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1월호
[쿠팡] 물류센터만 곧 200만평? ..."이미 게임은 끝났다"
쿠팡 물류센터 핵심은 로봇과 인공지능
신선식품 새벽배송 승리자는 로켓프레시
쿠팡 물류센터 면적 여의도 2배 규모 확대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쿠팡은 2022년 기준으로 한국 이커머스 1위 회사다. 쿠팡은 넓은 범위에서 유통업을 영위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유통업은 ‘제조-도매-소매-소비자’라는 4단계를 갖춘다. 그런데 지금의 유통업은 어떨까. ‘제조-플랫폼(쿠팡 등)-소비자’라는 3단계로 끝나버린다. 유통업에 엄청난 혁신이 생긴 셈이다. 이렇게 쿠팡을 이커머스의 최강자이자 유통업의 최강자로 만든 핵심 비결은 뭘까. 바로 물류센터다.
쿠팡 물류센터 곧 200만평...이미 게임 끝?
쿠팡은 미국 1위 이커머스 사업을 영위하는 아마존닷컴의 성공 비결을 좇아 한국에서 물류센터 건립에 올인했다. 경쟁사들은 쿠팡 등장 초기에 이미 쿠팡의 전략을 알고 있었지만 부실한 자금력으로 볼 때 쿠팡이 막대한 물류센터 구축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쿠팡의 미친 전략에 감명받아 2회에 걸쳐 무려 3조6000억원(30억달러)을 흔쾌히 투자했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머릿속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쿠팡의 미친 전략과 손정의의 미친 투자가 결합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비록 적자를 보더라도 당일에 배송해 주는 서비스로 한국 소비자들은 엄청난 편익을 누렸고 쿠팡에 열광했다. 이 서비스의 핵심 원천은 역시 물류센터다. 이미 한국에서 물류센터 건립 싸움은 쿠팡의 압승으로 끝나가고 있는 중이다.
쿠팡이 발표한 ‘쿠팡 임팩트 리포트(2021년 말 기준)’에 따르면 쿠팡은 물류 인프라를 30여 개 지역에 100개 이상 갖추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또 직원 수는 6만5000명으로 개별회사 기준 삼성전자(11만3000명)와 현대자동차(7만2000명)에 이어 국내 3위에 해당된다. 이 중 비수도권 지역의 고용인원은 1만7000명으로 지역 균형발전에 이바지하는 모양새다. 참고로 대형마트 3사인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직원 수를 다 합쳐도 약 6만2000명으로 쿠팡보다는 적다.
현재 일명 쿠세권으로 알려진 쿠팡의 새벽배송 서비스 가능지역은 전국에 약 100여 곳으로 한정적이다. 물류의 효율성 측면에서 아직은 서울과 수도권, 세종과 대전 중심의 충청권, 부산 중심의 경남권, 대구 중심의 경북권에 서비스 가능지역이 몰려 있다. 전라도는 광주와 전주만 가능하고, 아직 강원도에는 새벽배송 가능지역이 없다. 쿠팡의 큰 그림은 전국적인 물류망을 구축해 경쟁사의 추격이 불가능한 압도적 1위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쿠팡의 물류 인프라 구축은 이미 경쟁회사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한국 인구 5160만명의 70%인 3600만명 이상이 쿠팡 물류 인프라로부터 10분 이내에 거주하고 있다. 쿠팡은 이 비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미 수도권 지역 주요 물류센터 건립은 다 끝낸 상태다. 향후에는 비수도권 물류센터 증설에 에너지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그렇다면 현재 쿠팡의 물류센터 전체 면적은 얼마나 될까. 쿠팡은 2021년 초 미국 증시 상장 당시 상장보고서에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물류회사’라는 표현을 썼다. 또 2020년 말 기준 연면적 약 70만평(2500만평방피트)의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면적은 바닥면적과 달리 층별 면적을 합산하기 때문에 좀 더 계산이 복잡하다. 1년 뒤인 2021년 말 기준 쿠팡 물류 인프라의 연면적은 약 118만평(390만제곱미터)으로 늘어났다. 1년 만에 40만평 이상 가파르게 증가한 셈이다.
2025년으로 기간을 좀 더 넓혀보면 어마어마하다. 향후에 비수도권 신규 물류센터(경남 2개, 대구 1개, 광주 1개, 대전 1개) 건립 투자예정금액이 1조원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25년의 쿠팡 물류 인프라 연면적은 200만평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이 면적을 연상할 때 가장 흔한 평수는 33평 아파트 면적이다. 또 느낌적으로 감이 잡히는 평수는 100평이다. 이 범위를 벗어나는 훨씬 더 큰 면적을 직관적으로 표현할 때 약 89만평(한강 둔치 제외)의 여의도 면적을 활용한다. 쿠팡의 전국 물류센터 연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약 2배까지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엄청난 규모라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쿠팡의 경쟁회사인 ‘신세계+이마트+이베이코리아(G마켓·옥션)’가 전국적으로 물류센터를 건립해 쿠팡을 추격하는 게 가능할까. 또는 작년까지 이커머스 1위를 지켜냈던 ‘네이버’가 전국에 물류센터를 건립하는 것이 가능할까. 전통의 유통 강호인 롯데그룹이라면 혹시 물류센터 건립이 더 용이하지 않을까.
정답은 쉽지 않다. 물류센터는 돈만 있다고 구축 가능한 게 아니다. 토지 매수, 인허가 문제, 지역 민원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최근 쿠팡과 전북 완주군 간 투자협약이 무산된 사례를 살펴보자. 쿠팡은 완주군에 약 3만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건립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완주군이 전년도의 투자협약 체결 당시 약정한 토지분양가 평당 64만5000원을 최근 83만5000원으로 30% 인상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최종 협상이 결렬됐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지난 몇 년간의 급격한 폭등 이후 소폭의 조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토지 시장만 분리해서 살펴보면 아파트보다는 상승폭이 덜했지만 매년 꾸준히 상승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물류센터 건축비 또한 급격히 상승했다. 쿠팡의 물류센터가 들어선 지역은 모두 일자리가 증가했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땅값도 많이 올랐다. 만약 경쟁업체들이 그 인근지역에 새롭게 물류센터를 건립하려 한다면 쿠팡보다 훨씬 비싼 토지가격과 건축가격을 감내해야 한다.
물류센터 건립 시 인근 주민들의 민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리스크 요인이다. 최근 대형 물류센터는 인근 주민들에게 ‘기피시설’ 취급을 받는 상황이다. 엄청난 수량의 화물차들이 반복적으로 운행되면서 교통체증, 매연, 소음, 환경오염 등 다양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이로 인해 인근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면서 대형 물류센터 허가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여러 요인들로 볼 때 경쟁사들이 대형 물류센터를 2~3년 안에 빠른 속도로 건립하며 쿠팡을 추격하기에는 이미 많은 장애물들이 놓여 있다.
쿠팡 물류센터 핵심은 로봇과 인공지능?
쿠팡이 한국에서 선보인 새벽 및 당일배송 시스템인 ‘로켓배송’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쿠팡의 새벽배송 시스템은 소비자가 밤 12시 이전까지 주문 시 다음날 오전 7시 이전에 물건이 도착하는 배송 서비스다. 또 당일배송 시스템은 당일 오전 10시까지 주문 시 당일에 물건이 도착하는 획기적인 배송 서비스다.
물류센터가 넓기만 하다고 해서 이런 빠른 배송이 가능한 건 아니다. 물류센터가 얼마나 자동화에 성공했는지에 따라 효율성 부분에서 상당한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쿠팡은 이 부분에서도 자신감이 넘친다. 쿠팡이 2022년 9월에 쿠팡 뉴스룸을 통해 공개한 영상을 살펴보면 쿠팡의 물류센터 핵심 기술력은 5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쿠팡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고객이 주문한 후 단 몇 초 만에 재고, 상품위치, 배송경로 등 수백만 개의 다양한 옵션들을 고려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예측하고 작업을 할당한다. 둘째, 물류센터의 피킹존에서 배송이 시작되는데 고객이 주문하면 즉시 작업자의 PDA에 실시간으로 주문 데이터가 전송된다. 셋째, 물류센터 안의 피킹 로봇(AGV)은 바닥에 부착된 바코드를 인식해 물건이 있는 선반을 직접 실어 작업대까지 옮겨준다. 넷째, 해당 물건을 작업자가 꺼내서 포장작업대로 보낸 후 작업자가 자동포장기를 이용해 포장백에 물건을 넣기만 하면 알아서 포장되고 운송장이 부착된다. 다섯째, 작업자가 분류로봇에 포장된 상품을 올려놓기만 하면 운송장에 적힌 주소를 스캔해 수백 대의 분류로봇들이 배송지역별로 분류한다.
결과적으로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단 몇 분 만에 포장과 배송지역별 분류까지 끝마치는 최첨단 기술력이 각각의 쿠팡 물류센터 안에 갖춰져 있다. 쿠팡이 쌓아온 이런 물류센터 내의 최첨단 기술력은 단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조 단위가 넘는 기술개발비를 투입해 이뤄낸 소중한 성과다. 따라서 경쟁업체들이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빠른 시간 안에 따라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최후 승리자는 로켓프레시?
쿠팡이 취급하는 물건의 80% 이상은 공산품이다. 쿠팡은 이 공산품과 생필품들을 ‘로켓배송’이라는 빠른 배송서비스를 통해 소비자 문 앞까지 신속히 전달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공산품과 생필품만으로 한국의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소비자들은 신선식품을 빠르게 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원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의 원조는 2015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마켓컬리의 ‘샛별배송’이다. 쿠팡도 신선식품 시장의 중요성을 깨닫고 2019년부터 ‘로켓프레시’라는 이름으로 신선식품 새벽배송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쿠팡 외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신선식품 새벽배송 전쟁에 같이 뛰어들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쿠팡, 마켓컬리, 이마트(쓱닷컴) 같은 메이저 회사 몇 개를 제외하고는 줄줄이 철수 중이다. 롯데온, GS프레시몰, BGF 헬로네이처, 프레시지, 매쉬코리아가 최근 새벽배송 서비스를 전격 중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저히 적자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1위인 쿠팡도 아직 적자가 나고 있는 상황에서 나머지 기업들의 심각한 적자는 일일이 설명할 것도 없다.
왜 새벽배송은 하면 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걸까. 신선식품의 특성상 새벽배송을 위해서는 도심과 가까운 곳에 냉장·냉동 물류센터를 설치해야 하고 콜드체인 등 설비 구축에도 상당히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 또 근로자들이 밤샘작업을 통해 배송할 상품을 분류하므로 당일배송에 비해 인건비가 최소 1.5배 이상 급증한다.
새벽배송을 아웃소싱할 경우 배송이 증가하면 할수록 배송비용도 같이 늘어난다. 따라서 자체적으로 새벽에 고객에게 상품을 배송할 수 있는 배송 시스템을 갖춰야 비용이 절감된다. 이런 경우 특히 배송물량이 충분해야 배송 생산성도 높아진다.
이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하는 회사는 쿠팡, 마켓컬리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미 새벽배송 시장을 선점한 이런 업체들이 대량 매출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있다. 후발 주자들이 이 틈새를 뚫고 의미 있는 수익을 내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미 물류센터 인프라 구축이 탄탄한 쿠팡마저도 신선식품 새벽배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신선식품 중심의 물류센터인 ‘프레시 풀필먼트 센터(FC)’를 추가로 건립하고 있다. 따라서 새벽배송은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후발 주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무리수가 따르는 사업이다. 뒤늦게 새벽배송 전쟁에 뛰어든 경쟁사들이 눈물을 머금고 철수하는 이유다.
쿠팡 비장의 무기는 풀필먼트 서비스?
쿠팡의 물류센터 수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또 물류센터 면적이 커지면 커질수록 쿠팡이 단지 직매입한 물건만을 집중적으로 배송하는 ‘로켓배송’에만 힘을 쏟는다면 아쉬움이 생긴다. 쿠팡의 물류센터 인프라는 훨씬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처리할 능력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풀필먼트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역량도 같이 커지게 된다. 그런데 풀필먼트 서비스는 뭘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3자물류’에 대해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3PL(Third Party Logistics)’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3자물류’라고 하는 이 단어는 무슨 뜻일까. ‘생산자와 판매자의 물류를 제3자를 통해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신발 전문 쇼핑몰’을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소비자가 신발 전문 쇼핑몰에서 ‘나이키 신발’이나 ‘아디다스 신발’을 주문하면 쇼핑몰 판매자가 신발 재고를 직접 보유하고 있다가 신발을 포장해 직접 배송업체에 넘겨 소비자에게 배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3자물류’ 서비스를 통해 ‘신발 전문 쇼핑몰 판매자’로부터 위탁받은 ‘전문 물류업체’가 바로 신발 배송을 진행한다.
꼭 자사의 쇼핑몰이 아니라 11번가, G마켓, 쿠팡의 오픈마켓을 활용하는 ‘판매자’들의 경우에도 3자물류를 활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예 ‘제조회사’들이 ‘3자물류’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3자물류’ 서비스 사용자는 제품 생산을 제외한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물류에 들어갈 비용과 노력을 다른 곳에 투자함으로써 고객 서비스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풀필먼트 서비스(Fulfillment Service)’는 뭘까. ‘3자물류’가 더 발전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3자물류’의 과거 의미는 단순히 비용 절감을 위해 물류 부문만을 아웃소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과거보다 진화한 요즘의 ‘3자물류’ 개념은 판매 상품의 입고, 보관, 제품 선별, 포장, 배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더 진화한 풀필먼트 서비스는 추가로 수요예측, 고객응대(CS), 교환 및 환불 서비스(AS)까지 말 그대로 토털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1위 이커머스 회사인 아마존이 전 세계 최초로 도입한 FBA(Fulfillment By Amazon) 서비스가 그 시초라고 볼 수 있다.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대로 하려면 당연히 물류센터를 보유해야 한다. 배송은 쿠팡의 로켓배송처럼 자체적인 시스템을 갖추거나, 네이버처럼 택배회사인 CJ대한통운을 활용해 3자물류 형태로 진행할 수 있다. 참고로 쿠팡과 마켓컬리는 자체적인 물류센터와 직접적인 배송능력을 갖추고 있다.
‘풀필먼트’ 기능을 갖춘 쿠팡 ‘로켓배송’의 장점은 제품 직매입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제품이 물류센터에 보관돼 있어 배송이 빠르다는 점과 품질 관리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단점은 제품을 매입해 보관하므로 재고 위험과 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반대로 G마켓이나 11번가 같은 오픈마켓 전문회사는 플랫폼만을 제공하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으므로 재고 위험이 없고 비용 부담이 적은 게 장점이다. 단지 중개상 역할만 할 뿐이다. 대신 오픈마켓 판매자가 별도로 직접 제품을 관리하므로 품질을 보장하기가 어렵고 배송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제트배송 성장할수록 쿠팡 이익 급증
쿠팡의 풀필먼트 서비스를 쿠팡의 자체 상품이 아닌 ‘오픈마켓 판매자들’ 같은 제3자에게 제공하는 물류 서비스가 바로 ‘제트배송’이다. 쿠팡은 그동안 막강한 물류센터 인프라를 기반으로 직매입한 상품들을 당일 배송하는 ‘로켓배송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 왔다.
하지만 계속해서 천문학적으로 물류센터에 투자해 왔기 때문에 쿠팡은 이제 직매입한 자체 상품들뿐만 아니라 쿠팡 마켓플레이스를 이용하는 오픈마켓 판매자들에게도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할 여력이 충분해졌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셀러(오픈마켓 판매자)에게도 ‘로켓배송’처럼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해 당일배송이 가능하게 하는 ‘제트배송’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쿠팡을 이용하는 소상공인 파트너의 수는 2021년 말 기준 15만7000명이 넘는다. 이들 중 상당수가 단순한 쿠팡의 ‘오픈마켓 판매자’에서 쿠팡의 풀필먼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제트배송 판매자’로 넘어가고 있다. 쿠팡 마켓플레이스의 수수료율은 4~11% 사이인 데 비해 쿠팡의 막강한 풀필먼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제트배송 판매자의 수수료율은 약 30%로 비싼 편이다. 그런데도 판매자들이 선호하는 것은 역시 제트배송의 최강점인 당일배송과 풀필먼트를 기반으로 하는 편리한 토털 서비스 때문이다.
이제 900만명이 넘는 쿠팡의 ‘와우 멤버십’ 회원들은 ‘로켓배송’이나 ‘제트배송’ 같은 당일배송 서비스에 익숙해져서 배송이 느린 오픈마켓 상품 구매는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쿠팡 입장에서는 직매입한 상품의 경우 매입액 전액이 매출액으로 잡히지만 오픈마켓 판매나 제트배송 판매의 경우 수수료율만큼만 매출액에 반영된다. 따라서 제트배송 판매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쿠팡의 회계상 수익구조도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물류센터만 좋으면 끝? 배송은 누가 하나
쿠팡의 자랑인 물류센터와 풀필먼트 서비스의 경쟁력은 막강하다. 하지만 아무리 물류센터가 좋아도 결국 누군가가 소비자의 집 앞까지 상품을 배송해 줘야 한다. 물류용어로는 최종소비자와 만나는 이 구간을 ‘라스트 마일’ 구간이라고 한다. 이 최종 배송은 누가 할까. 이런 배송과 물류 전반을 책임지는 회사가 바로 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다. 쿠팡 로지스틱스는 ‘쿠팡친구’, ‘쿠팡 플렉스’, ‘쿠팡 퀵플렉스’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쿠팡친구’는 쿠팡에서 직접 고용한 배송담당 직원으로 월급제로 운영된다. ‘쿠팡친구’에게는 쿠팡에서 차량도 제공하고 각종 장비와 유류비 등도 지원해 준다. 이에 반해 ‘쿠팡 플렉스’는 쿠팡에서 고용된 직원이 아니라 일반인이다. ‘쿠팡 플렉스’를 통해서 일하는 개인 배송기사는 본인이 소유한 차량을 통해 배송을 하고 배송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오토바이든 승용차든 이동수단에 특별한 제한은 없다.
‘쿠팡 퀵플렉스’는 ‘쿠팡 플렉스’에서 진화된 개념으로 대형 차량을 소유한 개인으로 가입 제한을 둔다. 따라서 승용차 소유자가 아니라 1톤 트럭, 냉동탑차, 저상탑차 등 물건을 더 많이 실을 수 있거나 특수 물건을 실을 수 있는 차량 보유자들만 계약이 가능하다. 또 다른 차이점은 ‘쿠팡 퀵플렉스’는 개인들과 직접 계약하지 않고 쿠팡과 화물차 업체들이 단체로 계약을 진행한다.
쿠팡은 자체 배송능력을 지속적으로 키워가고 있다. 이에 따라 2022년 6월부터는 한진택배에 위탁했던 ‘로켓배송’ 물량 월 700여만 개의 절반 이상을 자체 배송으로 전환했다. 한진택배는 쿠팡 배송물량의 대거 이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또 쿠팡 로지스틱스는 쿠팡의 풀필먼트 서비스 역량이 확대됨에 따라 자체 택배물량 외에 제3자 택배 사업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작년에 화물자동차운송사업자 신청을 해 승인을 받았다. 관련 규정상 자기 물량 이외의 다른 업체 화물을 운송하는 ‘3자물류’를 하려면 택배전용 번호판(노란식 ‘배’ 번호판)을 발급받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쿠팡의 이런 움직임으로 볼 때 3자물류가 더 진화된 풀필먼트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제트배송’ 확대에 진심인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제트배송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쿠팡의 수익도 빠르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쿠팡의 이커머스 부문 흑자전환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제트배송 덕분이다.
또 제트배송의 경쟁력이 뛰어난 이유는 머지않아 전국에 200만평 가까운 압도적 규모를 갖추게 될 쿠팡의 강력한 물류 인프라 덕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쿠팡은 아직 배가 고프다. 아마존닷컴의 사례로 볼 때 이커머스 사업의 마진율은 그리 높지 않다. 이 사업만으로 만족할 만한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따라서 쿠팡은 신사업에 계속 도전하고 싶어 한다. 쿠팡이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신사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2022년 11월호
[쿠팡] 미친 회사(?) 의 등장...한국 유통업 '전쟁' 속으로
성장 구가 오프라인 매장에 도전장
2010년 설립 후 로켓배송 등 새 기법 도입
피 튀기는 혈투...그 끝은 적자 대행진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의 유통업계는 미친(?) 회사인 쿠팡이 등장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장사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한다. 돈을 벌려면 당연히 마진을 남겨야 한다. 그런데 만약 어떤 회사가 물건을 팔면서 마진을 남기지 않는다면? 마진은커녕 오히려 적자가 증가하는데도 계속해서 물건을 싸게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미친 전략을 쿠팡보다 먼저 선보인 회사가 바로 미국 1위 이커머스 업체인 아마존이다. 쿠팡 역시 이 미친 전략을 한국에서 선보이며 유통업계 간의 끝 모를 전쟁이 시작됐다.
쿠팡의 전략이 한국에서 얼마나 성공을 거뒀는지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한국 유통업계의 역사를 살펴보자. 한국에 처음으로 인터넷 붐이 타올랐던 1999년만 해도 온라인쇼핑의 원조 격인 종합쇼핑몰 인터파크의 기세가 무서웠다. 삼성그룹에서 만든 삼성몰조차 인터파크에 밀렸을 정도다. 그런데 한국의 유통시장을 다 집어삼킬 듯 기세가 등등했던 한국 온라인쇼핑 시장은 2000년도의 IT 버블 붕괴 이후 상당 기간 성장 속도가 둔화됐고 삼성몰은 조용히 사라졌다.
2000년대는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전성기
2000년대 유통시장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매장들의 성장세가 탄탄했다. 한국 고급 매장의 대명사인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외에도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가 급속도로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며 엄청난 매출증가세를 보였다. 미국 부동의 1위인 월마트와 프랑스 까르푸가 한국 유통의 매운맛에 질려 한국에서 철수한 이후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3개 회사 간 점유율 전쟁이 치열했지만 이 시기가 한국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2년 현재는 오프라인 매장들의 기세가 다시 꺾이고 쿠팡을 중심으로 한 이커머스 회사들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반면 생필품, 식료품, 신선식품 위주로 구성된 대형 할인점의 매출은 심각한 정체 상태다. 전년도인 2021년에도 증가율이 고작 2% 수준이었다. 이제 소비자들은 할인마트 대신 쿠팡, 네이버쇼핑, G마켓, 마켓컬리 등을 이용한 온라인쇼핑을 큰 폭으로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대형마트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점포를 가지고 있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느냐가 중요했다. 하지만 2022년 현재는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전통시장에서 반경 1km 이내는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하고 대형마트의 출점을 금지하고 있다. 추가로 대형마트의 경우 매달 2번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하고 영업시간도 0시부터 10시까지는 영업을 금지하는 등 제한이 많다. 이는 온라인쇼핑 배송 경쟁에서도 대형마트에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대형마트 매장을 방문하는 횟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여러 가지 영향으로 한국 대형 할인마트들의 매장 수는 감소 중이다. 2018년에 상위 3개사의 합계 대형마트 수는 421개였으나 2022년 6월 말 현재는 406개로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15개가 감소했다.
대신 대형마트보다 마진율이 더 낮은 ‘창고형 할인마트’는 증가하고 있다. 코스트코, 롯데마트 맥스, 이마트 트레이더스 등 창고형 할인점은 소폭이나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할인마트들은 좀처럼 늘지 않는 매출을 확대하기 위해 일명 미끼상품을 출시하며 소비자들이 다시 매장을 찾아오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홈플러스는 치킨 자영업자들의 거센 반발과 역마진 우려에도 불구하고 반값 치킨인 ‘당당치킨’을 6990원에 출시하며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연이어 반값 피자까지 출시하며 가격 경쟁에 불을 붙여 경쟁사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저렴한 상품들을 출시하며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할인마트들의 극적인 매출 증대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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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요 3개사의 백화점과 아울렛 점포 수를 살펴보면 롯데백화점이 52개, 현대백화점이 23개, 신세계백화점이 17개를 운영 중이다. 주요 백화점 3개사의 점포 수 합계는 92개로 할인마트 상위 3개사 합계 406개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백화점 매장 수가 소폭이라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도 현대백화점은 여의도에 최고급 매장인 ‘더 현대 서울’을 신규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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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백화점 매장 수는 감소하지 않는 걸까. 대형마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험과 즐길거리가 많고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고가 명품 매장을 갖추고 있어 실적 회복세가 강하기 때문이다. 백화점 매출액 흐름을 살펴보면 2020년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전년보다 10% 감소세를 보였지만 2021년에는 23% 급증하며 회복세를 보였다. 2022년에도 엔데믹이 가까워 오면서 백화점 매출액은 계속 증가 추세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매출이 급감한 데 따른 기저효과도 크다. 코로나 훨씬 이전인 2018년 매출액이 30조원이고 2021년 매출액은 34조원이니 3년간 겨우 4조원 증가한 셈이다. 잘 따져보면 연평균 성장률은 4%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쇼핑 시장은 지금도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2010년대부터 온라인쇼핑 시장 본격 성장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온라인상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를 표현하는 용어는 다양하다. 전자상거래, 이커머스, 인터넷쇼핑, 온라인쇼핑이 모두 비슷한 용어들이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한마디로 터프하다. 무시무시한 이커머스 전쟁이 20년간 계속돼 왔지만 여전히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를 예측하는 건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 상황을 살펴보면 그동안 미친 전략을 펼쳐 왔던 쿠팡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접근해 있다. 이제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현황을 살펴보자.
온라인쇼핑 시장이 2000년대의 IT 버블 붕괴를 이겨내고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시점은 2010년대부터다. 일명 오픈마켓으로 불리는 G마켓, 옥션, 11번가의 기세가 등등했다. 전통의 유통 강호들인 신세계, 롯데, 현대그룹도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홈쇼핑 업체인 CJ몰, GS샵, NH몰도 가세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소셜커머스로 시작한 티몬, 위메프, 쿠팡까지 시장에 진입하며 온라인쇼핑몰 경쟁은 갈수록 격화됐다.
미국의 경우 온라인쇼핑 1위 사업자인 아마존닷컴의 점유율이 40~50%로 조사되고 있다. 반면 2010년대에 한국 온라인쇼핑 시장에서 점유율 50%는커녕 10%를 차지한 업체도 없었다. 1999년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국은 무려 20년 이상 유통업체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압도적인 1위 업체가 없을 뿐이지 온라인쇼핑 시장 자체는 지속적으로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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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집계한 한국의 전체 소매판매액은 2020년에 475조원으로 전년도의 473조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정체됐다. 코로나19로 소비가 침체됐기 때문이다. 대신 코로나19에 적응한 2021년에는 기저효과로 인해 전년 대비 9.1% 증가한 519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한국 전체 소매판매액의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4%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통계청 자료에서 가장 주목할 데이터는 바로 ‘온라인쇼핑 판매액’이다. 한국의 온라인쇼핑 판매액은 매년 연평균 20%의 증가율을 보이며 무섭게 성장해 왔다. 2018년에 113조원이던 온라인쇼핑 판매액은 2021년에는 187조원으로 3년 만에 무려 65% 급증했다.
이는 그만큼 온라인쇼핑 사업을 영위하는 쿠팡, 네이버쇼핑, G마켓 등의 매출이 급증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체 소매판매액 중 온라인쇼핑의 침투율(점유율)은 얼마나 될까. 한국의 2021년 온라인 침투율을 계산[온라인쇼핑 판매액 187조원 / 한국 전체 소매판매액 519조원 = 온라인 침투율 36%]해 보면 36%가 나온다. 그런데 이 숫자는 왜곡됐다. 승용차나 연료의 경우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좀 더 정확한 수치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2021년의 승용차와 연료 판매액 116조원을 전체 소매판매액에서 차감한 상태에서 온라인 침투율을 구해 보는 게 좀 더 현실에 가깝다. 이렇게 계산할 경우 2021년 기준 온라인 침투율은 무려 46%다.
계산 결과를 보니 사람들이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매장 중에서 선택해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의 절반을 온라인쇼핑으로 구매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쇼핑 침투율은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50%를 넘어 장기적으로는 70%, 심지어 90%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걸까. 이게 유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궁금증이다. 미래에는 사람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전혀 물건을 사지 않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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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온라인쇼핑 거래액과 침투율을 같이 살펴보자. 한국의 온라인쇼핑 침투율은 36%(승용차 및 연료 포함, 통계청)로 미국의 19.1%(추정치)나 중국의 24.5%(추정치)에 비해 유독 높은 편이다. 미국은 아마존닷컴이 맹위를 떨치고 있음에도 아직 온라인쇼핑 침투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도 알리바바와 징둥닷컴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는 온라인쇼핑 침투율이 낮다. 역시 한국은 세계 최강의 IT강국이다.
쿠팡, 미친(?) 회사의 등장과 1등의 조건
온라인 시장은 단 한 명의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시장에 가깝다. 검색 시장은 구글이 다 가져갔다. 동영상 시장은 유튜브가 다 가져갔다. 미국 온라인쇼핑 시장은 아마존이 다 가져갔다. 이 상황을 한국에 대입해 보자. 한국 검색 시장은 네이버가 다 가져갔다. 하지만 한국의 온라인쇼핑 시장은 쿠팡이 진입하기 전까지 다양한 경쟁사들이 시장을 잘게 쪼개 점유율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쿠팡이 한국 온라인 시장에서 1등을 하려면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 할까. 가격과 배송속도, 이 두 가지가 가장 핵심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과거 한국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쇼핑할 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한 곳의 쇼핑몰에 묶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70인치 TV’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는 어떻게 행동할까. 가격비교 사이트나 네이버쇼핑에서 ‘70인치 TV’를 검색해 저렴한 가격 순서로 정렬하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브랜드와 상품을 선택한다. 결국 가장 큰 고려 대상은 가격이 된다. 그런데 가격비교 사이트를 잘 관찰해 보면 가장 저렴한 쇼핑몰은 거의 매일 바뀐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소비자들은 특정한 한 곳의 쇼핑몰에 절대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
만약 지금 내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쇼핑몰을 창업하고 한국에서 1등이 되기를 원한다면 가능할까. 당연히 가능하다. 내가 파는 물건을 시세의 반값으로 낮추고 가격비교 사이트에 연동만 시키면 된다. 그러면 내 물건은 최저가 상품으로 노출돼 날개 돋친 듯 팔릴 것이다. 손해를 보면서 파니까 당연히 잘 팔릴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에서 1등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난다는 사실이다. 이런 미친 가격 경쟁은 하루이틀은 가능할지 몰라도 1년, 2년 지속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싸게 파는 이유는 뭘까. 적자 판매를 지속하다가 결국 망해서 폐업 정리할 게 아니라면 노림수는 하나다. 최대한 많은 충성고객들을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온라인쇼핑몰이 TV 제조업체로부터 TV를 대량으로 직매입해서 판매한다고 가정해 보자. A라는 쇼핑몰은 1000개를 주문하면서 5% 할인을 요구한다. 그런데 B라는 쇼핑몰은 10만개를 주문하면서 10%의 할인을 요구해도 된다. 이게 바로 규모의 경제다. 이로 인해 판매가격을 낮출 수 있고 이는 고스란히 가격 경쟁력이 된다.
이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당연히 경쟁사보다 훨씬 더 많은 고객을 단골로 확보해야 한다. 결국 고객을 압도적으로 많이 확보하는 회사가 승리하는 구조다. 어떻게 하면 고객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가격이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격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마존과 쿠팡은 바로 이 점이 달랐다.
아마존과 쿠팡은 그 핵심 전략을 배송속도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쿠팡은 월 4990원(현재 기준)의 ‘로켓 와우’ 멤버십을 도입하고 그와 동시에 로켓배송을 선보였다. 이런 빠른 배송을 무기로 ‘쿠팡 생태계’에서만 소비자들이 머무르게 유도해 한국에서 무려 900만명이 넘는 유료 멤버십 회원을 확보한 유통 공룡이 됐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사실 할인마트를 차를 운전해 왕복으로 다녀오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백화점과 스타필드 같은 복합쇼핑몰은 문화 생활과 즐거운 쇼핑의 결합이지만 할인마트는 단지 뻔한 생필품을 구매하는 귀찮은 행위를 하는 곳에 불과하다. 생필품 브랜드들은 너무 뻔해 굳이 직접 현장에 가서 골라야 할 이유가 없다. 온라인으로 주문해도 결국 내가 아는 그 맛이다.
쿠팡은 한국 소비자의 생필품 구매패턴을 아예 바꿔버렸다. 쿠팡으로 인해 소비자가 받은 이득은 뭘까. 기존의 2~3일 걸리던 느린 배송과 달리 로켓배송은 전날 밤 12시까지 주문하면 ‘새벽배송’, 당일 오전 10시 이전까지 주문하면 ‘당일배송’이 가능해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아껴줬다. 쿠팡의 일관된 목표는 소비자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거다.
쿠팡이 판매하는 상품 중에 소비자에게 가장 이득이 큰 상품은 뭘까. 쿠팡의 1위 PB상품인 탐사수(생수) 2리터다. 쿠팡은 이 탐사수 2리터 12개 세트를 유료멤버십 와우 회원에게는 6990원에 판매하고 있다. 1개당 583원꼴이니 웬만한 경쟁사 제품보다 저렴하다. 게다가 이 무거운 생수를 무료로 문 앞까지 배송해 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매 안 할 이유가 없다.
소비자들이 엄청난 편익을 안겨주는 이 생수 미끼상품만 이용하고 다른 상품을 전혀 구매하지 않는다면 쿠팡의 적자는 지금도 심각하지만 지금보다 더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미끼상품은 더 비싼 다른 상품들을 같이 판매하기 위한 효율적이고 영리한 수단이다. 그리고 이 미끼상품 전략은 한국에서 결국 성공하고 있는 중이다.
쿠팡, 미친 전략의 끝은 적자 대행진
쿠팡은 12년 전인 2010년에 설립된 회사다. 쿠팡이 처음부터 미친 전략을 구사했던 건 아니다. 초기에는 소셜커머스로 시작해 쿠팡, 위메프, 티몬이 빅3를 형성하던 시기가 있었다. 소셜커머스란 일정한 수 이상의 구매자가 모일 경우 특정 품목을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방식이다.
최소 구매 물량을 넘기기 위해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판매 정보를 확산시키는 것이 특징이었다. 대학생들이나 직장인 사이에서 쿠폰을 사면 할인 가격에 식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너무 낮은 사업이라 경쟁사들이 순식간에 100개 이상 난립하는 등 한계가 명확한 사업이기도 했다.
쿠팡은 이런 한계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로 로켓배송이라는 미친(?) 당일배송 서비스를 2014년부터 시작했다. 이때부터 쿠팡의 경이적인 적자 대행진이 시작됐다. 쿠팡이 아마존닷컴을 벤치마크했다는 건 그 당시 한국 경쟁업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단지 크게 경계하지 않은 건 아마존닷컴의 전략은 투자비가 너무 막대해 도저히 쿠팡이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곧 망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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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 튀기는 가격 경쟁과 배송 전쟁의 결과는? 당연히 엄청난 규모의 적자 대행진이다. 쿠팡은 2018년에 1조1279억원이라는 경이적인 영업적자를 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3년 뒤인 2021년에도 1조1208억원이라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영업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쿠팡의 미친 전략은 쿠팡뿐 아니라 모든 경쟁업체들을 다 같이 미치게 만들었다. 마켓컬리 역시 2021년에 영업적자가 2177억원으로 확대됐다. 위메프, 티몬, 11번가도 모두 줄줄이 적자 대행진이다. 한국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만성적인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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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적인 건 쿠팡의 경이적인 매출액 증가 현황이다. 쿠팡은 2018년에 4조3545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21년에는 380% 폭증한 20조8812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13%, 한국의 온라인쇼핑 증가율도 65%에 불과하다. 쿠팡의 성장속도가 경쟁업체들이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걸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쿠팡과 네이버의 1위 다툼
그렇다면 쿠팡의 경쟁업체들 매출액은 어느 수준일까. 유통업체들이 발표하는 각각의 매출액으로는 상호간 비교가 불가능하다. 가장 큰 이유는 직매입을 통한 매출과 단순 중개방식 매출의 차이 때문이다. 쿠팡은 한국에서 직매입 규모가 가장 큰 회사다. 직매입한 재고를 물류센터에 쌓아두고 실제 주문이 들어오면 창고에서 신속하게 배송한다. 회계상 직매입한 상품을 판매하면 매출액은 상품 판매액 전체가 잡힌다.
그런데 백화점의 경우 직매입보다는 백화점 내 임대공간에서 발생한 판매금액 중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네이버, G마켓, 11번가 같은 온라인 오픈마켓 또한 직매입보다는 대부분이 단순 중개방식이다. 이런 경우 수수료만 매출로 표기한다. 따라서 직매입 규모가 큰 쿠팡의 매출액과 단순 비교하면 수치가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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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온라인쇼핑 회사들의 점유율을 추정할 때는 매출액보다 총거래액(GMV)을 더 중요시한다. 상품의 총거래액이 좀 더 합리적인 데이터라 할 수 있다. 이 데이터를 모든 업체가 발표해 주면 상호비교가 편하지만 발표를 생략하는 회사도 많다. 네이버의 2021년 총거래액은 32조~36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쿠팡의 경우 업계에서는 약 34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2021년에 쿠팡과 네이버 중 총거래액 1위가 어디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2022년의 추정치는 쿠팡이 확실히 우위라는 업계 전망이 많은 편이다.
지난 2018년부터 엄청난 고래가 새로 온라인쇼핑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네이버다. 네이버는 한국의 압도적인 포털 사이트지만 한국 온라인쇼핑 시장을 다소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8년부터 ‘스마트스토어’라는 쇼핑몰 솔루션을 출시하면서 쿠팡과는 또 다른 파란을 일으켰다. 이 스마트스토어가 원래부터 강력했던 네이버쇼핑, 네이버페이와 결합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업계 전문가들 중에서는 아직도 쿠팡과 네이버 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어쨌든 이 2개사가 미래에도 양강 체제를 유지할 거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네이버의 2022년 2분기 실적발표회 때 네이버 경영진은 “하반기에 네이버와 쿠팡을 제외하면 다른 경쟁사들은 오히려 역성장하는 곳이 많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업계는 쿠팡과 네이버의 이커머스 점유율을 각각 20%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 1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업체가 한 곳도 없었던 한국의 치열했던 이머커스 경쟁 상황을 회상해 보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점점 상위 업체들로 이커머스 거래가 집중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하지만 여전히 경쟁은 치열하다.
쿠팡이 의미 있는 수준의 이익을 내려면 최소 30% 이상의 점유율을 가져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능은 하겠지만 언제쯤 이뤄질지가 관전 포인트다. 다행인 건 쿠팡 최대의 경쟁자인 네이버가 미국판 당근마켓으로 불리는 ‘포시마크’를 인수하면서 2조3441억원을 투자해 한국에만 자금을 집중 투입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쿠팡 입장에서는 호재라 할 수 있다.
쿠팡 시총, 롯데쇼핑+이마트+신세계+현대百의 4배
유통업체의 매출 기준은 제각각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쿠팡의 경우 직매입한 상품이 대부분이라 상품 판매액이 대부분 매출액으로 잡힌다. 반면 백화점이나 오픈마켓의 경우 수수료만 매출액으로 잡는 경우가 많아 동일한 비교가 어렵다. 특히 연결재무제표는 계열회사 전체의 매출을 합산하기 때문에 정확한 회사 간 비교가 어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계상 매출액 또한 의미가 있으므로 각 회사들의 수치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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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요 유통업체인 롯데쇼핑, 이마트,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주식 시가총액을 모두 합쳐도 8조3000억원에 불과하다. 미국에 상장된 쿠팡 시가총액 35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2021년에 롯데마트, 이마트, 신세계, 현대백화점 4개사의 연결재무제표상 매출액 합계는 50조4000억원으로 쿠팡 매출액 20조9000억원의 2.5배를 기록했다.
또 4개사(롯데마트, 이마트, 신세계, 현대백화점)는 모두 영업이익이 흑자였으며, 4개사 영업이익 합계는 1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쿠팡은 흑자는커녕 오히려 영업적자가 무려 1조1000억원이었다. 외견상 지표로만 보면 지금의 시가총액 격차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째서 투자자들은 적자투성이인 쿠팡의 밸류에이션을 버젓이 이익을 내고 있는 한국의 주요 유통업체들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하는 걸까. 단순히 쿠팡이 미국에 상장됐기 때문에 이런 격차가 발생하는 걸까. 아니면 쿠팡의 높은 미래 성장성과 정체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 간의 따라잡을 수 없는 초격차에 대한 냉정한 평가일까.

2022년 11월호
주가 공모가의 반토막 추락...공모가만 회복해도 따블인데
2021년 매출액 20조원 돌파
영업이익 흑자전환 가능할까
대만 진출, 현지 유통업 마진 초토화?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쿠팡은 가파른 매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투자자들에게 우려의 시선을 받아왔다. 가장 큰 이유는 지속되는 적자 때문이다. 쿠팡 스스로가 대놓고 ‘계획된 적자’라고 주장하니 투자자들도 이제는 쿠팡의 적자에 익숙해져 있다. 쿠팡이 한국에서 1년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하는 감사보고서를 통해 실적을 확인해 보자.
쿠팡은 2021년도에 전년보다 7조원 증가한 20조8812억원의 경이적인 매출액을 달성하고도 영업이익은 무려 1조1208억원의 적자를 냈다. 쿠팡의 2021년 결산실적 발표 후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쿠팡은 매출이 아무리 많이 늘어나도 구조적으로 흑자 달성 자체가 불가능한 사업구조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렇다면 2022년 1분기와 2분기의 실적은 어떨까. 쿠팡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Coupang, Inc.’는 미국에 상장된 미국 기업이다. 따라서 분기별 실적발표는 미국에서만 공시된다. 미국과 한국의 실적발표 자료는 비슷하지만 미국의 경우 한국 원화 실적을 달러로 변환하고 ‘한국 쿠팡’ 외에도 미미한 기타 실적이 섞여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다.
쿠팡의 2022년 2분기 실적 발표 후 시장은 의외의 결과에 환호했다. 쿠팡의 ‘조정 EBITDA’가 사상 처음 6600만달러의 흑자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쿠팡이 워낙 오래전부터 대놓고 계획된 적자라고 주장하며 흑자 전환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투자자들도 아예 흑자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터라 기쁨이 더 컸다.
물론 조정 EBITDA(순수 영업활동으로 발생하는 영업이익)는 실제 회계상의 영업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이 지표가 플러스로 돌아섰다는 건 머지않아 회계상 영업이익도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올 2분기 영업이익은 -6700만달러로 적자가 지속됐지만 전년 동분기 영업이익 -5억1500만달러와 비교하면 적자폭이 대폭 줄어들었다.
또 주목할 건 매출총이익률이다. 2021년 4분기에는 고작 15.9%에 불과했던 쿠팡의 매출총이익률이 2022년 1분기에는 20.4%, 2분기에는 22.9%를 기록하며 확연히 좋아지고 있다. 수익과 관련된 주요 지표가 확실하게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쿠팡의 본격적인 흑자 전환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쿠팡, 영업이익 흑자전환 가능할까
쿠팡의 수익이 개선되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자. 첫 번째 이유는 매출 성장세로 인한 규모의 경제 효과를 꼽을 수 있다. 매출이 증가할수록 대량구매로 인한 단가 인하가 가능해진다. 쿠팡은 2022년에도 30% 이상의 매출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쿠팡의 막강한 풀필먼트 서비스를 쿠팡의 ‘오픈마켓 판매자들’에게 제공하는 ‘제트배송’ 규모가 점점 더 커지면서 마진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유료 멤버십 서비스인 ‘와우 회원’ 가격을 2500원에서 4990원으로 단숨에 2배 인상했기 때문이다.
쿠팡의 ‘와우 회원’ 가입자 수는 2021년 말 기준 900만명인데 이들에 대한 멤버십 가격 인상이 2022년 6월에 실시됐다. 멤버십 가격 인상이 본격적으로 수익에 반영되는 시기는 2022년 3분기부터다. 가격 인상에 따른 쿠팡의 추가적인 수익을 계산해 보면 [유료회원수 900만명 × 2490원(인상금액) × 12개월 = 약 2700억원]이다. 연간 2700억원의 추가 수익은 웬만한 일반 기업들에겐 큰돈이지만 적자 규모가 1조원 이상인 쿠팡에겐 소소해 보인다. 쿠팡은 이번 파격적인 가격 인상으로 회원 이탈이 클 것을 우려했지만 실제 이탈고객 수는 미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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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을 보면 쿠팡이 보인다. 쿠팡은 궁극적으로 ‘와우 회원’ 월 멤버십 가격을 최대 얼마까지 올릴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 볼 때 아마존의 2014년 멤버십 가격인 월 9900원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이렇게 월 멤버십 가격 최대치를 가정해 다시 계산해 보면 [유료회원수 900만명 × 7400원(최대 인상 추정 금액 차액) × 12개월 = 약 8000억원]이 산출된다.
쿠팡이 대규모 고객이탈 없이 장기적으로 월 멤버십 가격을 9900원까지 올릴 수 있다면 2021년보다 약 8000억원의 추가적인 이익 증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현재의 치열한 경쟁 상황으로 볼 때 이런 파격적인 멤버십 가격 인상은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이런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쿠팡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추가적인 혜택을 계속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비자들은 냉정하게 이탈해 버릴 가능성이 높다.
쿠팡, 공모가만 회복해도 ‘따블’...가능할까?
지금으로부터 1년 7개월 전인 2021년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당시 쿠팡의 공모가는 35달러였다. 상장 당일 한때 공모가의 2배에 가까운 69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9월 말 기준 쿠팡 주가는 공모가의 절반인 17달러로 폭락해 수많은 투자자들을 슬픔에 빠뜨렸다.
공모가 결정 당시에는 고평가 논란이 있었지만 그로부터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쿠팡의 2021년 매출액은 2020년보다 7조원 증가한 21조원을 기록했다. 2022년에도 매 분기 매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쿠팡의 물류센터는 훨씬 더 많아졌다. 쿠팡의 유료 멤버십 와우 회원 수는 300만명이 증가해 900만명을 돌파했다. 와우 회원 월 멤버십 가격은 2500원에서 2배 오른 4990원이 됐다.
2021년에도 무려 1조원이 넘는 심각한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쿠팡이 마침내 2022년 2분기에 사상 처음 ‘조정 EBITDA’ 기준 흑자로 돌아섰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의 점유율은 드디어 20%를 돌파했다. 쿠팡의 경쟁업체들 중 상당수가 새벽배송 시장에서 철수하고 있다. 쿠팡은 이제 한국뿐 아니라 대만, 일본 등에도 진출해 아시아 시장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쿠팡에게는 어려운 과제들이 남아 있다. 한국의 온라인 침투율은 이미 36%를 돌파했고, 온라인에서는 판매가 발생하지 않는 승용차·연료 부문을 제외하면 온라인 침투율은 46%를 넘어섰다. 따라서 앞으로 온라인 시장 성장세가 둔화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또 음식배달 서비스 시장의 치열한 경쟁으로 ‘쿠팡이츠’가 3위권에서 정체돼 있는 상황도 고민스럽다. 추가로 투자비용이 부담스러운 퀵커머스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도 쿠팡에게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여전히 한국에서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경쟁은 끝나지 않았고 치열하다.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안해도 쿠팡의 체력은 신규 상장 당시인 1년 7개월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쿠팡은 좋은 타이밍에 기업공개(IPO)를 진행해 무려 5조원의 현금을 손에 넣었다. 쿠팡의 성장률은 한국의 그 어떤 이커머스 기업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오프라인 유통회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투자자들은 정체돼 있는 회사보다 성장하는 회사의 주식을 좋아한다. 이제는 쿠팡의 주가가 공모가보다 절반 이상 폭락해 있는 현재의 상황이 절망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는 시기다.
당신은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이 점유율 30%를 차지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유료 멤버십 와우 회원의 월 멤버십 가격을 지금의 4990원에서 2배인 9990원으로 올리는 게 언젠가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지금 쿠팡의 ‘와우 회원’ 멤버십을 가입해 이용하고 있는가. 쿠팡이 대만 시장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쿠팡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2022년 11월호
소비활동은 가상세계에서
현실과 가상공간 잇는 소비 증가
메타커머스 시장 급성장 견인도
| 박우진 기자 krawjp@newspim.com
| 강정아 인턴기자 rightjenn@newspim.com
“로블록스(메타버스 게임)에서 유행하는 총이라고 하는데 친구들도 많이 갖고 논다고 하니 사줄 수밖에 없더라고요.” -12살 자녀를 둔 학부모 A 씨
MZ세대의 다음 세대로 알파(α)세대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사회, 교육 등 다양한 면에서 기존 세대들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 미디어 이용에 능숙하며 틱톡, 제페토 등 영상과 3차원적 요소를 체험하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에 매력을 느낀다. 알파세대는 특히 플랫폼 경험에 그치지 않고 활발한 소비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대세로 떠오른 메타버스...실제 소비로 이어진다
알파세대에게 메타버스는 매력적인 3차원 가상세계다. 다양한 메타버스 플랫폼은 알파세대 사이에서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닐슨코리아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메타버스 플랫폼인 네이버Z의 제페토 이용자는 7~12세가 50.4%, 13~18세가 20.6%를 차지한다. 알파세대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용이 늘어나면서 기업들은 메타버스 이용자를 타깃으로 하는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장난감 총인 너프건을 판매하는 해즈브로 코리아는 올해 3월부터 미국의 게임업체 로블록스와 협업해 실물 너프건을 구매하면 로블록스 맵에서 동일한 상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 코드를 제공한다. 가상세계와 현실에서 동시에 사용 가능한 것이다.
해즈브로 코리아 관계자는 “로블록스와 협업한 너프건의 구매 연령대는 만 7~12세”라며 “올해 1분기 기준 12%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그는 “실물 제품보다 로블록스와 협업한 제품이 인기”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메타버스에서 잘 노는 아이들의 특징을 파악해 제품을 출시했고, 실물과 똑같기에 게임에서 돋보이고 싶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로블록스와의 협업 제품은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서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메타버스 관련 상품이 나오면서 메타커머스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메타커머스는 메타버스에서의 경험이 오프라인 소비로 이어지도록 하는 새로운 거래 방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인더스트리아크는 메타커머스 관련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시장 규모가 2021년 9억달러(약 1조1761억원)에서 2026년 32억달러(약 4조1817억원) 수준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알파세대의 특성이 메타커머스 시장의 성장을 이끌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알파세대를 처음 정의한 호주의 사회학자 마크 맥클린들은 알파세대는 소비 이상의 경험과 경험의 공유를 중시한다고 했다. 또한 이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소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덧붙였다.
“아직 초기단계인 메타커머스, 마케팅 전략 중요”
메타커머스 시장의 성장과 시장 내에서 알파세대의 역할이 커지면서 이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메타버스에서의 경험으로 의류, 패션 관련 메타 프로덕트가 만들어지고 메타버스 상에서 이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커뮤니티가 생겨나는데 기업들이 이런 커뮤니티를 공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알파세대는 메타커머스 시장의 미래 고객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소비 활성화를 위한 마케팅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마켓플레이스가 활성화되고 더 다양한 상품이 나와 알파세대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메타커머스 시장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관련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 교수는 “아직 메타버스에서 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면서 “블록체인 관련 법률이나 거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지갑, 가상화폐 등 메타커머스 시장을 지탱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메타커머스 시장도 성장하고 보편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파세대의 메타커머스 소비 활동을 논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제페토나 로블록스와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 내 커머스가 알파세대의 관심을 끄는 것은 맞지만 아직 커머스라는 의미를 붙일 만큼은 아니며 마케팅적 요소에 불과하다”면서 “알파세대는 온·오프라인의 경계 자체가 무의미한 소비를 할 수 있기에 기업이 끊임없이 상품을 노출해야 미래의 유의미한 소비력을 갖춘 주요 소비자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2년 11월호
그들만의 문화 '온라인 무덤'
메타버스 성범죄 처벌 한계
10대 이용자들, 직접 공론화·응징
법보다 예절 문화 강해져...“관련 교육 필요”
| 김신영 기자 sykim@newspim.com
| 신정인 인턴기자 allpass@newspim.com
친구와 함께 로블록스를 1년간 즐겨해 왔다는 중학생 김모(14) 군은 지난 9월 악질 유저의 남자 아바타로부터 게임 내에서 성희롱과 스토킹을 당했다. 그는 “부캐(부캐릭터)인 내 아바타가 그런 일을 당하는데 꼭 직접 당하는 것처럼 수치심이 들었다”며 “트라우마로 한동안 그 맵에 접속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가해 아바타를 직접 신고했으나 불쾌한 마음이 계속됐다”며 “캡처된 게임 화면을 오픈채팅방과 틱톡에 올려 공론화하고 다른 유저들에게도 주의를 요구했다”고 했다.
아바타 성범죄 당해도 처벌 ‘한계’
메타버스 게임 로블록스와 제페토는 각각 이용자의 60% 이상이 만 16세 이하, 이용자의 80% 이상이 10대 청소년으로 알파세대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메타버스 게임이다. 이용자들은 게임 내 콘서트장이나 교실, 공원 등에서 가상 모임을 통해 아바타끼리 활발한 사교 활동을 펼치며 제2의 자아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최근 메타버스 게임 내에서 성추행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부캐의 사교장’이 아닌 ‘10대 무법지대 온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문제는 메타버스 특성상 높은 몰입도를 요하기 때문에 아바타가 성범죄를 당하더라도 다른 게임에 비해 유저의 성적 수치심이 더 클 수 있다는 것. 이에 더해 아바타가 성범죄를 당했을 때 적절한 법적 처벌이 미비한 상황이다.
메타버스 게임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의 심각성이 커지자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을 발의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민형배 무소속 의원은 다른 사람이 생성한 아바타의 신체 내부에 성기나 도구를 넣는 행위 등을 하는 이용자에게 최대 징역 2년형을 내리는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가상공간에서 다른 아바타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동을 하거나, 타인의 아바타를 스토킹하면 징역 1년 이하 혹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제페토 이용자의 경우 90%가 외국인으로, 가해자의 서버가 해외에 있거나 외국인일 경우 처벌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또 게임 내 자체 가이드라인과 윤리 규정이 있으나 비속어를 조금만 다르게 조합하거나 새로운 계정을 만들 경우 제한하기 힘든 상황이다.
남완우 전주대 교수는 “현재로선 게임 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아이디를 차단하거나 강퇴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며 “그마저도 (기능이) 잘 활성화돼 있지 않다. 아이디를 바꾸면 누군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피해 사례 온라인에 공론화...‘무덤 제도’ 등장
이에 이용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 틱톡 등을 통해 가해자 아바타의 정보를 공유하고 피해 사례를 밝히는 등 공론의 장을 만들고 있다.
10대가 주로 쓰는 영상 플랫폼 ‘틱톡’에 ‘로블록스 신고’를 검색하면 실제로 남자 아바타가 여자 아바타에게 성적 행동을 하는 게임 녹화 영상과 아이디까지 확인할 수 있다. 또 유튜브에서는 ‘로블록스에서 절대 하면 안 되는 5가지 행동’, ‘제페토 채팅 주의사항’ 등 메타버스 게임 예절 수칙이 담긴 영상도 공유되고 있다.
아바타들이 가해자 아바타를 직접 응징하는 경우도 있다. 영남대 재학생들이 운영 중인 메타버스 플랫폼 야생월드에는 ‘무덤’이라는 공간이 존재하는데, 규정을 위반한 아바타의 경우 다른 아바타들이 이곳에 집어넣고 접속을 못하도록 사형시키기도 한다.
서승완 영남대 메타버스 대표는 “외설적인 아이디에 나체 여성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아바타가 있었는데 교내나 경찰서에서 마땅히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었다”며 “결국 내부적으로 공동체 규칙에 의거해 퇴출시켰다. 현재 그 아바타를 포함해 9개의 아바타 무덤이 있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법보다 질서 문화가 중요해진다
법적 처벌에 한계가 있는 메타버스 내에서 이용자들 간 질서와 예절 문화는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상균 경희대 교수는 “메타버스는 특정 국가를 넘어 전 세계인들이 들어와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법보다 훨씬 그 대상 범위가 넓어진다”며 “메타버스를 통해 서구권과 우리나라에서 갖고 있는 좋은 제도나 인식들을 서로 수용하고 공유한다면 적절한 합의와 질서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또 전문가들은 초등학교·중학교에서 메타버스에 대한 예절 교육이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운택 카이스트 교수는 “메타버스는 단순히 새로운 공간을 넘어 새로운 사회로서의 가치로 봐야 한다”며 “이에 맞춘 윤리와 예절 교육도 고민해야 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남 교수도 “중학교에선 현재 메타버스 기술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있다”며 “가상공간이 활성화될수록 정말 중요한 건 이에 대한 윤리나 철학 교육”이라고 말했다.

2022년 11월호
영상부터 음성까지…AI 활용 능숙
AI 목소리 빌려 콘텐츠 제작
관련 산업 가파른 성장세 예고
| 이성화 기자 shl22@newspim.com
| 방보경 인턴기자 hello@newspim.com
채린: 어, 뭐야. 얘는 3년 전 내 친구잖아. 카톡 해야지. 하이, 나 기억나?
우주: 기억나 ㅋㅋㅋ 너 예전에 나랑 결혼하기로 했었잖아 ㅋㅋㅋ
채린: 아직도 그걸 기억하냐?
아동용 만화나 드라마의 대본이 아니다. 초등학생이 영상에 입힌 음성을 받아쓴 것이다. 이 음성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이나 유튜브에서 알파세대에게 유행하는 콘텐츠 ‘버실’이다. ‘버전 실시간’이라는 의미를 가진 해당 콘텐츠는 특정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가상인물들이 대화하는 상황극이다.
이런 음원은 어느 영상에나 쓸 수 있다. 캐릭터들이 직접 나와서 상황극을 하는 영상에서도 쓰지만, 무작정 슬라임을 만지는 영상에도 넣곤 한다. 슬라임 영상은 시각적 자극을 주지만 소리는 없다. 그 공백을 메우려 음원을 넣는 것이다.
알파세대, 인공지능 더빙으로 콘텐츠 만든다
핵심은 틱톡 유저들이 올리는 상황극 음원이 대부분 인공지능(AI) 더빙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더빙이란 사용자가 입력한 텍스트를 인공지능이 읽어주는 서비스다. 유저들은 이를 직접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이 만든 음원을 다운로드해 쓰곤 한다.
인공지능 더빙 열풍은 2020년 말부터 시작돼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타입캐스트 음성을 입힌 영상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조회수 22만이 훌쩍 넘는다. 알파세대는 틱톡 유저들이라면 타입캐스트를 전부 다 알 거라고 입을 모은다.
알파세대는 인공지능 더빙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즐긴다. 상황극에 이입해서 “채린이 말고 하은이도 주인공 해주세요”, “카밀라 힘내” 하며 좋아하는 캐릭터를 응원하기도 한다. 11살 동생과 함께 타입캐스트를 즐겨본다는 신지윤(13) 양은 “둘째가 타입캐스트 상황극을 볼 때는 집안이 시끄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음원을 다운받기보다는 직접 제작하는 유저들도 상당수다. 올해 7월부터 타입캐스트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 우지윤(12) 양은 “타입캐스트를 보다가 나도 이런 걸 만들어서 틱톡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10대 겨냥한 인공지능 음성 사업, 성장세 보인다
10대들은 인공지능 보이스를 이용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 익숙하다. 실제로 네오사피엔스 측 관계자는 “초등학생 대부분이 타입캐스트를 알고 있을 것”이라며 “(해당 연령대 이용자는) 몇십만 명 정도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자들도 알파세대가 스마트 기기의 음성으로 소통한다는 데 동의한다. LG경영연구소의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신세대’는 알파세대가 단순히 AI에 익숙해지는 것뿐 아니라 정서적 관계도 형성한다고 진단했다. ‘기분이 별로네. 알렉사, 기분 좋은 음악 부탁해’라거나, ‘시리야,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해 줄래?’ 하고 인공지능으로부터 위로를 얻는다는 것이다.
기업들도 알파세대를 겨냥한 인공지능 음성 사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네이버클로바의 ‘클로바 스피커 똑똑사전’이 대표적으로, 질문의 의도와 맥락을 이해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할 수 있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은 뭐야?’라는 질문에 이어, 주어를 밝히지 않고 ‘그럼 지구보다 얼마나 커?’라고 물어도 답변해 주는 식이다.
네이버클로바는 현재 똑똑사전에 있는 4개 주제 외에 아이들의 관심사를 고려해 주제를 추가할 예정이며, 스피커에 대한 고도화도 진행 중이다. 네오사피엔스 역시 타입캐스트에서 발전한 콘텐츠 서비스나 가상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인공지능 음성 서비스, 앞으로의 전망은?
인공지능 음성 서비스는 앞으로 더욱더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MarketsandMarkets)은 2021년 약 83억달러로 예측된 음성인식 시장 규모가 연평균 21.6% 성장해 2026년에 22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공지능 음성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9월 2일 네이버는 인공지능 더빙 서비스 ‘클로바더빙’의 가입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2020년 2월 처음 서비스를 선보인 지 2년 6개월 만이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사업을 기반으로 음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있다. 코난테크놀로지는 기존에 검색 솔루션 서비스를 주로 제공했으나 2017년부터는 텍스트, 동영상, 음성 관련 AI 기술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
코난테크놀로지 관계자는 “데이터나 발음 사전이 충분하지 않으면 대본을 입력했을 때 부자연스럽거나 합성할 때 에러가 날 수 있다”며 “검색과 텍스트 분야 노하우를 통해 품질 높은 음성합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기업들은 인공지능이 사람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집중하고 있다. 장준혁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음성합성 같은 경우 인공지능 음성 서비스의 최고 단계”라며 “최신 기술 성능이 공표되지 않아서 그렇지, (기술은) 우리 생각보다 더 빨리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장 교수는 “3년 전에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각광받았으나, 거실이라는 특정 공간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한계가 있었다”며 “지금 인공지능 음성 시장은 자동차, 네이버클로바 등 실제적인 서비스가 가능한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2년 11월호
[포스트MZ 'α세대'] "돈도 중요" 10대부터 재테크
“현금·카드 대신 스마트폰으로 결제해요”
학생 수 줄어도 시장 규모는 줄지 않아
| 이성화 기자 shl22@newspim.com
중학생 정모(14) 군은 요즘 경제 공부에 한창이다. 지난해에는 누나들을 따라 처음으로 주식을 구매했고, 얼마 전부턴 새로 개설한 체크카드 계좌로 용돈을 받고 있다. 정군은 “체크카드가 생긴 뒤로는 줄곧 삼성페이도 사용 중”이라며 “현금을 내는 것보다 늘 쓰던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게 더 편하고 익숙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모 초등학교에서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모 교사는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제 교육을 진행 중이다. 그의 반 학생들 중엔 부모의 권유나 증여로 이미 주식을 보유 중인 경우도 많다. 이 교사는 “과거에 비해 아이들의 경제 관심도가 높아진 걸 체감한다”며 “부동산이나 주식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사업가인 아버지의 권유로 삼성전자, 애플, 디즈니 등 여러 주식을 보유 중인 학생도 있다”고 했다.
‘금융 주체’로 떠오른 알파세대...접근 방식도 다양
유튜브 채널 ‘고등개미’에 출연했던 14세 주식왕 쭈니맨은 지난해 주식시장 호황 기간에 약 5500만원의 투자 수익을 벌어들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쭈니맨은 부모가 제공한 초기 자금으로 수익 내는 방법을 본인이 직접 연구했다고 밝혔다. 현재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재테크 비법을 공유하고 있다.
간단한 퀴즈나 테스트를 진행한 뒤 맞춘 만큼 포인트(코인)를 얻는 ‘클래스쿨’이나 ‘수학 대왕’ 등 리워드 애플리케이션(앱)도 10대들 사이에서 인기다.
클래스쿨을 운영하는 이태환 마커룸 대표는 “학생들이 학습도 하고 돈에 대해 긍정적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앱을) 시작하게 됐다”며 “알파세대를 포함해 미래 세대들은 점점 돈에 대해 관심이 많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알파세대가 돈 생각에 빨리 눈뜬 계기는?
이렇듯 알파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경제에 일찍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란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를 말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알파세대는 이른 시기부터 경제 교육을 받고 디지털을 잘 다루기 때문에 독립적 구매자로서의 역할도 (이전 세대보다) 더 강력해졌고 가족의 소비에까지 영향력을 많이 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들이 큰돈을 쓰지 않더라도 인터넷에 익숙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고객”이라며 “온라인상에서 이들이 1000원, 2000원을 쓰더라도 워낙 인원이 많기 때문에 매출 규모가 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 호황기가 이어지면서 부모의 영향으로 투자를 접하게 된 사례도 적지 않다. 다만 주식계좌 개설이 불가능한 연령층인 만큼 부모가 대리인으로 개설하거나 주식을 증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승환 한국투자증권 대리는 “최근 몇 년간 증시가 호황을 띠면서 자연스레 부모들이 자녀들의 주식 계좌를 만들어 주는 빈도가 늘었다”며 “주식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10대들이 주식과 접하고 관심을 가질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새 손님’ 맞이 현황
금융권에서도 이런 흐름에 따라 알파세대 맞춤형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다만 아직 고정 수입이 없는 세대인 만큼 업계에선 이들을 금융투자 주체보다는 잠재 고객으로 파악하고 있다.
알파세대는 경제활동을 혼자 할 수 없기에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끔 한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6월 초등·중학생을 위한 금융 플랫폼 ‘아이부자’ 앱을 선보였다. 이는 청소년들이 ‘모으고·쓰고·불리고·나누는’ 다양한 금융활동을 벌이며 건전한 금융 습관을 형성하는 국내 최초의 금융 페어런트 테크(돌봄 기술) 앱으로 꼽힌다.
‘아이부자’ 이용자는 금융 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 ‘계획하기’ 기능을 통해 자녀가 정해진 기간 스스로 용돈 사용계획을 세워 부모에게 용돈을 요청할 수 있다. 용돈이 부족할 경우 ‘홈알바 미션’을 이용해 자녀가 부모와 집안일 등의 미션을 정하고 완료할 경우 용돈을 스스로 벌 수 있게끔 했다.
간접적인 투자 체험도 가능하다. 부모가 주식을 사고, 아이는 부모의 계좌를 같이 보면서 주식을 경험하는 기능이다. 자녀가 주식 매매 조르기 기능으로 매입과 매도를 요청하면 부모는 자녀와 상의한 뒤 해당 주식을 사거나 팔아준다.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는 체험보다는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비바리퍼블리카의 팀 ‘틴즈 사일로’는 지난해 7월 앱 내에 만 14세 미만 사용자만 이용할 수 있는 ‘유스 홈’ 페이지를 개설했다. 해당 연령층의 사용자만이 이 페이지를 볼 수 있으며 지갑, 돈 보내기, 용돈기입장, 저금통 등 서비스 이름도 이해하기 쉽게 설정돼 있다. 또 앱 내 ‘머니 스터디카페’를 통해 금융생활을 위한 금융 정보와 기초 지식을 공부할 수 있다.
비바리퍼블리카 관계자는 “미성년자들이 토스를 통해 주체적인 금융생활을 하게끔 도움을 주고 싶다는 목표 아래 틴즈 사일로가 만들어졌다”며 “10대들이 토스 앱을 더 잘 사용하도록 만들기 위한 아이템들을 고민하고 있고, 그 일환의 하나로 만 14세 미만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2022년 11월호
[포스트MZ 'α세대'] 전통적 직업관은 가라
적성·흥미가 직업 안정성보다 중요해져
가상공간 디자이너 등 디지털 부업 관심
유튜브·제페토 활용한 크리에이터 증가
| 이정윤 기자 rightjenn@newspim.com
| 강정아·박두호·정현경 인턴기자
17살 드라마제작자, 현실에선 어렵지만 가상현실 플랫폼 ‘제페토’에서는 가능하다. 제페토 드라마는 제페토 내 아바타들의 연기를 촬영해 영상으로 제작한 웹드라마다.
이호(17) 양은 제페토 드라마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캐스팅부터 기획, 촬영, 편집 등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유튜브와 제페토 플랫폼을 활용해 용돈도 직접 번다. 수익은 달마다 다르지만 한 달 용돈으로는 충분한 정도라고 한다. 이 양의 유튜브 구독자수는 1만2000여 명, 누적 조회수는 310만회를 넘었다. 학교생활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일진이 착해지는 과정’은 조회수 56만회를 기록했다.
평생 직장은 없다...워라밸 중요한 MZ세대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 준비 중인 C(27) 씨는 “잦은 야근과 업무에 시달리다 보니 나를 챙기고 싶었다”며 퇴사 이유를 밝혔다. C 씨는 높은 연봉을 보장받았지만 과중한 업무로 퇴사하게 됐다. 그는 “다음 회사는 적절한 연봉 수준이면서 저녁 있는 삶이 보장되는 곳으로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을 지칭하는 MZ세대는 일과 삶의 균형이 맞춰지는 일자리를 선호한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는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중요해진 MZ세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MZ세대 중에서도 90년대 중후반생인 Z세대부터 직업 가치관에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났다. 20대는 직업을 선택할 때 수입과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비율이 56%로, 처음 60% 밑으로 떨어졌다. 적성과 흥미를 응답한 비율은 20.6%로, 50대와 비교해 2배 이상 늘었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연구센터 연구위원은 “MZ세대는 자신의 재능과 연결시켜 수익 극대화 방법을 고민한다”며 “유튜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거나 아이돌 굿즈를 만드는 등 돈 버는 방식에 인식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가상공간 디자이너, 미래 유망 일자리
알파세대가 포함된 10대에서 처음으로 순위 변화가 생겼다. 20대 이상의 모든 세대에서 수입 다음으로 안정성을 택했지만 알파세대는 적성과 흥미가 안정성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알파세대는 수입과 안정성을 합한 응답이 51%를 차지했고, 적성과 흥미를 택한 비율이 31.3%로 20대 응답보다도 11%p 늘었다. 50대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수치다.
이들은 직업의 안정성보다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우선시한다. 가상공간은 알파세대의 흥미와 적성을 발현시키는 공간으로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조사에 따르면 2019년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455억달러로 집계됐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2030년에는 시장 규모가 5조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날 전망이다. 2016년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영국의 미래연구소가 발간한 ‘미래의 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생 65%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보고서는 “2025년에는 수천만 명이 가상공간에서 일하고, 놀고, 여행하고, 만나서 어울리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며 “미래 세대의 많은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가상공간에서 건물을 지으면서 경력을 쌓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에 주목할 새로운 직업으로 가상공간 디자이너를 꼽았다. 가상공간 디자이너는 가상공간에 나오는 건물과 풍경을 실제처럼 만들고 캐릭터의 표정과 목소리,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구현해 이용자들에게 몰입감을 주는 직업이다. 이들은 가상공간을 현실과 구별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디지털 문화 해설가도 새로운 직업으로 제시했다. 직장에 있을 때와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있을 때 정체성이 다른 것처럼 각각의 가상공간에서도 정체성을 달리할 것이다. 디지털 문화 해설가는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정체성을 표출할 때 사용하는 ‘이미지 언어’ 데이터를 분석한다. 디지털 문화 해설가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각의 가상공간에서 어떤 이미지가 유행하고 있는지를 파악해 로고를 만드는 등 마케팅 활동을 한다.
제페토에서 아이템을 제작해 판매하는 것처럼 알파세대는 자신의 능력을 가상공간에서 발현해 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길 것이다. 현실에서 일러스트레이터를 하면서 동시에 가상공간 디자이너를 부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창환 극동대 교수는 “현실세계뿐만 아니라 가상세계에서도 돈을 동시에 벌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디지털 부업에서 시작해 전업으로 갈 수도 있고, 처음부터 전업을 삼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직업 가치관의 변화를 시사했다.
최 연구위원은 “알파세대는 연령과 사회 변화에 따라 다양한 직업을 가질 것”이라며 “베이비붐 세대가 30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하던 방식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22년 11월호
[포스트MZ 'α세대'] 집단 탈피…이젠 개인 교육
교과서 만능론은 옛말
“저출생이 오히려 기회”
| 지혜진 기자 heyjin@newspim.com
| 이태성 인턴기자 victory@newspim.com
말레이시아에 사는 알파세대 도라(Dora, 12)는 미국형 사립학교인 달랏국제학교(Dalat International School)에 다니고 있다. 이곳 학생들의 목표는 조별토론 등의 방식으로 각자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이다. 과목별로 교과서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페이지를 다 읽진 않는다. 교사가 챕터마다 설명해 주는 내용을 중심으로 공부한다.
학생들은 매 학기가 시작되면 MAP 테스트를 본다. MAP 테스트는 학업 성취도를 측정하는 온라인 시험이다. 이 시험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제학교 학생들과 자신의 영어, 수학 점수를 비교할 수 있다. 학부모는 시험 결과를 토대로 자녀의 학업 수준을 파악한다.
학교의 평가 방식은 중간고사는 없고 기말고사만 있다. 대신 1주일에 한 번 혹은 챕터가 끝날 때마다 시험을 본다. 숙제는 매일 끝내야 하는 게 아니고 학교 친구들과 협력해 3~7일 동안 완성하는 식이다.
알파세대 맞을 준비하는 해외 학교들
이처럼 해외에선 변화하는 학생들의 특성에 맞춰 학교의 모습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시험 성적이 아닌 자체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거나, 프로젝트식 수업으로 학생들의 개별 역량 강화에 힘쓰는 식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미래학교 칸랩 스쿨은 온라인 무료교육 사이트 ‘칸 아카데미’의 설립자 살만 칸이 설립한 사립학교다. 무학년제, 프로젝트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무학년제란 연령 대신 학습 수준과 목표를 기준으로 학습 집단을 구성하는 제도다.
또 시간표와 학습 목표 등을 학생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이끈다.
스웨덴의 프트럼 스콜라는 6세부터 16세의 학생들이 통합 교육을 받는다. 여기도 연령이 아니라 학습 수준에 따라 학년이 나뉜다. 주 17시간의 교실 수업 외에 팀 단위 프로젝트 수업이 함께 운영되며 교사는 지식 전달보다 팀을 이끄는 역할을 맡는다.
네덜란드의 스티브잡스 스쿨엔 정해진 교실이 없다. 전교생은 각자의 스마트기기를 가지고 다니며 학교 안 어디에서나 학습을 할 수 있다. 수업의 약 45%는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온라인 학습으로 진행되며 학년 구분 없이 이뤄지는 토론 등 오프라인 활동도 준비돼 있다.
“개인 성장 초점”...알아도 적용 못하는 한국 교사들
국내의 교육 전문가들은 알파세대를 제대로 길러내기 위해선 ‘지식 전달’이 아닌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경로가 많아진 만큼 교육의 방향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미래교육 대비 수준이 해외에 비해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고 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미래세대를 위한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며 “교육부의 교육과정도 역량 개발 중심으로 개편됐다”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을 살펴보면 ‘미래사회 역량 함양이 가능한 교육과정 개발’, ‘모든 학생의 개별 성장 맞춤형 교육과정 구현’ 등이 교육과정 방향으로 제시돼 있다. 당국도 차별화된 미래교육의 필요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 현장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학습 과정에서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교사들도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제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초등교사는 “교사들은 교과목별로 정해진 시수 안에 진도를 다 나가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며 “교과서 대신 다른 활동을 하면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교과서의 이 부분은 왜 빼먹냐’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도 “우리나라가 문서상으로는 이미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학교 현장에선 그것이 잘 이행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알파세대에 맞는 방법론 개발해야”
한국의 미래교육을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는 사범교육의 부재다. 학생들은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에 대한 교육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교사 양성 과정에서 역량 중심 수업에 대한 준비가 거의 안 되고 있다”며 “미래교육의 방법론을 개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미래교육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의 시험은 단순히 지식을 더 많이 습득한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다양해진 학습 형태에 맞는 다양한 평가 방식이 필요한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미래교육이 궁극적으론 개별 교육, 개별 평가의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생별 학습 수준, 성향, 요구들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알파세대가 학교에 온다’의 저자이자 실제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최은영 작가는 학교의 분위기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작가는 “그동안은 교과서 중심의 수업만이 유일한 정답처럼 여겨졌다”며 “깊이 있는 교육을 위해선 프로젝트식 융합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2년 11월호
[포스트MZ 'α세대'] α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재미와 개성이 더 강해진 세대
| 지혜진 기자 heyjin@newspim.com
| 박두호 인턴기자 walnut_park@newspim.com
메타버스 플랫폼인 네이버 제페토에서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롯데월드에 ‘접속’했다. 직접 방문하진 않았지만 실제 롯데월드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파세대들은 그곳에서 롯데월드의 대표 놀이기구인 ‘자이로스윙’을 탑승했다.
메타버스 공간 속 알파세대들의 모습은 화려했다. 아바타의 얼굴도 작고 시상식에서 볼 법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렇게 꾸미려면 얼마나 필요하냐”는 질문에 한 접속자는 “700젬(제페토 전용 화폐) 정도”라고 답했다. 700젬은 한화 5만원 정도의 가치다. 그는 “한 달에 용돈을 10만원 정도 받는데, 절반은 제페토에 쓴다”고 했다.
MZ세대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을 겪었다면 알파세대는 태어났을 때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PC 같은 디지털 기기를 접했다. 알파세대는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구글과 유튜브가 쏟아내는 콘텐츠의 홍수에서 자랐다.
가상세계는 또 하나의 현실...“놀고 소비하고”
알파세대가 지닌 가장 큰 특성은 가상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전문가들은 MZ세대만 해도 현실과 가상공간을 분리하는데, 알파세대는 가상공간도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창환 극동대 교수(한국메타버스교육학회 임원)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분하는 것은 아날로그 세계에 갇힌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라며 “알파세대는 가상공간을 또 하나의 세계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알파세대는 이미 메타버스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앱) 시장분석업체 센서타워가 2020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아이들이 로블록스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36분이다. 이는 틱톡(58분)과 유튜브(54분)보다 긴 시간이다. 로블록스는 세계에서 가장 이용자 수가 많은 미국의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이용자들이 직접 게임을 만들 수 있다.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인 네이버 제페토도 지난 3월 가입자 3억명을 넘어섰다.
알파세대가 메타버스 공간을 찾는 까닭은, 이들에겐 가상공간이 놀이터이자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자신의 상상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그쳤다면, 알파세대는 자신이 상상한 것을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데 익숙하다. 이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게임이나 콘텐츠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조희정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교수는 “가상공간은 모든 경계를 허물고 자기주도적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참여하고 스스로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알파세대는 가상공간에서 돈을 벌거나 소비하는 등 경제활동을 하는 데도 익숙하다. ‘알파세대가 학교에 온다’의 저자 최은영 교사는 “알파세대는 가상화폐와 현실화폐를 구분하지 않는다”며 “가상공간에서 게임하고 콘텐츠를 공유하면서 돈을 쓰기도 하고 벌기도 한다”고 전했다.
구자억 서경대 혁신부총장 역시 “한국에서 메타버스가 활성화되고 있는 건 경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며 “알파세대는 게임을 잘하는데 메타버스에서 땅도 팔고 나라도 세우고 돈도 벌 수 있어 역동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개별 특성 길러주는 방식으로 교육해야”
알파세대가 가상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 교사는 “알파세대들에게는 재미가 우선”이라며 “재미있으면 계속 하고, 재미없으면 바로 꺼버리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게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밝혔다. 이어 “알파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취향에 맞게 유튜브 영상을 골라보면서 이전 세대보다 자신의 취향이 더 확고해진 세대”라고 덧붙였다.
자녀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경향이 강한 밀레니얼 세대가 알파세대의 부모 역할을 한다는 점도 개성 강한 알파세대를 등장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교사는 “알파세대의 부모는 덜 엄격하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존중한다”면서 “알파세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개성이 두드러지는 알파세대의 강점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맞는 교육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의 교육은 여전히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구 교수는 “입시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디지털 문해력을 키우는 교육이 있어야 알파세대가 디지털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 발전으로 가상공간에서 도덕적인 문제나 새로운 법적 문제도 생길 수 있어 학교에서 도덕성과 인성을 기르는 교육이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2022년 11월호
스트레스는 학교서 푼다
수업+뮤지컬·놀이 등 가미
흥미 더한 새 교육법 만발
| 김현구 기자 hyun9@newspim.com
| 정현경 인턴기자 jeonghk@newspim.com
알파세대의 정신건강은 교육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이제 막 정규 교육에 뛰어든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무너지면 학업에 흥미를 잃을 수 있고, 나아가서는 일탈·범죄 등에도 쉽게 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학생 본인에게도 가장 큰 걱정거리로 여겨진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지난 5월 ‘2022 청소년 통계’를 통해 청소년 고민상담 유형 1위가 ‘정신건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정부는 다양한 수업 방식을 마련하는 등 알파세대 학생들의 정신건강 회복 및 스트레스 완화를 꾀하고 있다.
뮤지컬·연극으로 ‘함께의 가치’ 배우는 알파세대
색다른 방식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것은 뮤지컬, 연극 등과 같이 놀이를 접목한 예체능 수업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2019년부터 초등학교 5~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학급별 연극, 뮤지컬, 영화를 만드는 ‘협력종합예술활동’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서울 청담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주1회 1시간씩 협력종합예술활동의 일환으로 연극을 배우고 있다. 서울 세곡초등학교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연습한 뮤지컬 공연을 올렸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뮤지컬, 연극 수업이 학생들의 정서 순환, 에너지 발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수업 방식은 주입식 교육으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를 줄임과 동시에 알파세대의 예술적 감수성, 협력적 인성, 융합 사고력을 길러주기 위해 도입됐다. 특히 단순한 예술 교육이 아닌, 학생들 간의 화합과 소통의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019 초등 협력종합예술활동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협력종합예술활동 참여 학생들의 만족도는 80% 이상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은 향후 저학년과 더 많은 학교로의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성주 서울시교육청 체육건강문화예술과 장학사는 “연극, 영화, 뮤지컬 영역은 다른 친구들과 협력을 통해서만 진행될 수 있다”며 “학급 또래들과 함께하는 과정이 스트레스 완화에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예체능 수업을 통한 저학년 학생들의 협동심 증진 등이 주목받으면서 사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서 어린이 뮤지컬학원을 운영하는 이은혜 원장은 “국영수도 중요하지만 노래, 춤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부분도 필요하다”며 “공부를 하면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뮤지컬학원에 다니는 김우빈(7세) 군의 어머니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스트레스를 줄이고 정서적 안정을 느낄 수 있다”며 다니기 전과 비교해 자신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기 만지니까 코딩 시간 기다려져요!”
“다양한 교구 때문일까요? 아이들이 코딩 수업 시간을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은평구 소재 초등학교 A 교사의 말이다.
뮤지컬, 연극과 다른 형태의 참여형 놀이 수업도 등장했다. 오는 2025년부터 시작되는 코딩 교육이다. 교육부는 지난 8월 30일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을 공개했다. 이번 개편의 목적은 학생들의 논리력, 사고력, 창의력 계발로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학생들의 컴퓨팅 사고력 증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컴퓨팅 사고력은 복잡한 문제를 효율적으로 다루고 해결하는 사고능력을 뜻한다. 교육부는 알파세대에게 기초적인 디지털 소양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IT 능력이 기본 역량으로 자리를 잡았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을 받으면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에서 정부가 정책으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일각에서는 소프트웨어 교육에 대해 부모의 금전적·시각적 차이가 학습에 대한 격차를 벌려놓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가정의 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학생들 간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지역아동센터, 방과 후 코딩 교육 등 대안 마련이 필수적”이라며 “의무교육으로 자리한 만큼 담당 교사가 눈높이에 맞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학생들 수준에 맞는 ‘눈높이 교육’을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초등학생 수준에 맞춰 체험과 활동 위주의 코딩 교육을 시행할 예정이며 학습 부담도 최대한 줄인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교육부 차원에서 교원 확보를 위해 인공지능대학원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보조하고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다각도의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알파세대는 변화하는 사회에 맞게 역량을 갈고 닦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교육 기술의 변화를 아이언맨의 슈트에 비유하며 “슈트를 착용하기 전에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슈트를 착용하는 순간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다”고 전했다. 디지털과 예체능 교육으로 아이들이 넓은 사회에서 발전하는 모습이 기대된다. 아이들의 관심과 어른들의 노력으로 학습과 교습 방식이 변화했다.

2022년 10월호
한국 '공모주 물림의 법칙'?
크래프톤 공모가 대비 반토막
카카오뱅크 우리사주 억대 손실도
공모주 장기투자 수익률 처참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2021년과 2022년 상반기까지 한국은 공모주 열풍이 불었다. 그래서 주식 재테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공모주에 투자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2021년은 주식시장 활황에 힘입어 공모주 투자가 활활 타올랐던 시기로 공모금액이 무려 21조원에 달했다. 전년도의 공모금액 6조원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어마어마하다. 경쟁률도 기본적으로 수백 대 1이라 아무리 많은 금액을 청약해도 원하는 물량의 100분 1 이하로 배정받는 경우가 흔했다.
2021년에는 리츠와 스팩을 제외하고도 90여 개의 공모주가 증시에 신규 상장됐다. 이 공모주들을 모두 공모주 청약으로 배정받아 상장 당일 종가에 매도했다고 가정해 보면 평균 수익률은 무려 58%에 달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공모주 재테크는 증시 상황과 상관없이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다.
그런데 공모주 투자를 안 해본 사람이라면 공모주는 낯선 용어일 수 있다. 공모주는 정확히 어떤 개념일까. 비상장회사가 주식을 증권시장에 상장하려면 기업공개(IPO)를 진행해야 한다. 기업공개란 기업의 경영정보, 재무상태 등을 공시하고 일반 대중에게 최초로 주식을 공개해 주식시장에 신규 상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주식을 ‘공모주’라 한다.
투자자가 공모주에 3개월 이상 장기 투자하는 전략은 좋은 투자 방식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모주 장기 투자의 결과는 좋지 않았던 경우가 더 많다. 만약 어떤 공모주에 3개월 이상 투자한다면 초반의 높았던 수익률이 확 낮아질 수 있다. 어쩌면 비자발적으로 투자기간이 3년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이게 바로 ‘공모주 물림의 법칙’이다. 하지만 공모주에 집중 투자하는 재테크 전략은 꽤나 승률이 높은 영리한 투자방식이다.
공모주에 집중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는데 3개월 이상 투자하면 수익률이 낮아진다니 의아하다. 투자기간을 짧게 가져가는 게 중요한 이유는 기관투자자들은 공모주 수요예측 단계에서 많은 주식을 배정받기 위해 3개월이나 6개월 의무보유 확약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기간이 지나면 주식 매물이 급증한다.
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은 일정 기간 주식을 팔 수 없도록 제한되는데 이 기간 또한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6개월이다. 그래서 기관투자자들이 보유 중인 주식을 매물로 내놓을 수 없는 3~6개월 이전에 개인투자자들은 빨리 공모주를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는 게 효율적인 투자전략이다.
공모주 장기 투자를 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본적으로 공모주는 공모가가 높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장예정 기업들은 높은 공모가격에 상장하기 위해 가장 실적이 좋은 연도를 골라서 기업공개를 진행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그래서 IPO 다음해의 기업 실적은 기대보다 밋밋한 경우가 많다.
몇 년 전만 해도 공모주 청약 시즌이 오면 각 증권사 지점들마다 공모주를 청약하기 위해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고객들을 발견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과거에는 서로 먼저 청약하겠다고 고객들끼리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청약 방식이 모바일과 ARS로 발전하면서 이런 광경이 거의 사라졌다.
공모주와 우리사주의 차이는 매도 타이밍
공모주 투자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중요한 철칙이 있다. 반드시 공모주 청약 방식을 통해 공모가에 매수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해당 주식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상장 당일에 증시에서 직접 공모주를 매수해 장기 보유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공모주는 상장 당일에 투기적인 단기 투자자들로 인해 공모가보다 시초가가 급등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최대주주 보호예수와 기관투자자 의무보유 확약으로 주식 공급물량이 많지 않아 상장 초기에는 작은 매수세에도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함부로 추격매수를 하면 엄청난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상장 당일에 시장에서 매수하는 공격적인 투자자들이 많은 이유는 공모주 청약은 경쟁률이 최소 100 대 1을 넘는 경우가 흔해 원하는 만큼의 주식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단기간의 주가 변동성을 활용해 돈을 벌어 보겠다는 단기 투자자들도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증시 하락기에는 신규 상장된 주식들의 하락폭이 기존 주식들보다 훨씬 더 큰 경우가 많다. 이제 2021년 국내 증시에 신규 상장된 주요 대형 공모주들의 장기 수익률을 확인해 보자.
SK바이오사이언스가 2021년 3월에 신규 상장할 당시 공모가는 6만5000원이었다. 공모주의 신규상장 당일 시초가는 최대 90~200% 범위 내에서 결정된다. 최악의 경우 공모가의 -10%인 5만8500원의 시초가로 출발할 수도 있지만 최상의 경우에는 공모가보다 100% 상승한 13만원으로 시초가가 결정될 수 있다. 시초가가 결정되고 주식이 상장된 후에는 일반 주식들처럼 -30~+30% 범위 내의 하한가와 상한가 내에서 가격이 움직이게 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 백신에 대한 기대감으로 뜨거운 인기를 보여 상장 당일 시초가는 공모가인 6만5000원보다 100% 상승한 13만원으로 폭등하며 출발했다. 이런 상승세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며 다시 시초가인 13만원에서 30% 상승한 상한가 16만9000원에 마감됐다. 공모주 투자자들은 SK바이오사이언스 같은 주가 움직임을 일명 ‘따상’이라 표현한다. 이는 ‘따블’과 ‘상한가’를 더한 말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상장 5개월 만에 최고가 36만원을 터치하며 최고수익률 457%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우리사주에 청약한 SK바이오사이언스 직원들은 신이 났다. 한국에서는 공모물량의 20%를 우리사주로 배정할 수 있는데 SK바이오사이언스 직원들의 우리사주 평균 청약금액은 약 5억원으로 알려졌다. 최고가로 계산해 보면 10억~20억원의 평가차익을 본 직원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직원들 중에서는 1년간의 의무 보호예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과감하게 퇴사를 강행한 경우도 많았다. 퇴사하면 우리사주를 자유롭게 매도해 이익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난 2022년 8월 말 기준 수익률은 최고 457%에서 6분의 1토막인 74%로 축소됐다. 결과적으로 그 당시 퇴사하며 우리사주를 매도한 직원들이 진정한 승리자인 셈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21년의 주요 대형 공모주 중에서는 가장 성과가 좋은 주식이다. 그렇다면 가장 최악의 수익률을 보인 회사는 어디일까. 바로 크래프톤이다. 게임회사인 크래프톤은 공모주로서는 드물게 시초가를 -10%로 시작해 투자자들을 혼돈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이런 상황은 적정가치보다 공모가가 더 높게 책정됐을 때 발생한다. 또는 하필이면 상장 당일에 증시에 큰 악재가 발생해 주식시장 자체가 얼어붙었을 경우다.
결론적으로 크래프톤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물론 상장 후 잠깐 공모가 대비 16%까지 상승한 때도 있었지만 결국 꾸준히 하락해 2022년 8월 말 기준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51%를 기록 중이다. 예시로 든 5개 종목 중에서 공모가 대비 수익률이 가장 부진하다.
그런데 이런 경우 투자자만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다.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 바로 부푼 꿈을 안고 청약한 직원들이다. 약간의 손해를 보고 손절 매도를 하고 싶어도 우리사주의 경우 1년간 보호예수로 묶이기 때문에 중간에 매도도 불가능했다.
크래프톤의 우리사주는 이례적으로 직원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배정된 20%의 우리사주 물량 중 실제 직원들이 받아간 물량은 5분의 1인 4%에 불과하다. 크래프톤 직원들조차 공모가가 비싸다고 생각해 청약을 꺼렸다는 방증이다. 2022년 8월이 지나면서 1년이 경과해 드디어 직원들은 우리사주를 매도할 수 있게 됐는데 손실률이 50%가 넘어 감히 매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2022년 1분기에 300억원을 들여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주가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크래프톤이 좋은 게임을 개발해 주가가 자연스럽게 반등하는 상황이 최선이다. 이 사례를 보면 공모가에 투자했더라도 장기 투자 시에는 손실 리스크가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카카오뱅크는 상장 직전에 목표가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투자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려서 화제가 됐다.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카카오뱅크 상장 당시에 긍정적인 매수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카카오뱅크 상장 직전인 2021년 7월에 ‘카카오뱅크는 플랫폼 기업의 밸류에이션 적용이 애매하다. 결국 정부의 규제를 받는 은행업에 속해 있으므로 은행업 밸류에이션을 적용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내용의 소수의견을 냈다. 이와 함께 목표주가를 공모가인 3만9000원보다 한참 낮은 2만4000원으로 제시하는 리포트를 작성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카카오뱅크가 상장 후 1개월 만에 공모가인 3만9000원보다 최고 142% 상승한 9만4400원까지 치솟으면서 이 대결은 낙관론자들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2022년 8월 말 기준으로는 카카오뱅크 주가가 2만7300원까지 하락해 최고가 대비 하락률이 무려 -71%다. 장기적으로는 김인 연구위원의 예측이 맞았던 셈이다. 역시 미래의 주가를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카카오뱅크의 미래를 낙관하고 고가에 매수한 투자자들은 상당한 평가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카카오뱅크 역시 투자자들만 눈물을 흘린 건 아니다. 우리사주에 투자한 직원들도 슬픔에 잠겨 있다. 앞서 SK바이오사이언스의 사례를 보며 꿈과 희망에 부풀었을 카카오뱅크 직원들이 대박은커녕 공모가에서 30%나 하락할 거라고는 상상이나 했을까. 하락률로만 따지면 크래프톤보다는 양호하지만 문제는 투자금액이다. 카카오뱅크 직원들의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은 4억9000만원으로 절대금액 자체가 크다. 그러니 평가손실총액은 카카오뱅크 직원들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배신감을 안겨준 회사는 어디일까. 바로 카카오 계열사인 카카오페이다. 이유는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신규 상장 후 주가가 한창 상승세를 타던 시점에 약 900억원의 보유주식을 매각하면서 큰 수익을 챙겼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는 공모가 9만원에 상장돼 한때 공모가보다 176% 폭등한 24만8500원까지 상승했다. 그 이후 경영진의 주식 매도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서 주가가 꾸준히 곤두박질쳐 2022년 8월 말 기준 카카오페이 주가는 6만2200원까지 내려앉았다. 공모가 대비해서는 -31% 하락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그러나 최고가 대비 손실률은 -75%로 무시무시하다. 카카오그룹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선이 따가워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사주를 받은 카카오페이 직원들도 울상이다.
결론적으로 공모가에 매수하고 상장 직후 시초가에 매도한 투자자들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익률을 거뒀다. 하지만 공모가의 2배로 치솟은 시초가에 매수한 공격적인 투자자들이 만약 이 주식들을 장기 보유하고 있다면 상당한 손실을 봤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모주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라면 공모가에 매수해 시초가나 당일 종가에 매도하는 공모주 투자 법칙을 잘 지키는 게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역설
공모주 장기 투자가 반드시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다. 사실 지금 상장돼 있는 모든 주식들은 과거에 공모주였던 신규 상장주식들이다. 단지 확률적으로 기업공개 당시의 공모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적정주가보다 조금 더 고평가돼 있을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그렇다고 신규 상장기업의 공모가가 모두 다 고평가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 시가총액이 높은 대형 공모주 중에 장기 투자 수익률이 유독 높았던 전설적인 주식이 바로 삼성바이오로직스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6년 11월에 신규 상장했는데 요즘과 비교해 보면 정말 인기 없는 공모주였다.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 경쟁률은 45 대 1에 불과했다. 그 당시 공모가는 13만6000원이었고 당일 종가는 14만4000원이었다. 그래서 투자자 누구나 마음만 먹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상장 당일에 공모가 수준에서 마음껏 수량 제한 없이 매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2년 8월 말 기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는 83만5000원이다.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무려 514%다. 하지만 상장일에 매수했던 투자자들 중 이 주식이 6년 뒤에 5배 넘게 폭등할 거라고 생각했을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은 공모주 투자원칙에 따라 진작에 이익실현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눈부신 수익률에 대한 찬사는 사실 결과론적인 접근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공모주를 상장 후 6년간 지속적으로 보유한 투자자라면 마땅히 5배의 높은 수익률을 보상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보유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엄청 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8년 11월에 분식회계 의혹으로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들어가면서 무려 18거래일 동안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회사와 공장 압수수색, 계속되는 경영권 승계 관련 조사와 재판 등으로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안겨줬다. 이 모든 고통을 이겨낸 달콤한 결과가 지금의 수익률이다. 따라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장기 보유 수익률이 높은 건 예외적인 결과라 생각해야 한다. 일반적인 공모주 투자 시의 전체 확률로 따져보면 장기 보유 전략보다 단기 매도 전략의 수익률이 더 높은 경우가 많다.
공모가는 어떻게 산정되나
공모가는 어떻게 산정될까. 먼저 기업공개를 원하는 기업은 특정 증권회사를 정해 대표주간사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 대표주간사에서 기업공개와 관련된 모든 절차를 진행한다. IPO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공모가 산정이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은 ‘절대가치 평가방법’과 ‘상대가치 평가방법’이 있는데 실무적으로는 대부분 ‘상대가치 평가방법’을 사용한다. 상대가치 평가방법에는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PSR(주가매출비율), EV/EBITDA(상각전 영업이익 대비 기업가치)를 활용한 비교가 있다.
그런데 평가방법보다 더 중요한 건 사실 유사 비교기업(피어그룹) 선정이다. 비교기업의 밸류에이션이 높아야만 상장 예정기업의 공모가도 높아지기 때문에 대표주간사는 적절한 비교기업 선정에 총력을 다한다. 예를 들어 마켓컬리가 공모가를 산정할 때 비교기업으로 한국의 오프라인 유통회사인 신세계, 이마트, 롯데쇼핑, 현대백화점의 밸류에이션을 적용한다면 터무니없이 낮은 공모가가 산출될 것이다.
그래서 최근 신규 상장하는 기업들 중에는 밸류에이션이 낮은 한국 기업 대신 해외 기업들을 비교대상기업으로 선정하는 경우가 많다. 2022년 8월에 신규 상장한 쏘카의 경우 최종 비교기업 10개를 우버, 리프트, 그랩, 고토 등 모두 다 해외 상장기업으로 선정해 눈길을 끌었다.
이제 공모가밴드가 8000~1만원으로 결정됐다고 가정해 보자. 공모가 밴드가 정해지면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을 통해 최종적으로 공모가를 결정한다.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는 공모가밴드 상단인 1만원이나 그 이상을 적어낼수록 공모주를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일정 기간 주식을 매도하지 않겠다는 의무보유 확약기간을 길게 정할수록 주식을 많이 배정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의무보유 확약기간은 보통 1개월, 3개월이 많고 드물지만 6개월도 있다.
대표주간사와 상장예정기업은 수요예측 결과를 통해 최종 공모가를 결정하는데 기관투자자들의 수요예측 가격이 예상보다 낮거나 경쟁률이 부진하면 자진해서 상장을 취소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공모가 결정 시점에 증권시장 분위기가 좋아야만 기업공개가 원만하게 진행된다. 그런데 증권시장 분위기가 좋을지 나쁠지를 상장예정기업이 어떻게 예측하겠는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공모주 배정 비율은 어떻게 될까. 공모주 발행물량의 55%는 기관투자자, 20%는 우리사주, 25%는 일반 개인투자자에게 배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사주에 배정된 20% 물량은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SK바이오사이언스 사례처럼 우리사주로 인생역전까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가 저금리로 대출까지 해준다. 그런데 일부 공모주의 경우 직원들도 청약을 꺼려 우리사주 경쟁률이 미달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공모주는 개인투자자 경쟁률도 뚝 떨어지기 마련이다. 직원들마저 투자를 회피하는 종목이니 당연한 현상이다.
공모가는 왜 높아야 하나
공모가는 왜 높아야 할까. 첫 번째 이유는 공모가가 높을수록 기업공개를 하면서 신주발행(유상증자)을 통해 실제로 신규 상장기업에 유입되는 자금이 커지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 자금을 다시 공격적으로 투자해 짧은 시간 안에 회사를 더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 넉넉한 현금은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무기다.
공모가가 높아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기존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도 수익을 안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이 기업공개라는 최종 관문에 도달하기까지는 회사 성장의 단계마다 외부자금 조달이 필수다. 최초의 외부자금 유치를 시드펀딩 또는 시리즈A펀딩이라 하고 추가 펀딩 때마다 알파벳을 붙여 시리즈B펀딩, 시리즈C펀딩 식으로 표기한다.
스타트업은 시리즈별로 새로운 자금을 투자받을 때마다 기업가치를 투자자들에게 냉정히 평가받는다. 투자자들은 본인들이 평가한 기업가치에 맞게 주가를 결정하고 자금을 투입해 스타트업의 지분을 확보한다. 그 대가로 스타트업에는 새로운 자금이 유입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창업자의 지분은 조금씩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시리즈 투자자들 입장에서 만약 IPO 공모가가 본인들이 오래전에 투자한 주가보다 낮게 책정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차이만큼의 손해는 고스란히 기존 투자자들이 떠안게 된다. 그래서 공모가는 기존의 시리즈 투자자들에게나 기업공개를 하는 상장예정기업에게나 모두 매우 중요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2022년 8월에 한국거래소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한 마켓컬리를 살펴보자. 마켓컬리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8년간의 급성장 과정에서 총 7번의 외부 투자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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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2021년 12월에 프리IPO를 통해 투자받은 2500억원이다. 이 당시 마켓컬리의 기업가치는 약 4조원으로 평가됐다. 프리 IPO는 기업공개를 진행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문제는 2021년 12월의 증시 분위기는 지금보다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2022년 9월 현재의 증시 분위기는 그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위축돼 있다. 이렇게 증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한 마켓컬리가 예정대로 상장을 강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기관투자자들의 IPO 수요예측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4조원 이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만약 공모가를 높이지 못한다면 2021년 12월에 마켓컬리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상장예정기업은 공모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모가 결정의 모든 과정을 주관하는 대표주간사 입장은 어떨까. 대표주간사 계약을 맺을 때부터 이미 상장예정기업에게 좋은 공모가가 산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암묵적인 보증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또 대표주간사의 인수수수료도 공모금액의 2~3%로 책정돼 공모가가 높을수록 수수료도 높아지는 구조라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하지만 대표주간사 입장에서는 무한정 공모가를 높게 책정할 수 없다. 공모가를 너무 높게 책정했다가는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외면당할 수 있다. 최악은 최종 공모가를 확정한 상태에서 일반투자자 공모주 경쟁률이 1 대 1에도 못 미치는 미달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다. 이는 그야말로 대재앙이다. 특례상장의 경우에는 공모가에서 10% 이상 하락할 경우 최초 투자자들에게는 환매청구권(풋백옵션)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
2022년 8월에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전격적으로 기업공개를 강행한 카셰어링 업체 쏘카의 사례를 보자. 쏘카는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공모가밴드를 1주당 3만4000원~4만5000원으로 제시했지만 기관투자자들의 저조한 관심으로 희망밴드 하단보다 크게 낮은 2만8000원에 최종 공모가를 확정했다. 쏘카의 공모희망 금액은 2000억원이었지만 실제 최종 공모금액은 반토막에 가까운 101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렇게 공모가를 크게 낮췄는데도 쏘카의 일반 청약경쟁률은 14.4 대 1로 일반적인 공모주 경쟁률보다 현저하게 낮았다. 하지만 박재욱 쏘카 대표는 IPO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상장하는 게 최선’ 이라며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높은 공모가와 높은 공모금액은 중요하다. 하지만 시간 역시 소중해 빠른 자금조달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2022년 9월 현재 증시 상황은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늘도 많은 상장예정기업들은 기업공개 시점과 관련해 높은 공모가를 위해 기약 없이 기다릴지, 아니면 낮은 공모가를 감수하고 빠르게 자금을 조달할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공모주 투자를 대기 중인 일반투자자들은 어려운 증시 환경으로 인해 공모주 옥석 가리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사주로 평가손실 중인 직원들은 언제 본격적으로 주가가 반등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루빨리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이 진정되고 한국 증시가 다시 활기를 찾기를 기원해 본다.

2022년 10월호
미국 공모주 투자 수익률은?
美 공모주 손실률 한국보다 더 나빠
쿠팡, 공모주 폭락했다고 집단소송 당해
그래도 마켓컬리가 쿠팡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2021년 국내 증시에 상장된 주요 공모주 현황을 살펴본 결과 공모가보다 하락한 주식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미국 공모주 시장 현황은 어떨까. 2021년 미국 기업공개(IPO)는 1000건을 돌파했다. 이는 2020년의 400여 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역대 최대 수준이다.
그렇다면 2021년에 상장된 미국 주요 공모주 수익률은 한국보다 양호할까. 현재 시점에서 확인해 보면 한국보다 하락률이 더 심각하다. 미국 투자자들 역시 한국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패닉 상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모주를 상장 당일에 증시에서 직접 매수해 장기 보유하는 전략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역시 미국에서도 공모주는 공모가에 매수해 시초가나 당일 종가에 매도하는 전략이 효율적이었다.
2021년 미국 증시에 신규 상장된 도어대시, 범블, 로블록스, 코인베이스, 리비안, 그랩홀딩스, 쿠팡은 미국 주식에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대표적인 주식들이다. 이 주식들의 수익률을 살펴본 결과 2022년 8월 말 기준으로 공모가보다 높은 주가를 기록한 종목은 단 1개도 없었다. 충격적이다. 최근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의 영향으로 증시가 부진했던 탓일까. 좀 더 상세하게 확인해 보자.
미국 1위 음식배달서비스 기업인 도어대시는 미국 내에서 우버이츠보다 점유율이 훨씬 높다. 2021년 2월 공모가 102달러에 신규 상장됐고, 시초가는 공모가 대비 90% 폭등한 194달러로 출발했다. 한때 공모가보다 152% 상승한 257달러를 기록했지만 2022년 8월 말 기준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41%로 저조하다.
범블은 틴더에 이은 미국 2위의 데이팅앱이다. 여성 중심의 데이팅앱으로 차별화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범블도 2021년 2월 공모가 43달러에 신규 상장해 시초가가 공모가 대비 77% 상승한 76달러에 시작됐다. 한때 최고가 85달러를 기록하며 순항했지만 2022년 8월 말 기준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42%로 부진하다.
미국 초딩들의 놀이터로 유명한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의 일간사용자수는 5000만명 수준이다. 로블록스는 블록으로 구성된 메타버스 세계에서 아바타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가상화폐인 로벅스를 발행해 게임 속에서 사용할 수 있어 게임 유저와 투자자 양쪽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회사다.
로블록스는 전통적인 기업공개와 달리 주식 신규발행 없이 미국 거래소에 직상장했다. 이런 경우 공모가격 대신 준거가격이 적용된다. 준거가격은 기존의 장외시장 거래가격과 투자은행들의 투자 규모 등을 반영해 거래소가 제공한다. 로블록스의 준거가격은 45달러로 결정됐는데 시초가는 65달러로 43% 상승하며 시작했다. 메타버스 열풍으로 한때 공모가보다 215% 폭등한 142달러까지 상승했지만 2022년 8월 말 기준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13%에 그쳤다. 그나마 가장 하락폭이 작은 편이다.
미국 1위 암호화폐거래소인 코인베이스 역시 주식 신규발행 없이 직상장했다. 미국 최초로 상장되는 암호화폐거래소였던 만큼 상장 당일 시초가는 준거가격인 250달러보다 52% 상승한 381달러로 시작했다. 코인베이스의 매출은 95% 이상이 암호화폐 거래수수료다. 그래서 2021년의 암호화폐 시장 폭등세에 힘입어 한때 공모가보다 72% 높은 43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2022년 8월 말 기준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73%로 최악이다. 2022년에 암호화폐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매출이 급감한 영향이 크다.
‘제2의 테슬라’ 또는 ‘테슬라의 대항마’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전기차 회사 리비안은 공모가 78달러보다 37% 상승한 107달러로 시초가를 형성했다. 이후 전기차 대량생산 기대감으로 한때 공모가보다 130% 급등한 18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전기차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2022년 8월 말 기준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58%에 불과하다.
동남아시아 승차공유 및 음식배달사업 1위를 기록 중인 그랩홀딩스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인 알티미터그로스(AGC)와의 합병을 통해 상장됐다. AGC의 나스닥 상장가격인 10달러를 공모가로 가정하면 신규상장 시초가는 공모가보다 31% 상승한 13달러로 형성됐다. 하지만 시초가가 거의 최고가였다. 그랩은 상장 당일 종가가 8.8달러를 기록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2022년 8월 말 기준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71%로 투자자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거기서 ‘쿠팡’이 왜 나와
그런데 흥미로운 기업이 눈에 띈다. 바로 쿠팡이다. 쿠팡은 사실상 한국 1위의 이커머스 회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쿠팡은 한국 증시가 아니라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 영업은 한국에서 하고 주식 상장은 미국에서 하다니 이색적인 행보다. 쿠팡은 왜 한국 주식시장이 아닌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했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다.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첫 번째 이유는 경영권 보호다. 마켓컬리의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스타트업’ 기업은 성장 과정에서 외부자금 유치를 많이 하면 할수록 창업자의 지분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은 창업자의 경영권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그런데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차등의결권이 인정된다. 그래서 쿠팡 주식은 클래스A 보통주식과 클래스B 보통주식으로 구분해서 발행됐다. 김범석(Bom Kim) 창업자가 가지고 있는 클래스B 주식은 1주당 29배의 의결권을 가진다. 클래스A 주식의 의결권이 1주당 1배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비록 김범석 창업자의 지분율은 9.9%에 불과하지만 76.2%의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행사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자연스럽게 적대적 인수합병(M&A)도 불가능한 구조가 됐다. 만약 김범석 창업자가 쿠팡을 한국 증시에 상장했다면 9.9%의 낮은 지분율로 인해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쿠팡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가 경영난으로 인해 쿠팡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안정적인 지배구조로 인해 김범석 창업자의 경영권 방어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한 두 번째 이유는 높은 공모가를 인정받아 회사에 유입되는 공모금액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다. 미국 증시는 쿠팡처럼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들의 경우 한국보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해 주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공모가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쿠팡이 제시한 공모가밴드는 32~34달러였지만 미국 기관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최종 공모가는 35달러로 결정됐다. 공모금액은 무려 42억달러다. 지금의 미친 환율이 아니라 장기평균환율인 1200원으로만 환산해 봐도 무려 5조원이 넘는 자금이 쿠팡에 유입된 셈이다. 물론 쿠팡은 운이 좋았다. 쿠팡이 기업공개를 진행하던 2021년 3월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유동성이 엄청나게 풀려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계속 경신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쿠팡 공모주의 급등과 급락
2021년 3월 11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쿠팡의 시가총액을 공모가 35달러로 계산해 보면 무려 74조원(약 618억달러)이다. 한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 순위로 따져보면 5위 안에 들어가는 엄청난 규모의 시가총액을 인정받은 셈이다. 쿠팡이 상장된 당일에는 미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공모가의 2배에 가까운 69달러까지 폭등하며 한때 시가총액이 146조원(약 1219억달러)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은 곧 이성을 찾았다. 쿠팡의 시가총액이 146조원까지 치솟은 건 쿠팡의 높은 미래 성장성을 감안해도 너무 과도한 고평가였다. 한국 시장과 마찬가지로 미국 시장도 공모주에 대한 투기적인 단기 투자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상장 초기에 쿠팡 주식을 집중 매수하며 일시적으로 주가가 과열됐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상승은 한국 시장과 마찬가지로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다.
결국 쿠팡의 주가는 상장 당일 최고가인 69달러를 정점으로 지속 하락했다. 급기야 2022년 5월에는 9달러가 붕괴되며 사상 최저점을 형성했다. 공모가인 35달러 대비 -74%가 하락했고 최고점인 69달러 대비로는 무려 -87%의 무시무시한 하락률이다. 다행히 쿠팡의 2022년 2분기 실적발표 후 주가는 다소 안정을 찾아 2022년 8월 말 기준 16.5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모가 대비 -52%의 부진한 주가흐름을 보이고 있다.
쿠팡이 미국에서 소송당한 이유
미국은 공모가보다 주가가 많이 폭락하면 회사가 소송을 당하는 무시무시한 나라인가. 뜬금없게도 2022년 8월에 미국의 증권 전문 로펌인 BG&G(Bronstein, Gewirtz & Grossman)가 ‘쿠팡’과 주요 경영진에 대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의 주장은 쿠팡이 2021년 3월에 미국 뉴욕증시에 신규상장하면서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기업공개 등록서류가 부주의하게 작성됐고 중요 내용의 누락이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투자한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봤다는 입장이다. 이 로펌 외에도 두세 개의 다른 로펌들이 비슷한 내용으로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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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G 로펌의 과거 소송대상 기업들을 살펴보면 30여 개 기업이 확인된다. 이 중에는 우버와 코인베이스도 포함돼 있다. 특히 코인베이스는 공모가 대비 2022년 8월 말 기준 주가하락률이 무려 -73%에 달한다. 쿠팡의 주가하락률도 -52%다. 이 기업들에 상장 당일 가격으로 투자한 투자자들이라면 극도로 분노하기에 충분할 만큼 큰 손실을 입었을 것이 틀림없긴 하다. 쿠팡의 투자자들 중에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송 참가자들 중에는 당연히 한국인도 포함돼 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집단소송이 발달해 있다. 그래서 신규 상장기업들이 이런 이유로 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흔하다. 주가 폭락으로 분노한 투자자들과 사건을 수임해야 하는 로펌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로펌들은 지금 추가적인 소송참가자들을 모집 중이다. 그런데 사실 ‘기업공개 등록서류’가 완벽하게 작성되는 기준은 실무적으로 애매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미국 법원이 이 사건을 어떻게 판단할지 흥미롭다.
어쨌든 이런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최초 공모가보다 너무나 심각하게 폭락한 형편없는 주가 때문이다. 쿠팡뿐 아니라 앞에서 살펴본 도어대시, 범블, 로블록스, 코인베이스, 리비안, 그랩홀딩스의 사례들로 볼 때 역시 한국이나 미국이나 공모주 장기 투자는 위험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마켓컬리, 11번가, SSG닷컴의 고민은 상장시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너무나 높았던 공모가와 계속되는 주가 폭락으로 미국 투자자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쿠팡이지만 이런 쿠팡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회사들이 있다. 바로 쿠팡과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의 ‘11번가’, ‘SSG닷컴’, ‘마켓컬리’다.
지금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의 미친 질주가 계속되고 있어 경쟁사들의 마음이 다급하다. 게다가 쿠팡은 이번 기업공개를 통해 무려 5조원의 현금을 손에 넣었다. 이런 든든한 실탄을 장착했으니 기존에 해 왔던 대로 물류센터 확충에 이 엄청난 거금을 다 쏟아붓는다면 경쟁업체들이 쿠팡의 물류 경쟁력을 따라잡을 방법은 없다.
쿠팡과 직간접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11번가, SSG닷컴, 마켓컬리는 지금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이들 기업도 빨리 기업공개로 자금을 확보해 물류센터를 설치하는 등 쿠팡을 추격해 가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갑자기 전 세계 증시 상황이 심각하게 나빠졌다. 이런 불투명한 증시 상황으로 인해 기업공개가 미뤄지면 미뤄질수록 쿠팡과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 이 기업들에게 시간은 금이다.
이 중 제일 마음이 급한 건 마켓컬리다. 마켓컬리는 이미 2022년 8월에 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 11번가와 SSG닷컴보다 훨씬 속도가 빠르다. 이제 상장시기를 결정할 일만 남았다. 이런 플랫폼 기업들의 특징은 적자를 지속하더라도 자금을 쏟아부어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기에 증시가 차갑게 식어버려 마켓컬리가 원하는 높은 공모가와 만족스러운 자금조달은 쉽지 않아 보인다.
사실 기업공개 타이밍은 운에 가깝다. 주식시장이 언제 갑자기 침체될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으로 볼 때 쿠팡은 아주 운이 좋았다. 지금 예측할 수 있는 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쿠팡과 마켓컬리, 11번가, SSG닷컴의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리해 보면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공모주 투자의 경우 장기 투자보다 3개월 이내의 단기 투자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지금은 글로벌 시장 전체의 증시 부진으로 인해 공모주의 하락폭이 과거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역발상 관점에서 보면 저가 매수의 기회일 수 있다.
지금 미국 최고의 빅테크주로 주목받고 있는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도 기업공개 이후 주가가 대폭락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 주식들은 그 대폭락을 딛고 일어나 지금은 공모가보다 적게는 10배 이상 많게는 100배 이상 높은 시가총액을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 보자. 하루빨리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이 진정되고 전 세계 증시가 다시 활기를 되찾기를 기원해 본다.

2022년 09월호
한국은 지금 배달전쟁 중...문제는 '미친 배달비'
전 세계 음식배달서비스 기업 주가 대폭락
한국 상위 배달앱 수익, 의외로 초라
배달의민족 수수료 인상에 업주들 패닉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우버 테크놀로지스’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미지는 어떨까. 미국의 대표적인 승차공유 서비스 회사라는 인식이 많다. 간혹 한국에서 실패하고 철수한 ‘우버X’와 ‘우버이츠’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우버는 어떤 회사일까. 음식배달 서비스인 ‘딜리버리’ 사업, 승차공유 서비스인 ‘모빌리티’ 사업, 화물운송 중개 서비스인 ‘프레이트’ 사업 등 굵직한 3개 사업을 중점적으로 운영하며 세계 최대 슈퍼앱을 만들어 가는 회사다.
그런데 의외로 작년에 우버의 사업 중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분야는 ‘승차공유 서비스’가 아니라 ‘음식배달 서비스’였다. 코로나19를 기회로 음식배달 사업 매출이 폭풍성장을 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하지만 전 세계 음식배달 기업들의 주가 흐름을 보면 매출이 사상 최대치로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대폭락 중인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1위 음식배달 기업인 ‘도어대시’의 주가는 최고점 대비 72% 폭락하며 음식배달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여실히 보여줬다. 배달서비스 점유율 2위인 ‘우버’도 만만치 않은 64%의 하락률을 보였다. 점유율 3위인 ‘그럽허브’를 인수한 유럽의 ‘저스트잇 테이크어웨이’ 역시 런던 주식시장에서 최고점 대비 86% 폭락했다. 한국 1위인 ‘배달의민족’을 인수해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딜리버리 히어로’의 주가도 독일 주식시장에서 69% 폭락해 울상이다.
전 세계 음식배달업계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배달 서비스 사업은 앞으로 가망이 없는 걸까. 먼저 한국의 배달시장 분석을 통해 음식배달 서비스 사업의 미래를 전망해 보자. 한국에서 배달앱 서비스는 상위 3개사가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이 가운데 부동의 1위는 ‘배달의민족’이다. 2위는 ‘요기요’, 3위는 ‘단건 배달’로 돌풍을 일으킨 ‘쿠팡이츠’다. 이들은 한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업활동을 하고 있을까.
한국의 배달 서비스 회사들은 어떻게 돈을 벌까
한국의 1위 배달 앱인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은 어떻게 돈을 벌까. 한국은 지금 배달 앱들의 수수료 문제로 난리다. 소비자들은 음식값 외에도 배달비로 3000원을 더 내는 게 말이 되냐며 분노한다. 심지어 날씨가 안 좋으면 배달비가 더 청구된다. 자영업자들은 배달의민족 오픈리스트 광고를 이용할 경우 ‘중개수수료 6.8% + 결제수수료 3%’로 최소 10%의 비용을 부담한다. 게다가 5000원을 훌쩍 넘는 배달비까지 소비자와 나눠서 부담해 실질적으로 남는 게 없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이렇게 소비자와 자영업자 양쪽의 분노를 유발하며 신나게 욕을 먹고 있는 배달 업체들은 엄청난 이익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로 한국 배달 앱 빅3인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는 돈을 갈퀴로 긁고 있는 걸까. 놀랍게도 아직은 그렇지 않다. 이들 상위 3개사의 피 튀기는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영업이익 현황은 의외로 초라하다.
2000만명이 넘는 월 활성사용자수를 자랑하는 배달의민족은 2020년에 매출액 1조500억원에 영업이익 582억원을 달성하며 대세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2021년에는 전년도의 2배인 2조원이 넘는 매출액을 달성했음에도 영업이익은 고작 100억원으로 전년도의 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심지어 적자가 심각한 베트남 법인 실적을 포함한 연결 감사보고서 기준으로는 75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의아하다. 코로나19 덕을 톡톡히 본 점유율 1위 배달의민족은 도대체 사용자 수가 얼마나 더 늘어나야 큰 폭의 흑자를 달성할 수 있는 걸까. 업계 2위인 요기요는 GS리테일로 인수합병이 진행돼 아직 공시된 실적자료가 없다. 업계 3위인 쿠팡이츠는 심지어 35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이쯤 되면 배달 앱 회사들의 수익 구조가 궁금해진다. 다소 복잡한 배달의민족의 수익 구조를 한번 살펴보자.
어떤 자영업자가 ‘손님왕’이라는 상호로 오늘 가게를 창업했다면 어떻게 홍보해야 할까. 과거에는 아파트를 가가호호 방문해 전단지를 돌리는 방법이 가장 흔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전단지 외에도 배달의민족 ‘일반배달’에 신규 등록하는 방식을 같이 활용한다. 그런데 인지도 없는 신규업체가 배달의민족 ‘앱’ 안에서 광고도 없이 ‘손님왕’이라는 가게 이름을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을까. 당연히 광고가 없으면 매출 증대가 어렵다.
그래서 본인의 가게를 알리려고 광고를 하게 되는데 배달의민족 앱의 ‘일반배달’에는 2개의 광고 방식이 있다. 첫 번째로 ‘울트라콜’ 광고는 월정액 8만8000원(VAT 포함)을 내면 주문창의 울트라콜 영역에 상시 노출된다. 그런데 이 광고는 특이하다. 원래 배달 앱은 소비자의 위치를 기반으로 거리가 가까운 순서대로 음식점 리스트를 보여준다. 그런데 울트라콜은 가상상점 개념이라 실제 주소와 상관없이 설정이 가능해 일명 ‘깃발 꽂기’라고도 부른다.
‘울트라콜’ 광고는 현재 내 상점과 가깝지 않은 타깃 지역이라도 가상의 주소를 정해 1개가 아니라 10개도 설정이 가능하다. 상점 간 약 300m의 최소 간격만 지키면 된다. 이 광고 방식은 내 실제 상점보다 거리가 먼 타깃 지역으로도 영업구역 확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여러 개를 설정할 경우 비용이 부담스럽다. 만약 10개를 설정하면 월 88만원(VAT 포함)의 광고비를 내게 된다. 대신 울트라콜 광고를 통해 주문이 접수되면 추가적인 중개수수료는 없고 결제수수료 3.3%만 추가된다.
두 번째로 ‘오픈리스트’ 광고는 주문창의 최상위 3줄에 랜덤 노출되는 방식으로 주문 1건당 중개수수료 7.48%(VAT 포함)를 낸다. 여기에 결제수수료 3.3%(VAT 포함)가 추가되니 업주는 주문 1건당 총 11%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불한다. 보통 광고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울트라콜’ 광고와 ‘오픈리스트’ 광고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장 이슈가 되는 건 역시 배달료다. 배달료는 보통 배달 대행사를 이용하는데 고객과 업주가 얼마나 분담할지는 업주가 결정한다. 예를 들어 배달료가 5000원으로 책정됐다면 업주가 2000원, 고객이 3000원을 부담하게 책정할 수 있다. 배달료는 날씨나 거리에 따라 할증될 수 있어 가격이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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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펴보면 외견상 배달의민족이 폭리를 취하는 건 아니다. 광고 성격인 ‘오픈리스트’의 중개수수료가 6.8%에 불과해 미국의 배달 앱 수수료와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 배달의민족이 가져가는 수수료는 적더라도 자영업자들이 실제 부담하는 비용은 상당히 크다는 게 문제다. 자영업자들은 광고료 외에도 추가적인 결제수수료 3.3%와 배달료 약 5000원을 고객과 나눠서 부담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자영업자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총 수수료율과 배달료는 주문액의 최소 20%가 훌쩍 넘는다.
소비자 입장은 배달 앱이 등장하면서 편리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무료배달이 당연시되던 짜장면, 치킨 배달마저도 배달료를 내는 현실이 짜증스럽다. 왠지 배달료로 낸 3000원은 강탈당한 느낌이다. 게다가 배달료가 점점 더 올라 이제는 4000원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생기면서 차라리 배달 대신 직접 음식점을 방문해 음식을 수령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자영업자의 경우 초창기에는 전단지 마케팅보다 배달 앱을 이용하는 게 홍보 측면에서 매력적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배달 앱에 종속되는 상황이다. 일명 ‘깃발 꽂기’라고 불리는 ‘울트라콜’ 광고는 1개라도 진행해야 내 가게를 노출할 수 있다. 추가로 1건당 6.8%의 중개수수료를 내는 ‘오픈리스트’ 광고는 꼭 안 해도 되지만 안 하면 노출도가 확 떨어진다. 이 두 가지의 광고를 적절히 섞어야 매출이 유지되기 때문에 광고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한 중간유통과정이 하나 더 생겼는데 그게 바로 배달대행사다. ‘생각대로’, ‘바로고’, ‘부릉’ 등이 배달 라이더들을 관리하는 대표적인 배달대행사들이다. 이들은 업주와 배달 라이더를 앱으로 연결해 주고 콜 수수료와 관리비 명목으로 일정 비용을 청구한다. 한국에서 배달대행사가 생긴 이유는 복합적이다. 배달의민족 같은 배달 플랫폼에서 직접 배달 라이더들을 고용하게 되면 사고보험 등을 정식으로 책임져야 하고 노동자 지위 부여 등 복잡한 문제 때문에 사업 초기에는 고용을 꺼린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실제 배달을 하는 라이더들의 경우 초기에는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츠가 경쟁적으로 프로모션을 통해 추가적인 배달수수료를 많이 챙겨줘서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배달 앱 주문 수가 많이 줄었다. 또 배달 플랫폼들도 과당 경쟁으로 계속 적자에 시달리자 프로모션 비용을 줄여 점점 수수료가 낮아지면서 라이더들이 이탈하고 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영업자도 약자지만 배달 라이더 또한 영세한 노동자라는 점에서 이 고차방정식을 풀어 가기가 쉽지 않다.
‘단건 배달’ 전쟁으로 수익성 악화된 ‘배민’의 전략은
그런데 이런 상황을 다 고려해 봐도 배달의민족의 낮은 수익성은 이해가 안 된다. 수수료율이 6.8%면 적은 게 아닌데 왜 배달의민족은 2조원이 넘는 매출액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은 고작 100억원에 불과한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업계 3위인 쿠팡이츠와의 ‘단건 배달’ 전쟁 때문이다. ‘단건 배달’이란 배달기사가 1회에 1건의 배달만 진행해 배달시간을 단축한 서비스다.
최초에 후발주자였던 쿠팡이츠가 업계 최초로 시작한 단건 배달이 빠른 배달속도로 입소문을 타면서 쿠팡이츠의 사용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에 질세라 배달의민족도 ‘배민1’이라는 단건 배달 서비스로 반격하면서 2021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단건 배달 방식은 심각한 배달 라이더의 인건비 상승을 불러오게 된다. 3개를 같이 묶음 배달하는 방식과 단 1개만 배달하는 방식의 건별 배달비는 당연히 2배 이상 차이 나는 게 상식이다. 이렇게 되자 라이더 수가 현저히 부족해져 라이더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배달의민족은 단건 배달 시 배달 라이더들을 직접 관리하는 배민라이더스(우아한청년들)를 적극 활용했다. 각 업체는 라이더들에게 상당한 프로모션비를 지출하면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이런 비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배달의민족은 쿠팡이츠에 맞서 점주들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배달 ‘오픈리스트’ 광고 이용 시 6.8%로 책정돼 있던 중개수수료를 별도 서비스인 ‘배민1’ 단건 배달 서비스에서는 단돈 1000원으로 대폭 할인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중개수수료 1000원 + 배달비 5000원 = 6000원’이라는 파격적인 할인가격이었다. 단기적으로는 업주들에게 이득이었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배달료 동반 상승이 불가피한 치킨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이런 무지막지한 프로모션 때문에 배달의민족은 2021년을 100억원이라는 소폭의 흑자로 어렵게 마감했다.
그리고 2022년 3월에 전격적으로 ‘배민1’의 ‘기본형 요금제’를 ‘중개수수료 6.8% + 배달비 6000원’으로 정상화했다. 그러자 당장 업주들은 난리가 났다. 하지만 이미 빠른 배달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속도가 느린 ‘일반배달’ 대신 ‘배민1’의 주문을 점점 더 늘려가고 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논란이 된 부분은 ‘배민1’으로 주문했을 때 책정된 배달비 6000원을 실제로 배달 라이더에게 다 지급하지 않는다는 이슈다. 배달의민족은 피크타임이 아닐 때는 배달비를 적게 지급하고 피크타임이나 악천후 상황에서는 라이더들에게 프로모션 형태로 배달비를 추가 지급한다고 해명했지만 업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업주들을 더더욱 절망에 빠뜨린 건 배달의민족이 2022년 4월에 야심 차게 출시한 ‘우리가게 클릭’ 광고상품이다. 이 상품은 네이버, 카카오의 검색광고처럼 실제 주문이 발생하지 않아도 클릭하는 것만으로 건당 200~600원의 광고비가 차감된다는 점에서 공포감을 안겨주고 있다. 추가로 아직까지는 무료였던 ‘포장주문’까지 올해 내에 유료로 전환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수수료 인상 정책으로 결국 업주들의 마진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의 핵심 전략은 독점 수준으로 사용자 수를 확보한 후에 사업 초기의 낮은 사용료를 적정한 수준으로 인상해 수익률을 높이는 방식이다. 2022년 4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되면서 한국 상위 3개 배달 앱의 전반적인 매출액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배달의민족은 이제 적자를 감수하며 무리하게 치킨게임을 지속하기보다 2021년에 달성했던 2조원의 매출액에 걸맞은 수준의 영업이익이 발생하기를 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배달의민족의 평균 수수료율은 장기적으로 기본 중개수수료율인 6.8%보다 높아질 것이다. 이 수수료율이 한계치까지 높아진다면 배달의민족 영업이익은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현재 한국 배달 서비스 시장의 경쟁 현황이다. 그런데 사실 배달의민족은 시장 독점을 통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회심의 핵심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략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강력한 규제로 무력화됐다.
‘딜리버리 히어로’의 M&A 큰 그림과 공정위의 반격
독일 기업인 ‘딜리버리 히어로’는 2019년 12월에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을 약 4조7000억원(총 36억유로, 현금 17억유로 + 딜리버리 히어로 주식 19억유로)에 전격 인수했다. 이 거래는 한국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 역사상 사상 최대 규모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배달의 민족’이 아니라 ‘배다른 민족’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딜리버리 히어로’의 본국인 독일에서는 배달 서비스 사업을 네덜란드 기업인 ‘저스트잇 테이크어웨이’에 매각하고 시장에서 철수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딜리버리 히어로 입장에서는 다 그려 놓은 큰 그림이 있었다. 이 기업은 이미 한국 배달 서비스 점유율 2위인 요기요와 3위인 배달통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점유율 1위인 배달의민족마저 인수하면 드디어 한국 배달 서비스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끝내고 완벽한 독점 구조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한국의 독점 규제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몰랐을 때의 큰 그림이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인앱결제를 강제하는 구글의 갑질 방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정도로 독점과 공정거래 위반에 예민한 나라다. 이런 공정거래위원회가 ‘배달의민족+요기요+배달통’의 합산 점유율이 90%가 넘어가는 걸 뻔히 알면서 독점적 합병을 순순히 승인해줄 리가 없었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업계 2위인 요기요를 매각하는 조건부로 인수합병을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딜리버리 히어로는 요기요 매각 요구는 너무 가혹해 기업 결합 시너지가 사라지고 자영업자, 배달 라이더, 소비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지 않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2021년 11월에 요기요는 GS리테일과 사모펀드에 8000억원에 매각됐다. 이런 이유로 한국 배달 서비스 시장은 1위인 배달의민족과 2위인 요기요, 단건 배달로 돌풍을 일으킨 3위 쿠팡이츠 간의 경쟁이 여전히 치열하다.

2022년 09월호
우버, 음식배달 전쟁서 승리할까
우버이츠, 대마초도 배달
아마존도 음식배달 서비스 전쟁 뛰어들어
배달의민족보다 우버이츠가 더 비싸다고?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이제 미국의 음식배달 서비스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미국의 시장 순위를 살펴보면 1위 도어대시, 2위 우버이츠, 3위 그럽허브다. 한국의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이렇게 3자 대결이 치열하면 수익을 내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우버는 덩치를 키우고 경쟁사를 줄이기 위해 그럽허브와의 합병 협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미국 규제당국 역시 독점에 예민한 편이라 반독점법을 근거로 합병 승인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점유율 3위였던 그럽허브는 전략적으로 우버 대신 네덜란드 국적의 배달 서비스 회사인 저스트잇 테이크어웨이와의 협상을 통해 2020년 6월에 8조8000억원(73억달러)에 매각됐다.
우버는 부득이 다음 달인 2020년 7월에 점유율 4위인 포스트메이트를 3조2000억원(26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뒤이어 2021년 2월에는 주류배달 업체인 드리즐리마저 1조3000억원(11억달러)에 인수하며 덩치를 더 키웠다. 이렇게 미국 배달 서비스 시장은 여러 건의 인수합병을 통해 재편됐지만 결국 한국처럼 3자 대결이 치열한 경쟁 구도가 돼 버렸다.
이들 3사는 음식 배달에 이어 식료품, 주류, 음료 등 비(非)레스토랑 배달 부문인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체인과도 협력해 영역을 확장해 경쟁하고 있다. 특히 우버이츠의 경우 캐나다에서는 ‘대마초 배달 사업’까지 진출했다. 어쨌든 현재 미국에서의 치열한 경쟁 상황으로 볼 때 미국 역시 배달 서비스로 수익을 내기는 매우 어려운 시장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배달 서비스 수수료 현황
한국에서는 배달의민족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소비자와 자영업자들이 많다. 그렇다면 미국의 배달 서비스 수수료율은 한국보다 저렴할까. 그렇지 않다. 미국 우버이츠의 중개수수료는 한국 배달의민족의 6.8% 중개수수료보다 훨씬 더 비싸다.
레스토랑 업주 입장에서 가장 저렴한 라이트 플랜의 수수료율은 15%다. 가장 비싼 프리미엄 플랜의 수수료율은 무려 30%다. 미국 역시 자영업자들에게 중개수수료는 뜨거운 이슈다. 아직 한국에서는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픽업(직접 수령) 주문에 대해서도 6%의 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재의 높은 중개수수료율은 과거보다 인하된 가격이다. 이전에는 평균 수수료율이 30%에 육박했다. 수수료율 인하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규제당국 때문이다. 2021년 하반기에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시는 배달 수수료와 광고 수수료의 폭리를 지적하며 배달 음식값 기준으로 배달수수료는 15%, 광고수수료는 5%를 넘을 수 없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도어대시와 우버이츠 등 배달업계는 ‘수수료 제한은 자유경쟁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며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수수료를 낮췄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레스토랑 업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다. 또 우버이츠는 레스토랑 업주들의 강력한 요구로 레스토랑 내 식사와 배달 음식 간의 동일가격 유지 정책을 폐지했다. 이 정책의 폐지로 레스토랑 업주들은 배달 음식에 대해 레스토랑 식사보다 20%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를 들면 레스토랑에서 10달러인 식사 가격을 배달음식 주문 시에는 12달러로 책정하는 식이다. 이 피해는 누가 보게 될까. 당연히 음식을 주문하는 소비자들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배달 앱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다. 레스토랑뿐 아니라 우버이츠를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수수료를 내기 때문이다. 우버이츠 주문수수료인 일명 ‘서비스 요금’은 지역마다 다르고 거리마다 달라 복잡하므로 정확히 계산해 내는 건 어렵다. 단지 참고 삼아 어떤 미국 소비자가 우버이츠를 주문하고 수령한 영수증 내역을 살펴보자.
미국 소비자(주문자)의 실제 주문영수증 예시를 살펴보면 5달러의 서비스 요금이 눈에 띈다. 이 서비스 요금은 지역, 거리, 음식가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총 지불금액은 실제 음식가격인 33.35달러에서 세금을 포함해 약 30%가 증가된 43.66달러다. 만약 이 피자 가격이 레스토랑 식사 가격보다 20% 더 높게 책정됐다면 실제 소비자가 부담하는 총 추가비용은 음식가격의 50%에 달한다. 여기에 만약 한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팁까지 주게 된다면 소비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우버이츠는 레스토랑 업주에게 20~30%의 비용을 청구하고 소비자(주문자)에게도 10~15%의 비용을 청구하니 총 수수료율은 30~45% 수준이다. 소비자는 세금까지 부담하니 실제 비용은 더 높아진다. 이렇게 비싼 요금을 우버이츠가 진출한 40여 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이 이용하고 있는 걸까.
한국 배달의민족 사용자 수는 2000만명 수준이다. 우버이츠의 전 세계 사용자 수는 2021년 말 기준 8100만명으로 배달의민족의 4배가 넘는다. 연간 예약금액 또한 2021년 기준 약 61조9000억원(516억달러)으로 미국 1위인 도어대시를 압도한다.
미국 배달 서비스 회사 매출액 및 영업이익 현황
미국 1위 배달 서비스 기업인 도어대시의 2021년 매출액은 5조9000억원(49억달러)으로 한국 1위인 배달의민족 매출액 2조원의 3배를 기록했다. 그런데 미국 2위인 우버의 배달 서비스 매출액은 무려 10조원(84억달러)으로 배달의민족 매출액의 5배에 달하며 미국 1위인 도어대시보다도 높다. 어떻게 된 걸까. 도어대시는 미국에서의 매출이 대부분이지만 우버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약 40여 개국에서 배달 서비스 사업을 영위해 미국 외 지역의 매출액도 상당하다.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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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 시장보다 수수료율이 월등히 높은 미국 배달 서비스 기업들은 한국과 달리 수익을 잘 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미국 시장 점유율 1위인 도어대시는 3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2021년에도 5400억원(4억5000만달러)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한국 1위인 배달의민족은 그나마 100억원 흑자였으니 도어대시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 음식배달 서비스 점유율 2위인 우버 딜리버리 부문의 조정 EBITDA(순수 영업활동으로 발생하는 영업이익) 역시 2019년의 1조6464억원(13억7000만달러) 적자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2021년에도 4176억원(3억5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심지어 이 적자는 회계상 영업이익 기준이 아니라 훨씬 완화된 조정 EBITDA 기준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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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5개 분기의 실적으로 세분화해 살펴보면 긍정적인 신호가 있다. 우려의 시선으로 우버 실적 발표를 기다리던 투자자들은 우버 딜리버리 분야의 2022년 2분기 실적 발표 후 환호했다. 조정 EBITDA 기준으로 1188억원(1억달러)의 흑자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특히 엔데믹과 인플레이션으로 2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컸음에도 매출액과 흑자 규모가 모두 큰 폭으로 증가해 시장은 안도했다.
하지만 냉정히 평가해 보면 여전히 우버 딜리버리 사업의 수익성은 심각하게 낮다. 높은 수수료율에도 도어대시와 우버이츠가 고전하는 이유는 더 높은 프로모션 비용 때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상위 3개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며 제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수익성 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점유율 1위와 2위의 영업이익이 이 지경이니 점유율 3위인 그럽허브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배달 전쟁에 다시 참전한 아마존닷컴
미국 시장에서 도어대시와 우버이츠가 치열한 경쟁으로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졌던 이유는 그럽허브의 부진 때문이다. 그럽허브는 한때 미국 시장 점유율 1위였으나 유럽 기업인 저스트잇 테이크어웨이에 인수될 당시인 2020년 6월에는 점유율이 25%까지 하락했다. 그 이후에도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며 현재 13%로 모회사 저스트잇 테이크어웨이의 애를 태우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런던증시에 상장된 저스트잇 테이크어웨이의 주가는 지난 2년간 최고가 대비 80% 이상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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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럽허브가 이대로 무너진다면 미국 배달 시장 경쟁 구도는 3파전에서 도어대시와 우버이츠의 양강 체제로 바뀌게 된다. 자연스럽게 경쟁 강도가 약화돼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쿠팡이츠의 선전에 자극받은 것일까.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닷컴이 2022년 7월에 그럽허브 지분율 2%를 사들일 옵션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3년 전까지 음식배달 서비스인 아마존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시장에서 철수한 아마존의 재등장 선언에 도어대시와 우버의 주가는 발표 당일 각각 7%, 4% 폭락했다.
아마존은 2억명이 가입한 자사의 ‘프라임’ 멥버십 유료 서비스에 음식배달 서비스를 1년간 무료(일부 식당)로 제공할 파트너로 그럽허브를 선택했다. 향후 그럽허브의 가입자가 증가할 경우 그럽허브 지분을 최대 15%까지 추가 매입할 수 있는 조건도 포함됐다. 이 계약으로 인해 2020년 6월에 그럽허브를 고가 매수해 애를 먹고 있던 저스트잇 테이크어웨이는 좋은 가격에 회사를 매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도어대시와 우버이츠는 이 전쟁이 격화될수록 수익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점점 더 멀어진다.
마지막 희망으로 자율주행 무인 로봇 배달 서비스 시대가 더 빨리 온다면 어떨까. 배달 운전자들의 높은 인건비를 배달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도어대시와 우버이츠의 수익성은 큰 폭으로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배달 로봇은 초보 단계라 언제 활성화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우버가 2020년에 인수한 포스트메이트는 배달로봇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다. 최근 레벨4 단계의 자율주행 배달로봇인 ‘서브’를 선보였는데 아직은 한계가 뚜렷하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된 인플레이션 역풍과 경기 침체 영향으로 2022년 하반기의 배달 서비스 성장 속도는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애널리스트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우버는 ‘딜리버리’ 분야에서 언제쯤 조정 EBITDA가 아닌 회계상 영업이익 기준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이 의문은 우버 투자자들뿐 아니라 미국의 도어대시와 한국의 배달의민족, 동남아시아의 그랩 투자자들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궁금증이다.
우버는 투자자들의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레스토랑 업주와 소비자, 배달 운전자에게 주던 막대한 프로모션 비용을 줄이고 있다. 또 우버이츠의 광고상품을 다양화해 앱 상단에 표시되는 광고부터 클릭당 광고료를 받는 방식 등 다양한 광고전략을 도입했다.
추가로 ‘우버원’이라는 월 9.99달러의 유료 멤버십 서비스를 통해 충성도 낮은 고객들을 우버이츠에 묶어놓는 전략도 활용한다. 개인 외에 기업형 멤버십 서비스 확장에도 적극적이다. 이런 노력들로 우버의 딜리버리 사업이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까. 많은 투자자들이 우버가 의미 있는 수준의 영업이익 흑자를 낼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2022년 09월호
전 세계 택시들 공공의 적...우버, 규제에 침몰하나
우버 운전기사 정식 고용 요구한 법원
미래에는 자율주행차로 승부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우버가 만들어낸 승차공유 호출 앱 덕분에 이제 운전자는 승객들을 찾아 불필요하게 도로를 헤매지 않는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승객이 호출했을 때 빠르게 승객에게 달려가는 효율적인 영업이 가능해졌다. 사업 초기에는 우버의 인지도가 낮아 운전자들과 계약을 맺는 데 애를 먹었지만 다양한 프로모션을 통해 운전자 확보에 성공했다. 승객들은 안 잡히는 택시를 기다리는 대신 우버를 찾았고, 운전자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개인차량을 이용해 택시 면허 없이도 돈을 벌 수 있으니 우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혁신적인 상품으로 가장 피해를 본 집단은 어디일까. 바로 뉴욕의 택시기사들이다. 뉴욕의 택시사업 구조는 한국의 개인택시 면허와 비슷하다. 뉴욕 택시 면허 가격은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이민자들의 높은 수요로 2014년에는 12억원(100만달러)까지 치솟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우버의 차량공유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현재는 10분의 1 가격인 1억2000만원(10만달러) 수준으로 폭락했다.
문제는 뉴욕에서 택시 면허를 가지고 있는 약 1만2000명의 택시기사들 중 상당수가 택시 면허를 매수하기 위해 수억원 이상의 빚을 졌다는 사실이다. 택시 면허 가격이 폭락하자 최근 몇 년간 10명 이상의 택시기사들이 자살하면서 사회문제화돼 우버를 향해 비난이 쏟아졌다.
우버의 출현이 뉴욕 택시기사들에게만 문제가 된 건 아니다. 우버가 2014년 영국에 진출한 이후 블랙캡 택시기사들의 우버에 대한 적개심 또한 엄청나다. 블랙캡 택시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2만5000개의 런던 거리와 320여 개의 노선을 모두 외운 후 필기와 실기시험을 포함하는 ‘지식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우버가 들어온 후부터 블랙캡 기사들의 소득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영국 택시업계는 우버에 각종 소송을 제기해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였다. 그 외에도 독일, 스페인 등 전 세계 택시기사들에게는 우버가 공공의 적으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과거 몇 년간 우버와 뉴욕 택시기사들은 서로 승객들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2022년 3월에 우버는 일명 ‘옐로캡’으로 불리는 뉴욕시의 택시들을 우버 앱에 등록하는 방식의 택시호출 서비스 제공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승객들은 우버 앱을 통해 뉴욕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우버는 택시 관련 규제가 강력한 한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만 택시 호출 서비스를 제공했을 뿐 미국에서 택시 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 택시기사들과 우버는 각각의 필요에 의해 결국 서로 협력하게 됐다.
우버 운전기사는 자영업자? 노동자? 사방에 규제
전 세계 택시기사들은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우버와 다양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우버에게는 또 다른 규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택시기사가 아니라 우버와 계약한 우버 운전기사들의 생존권 문제다. 우버 운전기사는 자영업자(독립계약자)인가, 아니면 노동자(근로자)인가. 이 해석은 중요하다.
만약 우버 운전기사들이 모두 노동자로 판명이 나면 정식 직원으로 고용해야 하는데 이 경우 최저임금, 초과근무수당, 휴식시간 보장, 복지혜택, 세금 등 다양한 부분에서 비용이 급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지금도 계속 적자 상태인 우버의 손익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규제 중에서 대표적인 게 바로 2020년 1월에 캘리포니아에서 발효된 AB5(Assembly Bill 5)법이다. 예를 들어 우버와 운전기사의 관계가 ‘AB5법안’의 ‘ABC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우버는 운전기사에게 자영업자(독립계약자)가 아니라 노동자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벌금 부과와 영업 중단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결국 우버와 운전기사의 관계는 ABC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법원은 우버의 운전자들을 모두 정식 직원으로 고용하라고 판결했다. 우버는 항소하며 새로운 돌파구로 ‘주민발의 법안 22호(Prop 22)’에 대한 주민투표를 2020년 11월에 진행했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우버 기사, 음식 배달원 등의 플랫폼 노동자를 직원이 아닌 독립계약자로 인정하되 최저임금의 120%를 보장하고 건강보험료를 보조’하는 일종의 절충안이다. 이 법안이 캘리포니아 주 유권자 58%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미국의 우버, 리프트, 도어대시 등 이 법안과 관련 있는 회사들은 ‘주민발의 법안 22호’의 통과를 위해 홍보비용으로 서로 연대해 약 2400억원(2억달러)을 쏟아부었다. 이들의 핵심 논리는 역시 소비자 편익이었다. 다행히 이 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우버는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2021년에 캘리포니아 고등법원은 이 ‘주민발의 법안 22호’를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우버가 곧바로 항소해 여전히 이 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버의 운전기사가 독립계약자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판결이 난 곳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영국 대법원도 2021년 2월에 우버 운전기사는 독립계약자가 아니라 노동자이므로 그에 맞는 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네덜란드에서도 2021년 9월에 비슷한 판결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우버는 전 세계에서 여전히 수많은 규제 리스크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다.
우버는 승차공유 사업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이런 수많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우버는 승차공유 사업을 전 세계적으로 계속 확장해 왔다. 가장 큰 이유는 먼 미래에는 돈이 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우버 승차공유 사업의 수수료율은 약 25%다. 운전자는 고객에게 받은 돈의 25%를 우버에 지불한다. 언뜻 보면 상당히 양호한 수익 구조다. 그렇다면 우버 승차공유 사업의 매출액과 수익금은 얼마나 될까. 이제 우버 모빌리티 분야의 매출현황과 ‘조정 EBITDA’ 현황을 살펴보자.
우버 모빌리티 분야의 2019년 매출액은 사상 최대치인 12조9000억원(107억달러)이었다. 우버는 이런 막대한 매출액에 힘입어 2019년 5월에 전격적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 하지만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이듬해인 2020년 매출액은 5조6000억원(46억달러) 급감한 7조3000억원(61억달러)에 그쳤다. 무려 43%가 급감한 수치다.
우버의 승차공유 사업은 공항과 도심 사이를 이동하는 여행객 매출 비중이 높은 편인데 코로나로 인해 여행객 수가 급감하면서 매출 타격이 컸다. 2021년에는 다소 회복된 8조3000억원(7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2019년의 매출액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2위인 리프트의 2021년 매출액은 3조8000억원(32억달러)으로 우버 매출액의 45%에 불과해 1위와 2위의 매출 규모 차이는 상당한 편이다.
아직 영업이익은 적자이지만 성장성은 높다고 주장하는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발표하는 지표가 있다. 바로 조정 EBITDA(순수 영업활동으로 발생하는 영업이익)다. 하지만 이 지표는 회계상의 영업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어쨌든 이 변명 같은 조정 EBITDA로 보면 우버 모빌리티 사업은 2021년에 1조9150억원(16억달러)의 흑자를 기록 중이다. 2년 전인 2019년에도 이미 5700억원(4억80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해 2021년 4분기부터 간신히 조정 EBITDA가 흑자로 돌아선 우버 딜리버리 사업보다는 수익성이 양호한 편이다.
리프트 역시 2020년의 9050억원(7억6000만달러) 적자에서 2021년에는 1100억원(9000만달러)의 소소한 흑자로 돌아선 점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냉정히 볼 때 조정 EBITDA가 아닌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서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우버와 리프트의 수익성에 대한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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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5개 분기의 실적을 세분화해 살펴보면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 특히 2022년 2분기의 우버 모빌리티 부문 실적은 그야말로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2분기 매출액은 1분기 대비 41% 급증한 4조3000억원(36억달러)을 기록해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엔데믹이 다가오면서 여행하는 사람들과 회사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조정 EBITDA 역시 전분기 대비 25% 증가한 9000억원(8억달러)을 기록해 실적 발표 당일에 주가는 19% 급등했다.
특히 투자자들을 안심시킨 건 엔데믹과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운전자를 구하기가 어려워 비용 증가가 클 것이라는 전망이 빗나갔다는 사실이다. 우버는 2분기 실적 발표 후 “우버에 등록한 총 운전자(승차공유 및 음식배달) 수가 500만명에 가깝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31%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고치다. 우버 CEO인 다라 코스로우샤히는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많은 운전자들이 우버에 등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초장기적으로는 자율주행차가 승부처
우버는 음식배달 서비스의 경쟁사인 도어대시나 승차공유 서비스의 경쟁사인 리프트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 바로 배달 운전자와 승차공유 운전자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버는 배달 서비스 집중 시간대와 승차공유 서비스 집중 시간대가 다르다는 걸 간파하고 운전자들이 이 두 개의 앱을 같이 활용해 돈을 더 벌어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런 장점은 충성도가 낮은 운전자들을 우버에 묶어놓는 데 있어 경쟁사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버의 적자가 큰 폭 흑자로 전환되기는 쉽지 않다. 여전히 운전자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우버 승차공유 사업의 수수료율은 25%다. 운전자는 우버에 내는 이 수수료 25%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고, 우버는 운전자에게 주는 75%의 운임이 비싸다고 생각한다. 동상이몽이다. 음식배달사업에서도 배달운전자에게 지급하는 비용이 상당하다. 우버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우버 운전자가 벌어가는 돈이 전년 동분기 대비 37% 증가했다고 밝혔다.
우버의 지상 최대 과제는 빨리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차를 도입해 이 불필요한 운전자 비용을 아끼는 전략이 급선무다. 그런데 이율배반적이다. 그동안 운전자들 덕에 여기까지 성장한 우버의 최종 목표가 운전자들의 직업을 몽땅 없애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우버에게 자율주행차는 미래의 희망이다. 자율주행 트럭과 자율주행 배달로봇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과연 미래에 자율자행차가 도입됐을 때 승객들이 우버의 승차공유 서비스만 이용하려 할까. 테슬라가 우버만 부자 되라고 자율자행차를 어렵게 개발해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 줄 이유는 없다. 당연히 우버를 위협할 독자적인 자율주행차 공유 서비스 앱을 함께 출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우버는 막강한 빅테크 기업들을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우버는 과연 계속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자율주행차 기술력을 가진 업체들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다행히 우버는 상당한 자율주행차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오로라 이노베이션’의 지분을 26% 가지고 있는 최대 주주다. 그리고 과거에 자율주행 기술 절도 분쟁으로 소송까지 진행했던 구글의 웨이모와 다시 손잡기도 했다. 2022년 6월에 웨이모의 자율주행차량을 화물 운송 중개 서비스인 ‘우버 프레이트’의 플랫폼에 활용하기로 양사가 합의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면 아직 자율주행차가 활성화될 시기는 멀었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적이다. 기술 발달과 규제 완화가 빠르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우버에게는 먼 미래에나 도입될 자율주행차보다는 당장 현재의 사업에서 어떻게 수익을 낼지가 더 중요하다.
우버 모빌리티 사업의 매출액이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조정 EBITDA로는 매 분기 흑자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 또 경쟁사와의 경쟁 강도도 완화되고 있다. 우버 모빌리티 사업의 영업이익 흑자 달성은 자율주행차가 본격적으로 도입돼야만 가능한 걸까. 확실한 건 코로나로 충격받았던 최악의 시기는 지나갔다. 우버의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자율주행차 없이도 모빌리티 사업이 조만간 영업이익 흑자로 돌아설 거라는 기대감이 상당하다.

2022년 09월호
자율주행차 버리고...우버, 웬 화물 배송?
에어택시·자율주행 사업 매각 왜?
우버 화물배송 중개 서비스 급성장
영업이익은 심각한 적자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우버 투자자들을 가장 충격에 빠뜨린 사건은 미래 사업이자 차세대 먹거리로 손꼽혀 왔던 ‘자율주행 사업’과 ‘에어택시 사업’의 매각 결정이다. 우버는 자율주행차 사업 부문인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스 그룹(ATG)’ 지분 86%를 2020년 12월에 ‘오로라 이노베이션’에 매각하는 대신 오로라 지분 약 26%(2022년 기준)를 확보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다행히 우버가 최대주주의 지위를 유지해 향후에도 오로라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가능한 구조였다.
곧 이어 에어택시 사업부인 ‘우버 엘리베이트’를 ‘조비 에비에이션’에 매각하는 대신 상호간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추가로 발표했다. 거래가격은 900억원(7500만달러)이다. ‘오로라 이노베이션’과 달리 우버의 ‘조비 에비에이션’ 지분율은 약 4%로 미미하다. 참고로 조비 에비에이션의 최대주주는 16%의 지분을 보유한 창업자 조벤 비버트이고, 2대주주는 12%의 지분을 보유한 도요타자동차다.
이 발표로 투자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무인 자동차’와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는 근사한 비즈니스는 투자자들의 꿈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우버가 앞으로는 신성장 사업으로 음식배달 사업과 화물운송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투자자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런 핵심 미래 사업을 다 팔아버리면 우버는 첨단기업이 아니라 그냥 ‘배달기사’나 ‘운전기사’를 연결해 주는 심부름센터 수준 아니냐”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우버의 자율주행 사업부와 에어택시 사업부 매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꽤 많다. 우버가 그동안 자율주행차 사업에 쏟아부은 돈은 약 1조2000억원(10억달러)이다. 하지만 향후에도 자율주행차 시장이나 에어택시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오랜 시간이 더 필요하고 연구개발비로도 막대한 추가 자금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우버의 자율주행차 기술력은 테슬라나 구글의 웨이모보다 낮아 장기적으로 승산이 없다는 게 객관적인 전망이었다.
우버의 다라 코스로샤히 CEO는 차라리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배달 사업이나 승차공유 사업에 집중해 일단 심각한 재무구조부터 개선하겠다는 전략이다. 대신 자율주행 분야나 에어택시 분야는 전략적 제휴를 통해 먼 훗날 상용화 단계에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우버는 사실 에어택시의 원조 격인 회사다. 2016년 10월에 일명 ‘우버 백서’ 보고서를 통해 에어택시의 표준을 정의하고 전반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또 2017년에는 에어택시의 구체적인 원형까지 공개했다. 우버가 아쉽게도 에어택시 사업부는 매각했지만 이 꿈을 이어받은 조비 에비에이션이 에어택시를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우버와의 협력을 통해 시장 선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주행차 회사인 오로라 이노베이션의 기술력도 만만치 않다. 오로라는 구글의 자율주행기술 개발에 참여한 크리스 엄슨과 테슬라의 기술 개발에 참여한 스털링 엔더슨이 공동창업한 회사다. 여기에 우버의 자율주행사업부 기술력까지 합쳐졌으니 무시 못할 존재감이다. 오로라가 특히 공을 들이는 분야는 바로 자율주행 트럭이다.
오로라와 우버의 이해관계는 명확히 일치한다. 오로라는 자율주행 트럭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후 우버를 통해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우버는 최근 급성장 중인 화물운송 중개 서비스 ‘프레이트’를 자율주행 방식으로 진화시켜 화물운송 시장을 장악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복잡한 도심에서 운행되는 승용차 자율주행에 대한 정부의 최종 승인은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한적한 고속도로와 시골길을 운행하는 화물트럭 자율주행차의 운행 승인은 승용차보다는 다소 수월할 것으로 기대된다.
프레이트? 우버가 화물배송 중개 사업에 진심인 이유
우버는 자사의 주력사업을 딜리버리, 모빌리티, 프레이트 등 총 3개 분야로 나눠서 표기한다. 이 중 마지막 사업인 ‘프레이트(Freight)’는 화물운송 중개 서비스다. 우버에게는 지금 당장 매출이 발생하는 프레이트 사업이 먼 미래인 자율주행과 에어택시 같은 최첨단 사업보다 더 소중하다. 프레이트의 매출 성장세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버 프레이트는 어떻게 돈을 버는 걸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물류사업에 대한 기본지식이 필요하다.
물류사업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퍼스트 마일, 미들 마일, 라스트 마일이다. 퍼스트 마일은 제품이 생산돼 최초로 이동하는 구간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나이키가 최초로 공장에서 신발을 제조해 인근에 있는 자신들의 물류창고까지 제품을 운반했다면 이를 퍼스트 마일이라 할 수 있다.
미들 마일은 기업과 기업 간의 물류 이동이 일어나는 구간이다. 예를 들어 나이키가 자신들의 물류창고에서 신발을 출고해 전국 각지의 쿠팡 물류창고로 운송했다면 이를 미들 마일이라 할 수 있다. 또는 신발을 수출하기 위해 항만이나 공항의 물류창고로 운송했다면 이 또한 미들 마일이다. 그런데 퍼스트 마일과 미들 마일을 정확히 구분 짓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냥 퍼스트 마일과 미들 마일을 합친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라스트 마일은 운송의 마지막 단계다. 최종 목적지까지 제품을 책임지고 배송해 주는 서비스로, 마지막으로 소비자와 만나는 구간이다. 나이키의 신발로 예를 들면 쿠팡의 물류창고에 보관된 신발이 각 소비자의 집까지 배송되는 구간이다. 우버이츠의 음식배달 서비스도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라스트 마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우버의 프레이트 사업이 주력하는 쪽은 바로 미들 마일이다. 미들 마일은 의류, 신발과 같이 최종소비자와 밀접한 제품 외에도 철강, 기계 등 국가의 주요 산업과 관련 있는 대형 사이즈의 물류를 포함한다. 이런 물류 운송의 핵심 수단은 대형 화물트럭이다. 미국의 국토 면적은 한국보다 99배 넓어 미들 마일 시장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미들 마일 시장은 화물 운전자인 차주, 화물의 소유자인 화주, 차주와 화주를 연결해 주는 운송사나 주선사로 구성돼 있다. 과거에 미들 마일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주체는 운송사나 주선사다. 운송사는 화물차를 보유하고 있고, 주선사는 화물차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게 차이점이다. 이들은 중간에서 화물차 운전자와 화물운송을 원하는 화주를 연결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우버 프레이트가 제공하는 서비스 역시 화물차 운전자와 화물운송을 원하는 화주를 연결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기존의 주선사와 차이점이 있다면 우버 프레이트는 훨씬 정교한 모바일 앱을 통해 연결해 준다는 점이다. 우버 프레이트의 핵심 경쟁력은 우버X 같은 승차공유 서비스 방식의 모바일 앱이다.
이 서비스가 미국 화물운송 중개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기존의 아날로그에 가까운 중개 방식을 최첨단 디지털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이다. 이 화물운송 중개 서비스는 승차공유 서비스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승차공유는 승객의 현재 위치와 목적지 정보만 있으면 손쉽게 연결이 가능하다. 반면 화물운송 중개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화물의 종류와 부피가 각각 달라서 화물별로 운반 가능한 화물트럭의 종류도 다르기 때문에 연결이 더 복잡하다.
특히 우버 프레이트가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는 건 운송비를 24시간 내에 지급한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운송비 지급에 30일 이상이 소요돼 화물차 운전자들의 불만이 많았다. 또 다른 장점은 알고리즘을 통한 효율적인 배차 작업으로 화물트럭의 공실률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배차 방식이 다소 주먹구구식이라 화물차 운전자들의 불편이 상당했다. 하지만 우버 프레이트 앱이 나온 후에는 우버X 운전자들처럼 화물차 운전자들도 프레이트 앱을 통해 화물운송을 원하는 화주와 손쉽게 연결이 가능해졌다. 이런 이유로 화물차 운전자들의 프레이트 앱 가입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우버는 이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하고 화물운송 사업을 더 확대하기 위해 2021년에 화물운송 소프트웨어 기업인 ‘트랜스플레이스’를 2조7000억원(22억5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이 합병을 통해 우버 프레이트는 더욱 정교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우버 프레이트의 장기적인 계획은 화주 정보, 화물차운전자 정보, 화물의 특성, 화물 이동경로 등을 빅데이터로 축적해 더욱 정교한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앞으로의 물류 경쟁력은 누가 더 퍼스트 마일과 미들 마일, 라스트 마일 과정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지에 달려 있다. 물론 이 분야에서 우버 프레이트의 경쟁력은 상당히 높다.
우버 프레이트 부문의 매출액은 2019년에는 9000억원(7억달러)으로 미미했지만 2021년에는 2조6000억원(21억달러)으로 2년 만에 매출액이 3배 급성장했다. 조정 EBITDA는 2019년도에 -2600억원(2억2000만달러)을 기록하며 부진했지만 2021년에는 -1560억원(1억3000만달러)으로 적자가 축소됐다.
최근 5개 분기의 실적을 세분화해 살펴보자. 가장 최근인 2022년 2분기 매출액은 직전 1분기와 비슷한 2조2000억원(18억달러)으로 성장세가 미미하다. 하지만 전년 동분기 매출액 4000억원(3억달러)과 대비해 보면 무려 426%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매출액이 급증한 이유는 트렌스플레이스 인수로 인해 합산 매출액이 커진 영향도 있다.
특히 조정 EBITDA가 2021년 2분기에는 490억원(4000만달러)의 적자로 부진했지만 2022년 2분기에는 60억원(5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점도 눈에 띈다. 우버가 지금 당장은 돈이 안 되는 자율주행차나 에어택시보다 곧 돈이 될 가능성이 높은 우버 프레이트 사업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식배달과 화물배송 사업으로 매출 급성장
만약 우버가 사업의 출발이자 뿌리 사업인 모빌리티 분야에만 집중하고 음식배달 사업인 딜리버리 분야나 화물운송 중개 사업인 프레이트 분야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빌리티 분야는 2019년의 12조9000억원(107억달러) 매출액 대비 2021년에는 8조3000억원(70억달러)으로 35%의 감소세를 보이며 2021년에도 여전히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신사업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우버는 매출액이 감소하며 성장세가 꺾인 그저 그런 회사로 인식됐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버가 딜리버리 분야에 진출함으로써 2019년에 1조7000억원(14억달러)에 불과했던 매출액이 2021년에는 10조원(84억달러)으로 무려 500% 폭증한 딜리버리 사업모델을 추가로 보유하게 됐다. 프레이트 사업에도 진출해 2021년 매출액이 2조6000억원(21억달러)을 기록하며 든든한 우버의 3번째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3개의 막강한 사업부문을 합치면 우버의 2021년 매출액 합계는 무려 20조9000억원(175억달러)에 달한다.
우버 전체 사업의 매출액 비중을 살펴보면 딜리버리 분야가 48%, 모빌리티 분야가 40%, 프레이트 분야가 12%다. 딜리버리 사업 매출이 모빌리티 사업 매출보다 높은 이유는 코로나19 특수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다. 2022년 2분기에는 다시 모빌리티 사업의 매출이 더 높아졌다. 그 외 프레이트 분야의 매출 비중이 커진 것도 눈에 띈다.
우버의 지역별 매출액 비중을 살펴보면 미국·캐나다(58%) 비중이 가장 높긴 하지만 유럽·중동·아프리카(18%), 아시아태평양(16%), 라틴아메리카(8%)의 비중도 상당하다. 그만큼 글로벌 분산이 잘돼 있다는 뜻이다. 이런 글로벌 분산 전략은 음식배달 경쟁업체인 도어대시나 승차공유 경쟁업체인 리프트보다 뛰어난 우버만의 강점이다. 참고로 도어대시와 리프트의 매출액을 다 합쳐도 9조7000억원(81억달러)에 불과해 우버 전체 매출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우버가 문어발 기업인 이유
우버는 왜 디디글로벌(디디추싱), 그랩홀딩스, 조마토, 얀덱스 택시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까. 부진한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했던 중국, 동남아, 인도,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본인들의 사업을 넘기고 대신 강력한 경쟁사들의 지분을 받으면서 본의 아니게 문어발 기업이 됐다.
대표적으로 중국에서는 2016년에 우버의 중국 사업을 디디글로벌에 매각하고 11%의 지분을 확보했다. 2018년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우버 사업부를 그랩과 합병하고 지분 14%를 차지했다. 2020년에는 인도에서 우버이츠를 조마토에 넘기고 7%의 지분을 챙겼다. 러시아에서는 합작법인인 얀덱스 택시 지분 29%를 확보하고 2017년에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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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후퇴 전략이 꼭 우버에게 불리한 건 아니다. 끝도 없는 치킨게임을 하려면 마케팅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데 우버는 지금 적자 회사다. 한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너무 많은 경쟁자들을 상대하는 게 좋은 전략은 아니다. 차라리 경쟁회사에 현지 사업체를 넘겨 경쟁을 완화하고 경쟁회사의 지분을 받는 게 서로에게 이득일 수 있다.
하지만 우버의 2022년 1분기 실적 발표 후 시장은 경악했다. 1분기에 무려 6조7000억원(56억달러)의 주식평가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우버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디디글로벌, 그랩홀딩스, 조마토, 오로라 이노베이션의 주가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폭락했기 때문이다. 추가로 2022년 2분기에도 또다시 2조원(17억달러)의 주식평가손실이 발생했다.
보유주식의 평가손실은 영업활동에서 발생한 손실은 아니다. 하지만 우버의 수익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악재로 인식된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우버 투자회사들의 주가는 2022년 2분기 말에 바닥을 형성한 후 큰 폭으로 반등했다. 따라서 우버의 3분기 주식평가손익은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버, 이제는 이익을 내고 싶다
우버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였던 트래비스 칼라닉은 각종 사건 사고로 2017년 6월에 물러났다. 우버에게는 유능한 새 CEO가 절실했다. 그래서 온라인 여행업체 익스피디아의 CEO였던 다라 코스로샤히를 어렵게 모셔왔다. 새로운 우버 CEO는 수익성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 전 세계 시장 중 경쟁이 치열한 10여개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철수했다. 또 코로나19로 수익성이 더 악화된 2020년 5월에는 전체 직원 2만8600명 중 25%에 달하는 6700명을 해고해 고정비용을 줄이는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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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익성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버의 영업이익은 심각한 적자다. 그래서 우버의 사업구조로는 애초부터 수익 달성이 불가능한 게 아닌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버는 2019년에 12조9000억원(107억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음에도 10조3000억원(86억달러)이라는 무시무시한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다행히 2020년에는 -5조8000억원(49억달러), 2021년에는 -4조6000억원(38억달러)으로 영업적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영업적자가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우버보다 더 영업적자가 심각한 기업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유일하다. 한국전력은 2021년에 5조9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사기업 중에서 우버보다 더 심각한 영업적자를 기록한 한국 기업은 없다.
영업이익이 엉망이다 보니 우버는 영업과 상관없는 감가상각 비용과 스톡옵션 비용을 차감하지 않고 계산한 조정 EBITDA를 별도로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정 EBITDA마저도 적자였다. 2019년에는 3200억원(3억달러), 2020년에는 4700억원(4억달러)의 적자를 보였다. 하지만 2021년엔 1조3200억원(11억달러)의 흑자로 전환하며 수익성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우버의 최근 5개 분기 전체 실적을 살펴보면 수치가 확연하게 좋아지고 있다. 우버의 2022년 2분기 실적 발표 후 시장은 환호했고 발표 당일에 주가는 19% 폭등했다. 2분기 실적이 예상과 달리 직전 분기 대비 매출액은 18%, 조정 EBITDA는 117% 폭증해 시장 전망치를 모두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우버의 3대 주력사업인 딜리버리, 모빌리티, 프레이트 부문의 조정 EBITDA가 모두 흑자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우버의 월간사용자수(MAPCs)도 1억2200만명을 기록하며 전년 동분기 대비 21% 성장했다.
특히 2022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우버가 매우 자랑스러워한 지표가 있다. 바로 우버 역사상 처음으로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이 4600억원(3억8200만달러)의 플러스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잉여현금흐름이란 기업이 일상적인 영업활동을 통해 현금을 만들어내고 추가로 영업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투자를 진행하고도 기업에 남은 현금을 의미한다. 잉여현금흐름은 현금흐름표상의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 - 영업에 대한 투자’라는 산식으로 계산한다. 이 지표가 플러스로 돌아섰다는 건 우버의 심각하게 나쁜 수익성이 개선됐다는 확실한 신호다.
우버가 택시보다 비싸진 이유
이제 우버는 반드시 수익을 내야 하는 코너에 몰려 있다. 우버의 2022년 6월 말 기준 자기자본은 8조8000억원(74억달러)에 불과하다. 누적적자가 무려 38조6000억원(322억달러)에 달한다. 플랫폼 기업에 초기의 대규모 적자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창업 13년 차인 우버가 앞으로도 계속 적자를 낸다면 결코 지속가능한 기업이 될 수 없다.
우버는 소비자와 운전자 양쪽의 눈치를 봐야 해서 기본적으로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없는 사업구조다. 하지만 사용자 수를 계속 늘려 매출을 지속적으로 키운다면 마진은 낮더라도 박리다매로 수익을 계속 확대해 갈 수 있는 구조다. 우버의 해법은 결국 성장과 수익이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렌터카 대여비용보다 우버를 이용하는 요금이 더 저렴했다. 이론적으로 운전자 비용이 추가되는 우버가 운전자 없이 차만 빌려주는 렌터카보다 더 저렴하다는 건 모순이다.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건 우버가 승객과 운전자들에게 보조금을 엄청나게 뿌려 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마케팅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과거에 택시보다 저렴했던 우버X의 미국 소비자 요금은 2022년에 들어서면서 택시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제 우버가 막대한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수익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우버가 승차공유 운전자와 음식배달 운전자의 보조금을 축소하고도 지금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심각한 영업적자가 흑자로 전환되는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그리고 먼 미래에 자율주행차, 자율주행 배송로봇, 자율주행 화물트럭이 정말로 상용화되고, 우버가 이 시장에서 막강한 잠재 경쟁자들인 테슬라나 구글 웨이모와 치열한 경쟁 대신 잘 협력해 지금의 시장을 지켜낼 수 있다면 우버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게 높아질 것이다.
우버 주가는 저평가인가, 고평가인가
우버는 2019년 5월에 공모가 45달러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이후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3월에는 14달러가 붕괴되기도 했다. 이후 2021년 2월에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상 최고치인 64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8월 초 주가는 31달러로 직전 최고점 대비 52% 폭락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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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의 시가총액은 2021년 2월 최고점 당시에는 155조원이었으나 2022년 8월 초에는 75조원까지 하락했다. 1년 6개월 만에 80조원이 허공으로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2021년에도 4조6000억원의 엄청난 영업적자를 낸 우버의 시가총액이 75조원이라면 과연 저렴한 걸까. 우버의 적정 주가에 대한 판단은 우버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것이다.
우버와 같이 성장성은 높지만 적자가 지속되는 기업의 가치평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반적인 가치평가 지표인 PER(주가수익비율)의 경우 이익을 기반으로 계산되므로 적자 기업은 수치 산출이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 보조지표인 PSR(주가매출비율)을 활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PSR을 구하는 공식은 ‘시가총액/매출액’이다. 이를 우버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시가총액 75조원 / 2021년 매출액 21조원 = PSR 3.5’가 계산된다. 성장성이 높은 기업들의 평균 PSR은 5.0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PSR 수치로만 본다면 우버의 주가는 저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버의 경우 적자폭이 워낙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우버에게는 단기 과제와 장기 과제가 있다. 단기 과제는 모빌리티, 딜리버리, 프레이트 분야의 조속한 흑자 전환이다. 장기 과제는 자율주행차를 빨리 도입해 운전자들에게 들어가는 인건비를 없애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일이다. 단기 과제와 장기 과제 둘 다 해결하기가 까다로운 문제들이다.
하지만 만약 이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 낸다면 우버는 이동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연결해 주는 세계 최고의 슈퍼 앱을 운영하는 회사가 된다. 우버의 주가는 시장에서 엄청난 재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만약 우버가 이 어려운 단기 과제와 장기 과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투자자라면 우버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2022년 09월호
우버 승차공유 앱이 한국서 쫓겨난 이유는
전 세계 승차공유 기업 주가 줄줄이 폭락 중
한국에서 우버와 타다는 불법?
우버, 택시호출 앱 시장에서 카카오와 경쟁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우버의 공동창업자인 트래비스 칼라닉은 2008년 말에 친구와 같이 파리에서 택시를 잡는 데 애를 먹다가 승차공유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아이디어로 2009년 3월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버가 시작됐다. 우버는 위치 서비스가 탑재된 애플의 스마트폰을 잘 활용했다. 세계 최초로 승객들이 실시간으로 자신의 위치를 운전자에게 알려주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승차공유 호출 앱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우버는 자사의 주력사업을 딜리버리, 모빌리티, 프레이트 등 총 3개 분야로 나눠서 표기하는데 이 중 ‘승차공유’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모빌리티 분야의 2021년 매출액은 3개 분야 중 2번째로 크다. ‘모빌리티’의 사전적인 의미는 ‘이동을 편리하게 만드는 이동 수단과 각종 서비스를 포괄하는 용어’다. 좀 더 직관적으로는 ‘IT가 결합된 이동수단’이다. 우버는 미국 승차공유 시장 점유율 70%의 압도적 1위 사업자이며 캐나다, 유럽, 중남미 지역에서도 높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승차공유 회사 주가는 줄줄이 폭락 중
승차공유 서비스 사업의 최대 장점은 차량을 보유하지 않아 막대한 고정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이다. 단지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해 주고 수수료만 받으니 최고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물론 법률상 문제가 없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안타깝게도 ‘우버 운전자가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돈을 받고 고객을 태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행위’는 전 세계 각국에서 법률상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예측할 수 없는 법률 위반 리스크 때문일까.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새롭게 증시에 상장된 승차공유 서비스 기업들의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 중이다. 중국 1위 승차공유 기업인 디디추싱(디디글로벌)은 2021년 6월 공모가 14달러에 ADR(미국 주식예탁증서) 형태로 화려하게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사전승인 없이 기업공개(IPO)가 진행된 탓에 심기가 뒤틀린 중국 정부의 무시무시한 압박을 받아 중국 본토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전격적으로 상장폐지를 결정하면서 1년 뒤인 2022년 6월에 미국 증시에서 하차했다. 디디글로벌(ADR)의 상장폐지 당시 주가는 2.3달러로 공모가 대비 하락률은 무려 -84%다.
동남아 1위 승차공유 회사이자 음식배달 회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그랩의 주가도 고전하고 있다. 2021년 12월의 상장 기준가(스팩 상장)는 11달러였는데 2022년 7월 말 주가는 3달러로 상장 기준가 대비 73% 폭락하며 투자자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미국 1위 승차공유 회사인 우버는 3년 전인 2019년 5월에 예상보다 낮은 45달러의 공모가로 상장했음에도 2022년 7월 말 주가는 23달러로 폭락해 공모가 대비 하락률이 -50%에 달한다. 우버와 경쟁하고 있는 미국 2위 승차공유 회사인 리프트는 더 심각하다. 2019년 3월에 공모가 72달러에 상장했던 리프트의 2022년 7월 말 주가는 고작 14달러로 공모가 대비 하락률은 무려 -80%다.
하염없이 하락 중인 승차공유 서비스 기업들의 주가가 언젠가 회복되기는 하는 걸까. 투자자들은 심각한 주가 폭락에 아우성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뛰어난 투자자로 손꼽히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디디추싱(디디글로벌), 그랩, 우버에 모두 투자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유동성 확보를 목적으로 우버 주식을 매도하기는 했지만 손정의 회장은 과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었던 걸까.
한국에서 승차공유 사업자 ‘우버’와 ‘타다’는 불법?
오늘도 강남역에서 밤 12시에 택시를 잡으려던 김 과장은 장장 30분을 기다리다가 결국 택시잡기를 포기하고 술집으로 되돌아간다. 택시비로 정상요금의 몇 배를 낼 바엔 차라리 집에 가는 시간을 늦출 생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2022년 4월 이후에 서울 주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익숙한 풍경이다. 지금 한국은 ‘카카오택시’ 서비스가 거의 독점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런데 왜 택시는 잡히지 않을까. 그건 카카오택시의 잘못이 아니다. 밤에 근무하는 택시기사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든다. 왜 한국에서 카카오택시는 되는데 우버의 승차공유 서비스는 안 되는 걸까. 우버가 2014년에 한국에서 시도했던 승차공유 서비스 ‘우버X’는 택시 면허가 없는 일반 기사들과 승객들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로 애초부터 한국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34조(유상운송의 금지 등)’ 위반이다. 특히 택시기사들의 극렬한 저항을 불러와 결국 2015년에 우버는 한국 시장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반면 카카오의 차량중개 서비스는 기존의 택시기사들을 승객과 연결해 주는 서비스라 오히려 택시기사들에게 도움이 됐기 때문에 도입 초기에는 반발이 적었다.
우버의 실패를 교훈 삼아 2018년에 출시된 ‘타다’ 서비스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34조의 예외조항인 시행령 제18조의 ‘자동차 대여사업자가 승차정원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인 승합자동차를 임차하는 사람’은 예외로 하는 틈새를 적극 활용했다. 따라서 11인승 카니발 차량에 ‘타다’와 제휴된 업체를 통해 ‘전문 운전기사’를 파견하는 방식으로 승차공유를 합법화했다.
승차거부 없이 고급화를 지향하는 ‘타다’의 혁신적인 서비스에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역시 택시업계의 극렬한 반발에 부딪혔다. 타다 역시 택시 면허가 없는 일반 기사를 승객과 연결해 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2020년에 국회에서 ‘유상운송 금지’의 예외 조항인 시행령 제18조를 삭제하고 대신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34조 2항에 ‘관광을 목적으로 승차정원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인 승합자동차를 임차하는 사람. 이 경우 대여시간이 6시간 이상이거나, 대여 또는 반납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로 한정한다’라는 단서조항이 추가된 일명 ‘타다 금지법(개정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통과시켜 ‘타다’ 서비스도 결국 중단됐다.
정부가 통제하는 택시요금...택시대란 해결책은
이제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택시기사들은 왜 승차공유 서비스를 반대할까. 정부가 개인택시 면허 수량을 제한해 택시기사들에게 일정 수익을 보장해 주는 대신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분류해 요금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물가상승을 억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9년 2월에 결정된 서울시 중형택시요금을 살펴보면 2km까지 주간 기본요금은 3800원이고 야간 기본요금은 4600원이다. 이 요금제가 2022년 7월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지난 3년간 생활물가가 얼마나 많이 상승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이 낮은 요금이다. 최근의 급등한 휘발유 가격과 LPG 가격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한국의 택시요금은 객관적인 산식을 적용해 시도 지사가 결정한다. 그런데 대중교통요금 상승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해 실제 원가보다 낮은 인상률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택시요금 가격 통제의 결과는 바로 택시기사들의 대거 이탈이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말에 26만7189명이었던 택시기사 수가 2022년 5월에는 2만7994명 감소한 23만9195명으로 조사됐다. 10% 이상의 택시기사가 줄어든 셈이다.
특히 일반(법인)택시 기사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법인택시 기사란 택시회사에 취업해 일정 시간 월급을 받고 일하는 고용 운전자를 말한다. 최근 성과급 성격의 사납금 제도가 폐지되고 월급제로 변경되면서 오히려 과거보다 소득이 감소한 기사들이 많아져 법인택시 기사의 인기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택시회사 취업보다 배달 라이더가 돈을 더 많이 버니 전업하는 기사들이 늘어나는 게 현실이다.
개인택시 기사의 경우 개인택시 면허를 받는 일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개인택시 기사의 공급을 늘리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져 소득이 감소하므로 정부에서 면허 공급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택시 면허시험은 매우 쉽지만 시험에 합격한다고 무조건 면허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과거에는 택시회사에 취업해 일정 기간 무사고로 운전해야 자격이 주어졌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피하기 위해 개인택시 면허를 거래하는 시장이 활성화돼 있는데 최근 서울 지역 개인택시면허 거래가격은 8000만원 수준이다.
어렵게 면허를 취득한 개인택시 기사들 입장에서 택시면허가 없는 일반 운전자들과 승객들을 연결해 주는 우버의 승차공유 서비스는 공공의 적이다. 만약 승차공유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법인택시 기사들의 처우는 더 나빠지게 되고 비싸게 매수한 개인택시 면허가격은 폭락할 게 뻔하다. 한마디로 승차공유 서비스 합법화는 택시기사들에게는 재앙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4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자 한국에서는 택시대란이 시작됐다. 택시가 잡히지 않는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야간 시간대의 요금을 대폭 인상해야만 이탈한 택시기사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만으로 야간에 택시를 충분히 공급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택시기사들의 고령화 현상까지 맞물려 있어 쉽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한밤중에 강남역에서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 택시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김 과장 입장에서는 어떤 방법을 쓰든 택시대란만 해결되면 좋다. 만약 가격까지 더 싸진다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우버와 같은 승차공유 서비스 업체의 규제를 풀어준다면 소비자들의 편익은 훨씬 더 증대될 것이다.
소비자의 편익 증대. 이게 바로 우버의 논리이자 우버가 글로벌 각국의 까다로운 규제를 뚫고 합법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택시 면허가 없는 운전자들의 공급이 늘어난다면 비싼 가격에 택시 면허를 매수한 개인택시 기사들은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개인택시 기사들의 손해는 우버가 보상해야 할까, 아니면 정부가 보상해야 할까. 시장 논리대로 소비자의 편익 증대를 위해 그냥 개인택시 기사들이 각자 알아서 손해를 감수해야 할까.
우버는 한국 시장에서 일반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해 주는 우버X 서비스는 완전히 포기했다. 대신 2021년에 SK텔레콤의 자회사인 ‘티맵모빌리티’와 합작해 ‘우티(UT)’라는 합법적인 한국 택시호출 앱을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카카오택시처럼 택시 면허가 있는 기사들 대상으로만 운용된다.
하지만 원래 우버의 모빌리티 사업은 90% 이상이 우버X처럼 일반 운전자들의 차량을 공유하는 게 핵심이다. 택시호출 앱 시장은 규모도 크지 않고 이미 카카오택시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라 훨씬 더 큰 그림을 구상하는 우버와는 맞지 않다. 단지 먼 미래에 한국 승차공유 시장이 열릴 것에 대비한 투자로 해석된다.
만약 우버가 한국의 택시기사들에게 적절하게 보상하고 승차공유 서비스의 합법성을 인정받게 된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장기적으로 한국의 택시 산업은 무너지고 우버의 승차공유 서비스가 독점하는 시대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우버의 독점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치열한 경쟁으로 소비자 편익이 극대화되겠지만 독점이 확정되고 나면 소비자들은 우버에 택시요금보다 더 비싼 요금을 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승차공유 서비스가 한국에 진입할 수 없도록 막아야 할까. 정답은 없다. 절대적인 택시기사 부족으로 야간에 택시가 잘 안 잡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따라서 승차공유 서비스는 허용하되 우버 혼자 독점하지 못하도록 2, 3개 업체가 경쟁하는 유효경쟁 시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과연 한국 개인택시 기사들의 삶도 나아질까. 미국에서 우버와 리프트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뉴욕의 택시 면허 가격은 10분의 1토막이 난 사례로 볼 때 쉽지 않아 보인다.

2022년 08월호
임대차법 부작용 후폭풍...전문가 62% “전셋값 5% 이상 상승”
전세대란은 없다...전셋값 소폭 상승 가능성
임대차3법 부작용·전월세대출 이자 인상으로 월세화 가속
|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
올해 하반기 아파트 전셋값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5% 이상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하반기 중 ‘임대차3법’ 전세기간(2+2년)을 다 채워 신규 전세계약이 이뤄지는 시점부터 전셋값 상승폭이 더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종합부동산세 ‘폭탄’으로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세금을 전가할 것이란 의견도 대다수를 차지했다. 3기 신도시와 택지지구의 대기 청약자로 전셋값 불안이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임대차3법 만기...“전세→매매수요 옮겨붙을 것”
뉴스핌 월간ANDA가 학계 및 연구기관과 업계 부동산 전문가 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 하반기 아파트 전세가격은 ‘5% 이상 상승’할 것이라는 응답이 23명으로 62%를 차지했다. 특히 올 하반기에 ‘임대차3법’ 전세기간(2+2년)을 다 채운 신규 전세매물이 나오면 전세가격이 더 가파르게 오를 것이라는 응답률이 59%(22명)에 이르렀다.
집주인들은 종전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써서 전세보증금을 5%밖에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을 맺을 때 전세금을 시세에 맞춰서 높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전세가격-매매가격 차이가 좁혀지면서 전세수요가 매매수요로 옮겨붙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임병철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써서 전세 4년을 다 채운 임차인들은 전세 만기가 돌아오기 2개월 전부터 미리 움직일 것”이라며 “높은 가격에 전세를 구할 바에는 차라리 매수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상생임대인 제도’가 전·월세가격 안정에 큰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점도 작용한다. 상생임대인 제도는 임대료를 5% 이내로 인상하는 임대인에게 ‘1가구 1주택 양도세 비과세’ 및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제)’에 필요한 2년 거주요건을 완전 면제해 주는 제도다.
다만 ‘상생임대인 제도’ 혜택은 다주택자들이 다른 주택을 다 팔고 최종 1주택자가 됐을 때 유의미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1가구 1주택자면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서 팔기 어려워서다.
그런데 다주택자들이 다른 주택을 다 팔고 최종적으로 남겨놓는 1주택은 강남 등 우수한 입지에 있는 주택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해당 주택을 팔기보다는 장기 보유하면서 추가 시세차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양도세 혜택이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은 오히려 시세대로 전세가격을 올려받아서 추가 투자에 나서는 선택을 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 다주택자는 “임대료를 5%만 올려서 양도세 절세에 필요한 거주요건을 면제받는 것보다는 임대료를 시세만큼 큰 폭 올려받는 게 자금 운용 측면에서 유리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은 입주물량이 감소하고 있어 전세 공급 부족이 점차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하반기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예정 포함)은 8389가구로 올해 상반기(1만3914가구)보다 39.7% 감소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반기 기준으로 2016년 상반기(8631가구) 이후 6년 6개월 만에 최저치다.
내년과 2024년에는 입주물량이 더 줄어든다.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올해 2만2303가구, 내년 2만3975가구, 2024년 1만1881가구로 점점 줄어든다. 통상 신축 아파트 입주물량은 전세시장에서 수요를 분산하고 부족한 공급을 메우는 완충 작용을 한다. 그런데 입주물량이 이처럼 감소하는 만큼 서울 전세매물이 더욱 부족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상생임대인 제도로는 임대차시장 안정이 어렵기 때문에 하반기 전·월세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전세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당장 매매가 늘지는 않겠지만, 시차를 두고 매매가격 상승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종부세·전월세전환율에 전셋값 폭등 위험
종합부동산세 폭탄으로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세금을 전가하려고 임대료를 올릴 것이란 의견도 있었다. 특히 종부세 부담과 전월세전환율 인하가 겹치면 ‘전세가격 폭등’이라는 부메랑이 발생할 수도 있다.
KB부동산 리브온의 월간 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수도권 아파트 전월세전환율은 3.80%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치에 근접한 수준이다. KB국민은행이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6년 1월에는 이 수치가 5.52%였는데 꾸준히 하락했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 모든 지역 전월세전환율이 지난 2016년 1월 수준보다 하락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4.88→3.19% △강북 5.05→3.22% △강남 4.71→3.17% △인천 5.77→4.53% △경기 6.11→3.97%다.
전월세전환율이란 임대보증금을 월세로 돌릴 때 적용하는 비율이다. 같은 단지, 같은 전용면적에서 발생한 다수의 전세 계약건에 대해 보증금의 중위가격을 구한 후, 같은 단지·면적에서 거래된 월세 계약건과 비교해 보증금이 작아지면 월세가 얼마나 커지는지를 계산한 것이다.
예컨대 전월세전환율이 3.0%면 3억2000만원짜리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연간 최대 960만원(3억2000만원×3.0%)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를 12개월로 나누면 월세 80만원이 된다. 이는 보증금을 전혀 받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 것으로 보증금이 늘어나면 월세는 줄어든다. 만약 보증금 2000만원을 받기로 한다면 월세는 연간 900만원(3억원×3.0%)으로 줄어든다. 12개월로 나누면 월세 75만원이다.
전월세전환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임대보증금을 월세로 돌릴 때 집주인이 받을 월세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월세전환율이 떨어지면 전세가 월세로 바뀌어도 매달 지불해야 하는 월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셈이다.
국토부는 지난 2020년 10월경부터 법정 전월세전환율을 4.0%에서 2.5%로 낮췄다. 임대차3법 여파로 전세시장이 불안정해지자 세입자들의 월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나온 조치다. 하지만 전월세전환율이 낮아지면 월세를 전세로 전환할 때 오히려 전세금이 오른다. 예컨대 월세가 300만원이면 1년치 월세는 3600만원이다. 이를 전월세전환율 3%로 나누면 전세 12억원이 된다.
만약 전월세전환율이 4%였다면 전세가격이 9억원에 그칠 수 있었는데 전월세전환율이 3%로 낮아진 탓에 12억원으로 폭등한 것이다. 전월세전환율(4→3%)은 1%포인트(p) 떨어졌는데 전세금은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33% 넘게 오른 것.
게다가 작년 말부터 종부세 부담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거액의 종부세를 내기 위해 월세를 전세로 돌릴 가능성도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작년 종부세가 부과된 인원은 94만7000명, 총 세액은 5조7000억원이다. 세액만 따지면 2020년(1조8000억원)의 3배가 넘는다. 2005년 종부세 도입 이후 ‘역대급’이다.
임 수석연구원은 “향후 종부세 등 각종 세금을 내는 시기가 돌아오면 이를 세입자에게 전가하려는 집주인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면서 “무주택자들의 주거 비용이 계속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밖에 수도권 3기 신도시 및 택지지구의 대기 청약자로 전셋값 불안이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3기 신도시 및 택지지구의 청약 대기수요가 전셋값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영향 크다’는 응답률이 68%를 차지했다.
이는 청약당첨 확률을 높이려면 ‘의무 거주기간’을 채워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지구 면적이 66만㎡ 이상인 대규모 택지 중 인천 계양은 해당 시군 거주자에게 전체 물량의 50%가 우선 공급되며 나머지가 수도권 거주자에게 배정된다.
경기 남양주 진접2와 위례는 해당지역 거주자에게 30%가 최우선 공급된다. 성남 복정1, 의왕 청계2 등 중소 택지는 100%가 해당지역 거주자에게 우선 공급되기 때문에 다른 지역 주민이 당첨될 가능성이 낮다.

2022년 08월호
주가 최고점 대비 60% 폭락...이제 에어비앤비 사볼까?
코로나 강타 2020년 에어비앤비 존폐 위기
희망의 1분기 넘어 여름 성수기 진입...흑자는 언제?
적정가치는? 고평가인가 저평가인가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코로나19로 꽉 닫혀 있던 해외여행 규제가 드디어 완화되고 있다. 전 세계 여행업이 되살아나면서 여행 관련 수혜주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종목이 바로 에어비앤비다. 이 회사는 2008년 설립된 세계 최대 숙박공유업체로, 220개국에 약 400만명의 호스트와 600만개의 숙소를 활용하고 있으며 사용자 수는 1억5000만명이 넘는다. 그런데 2020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보면 에어비앤비는 당시 회사가 죽고 사는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특히 그해 4월은 악몽과도 같은 시기다. 코로나19로 인해 숙소예약 취소가 폭주했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예약했던 게스트들이 항공기가 줄줄이 결항되는 비상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약 취소였다.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여행 자체가 완전히 멈춰버렸고 약 80%의 숙소 예약이 취소됐다. 그런데 예약을 취소당한 호스트들이 에어비앤비의 약관대로 예약금액의 50%만 환불해 주면서 게스트들과의 분쟁이 속출했다.
에어비앤비엔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더욱 중요했던 건 소비자들에게 인식되는 기업 이미지였다. 코로나19는 언젠가 끝나겠지만 소비자와의 관계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에어비앤비는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예측할 수 없었던 2020년 3월 14일 이전에 5월 31일의 기간까지 숙소를 예약한 게스트들에게 100% 환불 정책을 실시했다. 대신 이로 인해 손해를 보는 호스트들에게는 환불금액의 25%를 지원했다. 이 정책으로 성난 소비자들을 간신히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대량의 예약 취소로 매출이 급감하고 환불금 지원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려 결국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다.
그 결과 2020년 2분기 실적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위기를 맞은 에어비앤비는 급기야 2020년 5월 부채와 주식을 혼합해 무려 11%의 고금리로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조달했다. 그러고도 자금이 부족해 1주일 뒤 다시 10억달러를 약 9%의 고금리로 추가 조달했다. 동시에 전체 직원 7500명 중 1900명(25%)을 해고하고 임원 급여를 삭감하는 등 생존을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런 필사적인 노력으로 위기를 넘긴 에어비앤비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 2020년 3분기와 4분기에 조금씩 실적을 회복해 갔다. 그 후 고금리 차입금을 빨리 상환할 목적으로 아직 여행 수요가 회복되지 않은 2020년 12월 전격적으로 기업공개(IPO)를 결정하고 나스닥에 신규 상장했다. 이 당시 IPO로 35억달러(약 4조2000억원)의 자금을 긴급 수혈해 위기를 넘겼다.
에어비앤비 나스닥 상장 이후 두 차례 버블과 붕괴
에어비앤비가 나스닥에 상장할 당시인 2020년 12월에도 여전히 코로나19는 심각했고 여행업종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래서 상장가격 68달러는 너무 고평가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 시기에 나스닥 시장은 미국 정부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인한 자산가격 폭등 현상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공모가 고평가 논란은 쏙 들어갔다. 오히려 상장 후 에어비앤비 주가는 상승을 거듭해 두 달 만에 공모가의 3배가 넘는 220달러까지 치솟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에어비앤비 외에도 수많은 IPO 기업들의 주가는 상장 직후에 적정가치보다 치솟는 경우가 많았다. 락업(주식 보호예수)으로 인해 주식의 공급은 제한적인 데 비해 좋은 주식을 선점하려는 수요가 단기간에 몰려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기 투자자들까지 투기적으로 매수에 가담하면 주가는 적정가치보다 훨씬 급등하는 경우가 흔하다. 에어비앤비 역시 그랬다.
하지만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고평가 상태가 오래갈 수는 없었다. 상장 후 6개월이 지난 2021년 5월 락업이 일부 해제되면서 에어비앤비 주가는 고점 대비 36% 하락한 130달러까지 내려온다. 에어비앤비 주가가 다시 기대감을 키우며 상승한 건 2021년 2분기의 눈부신 실적이 발표된 2021년 8월부터였다. 3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으로 같은 해 11월에는 다시 210달러까지 폭등하며 투자자들을 장밋빛 전망으로 들뜨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후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에어비앤비 주가는 7개월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급기야 올해 6월 말에는 엔데믹을 향해 달려가는 우호적인 시장 환경과 큰 폭의 매출 성장이 기대되는 여름 성수기를 눈앞에 두고도 주가는 사상 최저가인 90달러마저 붕괴됐다. 최고점이었던 220달러 대비 무려 60% 하락한 의외의 부진이다. 이런 에어비앤비 주가의 추락은 밸류에이션을 감안했을 때 합리적인 시장의 냉정한 평가일까, 아니면 분위기에 휩쓸린 시장의 오해일까?
에어비앤비의 비즈니스 모델과 코로나 이후 변화
에어비앤비의 수익모델은 간단하다. 숙박시설과 여행객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그런데 에어비앤비가 연결해 주는 숙박시설은 호텔이 아니라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진짜 집이다. 그중에는 으리으리한 성도 있고 호텔보다 화려한 숙박시설도 존재하다. 어쨌든 기본 개념은 호스트가 자신의 집을 게스트에게 빌려주는 모델이다. 이 과정에서 에어비앤비는 호스트에게 3%의 수수료를 받고, 게스트에게는 6~12%의 수수료를 받는다. 평균 수수료율은 14% 수준이다. 이 단순한 비즈니스가 에어비앤비 사업의 출발점이다. 물론 원한다면 가정집이 아니라 호텔 예약도 가능하다.
에어비앤비는 수익모델을 다양화하기 위해 숙박 외 사업을 추가했다. 바로 ‘체험 사업’이다. 여행 일일투어, 맛집 투어, 보트 투어, 온천 투어, 박물관 가이드 투어 등 다양한 체험을 연결해 주는 사업이다. 실제로 우리가 여행을 떠났을 때 필요한 건 숙박시설만이 아니다. 여행자들은 본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현지 체험을 원한다. 에어비앤비가 간파한 건 바로 이 막대한 체험 수요들이다.
체험사업의 객단가를 살펴보면 저렴하게는 2만원 수준의 자전거 투어부터 고급스럽게는 20만원이 훌쩍 넘는 와인 체험까지 다양하다. 이 사업 역시 본질은 호스트와 게스트의 연결이며, 평균 수수료율은 약 20%다. 에어비앤비의 체험 사업은 해가 갈수록 매출 규모가 커지고 있어 또 하나의 강력한 수익모델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에어비앤비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여행문화가 미묘하게 변화한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장거리 여행은 과거보다 줄었지만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횟수가 늘어났다. 또 재택근무로 인해 1주일 이상의 중기 숙박과 1개월 이상의 장기 숙박 수요도 늘어났다. 장기간의 재택근무는 에어비앤비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 기회였다. 이 시기에 국내여행의 증가, 집을 통째로 빌리는 숙박형태 증가, 핵심 대도시가 아닌 시골이나 지방지역 숙박을 선호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이런 예상치 못한 수요 증가에 힘입어 에어비앤비는 위기를 넘기고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의 주요 지표와 성장 가능성
에어비앤비의 주요 지표와 매출, 영업이익을 의미 있게 분석하려면 코로나19 영향이 전혀 없었던 2019년과 코로나19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았던 2020년, 그리고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회복된 2021년을 비교해 봐야 한다. 기본 비교 대상을 2019년으로 해서 2020년과 2021년의 주요지표와 매출액, 영업이익 등을 세분화해 확인해 보자.
먼저 코로나19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던 2019년도의 총예약금액(GBV)을 분기별로 살펴보자. 2019년 2분기의 총예약금액은 98억달러(약 11조8000억원)다. 그런데 2020년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급격한 감소가 진행됐다. 특히 그해 2분기에는 2019년 2분기 대비 무려 66억달러(약 8조원)가 줄어든 32억달러(약 3조8000억원)까지 총예약금액이 급감했다. 감소율이 무려 67%다. 2020년 1년간 총예약금액은 전년도의 380억달러(약 45조6000억원)보다 141억달러(약 17조원) 감소한 239억달러(약 28조7000억원)로 추락했다.
하지만 2021년에 들어서면서 큰 폭의 총예약금액 증가가 일어났다. 이 시기는 코로나19로 존폐 위기에 처했던 2020년의 총예약금액보다는 당연히 높았으며,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총예약금액마저 뛰어넘으며 확연한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2021년 2분기의 총예약금액은 무려 134억달러(약 16조1000억원)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2분기의 98억달러(약 11조8000억원)와 비교해 봐도 37% 급증하는 놀라운 성장률을 보였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전 세계 관광객 수는 2021년에도 여전히 2019년 대비 10억명 이상 감소한 4억3000만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감소율이 무려 71%다. 그렇다면 코로나가 완전 정상화돼 전 세계 관광객 수가 다시 2019년도의 14억7000만명을 회복한다면 에어비앤비의 총예약금액은 도대체 얼마나 늘어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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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의 ‘숙박과 체험’ 예약건수를 살펴봐도 총예약금액과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2분기에는 8390만건의 예약건수를 기록했는데 코로나 타격이 절정에 달했던 2020년 2분기에는 무려 5590만건이 감소한 2800만건에 그쳤다. 감소율은 67%로 전무후무한 최악의 기록이다. 하지만 2021년 1년간의 전체 예약건수는 3억60만명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의 3억2690만건을 거의 회복했다.
‘숙박과 체험’ 예약건수를 지역별로 구분해서 살펴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의 지역별 예약건수 비중을 살펴보자. 전 세계 관광객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이 43%의 비중을 차지했고 뒤이어 북미(29%)와 아시아·태평양(18%), 라틴아메리카(10%) 순이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1년의 연간 총예약건수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의 3억2690만건보다 8% 감소한 3억60만건이다.
2021년의 지역별 비중을 살펴보면 2019년과는 차이가 많다. 특히 2021년에 북미 지역의 예약건수가 유독 19% 급증한 수치가 눈에 띈다. 코로나 시국에 전 세계인들이 북미 지역으로 여행을 많이 떠나서 예약건수가 늘어난 걸까. 그보다는 미국인들이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국내여행 비중을 크게 높였다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2021년 예약건수가 고작 2970만명으로 2019년의 5820만건 대비 무려 49% 급감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백신 보급시기가 선진국보다 늦어서 국경 봉쇄를 오랫동안 지속한 영향이다. 그런데 예전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예약건수는 전 세계 관광객 비중과 비교해볼 때 유독 적은 편이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예약건수를 높이는 게 에어비앤비의 장기적 과제라 할 수 있다.
에어비앤비의 2021년 연간 매출액은 60억달러(약 7조2000억원)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의 48억달러(약 5조8000억원)보다 무려 25% 증가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중요한 건 2021년의 전 세계 관광객 수가 여전히 71%의 감소세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영업이익마저 코로나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2020년의 36억달러(약 4조3000억원) 적자는 물론이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도의 5억달러(약 6000억원) 적자마저 뛰어넘어 2021년에는 4억달러(약 5000억원) 흑자로 돌아선 점은 기대 이상의 엄청난 실적이었다. 코로나19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에어비앤비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명백히 개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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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2022년 1분기 넘어 여름 성수기 진입...흑자는?
에어비앤비의 2022년 1분기 실적발표 결과 희망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희망적인 것은 매출액이 전년 동 분기 대비 73% 늘었고 총예약금액(68%)과 예약건수(56%)도 증가하는 등 주요 지표가 호조를 보인 점이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00만달러(약 60억원) 적자로 2021년 1분기의 4억4700만달러(약 5364억원) 적자보다는 적자 규모가 큰 폭으로 줄었다. 하지만 아쉬웠던 건 직전 분기인 2021년 4분기에 영업이익은 7600만달러(약 912억원) 흑자였다는 사실이다. 흑자가 적자로 전환됐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에게는 아쉬움이 큰 실적발표였다.
에어비앤비는 2008년에 창업한 후 충분한 사용자 수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해 왔다. 플랫폼 기업에 초기의 대규모 투자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기업이 장기적으로 영속하기 위해서는 결국 언젠가는 수익을 내야 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벌써 창업 14년째인 에어비앤비는 당기순이익 흑자를 안 내는 걸까, 아니면 못 내는 걸까. 만약 못 내는 거라면 사업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에어비앤비가 흑자로 전환되려면 총예약금액과 예약건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증가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평균숙박가격(AD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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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의 평균숙박가격은 2019년 4분기에 113달러(약 13만6000원)였으나 지속적으로 상승해 2022년 1분기에는 49% 폭등한 168달러(약 20만2000원)를 기록했다. 여행수요 증가로 사용자의 예약건수가 늘어나면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평균숙박가격마저 상승한다면 에어비앤비 입장에서는 기쁨이 두 배가 된다. 따라서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경기침체가 발생하는 수준이라면 문제이겠지만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진행된다면 오히려 반가운 상황이다. 평균숙박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은 에어비앤비를 흑자기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핵심 치트키다.
에어비앤비는 코로나19라는 돌발변수로 큰 위기를 겪었다. 물론 지금도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 건 아니지만 그동안 억눌려 왔던 사람들의 여행 욕구가 살아나고 있다. 기존 사용자들이 여행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용자들이 에어비앤비로 유입되고 평균숙박가격마저 계속 상승하는 좋은 시절이 지속된다면 에어비앤비가 흑자로 돌아서는 날은 멀지 않아 보인다.
플랫폼 기업이 장기적인 투자를 끝마치고 흑자로 돌아서는 시점이 오면 그 이후부터는 탄탄대로다. 이는 아마존닷컴, 페이스북, 구글 등 앞서간 많은 플랫폼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에어비앤비가 모든 비용을 차감하고도 당기순이익으로 전환되는 시점은 과연 언제 올까. 그 시점에 주가는 재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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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규제 리스크와 전염병 확산 리스크
에어비앤비 사업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에어비앤비의 가장 큰 약점은 규제 리스크다. 공유민박업은 기존에는 없었던 신사업이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는 초기에 법적 근거가 미약한 게 일반적이지만 에어비앤비는 좀 더 복잡하다. 유럽, 미국, 한국 등 세계 각국에서 공유민박업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일단 전통 숙박업종인 호텔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호텔은 법에 의해 소방시설과 위생, 건축, 안전기준 등 여러 분야에서 정부의 까다로운 규제하에 영업한다. 반면 공유민박업은 대부분 개인이 운영하는데 관리감독에 관한 법적 근거가 없거나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호텔은 비용 측면에서 원가가 높은 데 반해 공유민박업을 운영하는 개인들은 시설투자비용이 호텔보다 적어 가격경쟁력이 우월하다. 또 공유민박업은 개인 대 개인 간 거래라 탈세 가능성도 높다. 물론 이런 문제들이 에어비앤비의 잘못은 아니다. 에어비앤비는 단지 중개를 할 뿐이고 실제 세금이나 안전 관련 의무는 호스트들이 준수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경쟁의 당사자인 호텔업계나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규제당국이 에어비앤비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듯할 수는 없다.
또 다른 문제점은 주요 도시의 임대주택 부족 현상이다. 에어비앤비가 등장하기 전에도 이미 뉴욕, 파리, 런던, 서울 등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의 임대료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런데 집주인 입장에서는 1년 이상의 월세계약보다 에어비앤비를 통한 단기 임대계약의 수익성이 훨씬 높다. 그래서 에어비앤비의 등장으로 과거부터 심각했던 임대주택 부족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세계 주요 도시에서는 자체적으로 에어비앤비 관련 규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공통적인 부분은 임대 가능한 호스트들의 자격을 거주자들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또 거주자라 하더라도 연간 렌트 가능일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규제한다. 예를 들면 뉴욕은 30일, 샌프란시스코는 90일, 파리는 120일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에어비앤비 운영자격은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에어비앤비는 이런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앞으로도 다양한 규제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또 다른 리스크는 코로나19의 재확산과 새로운 전염병인 원숭이두창의 등장이다. 코로나19의 재확산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빠르면 8월, 늦어도 가을쯤에는 새로운 유행이 시작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많다. 다행히 긍정적인 부분은 치사율이 현격히 낮아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재유행이 진행되더라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과거와 같은 강력한 봉쇄 정책보다는 위드 코로나 방식의 완만한 방역정책을 쓸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새롭게 등장한 원숭이두창도 문제다. 이미 확진자 수가 6000명을 넘었다고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했다. 이 중 80% 이상의 확진자가 관광객 점유율이 가장 높은 유럽에서 발생됐다. 아직 전염성이 강력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만약 대유행으로 확산될 경우 2022년에도 전 세계 여행산업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에어비앤비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에어비앤비 주가는 고평가인가, 저평가인가
에어비앤비는 2020년 12월에 공모가 68달러에 상장됐지만 상장 후 2개월 만에 주가가 220달러까지 치솟으며 한때 시가총액이 170조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2년 6월 말 기준 주가는 90달러까지 폭락해 시가총액은 70조원에 불과하다. 최고점 대비 무려 100조원이 허공으로 사라진 셈이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에어비앤비의 적정 기업가치는 얼마가 적당할까.
에어비앤비같이 성장성은 높지만 적자가 지속되는 기업의 가치평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일반적인 가치평가 지표인 PER(주가수익비율)의 경우 이익을 기반으로 계산되므로 적자기업은 수치 산출이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 보조지표인 PSR(주가매출비율)을 활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PSR을 구하는 공식은 ‘시가총액/매출액’이다. 이를 에어비앤비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시가총액 70조원 / 2021년 매출액 7조2000억원 = PSR 9.7’이 계산된다. 경쟁 회사인 ‘부킹 홀딩스’의 PSR 6.5와 비교해 보면 다소 높은 편이지만 과거보다는 많이 낮아진 수치다.
과거 최고점이었던 220달러 기준으로 PSR을 계산해 보면 무려 25가 넘는 어마어마한 수치가 계산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에어비앤비의 2022년 예상 매출액을 2021년의 60억달러(약 7조2000억원)보다 30% 이상 높게 전망하고 있다. 이런 높은 매출 성장 기대가 실제로 현실화된다면 에어비앤비의 PSR 수치는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적자기업인 에어비앤비가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날이 온다면 주가는 재평가받게 될 것이다. 앞서간 플랫폼 기업들이 모두 밟아간 정규 코스처럼 말이다.
여행 최대 성수기가 시작됐다. 당신은 혹시 올여름에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할 계획인가? 내가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낸 회사의 주가에 관심을 가진다면 내 주변의 흔한 일상생활에서도 좋은 투자 기회를 찾아낼 수 있다. 시장이 공포에 빠졌을 때가 가장 싸다는 격언이 있다. 시장이 매일매일 하락하며 투자자들을 공포에 빠뜨리고 있지만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나 홀로 다르게 생각하는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에어비엔비가 언젠가는 당기순이익 흑자로 전환할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에어비앤비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