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03월호
일라이릴리 ‘젭바운드’ 가격 내려 ‘위고비’ 잡을까
지난해 주가 61% 수직상승...올해도 급등 여부 주목
젭바운드 감량효과 위고비 능가...가격도 저렴
공격적인 M&A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 중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전세계가 기적의 비만 치료약 ‘위고비’ 열풍에 휩싸였다. 그런데 이 위고비보다 더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 2023년 11월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심사를 통과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2023년 12월부터 판매가 개시됐다. 바로 일라이릴리의 야심작인 ‘젭바운드’ 이야기다.
위고비와 젭바운드 중 살 더 빠지는 건 뭐?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 중 어느 제품의 성능이 더 뛰어난지에 쏠려 있다. 그런데 성능 비교에 앞서 먼저 용어부터 정리해야 한다.
세계 최초로 신제품을 개발해 비만 치료제 시장을 휩쓸고 있는 노보노디스크의 핵심 약물은 ‘세마글루티드(Semaglutide)’다. 이 약물을 활용해서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오젬픽(Ozempic)’을, 비만 치료제로는 ‘위고비(Wegovy)’를 허가받아 판매하고 있다.
추격자인 일라이릴리의 핵심 약물은 ‘티제파티드(Tizepatide)’다. 이 약물을 활용해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마운자로(Maunjaro)’, 비만 치료제로는 ‘젭바운드(Zepbound)’라는 이름으로 허가받아 판매한다.
그렇다면 노보노디스크의 세마글루티드와 일라이릴리의 티제파티드 중 어떤 게 더 감량 효과가 좋을까. 과체중자 또는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는 위고비(세마글루티드)의 경우 68주 동안 17.4%의 체중이 감소했다. 젭바운드(티제파티드)는 88주 동안 26%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투여 기간이 달라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일단 젭바운드의 체중 감소율이 더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젭바운드의 비만 치료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확인되자 눈치 빠른 사람들은 젭바운드가 출시되기도 전에 이미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마운자로(Maunjaro)의 처방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마운자로를 통해서도 충분한 감량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마운자로의 가격은 젭바운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그런데 마운자로나 젭바운드가 단순한 다이어트 약은 아니다. 젭바운드는 BMI 30 이상의 비만 또는 BMI 27 이상의 과체중이면서 1개 이상의 체중 관련 추가 질환을 가지고 있는 성인을 위해 승인됐다. 따라서 이 약을 처방받으려면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제2형 당뇨병,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또는 심혈관질환 중 하나를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돈은 많고 살은 빼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이런 엄격한 조건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일라이릴리는 올 초에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를 단순한 미용 목적의 체중 감량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비만은 가난한 사람의 질병? 비만 인구 급증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가 2030년에는 120조원(1000억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3년에 발간된 ‘세계 비만 지도책’에 따르면 BMI 지수가 30을 초과하는 전 세계 비만인구 수는 2020년 기준 총 9억8800만명이다.
더 무시무시한 건 15년 뒤인 2035년의 비만인구 수다. 총 19억14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 80억명 중 4분의 1이 비만인구인 셈이다.
과거에는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비만자 수의 비율에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앞으로 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기적의 비만 치료제인 위고비나 젭바운드를 통해 효과적인 체중감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만 치료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가다. 선도자인 위고비의 연간 약 가격은 2000만~2500만원 수준이다. 추격자인 젭바운드는 1600만~1800만원 수준이다. 위고비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서민들이 쉽게 살 수 있는 가격대는 아니다.
비만인구 수가 급증하는 건 비만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초대형 호재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기업들이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해 가난한 사람들까지 다 비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오직 기대할 건 더 많은 제약사들이 비만 치료제 시장에 진출해 치열한 시장경쟁으로 자연스럽게 가격이 하락하기를 바랄 뿐이다. 결국 부자들만 맞을 수 있는 약이라는 점에서 미래로 갈수록 점점 더 비만은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이라는 인식이 강화될 위험도 있다.
일라이릴리가 비만 치료제밖에 없다고? 아닐걸
일라이릴리의 주가 랠리는 화려하다. 2023년 말에는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톱 10에 진입했다. 제약 회사로만 따져보면 글로벌 시가총액 1위를 기록 중이다. 주가는 2022년 말 362달러였으나 2023년 말엔 583달러로 무려 61% 폭등했다. 2024년 들어서도 1월 24일 종가 633달러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일라이릴리의 주력제품은 당뇨병과 비만 치료제인 마운자로나 젭바운드밖에 없는 걸까. 그 건 아니다. 이 2개 제품이 주력인 건 맞지만 아래 표와 같이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구성하고 있다.
먼저 일라이릴리의 지난 3년간 실적을 살펴보자. 2020년의 매출액은 29조4000억원이었으나 2022년에는 34조2000억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영업이익도 2020년의 8조7000억원에서 2022년에는 10조4000억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밋밋한 실적증가율을 보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라이릴리의 2023년 9월 말까지 9개월간 누적실적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변화가 몇 가지 보인다. 먼저 전체 매출액에서 주요 섹터별 구성은 당뇨병 치료제 56%, 항암제 19%, 면역질환 치료제 11%, 기타 14%의 비중을 보이고 있다. 예상대로 당뇨병(비만 포함) 치료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전체 매출액은 29조70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7% 증가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당뇨병·비만 치료제인 마운자로의 급성장이다. 마운자로의 전년도 매출액은 고작 20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23년 9개월 누적매출은 3조5000억원에 달했다. 무려 1355% 급증한 수치다.
대신 매출 증가율이 미미한 제품도 있다. 2형 당뇨병 치료제인 ‘투루리시티’의 매출은 6조6000억원을 기록해 전년도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유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당뇨병 치료제인 마운자로, 젭바운드와 겹치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투루리시티의 단가가 더 저렴하기 때문에 당분간 이쪽 매출이 늘어날 일은 없어 보인다. 한국에서도 투루리시티의 공급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라 한국 당뇨병 환자들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일라이릴리 역시 젭바운드의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분간 젭바운드가 한국에 들어올 일은 없다.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낮춰주는 정제인 ‘자디앙스’의 2023년 매출액은 2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4% 급증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자디앙스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의해 공공보험 메디케어에 적용할 1차 약가 인하 의약품 10개에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이 10개 의약품은 미국 건강보험서비스센터(CMS)와 2년간의 협상을 통해 2026년부터는 메디케어에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을 공급해야 한다. 따라서 판매가격 인하로 인한 마진 감소는 피할 수 없게 됐다.
항암제 쪽에서 가장 유망한 제품은 유방암 치료제인 ‘버제니오’다. 2023년 매출액이 3조30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62% 급성장한 점이 눈에 띈다. 면역질환 치료제 쪽에서 가장 유망한 제품은 건선 치료제인 ‘탈츠’다. 2023년에 2조4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공격적인 M&A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 중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2023년 9월 말까지 9개월간의 영업이익은 고작 5조3000억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전년 대비 무려 34% 급감한 수치다.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고 마진 높은 신약마저 잘 팔리고 있는데도 오히려 영업이익이 거꾸로 가고 있는 이유가 뭘까.
바로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때문이다. 일라이릴리는 2023년 상반기에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개발사인 다이스 테라퓨틱스를 3조원(24억달러)에 인수했다. 또 하반기에도 비만 치료제 개발사인 베르사니스를 2조3000억원(19억달러)에 사들였다. 추가로 항암제 분야에서는 포인트 바이오파마를 1조7000억원(14억달러)에 인수했고 맵링크 바이오사이언스도 손에 넣었다.
이런 다양한 인수합병은 필연적으로 비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2023년 3분기에만 ‘IP R&D’ 비용으로 무려 3조4000억원(29억8000만달러)을 썼다. 당장 영업이익이 늘어나지 않는 건 아쉬운 부분이지만 미래의 성장동력인 M&A에 따른 비용이므로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일라이릴리의 파이프라인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건 당뇨병 치료제 분야로 무려 56%다. 하지만 그 외에 항암제나 면역질환 쪽으로도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장점이다. 또 공격적인 M&A를 통해 부족한 파이프라인을 보강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다양한 신약 중 가장 눈에 띄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일라이릴리의 신약 임상 파이프라인은 화려하다. 다양한 신약 개발에 매년 연구개발비로 25%를 쏟아붓고 있다. 현재 개발을 진행 중인 신약은 당뇨병, 암, 면역질환, 통증, 비만 등 100개 이상이다. 게다가 유망한 제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기업이라면 아낌없이 자금을 투자하는 공격적인 M&A를 진행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일라이릴리의 수많은 신약 후보 중에 가장 기대감이 높은 건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도나네맙’이다. 원래 2023년 말에 FDA의 최종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2024년 상반기로 살짝 일정이 밀린 상태다.
도나네맙은 임상 3상에서 총 173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절반은 도나네맙, 절반은 위약을 투여하는 임상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의 인지력 저하를 35% 늦추는 효과를 보였다. 사실 아직 치매 정복의 길은 멀고도 멀었다는 게 객관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 성과면 상당 수준의 매출은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또 정맥 주사로 4주마다 투약하는 방식이라 투약 편의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라이릴리의 자체 분석 결과로는 2035년 도나네맙 매출이 약 6조5000억원(54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직 FDA의 최종 승인은 받지 못했지만 도나네맙이 블록버스터급 신약으로 성장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치매·비만 치료에 관심 있다면 일라이릴리 주목
아직 치매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기적의 신약은 없다. 하지만 일라이릴리의 도나네맙이 그 미지의 세계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간 것만은 확실하다. 궁극적으로 알츠하이머 시장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 노령화는 이미 정해진 미래다.
또 향후 당뇨와 비만 치료제 시장이 급성장할 것 또한 충분히 예측 가능한 미래다. 국제당뇨병연맹은 2045년의 당뇨병 환자 수를 7억8300만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비만협회는 2035년의 비만 인구 수를 19억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이 2개의 거대한 시장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전 세계에서 알츠하이머 치료제, 비만 치료제, 당뇨 치료제, 항암 치료제를 통해 돈을 갈퀴로 긁어가고 있는 일라이릴리의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지난해 주가 상승률이 무려 61%였다는 점에는 유의하자. 모든 투자자들의 성공적인 다이어트와 2024년 대박 투자를 기원한다.

2024년 03월호
머크, 키트루다 특허절벽 M&A로 해결? 최강 신약 2개 이목 집중
원투 펀치 ‘키트루다’와 ‘가다실’의 특허만료로 최대 위기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 ‘소타터셉트’가 대박 신약?
연초 대비 주가 20% 급등...M&A와 신약 기대감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머크’라는 이름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헷갈릴 때가 많다. 원래 머크는 독일의 제약사로 1668년에 설립됐다. 무려 35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한국의 주식투자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머크는 독일의 머크가 아니라 1891년에 미국지사로 설립된 머크다.
이 미국지사는 1차세계대전 때 독일의 패배로 미국 정부에 몰수당했다. 이후 1917년에 미국 국적의 조지 머크가 다시 재산을 환수받아 독일의 머크와는 완전히 다른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1953년에 샤프앤돔(제약유통사)과 합병하면서 MSD(Merck Sharp & Dohme)라는 이름이 새롭게 탄생했다.
그래서 미국의 머크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머크, 그 외 지역에서는 MSD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올바른 머크 표기법은 MSD가 맞지만 좀 낯선 느낌이다. 정확한 한글혼용 표현은 머크앤드컴퍼니(MSD)지만 그냥 머크(MSD)라고 쓰는 경우도 흔하다. 또는 미국 머크(MSD)라고 쓰기도 한다.
머크의 핵심 자산은 전 세계 매출 1위 ‘키트루다’
머크(MSD)가 지금의 엄청난 시가총액으로 성장한 계기는 무려 7조원의 자금을 투입해 개발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덕분이다. 이 놀라운 제품은 현재 전 세계 단일의약품 기준 매출액 1위다. 2023년 매출액은 30조원으로 추정된다.
3세대 항암제로 추앙받는 면역항암제란 면역세포를 이용한 치료제를 말한다. 사람 몸에 원래부터 있던 면역세포가 가장 강력한 치료제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사람 몸 속 면역세포는 비정상적인 세포가 생기면 공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암세포도 면역세포를 공격한다는 점이다.
면역항암제는 암세포가 면역세포를 공격하는 경로를 막거나, 면역세포 자체를 더 강하게 만들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다. 현재 암 환자 치료에 쓰이고 있는 면역항암제는 대부분 ‘면역관문억제제’로 통한다. 인체에 침입한 바이러스나 균, 암세포 등을 공격하는 면역세포 중 대표적인 게 바로 ‘T세포’다.
그런데 T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것도 문제가 되므로 적절히 제동장치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바로 ‘PD-1’이다. T세포 표면에는 PD-1이 붙어 있다. 그리고 암세포 표면에는 ‘PD-L1’이라는 물질이 붙어 있다. 문제는 T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PD-1이라는 단백질이 암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PD-L1 단백질과 결합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작용한다. 그 결과 암세포는 T세포를 피해 계속 증식한다. 이때 면역관문억제제를 투여하면 이런 결합을 억제하고 T세포가 정상적으로 암세포를 공격해 파괴한다.
PD-1과 PD-L1의 결합을 막는 기전을 보여주는 게 면역관문억제제다. 면역관문억제제는 2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T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PD-1과 결합해 억제하는 방식이다. 글로벌 면역항암제 1위인 머크(MSD)사의 키트루다와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의 옵디보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하나는 PD-L1과 결합하는 항체 제품으로 로슈(Roche)사의 티센트릭이 대표적이다.
한때 머크가 포기하려 했던 키트루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특징 중 하나는 성공적인 신약 개발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탈모약 ‘미녹시딜(minoxidil)’은 원래 고혈압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성분이다. 그런데 복용자들에게 털이 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발상을 전환해 바르는 탈모약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지금은 전 세계 단일 의약품 매출 1위를 기록 중인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도 우연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믿어지지 않게도 키트루다는 한때 머크(MSD)가 개발 포기를 검토했던 약물이다. 2009년도에 머크 자체 평가에서 중요도가 낮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에 따라 개발 포기 또는 타 회사로의 기술이전(out-licensing)이 검토됐다.
하지만 그 당시 경쟁사였던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이 PD-1 물질연구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PD-1과 관련 있던 키트루다의 연구개발 역시 극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당시에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이 연구했던 물질이 바로 지금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면약항암제 옵디보다.
머크의 원투 펀치 ‘키트루다’와 ‘가다실’의 매출액은?
머크(MSD)의 매출 넘버원은 당연히 키트루다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높은 매출을 보이고 있는 약품은 뭘까. 바로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인 ‘가다실 및 가다실9’다. 인유두종바이러스(HPV)는 성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다.
자궁경부암 환자의 약 70%가 HPV 감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남성의 생식기 사마귀 발생원인의 약 90%가 HPV 감염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여자들 사이에서 가다실은 필수적으로 접종해야 하는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한국에서의 점유율은 70%를 훌쩍 넘는다.
미국의 경우 가다실 접종자 중 일부가 조기 폐경, 만성 피로 등의 부작용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9~45세에 HPV 백신 접종을 권하는 지침을 내리고 있는 상태다. 백신 성능이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만큼 머크도 부작용 우려보다 특허만료에 훨씬 더 신경 쓰고 있는 상황이다.
머크(MSD)의 매출액은 2020년에 50조원에 불과했지만 2년 뒤인 2022년에는 무려 71조원으로 급증했다. 영업이익은 더 극적으로 증가했다. 2020년의 6조원에서 2022년에는 25조원으로 4배 폭증했다. 이런 실적 급증의 원인은 매출 원투 펀치인 키트루다와 가다실 덕분이다.
머크(MSD)의 치명적인 약점은 뭘까. 바로 원투 펀치인 키트루다와 가다실의 매출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며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2022년 기준 키트루다(35%)와 가다실(12%)의 합산 매출 점유율은 47%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3년 9월 말엔 55%로 폭증했다.
키트루다와 가다실의 매출 점유율 급증은 전 세계 매출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보조요법과 병용요법을 활용한 파이프라인 확장으로 항암제 시장에서 키트루다의 입지가 더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키트루다의 매출은 2030년 이후에도 증가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일부 품목에 매출이 집중되면 나중에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제약 분야처럼 특허기간이 정해져 있는 약품은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
머크의 실적 중에 또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영업이익의 급감이다. 2023년 9월 말 누적 영업이익은 고작 6조원에 불과하다. 전년도 같은 기간의 실적과 비교하면 무려 15조원이 급감했다.
매출이 증가함에도 영업이익이 72% 감소한 이유가 뭘까. 뒤에서 설명할 ‘프로메테우스 바이오사이언스’ 인수 비용 때문이다. 이는 그냥 회계상 수치라서 특별히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키트루다와 가다실의 특허만료는 최대 위기
모든 제약·바이오 회사의 고질적인 고민은 바로 특허 만료다. 미국의 경우 의약품 품목허가를 받은 시점으로부터 최대 14년간만 특허가 유효한 특허기간 상한제를 운영 중이다. 너무 짧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대신 의약품은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특성 때문에 다른 품목의 특허 제도와 달리 약간의 예외를 인정해 준다.
의약품 특허기간에 임상시험이나 심사 지연 등이 발생할 경우 5년 내에서 특허기간을 연장해 주는 예외가 있다. 특허권 설정등록일과 품목허가일이 크게 차이가 나는 걸 감안한 룰이다. 이런 제도는 미국과 한국 등에 공통으로 존재한다. 어쨌든 특허 만료 문제는 신약을 개발한 오리지널사 입장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다.
특허기간이 너무 짧으면 아무도 막대한 자금을 투여해 신약을 개발하지 않으려 한다. 반면 특허기간이 너무 길면 소비자와 공공보험을 담당하는 건강보험공단 같은 정부단체의 비용이 급증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특허 만료 후에는 복제약(제네릭)이나 바이오시밀러의 출시가 가능해지면서 오리지널 약품 가격이 30% 이상 급락하게 된다.
머크(MSD) 역시 특허 만료가 최대 고민이다. 머크에게 2028년은 재앙의 해다. 미국에서 머크(MSD) 매출의 원투 펀치인 키트루다와 가다실의 물질특허가 만료되는 시점이 바로 2028년이다. 키트루다의 물질특허가 끝나면 키트루다 관련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가능성도 있다. 머크(MSD) 입장에서는 재앙적인 상황이다.
머크(MSD)는 이에 대비해 키트루다를 피부 밑에 주사할 수 있는 ‘피하제형 특허’를 2021년 9월에 추가로 출원했다. 만약 이 특허가 등록된다면 독점권이 최대 2036년까지도 확대될 수 있다. 일명 ‘에버그리닝 전략’이다.
에버그리닝이란 의약품 특허를 처음 등록할 때 특허 범위를 넓게 설정한 뒤 2∼3년 간격으로 약의 형태나 투여 방법, 구조 등을 조금씩 바꿔 후속 특허를 지속적으로 추가해 특허권을 방어하는 전략이다. 한국의 경우 연장 가능한 특허권 수가 복수로 허용돼 있어 이 전략이 상당히 유용하다. 하지만 미국은 연장 가능 특허권 수를 1개로 제한해 이런 꼼수 사용에도 제약이 많다.
게다가 미국 정치인들이 이 꼼수마저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 2023년 2월에 미국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 의원을 대표로 하는 서한이 미국 특허청(PTO)에 제출됐다. 내용은 키트루다의 특허 연장 조치에 대한 조사 촉구였다. 이런 전반적인 흐름으로 볼 때 머크(MSD)사의 키트루다 특허 연장 전략이 성공할지는 아무도 예단하기 어렵다.
키트루다 특허 만료 논쟁은 소비자 입장인지 아니면 투자자 입장인지에 따라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특허가 만료돼 약 가격이 내려가야 한다. 반면 주식투자자 입장에서는 특허가 연장돼 머크(MSD)의 매출이 계속 증가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위기 돌파 승부수는 공격적인 M&A
요즘 특허 만료가 임박한 모든 대형 제약사들의 화두는 생존을 위한 M&A다. 결국 돌파구가 M&A밖에 없다는 사실을 주요 제약사 CEO들은 모두 절실히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에 머크가 굵직하게 진행한 M&A로는 어떤 게 있을까.
머크(MSD)의 역대 M&A 중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건 2021년에 인수한 ‘액셀러론 파마(Acceleron Pharma)’ 인수 건이다. 무려 14조원(115억달러)의 자금을 투입했다. 액셀러론 파마의 핵심 파이프라인은 ‘변환성장인자-베타(transforming growth factor-β)’를 활용한 제약 기술이다.
또 다른 빅딜로는 2023년 4월에 진행한 미국 생명공학 업체 ‘프로메테우스 바이오사이언스(Prometheus Bioscience)’ 인수합병이 대표적이다. 이 역시 무려 13조원(108억달러)이라는 거금을 사용했다. 머크는 이 M&A를 통해 궤양성 대장염과 만성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병 치료 관련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면역학 분야에서도 입지를 강화했다.
머크의 공격적인 M&A는 올해에도 이어졌다. 지난 1월에 머크는 면역치료제 개발 전문 제약기업 ‘하푼 테라퓨틱스(Harpoon Therapeutics)’를 8000억원(6억8000만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앞선 대형 M&A들과 비교하면 스몰 딜에 가깝다.
하푼 테라퓨틱스는 면역계의 힘을 이용해 암 환자를 치료하는 ‘T세포 관여자(T-cell engager)’ 개발에 집중해 왔다. 현재는 소세포 폐암 및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후보 약물을 임상시험 중이다. 이번 인수합병으로 머크의 항암제 파이프라인이 한층 다양화됐다는 평가다.
올해 가장 기대되는 신약 2종은?
그렇다면 올해 머크(MSD)의 신약 중 가장 기대되는 건 뭘까. 바로 2021년에 인수한 액셀러론 파마의 기술력으로 만든 폐동맥고혈압(PAH) 치료제 ‘소타터셉트(Sotatercept)’다. 폐동맥고혈압은 폐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에 이상이 생겨 폐동맥 혈압이 상승하는 질환이다. 이 질환은 심장에 부담을 줘 신체 활동이 제한되면서 결국 수명 감소로 이어진다.
미국에서만 약 4만명이 이 질환을 앓고 있다. 국내 환자도 5000명 내외로 추정된다.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5년 사망률은 약 43% 수준으로 알려진다. 치료는 혈관확장제를 사용해 폐동맥압을 낮추는 약물을 투여한다. 하지만 기존 약들은 치료 효과가 낮았다. 많은 환자들이 2~3가지 약물 병용요법에도 불구하고 치료에 실패했다.
새로운 신약인 소타터셉트는 폐혈관 세포 사이의 비정상적 신호를 차단해 질병 진행을 역전시키는 기전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임상 3상 결과 최소한의 활동으로도 숨이 가쁜 중증 폐동맥고혈압 환자에게서 유효성이 확인됐다.
소타터셉트는 진작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혁신치료제 및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양호한 임상 3상 결과에 힘입어 빠르면 2024년 1분기에 FDA의 최종 승인이 완료될 전망이다. 희귀병 치료제라 수요는 제한적이다. 대신 엄청난 고가에 판매될 예정이다.
소타터셉트의 2028년 글로벌 예상매출액은 3조원(26억달러)이다. 머크(MSD)는 이 신약이 키트루다의 특허 만료에 따른 매출 감소액 중 일부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소타터셉트보다 더 큰 매출을 기대하는 신약이 있다. 바로 머크가 2023년 4월에 인수한 프로메테우스 바이오사이언스의 핵심 약물인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 치료제 ‘PRA023’이다. 이미 작년에 임상 2상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임상 3상까지 완료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 또 3상이 실패할 가능성도 제로는 아니다.
업계에서는 최종적인 신약 승인 시 잠재시장 규모를 연 24조원(200억달러)으로 추정한다. 이 막대한 시장에서 머크의 PRA023이 장기적으로 점유율을 20%만 가져와도 연간 약 5조원(40억달러)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엄청난 신약 역시 키트루다 특허 만료 시의 매출 공백을 상당 부분 메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위 2개의 M&A 사례만 살펴봐도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대형 제약사들의 M&A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2024년에 머크(MSD)의 주가는 20% 급등했다. 머크의 주력품목인 키트루다와 가다실의 매출 증대는 향후 몇 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추가로 막강한 신약 2개를 손에 넣은 머크(MSD)의 장기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약·바이오 주식 투자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라면 호재 만발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머크(MSD)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3월호
글로벌 제약사 시총 ‘톱 5’ 애브비 놀라운 파이프라인 통해 ‘톱 3’ 노린다
휴미라 뒤 이을 차세대 건선 치료제 ‘스카이리치’
애브비의 또 다른 야심작 ‘린버크’
애브비 실적은 2022년까지 양호, 2023년은 폭망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글로벌 제약 회사 시가총액 순위 ‘톱 5’에 랭크된 애브비(AbbVie)는 어떤 회사일까. 애보트 래보러토리스(Abbott Laboratories)로부터 분사돼 설립된 미국의 제약 회사다. 다국적 의료기기 및 건강관리 회사였던 애보트 래보러토리스는 1888년에 설립돼 13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2013년에 애보트 래브러토리스가 회사 분할을 결정했다. 이때 연구 기반 중심의 애브비를 별도로 분사시켰다. 애브비는 현재 제약·바이오테크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 애브비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바로 ‘휴미라’다.
‘류머티스 관절염’과 ‘건선’은 불치병?
휴미라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다. 자가면역질환을 쉽게 설명하면 ‘나의 면역계가 나 스스로를 공격하는 병’이다. 자가면역질환은 스스로의 면역계가 적을 발견했을 때 다른 면역세포를 불러모으는 신호전달물질인 사이토카인(cytokine)을 대폭 증가시키는 것으로 발현된다. 휴미라는 사이토카인의 종양괴사인자(TNF)를 억제하는 기전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으로는 류머티스 관절염이 있다. 류머티스 관절염이란 관절을 둘러싸고 있는 활막에 염증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원인 불명의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뼈와 연골 등 주변 조직으로 염증이 번지면서 관절을 손상시키게 된다. 증상으로는 손과 발의 관절이 붓고 아프다.
또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손가락 등의 관절이 뻣뻣해지고 부어서 움직이기 힘든 ‘조조 강직’이 1시간 이상 지속되는 증상이 일반적이다. 펍 메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약 1760만명이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으로는 건선이 있다. 건선에 걸리면 심한 가려움증으로 일상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겪게 된다. 증상이 심한 경우 위의 사진처럼 피부가 심각하게 망가진다. 건선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건선으로 미국에서만 약 800만명, 전 세계적으로는 약 1억2500만명이 고통받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건선 환자 수는 얼마나 될까. 한국인의 건선 유병률은 약 3%, 건선 환자 수는 150만명 내외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치료제가 없어서 ‘스테로이드’를 투여했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는 좋아지더라도 복용을 중단할 경우 증상이 더 악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다행히도 기적의 신약인 휴미라의 등장 이후 건선 치료에도 희망이 생기게 됐다.
전설의 의약품 휴미라, 9년 연속 매출 1위
지금은 휴미라가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건선 외에도 또 다른 자가면역질환인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등 여러 질환의 치료제로 쓰인다. 휴미라(아달리무맙)는 아주 오래전인 2002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사용 승인을 획득한 이후 자가면역질환 분야에서는 전설의 의약품으로 통한다.
소비자(환자) 입장에서의 문제점은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점이다. 미국 기준으로 오리지널 휴미라의 가격은 약 840만원(7000달러) 수준이다. 이 비싼 가격에 힘입어 휴미라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9년 연속 전 세계 매출 1위를 차지하며 초대형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휴미라는 애브비가 자체 개발한 의약품이 아니다. 애브비가 분사되기 전에 모기업이었던 애보트 래보러토리스가 2001년에 독일 바스프의 제약사업부인 크놀을 인수하며 확보한 ‘아달리무맙(adalimumab)’ 물질이 기반이다. 제약 회사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리한 M&A로 대박을 터뜨린 사례가 정말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애브비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인 휴미라는 애브비 매출의 핵심이다. 2020년까지만 해도 애브비의 총 매출 55조원(458억달러)에서 휴미라 매출(24조원, 198억달러)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3%였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휴미라의 매출비중은 낮아지고 있다.
2022년의 애브비 총 매출액은 70조원(581억달러)으로 2년 전보다 27% 급증했다. 반면 휴미라 매출은 25조원(212억달러)로 2년 전 대비 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애비브 전체 매출 중 휴미라가 차지하는 비중도 36%로 낮아졌다.
특정 의약품에 너무 쏠리지 않고 전체적인 매출이 균형을 이룰수록 회사의 안정감은 높아진다. 따라서 휴미라의 매출비중이 낮아지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다. 휴미라의 매출 증가폭이 둔화되는 대신 또 다른 핵심 의약품인 ‘스카이리치’와 ‘린버크’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애브비 최대 고민은 블록버스터 휴미라의 특허 만료
의약품을 개발하는 제약사 입장에서 가장 큰 불만은 의약품의 특허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의약품 품목허가를 받은 시점부터 최대 14년간만 특허가 유효한 특허기간 상한제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애브비는 ‘에버그리닝 전략’을 잘 활용해 미국에서 휴미라의 특허기간을 최대한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에버그리닝 전략이란 의약품 특허를 처음 등록할 때 특허 범위를 넓게 설정한 뒤 2∼3년 간격으로 약의 형태나 투여용법, 구조 등을 조금씩 바꿔 후속 특허를 지속적으로 추가해 특허권을 방어하는 전략이다. 애브비는 미국에서 이 전략을 제대로 활용했다.
애브비의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가 최초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시기는 2002년 말이다. 이후 약 40번의 변경허가를 신청했다. 효능(efficacy)과 관련된 신규 적응증(new indication) 추가와 신규 용법용량(new dosing regimen) 추가 등을 주로 활용했다. 하지만 드디어 2023년에 휴미라의 미국 특허가 만료됐다.
에버그리닝 전략 사용에 제약이 있었던 유럽의 경우 미국보다 훨씬 빠른 2018년에 특허가 만료됐다. 애브비는 유럽 특허 만료 당시 공격적인 소송 전략으로 바이오시밀러 회사들의 제품 출시를 최대한 지연시켰다. 하지만 결국 유럽 시장의 빗장은 다 풀려버렸다. 특허가 만료되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경쟁사만 10곳 넘어
신약이 개발되면 일정 기간 특허권을 부여해 개발회사의 권리를 보호해 준다. 특허기간 종료 후에는 의약품의 주성분을 복제해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처음 개발된 의약품을 ‘오리지널(original)’이라 하고 특허 종료 후 복제된 약을 ‘제네릭(generic)’이라 한다.
화학 제품의 복제약(제네릭)은 오리지널과 비교해 동등성 시험만 통과하면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바이오 의약품은 화학 제품을 합성한 게 아니라 세포를 통해 바이오 의약품을 만드는 거라 동일한 제품을 제네릭처럼 복제할 수 없다.
따라서 동일하다는 의미 대신 비슷하다는 의미의 시밀러(similar)라는 표현을 사용해 ‘바이오시밀러’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바이오시밀러 승인 과정은 복제약(제네릭)보다 까다롭다. 일례로 복제약(제네릭)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필요 없지만 바이오시밀러는 그 효과와 안정성을 검증하는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애브비의 휴미라(아달리무맙) 유럽 특허가 만료되기만을 호시탐탐 기다려온 바이오시밀러 회사들은 특허가 만료되자마자 곧바로 유럽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전쟁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바이오시밀러 회사로 손꼽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인 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도 참전했다.
2018년 10월에 유럽에서 첫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열린 이후 오리지널 휴미라의 시장점유율은 3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유럽 시장을 초기에 진입한 빅3 기업인 암젠, 산도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합계 점유율은 약 50%를 상회하고 있다.
미국 내 휴미라 점유율 아직 굳건, 붕괴는 시간문제
미국에서도 지난해 1월에 미국 암젠(Amgen)의 ‘암제비타(Amjevita)’를 시작으로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독일의 베링거인겔하임과 스위스의 산도스도 앞다퉈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한국 기업들도 분주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하드리마(Hadlima)’와 셀트리온의 ‘유플라이마(Yuflyma)’도 유럽에 이어 미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가장 주목되는 건 가격 정책이다. 제일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암젠의 암제비타는 출시 당시 최대 55% 인하된 제품을 선보였다. 한국 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하드리마의 도매가를 오리지널보다 최대 80% 인하된 가격으로 책정했다.
오리지널 원조 휴미라 역시 손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바이오시밀러가 미국에 진입하자마자 가격을 30% 인하했다. 또 막대한 리베이트 비용도 지불하고 있다. 그 결과 아직까지는 오리지널 휴미라의 점유율 방어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23년 말까지도 미국 ‘아달리무맙’ 시장에서 휴미라의 시장점유율은 95%를 상회했다.
결론적으로 휴미라(아달리무맙) 바이오시밀러의 미국 시장 침투는 유럽과 달리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바이오시밀러가 미국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오리지널 휴미라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점진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 주식투자자들의 관심은 애브비가 휴미라 특허절벽으로 발생한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에 쏠려 있다. 다행히도 애브비에는 휴미라만 있는 게 아니다. 새로운 원투 펀치인 스카이리치와 린버크가 휴미라의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애브비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휴미라 뒤 이을 차세대 건선 치료제 ‘스카이리치’
애브비의 휴미라와 2세대 치료제인 스카이리치는 둘 다 건선 치료에 효과가 좋다. 건선은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이다. 건선에 걸리면 심한 가려움증으로 일상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겪게 된다. 증상이 심한 경우 피부가 심각하게 망가진다.
건선 질환은 ‘염증 유발성 Th17 세포’가 인터루킨이나 종양괴사인자(TNF)와 같은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되도록 하면서 발병한다. 기존 1세대 치료제인 휴미라는 이 중 종양괴사인자(TNF)를 억제하는 기전으로 치료 효과를 보였다. 휴미라는 지난 15년간 건선 질환의 주요 치료약물로 사용돼 왔다.
반면 최근에는 2세대 치료제인 스카이리치와 같은 인터루킨 억제제가 대세로 통한다. 그런데 인터루킨 억제제는 이미 노바티스의 ‘코센틱스’, 얀센의 ‘트렘피어’와 ‘스텔라라’, 릴리의 ‘탈츠’가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뒤늦게 시장에 등장한 애브비의 스카이리치가 가장 효능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카이리치는 성능 외에 편의성까지 뛰어나다. 기존 인터루킨 억제제인 코센틱스와 탈츠는 4주 간격, 스텔라라와 트렘피어는 8주 간격으로 약물을 투여한다. 이에 비해 스카이리치는 12주 간격으로 약물을 투여한다. 그럼에도 임상시험에서는 더 뛰어난 결과를 보였다.
건선 치료는 과거의 스테로이드 치료에서 벗어나 생물학적 제제를 통한 치료로 발전한 지 오래다. 따라서 이제 건선 치료의 가이드라인은 ‘거의 깨끗한 피부(PASI 90)로의 개선’을 뛰어넘어 ‘완전히 깨끗한 피부로의 개선(PASI 100)’이 치료 목표가 됐다.
이 ‘완전히 깨끗한 피부’라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은 의약품이 바로 애브비의 스카이리치다. 스카이리치는 인터루킨-23(IL-23)을 억제하는 생물학제제 신약이다. 스카이리치(성분명 리산키주맙)는 중증 건선 치료제로 FDA의 승인을 받았다.
스카이리치가 뜨거운 반응을 얻는 이유는 건선 환자들에게는 꿈과 같은 ‘완전히 깨끗한 피부(PASI 100)’로 개선되는 효과가 탁월했기 때문이다. 임상시험 결과 치료 52주 차인 1년 후에 스카이리치 투여 환자의 86%가 ‘거의 깨끗한 피부(PASI 90)로의 개선’을 달성했다. 또 58%가 ‘완전히 깨끗한 피부로의 개선(PASI 100)’을 이뤄냈다.
스카이리치는 건선 치료 외에도 향후 여러 가지 면역질환에 대한 적응증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스카이리치의 매출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애브비의 또 다른 야심작 ‘린버크’
애브비의 또 다른 야심작은 바로 ‘야누스키나아제(JAK) 억제제’인 린버크다. 휴미라의 뒤를 이어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에서 강력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임상시험 결과는 기존의 휴미라보다 높은 효능이 입증됐다. 추가로 건선성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궤양성 대장염, 아토피 피부염 등으로 적응증을 확장하고 있다.
문제는 야누스키나아제(JAK) 억제제의 안정성 문제다. 2021년에 FDA는 애브비의 린버크와 화이자의 젤잔즈 등 JAK 억제제가 ‘심혈관질환, 암질환, 혈전증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문을 제품설명에 추가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후 계속된 임상을 통해 안정성 우려는 많이 해소된 상태다.
특히 린버크가 강력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적응증은 바로 아토피 피부염이다. 현재 글로벌 아토피 피부염 분야에서 압도적인 글로벌 1위는 사노피의 듀피젠트(성분명 두필루맙)다. 이 시장에 린버크(성분명 유파다시티닙)가 도전장을 냈다. 아직 약효 부분에서 어떤 게 확실하게 더 우위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이를 명확히 판단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어쨌든 린버크의 점유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건 주목할 부분이다.
그런데 건선과 아토피 피부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건선은 자가면역질환이다. 자신의 면역세포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여러 염증성 물질을 분비해 각질 세포가 증식된다. 또 유전, 피부 자극, 건조한 환경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주요 증상은 피부가 붉어지는 홍반이다. 건선으로 인한 가려움증은 아토피 피부염보다는 덜하다. 가려움증이 없는 경우도 있다.
주로 두피나 팔꿈치, 무릎 등 자극을 많이 받는 부위에 잘 생긴다. 전신 염증성 질환이라서 피부 외에도 관절, 심혈관, 손톱 등 다양한 부위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건선 환자는 관절통과 심근경색 발생률도 높다. 건선은 한번 걸리면 10~20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많고 일시적으로 좋아지더라도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아토피 피부염은 주로 유아기나 소아기에 시작되는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이다. 환자의 30% 이상이 9세 이하 때 발병한다. 가려움증이 심하고 피부건조증과 습진을 동반한다. 눈과 귀 주위, 무릎, 팔꿈치의 접힌 부위에서 주로 발생한다.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질환으로 유명하다. 일부 유전적인 영향도 있다.
애브비 실적은 2022년까지 양호, 2023년은 폭망
그렇다면 애브비의 새로운 원투 펀치가 될 스카이리치와 린버크의 매출액은 얼마나 될까. 2022년 기준으로 휴미라의 매출액이 25조원인 데 비해 스카이리치 매출액은 6조원, 린버크의 매출액은 3조원에 그쳤다. 아직은 휴미라에 비해 많이 부족해 보인다.
애브비는 주력 의약품인 휴미라, 스카이리치, 린버크 같은 면역학 외에도 종양학, 미용학, 신경과학 및 안과 치료 전반에 걸쳐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2020년에는 전체 매출액 중 휴미라의 비중이 44%였다. 하지만 2022년에는 36%로 낮아졌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애브비는 2022년까지 꾸준한 매출 증가세를 보여 왔다. 2020년에 55조원이었던 매출액은 2022년에 15조원 증가한 70조원까지 급증했다. 2년 전보다 27% 상승한 수치다. 영업이익도 2020년의 19조원에서 2022년에는 28조원으로 46% 급증하는 호실적을 보였다.
2022년 전체 매출액 70조원 중에서 면역학 치료제가 50%, 혈액암 치료제가 7%, 보톡스가 9%를 차지했다. 기타 다른 제품 포트폴리오도 34%나 된다. 애브비가 특정 섹터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고르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대비 2022년의 개별 제품 매출액 증감률을 살펴보면 휴미라는 7%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2세대 생물학적 제제인 스카이리치는 매출이 225% 급증했다. 또 야누스키나아제(JAK) 억제제인 린버크 매출도 245% 급증한 점이 눈에 띈다. 둘 다 휴미라를 대신해서 향후 큰 폭의 매출 성장을 이뤄낼 애브비의 핵심 의약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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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브비의 지난해 실적은 주요 투자은행들의 예상대로 부진했다. 2023년 9월 말까지 9개월간의 애브비 누적매출액은 48조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7% 감소한 수치다. 매출액이 감소한 가장 큰 원인은 2023년에 미국 특허가 만료된 휴미라 탓이다. 휴미라의 9개월 누적매출액은 전년보다 27% 감소한 13조원에 그쳤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아직 미국 내에서 오리지널 휴미라의 시장점유율은 크게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전히 95%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점유율 방어에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오리지널 휴미라가 바이오시밀러 제품들과의 경쟁을 위해 가격을 30% 인하했기 때문이다.
가격 인하는 고스란히 휴미라의 매출액 감소로 돌아왔다. 또 같은 기간 애브비의 영업이익도 12조원 달성에 그쳤다. 전년도의 19조원과 비교하면 37% 감소한 수치다. 이 역시 휴미라의 가격 인하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런 휴미라의 부진을 애브비의 차세대 의약품인 스카이리치와 린버크가 각각 전년보다 50%, 56% 증가한 매출로 일정 부분 방어했다. 또 미용과 관련된 보톡스 화장품과 보톡스 치료제가 각각 3조원씩의 매출을 기록하며 포트폴리오의 한 축을 지켜냈다. 애브비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IRA’에 혈액암 치료제 ‘임브루비카’ 타격
그런데 휴미라 외에도 매출액이 감소한 치료제가 또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혈액암 치료제인 ‘임브루비카(Imbruvica)’다. 2년 전보다 14% 감소한 5조원의 부진한 매출을 기록했다. 임브루비카는 얀센과 공동으로 개발한 의약품이다. 안타까운 것은 임브루비카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의해 공공보험 메디케어에 적용할 1차 약가 인하 의약품 10개에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이 10개 의약품은 미국 건강보험서비스센터(CMS)와 2년간의 협상을 통해 2026년부터는 메디케어에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2026년부터 인브루비카는 판매가격 인하로 인한 마진 감소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지금도 줄어들고 있는 매출액이 더 줄어들게 된다는 뜻이다.
애브비, 회심의 승부수는 결국 M&A
애브비의 고민은 빠른 매출 하락이 예상되는 휴미라의 공백을 차세대 의약품인 스카이리치와 린버크가 얼마나 빠르게 메울 수 있느냐다. 관련 업계에서는 2028년에 스카이리치와 린버크의 합산매출액이 휴미라의 역대 최고매출액인 25조원(210억달러)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주식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2028년은 아직 멀고도 멀다. 또 매출액 전망은 그저 전망일 뿐이다. 반드시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위기를 맞은 애브비 입장에서도 생존을 위해서는 인수합병(M&A)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
애브비는 이미 5년 전인 2019년에 보톡스로 유명한 아일랜드 제약 회사 앨러간(Allergan)을 무려 76조원(630억달러)이나 주고 인수한 경험이 있다. 피부미용의 미래 성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 당시는 너무 비싼 가격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현재 분위기는 무난하다. 그리고 2023년에도 다시 M&A 본능을 발휘해 2건의 인수를 성공시켰다.
애브비는 2023년 10월에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 파트너였던 미토키닌을 8000억원(6억5500만달러)에 인수했다. 하지만 이건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1개월 뒤인 11월에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력을 갖춘 이뮤노젠을 무려 12조원(101억달러)에 전격 인수했다.
이뮤노젠은 치료가 어려운 난소암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신약 ‘엘라히어’를 개발한 회사다. 이 치료제는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항체약물접합체(ADC)다. 2022년에 미국 FDA에서 신속 심사 약물로 지정받았다. 현재는 3상이 진행 중인데 만약 최종 승인된다면 매년 수조원대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요즘 대세는 항체약물접합체(ADC)다. ADC가 시장의 큰 관심을 받는 이유는 ‘약물의 작용 원리’ 때문이다. ADC는 미사일(항체)이 표적(암세포)에 정확하게 날아가 탄두(약물)가 터지는 원리다. 항암제의 고질적인 부작용으로 지적되던 정상 세포 손상을 최소화한다. 당연히 치료 효과가 높다.
애브비는 이번 이뮤노젠 인수를 통해 휴미라 매출 감소를 방어할 또 하나의 무기를 손에 쥔 셈이다. 덤으로 항암제 파이프라인 또한 더욱 다각화됐다. 애브비는 이렇게 주력 의약품인 휴미라, 스카이리치, 린버크 같은 면역학 제제 외에도 종양학, 미용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균형 있게 갖춰 나가고 있다.
애브비는 현재 제약 회사 시가총액 순위 5위를 기록 중이다. 애브비가 보유 중인 다양한 파이프라인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애브비의 시가총액은 3위 진입까지도 노려볼 만하다. 하지만 당장은 휴미라의 특허 만료로 인해 2024년도에도 매출 부진이 걱정되는 게 현실이다.
단순하게 2024년도의 예상 매출액으로만 따져보면 애브비의 투자 매력도는 다소 낮아 보인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미래 성장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 또 애브비는 매년 4%가 넘는 배당금을 지급해 귀족 배당주로도 인기가 많다. 애브비가 보유한 파이프라인의 미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라면 애브비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2월호
불치병 ‘암’이 당신을 노린다…신약 ADC가 해결사 될까?
늙으면 죽어야지? 현실은 더 살기 원해도 암이 문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특허 만료에 전 세계 주목
혜성같이 나타난 항체약물접합체(ADC)로 암 정복 기대감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살고 죽음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과거보다 하늘의 뜻이 더 너그러워진 걸까. 한국인과 전 세계인의 기대수명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이를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제약·의료·바이오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 덕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 더 합리적이다. 의료기술 발전은 인간의 수명 연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이제 사람의 수명을 돈으로도 살 수 있는 시대가 온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핵심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치료약이 존재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스티브 잡스는 2조원이 넘는 막대한 돈을 가진 거부였다. 하지만 결국 2011년 10월 췌장암으로 5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반면 과거에 불치병이었던 수많은 질병들이 혁신적인 신약 개발로 극복된 사례도 많다.
한국인 기대수명, 지난 52년간 20년 늘어난 82.7세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얼마일까. 통계청의 ‘2022년 생명표’ 자료에 따르면 1970년의 한국 남자 기대수명은 고작 58.7세였다. 그런데 51년 뒤인 2021년에는 80.6세로 무려 21.9세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 한국 여자의 기대수명은 65.8세에서 86.6세로 20.8세가 높아졌다. 남녀 전체로는 62.3세에서 83.6세로 21.3세가 증가했다.
사실 기대수명보다 더 주목되는 건 건강수명이다. 2022년 출생아의 기대수명(82.7세) 중 건강수명(유병기간을 제외)은 고작 65.8년에 불과했다. 남자는 65.1년, 여자는 66.6년이다. 결국 기대수명 중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기간의 비율이 남자는 81.5%, 여자는 77.7%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물론 이건 단지 통계일 뿐이다. 실제로는 70세 넘어서도 정정한 사람들이 주위에 넘쳐난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는?
2022년에 한국인 사망자 수는 얼마나 될까. 총 37만3000명이다. 전년 대비 17%(5만5000명) 급증한 수치다. 출생인구 24만9000명과 비교해 보면 사망자 수가 12만4000명 더 많은 셈이다. 연간 기준 역대 최대 사망자 수다. 평년보다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기존에 없던 병인 ‘코로나19’ 때문이다.
그렇다면 2022년에 한국인들은 주로 어떤 병으로 사망했을까.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 압도적인 1위는 암이다. 전체 사망자 37만3000명 중 암 사망자는 무려 8만3000명이다. 전체 사망원인의 22.4%를 차지한다. 사망원인 중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암 외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코로나19’ 전염병이다. 1년 만에 순위가 9계단 뛰어올라 한국인 사망원인 3위를 차지했다. 꾸준히 5위를 지켜왔던 ‘자살’은 다행히도 6위로 내려앉았다. 이제 사망원인을 연령대별로 세분화해 살펴보자. 50대와 80대의 사망원인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50대부터 80대 이상까지는 모두 나이에 상관없이 사망원인 1위가 암이다. 결국 한국인의 장수 여부는 암에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에 달렸다. 혹 암에 걸렸더라도 얼마나 빨리 발견해 좋은 치료를 받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에 생사가 달렸다. 안타깝게도 50대 사망원인 2위와 60대 사망원인 5위가 자살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1년에 암에 걸리는 사람은 몇 명?
한국인이 평생 암에 걸릴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 정답은 38.1%다. 남자는 39.1%, 여자는 36%다. 남자가 여자보다 3.1%p 높다. 그렇다면 연간 암에 걸리는 사람은 총 몇 명이나 될까. 2021년 기준 27만8000명이다. 전년보다 10.8% 급증했다. 남자가 14만4000명, 여자가 13만4000명을 기록했다.
한국 남자의 암 발생 순위를 살펴보면 1위는 폐암이다. 2위는 위암, 3위는 대장암, 4위는 전립선암이다. 위암과 대장암, 전립선암의 5년 생존율은 각각 79%, 75%, 96%다. 따라서 조기에 발견돼 치료만 잘 진행되면 생명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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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암 발생순위 1위인 폐암은 다르다. 5년 생존율이 고작 32%다. 따라서 한국 남자들은 폐암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당장 담배를 끊어야 하는 이유다. 5위인 간암 생존율도 40%에 불과하다. 당장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다.
최악은 암 발생 순위 8위인 췌장암이다. 남자의 췌장암 5년 생존율은 15%에 불과하다. 물론 노력한다고 암을 100%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암 발생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사례가 많다. 그래도 췌장암을 가장 조심할 필요가 있다.
여자 암 발생 순위는 1위 유방암, 2위 갑상선암, 3위 대장암, 4위 폐암 순이다. 1위와 2위를 차지한 유방암과 갑상선암의 5년 생존율은 각각 94%와 100%에 달한다. 거의 완벽하게 치료가 가능한 암이다. 3위인 대장암의 5년 생존율도 73%로 치료 확률이 꽤 높다.
따라서 여자의 경우도 5년 생존율이 52%에 불과한 폐암과 17%에 불과한 췌장암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세계적인 거부 스티브 잡스도 결국 췌장암의 벽을 넘지 못했다. 어쨌든 다행히도 한국 전체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무려 72%에 달한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봐도 압도적으로 높은 생존율이다. 한국 사람들은 국내 의료기술 발전 덕분에 수명 연장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불치병이었던 암을 치료하는 항암제는 어떤 단계를 거쳐서 발전해 왔을까.
항암제 세대별 발전 3단계
‘1세대 화학항암제’는 독성물질을 몸에 넣어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이다. 이 항암제는 정상세포도 함께 공격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암 환자가 화학항암제로 치료받으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갑자기 구토를 하는 등 건강과 일상이 동시에 무너지는 단점이 있다.
‘2세대 표적항암제’는 정상세포는 놔두고 암세포만 찾아서 공격하도록 개발한 항암제다. 암세포가 증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정 표적인자를 찾아서 공격한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1999년 개발한 글리벡(이매티닙 성분)이 최초의 표적항암제로 인식되고 있다.
표적항암제는 신체적인 부작용이 적은 게 장점이다. 문제는 장기간 사용 시 암세포가 표적항암제의 적용 원리에 적응해 공격당하지 않도록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돌연변이에는 항암제가 작용하지 않아 장기간 사용하면 내성이 생기는 게 단점이다.
‘3세대 면역항암제’는 면역세포를 이용한 치료제를 말한다. 사람 몸에 원래부터 있던 면역세포가 가장 강력한 치료제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사람 몸속 면역세포는 비정상적인 세포가 생기면 공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암세포도 면역세포를 공격한다는 점이다.
현재 암 환자 치료에 쓰이고 있는 면역항암제는 대부분 ‘면역관문억제제’로 통한다. 이 항암제를 설명하려면 먼저 ‘T세포’를 알아야 한다. 인체에 침입한 바이러스나 균, 암세포 등을 공격하는 면역세포 중 대표적인 게 바로 T세포다.
그런데 T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것도 문제가 되므로 적절히 제동장치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바로 ‘PD-1’이다. T세포 표면에는 PD-1이 붙어 있다. 그리고 암세포 표면에는 ‘PD-L1’이라는 물질이 붙어 있다.
문제는 T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PD-1이라는 단백질이 암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PD-L1 단백질과 결합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작용하고 암세포는 T세포를 피해 계속 증식한다. 그런데 면역관문억제제를 투여하면 이런 결합을 억제하므로 T세포가 정상적으로 암세포를 공격해 파괴한다.
PD-1과 PD-L1의 결합을 막는 기전을 보여주는 게 면역관문억제제로,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T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PD-1과 결합해 억제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암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PD-L1과 결합해 억제하는 방식이다. 글로벌 면역항암제 1위인 머크(MSD)사의 ‘키트루다’가 대표적이다.
요즘 항암치료제 시장에서 유행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병용투약’이다. 쉽게 말해 A물질과 B물질을 같이 투여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2023년에는 병용 임상 방식이 거의 90%에 육박하고 있다. 항체약물접합체(ADC)나 이중항체 방식의 임상이 대표적이다.
놀라운 신약 ADC, M&A 쟁탈전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암 치료 약물은 ‘항체약물접합체(ADC)’이다. 이 치료제는 3가지 구성요소(항체, 링커, 세포독성약물)로 이뤄진 접합체다. 암세포 표면의 특정 표적 항원에 결합하는 항체(Antibody)에 세포독성항암제(화학항암제)를 링커(linker)로 결합시킨 약물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ADC는 미사일(항체)이 표적(암세포)에 정확하게 날아가 탄두(약물)가 터지는 원리다. 항암제의 고질적인 부작용으로 지적되던 정상세포 손상을 최소화한다. 당연히 치료 효과가 높다. 암세포만 정확히 타격하니 기존 항암제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신약이라 할 수 있다.
ADC의 대박 가능성을 미국의 화이자, 머크, 애브비 같은 대형 글로벌 제약사들은 진작에 알아봤다. 이들이 2023년에 앞다퉈 ADC 관련 제약사들을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인수(M&A)해 화제가 됐다.
화이자는 지난해 3월 ADC 전문기업 ‘시젠’을 무려 53조원(439억달러)의 거금을 들여 인수했다. 글로벌 면역항암제 매출 1위인 키트루다를 보유 중인 머크 역시 같은 해 10월에 일본 기업 ‘다이찌산쿄’와 ADC 3종에 대한 글로벌 개발 및 상업화(일본 제외) 계약을 26조원(220억달러)에 체결했다. 이에 질세라 애브비도 2023년 11월에 난소암 치료 ADC 항암제를 개발 중인 ‘이뮤노젠’을 12조원(101억달러)에 전격 인수했다.
최근 ADC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ADC 약물에 대해서는 무더기로 승인을 내주고 있는 게 최근의 트렌드다.
ADC의 대표 약물은 전 세계 매출 1위를 기록 중인 ‘엔허투’(다이찌산쿄+아스트라제네카의 ADC치료제) 항암제다. 이 치료제의 놀라운 유방암 3상 임상 결과 발표 당시 발표 현장은 기립박수로 뜨거웠다. 엔허투는 폭발적인 매출 성장으로 시장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전 세계 항암치료제 시장 규모는?
의학, 제약, 바이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은 여전히 주요한 사망원인이다. 전 세계 사망자 6명 중 1명은 암으로 사망한다. 그런데 한국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에서 알 수 있듯이 암 종류별로 생존율 편차가 큰 편이다. 암 정복을 위해 전 세계 제약·바이오 회사들은 오늘도 치열하게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항암치료제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 바이오 스페이스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202조원(1557억달러) 규모다. 향후에도 연평균 6% 이상 성장해 2030년에는 시장 규모가 354조원(27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암 치료비는 도대체 얼마?
암 치료제는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고가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에서 암 보험이 대유행이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렵게 치료제를 개발한 제약사들 입장에서는 최대한 약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제약사 뜻이 100% 관철되기는 어렵다. ‘건강보험 급여 선정’은 비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을 선별 등재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한국의 건강보험관리공단과 같은 각국의 공공기관들이 해당 약에 건강보험 급여를 지정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일반 소비자들은 해당 약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매출이 높은 면역항암제는 미국 머크가 개발한 ‘키트루다’다. 비소세포폐암, 흑색종, 요로상피암, 호지킨림프종 등 다양한 암에서 치료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2022년에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로 급여가 확대되면서 매출이 큰 폭 증가했다.
그런데 키트루다 등의 면역항암제 한계점 중 하나는 반응률이다. 보통 면역항암제 투여자 10명 중 2~4명 정도만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투여자가 다 약효를 보는 건 아니다. 이런 경우 제약사와의 ‘위험분담 계약’ 조건에 따라 반응 있는 환자만 투약을 지속하고 반응 없는 환자의 약값은 일부 환급하는 방식도 있다.
키트루다를 비급여로 투약하려면 연간 약 7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이것도 많이 낮아진 가격이다. 다행히도 한국에서는 2022년부터 일부 적응증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돼 실제 비용은 20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보험 급여에 해당되지 않는 암의 종류도 많다.
키트루다는 한국에서 더 많은 암 적응증 급여 확대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워낙 고가의 약물이라 한국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입장에서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확실한 치료 효과가 명백하지 않은 한 급여 확대를 결정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여전히 요건이 안 맞아 비급여로 키트루다를 투여하는 암 환자도 많다. 환자 입장에서는 생명이 걸린 문제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이다. 급여 적용이 안 된다고 키트루다를 포기하는 선택은 쉽지 않다.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세계 최강이다. 현재 웬만한 암 치료비 중 상당 금액은 건강보험공단이 급여비를 통해 지원해 주고 있다. 하지만 암 환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국민의 생명과 정부의 재정 한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과제다.
키트루다 특허는 과연 연장될까?
글로벌 제약사 머크는 키트루다 면역항암치료제 하나로 전 세계에서 엄청난 매출을 일으키며 떼돈을 벌고 있다. 앞으로도 매출이 지속적으로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머크에게도 고민이 있다. 바로 특허 만료다. 미국에서 키트루다의 물질특허 만료 시점은 2028년이다.
키트루다의 물질특허가 만료되면 키트루다 관련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가능성도 있다. 현실화되면 살인적인 키트루다 가격이 뚝 떨어지게 된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이나 암 환자들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머크 입장에서는 재앙적인 상황이다. 머크는 이에 대비해 키트루다를 피부 밑에 주사할 수 있는 ‘피하제형 특허’를 2021년 9월에 추가 출원했다. 만약 이 특허가 등록된다면 독점권이 최대 2036년까지도 확대될 수 있다. 일명 ‘에버그리닝’ 전략이다.
에버그리닝이란 의약품 특허를 처음 등록할 때 특허 범위를 넓게 설정한 뒤 2∼3년 간격으로 약의 형태나 구조를 조금씩 바꿔 후속 특허를 지속적으로 추가함으로써 특허권을 방어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미국 정치인들이 이를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 2023년 2월에 미국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대표로 하는 서한이 미국 특허청(PTO)에 제출됐다. 내용은 키트루다의 특허 연장 조치에 대한 조사 촉구였다. 이런 전반적인 흐름으로 볼 때 머크의 키트루다 특허 연장 전략이 성공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키트루다 특허 만료 논쟁은 소비자 입장인지 아니면 투자자 입장인지에 따라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특허가 만료돼 약 가격이 내려가야 한다. 반면 주식 투자자 입장에서는 특허가 연장돼 머크의 매출이 계속 증가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여전히 항암치료제 시장은 앞으로도 수십 년간 급성장할 유망 섹터다. 전 세계 사람 6명 중 1명은 결국 암에 걸린다. 만약 본인의 노후 의료비를 투자를 통해 벌어놓으려는 사람이라면 글로벌 항암치료제 기업들에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2월호
노령화·진료비 급증은 또 다른 기회? 헬스케어·제약·바이오 폭발적 성장 예고
직장인 건강+장기요양보험료 8%...아직은 낼 만해
70대·80대 의료비 압도적으로 높아
은퇴자 재취업 사유 1위는 건강보험료...왜?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직장인은 건강보험료를 얼마나 내야 할까. 첫 입사 때부터 퇴직하는 날까지 월급의 약 7.1%를 매월 건강보험료로 납부하게 된다. 다행히도 근로자와 사업주가 절반씩 부담한다. 따라서 직장인의 건강보험료 실제 부담률은 3.5% 수준이다. 월급이 500만원인 직장인이라면 약 17만5000원이다.
직장인 건강보험료? 아직은 낼 만해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별도로 장기요양보험료도 내야 한다. 장기요양보험료율은 소득의 약 0.9%(건강보험료의 약 13%) 수준이다. 다행히 장기요양보험료도 근로자와 사업주가 절반씩 부담한다. 따라서 실제 부담률은 0.45%다.
결론적으로 월급이 500만원인 직장인의 실제 건강보험료 부담률은 약 8%(건강보험료율+장기요양보험료율)의 절반인 4%다. 금액으로는 월 20만원이다. 그렇다면 초고소득자는 건강보험료를 최대 얼마까지 납부할까. 최대 상한액은 월 958만원(건강보험료+장기요양보험료)이다.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보다 많다.
그래도 직장인 근로자라면 건강보험료를 사업주와 절반씩 나눠 내니 실제 최대 부담금은 그 절반인 479만원이다. 이 정도 보험료를 내려면 도대체 급여가 얼마일까. 월급으로는 1억2000만원, 연봉으로는 14억원이 훌쩍 넘는다. 이 연봉 구간을 초과하는 경우 추가적으로 더 내지는 않는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이런 사람은 흔치 않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서는 ‘투잡’이 대세다. 만약 직장에서 받는 월급 외에 사업, 이자, 배당, 임대소득 등의 부수입이 연간 2000만원을 넘을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는 ‘소득월액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보험료는 연간 2000만원 초과분에 대해 보험료율 7.09%를 곱해서 산정된다.
직장에서 받는 월급으로 보험료를 계산하는 ‘보수월액 보험료’는 직장가입자와 사업주가 반반씩 부담한다. 반면 투잡 등으로 발생하는 ‘소득월액 건강보험료’는 직장인이 100% 보험료를 부담한다는 점도 주의할 사항이다.
결국 건강보험료는 직장에서 받는 월급이든 투잡으로 버는 소득이든 많이 벌수록 보험료도 많이 납부하도록 촘촘히 설계돼 있는 게 특징이다.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돼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은퇴 후 직업이 없거나 소득이 적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 배우자나 자녀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 ‘피부양자’란 직장가입자에 의해 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를 가리킨다. 당연히 소득도 적고 재산도 적어야 한다. 딱 이 케이스에 해당돼야만 보험료 걱정을 덜어낼 수 있다.
먼저 피부양자 소득 요건을 살펴보자.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당연히 사업소득이 없어야 한다. 그러니 함부로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사업자로 등록해 사업소득이 1원이라도 발생한다면 그 순간부터 피부양자 자격은 상실된다.
따라서 은퇴 후에 혹시 자영업이라도 하게 된다면 지역가입자로 분류돼 건강보험료 폭탄을 맞게 될 수 있다. 사업주와 반반 부담하던 직장인 시절과 달리 지역가입자는 소득에 대한 본인의 건강보험료를 100% 부담한다. 은퇴 후에 오히려 건강보험료가 더 늘었다는 아우성이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신히 소득 요건을 충족했더라도 재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탈락이다.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 재산 요건은 좀 더 복잡하다. 재산세 과세표준이 5억4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사업·금융·연금·근로기타소득 등을 포함한 연간 소득이 2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재산세 과세표준이 5억4000만~9억원 사이인 경우 연간 소득이 1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이 요건을 충족 못하면 그때부터는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되고 지역가입자로 분류돼 건강보험료 폭탄을 맞게 된다. 결국 은퇴 후 사업소득과 직업이 없더라도 재산세 과세표준이 9억원을 초과하면 건강보험료 부과 대상이다.
은퇴자의 건강보험료는?
재산세 과세표준이 9억원을 넘어 피부양자에서 탈락해 지역가입자로 분류되면 건강보험료를 얼마나 내게 될까. 오히려 현직에서 월급을 받을 때보다 건강보험료가 더 늘어나는 경우도 흔하다. 과거에는 ‘재산보험료+자동차보험료’를 합산해 보험료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재산보험료는 ‘재산세 과세표준’에 5000만원을 기본공제 후 60개 등급으로 환산해 보험료를 부과한다. 또 ‘4000만원 이상의 자동차’를 보유한 세대는 배기량과 사용 연수에 따라 7개 등급으로 환산해 보험료를 부과한다.
이러다 보니 소득이 없는 사람들의 건강보험료가 더 많이 부과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당연히 은퇴자들의 불만이 거셌다. 이에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난 1월에 당정협의회를 열고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보험료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재산보험료 산정 시 재산세 과세표준 기본공제액을 기존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확대했다. 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자동차 보유 시에 매기던 보험료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지역가입자의 부담이 좀 줄어들게 된다. 물론 여전히 근로소득자보다는 실부담금액이 큰 편이다.
제도 변경에 따라 약 333만 가구의 건강보험료가 월평균 2만5000원, 연간으로는 30만원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대신 건강보험료 전체 수입은 연간 9831억원이 줄어들 예정이다. 이 줄어든 보험료는 어떻게 메우게 될까. 보건복지부는 조만간 지출 효율화 방안을 담은 ‘건강보험종합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런데 만 65세 이상 노년층도 건강보험료를 내야 할까. 소득이 있거나 재산이 많다면 당연히 내야 한다. 단 재산 수준에 따라 일부 할인은 가능하다. 또 만 65세 이상이며 재산과표가 1억8000만원 미만인 경우 형제·자매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도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피부양자’ 줄이려는 진짜 이유는?
직장인 기준으로 건강보험료+장기요양보험료가 월급의 8%면 아직은 낼 만한 수준의 보험료다. 그런데 한국의 건강보험료는 미래에도 이 정도로 낮은 수준이 계속 유지될까. 절대 그럴 수 없다. 한국 건강보험료의 급격한 인상은 이미 정해진 미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임승차자를 대거 양산하는 ‘피부양자’ 제도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는 피부양자는 얼마나 될까. 2022년 말 기준 전체 가입자 5141만명 중 33.1%인 1704만명이다. 전 국민의 3분의 1이다. 그나마 많이 줄어들어 이 정도다.
건강보험공단 입장에서는 걱정이 태산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건강보험료 파국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점진적으로 피부양자를 줄여나가는 ‘피부양자 인정기준 개선방안’을 준비 중이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형제·자매나 조부모 등을 피부양자에서 탈락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방안이 실제로 발표되면 혜택이 박탈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건강보험료 재정 고갈 우려는 정부의 엄살일까 아니면 정말 어려운 걸까. 그 진실을 파헤쳐 보자.
만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진료비 급증
한국 사람의 생애주기를 살펴보면 노년층에 진입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병원 진료비가 급증하게 된다. 통계청의 ‘2022년 생애단계별 행정통계’에 따르면 비교적 젊은 층인 만 30~34세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117만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70세가 넘어가면서 의료비가 본격적으로 급증한다. 70~74세의 연간 진료비는 무려 485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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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수명을 뛰어넘는 85세 이상 노년층의 연간 진료비는 30대의 6배가 넘는 711만원이다. 월평균 59만원꼴이다. 85세 이상 노인 중에 월평균 59만원의 병원비를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만약 노년층에게 이 막대한 의료비를 모두 스스로 부담하라고 한다면 상당수는 병원비 때문에 노후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도 한국의 건강보험 체계는 전 세계 최강이다. 한국인은 젊었을 때 꾸준히 납입했던 건강보험료의 혜택을 노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받게 된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총 진료비 중 약 25%만 본인이 부담한다. 진료비 금액이 유독 높은 85세 이상 노년층의 경우 월 59만원의 진료비가 14만7000원으로 확 줄어드는 셈이다. 노인들의 경우 추가적으로 ‘노인 외래 정액제’ 등 다양한 혜택이 있어 부담은 더 줄어든다.
한국 건보제도는 세계 최강...문제는 급격한 노령화
‘2022년도 건강보험 주요 통계’에 따르면 2022년에 건강보험 환자 진료에 소요된 비용은 102조원을 기록했다. 이 중 개인부담금은 총 진료비의 약 25%인 26조원이다. 나머지 75%에 해당하는 77조원을 건강보험공단이 급여비를 통해 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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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지속 가능할까. 문제는 급격한 고령화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현재 938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7%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미 노인 인구의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43%인 44조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8.6% 증가한 수치다. 향후에는 더 가파른 진료비 급증이 예상된다.
인간의 수명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만약 죽을 병에 걸린 사람에게 전 재산의 절반을 주면 완치되도록 해주겠다는 의사가 나타났다고 가정해 보자. 이 제안을 거부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의료 분야의 시장성이 향후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이유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수명과 관련 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6세다. 미래를 예측할 때 가장 정확한 건 나이다. 지금 50살인 사람은 10년 뒤에 반드시 60살이 된다. 또 지금 60살인 사람은 10년 뒤에 반드시 70살이 된다. 흥미로운 건 한국의 경우 구매력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60년대생과 70년대생의 인구 수가 가장 많다는 점이다.
1960년대생의 누적 출생아 수는 1054만명이다. 그 뒤를 이어 1970년대생의 누적 출생아 수가 898만명이다. 이 2개 집단의 숫자만 합쳐도 2000만명에 육박한다.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의 말처럼 “인간은 장기적으로 볼 때 모두 죽는다.”
하지만 이들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먼저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런데 위 표를 찬찬히 살펴보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인구 구조가 완전히 붕괴됐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출생아 수 합계가 1054만명인 데 비해 2000년대 출생아 수 합계는 497만명에 불과하다. 1970년대생이 898만명인 데 비해 2010년대 출생아 수 합계는 413만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를 통해 2000년대생이 2배가 넘는 1960년대생을 부양하고 2010년대생이 2배가 넘는 1970년대생을 부양하는 건강보험료 구조가 과연 미래에도 유지될 수 있을까.
의료비 ‘소득구간별 본인부담 상한제’란?
‘의료비 소득구간별 본인부담 상한제’란 과도한 의료비로 인한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환자가 부담한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이 개인별 상한액을 초과하는 경우 그 초과금액을 건강보험공단에서 돌려주는 제도다. 고소득층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저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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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 덕분에 소득 수준이 1분위에 속하는 저소득층은 2023년 기준 연간 87만원을 초과하는 본인부담 의료비에 대해서는 환급을 받게 된다. 2분위와 3분위에 속하는 저소득층도 연간 103만원을 초과하는 본인부담 의료비는 환급받는다. 또 한국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높은 10분위 고소득층마저도 연간 780만원을 넘어가는 의료비에 대해서는 환급을 받을 수 있다.
인간적으로 보면 필요한 제도다. 문제는 재원이다. 소득구간별 본인부담 상한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적으로 건강보험료 지출을 더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결국 본인부담 상한제를 뛰어넘는 진료비 급증 또한 이미 정해진 미래다. 이 초과분은 다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게 된다.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 방안’이란?
한국보다 고령화가 먼저 진행된 일본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간병 부담이다. ‘간병’이란 앓는 사람이나 다친 사람의 곁에서 돌보고 시중을 드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가족의 간병을 5년 또는 10년 이상 지속하는 게 현실적으로 쉬울 리 없다. 비용 부담도 엄청나다. ‘간병지옥’이나 ‘간병살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말에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 방안’을 전격 발표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환자 가족의 간병 부담을 덜기 위해 간호사로부터 간병을 받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대폭 확대된다.
또 요양병원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간병비를 지원하는 사업이 추진되며, 퇴원 후 집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간병서비스 지원체계가 구축된다. 너무나 바람직한 제도와 방향이다. 문제는 역시 재원이다.
복지부는 이 제도를 통해 간병비 부담을 연간 10조원 이상 경감하겠다고 밝혔다. 반대로 말하면 건강보험공단의 부담이 10조원 이상 늘어난다는 뜻이다. 수입은 제한적인데 돈 쓸 곳은 계속 늘어나는 형국이다.
한국 건강보험 재정 붕괴는 정해진 미래?
이제 애써 외면하고 싶은 건강보험 재정수지를 살펴보자. 국회 예산정책처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도의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1조3000억원 흑자다. 또 누적 준비금도 25조2000억원으로 여유롭다. 하지만 딱 10년 뒤인 2032년도의 건강보험 재정수지 전망은 -20조원으로 급반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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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적 준비금도 -61조6000억원이라는 심각한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20년 뒤인 2042년의 재정수지는 어떻게 될까. 훨씬 더 심각한 적자가 날 거라는 건 초등학생도 예상 가능하다. 결국 미래의 해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는 이미 소득의 8%(건강보험료율+장기요양보험료율)를 징수 중인 건강보험료를 소득의 10%로 올리는 방법이다. 극단적으로는 소득의 15%까지 올리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현재 평균 25% 수준인 진료비 본인부담금을 30%나 40%로 올리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무임승차 중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방법이다.
세 가지 다 국민들의 극렬한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예민한 해법이다. 먼 미래에 건강보험료로 의료비가 감당 안 되는 상황이 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정부 재정으로 보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 재정이 미래에도 여유가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겪는 건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다. 고령화가 진행된 어느 국가든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결국 개개인 스스로가 미래의 건강보험료 폭증과 건강보험 혜택 축소에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어떻게?
노령화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거꾸로 기회 요인을 살펴보자. 향후 헬스케어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은 이미 정해진 미래다. 이에 따라 헬스케어, 제약·바이오 분야의 주식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은 누구나 간단한 산수만 알아도 쉽사리 예측할 수 있다.
노인 인구의 증가 외에도 경제 성장, 생활 수준의 향상, 치료기술의 발달은 제약·바이오 시장 성장의 주요인들이다. 하지만 제약·바이오 분야는 개인적으로 공부하기에는 난이도가 높다. 따라서 헬스케어 ETF에 간접 투자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24년 02월호
희귀병 치료제가 37억원인데 주가 곤두박질...바이오 ETF 투자가 유리할 수도
미국에서 가장 비싼 약 상위 7개의 가격은?
37억원 약 개발한 블루버드바이오 주가는 쪽박...왜?
바이오 주식, 개별투자보다 ETF가 유리한 이유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만약 37억원짜리 초고가 치료제를 개발한 제약회사가 있다면 과연 떼돈을 벌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을 통해 개발비를 회수하는 데는 실력 외에도 많은 운이 필요하다. 제약·바이오 주식 투자가 까다롭고 어려운 가장 큰 이유다.
미국 FDA 3상 통과한 신약은 대박?
신약 개발에는 최소 10년 이상의 기간과 최소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 의약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원천기술 연구, 개발 후보물질 선정, 전 임상시험, 1~3상 임상시험, 신약 허가 및 시판 단계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임상시험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임상시험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주관한다. 당연히 통과하기도 제일 까다롭다. 실제 시판이 허용되는 신약은 1만 개 이상의 후보물질 중 하나꼴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도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유명 바이오 회사들 중 상당수가 FDA의 문을 두드리는 게 대유행이었다. 이들 중 최종적으로 임상 3상을 통과한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이 족집게처럼 임상 3상 통과 기업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평범한 일반 투자자가 아니라 바이오 전문가라 해도 FDA 임상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임상 통과 실패 시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던 해당 기업의 주가가 대폭락한다는 점이다. 미국 바이오협회에서 분석한 임상시험 현황 데이터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20년까지 10년간 FDA 임상 최종 승인 성공률은 고작 7.9%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이 어려운 확률을 뚫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허가를 받아 신약이 출시되면 그때부터는 대박이 터지는 걸까. 꼭 그렇지도 않다. FDA의 최종 승인이 신약의 매출까지 보장하는 건 아니다.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도 실망스럽게 미미한 매출을 보이는 신약들이 넘쳐난다.
돈 없는 국민은 죽을 병에 걸려도 방치해야 할까
어떤 제약사가 불치병을 치료할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했다고 가정해 보자. 제약사는 과연 그 약 가격으로 얼마를 책정해야 적정할까. 만약 약 가격을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에만 맡긴다면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특히 이슈가 되는 건 초고가 의약품이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희귀병 약은 척수성근위축증 유전자치료제인 ‘졸겐스마’다. 척수성근위축증은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근육이 점차 위축되는 희귀 유전병이다. 세계적으로 신생아 1만명당 한두 명이 발생하며 국내에서도 매년 20명 내외의 환자가 나온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만 2세 이전에 대부분 사망하거나 영구적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한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가격이다. 노바티스가 개발한 졸겐스마의 가격은 25억원이다. 한국의 경우 약가 협상을 통해 비급여 시 가격은 약 20억원으로 책정됐다. 평범한 가정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거액이다.
이 약은 2021년에 한 엄마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졸겐스마를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등재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슈가 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너무 고가라서 고심을 거듭했다. 결국 환자별 치료 성과를 추적해 치료 실패 시 일정 금액을 제약사가 환급하는 ‘위험분담 계약’으로 2022년에 급여 등재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건보 급여가 적용된 졸겐스마 투약 환자의 부담금은 20억원에서 약 6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사례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거라는 점이다. 정부는 ‘고가 의약품 관리방안’을 별도로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파국과 국민의 소중한 생명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건 난도가 무척 높은 과제다.
약 가격에 관대했던 미국마저 2개의 칼 빼들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건강보험 급여 선정 심사를 할 때는 기존 약물 대비 개선 효과, 시장 출시 가치, 위험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제약 업체들과 약가 협상을 진행한다. 한국은 미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일본, 이탈리아, 영국 등 주요 7개국 약값의 가중평균을 따져 낮은 가격으로 결정하는 구조다.
이와 달리 미국의 약가는 정부가 직접적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약물 승인의 관문 역할을 하는 식품의약국(FDA)은 신약의 효능 및 안전성만을 확인할 뿐이다. 따라서 일단 FDA의 임상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해당 신약을 보유한 제약사는 자체적으로 마음껏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이런 미국 방식은 제약·바이오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혁신 신약 개발을 활성화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약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럽이나 일부 국가에서는 미국의 약 가격은 약가 협상 때 아예 참고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까지 부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소비자들의 불만은 갈수록 높아만 가고 있다. 결국 미국마저도 비싼 약 가격 부담을 낮출 두 개의 칼을 뽑아들었다.
첫 번째 칼은 2022년 8월에 발표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다. 이 법에는 의료비 절감을 위한 의약품 가격 개혁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미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서비스센터(CMS)가 일부 의약품에 대한 약값 협상권을 갖게 됐다. 그리고 1년 뒤인 2023년 8월에 드디어 공공보험 메디케어에 적용할 1차 약가 인하 의약품 10개를 공개했다.
이 의약품들은 CMS와 2년간의 협상을 통해 2026년부터는 ‘메디케어’에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을 제공해야 한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고령자 및 장애인 6600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보험을 말한다. 따라서 이 10개 의약품에 시범 케이스로 선정된 화이자(엔브렐), 존슨앤드존스(스텔라라), 일라이릴리(자디앙스) 등은 해당 약품의 마진 감소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두 번째 칼은 고가 의약품 대상 특허 압류 추진이다. 미국 정부는 의약품 개발에 정부 자금이 투입된 고가 의약품의 특허 압류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특허 압류라니 일반인이 언뜻 보기에는 상당히 과격한 느낌이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먼저 1990년대에 만들어진 미국의 ‘베이돌액트법(Bayh-Dole Act)’을 이해해야 한다. 이 법 이전까지는 정부기관의 자금을 지원받은 연구에 대한 특허는 정부가 소유권을 갖고 있었다. 이 법이 만들어진 목적은 민간의 연구를 활성화하고 연구 결과의 빠른 상업화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베이돌액트법’ 제정 이후부터는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은 연구 결과물을 정부가 아닌 기업이나 대학 등이 특허 출원을 통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정부도 특허를 압류할 수 있는 특허 개입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준이 애매해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특허개입권이 실제로 시행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2023년 12월에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정부가 개입할 권한에 대한 새로운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가격이 극단적이고 부당하거나 건강을 착취할 것으로 보이는 경우’ 개입 권한을 발동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 정부는 특허를 보유한 오리지널 약보다 저렴한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이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오리지널 약보다 30% 이상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바이오시밀러 회사가 주목받는 이유다.
미국에서 가장 비싼 약 상위 7개의 가격은?
그렇다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은 어떤 걸까. 1위는 CSL베링이 개발한 B형 혈우병 치료제인 ‘헴제닉스’다. 가격이 무려 42억원(350만달러)이다. 혈우병은 피가 멎지 않는 질환이다. 따라서 혈우병 환자는 혈액응고 유지를 위해 평생 동안 정맥주사로 치료제를 투약한다. 당연히 약값도 천문학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22년 11월에 미국 FDA는 놀라운 성능의 혈우병 치료제를 승인했다. 바로 유전자치료제 ‘헴제닉스’다. 이 약은 단 1회 투약으로 혈우병을 치료한다. 1회 투약비용이 무려 42억원(350만달러)이니 엄청나게 비싸다. 하지만 기존 방식의 평생 치료 비용은 200억원 이상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신약 가격의 경쟁력이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
비싼 약 2위는 겸상적혈구빈혈 치료제인 ‘리프제니아’다. 가격은 무려 37억원(310만달러)이다. 겸상적혈구빈혈은 유전자 염기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헤모글로빈이 비정상적인 낫 모양(겸상)으로 생기는 희귀 질환이다. 지금까지는 수혈로 수명을 연장하는 것 외에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 애를 먹어왔다. 인종 중 주로 흑인에게 발병하는 유전병이다. 환자의 기대수명은 35세 내외로 알려져 있다. 리프제니아는 환자의 세포를 꺼내 유전자 조작을 거쳐 다시 몸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단 한 번의 주사만으로 완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싼 약 3위는 미국 블루버드 바이오가 개발한 ‘스카이소나’다. 가격은 36억원(300만달러)이다. 대뇌 부신백질이영양증(CALD)은 주로 어린 소년(평균 7세)에게 발생한다. 환자는 뇌와 척수에 독성분자가 쌓여 결국 뇌의 염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유전자치료제 스카이소나는 이 병을 단 1회 투약으로 개선한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세포에서 유전질환의 원인이 되는 특정 유전자(DNA)를 잘라내 교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존 치료제로는 효과를 보기 어려웠던 난치성 유전질환 치료의 돌파구로 인정받으며 최근 들어 뜨거운 관심을 받는 분야다.
흥미롭게도 미국 FDA는 ‘카스게비’와 ‘리프제니아’를 같은 날 승인했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2개 약의 치료 효과는 비슷하다. 특이 사항은 리프제니아는 임상시험 중에 두 명의 환자에게 백혈병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혈액암 발병에 대한 관찰을 요하는 ‘블랙박스 경고’를 받았다.
37억원짜리 약 개발해 놓고 주식은 쪽박, 왜?
잘 살펴보면 초고가약품 대부분이 유전자치료제임을 알 수 있다. 이유가 뭘까. 유전자치료제는 기본적으로 돌연변이 유전자 자체를 치료하는 방식이라 1회 투약만으로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 또 유전자 변이 자체가 드물다. 따라서 희귀병으로 분류되며 환자 수가 많지 않은 게 특징이다.
한국의 경우 환자 수가 2만명 이하인 경우를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 입장은 난처하다. 희귀병 치료제 개발에는 상당한 개발비가 들어간다. 게다가 환자마저 현저히 적다. 저렴하게 약을 팔아서는 도저히 타산을 맞출 수가 없다. 이게 바로 유전자치료제 가격이 터무니없이 치솟는 이유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격이 가장 비싼 유전자치료제를 무려 3개나 보유 중인 블루버드 바이오 주가는 엄청나게 올랐을까.
블루버드 바이오의 과거 주가를 살펴보자. 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엄청났던 2018년 6월에는 198달러까지 주가가 화려하게 폭등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6개월이 지난 2023년 12월 7일의 주가는 고작 4.8달러에 그쳤다. 고점 대비 하락률은 무려 98%에 달한다.
투자자들을 경악하게 만든 건 그 다음날의 주가였다. 2023년 12월 8일에 드디어 블루버드 바이오가 야심차게 개발해 왔던 37억원(310만달러)짜리 신약 ‘리프제니아’가 미국 FDA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그동안 신약 개발 기대감 하나로 버텨왔던 투자자들의 인내가 마침내 결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블루버드 바이오 주가는 전날의 4.8달러에서 무려 40% 폭락한 2.9달러에 마감됐다. 2023년 12월 말의 주가는 고작 1.4달러에 불과하다. 신약 승인 후 1개월 새 주가가 거꾸로 70% 대폭락한 셈이다. 이유가 뭘까.
같은 날 동시에 승인을 받은 ‘카스게비’가 비슷한 효능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11억원 이상 저렴했던 게 악재로 작용했다. 또 리프제니아가 부작용으로 혈액암 발병 위험과 관련한 ‘블랙박스 경고’를 받은 것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오랜 시간 신약개발비를 쏟아부은 탓에 극도로 취약해진 재무구조도 한몫했다.
블루버드 바이오의 실망스러운 주가 움직임은 경험 많은 바이오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익숙한 광경이다. 특정 바이오 회사의 신약후보물질이 최종적으로 FDA의 승인을 받을 확률 자체가 희박하다. 또 설사 승인을 받더라도 만족스러운 매출이 나올지는 전혀 예측 불가다.
헬스케어 공부 어렵다면 ETF 통한 분산투자가 해법
전 세계 헬스케어 서비스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 의료서비스 시장조사회사인 VMR(Verified Market Research)의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총 1경3400조원(10조3000억달러)으로 추정된다. 이후 연평균 8% 이상 성장해 2030년에는 무려 2경8100조원(21조6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헬스케어 주식이 유망하다고는 생각되지만 비전공자 입장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굳이 이 어려운 학문을 모두 공부하지 않고도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ETF를 통한 간접투자다.
ETF는 수수료도 저렴하고 알아서 분산투자를 해주기 때문에 개별종목의 높은 변동성을 완화해 준다. 따라서 초보자가 접근하기에 유리하다. 미국에 상장된 헬스케어 ETF 중 가장 대표적인 상품은 ‘XLV(Health Care Select Sector SPDR Fund)’ ETF다.
XLV는 ‘S&P500 헬스케어 섹터 인덱스’를 추종하는 ETF다. 1998년에 상장돼 헬스케어 섹터 ETF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 운용자산은 2024년 1월 기준 49조원(378억달러)에 달한다. 운용수수료도 연간 0.1%로 저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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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LV ETF는 대형 헬스케어 주식 위주로 구성돼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보유종목 1위인 유나이티드 헬스그룹, 2위인 일라이릴리, 3위인 존슨앤드존슨, 4위인 머크, 5위인 애브비는 제약회사에 큰 관심이 없는 투자자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초대형 종목들이다.
전문가들은 2024년부터 대형 헬스케어 주식의 반등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XLV ETF의 보유 포트폴리오 주식들은 하나같이 초우량 제약회사라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안정적인 대형 헬스케어 주식의 성장 과실과 양호한 배당수익을 동시에 누리기를 원한다면 XLV ETF에 관심을 가져보자.
공격적인 투자자라면 ARKG ETF 역발상 투자?
하지만 모든 투자자들의 성향이 다 안정형은 아니다. 헬스케어 섹터에는 투자하고 싶지만 공격적인 성향의 투자자라면 XLV ETF의 안정적인 주가 움직임이 오히려 답답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한국에서 ‘돈나무 언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캐시 우드 CEO가 이끄는 아크 인베스트(ARK Invest)의 ARKG (ARK Genomic Revolution) ETF 투자를 검토해볼 수 있다.
ARKG ETF는 건강관리, 유전공학, 헬스케어, 바이오 분야에 투자하는 펀드로 포트폴리오 내 헬스케어 섹터 비중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생명공학, 줄기세포, 분자 진단, 유전자 가위, AI 신약 등을 개발하는 회사에 집중 투자하는 ETF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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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KG ETF는 2014년부터 운용을 시작했다. 혁신 기업 위주의 공격적 투자 스타일로 유명하다. 운용자산은 2024년 1월 기준 2조5000억원(19억달러)으로 작은 편이다. 또 인덱스 펀드가 아니라 액티브 펀드라 운용수수료도 연간 0.75%로 높다. 그런데 인덱스 스타일보다 수수료가 훨씬 높으니 운용 성과도 월등히 높을까.
코로나19 당시인 2020년에는 제약주 랠리의 영향과 아크 인베스트의 명성 덕에 ARKG ETF의 주가도 급상승했다. 2019년 말에 33달러에 불과했던 주가는 불과 1년 2개월 뒤인 2021년 2월에는 114달러까지 치솟으며 245%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1년 2월의 114달러는 역사적 최고점이었다.
그로부터 2년 11개월이 지난 2023년 말의 주가는 고작 33달러에 불과하다. 고점 대비 하락률이 무려 70%가 넘는다. 최고점에서 매수해 장기 보유 중인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로 고통받고 있다.
ARKG ETF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1위 종목은 ‘이그젝트 사이언시스’다. 보유 비중은 9.15%다. 이그젝트 사이언시스는 ‘암 정밀진단 및 선별검사 사업’을 하는 의료기기 생산 기업이다. 현재 암 진단의 표준 방식은 ‘조직 생체검사’다.
이그젝트 사이언시스는 간단하게 혈액만으로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액체 생체검사(액체 생검)’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작년 상반기에 주가가 급등하면서 ARKG ETF의 수익률 개선에 도움이 됐지만 하반기부터 다시 조정을 받고 있다.
ARKG ETF의 보유 포트폴리오 2위는 ‘퍼시픽 바이오 사이언스’로 5.73%를 보유 중이다. ‘유전자 연구 및 염기서열 분석 기술력’을 갖춰 미래 성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3위인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겸상적혈구빈혈 치료제인 카스게비를 개발한 회사다. 세계 최초로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2023년 12월에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아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수합병(M&A) 단골 후보로도 늘 이름을 올리고 있다.
4위는 ‘리커전 파마슈트컬스’, 5위는 ‘트위스트 바이오사이언스’, 6위는 ‘아이오니스 파마슈티컬스’, 7위는 ‘슈뢰딩거’다. 모두 향후 성장성이 기대되는 초기 기업들이다. 단점은 변동성이 크고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ARKG ETF의 또 다른 특징은 보유 주식의 교체매매가 활발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야수의 심장을 가진 한국 투자자들에게는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한때 투자 천재로 명성을 떨쳤던 캐시 우드의 실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 지난 2년간의 실망스러운 실적으로 많은 투자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의 말처럼 “인간은 장기적으로 볼 때 모두 죽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간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먼저 의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본인의 노후 의료비가 걱정되는 투자자라면 노령화가 진행될수록 시장 규모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는 헬스케어 관련 주식에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1월호
순자산 10억원 이상 백만장자 포트폴리오는 '닥치고 부동산'?
서울 아파트는 고작 179만호...전국은?
다주택자 가구수 비중 14.5%...여전히 많아
한국 가구별 순자산 평균은 4억3500만원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의 인구 감소가 본격화됐다. 최근 한국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저출산과 노령화다. 통계청의 ‘2022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는 5169만명이다. 이 중 내국인은 4994만명으로 드디어 5000만명이 붕괴됐다. 이런 와중에 2023년의 한국 주택시장 상황은 어땠을까.
고금리로 붕괴됐던 주택시장...낙폭 과대로 반등
2022년은 금리 급등의 영향으로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전국 공동주택 실거래가 지수’가 무려 14.4% 급락했다. 서울은 -15.8%로 더 가파른 낙폭을 보였다. 다행히 2023년에 들어서면서 ‘특례보금자리론’ 등의 저금리 정책 대출이 위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힘입어 낙폭 과대에 따른 반발매수세가 유입됐다.
그 영향으로 2023년 9월 말까지 전국 지수는 4.9% 반등했다. 서울은 9.3% 급등해 전국 지수의 2배 가까운 상승률을 보였다. 하지만 10월부터 분위기가 다시 반전됐다. 지속되는 고금리에 경매물량이 급증하면서 부동산시장이 다시 침체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2024년에도 이어질까. 새해 부동산시장 게임체인저는 역시 금리 인하다. 금리가 어느 정도로 인하될지가 모든 시장참여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부동산시장이 다시 침체에 빠질지, 아니면 완만하게 회복될지는 전적으로 금리 수준에 달려 있다. 모두가 제롬 파월 미 연준(Fed) 의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에게 부동산 투자는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 흐름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가장 선호되는 투자처다. 입지적으로 살펴보면 역시 서울의 반등폭이 가장 강했다. 누적수익률도 서울이 훨씬 높다. 사람들이 유독 서울 부동산을 선호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는 아파트가 몇 채나 있을까?
한국의 총 가구수는 얼마나 될까. 2238만 가구다. 이 중 한국인 가구수는 97.3%다. 외국인 가구수는 2.7%인 61만 가구에 달한다. 한국에는 많은 주택이 필요하다. 이 2238만 가구가 한국의 어딘가에서는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의 재산 1호는 부동산이다. 한국에 존재하는 아파트는 총 몇 채나 될까. 1140만호다. 이 중 모든 이에게 선망의 대상인 서울 아파트는 179만호에 불과하다. 전국 아파트 중 15.7%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 외 단독주택, 연립, 다세대까지 모두 합친 전국의 주거용 부동산 총 개수는 2020만호다.
다주택 가구 평균 자산가격은 12억원 훌쩍 넘어
한국의 ‘다주택 가구’는 당연히 부자다. 통계청이 조사한 유주택 가구 중 ‘상위 10%(10분위)’의 평균 주택 자산가액은 12억1600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공시가격을 적용한 것으로, 실제 시세는 훨씬 더 높다. 또 유주택 ‘상위 10%(10분위)’의 평균 소유 주택수는 2.41호로 조사됐다. 평균적으로 2~3채의 다주택 보유가 부의 원천임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는 조사 방식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법인 등을 제외한 개인 소유 주택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청의 ‘2022년 주택 소유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2177만 일반가구 중 유주택 가구수는 1223만 가구(56.2%)다.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반면 무주택 가구수는 954만 가구(43.8%)를 기록했다. 유주택 가구 중 ‘1가구 1주택’은 908만 가구로 74.2%를 차지한다. ‘2주택 이상 다주택 가구’는 315만 가구로 25.8%에 달한다.
정리하자면 한국의 2177만 일반가구 대비 ‘2주택 이상 다주택 가구’는 315만 가구다. 비중이 무려 14.5%다. 개별 주택가격이 낮은 경우도 일부 있겠지만 다주택 가구 중 상당수는 백만장자(100만달러, 12억원)로 상징되는 부자 범위 안에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3주택 이상 다주택자 현황은?
지난 몇 년간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중과 등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규제가 상당히 강력했다. 그런데도 꽤 많은 개인들이 여전히 다주택자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 다주택 전략은 매력적이라는 방증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에 대한 다주택자들의 믿음은 여전히 굳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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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가구가 아닌 개인 기준으로 살펴보자. 2022년 기준 한국에서 주택을 보유한 개인은 총 1531만명으로 조사됐다. 이 중 1주택자가 85.1%인 1304만명, 2주택자가 11.8%인 181만명, 3주택 이상이 1.8%인 47만명으로 조사됐다. 주목할 건 지난 몇 년간 정부의 강력한 다주택 규제 효과에 힘입어 3주택 이상 보유자가 전년 대비 3000명 감소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다주택자 유지에 최대 걸림돌이던 종합부동산세는 현 정권 들어 파격적으로 완화됐다. 전체 종부세 과세대상자가 2022년도의 120만명에서 2023년에는 66% 감소한 41만명으로 3분의 1토막 났다. 전체 주택보유자 중 불과 2.7%만 종부세 과세 대상자인 셈이다.
세분화해 보면 1세대 1주택자의 종부세 과세인원은 2022년 23만5000명에서 2023년에는 11만1000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세금은 2600억원에서 900억원으로 약 65% 감소했다. 1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종부세 부과는 논란이 많았던 만큼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다.
눈길을 끄는 건 다주택자 종부세 과세인원이다. 2022년 90만4000명에서 2023년에는 24만2000명으로 뚝 떨어졌다. 감소율이 무려 73%에 달한다. 다주택자들의 세금 감소는 더 극적이다. 전년도의 2조3000억원에서 무려 83% 감소한 4000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다주택자들에게 징벌적으로 적용됐던 중과세율이 완화된 덕분이다.
이제 주택 매입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취득세 중과 완화마저 법률로 통과된다면 과거 다주택자들에 대한 규제를 현 정부 들어 대부분 푸는 꼴이 된다. 정부는 이미 2022년 말에 다주택자들에 대한 취득세 중과 완화조치를 발표했다. 최종 법률 통과 시 발표시점부터 소급 적용키로 했다. 하지만 아직 최종 확정은 아니므로 눈치 작전이 치열하다. 만약 이 법마저 국회를 통과한다면 다주택자들의 주택 매입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서 다주택자는 늘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다. 정권에 따라 투기꾼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또 정권이 바뀌면 임대주택 공급자로서의 긍정적 역할이 부각되기도 한다.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나라든지 토지 공급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특정인이 3주택 이상의 많은 주택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해 보인다.
한국의 아파트 가격은 얼마나 할까?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의 부자들은 부동산을 사랑해 왔다. 이는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효율적인 투자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거래되고 있는 주택들의 평균 매매가격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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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부동산의 ‘데이터허브’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주택(아파트, 단독, 연립 등) 매매 평균가격은 4억4700만원이다. 반면 서울의 주택 매매 평균가격은 전국 평균의 2배가 넘는 9억100만원이다. 서울 아파트는 전국의 주거용 주택 2020만호 중 고작 5%인 179만호에 불과하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귀한 만큼 가격도 비싸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무려 12억원이다.
따라서 꼭 다주택자가 아니어도 서울에 집 한 채만 가지고 있다면 백만장자(100만달러, 12억원)라는 게 수치로 입증된다. 그런데 평균 매매가격은 빈부격차가 클수록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평균 매매가격보다는 중위가격이 좀 더 현실적이다. 한국에서 매매된 주택들의 중위가격은 얼마나 될까.
KB부동산의 ‘데이터허브’ 자료에 따르면 최근 전국 주택(아파트, 단독, 연립 등) 매매 중위가격은 3억1000만원이다. 서울은 2배가 훌쩍 넘는 6억9400만원을 기록했다. 전국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은 3억6700만원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 9억5800만원과 비교해 보면 격차가 거의 3배에 가깝다.
시장이 한창 활황이던 2년 전에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1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어떻게 계산해봐도 서울 아파트는 비싸다. 부자들의 관점에서는 이마저도 낮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서민들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높다. 한국의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렇게 살펴보니 한국 사람들의 재산이 상당히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인들의 재산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2023년 7월에 발표한 ‘2022년 국민 대차대조표’를 통해 한국인의 평균 재산을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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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민들의 순자산은 얼마나 될까?
‘국민 대차대조표’에는 각 경제주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 비금융자산, 부채 규모 등이 기록돼 있다. 한국의 국부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자료다. 이 자료를 통해 파악한 한국의 ‘국민 순자산’은 2022년 말 기준 2경380조원이다.
2022년에는 부동산 가격 하락의 영향으로 국민 순자산이 전년도의 10% 증가율에 훨씬 못 미친 2% 증가에 그쳤다. 그런데 ‘경’ 단위의 숫자는 워낙 커서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국가 전체의 국부이니 클 수밖에 없다. 이 어마어마한 숫자에서 ‘일반정부’와 ‘법인’의 순자산을 차감하고 순수하게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산 규모만 계산해 보면 얼마나 될까.
‘가계 및 비영리단체’ 순자산은 1경1237조원이다. 부동산, 주식, 예금 비중별로 살펴보자. ‘부동산 관련 자산’은 8378조원으로 전체 총자산 중 61.7%의 비중을 차지했다. ‘주식 관련 자산’은 982조원으로 7.2%의 낮은 비중이다. 부동산에 비해 한국 사람들의 주식투자 비중은 현저히 낮다. 예금자산은 2290조원으로 17.8%의 비중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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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의 가구당 순자산 규모는 얼마나 될까. 한국은행에서 추정한 산식을 대입해 보면 1가구당 평균 5억2071만원이다. 2021년에 비해 4% 감소했다. 다행히도 2023년에는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모두 반등했다. 따라서 2023년 말의 가구당 순자산은 꽤 회복됐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령대별 한국 가구당 순자산 추정
그런데 ‘국민 순자산 현황’을 기반으로 한 ‘1가구당 평균 순자산’ 계산방식에는 가구주의 나이대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경제활동 기간이 짧은 30대 가구주의 순자산은 평균에 크게 미달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경제활동 기간이 길었던 50대의 순자산은 평균을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이걸 구분해서 확인할 수는 없을까.
이런 문제 때문에 한국은행과 통계청에서는 공동으로 또 다른 방식의 ‘가구당 순자산’을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바로 2만여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다. 표본조사(면접방식)라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좀 더 세분화해 가구당 순자산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조사의 가장 큰 장점은 가구당 순자산 통계가 연령대별로 구분돼 있다는 점이다. 2023년 12월에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가구당 전체 평균 순자산 금액은 4억3540만원으로 확인됐다. 안타깝게도 전년 대비 4.5% 감소한 수치다. 이 역시 조사 시점이 부동산과 주가 폭락 충격이 극심했던 2023년 3월 말 기준이라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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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주의 연령대별 순자산 보유액’을 살펴보면 전 연령대를 통틀어 50대의 순자산 평균이 4억9737만원으로 가장 높다. 뒤를 이어 60세 이상 고령층 평균이 4억8630만원, 40대 평균이 4억3590만원을 기록했다. 전 연령대의 자산이 전년보다 큰 폭 감소했지만 유일하게 60세 이상에서만 자산이 0.6% 증가한 점도 눈에 띈다.
예상했던 대로 경제활동 시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39세 이하의 평균 순자산은 2억3678만원에 그쳤다. 모든 가구의 전체 평균인 4억3540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10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부유한 가구 비중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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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말 기준 한국에서 10억원 이상의 순자산을 보유한 가구수 비중은 10.3%다. 2022년도의 11.4%와 비교하면 무려 1.1%포인트가 뚝 떨어진 수치다. 2만 가구의 표본조사 결과라 실제 데이터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막연한 추측보다는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가구수 비중은 크지 않다. 고작 10가구 중 1가구꼴이다.
의아하다. 서울 아파트만 해도 평균 매매가격은 12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는 179만채로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에 불과하다. 서울 아파트를 너무 높은 평균 매매가격 대신 중위 매매가격으로 계산하면 9억5800만원으로 뚝 떨어진다. 중요한 건 서울 아파트를 대출 없이 사는 경우도 드물다. 이런 사실을 모두 감안해 보면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쨌든 10억원이라는 돈의 가치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예전 같지 않은 건 분명하다. 그래도 이 조사 결과상 아직까지는 10억원 이상 순자산을 보유한 가구는 부자라는 말을 들어도 될 듯하다. 물론 수많은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부자의 기준을 10억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 사람들에게 부자의 기준은 훨씬 더 높다.
주거용 아파트는 투자일까?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총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무려 71.5%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가장 중요한 자산 보전의 수단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금융자산 비중은 전·월세 보증금까지 모두 합쳐도 23.9%에 불과하다. 한국 사람들의 부동산 사랑은 여전히 뜨겁다.
한국인 재산 중 70% 이상은 부동산이다. 한국에는 아파트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사람이 많다. 따라서 주거용 아파트를 투자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실거주하고 있는 비슷한 7억원대의 아파트는 특정 입지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2023년에 부동산시장이 초활황은 아니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상당 폭 상승한 곳도 꽤 있다. 따라서 주거용 아파트의 수익률을 제외하고 재테크 수익률을 따지는 건 비합리적이다. 만약 우리가 중장기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아파트를 잘 선택해 실거주한다면 거주와 재테크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주거용 부동산은 한국인에게 여전히 중요한 재테크 수단이다. 최근 수십 년간의 전 세계적인 부동산 트렌드는 메가시티 선호 현상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지방보다는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시장 회복 탄력성이 좀 더 강해 보인다. 2023년에 당신의 자산은 늘었을까, 줄었을까. 부자를 꿈꾸는 투자자라면 늘 부동산시장의 변화에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1월호
주식 vs 채권 대결은 주식 압승…동학∙서학개미 '함박웃음'
금리인하 베팅 너무 빨라...예상 밖 금리인상 채권 고전
한국 투자자 1424만명...2차전지주 있다 vs 없다
미국 빅7 테크주는 100% 대폭등 환호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2023년은 침울한 비관론이 가득한 채로 시작됐다. 상반기 약세와 하반기 강세를 뜻하는 ‘전약후강’을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주식시장은 연초부터 강한 상승세를 보이며 전년도의 낙폭을 상당 부분 만회했다. 반면 채권시장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한 해를 보냈다.
예상 밖 금리 인상에 채권 고전, 주식은 쾌재
2022년 말의 미국 기준금리 상단은 4.5%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상과 달리 2023년에도 연준은 기준금리를 계속 올렸다. 2023년 말의 미국 기준금리 상단은 전년 말보다 1%포인트 상승한 5.5%로 마무리됐다. 시장이 이렇게 흘러가면 채권 투자자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만기가 1~2년 수준인 단기채권은 별 상관이 없다. 1년간 약속된 이율 4~5%를 챙기면 된다. 하지만 20~30년 이상의 장기채권에 투자하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만기가 길면 길수록 금리 민감도가 급증한다. 따라서 금리 인상 시 채권 가격 폭락으로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한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공격적으로 장기물 국채 ETF에 투자한 사람들은 2023년 10월 말까지도 채권가격 하락에 마음 졸이며 고통받았다. 특히 3배 레버리지라면 그 충격은 3배가 된다.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디렉시온 데일리20+년 미국채 불3배 ETF’는 연초 75달러에서 10월에는 38달러까지 대폭락하며 -48%의 끔찍한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2023년 11월부터 연준이 본격적으로 금리 동결을 시사하며 시장금리가 많이 내려왔다. 그 덕에 장기채권 가격도 마이너스에서 소폭 플러스로 돌아서긴 했지만 1년 내내 마음 졸인 한 해였다. 물론 투기적 성향의 ‘3배 레버리지 장기국채 ETF’는 11월 말에도 여전히 -30%로 고전 중이다.
이제 한국과 미국의 주요 주가지수와 채권수익률을 비교해 보자. 일반적인 수익률 비교를 위해 레버리지 상품들은 다 배제했다. 2023년 11월 말까지 미국 나스닥 지수는 36%, S&P500 지수는 19% 상승했다. 한국도 코스닥 지수는 23%, 코스피 지수는 13% 상승했다.
반면 한국의 ‘코덱스 국고채 30년 액티브’ ETF는 6%의 평범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의 ‘10~20년물’ ETF는 심지어 -3%를 기록했다. 그나마 11월에 시장금리가 큰 폭으로 내려가며 채권 수익률이 크게 개선된 게 이 정도다. 2023년의 주식과 채권 수익률 대결은 주식의 압승이다.
2023년의 한국증시는 ‘2차전지’라는 단 1개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2차전지 종목들로 울고 웃었던 한 해다. 한국증시의 또 다른 특징은 예상과 다른 전강후약 장세였다. 상반기는 의외의 큰 폭 반등으로 투자자들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하반기는 의외의 부진으로 다시 한 번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
2023년 11월 기준 한국 상장주식 시가총액은 전년 대비 17% 증가한 2437조원으로 집계됐다. 시가총액 증가액 중 상당 부분은 대장주 역할을 했던 2차전지 관련주가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에 한국 코스피 지수는 13%, 코스닥 지수는 23% 상승했다. 외견상 양호해 보이지만 미국 S&P500 지수, 나스닥 지수와 비교해 보면 수익률 격차는 현격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중국주식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이다.
한국 투자자 1400만명...2차전지주 있어 없어?
한국 주식을 보유한 개인투자자는 얼마나 될까. 한국예탁결제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1424만명이다. 3년 전인 2019년만 해도 612만명에 불과했다. 3년 만에 주식투자 인구가 133% 급증한 셈이다. 이렇게 한국 주식을 사랑하는 한국 투자자들은 과연 올해 돈을 많이 벌었을까. 양극화가 극심하다.
한국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4년간 한국증시에 무려 171조원을 쏟아부었다. 개인투자자들의 막강한 자금력이 부러울 정도다. 그런데 데이터를 잘 살펴보면 흥미롭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한국증시에서 54조원을 순매도했고, 기관투자자는 103조원을 순매도했다. 이 엄청난 매도물량을 모두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받아준 꼴이다.
2023년에는 오랜만에 외국인이 한국시장에서의 매도 공세를 멈추고 9조원의 순매수로 돌아선 게 특징적이다. 반면 한국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3년간의 활발한 매수세와 달리 2조원의 소폭 순매수에 그쳤다. 고금리로 체력이 많이 소진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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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한국 주식시장을 이끌었던 주요 2차전지 종목들의 수익률을 살펴보자. 한국 투자자들이 천당과 지옥을 오갔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폭발적인 상승률로 주목받았던 에코프로비엠의 연중 최고 수익률은 무려 534%에 달한다. 하지만 2023년 11월 기준으로는 198%로 수익률이 많이 낮아졌다.
그래도 절대 수익률은 여전히 높다. 결론적으로 2023년 초에 2차전지 관련 종목에 투자한 개인들은 진정한 승리자들이다. 하지만 고점에서 매수한 일부 투자자들은 고통받고 있다. 또 문제는 모든 투자자가 다 2차전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양극화가 극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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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코스피 종목 1위는 삼성전자로 638만명, 2위는 카카오로 207만명, 3위는 현대차로 121만명, 4위는 네이버로 105만명, 5위는 SK하이닉스로 101만명이 보유하고 있다. 2022년의 부진한 수익률과 달리 2023년도의 수익률은 삼성전자 32%, 카카오 -5%, 현대차 22%, 네이버 17%, SK하이닉스 79%다. 2차전지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대체로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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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코스닥 종목 1위는 카카오게임즈로 29만명, 2위는 셀트리온헬스케어로 28만명, 3위는 에코프로비엠으로 23만명, 4위는 하림으로 20만명, 5위는 엘앤에프로 20만명이 보유 중이다. 2023년에 가장 부진했던 카카오게임즈의 -41%를 빼고 모두 플러스다.
하지만 2차전지주를 제외하면 상승률은 밋밋하다. 결론적으로 한국 주식투자자 1400만명은 2023년에 전년도의 손실을 일정 부분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2년 누적수익률은 마이너스인 투자자들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주식 비중 88%, 중국 버리고 일본 매수?
한국 투자자들은 몇 년 전부터 지지부진한 한국주식 대신 해외주식 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다. 한국인의 2022년 말 기준 해외주식 보유금액은 66조4000억원이었다. 하지만 2023년에는 큰 폭의 주가 반등에 힘입어 11월 말 기준 보유금액은 34% 급증한 89조원을 기록했다. 아쉽게도 2021년 말의 93조5000억원은 회복하지 못했다.
아래의 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변화들이 눈에 띈다. 먼저 2023년에는 미국주식 비중이 전체의 88%로 압도적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일본주식이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일본주식 비중은 5%로 크지 않다. 하지만 2022년 대비 일본주식 보유금액은 무려 56% 증가한 4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모든 국가 중 최고의 증가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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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홍콩주식 비중이 2%로 줄었고, 중국주식 비중도 1%로 급감했다. 각각 전년 대비 23%, 29% 감소한 수치다. 홍콩과 중국주식을 다 합쳐도 고작 3% 비중에 불과하다.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과거 한국인들의 관심을 듬뿍 받았던 중국주식은 부진한 수익률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대거 탈출 중이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와 중국 경기 침체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나스닥의 대반등, 서학개미들 함박웃음
서학개미들의 나스닥 사랑은 진심이다. 2022년은 나스닥 시장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2023년 들어 미국주식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미국 빅테크 주식들의 반등폭은 상당했다. 서학개미들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주식 상위 10개 종목의 투자 규모와 2023년 연초 대비 수익률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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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해외주식 보유 상위 10개 종목은 단 1개의 예외도 없이 모두 미국 관련 주식들이다. 한국 투자자들의 보유순위 1위는 테슬라로 무려 16조원을 보유 중이다. 전년도에는 심각한 주가 하락으로 보유금액이 8조1000억원까지 줄어들었으나 2023년 들어 다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16조원이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한국인들의 테슬라 사랑은 유별나 보일 정도다.
2위인 애플 주식 보유금액은 6조4000억원이다. 테슬라 보유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3위는 엔비디아로 5조1000억원을 보유 중이다. 엔비디아 보유금액 증가율은 전년 대비 125%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4위인 마이크로소프트는 3조3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야수의 심장을 가진 한국 투자자들답게 나스닥 3배 레버리지 ETF인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 ETF’가 당당하게 보유 순위 5위에 랭크돼 있다. 보유금액은 무려 3조3000억원이다. 6위는 알파벳A로 2조3000억원, 7위는 아마존으로 1조7000억원을 보유 중이다. 8위 역시 ‘미국 반도체 3배 레버리지 ETF’인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ETF’로 1조7000억원이나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레버리지는 일상이다.
9위에 랭크된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 ETF’는 상위 10개 종목 중 유일하게 전년 대비 보유금액이 18% 감소했다. 공격적인 성향의 한국 투자자들에게 ‘나스닥100 지수’를 1배 추종하는 ETF는 왠지 성에 차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10위에 랭크돼 있는 양자컴퓨팅 기업인 ‘아이온큐’도 눈에 띈다. 1조200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보유 중이다.
보유금액보다 더 중요한 건 역시 수익률이다. 2023년의 미국 빅테크 종목 수익률은 어마어마하다. 테슬라 95%, 애플 47%, 엔비디아 220%, 마이크로소프트 59%, 알파벳A 50%, 아마존 74%, 아이온큐 254%다. 앞에서 살펴본 한국인들이 많이 보유한 한국주식들과 비교해 보면 수익률 단위 자체가 다르다.
간 큰 사람들만 투자할 수 있다는 3배 레버리지 ETF들도 올해는 축포를 터뜨렸다. ‘나스닥 3배 레버리지 ETF’는 157%, ‘미국 반도체 3배 레버리지 ETF’는 137%라는 고수익 달성에 성공했다. 2023년도에 서학개미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함박웃음이다.
미국 빅테크 주식 비중 확대는 선택 아닌 필수
2023년의 한국과 미국 시장 특징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채권보다는 주식 수익률이 월등히 좋았다. 한국주식도 양호했지만 특히 미국 빅테크 주식들의 수익률이 좋았다. 나스닥 지수 상승률인 36%보다 덜 오른 종목은 전무하다. 한국인이 보유한 미국 상위 10개 종목 평균 수익률은 114%다. 서학개미들의 완벽한 승리다.
한국인들이 한국주식이나 중국주식 비중을 줄이고 미국주식 투자를 늘려나가는 최근의 현상은 바람직한 걸까. 미국은 세계 최강의 금융 강국이다. 게다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새롭게 떠오르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강력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달러로 투자하니 자연스럽게 원화 외에 통화분산까지 이뤄진다.
한국인들의 미국 빅테크 기업 투자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중간중간 가격 변동에 따른 부침은 있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꾸준한 상승이 기대된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평범한 주식들보다는 세계 1등인 미국 빅테크 기업의 주가 상승 여력이 미래에도 더 커 보이는 게 현실이다.
스마트한 한국인 투자자들도 이미 이런 추세를 정확히 읽고 있다. 한국인이 투자한 해외주식 중 미국주식 비중이 88%로 압도적인 게 이를 증명한다. 한국인들의 주식투자 실력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아직도 미국 빅테크 주식이 없는 투자자라면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1월호
한국 빌딩-해외 부동산 리츠 '폭망'…금리 인하 등 여건 호전 2024년엔 반등?
꼬마빌딩 수익률 역마진...예금이 더 유리
한국 상장 리츠 크게 부진...미국 리츠는 양호
한국 금융사 해외 부동산 투자도 울상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대표적인 레버리지 투자 상품인 빌딩과 리츠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금리다. 부동산 상품은 기본적으로 대출을 수반한다. 대출 금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속되는 저금리 속에서 그동안 쏠쏠한 수익을 누려왔던 빌딩과 리츠 투자자는 2022년과 2023년에 2년 연속으로 ‘폭망’했다.
한국·미국 주택 가격은 강세, 상업용 부동산은 약세?
최근 부동산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주거용 부동산의 강세와 상업용 부동산의 약세다. 이런 디커플링 현상은 과거와 다른 특이한 패턴이다. 미국의 케이스-실러 주택가격 지수는 지난 4년간 매년 끊임없이 상승했다. 4년 누적수익률이 무려 46.8%에 달한다. 미국 기준금리 상단이 5.5%까지 치솟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국의 주거용 부동산인 공동주택 가격도 지난 4년간 19.5% 상승했다. 언뜻 보기에는 많이 올랐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46.8% 상승한 미국 주택가격과 비교하면 훨씬 뒤처진다. 다행인 건 한국의 주택 상황은 미국과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보다는 훨씬 양호하다는 점이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상황은 침울하다. ‘그린 스트리트’가 발표한 미국 상업용 부동산 CPPI 지수를 살펴보면 지난 4년 중 3년이 하락했다. 2021년에만 반짝 24.4% 상승했을 뿐이다. 4년 누적수익률은 -7.5%로 크게 부진하다. 이 4년간 발생한 이자만 생각해봐도 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수익률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미국보다 훨씬 더 심각한 건 유럽 상업용 부동산이다. ‘그린 스트리트’가 발표한 유럽 상업용 부동산 CPPI 지수의 지난 4년간 누적수익률은 -17.3%다. 여기에 대출이자까지 더한다면 투자자들의 손실률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 상장 리츠 주가는 폭망
리츠(REITs)란 여러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오피스, 호텔, 물류센터 등의 부동산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부동산투자회사다. 부동산 투자비율이 총자산의 70% 이상이어야 하고 배당 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한다. 한동안 잠잠했던 리츠시장은 연금저축계좌에서도 리츠 투자가 허용된 2022년부터 큰 폭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국에 상장된 공모 리츠의 수익률 상황은 어떨까. 부진하다. 일부 리츠의 2023년 연간 손실률은 20%가 넘는다. 주식과 달리 리츠는 안전하다는 선입견이 와르르 무너지는 결과물이다. 다행히 4분기부터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수익률이 간신히 약보합 수준까지 올라왔다.
한국증시에는 총 23개의 공모 리츠가 상장돼 있다. 이들의 평균 배당률은 2023년 11월 말 기준 약 8.3%다. 어마어마한 수익률이다. 배당률이 이대로만 유지된다면 은행 예금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는 과거 배당금을 기준으로 환산한 수치다. 만약 공실이나 높아진 대출이자로 인해 향후 배당금을 축소하게 되면 배당수익률은 뚝 떨어지게 된다. 일명 ‘배당 컷’이다.
한국 공모 리츠 중 시가총액이 가장 큰 종목은 ‘SK리츠’다. 광화문 서린빌딩, 종로타워, 전국 주유소 등을 기초자산으로 운용한다. 과거의 배당금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예상 배당수익률이 무려 9%다. 하지만 2023년 연초 대비 주가는 -26%다. 주식시장은 배당금 삭감, 즉 ‘배당 컷’을 예상하는 상황이다.
시가총액 2위인 ‘제이알 글로벌리츠’는 벨기에 브뤼셀의 파이낸스 타워 등을 기초자산으로 운용한다. 대부분의 유럽 빌딩들이 공실로 인한 가격 폭락을 피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선방하고 있다. 예상 배당률도 8.9%로 높은 편이다. 2023년 연초 대비 주가도 보합 수준으로 양호하다.
3위인 ‘롯데리츠’는 롯데그룹이 보유한 백화점, 마트, 아울렛을 기초자산으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배당수익률이 7%를 상회한다. 하지만 쿠팡으로 인해 오프라인 리테일 부동산의 장기 전망을 어둡게 보는 투자자가 많다. 따라서 2023년에 주가는 -24%를 기록했다.
결론적으로 2023년에 한국 리츠 대부분은 수익률이 부진한 상황이다. 특히 반등폭이 컸던 한국과 미국의 주가지수와 비교해 보면 수익률 격차가 현격하다. 2023년에 주식 대신 리츠를 선택한 투자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무척 후회가 막심한 상황이다.
미국 리츠가 한국 리츠보다는 양호
그렇다면 미국에 상장된 부동산 리츠들의 상황은 어떨까. 흉흉한 언론 기사들과는 좀 결이 다르다. 시가총액 상위 5위권 이내 미국 리츠의 2023년 실제 수익률은 의외로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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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1위인 ‘프로로지스’의 기초자산은 글로벌 물류센터다. 온라인 커머스 시장의 발달에 따라 오피스빌딩과 달리 오히려 공실률은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2023년 연간 수익률은 5%를 기록했다. 나스닥 지수의 폭발적인 수익률에 비하면 아쉽지만 그래도 선방한 편이다.
시가총액 2위인 ‘아메리칸 리츠’의 주력은 통신망 공간(셀타워) 임대다. 2023년에 상위 5개 리츠 중 가장 부진한 1%대의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3위인 ‘에퀴닉스’는 세계 최대의 데이터센터 리츠로 27%의 양호한 수익률을 보였다.
4위인 ‘웰타워’는 헬스케어 부동산 리츠다. 가장 양호한 39%의 수익률을 자랑한다. 5위인 ‘사이먼 프로퍼티 그룹’의 기초자산은 쇼핑몰과 프리미엄 아울렛이다.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12%라는 양호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미국 시가총액 상위 리츠들은 어려운 시장 상황 속에서도 선방하고 있다.
한국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도 크게 부진
흥미로운 건 한국 금융사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실력이다. 미국에 상장된 상위 5개 리츠의 수익률보다 훨씬 저조하다. 전문가라는 단어가 무색한 수준이다. 물론 고금리와 재택근무 활성화는 예상하기 어려웠던 변수다. 어쨌든 해당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부진한 수익률이 불만스러운 상황이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2018년 말에 1억8500만파운드(약 2775억원)에 투자한 영국 런던 원폴트리 빌딩의 2023년 11월 현재 평가손실률은 20% 이상으로 추정된다. 영국 런던의 생크추어리 빌딩에도 투자한 이 투자회사는 영국 런던의 빌딩 가격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부동산 투자의 귀재로 손꼽혀 왔던 이지스자산운용도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2018년에 6억7500만유로(약 8800억원)를 투자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트리아논 빌딩 가격은 2023년 11월 현재 25% 이상 급락한 상태다. 펀드는 빌딩담보대출을 기본적으로 설정한다.
따라서 빌딩 가격이 하락하면 레버리지 효과로 손실이 더 커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파생형)’의 평가손실률은 반 토막 이상 마이너스인 상태다. 최근 대주단에서 빌린 차입금의 만기가 3개월 연장돼 한숨을 돌렸지만 상당 부분의 손실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 한국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016년에 7억9300만달러(약 9500억원)를 투자한 미국 텍사스 댈러스 소재의 오피스 4개 동도 부동산시장 침체를 피해가지 못했다. 결국 2023년 11월에 매수가격보다 낮은 5억8000만달러(약 7000억원)에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환율을 고려하지 않은 오피스 매각 손실률은 약 27%다.
다행히 달러 강세로 인해 발생한 환차익과 임대수익으로 일부 손실을 커버한다 해도 원금 손실은 불가피하다. 그 뒤에 투자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파크 센터원 빌딩’의 가격 하락도 심상치 않다. 수익률을 잘 따져보면 무위험 투자인 은행 예금보다도 훨씬 못하다. 7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려온 펀드 투자자들에게는 허탈한 결과다.
한국 부동산시장 거래대금은 얼마일까?
미국과 유럽의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도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거래량이 활발한 상황은 아니다. 매도인은 호가 낮추기를 꺼리고 매수인은 높은 호가에 매수하기를 꺼린다. 이런 이유로 2022년과 2023년의 상업용 부동산 거래량은 급감했다. 일반 아파트나 오피스텔 거래량 역시 크게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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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수치로 살펴보자. 프롭테크 스타트업인 ‘부동산 플래닛’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의 부동산 전체 거래량은 전년도의 192만건에서 108만건으로 40% 급감했다. 아파트 거래량은 전년 대비 52%나 줄었다. 같은 기간에 빌딩이나 상가도 30% 감소했다. 다행히 2023년부터는 감소세가 확 둔화됐다.
2023년 9월 말 기준 아파트 거래량은 38만건이다. 연말까지로 추정해 보면 전년도인 2022년 거래량보다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빌딩이나 상가 거래량은 4만건으로 전년도보다 더 축소됐다. 필수재인 주거용 부동산보다는 사치재에 가까운 상업용 부동산의 회복이 더 느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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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전체적으로 부동산에 실제 투자된 금액은 얼마일까.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연간 부동산 거래대금은 확인 가능하다. 부동산 플래닛의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시장이 가장 활황이었던 2020년에는 총 565조원의 거래대금을 기록했다. 2021년에도 530조원으로 양호했다.
반면 부동산 침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2년에는 거래건수 감소와 더불어 거래대금도 284조원으로 급감했다. 전년 대비 감소율은 46%다. 2023년 들어 다소 회복됐지만 그 폭은 미미하다. 전체적인 부동산 거래금액의 증감을 유심히 살펴보면 부동산시장의 큰 흐름과 분위기 파악에 도움이 된다.
미국과 달리 서울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은 최저?
빌딩 가격을 결정하는 2개의 굵직한 축은 금리와 공실률이다. 현재 금리가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2024년이 되면 금리 인하가 불가피할 거라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워낙 많다. 또 미국과 한국의 상업용 부동산 분위기는 공실률 상황에서 차이가 크다. 공실 천국인 미국과 달리 한국의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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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울지역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 감소는 인상적이다. 서울 지역의 공실률은 2022년 1분기에 7.1%를 기록했지만 1년 6개월 만인 2023년 3분기에는 5.5%로 뚝 떨어졌다. 전국 공실률 8.9%와 비교하면 서울지역 공실률이 상당히 양호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같은 기간 도심핵심지로 범위를 좁혀보면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은 더 극적으로 줄어든다. 교통과 개발 호재가 즐비한 여의도는 자연 공실률로 간주되는 3%보다도 낮은 2.9%의 믿어지지 않는 공실률을 기록 중이다.
광화문도 7.9%에서 4.4%로 확 좋아졌다. 강남대로도 8%에서 5.2%로 낮아져 상당히 안정적이다. 결론적으로 기관투자자들의 전유물인 대형 빌딩의 공실률 감소 현상은 확연하다. 임대차 시장에서 여전히 빌딩 수요가 탄탄함을 알 수 있다.
서울 꼬마빌딩 임대료는 역마진...그래도 줄 서는 이유
종부세 부담이 큰 주거용 부동산과 달리 빌딩의 경우 정책이 급변할 가능성이 적다. 따라서 큰 욕심 없이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에게 빌딩은 여전히 인기다. 빌딩을 소유하면서 임대료를 받으면 세금과 건강보험료 상승 등 비용 부담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안정감 또한 높다.
한국의 대표적 상업용 부동산으로 꼽히는 서울 꼬마빌딩 시장 상황은 어떨까. 개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꼬마빌딩 규모는 작게는 20억원, 크게는 100억원 내외다. 그런데 서울 기준 임대수익률은 3%는커녕 2%에도 미달하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 현재 빌딩 담보 대출금리는 4~6% 수준이다. 어마어마한 역마진이다.
엄청난 역마진에도 불구하고 경험이 많은 부동산 투자자들은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무도 현재의 고금리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임대료 수치로만 살펴보면 지금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서울 꼬마빌딩에 투자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따라서 지난 수년간 끝 모르고 치솟았던 꼬마빌딩 가격도 작년부터 소폭 조정받고 있다.
하지만 빌딩 매수 대기자 입장에서는 빌딩 시장 불황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 여전히 시세보다 저렴한 빌딩을 매수하는 건 어렵다. 애초에 여유자금으로 빌딩을 매수했던 보유자들 입장에서 보면 대체로 시장이 안 좋을 때는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또 정보의 비대칭성도 크다. 어쩌다 급매가 나와도 알음알음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인맥 없는 평범한 매수 대기자까지 시세보다 낮은 물건에 대한 정보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결론적으로 가격이 하락 추세인 요즘에도 좋은 꼬마빌딩을 매수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격 폭락한 한국 리츠, 이제는 매수할 때?
임대수익률이 극악인 소규모 꼬마빌딩이나 상가와 달리 1000억원 이상 초대형 빌딩은 여전히 임대수익률 4~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 오피스 공실률이 매 분기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공실률이 하락하면 중장기적으로는 임대료가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임대수익률 기준으로 접근한다면 꼬마빌딩보다는 초대형 빌딩 위주로 투자하는 리츠가 더 유리하다.
빌딩 투자와 비교했을 때 리츠 투자의 가장 큰 착시효과는 뭘까. 현재 평균 8%가 넘는 리츠의 높은 배당률이 사실상 레버리지가 포함된 수익률이라는 점이다. 리츠는 부동산을 편입할 때 자체적으로 추가 대출을 받아 수익을 극대화하는 투자전략을 활용한다. 따라서 금리에 민감하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한국 상장 리츠들의 거래가격은 2023년에 큰 폭 하락해 있는 상태다. 기존 고정금리 대출의 만기 도래 시 금리 상승은 정해진 미래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올라갈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리츠 투자가 유효할까. 최고의 호재는 낙폭 과대라는 말이 있다.
이미 대출금리 인상에 따른 비용 증가 우려로 리츠 거래가격이 많이 하락해 있다. 모든 우려가 선반영돼 있는 상황이다. 2024년 상반기까지는 유동성 문제로 급매 처분될 빌딩도 일부 존재한다. 하지만 2024년 중에 금리 인하로 수급심리가 개선된다면 어떻게 될까. 1년 뒤인 2024년 말의 리츠 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는 건축비마저 폭등했다. 따라서 3년 전에 완공한 빌딩을 만약 지금 시점에서 다시 건축한다고 가정해 보면 건축비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이런 이유로 이미 빌딩을 보유하고 리츠는 건물가치 상승도 노려볼 만하다.
이미 2023년 11월에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 종결을 시사하며 리츠 가격도 반등을 시작했다. 리츠는 금리에 매우 민감한 상품이다. 이는 금리인상기뿐 아니라 금리인하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과감한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에서 임대수익률 3%가 넘는 좋은 위치의 꼬마빌딩을 찾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막대한 투자자금도 필요하다. 따라서 꼬마빌딩 대신 자금 부담이 적고 가격도 많이 하락한 리츠에 투자하는 전략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리츠 투자 시 주의할 점은 높은 변동성이다. 리츠는 변동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단지 주식보다 변동성이 작을 뿐이다. 일례로 코로나19 전염병 유행 초기에 공포감으로 한국증시가 폭락했던 2020년 1분기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이 당시 한국증시에 상장된 대표 리츠들의 평균 하락률은 25%였다. 또 금리 인상이 가팔랐던 2022년에도 리츠 가격은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한국 코스피 지수의 하락률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빌딩 가격 하락은 소폭에 불과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위기 상황이 왔을 때 리츠의 변동성이 빌딩보다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투자자 본인의 신용도가 높아 빌딩 투자 시 낮은 금리에 대출금을 조달할 수 있고 저평가된 빌딩을 합리적인 가격에 매수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굳이 리츠에 투자하기보다는 빌딩에 직접 투자하는 게 더 유리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은행 예금보다는 가격이 많이 하락한 리츠에 투자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특히 연금저축 계좌를 적극 활용한다면 덤으로 절세효과도 얻을 수 있다. 공격적인 주식투자가 부담스럽다면 한국과 미국에 상장된 리츠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1월호
비트코인과 나스닥이 승자…2024년 대박 투자는?
2023년 전 세계 주식 상승...나스닥 지수 36%↑
중국 3년 연속 마이너스...일본 집중 매수
“인공지능 주식 가진 자가 2024년 지배”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투자의 세계에서 1년은 길고도 긴 시간이다. 2023년 연말의 금리 수준이나 주가 수준을 2023년 초에 정확히 예측해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만약 있다 하더라도 그 과정까지 모두 맞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식, 채권, 원자재, 부동산 가격은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변화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2023년 주요 자산 중 수익률 1위는?
2023년의 자산시장은 2022년보다는 훨씬 좋았다. 하지만 쉬운 한 해는 아니었다. 예상과 달리 더 오른 기준금리, 크게 내리지 않은 유가와 원자재 가격으로 애를 먹은 한 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한 번쯤은 2023년 각자의 수익률을 꼼꼼히 따져볼 시기다.
2023년 주요 자산의 수익률 순위를 확인해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2023년에 주거용 부동산을 포함한 우리의 포트폴리오는 과연 시장을 이겼을까. 이긴 사람도 있고 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23년의 재테크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건 바로 비트코인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연초 예상과는 다른 엉뚱한 결과다.
비트코인은 2023년 초부터 11월 말까지 무려 128% 폭등한 3만7700달러를 기록했다. 12월 들어서도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12월 6일에는 한때 4만40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연초 대비 수익률이 무려 165%까지 치솟았다. 한국 거래소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6000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주가지수와 비트코인을 단순 비교하는 건 반칙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도 엄연히 암호화폐 시장을 대표하는 지수다. 암호화폐 시장 점유율이 절반을 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2023년에 화려한 수익률을 보인 건 역설적으로 2022년에 -64%라는 최악의 수익률을 보인 기저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비트코인에 이어 두 번째로 수익률이 높았던 지수는 2023년에 36% 상승한 나스닥 지수다. 역시 나스닥 지수에 베팅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수많은 운용사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초과수익을 내기 위해 미국 외 다른 나라에 분산 투자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미국 나스닥 지수보다 더 좋은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 단기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유가 뭘까. 첫 번째 이유는 미국에 최첨단 혁신기술 기업들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꼭 미국 기업이 아니더라도 기술력이 높은 글로벌 기업들은 가급적 나스닥에 상장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나스닥 시장은 세계 최고의 우수 기업들을 대거 유치하고 있다. 이게 바로 미국증시의 힘이다.
2023년은 한국증시 또한 강한 한 해였다. 코스피는 13%, 코스닥은 23% 상승했다. 2023년 초에 신규투자한 투자자라면 만족할 만한 수익률이다. 하지만 한국증시 또한 전년도인 2022년에는 코스피가 -25%, 코스닥이 -34%라는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를 감안하면 회복세가 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2021년의 고점에 물린 투자자들의 손실은 회복되지 않았다.
2023년에는 일본증시도 좋았다...왜?
일본증시는 2023년에 28% 급등했다. 주식시장이 폭락했던 2022년에도 상대적으로 선방해 하락률이 3%에 그쳤다. 최근 2년 연속으로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뭘까.
일본증시의 강세는 기록적인 엔화 약세로 주력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자동화설비, 로봇 분야의 업황 회복세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또 여행수지 개선과 자사주 매입 등의 호재도 증시 상승에 힘을 보탰다. 2023년 일본증시의 섹터별 수익률은 유틸리티(전력 등), IT, 경기소비재, 산업재 순으로 성과가 좋았다.
유틸리티 섹터의 예상 밖 좋은 성과는 전력가격 인상 호재 덕분이다. 워런 버핏이 집중 매수해 화제가 됐던 5대 상사의 수익률도 양호한 편이다. 향후 유망 섹터로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수혜를 볼 반도체 섹터를 들 수 있다. 또 전통적으로 강했던 자동차 산업과 로봇 산업도 여전히 유망하다. 고령화의 최대 수혜 섹터라 할 수 있다.
2024년에는 일본의 저평가된 환율이 반등해 환차익까지 얻을 거라 기대하는 투자자들도 있다. 일본의 환율이 다시 강세로 돌아설 거라는 전망은 올 초에도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틀렸다. 2024년에도 환율의 방향성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투자자들이 주의할 부분이다.
일본증시가 과거의 침체에서 벗어나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미국 빅테크 기업과 비교해 봤을 때 2024년에 더 높은 성과를 기록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포트폴리오 다각화 측면에서는 일본증시 분산투자도 유효해 보인다.
인도증시 2년 연속 양호...상승 탄력은 둔화
인도증시는 2022년에 전 세계 대부분 나라의 주가지수가 하락할 때도 독야청청 5%의 상승세를 보였다. 2023년에도 10% 상승해 2년 연속으로 양호한 수익률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증시가 계속 상승해온 영향으로 상승 탄력이 둔화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2023년에 미국 나스닥 지수의 36% 상승률과 비교하면 격차가 큰 편이다.
인도는 이제 중국에 이어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인도의 인구 규모는 드디어 14억명을 돌파해 중국을 추월했다. 인도에 향후 예정된 빅 이벤트는 2024년 4월의 총선이다. 이 총선 결과에 따라 인도의 차기 총리가 정해진다.
그동안 인도경제를 잘 이끌어온 모디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만약 모디 총리의 3연임이 현실화된다면 인도경제는 앞으로도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갈등 영향으로 중국에서 탈출하는 제조기업들이 늘고 있다. 애플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중 상당수가 대안으로 인도에 공장을 만들고 있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개편 역시 인도의 제조업 육성에는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이유로 인도의 발전은 정해진 미래다. 하지만 낙관적 전망과 달리 아직 인도의 제조업 비중은 15%에도 못 미친다. 또 계속되는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 적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결론적으로 인도증시가 미국 빅테크 기업들보다 높은 수익률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국증시 3년 연속 하락...투자자 대탈출
중국증시는 배신의 역사로 점철돼 있다. 중국 상하이 지수는 2022년에 -15%에 이어 2023년에도 -2%의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또 한국 ELS 투자자들에게는 단골 기초자산으로 익숙한 홍콩H지수의 하락률은 더 무시무시하다. 2021년 -23%, 2022년 -13%, 2023년에 -19%로 3년 연속 큰 폭 하락했다.
이에 따라 2024년 상반기 중 만기 도래로 손실이 예상되는 ELS 규모가 약 3조원으로 추정된다. 물론 향후 주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긴 하다. 현재는 금융감독원까지 나서서 대책을 고민하고 있을 정도다. 의외의 반전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코로나19로 꽉 막힌 통제가 풀리면서 중국경제 회복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하지만 중국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한 여러 가지 부양책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다. 미·중 무역분쟁, 수출 감소, 부동산 침체, 지방정부 부채 등 악재가 산적해 있다. 중국증시 하락에 실망한 한국 투자자들의 대탈출도 이어지고 있다.
유럽증시는 평이, 유가 상승은 제한적
유럽의 ‘유로스톡스 50’ 지수는 2022년에 12% 하락했지만 2023년에는 15% 상승했다. 2년 누적수익률로 따져보면 반등세가 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럽은 루이비통(LVMH), 에르메스 등 일부 명품 기업과 제약·바이오 기업을 제외하고는 성장이 기대되는 산업이 많지 않다. 틈새시장으로만 활용하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베트남은 2023년에 9%, 인도네시아는 3% 상승에 그쳤다.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경제성장 기대감은 높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한계점에 대한 명확한 상황 인식도 중요하다. 틈새시장보다는 미국과 같은 핵심 국가의 글로벌 1등 기업 투자에 집중하는 전략이 더 유효해 보인다.
WTI 원유가격은 요란한 공포심 조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락했다. 2022년에는 8% 상승했지만 2023년에는 -5%로 부진하다. 일반 개인투자자가 원자재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전략이다. 롤오버 비용도 만만치 않다. 또 2020년처럼 유가 자체가 마이너스로 가버리는 믿기지 않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천연가스 역시 요란한 기대감과 달리 2023년에만 38%의 손실을 기록 중이다. 특히 올겨울은 유럽 주요 국가들이 겨울에 대비해 천연가스를 창고에 꽉꽉 채워놓은 상태다. 만약 날씨마저 평년보다 따뜻한 상황을 맞이하면 더 폭락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어리석은 투자가 원자재 투자라는 점을 늘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금리 민감한 채권과 리츠도 부진...2024년 반등?
금리에 가장 민감한 섹터가 바로 장기채권과 상업용 부동산이다. 미 10~20년 국채 ETF는 올해 -3%의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지수는 -7%, 유럽 상업용 부동산 지수도 -8%의 손실을 보였다. 특히 2023년 초에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30년물 장기채권에 베팅했던 공격적인 성향의 투자자들은 예상 못한 연준의 1% 포인트 금리 인상에 올 10월까지 내내 마음을 졸여야 했다.
다행히 2023년 11월부터 연준이 금리 동결 시그널을 보내면서 본격적인 반등이 시작됐다. 특히 금리 변화에 가장 확실하게 반응하는 장기채권의 반등세는 뚜렷하다. 리츠 역시 마찬가지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 2024년에는 그동안의 금리 인상으로 고전했던 장기채권과 리츠 시장도 살아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주식투자가 부담스러운 투자자들은 이쪽 섹터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거와 달리 요즘 투자자들은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중국, 인도, 베트남, 유럽 등 세계 각국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 또 주식 외에도 채권, 리츠, 원자재, 금 등 다양한 종류의 자산에 투자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투자 가능 대상이 많아질수록 투자지식이 높지 않은 사람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잘 모를 때는 1등 주식에 투자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세계 금융의 중심은 미국이다. 세계 1등 주식들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 아마존, 엔비디아, 메타(페이스북), 테슬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다. 물론 이들 중목은 올해 무척 많이 올랐다. 그렇다면 2024년에 이 종목들은 쉬어갈까.
인공지능 주식을 가진 자가 2024년을 지배한다
2024년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섹터는 어디일까. 당연히 인공지능 분야다. 인공지능 주식에 투자한 사람이 2024년을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분야가 있다. 바로 암호화폐다. 4년 만에 오는 비트코인 반감기를 놓치면 엄청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릴 수 있다.
이 2개 분야가 2024년을 이끌어갈 쌍두마차다. 나머지 산업들은 그냥 거들 뿐이다. 극심한 저성장 속에서 폭발적으로 상승할 기회를 잡으려면 이 2개 분야에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관련 미국 대형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미 챗GPT를 손에 넣어 여유로운 마이크로소프트 외에 나머지 모든 빅테크 기업들이 다 해당된다. 이들 모두 유망한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이다. 올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검색시장’과 ‘생성형 인공지능’ 양쪽 시장 모두를 잡으려는 구글의 행보도 주목된다.
인공지능 전쟁 덕에 GPU 가격 폭등의 수혜를 보는 엔비디아, 인공지능 자율주행차의 선두인 테슬라, 자신들만의 인공지능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메타(페이스북), 반 박자 늦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애플과 아마존의 반격 등 주목해야 할 기업들이 넘쳐난다.
물론 지금 언급된 모든 종목들은 2023년에 많이 올랐다. 하지만 2024년에도 이 종목들의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이 인공지능의 도입기였다면 2024년은 인공지능의 개화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2024년에 인공지능과 관련한 투자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비트코인, 2024년에도 1등?
비트코인은 2023년에 매우 인상적인 수익률을 자랑한다. 2023년 12월 5일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이미 4만4000달러를 돌파했다. 연간 수익률이 무려 166%다. 한국 거래소에서도 6000만원을 돌파했다. 감히 다른 어떤 섹터도 따라가지 못할 압도적인 수익률이다.
오른쪽 표는 비트코인의 과거 10년 수익률을 연도별로 나타낸 자료다. 10년간 누적수익률은 5746%로 경이롭다. 중요한 건 반감기 때마다 반복해서 올랐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런 비트코인의 반감기 특성이 매번 투자에 활용돼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급등하는 패턴을 반복해 왔다.
비트코인의 4번째 반감기는 2024년 4월로 예정돼 있다. 4번째 반감기 이후에는 또다시 블록당 채굴보상이 절반인 3.125BTC로 줄어들게 된다. 4번째 반감기를 앞둔 2023년에 비트코인은 이미 166% 폭등했다. 과거와 비슷한 패턴이다. 하지만 클라이맥스는 4번째 반감기인 2024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비트코인은 2024년에 과연 얼마나 상승할까.
보통 평범한 투자자들은 많이 오른 자산에 투자하는 걸 꺼린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그동안 과거 패턴으로 보면 상승이 1년 만에 끝난 적은 없었다. 특히 반감기 상승률은 언제나 인상적으로 높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2024년에도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비트코인은 2024년에 4번째 반감기 도래, 비트코인 채굴량과 금 채굴량의 역전,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가능성 등 굵직한 3가지 호재가 대기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투자자들에게는 2024년 말까지 비과세 혜택까지 주어진다.
이제 2024년의 전망을 딱 2개로 압축해 정리해 보자. 2023년에 투자자들에게 대박을 안겨준 2개의 섹터는 인공지능과 암호화폐였다. 2024년에도 변함없이 대박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은 2가지 섹터는 인공지능과 비트코인이다. 이들 섹터에 집중하는 투자자가 2024년의 재테크 시장에서 승자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투자자들의 2024년 대박 투자를 기원한다.

2023년 12월호
비트코인 보유자 수 급증…네트워크 효과 터질까?
비트코인은 좀비? 절대 안 죽고 안 망해
‘금’보다 ‘비트코인’이 좋은 이유는?
미국 정부는 비트코인을 없앨 수 있을까?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지난 14년간 비트코인이 망할 거라고 저주를 퍼부은 유명인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정말 이들의 말처럼 비트코인은 망했을까. 놀랍게도 안 망했다. 마치 좀비 같다. 도대체 비트코인이 망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비트코인의 간략한 역사와 개념
먼저 비트코인의 역사와 개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베일에 가려진 인물에 의해 2009년 1월 3일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세계 최초로 분산 원장 기반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게 특징이다.
비트코인이 채택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은 은행과 같이 중앙화된 주체 없이도 송금과 거래 확인이 가능하다. 탈중앙화가 비트코인의 핵심이다. 편리한 송금, 위·변조 불가능, 투명한 자금흐름 등이 강점이다. 비트코인은 작업증명(Proof-of-Work) 합의 방식에 의해 채굴된다.
초기에는 일반 컴퓨터로도 비트코인 채굴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현재 전문 채굴자들은 값비싼 맞춤형 장비인 ‘ASIC’을 활용해 비트코인을 채굴한다. 만약 채굴에 성공해서 블록을 생성할 경우 블록당 일정량의 신규 비트코인과 거래수수료를 보상으로 받는다.
그런데 채굴업자들에게 가장 예민한 문제는 뭘까. 첫 번째는 전기료다. 채굴 사업에서 수익이 발생하려면 저렴한 전력 사용이 필수다. 두 번째는 당연히 비트코인의 가격이다. 만약 비트코인의 가격보다 채굴비용이 더 높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로는 감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채굴자들도 버텨내기 어렵다.
비트코인의 탈중앙화가 거의 완벽해진 이유가 뭘까. 비트코인을 만들어낸 사토시 나카모토가 자취를 감춘 영향이 제일 크다. 다른 대부분의 코인들과 달리 비트코인은 창시자가 프로젝트를 관리하지 않는다. 이 점이 비트코인의 탈중앙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다.
보안성도 뛰어나서 이론적으로 비트코인의 해킹은 거의 불가능하다. 유일한 단점은 확장성이다. 비트코인은 ‘초당 거래 수’가 7회 이하로 매우 느리다. 참고로 비자카드는 초당 2000~3000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트코인 뒤에 개발된 이더리움이나 여타 코인들보다 현저히 느린 속도는 약점으로 지적된다.
이에 최근에는 ‘라이트닝 네트워크’라는 확장성 솔루션을 활용해 속도 개선을 시도 중이다. 실제 활성화될 경우 비트코인으로 일상적인 소액결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아직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보안에 취약하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또 비트코인의 작업증명 채굴방식에 너무 많은 전력이 사용돼 비판을 받기도 한다.
숱한 저주·예언에도 불구, 좀비 같은 생명력
이제 비트코인이 왜 좀비라는 평가를 받는지 살펴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이 망할 거라 예언해 왔다. 유명인 중에 비트코인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워런 버핏이 있다. 그의 동료인 찰리 멍거 역시 뜻을 같이한다. 그들은 비트코인의 가치가 0원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또 다른 비트코인 비관론자로는 ‘폰지 사기’라고 주장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학 교수를 들 수 있다. 금 맹신론자인 피터 시프도 매번 비트코인이 대폭락할 거라 주장한다. 하지만 거의 맞은 적은 없다. 세계 최대 운용사 블랙록의 회장인 래리 핑크도 2017년 10월에 비트코인을 “전 세계에서 자금세탁 수요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평가절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핑크 회장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3년에는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며 추앙하고 있다. 심지어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에 블랙록이 앞장서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예언에도 불구하고 지난 14년간 비트코인은 망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엄청난 변동성으로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지만 2023년 10월 말 현재 한국거래소 기준 1개당 4650만원을 기록 중이다.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900조원을 돌파했다. 시총 900조원의 자산이 쉽게 망할 수 있을까. 대마불사다. 게다가 탈중앙화돼 있는 거의 유일한 자산이다. 결국 지난 14년간 끊임없이 저주를 받아온 비트코인은 되레 수많은 신흥 부자들을 만들어냈다.
금보다 희소성·이동성·내구성 뛰어난 ‘디지털 금’
비트코인은 내재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금은 내재가치가 있는가. 이론적으로는 둘 다 내재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남는 건 뭘까. 그냥 둘 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거래되는 거래가격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전통적인 가치저장 수단인 금보다 좋은 이유는 뭘까. 금보다 더 강력한 희소성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총 발행량은 2100만개로 제한돼 있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이아몬드나 금보다 훨씬 더 희귀하다.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비트코인은 이동 편의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100억원이든 1000억원이든 상관없이 버튼 한 번으로 이메일처럼 전 세계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니 이동성 측면에서 금과 비교할 수 없이 편리하다.
내구성 측면에서 살펴보면 금의 내구성은 아주 뛰어나다. 하지만 디지털 형태인 비트코인의 내구성이 좀 더 뛰어나다. 달러는 외견상 내구성이 약하다. 하지만 파손 시 어느 은행이든 교환해 주므로 실질적 내구성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의 유일한 약점은 외환보유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엘살바도르처럼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지정한 국가도 탄생했다. 그래서 더 먼 미래에는 비트코인의 외환보유고 인정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비트코인은 화폐일까? 화폐의 3대 기능은?
화폐의 3대 기능은 교환의 매개 기능, 가치의 척도 기능, 가치의 저장 기능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화폐인가. 비트코인은 현재 화폐가 아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영원히 화폐가 될 수 없을까. 먼 미래에는 화폐가 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엘살바도르의 경우 이미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지정했다. 그렇다면 화폐의 3대 기능 중 비트코인이 가장 취약한 기능은 뭘까. 바로 ‘가치의 척도’ 기능이다.
가치를 평가하려면 비트코인의 가격이 변동 없이 일정해야 하는데 비트코인의 하루 등락률은 어지러울 정도다. 옛날보다는 많이 줄었어도 여전히 변동폭이 크다. ‘가치의 척도’ 기능이 거의 없어 보일 정도다. 물론 이 높은 변동성은 비트코인의 엄청난 매력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은 꾸준히 상승하는 쪽으로 변동해 왔기 때문이다.
또 비트코인은 ‘교환의 매개’ 기능도 약한 편이다. 아직까지 비트코인으로 물건값을 결제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는 페이팔, 블록(스퀘어) 같은 회사들이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비트코인의 결제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라이트닝 네트워크 기술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결제 기능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금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굳이 비트코인으로 꼭 물건을 사고팔아야 할 이유도 많지 않다. 비트코인은 화폐보다 ‘디지털 금’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가치의 저장’ 기능은 어떨까.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 기능에 있어서 금을 포함해 인류가 만들어낸 그 어떤 것들보다 뛰어나다. 주식, 부동산, 금 중 그 어느 것도 비트코인의 탁월한 가치 저장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다.
비트코인은 최초에 0원에서 시작해 2023년 10월 말 기준 4650만원까지 폭등한 상태다. 상승률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다. 비트코인의 등락폭은 크지만 결국 장기적으로는 저점과 고점을 높이면서 계속 성장해 왔다. 결론적으로 비트코인의 가치 저장 기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게 바로 비트코인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강점이다.
격분한 중앙은행들은 비트코인을 없앨 수 있을까?
각국의 중앙은행 수장들은 대부분 비트코인을 싫어하고 저주한다. 화폐발행권은 국가의 고유 권한인데 비트코인이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며 글로벌 화폐 행세를 하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전 세계 금융감독기관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은 단칼에 비트코인 거래를 금지시키며 강한 경계감을 보이고 있다. 인도 역시 비트코인 매매 차익에 대해 30% 세금을 매기고 모든 거래에 1%의 원천징수세(TDS)를 부과하는 강력한 과세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통제의 결과는 개인 간 거래(P2P 거래)의 활성화를 낳았을 뿐이다.
그런데 금융 최강국인 미국 정부가 원하면 정말로 비트코인을 전 세계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동시에 비트코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수 있을까”로 바꿔야 한다. 당연히 그건 불가능하다. 전 세계 200여 개 국가의 이해관계가 모두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모두 알게 모르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규제한다면 반사이익을 얻기 위해 비트코인을 합법화할 나라도 많다. 미국의 금주법은 성공했을까. 마피아들에게 떼돈만 벌어주고 실패했다.
비트코인처럼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빠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품을 미국은 과연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비트코인 거래소는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미국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다. 미국 정부는 결코 비트코인을 없앨 수 없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가 나오면 비트코인은 소멸될까. 안타깝게도 비트코인은 ‘디지털 화폐’라서 폭등하고 있는 게 아니다. 발행량이 2100만개로 제한된 가장 희소성 있는 ‘디지털 금’이라는 사실 때문에 상승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비트코인의 폭등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는 건 바로 종이화폐를 마구 찍어내는 미국과 각 국가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과 미국의 재정적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CBDC의 발행 주체는 심각한 재정적자로 화폐를 남발해온 정부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보다 재정 상태가 훨씬 더 심각한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미 2018년에 ‘페트로’라는 CBDC를 발행했다. 하지만 지금 이 디지털 화폐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중에 잘못 알려진 상식과 달리 CBDC와 비트코인은 아무 상관이 없다.
비트코인이 안 망하는 이유는 ‘네트워크 효과’?
비트코인이 망하지 않는 진짜 이유가 뭘까. 바로 ‘네트워크 효과’ 때문이다. 네트워크 효과란 미국의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이 처음으로 주장한 개념이다. 핵심 내용은 “어떤 상품에 대한 수요가 형성되면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페이스북을 생각해 보자. 페이스북에 100명이 가입했을 때는 그 영향력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을 써본 사람들이 친구들에게 권하면서 가입자 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늘어나게 됐다.
결국 100만명이 되고 1000만명이 된다.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주변에서 페이스북을 쓰는 사람이 안 쓰는 사람보다 더 많아지게 된다. 이런 효과는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에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
결국 네트워크 효과는 서비스의 품질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사용자 수가 곧 힘이다. 사용자들이 몰리면 몰릴수록 사용자 수는 탄력을 받아 계속 더 늘어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지금 전 국민이 카카오톡을 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카카오톡의 가치와 주가도 기하급수적으로 폭등했다.
한국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는 세계 1위인 왓츠앱 메신저앱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SNS가 대세다. 이걸 다 관리하는 회사가 바로 메타(페이스북)다. 그래서 메타의 주가도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폭등한 상태다. 바로 수십억 명에 달하는 막대한 사용자 수의 가치 때문이다. 비트코인이라고 다를까.
다시 바꿔서 질문해 보자. 페이스북이 가치 있는 이유는 뭘까. 내 주위 사람 모두가 페이스북에 가입해 가입자 수가 30억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이론은 이와 비슷하게 팩스기나 미국 달러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씩이라도 가지고 있는 금에도 적용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비트코인도 네트워크 효과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들은 왜 전통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금 대신 비트코인을 사용하는가. 비트코인은 정말로 금보다 더 좋은 투자자산일까.
집 안에 금 없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시대에 금과 비트코인 중 어떤 게 더 선호받는지의 문제다. 1971년의 닉슨 쇼크 이후 금과 달러 간 연관성은 거의 끊어졌다. 그래서 달러 가치가 아무리 폭락해도 그 가치하락만큼 금이 상승하지는 않고 있다. 대신 비트코인은 달러 가치 하락분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폭등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네트워크 효과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비트코인의 또 다른 상승 이유로는 금보다 더 확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웬만하면 집안에 약간이라도 금을 보관하고 있다. 꼭 금괴 형태로만 보유하는 건 아니다. 금은 장신구로도 인기가 많다. 그래서 금반지, 금목걸이, 금귀고리, 하다 못해 굴러다니는 돌반지라도 하나쯤은 있다.
이렇게 사용(보유)자 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이미 금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금을 새로 구매하게 될 사람들의 수는 당연히 비트코인 구매 예정자들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비트코인은 사용자 수 0명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이 비트코인을 사용(보유)하는 사람들의 수가 현저하게 적은 초기였다면 네트워크 효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다. 세상에 새롭게 출현한 수많은 신상품들은 대부분 초기에 망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계점을 넘어서는 게 중요하다.
만약 이미 비트코인 사용(보유)자 수가 임계점을 넘어섰다면? 임계점을 넘어가서 망하지는 않는 상황인데 금 사용자 수보다 비트코인 사용자 수가 아직 훨씬 더 적다면 이는 대형 호재다. 네트워크 효과는 승자독식을 가능하게 한다. 또 네트워크 효과는 정규분포가 아니라 J커브를 그린다. 따라서 비트코인 사용자 수는 앞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비트코인 없는 사람은?
이제 비트코인 사용자 수가 정말로 임계점을 넘어선 게 맞는지 확인해 보자. 전 세계 인구는 80억명이다. 이 가운데 현재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인구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알 수 없다”이다. 주식과 달리 비트코인을 소유한 사람이 몇 명인지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광범위하게 분산돼 있다.
블록체인 연구 회사인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약 4억000만개 이상의 비트코인 주소가 생성돼 있다. 하지만 이는 정답이 아니다. 이 숫자로 실제 비트코인 사용자 수를 추정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많은 주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한계 때문이다.
또 다른 분석을 살펴보자. 암호화폐 지불 게이트웨이인 트리플-에이는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소유자 수를 4억2000만명으로 추정했다. 이는 전 세계 80억명의 인구 중 약 5% 수준이다. 여기에 비트코인의 시장점유율 약 50%를 적용해 보면 대략 2억1000만명 수준이다. 물론 이 역시 추정치일 뿐이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전 세계 80억명의 인구 중 약 2억1000만명인 2.6% 정도만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한국 인구 수 5200만명과 일본 인구 수 1억2200만명을 합친 1억7400만명보다 더 많다.
이 정도로 막대한 사용자 수라면 비트코인이 망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진다. 반면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사용자 수가 J커브를 그리며 급증할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비트코인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전 세계 금 보유자 수는 얼마나 될까. 이것 역시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다. 개인이 매수한 금 데이터를 알아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지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에서 2020년에 미국인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실물 금 소유자는 약 38%로 조사됐다. 일반적인 예상보다 적다.
그런데 미국은 초강대국이고 부유한 나라다. 따라서 이 설문조사만 가지고 전 세계 80억명의 인구 중 38%가 금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절반인 20%로만 추정해도 약 16억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금 소유자 수보다 비트코인 소유자 수가 훨씬 더 적다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게 바로 금보다 비트코인 상승 여력이 더 높은 이유 중 하나다. 결국 어느 시점이 되면 그동안 비트코인을 사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허겁지겁 비트코인을 사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비트코인 추종자들은 이렇게 굳게 믿고 있다. 도대체 그 시기는 언제쯤일까.
시장은 그 시기를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되는 시점으로 보고 있다. 현재 비트코인 ETF 상장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암호화폐 시장이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3년 12월호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될까...필승 투자전략은?
SEC의 변심? 비트코인 ETF 소송 항소 포기
비트코인 ETF 승인 시 200조원 유입 예상
투자 제한 없는 헤지펀드들 빠른 선취매 증가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미국에서 최초로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신탁펀드 형태로 매매할 수 있게 만들어낸 회사가 어디일까. 바로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트다. 그레이스케일은 2013년에 설립된 미국의 암호화폐 신탁펀드 투자회사로 디지털커런시그룹(DCG)의 자회사다.
미국 최초 비트코인 신탁 만든 그레이스케일
그레이스케일은 자신들의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 대신 신탁(위탁자가 수탁자에게 재산의 관리를 맡기는 일)을 설정해 투자자(공인 투자자로 등록된 기관 및 개인)들의 돈을 받아 운영한다. 그런데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신탁(GBTC)은 왜 인기가 많았을까.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신탁’ 펀드는 2015년 5월에 장외거래를 통해 판매가 시작됐다. 미국 최초의 비트코인 관련 상품이어서 인기가 높았다. 또 2020년 1월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신고기업 자격을 획득했다. 이에 공적 기관의 승인을 중시하는 기관투자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신탁펀드는 현재 얼마나 많은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을까. 2023년 10월 말 기준 약 64만개의 비트코인을 보유 중이다. 비트코인 총 수량이 2100만개이니 무려 3.1%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개당 4650만원으로 계산해 보면 평가금액은 약 30조원이다. 다른 펀드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수량이다.
하지만 ETF가 아닌 신탁펀드 형태로는 여러 가지로 현실적인 한계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트러스트’의 단점은 2%에 달하는 높은 연간 운용보수다. 미국 ETF의 평균 수수료율인 0.5%의 4배에 달한다.
또 환매에도 수많은 제약이 있다. 이런 이유로 그레이스케일 펀드 거래가격과 실제 비트코인 가격 간의 괴리율이 한때 40%에 육박하기도 했다. 특히 2021년부터 비트코인 선물 ETF가 다수 승인되면서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신탁펀드 경쟁력은 뚝 떨어졌다.
그레이스케일과의 1심 소송은 SEC 완패
이런 어려움으로 그레이스케일은 2021년에 자사의 비트코인 신탁 펀드(GBTC)를 ETF로 전환하겠다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상장 신청을 했다. 당연히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게리 겐슬러 위원장이 이끄는 SEC는 신청을 반려했다. “현재 비트코인 현물시장에 대한 규제가 없고 시장조작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레이스케일이 이에 반발하면서 바로 SEC와의 소송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드디어 2023년 8월에 소송에 대한 예비 판결이 나왔다. SEC는 소송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ETF 상장 신청을 SEC가 재심사하라고 판결했다.
네오미 라오 판사는 SEC가 이미 과거에 비트코인 선물 ETF 상장을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유사한 상품인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해서만 신청을 반려한 것을 문제 삼았다. 라오 판사는 “그레이스케일의 ETF 신청 거부는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결정”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이 소송 판결 후 SEC는 시장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의외의 결정을 내린다. 바로 항소를 포기해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법원은 예비 판결일로부터 2개월 뒤인 2023년 10월 SEC에 그레이스케일의 현물 ETF 신청에 대한 반려 결정을 철회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면 SEC가 향후에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해 주려는 걸까. 아직은 알 수 없다. SEC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남아 있다. 첫 번째는 그레이스케일의 ETF 상장 신청을 쿨하게 승인하는 방법이다. 이미 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거부 논리는 앞뒤가 안 맞는다는 사실이 법원을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또 다른 거부 이유를 창의적으로 만들어내 계속 승인을 거부하는 방법이다. 아직 SEC가 어떤 꼼수를 부릴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게임 체인저는 블랙록
비트코인 ETF 소송의 주역인 그레이스케일 외에도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그중에서도 단연 주목받는 금융사는 블랙록이다. 블랙록이라는 이름의 무게감 때문이다.
블랙록(BlackRock)은 1988년에 설립된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회사다. 전통적인 펀드 시장 외에 ETF 시장에서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이 거물 금융회사가 2023년 6월에 비트코인 현물 ETF인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의 상장심사를 SEC에 신청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블랙록의 과거 전적을 살펴보면 SEC에 상장 신청한 ETF 576건 중 단 1건을 제외하고 모두 승인을 따낸 바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승인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높아진 이유다.
심지어 2023년 10월 16일에는 암호화폐 전문매체인 코인텔레그래프가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됐다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 이 오보로 10분 만에 비트코인 가격이 10% 가까이 치솟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이후 블랙록이 승인 사실을 부인하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건 그만큼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기만 하면 바로 시장에 진입할 기관투자자들이 줄 지어 대기 중인 게 현실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최종 심사기한?
그렇다면 향후 비트코인 현물 ETF의 심사 일정은 어떻게 될까. 최종 심사기한이 가장 임박한 건 ‘아크 21 셰어즈 비트코인 ETF’다. 2024년 1월 10일이 최종 기한이다. 한국에서 ‘돈나무 언니’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아크 인베스트의 캐시 우드 회장은 게리 겐슬러 위원장을 비난하며 ETF 상장 승인을 압박하고 있다.
시장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 ETF의 최종 심사기한은 2024년 3월 15일이다. 따라서 시장의 초점은 모두 이날에 맞춰져 있다. 물론 성격 급한 투자자들의 경우 2024년 1월의 ‘아크 21 셰어즈 비트코인 ETF’ 심사기한 시점에서 현물 ETF가 승인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블랙록 외에도 피델리티, 인베스코 등 10여 개 금융기관들의 비트코인 ETF 상장 신청이 대기 중이다. 따라서 SEC는 이것들을 한꺼번에 일괄 승인하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비트코인 선물 ETF 대신 현물 ETF가 필요한 이유
미국 증시에 아직 비트코인 현물 ETF는 없지만 비트코인 선물 ETF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는 아직 하나도 승인받지 못한 걸까. 그렇지는 않다.
2021년 2월 세계 최초로 캐나다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있다. 바로 ‘퍼포스 비트코인 ETF’로 티커명은 ‘BTCC’다. 이 ETF는 캐나다 달러와 미국 달러로 각각 거래가 가능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거래량은 미미하다.
또 2023년 8월에는 유럽 최초로 네덜란드에서도 ‘자코비 FT 월셔 비트코인 ETF’가 상장됐지만 친환경 관련 조건이 붙어 있다. 따라서 순수한 비트코인 현물 ETF라 표현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이렇게 캐나다와 유럽에 이미 상장돼 있음에도 꼭 미국에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돼야 하는 이유가 뭘까.
첫째는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의 상징성 때문이다. 미국이 움직여야 전 세계가 움직이고 투자자금도 따라서 움직인다. 둘째로 상장을 승인한 주체의 영향력 차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권위는 막강하다. 반면 캐나다와 유럽의 경우 영향력이 미미한 캐나다와 네덜란드 금융당국이 ETF의 승인 주체라는 점에서 임팩트가 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기관투자자들의 경우 비트코인 현물 ETF 대신 대안으로 선물 ETF를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선물 ETF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바로 롤오버 비용이다. 선물은 보통 만기가 3개월 단위로 정해져 있어 만기 때마다 근월물 계약으로 갈아타야 한다. 만약 이 시점에 맞물려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롤오버 비용이 급증할 수 있다. 따라서 장기 투자에는 잘 맞지 않는 구조다.
수수료에 민감한 기관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선물 ETF보다 현물 ETF 장기투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반면 개인투자자의 경우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 비트코인 실물을 직접 매수할 수 있다. 따라서 현물 ETF든 선물 ETF든 기본적으로 수요가 높지 않다. 단지 보안 측면에서 좀 더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비트코인 ETF를 활용할 수는 있다.
추가로 개인투자자의 경우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 계좌 편입을 위해 ETF 형태의 비트코인 상품이 필요하다. 이런 수요층은 전 세계적으로 상당하다. 장기투자 관점에서는 당연히 롤오버 비용이 높은 선물 ETF보다는 현물 ETF가 더 유리하다.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가능성 높은 이유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검토 중인 SEC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투자자 보호다. SEC는 비트코인 ETF 승인을 위해서는 “비트코인 현물에 대한 상당한 규모의 규제 시장과 포괄적인 감시를 공유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블랙록은 미국 1위 암호화폐거래소인 코인베이스와 감시공유계약(surveillance sharing agreement)을 체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SEC가 지난 6월에 이미 ‘미등록 증권’의 중개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코인베이스를 제소한 상황이라 문제는 더 복잡하다.
그런 와중에 2023년 10월 23일에 블랙록이 상장 신청한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현물 ETF(티커 IBTC)’가 미국 증권예탁결제원(DTCC)에 등록됐다. 이에 따라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잠재적 승인을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또 블랙록이 이미 상장에 대비해 비트코인 현물을 매수 중일 거라는 관측도 있다.
여러 정황상 그 어느 때보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 가능성은 높은 상황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SEC의 의지만 남은 셈이다. SEC가 이 세상의 모든 암호화폐 중에서 그나마 증권성이 없다고 명확히 밝힌 건 비트코인이 유일하다. 따라서 SEC의 상장 반대 명분은 점점 더 궁색해지고 있다.
현재 상장돼 있는 선물 비트코인 거래 현황은?
만약 비트코인 현물 ETF가 정말로 승인된다면 유입자금 규모는 얼마나 될까. 자금이 얼마나 유입될지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현재까지 승인된 비트코인 선물 ETF나 세계 최초의 캐나다 비트코인 현물 ETF 규모로만 보면 너무 큰 기대는 무리일 수 있다.
비트코인 선물 ETF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프로셰어즈 비트코인 스트래티지 ETF’의 시가총액은 2023년 10월 말 기준 약 1조5700억원(13억달러)이다. 실제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800조원을 넘으니 단순 비교하면 고작 0.2% 수준이다. 세계 최초 비트코인 현물 ETF로 캐나다에 상장된 ‘퍼포스 비트코인 ETF’의 시가총액도 1조5700억원(13억달러)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비트코인 ETF의 시장 규모가 일반적인 기대보다 작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선물 ETF보다 현물 ETF의 수요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은 확실하다. 현재 캐나다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는 금융 중심지인 미국이 아니라서 수요가 제한적이라는 한계점이 있다. 그럼에도 비트코인 상승으로 캐나다 현물 ETF에 대한 수요마저도 증가하는 추세다.
따라서 앞서 상장된 비트코인 관련 ETF들의 규모만 가지고 향후 미국에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시의 시가총액 규모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미국에 상장되는 비트코인 현물 ETF는 유럽이나 캐나다와 달리 파급효과가 상당할 전망이다. 본격적인 비트코인 대중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기관투자자들의 비트코인 투자 현황은?
암호화폐 정보회사인 코인게코(Coingecko)에 따르면 2023년 10월 말 기준 상장기업들이 보유 중인 비트코인은 총 23만9494개다. 전체 비트코인 물량의 1.23%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상당히 적은 수량이다. 아직까지도 상장기업들의 비트코인 보유 물량이 적은 이유는 회계 처리, 보관, 보안 등 여러 까다로운 문제들을 처리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상장기업 중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1위 기업은 바로 마이크로스트래티지다. 이 회사는 정보기술 컨설팅 업체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다. 비트코인 총 보유물량은 0.75%로 나머지 9개 기업을 모두 압도한다.
CEO였던 마이클 세일러는 비트코인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레버리지까지 활용한 무리한 비트코인 투자 방식이다. 그는 회사의 현금성 자산 대부분을 비트코인에 ‘올인’했다.
게다가 투자금액 중 일부는 전환사채로 조달했다. 결국 빚을 내서 비트코인을 산 셈이다. 이는 합리적인 자산배분이 아니다. 결국 그는 몰빵 투자의 대가를 치렀다. 비트코인이 하락을 거듭하던 2022년 8월에 CEO 직을 사임했다. 물론 이후에도 이사회 의장 직을 유지하며 비트코인 매수에 몰두하고 있다.
또 눈길을 끄는 건 비트코인 보유 상장기업 순위 10위에 한국 게임회사인 넥슨이 랭크돼 있다는 점이다. 넥슨은 한국이 아닌 일본 도쿄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넥슨의 비트코인 평균 매수단가는 약 6500만원 수준이다. 투자자들이 지금 비트코인을 매수해도 넥슨보다는 싸게 매입하는 셈이다.
그런데 언뜻 봐도 상장기업 중 비트코인 투자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유가 뭘까. 당연히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처럼 언론의 주목을 받기를 원하는 상장기업 CEO는 많지 않다. 비트코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과 내부 규정 문제는 부담스럽다. 차라리 투자를 안 하는 게 더 속이 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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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회사, 정부, ETF 등을 통틀어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은 앞에서 설명했던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신탁’이다. 보유 비중이 무려 3.07%다.
그런데 의외로 보유 순위 2위는 미국 정부다. 0.99%를 가지고 있다. 설마 미국 정부도 비트코인을 매수한 걸까. 그건 아니다. 주로 미국 법무부와 국세청이 해커나 랜섬웨어 범죄자들에게서 압수한 물량이다. 오래전에 파산한 마운트곡스 거래소 보유물량이 무려 20만개로 0.95%의 비중인 것도 눈에 띈다. 또 비트코인을 금지한 중국 정부가 0.92%, 한창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정부가 0.22%의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현물 ETF 상장되면 기관투자자 자금 유입될까?
도대체 비트코인에 투자한 기관투자자들의 총 보유물량은 얼마나 되는 걸까. 비트코인 총 발행물량의 9.25%인 194만개 수준이다. 희망적인 건 향후 현물 비트코인 ETF가 상장될 경우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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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블랙록, 피델리티, 인베스코 등이 주도하는 비트코인 현물 ETF들이 실제로 대거 상장된다면? 그동안 눈치만 보고 있던 기관투자자 자금이 대거 유입될 것이 기대된다. 기관투자자들은 전통적으로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으로 현금성 여유 자산을 운용해 왔다.
그런데 냉정히 볼 때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가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외 한국 등 전 세계 대부분 국가들의 재정적자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는 이미 구조적인 문제가 돼버렸다. 따라서 전통적인 포트폴리오 대신 큰 폭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비트코인은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자산 역할을 한다.
비트코인 기관투자자 보유 비중이 10%에도 못 미치는 지금의 상황은 개선될 여지가 많다. 향후 기관투자자들이 보유현금의 5% 정도만 비트코인으로 바꿔놓는다고 해도 그 수요는 어마어마하다.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의 기관투자자 보유 비중이 30%로 상승한다면 어떻게 될까. 추가 유입가능 자금은 200조원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이미 투자 제한이 없는 헤지펀드들의 경우 비트코인 매수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국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 대응 전략 중요
2024년 비트코인이 포트폴리오에 없다면 대상승의 기회를 놓칠 위험이 있다. 2024년에는 비트코인의 현물 ETF 상장과 4번째 반감기라는 쌍끌이 호재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의 기관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회계 처리와 보관이 까다로운 비트코인 현물을 직접 매수하는 선택은 쉽지 않다. 따라서 비트코인 선물 ETF를 통해 미리 비트코인 포지션을 가져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도 2024년의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이 없다면 수익률 측면에서 아쉬움이 클 수 있다. 따라서 자산의 5% 정도는 비트코인으로 바꿔놓는 게 현명한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전 CEO 마이클 세일러처럼 레버리지까지 일으켜 비트코인에 올인했다가는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큰 자산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보유하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2023년 12월호
재산권 행사 제한땐? 부동산 처분은?...비트코인과 전쟁의 상관성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때 비트코인 올랐다고?
중국 탈출 원하는 부자들의 대안은 비트코인
비트코인 해외 송금은 외국환관리법 위반일까?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믿기지 않게도 최근 들어 전쟁 발발이 일상화되고 있다. 2022년 2월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기습 침략했다. 또 2023년 10월에는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민간인들까지 납치해 결국 양국 간에는 지상전이 진행 중이다. 의외로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러 - 우 전쟁과 비트코인 상관관계 의외로 낮아
비트코인이 등장한 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논쟁적인 주제가 있었다. 바로 전쟁이 일어나면 비트코인이 상승할지 여부였다. 이 의문을 해결해준 게 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이전까지는 현대사회에서 실제로 인명 피해가 막심한 대규모 전쟁을 시작할 지도자는 없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런 상식을 뒤엎은 게 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아무도 예상 못한 대사건이었다. 놀랍게도 푸틴과 같이 자국민의 인명 피해를 크게 개의치 않는 지도자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이 전쟁으로 현재까지 러시아군 사상자가 30만명, 우크라이나군 사상자가 2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이런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규모로는 비트코인이 크게 상승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비트코인 가격은 전쟁 직전인 2021년 11월에 6만9000달러로 사상 최고점을 찍었고 이후 추세적으로 하락했다. 최고점으로부터 2개월 뒤인 2021년 1월 말에는 -44%인 3만8500달러까지 폭락했다.
이후 2022년 2월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4만5500달러까지 약 18% 상승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비트코인의 추세적인 하락을 막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미국이 국제결제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를 막아버려 러시아가 달러 대신 우회적으로 비트코인을 일부 활용했음에도 그랬다.
비트코인 가격은 이후 계속 하락해 전쟁이 한창이던 2022년 12월 말에는 최저가인 1만6500달러까지 대폭락했다. 최고점 대비로는 -76% 폭락한 수치다. 전쟁 발발 직전인 2022년 1월 말의 3만8500달러에 비해서도 -57% 폭락했다. 이 수치들로 볼 때 전쟁과 비트코인의 상관관계는 의외로 낮았다.
하마스-이스라엘 지상전 때 비트코인 올랐지만
2023년에 들어서면서 폭락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큰 폭 반등을 시작했다. 2023년 초에 1만6500달러로 시작한 비트코인 가격은 2023년 9월에는 2만7000달러까지 폭등했다. 상승률이 무려 64%다. 이후 2023년 10월에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및 민간인 납치가 자행됐다. 이로 인해 결국 지상전으로까지 확대됐다.
이 짧은 기간에 비트코인 가격은 추가로 폭등했다.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1개월 만에 비트코인 가격은 2만7000달러에서 3만4500달러까지 치솟았다. 단숨에 28% 상승한 셈이다. 하지만 이게 정말 전쟁의 영향일까. 일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비교해 보면 이스라엘 전쟁은 투입된 군인 규모 자체가 수만 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좀 더 합리적으로 분석하려면 다른 각도로 봐야 한다. 비슷한 시기인 2023년 10월에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 오보까지 터지면서 기대감이 고조된 영향이라는 해석이 좀 더 현실적이다. 이번 상승을 전쟁 영향이라고 해석하는 건 무리가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유용했던 비트코인
그렇다면 전쟁과 비트코인은 아무 상관이 없는 걸까. 비트코인은 가격 상승보다 보험적인 성격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비트코인은 실제 위급한 상황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특히 전쟁 상황에서는 가장 확실한 보험이다.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에서 인근 국가로 피란 간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약 1000만명에 육박한다. 그런데 이 전쟁통에 챙겨갈 수 있는 재산은 한계가 있다. 집과 부동산을 들고 갈 수는 없다. 기껏 금과 달러 그리고 비트코인 정도가 이동 편의성이 뛰어난 자산군이다.
하지만 금과 달러는 국경수비대는 물론이고 같은 피란민들에게 뺏길 위험마저 있다. 반면 비트코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이동이 가능하다. 또 비트코인은 은행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전쟁 상황에서 은행을 통한 금과 달러의 해외 반출을 자유롭게 허가해줄 국가는 없다.
일반 개인들이 실물 금이나 실물 달러를 보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비트코인의 장점은 돋보인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100억원 가치의 비트코인이라도 버튼 몇 번으로 손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덕분에 전쟁으로 인터넷이 끊겨도 상관없다. 대안으로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을 사용하면 된다. 따라서 달러, 금, 비트코인 중 가장 국경을 넘기 쉬운 자산은 단연 비트코인이다.
결론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시 비트코인의 상승세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보험 목적으로 보유했던 사람들에게는 유용하게 사용됐다. 소중한 재산의 이동과 긴급 자금 활용 측면에서 비트코인은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다.
해외 여행을 갈 때 여행자보험은 필수다. 그런데 실제 사고가 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여행 중 발생한 질병, 상해, 휴대폰 분실까지 다 합쳐도 사고 확률은 고작 2%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치명적인 손실이 두려워 사람들은 여행자보험에 가입한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비트코인을 보유해야 하는 이유다. 보험 목적으로 보유한 비트코인이 상승해서 자산가치까지 늘어나게 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비트코인은 앞으로도 투자 목적과 보험 목적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보안법 제정으로 이민 급증한 홍콩
홍콩 사람들의 포트폴리오에는 비트코인이 일부 포함돼야 하지 않을까. 투자 목적이 아니라 보험 목적으로 말이다. 중국이 2020년 7월에 전격적으로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하면서부터 홍콩 사람들은 위기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홍콩국가보안법은 겉으로는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동안 중국의 손에서 벗어나 있던 홍콩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홍콩 사람들은 지금 자유를 억압받는다고 느끼고 있다.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사람들의 영국해외시민(BNO) 여권 신청이 급증했다. 지난 2년 6개월간 신청자 수가 무려 18만명이 넘는다. 홍콩 전체 인구가 약 700만명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외국 기업들의 홍콩 탈출 또한 심각하다. 홍콩에 지사를 둔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퉈 홍콩을 탈출하면서 홍콩 빌딩의 공실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주로 싱가포르로 옮겨갔고 일부 기업들은 도쿄와 서울로도 이전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중국이 갑자기 홍콩 사람들의 이민을 막아버리고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예상 못한 위험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홍콩 사람들은 보험 성격으로 재산의 5% 이상은 비트코인으로 보유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비트코인은 최악의 순간에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보험장치다.
중국 침략 위협받는 대만인에게 필요한 건 비트코인
외견상 대만은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기업인 TSMC는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큰 격차를 보이며 압도적인 글로벌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대만의 1인당 GDP는 이미 3만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그런데 대만 사람들도 긴장하고 있다. 발단은 중국이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중국 공산당의 억압적인 홍콩 정책을 직접 목격해 보니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며 “대만이 독립을 추구한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이후 미국은 중국의 아킬레스 건인 ‘하나의 중국’을 무력화하려 한다. 대만을 통해 대중국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도 중국대륙과 대만은 대만해협이라는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둔 매우 가까운 거리다.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이 계속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중국 턱밑에 미군이 들어와 있는 것과 다름없다. 미국 입장에서는 미래에 중국과의 패권 다툼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중국 인접국들과의 동맹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고 싶어 한다.
중국대륙의 턱밑에 있는 대만은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다. 그래서 대만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미국 간에는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언제 삐끗해서 의도치 않은 전쟁이나 의도적인 전쟁이 벌어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 발발 시 국민들이 본인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오직 전쟁에 참여해 싸워야 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소극적인 방법이 바로 본인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정도다. 어떻게? 본인 재산의 5~10%를 비트코인으로 바꿔놓는다면 최악의 전쟁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경제적 보호장치를 가지게 되는 셈이다. 대만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화약고 중 하나가 됐다. 이게 바로 대만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보유해야 하는 이유다.
중국에서 비트코인 불법인 이유는 해외 송금 우려
최근에는 어느 나라 부유층이건 재산적 손실 위협이 제일 큰 고민이다. 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나라를 찾아 떠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한국의 부자들에게는 상속세가 최대 이슈다. 상속가액 30억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무려 50%의 세율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재산이 많을수록 상속세 걱정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보다 더 심각하게 부자들이 동요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다 같이 잘살자는 ‘공동부유’ 정책을 추진하면서 경제가 뒷걸음질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의 무역분쟁과 부동산 폭락까지 겹치면서 3중고를 겪는 중이다.
또 공산주의 국가답게 중국의 유명인들 중에는 재산을 몰수당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래서 중국의 부자들은 지금 공포에 질려 있다. 중국은 연간 5만달러까지 해외 송금이 가능하다. 원화로 환산해 보면 고작 6000만원 수준이다. 중국 부자들이 이런 작은 금액에 만족할 리 없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통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2021년부터 비트코인을 포함한 모든 암호화폐 거래를 아예 금지해 버렸다. 그렇다고 중국 정부가 개인 간 비트코인 거래까지 다 막을 수 있을까.
비트코인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서만 거래되는 게 아니다. P2P 방식의 개인 간 거래도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중국 부유층 개인들은 암암리에 비트코인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켜주는 건 중국 정부가 아니다. 바로 비트코인이다. 중국인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과 비트코인
이제 5200만명이 살고 있는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은 안전한 나라인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같은 민족이지만 말도 잘 안 통한다. 우리는 대만이나 홍콩 사람들을 걱정해 주고 있지만 반대로 그 사람들은 지금 한국 사람들을 걱정해 주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능력은 상당히 더 발전했다. 북한은 미국 본토 공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확실히 완성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미국은 더 강한 경제 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동시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북한 선제공격 가능성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검토할 것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북한은 모두 핵무기가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나라도 감히 핵을 사용할 생각은 못한다. 모두가 공멸한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전쟁 가능성과 핵전쟁 발생 가능성을 0%로 생각하는 것도 합리적인 추론은 아니다.
아주 희박한 확률이지만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의 원화는 폭락하고 한국의 부동산들은 파괴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칠 것이다. 우크라이나처럼 피란 갈 이웃 나라도 없다. 이런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한국 사람들 또한 보험 성격으로 재산의 5%는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제 시대가 변했다. 개인 입장에서는 본인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든 상관없다. 이민을 통해 자신이 살아갈 나라를 새로 선택할 수 있는 시대다. 따라서 본인이 태어난 나라의 정부는 95%만 믿고 나머지 5%는 정부 대신 비트코인을 믿는 게 좋은 전략일 수 있다. 비트코인은 투자적인 가치 외에 보험적인 성격도 강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필요한 사람은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된 대만, 홍콩, 중국, 한국 사람뿐만 아니다. 자국 화폐가 붕괴된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사람들에게도 가치를 저장할 수단은 필요하다. 또 긴급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비상금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비트코인이다. 전 세계 인구는 80억명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다 비트코인의 잠재적 수요자들이다.
국가는 과연 이성적일까. 독일의 2차세계대전, 일본의 제국주의, 북한의 6.25 남침, 미국의 베트남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어리석은 판단으로 전쟁이 시작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전쟁 중에는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는다.
국민 개개인은 전쟁이 벌어졌을 때 본인을 지킬 최소한의 경제적 보험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 옛날에는 그게 바로 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비트코인이 바로 보험이다.
비트코인 포함 5억원 이상 해외 계좌 자진 신고해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한국에서 전쟁 발발 징후가 보인다면 국내 거래소에서 대형 해외 거래소로 비트코인을 송금해 놓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전시에는 한국보다 해외 서버가 보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개인 전자지갑에 비트코인을 보관해 놓는 것도 방법이다.
참고로 미국 1위인 코인베이스 암호화폐거래소의 경우 과거에는 한국인의 회원 가입이 가능했으나 현재는 불가능한 상태다. 글로벌 1위 암호화폐거래소인 바이낸스의 경우 아직까지는 한국인의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그런데 해외 거래소에 비트코인을 송금하는 행위는 외국환관리법 위반일까. 한국 정부는 달러 송금이 아니라 단순히 비트코인을 송금하는 행위 자체는 문제 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해외 계좌에 암호화폐를 포함해 5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국세청에 자진신고해야 한다. 신고하지 않으면 최대 미신고금액의 20%를 과태료로 부과받게 되니 주의가 필요하다. 또 미신고 금액이 50억원을 초과할 시에는 형사고발된다. 별도로 신고포상금 제도까지 운용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는 해외로 재산을 반출하는 행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국에서 해외로의 달러 송금 연간 한도는 원래 5만달러였으나 2023년 하반기부터 10만달러로 늘어났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1억2000만원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부자들 입장에서 보면 큰돈도 아니다.
그런데 실제 전쟁이 발생했을 때 은행에 예금해 놓은 달러를 출금하거나 해외로 보내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각자 개인들에게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비트코인이 필요한 이유다.
또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하면 한국 또한 위성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링크가 필수적이다. 스타링크는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바 있다. 일론 머스크의 야심작인 스타링크는 2024년 중에 한국에서도 서비스될 예정이다. 전쟁 중에도 인터넷은 끊기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또 비트코인의 송금에도 인터넷은 필수다.
평시의 긴급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활용된 사례
꼭 전쟁 상황이 아니더라도 개인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비트코인은 요긴하게 쓰인다. 2019년 말에 긴급하게 일본을 탈출한 닛산 카를로스 곤 회장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는 배임·횡령 혐의로 일본 검찰에 체포돼 도쿄의 자택에 연금돼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저녁에 탈출 전문팀의 도움을 받아 악기 상자에 몸을 숨겨 오사카 간사이공항을 통해 고향인 레바논으로 탈출했다. 곤 회장의 탈출에는 미군 특수부대인 그린베레 출신의 전직 요원들이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곤 회장의 일본 탈출에 비트코인이 활용됐다는 점이다. 탈출 성공 후 곤 회장은 보상금으로 미국의 코인베이스 거래소를 통해 약 6억원(50만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탈출팀에게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건 아니지만 푸틴에게 암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바그너그룹의 수장 프리고진 역시 상당량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그만큼 비트코인이 자산 보전 역할과 위급한 상황에서의 비상금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때문에 수요가 꾸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금을 보유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은 무겁고 느리고 눈에 띈다. 비트코인은 가볍고 빠르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버튼 한 번으로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
이런 능력으로 볼 때 비상 상황에서는 금보다 비트코인이 더 유용하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비상 상황은 닥쳐올 수 있다. 개인은 국가를 믿어야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개인들이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2023년 12월호
강력한 호재 '즐비'...비트코인 2024년엔 폭등?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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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4번째 반감기...비트코인 폭등 기대?
2024년 반감기 후 비트코인과 금의 채굴량 역전
쌍끌이 호재...비트코인 현물 ETF에 거는 기대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비트코인은 이미 시가총액 기준 미국 상위 10위권에 진입했다. 그런데 이 상위 10개 종목 중 지금부터 2024년 말까지 3배 이상 상승할 종목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이미 시가총액이 엄청난 종목들이라 1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주가가 3배 상승하기는 쉽지 않다.
전 세계 1위를 차지한 금의 시가총액은 최근 5년 평균환율인 1200원으로 환산했을 때 약 1경6000조원(13조3890억달러)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수익률로만 따져보면 2023년 초부터 10월 말까지 고작 9% 상승하는 데 그쳤다. 요란법석한 기대감으로 도배된 언론기사들의 호들갑과 달리 실제 금 수익률은 초라하다.
금의 시가총액은 전체 2위를 기록 중인 애플 시가총액 3200조원(2조6700억달러)과 비교하면 5배에 달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금까지 포함한 시가총액 상위 10개 자산 순위에서 당당히 9위에 진입했다. 테슬라보다 높은 810조원(6770억달러)의 시가총액이 눈길을 끈다. 또 비트코인의 올해 수익률은 10월 말까지 109%를 기록했다. 수익률 순위로도 테슬라를 제치고 3위를 기록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 2024년을 전망해 보자. 2024년에 혹시 3배 이상 상승할 자산이 있을까. 먼저 금 가격이 3배 되는 상상을 해보자. 현실과는 큰 괴리감이 느껴진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금 시가총액을 3배로 밀어올릴 만한 자금이 과연 시중에 존재할지 의문이다.
시가총액이 거대한 금 대신 주식은 어떨까.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의 경우 시가총액이 워낙 높다. 그래서 여기서 다시 3배 오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엔비디아와 메타는 이미 올해 워낙 많이 올랐다. 따라서 내년에 추가적인 3배 상승은 쉽지 않다.
유심히 살펴보면 최고점 대비 현재가가 49%의 비율을 기록하고 있는 테슬라 정도가 그나마 가능성 있어 보인다. 주가가 반 토막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슬라의 주가 변동성은 위아래로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예측은 어렵지만 2024년의 전기차 업황이 우호적이지 않아 3배 상승 도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가능성을 따져보면 비트코인이 눈에 띈다. 비트코인은 2024년에 3배가 더 올라도 애플의 현재 시가총액 3200조원에는 훨씬 못 미치는 2430조원에 불과하다. 비트코인이 애플 시가총액을 따라잡는 게 과연 가능할까.
비트코인 가격이 정말로 강세론자들의 염원이자 희망인 10만달러(1억2000만원)를 돌파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 2024년에 가장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포인트다. 향후 비트코인에는 3가지의 강력한 호재가 있다. 따라서 전혀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비트코인 첫 번째 호재...네 번째 반감기 도래
그동안의 과거 사례들을 관찰해 보면 비트코인의 2024년 상승 가능성은 무척 높다. 이유가 뭘까. 비트코인의 경우 4년마다 규칙적으로 반감기가 도래하며 공급량이 절반으로 축소되는 현상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큰 폭의 상승을 보여 왔다.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이 탄생한 후 14년간의 누적수익률은 어떻게 될까. 안타깝게도 비트코인 데이터를 집계하는 코인마켓캡(Coinmarketcap)이 공식 집계를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다. 따라서 객관적 확인 가능 자료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이다.
위의 표는 비트코인의 과거 10년 수익률을 연도별로 나타낸 자료다. 10년간 누적수익률은 4498%로 경이롭다. 연도별 수익률을 확인할 때 주의할 점은 그 당시의 비트코인 가격 최저점과 최고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실제 최고점 대비 하락률이나 최저점 대비 상승률은 위의 표보다 더 높다. 실제 변동성은 더 크다는 뜻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자료를 살펴보면 두 가지의 강력한 규칙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규칙은 매 반감기가 지난 후 2년이 지난 해에는 예외 없이 대폭락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2012년의 1차 반감기로부터 2년이 경과한 2014년에는 -58% 폭락했다.
또 2016년의 2차 반감기로부터 2년이 경과한 2018년에는 무려 -74% 폭락했다. 2020년의 3차 반감기로부터 2년이 지난 2022년에도 예외 없이 -64% 폭락했다. 지금까지는 비트코인의 연도별 움직임이 상당히 규칙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트코인의 두 번째 규칙은 매 반감기 때 가격이 예외 없이 폭등해 왔다는 사실이다. 1차 반감기에도 상당한 상승률을 보였지만 코인마켓캡의 공식 데이터를 확인할 수 없어 일단 제외했다. 공식 데이터가 있는 2016년의 2차 반감기에 비트코인 가격은 124% 폭등했다. 하지만 이 당시는 특이하게도 그 다음해인 2017년에 더 큰 활황세를 보이며 1368%라는 폭발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감기가 있던 2016년의 10배 이상 폭등한 셈이다.
2020년의 3차 반감기 당시에는 303%가 상승했다. 앞선 2차 반감기와 달랐던 건 3차 반감기의 다음해인 2021년에는 60%의 약한 상승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패턴으로 볼 때 반감기 시기의 상승 패턴이 조금씩 앞당겨지는 느낌도 있다. 비트코인의 4번째 반감기는 2024년 4월로 예정돼 있다. 4번째 반감기 이후에는 또다시 블록당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비트코인 두 번째 호재...금과의 채굴량 역전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금의 총량은 약 21만톤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의 유통량은 얼마일까. 비트코인의 총 발행량은 2100만개로 제한돼 희소성이 있다. 2023년 10월 말 현재 비트코인은 93%인 1953만개가 이미 채굴돼 유통 중이다. 이제 7%인 147만개만 남아 있다. 따라서 채굴가능 수량은 2140년이 되면 모두 고갈된다.
비트코인이 채굴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비트코인은 대략 10분마다 한 개의 블록이 생성된다. 2023년 현재는 이 한 개의 블록이 생성될 때마다 비트코인 6.25개가 보상으로 주어진다. 그러니 1년 공급량을 계산해 보면 1년간 5만2560개(블록 생성) × 6.25개(비트코인 보상) = 32만8500개(연간 총공급량)가 된다. 2023년 한 해 동안 약 32만8500개의 비트코인이 채굴된다는 뜻이다.
비트코인은 블록 21만개가 쌓일 때마다 채굴에 대한 보상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도록 설계돼 있다. 이를 반감기라 한다. 1년에 5만2560개의 블록이 생성되니 대략 4년이 지나 21만개의 블록이 쌓이면 반감기가 도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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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비트코인이 처음 생성된 직후 약 4년간은 블록당 채굴 보상이 비트코인 50개로 파격적으로 후했다. 하지만 2012년의 첫 번째 반감기 이후 블록당 채굴 보상이 비트코인 25개로 줄어들었고, 2016년에는 12.5개로 감소했다. 2020년 이후에는 6.25개로 줄어들어 갈수록 공급량(채굴량)이 급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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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페이지의 표를 유심히 살펴보면 첫 번째 반감기 이후 비트코인 연간 채굴량(공급량)은 262만8000개에서 131만4000개로 절반이 줄어들었다. 연간 채굴 비율이 12.5%에서 6.3%로 감소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두 번째 반감기를 지난 2016년에는 비트코인 연간 채굴량이 65만7000개로 줄어들었다. 연간 채굴비율은 3.1%다. 여전히 금보다 2배 가까이 높은 비율이다. 2016년에 금의 연간 채굴량은 1.9%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반감기인 2020년 이후 비트코인 연간 채굴량은 32만8500개로 다시 절반이 뚝 떨어져 채굴비율이 1.6%에 그쳤다. 반면 금의 채굴량은 큰 변화 없이 연간 1.7%를 유지했다. 이때부터 비트코인과 금의 연간 채굴량(공급량)이 비슷해진 셈이다.
이제 드디어 네 번째 반감기인 2024년 4월이 다가오고 있다. 비트코인의 연간 채굴량(공급량)이 0.8%로 뚝 떨어져 금의 연간 채굴량(공급량)과 완전히 역전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같은 시기에 금의 연간 채굴량은 여전히 1.7%로 비트코인의 2배가 된다. 2024년 4월의 네번째 반감기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다.
비트코인 세 번째 호재...비트코인 현물 ETF
이번 4차 반감기에는 과거와 다른 엄청난 호재가 또 하나 숨어 있다. 바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이슈다. 시장전문가들은 빠르면 2024년 1월, 늦어도 2024년 3월에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는 순간 기관투자자들의 비트코인 수요는 폭발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4년에 처음으로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에 금 ETF 상장됐을 때 금 가격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해당 기간의 금 가격 상승률을 살펴보면 경이롭다. 금 가격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간 238% 상승하며 폭풍 랠리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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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024년에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된다면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사고팔듯이 편리하게 비트코인에 간접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대형 금융기관들이 관리하는 비트코인 현물 ETF는 일반 암호화폐거래소보다 보안과 안정성 측면에서 장점이 많다.
미국 시장에서 ETF의 비중은 22%로 높은 편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실제 상장된다면 기관투자자의 자금 외에 개인투자자들의 자금도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비트코인의 대중화에 큰 기폭제가 될 것이다.
비트코인 비과세 혜택은 이번이 마지막?
만약 한국 사람이 비트코인으로 10억원을 벌었다면 세금으로 얼마를 내야 할까. 1원도 내지 않는다. 엄청난 특혜다. 반면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투자할 경우 차익에 대해 22%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이런 어마어마한 세제 혜택은 언제부터였을까. 한국의 암호화폐 1차 버블기였던 2017년부터만 계산해 봐도 무려 6년째 지속되고 있다.
원래 수익이 있는 곳에는 세금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암호화폐 활성화 초기에는 이게 불법인지 합법인지에 대해 정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따라서 공식적인 과세 정책이 오히려 암호화폐를 인정하는 꼴이라 최종 결정을 피해 왔다.
하지만 네 번째 반감기가 포함된 2024년의 비트코인 수익률은 양호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야말로 정상적으로 암호화폐 과세제도를 실행하기에 가장 최적의 시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절세가 간절한 투자자라면 2024년에 좋은 수익을 달성한 후 차익을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실제 매도로 차익을 실현하지 않더라도 2024년 말까지의 평가수익에 대해서는 비과세가 인정된다. 정부는 2024년 말 이후부터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서만 과세할 계획이다.
빌딩 투자와 비트코인 투자 중 뭐가 더 좋을까?
만약 10억원의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이 대출 10억원을 더해 서울의 20억 꼬마빌딩을 매수했다고 가정해 보자. 2년 뒤에 10억원 상승한 30억원에 이 빌딩을 매도한다면 세금은 얼마나 낼까. 10억원 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는 대략 4억2000만원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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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택 중과세가 유예됐음에도 서울 아파트 2주택자들 역시 양도차익이 10억원일 경우 양도소득세는 약 4억2000만원으로 빌딩과 동일하다. 또 해외 주식으로 10억원 수익이 발생했다면 과세율이 22%이니 양도소득세는 2억2000만원이 된다.
반면 비트코인에 투자해 2024년 말까지 10억원의 차익이 발생하면 세금은 얼마일까.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1원도 내지 않는다. 세금 측면에서만 본다면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여러모로 2024년은 비트코인 투자자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해다.
한국에도 비트코인 ETF 상장될까?
개인투자자에 대한 비트코인 비과세 혜택이 종료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역설적으로 비트코인 현물에 대한 수요보다 ‘비트코인 현물 ETF’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
비과세 메리트가 없다면 굳이 암호화폐거래소에 비트코인을 보관할 필요가 있을까. 제도권의 대형 운용사가 관리하는 비트코인 현물 ETF를 매수하는 게 안정성과 보안성 측면에서 훨씬 더 유리하다.
한국은 지금 노후에 대비한 연금계좌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이 연금계좌에서도 장기적으로는 비트코인 편입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미국에서 비트코인 실물 ETF가 상장된다면 한국에서도 많은 수요가 발생할 전망이다.
장기적인 비트코인 수요자를 분류해 보면 기관투자자(상장기업 등)와 금융회사의 자기계정(고유계정)과 금융회사의 고객계정으로 나눌 수 있다. 자기계정은 말 그대로 금융회사 자신들의 돈으로 운용하는 계정을 말한다. 금융회사들도 스스로의 여유자금을 운용해 수익을 내는 활동은 중요하다.
반면 금융회사 고객계정은 말 그대로 고객들의 돈이다. 고객들 돈을 운용하려면 먼저 금융당국이 비트코인에 대한 규제를 풀고 ETF 형태의 상품을 만드는 걸 승인해 줘야 한다. 한국의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 안에는 아직 미국에 상장된 ETF를 고객이 직접 매수할 수 없다.
결국 비트코인 현물 ETF가 한국에 상장돼야 투자가 가능하다. 물론 이게 해결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미국 금융감독 당국의 승인으로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돼 활발히 거래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국의 금융당국도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 금융기관들의 고유계정은 다르다. 감독당국의 규제와 상관없이 의지만 있다면 바로 미국에 상장된 비트코인 ETF를 매수할 수 있다. 또 공모펀드 형태로는 어렵지만 사모펀드 형태로는 얼마든지 고객들의 자금을 모아 미국에 상장된 비트코인 ETF를 매수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만약 비트코인 현물 ETF가 정말로 승인돼 버리면? 그 폭발력은 상당할 전망이다. 현물시장의 경우 승인 발표와 함께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실제 현물 ETF가 상장되기도 전에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개인투자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투자자는 암호화폐거래소를 통해 손쉽게 비트코인을 직접 매수할 수 있다. 따라서 2024년 말까지는 온전히 비과세 혜택을 누리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2025년부터는 비트코인 직접 투자에 대해서도 과세하게 된다. 어차피 동일하게 과세된다면 이때부터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안정성과 보안성 측면에서 훨씬 더 유리할 수 있다. 이는 투자 목적의 선택이고, 비상시까지 대비한다면 여전히 비트코인 현물 직접 보유는 중요하다.
비트코인 투자자, 변동성의 무게를 견뎌내야
비트코인의 상승 가능성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유의할 점이 있다. 아무리 기대수익률이 높아 보여도 비트코인 투자는 순자산의 5~10% 이내가 적당하다. 비트코인은 지난 10년간 최소 -60% 이상 대폭락한 사례가 세 차례나 있다. 투자를 결정할 때 이 정도의 폭락 가능성은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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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의 가장 최근 폭락 사례를 살펴보자. 비트코인은 지난 2019년 1월에 7200달러에 시작해 2년 10개월 만인 2021년 11월에 6만9000달러까지 폭등한 바 있다. 860%라는 어마어마한 수익률이다. 하지만 다시 1년 만인 2022년 11월에는 1만5500달러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1년간 -77%라는 공포스러운 대폭락이다. 분명한 건 이런 대폭락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변동성이 큰 자산일수록 자산배분 비중을 낮추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특히 24시간 내내 거래되는 비트코인의 특성상 투자 비중이 높다면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될지도 모른다. 투자자들은 분산투자와 예기치 못한 블랙스완에도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최후까지 생존할 코인은 어떤 걸까. 비트코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트코인이 최고의 수익률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최후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결론적으로 비트코인은 2024년에만 네 번째 반감기 도래, 비트코인 채굴량과 금 채굴량의 역전,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가능성 등 굵직한 호재가 대기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투자자들에게는 2024년 말까지 비과세 혜택까지 주어진다. 2024년의 재테크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지도 모를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져보자.

2023년 11월호
한국 국가부채·재정적자 '빨간불'...원화자산 투자 일변도 탈피 바람직
한국 경상수지·무역수지 경고등...외환보유액 감소, 위험할까?
원화보다 비트코인이 유망한 이유는 재정적자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인이 한국의 원화를 장기간 보유하는 건 좋은 전략일까. 한국의 국가재정은 장기적으로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인이라면 원화 외에 달러 기반의 자산도 필요하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비트코인을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부터 먼 미래에는 한국 재정이 왜 위기일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보자.
달러 초강세...유일한 원인은 미국 금리인상?
달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유가 뭘까. 미국이 막강한 국력을 활용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축통화국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원화 약세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원·달러 환율은 3년 전인 2020년 말에 1085원을 기록하며 원화 초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3년이 지난 2023년 10월에는 1360원을 넘나들고 있다. 원화가 약 -25% 평가절하된 셈이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과 일본의 통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 초강세의 원인은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인상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금리를 올리는 국가의 환율이 강해진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한 가지 팩트만으로 시장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만약 이 논리가 맞다면 금리를 미친 듯이 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터키, 브라질 같은 나라들의 환율 약세를 설명할 수 없다.
환율을 결정하는 요소는 금리 외에도 많다. 그렇다면 한국 원화 약세의 또 다른 원인은 뭘까. 경상수지와 무역수지 악화를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한국의 경상수지와 무역수지는 빨간불
‘경상수지’는 상품을 외국에 사고파는 거래(상품수지), 서비스를 외국에 사고파는 거래(서비스 수지), 외국에 투자한 대가로 받는 배당·이자 소득(소득수지), 경상이전거래(경상이전수지)로 구성돼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품수지다. 상품수지는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의 수출금액과 외국에서 생산된 상품의 수입금액 차이를 말한다. 무역수지도 비슷한 개념이다. 무역수지는 통관 기준, 상품수지는 인도 기준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한국의 강점은 제조업 강국이라는 사실이다.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반도체·휴대폰 산업과 현대차로 대표되는 자동차 산업, LG에너지솔루션으로 대표되는 배터리 산업을 가졌다. 또 SK이노베이션으로 대표되는 화학·정유 산업, 삼성바이오로직스로 대표되는 제약·바이오 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강력한 제조업을 가졌다. 이를 기반으로 막대한 수출을 통해 지속적으로 무역흑자를 유지하는 건실한 국가다.
반면 한국의 치명적인 약점은 원유·가스 등의 원자재를 대부분을 수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히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 이후 원유 가격이 10년 이상 하향 안정화되면서 한국은 저유가의 수혜를 누려 왔다.
한국의 경상수지는 2021년에 852억달러(102조원)의 흑자를 기록하며 4년 연속 양호한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2022년도부터 경상수지가 큰 폭으로 악화돼 2022년 298억달러(36조원), 2023년 상반기에는 24억달러(3조원) 흑자에 그쳤다. 2022년의 경상수지는 전년 대비 무려 -65% 감소한 셈이다.
무역수지 역시 2021년까지는 상당한 흑자를 기록했지만 이후 2022년부터 큰 폭의 적자로 반전됐다. 2022년에 -478억달러(-57조원), 2023년 상반기에도 -265억달러(-32조원)로 2년 연속 심각한 적자를 기록 중이다.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가가 급등하면서 비례적으로 수입도 급증한 탓이다. 그동안 유가 안정의 수혜를 톡톡히 봐 왔던 한국이었지만 2022년부터 예상치 못한 악재를 만난 셈이다.
적자의 또 다른 이유는 한국 수출 품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부문의 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출 감소다. 2022년부터 시작된 반도체 부문의 부진은 2023년에도 개선폭이 미미하다. 미국이 한국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는 상황도 고민거리다. 이로 인해 반도체 수출의 원투 펀치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액과 수익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또 2023년부터 ‘코로나19 규제’가 풀리면서 한국에서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이 급증했다. 따라서 서비스수지(관광 분야) 적자가 큰 폭 증가한 것도 경상수지 악화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이런 다양한 악재들이 있지만 이는 모두 일시적인 문제들이다. 2023년 하반기부터 무역수지는 다시 소폭의 흑자로 돌아섰다.
한국 외환보유액 감소...위험할까?
한국의 외환보유고 순위는 세계 6위다. 최근의 무역수지 적자로 한국의 외환보유고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외환보유액은 얼마나 감소했을까. 2021년의 4631억달러에서 2022년에는 4231억달러로 -8.6% 감소했다. 하지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같은 기간에 한국뿐 아니라 주요국 외환보유액도 모두 감소했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건 미국의 금리인상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도 서서히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머지않아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다시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에 비례해 한국의 원화 약세 역시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한국의 진짜 고민은 단기적인 경상수지와 무역수지 악화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재정수지 적자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미래에는 재정정책을 좀 더 엄격하게 운용하는 보수정권이 주도하든 좀 더 완화적으로 운용하는 진보정권이 주도하든 별 상관이 없게 된다. 양쪽 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극도로 어렵다. 이미 정책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인 문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가 총수입 증가로 외견상 양호한 한국 국가재정
국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세금을 잘 걷는 게 필수다. 세금은 국가가 유지되는 원동력이다. 한국의 연간 세금을 모두 합산한 국가 총수입은 매년 5~10% 내외의 안정적인 증가세를 보여왔다. 이렇게 세금이 잘 걷히고 있으니 한국의 재정수지도 안정적인 상황일까.
‘재정수지’란 1년 동안 세금을 잘 걷는 ‘세입’과 걷은 세금을 잘 지출하는 ‘세출’ 간에 발생한 차이를 말한다. 모든 국가는 걷은 세금보다도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 한다. 그래서 ‘균형재정’이 기본 목표다.
한국의 국가재정법 제1조에도 “건전재정의 기틀을 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같은 돌발적인 악재로 경기가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시적으로 적자재정을 감수하고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기도 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모두 공식처럼 사용하는 공통된 재정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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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걷는 연간 세금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코로나19가 발생해 전 세계가 위기에 빠졌던 2020년에 한국은 ‘국세 수입’ 286조원과 ‘국세 외 수입(세외 수입+기금 수입)’ 183조원을 합쳐 총 479조원의 ‘국가 총수입’이 발생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인 2019년도와 비슷한 수준의 세금이 걷힌 것으로 볼 때 코로나19가 세수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21년의 국가 총수입은 571조원으로 전년 대비 19% 급증했고, 2022년에 618조원으로 8% 증가했다. 코로나19와 상관없이 국가 총수입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는 사실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국세 수입 3총사 중 으뜸은 ‘소득세’
‘국가 총수입’ 중 가장 중요한 건 ‘국세 수입’이다. 또 다른 수입원인 국민연금기금 등의 ‘사회보장성 기금’은 실제 기금을 납부하는 시기와 연금을 지급하는 시기가 불일치해 객관적인 수지 계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세 수입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3대 세금인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를 먼저 살펴보자.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익숙한 세금은 역시 국민들 개개인에게 걷는 소득세다. 근로자는 연말정산을 통해 국가에 낼 1년간의 세금을 최종 확정한다. 세율구간은 과세표준의 6.6~49.9%(지방세 포함)다. 연봉 1억원의 근로자라면 근로소득세를 약 1300만원 납부한다. 추가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 고용보험료 등으로 약 700만원이 사라진다. 따라서 연간 실수령액은 8000만원 내외가 될 것이다.
[연봉 1억원 – 근로소득세 약 1300만원 – 기타 차감(건강보험료·고용보험료·국민연금 등) 약 700만원 = 8000만원]
연봉 1억원이 넘으면 근로소득세가 상당한 편이다. 하지만 너무 슬퍼할 건 아니다. 연봉 1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최고과세율이 무려 49.5%(지방세 포함)나 되기 때문이다. 고소득자들은 그에 걸맞게 세금도 많이 내는 편이다. 이런 소중한 세금들이 쌓이고 쌓여서 2022년 소득세 합계액은 무려 129조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3% 증가한 수치다.
4년 전인 2019년의 84조원과 비교하면 4년 만에 소득세가 무려 54% 급증했다. 그런데 소득세가 급증한 이유가 뭘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근로자들의 임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반면 과표구간은 거의 조정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근로자들의 세부담률이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근로소득자의 급여를 유리지갑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자영업자의 경우 비용처리 측면에서 근로소득자보다 유리한 부분이 있다. 대신 국민연금은 근로소득자가 사업주와 절반씩 부담하는 데 비해 자영업자는 혼자 전액 부담해서 불리하다.
국세 수입 3총사 중 변동성 높은 ‘법인세’
세금은 개인뿐 아니라 법인에게도 같이 부과해야 공평하다. 그래서 법인에게 걷는 세금이 바로 ‘법인세’다. 법인세율은 개인 소득세율보다는 낮은 편이다. 세율구간은 과세표준의 11~27.5%(지방세 포함)다. 개인 소득세와 마찬가지로 많이 버는 회사들이 많이 내는 구조다.
2019년의 법인세 합계는 72조원이었다. 그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19년 법인세는 각각 10조5000억원과 5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들 두 회사의 법인세 비율이 무려 22%였다. 똘똘한 대기업 하나가 국가재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알 수 있다.
2020년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2% 감소한 56조원, 2021년 70조원, 2022년에는 무려 104조원의 법인세가 걷혔다. 사상 최대치다. 하지만 2022년의 삼성전자 법인세는 9조9000억원, SK하이닉스는 1조8000억원에 불과해 과거보다 수치가 크게 줄었다. 2022년에는 이들 회사 외에 다른 회사들도 수익이 높아져 전체 법인세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법인세의 경우 기업의 실적과 직접적으로 연동되므로 변동성이 심하다는 점이다.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2022년의 법인세 104조원은 일시적인 호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023년 예상 법인세 추계결과는 80조원에 불과하다. 전년 대비 무려 -24조원의 엄청난 감소가 예상된다. 이 구멍 난 법인세 수입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똑같이 내는 ‘부가가치세’
부가가치세는 직접세가 아니라 간접세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 자동으로 10%의 부가가치세가 포함된다. 개개인에게 직접 받아가지 않으니 잘 체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간혹 고급 식당이나 호텔에서 부가가치세 10%를 별도로 부과하는 경우 부가가치세의 위력을 체감하게 된다.
2022년 부가가치세 총 합계액은 82조원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먼 미래에 세수 부족으로 인해 추가적인 세금을 걷어야 한다면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중 어떤 종류의 세금이 증세하기 가장 좋을까. 바로 부가가치세다.
소득세는 여기서 더 올리면 최고세율이 50%를 넘게 돼 부담스럽다. 법인세는 다른 나라 기업들과의 경쟁력 유지 차원에서 더 올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는 다르다. 특별히 타깃층이 정해져 있지 않고 전 국민의 세금 부담이 다 같이 올라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상이 용이하다.
물론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올리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일본도 세수 부족 해결을 위해 한국의 부가가치세와 비슷한 세금인 소비세를 2019년에 8%에서 10%로 전격 인상했다. 당연히 국민 반발이 극심했다. 부가가치세 인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율을 올릴수록 고소득자보다 저소득자의 세금 부담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한국 재정은 연봉 1억원 받아 1억2000만원 쓰는 꼴?
2022년에 한국에서 국가가 걷은 ‘국세 수입’ 총액은 396조원이다. ‘국세 외 수입(세외 수입+기금 수입)’ 222조원까지 합치면 총 618조원의 ‘국가 총수입’이 발생했다.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세금을 걷었으니 국가는 굉장히 풍족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연봉 1억원의 직장인을 보면 겉으로는 풍족해 보인다. 하지만 이미 돈을 써야 할 곳이 대부분 정해져 있다. 그래서 실제로는 남는 게 별로 없는 경우도 흔하다. 국가재정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의 소중한 세금은 이미 대부분 쓸 곳이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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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 ‘국가 총수입’은 618조원인 데 비해 ‘국가 총지출’은 682조원이었다. 수입보다 지출이 65조원 초과됐다. 국가 살림이 적자인 셈이다. 그런데 이 -65조원은 ‘통합재정수지’상의 적자다. ‘관리재정수지’상의 적자는 2배에 가까운 -117조원이다.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 중 어떤 게 더 합리적인 계산 방법일까.
통합재정수지는 국가 총수입에서 국가 총지출을 차감한 수지를 말한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국민연금기금·교직원연금기금 등)의 수지를 제외한 수지를 말한다. 도대체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왜 제외하는 걸까.
예를 들어 1990년생인 34살 직장인이 올해 납부한 국민연금은 무려 30년 뒤인 65살이 돼야 실제지출이 일어난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수지를 계산하면 엄청난 흑자로 숫자가 왜곡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하고 계산된 관리재정수지가 더 객관적인 수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실질적인 재정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관리재정수지를 재정운용 목표로 산출해 사용하고 있다. 2022년의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를 산식으로 표현해 보면 아래와 같다.
[2022년 국가 총수입(618조원) – 국가 총지출(682조원) = 통합재정수지(-65조원)]
[2022년 통합재정수지(-65조원) –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53조원) = 관리재정수지(-117조원)]
한국의 2022년 국가 총수입은 618조원이었다. 하지만 관리재정수지는 -117조원을 기록했다. 이를 일반적인 직장인의 연봉으로 환산한 가계부로 다시 표현해 보자. 1억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생활비로 1억1900만원을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계부상 연간 -1900만원의 적자를 낸 꼴이다.
코로나19 위기가 극심했던 2020년의 관리재정수지는 더 심각했다. 그해 국가 총수입은 479조원인 데 비해 관리재정수지는 -112조원을 기록했다. 일반적인 직장인의 연봉으로 환산해 보면 1억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생활비로 1억2300만원의 생활비를 쓴 꼴이다. 연간 -2300만원의 적자를 낸 셈이다.
더 심각했던 美 재정...연봉 1억원 받아 2억원 쓴다고?
한국 정부는 국가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하고 있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코로나19가 극심했던 2020년에 미국 연방정부의 총수입은 3조4200억달러(4104조원)인 데 비해 총지출은 그 2배 가까운 6조2800억달러(7536조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2020년에만 재정적자가 -3조1300억달러(3756조원)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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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 훨씬 더 파격적인 재정지출이다.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을 일반적인 직장인의 연봉으로 환산해 보면 연봉 1억원을 받는 사람이 1년 동안 생활비로 1억9000만원을 쓴 꼴이다. 만약 매년 생활비를 이렇게 쓴다면 미국의 파산은 시간문제다.
다행히 과거에는 이렇게까지 방만하게 살림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2020년에 발생한 미국의 심각한 재정적자는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한 일시적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의 책무 중 하나는 위기 관리다. 2020년은 코로나19와 경기침체로 생계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급증했던 시기다. 따라서 미국,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정부는 큰 폭의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재난지원금을 풀어 위기에 대응했다. 오히려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을 덜 푼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이건 당위적인 측면에서의 분석이다. 어떤 국가든 재정수지 적자가 지속되면 국가부채가 급증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 하락의 원인이 된다. 환율 약세의 요인으로도 작용된다. 안타까운 현실은 한국의 재정적자는 정책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이다.
이 상태로 10년이나 20년이 지나면 한국의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는 걷잡을 수 없이 급증하게 된다. 한국인들이 한국 원화와 원화 기반의 자산에만 100% 투자하는 건 좋은 전략일까. 장기적으로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따라서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와 금, 비트코인 같은 대안적 통화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2023년 11월호
한국 원화-미 달러화 가치 하락…대안은 발행량 제한된 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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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보다 더 심각한 기초연금
일본 부채비율 261%...따라 하단 낭패
달러보다 비트코인이 좋은 이유는?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국가를 유지하는 근간은 세금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변함없는 진실이다. 한국 국세 중 비중이 가장 높은 빅3는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다. 2022년에만 소득세 129조원, 법인세 104조원, 부가가치세 82조원이 걷혔다. 그런데 이런 세금은 누가 내는 걸까. 당연히 국민이 낸다.
국민이 소득세를 내고, 법인을 만들어 법인세를 내고, 물건을 사고팔며 부가가치세를 낸다. 그래서 국가 유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인구 수다. 그런데 한국의 인구 구조는 실시간으로 붕괴 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출산’ 신기록은 매 분기 경신되고 있다. 이는 멀지 않은 미래에 국가에 재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노인들의 세상? 붕괴되는 한국의 인구 구조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1년 기준 83.6년이다. 미래에 의료기술의 발달로 한국인 평균수명이 100세로 늘어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노인들만의 세상이 된다.
한국의 출생아 수 흐름을 살펴보면 현재 만63세로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 1960년생은 출생아 수 기준 무려 110만명이다. 그로부터 10년 뒤에 태어난 1970년생도 출생아 수 기준 101만명이다. 이때까지는 출생아 수가 엄청 많아 베이비붐 세대라고 표현한다. 한국 인구 수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건 1990년생부터다.
현재 만33세인 1990년생은 출생아 수 기준 65만명을 기록했다. 출생아 수가 절정을 이뤘던 1960년생과 비교하면 무려 45만명이 줄어들었다. 감소율이 -41%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건 2020년생이다. 출생아 수 기준 27만명으로 2010년생과 비교해도 -42%가 급감했다. 1960년생과 비교하면 -75%다. 무려 83만명이 감소했다. 4분의 1토막에 가깝다.
2023년 2분기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고작 0.7명이다. 한국은 여성 한 명이 평생 0.7명의 자녀를 가진다는 뜻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 아이를 2명 낳았을 때 출산율은 2.0이 된다. 지금의 출산율 수치가 의미하는 건 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토록 아이를 한 명도 안 낳거나 아예 결혼을 안 한다는 뜻이다.
대책 없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이렇게 인구가 급감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건 바로 연금제도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은 연금 개시 후 사망 시까지의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국민연금은 35년 전인 1988년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그런데 제도 설계 당시에 한국의 2023년 출산율이 0.7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당연히 없다. 만약 그렇게 예상한 사람이 있었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현 연금제도의 문제점은 사실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하기 어렵다.
애초의 연금 설계와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지금의 심각한 저출산은 답이 없는 상황이다. 저출산으로 연금을 납부하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은퇴한 연금 수급자들은 더 오래 사는 시대가 맞물려 온다면 한국의 국가재정은 심각하게 어려워진다.
위 표를 찬찬히 살펴보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인구 구조가 완전히 붕괴됐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출생아 수 합계가 1054만명인 데 비해 2000년대 출생아 수 합계는 497만명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10년대 출생아 수 합계는 더 심각한 413만명에 불과하다.
2000년대생과 2010년대생이 한국 직장인의 주력으로 등장하기 이전인 2020년부터 이미 만60세를 넘어 정년을 맞이한 1960년생은 대부분 퇴장한다. 2020년을 기점으로 1960년대생들은 질서정연하게 1년 단위로 매년 퇴장하고 있다.
이후 1960년대생의 뒤를 따라 1970년대생들이 퇴장하는 시점에 한국의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건강보험, 기초연금 재정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다. 이 분석은 수학이 아니라 산수다.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겠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1960년대생 1054만명을 그 절반도 안 되는 497만명의 2000년대생이 부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생 898만명을 그 절반도 안 되는 413만명의 2010년대생이 부양하는 꼴이 된다. 물론 연금 수령 전에 자연 사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확률적으로 이 수치는 적다. 연금 지급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는 파국까지 남은 시간은 늦어도 20년 이내다.
이 파국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지금 당장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연금보험료 인상을 원하지 않는다. 연금보험료 인상을 추진했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활동기한은 2024년 5월까지로 연장됐다. 정치인들도 연금보험료 인상이 부담스럽다. 우수수 떨어지는 표 때문이다.
두 번째는 60세인 정년을 65세로 연장해 연금 수령 대상자들의 일하는 기간을 더 늘리고 국민연금 납부기간도 65세까지 연장하는 방법이다.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 경우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고 청년들의 취업시장 진입은 더욱 힘들어진다. 또 이 두 번째 방법만으론 역부족이다. 반드시 첫 번째 방법이 병행돼야 연금 고갈을 막을 수 있다.
건강보험료 급증은 정해진 미래
문제는 또 있다. 바로 건강보험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22년도 건강보험 주요 통계’에 따르면 2022년에 건강보험 환자 진료에 소요된 비용은 102조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9% 증가한 사상 최대치다. 이 중 개인부담금은 총 진료비의 약 25%인 26조원이다. 나머지 75%에 해당하는 77조원을 건강보험공단이 급여비를 통해 부담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고령자의 진료비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수는 938만명으로 전체 인구 수의 17%에 불과하다. 그런데 노인 인구의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43%인 44조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8.6% 증가한 수치다. 향후에는 더 가파른 진료비 증가가 예상된다.
물론 지금 당장은 건강보험료 수지가 흑자다. 적립금도 넉넉하다. 하지만 이런 여유 있는 상황은 곧 역전될 수밖에 없다. 무려 1000만명이 넘는 60년대생들의 노인 인구 편입은 정해진 미래다. 이 노인들은 오래도록 건강보험 재정을 압박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소득의 7%를 건강보험료로 징수 중이다. 적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도 더 오를 수밖에 없다. 먼 미래에 건강보험료로 의료비가 감당 안 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까. 정부 재정으로 보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 재정이 미래에도 여유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국민연금보다 더 심각한 기초연금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보다 더 심각한 건 기초연금이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수급자들에게 미리 돈을 걷어서 나중에 지급하는 구조다. 그래서 실제 지출보다 적게 걷는 게 문제될 뿐 재원 자체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반면 기초연금은 수급자들에게 연금보험료를 걷지 않고 순수하게 국가재정으로 지급하는 구조다. 기초연금은 만65세 이상 노인 중 하위 70%에게 약 30만원을 지급한다. 설상가상으로 지급금액 상향을 검토 중이다.
기획재정부의 ‘2024년 예산안’에 따르면 기초연금으로 배정된 예산은 20조2000억원이다. 문제는 지금도 막대한 이 기초연금 예산이 노령화로 인해 향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미 현 상황에서도 한국의 관리재정수지는 심각한 적자를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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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재정수지상의 적자는 2020년에 -112조원, 2021년에 -91조원, 2022년에 -117조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적자가 아니다. 적자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한국의 실질적인 재정 상황은 현재도 어렵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2023~2027년)에 따르면 2023년에 665만명인 기초연금 수급자 수는 불과 4년 뒤인 2027년에는 152만명 증가한 817만명이 된다. 같은 기간 국민연금 수급자 수는 677만명에서 무려 228만명 증가한 905만명에 달하게 된다.
한국 연금수급자의 증가인원 계산은 수학이 아니라 산수다. 지금 55살인 사람은 10년 뒤엔 65살이 된다. 특히 60년대생과 70년대생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20년 이내에 연금수급자 수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한국 현재 재정수지, 다른 나라보다 양호...미래는?
한국의 외견상 재정수지는 다른 선진국들보다는 훨씬 양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아직 노령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는 순간 여유 있던 한국의 재정이 순식간에 악화될 거라는 사실은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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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펼쳤던 2020년에 한국의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3.7%에 그쳤다. 미국의 -14.0%나 영국의 -13.0%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양호하다. 한국의 2020년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5.8%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하지만 문제는 코로나가 거의 끝난 2022년이다. 미국의 GDP 대비 재정수지적자율은 -5.5%로 2020년의 -14.0%보다 대폭 축소됐다. 반면 한국의 통합재정수지적자율은 -3.0%로 2020년의 -3.7%보다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관리재정수지도 -5.4%로 개선폭이 미미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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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2023~ 2027년)에 따르면 2022년의 관리재정적자 -117조원을 정점으로 2023년부터는 관리재정적자가 -58조원으로 가파르게 줄어든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낙관적인 전망이다.
2023년만 해도 예상 국세 수입은 400조원이었지만 실제 국세 수입은 -59조원 감소한 341조원으로 예상된다. 국세 수입 펑크 규모가 엄청나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노령화가 심해지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기획재정부의 낙관적인 전망치대로 관리재정적자가 개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급증하는 국가부채와 이자
그런데 이렇게 큰 폭의 재정적자가 발생하면 정부는 도대체 어디서 돈을 조달할까. 일단 정부는 적자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2022년에 정부부채는 94조원이 증가했다. 그 결과 2022년 말 정부의 총부채액은 전년 대비 18% 증가한 1033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정부의 부채는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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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미국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한국의 국채 발행금리마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2021년의 국채시장 평균조달금리는 1.79%였지만 2022년에는 3.17%로 껑충 뛰었다.
2023년의 시장금리는 더 높아졌으므로 국채 평균조달금리는 더 크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 1033조원의 부채에 3.17%의 평균조달금리를 곱하면 연간 이자만 32조원이 넘게 된다. 이 국채 이자는 고스란히 국가재정에 부담을 준다.
물론 객관적으로 볼 때 한국의 부채 규모와 부채 비율은 아직 낮은 편이다. 단지 증가속도가 빠를 뿐이다. 이 증가속도면 먼 미래에는 한국이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세금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세금을 올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봉 1억원의 직장인을 예로 들면 지금도 실수령액이 8000만원 수준이다. 여기서 1000만원의 소득세를 더 걷겠다고 하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법인세 또한 마찬가지다. 법인세는 국가 간의 일자리 유치 경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경쟁국 대비 크게 올리기 어렵다. 한국의 법인세는 지금도 주요 선진국 대비 약간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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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를 찬찬히 살펴보자. 재정수지의 건실함은 GDP 대비 부채비율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선진국 중에서도 재정수지가 불안한 국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는 일본으로 무려 261%로 추정된다. 미국도 122%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높다고 미국의 달러화나 일본의 엔화를 믿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달러는 기축통화이고, 일본의 엔화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원화는 기축통화도 아니고 아직 국제적인 활용도가 낮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의 2022년 GDP 대비 정부부채비율은 50%로 일반적인 우려와 달리 매우 낮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도 2022년 말 기준 4232억달러(508조원)로 많은 양의 달러를 보유 중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시점에서 다른 나라들과 한국의 재정 건전성 및 안정성 등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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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채무는 4년 뒤인 2027년에 1417조원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GDP도 같이 성장하므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3%로 전망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확실히 양호하다.
한국 장기 재정 전망은 암울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더 먼 미래로 가보자. 2060년이 되면 OECD 회원국 중 한국 국민들의 평균연령이 가장 높아진다. 출산율은 0.7에 불과하고 노령화는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구 구조는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일본보다도 훨씬 더 나쁘다.
이렇게 인구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될 경우 국민연금, 노령연금, 의료비가 급증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각해진다. 지금 당장 부채비율이 낮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런 식이면 도대체 먼 훗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최악의 시나리오는 직장인 월급에서 공제되는 연금보험료와 건강보험료, 세금부담액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는 상황이다. 이 경우 2010년대생과 2020년대생들은 한국의 세금폭탄을 피해 세계 각지로 탈출해 취업 자리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더 심하게는 세금이 안 걷혀 국가가 제 기능을 못 할 수도 있다.
이 정해진 암울한 미래를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저출산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 두 번째는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바꿔 이민자들을 통해 인구 수를 늘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민자들에게 거부감이 강한 한국 국민들의 성향상 쉽지 않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얼마나 심각할까?
그렇다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얼마나 심각할까. 한국의 힘겨운 재정 상태를 보면 미국의 재정적자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코로나19가 극심했던 2020년이 최악이었다.
다음 페이지의 데이터를 찬찬히 살펴보면 먼저 미국의 GDP 대비 연간 재정수지적자율은 2019년 -4.6%, 2020년 -14.9%, 2021년 -11.9%, 2022년 -5.4%를 기록했다. 2020년에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크게 악화됐다가 2022년에는 다시 안정화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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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재정적자를 알기 쉽게 직장인의 연봉으로 환산해 보자. 미국 정부는 2020년에 연봉 1억원을 받아 생활비로 무려 1억9000만원을 썼다. 하지만 2022년에는 연봉 1억원에 생활비를 1억2800만원으로 줄였다. 결론적으로 적자가 -90%인 9000만원에서 -28%인 2800만원으로 줄어든 셈이다.
재정적자가 감소함에 따라 미국 부채비율도 2020년에 128%로 정점을 찍고 2022년에는 123%로 다소 낮아졌다. 그런데 3경7000조원(31조달러)의 부채가 있다면 도대체 이자는 얼마나 될까. 최근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4.8%까지 치솟았다. 부채 3경7000조원에 4.8%의 금리를 곱해 보면 연간 이자비용은 대략 1776조원이다.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미국이 망할까 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미국보다 훨씬 높은 일본을 보고 안심해도 좋다. 일본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261%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 규모를 늘려가고 있어서 머지않아 300%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일본은 망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도 일본을 보고 안심하고 있다. 그런데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낼 수 없는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 미국과는 달리 상당히 곤란해질 수 있다.
한국과 미국 화폐가치 폭락...대안은 비트코인
‘금’의 뒷받침이 없는 법정화폐는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신용이 부족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게 아니다. 발행량 제한 없이 언제든 찍어낼 수 있는 종이화폐라서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각국 정부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더 정확히는 각국의 ‘재무부’와 ‘중앙은행’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런데 정말 믿어도 될까. 각국 정부는 정말 이성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화폐 발행을 통제하고 있을까.
니얼 퍼거슨은 밀턴 프리드먼의 말에 본인의 의견을 보태 ‘초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정치적 현상’이라는 말로 정치인들의 본능적인 포퓰리즘 성향을 지적했다. 정치인들은 국가의 미래 재정을 걱정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 당장 당선되는 게 더 급하다.
따라서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느 정도의 포퓰리즘은 피할 수 없는 상수다. 돈 쓸 곳은 늘어나는데 추가로 세금을 올리지 못하면 결국 남은 건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방법밖에 없다.
적자국채가 늘어날수록 한국의 국가신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비례해 장기적으로는 원화 가치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심각한 인구 구조도 문제다. 한국의 출산율은 0.7인 데 비해 미국의 출산율은 1.6이다. 2배 이상의 압도적인 차이다. 따라서 먼 미래에 한국은 미국보다 재정이 더 악화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미국 달러를 사두는 게 과연 최선의 전략일까. 달러보다 비트코인 매수가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비트코인은 왜 2020년에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을까. 2020년 5월의 반감기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더 강력한 이유가 있다. 바로 미국과 주요국들의 재정적자가 비트코인의 상승에 굉장한 영향을 미쳤다.
2020년 이전까지 대중은 비트코인이 절대 ‘금’이나 ‘달러’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당시 각국 정부에서 엄청나게 돈을 풀어대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의 인식은 변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법정화폐를 믿을 수 없다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말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본인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화폐가치 하락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화폐가치가 매일매일 하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미국의 달러처럼 마구 찍어낼 수 없게 발행량이 총 2100만 개로 제한된 비트코인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게 바로 최초로 비트코인을 설계했던 사토시 나카모토의 큰 그림이기도 하다.

2023년 11월호
중앙은행이 ‘금’ 사면 오를까...비트코인의 수익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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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금 매입 안 하는 게 오히려 이득? 왜?
금 대신 비트코인 매입한 엘살바도르...중국 이길까?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금은 수천 년간 인류의 화폐 역할을 해왔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금을 영원한 화폐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금의 대체재가 전혀 없었다. 금의 독점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비트코인’이 등장한 시대다. 미래에는 금과 비트코인 중 어떤 자산을 보유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유리할까. 먼저 금의 역사를 살펴보자.
전 세계에는 도대체 금이 얼마나 많은 걸까?
전 세계에서 유통 중인 금의 총량은 얼마나 될까.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의 추정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약 21만톤의 금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시가총액은 얼마나 될까. 단번에 계산해 내기는 어렵다. 시장에서 금 가격은 1온스당 달러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온스? 한국에서는 상당히 낯선 단위다. 게다가 금을 거래할 때는 일반적인 온스 단위가 아니라 트로이온스(troy ounce) 단위를 쓴다. 1트로이온스는 31.1034768그램이다. 그래서 1톤(ton)을 트로이온스로 변환해 보면 3만2150.75트로이온스가 된다.
2023년 9월 말 기준 1트로이온스당 국제 금 가격은 1870달러다. 여기까지 확인했다면 전 세계 금의 시가총액을 계산해볼 수 있다.
금 210,000톤 * 32,150.75트로이온스 * 1,870달러 = 약 12.6조 달러 (1경5,100조원)
금의 시가총액은 약 12조6000억달러로 추정할 수 있다. 이를 최근 5년 평균환율인 1200원으로 원화 환산해 보면 대략 1경5100조원으로 계산된다. 드디어 궁금증이 해소됐다. 그런데 선뜻 감이 오지 않는다. 과연 금 시가총액은 얼마나 큰 돈일까.
세계 1등 주식인 애플의 시가총액(2023년 9월 말)이 약 3300조원(2조7000억달러)이다. 금의 시가총액은 애플 시가총액의 4.5배 수준인 셈이다. 생각보다는 크지 않은 느낌이다. 어렵게 금의 시가총액을 구하고 나니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금’의 총량은 앞으로 절대 늘어나지 않는 걸까.
전 세계에서 1년간 금은 얼마나 채굴될까?
앞에서 금의 총량을 약 21만톤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금은 더 이상 만들 수 없는 상품일까. 그건 아니다. 금은 매년 전 세계 주요 금광에서 꾸준히 채굴되고 있다. 금의 연간 채굴량은 평균 3500톤 수준이다. 그래서 금의 총량은 매년 평균 1.8%씩 늘어나고 있다.
연간 1.8%밖에 채굴되지 않으니 금의 추가적인 공급량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금은 옛날부터 가장 귀한 광물로 대접받았다. 만약 과거처럼 금을 가지고 있는 만큼만 화폐를 발행하던 금본위제가 유지됐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화폐 남발의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많이 억제됐을 것이다.
그런데 금이 아직도 화폐 역할을 하는 게 맞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50년 전인 1971년에 미국이 금태환을 거부한 이후 금과 화폐를 이어주던 금본위제는 완전히 붕괴됐다. 그렇다고 금과 화폐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다. 각 중앙은행들이 가지고 있는 금은 여전히 ‘외환보유액’으로 인정받고 있다.
외환보유액으로 ‘미국 국채’ 대신 ‘금’? 이자는?
금은 중앙은행 준비금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금은 중앙은행의 세 가지 주요 목표인 안전성, 유동성 및 수익성의 특성을 만족시킨다. 현재 각국의 중앙은행은 필요에 따라 금의 보유수량을 적절히 조절하고 있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거대한 금 보유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효율성을 따져볼 차례다. 각국의 중앙은행이 달러 기반의 ‘미국 국채’ 대신 금을 보유하는 건 정말 이득일까. 금의 치명적인 단점은 이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금 가격이 채권 이자보다 폭등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금의 수익률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밋밋한 수준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점은 생각보다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다. 따라서 코로나19 이전까지 금은 각국의 중앙은행들에게 비인기 상품이었다. 이자가 한푼도 없으니 당연하다.
금 매집 시작한 각국 중앙은행들...왜?
하지만 2020년에 코로나19와 경기침체로 미국이 미친 듯이 달러를 풀어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금도 다시 주목받았다. 전 세계에서 채굴된 금의 총량 21만톤에는 장식용 금, 공업용 금, 금괴 등이 모두 포함된 수치다. 그렇다면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도대체 이 중에서 얼마만큼의 금을 가지고 있는 걸까.
세계금협회가 2023년 9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과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금의 합계수량은 약 3만5665톤이다. 전체 채굴량(유통량) 21만톤의 6분의 1 수준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미국의 실제 보유량이다.
미국은 1971년의 닉슨 쇼크 당시 가지고 있던 8133톤의 금 보유량을 50년 이상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금 총량의 3.9%를 미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때 금본위제를 이끌었던 미국의 과거 위상을 생각해 보면 의외로 보유량이 적은 느낌이다.
뒤를 이어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중앙은행들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하게 미국과 유럽의 금 보유량이 높다고 해서 이 금들을 최근에 매수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과거 금본위제 당시 보유하고 있던 금을 팔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어서 많아 보일 뿐이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화’, 유럽은 기축통화나 다름없는 ‘유로화’를 쓰기 때문에 외환보유액 자체가 적다. 따라서 외환보유액 대비 금 보유량이 60% 이상으로 많아 보이는 착시 현상도 있다.
최근 금과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는 나라는 중국과 인도다. 특히 인도의 강력한 금 매집이 눈에 띈다. 인도는 지난 3년 6개월간 중국과 맞먹는 무려 162톤의 금을 매집해 왔다. 중국의 매집량은 165톤이다. 중국이 근소하게 더 많지만 기존 보유량 대비 증가율로 따져보면 인도의 압승이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국의 무차별 달러 살포는 각 나라 중앙은행들에게 상당한 경각심을 줬다. 이는 인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인도는 지난 3년 6개월간 162톤의 금을 추가해 2019년 635톤이었던 금 보유량을 784톤으로 늘렸다. 증가율이 무려 25.6%다. 증가율만 따지면 8.5%에 그친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1위다.
올해를 기점으로 인도는 중국 인구 수를 넘어 세계 1위의 인구대국이 된다. 인도는 변화된 위상에 걸맞게 외환보유고를 달러 외에 금으로 다변화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런 노력으로 외환보유고 대비 금 비중이 8.2%로 껑충 뛰었다.
중국 금 매집 이유는 위안화 패권? 갈 길 멀어
중국이 최근 들어 금을 집중 매수하는 이유는 뭘까. 미·중 갈등의 반작용이다. 결국 달러화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다. 중국 입장에서도 보유 외환의 다각화는 중요한 문제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단행된 러시아에 대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시스템’ 차단은 중국에 큰 충격을 줬다.
혹시 모를 대만과의 전쟁 발발 시 곤란해질 수 있는 문제다. 미국과 갈등 중인 중국 입장에서는 유사 시 미국의 제재로 미국 국채 현금화에 실패할 가능성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이 경우 금을 더 많이 보유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대신 미 달러화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 국채는 지속적으로 팔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로 금을 사들이고 있음에도 아직 중국의 외환보유고 중 금 비중은 3.8%에 불과하다. 인도의 8.2%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따라서 중국이 앞으로 금을 더 살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장기적으로는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심도 있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 중 미국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58.4%다. 그렇다면 중국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일까. 2.7%에 불과하다. 달러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에 이은 5위권이다.
중국의 욕심보다는 증가 속도가 느린 편이다. 또 갈수록 중국에 비우호적인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위안화 기축통화의 꿈이 실현될 날은 상당히 멀어 보인다. 어쩌면 그런 날은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른다.
금에 관심 없던 일본이 금 매입하는 이유
과거 일본과 한국의 외환보유고 중 금 보유 비율은 2%에 불과했다. 두 나라는 금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아 왔다. 하지만 2020년의 코로나19 이후 일본의 변화된 행보가 눈에 띈다. 일본 중앙은행도 지난 3년 6개월간 81톤의 금을 추가로 매입했다. 2019년 말 대비 금 보유량 증가율이 10.6%다. 무시할 수 없는 증가율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외환보유고 대비 금 비중은 과거 2%대에서 현재는 4.2%로 껑충 뛰었다. 미국 국채를 선호하던 일본마저도 금 보유의 필요성을 느낀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이나 인도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과거에 일본과 한국은 왜 금에 관심이 없었던 걸까. 만약 금의 뒷받침 속에서만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금본위제가 유지됐더라면 일본과 한국도 금 보유량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금과 달러의 관계는 닉슨 쇼크 이후 거의 끊어졌다. 따라서 이자가 없는 금 대신에 이자를 주는 좀 더 실리적인 미국 국채를 선택한 셈이다. 어차피 둘 다 외환보유고로 인정해 주니 효율성에 가치를 둔 선택이다.
한국은행이 금을 안 사는 이유는?
한국은행이 금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국은행은 2011년 이전만 해도 금 보유량이 14톤에 불과했지만 2011년과 2012년에 약 90톤의 금을 집중적으로 매입해 금 보유량이 104톤까지 증가했다. 그런데 이 당시는 금 가격이 상승세를 타던 시기라 결과적으로 상당히 비싸게 매입했다.
정확한 매입단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당시 금 가격은 1온스당 1600달러를 상회하던 시기였다. 한국은행의 금 매입 이후 금 가격이 상당 기간 조정을 받으면서 금 평가손실로 인해 한동안 애를 먹었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은 국정감사 때 금 매수와 관련된 평가손실 문제로 국회의원들에게 질책을 받았다. 그래서 2012년 이후로 다시는 금을 매입하지 않는다. 다행히 2020년 이후 금 가격이 회복세를 타면서 금 트라우마에서는 벗어나는 모습이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한국은 전 세계 10위권의 높은 경제적 위상과 달리 금 보유량은 고작 36위를 기록 중이다. 그렇다면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중앙은행은 반드시 금을 보유해야 하는 걸까. 금은 과연 미국 국채보다 높은 수익률을 줄 수 있을까.
금은 대중에게 안전자산이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변동성이 상당히 큰 자산이다. 한국은행이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에 비해 금에 관심이 없는 게 꼭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금을 매입하면 정말 금 가격이 오를까.
금 가격 상승에 약간의 영향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 금 유통량(채굴량)이 21만톤인 데 비해 중앙은행이 매수하는 금의 규모는 연간 1000톤에도 훨씬 못 미친다. 또 연간 채굴되는 3500톤과 비교해 봐도 작은 편이다. 금본위제가 붕괴된 지금 세상에서 이 정도 매수량으로 극적인 대상승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최근 10년간의 금 가격 누적 상승률은 미국 나스닥 지수 상승률보다 훨씬 더 저조했다. 게다가 지금은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연 4.8%인 고금리 시대다. 앞으로 10년간 금 수익률이 연간 4.8%를 넘긴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금 대신 미국 국채를 매수해 이자를 따박따박 받아내는 한국은행의 방식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국가나 중앙은행이 비트코인 사면 망할까?
일반적인 상식보다 너무 앞서나가는 국가도 있다. 바로 엘살바도르다. 엘살바도르는 2021년 9월에 비트코인과 달러를 병행해 법정화폐로 채택해 버렸다. 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재정 안정성에 큰 리스크가 있다”며 결정을 취소하라고 강력히 권고하기도 했다.
문제는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매수 시점이다. 상대적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높았던 2021년 하반기에 집중 매수가 진행된 건 아쉬운 부분이다. 2022년에 비트코인은 무려 -67% 대폭락했다. 따라서 비트코인을 매수한 엘살바도르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급변했다. 2023년 초부터 9월 말까지 9개월간 금 수익률은 고작 3%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기간 비트코인의 수익률은 65% 급등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엘살바도르의 평가손실은 막대하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투자 손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웹사이트인 나이브트래커(nayibtracker)에 따르면 2023년 9월 말 기준 엘살바도르가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은 약 3000개다. 1개당 평균 매수금액은 약 4만770달러로 현재가격인 2만7000달러를 대입하면 -33%의 손실을 기록 중이다. 총 매수금액은 약 1470억원(1억2280만달러)이며 평가손실금액은 약 -485억원(4045만달러)에 달한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엘살바도르가 결국 망할 거라 전망했지만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매수는 과연 실패한 결정일까. 이는 비트코인의 4번째 반감기인 2024년 4월이 지나봐야 더 명확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으로 금을 집중 매수한 중국, 인도, 일본 등과 금 대신 비트코인을 과감히 매수한 엘살바도르 중 과연 어떤 나라가 더 현명한 선택을 한 걸까.
역사적으로 4번째 반감기를 맞이하는 2024년에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평가손실이 과연 플러스로 바뀔지가 관전 포인트다. 지난 3번의 반감기에 비트코인은 늘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 왔다. 이번 4번째 반감기에도 과연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은 반복될까. 그 결과가 주목된다.

2023년 11월호
[비트코인] 금이 최고라고? 금 투자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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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금 시가총액 1경5100조원...애플의 4.5배
금에 대한 요란한 기대감 불구 수익률은 ‘별무신통’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사람들은 금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다. 금은 귀한 자산이니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종교 같은 믿음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만 환상에서 벗어나자. 금은 절대 최고의 투자상품이 될 수 없다.
1971년 금태환 거부로 시작된 10년간의 금 랠리
금 가격이 슈퍼 강세를 보인 구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미국 금의 고갈로 인해 금태환 금지를 발표했던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1980년도까지의 10년간이 금 가격 상승의 황금기였다.
금과 달러의 교환을 거부했던 1971년의 닉슨 쇼크 이후 시장은 미국에 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게 됐다. 이에 따라 금 가격은 그야말로 폭등 랠리를 펼치게 된다.
기존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돼 있던 금 가격은 1971년부터 10년간 상승에 상승을 거듭해 1980년 말에는 590달러로 마감됐다. 투자자들은 10년간 1478%라는 경이로운 누적 수익률을 선물로 받게 된다.
그래서 그 10년 동안 금은 부동산처럼 매년 오르기만 하는 상품이라는 굳은 신뢰를 얻게 됐다. 사람들은 어떤 상품의 가격이 10년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그 방향성이 절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믿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금이 안전자산이라고? 잃어버린 20년
하지만 대반전이 일어났다. 그 이후 1981년부터 2000년까지 20년간은 금에 투자한 사람들에게는 악몽 같은 암흑기였다. 금 가격은 다른 자산인 주식, 부동산, 채권보다 현저히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금은 우리가 기대하는 인플레이션 파이터의 역할을 맡기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상품이다.
이제 가벼운 퀴즈로 접근해 보자. 1980년부터 20년이 흘러 밀레니얼 시대인 2000년이 도래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던 2000년 말에 과연 금 가격은 얼마가 됐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답을 맞히는 데 실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답은 20년 전인 590달러보다 -53% 폭락한 274달러다. 믿어지지 않는 충격적인 수익률이다. 한국에서 이 기간 부동산을 사 놨다면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기록했을 것이다. 은행 예금에만 넣어놨어도 고금리로 인해 상당한 수익 달성이 가능했던 시기다.
이렇게 잃어버린 20년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뭘까. 1971년에 금본위제가 붕괴된 이후 10년간은 미국이 다시 여력만 되면 금본위제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금 수요가 폭발하면서 랠리가 펼쳐졌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다음부터는 미국의 엄청난 달러 발행수량으로 인해 다시는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투자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금 가격도 약세로 돌아섰다. 금과 달러의 연관관계가 사실상 거의 끊어진 것을 받아들여 이 시기에 금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해석이다. 의도적인 금 공매도로 인해 금 가격이 맥을 못 췄다는 음모론도 있다.
어쨌든 이 20년간 금에 투자해 세월을 낭비한 사람들처럼 어리석은 투자자들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떤 특정 자산이 20년간 오르지 않고 심지어 거꾸로 수익률이 반토막 난 사례가 또 있을까. 냉정하게 고민해 보자. 과연 이래도 금은 안전자산인가.
‘금 ETF’ 등장으로 시작된 10년간의 2차 랠리
다행히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금 가격이 2차 랠리를 보였다. 특히 2004년 금 ETF가 등장하면서 금 가격은 다시 한 번 짜릿한 상승을 보여줬다. 과거에는 일부 투자자들만이 금을 매수할 수 있었지만 금 ETF가 등장한 이후 일반인들도 주식처럼 쉽게 금에 투자할 수 있게 된 점이 금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GLD [SPDR 골드셰어즈(Gold Shares)]’ ETF는 실물 금에 직접 투자한 최초의 ETF로 2004년 11월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SPDR 골드셰어즈’ ETF의 상장 당시 시가총액은 미미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2023년 9월 기준 시가총액은 무려 630조원(526억달러)으로 급증했다. 웬만한 대형 ETF에 뒤지지 않는 초거대 ETF로 성장한 셈이다.
2004년 이후 유사한 금 ETF들이 추가로 등장하면서 2001년 말에 277달러에 불과했던 금 가격은 10년 뒤인 2010년 말에는 1406달러까지 급등했다. 10년간 누적수익률이 무려 411%에 달한다. 연평균 40%가 넘는 경이적인 수익률이다.
금 가격의 2차 랠리로 인해 이 시기에 금에 투자한 사람들은 굉장한 수익률을 얻었다. 금은 다시 한 번 안전자산이자 고수익 자산이라는 명성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실망스러운 금 수익률과 놀라운 비트코인 수익률
2010년부터 현재까지 지난 13년간 금에 투자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형편없는 수익률을 감내해야 했다. 2010년 말에 1406달러를 기록했던 금 가격은 13년이 지난 2023년 9월 말 기준 1870달러에 불과하다. 누적수익률은 고작 33%다. 나누기 13년을 해보면 연평균 수익률은 불과 2.5% 수준이다.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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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 나스닥 지수는 2010년 말 2653포인트에서 2023년 9월에는 1만3000포인트까지 치솟았다. 13년간의 누적수익률은 390%다. 나누기 13년을 해보면 연평균 수익률은 무려 30%다. 금이 주식보다 높은 수익률을 줄 거라는 믿음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실제 과거 데이터상 일부 기간을 제외하면 금 투자 수익률은 그저 그랬다.
결론적으로 금은 진심으로 투자하기에는 그저 그런 상품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멍텅구리 자산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변동성이 작은 안전자산을 갖고 싶어서 금에 투자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 말은 사실과 부합할까.
어떤 투자자가 2012년 말에 1658달러에 금 1온스를 매수했다고 가정해 보자. 안전자산의 대표처럼 행세하는 금은 어이없게도 매년 하락해 3년 뒤인 2015년 말에는 -36% 폭락한 1060달러로 마감됐다.
세상의 어떤 안전자산이 3년이 지나도 가격이 회복되지 않고 오히려 -36%나 폭락할 수 있을까. 금은 절대 안전자산이 아니다. 그 이후로도 금 가격은 무려 7년이 지난 2019년 말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1515달러에 머물렀다. 금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건 8년이나 지난 2020년이 되면서부터다. 도대체 누가 원금 회복을 위해 8년을 기다릴 수 있을까.
과거의 수익률이 미래의 수익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3년간 연평균 30%의 고수익을 줬던 나스닥 ETF 대신 연평균 2.5%의 초라한 수익률을 기록했던 금 ETF에 투자하는 게 과연 현명한 전략일까.
그런데 실제 한국 투자자들의 체감 금 수익률은 연평균 2.5%보다는 훨씬 높다. 이유는 이 기간에 원화 대비 달러가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순수한 금 수익률이 아니니 절대 착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은 금의 대체자산으로 각광받고 있는 비트코인이 등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금’의 지위를 노리는 비트코인의 수익률은 어떨까. 비트코인은 2009년 1월부터 채굴됐지만 암호화폐 가격을 집계하는 ‘코인마켓캡’에서 공식적으로 거래가격을 공시한 건 2013년부터다.
코인마켓캡의 2013년 자료부터 10년간의 비트코인 수익률만 따져보면 무려 3611%가 나온다. 비트코인은 금의 100배 이상 상승했다. 금과 비트코인의 장기 수익률 대결은 아직까지 비트코인의 압승이다. 비트코인은 0원에서 시작했으므로 비공식 수익률은 훨씬 더 높다.
금리가 낮으면 금 가격 오른다고? ‘글쎄’
수많은 전문가들이 금 가격은 강달러 때 약세를 보이고 약달러 때 강세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또 미국이 고금리일 때는 금 가격이 약하고 미국이 저금리일 때는 금 가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 이론은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파편화된 일부 현상으로 금 가격을 함부로 예측했다가는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다. 지난 13년간의 미국 기준금리 변화와 금 가격의 움직임을 같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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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5년 12월 이전까지 무려 7년간 제로금리를 유지했다. 제로금리로도 모자라 양적완화 정책까지 썼다. 그렇다면 이 기간 금 가격은 강세였을까. 제로금리 초반에는 강세였지만 제로금리가 계속 유지된 중반부터 큰 폭의 약세를 보였다.
특히 2013년에는 금 가격이 무려 -27% 폭락했다. 물론 2013년에도 미국의 기준금리는 당연히 0%였다. 이 사례로 알 수 있는 건 미국 기준금리와 금 가격은 별로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준금리와 금 가격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금에 베팅했다가 호되게 당한 사례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헤지펀드계의 대부로 불렸던 ‘존 폴슨’ 폴슨앤코 회장은 미국 주택시장 버블로 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2007년과 2008년에 200억달러의 수익을 올린 전설적인 투자자다. 이후 존 폴슨 회장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의 후유증으로 2013년에 금 가격이 급등할 것으로 예견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 당시 폴슨 회장이 운영했던 금 펀드의 수익률은 -40%대까지 곤두박질치며 엄청난 굴욕을 당했다. 급기야 그는 “향후 금 투자에 대한 상세 보고를 생략할 계획이니 너무 관심을 갖지 말아 달라”고 투자자들에게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가장 최근인 2023년도의 금 가격 움직임을 살펴보자. 2023년은 미국의 강한 금리 인상으로 2년 만에 기준금리가 무려 5.5%로 껑충 뛴 역사적으로 흔하지 않은 구간이다. 당연히 달러화도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금 가격에 악영향을 준다는 금리인상과 달러강세가 동시에 발생한 셈이다. 이론대로라면 금 가격은 약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금 가격은 2022년 말의 1814달러에서 2023년 9월 말에는 1870달러로 오히려 3% 상승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금 가격을 예측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기업 실적을 토대로 움직이는 주가지수가 금 가격 예측보다는 조금 더 수월할 수 있다.
주가 폭락 때마다 같이 폭락하는 멍텅구리 자산 ‘금’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3~4월 2개월간의 나스닥 지수는 -30% 이상 폭락했다. 그렇다면 인류에 위기가 닥친 이 기간에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금은 상승했을까. 이 기간 금의 낙폭은 고점 대비 -12.5%다.
나스닥 지수의 끔찍한 하락률에 비하면 금의 하락률은 상대적으로 양호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금이 -12.5%밖에 하락하지 않았으니 선방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얼마나 될까. 그냥 CMA에만 넣어두었어도 손쉽게 연 2% 이상의 이자는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마이너스라니 금이 안전자산이라고 말하기엔 좀 부족해 보인다.
주가 폭락 때마다 같이 폭락하는 금의 가격변동성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오히려 주가가 상승하는데 금만 하락한 경우도 있다. 2011년 8월~2015년 말까지의 4년 3개월간은 나스닥 지수가 100% 가까이 폭등한 대세상승 구간이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금의 하락률은 무려 -30%가 넘는다. 이래도 과연 금은 안전자산일까.
여전히 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존재한다. 미국의 유명한 금 옹호론자인 피터 쉬프는 비트코인을 싫어하고 오직 금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몇 년째 계속 틀리고 있다. 피터 쉬프는 비트코인의 화려한 수익률 대신 금의 초라한 수익률에 만족하며 언젠가 금이 큰 수익을 줄 거라는 꿈에 부풀어 있다.
과연 피터 쉬프의 꿈은 이루어질까. 비트코인이 미래에 정말로 ‘디지털 금’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면 금보다는 오히려 비트코인의 상승률이 더 높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안전자산 금의 시가총액은 고작 애플의 4.5배
앞에서 금의 시가총액을 약 1경5100조원(12.6조달러)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이 금액은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세계 1등 주식 ‘애플’의 시가총액과 ‘전 세계 주식’의 시가총액이 얼마나 되는지를 같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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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주식 전체의 시가총액은 약 13경4000조원(112조달러)으로 추정된다. 금 시가총액은 1경5100조원(12.6조달러)으로 9분의 1 수준이다. 이렇게 보니 금의 시가총액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전 세계 1등 주식인 애플의 시가총액 3300조원(2.7조달러)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 애플 주식의 4.5배 수준이다. 생각보다는 금의 시가총액이 왜소해 보인다.
이제 비트코인을 살펴보자.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700조원(0.6조달러)에 불과하다. 아직 애플 시가총액 3300조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미래에 만약 비트코인이 애플을 따라잡는다면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1억5000만원을 훌쩍 넘어야 한다. 이게 가능할까.
물론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벌써 700조원이라니 이미 심각한 버블이라는 평가도 많다. 비트코인은 미국의 대형 IT기업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 페이스북, 테슬라, 엔비디아와 비교해 봐도 시가총액 차이가 크지 않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현실세계에서 이미 상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비트코인의 목표 시가총액을 글로벌 1등 주식 ‘애플’이 아니라 ‘금’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비트코인의 특성은 과연 ‘주식’에 가까울까, 아니면 ‘금’에 더 가까울까. 만약 비트코인 목표 시가총액을 금의 절반으로 설정하면 비트코인 1개의 목표가격은 무려 3억원이 넘게 된다.
비트코인, 4번째 반감기에도 급등 반복할까?
비트코인의 4번째 반감기는 2024년 4월로 예정돼 있다. 4번째 반감기 이후에는 블록당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공급량이 반토막 나는 비트코인의 반감기 특성이 투자에 적극 활용됐다. 이 시기에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급등하는 패턴을 보여 왔다.
이번 4번째 반감기에도 비슷한 패턴이 이어진다면 비트코인 가격은 2024년에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전망은 비트코인이 망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일부의 투자자들에게만 설득력이 있다. 비트코인을 믿지 않는 수많은 나머지 투자자들에게 이런 논리는 허황될 뿐이다.
워런 버핏같이 훌륭한 투자수익률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유명인들 중에는 비트코인을 ‘사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반대편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소수의 관점으로 일찍부터 비트코인에 투자해 부자가 된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투자자라면 양 극단의 주장을 다 살펴봐야 한다. 투자자의 사고는 유연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금에 투자하고, 누군가는 비트코인에 투자한다. 이 중 2024년의 진정한 승리자는 과연 누가 될지 그 결과가 흥미롭다.

2023년 10월호
전통적 화폐는 영원할까...한국 화폐의 역사와 미래 가치는?
6.25 전쟁과 제1차 긴급통화조치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의 제2차 긴급통화조치
박정희 의장(대통령), 1962년 제3차 긴급통화조치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 영화에서는 가끔 개인 금고에 5만원권 화폐를 가득 넣어 보관하는 장면이 나온다. 재테크 측면에서 보면 이런 보관 방식은 당연히 최악이다. 합법화할 수 없는 검은 돈이나 탈세 목적이 아니라면 은행에 입금해 3%의 이자라도 받는 게 정상적인 화폐의 보관 방법이다.
그런데 화폐는 과연 영원한 걸까.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쓴다. 일본은 엔화, 유럽은 유로화, 중국은 위안화를 쓴다. 한국은 당연히 원화를 쓴다. 흥미로운 건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영원한 화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한국 화폐의 붕괴 역사를 살펴보자.
제1차 긴급통화조치
한국은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 탓에 역사적으로 주변국가들의 침략을 받는 일이 흔했다. 너무 먼 과거로의 역사 여행은 자제하고 가까이에 있는 1900년도부터의 역사를 살펴보자. 1900년도 초반까지 조선에서는 상평통보가 화폐로 통용됐다.
그런데 1910년에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조선왕조)이 망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될 때까지 35년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했다. 이 시기에는 일본제일은행이 발행한 ‘엔’과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 엔’이 화폐로 통용됐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우리나라는 해방됐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던 1945년 8월에 도쿄에서 황급히 돈을 엄청나게 찍어내 한국으로 공수해 온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발행된 화폐로 인해 한국의 총 화폐유통량은 1개월 만에 기존의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화폐의 유통량이 2배로 늘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화폐 가치는 폭락하고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렇게 급조해 발행된 화폐들은 일본인들의 본국 귀환 자금으로 활용됐다. 또 친일 반민족행위자들과 한국에 있던 일본인 단체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살포됐다.
그 결과 한국 내의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몇 달 사이에 생활물가는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 당시의 물가 폭등으로 인해 한국의 수많은 서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때 만약 화폐 대신 금을 가지고 있었다면 화폐 가치 하락의 상당 부분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광복 이후 한국 경제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는 조선은행권이 ‘원(圓)’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통용됐다. 이런 과도기적 상황에서 5년이 지난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한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시작됐다.
개전 3일 만에 서울에 진입한 북한군은 한국은행 본점을 점령한 뒤 지하금고에서 미발행 조선은행권 ‘원(圓)’을 대량으로 발견한다. 북한군은 남한 경제를 교란할 목적으로 이 화폐들을 불법으로 마구 발행해 버린다. 이로 인해 화폐 가치는 다시 한 번 급락했다.
그래서 이 당시 조선은행권을 가지고 있던 평범한 국민들은 본인들이 보유한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걸 다시 한 번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물론 전쟁 중에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쟁 상황에서 위조지폐까지 유통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적군인 북한군이 불법으로 발행한 화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1950년 8월 28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조선은행권 교환 및 유통에 관한 건’을 공포했다. 이는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 발행한 ‘한국은행권’과 1대1로 교환하도록 하고 조선은행권의 유통을 정지하는 ‘제1차 긴급통화조치’였다.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운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하려면 필수적으로 신분 확인이 필요하니 불법으로 조선은행권을 손에 넣은 북한군은 한국은행권으로의 교환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보통 화폐 개혁을 할 때는 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절하)을 같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1차 화폐 개혁 때는 1대1의 비율로 단순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제2차 긴급통화조치
이후 3년간의 기나긴 전쟁으로 경제는 폐허가 됐다. 한국 정부는 막대한 군사비 조달과 파괴된 생산시설 복구비용으로 통화를 대량 남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화폐 가치는 폭락했고 심각한 물가 상승 압력에 시달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53년 2월 15일에 ‘제2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하고 기존의 대한민국 화폐였던 ‘원(圓)’을 ‘환(圜)’으로 변경하는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앞의 ‘제1차 긴급통화조치’와 달랐던 부분은 교환비율이 1대1이 아니라 화폐 액면 단위를 100분의 1로 낮춘 ‘화폐 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였다는 점이다. 쉽게 설명하면 화폐 단위를 ‘100원(圓)’에서 ‘1환(圜)’으로 변경해 화폐 명칭도 바뀌고 화폐 교환비율도 100대1이 됐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 국가의 화폐가 어려움에 처하면 예외없이 디노미네이션이 진행됐다. 6.25 전쟁 시절의 한국뿐 아니라 1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까지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다. 도대체 왜 디노미네이션을 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은행예금을 동결해 정부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국 정부는 화폐 개혁과 동시에 은행 예금도 일정 금액을 강제로 동결시켰다. 기존 예금은 10만환(圜) 이상, 긴급통화조치로 예입된 구권 예금은 3만환(圜) 이상을 대상으로 20~100%의 체증률을 곱해 특별정기예금과 국채예금으로 전환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통화 증가 요인이었던 ‘유엔군 대여금’의 상환을 진행했다. 결국 통화량 급증을 억제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 밖에도 큰 폭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 표기의 숫자가 커짐에 따라 발생하는 경제적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화폐 단위를 절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요금이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000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됐다고 가정해 보자. 옛날처럼 현금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면 100만원의 지하철요금을 현금으로 직접 지불하는 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발생하는 계산과 지불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액권을 발행하거나 아예 화폐 단위 절하를 단행하는 경우도 많다.
제3차 긴급통화조치
우리가 만약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장롱을 뒤진 결과 한국 화폐 다발이 무더기로 나왔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그런데 그 화폐의 발행일이 만약 1960년이라면 지금 시대에도 사용할 수 있을까. 정답은 사용할 수 없다.
한국에서 지금 사용되고 있는 ‘원(WON)’ 화폐는 1962년 6월 10일 도입된 화폐다. 그래서 그 이전에 발행된 화폐는 한국은행에서 교환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런 화폐라면 화폐 수집상에게 팔아버리는 게 100배는 더 이득이니까 말이다.
한국 국민들이 정부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건 해방 상황도 아니고 전쟁 상황도 아니었다. 긴급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정부의 긴급조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평온했던 시기의 난데없는 화폐 개혁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 의장(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군사정부가 집권했다. 그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산, 투자, 소비 등의 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예금 이탈이 진행됐다. 그리고 1년 뒤인 1962년. 침체된 경제 활동 때문에 안정적인 정권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재정 적자와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이 계속 심각해지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6월 9일 밤 10시에 ‘제3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했다. 박 의장은 부정 축재와 음성적으로 축적된 자금의 투기화를 막고 악성 인플레를 방지하기 위해 화폐 개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게 바로 1962년 6월 10일의 ‘제3차 긴급통화조치’다.
화폐 개혁의 핵심은 ‘환(圜)’에서 ‘원’으로 단위를 바꾸고, 10대1의 비율로 절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구당 교환할 수 있는 돈이 최대 5000환(圜)에 불과했다. 원화로는 500원이다.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의무적으로 저금한 뒤 6개월에서 1년 후에 찾을 수 있었다. 또는 산업개발공사의 주식(연 15% 배당 보장)으로 바꿔야 했다.
그런데 구권을 신권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은 발표 이후 고작 7일에 불과했다. 전 국민이 7일 안에 이 모든 걸 처리하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개인의 사유재산을 상당히 침해하는 억압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 당시는 전쟁 상황이 아니라 평시 상황이었다.
이 발표로 경제 현장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바로 월요일 새벽부터 은행에는 화폐를 교환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고, 일선 상점에서는 ‘구 화폐’를 받지 않거나 물건 가격을 크게 올렸다. 아예 문을 닫은 상점도 많았다. 한국 경제는 더욱더 침체됐다.
그런데 박정희 의장은 왜 기습적으로 화폐 개혁을 단행하는 무리수를 둔 걸까. 화폐 개혁을 하면 부정하게 재산을 모은 사람들과 중국 화교들이 엄청난 규모로 숨겨둔 돈을 ‘신 화폐’로 바꾸려 할 것이고 이때 강제로 예금으로 묶어서 재정 적자를 메우고 산업자금으로도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1962년의 통화 개혁은 한국은행 총재 등 관계 당국자와의 사전 협의도 없이 극비리에 진행됐다. 신은행권은 정부가 영국의 ‘토마스 데라루’ 사에 비밀리에 발주해 제조했고, 6월 9일 중앙정보부와 군의 도움을 받아 한국은행 본·지점으로 현송(現送)됐다. 실무작업을 주도했던 공무원들은 비밀유지 각서를 쓰고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진행된 통화 개혁의 기존 ‘환(圜)화’ 회수내역을 보면 100만환(신화 10만원) 이하의 소액이 90.5%를 차지했고 1억환(신화 1000만원)을 초과하는 예입은 총 7건으로 12억환에 불과해 당초 정부의 예상과 달리 여유자금의 현금 보관 규모는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부정 축재를 통해 숨겨진 돈의 규모는 크지 않았던 셈이다.
또 중국 화교들의 경우 이미 중국 정부에 몇 번의 뒤통수를 맞은 경험들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금을 선호해 왔다. 이런 이유로 중국 화교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화폐 대신 금으로 바꿔서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군사정권의 원대한 포부와 달리 화폐 개혁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화폐 개혁으로 인한 경제 현장의 극심한 대혼란과 미국의 우려까지 전달돼 군사정권의 예금봉쇄 정책은 지속되지 못했다. 결국 1개월 뒤인 7월 13일에 봉쇄예금 동결을 해제했다. 이로써 기습적인 통화 개혁은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 인플레이션 방지 등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부작용만 남긴 채 초라하게 끝났다.
1962년의 화폐 개혁 이후에 한국 국민들은 현금자산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15% 이자율(현재 시점에선 고금리지만 당시는 물가상승률이 매우 높았다)의 은행 예금을 기피하고 토지와 주택 구입 등 실물자산 투자로 돌아섰다. 한국 국민들의 부동산 사랑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화폐는 안전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국가의 필요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화폐 개혁이 일어날 수 있고 종잇장처럼 화폐가 사라질 수도 있다. 아무리 군사정권 시절이라지만 7일 안에 화폐를 신권으로 바꾸지 않으면 휴지가 돼버리는 정책은 공포스럽다.
물론 정부가 화폐를 강제로 빼앗지는 않는다. 그런데 보통 화폐 개혁을 할 때는 ‘구 화폐’를 ‘신 화폐’로만 바꿔주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다. 한 사람이 교환할 수 있는 돈에 상한선을 두고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강제적으로 예금시켜 버린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개인 재산권 행사에 굉장한 침해를 받게 된다.
1962년의 화폐 개혁으로 변경된 화폐 ‘원’이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는 ‘원화’다. 화폐 개혁 이전인 예전의 원(圓)과 구별하기 위해 지금의 원은 한글로만 표기하고 영문 표기는 ‘WON’이다. 한국 화폐 원(WON)의 역사는 고작 60년에 불과하다.
한반도가 평화통일 될 경우 한국 화폐 ‘원’의 가치는?
이제 오래전 우리의 소원대로 한반도가 평화통일 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가까운 미래에 남한과 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글로벌 시장에서 유명한 투자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짐 로저스는 2013년에 국제시장에서 북한 화폐를 대거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짐 로저스는 왜 북한 화폐에 투자했을까. 만약 남북이 통일될 경우 한국이 충분히 보상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짐 로저스의 투자를 이해하려면 동독과 서독의 통일 사례를 살펴보면 된다. 1990년 독일의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은 각자가 발행한 마르크(mark) 화폐를 썼지만 교환비율은 달랐다. 국가 재정이 취약했던 동독의 화폐는 암시장에서 서독 화폐의 4분의 1에 교환되고 있었다.
하지만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서독 사람들이 희생하더라도 동독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통일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동독과 서독 마르크의 교환비율을 1대1로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동독 사람들은 엄청난 이득을 봤다. 추가로 발 빠르게 암시장에서 동독 화폐를 대거 매입했던 서독 투자자들도 4배의 이익을 얻게 됐다. 짐 로저스가 노리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 화폐의 상황은 어떨까. 북한은 2009년에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전격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화폐 개혁 이후인 2023년 현재 기준으로 ‘북한 원’의 환율은 1달러당 8000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원·달러 환율 1300원과 비교하면 화폐 가치가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짐 로저스는 혹시 평화통일이 되면 한국이 독일처럼 화폐 교환비율을 1대1이나 1대2로 너그럽게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굳이 가능성을 따져보면 한반도의 평화통일보다 북한이 또 한 번 화폐 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북한의 경제 상황이 여전히 심각하게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이 다시 한 번 화폐 개혁을 단행하면 구권을 가지고 있는 짐 로저스는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짐 로저스의 명성은 세계적이지만 그가 과연 북한 화폐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확률은 희박하지만 먼 미래에 남북이 통일됐을 때 한국 정부가 과거 독일처럼 북한과의 화폐 교환비율을 너그럽게 가져가는 결정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원화를 보유한 한국 국민들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일부 자산은 원화보다 달러로 보유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미래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과거 6.25 전쟁을 겪었던 한국뿐 아니라 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했던 독일, 최근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까지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화폐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달러는 기축통화이긴 하지만 그 역시 신용화폐이자 종이화폐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화폐 붕괴의 보험 성격인 ‘금’이나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기도 하다.

2023년 10월호
영욕의 독일 화폐 ‘마르크’...나락으로 떨어진 베네수엘라 화폐
독일, 막대한 전쟁배상금·화폐 남발
초인플레이션과 외환시장 붕괴 초래
베네수엘라, 무리한 복지정책으로 재정 망가져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요즘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다. 한국의 빵집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하다 껑충 뛴 물건 가격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식당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미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은 기준금리를 무려 5.5%까지 끌어올렸다. 불과 1년 6개월 만에 금리를 5% 이상 인상한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흔하지 않다. 저금리 때 변동금리로 대출받은 채무자들은 요즘 죽을 맛이다.
인플레이션을 다르게 표현하면 화폐 가치 하락이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경계하는 이유가 뭘까. 적기 대응에 실패하면 최악의 경우 화폐 개혁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를 꼽을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이제부터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사례를 살펴보자.
막대한 전쟁배상금 조달 위해 마르크화 남발
제1차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약 4년 동안 진행됐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영국·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과 전쟁을 벌여 최종적으로 패배했고, 이 전쟁으로 전 세계 900만명 이상의 군인들이 사망했다. 1919년 6월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승전국들은 패전국인 독일(바이마르공화국)에 천문학적인 배상금인 2250억마르크를 요구했다. 특히 프랑스가 강경했다.
너무 터무니없는 금액이라 2년간의 재협상 끝에 1921년 5월 최종적으로 1320억마르크로 결정됐다. 그런데 배상금은 마르크화가 아니라 금이나 외국환으로 갚아야 했다. 따라서 독일의 환율 약세로 마르크화의 가치가 하락하면 배상금의 명목 규모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과연 독일은 이 전쟁배상금을 지불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없다. 독일은 이미 제1차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전쟁채권’을 신나게 발행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배상금을 받아서 빚을 싹 다 갚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거꾸로 패배했으니 빚을 상환할 다른 방법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영국 협상단 대표였던 천재 경제학자 케인즈는 배상금 협상 당시부터 이 막대한 배상금 요구는 독일 경제의 생산능력으로 갚기에는 불가능해 결국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드디어 1921년 여름, 독일은 정상적인 재정 정책으로는 절대 전쟁배상금을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마르크’ 화폐를 말 그대로 찍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찍어낸 마르크화를 외국 화폐로 교환해 전쟁배상금을 분할로 갚아 나갔다. 당연히 독일 마르크 환율은 대폭락했다. 독일 정부가 돈을 찍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한 후 중앙은행(독일제국은행)이 직접 인수하는 방식이다.
중앙은행은 채권을 매입하기 위해 화폐(마르크)를 찍어냈다. 이런 방식으로 재정적자를 조달했는데 이를 ‘부채의 화폐화’라고 부른다. 이 당시의 독일과 달리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부 채권을 중앙은행이 직접 인수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거나 금기시하고 있다.
초인플레 광풍으로 외환시장 완전 붕괴
이때부터 시작된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기록은 전 세계 모든 경제학 교과서에 실렸을 정도로 유명하다. 일단 독일의 마르크화는 외환시장에서 완전히 붕괴됐다. 1921년 상반기까지는 1달러당 90마르크였지만 11월에는 330마르크, 2년 뒤인 1923년 12월에는 모든 게 완전히 붕괴돼 1달러당 4조2000억마르크가 됐다. 마르크화가 종이보다 저렴해진 것이다.
외환시장이 붕괴된 원인은 독일 내부에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초인플레이션이란 물가가 극단적인 속도로 상승하는 현상인데 1개월에 50% 이상 상승했을 때 초인플레이션으로 분류한다. 독일의 인플레이션율은 자료마다 약간 상이하다. 2년간 무려 10억배가 상승했다는 주장도 있고, 300억배라고 주장하는 자료도 있다. 어쨌든 초인플레이션이 절정이던 1923년에 독일의 월 인플레이션은 약 3만%에 달했다.
이런 무지막지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경제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돈의 가치가 워낙 떨어져서 빵 한 조각 사러 손수레 가득 화폐를 가지고 상점에 갔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또 물건을 사는 동안 빈 수레를 훔쳐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나중에는 대부분의 상점이 화폐를 받지 않고 물물거래를 했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상황에서 실물자산 없이 현금만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대부분의 재산이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부동산이나 주식 없이 현금과 채권만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재산은 모두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반대로 집, 토지, 공장 등의 부동산 실물자산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자산을 지켜낼 수 있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큰 이득을 봤다. 주식 또한 큰 폭의 변동성은 있었지만 휴지가 된 현금이나 채권보다 훨씬 훌륭한 방어자산의 역할을 했다.
이 광란의 초인플레이션은 독일이 화폐 개혁을 통해 기존의 ‘마르크’를 ‘렌텐마르크’로 교체하면서 진정됐다. 그 이후에도 독일은 동독과 서독이 분리되면서 ‘동독마르크’와 서독의 ‘도이치마르크’ 등 다양한 화폐로 계속 변경돼 왔다. 마지막으로 쓰고 있는 화폐가 지금의 ‘유로’다.
독일 화폐의 흑역사나 한국 화폐의 흑역사를 살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 원리는 같다. 화폐는 전쟁이나 경제 상황 악화로 인해 언제든 휴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자산가치 보호를 위해 실물자산인 부동산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부동산에 거품이 넘쳐나도 경제위기 상황이 오면 최소한 화폐보다는 좋은 자산이 된다. 물론 유동성까지 고려한다면 ‘금’이나 ‘비트코인’도 일부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전략이 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또 하나의 역사적 교훈은 뭘까. 전쟁은 안 하는 게 최고지만 만약 불가피하게 전쟁을 해야 한다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승전국은 패전국에 가혹할 정도로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어내라고 압박하기 때문이다.
무리한 복지정책으로 망가진 자원부국
독일의 사례는 1920년대에 발생했던 오래전 옛날 얘기다. 이번에는 비교적 최근 사례를 살펴보자. 2017년부터 시작된 베네수엘라 화폐의 흑역사는 독일과 비교해 봐도 만만치 않다.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베네수엘라의 인구는 3000만명이며 석유매장량은 세계 1위로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많다. 이렇게 자원이 많은 나라들은 역설적으로 ‘자원의 저주’에 걸릴 확률이 높다.
자원의 저주란 자원이 풍부한 국가일수록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국민 삶의 질이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 이유는 석유 채굴에만 집중해 제조업의 발전이 느리기 때문이다. 석유 판매로 세금을 편안하게 걷는 정부 역시 다른 산업 육성에 관심이 없고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한다. 이렇게 자원의 저주에 걸린 나라들이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 많은 편이다.
석유는 가격 변동성이 큰 원자재다. 석유가격 상승기에는 정부가 재정을 마구 풀어 국민들에게 통 크게 복지 정책을 써도 상관없다. 하지만 석유가격 폭락기에도 그런 복지 정책이 계속 유지된다면 구조적으로 엄청난 재정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1999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우고 차베스는 통 큰 복지 정책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대표적인 복지 정책으로는 무상주택, 무상교육, 무상의료 시리즈가 있다. 하지만 그 당시 국제유가는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서 이런 복지 정책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그 밖에도 민간기업 1200개를 국유화하는 등 사유재산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정책들을 많이 집행해 왔다.
차베스는 4번이나 연임하며 거의 독재자처럼 국가를 통치했는데 2013년에 갑자기 암으로 사망했다. 후임으로 니콜라스 마두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베네수엘라의 붕괴가 시작됐다. 이때쯤 미국이 셰일가스 개발에 성공해 석유가격의 하락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국가에 가까운 베네수엘라가 복지 정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두로 대통령은 여전히 복지 정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결국 재정적자가 심각해지자 1920년대의 독일처럼 돈을 마구 찍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화폐 남발의 결과는 참혹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3년 4월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경제성장률은 2018년 -19.7%, 2019년 -27.7%, 2020년 -30%로 계속 뒷걸음질쳤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소폭의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불안정하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도 2020년에는 무려 328%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돈을 도대체 누가 다 빌려줬는지 궁금할 정도다. 다행히 2022년에는 부채비율이 158%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한국의 3배 수준이다. 실업률은 2018년에 36%라는 경이적인 숫자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그 이후에는 실업률 데이터 자체가 없다.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일까. IMF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의 인플레이션율은 6만5374%다. 다음해인 2019년에는 1만9906%로 조금 개선됐고, 2020년에는 2355%로 확 낮아졌다. 그리고 2022년에는 드디어 안정(?)을 찾아 201%에 그쳤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수치를 보다 보니 계산이 잘 안 된다. 쉽게 정리하면 2018년 한 해 동안에만 물가가 653배 상승했다는 뜻이다. 1년 전에 1만원 하던 햄버거 가격이 1년 뒤에는 653만원이 됐다는 의미다. 2019년에도 다시 199배가 올랐으니 사실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이 IMF 데이터가 정말 맞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냥 화폐가 붕괴됐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한국에서도 지난 2020년 말 한 판에 5000원이던 계란 가격이 2개월 만인 2021년 2월에 7000원 이상으로 폭등한 적이 있었다. 이 정도의 겸손한 물가 상승에도 주부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생활물가와 밀접한 계란 가격 폭등에 당황한 한국 정부는 미국산 계란까지 긴급 수입하며 물가 안정에 나섰다.
하지만 그래 봐야 한국의 계란 가격은 고작 40% 올랐을 뿐이다. 이 계란 가격을 베네수엘라의 2018년도 물가상승률로 대입해 보면 5000원짜리 계란 한 판이 326만원으로 폭등한 셈이다. 과연 국민들은 납득이 되겠는가. 이런 비현실적인 수치가 나오는 게 바로 초인플레이션이다.
베네수엘라의 충격적인 두 차례 화폐 개혁
베네수엘라의 화폐는 ‘볼리바르 푸에르테’였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플레이션이면 화폐 개혁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화폐 개혁을 단행해 2018년 8월에 ‘볼리바르 소베라노’라는 신 화폐가 발행됐다. 구 화폐와의 교환비율은 무려 100,000 대 1이었다. 무시무시한 교환비율이다.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화폐 개혁 이후에도 여전히 초인플레이션은 계속됐다.
IMF가 발표한 2019년의 베네수엘라 인플레이션은 무려 199배다. 2018년 8월의 화폐 개혁은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결국 2021년 10월에 다시 한 번 화폐 개혁을 단행해 ‘볼리바르 디히탈’이라는 신 화폐가 발행됐다. 전자화폐 기능까지 부여된 화폐다. 이번에는 구 화폐와의 교환비율이 무려 1,000,000 대 1 이었다.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 없이 그냥 화폐만 들고 있던 국민들은 쫄딱 망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런 국가 위기 상황이 되면 자주 쓰이는 또 다른 수단이 바로 은행 예금 동결이다. 베네수엘라는 국민들 개개인의 은행 예금을 동결하고 하루의 현금 인출금액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정책을 썼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6.25 전쟁과 박정희(당시 최고회의 의장) 군사정권 시절의 화폐 개혁 때도 사용됐던 흔한 정책이다. 국가가 어려워지면 국민들의 현금재산은 아주 쉽게 사용을 제한받을 수 있다.
사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경우 예금이 동결되든 말든 별 상관도 없다. 이미 자국 화폐는 거의 휴지가 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했던 암호화폐 ‘페트로’도 실패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던 2019년에는 화폐거래 대신 물물교환이 대세였다. 이런 상황이니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완전히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일자리도 없고 필수품도 구하기 어렵고 식량도 부족하고 치안도 엉망이다.
그래서 전 국민들의 베네수엘라 탈출이 이어졌다. 경제 위기가 시작된 2015년에 3062만명이었던 베네수엘라의 인구 중 최소 500만명 이상이 최근 7년간 베네수엘라를 탈출해 인근 국가들로 흩어졌다. 먹고살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다. 이에 2022년에는 베네수엘라 인구가 2691만명까지 줄어들었다. 실제로는 공식 감소 인구 수보다 더 많은 국민들이 인근 국가에서 돈을 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한 베네수엘라의 부동산 가격은 어떻게 됐을까. 인플레이션 초기와 중기까지는 부동산 가격이 대폭등했다. 하지만 부동산의 수요층인 국민들이 나라를 떠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런 경우엔 과거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과는 달리 실물자산인 부동산을 들고 있어도 반드시 안전한 건 아니다.
베네수엘라를 떠난 약 500만명 중 일부는 탈출 자금으로 집과 가게를 처분해 일시적으로 부동산 공급이 증가하고 수요는 줄어들었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잠깐 하락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회복 중이다. 국민들이 모두 베네수엘라를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국 화폐는 아예 휴지가 됐으니 실물자산인 부동산과 비할 바가 아니다.
유일한 희망은 원유 수출 재개
주 베네수엘라 대사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서는 현재 상품 구매 시 자국 화폐 대신 미국 달러화를 사용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기업들 중 65%가 종업원들에게 급여를 달러로 지급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자국 화폐 붕괴로 인해 신용카드 사용은 급감하고 기축통화인 달러 사용이 일반화된 셈이다.
베네수엘라 서민들의 실제 생활은 심각하다. 유엔세계식량계획(WEP)이 2020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민 3명 중 1명이 식량 불안 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동 빈곤 또한 심각하다. 부모들은 돈벌이를 위해 해외로 나갔거나 아예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밥을 굶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스스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베네수엘라 아동이 10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비공식 통계도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치 구조는 복잡하다. 2018년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재선 결과에 대한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됐다. 대선 결과에 불복한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는 임시 대통령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60여 개국도 후안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결국 베네수엘라는 ‘한 지붕 두 대통령’ 체제가 4년간 이어지다가 2022년 말에 과이도 임시 대통령이 퇴진하면서 상황이 정리됐다.
대선 다음해인 2019년 당시 베네수엘라와 단교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추가로 미국 정유사 철수 등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했다. 경제 제재 종류가 무려 900개가 넘는 실정이다. 마두로 정권의 퇴진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2022년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유가가 폭등하면서 분위기가 살짝 바뀌고 있다.
세계 1위 원유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의 물량으로 유가를 안정시키려는 극약처방마저 필요할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원유는 중질유라 정제 비용이 높아 경질유보다 인기가 낮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베네수엘라는 자체적인 원유정제 기술력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원유의 대량 공급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구조다.
하지만 심각했던 미국 내 유가 폭등 상황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강경했던 미국의 입장도 점차 수그러들었다. 어쩔 수 없이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11월에 베네수엘라에 남아 있던 미국 셰브런 사의 원유 생산 재개를 6개월간 일시적으로 허용했다. 셰브런 사는 당연히 정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주 베네수엘라 대사관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으로 베네수엘라는 셰브론 사의 원유 개발을 통해 미국에 18.5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다. 대미 원유 수출국가 중 6위다. 또 미국은 계속해서 추가적인 제재 완화와 관련된 고위급 회담을 진행 중이다.
미국 입장에서 가장 큰 고민은 2024년의 대선에서도 마두로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은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한다. 반면 마두로 대통령은 역내 우호 국가들인 러시아·중국과의 외교 확대를 통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한다. 결론적으로 마두로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어려워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가 해소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베네수엘라 경제전문기관들은 2023년의 인플레이션율을 300~400%까지 예상하며 여전히 베네수엘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끝나지 않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유일한 희망은 국가 경쟁력의 거의 전부인 원유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경제 제재를 일시적으로 완화해 준 덕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스스로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뭘까. 곧 휴지가 될 게 뻔한 지국 화폐 대신 ‘달러’를 보유하는 게 최선이다. 실물자산인 부동산도 화폐 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물론 달러 기준으로 따져보면 베네수엘라의 부동산 또한 최악이다. 하지만 자국 화폐 기준으로는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자산의 일부는 금이나 비트코인으로 보유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부동산은 자국 화폐 가치 폭락을 방어할 수는 있지만 유동성이 낮다는 것이 단점이다. 반면 금이나 비트코인은 유동성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경제 위기 시 효과적인 방어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든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서민들이 대응하기가 가장 어렵다. 자산 보전은 고사하고 당장 먹고살 돈도 없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