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1월호
5년 뒤 세계 최대 제약사는 로슈? 국내서도 ETF에 담았다
공격적 M&A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
‘허셉틴’ 등 주력 3종 특허만료 비상
삼성·미래에셋 비만 ETF도 로슈 비중 6% 베팅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로슈(Roche)는 1896년에 스위스 바젤에서 설립된 글로벌 제약 및 진단 회사다. 세계적인 헬스케어 기업 중 하나로 13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로슈의 대표 의약품은 20개도 넘는다. 그중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의약품을 꼽는다면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이 대표적이다.
영화 리빙 프루프(Living Proof)로 본 허셉틴
허셉틴은 표적항암제(2세대) 방식의 유방암 치료제다. 기존 세포독성항암제(1세대)는 정상 세포와 암세포를 구분하지 않고 공격해 부작용이 심했다. 반면 표적항암제인 허셉틴은 특정한 종류의 유방암 세포만을 공격해 치료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은 줄였다.
영화 ‘리빙 프루프(Living Proof)’는 암 연구자이자 종양학자인 데니스 슬래먼(Dennis Slamon) 박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가 1980~1998년까지 허셉틴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과정에서 겪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HER2 유방암은 암세포가 HER2라는 특정 단백질을 과도하게 발현해 빠르게 성장하는 유형의 유방암이다. 과거 HER2 양성 유방암은 예후가 좋지 않은 치명적인 암으로 여겨졌다. 치료제를 연구하던 슬래먼 박사는 허셉틴이 암을 공격하면서도 정상 세포를 덜 손상시키는 잠재력을 발견한다.
하지만 슬래먼 박사는 허셉틴 개발에 필요한 연구 자금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초기 임상시험에서 약간의 성공이 있었음에도 제약회사와 투자자들은 충분한 자금 지원을 주저한다. 그는 자금을 모으기 위해 기업을 설득하고, 때로는 환자들의 지원에 의존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슬래먼 박사는 다양한 임상시험을 수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몇몇 환자가 허셉틴 덕분에 생명을 구하는 극적인 순간이 묘사된다. 그러나 임상시험은 항상 순조롭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슬래먼은 실험 실패와 환자의 죽음 등으로 정서적 고통을 겪는다.
영화는 유방암을 앓고 있는 여성 환자들의 이야기를 병행해 그려낸다. 그들은 허셉틴이 자신들에게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기대로 치료에 참여한다. 특히 한 환자가 허셉틴 덕분에 암을 극복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결국 슬래먼 박사는 허셉틴의 기나긴 임상 1, 2, 3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1998년에 FDA의 최종 승인을 받아낸다. 슬래먼 박사와 ‘로슈+제넨텍’의 신약 개발 성공으로 HER2 양성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치료 옵션이 생긴 셈이다. 이후 수십만 명의 유방암 환자가 허셉틴 덕분에 생명을 건진 것으로 알려진다.
특허는 만료됐지만...공격적 M&A로 성장동력 확보
허셉틴은 뛰어난 의약품이지만 로슈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이미 특허가 만료됐다. 이에 따라 현재 미국에서 승인된 대표적인 허셉틴 바이오시밀러는 암젠과 엘러간 등이 공동 개발한 ‘칸진티’, 화이자의 ‘트라지메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온투르잔트’, 셀트리온의 ‘허쥬마’ 등 4종이 대표적이다.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허셉틴의 매출액은 급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로슈에게는 허셉틴만 있는 게 아니다. 로슈는 제약 부문과 진단 부문에서 혁신적인 의약품과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로슈는 특히 암 치료제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최근 글로벌 초대형 제약사들의 공통적인 전략은 공격적 인수합병(M&A)이다. 로슈 또한 오래전부터 다양한 M&A를 통해 제약 사업과 진단 사업을 키우며 성장해 왔다.
로슈가 1997년에 약 110억달러(13조3000억원)에 인수한 ‘베링거만하임’은 진단 기기와 시약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로슈가 베링거만하임을 인수함으로써 지금의 강력한 로슈 진단사업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로슈는 2001년에 일본의 쥬가이제약(Chugai)과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쥬가이제약 주식 50.1%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사실상의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 인수금액은 약 13억달러(1조7000억원)로 추정된다. 이후 쥬가이제약은 독립적으로 연구와 운영을 하고 있다. 또 로슈의 연구개발 네트워크와도 협력해 다양한 신약을 개발 중이다.
2008년에 약 34억달러(4조4000억원)에 인수한 ‘벤타나 메디컬 시스템즈’는 병리학적 진단 분야의 선도 기업이다. 특히 암 진단에 사용되는 조직 분석 및 자동화된 진단 기기를 개발하는 데 주력해 왔다. 로슈는 이 인수를 통해 ‘진단사업부’를 강화하고, 진단 기술과 치료제를 연결하는 동반 진단 분야에서의 경쟁력도 강화했다.
로슈의 역대 M&A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건 ‘제넨텍’ 인수다. 2009년에 약 468억달러(60조원)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인수합병을 진행했다. 제넨텍은 항암 치료제 분야에서 강력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회사다. 따라서 인수 이후 로슈가 항암제 시장에서 세계적인 리더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밖에도 2014년에는 83억달러(10조8000억원)에 ‘인터뮨’을, 2018년에는 ‘플랫아이언헬스’와 ‘파운데이션 메디신’을 각각 19억달러(2조5000억원)와 24억달러(3조1000억원)에 인수했다. 또 2019년에는 ‘스파크 테라퓨틱스’를 47억달러(6조1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 왔다.
로슈 매출액 1~7위 주력 의약품은?
로슈의 매출 상위 주력 의약품들은 대부분 ‘항체의약품’이다. 항체의약품이란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에서 항체가 병원체(바이러스나 세균)를 공격하는 원리를 이용해 만든 의약품이다. 항체는 특정한 물질(항원)을 찾아내고, 그것과 결합해 공격하거나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다.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약이 항체의약품이다. 예를 들어, 암 환자에게 투여하는 항체약은 암세포만 찾아가서 공격하게끔 설계돼 건강한 세포를 덜 손상시킨다. 대표적인 항체의약품으로는 허셉틴(Herceptin, 유방암 치료제)과 리툭산(Rituxan, 림프종 치료제) 등이 있다.
2024년 상반기 기준 로슈 매출액 순위 1위 약품은 ‘오크레부스(Ocrevus)’로 5조3000억원(34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오크레부스는 다발성 경화증의 진행을 늦추는 항체 약물이다. B세포를 표적으로 삼아 신경 손상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기존 치료법보다 재발률을 낮추고 환자 삶의 질을 개선한다.
2위는 ‘헴리브라(Hemlibra)’로 3조4000억원(21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혈액응고 장애를 가진 혈우병 A 환자들에게 사용된다. 특히 응고 인자 VIII 결핍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주사형 항체 치료제로 출혈 발생을 예방한다.
3위는 ‘퍼제타(Perjeta)’로 3조원(19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허셉틴과 함께 사용하는 표적항암제다.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게 투여해 암세포 성장을 막고 치료 효과를 높인다. 허셉틴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치료제다.
4위는 ‘티센트릭(Tecentriq)’으로 2조8000억원(18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비소세포 폐암, 방광암 등을 치료하는 면역항암제다. 종양세포가 면역 반응을 회피하지 못하게 해 자신의 면역 시스템이 암을 공격하도록 돕는다.
5위는 ‘바비스모(Vabysmo)’로 2조8000억원(18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황반변성 및 당뇨병성 망막병증 등의 안과 질환을 치료하는 항체 약물이다. 안구 내 혈관 신생을 억제해 시력을 보호한다. 황반변성을 방치하면 시력을 상실하게 된다. 바비스모는 기존 강자인 바이엘과 리제네론의 ‘아일리아’ 치료제를 맹추격 중이다. 2023년에만 전년 대비 매출액이 324% 폭증한 3조7000억원(24억스위스프랑)을 기록했다. 2024년 상반기 증가율도 93%로 엄청난 성장성을 보이고 있다. 로슈가 야심 차게 출시한 떠오르는 신약이다.
6위는 ‘악템라/로악템라(Actemra/RoActemra)’로 2조원(13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류머티스 관절염 및 중증 코로나19 치료제로 사용된다. 인터루킨-6를 차단해 염증을 치료하는 면역 억제제다.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의 염증 반응을 줄이고 증상을 완화한다.
7위는 ‘졸레어(Xolair)’로 1조7000억원(11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IgE 항체를 표적하여 알레르기성 천식과 만성 두드러기를 치료하는 약물이다. 염증을 유발하는 히스타민 분비를 억제한다.
로슈 매출액 8~15위 주력 의약품...특허 만료로 비상
로슈 매출액 8~15위 순위를 살펴보면 눈에 띄게 매출이 급감하고 있는 삼총사가 있다. 매출 11위를 기록한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이 첫 번째 주인공이다. 매출 12위를 기록한 대형 B세포 비호지킨 림프종 치료제 ‘맙테라/리툭산’이 두 번째 주인공이다. 매출 13위를 기록한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 ‘아바스틴’이 마지막 주인공이다.
@img4
그간 잘나갔던 로슈의 주력 의약품 허셉틴, 맙테라/리툭산, 아바스틴의 매출이 급감하는 이유는 특허가 만료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로슈에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하지만 로슈 역시 이날에 대비해 다양한 신약을 개발해 매출 감소를 상쇄하고 있다.
로슈 매출순위 8위인 ‘에브리스디(Evrysdi)’는 2024년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25% 급증한 1조3000억원(8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에브리스디는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다. 환자의 근육 기능을 향상시키는 먹는(경구용) 약물이다. 척수성 근위축증의 진행을 늦추고 생존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또 눈에 띄는 약물은 매출액 9위인 ‘페스코(Phesgo)’로 2024년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60% 급증한 1조3000억원(8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페스코는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제다. 로슈의 기존 대표 의약품인 퍼제타와 허셉틴을 한 번의 주사로 투여할 수 있는 복합 제제다. 두 약품의 장점을 결합해 치료 효과가 더 크다.
페스코는 ‘피하주사(SC)’로 투여할 수 있는 고정 용량 제형으로 제공된다. 약 5분 만에 투여가 가능하다. 그래서 약 90분이 소요되는 기존의 정맥 주사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더 많은 환자를 빠르게 치료해야 하는 의사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다. 바쁜 환자들 입장에서도 선호도가 높다.
경쟁 약품으로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치산쿄 가 공동 개발한 HER2 표적 항체-약물 접합체(ADC) ‘엔허투’가 있다. 페스코는 현재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는 적응증을 확대해 더 넓은 암 치료 영역으로 진출할 가능성도 크다.
로슈의 또 다른 유망 약품으로는 매출액 15위를 기록한 ‘폴라이비(Polivy)’를 꼽을 수 있다. 2024년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54% 급증한 8000억원(5억스위스프랑)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CD79b 항체와 약물을 결합한 항체-약물 복합체(ADC)로 비호지킨 림프종 환자에게 사용된다.
폴라이비는 암세포를 표적으로 직접 공격해 항암 효과를 극대화한다. 비호지킨 림프종(NHL), 특히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불응성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항체-약물 접합체(ADC)다. 항체와 항암제를 결합해 특정 암세포를 정밀하게 공격하는 방식이라 최근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비호지킨 림프종의 치료 영역에서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을 위한 신약 수요가 높기 때문에 차세대 항체-약물 접합체로서 시장에서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로슈는 폴라이비의 적응증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폴라이비는 1차 치료제로도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을 경우 매출과 시장점유율이 더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폴라이비의 경쟁 약물로는 노바티스의 CAR-T 세포 치료제가 있다. CAR-T 기술을 통해 환자의 면역세포를 변형해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혁신적인 치료법이다.
CAR-T 치료제는 혁신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비용과 복잡성 때문에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기는 어렵다. 폴라이비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투여 과정이 간단해 CAR-T 치료제를 사용할 수 없는 환자에게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향후 적응증 확대로 인해 더욱 큰 시장 기회를 확보할 가능성도 크다.
로슈의 또 다른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 치료제인 ‘컬럼비’도 기대되는 의약품이다. 이 약물은 ‘이중특이성 항체’ 면역세포를 동시에 타겟팅해 암을 공격하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특히 CAR-T 치료나 다른 표준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재발성 및 불응성 DLBCL 환자들에게 효과가 좋다. 컬럼비는 한국에서도 2023년 말에 승인됐다.
비만치료제 시장에도 뛰어들어
로슈에게는 이미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핵심 의약품 외에도 활발하게 임상이 진행 중인 신약 후보가 수십 가지나 대기 중이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비만 치료제다. 비만 치료제 시장은 이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가 꽉 잡고 있다.
하지만 로슈 역시 강력한 체중 감량 효과가 기대되는 비만 치료제의 임상 성적표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미 1상에서 25% 수준의 감량 효과가 보고되며 시장의 기대감을 증폭시킨 바 있다.
로슈가 개발 중인 비만약 후보물질 ‘CT-388’(실험물질명)은 로슈가 2023년 말에 바이오기업 ‘카모트 테라퓨틱스’를 약 3조5000억원(27억달러)에 인수하면서 손에 넣은 비만 치료제다.
이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은 임상 1상 시험에서 24주 동안 위약(가짜 약) 대비 평균 18.8%의 체중 감소 효과를 입증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로슈는 2024년 7월부터 CT-388로 임상 2상 단계에 진입했다.
현재 로슈의 파이프라인은 대부분 항체의약품에 집중돼 있다. 만약 비만 치료제가 성공할 경우 파이프라인 다각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로슈는 내부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2028년에 비만 치료제를 시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삼성자산운용의 ‘KODEX 글로벌비만치료제TOP2 Plus’ ETF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글로벌비만치료제TOP2Plus’ ETF에서도 약 6~7% 수준으로 로슈홀딩스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놓은 상태다. 그만큼 로슈의 비만 치료제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로슈 주식 매매 시의 주의사항은?
로슈는 스위스에 ‘Roche(코드번호 ROG)’라는 이름으로 상장돼 있다. 그런데 로슈 지주사인 로슈홀딩스는 미국 장외시장(OTCMKTS)에 ‘Roche Holding(코드번호 RHHBY)’이라는 이름의 ADR 형태로 상장돼 있다. 이 로슈 홀딩스 안에는 ‘로슈(Roche)’와 ‘제넨텍(genentech)’, 일본의 ‘쥬가이제약(Chugai)’ 등이 속해 있다.
한국에서 로슈 주식을 매수하는 방법은 다소 복잡하다. 미국 주식이 HTS나 MTS를 통해 자유롭게 매매되는 것과 달리 스위스에 상장된 ‘Roche’ 주식은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가 전화 주문으로만 주문 수탁을 하므로 매수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하다. 심지어 미국 장외시장에 상장된 ‘Roche Holding’의 경우 대부분의 한국 증권사에서는 매수 중개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한국인이 직접 해당 주식을 매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미국에도 투자할 종목이 많은데 굳이 스위스에 상장된 로슈 주식을 매매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도 있을 것이다. 스위스 주식의 경우 스위스프랑으로 환전해 매수해야 한다. 따라서 안정적인 통화로 인기가 높은 스위스프랑과 성장성 높은 로슈 주식에 동시에 투자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으로 제약·바이오 회사 주식이 주목받고 있다. 만약 로슈의 기존 주력 약품과 임상이 진행 중인 수많은 신약들로 인해 멀지 않은 미래에 로슈의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할 거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라면 로슈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2024년 11월호
실명 막는 '아일리아' 특허만료 위기? 비만치료제 ‘리제네론’으로 돌파
고용량 ‘아일리아 HD’ 성장세에 기대감
특허만료 방어 위한 공격적 소송 전략
차세대 항암제 ‘리브타요’ 매출급증 주목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리제네론 파마슈티컬스(Regeneron Pharmaceuticals)’는 1988년에 설립된 미국 생명공학 회사다. 전통의 제약회사 업력은 100년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리제네론의 업력은 고작 35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리제네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독자적인 기술 플랫폼으로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덕이다.
리제네론은 신약 개발 매출 외에도 또 다른 수익모델이 있다. 대형 제약사와의 협업을 통한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와 기술 이전 제품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받는 독특한 수익모델이다. 이는 바이오텍 기업의 가장 이상적인 사업구조로 평가받는다. 요즘에는 흔한 방식이지만 이 분야의 선구자가 바로 리제네론이다.
리제네론은 신약 개발의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인 혁신적인 플랫폼을 개발했다. 그 핵심은 ‘벨로시수트(VelociSuite)’라는 통합 기술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으로 신약 개발 과정을 혁신적으로 개선했다. 예를 들면 벨로시수트에 포함된 기술 중 ‘벨록이뮨(VelocImmune)’ 기술은 유전자 변형 쥐를 사용해 인간 항체를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리제네론은 이런 기술 플랫폼으로 ‘아일리아(Eylea)’와 ‘듀피젠트(Dupixent)’ 같은 블록버스터 신약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냈다.
리제네론 성공으로 이끈 안질환 치료제 ‘아일리아’
리제네론과 바이엘이 공동 개발한 ‘아일리아(Eylea)’는 2011년에 습성 황반변성(wAMD)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당시 리제네론은 상대적으로 작은 생명공학 회사였기에 이 승인은 중대한 성과였다. 리제네론은 아일리아의 개발을 위해 수년간 연구와 임상시험에 집중해 왔다.
황반변성은 노화로 눈의 망막 중심부에 위치한 황반이 손상돼 시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마치 카메라의 필름에 상이 맺히는 부분이 손상돼 선명한 영상을 볼 수 없는 것과 유사하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시력상실 원인 1위로 지목된다. 황반변성은 건성(약 85%)과 습성(약 15%)으로 나뉜다.
건성은 시력 상실이 느리게 진행되며 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없다. 건성에서 습성으로 악화될 경우 문제가 커진다. 습성 황반변성은 황반 아래에서 비정상적인 신생 혈관이 자라 시력 상실을 유발한다. 습성은 전체의 15% 비율로 적지만 실명 위험이 매우 높아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습성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는 주로 ‘유리체 내 주사 방식’으로 투여된다. 이는 눈 안의 유리체(젤 같은 물질)에 직접 약물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망막 내 비정상적인 신생 혈관의 성장을 억제해 시력을 보호한다.
아일리아가 습성 황반변성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을 당시 이미 노바티스와 로슈가 공동 개발한 ‘루센티스(Lucentis)’가 점유율 1위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일리아는 루센티스와 차별화된 치료 방식을 제공했다.
루센티스는 계속해서 매월 1회씩 투여해야 했지만, 아일리아는 초기 3개월만 매월 1회씩 투여한다. 이후부터는 2개월에 1회로 주사 빈도를 줄일 수 있다. 환자와 의사 입장에서 주사 빈도가 적어지면 치료 부담이 줄고 병원 방문 횟수도 줄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이에 따라 몇 년 뒤부터 아일리아의 매출액이 루센티스의 매출액을 앞지르며 리제네론의 주가 상승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노바티스와 리제네론 간의 마케팅 경쟁은 제약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아일리아의 2023년 리제네론/바이엘 합산 매출액은 무려 12조2000억원(94억달러)이다. 전 세계 의약품 매출 순위 11위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특허만료 위기...소송과 ‘고용량 아일리아’로 반격
문제는 특허 만료다. 아일리아의 주요 물질특허는 미국에서 2024년 5월, 유럽에서 2025년 11월에 각각 만료될 예정이었다. 워낙 인기 있는 약품이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준비하는 제약사도 많다. 한국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 5월에 ‘아필리부’(미국제품명 오퓨비즈)라는 이름의 바이오시밀러를 가장 먼저 국내 시장에 출시했다. 셀트리온도 ‘아이덴젤트’라는 제품명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을 준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제네론은 아일리아를 지켜내기 위해 미국에서 다양한 방식의 공격적인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 아일리아와 유사한 바이오시밀러가 침투하는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전략이다.
또 다른 전략으로는 기존 아일리아의 성능을 개선한 신약 출시다. 리제네론은 기존 용량을 4배로 늘린 고용량 ‘아일리아 HD’ 신약을 개발했다. 이 신약은 2023년에 FDA의 품목 허가를 받았다. 아일리아의 표준 용량은 2mg이지만 아일리아 HD는 8mg의 고용량으로 처방된다. 기존 아일리아는 최초 3개월만 매월, 이후부터는 두 달에 한 번씩 주사를 맞는다. 반면 고용량 아일리아 HD는 주사 간격을 최대 16주(3~4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환자들의 편의성이 크게 개선되는 셈이다. 고용량임에도 안전성이 기존 아일리아와 유사한 수준인 것도 장점이다.
아일리아는 특허 만료 외에도 또 다른 악재가 있다. 바로 경쟁 약품의 등장이다. 기존 경쟁 약품인 루센티스 외에 최근 떠오르는 경쟁 약품은 로슈의 ‘바비스모(Vabysmo)’다. 아일리아는 VEGF(혈관 내피 성장 인자) 억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바비스모는 VEGF 외에도 추가로 Ang-2(안지오포이에틴2)도 억제하는 이중 작용 기전이다. 이를 통해 혈관 안정성을 높이고 염증을 억제해 시력 보호 효과를 강화한다. 주사 간격도 16주(4개월)로 고용량 아일리아 HD보다도 살짝 더 길다. 최근 바비스모의 매출액이 급증하는 이유다.
아토피·천식 치료제 ‘듀피젠트’도 효자상품
하지만 리제네론에는 아일리아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일리아보다 더 많이 팔리는 약이 있다. 바로 리제네론/사노피가 공동 개발한 아토피·천식 치료제 ‘듀피젠트’다. 듀피젠트의 2023년 리제네론/사노피 합산 매출액은 무려 15조원(116억달러)이다. 전 세계 의약품 매출액 6위를 기록한 슈퍼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매출액이 전부 리제네론에게 인식되는 건 아니다. 협업 매출로 간주되는 금액은 약 5조원(38억달러)이다.
듀피젠트는 ‘인터루킨-4(IL-4)’와 ‘인터루킨-13(IL-13)’ 경로를 차단하는 단일클론 항체(하나의 항원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항체)다. 이런 기전으로 면역질환 치료에 널리 사용된다. 이 경로는 알레르기성 염증과 관련이 있어 아토피 피부염, 천식, 비부비동염 등의 제2형 염증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듀피젠트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등으로의 적응증 확장을 통해 상당한 추가 매출을 노리고 있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리제네론의 대표 의약품이다. 시장에서는 듀피젠트의 2030년 예상 매출액을 약 26조원(200억달러)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토피 피부염 발병 원인과 치료
듀피젠트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적응증은 중증 아토피 피부염이다. 피부의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심한 가려움증과 피부염증을 동반한다. 일반적인 아토피 피부염보다 더 심한 증상을 보여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토피 피부염의 발병은 유전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피부 장벽 단백질인 필라그린(filaggrin)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피부가 외부 자극에 더 쉽게 반응하게 된다. 면역학적 요인으로는 제2형 면역 반응(Th2)과 관련된 질환이다. 인터루킨-4(IL-4), 인터루킨-13(IL-13) 같은 염증성 사이토카인(면역세포로부터 분비되는 단백질 면역조절제)이 과도하게 분비되며 염증을 유발한다. 면역 반응이 조절되지 않아 증상이 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은 심각한 수면 장애, 우울증에 빠진다. 지속적인 가려움과 불편감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다. 대인관계와 직업생활에도 방해를 받는다. 특히 2차 감염이 자주 발생한다. 이로 인해 상처 부위로 세균이 침투해 염증을 악화한다. 경증 아토피 피부염은 국소 스테로이드와 같은 염증 억제제를 사용해 치료한다. 반면 중증 아토피 피부염은 생물학적 제제인 듀피젠트를 사용해 인터루킨-4(IL-4)와 인터루킨-13(IL-13) 경로를 차단한다.
이는 기존 치료법에 비해 장기적인 염증 억제 효과가 크고 부작용이 적다. 듀피젠트의 등장으로 과거에는 치료가 어려웠던 중증 아토피 피부염도 증상 완화와 재발 방지 효과가 크게 개선된 셈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듀피젠트 매출액이 매년 급증하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듀피젠트의 인기는 상당하다. 안타깝게도 아토피 피부염의 약 85%는 만 5세 이하 때부터 증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간 성인과 만 6세 이상의 소아 및 청소년 중증 아토피 피부염에만 보험 급여가 적용돼 왔다. 만 5세 이하 영유아 환자는 급여 적용이 안 돼 부모들이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해야 했다.
특히 만 2세 이하 환자는 임상 근거 부족으로 제대로 된 치료제 사용이 어려웠다. 그런데 2024년 8월부터 듀피젠트의 급여 범위가 만 6개월 이상까지로 확대됐다. 한국에서도 영·유아에 대한 효능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에 따라 요건에 맞는 영유아들은 기존 치료비의 10% 가격으로 듀피젠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듀피젠트의 경쟁 약품으로는 애브비의 신약 ‘린버크’가 있다. 최근 린버크의 매출액 증가율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아직 듀피젠트의 매출액보다는 크게 낮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아토피 피부염 시장에서 듀피젠트의 독주가 지속될 전망이다.
원투 펀치만으론 부족...차세대 신약 ‘리브타요’ 주목
리제네론의 재무제표상 2023년 아일리아 매출액은 7조7000억원(59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6% 감소했다. 다행히 듀피젠트 등의 사노피 협업매출은 4조9000억원(38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33% 급증했다. 2023년 전체 영업이익도 5조3000억원(40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15% 감소한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최근 발표된 2024년 2분기 실적은 크게 호전됐다. 주력인 아일리아 매출액은 1분기 대비 9% 증가한 2조원(15억달러)을 기록했다. 듀피젠트 등의 사노피 협업매출도 1조5000억원(11억달러)으로 1분기 대비 24% 증가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2분기 영업이익도 13% 급증한 1조7000억원(13억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리제네론의 주력 매출 의약품을 살펴보면 원투 펀치인 아일리아와 듀피젠트 외에 ‘리브타요(Libtayo)’가 눈에 띈다. 리브타요는 리제네론과 사노피가 공동 개발 중에 권리를 인수한 면역항암제다. PD-1 면역관문억제제로 분류된다. 암세포가 면역 시스템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막아 면역 시스템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 치료제다.
피부 편평세포암종 환자에게 사용되는 최초의 전신치료제로 2018년에 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후 특정 유형의 비소세포 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와 특정 유형의 자궁경부암 환자로 적응증을 넓혀 나가고 있다.
리브타요의 2023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93% 폭증한 1조1000억원(9억달러)을 기록했다. 2024년 2분기에도 1분기 대비 13% 증가한 4000억원(3억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리제네론의 차세대 신약으로 주목 받는 중이다. 경쟁 약품으로는 같은 PD-1 억제제이자 전 세계 매출액 1위를 달리고 있는 머크의 ‘키트루다’가 있다.
기대되는 신약은 근육감소 부작용 해결한 비만치료제
리제네론은 현재 30여 개가 넘는 신약 후보물질들을 임상시험 중이다. 그중 가장 기대되는 신약은 새로운 유형의 비만 치료제다. 리제네론은 고용량 미오스타틴 항체인 ‘트레보그루맙’을 이용한 비만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미오스타틴은 근육 성장을 조절하고 근육 발달을 억제하는 중요한 단백질이다. 트레보그루맙은 미오스타틴을 차단함으로써 근육 성장을 촉진하는 동시에 잠재적으로 지방량을 감소시켜 준다.
따라서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나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가 해결하지 못한 근육 감소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다. 현재 리제네론은 미오스타틴 항체인 트레보그루맙을 세마글루타이드와 병용해 평가하는 임상을 진행 중이다. 임상 결과는 2025년 하반기 중에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삼성자산운용의 ‘KODEX 글로벌비만치료제TOP2Plus’ ETF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글로벌비만치료제TOP2Plus’ ETF에서도 3~5% 수준으로 리제네론 파마슈티컬스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놓은 상태다. 그만큼 리제네론 비만 치료제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으로 제약·바이오 회사 주식이 주목받고 있다. 리제네론이 현재 임상시험 중인 30여 개 신약 중 실제 몇 개나 최종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미래에 리제네론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할 거라 믿는 투자자라면 리제네론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2024년 11월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 주가 추락...공격적 M&A로 부활할까
제약회사 최초 면역항암제 개발한 항암제 강자
정해진 미래...특허절벽으로 최대 위기
살길은 M&A뿐...공격적인 연속 M&A 진행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은 긴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1887년에 해밀턴대학을 졸업한 ‘브리스톨’과 ‘마이어스’가 뉴욕의 클린턴 제약회사를 인수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1989년에는 스큅 박사가 설립한 ‘스큅&선즈’와 합병하면서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이 탄생했다.
BMS의 성장 역사는 M&A의 역사
BMS는 140여 년에 달하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제약회사 중 최초로 면역항암제의 임상 개발을 시작해 다양한 항암제 파이프라인을 보유 중이다. 인수합병(M&A)으로 출발한 회사답게 설립 이후 수많은 M&A를 통해 성장을 가속화해 왔다.
BMS는 2009년에 ‘메다렉스(Medarex)’를 약 3조1000억원(24억달러)에 인수했다. 이 M&A는 대성공이었다. 주력 제품인 ‘옵디보(Opdivo)’는 다양한 암 치료에 사용되는 면역항암제(PD-1 억제제)로 자리매김했다. ‘여보이(Yervoy)’는 또 다른 면역항암제(CTLA-4 억제제)로 옵디보와 병용해 전이성 흑색종 및 기타 암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BMS의 M&A가 언제나 성공만 한 건 아니다. 2012년에 9조1000억원(70억달러)에 인수한 ‘아밀린 파마슈티컬스(Amylin Pharmaceuticals)’ M&A는 기대보다 밋밋한 성과를 보였다. 아밀린의 주력 약품인 당뇨병 치료제 ‘바이에타(Byetta)’는 GLP-1 수용체 작용제 중 최초로 상용화된 약물이다. 하지만 새로운 GLP-1 수용체 작용제인 노보노디스크의 ‘오젬픽(Ozempic)’과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Mounjaro)’ 등 더 좋은 제품이 출시되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바이에타는 경쟁에서 밀려 매출이 급감한 상태다.
BMS의 M&A 중 가장 거대하면서도 성공적인 사례는 2019년에 진행한 ‘셀진(Celgene)’ 인수다. BMS는 면역항암제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무려 97조원(740억달러)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셀진에 쏟아부었다. BMS의 M&A 중 역대급이다.
셀진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Revlimid)’와 차세대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포말리스트(Pomalyst)’가 주요 파이프라인이다. 다발성 골수종이란 골수에서 비정상적인 형질세포(백혈구의 일종)가 과도하게 증식하는 암을 말한다.
셀진의 또 다른 파이프라인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오테즐라(Otezla)’는 건선 및 관절염 치료제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약품은 BMS의 셀진 인수 후 규제 당국의 요구에 따라 암젠(Amgen)에 17조5000억원(134억달러)에 매각됐다. 암젠이 가져간 오테즐라는 2023년 매출액이 3조원(22억달러)으로 양호하다. 꾸준히 암젠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대신 BMS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셀진 인수대금을 사실상 낮추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이 밖에도 셀진이 임상 중인 신약 후보물질만 50여 개에 달해 추가적인 파이프라인 확대가 기대된다.
BMS가 심혈관 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 확보를 위해 2020년에 17조원(131억달러)에 인수한 ‘마이오카디아(MyoKardia)’도 성공한 M&A다. 마이오카디아는 심혈관 질환 치료제에 특화된 회사다.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oHCM)’이란 심장의 좌심실 벽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져 혈액이 심장에서 나가는 경로가 좁아지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심장이 충분한 혈액을 펌프하지 못해 흉통, 호흡 곤란, 실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장 근육이 비대해지면서 판막을 막아 혈류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치료약이 없어 많은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런데 마이오카디아의 주력 약품인 ‘캄지오스(Camzyos)’는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의 ‘먹는 수술약’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 최근 한국에서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위한 약가 협상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주력 의약품 줄줄이 특허만료
이렇게 탄탄하고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보유 중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이지만 최근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바로 주력 의약품들의 특허 만료 때문이다.
BMS의 의약품 중 압도적인 매출액 1위는 화이자와 공동 개발한 ‘엘리퀴스’다. 2023년 매출액은 15조9000억원(122억달러)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혈액희석제(항응고제)다. 쉽게 말해 혈전(피떡) 등으로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약이다.
한국인 사망원인 2위와 3위를 차지한 ‘심장 질환’과 ‘뇌혈관 질환’도 결국 혈전으로 혈관이 막혀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엘리퀴스는 앞으로도 수요가 폭증할 수밖에 없는 의약품이다. 하지만 엘리퀴스의 특허 만료는 2026년이다. 매출 1위 제품의 특허 만료가 임박함에 따라 투자자들의 BMS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다.
BMS 매출액 2위는 면역항암제 ‘옵디보’다. 11조7000억원(90억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옵디보의 미국 특허 만료는 2028년으로 아직 시간이 있다. 매출액도 전년 대비 9% 성장하며 꾸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매출액 3위는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다. 7조9000억원(61억달러)의 매출액으로 전년 대비 무려 39% 감소했다. 이는 레블리미드의 미국 특허가 이미 2022년에 만료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네릭 의약품이 대거 등장하면서 매출액이 급감했다.
BMS의 2024년 상반기 매출액을 살펴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매출액 3위인 레블리미드는 특허 만료로 인해 2024년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한 3조9000억원(30억달러)의 부진한 매출액을 기록했다. 매출액 4위를 기록한 차세대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포말리스트’도 2022년에 미국 특허가 만료됨에 따라 향후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매출액 5위를 기록한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 ‘오렌시아’ 역시 이미 2019년에 미국 특허가 만료됐다. 매출액 6위인 면역항암제 ‘여보이’도 2025년에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라 얼마 남지 않았다. 매출액 7위인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은 2024년 들어 특허가 만료됐다. 이에 따라 상반기에만 전년 상반기 대비 10% 급감한 1조원(8억달러)의 부진한 매출 실적을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매출액 8위인 ‘레블로질’의 선전이다. 레블로질은 BMS가 2019년에 인수한 셀진과 엑셀러론 파마가 공동 개발한 의약품이다. 2020년에 골수이형성증후군과 베타 지중해빈혈 등의 치료제로 FDA의 승인을 받았다.
골수이형성증후군(MDS)은 골수가 비정상적인 혈액 세포를 생성하는 희귀 질환이다. 이 질환은 골수에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같은 혈액 세포를 정상적으로 만들지 못해 빈혈, 출혈, 감염 위험 증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주로 고령자에게 발생하며, 일부는 급성 골수성백혈병(AML)으로 진행될 위험이 있다.
치료법으로는 수혈이 있다. 레블로질을 주사제로 투여해 치료할 수도 있다. FDA는 레블로질을 골수이형성증후군 1차 치료제로 승인했다. 한국에서도 2022년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용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은 비급여라 가격이 상당하다.
올 상반기 레블로질의 매출액은 1조원(8억달러)으로 전년 상반기 대비 무려 77% 급증했다. 수요가 폭증하면서 당분간 매출 상승세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레블로질의 미국 특허 만료 연도는 2031년으로 아직 여유가 많다. 향후 상당 기간 BMS의 효자 약품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살길은 M&A뿐...신약 보유 회사 인수 후 상업화 강점
BMS의 주력 의약품 중 상당수가 특허 절벽이라 BMS 내부적으로도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BMS가 잘해 온 건 좋은 신약 파이프라인을 가진 회사를 선별해 M&A하는 전략이었다. 이후 해당 신약으로 FDA의 최종 승인을 받아 상업화하는 데 탁월한 강점을 발휘해 왔다.
@img4
이에 따라 BMS는 2020년 이후에도 그동안 잘해 왔던 M&A를 계속 강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 일환으로 BMS는 2022년에 표적항암제 포트폴리오 확보를 위해 약 2조5000억원(19억달러)에 ‘터닝포인트 테라퓨틱스(Turning Point Therapeutics)’를 인수했다.
터닝포인트의 주력 제품은 ‘오그티로(Augtyro)’다. 오그티로(성분명 레포트렉티닙)는 2023년 11월에 ROS1 표적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FDA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ROS1 돌연변이 폐암은 전체 폐암의 2%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틈새시장 공략인 셈이다.
9월에 FDA 승인 받은 조현병 치료제...게임체인저?
BMS가 2023년에 조현병 포트폴리오 확보를 위해 무려 18조원(140억달러)에 인수한 ‘카루나 테라퓨틱스(Karuna Therapeutics)’도 대박이다. 주력 약품인 조현병 치료제 ‘코벤피(Cobenfy)’는 2024년 9월 26일에 FDA의 최종 승인을 통과했다.
조현병 치료 계열 신약이 FDA의 승인을 받은 건 ‘클로자릴(Clozaril)’ 승인 이후 무려 35년 만이다. 특히 코벤피는 조현병에 대해 세계 최초로 무스카린 수용체를 표적으로 삼는 새로운 방식이라 큰 기대를 모은다. 기존 조현병 약물과 달리 도파민과 세로토닌 수용체를 직접 차단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조현병은 정신 질환이다. 환자에게 현실과의 접촉이 끊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환각(환청·환시), 망상, 혼란스러운 사고, 이상한 행동 등이 있다. 따라서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신약 코벤피는 기존 약물과 차별화된 작용 메커니즘을 통해 조현병의 부작용인 양성 증상(환청·망상 등)과 음성 증상(감정적 둔화·무기력 등) 모두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에서는 조현병 시장 규모를 연간 약 10조원(75억달러)으로 추정한다. BMS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2400만명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 미국에만 약 280만명의 환자가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상당 기간 코벤피는 BMS의 효자 약품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BMS의 신약 코벤피가 앞으로 조현병 시장에서 얼마나 높은 점유율을 가져올지가 관전 포인트다. BMS에서는 10월 중에 코벤피를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벤피의 FDA 승인 발표 당일에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의 주가는 3% 상승한 52달러를 기록했다.
M&A 통한 다양한 신약 파이프라인...성공적
BMS가 2023년에 약 6조2000억원(48억달러)에 인수한 ‘미라티 테라퓨틱스’의 주력 의약품은 ‘크라자티(Krazati)’다. 크라자티는 KRAS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아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경구용(먹는) 의약품이다. KRAS G12C 변이가 있는 비소세포폐암(NSCLC) 치료제로 2022년에 FDA의 승인을 받았다.
KRAS G12C 변이는 폐암, 대장암 등 여러 암종에서 발견된다. 저분자 KRAS G12C 억제제 크라자티는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거나 내성이 있는 환자에게 효과적이다. KRAS-타깃 항암제 시장 규모는 2030년에 5조2000억원(40억달러)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BMS는 또 2024년 말에 ‘레이즈바이오(RayzeBio)’를 5조3000억원(41억달러)에 전격 인수했다. 레이즈바이오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표적물질에 결합시켜 종양세포를 사멸시키는 악티늄 기반 방사성의약품(RPT)을 개발하는 회사다.
악티늄 기반 방사성 의약품은 알파방사체의 에너지가 강하고 방사선 투과 범위도 짧아 치료 효과가 강력하고, 표적화된 전달이 가능해 정상세포의 손상이 적은 게 장점이다. BMS는 레이즈바이오를 통해 차세대 항암제 개발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BMS는 M&A 외에 기술이전 계약에도 진심이다. 2023년 말에 중국의 항암제 개발 기업 시스트이뮨과 선급금 1조원(8억달러)을 포함해 최대 11조원(84억달러)에 달하는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요즘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항체약물접합체(ADC) 관련 빅딜이라 더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ADC 항암제 후보물질 ‘BL-B01D1’를 공동 개발해 비소세포폐암, 유방암 등의 치료제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최근 주목받는 CAR-T 세포 치료제 파이프라인도 있다. 대표적인 약품은 ‘브레얀지(Breyanzi)’다. 브레얀지는 암의 일종인 불응성 거대 B세포 림프종 치료제다. 이 암은 몸의 면역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B세포가 악성화돼 빠르게 증식하는 질환이다.
B세포 림프종 중에서도 기존 치료(화학요법, 방사선 치료)에 효과가 없거나 재발한 형태의 암이다. CAR-T 세포 치료제인 브레얀지는 환자의 T세포를 추출한 후 유전적으로 변형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의 치료제다. 기존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에게 효과적이다.
브레얀지 역시 BMS가 셀진을 M&A하면서 손에 넣은 신약이다. 2021년에 FDA의 승인 이후 혈액암 등으로 적응증을 확대 중이다. 향후 큰 폭의 매출 증가가 기대된다. 이렇게 BMS는 다양한 종류의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다.
@img5
특허절벽으로 폭락한 주가 반등할까
공격적인 M&A 전략에도 불구하고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의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BMS의 주가는 2022년 11월에 76달러로 정점을 기록한 후 하락을 거듭해 왔다. 2024년 9월 주가는 50달러 내외다. 고점 대비 하락률은 34%로 부진하다.
투자자들이 두려워하는 건 BMS의 연속 M&A에도 불구하고 주력 의약품인 엘리퀴스, 레블리미드, 포말리스트, 오렌시아 등의 공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투자자들의 우려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BMS의 공격적인 M&A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BMS는 현재 강력한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지금의 주가 하락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특히 BMS의 배당수익률이 4%대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BMS가 특허절벽을 극복하고 미래에 다양한 신약들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 투자자라면 BMS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2024년 10월호
한국인들은 왜 테슬라에 열광할까?
테슬라, 한국인 보유금액 압도적 1위
한국인 “테슬라를 자동차 회사로 평가 안 해”
변동성 롤러코스트...강심장만 투자 가능?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인들의 테슬라 사랑은 유별나다. 현재 글로벌 증시에서 테슬라의 시가총액 순위는 10위권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테슬라의 위상은 글로벌 순위와는 크게 다르다. 한국인이 보유한 해외주식 중 압도적인 1위가 바로 테슬라다.
한국인의 유별난 테슬라 사랑?
한국인은 2024년 8월 말 기준 테슬라 주식을 17조원(126억달러) 보유하고 있다. 그에 비해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인 애플 주식 보유금액은 6조8000억원(51억달러)에 불과하다. 격차가 2.5배다. 글로벌 시가총액 2위인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보유금액은 4조7000억원(35억달러)에 그친다.
한국인의 해외주식 보유순위 2위는 16조2000억원(120억달러)을 보유한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올해 글로벌 증시에서 가장 수익률이 좋은 주식이다. 8월 말 기준 수익률은 무려 140%다. 인공지능 붐을 제대로 탄 셈이다. 이에 따라 올해 한국인의 엔비디아 순매수 금액도 1조5000억원(11억1000만달러)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비하면 현재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의 경우 오히려 차익실현 매물이 1조1000억원(7억9000만달러)이나 쏟아져 나왔다. 또 글로벌 시가총액 2위인 마이크로소프트 순매수 규모도 6000억원(4억4000만달러)에 그쳤다.
흥미로운 건 테슬라에 대한 한국인들의 무한애정이다. 올해 테슬라 수익률은 -13%로 크게 부진하다. 하지만 거꾸로 순매수 규모는 상당하다. 올 8월 말까지 한국인은 테슬라 주식을 1조1000억원(8억1000만달러) 순매수했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와 2위인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보다 테슬라 주식 선호도가 훨씬 더 높다. 한국인들이 이렇게 유별나게 테슬라를 사랑하는 이유가 뭘까? 테슬라가 실적에 비해 저평가된 걸까?
자동차 회사로서의 테슬라는 성장 둔화 중
일반인들의 인식에 테슬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기차 회사다. 베스트셀링 카인 ‘모델3’와 ‘모델Y’가 유명하다. 테슬라의 전체 매출 중 자동차 매출 비중은 2023년 기준 85%로 압도적이다. 이렇게 테슬라가 전기차 회사라는 관점에서 테슬라 실적을 살펴보면 과거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다.
테슬라의 자동차 매출액은 2022년에 96조원(715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50% 급성장했다. 반면 2023년 매출액은 111조원(824억달러)으로 성장률이 15%로 둔화됐다. 워낙 단기간에 급성장한 만큼 성장률이 둔화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2024년이다. 테슬라의 2024년 1분기 자동차 매출액은 23조원(174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13%로 부진했다. 2분기 자동차 매출액 역시 27조원(199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7%의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수치로만 보면 자동차 부문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다.
2024년 들어 영업 마진율 뚝...평범해진 테슬라?
테슬라는 2021년에 총 93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2022년에는 137만대, 2023년에는 185만대로 2년 전보다 2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따라 2022년의 영업이익은 무려 18조원(137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100% 넘게 성장했다. 영업마진율도 16.8%를 기록했다.
@img4
그런데 2023년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 결과 전기차 판매량이 늘었음에도 영업이익은 12조원(89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35% 감소한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 영업마진율도 한 자릿수인 9.2%로 뚝 떨어졌다.
2024년 들어서는 영업이익 감소폭이 더 두드러진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조6000억원(12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56% 감소했다. 2분기 영업이익도 2조2000억원(16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33% 줄었다.
2분기 영업마진율은 6.3%로 하락했다. 이 정도면 평범한 일반 자동차 제조업과 별 차이 없는 수치다. 한때 16.8%라는 엄청난 영업마진율을 기록했던 테슬라가 과거와 달리 평범해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미국 점유율 50% 붕괴...생산가능 대수는 늘어
전기차 시장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증거는 미국 시장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테슬라는 ‘전기차’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2024년 2분기에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시장점유율은 50% 아래로 떨어졌다.
@img5
이는 그동안 전기차에 소극적이던 내연기관 자동차 제조사들도 적극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탓이다. 글로벌 자동차 조사기업인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2024년 2분기에 테슬라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분기 대비 6.3% 감소한 49.7%로 낮아졌다.
반면 한국의 기아차 판매량은 전년 동분기 대비 135.5% 폭증하며 시장점유율이 5.4%로 뛰어올랐다. 점유율 2위인 포드, 4위인 현대차, 5위인 BMW의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모두 전년 동분기보다 큰 폭 증가한 점도 눈에 띈다.
@img6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도 문제다. 테슬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외에 중국 상하이와 독일 베를린에도 전기차 생산 공장을 보유 중이다. 테슬라의 IR 보고서상 연간 전기차 생산가능용량은 약 235만대다.
테슬라의 2024년 2분기 실적발표 때 경영진은 전기차 최대 생산가능용량이 300만대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설사 300만대를 제조한다 해도 이를 모두 판매하는 건 불가능하다. 최근 소비자들의 전기차 수요는 정체 상태다. 전기차 수요 둔화가 일시적인지 아니면 장기간 지속될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전기차 원가 낮출 4680 배터리 성공할까?
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당연히 배터리다. 테슬라는 그간 일본 파나소닉과 LG에너지솔루션 등에서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받아 전기차를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주력 제품인 ‘모델Y’에 중국 CATL사의 LFP(리튬인산염철) 배터리를 장착한 모델도 선보였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혔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는 대부분의 부품을 외부에서 조달하지 않고 수직계열화하기를 원한다. 이를 통해 낮은 원가로 경쟁사와의 가격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전략이다. 특히 배터리는 전기차의 가장 핵심부품인 만큼 직접 개발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이에 따라 지난 2020년에 고성능 신개념 배터리인 ‘4680 배터리’의 자체 생산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론 머스크의 의도만큼 성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생산은 하지만 생산량이 생각만큼 늘지 않고 있다.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테슬라는 1분기 대비 ‘4680 배터리’ 생산량이 50% 이상 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량이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건식 공정’ 방식이라 제조가 까다로워 양산 수율(양품률)이 낮고 불량률이 높은 상황이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등도 현재 ‘4680 배터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테슬라가 건식 공정 방식의 ‘4680 배터리’ 양산에 확실하게 성공할지는 아직 예측 불허다. 하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테슬라 전기차의 원가경쟁력은 획기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LG에너지솔루션 등의 협력사와 투자자들은 테슬라의 ‘4680 배터리’ 양산 성공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 아냐...한국인 열광하는 이유?
종합적으로 볼 때 테슬라의 전기차 부문 성장성은 명백히 둔화되고 있다. 중국의 BYD가 만들어낸 저렴한 전기차가 전 세계를 휩쓸 기세다. 또 그간 전기차에 소극적이었던 포드, BMW, 벤츠, 현대차, 기아차 등이 대거 전기차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었다.
@img7
과거 테슬라 전기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는 주가도 급등세를 보였다. 2020년 초에 28달러로 시작한 테슬라 주가는 2021년 11월에 사상 최고가인 414달러까지 14배 넘게 폭등했다. 반면 전기차 성장성이 둔화된 2023년 초에는 주가가 102달러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올해는 로보택시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2024년 7월에 271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8월 말에는 다시 215달러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한국 투자자들은 테슬라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의 근거는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를 자동차 회사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2023년 기준 테슬라 전체 매출 중 자동차 매출 비중은 무려 85%다. 그런데도 테슬라가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테슬라는 도대체 어떤 회사일까?
테슬라는 천재 엔지니어인 일론 머스크를 중심으로 한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이다. 한국 투자자들은 일론 머스크의 사명과 테슬라의 미래 기술 발전에 대한 엄청난 기대감과 확신을 가지고 있다. 테슬라에는 전기차 외에도 미래가 기대되는 비밀병기가 많다.

2024년 10월호
"테슬라는 플랫폼·에너지 회사다"
머스크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 아냐”
에너지 매출이 전기차 매출 추월?
최종 목표는 인공지능 회사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테슬라의 올 2분기 실적발표 후 투자자들이 가장 실망한 부분은 ‘로보택시(Robotaxi)’ 공개가 연기됐다는 사실이다. 8월 8일 공개를 약속했던 로보택시는 10월 10일 공개로 연기됐다. 로보택시는 테슬라를 제조 회사에서 플랫폼 회사로 변모시킬 게임체인저로 평가받았기에 투자자들의 아쉬움은 크다.
FSD(완전자율주행)는 플랫폼 기업 될 게임체인저
테슬라는 전기차 제조 기술 외에도 자랑거리가 많다. 그중 하나가 ‘오토파일럿’과 ‘FSD(Full Self-Driving)’라는 이름의 테슬라 완전자율주행 장치다. 오토파일럿은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차선을 벗어나지 않고 따라가는 기능이다. 이 정도는 대부분의 경쟁사들도 갖추고 있는 기능이다.
하지만 FSD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자랑한다. FSD는 알아서 차선도 바꾸고 신호등도 감지하며 설정한 목적지를 스스로 찾아가는 완전자율주행 시스템이다. 오토파일럿과 달리 FSD의 이용료는 유료다.
FSD는 테슬라를 제조 기업에서 플랫폼 기업으로 바꿔줄 핵심 수익모델이다. 플랫폼(Platform)이란 이용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웹사이트 등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구글의 유튜브(20억명), 메타의 페이스북(30억명), 텐센트의 위챗(12억명) 등 사용자 수가 10억명 이상인 서비스를 운용하고 있는 글로벌 회사들을 플랫폼 기업이라고 표현한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은 스마트폰 제조 기업이다. 하지만 iOS 운영체제를 가진 강력한 플랫폼 기업이기도 하다. 애플 iOS 사용자 수는 10억명을 훌쩍 넘는다. 단순 제조업은 원가부담이 있어 고마진이 어렵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면 제조원가 부담이 확 낮아진다. 최초 개발비 외에는 추가 비용이 거의 없다. 많이 팔면 팔수록 고마진이 가능하다. 애플은 iOS 앱 서비스 개발자들에게 매출의 약 30%를 수수료로 받는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앱 역시 마찬가지다.
테슬라도 애플처럼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테슬라 FSD의 일시불 가격은 무려 1만2000달러(1600만원)다. 테슬라는 지난 4월부터 미국과 캐나다에서 FSD 일시불 가격을 8000달러(1100만원)로 내렸다. 또 월 이용료도 기존의 199달러에서 99달러로 전격 인하했다. 가격 인하의 가장 큰 목적은 FSD 사용자 확대다.
애초부터 머스크는 FSD를 테슬라 전기차에만 장착할 생각은 없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앱처럼 다른 자동차 제조사에도 오픈해야 진정한 플랫폼 기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대형 완성차 제조업체들과의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다. 단시일 내에 결과가 나오긴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FSD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무인택시가 바로 로보택시다. 테슬라는 FSD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 완전자율주행에 기반한 무인 로보택시 서비스를 준비해 왔다. 테슬라가 로보택시를 직접 운영하는 ‘에어비앤비’ 방식이든, 아니면 FSD가 장착된 테슬라 차량 소유자가 로보택시를 운영하는 ‘우버’ 방식이든 로보택시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새로운 수익모델인 만큼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상당하다.
하지만 감독기관 입장에서 완전자율주행 방식은 단 한 번의 사고만 발생해도 비난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기술이 정말로 완벽하지 않은 한 10월 10일에 로보택시가 공개되더라도 최종 승인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또 ‘모델3’나 ‘모델Y’보다 저렴한 보급형 전기차인 ‘모델2’의 공개도 2025년으로 확 밀린 상태다. ‘모델2’는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 전기차와 경쟁할 예정이다. 대량 판매를 통해 테슬라의 매출액을 크게 늘려줄 또 다른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애초 계획보다 공개가 늦어지고 있다.
테슬라 사명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
테슬라의 사명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 사명을 실현하는 데 있어 전기차 외에도 중요한 분야가 바로 ESS(에너지저장장치)다.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환경 파괴는 일론 머스크가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달로 오히려 에너지 수요는 더 증가하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데이터센터 증설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반도체 공장 건설도 활발하다. 그런데 글로벌 전체적으로는 지구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활용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전기가 생산되면 이를 저장할 수 있는 ESS 수요도 폭증할 수밖에 없다. 테슬라에는 기회 요인이다.
테슬라의 최근 3년간 실적을 살펴보면 에너지 분야 성장세는 강력하다. 테슬라의 에너지 부문 매출액은 2021년 약 4조원(28억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2년 뒤인 2023년에는 8조원(60억달러)으로 100% 이상 매출이 급증했다. 테슬라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로 성장했다.
2024년 1분기 테슬라의 에너지 부문 매출액은 2조원(17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7%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2분기 매출액은 4조원(30억달러)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100% 급성장했다. 테슬라의 2분기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2%로 급증했다. 자동차 부문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이 생긴 셈이다.
테슬라 메가팩, 파워팩, 파워월 수요 폭증
테슬라는 자체적인 기술력을 활용해 고성능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만들어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메가팩(Megapack)’이다. 메가팩은 ‘대규모 에너지 저장 시스템(BESS, Battery Energy Storage System)’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거대한 배터리다. 메가팩은 길이 약 9m, 높이 약 3m, 무게는 약 40t이다. 모듈형 설계라 여러 개의 메가팩을 연결해 더 큰 용량도 구축할 수 있다. 하나의 메가팩으로 수백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만큼 용량이 크다.
2023년에 출시된 2세대 메가팩은 약 4000kWh를 저장할 수 있다. 한국 아파트 구조에서 한 가구가 한 달에 쓰는 전력량은 약 300KWh 내외다. 메가팩 한 개로 1년 동안 생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메가팩은 가정용이 아니다. 주로 발전소나 전력망 등에 사용된다.
메가팩은 빠르게 충전하고 방전할 수 있어 전력 수요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변동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ESS는 필수다.
메가팩은 전력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할 때 과잉 전력을 저장하거나 부족한 전력을 공급해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여준다.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는 피크 시간대의 전력 사용료도 낮출 수 있다. 정전이 발생했을 때도 메가팩으로 비상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메가팩의 인기가 폭발하는 이유다.
‘파워팩’도 에너지 저장 장치다. ‘메가팩’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가정용인 ‘파워월’보다는 크다. 파워월은 가정용 에너지 저장 장치다. 가정에서 태양광 발전 시스템과 연동해 자가 소비를 늘리고 전기요금을 절감해 준다.
테슬라의 메가팩은 현재 미국 네바다 주의 ‘기가팩토리’와 캘리포니아 라스롭의 ‘메가팩토리’에서 생산된다. 최대 생산량은 연간 약 40GWh다. 중국 상하이에 새로 짓고 있는 ‘메가팩토리’에서도 연간 약 40GWh 전력 생산이 목표다. 공장이 완공되면 지금보다 생산능력이 2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이렇게 많이 만들어내면 다 팔 수 있을까? 전혀 문제없다. 여전히 수요가 많다. 테슬라는 2024년 7월에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인 인터섹트 파워(Intersect Power)와 사상 최대 규모인 15.3GWh의 메가팩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2030년까지 공급하는 장기 계약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회사와 크고작은 계약이 계속 체결되고 있다.
전기 수요 폭증...‘메가팩’이 자동차 매출 넘는다?
인터섹트 파워와 공급 계약한 메가팩의 매출 추정액은 약 5조원(35억달러)이다. 몇 년간 나눠서 인식되는 매출이지만 절대 규모가 상당하다. 메가팩은 마진율도 상당하다. 전기차 시장은 치열한 경쟁으로 마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메가팩 마진율은 약 25%로 높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 사용량은 급증하고 있다. 과거의 인터넷 검색 방식에서 생성형 인공지능 검색 방식으로 변경 시 전기가 10배 더 소요된다. 기후 변화도 큰 변수다. 앞으로도 전기 사용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의 전력 수요가 지금보다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역시 미래에는 에너지 대란을 피하기 어렵다. 주요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송전’이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멀리 있는 공장이나 일반 가정 등으로 수송하는 과정을 말한다. ‘배전’이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변전소를 통해 수용가에 공급하는 일을 말한다.
진짜 문제는 송·배전에 있다. 산업단지가 새로 생겨나면 전기 사용량이 늘어난다. 전력을 추가로 더 생산해야 한다. 그런데 전력을 생산하더라도 이를 운반할 송전 선로가 크게 부족하다. 땅 주인 중 그 누구도 자기 땅 위에 송전선이 지나가는 걸 원치 않는다. 민원이 폭주한다.
게다가 한국전력은 적자 문제로 송전 선로를 건설할 자금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필수적인 송전 선로 건설도 크게 지연되고 있다. 산업단지만의 문제도 아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갈수록 가정용 전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웬만한 대도시의 송전망은 전부 지중화돼 있다. 이 송전망을 확충하는 공사에도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아파트에 있는 변압기 증설도 필요하다. 다 비용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도 재생에너지 활성화와 함께 대용량 ESS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테슬라의 에너지 사업부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테슬라는 자동차 사업에 이어 에너지 사업에서도 시장 선두 주자 입지를 굳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테슬라의 에너지 매출이 자동차 매출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한다.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로 출발했지만 전기차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진화된 테슬라의 중간단계는 거대한 에너지 회사다. 하지만 테슬라의 최종 단계는 에너지 회사가 아니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를 최종적으로 자율주행, 인공지능, 로봇이 결합된 휴머노이드 회사로 만드는 게 목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있다.

2024년 10월호
테슬라 '휴머노이드 로봇' 인류 구원할 수 있을까?
머스크 보유기업 보면 미래가 보인다?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건 휴머노이드 로봇
인공지능으로 돈 벌기...테슬라가 유리한 이유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테슬라를 이해하려면 먼저 CEO인 일론 머스크를 알아야 한다. “일론 머스크가 상상하면 모두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의 천재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머스크는 독특한 행동으로도 유명하다.
천재 ‘일론 머스크’의 돌출 행동
2018년 3월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테슬라 ‘모델X’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냈다. 운전자는 사망했고 차량은 폭발해 화재가 발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테슬라의 신용등급을 B3로 한 단계 강등했다.
당시 모 헤지펀드 CEO인 존 톰슨은 “테슬라는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지만 그런 기대를 걸 수 없다. 일론 머스크가 마법을 부리지 않는 한 4개월 내에 파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자 2018년 4월 1일에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파산을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몇 시간 안에 중요한 뉴스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고 곧 “최후의 수단으로 부활절 계란을 대량 판매하며 자금 마련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는 글을 올렸다. 놀랍게도 이것은 만우절 농담이었다.
2018년 8월에는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에 “테슬라를 주당 420달러에 인수해 비상장 회사로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자금은 확보돼 있다”고 밝혔다. 전일 주가 344달러 대비 22%의 프리미엄을 붙여 매수하겠다는 구상이라 발표 이후 주가는 바로 11% 폭등했다.
하지만 머스크가 자금원이라고 밝힌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는 테슬라에 투자하지 않았고 시장에서는 머스크의 주가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증권사기 혐의로 머스크를 고소했다. 당시 머스크는 합의를 통해 벌금 270억원(2000만달러)을 내고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2018년 9월에는 일론 머스크가 코미디언 ‘조 로건’의 인터넷 방송에 출연했을 때 로건에게서 마리화나를 섞은 담배를 건네받았다. 머스크는 “음, 이거 합법적인 거 맞죠?”라고 물은 뒤 “거의 피워본 적이 없다”며 몇 모금 피운 뒤 위스키도 마셨다.
테슬라 공장이 있는 캘리포니아 주는 마리화나가 합법이지만 인터넷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마리화나를 피우는 모습은 주주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머스크는 평소 마리화나를 멀리해 왔다. 조심성 없는 행동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산 셈이다. 2018년은 테슬라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라 머스크의 스트레스도 컸다. 그럼에도 CEO의 이런 돌출 행동은 주주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테슬라가 한창 잘나가던 2022년에는 평소 본인이 많이 사용해 왔던 ‘트위터(SNS)’를 다소 충동적으로 인수하기도 했다. 2024년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를 공개 지지했다. 또 X(옛 트위터)를 통해 머스크와 트럼프의 대담을 직접 생중계하는 이벤트도 펼쳤다.
그의 화끈한 행동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는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어쩔 셈일까? 테슬라 비즈니스의 대부분이 일반 대중에게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좋은 전략이 아닌 건 분명하다. X의 비즈니스 역시 마찬가지다.
머스크는 2021년에 한 라이브 방송에 출연해 “혹시 저 때문에 감정이 상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저는 전기차를 재창조했고 사람들을 로켓선에 태워 화성에 보내려 합니다. 이런 제가 차분하고 정상적인 사람일 거라 기대했나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기 객관화에도 뛰어나다.
‘머스크’의 사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머스크를 돌출 행동만으로 평가절하하면 천재에게 투자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일론 머스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원대한 사명부터 알아둘 필요가 있다. 머스크의 ‘사명’ 중 가장 거대하면서도 당황스러운 건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머스크는 이 황당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테슬라’보다 먼저 ‘스페이스X’를 창업했다. 머스크는 ‘언젠가 지구가 멸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화성 이주’가 그의 사명이다.
그는 이런 황당한 계획을 진행하기에 앞서 먼저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머스크가 약 42%의 지분을 보유한 스페이스X는 재사용 가능 로켓인 ‘팰컨 9’을 개발해 로켓 제작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스페이스X는 팰컨 9을 활용해 우주선과 위성을 우주로 발사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주도하던 우주 개발에 민간기업인 스페이스X가 참여해 우주 개발 비용을 크게 낮췄다. 엄청난 성과다. 이를 통해 수익도 창출하고 있다.
또 스페이스X의 자회사인 ‘스타링크’는 전 세계 어디서든 스타링크 위성을 통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유료다. 현재 약 6000여 개의 스타링크 위성이 우주에서 활동 중이다. 스타링크 시스템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도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머스크는 돈을 버는 데도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다. 스페이스X는 우주여행 상용화도 연구 중이다. 100여 명이 탑승할 수 있는 초대형 스타십 로켓도 계속 개발 중이다. 물론 아직까지 스타십 로켓은 화성 근처에도 못 가고 있다. 그런데도 머스크는 인류가 화성에서 살아가는 방법까지 미리 연구 중이다.
‘머스크’의 보유 기업을 보면 ‘사명’이 보인다?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 외에 보유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분야에 진심인지 알 수 있다. 먼저 약 13%(스톡옵션 포함 시 약 20%)의 지분을 보유한 테슬라다. 머스크에게 ‘전기차’는 자신의 최종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 과정’에 불과하다.
머스크는 테슬라를 통해 전기차의 대중화에 성공했다. 추가로 태양에너지와 배터리 기술을 발전시켜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를 통해 테슬라의 사명인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또 약 50%의 지분을 보유한 ‘뉴럴링크(Neuralink)’를 통해 인간의 뇌에 마이크로 칩을 심어 뇌 기능을 향상시키고 신경 질환을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인류의 지능을 높이고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노력이다. 뉴럴링크는 최근 척추 손상을 입은 2명의 환자 뇌에 ‘텔레파시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칩을 이식받은 사람은 생각만으로 휴대폰과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다. 무선으로 신호를 전달해 TV 채널 조작, 인터넷 검색, 게임 등이 모두 가능하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활용도는 무궁무진하게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약 25%의 지분을 보유한 ‘엑스닷에이아이(xAI)’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인공지능이 안전하게 발전하는 것에도 집중한다. 머스크는 ‘인공지능이 인류를 해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론 머스크는 최근 X에 “테슬라가 xAI에 50억달러(6조8000억원)를 투자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하루 동안 온라인 투표를 진행해 68%의 찬성표를 얻었다. 법적 구속력 없는 투표지만 xAI의 지배구조를 더 강화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xAI는 대규모 언어모델인 ‘그록(Grok)’을 자체 개발 중이다. ‘그록2.0’이 생성형 AI인 ‘챗GPT’나 ‘클로드’의 성능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그록은 미래에 테슬라의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인 ‘옵티머스’의 두뇌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또 완전자율주행 기술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는 실패일까?
머스크가 약 70%의 지분을 보유한 X(옛 트위터)는 뜨거운 감자다. 머스크는 2022년에 트위터를 인수한 후 지금까지 약 80% 이상의 직원을 해고했다. 이 해고로 기업 운영의 효율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해고에 자유로운 미국에서도 비판이 있을 정도다. 또 무리한 감원으로 X의 운영 안정감이 낮아졌다.
머스크는 X 인수 후 과거보다 유저들의 발언을 좀 더 자유롭게 방치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정치적 논란이나 옳고 그름의 대립이 더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논란이 잦아지면서 광고 수익으로 운영되는 X를 싫어하는 광고주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X에 치명적인 악재다.
이 틈을 노려 페이스북 CEO인 저커버그는 X와 비슷한 유형의 ‘스레드(SNS)’를 출시해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또 X가 논란이 될수록 테슬라의 브랜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X 인수 초기부터 머스크의 인수 결정은 실수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머스크의 거대한 그림은 X가 쌓아온 트위터 피드 데이터에 있다. 지금 인공지능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 양질의 데이터 부족이다. 과거와 달리 무료로 데이터를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 트위터 피드 안에는 어마어마한 데이터들이 축적돼 있다. 이 데이터 안에는 실제 트위터를 사용했던 사람들의 실시간 대화, 관심사, 트렌드 등이 다 쌓여 있다. 인공지능을 진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무기를 손에 넣은 셈이다.
머스크 사명 중 인류에게 필요한 건 휴머노이드 로봇
이렇게 일론 머스크가 걸어온 과정과 그가 지분 투자한 회사들을 살펴보면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그는 과거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왔던 인류의 발전을 실제 현실에서 성공시키려 한다. 그런데 ‘인류의 화성 이주’와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중 실제로 인류에게 도움 되는 건 뭘까?
당연히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화성에 관심 있는 인류는 머스크 외에는 많지 않다. 반면 로봇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전 세계적인 저출산 현상으로 일할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산업용 로봇은 사람을 대신해 공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전투용 로봇도 유용하다. 로봇이 카페 종업원 역할도 할 수 있다.
특히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가사용 로봇’과 ‘간호용 로봇’ 수요는 폭증하게 된다. 가장 부유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늙어가고 있다. 이들의 집안일을 돕고 간호해줄 휴머노이드 로봇은 앞으로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은 더 심각하다. 한국은행은 돌봄 인력 부족 규모를 2032년에는 최대 71만명, 2042년에는 최대 155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돌봄 인력 외에 산업 현장에서도 노동자 부족 현상은 심각하다. 외국인 노동자 구하기도 어렵다. 결국 휴머노이드 로봇 수요 급증은 정해진 미래다.
테슬라의 야심작 ‘옵티머스’의 등장
일론 머스크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 중 상장 회사는 테슬라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다 비상장사다. 머스크는 테슬라를 전기차 회사로 생각하지 않는다. 테슬라의 중간단계는 에너지 기업이다. 하지만 최종 단계는 자율주행, 인공지능, 로봇이 결합한 휴머노이드 회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머리, 몸통, 팔, 다리 등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 로봇을 말한다. 테슬라가 자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의 능력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1세대에 비해 걷는 속도가 빨라졌고 손 동작도 자연스러워졌다. 옵티머스가 테슬라 공장에서 배터리를 정리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는 목표를 과다하게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100% 믿을 수는 없다. 그래도 옵티머스 가격 목표를 약 2700만원(2만달러)으로 책정한 건 고무적이다. 머스크가 아니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다. 과거에는 수억 원의 가격이 책정된 바 있다.
전기차의 부품 중 가장 비싼 건 배터리다. 휴머노이드 로봇 부품 중 가장 비싼 건 관절을 컨트롤하는 액추에이터 가격이다. 머스크는 테슬라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옵티머스도 대부분의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수직계열화 방식을 택했다. 액추에이터를 자체 생산할 경우 가격 경쟁력은 상당히 높아진다.
옵티머스의 또 다른 강점은 두뇌다. 테슬라에는 슈퍼컴퓨터 ‘도조(Dojo)’가 있다. 도조는 전 세계에서 운행되는 테슬라 차량에서 수집된 막대한 도로 교통 데이터와 영상자료 등을 분석하는 슈퍼컴퓨터다. 도조는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활용된다.
이 도조가 휴머노이드 로봇인 옵티머스의 인공지능 능력 강화에도 활용된다. 머스크가 투자한 또 다른 회사 엑스닷에이아이(xAI)의 대규모 언어 모델인 ‘그록(Grok)’도 옵티머스의 두뇌 개발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인공지능으로 돈 벌기...테슬라가 유리한 이유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이 부각되면서 빅테크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니’, 앤트로픽의 ‘클로드’ 간 경쟁이 치열하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하지만 경쟁이 격화되면서 제대로 된 유료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테슬라는 뛰어난 인공지능 기술 외에도 천재 엔지니어인 일론 머스크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제조 기술을 갖추고 있다. 인공지능만으로 소비자에게 높은 사용료를 받아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결합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는 높은 가격의 유료화가 가능하다.
인공지능을 두뇌에 심고 몸체도 생산하니 비싼 가격을 책정해도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이 덜하다. 다른 인공지능 빅테크 기업들이 따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로봇 제조는 아웃소싱할 경우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빅테크 기업들이 직접 제조하기도 어렵다.
테슬라 전기차마저도 자동화 시스템 도입 후 상당 기간 수율이 안 나와 고생했다. 현장에서 수개월간 직원들과 같이 먹고 자며 에러를 직접 해결한 게 일론 머스크다. 테슬라만에만 존재하는 경험치다. 머스크는 언제든 주 100시간 이상 일할 준비가 돼 있는 전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이자 CEO다.
물론 저출산이 심각한 중국도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의 경쟁력은 파격적인 가격이다. 따라서 미래에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커진다 해도 전기차 시장처럼 테슬라가 독주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옵티머스는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주가 급등락 견딜 수 있다면 천재에게 베팅해 봐?
테슬라 경영진은 지난 2분기 실적발표 때 옵티머스를 2025년부터 테슬라 공장에 투입할 계획이라며 2026년부터는 외부 판매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장기적으로 옵티머스의 가치가 테슬라의 다른 모든 사업부 가치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인류가 기대하는 진정한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먼 미래에 집안일과 간병일을 할 수 있는 진정한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이 양산된다면 수요는 넘쳐난다. 전 세계 인구는 약 80억명이다. 장기적으로는 산업용과 범용형 휴머노이드 로봇 수요도 인구 수와 비슷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옵티머스만 믿고 테슬라 주식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 달리 테슬라의 주가 움직임은 훨씬 더 난폭하다. 테슬라 주주가 되면 400달러를 돌파했던 주가가 1년 만에 102달러까지 무려 75% 폭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주식은 꿈을 먹고 오른다지만 당장의 테슬라 실적도 좋은 편은 아니다. 따라서 테슬라 주식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면 5년 이상의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합리적인 전략이다.
지금껏 인류가 발전해온 건 천재들의 덕이 크다. 테슬라는 천재 엔지니어인 일론 머스크가 ‘사명’을 가지고 회사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더 기대가 크다. 테슬라가 인류의 미래를 풍요롭게 바꿔줄 거라고 믿는 투자자라면 테슬라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2024년 10월호
베이비부머, 헬스케어 관심 집중...삼성바이오로직스 수혜 기대
@img5
한국 시총 상위 7위 내 바이오 종목 2개 진입 눈길
구매력 높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 ‘헬스케어’ 관심
삼성이 ‘신약 개발’ 말고 ‘위탁개발생산’ 시작한 이유?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존재감은 강력하다. 그럼에도 삼성 브랜드를 가진 모든 회사가 다 1등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상장된 지 8년밖에 안 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눈부신 성과는 눈에 띈다. 이는 삼성의 뛰어난 전략과 제약·바이오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맞물린 대성공 사례다.
특정 국가의 시가총액 순위를 살펴보면 그 나라의 주력 산업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부동의 1위는 삼성전자다. 2024년 8월 말 기준 시총은 무려 444조원이다. 2위는 SK하이닉스로 시총 126조원을 기록했다. 한국 증시의 원투 펀치가 모두 반도체 분야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3위는 LG에너지솔루션으로 시총은 91조원이다. 2차전지 분야도 한국의 주요 산업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 초에 공모가 30만원에 상장된 후 한때 주가가 63만원까지 폭등하며 SK하이닉스를 제치고 시총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영향으로 업황이 부진해지면서 다시 시총 3위로 내려앉았다. 그런데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상장사였던 LG화학의 배터리 부문을 물적 분할한 회사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신규 회사는 아니다.
4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시총은 70조원이다. 한국의 대표 자동차 회사인 현대차보다도 순위가 높은 게 눈에 띈다. 6위인 셀트리온도 바이오시밀러 회사다. 한국 시총 상위 7개 종목 중에 바이오 회사가 2개나 진입해 있다. 한국의 주력산업이 바이오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령화 맞물려 베이비부머 의약품 소비 폭증
한국의 건강보험 총 진료비는 2023년에 드디어 100조원을 돌파해 107조원을 기록했다. 여기서 주목할 건 ‘의약품비’다. 2023년의 총 의약품비 청구금액은 25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급증했다. 이렇게 증가율이 가파른 이유가 뭘까?
한국의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는 이미 대부분 은퇴했다. 이들을 포함한 한국의 만65세 이상 노인 인구 수는 2024년 7월에 드디어 1000만명을 돌파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건 만65세 이상 노인의 의약품비다. 2023년 노인 의약품비 청구금액은 11조8000억원으로 전체 의약품비 청구액의 45.7%를 차지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의료비가 급증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노인 의약품비 지출의 폭발적인 증가 추세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인구 구조상 앞으로도 노인들의 의약품비 증가세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미국 역시 고령화가 심각하다. 미국의 ‘메디케어(Medicare)’는 65세 이상 미국 국민과 일부 장애인을 위한 연방정부의 건강보험 프로그램이다. 2022년 기준 가입자 수는 무려 6200만명이다. 전체 인구 중 20%가 메디케어에 가입한 셈이다.
아이큐비아(IQVIA)는 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를 2027년 기준 2500조원(1조9000억달러)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약·바이오 시장은 더 확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구매력 높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 ‘헬스케어’ 관심
한국의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에게는 만성 질환, 관절염, 심장병, 뇌졸중, 당뇨병, 고혈압 등의 건강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이에 따라 정기적인 의료 검사와 약물 치료 필요성이 증가한다. 이 세대는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필수 의약품 소비에 돈을 쓰고 있다.
하지만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는 다르다. 무려 950만명이나 되는 이들은 가장 부유한 세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부유한 만큼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이전 세대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한다. 본인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쓸 준비가 돼 있다.
따라서 2차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늙어가는 10년 뒤부터 제약·바이오 트렌드가 바뀔 확률이 높다. 의료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새로운 치료법과 좋은 신약이 이미 대거 등장했다. 수명과 관련 있는 필수 의약품 외에도 건강 유지를 위한 예방 의료 지출이 커질 전망이다.
이미 의약품 시장은 변해 가고 있다. 기적의 비만 치료제로 불리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나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 가격은 연간 2000만원 수준이다. 이런 고가에도 비만 치료제는 불티나게 팔린다. 두 회사의 비만 치료제 모두 2024년 2분기에 사상 최고 매출액을 경신했다.
비만 치료는 수명과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다. 예방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구매력 있는 베이비부머들은 예방적 치료나 미용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 사보험사의 의약품 보장 범위 확대로 비싼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것도 헬스케어 산업에는 호재다.
삼성이 ‘신약개발’ 말고 ‘위탁개발생산’ 시작한 이유?
삼성그룹은 오래전부터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바이오 산업을 점찍었다. 이에 따라 2011년 4월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신규 설립했다. 그런데 왜 삼성은 신약개발이 아니라 CDMO(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 위탁개발생산)부터 시작했을까?
제약·바이오 시장의 꽃은 신약개발이다. 새로운 블록버스터(1조원 이상 매출) 신약을 개발해 전 세계로 판매하는 건 모든 제약 회사의 꿈이자 사명이다. 신약개발이 성공할 경우 그 과실은 달콤하다. 머크 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는 2023년에만 33조원(250억달러)의 매출액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의약품 매출액 2위인 애브비 사의 ‘휴미라’는 19조원(144억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휴미라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류머티스관절염, 건선, 크론병 등의 치료제로 쓰인다.
이렇게 단일 의약품 한 개만으로 수십 조원의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신약개발이 매력적인 이유다. 또 높은 매출액에 걸맞게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의 시가총액도 어마어마하다.
2024년 8월 말 종가 기준 글로벌 제약 회사 시가총액 1위는 일라이릴리로 1232조원(9124억달러), 2위는 노보노디스크로 636조원(3조1800억덴마크크로네), 3위는 존슨앤드존슨으로 539조원(3993억달러), 4위는 애브비로 468조원(3468억달러), 5위는 머크(MSD)로 405조원(3002억달러)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승자들의 잔치일 뿐이다. 문제는 신약개발은 실패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신약개발 과정은 후보물질 발굴, 스크리닝(거르기), 물질 최적화, 독성실험, 임상 1~3상, 허가 및 출시 등의 절차를 따른다. 따라서 후보물질 발굴부터 독성실험까지 최소 4년 이상, 임상부터 허가까지는 최소 6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흔하다. 아무리 빨라도 10년은 걸린다는 뜻이다. 비용도 최소 1조~3조원이 소요된다.
최초 후보물질 탐색부터 도출까지만 해도 1만분의 1에 불과한 낮은 확률이다. 간신히 후보물질을 찾아내 임상 1상을 시작해도 성공 확률은 낮다. 미국 바이오협회에서 분석한 임상시험 현황 데이터에 따르면 1상부터 승인까지의 성공률은 7.9%(2012~2020년)에 불과하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력인 CDMO(위탁개발생산)는 주요 제약사로부터 의약품 개발, 생산 및 품질 관리 등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안정적인 사업이다. 이미 과거부터 수많은 반도체 공장을 정밀하게 만들어 운용해온 삼성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유리한 분야다.
또 CDMO는 신약개발처럼 실패할 가능성도 낮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바로바로 매출과 수익이 인식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 세계 주요 제약사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신약개발 대신 안정적인 CDMO 사업을 선택한 삼성의 전략은 영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증시 상장 7년 9개월 만에 시가총액 69조원을 달성하며 당당히 1위를 달리고 있다. 전통의 제약사인 유한양행 시총이 11조원, 한미약품 시총이 4조원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성공적인 결과다.
하지만 신약 대신 CDMO 사업을 택한 게 반드시 옳은 전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SK그룹의 바이오 회사나 전통의 제약사인 유한양행을 제치고 시가총액 3위를 기록한 ‘알테오젠’ 같은 성공 사례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가가 무섭게 상승한 바이오플랫폼 기업 알테오젠은 히알루로니다제를 사용해 정맥주사제형 치료제를 피하주사제형으로 바꾸는 Hybrozyme™(하이브로자임) 기술 개발에 성공해 대박을 쳤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이고 편의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하이브로자임 플랫폼 기술을 통해 개발한 물질 ‘ALT-B4’는 올 초에 세계 판매 1위 항암제인 ‘키트루다’에 적용하는 기술수출 계약을 머크(MSD)사와 체결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추가로 2곳의 글로벌 제약사와도 계약해 올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신약개발은 실패 확률도 크다는 점에서 소수의 성공 사례만으로 선뜻 도전하기는 어려운 분야라 할 수 있다.
상장 당시 인기 없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질주
제약·바이오 사업 경험이 부족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6년 11월에 증시에 신규 상장을 진행하자 투자자들은 반신반의했다. 공모가가 너무 비싸 매력이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그 당시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 경쟁률은 45 대 1에 불과했다. 요즘같이 수백 대 1이 기본인 상황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모가는 13만6000원으로 결정됐고 상장 당일 종가는 14만4000원이었다. 결과적으로 투자자 누구나 마음만 먹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상장 당일에 공모가 수준에서 마음껏 수량 제한 없이 매수할 수 있었다.
@img4
이렇게 인기 없던 주식이지만 대반전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4년 8월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는 100만원을 터치했다.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무려 635%다. 하지만 이 달콤한 수익률은 엄청난 고통을 견뎌낸 대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8년 11월에 분식회계 의혹으로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들어가면서 무려 18거래일 동안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회사와 공장 압수수색, 계속되는 경영권 승계 관련 조사와 재판 등으로 투자자들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이런 과정으로 볼 때 삼성바이오로직스 공모주를 상장 후 8년간 지속적으로 보유한 투자자라면 7배의 높은 수익률을 보상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2021년 8월에 100만원 넘는 고점에 매수한 투자자라면 3년간의 마음고생 끝에 이제서야 겨우 본전에 근접한 상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최근 각종 호재를 발판으로 다시 전 고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래 전망을 궁금해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는 이유다.

2024년 10월호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전자 뛰어넘을까?
@img8
대박 수주와 탄탄한 실적...호재 만발
삼성바이오에피스 바이오시밀러 폭풍 성장
미국 생물보안법 시행은 초대형 호재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의 의약품 시장 규모는 약 30조원이다. 전 세계 의약품 시장 추정 규모는 약 2000조원(1조5000억달러)이다. 한국 시장은 전 세계 시장 규모의 1.5%에 불과하다.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해외 진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FDA 최종 승인 신약 9개 불과
신약개발은 리스크도 크고 기술적 장벽도 높다.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이 까다로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최종 승인을 받은 사례는 지금껏 총 9건에 불과하다. 문제는 신약이 FDA의 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다 잘 팔리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내 9개의 신약 중 아직 블록버스터(연 매출 1조원 이상)급으로 성장한 것은 없다.
그만큼 세계 시장의 장벽은 높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FDA의 승인을 받은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렉라자는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이중 특이성 항체 ‘리브리반트’와의 병용요법으로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
1차 치료제는 특정 질환 진단 후 가장 먼저 사용되는 치료제다. 따라서 초기 시장 진입 때부터 많은 환자에게 노출된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렉라자가 사상 처음으로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셀트리온의 신약 ‘짐펜트라’도 강력한 블록버스터 신약 후보다. 짐펜트라는 기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램시마’의 피하주사(SC) 제형 버전의 신약이다. 2023년에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아 2024년 3월부터 미국에서 판매 중이다. 기존 정맥주사형 약물 대비 소비자들의 편의성과 안정성이 높아져 인기다.
하지만 렉라자와 짐펜트라가 각각 1조원의 매출벽을 돌파한다 해도 여전히 글로벌 시장 관점에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아직은 한국 제약사들이 전 세계 시장에서 신약으로 경쟁하기는 어려움이 많은 환경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신약개발 사업에 신중한 이유다.
CDMO(위탁개발생산)가 대세인 이유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반기 보고서에서 2024년 바이오 의약품 시장 규모를 약 590조원(4370억달러)으로 추정했다. 이는 전체 제약 시장의 37% 수준으로 2028년까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약개발이 아니라 위탁개발생산이 주력인 회사다. 따라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이해하려면 먼저 위탁개발생산 관련 용어인 ‘CMO’, ‘CDO’, ‘CDMO’를 알아야 한다.
‘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란 제약 회사로부터 위탁받아 의약품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제품의 대량 생산, 포장, 품질 관리 등이 포함된다. 주로 이미 개발된 의약품의 대량 생산을 담당한다. 제약사들이 자체 생산시설을 갖추지 않고도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다.
‘CDO(Contract Development Organization)’는 의약품의 개발 단계만을 지원하는 ‘위탁개발’을 말한다. 주로 연구개발, 임상시험을 위한 소규모 생산, 공정 최적화 등을 담당한다. 대량 생산은 포함되지 않는다. 대량 생산은 별도의 제조 조직(CMO)과 협력해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CDMO(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는 CMO와 CDO를 합친 개념이다. CDMO는 의약품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 초기 연구, 임상시험 물질 생산, 최종 대량 생산까지의 전 과정을 담당한다. 따라서 제약사들에게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글로벌 CDMO 시장...대형사 간 경쟁 치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동물 세포 기반 항체의약품’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바이오 CMO 사업을 영위한다. 동물 세포 기반 항체의약품은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동물 세포에서 생성된 단백질, 특히 항체를 주성분으로 하는 의약품이다. 이 의약품들은 주로 암, 자가면역질환, 감염질환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따라서 동물 세포 기반 항체의약품은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대형 생산설비를 보유한 소수의 초대형 CMO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시설 규모는 글로벌 톱 수준이다. 2025년 4월 완공이 예정된 송도의 제5공장까지 합치면 총 생산능력은 무려 78만4000리터로 늘어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MO 사업에서 압도적인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송도 제5공장까지 누적 5조9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대규모 생산능력을 보유하면 ‘규모의 경제’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즉 생산단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5공장까지 완성돼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미 확보해 놓은 송도 토지는 여전히 빈 곳이 넘쳐난다. 더 미래에 6공장, 7공장, 8공장까지 완공될 경우 생산능력 측면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로 올라서게 된다. 삼성은 반도체 산업에서의 초격차 전략을 바이오 산업에서도 그대로 활용했다. 이 전략은 대성공이다.
현재 생산시설 규모 세계 1위는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론자’다. 삼성의 공격적인 확장에 대응해 론자는 2024년 3월에 글로벌 제약사인 ‘로슈’의 미국 생산공장 33만리터를 인수했다. 따라서 총 생산능력이 77만5000리터로 확대됐다. 론자 역시 규모의 경제를 누리기 위해 생산능력 확대에 적극적이다.
이와 별개로 대형 제약사인 로슈의 미국 공장 매각은 바이오 의약품의 직접생산보다 위탁생산 트렌드가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우시바이오도 생산능력 확대에 적극적이지만 미국의 생물보안법에 발목을 잡힐 우려가 크다.
안정적인 수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실적
아무리 공장을 늘려도 수주물량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다면 거대한 생산능력은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다. 다행히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상위 20개 제약사 중 무려 16개 사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거래 중이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수주 잔고도 탄탄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연도별 CMO 신규 수주 금액은 2021년 1조9000억원(14억달러), 2022년 2조7000억원(20억달러), 2023년 3조3000억원(25억달러)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기준 누적 수주금액은 16조원(120억달러)에 달한다.
@img4
국내보다 해외 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24년 상반기 매출액을 살펴보면 한국 매출 비중은 3.5%에 불과하다. 유럽 비중이 61.8%, 미국 비중이 27.4%로 대부분의 매출이 글로벌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img5
이에 따라 전반적인 실적도 양호하다. 2023년에 CDMO 항체의약품 매출액은 2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바이오시밀러 매출액은 1조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54% 급증한 서프라이즈 실적을 보였다. 2023년 전체 매출액은 3조69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 급증했다.
영업이익 또한 1조11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제조업으로는 드물게 30%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 중인 것도 눈길을 끈다. 한국 시가총액 1위 회사인 삼성전자의 2024년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12% 수준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수익성이 3배 가까이 높다.
@img6
2024년 상반기 실적은 더 화려하다. CDMO 항체의약품 매출액은 1조2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 특히 바이오시밀러 매출이 전년 대비 무려 73% 급증한 8100억원을 기록한 점이 눈길을 끈다. 상반기 전체 매출 합계는 2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 추세면 2024년 총 매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4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 또한 66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7% 증가한 호실적을 보였다. 최근 외국인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을 집중 매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 통해 바이오시밀러 폭풍 성장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실적을 살펴보면 주력인 CMO 사업 외에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매출액이 큰 폭 성장한 게 주목된다. 이는 2022년 4월에 지분 100% 확보를 통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한 ‘삼성바이오에피스’ 덕분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2년에 설립된 생명공학 회사다. 주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의 개발, 생산, 상용화에 주력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란 특허가 만료된 ‘생물학적 의약품’과 동등한 효능과 안전성을 갖춘 복제 의약품을 말한다. 오리지널보다 가격이 저렴한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생물학적 의약품은 세포, 단백질, 호르몬 등 생물학적 물질로 만들어진다. 이와 동등한 효능을 갖춰야 하는 바이오시밀러는 미세한 환경 변화에도 제품의 특성이 달라질 수 있어 제조가 까다롭다. 따라서 원래의 생물학적 의약품과 동일하긴 어려워 유사 구조의 제품을 만든다. 규제 절차도 엄격해 광범위한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반면 ‘화학적 합성 의약품’의 구조는 간단하다. 따라서 이를 복제하는 제네릭 의약품의 경우 제조 과정이 비교적 단순하다. 제네릭 의약품은 원래의 약물과 화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구조다. 이에 따라 승인 절차도 간단하다. 이렇게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 의약품 간의 난이도 차이는 현격하다.
@img7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강력한 기술 경쟁력을 갖췄다. 현재까지 총 8개의 바이오시밀러 품목이 FDA 판매 허가를 받아 미국과 유럽 등에서 판매 중이다.
과거 블록버스터 신약이었던 존슨앤드존슨의 ‘레미케이드’(적응증: 크론병 등)는 ‘렌플렉시스’라는 이름의 바이오시밀러로 만들어 판매된다. 로슈의 ‘허셉틴’(적응증: 유방암 등)은 ‘온트루잔트’, 암젠의 ‘엔브럴’(적응증: 류머티스관절염)은 ‘에티코보’라는 약품명으로 판매된다.
그 밖에도 애브비의 ‘휴미라’(적응증: 건선 등)는 ‘하드리마’, 노바티스의 ‘루센티스’(적응증: 황반변성 등)는 ‘바이우비즈’, 리제네론의 ‘아일리아’(적응증: 황반변성 등)는 ‘오퓨비즈’, 얀센의 ‘스텔라라’(적응증: 크론병 등)는 ‘피즈치바’, 알렉시온의 ‘솔라리스’(적응증: 발작성 야간 혈색 소뇨증)는 ‘에피스클리’라는 이름의 바이오시밀러로 만들어졌다.
지금 세계 각국 정부는 늘어나는 의약품 비용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국가의 재정은 빠듯한데 노령화로 인해 의약품 지출비용은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오리지널보다 가격이 저렴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사용을 권장하는 추세다. 앞으로도 바이오시밀러 분야의 매출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 생물보안법 초대형 호재...수혜주는 삼바?
지난 2024년 3월에 미국에서는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이 상원을 통과했다. 이는 외국의 바이오 기업이 미국인의 개인 건강과 유전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법안이다. 법안의 실제 목적은 중국 바이오 기업의 미국 활동을 막아 바이오 보안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아직 최종적으로 법안이 통과된 건 아니다. 하지만 실제 법안 통과 시에는 ‘우시 바이오’ 같은 중국 바이오 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반면 CDMO 사업에서 우시 바이오와 강력한 경쟁 관계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규모의 반사이익을 보게 된다.
현재 생물보안법의 하원 표결은 2024년 9월로 예정돼 있다. 생물보안법의 연내 통과가 가시화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로의 수주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본격적인 시행연도는 2032년부터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장기적인 생산능력 확보 계획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스케줄이다.
전 세계의 베이비부머들이 다 같이 늙어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수명을 늘릴 수만 있다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연평균 6%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한국 정부도 첨단 바이오 기술 연구개발(R&D) 예산 규모를 올해의 1163억원에서 내년에는 1283억으로 늘리며 바이오 산업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 60살인 사람은 10년 뒤에 반드시 70살이 된다. 국내 주식 전체 시가총액 순위 4위로 뛰어오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10년 뒤에는 삼성전자마저 제치고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제약·바이오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을 확신하는 투자자라면 국내 1위 바이오 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9월호
"우리는 '마처세대'"...한국 부유층 '60년대생'의 한탄
@img6
은퇴 커뮤니티엔 부모님 간병 걱정 한가득
죽기 5년 전에 쓰는 병원비가 최대
노인 1명에 1년 1700만원...적자 불 보듯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요즘 은퇴 커뮤니티에는 본인의 노후 걱정뿐 아니라 부모님의 간병을 걱정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특히 60대에 진입한 1960년대생들의 고민이 가장 크다. 이들은 80대의 부모와 20대의 자식 사이에 제대로 끼인 세대다. 일명 ‘마처 세대’라는 신조어로 불리기도 한다. 부모 부양의 ‘마’지막 세대이자 부양 못 받는 ‘처’음 세대라는 뜻이다.
60대 노인이 80~90대 간병하는 세상
지난 6월에 ‘재단법인 돌봄과미래’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 1960년대생 중 15%가 부모와 자녀 모두를 부양하는 이른바 ‘마처 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지출 비용은 164만원이다. 연간으로 따져보면 2000만원에 육박한다.
꼭 ‘이중 부양’은 아니더라도 60년대생의 44%는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월평균 지원금은 73만원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간병이다. 지금은 60대 노인이 80~90대 노인을 간병하는 세상이다.
이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늙어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2025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한국보다 훨씬 먼저 진입한 일본도 ‘노노간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의 은퇴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흔한 질문 중 하나가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셔도 되는지”다. 이 질문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진다. 종합해 보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치매’가 심하거나 ‘스스로 대소변을 해결 못 하는 상황’이라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좀 더 많은 편이다.
“요양원에 치매 환자가 많은지 여부”를 묻는 질문도 있다. “우리 부모님은 정신이 멀쩡하지만 거동이 불편해 어쩔 수 없이 모시려는데 치매 환자가 많으면 적응하기가 어떨지”에 대한 걱정이다.
요양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치매 환자가 아예 없는 경우는 없다. 한국은 2017년에 ‘치매 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국가가 앞장서서 치매 환자를 관리한다는 뜻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 벌써 110만명 돌파
부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존엄한 노후를 보낼 권리가 있다. 이런 취지로 혼자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65세 이상 노인의 존엄한 노후 보장을 위해 만든 제도가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어느덧 시행 16주년을 맞았다. 이 제도 덕분에 한국 노인들의 의료비 부담은 대폭 경감됐다.
하지만 아무나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65세 이상 노인이나 65세 미만의 노인성 질병(치매·뇌혈관성질환·파킨슨병 등)을 가진 사람만 가능하다. 내년부터는 1960년생도 신청 가능한 나이가 된다.
이들이 공단에 ‘장기요양 인정’을 신청하면 공단 직원의 조사 결과와 의사소견서 등을 참고해 적정 등급을 판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2023년 기준 장기요양보험 혜택 인정자는 110만명에 달한다. 전체 노인 인구 중 11.1% 비율이다. 아직은 10명 중 1명꼴이라 부담이 크지 않다. 하지만 노령화가 진행될수록 이 비율은 급격히 높아지게 된다. 질병의 정도에 따라 1~5등급이나 인지지원등급(6등급)으로 분류된다.
장기요양보험의 가장 큰 장점은 재가급여와 시설급여 혜택을 받는다는 점이다. 재가급여란 방문요양, 방문목욕, 방문간호, 주·야간보호, 단기보호, 복지용구 등의 혜택을 말한다. 본인의 집에 거주하면서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시설급여란 등급에 따라 요양원 등의 노인의료복지시설에 입소할 수 있는 혜택을 말한다. 1~2등급은 입소가 가능하다. 이런 재가급여와 시설급여 혜택은 당사자 본인이나 간병을 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된다.
노인 1명에 연 1700만원 들어...적자는 불가피
이런 복지정책을 운영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2023년에 장기요양보험 급여비용으로 총 14조5000억원이 지출됐다. 1인당 연평균 급여 총 비용은 무려 1727만원이다. 이 엄청난 금액을 소득이 없는 노인이 다 부담할 경우 노후 파산도 걱정해야 할 수준이다.
다행히 수급자의 본인부담금은 재가급여의 경우 15%, 시설급여의 경우 20%에 불과하다. 또 재산이 적은 경우 더 감경될 수도 있다. 따라서 실제 연평균 본인부담금은 총 비용 1727만원의 9%에 불과한 155만원이다. 월 13만원꼴이니 저렴하다.
요양원 등의 시설급여 비용을 별도로 계산해 보면 ‘장기요양 1등급’의 시설급여 본인부담금은 월간 약 50만원이다. 연간으로는 약 600만원이다. 게다가 시설급여의 경우 식사재료비, 상급침실 이용비 등은 전액부담이라 추가적인 비용이 더 들어간다. 그래도 총 비용의 5분의 1이니 상당한 혜택이다.
@img4
문제는 재원이다. 2023년의 공단부담금은 2년 전보다 무려 30.7% 폭증한 13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재가급여에 62.5%인 8조2000억원, 시설급여에 37.5%인 4조9000억원이 지출됐다.
심각한 건 노인인구 급증으로 시간이 갈수록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점. 현재 근로자는 본인의 소득에서 건강보험료율(7.09%)과 장기요양보험료율(0.9182%)을 합친 8%(회사가 절반 부담)를 ‘합산 건강보험료’로 납부한다.
장기요양보험료율만 따로 살펴보면 채 1%도 안 되는 셈이다. 이 정도의 낮은 보험료율로 제도가 지속되는 건 불가능하다. 재정 붕괴는 정해진 미래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에 노인장기요양보험은 5000억원의 재정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2026년부터는 적자로 돌아선다. 2032년에는 적자 규모가 2조3000억원으로 확대된다. 보험료율을 대폭 올리거나 혜택을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다. 이것만 믿고 있다가는 본인의 노후가 흔들릴 수 있다.
@img5
부족한 요양보호사...심각한 문제 될 수도
2023년 기준 장기요양기관 수는 2만8366개소(재가 2만2097개소, 시설 6269개소)다. 노인 장기요양제도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련 업무 종사자도 대규모로 필요하다.
사회복지사,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영양사 등 관련 종사자들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필요한 인력은 요양보호사다. 2023년 말 기준 요양보호사는 61만명으로 2년 전 대비 20.2% 증가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요양보호사의 처우는 낮고 업무강도는 높다. 일할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든다. 반면 노인들은 급증하고 있다. 결국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은 불가피하다. 아예 사람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장기요양보험 재정 전망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전국 요양원 시설과 시스템 개선 필요
요즘 병원에는 늙으신 부모의 진료를 위해 동행하는 60년대생들이 즐비하다. 이런 동행도 부모가 거동할 수 있을 때의 얘기다. 거동이 불편해지면 고민이 깊어진다. 시설에 모시려 해도 마음이 편치 않다. 또 직접 모시기엔 직장생활에 지장받을 정도로 버겁다.
한국의 노인장기요양제도는 세계적 기준으로 살펴봐도 잘 만든 제도다. 그럼에도 이 제도만으로 모든 노인들의 간병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인정기준이 엄격해 제도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환자들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사적 간병인을 써야 한다. 요즘 간병인 구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1개월 비용이 약 400만원으로 훌쩍 뛴다. 특히 80대의 부모와 20대의 자식 사이에 낀 60년대생들의 고통이 크다.
‘효’와 ‘정’을 중요시하는 유교 문화의 한국에서 부모의 간병은 중요한 문제다. 실제 현실은 냉정하다. 이론과 달리 부모의 간병에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사람은 죽기 5년 전에 평생 의료비의 절반 이상을 쓴다는 비공식 통계도 있다.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의 병원비를 외면하기는 힘들다.
국가는 자녀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안심하고 부모를 모실 수 있도록 전국 요양원들의 시설과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재정 문제다. 한국의 소중한 노인장기요양제도가 재정 문제로 후퇴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2024년 09월호
친구가 치매 걸렸다는데...은퇴족 100만명 치매인데 치료제 있나
@img7
나이 많을수록 치매 확률 확 높아져
중증 치매 연간 비용 1인당 3500만원
치매 치료제 일라이릴리 ‘키썬라’ 기대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노인들의 3대 사망원인은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이다. 이 3대 질병은 수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그런데 수명 단축 효과는 작지만 은퇴 생활을 심각하게 망치는 질병이 있다. 바로 치매다. 치매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큰 고통에 빠뜨린다.
치매환자 100만명 돌파...나이 들수록 심해져
고령자는 크게 전기고령자(65~74세)와 후기고령자(75세 이상)로 나눌 수 있다. 전기고령자는 건강과 자산 상황이 양호하다. 반면 후기고령자는 건강과 자산 상황이 악화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후기고령자 삶의 질을 뚝 떨어뜨리는 최악의 질병은 치매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치매 문제로 애를 먹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025년의 일본 추정 치매환자 수(65세 이상)는 471만명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23’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치매환자 수도 2022년에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 중 65세 이상 치매환자 수는 93만5000명이다. 노화가 치매 발병의 중요한 요인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남성보다 여성 치매환자가 더 많다는 점이다.
남성 치매환자 수는 36만3000명(39%)인 데 비해 여성 치매환자 수는 57만2000명(61%)으로 추정된다. 여성 환자가 1.6배 높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높은 걸 감안하더라도 확연한 차이다. 따라서 여성이라면 좀 더 치매 예방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전기고령자의 치매환자 수 비중이 14%인 데 비해 후기고령자의 치매환자 수 비중이 무려 86%에 달한다. 특히 85세 이상의 치매환자 수는 35만9000명이다. 전체 치매환자 중 38%라는 압도적 비율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인류가 과거보다 오래 살게 되면서 치매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치매는 증상에 따라 4단계로 분류된다. 이 중 3단계인 중등도 치매(24만명, 26%)는 치매가 많이 진행돼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도움이 필요한 단계다. 가장 심각한 4단계 중증 치매(14만5000명, 15%)는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1인당 연간 중증 치매 관리비용 3500만원
보건복지부가 추정한 1인당 치매환자 관리비용(직접+간접)은 약 2220만원이다. 통계청의 한국 연간 가구 평균소득 5801만원으로 계산하면 38.3%에 달한다. 소득이 없는 은퇴자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치매 증상이 심할수록 비용은 더 커진다.
중앙치매센터는 가장 심각한 4단계 치매 중증 환자의 경우 연간 관리비용을 3480만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중증 치매환자가 다시 좋아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중증 치매 상태로 5년을 더 살면 1억7400만원, 10년을 더 살면 3억4800만원이 필요하다. 치매가 은퇴생활을 위협하는 최악의 질병인 이유다. 또 돈은 둘째치고 삶의 질 또한 최악으로 추락하게 된다. 결국 국가의 지원이 없다면 치매 기간이 길어질수록 노후 파산 가능성이 증가하게 된다. 정부는 ‘중증치매 산정 특례 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을 통해 치매환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치매환자의 재정적 부담이 해결되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연간 치매 관리비용은 20조8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1% 수준이다. 그리고 이 수치는 앞으로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의 2070년 추정 치매환자 수는 무려 340만명이다. 이에 따라 연간 치매관리비용도 236조원으로 폭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가 대부분
치매는 기억력, 사고력, 판단력 등이 낮아지는 진행성 뇌질환이다. 심해지면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게 된다. 치매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 기타 원인불명의 치매다.
@img4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가장 흔한 유형으로 전체 치매 사례의 약 70%를 차지한다. 알츠하이머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까지는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여 덩어리(플라크)가 생기는 것을 원인으로 보는 ‘아밀로이드’ 가설이 대세다. 혈관성 치매는 전체 치매 사례의 약 20%를 차지한다. 혈관성 치매는 뇌로 가는 혈류의 감소로 인해 발생한다. 이는 뇌경색, 뇌출혈 등의 혈액순환 장애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혈관성 치매의 증상은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하지만 추가로 걷기 등의 운동 기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치매 치료제 개발은 됐지만...아직은 미완성
치매 치료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최종 승인을 받은 치매 치료제는 총 3종류다. 모두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막거나 제거하는 기전의 치료제다. 하지만 2021년에 첫 번째로 승인받은 치매 치료제 ‘아두헬름’은 효능 논란으로 판매가 중단됐다.
@img5
2023년 7월에 두 번째로 FDA의 승인을 받은 치매 치료제 ‘레켐비’는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했다.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투여 시 27%의 인지기능 저하 감소 효과를 보였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뇌 부종과 출혈 같은 부작용 비율이 12.6%다. 적지 않은 수치다. 또 여성에게는 효과가 약하다는 후속 분석보고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치매환자는 여성 비중이 높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처방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2024년 7월에 세 번째로 FDA의 승인을 받은 ‘키썬라’(성분명 : 도나네맙)는 미국 일라이릴리가 개발한 신약이다. 키썬라는 앞서 나온 레켐비에 비해 장점이 많다. 먼저 인지기능 저하 감소 효과가 35%로 레켐비의 28%보다 높다. 또 투여 간격도 4주에 1회로 레켐비(2주에 1회)에 비해 환자 편의성이 높다. 치료제 투여 기간도 6~18개월로 짧다. 반면 레켐비는 계속 투여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키썬라는 뇌 부종과 출혈 같은 부작용 비율이 레켐비의 2배가 넘는 26.7%를 기록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레켐비나 키썬라 모두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만 효과가 입증됐다는 점이다. 중증 환자도 아닌 초기 환자가 부작용 위험을 감수하며 치매 치료제 투약을 선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중증 치매 치료제 개발 실패...예방이 최선
지난 2024년 5월에 한국 식약처는 키썬라보다 먼저 나온 레켐비의 사용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하반기부터 시판될 예정이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을 못 받는 ‘비급여’다. 따라서 가격 부담으로 레켐비의 초기 판매량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기준 레켐비의 연간 치료 가격은 약 3500만원(2만6000달러)이다. 키썬라는 그보다 더 비싼 4300만원(3만2000달러)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투여 기간이 짧은 일라이릴리의 키썬라가 가격 측면에서 유리하다. 시장에서는 2030년 키썬라 연간 매출액이 약 2조7000억원(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 다른 치매 치료제 후보로는 노보노디스크의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이 있다. 기적의 비만 치료제로 유명한 ‘위고비’와 같은 성분이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당뇨병 환자들에게 1년 동안 오젬픽을 투여한 임상 2상 결과를 발표했다. 임상 결과 오젬픽이 당뇨병 치료 효능 외에도 인지기능 저하를 18% 감소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무작위 임상 결과가 아니라서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노보노디스크에서도 자체적으로 약 3000명의 초기 치매(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이 결과는 2025년에나 발표될 예정이다. 현재 FDA의 승인을 받은 레켐비나 키썬라 모두 효능 면에서 뚜렷한 한계가 있다. 또 오젬픽의 경우 실제 효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초기 환자가 아닌 중증 치매환자에 대한 획기적인 신약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발 전망은 밝지 않다. 만약 중증 치매 치료제 개발에 계속 실패한다면 인간의 수명 연장과 더불어 치매환자 수는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예방과 조기 발견이 최선이다.
치매 위험인자는 음주가 2.2배...생활습관 바꿔야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치매 위험인자 중 가장 높은 건 뇌 손상으로 2.4배다. 뇌 손상을 제외한 생활습관 중에는 음주가 2.2배로 제일 높다. 또 운동부족 1.8배, 우울증 1.7배, 흡연 1.6배, 비만 1.6배 순이다. 은퇴자들은 좋지 않은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적극적으로 치매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
@img6
치매는 조기에 발견될수록 관리가 용이해진다. 치매 진행을 늦추는 약물 치료는 빨리 시작할수록 효과가 좋다. 따라서 의심스러울 때는 최대한 빨리 치매 조기검진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현재 5500만명 이상이 알츠하이머병(치매)을 앓고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집안에 치매환자가 발생할 경우 가족들에게도 심각한 고통을 준다.
길을 잃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등 가정에서 치매환자를 돌보기는 어려움이 많다. 치매는 간병인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요양시설에 입소하게 된다. 이럴 경우 치매환자도 집이 아니라서 불편해한다. 결국 한 사람의 삶이 전반적으로 파괴된다. 치매는 관리비용도 상당하다. 중증 환자의 경우 연간 3480만원이 들어간다. 정부는 2017년에 ‘치매 국가책임제’를 발표하며 치매환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한계는 있다. 하루빨리 더 성능 좋은 치매 치료제가 나오는 것만이 이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이다.

2024년 09월호
'품격 있는 죽음' 원한다...장기적이고 세심한 노후설계 필요
2032년 돌봄 인력 71만명 부족 전망
월평균 간병비 370만원 충격
누구나 자택에서의 품위 있는 죽음 원해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2022년 기준)은 남성 79.9세, 여성 85.6세다. 남녀 전체로는 82.7세다. 전년 대비 0.9세가 줄어든 수치다. 이는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전염병 탓이다. 일시적인 현상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앞으로도 완만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인간 평균수명 100세 넘는 시대 오나?
또 다른 통계도 있다. 보험개발원의 제10회 경험생명표(2024년 1월)에 따르면 남성은 86.3세, 여성은 90.7세로 평균수명이 확 늘어난다. 이는 5년 전보다 각각 2.8세와 2.2세 늘어난 수치다. 보험회사는 보험 가입을 승낙할 때 건강 진단이나 과거 병력 고지 등을 따져본다. 이런 이유로 생명보험 가입자의 수명이 더 긴 편이다. 이 부분을 감안해도 5년 전에 비해 수명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미래에는 평균수명이 100세를 넘기는 게 어렵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최근 인간의 기대수명이 큰 폭으로 늘어날 거라고 대담하게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데이비드 A 싱클레어 교수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미래에는 “인간 수명이 120살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르게이 영도 자신의 책을 통해 언젠가 인간이 100살을 훌쩍 넘어 150살까지도 가능한 기술이 개발될 거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중요한 건 수명 연장의 질이다. 기대수명보다 더 중요한 건 건강수명이다. 2022년 한국 출생아의 기대수명(82.7세) 중 건강수명(유병기간을 제외)은 고작 65.8년에 불과했다. 남자는 65.1년, 여자는 66.6년이다. 결국 기대수명 중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기간의 비율이 남자는 81.5%, 여자는 77.7%에 불과하다. 나머지 10년 이상은 갖가지 병을 안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물론 이건 단지 통계 수치다. 실제로는 70세 넘어서도 정정한 사람들이 주위에 넘쳐난다.
중요한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은 120살은커녕 100살까지도 살아갈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건강하지 않은 채로 단순히 수명만 연장되는 건 재앙에 가깝다. 나이가 들어 혼자 거동하는 게 불편해지면 이때부터는 다른 누군가가 생활을 도와줘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또 갈수록 간병할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감당 안 되는 간병비와 간병인력 부족
2024년 3월에 한국은행이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는 한동안 화제였다. 간병비와 간병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이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간병인 등의 부족 인원을 8년 뒤인 2032년에는 최소 38만명으로 추정했다. 최대 부족 인원은 71만명이다. 이미 노인돌봄 종사자는 2013년의 32만명에서 2022년에는 67만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한 상황이다. 이 중 상당수는 조선족이다.
한국의 노령화된 인구 구조상 노인돌봄 종사자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기는 어렵다. 반면 간병을 필요로 하는 노인 인구 수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수요 공급의 불일치가 갈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높은 간병비다. 보고서는 요양병원 등에서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2023년 기준 월평균 비용을 370만원으로 추정했다.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224만원)의 1.7배다. 사실상 대다수의 고령 가구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본인의 자택에서 간병받기 어려운 이유는?
사람이 늙어서 죽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노쇠해질수록 혼자 거동 못 하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마지막에 자신의 집에서 품위 있게 죽기를 원한다. 하지만 보호자 역할을 하는 배우자나 자녀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혼자 거동하기 어려운 만 65세 이상의 노인이 장기요양보험 1~2등급을 받아 요양원에 입소할 경우 기본 비용은 약 월 50만원이다. 추가로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식비 등을 포함하면 총 월 80만~100만원이 소요된다. 또 다른 방법은 본인의 자택에서 하는 ‘재가 요양’이다. 이 경우 장기요양보험의 방문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하루 최대 4시간으로 제한된다. 초과 시간은 개인 부담으로 사적 간병인을 고용해야 한다.
월평균 370만원의 사적 간병비는 40대(588만원)와 50대(588만원) 가구 중위소득 대비로도 60%를 상회한다. 자녀 가구 입장에서도 매우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가족이 일을 그만두고 직접 간병하는 방법도 있다. 이 또한 쉽지 않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간병하는 건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 비슷한 문화권인 일본에서는 5년 이상 장기 간병하다가 결국 배우자나 자식이 간병살인이나 간병자살의 늪에 빠진 사례도 많다. 또 가족이 일을 그만두고 환자를 돌볼 경우 경제적 손실은 2배가 된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2022년 기준 89만명인 가족 간병 규모가 2032년에는 최소 151만명에서 최대 192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럴 경우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소요된다.
결국 비용이나 여건상 거동이 불편해진 노인 중 상당수는 원치 않아도 요양원 입소를 결정하게 된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요양원 입소는 83%가 자녀나 배우자에 의해 결정된다. 이용자 스스로 결정하는 비율은 6%에 그쳤다. 일단 거동 불편으로 요양원에 들어가면 다시 나와서 혼자 생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왔다 갔다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양원은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십 년 전과 달리 이제 자택에서 품위 있게 죽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된 셈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간병인으로...현실은 쉽지 않아
아시아에서 외국 인력을 활용한 ‘재택 요양’이 가장 활성화된 나라는 대만이다. 대만은 2020년 기준 약 24만명(전체 취업자 수의 2%)의 외국인 노동자가 가정 입주 형태로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의 동남아시아 인력이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대만 가정 내 외국인 돌봄 노동자의 평균 급여는 월 89만원이다. 대만의 최저임금인 월 108만원보다 낮다. 대만은 외국인 노동자 덕분에 간병비 부담을 크게 덜어낸 셈이다.
보고서는 한국 역시 결국 외국인 노동자를 간병인력으로 활용하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제시한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방안은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을 통해 외국인을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다. 또 주거 여건상 필요 시 사용자조합이 제공하는 공동숙소를 사용하는 방안이다. 이는 사적 계약이라서 요양원 등에서는 활용할 수 없는 게 단점이다. 두 번째 방안은 외국인에 대한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간병 등의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하는 방안이다. 추가로 비용 절감을 위해 간병 업종에만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하는 안이다. 문제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이미 간병 업무에 종사 중인 사람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 좋은 방법은 외국인에게는 최저임금 보장을 적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이 또한 국제노동기구(ILO)의 차별금지협약 위반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실제 적용하기에는 제약이 많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건수 생각보다 적어
노령화가 심해지면서 관심이 집중되는 또 다른 주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문제 제기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한림대 성심병원의 김현아 교수가 ‘죽음을 배우는 시간’(창비)이라는 책을 통해 연명치료와 존엄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보다 더 빨리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연명치료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일본 재택호스피스협회 회장인 오가사와라 분유가 쓴 책인 ‘더없이 홀가분한 죽음’(위즈덤하우스)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19세 이상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임종 과정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통해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이를 문서로 작성해 두는 게 바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다. 2024년 7월 말 기준 등록자 수는 244만명을 돌파했다. 연명의료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통해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 연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사실상 무의미한 의료행위라 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시행으로 인해 환자 입장에서는 임종을 앞두고 과도한 치료로 고통받는 걸 피할 수 있게 됐다. 또 정부나 환자 가족 입장에서는 가장 많은 의료비가 투입되는 임종 직전의 과도한 의료재정 부담과 병원비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이 사전연명의료 의향서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임종 직전의 변심도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그보다 병원의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의 의료행위를 다한다.
반면 환자는 의식이 없는 경우도 많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작성 여부가 사전에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하는 건 ‘효’를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다.
결국 중환자실에 들어간 환자는 수액을 투입하기 위한 정맥선, 인공호흡을 위한 기도삽관, 동맥압 측정을 위한 동맥삽관 등으로 몸에 주렁주렁 많은 줄을 매달게 된다. 또 최후의 임종 순간에는 심폐소생술을 통해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의 고통을 겪은 후 사망하는 경우도 흔하다.
아시아에서 안락사는 금기어...스위스는 가능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 중에는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 집도 아닌 요양원에서 10년 이상 누워 있는 환자 중에는 차라리 존엄한 죽음을 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안락사(의사 조력 자살)는 금기어에 가깝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유교 사상이 녹아 있는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대만에서도 안락사는 금지돼 있다. 이런 대만에서 위생복리부타이중병원 재활학과에 재직 중인 비류잉 교수의 책이 화제가 됐다. 비 교수는 안락사가 금지된 대만의 현실에 맞춰 본인의 어머니가 단식을 통해 존엄사한 과정을 생생히 묘사했다. 그가 책에서 밝힌 자발적 단식 존엄사의 특징은 “음식을 전혀 섭취하지 않고 물도 최대한 마시지 않으면 약 10일에서 14일 후에 사망한다. 질병으로 자연사하는 것보다 비교적 빠르다”는 점이다. 또 장점으로는 “약 2주 동안 가족은 시간을 잘 안배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작별인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한국의 한 은퇴 커뮤니티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쟁이 한창이다. 한 회원은 “한국에서도 안락사가 허용되면 좋겠다. 만약 내가 늙어서 거동이 불편해질 때까지도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곡기를 끊어 존엄사하는 방법을 택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누구나 자택에서의 ‘품위 있는 죽음’ 원해
이제 한국인들은 본인이 100살을 넘겨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철저히 이에 대비해야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먼저 안 좋은 생활습관부터 교정해야 한다. 또 제약, 바이오, 헬스케어의 최신 기술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케인스의 말처럼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는 모두 죽는다.” 중요한 건 사람은 누구나 요양원이 아닌 자택에서 품위 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노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자택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간병 받을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 방문요양과 주야간보호 제도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곧 닥칠 간병인 부족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대책이다. 외국인 노동자 활용 등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서둘러 검토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정부 외에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특히 오래 살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노후 생활비다. 퇴직연금 등을 활용한 장기적이고 세심한 노후설계가 필요하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정부만 믿지 말고 본인 스스로 철저한 대비가 중요한 시대다.

2024년 09월호
삼성운용·미래에셋 ETF 올인...제3의 비만치료제 있다
@img5
삼성운용 비만치료제 ETF 국내 최초 1000억원 돌파
만병통치약 진화하는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 135조원
일라이릴리 신약 ‘키썬라’로 치매 정복 기대감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전세계적으로 비만 치료제 열풍이 뜨겁다. 이런 흐름에 맞춰 올 초에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각각 개성 넘치는 ‘비만 치료제 ETF’를 출시했다. 그런데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단 2개 종목이 전체 ETF 비중의 50%를 차지한다. 이들은 어째서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에 올인한 걸까.
삼성과 미래에셋의 비만 치료제 ETF 전략은 비슷?
삼성자산운용의 ‘KODEX 글로벌비만치료제TOP2 Plus’ ETF는 2024년 2월 14일에 국내 최초로 상장됐다. 그로부터 15일 뒤인 2024년 2월 29일에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글로벌비만치료제TOP2Plus’ ETF가 연달아 상장됐다. 이 2개의 ETF 전략 중 서로 유사한 건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 주식을 각각 25% 내외로 편입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양사 모두 2개 종목을 비슷한 비중으로 담았다는 것. 둘 중 어느 종목이 더 상승 여력이 큰지는 판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전문가들도 어디가 우위를 점할지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는 서로 다른 강점을 갖고 있다.
덴마크 기업 노보노디스크, 비만 치료제로 급성장
덴마크 기업인 노보노디스크의 GPL-1 작용제 계열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은 2023년에만 19조1000억원(957억 덴마크크로네)의 기록적인 매출액을 보였다. 단일 의약품 기준 매출액 1위인 머크의 ‘키트루다’(250억달러), 2위인 애브비의 ‘휴미라’(144억달러)에 이어 3위다.
노보노디스크가 원래 메이저급 제약사는 아니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다. 추가로 동일 성분으로 만든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2021년 6월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위고비의 2023년 매출은 6조3000억원(313억 덴마크크로네)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무려 407% 급증한 수치다.
문제는 위고비의 심각한 공급 부족이다. 한마디로 없어서 못 판다. 위고비는 현재까지 미국,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일본 등 8개 국가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판매되지 않는다.
이런 심각한 공급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24년 2월에 노보노디스크의 모회사인 노보홀딩스는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카탈란트를 22조원(165억달러)에 전격 인수했다.
카탈란트의 생산시설은 노보노디스크에 우선 배정돼 위고비 생산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그 외에도 노보노디스크는 추가로 유럽 각지의 기존 공장 증축, 미국에는 새로운 자체 공장 설립을 진행 중이다.
노보노디스크 주가는 가파른 성장 기대감으로 작년과 올해 대폭등했다. 현재는 유럽 증시 부동의 1위였던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마저 가볍게 누르고 유럽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기업 일라이릴리 비만 치료제 성능 더 우수
노보노디스크에 맞서는 일라이릴리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의 강점은 성능이다. 임상 결과를 살펴보면 위고비는 68주 차에 평균 14.9% 감량했다. 반면 젭바운드는 36주 차에 평균 20.9% 감량했다. 위고비보다 젭바운드의 임상 결과가 더 뛰어난 셈이다.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는 위고비보다 2년 이상 늦은 2023년 11월에 FDA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늦은 속도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은 가격 인하다. 위고비의 1개월 치료비는 약 180만원(1350달러)인 데 비해 젭바운드는 약 140만원(1060달러)으로 저렴하다.
문제는 역시 공급이다. 전 세계에서 위고비나 젭바운드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만 아직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일라이릴리 역시 젭바운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인디애나주 레버넌 공장에 약 7조2000억원(53억달러)을 추가 투자하는 등 공장 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노보홀딩스의 카탈란트 인수 사례처럼 글로벌 위탁개발생산 기업 인수합병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신공장 건설의 경우 기본적으로 2~3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단시간에 젭바운드의 공급 부족이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
일라이릴리의 강점은 다양한 파이프라인
노보노디스크는 당뇨병 치료제와 비만 치료제에 집중된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일라이릴리는 당뇨와 비만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의약품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있는 게 또 다른 차이점이다.
일라이릴리의 주력 의약품을 살펴보면 당뇨병 치료제로는 ‘트루리시티’, ‘자디앙’, ‘마운자로’ 등이 있다. 항암제 분야에서는 유방암 치료제인 ‘버제니오’가 유명하다. 또 면역학 분야에서는 건선 치료제인 ‘탈츠’ 매출액도 상당하다. 하지만 현재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의약품은 일라이릴리의 야심작인 알츠하이머 치료제 ‘도나네맙’(성분명)이다.
일라이릴리의 치매 치료제 ‘키썬라’ 기대감 폭발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5500만명 이상이 알츠하이머병(치매)을 앓고 있다. 따라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그동안은 안정성 문제로 번번이 FDA의 최종 승인에 실패해 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2건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FDA의 최종 심사를 통과해 관심이 집중된다.
먼저 ‘아두헬름’은 2021년에 가장 먼저 FDA의 승인을 받았지만 현재는 판매가 중단됐다.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의 첫 번째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레켐비’다. 레켐비는 바이오젠과 에자이 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2023년 7월에 FDA의 승인을 받았다.
1년 뒤인 2024년 7월에 일라이릴리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키썬라’도 FDA의 심사를 통과했다. 키썬라는 경증 치매환자의 임상 3상에서 가짜약 투약군 대비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35% 늦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레켐비의 27%보다 뛰어난 성과다.
키썬라의 1년 투약비용은 약 4300만원(3만2000달러)이다. 보험 적용이 안 될 경우 웬만한 사람들은 선택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반면 제약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수익이 기대된다. 시장에서는 2030년에 키썬라 연간 매출액을 약 2조7000억원(20억달러)으로 전망한다. 일라이릴리의 파이프라인이 탄탄해 보이는 이유다.
삼성 ‘강소 제약사’, 미래에셋 ‘대형 제약사’로 차별화
삼성과 미래에셋의 비만 치료제 ETF 상위 2개 종목인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의 비중은 각각 25%로 양사가 비슷하다. 따라서 수익률 격차는 나머지 보유비중 3~10위권 종목의 차별화로 결정된다.
3위부터 10위까지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양사의 전략은 확연히 다르다. 서로 겹치는 종목은 암젠, 로슈 홀딩스, 아스트라 제네카, 리제네론 파마슈티컬스 등 4종목에 불과하다. 나머지 4종목은 겹치지 않는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글로벌비만치료제TOP2 Plus’ ETF는 이름처럼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회사들에 집중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비만 치료제 개발에 주력하는 강소 제약사들을 선별해 동일 가중 방식으로 투자하는 전략을 쓴다.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글로벌비만치료제TOP2Plus’ ETF는 강소 제약사들보다는 대형 제약사 위주 포트폴리오다. 이는 대형 제약사의 자금력이 막대하므로 자체 신약 개발이나 인수합병(M&A) 중 선택할 수 있어 더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삼성은 ‘비만 치료제’ 자체의 성장 가능성에 좀 더 무게중심을 뒀다. 미래에셋은 ‘비만 치료제+대형 제약사’의 안정적인 파이프라인과 배당수익률에 좀 더 무게중심을 뒀다. 이런 차이점은 특정한 시장 상황에 따라 양사 ETF 간 수익률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차별화 포인트다.
삼성, ‘질랜드파마’ ‘바이킹 테라퓨틱스’에 기대
삼성자산운용의 비만 치료제 ETF에서 3번째로 많이 보유 중인 종목은 9% 비중인 질랜드파마다. 질랜드파마는 덴마크의 생명공학 회사로 비만, 희귀질환, 염증성 장질환 등을 치료하는 혁신 의약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질랜드파마의 파이프라인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베링거인겔하임과 공동 개발 중인 간질환 치료제이자 비만 치료 신약 물질인 ‘서보두타이드’다. 서보두타이드는 비만 치료제 임상시험 2상에서 체중을 19% 가까이 줄이면서 주목받고 있다. 현재는 3상이 진행 중이다.
삼성운용이 4번째로 많이 보유 중인 바이킹 테라퓨틱스도 임상 중인 신약 물질 ‘VK2735’가 13주 만에 체중을 14.7% 줄였다는 임상 결과를 올 2월 말에 발표한 뒤 주가가 하루에만 121% 급등했다. 올 연말에 3상 진입 예정으로 효능 부문에서 기대가 큰 신약물질이다.
이렇게 삼성의 비만 치료제 ETF 포트폴리오에는 비만 치료제 관련 강소 종목들이 다수 편입돼 있다. 따라서 편입된 강소 종목들이 최종적으로 신약 개발에 성공하거나 M&A를 통해 비싼 가격에 팔릴 가능성도 꽤 있다.
이럴 경우 삼성의 비만 치료제 ETF 수익률도 언제든 급등할 수 있다. 한 방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소형 종목의 특성상 변동성이 크다는 것은 단점이다.
미래에셋, ‘머크’ ‘노바티스’ 등 대형주에 초점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비만 치료제 ETF에서 3번째로 많이 보유 중인 종목은 10.5% 비중인 머크다. 물론 머크도 비만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긴 했다. 하지만 주력 분야는 아니다. 머크는 전 세계 매출 1위 의약품인 항암제 ‘키트루다’와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가다실’이 원투 펀치다.
또 머크는 공격적인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가는 회사다. 2021년 15조원(115억달러)에 인수한 ‘액셀러론 파마’와 2023년에 14조원(108억달러)에 인수한 ‘프로메테우스 바이오사이언스’가 대표적이다. 비만 치료제보다는 안정적이고 다양한 파이프라인이 매력적이다.
삼성에는 없지만 미래에셋이 6번째로 많이 보유 중인 스위스 기업 노바티스도 주목된다. 보유 비중은 7.6%다. 노바티스 역시 비만 치료제가 주력은 아니며 심부전 치료제인 ‘엔트레스토’와 건선 치료제인 ‘코센티스’가 매출 원투 펀치 역할을 해 왔다.
문제는 노바티스 주력 제품들의 특허 만료가 임박했다는 점이다. 대신 야간 혈색소뇨증 치료제 ‘파발타’와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 등의 매출이 상승하고 있다. 또 현재 임상 3상이 진행 중인 RNA 치료제 ‘펠레카르센’이나 두드러기 치료제 ‘레미부르티닙’ 등도 미래에 높은 성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결론적으로 미래에셋 비만 치료제 ETF는 강소 기업들의 폭발적인 성장성보다는 대형 제약사들의 안정적인 성장과 배당에 초점을 맞춘 포트폴리오로 운용 중이다. 안정성은 장점이지만 큰 한 방은 없는 포트폴리오라는 평가다.
삼성 vs 미래에셋, 비만 치료제 수익률 승자는?
삼성과 미래에셋의 비만 치료제 ETF는 2024년 2월에 상장됐다. 상장 후 채 5개월도 안 됐다. 삼성 ‘KODEX 글로벌비만치료제TOP2 Plus’ ETF의 순자산 총액은 1080억원이다. 상장 후 누적 수익률은 23.7%로 상당히 양호하다.
@img4
미래에셋의 ‘TIGER 글로벌비만치료제TOP2Plus’ ETF의 순자산 총액은 1803억원이다. 삼성보다 늦게 나왔지만 규모는 더 크다. 상장 후 누적 수익률은 12.6%로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 양사의 ETF는 상장일이 각각 다르다. 따라서 상장일 이후 수익률의 단순 비교는 맞지 않다.
수익률의 객관적 비교는 최근 3개월과 1개월 수익률이 정확하다. 최근 3개월 수익률은 삼성이 5.0%, 미래에셋이 8.0%로 미래에셋의 판정승이다. 대신 최근 1개월 수익률은 삼성이 -1.9%, 미래에셋이 -4.3%로 삼성의 판정승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단순 수익률 비교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양사 간 포트폴리오의 차별화에 따른 해당 ETF의 미래를 전망해 보는 게 좀 더 합리적이다.
성장성 높은 비만 치료제 시장
삼성과 미래에셋 비만 치료제 ETF가 가장 많이 보유 중인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의 미래가 100% 장밋빛인 건 아니다. 비만 치료제 성분인 GPL-1 작용제 계열의 부작용으로 자살충동과 실명 등의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다. 따라서 아직 우려할 부분은 아니다.
반면 근육량 감소는 어느 정도 객관적 근거가 있는 문제 제기다. 따라서 최근 새로 개발 중인 비만 치료제들은 이 부분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존의 비만 치료제를 뛰어넘는 신약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가능성 높은 신약들을 개발 중인 회사 주식은 대부분 양사의 ETF 포트폴리오에 편입돼 있다.
이제 GPL-1 작용제 계열의 약물은 단순한 비만 치료제 역할을 넘어 심혈관, 심근염, 염증질환, 고혈압, 알츠하이머 등으로 적응증이 확대되는 만병통치약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적의 신약 위고비와 젭바운드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폭증하는 이유다.
전 세계적인 노령화 현상은 이미 피할 수 없는 미래다. 구매력이 가장 높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늙어가고 있다. 미래에 제약·바이오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예상하는 투자자라면 비만 치료제 ETF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2024년 08월호
존슨앤드존슨 은퇴자에 인기...배당으로 생활비·의료비 걱정 ‘뚝’
타이레놀과 베이비로션은 잊어라
주력 의약품 특허만료와 소송으로 위기
공격적인 의료기기 M&A로 위기 돌파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에서는 ‘은퇴’라는 단어가 몇 년 전부터 대유행 중이다. 정년퇴직을 앞둔 나이 50대 직장인 수만 무려 669만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향후 10년간 질서정연하게 순차적으로 은퇴할 예정이다. 그 외 젊은 층 사이에서도 조기은퇴, 일명 파이어족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
미국·한국 베이비부머 大은퇴...헬스케어株 수혜
실제 은퇴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최대 고민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고민은 은퇴 생활을 풍요롭게 영위할 양호한 현금흐름이다. 매월 써야 할 생활비가 부족한 은퇴 생활은 고통이다. 따라서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할지는 중요한 고민거리다. 두 번째 고민은 건강이다. 50대부터는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음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고민이 접점을 보이는 지점이 있다. 바로 미국 제약·바이오 주식 투자다. 이 주식들은 대체로 배당수익률이 양호한 편이다. 따라서 은퇴자가 헬스케어 주식에 투자할 경우 배당금으로 생활비를 일부 충당할 수 있게 된다.
더 중요한 건 헬스케어 분야의 높은 성장성이다. 미국과 한국 은퇴자들은 주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다. 구매력이 가장 높은 이들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한국은 2025년부터 만 65세 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다. 이에 따라 최대 관심사가 ‘건강 관리’로 급격히 이동 중이다. 덩달아 헬스케어 주식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은퇴자들에게 필요한 건 고성장보다 고배당?
유망한 헬스케어 종목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제약 주식이 있다. 바로 획기적인 비만 치료제를 개발한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다. 이들 제약주는 폭발적인 상승률로 주식투자자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줬다. 하지만 은퇴자들에게는 변동성 높은 성장주보다 안정성 높은 고배당주가 더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한국의 은퇴자들에게는 배당수익률이 3%가 넘는 존슨앤드존슨도 인기 있는 제약 종목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50년 이상 배당을 늘려온 기업을 ‘배당 왕족주(Dividend Kings)’, S&P500 종목이면서 25년 이상 배당을 늘려온 기업을 ‘배당 귀족주(Dividend Aristocrats)’라고 칭한다. 여기에 속한 기업들은 이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따라서 웬만하면 매년 조금씩이라도 배당을 증가시킨다. 특히 존슨앤드존슨은 무려 62년째 배당금을 늘려왔다. 대표적인 ‘배당 왕족주’라 할 수 있다.
안정적인 제약 배당주 존슨앤드존슨의 역사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 J&J)은 1886년 미국에서 설립됐다. 설립된 지 138년이 지났으니 역사와 전통이 상당하다. 초기에는 반창고를 대량 제조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이후 1921년에 세계 최초로 ‘응급처치 키트’를 만들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61년에는 벨기에의 얀센(Janssen)사를 인수해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이를 통해 제약 분야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이뤘다. 현재는 거대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성장해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한다.
존슨앤드존슨의 대표 제품으로는 과거에도 유명했지만 코로나19 때도 불티나게 팔린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이 있다. 그 외에 아기위생용품인 ‘존슨즈 베이비로션’이나 스킨케어 브랜드인 ‘뉴트로지나’와 ‘클린앤클리어’, ‘아큐브 콘텍트렌즈’, 구강 청결제 ‘리스테린’ 등 한국에서도 인지도 높은 제품이 많다.
성장 과정에서 위기도 있었다. 첫 번째 위기는 1982년에 시카고의 약국에서 구매한 타이레놀을 먹은 사람들이 다수 사망한 사건이다. FBI의 수사 끝에 누군가 고의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넣은 사실이 밝혀졌다. 존슨앤드존슨 최악의 위기였다. 하지만 경영진의 대응은 현명했다. 먼저 용의자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또 이미 판매된 타이레놀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언론에도 알렸다. 이미 판매된 타이레놀은 모두 수거하고 환불 조치했다.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이런 과감한 조치로 인해 회사가 입은 손실도 상당했다. 하지만 급감했던 타이레놀 판매량이 과거보다도 더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존슨앤드존스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큰 신뢰를 얻게 된 것도 의도치 않은 성과다.
존슨앤드존슨의 두 번째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바로 베이비파우더의 발암물질 관련 소송이다. 2018년에 존슨앤드존슨이 베이비파우더의 주원료로 사용했던 활석이 발암물질인 석면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존슨앤드존슨은 부인했지만 무려 4만여 명의 소비자들이 소송을 건 상태다. 이런 논란에 존슨앤드존슨은 문제의 베이비파우더 판매를 전격 중단했다. 이와 동시에 주가도 대폭락했다. 존슨앤드존슨은 2023년에 집단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약 12조원(89억달러)의 합의금을 제안했다. 아직 사건이 확실히 마무리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들어간 상태다.
주력사업부 ‘혁신의약품’과 ‘의료기술’ 분야로 재편
과거 존슨앤드존슨의 대표 품목들은 모두 소비자건강사업부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2023년에 존슨앤드존슨은 소비자건강사업부를 ‘켄뷰’라는 자회사로 분사해 상장시켰다. 이후 상당한 지분매각도 진행됐다. 따라서 소비자들에게 인지도 높았던 과거의 대표 제품들은 현재의 존슨앤드존슨과는 상관이 없어졌다. 아쉬운 부분이다.
소비자건강사업부가 떨어져 나간 뒤 존슨앤드존슨의 주력사업부는 현재 혁신의약품(Innovative Medicine, 기존 얀센) 분야와 의료기술(MedTech) 분야 두 개로 단순화됐다. 2023년 기준 전체 매출 중 혁신의약품 분야 매출은 74조원(548억달러)으로 64%의 비중을 차지했다. 의료기술 분야 매출은 41조원(304억달러)으로 36%의 비중이다.
의약품 매출 원투 펀치는 ‘스텔라라’와 ‘다잘렉스’
존슨앤드존슨의 혁신의약품 분야 중 2023년 매출 1위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Stelara, 성분명: 우스테키누맙)’다. 매출액은 14조7000억원(109억달러)이다. 과거에 얀센이 개발했는데 건선, 관절염,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등의 치료제로 쓰인다. 그동안 존슨앤드존슨을 먹여살린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매출 2위는 표적치료 항암제 ‘다잘렉스(Darzalex, 성분명: 다라투무맙)’다. 13조1000억원(97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다잘렉스는 다발골수종 치료제로 쓰인다. 다발골수종은 골수에서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형질세포가 악성 변화하는 혈장세포의 암이다. 환자 평균 연령은 70대로 완치가 쉽지 않은 병이다.
매출 3위인 ‘인베가 서스티나(Invega Sustenna, 성분명: 팔리페리돈)’의 매출액은 5조6000억원(41억달러)이다. 조현병(정신분열증) 치료제로 쓰인다. 장기지속형 주사제 형태다. 따라서 한 달에 한 번만 주사를 맞으면 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매일 먹는 약보다 편의성이 높아 인기다.
매출 4위인 ‘임브루비카(Imbruvica, 성분명: 이브루티닙)’의 매출액은 4조4000억원(33억달러)이다. 혈액암 치료제로 쓰인다. 치료 효과는 강력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최근 타 제약사들의 혈액암 치료제가 경쟁적으로 등장하며 매출액이 전년보다 13.7% 감소했다.
매출 5위는 ‘트렘피어(Tremfya, 성분명: 구셀쿠맙)’로 2023년 매출액은 4조2000억원(31억달러)을 기록했다. 트렘피어는 스텔라라와 유사하게 건선과 크론병 등의 치료제로 쓰인다. 최근의 크론병 임상시험에서 스텔라라보다 우수한 효과를 입증해 차세대 치료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 밖에도 전이성 전립선암 치료제 ‘얼리다(Eleada)’가 3조2000억원으로 6위, 심혈관 치료제 ‘자렐토(Xarelto)’가 3조2000억원으로 7위,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 ‘심퍼니(Simponi)’가 3조원으로 8위, 크론병 치료제 ‘레미케이드(Remicade)’가 2조5000억원으로 9위를 기록했다. 레미케이드는 특허만료로 인해 바이오시밀러가 쏟아져 나오면서 매출액이 전년보다 21.5% 감소했다. 존슨앤드존슨 혁신의약품 부문은 타 제약사에 비해 매출 1조원 이상의 블록버스터급 의약품이 많은 편이다. 다양한 의약품 포트폴리오는 존슨앤드존슨의 강력한 경쟁력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특허만료까지...악재 산재
미국은 한국과 달리 약가를 정부가 직접적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일단 식품의약국(FDA)의 임상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제약사는 마음껏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제약·바이오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혁신 신약 개발을 활성화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약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생겨난 게 바로 2022년 8월에 발표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다. 이 법에는 의료비 절감을 위한 의약품 가격 개혁이 포함됐다. 1년 뒤인 2023년 8월에 드디어 공공보험 메디케어에 적용할 1차 약가 인하 의약품 10개가 공개됐다. 안타깝게도 이 10개의 의약품 중 존슨앤드존슨과 관련된 의약품이 무려 3개나 포함됐다. 매출 1위 스텔라라, 매출 5위 트렘피어, 매출 7위인 자렐토가 그 주인공이다. 이 약품들은 앞으로 마진 감소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포함된 의약품들은 미국 건강보험서비스센터(CMS)와 협상을 통해 ‘메디케어’에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고령자 및 장애인 6600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보험’을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2023년에 존슨앤드존슨 의약품 매출 1위인 스텔라라의 특허가 만료됐고, 2024년에는 심포니의 특허도 만료된다. 이에 따라 가격 경쟁력을 갖춘 바이오시밀러들이 줄줄이 쏟아질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존슨앤드존슨은 미래 혁신의약품으로 항암제 쪽에 더 에너지를 쏟는 중이다. 성장을 주도할 후보로는 다잘렉스(다발성골수종), 카빅티(다발성골수종), 탈비(다발성골수종), 텍베일리(다발성골수종), 얼리다(전립선암), 리브리반트(비소세포폐암) 등이 있다.
특히 올해는 유한양행이 얀센(존슨앤드존슨)에 기술 수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Leclaza)’와 얀센의 표적 항암제 ‘리브리반트(Rybrevant)’의 병용요법이 FDA의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리브리반트와 렉라자는 이미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단독요법으로 승인받은 약물이다.
추가로 존슨앤드존슨(얀센)은 얼마 전 종료된 세계 최대의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24)에서 리브리반트와 렉라자 등을 병용 투여한 임상을 여럿 발표한 바 있다. 이 중 IV(정맥주사)제형과 SC(피하주사)제형을 비교하는 3상 임상에서 피하주사제형이 더 나은 효능을 보이면서 이목을 끌었다. 만약 리브리반트가 비소세포폐암 1~2차 치료 시장 적응증까지 추가할 경우 시장 규모는 상당하다. 특허만료로 매출 감소가 확정적인 스텔라라의 공백을 메울 블록버스터급 의약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img4
존슨앤드존슨, 의료기술 분야에 승부수?
존슨앤드존슨의 의료기술(MedTech) 분야 매출은 41조원(304억달러)으로 전체의 36%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의료기기는 고마진 사업이다. 존슨앤드존슨은 마진 확대를 위해 의료기기 분야를 장기적으로 키우려 한다. 현재 주요 기술로는 인공관절, 수술기구(심장 펌프 등), 척추관리, 스포츠의료기구, 안과, 초음파검사 등이 있다.
2023년에 의료기기 분야 매출은 전년 대비 10.8% 증가했다. 수술(Surgery) 3.6%, 정형외과(Orthopaedics) 4.1%, 안과(Vision) 4.6% 등 전 부문이 고르게 성장했다. 특히 중재 솔루션(Interventional solutions)이 47.7% 급성장해 실적기여도가 컸다. 이는 심혈관 부문에서 전 세계적인 시술 증가 및 신제품 수요 증가에 힘입어 전기생리학 매출이 19% 증가한 영향이다. 또 심혈관 의료기기 회사 ‘에이바이오메드(Abiomed)’ 인수 효과도 영향을 미쳤다. 초소형 심장 펌프인 ‘임펠라 (Impella)’도 매출이 기대되는 제품이다.
공격적인 M&A로 위기 돌파?
최근 모든 제약사들의 공통점은 생존을 위한 인수합병(M&A)이다. 자사의 주력 의약품 특허만료에 따른 대응책으로 개발속도가 빠른 검증된 타사 의약품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그런데 존슨앤드존슨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다른 대형 제약사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
존슨앤드존슨은 지난 2022년 11월에 소형 심장 펌프 제조업체 에이바이오메드를 22조4000억원(166억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또 심장 임플란트 기업인 라미나(Laminar)도 5400억원(4억달러)에 사들였다. 2024년 들어서는 ‘혈관 내 쇄석술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심혈관질환 의료기기 특화 기업인 쇼크웨이브 메디칼(Shockwave Medical)마저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인수가는 17조7000억원(131억달러)이다.
이번 빅딜로 존슨앤드존슨은 심혈관 중재 분야에서의 퍼즐을 모두 맞추며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게 됐다. 심혈관질환은 암에 이어 전 세계 사망원인 2위를 기록 중인 만큼 향후 높은 성장성이 기대된다. 특히 의료기기는 고마진 사업이라 장기적으로 존슨앤드존슨의 수익성도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년간 존슨앤드존슨의 주가는 여러 악재로 인해 부진한 모습을 보여 왔다. 주가가 부진하지만 배당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높은 3.3% 수준이다. 만약 존슨앤드존슨의 공격적인 M&A와 신약 개발이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자라면 높은 배당률로 은퇴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존슨앤드존슨’의 주식에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8월호
美 고령화 최대 수혜주는? ‘유나이티드 헬스’ 건보 점유율 1위
제약 바이오 헬스케어가 미래
미국 1위 원스톱 토탈 의료서비스 강점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미국이나 한국이나 베이비붐 세대들이 대거 은퇴를 앞두고 있다. 직장인이 현직에서 은퇴했을 때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바로 은퇴생활비와 건강보험료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의 건강보험료 체계는 판이하다. 한국 직장인들은 은퇴 후 건강보험료에 대한 공포심이 상당하다.
세계 최강의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미국과 신흥 강국 한국을 비교해 보면 어느 나라의 기대수명이 더 길까. 미국인은 79.1살, 한국인은 83.6살이다.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평균적으로 4.5살 더 오래 산다. 이는 생활습관,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또 미국보다 한국 저소득층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더 좋은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문제는 오래 사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후 준비가 덜 된 한국이나 미국 은퇴자의 경우 노후생활비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삶의 후반부에 가까워질수록 막대한 의료비는 누구에게나 버거운 현실이다.
한국 건강보험료는 고소득자 부담액 높은 편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정부가 주도하는 공보험 방식이다. 그렇다면 직장인은 건강보험료를 얼마나 내게 될까. 첫 입사 때부터 퇴직하는 날까지 월급의 약 8%(건강보험료율+장기요양보험료율)를 매월 건강보험료로 납부하게 된다.
다행히도 근로자와 사업주가 절반씩 부담한다. 따라서 직장인의 건강보험료 실제 부담률은 4% 수준이다. 월급이 500만원이라면 실제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는 월 20만원이다.
그렇다면 초고소득자는 건강보험료를 최대 얼마까지 납부할까. 최대 상한액은 월 958만원(건강보험료+장기요양보험료)이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보다 많다. 그래도 직장인 근로자라면 건강보험료를 사업주와 절반씩 나눠 내니 실제 최대 부담금은 그 절반인 479만원이다.
이 정도 보험료를 내려면 월급으로 1억2000만원을 넘겨야 한다. 이 급여 구간을 초과할 경우 더 내지는 않는다. 따라서 급여가 높을수록 부담액이 크다. 고소득층에게는 불리하고 저소득층에게는 유리한 구조다.
한국에서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은 건강보험료를 두려워한다. 이유는 퇴직하는 순간 지역가입자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직장인 때와 달리 회사가 50% 지원해 주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러니 건강보험료 부담이 상당하다. 또 재산이 많은 경우 더욱더 보험료가 많이 나오게 된다.
미국 건강보험 제도는 저소득층 보호 약해
미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한국과 달리 사보험과 공보험이 같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선진국답지 않게 저소득층 보호가 약한 편이다. 17년 전인 2007년에 개봉한 ‘식코’는 이런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영화를 통해 미국의 민간 건강보험 시스템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인지를 조명했다.
영화는 건강보험에 가입했음에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의 사례를 다룬다. 한 여성이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보험 적용이 안 돼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사망한 사건 등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당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건강보험 개선 논의가 활발해졌다. 결국 2010년에 오바마 행정부는 ‘환자 보호 및 부담 적정 보험법(Affordable Care Act)’을 통과시켰다. ‘오바마케어(Obamacare)’라고도 불리는 이 법은 2014년부터 시행됐다.
오바마케어에는 저소득층 의료보험 확대, 민간보험 가입자 차별 금지, 의료서비스 이용 편의성 개선 등이 담겼다. 또 모든 미국인이 건강보험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해 무보험자의 수를 줄였다. 하지만 여전히 보험료가 비싼 부분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일반적으로 고령층이 아닌 65세 이하의 미국인이 가입하는 건강보험은 주로 민간 보험회사들의 상업보험이다. 직장인은 회사가 제공하는 직장 건강보험(상업보험)이나 개인적으로 직접 보험(상업보험)에 가입할 수도 있다. 보험료 중 약 70%를 회사가 부담하고 근로자는 약 30%를 부담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직장에 다니지 않을 경우 보험료 부담이 상당하다. 가족 수, 나이, 건강 상태, 거주 지역에 따라 보험료도 천차만별이다. 한국처럼 정부 주도의 보험이 아니라서 소득의 많고 적음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대신 한국과 달리 가족 수대로 보험료가 추가된다. 따라서 가족 수가 많은 경우 보험료가 월 1000달러(135만원)를 훌쩍 넘는 경우도 흔하다. 회사가 70%를 내줄 경우 부담은 줄겠지만 한국보다는 확실히 비싸다.
오바마케어 도입 후 건강보험 미가입자 급감
2022년 기준 미국 인구는 총 3억3000만명이다. 이 중 건강보험 가입자는 3억400만명이다. 미국 국민 중 92.1%가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는 셈이다. 상당한 숫자다. 이 중 사보험 가입자는 2억1700만명으로 전체의 65.6%다.
그 외 공보험 가입자도 1억1900만명으로 36.1%를 기록했다. 공보험이 늘어난 이유는 오바마케어 덕분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2600만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전체 인구 중 7.9%에 불과하다.
미국은 한국처럼 공보험이 전 국민을 커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가 노인층이나 소득과 재산이 적은 미국 국민들을 아예 방치하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정부 주도 건강보험 제도로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메디케어(Medicare)다. 65세 이상 미국 국민과 일부 장애인을 위한 연방정부의 건강보험 프로그램이다. 2022년 기준 가입자는 약 6200만명이다. 전체 인구의 20% 가까이가 메디케어에 가입한 셈이다. 미국도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어 2030년에는 가입자가 7000만명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두 번째는 메디케이드(Medicaid)로 저소득층을 위한 보험이다. 이 보험은 연령 제한이 없다. 소득 및 자산 요건을 충족하는 모든 저소득 개인이 신청할 수 있다. 2022년 기준 6200만명 이상이 메디케이드에 가입돼 있다. 이 숫자 또한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미국 1위 건강보험 기업 유나이티드헬스 그룹
미국 정부의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 같은 공적 보험은 전체 건강보험 시스템에서의 역할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미국은 기본적으로 많은 부분을 민간 보험 시장에 맡기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민간 건강보험 시장 점유율 1위는 어디일까. 바로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이다.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은 미국 1위의 건강보험 기업으로 수익기준 점유율은 15%다. 사업부문은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건강보험을 담당하는 ‘유나이티드 헬스케어(UnitedHealthCare)’다. 두 번째는 의료 산업 전반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옵텀(Optum)’이 있다.
@img4
건강보험 가입자 증가율 정체는 고민
유나이티드 헬스케어는 직장 보험을 비롯한 ‘사보험’과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중심의 ‘공보험’ 전반을 커버한다. 미국 전체 인구수 3억3000만명 중 16%인 무려 5300만명이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보험 고객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년 대비 건강보험 가입자 수는 불과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유나이티드 헬스케어의 상업용 보험(직장 보험 등) 가입자는 2700만명이다. 이 보험은 65세 미만의 직장인이나 개인들이 주로 가입한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2.4%에 그쳤다.
그 외 65세 이상만 가입 가능한 건강보험이 메디케어다. ‘메디케어 어드밴티지’는 위탁을 승인받은 민간 보험사(유나이티드 헬스케어 등)가 원래의 메디케어를 대신해서 운영한다. ‘오리지널 메디케어(Original Medicare)’의 모든 혜택 외에 안과, 치과 등의 일부 추가 혜택도 제공한다.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메디케어 어드밴티지’의 전년 대비 성장률은 8.3%로 양호한 편이다.
‘메디케어 보충보험(Medigap)’은 메디케어를 보완하기 위해 설계된 개인 건강보험이다. 원래의 메디케어와 함께 운영되며 오리지널 메디케어에서 보장하지 않는 부분을 본인 부담으로 보충하는 보험이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메디케어 어드밴티지와 메디케어 보충보험(메디갭) 중 본인에게 맞는 걸 선택하면 된다. 이 공공보험 쪽에서 유나이티드 헬스케어의 점유율이 압도적인 1위다. 하지만 가입자 수 증가율이 둔화되는 만큼 향후에는 가격을 올려 수익을 늘려야 한다. 문제는 미국 CMS(공공의료보험)가 내년 메디케어 어드벤티지 요율을 기대보다 낮은 3.7% 인상으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과거 10년 이상 폭풍 성장해 왔던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분야는 이제 성숙기에 진입하고 있다.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은 성장주라기보다는 가치주에 더 가까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성장동력 옵텀(Optum)...해킹으로 위기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2011년에 기술 및 데이터 기반 의료서비스 회사인 ‘옵텀(Optum)’을 만들었다. 옵텀은 헬스케어 산업 변화에 대응해 IT 기술을 접목한 회사로 기존의 보험 사업보다 확장성이 크다.
옵텀은 이미 다양한 ‘의료서비스 및 솔루션’ 제공을 통해 미국 의료 시스템의 핵심 참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옵텀의 주요 사업 분야는 ‘옵텀헬스’, ‘옵텀RX’, ‘옵텀인사이트’ 등 세 분야로 나눠진다.
옵텀헬스(OptumHealth)는 병원 및 외래 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2700여 개 의료기관, 7만여 개 약국과 연결돼 있다. 옵텀헬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무려 1억300만명이다. 디지털헬스와 왕진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옵텀RX는 약국 및 처방약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험사를 대신해 제약사와 약가 및 리베이트를 협상하고 처방약 권장 리스트를 작성·관리하는 PBM(Pharmacy Benefit Manager) 사업을 영위한다. 전문약국도 운영한다. 2023년에만 15억건 이상의 처방전을 발행했다. 또 2억2000만건의 의약품을 원격 배송했다.
옵텀인사이트(OptumInsight)는 의료서비스 제공기관(병원)과 건강보험사 등에 데이터 분석 도구를 제공한다. 수술 데이터, 의료, 행정, 재정 컨설팅과 솔루션을 제공해 효율성을 높여준다. 미국 내 건강보험사의 80% 이상이 고객이다. 특히 옵텀 인사이트는 플랫폼 사업의 특성상 이익률이 높은 편이다.
문제는 해킹이다. 옵텀인사이트에 소속돼 있는 ‘체인지 헬스케어(Change Healthcare)’는 지난 2024년 2월 사이버 공격을 받아 시스템이 마비된 바 있다. 이 공격으로 체인지 헬스케어를 이용하는 미국 내 수많은 의료기관, 보험사, 환자가 곤욕을 치렀다. 의료 청구 처리 및 결제가 지연됐고 상당량의 환자 개인정보도 유출됐다.
사건 발생 직후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의 주가는 폭락했다. 그 후 몇 개월간 옵텀은 시스템 복구와 미지급금 해결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지금은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 상태지만 이 사건으로 많은 비용 지출이 있었다. 또 고객사들의 신뢰도가 떨어진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대마불사라는 말이 있듯이 시장 지배적인 사업자라 고객 이탈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높은 배당 성장률로 미국 은퇴자들 선호
기존 건강보험 분야인 유나이티드 헬스케어의 2023년 매출액은 380조원(2814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13% 성장했다. 의료서비스 기술기업인 옵텀도 306조원(2266억달러)의 매출로 전년 대비 24% 급성장했다. 중복매출을 제외한 연결매출액은 502조원(3716억달러)으로 15% 성장한 수치다.
@img6
연결영업이익도 44조원(324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8.7%로 높지 않다. 하지만 이런 거대기업이 매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은 투자자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인 미국에서 헬스케어 산업은 앞으로도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유망 섹터다.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은 매출 규모, 가입자 수, 의사 네트워크 규모 등 모든 면에서 미국 최대 종합 의료서비스 회사다. 미래에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첨단 기술을 활용한 혁신적 의료서비스로 더 강력하게 시장을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유나이티드헬스 그룹 주식의 현재 배당수익률은 1.7% 수준으로 평이하다. 하지만 지난 5년간 평균 15%를 상회하는 높은 배당성장률을 보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대기업임에도 여전히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은퇴 후 본인의 의료비가 걱정되는 은퇴예정자라면 미국 은퇴자들에게도 인기 많은 유나이티드헬스 그룹 주식에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8월호
기적의 비만치료제 ‘암젠’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 넘을까?
바이오벤처의 대표적 성공사례
비만치료제 월 1회 OK...경쟁사 초긴장
2030년 비만치료제 시장 135조원 전망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지난해와 올해 글로벌 제약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른 건 기적의 비만 치료제 때문이다. 첫 번째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비만 치료제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다.
위고비는 2021년 6월에 첫 승인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위고비의 1개월 치료비는 약 1350달러(180만원)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뒤 이어 2023년 11월에 두 번째 비만 치료제로 FDA의 승인을 받은 건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다. 젭바운드의 1개월 치료비는 약 1060달러(140만원)다. 뛰어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위고비의 판매량을 추격하고 있다.
최종 임상결과를 살펴보면 위고비는 68주 차에 평균 14.9% 감량했다. 반면 젭바운드는 36주 차에 평균 20.9% 감량했다. 위고비보다 젭바운드의 임상결과가 더 뛰어난 셈이다. 문제는 위고비나 젭바운드나 당분간 인기 폭발로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두 회사의 주가도 대폭등 중이다.
비만치료제 3대장은 암젠의 ‘마리타이드’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의 양강 구도에 도전장을 낸 회사 중 가장 강력한 도전자는 암젠이다. 암젠의 비만 치료제 ‘마리타이드(MariTide)’의 임상 1상 결과는 고무적이다. 2024년 2월에 발표한 소규모 임상 1상 결과 마리타이드를 매달 투여받은 환자들은 불과 12주 만에 최대 14.5%를 감량했다.
암젠의 마리타이드가 특히 경쟁사인 노보노디스크나 일라이릴리의 비만 치료제보다 뛰어난 건 투약 방법이다. 마리타이드는 한 달에 한 번만 주사를 맞으면 된다. 매주 한 번씩 주사를 맞아야 하는 기존 비만 치료제와 비교하면 편의성이 엄청나게 개선되는 셈이다.
현재 마리타이드는 약 6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에 진입한 상태다. 지난 5월 암젠의 1분기 실적발표 당시 암젠의 최고과학책임자인 제이 브레드너는 마리타이드 임상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2상 데이터 공개가 없었음에도 이날 발표와 함께 암젠 주가는 12% 폭등하기도 했다.
2030년 비만치료제 시장 135조원 전망
미국 투자은행(IB)인 골드만 삭스는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가 2030년에는 무려 135조원(1000억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도대체 전 세계 비만 인구가 몇 명이나 되길래 이런 거대한 시장 규모를 예상하는 걸까.
2023년에 발간된 ‘세계 비만 아틀라스’에 따르면 체질량(BMI) 지수가 30을 초과하는 전 세계 비만 인구는 2020년 기준 총 9억8800만명이다. 더 무시무시한 건 15년 뒤인 2035년의 비만 인구 수다. 총 19억14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심각한 비만에 시달릴 거라는 뜻이다.
이렇게 비만 시장 규모는 막대하지만 후발주자인 암젠은 여러 가지로 불리한 점이 많다. 마리타이드 2상 임상결과는 올 연말에나 나올 예정이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최종 3상 완료까지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가 멀찌감치 앞서 나갈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암젠의 야심 찬 신약 마리타이드는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 치료제다. 미래에 실제 출시될 경우 위고비나 젭바운드를 능가할 수도 있다. 암젠이 아직 FDA의 최종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제조 공장 확보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다. 미래의 공급 부족에 미리 대비하는 모습이다. 향후 마리타이드는 암젠의 강력한 파이프라인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암젠 주력 제품 중 일부 특허만료는 고민
대형 제약회사들의 업력은 100년을 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바이오테크 회사로 출발한 암젠(Amgen)은 1980년에 설립돼 이제 44년 된 젊은 회사다. 현재는 세계 최대의 바이오제약 회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img4
암젠의 2023년 전체 매출액은 36조3000억원(269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9% 증가했다. 메이저 제약사들에 비하면 크지 않은 매출액이다. 영업이익은 10조7000억원(79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17% 감소했다.
매출액 1위는 골다공증 치료제 ‘프롤리아(Prolia)’다. 2023년 매출액은 12% 증가한 5조5000억원(40억달러)을 기록했다. 2위는 류머티스관절염 치료제 ‘엔브렐(Enbrel)’이다. 매출액은 10% 감소한 5조원(37억달러)에 달했다.
3위는 건선 치료제 ‘오테즐라(Otezla)’다. 매출액은 4% 감소한 3조원(22억달러)을 기록했다. 2023년부터 일부 특허가 만료돼 향후 큰 폭의 매출 감소가 우려된다. 4위는 골다공증 치료제 ‘엑스지바(Xgeva)’다. 매출액은 5% 증가한 2조9000억원(21억달러)을 기록했다.
5위는 고지혈증 치료제 ‘레파타(Repatha)’다. 매출액은 26% 급증한 2조2000억원(16억달러)을 기록했다. 6위는 방사선병 치료제 ‘엔플레이트(Nplate)’다. 매출액은 13% 증가한 2조원(15억달러)에 달했다. 7위는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인 ‘키프롤리스(Kyprolis)’다. 매출액은 1조9000억원(14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암젠은 매출이 한 개의 제품에 집중되지 않고 다양하게 분산된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다른 제약사들과 마찬가지로 향후 특허가 만료되는 약품이 많은 게 고민거리다. 이에 따라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은 M&A와 비만치료제
암젠은 미래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2022년에 ‘호라이즌 테라퓨틱스(Horizon Therapeutics)’를 전격 인수했다. 인수가격은 무려 37조원(278억달러)이다. 호라이즌 테라퓨틱스의 주력 제품인 ‘테페자(Tepezza)’와 ‘크라이스텍사(Krystexxa)’를 손에 넣기 위한 과감한 베팅이었다.
독점 문제로 승인이 지연되기도 했지만 2023년에 조건부로 승인이 확정됐다. 테페자는 갑상선 안병증 치료제로 2023년에 5400억원(4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크라이스텍사는 만성 통풍 치료제로 4000억원(3억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2개 제품 모두 아직 매출이 미미하지만 조만간 블록버스터급 대형 약품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암젠의 또 다른 강점은 바이오시밀러 분야다. 암젠은 자체 생산 시설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품의 품질 관리 및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암젠의 대표적인 바이오시밀러로는 암 치료제인 ‘엠바시’와 류머티스관절염 치료제인 ‘칸진티’ 등이 있다.
암젠의 바이오시밀러 중 가장 기대되는 건 역시 ‘암제비타(Amjevita)’다. 암제비타는 애브비 사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이다. 류머티스관절염, 건선증, 크론병 등의 치료에 사용되는 휴미라의 2022년 매출액은 무려 29조원(212억달러)에 달한다.
그런데 휴미라의 특허가 만료됨에 따라 2023년부터 암젠의 암제비타 등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 약품이 미국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도 휴미라 바이오시밀러를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이에 따라 휴미라의 2023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32% 급감한 19조원(144억달러)에 그쳤다. 향후 암젠의 암제비타가 휴미라의 매출을 얼마나 뺏어 올 수 있을지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역시 암젠에게 가장 큰 게임체인저는 비만 치료제인 마리타이드다. 2030년에 135조원(1000억달러)으로 추정되는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점유율을 5%만 가져와도 연간 6조8000억원(50억달러)의 매출이 기대된다. 현재 암젠이 가지고 있는 단일 약품 매출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암젠 주식의 또 다른 강점은 3% 수준의 양호한 배당수익률이다. 배당을 통한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고령화에 따른 바이오 시장 성장과실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암젠에 관심 있는 투자자라면 향후 비만 치료제 마리타이드의 임상 2상과 3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8월호
전 세계 당뇨병 환자 5억명...'애보트'가 수혜주인 이유
연속혈당측정기 ‘리브레’ 세계 점유율 1위
코로나 특수 끝나 2023년 실적 급감
최첨단 의료기기 선두주자 ‘애보트’ 미래 밝아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미국의 다국적 의료기기 및 건강관리 기업인 애보트 래보라토리(Abbott Laboratories)는 한국인에게는 낯선 회사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들에게는 유명하다. 연속혈당측정기인 ‘프리스타일 리브레(FreeStyle Libre)’가 바로 애보트 제품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당뇨병 환자 폭발적 증가
국제당뇨병연맹(IDF)의 보고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 성인 당뇨병 환자는 약 5억3700만명으로 추정된다. IDF는 이 수치가 2030년에는 6억4300만명, 2045년에는 7억8300만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의 당뇨병 환자 수도 만만치 않다. 대한당뇨병학회가 발표한 ‘당뇨병 팩트시트 2022’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당뇨병 인구는 570만명, 당뇨병 전 단계 인구는 무려 1497만명이다. 예비 당뇨환자가 성인 중 3분의 1이 넘는다. 당뇨병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질병임을 알 수 있다.
찔러서 피 보기 싫다면 ‘애보트’가 대안
병을 ‘약’으로만 고치는 시대는 지났다. 생활습관 교정 등 다양한 방식이 활용된다. 특히 디지털 의료기기가 발달함에 따라 환자 입장에서는 편의성이 대폭 좋아졌다.
일례로 과거에 당뇨병 환자가 혈당 수치를 재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찔러 피를 봐야 했다. 이를 ‘침습적 방식’이라고 한다. 당연히 아프고 불편하고 감염 위험도 있다.
하지만 애보트의 ‘프리스타일 리브레’는 ‘비침습적 방식’을 사용한다. ‘비침습적’이란 피부를 계속해서 찌르거나 상처를 내지 않고도 혈당과 유사한 수치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팔 뒤쪽에 작은 센서를 붙여 수치를 잰다. 이는 당뇨병 환자들에게는 편리하고 덜 고통스러운 혈당 관리 방법이다.
혈당은 혈액 속에 함유된 포도당을 말한다. 그런데 당뇨병 환자에게 혈당을 재는 일은 꼭 필요한 걸까.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혈당을 정기적으로 측정해 적정 범위로 유지하는 건 중요하다.
따라서 적극적인 생활습관 개선으로 당뇨병을 치료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본인이 어떤 상황에서 혈당이 높아지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이때 도움이 되는 게 바로 ‘혈당 측정기’다.
‘마운자로’가 애보트의 ‘연속혈당측정기’ 위협?
최근에는 노보노디스크나 일라이릴리의 ‘GLP-1 수용체 작용제’가 당뇨병 치료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음이 알려졌다. 노보노디스크의 핵심 약물은 ‘세마글루티드(Semaglutide)’다. 이 약물을 활용해서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오젬픽(Ozempic)’을 허가받았다.
일라이릴리의 핵심 약물은 ‘티제파티드(Tizepatide)’다. 이 약물을 활용해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마운자로(Maunjaro)’를 허가받았다. 이 약들의 당뇨병 치료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애보트의 연속혈당측정기인 ‘프리스타일 리브레’ 매출도 타격을 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애보트의 발표에 따르면 연속혈당측정기인 프리스타일 리브레를 노보노디스크나 일라이릴리의 GLP-1 수용체 작용제와 함께 사용하는 고객들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애보트의 연속혈당측정기는 매출이 감소할 위험보다는 GLP-1 수용체 작용제의 보완재로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아쉬운 점은 한국의 경우 해외에 비해 리브레 최신 버전 출시가 상당히 늦다는 점이다. 애보트는 이미 2022년의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연속혈당측정기(CGM)의 최신 버전인 ‘프리스타일 리브레 3’를 선보여 혁신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2024년 6월에서야 최신 모델 ‘리브레 3’도 아닌 ‘프리스타일 리브레 2’가 출시됐으니 미국과의 시차가 3년이 넘는다. 한국 시장은 글로벌 전체와 비교하면 좀 작기도 하고 식약처 심사가 까다로운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에 출시된 애보트의 프리스타일 리브레 2는 휴대폰을 센서에 스캔할 필요 없이 혈당수치 확인이 가능하다. 또 저혈당 및 고혈당 발생 시 자동으로 스마트폰 알람을 받을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됐다. 한 번 센서를 부착하면 14일간 지속적인 측정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애보트의 연속혈당측정기는 현재 6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용자 수는 600만명이 넘는다.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다. 애보트는 이 제품으로 글로벌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이미 미국에서 상용화된 프리스타일 리브레 3가 과연 한국에는 언제쯤 출시될것인가다. 지금 흐름으로만 본다면 최소 3년 이상의 격차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애보트 래보라토리’의 역사
애보트 래보라토리는 1888년에 설립된 미국의 다국적 헬스케어 회사다. 136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애보트는 전 세계적으로 160여 개국에 서비스하며 11만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2013년에 기존의 제약 부문을 떼어내 ‘애브비(AbbVie)’라는 독립 회사로 분사했다. 이 애브비가 바로 지난 10년간 전 세계 의약품 매출 1위를 굳게 지켜온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를 판매해온 제약회사다.
애보트 래보라토리의 사업은 크게 4가지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진단 부문, 의료기기 부문, 영양제 부문, 제약 부문이다. 사업이 다각화돼 있는 게 애보트만의 강점이다. 이는 특정 품목의 매출 하락 위험을 분산해 주는 효과가 있다.
애보트 진단기술 분야 경쟁력 높아
지난 수십 년간 제약, 바이오, 의학 분야는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직관적으로는 암 치료제 같은 제약 분야의 발전이 두드러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종합 의료기기 분야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일반 의료 소비자가 병원에 갔을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건 각종 최첨단 의료기기다.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의료기기로는 MRI, CT, 초음파검사기 등의 고가 장비가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수많은 의료기기가 의료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애보트의 경쟁력을 살펴보면 존슨앤드존슨보다 종합 의료기기 순위는 낮지만 ‘진단 기술’ 분야에서만큼은 이들을 앞서고 있다. 애보트의 진단 사업 부문은 병원, 혈액은행, 실험실 등에 사용되는 질병 진단 시스템과 DNA/RNA 검사 등을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애보트의 진단 사업 부문은 애보트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2023년 매출액은 전년보다 무려 39% 감소한 13.5조원(100억달러)으로 부진했다.
이 중 ‘통합 진단 솔루션(Core Laboratory)’은 2023년에 전년보다 6% 증가한 7조원(52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순항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병원에서 주로 쓰이는 통합 분석 솔루션 ‘얼리니티(Alinity)’ 시스템이 있다. 얼리니티는 혈액 및 혈장 스크리닝 분석 기기다.
진단 사업 부문 중 매출액 감소가 제일 컸던 건 ‘신속 진단(Rapid Diagnostics)’ 분야다. 2022년에는 코로나 특수로 13조6000억원(101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급성장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종식된 2023년에는 전년 대비 무려 63% 감소한 5조원(37억달러)으로 크게 부진했다.
신속 진단 분야의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신속항원검사 키트인 ‘BinaxNOW’가 있다. 코로나19 덕에 유명해졌다. 집에서 셀프로 15분 만에 코로나 검사가 가능해 큰 인기를 끌었다. 애보트는 코로나19의 대표적인 수혜주로 주목받으며 2021년 말에는 주가가 136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106달러로 고점 대비 22% 하락한 상태다.
‘애보트’ 의료기기 부문은 고르게 성장 중
애보트 ‘의료기기 분야’는 애보트 전체 매출의 42%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주력 분야다. 2023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14% 증가한 22조8000억원(169억달러)을 기록하며 순항했다.
이 중 가장 비중이 높은 분야는 ‘당뇨병 관리(Diabetes Care)’ 분야로 전년 대비 21% 증가한 7조8000억원(58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주로 앞에서 설명했던 연속혈당측정기 프리스타일 리브레의 매출이 대부분이다. 그 밖에도 의료기기 부문은 모든 분야가 고르게 성장한 게 인상적이다.
심장 리듬 분야는 전년 대비 6% 증가한 3조원(23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부정맥 치료를 위한 심박조율기(페이스메이커) ‘어베어(Aveir)’가 있다. 부정맥은 ‘고르지 않은 맥박’이라는 뜻으로,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지 않는 병을 총칭한다. 맥박은 정상인 경우 안정 상태에서 1분에 60~100회 사이로 박동한다. 인공 심박조율기는 맥박이 느린 부정맥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 어베어(Aveir)는 전통적인 심박조율기와 달리 전선(lead)이 없는 무선 방식이다. 따라서 전선 탈락이나 감염과 같은 합병증을 줄여주는 장점이 있다. 좀 더 확장된 모델인 ‘어베어(Aveir) VR’은 ‘SES 2023’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전기생리학 사업 부문도 전년 대비 14% 증가한 3조원(23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심장의 전기적 활동을 3D로 시각화해 심장 박동 이상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는 ‘전자지도 시스템(EnSite™ Physician System)’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최신형 인공심장인 ‘하트메이트3(HeartMate3)’, 최소 침습적 심장판막 교정 장치인 ‘마이트라클립(MitraClip)’, 약물 방출 스텐트 시스템인 ‘자이언스(Xience)’ 등 다양한 의료기기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애보트가 만드는 의료기기의 특징은 연속혈당측정기(프리스타일 리브레) 등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매우 생소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의 주식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애보트 주식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의료 전문기관이나 의료인들 사이에서는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게 특징적이다.
애보트 영양제 부문과 제약 부문도 선방 중
애보트는 진단 사업 부문과 의료기기 부문이 주력이다. 하지만 영양제 부문과 제약 부문도 각각 전체 매출의 20%, 13%라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img4
소아용 영양제의 2023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13% 성장한 5조3000억원(39억달러)을 기록했다. 또 성인용 영양제는 전년 대비 6% 성장한 5조7000억원(42억달러)에 달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유아용 분유인 ‘씨밀락(Similac)’, 당뇨 환자들의 영양식품인 ‘글루세나(Glucerna)’ 등이 있다. ‘엔슈어(Ensure)’나 ‘페디아슈어(Pediasure)’ 등도 유명하다.
제약 부문 매출액도 6조8000억원(51억달러)으로 전년보다 3% 성장했다. 대표적인 의약품으로는 진통해열제인 ‘브루펜(Brufen)’, 여성용 의약품인 ‘듀파스톤(Duphaston)’ 등이 있다.
코로나 특수 끝났지만 새로운 성장 가능성에 주목
애보트 래보라토리의 2023년 전체 매출액은 54조1000억원(401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8% 감소했다. 또 영업이익은 9조7000억원(72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21% 줄었다. 애보트의 코로나 특수는 확실히 끝난 모양새다.
하지만 균형 잡힌 4개의 사업 분야를 통해 2024년에도 애보트는 꾸준히 성장해 가고 있다. 코로나 종료로 인한 역성장은 이미 마무리 단계다. 이제 다시 애보트의 본질적인 성장 잠재력에 주목할 때다.
또 애보트는 52년 연속으로 배당금 지급을 늘린 ‘배당 귀족주’ 중 하나다. 애보트의 현재 배당수익률은 2% 수준이다. 최근 5년 평균 연배당 성장률이 12%인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래에는 최첨단 의료기기 분야가 유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라면 애보트 래보라토리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2024년 08월호
AI 신약 전쟁 점입가경... 구글, 엔비디아, MS 중 최후 승자는?
빅테크 간 새로운 AI 전쟁은 신약 개발
구글 ‘알파폴드3’ 덕분에 신약 개발 빨라져
엔비디아, 반도체 넘어 헬스케어로 영역 확장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마이크로소프트(MS)가 투자한 오픈AI의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의외의 강자가 등장했다. 바로 앤트로픽(Anthropic)의 생성형 인공지능 ‘클로드(Claude)’다.
앤트로픽은 오픈AI 출신 창업자 7명이 설립한 스타트업 회사다. 클로드 3.5는 성능 면에서 이미 챗GPT 4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이렇게 인공지능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 중이다. 언제든 1등이 바뀔 수 있을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빅테크들, 거대한 제약 바이오 시장에 군침
그런데 인공지능을 ‘생성형’으로만 활용할 필요는 없다.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라면 어디든 활용하는 게 이득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빅테크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신약 개발’이다. 신약 개발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후보 물질 발굴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는 등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제약 바이오 시장에 관심을 갖는 것은 거대한 시장 규모 때문이다. 아이큐비아(IQVIA)는 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를 2027년 기준 2565조원(1조9000억달러)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약 바이오 시장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가장 먼저 신약 개발에 뛰어든 빅테크 기업은 구글(알파벳)이다. 2016년에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알파고’가 바로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작품이다. 이 딥마인드가 신약 개발을 위해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바로 ‘알파폴드’다.
구글 ‘알파폴드3’ 혁신으로 신약 개발 기간 단축
‘알파폴드(AlphaFold)’는 폴드(Fold·접힘)라는 이름처럼 단백질의 접힌 상태를 포함한 구조를 분석·예측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2018년에 ‘단백질 구조 예측 학술대회(CASP)’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단백질은 우리 몸 안에서 대부분의 기능을 수행하는 핵심 분자다. 세포의 구조를 유지하고, 화학 반응을 촉매하고, 신호를 전달하고,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은 신약 개발에서 어떤 의미일까. 단백질은 특정한 3차원 구조로 올바르게 접혀야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접힌 구조가 단백질의 활성 부위와 결합 부위를 형성한다. 대부분의 약물(신약)은 단백질의 특정 부위에 결합해 효과를 낸다.
따라서 이 결합 부위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단백질이 어떻게 접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또 많은 질병이 단백질의 잘못된 접힘(misfolding)으로 인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잘못된 접힘과 관련이 있다. 약물 치료의 원리는 이렇게 문제가 생긴 단백질을 다시 정상화하는 데 있다.
이런 이유로 단백질 접힘 연구는 신약 개발에서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기존 방식으로 단백질 접힘 구조를 밝히려면 몇 개월 또는 몇 년이 걸린다. 어떤 단백질 구조는 수십 년간 연구하고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사람이 직접 단백질 구조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건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알파폴드는 이런 단백질 접힘 연구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딥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개발됐다. 인공지능은 수학적 모델이라 단백질의 패턴을 사람보다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따라서 신약 개발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알파폴드 모델로는 여전히 신약 개발에 한계가 있었다. 이유는 단백질의 구조가 단순히 고정된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생명 활동에 사용될 때 각종 분자들과 결합하는데 그때마다 구조가 약간씩 변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적절히 예측하지 못하면 실질적으로 각종 응용 분야에 활용되기가 어렵다.
그런데 2024년 5월에 공개된 알파폴드의 최신 버전인 ‘알파폴드3’는 이런 문제점을 상당 부분 해결했다. 알파폴드3는 단백질이 각종 리간드(결합 분자), 헥산 등과 결합했을 때 단백질의 역동적인 구조변화 예측능력이 기존보다 탁월하게 발전했다. 이제 생명체의 분자와 단백질 간의 상호작용까지 예측하는 수준으로 진화한 셈이다. 따라서 알파폴드3는 응용 가능성 측면에서 과거보다 크게 발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글 헬스케어? ‘베릴리’와 ‘칼리코’ 기대에 못 미쳐
알파폴드의 인공지능 기술력을 바탕으로 알파벳(구글)은 2021년에 신약 개발 기업인 ‘아이소모픽 랩스(Isomorphic Labs)’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구글 딥마인드에서 분사했다. 아이소모픽 랩스는 2024년에 글로벌 제약사인 일라이릴리, 노바티스와 전략적 협력체제를 맺고 신약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그 기반이 되는 모델이 바로 알파폴드3이다.
신약 개발에서 단백질은 인간 질병의 자물쇠로, 신약은 열쇠로 비유된다. 알파폴드3가 실제 질병과 관련 있는 단백질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이 단백질에 꼭 맞는 물질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물론 시간은 걸린다. 어쨌든 이 물질이 바로 치료제가 된다. 알파폴드3는 향후 신약 개발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알파벳(구글)은 아이소모픽 랩스 외에도 헬스케어 분야 자회사로 ‘베릴리(Verily)’와 ‘칼리코(Calico)’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생명공학 회사 베릴리는 2015년에 구글X에서 분리된 회사다. 베릴리가 개발한 제품 중 가장 시선을 끈 건 ‘의료용 스마트 콘택트렌즈’였다. 하지만 상용화되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결국 2023년에 전체 직원의 15%를 구조조정하며 몸집을 줄여나가고 있다.
인간의 노화와 수명 연장을 연구하는 칼리코는 2013년에 설립됐다. 알파벳의 자회사 중 하나다. 2017년에 ‘벌거숭이 두더지쥐’를 연구해 노화의 해법을 찾아내겠다고 야심 차게 발표했다. 그래서 인간 수명 500살에 대한 기대감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뒤로 상당 기간 소식이 없다. 빅테크 구글에게도 바이오는 쉽지 않은 분야다.
엔비디아, 반도체 넘어 헬스케어로 야심찬 확장
생성형 인공지능 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인 엔비디아도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이 크다. 엔비디아는 지난 1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신약 개발을 위한 생성형 AI 모델인 ‘바이오니모(BioNEMO)’를 선보인 바 있다. 당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생성형 AI를 통해 신약 개발과 생명공학의 패러다임이 변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바이오니모는 엔비디아 헬스케어 전용 인공지능 플랫폼인 ‘클라라’의 생성형 인공지능 플랫폼 중 하나다.
클라라 플랫폼은 바이오니모(제약바이오), 홀로스캔(의료기기), 파라브릭스(유전체학), 모나이(의료 이미징) 등을 가지고 있다. 이 중 가장 화제가 된 바이오니모는 그간 염기 서열, 아미노산 서열, 화합물 구조, 단백질 구조, 세포 등의 생체분자 언어를 대규모로 학습해 왔다.
이를 통해 신약 개발을 위한 인공지능 파운데이션 모델(대규모 데이터 세트를 통해 사전에 학습된 반제품 형태)을 구축했다. 이렇게 쌓아온 바이오 데이터를 통해 단백질 구조 예측, 단백질 서열 생성, 분자 최적화, 화합물 생성, 결합구조 예측 등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사용자 맞춤화도 가능하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 과정은 후보물질 발굴, 스크리닝(거르기), 물질 최적화, 독성실험, 임상 1~3상, 허가 및 출시 등의 절차를 따른다. 따라서 후보물질 발굴부터 독성실험까지 최소 4년 이상, 임상부터 허가까지는 최소 6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바이오니모를 활용한 인공지능 신약 개발의 경우 평균 10~15년의 시간과 약 3조원의 소요 비용을 최대 7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글로벌 제약사인 암젠은 신약 개발을 목적으로 바이오니모를 도입했다. 또 본사에 엔비디아와 협업한 슈퍼컴퓨터 ‘프레이자’를 구축한 상태다. 그 외에도 많은 제약사와 바이오테크 기업들이 바이오니모를 적극 활용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도 신약 개발에 눈독
마이크로소프트(MS)도 지난 2023년 9월에 인공지능 기반의 단백질 설계 모델인 ‘에보디프(EvoDiff)’를 오픈 소스로 공개한 바 있다. 이 모델 역시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기존 단백질 구조 데이터를 학습한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단백질 서열을 예측한다. 하지만 구글의 알파폴드3에 비하면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챗GPT로 생성형 인공지능 시장을 휩쓸고 있는 오픈AI도 최근 의료 인공지능 보조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플랫폼은 의사가 암 환자를 진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오픈AI는 이 플랫폼을 통해 암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개인 맞춤형 진료를 제공할 계획이다. 오픈AI는 또 기적의 비만 치료제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일라이릴리와도 협업한다. 세계적인 과제로 남아 있는 ‘항생제 내성’ 해결을 위해 생성형 AI로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할 예정이다.
오픈AI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브래드 라이트캡은 “첨단 인공지능은 제약 분야에서 혁신적인 돌파구를 가져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밝히기도 했다.
빅테크 기업 중 인공지능 신약 최후의 승자는?
빅테크 기업들인 구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은 지금 너도나도 인공지능 신약 개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바이오 산업은 첨단 인공지능 기술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로 꼽혀 왔다. 이들 중 최후의 승자는 어디가 될까.
구글 딥마인드의 CEO인 데미스 하사비스는 지난 2월에 열린 ‘세계 모바일 박람회(MWC)’의 기조연설에서 “과학적으로 알려진 단백질은 2000억 개에 달한다. 이를 인간이 분석하는 데 10억 년이 걸리지만 알파폴드는 이를 1년 만에 해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구글 딥마인드에서 분사한 신약 개발 회사인 아이소모픽 랩스는 올해 초에 일라이릴리와 2조3000억원(17억달러), 노바티스와 2조원(15억달러) 규모의 AI 신약 개발 협력 계약을 체결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수많은 인공지능 사업들이 수익화에 애를 먹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구글이 인공지능 신약의 수익화 측면에서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늘 상상을 뛰어넘어 왔던 엔비디아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엔비디아가 바이오니모를 통해 제약 바이오 분야까지 석권하는 것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이미 엔비디아는 올해 시가총액 1위까지 치고 올라간 저력이 있다. 자금력도 넉넉하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 신약 개발 모델이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구글의 알파폴드3는 단백질 구조 예측 모델일 뿐 이것만으로 신약 개발이 되지는 않는다는 비판이다.
한국의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지금까지 발굴된 신약 중에 최종적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약은 단 한 개도 없다”며 “인공지능 신약과 관련해 계속해서 거금이 투입되고 있지만 정말로 성과가 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사람이 가장 돈을 아끼지 않을 때는 본인의 생명이 걸려 있을 때다. 기술 발전의 종착역이 언제나 헬스케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데미스 하사비스의 호언장담처럼 2~3년 내에 구글이 디자인한 신약이 시장에 출시될 수 있을까. 미래에는 빅테크 기업인 구글이나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의 제약 기업이 될지도 모른다. 투자자들은 전통의 제약 바이오 기업 외에도 빅테크 기업들의 신약 개발 과정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2024년 08월호
박현주의 ‘창조적 파괴’ 30년 8번의 ‘결정적 순간’ 있었다
AIB 선정 국제 최고경영자, 아시아 금융인 최초로 수상
인사이트펀드 부진 극복하고 M&A·ETF·글로벌로 성장
미래에셋그룹, 아시아 최고 금융사에서 세계 수준 인정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아시아 최고의 금융회사로 성장한 미래에셋그룹 박현주 회장(글로벌 전략 책임자)의 투자실력은 정말로 뛰어날까. 이에 대해서는 평가가 크게 갈린다. 누군가는 천재적인 투자자로 기억하지만, 또 누군가는 실제 실력보다 과대평가돼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박현주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한국 금융 역사를 다 살펴봐도 더 뛰어난 인물은 없다. 그 이전까지 한국 금융 쪽에서 뛰어나다고 평가받던 경영자들은 국가대표 축구 경기로 비유하면 다 국내용 선수들이었다.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해 세계 정상권 선수들과 경쟁하는 한국의 대표선수처럼 글로벌 시장을 최초로 개척하고 금융자산을 키워낸 박현주 회장과 수준을 논할 CEO가 없다. 또한 박 회장은 금융을 넘어 한국 기업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적수가 거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평가도 톱 수준이다. 지난 7월 3일 국제경영학회(AIB)는 2024년 최고경영자상 수상자로 박현주 회장을 선정했다. 이는 아시아 금융인으로는 최초다. 한국인 중에서는 1995년의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수상 이후 두 번째다. AIB가 1982년부터 수여하고 있는 ‘올해의 국제 최고경영자상’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경영인이 수상하는 상 중 최고 권위의 상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가 박현주 회장의 경영능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래에셋그룹의 ‘차이나펀드’와 ‘인사이트펀드’
하지만 투자실력과 경영실력은 엄연히 다르다. 또 미래에셋 투자상품의 성과가 곧 박현주 회장의 수익률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미래에셋그룹의 투자실력이 박현주 회장의 이미지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미래에셋그룹은 1997년 창립 이후 30여 년의 세월 동안 크고 작은 위기가 있어 왔다. 그중 금융소비자들에게 가장 부정적으로 각인된 사건은 뭘까.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미래에셋 ‘차이나펀드’와 ‘인사이트펀드’의 몰락이다.
특히 인사이트펀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 수익률이 최상이었던 2007년에 설정된 블라인드 펀드라 더 충격이 컸다. 이 펀드는 약관에 투자 대상과 범위를 사실상 정해놓지 않았다. 따라서 투자 지역과 투자 대상을 운용사 측에서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다. 이론적으로는 100% 중국 주식이나 100% 인도 주식 투자도 가능하다. 미래에셋이 가장 자신감 넘치던 시기인 2007년에 출시된 인사이트펀드는 오픈 초기에 무려 4조원 이상이 몰렸다. 하지만 1년 뒤인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최대 손실률이 -60%로 추락했다. 이와 함께 미래에셋 펀드는 반드시 수익을 내준다는 믿음도 사라졌다.
이 당시 미래에셋의 ‘차이나펀드’와 ‘인사이트펀드’ 투자자 중 손실을 보고 펀드를 환매했던 고객들은 지금도 미래에셋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박 회장은 당시 “100년 만에 온 투자 기회”라며 힘들어하는 투자자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본인 역시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역사는 미래에셋그룹과 박현주 회장의 성장통이었다. 만약 여기서 미래에셋그룹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섰다면 지금의 미래에셋 신화는 존재할 수 없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교훈 삼아 박 회장과 미래에셋그룹은 체질 개선에 나섰다.
금융에서 돈을 버는 건 결국 철저한 확률게임이다. 동일한 금액으로 10개의 투자 대상에 분산했을 때 6개 이상을 맞히면 돈을 번다. 반대로 6개 이상을 틀리면 돈을 잃게 된다. 박현주 회장과 미래에셋그룹은 2008년 이후 10개의 투자 중 6개 이상을 맞혔을까, 아니면 6개 이상을 틀렸을까. 미래에셋그룹의 투자는 10개 중에 최소 6~8개 이상을 계속해서 맞혀 왔다. 그럼에도 1~2개씩은 계속해서 틀려 왔다. 이런 패턴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금융회사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확률상 이기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미래에셋은 앞으로도 계속 6~8개 이상을 적중시키며 성장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박현주 회장은 창조적 파괴를 선호한다. 미래에셋그룹의 연혁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건은 다 한국 금융사에 획을 긋는 대사건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창조적 파괴의 결정적인 순간을 8개만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한국 최초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 출시 (1998년 12월)
박현주 회장은 1998년에 본인의 이름을 건 한국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 펀드를 출시했다. 이때부터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 문화를 미래에셋이 주도해 왔다. 이는 오롯이 박현주 회장의 공이다.
2 한국 최초 해외운용법인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설립 (2003년 12월)
미래에셋은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2003년에 한국 최초로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을 설립했다. 이 당시까지 한국의 어떤 금융사도 해외에 진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박 회장은 해외 투자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이를 추진했다. 이때부터 한국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외에 해외 펀드를 통해 해외에도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이후 중국, 싱가포르, 인도, 브라질, 미국, 호주,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에 진출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2008년에 1호 펀드를 시작으로 성장해온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은 현재 인도 내 유일한 독립 외국자본 운용사다. 포스트 차이나로 평가받는 인도 시장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운용자산(AUM)은 최근 30조원을 넘겼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시장이다.
3 퇴직연금 사업 확장 (2005년~)
미래에셋증권의 퇴직연금 규모는 현재 25조원을 돌파했다. 규모 면에서 절대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던 은행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미래에셋증권의 퇴직연금이 급성장한 이유 역시 박현주 회장의 선구안이다. 박 회장은 한국 퇴직연금 시장이 결국 미국과 유사하게 성장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증권은 한국의 퇴직연금 도입 초기였던 2005년 말부터 적자를 감수하고 선제적으로 퇴직연금 시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실적배당 구조인 DC형 상품에 큰 공을 들여왔다. 초기에는 원금 손실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거부감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성장하는 미국 S&P500이나 나스닥100 ETF를 퇴직연금에 편입시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 금융소비자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4 한국 최초 중국 본토 빌딩 투자 ‘미래에셋 상하이타워’ (2006년 5월)
미래에셋의 첫 해외 부동산 투자는 중국 상하이의 핵심 지역인 푸둥지구였다. 2006년에 황푸강 바로 앞에 위치한 미래에셋 상하이타워에 투자한 금액은 약 2600억원이다. 그 당시로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 투자가 의미 있는 건 최초인 것도 중요하지만 평가수익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미래에셋 상하이타워의 추정시세는 1조5000억원이 넘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희소성 감안 시 2조원 가치로 평가한다. 그 당시는 대규모 자금 투자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박현주 회장 특유의 추진력이 맞아떨어진 사례다.
5 캐나다 선두 ETF 운용사 호라이즌 ETFs 인수 (2011년 11월)
캐나다 선두 ETF 운용사인 호라이즌 ETFs를 2011년에 인수한 건 의미가 크다. 액티브 펀드의 시대에서 수수료가 저렴한 ETF 시대가 올 것을 일찌감치 간파한 박현주 회장의 선구안이 빛난 결정이었다. 인수가격은 1430억원이다.
미래에셋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해외 ETF 회사들을 인수했다. 특히 임팩트가 강했던 건 2018년 2월의 미국 ETF 운용사 ‘글로벌X’ 인수 건이다. 인수가격은 약 4억8800만달러(당시 약 5200억원)다. 상당한 금액이라 우려도 많았지만 현재 시점에서 글로벌X의 위상을 평가해 보면 역대급으로 성공한 M&A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공격적으로 S&P500이나 나스닥 등의 해외지수 ETF를 선제적으로 상장시켜 ETF 자산 규모가 급증했다. 현재는 자산 규모 1위인 삼성자산운용을 바짝 뒤쫓고 있는 상황이다.
6 대우증권 인수 후 미래에셋증권과 합병 (2016년 12월)
2016년 당시 자기자본 1위였던 대우증권을 인수한 것도 결정적인 순간이다. 미래에셋증권은 대우증권 지분 43%를 2조3200억원에 인수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 1.3배의 비싼 가격에 절대금액 자체도 상당해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았다.
이번에도 박현주 회장의 뚝심은 통했다. 이후 미래에셋증권은 한국 ‘1위 증권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됐다. 현재 자기자본 10조원을 훌쩍 넘긴 미래에셋증권의 달라진 위상을 생각하면 이 M&A도 대성공이라는 평가다.
7 미국 주식 중심의 해외 주식 중개 집중 (2017년~)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 합병 이후 통합 미래에셋증권이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미국 주식 중심의 해외 주식 중개 서비스였다. 미래에셋은 과거부터 고객과의 동맹을 강조하며 고객 수익률 제고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실제 고객들의 체감 수익률은 높지 않은 게 늘 과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2017년부터 세계 금융의 중심이자 빅테크 기업들이 몰려 있는 미국 주식 위주의 해외 주식 중개 서비스에 집중하면서 관리고객 수익률이 극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마진이 낮은 국내 주식 매매수수료 구조에서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해외 주식 중개수수료는 상대적으로 높다. 여기에 환전수수료까지 더해 미래에셋증권의 수익성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객들도 수익률이 개선됨에 따라 윈-윈 효과를 누리게 됐다.
8 인도 10위권 증권사 ‘쉐어칸’ 인수 (2023년 12월)
미래에셋증권이 2023년 말에 인도 10위권 증권사인 ‘쉐어칸증권’을 인수한 것 역시 상당한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매입 금액은 약 300억루피(약 4800억원) 수준이다. 쉐어칸증권은 2000년에 설립된 인도 현지 증권사다. 주력 서비스는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다. 총 임직원 수는 3500여 명이다.
박 회장은 오래전부터 포스트 중국은 인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인도 시장에 대한 비즈니스 확대에 집중해 왔다. 이번 인수로 인해 박 회장의 글로벌 확장 구상은 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아시아 넘어 세계 금융 중심으로
이런 8개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거쳐 지금의 미래에셋그룹이 만들어졌다. 이 밖에도 수많은 파괴적 혁신 사례가 많다. 물론 미래에셋의 투자가 언제나 성공했던 건 아니다. 또 미래에셋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언제나 수익만 본 것도 아니다. 박현주 회장 역시 이 점을 인식하고 사회공헌 활동에도 진심이다. ‘미래에셋 박현주재단’을 통해 지난 17년간 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해 왔다. 6900명 이상의 학생들이 50개국에서 최고의 교육기관에 진학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했다.
척박한 한국의 금융 환경에서도 미래에셋은 눈부신 성장을 해 왔다. 뛰어난 경영능력을 가진 박현주 회장의 공이다. 박 회장은 특히 국내보다 해외에서 그 능력을 더 인정받고 있다. 현재 미래에셋은 전 세계 19개국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또 미래에셋그룹의 글로벌 ETF 자산은 1250억달러(173조원)가 넘는다. 전 세계에서 12번째로 큰 ETF 금융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박현주 회장과 미래에셋은 아직 배가 고프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성장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블랙록’이나 ‘골드만삭스’와 견줄 수 있는 금융회사가 언젠가는 탄생할 수 있을까. 미래에셋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2024년 07월호
원화 3년 전에는 1100원대..."당분간 고환율 추세 불가피"
@img5
삼성전자 수출 살아나도 돌아오지 않는 환율
대중국 무역적자·고유가 이중고
한국경제 곳곳 위험신호...안심 못할 상황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최근 원화 가치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5월 말 기준 원·달러 환율 종가는 1377원으로 1300원대 후반을 유지하고 있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4월에는 1400원에 도달하기도 했다. 환율로만 보면 심각한 상황이다.
10년 평균환율보다 200원 이상 평가절하
현재의 원화 가치는 과거 10년 평균환율인 1176원보다 200원 이상 평가절하돼 있다. 이는 미국 강달러의 영향이다. 또 한국 원화 외에 일본 엔화도 같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한국은 과거부터 강력한 수출 경쟁력을 바탕으로 일정 환율 레벨에서는 균형을 찾아 왔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현재의 원화 약세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10년 전인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간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를 유지해 왔다. 원화 환율이 1100원대를 벗어난 건 2022년에 1294원을 기록하면서부터다. 이후 2023년에는 1308원으로 뛰었고, 2024년에는 1347원(1월~5월 말 평균)까지 치솟았다. 최근에는 일시적으로 1400원에 도달하기도 했다. 지난 1997년 IMF 위기 때의 2000원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1600원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이상 신호가 명백하다. 하지만 그 당시와는 분명 다른 점도 있다.
원화 약세가 한국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이 원화 약세인 것과 달리 원·엔 환율은 거꾸로 원화 강세다. 2024년 연평균 100엔당 원화 환율은 897원(1월~5월 말 평균)이다. 2015년엔 935원이었으니 10년 전보다 원화 가치가 4% 오른셈이다. 그래서 한국의 통화당국은 일본보다 느긋하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강달러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보다 더 다급한 건 일본이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17일(현지시간)에는 미국 재무부에서 한·미·일 첫 재무장관회의를 열고 “원화, 엔화 약세에 대해 우려한다”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무역수지 적자 심각
전문가 중 상당수는 현재의 원화 약세를 외부 요인으로만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자체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걸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수출주도형 국가인 한국의 무역수지 현황은 예상외로 심각하다. 한국 무역수지 흑자의 최정점은 7년 전인 2017년이었다. 이 당시 952억달러라는 기록적인 흑자를 달성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특히 2022년부터는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심각한 건 적자 규모가 478억달러로 엄청나다는 점이다. 시기적으로 한국 원화가 본격적으로 약세를 보인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2023년에도 전년보다 적자폭은 축소됐지만 여전히 103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2023년에 환율이 1300원대로 폭등한 원인 중 하나다. 다행히도 2024년 1분기에 한국의 무역수지는 90억달러를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하지만 여전히 최전성기인 2017년 1분기와 비교해 보면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흑자 규모다. 무역수지 흑자가 과거와 달리 대폭 줄어든 근본적인 원인이 뭘까.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와 고유가 이중고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바로 중국 산업의 재편과 중국 최첨단 제조업의 부상이다.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사상 최고치인 952억달러를 기록한 2017년 당시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국 1위는 바로 중국이었다.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 무려 443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 무역수지 총 흑자액의 47% 규모다. 또 당시에는 유가도 안정세를 보여 무역수지 적자국 2위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적자액도 144억달러로 양호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3년에는 너무나도 많은 게 변했다. 무역수지는 103억달러의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건 2017년에는 무역수지 흑자국 1위였던 중국이 2023년에는 무역수지 적자국 3위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적자 규모도 무려 180억달러에 이른다.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중국 경기가 워낙 부진했던 탓도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 주도의 제조업 육성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다. 이제 중국은 과거처럼 한국에 많은 걸 의존하지 않는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한국 산업 경쟁력은 뚝 떨어졌다.
그 외 유가 폭등의 영향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일본을 제치고 무역수지 적자국 1위에 올라선 점도 눈에 띈다. 적자 규모도 274억달러로 2017년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024년에도 대중국 무역적자와 고유가 상황은 쉽게 개선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의 원화 약세 흐름도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전자 수출 늘어도 원화 강세 쉽지 않은 이유?
지난 2023년은 한국 반도체 수출의 원투 펀치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나란히 고전했던 한 해다.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2023년에 삼성전자는 전년 대비 14% 감소한 259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84% 줄어든 7조원의 부진을 보였다. SK하이닉스도 전년 대비 27% 감소한 33조원의 매출과 8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img4
하지만 2024년 1분기 들어 삼성전자 매출액은 전년보다 11% 증가한 71조원으로 집계됐다. SK하이닉스도 전년 대비 144% 급증한 약 12조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 반도체 매출이 급증했음에도 환율 안정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이유가 뭘까.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부터 20%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반도체 외에 다른 품목들의 비중이 80%라는 뜻이다. 현재의 글로벌 경쟁 구도상 앞으로도 반도체 수출 비중이 큰 폭 증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으로 큰 폭의 수출 개선 효과를 기대하는 시기는 지났다는 평가다.
한국정부 재정적자도 심각
환율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인 중 하나는 국가신용도와 정부의 재정 안정성이다. 한국의 국가신용도는 아직 탄탄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가부채와 재정적자가 계속 증가한다면 국가신용도 하락은 시간문제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 몇 년간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재정수지 적자가 극심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코로나19가 마무리되던 2022년에도 관리재정수지가 117조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문제는 앞으로도 급격한 노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해 재정적자가 감소할 요인보다는 증가할 요인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재선 시 지정학적 리스크마저 증폭 위험
환율을 전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환율은 한두 개 요인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환율 전망도 크게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에는 원화 약세 요인이 너무나도 많다. 사실 수출이나 고유가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개선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 발생했을 때 그 결과를 예측하기가 무척 어려운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바로 올해 11월에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시나리오다. 지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인해 동북아 정세가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시기다. 또 우크라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 북한, 중국의 동맹관계는 더욱더 탄탄해졌다. 반면 트럼프의 과거 스타일을 보면 우방을 중시하기보다 실리에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과거 대통령 재임 시절에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한국정부의 주한미군 분담금 5배 인상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따라서 만약 이번에 다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한국, 미국, 일본 동맹에는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해 서둘러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개시하려 한다. 동맹국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실리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은 확 다르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환율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벤트가 여러 번 나올 수도 있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결론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과거처럼 1100원대로 회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1400원에 육박하는 지금의 환율에 대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시장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변동성이 과도하다”고 표현했다. 1300원 내외의 환율을 받아들여야 하는 뉴노멀의 시대가 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 스스로의 자산을 지키는 데 있어 달러 자산도 중요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됐다. 투자자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달러나 달러표시 자산을 일정 부분 가져가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2024년 07월호
한국인, 美 주식 100조 보유...환차익만 10조원 벌었다?
@img5
환 헷지 선택한 ETF 투자자는 후회 중
미국주식 투자자 2년 만에 환차익 15% 대박
달러자산 보유가 살길...너도나도 미국으로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최근 몇 년간 한국 주식과 한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국인들의 해외 주식 ETF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최근 원·달러 환율마저 급등해 1400원에 육박하면서 달러 기반 ETF에 투자한 사람들은 지금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한국 상장 해외주식 ETF 왜 인기?
그런데 ETF 투자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국 상장 ETF와 미국 상장 ETF 중 선택할 수 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과연 어떤 방식이 유리할까. 각각 장단점이 있다.
한국 상장 ETF는 해외지수가 기초자산인 경우 이익금에 대해 15.4%의 소득세가 과세된다. 대신 연간 총 이자소득 합계액이 2000만원을 초과하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다. 반면 미국 상장 ETF는 연간 250만원을 초과하는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22%의 양도세가 부과된다. 대신 금융소득종합과세와는 상관없이 별도로 분리과세된다. 따라서 연간 이자소득이 2000만원을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면 한국 상장 ETF보다 미국 상장 ETF를 선택하는 게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해 가는 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예외가 많다.
한국 상장 ETF를 연금저축계좌나 퇴직연금, IRP, ISA 등으로 매수하면 종합과세 대신 분리과세가 가능하다. 게다가 세율마저 낮다. 대신 이 계좌들로 미국 상장 ETF는 매수할 수 없다. 따라서 절세 목적으로 이 연금 계좌들이 적극 활용됐다. 미국 대표지수인 S&P500이나 나스닥100 지수를 기초로 하는 한국 상장 ETF가 불티나게 팔려 나간 이유다.
한국 상장 ETF 시장, 2년 3개월 만에 66조 급증
이에 따라 한국 상장 ETF(국내+해외)들은 지난 2년 3개월간 89% 급성장했다. 2021년 말 74조원이었던 전체 순자산가치총액이 2024년 3월 말 기준 140조원으로 성장했다. 무려 66조원이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해외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도 19조원에서 37조원으로 95% 성장했다.
이 기간에 미국 연준(Fed)이 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한 영향으로 해외채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상당했다. 해외채권 ETF의 순자산가치총액은 2년 만에 불과 2000억원에서 4조원으로 1868% 급증했다. 특히 미국 30년국채 ETF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그런데 해외주식형이나 해외채권형 ETF에 투자할 때 환 헷지와 환 오픈 중 어떤 게 더 유리할까.
환율 1380원 대박, 환 헷지 ETF 투자자는 눈물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S&P500지수, 나스닥100지수, 미국 30년국채 관련 ETF 등은 다 달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상장한 ETF들은 달러 기반 해외 ETF에 투자할 때 환 헷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최근 투자자들 간의 수익률은 이 선택에서 상당한 희비가 갈렸다. 지금으로부터 2년 4개월 전인 2021년 말의 원·달러 환율은 1190원이었다. 하지만 5월 말 현재 환율은 1377원이다. 환율이 190원 폭등한 셈이다. 이렇게 되면 달러 기반의 자산을 보유했을 경우 환차익이 무려 16%에 달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환차익을 누리지 못하는 투자자들도 있다. 바로 환 헷지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들이다. 원래 한국에 상장된 해외주식형 ETF는 대부분 환 노출 방식이었다. 이유는 주식형의 경우 채권형과 달리 변동성이 높아 장기투자 시 환율 변동이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2022년부터 달러 강세가 계속되자 향후 환차손을 우려한 일부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환 헷지형 ETF를 원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이에 따라 대형 운용사 중심으로 환 헷지 유형의 주식형 ETF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국 주식형 ETF를 환 헷지로 가입하는 투자자는 많지 않다. 상품명 뒤에 (H)가 붙어 있으면 환 헷지 상품이다. 대표적인 미국 지수형 상품들을 살펴보자.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환 오픈형 상품인 ‘TIGER 미국S&P500 ETF’ 순자산총액이 3조5200억원인 데 비해 환 헷지형인 ‘TIGER 미국S&P500TR(H) ETF’는 2200억원에 불과하다. 15분의 1 수준이다. 삼성자산운용도 마찬가지다. 환 오픈형 상품인 ‘KODEX 미국S&P500TR ETF’ 순자산총액이 1조2800억원인 데 비해 환 헷지형인 ‘KODEX 미국S&P500(H) ETF’는 2500억원에 그친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경우 환 오픈형인 ‘ACE 미국S&P500 ETF’의 순자산가치가 1조300억원임에도 동일 유형의 환 헷지형 상품은 아예 출시하지 않았다.
이렇게 환 헷지형이 생각보다 인기 없는 이유는 최소 연 1%가 넘는 헷지 비용 때문에 장기 투자할수록 수익률을 계속 갉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예상과 달리 달러 강세가 지속된 것도 환 헷지형 투자자들에게는 악재다. 환 오픈형과 비교했을 때 불과 1년 만에 최소 6.9%, 최대 10.6%의 수익률을 손해본 셈이다. 2년으로 기간을 늘려보면 사라진 수익률이 15% 수준이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상당하다. 반면 환 오픈형 ETF 투자자들은 주식 상승에 따른 수익도 쏠쏠한데 추가로 환차익까지 발생해 함박웃음이다. 동일 유형에서는 환 오픈형 상품인 ‘KODEX 미국S&P500TR ETF’가 31.9%, KODEX 미국나스닥100TR ETF가 35.8%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 30년국채 ETF는 모두 환 헷지형
해외주식형 ETF가 환 노출을 기본으로 하는 것과 달리 해외채권형 ETF는 대부분 환 헷지를 하는 게 기본이다. 이는 채권의 경우 기대수익률이 주식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 변동성에 노출될 경우 채권이자에서 수익이 나고도 환율에서 이를 뛰어넘는 손실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
그래서 채권형 중 가장 인기가 높은 ‘미국 30년국채 ETF’의 경우 대부분 환 헷지형으로 발행되고 있다. 동일 유형에서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환 헷지형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 ETF’의 순자산총액이 1조2200억원으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환 노출형이 아니어서 지금의 환차익 기회를 다 놓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미래에셋, 삼성 다 마찬가지다. 따라서 환 노출을 원하는 투자자라면 한국 대신 미국에 상장된 ETF를 직접 매수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는 한국 증권사에서 증개하는 미국 국채를 직접 매수할 수도 있다. 물론 거꾸로 지금이 달러 고점이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라면 환 헷지된 한국 상장 ETF가 더 적합하다.
진짜 대박난 미국 주식 직접투자자
한국인들은 한국 상장 ETF 외에 미국 주식 직접투자나 미국 상장 ETF에도 상당한 금액을 투자 중이다. 한국인들이 미국 주식을 본격적으로 매수한 건 ‘코로나19’ 영향으로 시장이 대폭락한 2020년부터다. 이 당시 미국 주식이 폭락하자 한국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연간 순매수 금액이 무려 25조원(178억달러, 환율 1380원 적용)에 달했다. 이에 따라 한국인의 2020년 말 미국 주식 총보유금액도 52조원(373억달러)으로 폭증했다.
@img4
2021년에는 미국 주식 보유금액이 전년보다 무려 42조원 증가한 94조원(678억달러)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다음해인 2022년에 금리 인상 충격으로 증시가 급락했다. 따라서 보유금액도 33조원 감소한 61조원(442억달러)으로 쪼그라들었다. 특이한 건 주가 급락에도 한국인들은 여전히 미국 주식을 왕성하게 매수했다. 2022년에 미국 주식 순매수금액은 17조원(121억달러)에 달했다. 지난 5년간 한국인들이 미국 주식을 순매도한 해는 2023년이 유일하다. 2023년에는 기록적인 미국 증시 상승과 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 목적으로 약 4조원(28억달러)의 순매도가 있었다. 하지만 2024년 들어 다시 약 8조원(56억달러)의 순매수가 일어나고 있다.
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2024년 5월 기준 한국인의 미국 주식 보유금액은 사상 최고치인 109조원(790억달러)이다. 2년여 전인 2021년 말의 원·달러 환율은 1190원이었다. 하지만 현재 환율은 1380원이다. 따라서 환차익은 10조원이 넘는다. 한국 투자자들은 지금 미국 주식 상승과 환차익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기록 중이다.
환율 급등에도 이익실현 소수...한국 대탈출 시작?
그런데 이 자금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원래 정상적인 흐름이라면 달러가 1400원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는 달러 매도를 통한 차익실현이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 미국 주식을 팔아 원화로 바꾸려는 수요가 넘쳐나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거꾸로 2024년에도 약 8조원(56억달러)의 미국 주식 순매수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한국 투자자들이 최소한 달러 강세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한다는 의미다. 또 한국 주식보다 미국 주식 수익률이 여전히 높을 것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다. 결국 한국을 버리고 미국을 사는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우려되는 현실은 2025년에 실제로 금융투자세가 도입될 경우다. 이때부터는 그동안 비과세의 장점으로 버텨왔던 한국 주식의 매력도가 더 낮아진다. 한국 주식을 버리고 달러 베이스의 미국 주식으로 탈출하려는 투자자들이 지금보다 더 급증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하는 현재의 상황은 한국 자산시장의 어두운 미래를 예견하는 한국 대탈출의 신호탄일까. 극도의 원화 약세 현상에도 불구하고 원화 가치 회복을 쉽게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달러 자산이 없는 한국인이라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달러 자산을 일부 편입하는 전략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대세는 원화 자산 집중이 아니라 글로벌 자산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