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뜻하는 영어의 앞 자음을 조합한 단어다. 고산 대표는 타이드인스티튜트가 연구과제도 진행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같은 역할을 했으면 했다. 물론 타이드의 롤모델은 싱귤래리티대학이다. 고산 대표는 개방형 제조 공간 ‘팹 랩(FAB LAB)’ 아이디어를 가져와 종로에 위치한 세운상가에 창업 지원 공간을 만들었다. 당시 창업 지원은 모바일 앱이나 SNS 관련 소프트웨어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하드웨어 지원 공간이 부족했다. “근처에서 부품, 재료를 구할 수 있고 기술 장인이 많은 제조 기반이기 때문에 세운상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이후 아이디어 팩토리 등 정부 지원 제조공간이 많이 생긴 것으로 압니다.” 현재 고산 대표의 공식 명함은 두 개다. 비영리법인 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와 3D프린팅 벤처기업 에이팀벤처스(ATEAM Ventures) 대표. 2년여 전인 2014년 7월 에이팀벤처스를 창업했다. ATEAM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 드라마 ‘A특공대’에서 연상했다고 한다. 에이팀벤처스의 출근시간은 10시이고, 점심시간은 오후 1시부터다. 기존 기업들보다 타임스케줄이 한 시간씩 늦다. “아침 출근시간대 교통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점심시간에도 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기존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역발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무실 분위기는 자유분방하고 젊다. 운동화와 청바지, 반팔 티셔츠 차림을 한 고산 대표와 직원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직원들의 물리적인 나이뿐 아니라 아이디어 회의 현장에서도 젊고 생동감 있는 기운이 물씬 풍긴다. @img4 창업은 비전과 가치를 세상에 투영하는 도구 고산 대표는 창업 지원을 하다 직접 창업에 뛰어든 이유를 ‘세상의 의미있는 변화’로 설명했다. “창업은 이제 세상을 바꾸는 툴(tool)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나의 비전이나 가치를 세상에 투영시키는 도구인 것이죠.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IT에서 시작했지만 전기자동차를 만들고, 스페이스 X라는 민간 회사는 로켓 1단 부분이 날아가 타버렸던 부분을 다시 착륙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했고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욕망이 커졌습니다.” 고산 대표는 연구원에서 우주인, 창업도우미, 벤처사업가로의 새로운 인생 도전에서 “지금 창업이 가장 잘 맞는다”고 했다. 지금 그에게 에이팀벤처스는 의미있고 재미있고 그동안 쌓은 경험을 충분히 쏟아낼 수 있는 곳이다. 인터뷰 말미에 우주인 고산에서 벤처기업 대표 고산으로 인생을 전환한 것에 대해 만족하는지를 다시 한 번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인생 전체를 두고 봤을 때 우주에 가는 것은 큰 일은 아니었습니다. 인생을 바꿀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비운의 우주인일 수 있지만, 반대로 행운의 창업가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자기가 인정하기 전까지는 실패가 아닙니다. 다음 기회에 그것을 밑거름 삼아 더 키우고, 그 길로 인한 기회비용을 다시 찾아서 실현하면 되는 거지요.” 고산 대표에게 도전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재발견하고 완성시켜 가는 과정이다. 지금이 고산 대표의 인생 제2막일지 제3막일지는 모르겠지만, 향후 그의 도전하는 인생 항로가 더욱 궁금해진다. ◆Mini Box◆ 고산 대표 “3D프린터도 커스터마이징 시대” “3D프린터 서비스·소프트웨어 육성해야” | 김겨레 기자 re9709@newspim.com “3D프린터 응용 비즈니스가 삶을 바꾼다” 고산 대표는 앞으로 공산품을 소비하는 수동적인 행위 대신 개인이 스스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행위가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고산 대표는 미국에서 생산된 이어폰 하나를 꺼내 보였다. “대량생산 시대는 끝났어요. 이제는 ‘커스터마이징 (Custo-mizing)’ 시대입니다. 이 이어폰은 귓구멍에 작은 카메라를 넣어 3차원으로 촬영한 뒤, 3D프린터로 틀을 만든 다음 실리콘으로 채워 만든 것이에요. 30만원이면 내 귀에 맞게 제작된 이어폰을 살 수 있는 겁니다.” 현재는 3D프린터로 만든 젤리, 오토바이, 인공 장기 등 3D프린터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얼마나 정교하게 싸게 찍어낼 수 있는지에 그치고 있다. 고산 대표는 “3D프린터 장비가 아니라 서비스, 응용 비즈니스가 삶을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3D프린팅계의 ‘에어비앤비’ 준비 중 “3D프린터 보급 후 펼쳐질 서비스가 부가가치를 만들 겁니다. 프린터와 소비자를 잇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 플랫폼이 일반인과 닿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고산 대표는 더 많은 사람이 3D프린터를 체험할 수 있도록 3D프린터 공유 플랫폼인 ‘쉐이프 엔진’을 개발했다. 우버나 에어비앤비처럼 3D프린터를 소유한 사람과 프린터 없는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서다. 3D 도안은 인터넷에 수만 건 공유돼 있다. 이를 내려받아 도면을 보내면 찍어낸 결과물을 택배로 받아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고가 제품을 사지 않아도 되고, 공급자 입장에서는 3D프린터로 부가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된다. 3D프린터를 생산하고 있으면서도 연관 서비스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산 대표는 하드웨어로 승부를 보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이미 중국이 우리나라 기술을 앞질렀기 때문. 중국은 우리나라 업체들보다 산업용 3D프린터 등의 고사양 장비를 더 싸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관련 시도도 많다. 중국 쑤저우에 3D프린터로 제작된 별장이 건설됐으며, 재작년에는 3D프린터로 만들어진 인공척수를 삽입하는 수술에도 성공했을 정도다. @img4 고 대표도 중국의 기술력을 이용해 신제품의 원가를 확 낮췄다. 에이팀벤처스가 타깃으로 삼는 고품질·보급형 3D프린터는 200만~300만원대인데, 중국 생산으로 이를 100만원대로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정부 지원 방향에 대해 고 대표는 “3D프린터 장비 제조에만 지원하지 말고 첨단 트렌드를 파악해 산업 자체를 주도해야 한다”며 “정부의 다음, 다다음 로드맵이 그려져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6월 나온 에이팀벤처스의 신제품은 플라스틱 필라멘트가 나오는 헤드 부분을 사용자가 손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 프린터의 잉크 역할을 하는 플라스틱을 녹여 한층 한층 쌓는 방식이다 보니 헤드 부분이 쉽게 막히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팀벤처스는 100만원대의 신제품을 초기 1000대가량 생산할 예정이다. 학교나 연구소 등 교육 분야에서 주로 사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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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匠人에게 묻다] 주식브로커 40년 ‘현역’ 김종인 메리츠증권 영업이사의 비법

“진정한 승부는 하락국면...덜 깨지는 게 가장 중요” “젊은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다” 두 자녀도 증권사 영업직 ‘증권가족’ | 박민선 기자 pms0712@newspim.com | 이형석 사진기자 leehs@newspim.com 미두시장, 격탁매매, 시장대리인. 로보어드바이저 대중화 시대를 앞둔 지금 ‘이보다 아날로그적일 수 없다’ 싶을 만큼 생소한 단어들이 쏟아졌다. 70년대 주식시장. 요즘 젊은 세대들은 책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시대지만 누군가에게는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일처럼 선명하다. 김종인(69) 메리츠종금증권 영업부 이사가 증권업계에 발을 들인 지는 어느덧 40년. 증권가 최장수·최고령 현역 브로커다. 그의 자녀(아들과 딸) 역시 현역 주식브로커로 활동하고 있다. 그를 만나 40년 증권 역정을 들어봤다. 빼곡한 거래내역 수기, 그리고 90대 고객 주식투자 인구가 많지 않았던 시절인 1976년 동서증권에 입사해 78년 한일증권(현 메리츠종금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것 말고는 그야말로 한눈 한 번 팔지 않은 외길이었다. 수기로 작성해온 빼곡한 매매 거래내역 일지는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쌓아온 내공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상관없어요. 오직 돈으로 하는 진검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또 그것이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겠죠. 솔직히 젊은 후배들하고 겨뤄서 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요. 진다는 생각이 들면 당장이라도 관둬야겠죠.” 그는 주식에 대해 “내 천직”이라면서도 “알 수 없고 무서운 것”이라고 했다. 주식시장에서 매일같이 피 말리는 승부를 견뎌내기 위한 길은 노력밖엔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노력은 그와 오랫동안 거래하고 있는 고객들을 통해 조금 엿볼 수 있었다. “고객 중에는 90세를 넘긴 분도 계세요. 고객들의 연령대가 높다 보니 일부는 서서히 자산을 정리하는 고객들도 계십니다. 함께한 세월이 있고 가족처럼 지낸 분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감회가 남다르죠.” 그야말로 2만원짜리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때로는 고비, 때로는 기쁨을 함께 맛본 고객들이 여전히 그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오랜 고객이라고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순 없다. 주식투자를 평생 이어온 고객들인 만큼 주식을 통해 안정적이고 꾸준한 수익을 내려는 기대심리가 되레 더 높다고 한다. 실제 인터뷰 도중 걸려온 한 고객의 전화 역시 코스닥의 한 대형주 투자에 대한 문의였다. 새로운 기업이 매일 등장하고 신기술을 선보이며 변화하는 주식시장에서 빠른 정보력으로 무장한 젊은 후배들과 경쟁해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은 뭘까. “주식이 상승장일 때는 젊은 친구들이 더 과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진정한 승부는 하락 국면에서 드러납니다. 덜 깨지는 것이 진정한 실력이죠. 이건 치열하게 주식과 싸워보고 큰 흐름을 겪어본 사람이 유리해요. 증권사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건 대리, 과장급들이에요. 차장, 부장이 되면 서서히 주식의 무서움을 알게 되고, 무서움이 생기면서 힘들어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매매를 해온 것이 쌓여 ‘감(感)’이라는 게 생겼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 겁니다.” 그는 여전히 공부하고 젊은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정보 공유의 속도가 빨라진 데다 특히 상하한가 제한폭이 30%로 확대된 뒤론 시장 스피드가 한층 높아졌다. “매일 실수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훈련 중입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요.” 격탁매매부터 로보어드바이저까지 김 이사가 처음 증권업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전산 시스템 혹은 컴퓨터가 아닌 오로지 사람의 ‘손’에 의해 거래가 이뤄지던 시대였다. 그에게 과거 주식시장의 형태를 묻자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일제시대에 있었던 미두시장이 투기시장으로서는 가장 초기 모습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주식시장 형태가 정식으로 갖춰진 건 1956년 증권거래소가 생긴 이후예요. 자본자유화 등이 이뤄지던 70년대까지는 격탁매매(擊柝賣買)라고 해서 사람이 손으로 직접 거래의사를 표현해 주식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즉, 시장 대리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손뼉을 쳐서 주문 신호를 보낸 뒤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면 그것이 거래 가격이고 주식 수량이 됐다. 오늘날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수산물 경매가 이뤄지는 것과 비슷한 집단경쟁의 매매 방식이었다. 하지만 40년 만에 주식 거래는 모두 전산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고 주식 브로커들은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를 앞두게 됐다. 그는 이미 모 증권사에서 선보인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사용 중이라고 했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니까 한번 사용해보는 거죠. 물론 로봇은 감정 개입이 없다는 측면에서 사람보다 유리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검증은 좀 더 필요하다고 봐요.” 주식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돌발변수에 대한 대응인데, 로봇이든 사람이든 이를 예측하긴 똑같이 어렵기 때문에 대응 능력상 차이는 크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그는 코스피지수가 5년째 2000선 안팎에서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라고 했다. “제 생각엔 1, 2년 내에 변곡점이 올 것으로 보는데, 그때 수익률에서 또 한 번 승부가 날 겁니다.” 주식은 내 천직...나의 마지막은? 김 이사와 함께 현역으로 뛰고 있는 동기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화려한 성공보다는 치열한 승부의 반복, 혹은 한 번의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 경우가 훨씬 더 많은 현실의 단면이다. 그는 금융업계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목표 의식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떤 꿈을 이루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지 않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조언은 넓게는 증권업계 후배들에게, 좁게는 그의 두 자녀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김 이사의 아들딸 역시 현재 국내 증권사에 재직 중이다. “사실 자식들까지 증권사에 들어오고 나니 주식이 정말 내 천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 시장의 성공 확률은 1000명에 한둘이 될까 싶을 정도로 낮고, 특히 영업직으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죠. 고객의 돈을 내 돈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욕심을 억제하라고 해요. 누구든 이 분야에 도전하려 한다면 전문가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과 자기 철학을 갖고 치열하게 노력하길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하지만 왠지 조심스러운 그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언제 관두느냐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당장 다음주 월요일 수익을 내지 못하고 고객들이 떠난다면 그게 나의 마지막일 겁니다. 그저 하루하루 현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해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내년 70대를 앞두고 있는 김 이사의 주식시장과의 승부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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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공기업 CEO] 한국동서발전 김용진 사장

직원들의 책상과 PC를 없애라 구글처럼 변신한 동서발전의 혁신 스토리 위기에 봉착한 화력발전 ‘혁신’으로 승부 | 최영수 기자 dream@newspim.com “혁신의 시작은 부서 간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직원들과 부서 간 소통을 강화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해야 혁신이 시작됩니다.” 지난 1월, 3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마치고 공기업 사장으로 변신한 김용진 한국동서발전 사장은 요즘 자나 깨나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부임 초기 일각에서 ‘낙하산’이라 운운하기도 했지만 그런 비판을 신경 쓰는 것조차도 한가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이른바 ‘셰일가스 혁명’으로 글로벌 에너지시장이 급변하면서 유연탄을 주원료로 사용해온 국내 화력발전업계가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해답은 직원에게 있다”...생존전략 놓고 ‘마라톤 토론’ 김 사장은 취임 이후 다른 CEO들처럼 경영전략을 먼저 제시하지 않았다. 뻔한 구호성 경영방침으로는 직원들의 뿌리 깊은 인식과 조직문화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신 현장의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결국 해답은 직원들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위기에 봉착한 화력발전업계의 현실을 직시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잘 대응해가는 진정한 혁신은 직원들 스스로 나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사장과 동서발전 직원들은 분야별·그룹별로 수차례의 자유토론을 통해 스스로 문제점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혁신 방향을 모색했다.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신사업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방안을 필두로 고장정지율 감소, 발전소 효율 향상, 노후 발전소 대체건설 등 현안에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이를 통해 미래 먹거리 6개 과제, 시급한 현안 과제 8개, 조직 체질개선 과제 8개 등 총 22개 과제를 도출했다. 김용진 사장은 “회사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직원들이고, 이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갖고 있는 사람도 직원들”이라면서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해법을 찾고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수립해 한 단계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공기업 최초로 ‘스마트 오피스’ 도입 동서발전의 혁신은 이미 2년 전 울산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시작됐다. 직원들의 개인 책상과 컴퓨터, 전화기 등을 모두 없애고 이른바 ‘스마트 오피스’를 도입한 것이다. 스마트 오피스란 조직 단위의 사무실 배치가 아닌 기능별 사무실 배치로 협업과 소통이 가능한 창의적인 사무공간을 말한다. 직급별로 책상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클라우딩 서버를 기반으로 공용 PC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공공기관 중에서도 늘 경영 혁신을 선도해온 동서발전은 ‘혁신의 아이콘’ 구글을 벤치마킹해 공기업 최초로 스마트 오피스를 도입했다. 우선 답답했던 칸막이를 모두 없애고 개인 책상과 PC, 전화기도 모두 치웠다. 사무실 입구에 자리 잡고 있던 부서별 복사기와 팩스, 프린터도 마찬가지다. 부서 한쪽에 병풍처럼 줄지어 서 있던 캐비닛과 책꽂이, 서류함도 사라졌다. 그럼 어떻게 일을 하라는 것일까.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막막하기만 할 것이다. 기존의 부서 단위가 아닌 ‘처’ 단위로 50~60명이 한 층에서 함께 일하는 이색적인 모습이다. 개인 책상 대신 누구나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용 책상 위에 모니터와 키보드만 있을 뿐이다. 직원들은 아무 자리에나 앉아서 자신의 ID로 접속해 일하면 된다. 또 유무선 통합전화를 통해 회사 전화도 개인 휴대폰으로 함께 통화할 수 있고, 클라우드 프린팅 시스템을 도입해 불필요한 공간을 최대한 줄였다. 그렇게 줄인 공간을 활용해 회의실은 물론 직원들을 위한 휴게실과 북카페(독서실), 체육시설을 대폭 늘려 만족도를 높였다. 심지어 사옥 내에 풋살경기장까지 만들었다. 김용진 사장은 “스마트 오피스를 도입하면서 부장과 직원의 자리 구분을 없애고 파티션과 복도, 서류 캐비닛 등 많은 것을 없앴다”면서 “이를 통해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직원들 간의 이해와 소통, 수평적 협업 문화가 생겨났다”고 강조했다. 개인 책상·칸막이 없앴더니 협업 강화돼 스마트 오피스를 처음 도입했을 때는 다소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동서발전은 어떤 공기업보다도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 고정석이 아닌 유연좌석제는 개인의 업무 효율은 물론 다른 직원들과의 협업과 소통을 통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기 때문이다. 회사 전체로도 부장과 직원 자리의 구분이 없어지고 개인 칸막이는 물론 부서 칸막이도 사라져 직원과 상사, 직원과 직원 간의 소통과 협업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개인 휴대폰과 사내전화를 연계한 유무선 통합전화 시스템은 외부 출장 시에도 고객과 통화할 수 있어 업무 처리가 용이하다. 공기업으로서 24시간 국민과의 소통 채널을 열어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사무실 구조가 열린 공간으로 바뀌고 수평적인 기업문화가 자리 잡으니까 회의문화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부서장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회의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소통하는 회의문화가 정착되기 시작됐다. 동서발전은 나아가 풋살장과 농구장, 테니스장, 야외음악당, 야외분수대, 강당 등 문화·체육시설을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해 지역사회와의 벽을 허무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지난 5월 행정자치부가 116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부 3.0 추진실적 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동서발전의 이 같은 변화는 다른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과 학교, 언론사 등 타 기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스마트 오피스가 궁금하다면 동서발전에 가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용진 사장은 “앞으로도 유연하고 수평적인 회사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나아가 국민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시행해 정부 3.0의 선도적 롤 모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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