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04월호
[ETF 전성시대] 세상의 모든 돈은 다 ETF로 몰린다?
사모펀드 전성시대, 공모펀드의 위기
직접투자시 보수·수수료 없어 인기
한국인이 선호하는 ETF 순위는 레버리지나 인버스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ETF 열풍이 불었다. 그래서 수많은 언론사들이 ETF의 장점에 대해 다양한 보도를 쏟아냈다. 그런데 일부 기자들이 ‘ETF 수익률 압권’, ‘ETF로 수익률 100% 달성’ 등의 애매한 기사 제목을 사용하면서 마치 ETF 자체가 단 한 개의 상품인 것처럼 착각하는 고객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기사 제목만 보고 막무가내로 증권사 지점에 찾아와 “요즘 ETF가 그렇게 좋다면서요. ETF 가입할게요”라며 다짜고짜 신청서를 달라는 고객도 있다. 증권사 직원이 “어떤 종류의 ETF에 가입하시려는 건가요?”라고 물어봐도 이해를 못하고 “그냥 ETF 가입한다니까요”라며 짜증을 부리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ETF(Exchange Traded Fund)는 단 한 개의 상품이 아니다. 우리말로는 ‘상장지수펀드’라고 한다. 펀드 종류가 수천 개이듯 한국 증시에 상장된 ETF 종류만 해도 600개가 넘는다. 그래서 주식이 오른다고 모든 ETF가 수익을 보는 것도 아니고, 주식이 내린다고 모든 ETF가 손실을 보는 것도 아니다. 어떤 ETF를 매수했는지에 따라 수익률이 천차만별인 이유다. 이제부터 왜 한국에서 ETF가 뜨겁게 각광받고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사모펀드 전성시대, 공모펀드의 위기?
2022년은 주식시장이 대폭 하락해 많은 투자자들을 슬픔에 빠뜨린 한 해였다. 한국 코스피 지수는 2021년 말의 2977포인트에서 2022년 말에서는 -24.9% 하락한 2236포인트로 마감했다. 4년 만의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코스닥 지수는 2021년 말의 1034포인트에서 -34.3% 하락한 679포인트를 기록했다.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의 2022년 말 시가총액은 2489조원(2조740억달러)이었다. 그렇다면 한국 증시에 상장된 주식 전체의 시가총액 합계액은 얼마일까? 2021년 말에는 2649조원이었다. 애플 시가총액보다 살짝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2022년 말에는 2082조원으로 쪼그라들면서 애플 한 종목보다도 작아졌다.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1년간 무려 567조원이 허공으로 사리진 셈이다. 이 정도 폭락장이면 한국에서 거래되는 펀드의 규모도 대폭 줄어들었을 것 같다. 정말 그럴까?
미국보다는 작지만 한국에도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 자금이 떠돌아다닌다. 이 자금 중 상당수가 펀드 시장으로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고 있다. 2018년에 한국에서 설정된 총 펀드 순자산 합계액은 547조원이었다. 그런데 4년 뒤인 2022년에는 851조원으로 무려 304조원(56%)이 급증했다.
한국에서 전체 펀드의 순자산 규모는 최근 수년간 감소한 적이 없다. 오히려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시장이 대폭락한 2022년에도 총 펀드 순자산은 전년도보다 19조원(2%) 증가했다. 무시무시한 폭락장도 이 증가세를 멈춰세우진 못했다.
그런데 펀드 순자산 규모를 계산할 때 사모펀드까지 합치는 건 반칙이라 할 수 있다. 사모펀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 개인보다 기관투자자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평범한 개인들이 가장 많이 가입하는 건 역시 공모펀드다. 이런 공모펀드만 따로 살펴보면 사모펀드보다는 증가세가 완만하다.
지난 4년간 공모펀드는 214조원에서 283조원으로 32% 증가에 그쳤다. 하지만 사모펀드는 334조원에서 568조원으로 무려 70% 급증했다. 특히 공모펀드에서 ETF를 따로 분리해 내면 공모펀드의 순자산 증가율은 더 현격하게 낮아진다.
일반 공모펀드 순자산은 지난 4년간 18% 증가한 204조원을 달성하는 데 그쳤다. 반면 ETF의 증가 속도는 눈부시다. 4년 만에 무려 93% 급증한 79조원의 순자산을 달성했다. 이에 따라 전체 공모펀드에서 ETF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에는 21%에 불과했으나 2022년에는 28%로 큰 폭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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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산 규모의 폭발적 성장에 비례해 ETF 상장종목 수도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4년 전에는 413개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666개로 61% 급증했다. 이쯤 되면 지난 4년간 세상의 모든 돈 중에서 꽤 많은 규모가 ETF로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 체감된다. 그런데 왜 ETF는 인기가 많은 걸까? ETF란 도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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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TF가 뭔가요?
ETF는 특정 자산의 가격에 수익률이 연동되도록 구성한 투자 상품이다. ETF는 쉽게 설명하면 인덱스 펀드를 거래소에 상장해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이다.
‘펀드’란 한 종목이 아니라 여러 주식을 모아서 투자하는 개념이다. 투자자들이 개별 주식을 직접 고르지 않고 펀드매니저에게 위임하는 펀드 투자의 장점과, 언제든지 시장에서 원하는 가격에 매매할 수 있는 주식 투자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게 ETF다. 한마디로 펀드와 주식을 합쳐 놓은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에서는 2002년에 삼성자산운용의 KODEX200 ETF가 처음으로 상장되면서 ETF의 역사가 시작됐다. ETF 출시 초기에는 코스피나 코스닥 시장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 형태의 ETF가 대세였다. 그 뒤에 배당주, 가치주 등 다양한 스타일을 추종하는 ETF들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좀 더 세분화된 ETF로는 업종별로 구분된 반도체ETF, 자동차ETF, 2차전지ETF, 헬스케어ETF, 에너지ETF 등이 있다. 이런 ETF를 일명 ‘섹터형 ETF’ 또는 ‘테마형 ETF’라고도 한다. 이후 해외 지수를 추종하는 ETF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ETF 시장이 더욱 확대됐다.
최근에는 인덱스(패시브) ETF 외에 액티브 ETF도 등장하고 있다. 딱 지수가 오른 만큼만 수익을 내는 투자방식을 ‘패시브 투자’ 또는 ‘인덱스 투자’라고 한다. 따라서 패시브 투자는 개별 종목을 고르지 않고 시장 전체에 투자한다.
반면 지수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려는 투자방식을 ‘액티브 투자’라고 한다. 따라서 액티브 펀드란 시장 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 펀드매니저들이 적극적인 운용 전략을 펼치는 펀드를 말한다. 이런 펀드를 ETF 형태로 만든 것을 액티브 ETF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패시브 ETF보다 수수료가 더 비싼 게 단점이다.
레버리지 ETF는 선물과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해 단순한 지수 상승률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ETF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코스피 2배 레버리지 ETF’가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다. 반대로 시장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지수의 역방향에 투자하는 ETF를 인버스 ETF라 한다. 여기에 레버리지까지 더한 ‘코스피 -2배 인버스 ETF’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일명 곱버스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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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F가 인기몰이 하는 이유는?
ETF가 기관투자자들과 개인투자자들 양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뭘까?
첫 번째 이유는 일반 펀드 대비 투자비용이 낮기 때문이다. 직접투자 시 판매보수 및 수수료가 없어 일반 펀드에 비해 저렴하게 투자할 수 있다. 운용방식도 적극적인 매매보다 수동적인 경우가 많아 운용보수 또한 저렴하다. 반면 일반 펀드는 연간 2% 내외의 높은 수수료를 징구한다. ETF가 일반 주식보다 좋은 점은 매도할 때 증권거래세가 면제된다는 사실이다. 반면 일반 주식은 매도 시 0.2%를 증권거래세로 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상품의 투명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반 펀드는 펀드의 구성 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ETF는 펀드의 구성 종목과 각 종목의 비중, 보유수량, 가격 등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 또 매일 해당 ETF의 설정과 해지 현황을 공시하는 것도 장점이다.
세 번째 이유는 소액으로 분산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 1주만 매수해도 각 ETF 상품을 구성하는 모든 종목에 투자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소액으로도 시장 전체에 투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채권, 금, 은, 원유, 농산물과 같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자산에도 투자가 가능하다.
네 번째 이유는 환금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코스피나 나스닥 같은 특정 지수의 움직임을 추종한다는 점에선 인덱스 펀드와 비슷하지만 ETF는 거래소에 상장돼 있어 일반 주식처럼 언제든지 쉽게 매매할 수 있다. 반면 펀드는 환매일자가 길게는 10일이 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ETF는 장중에도 언제나 매매가 가능하다는 점이 최대의 장점이다.
ETF가 한국에서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건 아니다. 외국의 유명 투자회사들도 ETF를 투자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JP모건, 피델리티, 블랙록, 뱅가드 등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해외 유명 기관투자자들도 다 그들만의 투자전략으로 ETF를 적극 활용한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독일, 싱가포르, 일본 등 전 세계 주요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ETF가 효율적인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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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선호하는 ETF 순위는?
한국에 상장된 ETF의 순자산총액 기준 순위를 살펴보자. 순자산가치 1위를 기록 중인 ‘KODEX 200’ ETF는 코스피200 지수를 정방향으로 추종하는 상품이다. ‘KODEX 200’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상장된 ETF라 우리에게 익숙하다. 2위인 ‘TIGER CD금리투자KIS(합성)’ ETF는 CD 91일 금리의 일일 수익률을 추종하는 ETF다.
3위인 ‘KODEX KOFR금리액티브(합성)’ ETF는 한국 무위험지표금리(KOFR)의 일일 금리 수익률을 추종하는 ETF다. 의외로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초단기물 금리상품과 관련된 ETF들이 순자산총액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참고로 금리나 채권 관련 ETF의 매매 주체는 대부분 기관투자자들이다.
한국에 상장된 ETF의 일평균 거래대금 기준 순위를 살펴보자. 일평균 거래대금 1위를 기록 중인 ETF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였다. 2위는 KODEX 레버리지가 차지했다. 3위는 정뱡향 ETF인 ‘KODEX 200’, 4위는 ‘KODEX 코스닥150선물인버스’, 5위는 ‘KODEX 코스닥150레버리지’가 차지했다.
순자산가치 상위 종목들과 달리 상위권 순위는 대부분 인버스와 레버리지 ETF들이 차지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은 역시 따분한 채권 ETF보다는 짜릿한 레버리지나 인버스 ETF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ETF의 유행은 일시적인 걸까?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코스피 거래대금의 최소 20% 이상을 ETF가 차지하고 있다. 이제 ETF는 일반 펀드를 대체할 수 있는 효율적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ETF의 폭발적 인기몰이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대세로 떠오르는 트렌드다. 투자자들은 지금이라도 ETF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수료가 비싼 공모펀드를 수년간 보유하며 높은 수수료를 금융회사에 헌납하고 있는 순진한 투자자들이라면 ETF에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2023년 04월호
인덱스 펀드가 좋다고? ETF가 더 좋은 두 가지 이유
스타 펀드매니저들, 장기 수익률도 좋을까
인덱스 펀드와 헤지 펀드의 대결, 승자는 워런 버핏
왜 금융회사는 일반 펀드 투자자들을 고마워할까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불과 10년 전만 해도 유명 운용사들의 공모펀드가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당시 한국의 주요 운용사들은 자사의 국내와 해외 액티브 펀드 수익률을 경쟁적으로 홍보하며 고객 유치에 열을 올렸다. ‘액티브 펀드’란 시장 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 펀드매니저들이 적극적인 운용 전략을 구사하는 펀드를 말한다. 반면 ‘인덱스 펀드’는 시장 수익률을 추종하는 소극적 운용 전략을 사용하는 펀드를 말한다.
화려한 과거 수익률 믿었다가 낭패 보기도
냉철한 분석과 과감한 결단을 통해 본인이 운용하는 액티브 펀드의 수익률을 수직으로 끌어올린 소수의 실력 좋은 펀드매니저들은 높은 연봉과 성과보수를 통해 그동안의 노고를 보상받았다. 그들 중에는 독립해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운용사나 자문사를 만들어 금융사업을 시작한 경우도 흔했다.
그런데 이런 스타 펀드매니저들이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펀드를 계속 운용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한국에서 10년 넘게 꾸준히 시장 수익률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인 펀드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펀드매니저 또한 마찬가지다. 이 주장을 못 믿겠다면 과거에 유명세를 떨쳤던 펀드들의 10년 수익률을 직접 확인해 보자. 어렵지 않게 이 내용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스타 펀드매니저들의 화려했던 과거 수익률을 믿고 거금을 투자한 금융 소비자들 중 상당수는 몇 년 뒤 크게 후회하는 사례가 많다. 그렇다면 펀드매니저의 유명세를 믿고 펀드에 큰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다 어리석은 사람들일까? 나름대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는데 결과가 안 좋았던 건 아닐까?
인덱스 펀드 vs 헤지 펀드...수수료가 승패 좌우
이제 직접 금융 소비자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본인이 지금 나스닥 지수를 벤치마크로 삼는 3개 펀드 중 1개를 골라서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1) 과거 성과가 좋았던 미국의 유명 헤지 펀드 (2) 과거 성과가 좋았던 한국 펀드매니저가 운영하는 액티브 펀드 (3) 그냥 평범하게 나스닥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 이렇게 3개의 선택지가 있다면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과연 어떤 펀드를 고르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까?
당연히 (1)번의 ‘미국의 유명 헤지 펀드’에 가장 마음이 끌릴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선택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거물들이 있다. 바로 투자의 귀재로 추앙받는 ‘워런 버핏’과 세계 최초로 인덱스 펀드를 만들어 낸 뱅가드 그룹의 창업자 ‘존 보글’이다.
워런 버핏은 예전부터 헤지 펀드를 불신해 왔다. 단기적으로는 좋은 수익률을 올릴지 몰라도 10년 이상 긴 시간 관찰해 보면 평균수익률에 회귀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헤지 펀드의 수수료는 너무 높다는 것이 평소 그의 주장이다. 이런 그에게 뉴욕의 헤지 펀드 운용사인 프로티지 파트너스의 ‘테드 세이즈’ 회장이 도전해 왔다.
결국 “10년 뒤에 인덱스 펀드와 헤지 펀드 중 어떤 게 더 수익률이 높을까?”를 두고 두 사람의 내기가 성사됐다. 버핏은 뱅가드 사의 ‘S&P500’ 인덱스 펀드를 선택했고, 세이즈는 자체적으로 엄선한 5개의 헤지 펀드에 분산투자해 본격적으로 10년간의 수익률 경쟁이 시작됐다. 이 내기는 2008년 1월 1일에 시작됐는데 10년 뒤 워런 버핏의 압승으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내기를 시작한 후 9년이 지난 2016년 말 기준으로 이미 버핏이 고른 S&P500 인덱스 펀드는 연평균 7.1%의 고수익을 낸 데 비해 세이즈가 고른 5개 헤지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고작 2.2%에 그쳤다. 세이즈가 엄선한 헤지 펀드가 내기에서 패배한 건 10년이라는 긴 시간 시장지수를 이기지 못한 매니저들의 잘못이 제일 클 것이다.
하지만 헤지 펀드의 패배에는 숨겨진 다른 이유가 더 있다. 바로 수수료다. 인덱스 펀드는 시장지수를 좇아 수동적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매매 비용이 적다. 이에 따라 펀드 수수료도 연 1%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헤지 펀드 수수료는 기본적으로 연 2% 이상이다. 게다가 추가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 달성 시 초과수익률의 20%를 성과보수로 차감한다. 이런 살인적인 수수료율로 인해 투자기간이 길수록 인덱스 펀드를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한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
모든 주식을 다 소유하려면? 정답은 인덱스 펀드
이런 헤지 펀드나 액티브 펀드의 모순을 간파하고 세계 최초로 1976년에 인덱스 펀드를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뱅가드 펀드의 창시자로 유명한 존 보글이다. 보글의 주장은 심플하다. “인덱스 펀드에 투자한 후 가만히만 있어도 다른 80%의 투자자 수익률을 앞지른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역시 수수료 때문이다. 수수료로 인해 복리비용이 늘어 결국 장기적으로 액티브 펀드의 수익률은 인덱스 펀드를 이기기 어렵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결국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펀드매니저를 잘 골라냈을 경우에만 액티브 펀드의 장점을 취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수한 펀드매니저를 만날 확률은 높지 않다. 운에 기대야 한다. 이런 이유로 10년 이상의 장기 투자를 계획했을 때는 불확실성이 높은 헤지 펀드나 액티브 펀드보다 차라리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게 더 이득일 가능성이 높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도 유언으로 배우자에게 “내가 죽으면 재산의 90%는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에, 나머지 10%는 미국 국채에 투자하라”고 말했다. 버핏 역시 펀드매니저들의 주식 투자 실력보다는 그냥 시장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를 더 신뢰한다는 강력한 증거다.
그런데 버핏의 이 유언은 아이러니하다. 버핏이 대주주로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보험사로 위장(?)한 투자회사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방식이 상당히 공격적이라는 점이다. 과거부터 소수의 우량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으로 큰 수익을 올려 왔다.
최근 몇 년간만 해도 버크셔 해서웨이의 포트폴리오 가운데 미국 시가총액 1위인 애플 주식의 비중이 40%에 육박해 주목을 받아 왔다. 완벽하게 헤지 펀드나 액티브 펀드 방식의 투자 형태다. 버핏의 이런 실제 행동과 유언은 상당한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버핏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신을 능가하는 투자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인덱스 펀드와 ETF 중 뭐가 더 좋을까?
이제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인 존 보글의 주장 중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부분을 짚어보자. 보글은 1976년에 인덱스 펀드라는 엄청난 금융 상품을 개발해 헤지 펀드와 액티브 펀드의 모순 속에서 급성장해 왔다. 그런데 2000년대부터 ETF라는 훨씬 더 혁신적인 금융 상품이 등장하면서 보글이 이끌었던 뱅가드 그룹의 인덱스 펀드는 강력한 경쟁 상품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ETF가 인덱스 펀드보다 좋은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ETF의 수수료가 인덱스 펀드보다 더 저렴하다. 두 번째는 ETF의 유동성이 인덱스 펀드보다 훨씬 더 좋다. 인덱스 펀드는 환매일이 짧게는 3일, 길게는 10일이 넘는 경우도 발생한다. 반면 ETF는 펀드를 주식시장에 상장한 개념이라 실시간으로 매도, 매수가 가능해 유동성이 압도적으로 더 좋다.
이런 이유로 ETF의 인기가 인덱스 펀드를 뛰어넘은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보글은 ETF가 출시됐던 초기에 ETF의 유동성이 너무 좋은 나머지 투자자들이 단기 투자에 치중하는 투자방식에 주목했다. 이로 인해 인덱스 펀드 장기 투자자들보다 실제 ETF 투자자들의 수익률이 더 저조한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일견 일리가 있고 타당하다. 실제로 한국 투자자들만 봐도 ETF를 장기 투자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보다 단기적인 트레이딩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장기 투자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놓친 상당수 ETF 투자자들의 최종 투자 결과가 인덱스 펀드 투자자들보다 안 좋은 수치를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건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어쨌든 상품구조 자체로만 보면 인덱스 펀드보다 ETF가 여러모로 훨씬 더 우월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금융 상품 중에서 수수료가 압도적으로 높은 보험 상품을 예로 들 수 있다. 기자가 지인을 통해 가입한 저축성 보험은 높은 수수료율로 인해 다른 금융 상품들보다 장기 수익률이 저조했다. 또 이 보험 상품은 중도 해지할 경우 환급액이 워낙 적어 쉽게 해지를 결정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이 보험 상품을 추천한 지인에게 투덜대자 지인이 한 말이 압권이다.
“형, 지금 형이 가지고 있는 금융 상품 중에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금융 상품이 있기는 해? 돈 필요할 때마다 깨서 써버리지 않았어?” 그 지인의 말이 정확했다. 돈이 필요해도 중도해지를 못한 건 해지수수료가 너무 부담돼서 끝내 깨지 못한 보험 상품밖에 없었다.
지인은 “그것 봐, 역시 보험은 훌륭한 상품이야”라고 주장했다. 결과는 맞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다고 보험 상품의 구조가 다른 금융 상품보다 우월한 건 아니다. 오히려 불리하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보험 상품의 설계 의도와는 상관없이 좋은 점도 있다. 아이러니하다.
투자 귀재들, 수수료에 왜 민감한지 생각해 봐야
결론적으로 존 보글의 초기 주장과 달리 ETF의 상품 구조가 인덱스 펀드보다 우월하다는 건 변함없는 진실이다. 보글도 진작에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산운용사인 뱅가드 그룹은 과거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왔던 인덱스 펀드 외에 ETF 상품도 적극적으로 개발해 현재 ETF 시장에서도 상당히 높은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지금은 ‘묻지 마 공모펀드’나 ‘묻지 마 자문랩’이 크게 유행했던 2000년대와 2010년대를 훌쩍 지나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2023년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ETF라는 혁신적인 금융 상품 대신 액티브 펀드나 인덱스 펀드 같은 일반 펀드들을 주력으로 보유하고 있는 한국 투자자들이 많다.
심지어 직접 주식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 중 일부는 아직까지도 저렴한 스마트폰 주식 매매 대신 수수료가 10~20배 비싼 전화통화 주식 매매를 선호한다. 물론 증권사는 굳이 스마트폰 주식 매매가 더 저렴하다고 안내하거나, 일반 펀드보다 ETF의 수수료가 더 저렴하다고 설명할 이유가 없다. 그냥 고마워할 뿐이다. 본인이 이런 투자자에 해당된다면 왜 워런 버핏과 존 보글이 그렇게도 펀드 수수료에 민감했는지를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23년 03월호
챗GPT 이어 구글 '바드' 등장...소송전 걱정하는 실리콘밸리
저작권·허위사실·책임·윤리적 문제로 소송전
유로존·미국 등 법제화 속도
| 실리콘밸리=김나래 특파원 ticktock0326@newspim.com
“우리는 챗GPT를 세상에 내놓는 것에 두려움도 느꼈다. 챗GPT의 높은 인기는 일부 윤리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투자한 오픈AI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챗GPT 개발을 이끌고 있는 미라 무라티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지난 2월 5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무라티 CTO는 챗GPT가 오용되거나 악의적인 행위자에 의해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오픈AI의 무라티 CTO의 발언을 미뤄 봤을 때 챗GPT의 폭발적 인기에 대한 책임감도 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철학자, 사회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다”며 “AI 기업들은 소수이므로 정부 규제를 비롯해 더 많은 이들의 관여가 필요하며, 기술이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모두가 참여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챗GPT가 인간에 버금가는 능력으로 ‘만능 AI(인공지능)’ 기술로 각광받고 있지만, 저작권과 오류 등으로 인한 소송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법제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글 ‘바드’ 공식 발표...보수적 운용 전망
주요 외신들은 2월 6일 일제히 무라티 CTO의 인터뷰를 보도하며 경종을 울렸다. 이에 다시 한 번 업계는 챗GPT 열풍이 뜨거운 가운데 내부 개발 담당 고위관계자의 발언에 술렁였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챗GPT의 인기로 오픈AI가 뜨겁게 치고 나가고 있지만, 결국은 각종 소송전이 난무하고 윤리와 법제화의 벽에 부딪힐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구글이 AI 챗봇 ‘바드(Bard)’를 GPT의 대항마로 공식 발표하며 더욱 관심을 뜨겁게 달궜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회사 공식 블로그를 통해 “새로운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바드’가 신뢰할 만한 테스터들에게 개방될 것”이라며 “향후 수 주 안에 일반인들을 위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업계에서는 검색 광고가 회사의 주된 사업인 구글이 신뢰성을 중요시하는 만큼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챗GPT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GPT-3.5 모델을 사용하는 반면, 구글은 람다(LaMDA, Language Model for Dialogue Application)를 사용한다. 람다는 지난해 자사의 엔지니어가 지각 능력을 갖췄다고 주장해 업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CNBC에 따르면 구글은 바드를 회사 내부 직원들을 통해 피드백을 받고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 같은 테스트로 미뤄볼 때 상향된 기술들을 공개하되 회사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출시하지 않거나 AI에 대한 공개 액세스를 허용하는 데 있어 보수적일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구글은 앞서 자율주행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웨이모 역시 보수적으로 운용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생성AI 기술 부작용, 다양한 업계에서 발생
실제로 GPT의 부작용은 이미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최근 현직 판사가 챗GPT로 판결문을 작성해 뜨거운 논란을 가져왔다. 콜롬비아의 후안 마누엘 파디야 판사는 현지 라디오를 통해 한 부모가 저소득 등을 이유로 자폐 자녀의 의료비 면제를 청구한 사건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챗GPT를 활용했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자폐아 부모 편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판사는 역풍을 맞았다. 이 현직 판사가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를 챗GPT에 문의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윤리적이지 않다는 여론의 비판이 거세진 것이다.
또 세계 최대 이미지 플랫폼인 게티이미지도 스태빌리티 AI를 상대로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게티이미지에 따르면 스태빌리티 AI가 자사 소프트웨어를 학습시키기 위해 저작권 보호를 받는 이미지 수백만 개를 불법 복제하고 있으며 재정적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챗GPT의 열풍이 뜨거운 만큼 윤리적이고 법적인 소송 문제도 다양하다. 챗GPT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생성AI의 저작권이 지목된다. 이들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창작자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기존의 창작물을 대량으로 학습하는 점 때문에 향후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또 뉴욕시가 모든 공립학교에서 챗GPT 접속을 금지한 것처럼 창작의 영역 침투로 인한 윤리 문제와 표절 시비 등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작품의 저작권을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데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현행법상 인공지능이 저작권자가 될 수 없다. 윤리 문제에 있어서는 AI로 판단을 내리는 기준이 적합한지와 이로 인한 사고 위험으로 책임 소재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정보의 소스가 명확하지 않은 데서 오는 정보의 오류로 인한 피해도 있다. 챗GPT가 내놓는 답변은 오답률도 굉장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일반화된 답변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도구도 내부 사이트에는 없다. 이렇게 되면 가짜 뉴스에도 악용될 수 있고, 표절에 이용될 가능성도 높다. 또 이를 이용한 범죄 가능성도 업계에서는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AI와 딥러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스탠퍼드대학 로스쿨의 랜스 엘리엇 박사는 “챗GPT의 단점은 생성 기반 AI 앱으로 생성된 말 가운데 명백히 사실이 아니거나 오해의 소지, 완전히 조작된 명백한 사실 등 다양한 허위 정보가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식재산권(IP)에 대한 AI 지위 부여 여부와 침해 확장 여부는 논란이 계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챗GPT가 쏘아올린 AI 법제화 가능할까
업계에서는 고품질 데이터 기반으로 신뢰할 수 있는 AI를 보장하기 위해 견고한 규제와 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일찌감치 2021년 4월 AI법을 제안해 초안을 만들었으며, 올해 시행하는 게 목표지만 여전히 논의 중인 상태다. EU의 AI법은 개발사에 투명성, 공정성, 책임성을 요구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AI가 오류를 범하거나 실제로 피해 보는 사람이 생기면 개발자 쪽에 책임을 묻는 것이 목표다. 이에 따라 이용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이 AI 신기술을 많이 내놓고 있는 가운데 입법 논의는 걸음마 수준이다. 아직까지 규제보다는 자발적 협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간에서는 여전히 AI 규제가 챗GPT 같은 오픈소스 기반의 AI 개발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넷 해븐 데이터&소사이어티 전무는 니먼랩에 “우리는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항상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기술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데이터 중심 기술의 발전은 대부분 이러한 종류의 평가 및 통제를 벗어나 작동하는 경향이 있어 미국이 규제 조치를 취하기 시작해야 하며 그 작업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3년 03월호
대폭락한 천연가스 ETN, 지금 사도 될까?
천연가스 대폭락에 패닉...인버스는 대박
따뜻한 유럽 겨울? 방심했다간 위기 덮칠 수도
천당과 지옥 오간 천연가스...핵심은 투자 타이밍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아무도 예상 못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022년 봄에 갑자기 발생하면서 주목받은 원자재가 있다. 바로 원유와 천연가스다. 이 전쟁을 계기로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원자재 투자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천연가스 가격의 변동 움직임은 극적이었다. 1년 만에 짜릿한 급등과 급락을 모두 보여주며 투자자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현재 급락 중인 천연가스 가격은 2023년에 과연 어떻게 움직일까?
급등 후 급락한 천연가스, 투자자들 패닉
전통적으로 원자재 ETF나 ETN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원유 관련 상품이다. 하지만 지난 1년간 급부상한 또 다른 원자재 상품이 있다. 바로 천연가스 ETN이다. 천연가스는 과거 수년간 지지부진한 가격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지난해 2월에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갑자기 가격이 급등하며 투자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전쟁이 확대되면서 러시아 대 미국·유럽 간의 대리전 성격을 띠게 됐다. 이에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 공급을 거의 끊다시피 하며 보복을 단행한 게 가격 급등의 결정타였다. 이로 인해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2021년 말에 3.7달러였으나 불과 6개월 만에 수직 상승해 9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2022년 8월에는 10달러마저 돌파하며 170%라는 깜짝 수익률을 기록했다.
천연가스 상승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대박을 친 셈이다. 특히 레버리지 천연가스 ETN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300% 내외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해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좋은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천연가스 가격은 2022년 8월의 10달러를 정점으로 하락을 거듭했다. 급기야 올해 1월 말에는 2.7달러까지 폭락해 최고가 대비 하락률은 무려 -73%에 달한다.
오히려 전쟁 전보다 가격이 더 낮아진 셈이다. 축제 분위기였던 투자자들은 지금 패닉에 빠져 있다. 하지만 모든 투자자들이 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건 아니다. 고도로 발달된 현대의 금융상품 구조에서는 과거와 달리 반대 포지션을 택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냥 인버스도 아니고 천연가스의 -2배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ETN들이 한국에서 성황리에 거래 중이다.
이 인버스 ETN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지금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올해 1월에만 벌써 1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원자재 투자자들은 향후 천연가스 가격이 위로 치솟을지, 아니면 계속 곤두박질치며 아래로 내려갈지를 두고 각자의 전망에 근거해 치열하게 힘겨루기 중이다.
그런데 잘나가던 천연가스 가격이 다시 급락한 이유는 뭘까?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유럽이 이상기온 현상으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겨울은 천연가스 수요가 폭증하는 계절인데 이번 겨울엔 1월 중 영하의 기온을 기록해온 지역들이 20도 내외의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최소 8개 이상 유럽 국가의 기온이 평년보다 따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인해 유럽 전역에서 겨울철 난방에 필수적인 천연가스 수요가 큰 폭 줄어들었다.
둘째는 중국의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천연가스 수요 감소다. 중국은 그동안 제로코로나 정책을 3년간 고수해 왔다. 이후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뒤 갑자기 정책을 급선회했다. 이런 정책 변화에는 중국인들의 백지 시위도 영향을 미쳤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로 불과 몇 개월 만에 중국의 코로나 감염자 수는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산업활동 자체가 멈춰서다시피 했다. 이로 인해 천연가스 수요도 동반 감소했다.
셋째는 유럽 각국 정부가 사전에 천연가스 재고량을 최대치로 비축한 영향이다. 유럽 천연가스 재고축적률은 1월에도 80% 이상의 높은 수치를 보였다. 또 전반적인 에너지 가격이 치솟는 데 두려움을 느낀 경제주체들이 에너지 절약에 큰 힘을 쏟아 소비량 자체가 평년보다 감소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이 가장 당황스러운 건 바로 러시아의 푸틴이다. 천연가스를 무기로 유럽을 협박해 굴복시키려 했던 푸틴은 연속으로 불운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이렇게 강력할 줄 예상 못했고, 유럽과 미국이 전폭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줄도 예상 못했다. 그리고 하늘이 심판을 내리듯 유럽이 몇십 년 만에 따뜻한 겨울을 맞이한 것도 푸틴의 계산에는 없던 일이다.
하지만 덩달아 타격을 받은 건 천연가스 투자자들이다. 고점 대비 낙폭도 크고 수요공급 구조로 봐도 상승에 베팅하는 게 당연해 보였던 천연가스 가격이 예상과 다르게 계속 하락했다. 천연가스 상승에 베팅했던 투자자들은 지금 엄청난 평가손실을 기록 중이다. 일부 감각적인 투자자들은 -2배 인버스 상품으로 대박을 내기도 했지만 상당수 천연가스 투자자들은 지금 공포에 질려 있다.
제로코로나 폐기한 중국 경기 회복 큰 변수
그렇다면 천연가스 가격은 몇 년 전처럼 다시 수년간의 지루한 침체기에 진입하는 걸까? 이렇게 예상하는 업계 전문가는 드물다.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가 2022년 9월 이후 유럽으로 향하는 최대 가스운송관인 ‘노드스트림1’을 여전히 틀어막고 가스 공급을 거의 끊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기존 공급량의 약 20% 수준으로 공급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 향후에는 아예 끊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유럽에서 천연가스는 귀해질 수밖에 없다. 이 계산은 수학이 아니라 산수다.
유럽이 이번 겨울의 위기는 따뜻한 날씨 덕에 넘기겠지만 문제는 다음 겨울이다. 그 전에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극적으로 늘리지 않는다면 천연가스 가격의 재반등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의 경기회복까지 더해지면 더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작년 까지만 해도 글로벌 경제전문가들 대부분은 중국이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2023년에도 경기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해 왔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최근 전폭적으로 제로코로나 정책을 폐기했다. 아직 의료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급격한 방역 완화로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중국인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만이 할 수 있는 이런 과격한 정책으로 일부 노인층의 사망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반면에 집단면역이 빨리 형성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발생했다. 이에 따라 중국 경제는 예상과 달리 올해 빠르게 반등할 수 있다. 이는 세계 에너지 수요가 중국으로 인해 큰 폭 늘어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업계 전문가들이 천연가스 가격이 반등할 것으로 전망하는 강력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 2022년 12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에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더 줄인다면 유럽 연간 소비량의 7%에 해당하는 약 270억㎥의 천연가스가 부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21년 기준 유럽의 연간 천연가스 소비량은 4120억㎥였다. 소비량을 큰 폭으로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올해 따뜻한 겨울을 맞이한 유럽이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예측불허인 푸틴은 언제든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전면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각국이 올봄부터 다시 경쟁적으로 러시아 외의 지역에서 천연가스 구매 경쟁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 전망이 맞다면 천연가스 -2배 인버스 ETN 투자로 지금 행복해하는 투자자들도 멀지 않은 시기에 이익을 실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두 차례의 천연가스 급등 상황은?
주식과 원자재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주식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장성과 눈에 보이는 회사의 실적이 주가 향방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은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인다. 이 균형이 어느 방향으로 쏠리는지에 따라 가격변동성이 커진다. 과거 천연가스 가격이 큰 폭 상승했던 두 번의 사례를 살펴보자.
‘헨리 허브 가격(Henry Hub Price)’이란 북미지역의 대표적인 천연가스 가격지표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위치한 헨리 허브에서 가격이 결정되는데 이곳에는 천연가스 배관망이 몰려 있다. 헨리 허브가 1989년에 뉴욕상업거래소(NYMEX)로부터 천연가스선물계약소로 선정된 후 헨리 허브 가격은 천연가스 선물의 기초가격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NYMEX에서 거래되는 천연가스 선물의 최근월물 가격과 헨리 허브 가격은 비슷하다. 지난 20년간의 헨리 허브 가격 차트를 살펴보면 유독 급등한 두 번의 상승기가 눈에 띈다. 바로 2005년과 2008년이다.
첫 번째 천연가스 가격 급등기인 2005년은 그해 8월에 멕시코 만(灣)의 원유생산 시설과 천연가스 관련 시설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발생했다. 이로 인해 공급이 크게 감소하면서 수요 공급의 균형이 단숨에 무너졌다. 특히 천재지변으로 인한 공급 감소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이슈라 단기적인 충격이 훨씬 더 심각했다.
이로 인해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은 급등했고, 이는 전 세계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미국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주는 발전용 연료인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 더 타격이 컸다. 미국 행정부는 전략비축유까지 대량 방출하며 가격 안정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 당시 천연가스 가격은 얼마나 올랐을까? 허리케인이 강타하기 전인 2015년 7월에 7.63달러였던 헨리 허브 천연가스 현물 가격은 같은 해 12월엔 71% 급등한 13.05달러에 거래됐다.
두 번째 천연가스 가격 급등기인 2008년은 베이징올림픽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의 경기호황 영향이 컸다. 이 당시 2008년 8월의 베이징올림픽 직전에 중국의 원유 수요가 증가할 거라는 기대감에 힘입어 원유와 함께 천연가스까지 동반 상승했다. 특히 주식시장이 조정받는 상황에서 원자재 투자가 대안으로 주목받던 시기라 가격 상승폭이 더 컸다.
2007년 말에 헨리 허브 천연가스 현물 가격은 7.11달러였으나 2008년 6월에는 무려 78% 급등한 12.69달러에 거래됐다. 이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면서 2008년 12월에는 다시 5.82달러까지 폭락하는 심각한 롤러코스터 형태를 보였다. 여기서 투자자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기본적으로 천연가스 같은 원자재에 투자할 때는 높은 변동성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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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욕은 금물...핵심은 투자 타이밍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은 매우 높다. 그래서 평범한 투자자들은 원자재 투자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격적이고 트레이딩 감각이 있는 투자자들에게는 원자재 투자가 딱 적성에 맞을 수도 있다. 높은 변동성은 양날의 칼이다. 단점도 있지만 방향만 잘 맞추면 오히려 높은 수익률로 보상받을 수도 있다.
2022년 1월 말 기준 뉴욕상업거래소(NYMEX) 천연가스 가격은 전년 고점인 10달러에서 -73% 폭락한 2.7달러였다. 이 가격은 헨리 허브 천연가스 가격의 20년 평균인 4.6달러보다 약 41% 낮은 수준이다. 현재의 천연가스 가격이 저평가된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변동성 높은 자산들의 특징은 방향성이 설정되면 단기적으로는 가치보다 과도하게 고평가되거나 저평가되는 경우가 흔하다.
천연가스 가격은 지금 내리꽂히는 칼날처럼 급락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는 야수의 심장을 가진 투자자들이 많다. 이 떨어지는 칼날을 과감히 잡아 높은 수익률을 올리려는 한국 투자자들의 천연가스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미 1개월 새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천연가스 2배 레버리지 ETN이나 천연가스 정방향 ETN 상품에 투자됐다. 하지만 너무 빨리 진입한 투자자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결국 언젠가 바닥을 잡아내는 건 개인투자자들이 맞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개인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가급적 2배 레버리지 상품보다는 순수하게 천연가스 가격을 추종하는 인덱스 ETN 상품에 투자하는 게 정신 건강에는 더 좋을 수 있다. 또 천연가스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롤오버’, ‘괴리율’, ‘음의 복리효과’, ‘상장폐지’ 리스크에 유의해야 한다.
헨리 허브 천연가스 가격의 20년 장기평균은 4.6달러다. 만약 천연가스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자라면 천연가스 가격이 장기평균가격을 크게 넘어섰을 때는 큰 욕심을 버리고 적당히 차익을 실현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은 매우 높다. 원자재에 장기투자한 결과는 좋지 않은 적이 더 많다는 역사적 교훈을 잘 새겨야 할 때다. 모든 한국 투자자들의 성공 투자를 기원한다.

2023년 03월호
롤오버·괴리율...모르면 낭패 본다
천연가스 해외ETF 사면 10% 세금폭탄 왜?
음의 복리효과 모르고 레버리지 사면 큰 손실 날 수도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지난해 말, 미국 원자재 ETF에 투자했던 한국 투자자들은 보유 ETF를 매도하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였다. 증권회사들도 다급하게 고객들에게 매도를 유도하는 안내문을 발송했다. 가만히 있으면 미국 원자재 ETF에 투자했던 죄(?)로 미국 정부에 세금 10%를 고스란히 헌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세금은 손해가 나도 매도금액의 10%를 현지에서 그냥 원천징수해 버린다.
일명 ‘PTP 과세’ 이슈다.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미국 국세청(IRS)이 새로 도입된 규정(Section 1446(f) 개정안)에 근거해 파트너십 회사인 PTP(Publicly Traded Partnership) 종목에 투자한 미국 비거주 투자자들에게 적용된다. 주로 원유, 가스 등의 원자재 종목이 이에 해당한다.
미국에 상장된 대표적인 천연가스 ETF로는 종목코드로 BOIL, UNG, KOLD, UNL, GAZ 등이 있다. 이 중 자산 규모가 가장 큰 ETF는 ‘UNG’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단점은 1개월물 단위의 선물계약을 추종해 롤오버 비용부담이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단점을 보완해 만든 천연가스 ETF가 바로 ‘UNL’이다. 12개월물 천연가스 선물계약을 추종해 롤오버 비용부담을 낮췄다. 참고로 ‘GAZ’는 2개월물 선물계약을 추종한다.
하지만 야수의 심장을 가진 한국인들에게는 이런 밋밋한 천연가스 ETF는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2배 레버리지 천연가스 ETF인 ‘BOIL’이나 -2배 인버스 천연가스 ETF인 ‘KOLD’가 한국 투자자 사이에서는 더 인기가 높았다. 문제는 미국에 상장된 이 천연가스 ETF들이 모두 ‘PTP 과세’ 종목에 해당돼 10%의 추가과세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유예기간 적용 등의 단서조항이 있지만 굳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미국 천연가스 ETF를 보유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한국 천연가스 ETN, 어떤 게 있나?
미국이 ‘PTP 과세’ 제도를 전격 시행한 후부터 국내 원자재 ETN 상품들은 반사이익을 봤다. 한국 투자자들이 굳이 미국 원자재 ETF에 세금 10%를 추가로 내면서까지 투자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현명한 한국 투자자들은 보유한 미국 원자재 ETF를 매도한 후 국내에 상장된 원자재 ETN으로 대거 갈아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한국에서도 역시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원자재 ETN은 2배 레버리지나 -2배 인버스 종목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의 운용사나 증권사들은 투자자들의 니즈에 부응해 전략적으로 각 ETN 종목별로 레버리지 상품 발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국 주요 상장 천연가스 ETN 현황을 살펴보면 압도적으로 레버리지 상품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음의 복리효과’ 모르고 레버리지 ETN 샀다간?
한국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야수의 심장을 가진 공격적인 투자자들이 많다. 그런데 레버리지 ETF 상품이나 ETN 상품을 매수하려면 먼저 금융투자협회에서 정해 놓은 ‘사전 의무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이후 수료증을 등록하고 증권예탁금도 1000만원 이상임을 입증해야만 실제 레버리지 상품 매수가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투자자들은 이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 심지어 한국에는 3배 레버리지 상품이 없어서 심심하다며 한국 시장을 떠나 미국에 상장된 3배 레버리지 상품을 매수하는 경우도 흔했다. 2022년 말 기준 한국 해외주식 투자자들이 보유한 상위 10개 종목 중 4위가 바로 ‘나스닥 3배 레버리지 상품’인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큐큐큐 ETF’였다. 연간 수익률은 무려 -79% 손실이다. 무시무시하다. 이런 고위험 ETF가 보유종목 4위라니 한국의 투자자들이 얼마나 공격적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레버리지 ETF나 레버리지 ETN을 매수할 때는 ‘음의 복리효과’를 주의해야 한다. ‘나스닥 3배 레버리지 상품’인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큐큐큐 ETF’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앞으로 나스닥이 30% 상승하면 나는 90%의 초대박 수익률을 내겠구나”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게 딱 맞는 얘기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레버리지 상품은 매일매일 변동하는 하루 단위의 기초자산 수익률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만약 나스닥 3배 레버리지 ETF를 1만원에 샀다고 가정해 보자. 나스닥 지수가 5% 올랐다면 1만500포인트가 된다. 반면 3배 레버리지 ETF는 1만1500원이 된다. 그 후 나스닥 지수가 4.7% 하락해 다시 1만포인트가 됐을 때 3배 레버리지 ETF는 3배인 14.1%가 떨어져 9980원이 된다. 다시 1만원이 되지 않는 게 함정이다.
이런 구조로 인해 지수가 꾸준히 상승하지 않고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경우 기대했던 수익률보다 훨씬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변동성 끌림(Volatility Drag)’이라 한다. 이런 내용을 잘 모르고 레버리지 ETF에 투자했다가 “왜 내 ETF는 지수가 회복됐는데도 손실률이 이렇게 크냐”며 운용사나 증권사에 거세게 항의하는 고객들이 왕왕 보인다.
2022년 초에 미국 ‘나스닥 3배 레버리지 ETF’를 적립식으로 매수 추천하는 유튜브 동영상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많은 초보 투자자들이 이 투자전략을 따라 했다가 크게 낭패를 본 사례가 속출했다. 거의 1년 가까이 나스닥 지수가 하락을 거듭하면서 ‘음의 복리효과’가 극대화돼 투자자들의 피해가 막심했다. ‘천연가스 2배 레버리지 ETN’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고통도 심각한 상황이다. 레버리지 투자는 절대적으로 단기간만 하는 게 효율적이다. 장기투자는 피해야 한다.
천연가스 ETN 투자? 롤오버와 괴리율 모르면 낭패
원유나 천연가스 ETN에 투자할 때 투자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첫 번째는 ‘롤오버’다. 원자재 ETN은 주로 선물에 투자하기 때문에 원유나 천연가스의 현물가격과 선물가격은 다르게 움직일 수도 있다. 우리가 원유에 투자한다고 가정해 보자. 원유를 1개의 드럼통 형태로 직접 실물을 매수하는 건 여러모로 불편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그래서 원자재에 투자할 때는 특정한 시기에 정해진 가격에 거래한다는 약속인 ‘선물’ 형태로 투자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선물 투자에는 기본적으로 이자비용, 보관비용 등이 발생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모든 선물거래는 만기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만기 때 청산(손익 확정)하거나, 만기가 더 긴 다른 선물로 교체해야 계속 투자할 수 있다.
이렇게 만기가 임박해 교체를 진행할 때 만기가 다른 선물 간에는 가격차가 발생한다. 이 가격차에 따라 이익 또는 손실이 발생하는데 이를 ‘롤오버(Roll-over) 효과’라고 부른다. 이 롤오버 비용은 가격이 평온하게 움직일 때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가격이 크게 변동하는 시기에는 상당히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이런 비용이 투자자가 보유한 ETN의 손익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두 번째로 ‘괴리율’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특정한 ETF나 ETN 종목들은 모두 매일매일 또는 실시간으로 바뀌는 고유의 ‘순자산가치’가 존재한다. ETF는 NAV(Net Asset Value)라는 용어를 쓰고, ETN은 IV(지표가치)나 IIV(실시간 지표가치)라는 용어를 쓴다. 이 순자산가치와 실제 거래되는 종목의 거래가격 차이를 ‘괴리율’이라 한다. ETN을 발행한 증권사는 LP(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겸해 특정 ETN의 괴리율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관리한다.
하지만 시장이 너무 과열됐을 경우 LP들의 시장 조성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인 쏠림 현상으로 특정 ETF나 ETN의 괴리율이 커질 수 있다. 그래서 LP 증권사를 너무 믿어서는 곤란하다. 지난 2020년에 WTI 원유선물이 마이너스까지 내려가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WTI원유 ETN을 발행했던 증권사가 LP 역할에 실패해 소송까지 진행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ETF나 ETN 종목의 괴리율이 큰 상태에서 섣불리 매수했다가 갑자기 상장폐지가 결정될 경우 NAV나 IV를 기준으로 청산이 진행되므로 특히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특정 ETF나 ETN을 매매할 때 그 매매가격이 해당 종목의 ‘순자산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지를 늘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내 ETN 종목이 상장폐지? 80% 폭락에 유의해야
ETN은 ETF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ETF는 운용사가 발행하는 데 비해 ETN은 증권사가 발행한다. 또 ETN은 금융상품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ETN 발행 증권사는 1~20년 이내로 ETN의 만기를 정해서 발행해야 한다. 당연히 정상적으로 만기가 도래해 만기상환에 의해 상장폐지되는 ETN의 경우 투자자가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투자자가 상장폐지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가격이 폭락해 강제로 상장폐지가 진행되는 경우다. 한국거래소의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시행세칙에 따르면 정규시장 종료 시점에서 ETN의 ‘실시간 지표가치’가 전일 대비 80% 이상 하락하거나 1000원 미만인 경우 해당 ETN은 조기청산 사유를 충족한 것으로 본다.
실제로 이렇게 ETN 가격이 80% 이상 폭락해 상장폐지되는 사례가 현실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걸까? 당연히 있다. 한국에서 ETN 가격 대폭락으로 상장폐지된 첫 번째 사례는 2022년 3월에 발생했다. 예기치 못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니켈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니켈 가격 상승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모두 환호했다.
하지만 니켈 가격의 2배 하락에 베팅하는 일명 곱버스 상품에 투자한 한국 투자자들은 패닉 상황이 됐다. 결국 관련 상품인 ‘대신 인버스 2X 니켈선물 ETN(H)’은 한국에서 상장폐지됐다. 이 ETN이 특이했던 건 기초자산이 아예 0원이 됐다는 사실이다. 100% 원금 손실이다. 레버리지 투자의 위험성을 일깨워 준 소중한 사례이기도 하다.
‘천연가스 2배 레버리지 ETN’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고통도 심각한 상황이다. 불과 한 달 만에 -50%가 넘는 손실을 본 투자자가 속출했다. 레버리지 투자는 절대적으로 단기간만 하는 게 효율적이다. 장기투자는 피해야 한다. 또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앞에서 설명한 ‘롤오버’, ‘괴리율’, ‘음의 복리효과’, ‘상장폐지’ 리스크에 유의해야 한다. 한국 금융시장은 지금 2배 레버리지 ETN과 -2배 인버스 ETN 투자의 전성시대다. 야수의 심장을 가진 한국 투자자들의 성공 투자를 기원한다.

2023년 03월호
게임체인저 떠오른 '챗GPT' 검색엔진 생태계 '지각 변동'
MS, 오픈AI와 협업 강화 위해 100억달러 추가 투입
‘적색경보’ 발령 구글, 챗GPT 대항마 ‘앤스로픽’에 투자
네이버·카카오도 생성형 AI 활용한 신규 서비스 상용화 박차
| 양태훈 기자 dconnect@newspim.com
오픈에이아이(Open AI)의 대화 전문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챗(Chat)GPT’가 기존 검색서비스 시장의 지각 변동을 가져올 게임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출시 두 달 만에 월간활성이용자(MAU)가 1억명을 돌파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시장에서는 챗GPT의 등장이 구글, 네이버 등 기존 키워드 중심 검색엔진 생태계에 대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챗GPT는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생성적 사전학습 변환기)를 기반으로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자연어 처리 기능과 데이터 셋을 미리 학습시켜 놓은 생성형 AI 서비스를 뜻한다.
이 서비스는 1750억 개의 파라미터를 보유한 초대규모 언어 모델인 ‘GPT-3’를 개량한 ‘GPT-3.5’를 이용해 마치 사람처럼 AI와 대화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단순히 대화가 가능한 수준을 넘어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AI 비서 자비스처럼 조언을 구하거나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도 있다.
AI 전문 기업 뤼튼테크놀로지스의 이세영 대표는 “많은 해외 투자자들이 생성형 AI의 등장을 14년마다 한 번씩 오는 인터페이스 혁명이라 언급할 정도”라며 “(윈도우의 등장으로) 인터넷, GUI(Graphical User Interface), 마우스 기반의 인터페이스가 등장하면서 대부분의 업무 환경을 변화시켰고, 이후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생겨나면서 다양한 모바일 앱이 우리의 일상을 바꾼 것처럼 생성형 AI도 새로운 생태계를 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구글 아성 도전하는 MS, 검색엔진 ‘빙’에 챗GPT 적용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2015년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설립했지만, 현재 오픈AI와의 파트너십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18년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가 테슬라에서 자체 개발하는 AI와의 이해상충 관계를 이유로 오픈AI 이사회에서 사임하자 2019년 10억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100억달러를 추가 투자해 지분 49%를 인수하기로 결정하는 등 파트너십을 공고히 다져왔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는 △초대규모 언어 모델인 GPT-3.5 △이미지 생성 AI 달리2(Dall-E2) △기계학습 모델 코덱스(Codex) 등을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에 적용한 ‘애저 오픈AI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양사는 내년 초 GPT-3.5 대비 운영비용이 적으면서 반응속도는 빠른 GPT-4 기반의 챗GPT를 검색서비스 ‘빙(bing)’에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키워드 중심의 검색서비스로 글로벌 검색엔진 시장의 93%가량을 점유한 구글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제로 구글은 챗GPT 출시 이후 내부적으로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에 대한 경고를 뜻하는 코드레드(적생경보)를 발령하고, 챗GPT에 대항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예컨대 구글은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인 ‘람다’를 활용한 새로운 챗봇 개발에 착수했으며, 최근에는 제2의 오픈AI로 불리는 인공지능 스타트업 ‘앤스로픽’에 4억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김중한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챗GPT가 돌풍을 일으킨 것은 분명 사실이나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도를 담보할 수 있는 성능 및 안정적 수익화 모델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상 검색엔진의 전면적인 대체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구글은 독보적인 자연어 처리와 추천 시스템을 기반으로 사용자와 데이터를 축적하며 높은 수준의 해자(Moat)를 구축했다. (구글이) 챗GPT 등장 이후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한 만큼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 “알파벳(구글의 모회사)은 현재 생성형 AI가 커버 가능한 대부분의 서비스에 대해 프로덕트 라인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챗봇 기능을 갖춘 새로운 검색엔진을 포함해 텍스트, 이미지, 번역, 코딩 등 최소 20종류 이상의 서비스를 올해 공개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화형 챗봇 람다2, AI 챗봇 스패로우 등이 챗GPT의 직접적인 대항마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네이버는 검색엔진, 카카오는 카톡에 생성형 AI 도입
챗GPT는 네이버와 카카오처럼 검색엔진을 운영하는 인터넷 기업은 물론 SK텔레콤·KT 등 통신서비스 사업자와 삼성전자·LG전자 등 전자제품 제조사에까지 파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는 챗GPT에 대응한 신규 서비스 상용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먼저 네이버는 그간 축적한 검색 역량에 생성형 AI를 접목한 ‘서치(Search) GPT’ 서비스를 올해 상반기에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네이버는 2021년 5월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를 개발하고, 이를 검색·쇼핑·콘텐츠 서비스 등에 적용해 다양한 레퍼런스를 쌓아왔다. 하이퍼클로바는 2040억 개의 파라미터를 보유하고 있어 GPT-3보다 더욱 고도화된 AI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챗GPT는 학습 데이터 대부분이 영어로 구축돼 있어 영어 이외의 언어 생성 능력이 제한적인 반면, 하이퍼클로바는 한국어에 특화된 언어 모델로 학습 데이터의 97%가 한국어로 구성돼 있어 한국 이용자에게 더 높은 만족도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구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이와 관련해 “네이버는 한국어로는 가장 고품질의 검색 데이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사업자일 뿐 아니라 거대 AI 모델로는 세계 정상급 기술을 자부하는 한국 최고의 검색·AI 기술 회사”라며 “생성형 AI의 단점으로 꼽히는 신뢰성과 최신성 부족, 해외 업체의 영어 기반 개발 모델을 한국어로 번역함으로써 발생하는 정확성 저하를 풍부한 사용자 데이터와 기술·노하우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카카오는 검색엔진보다는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에 챗GPT와 유사한 AI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언어형 AI 모델인 ‘코지피티(KoGPT)’와 생성형 AI 모델인 ‘칼로(Karlo)’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카카오톡의 이미지 생성 기능과 채팅 기능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독립 자회사인 ‘카카오 브레인’을 통해 2017년부터 오픈AI의 GPT-3와 달리를 모델로 구글의 텐서플로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언어형 AI 모델 KoGPT와 이미지 생성형 AI 모델 민달리(minDall-E)를 개발해 왔다. 2021년 11월에는 GPT-3 모델 기반의 한국어 특화 언어형 AI KoGPT를 공개했으며, 2022년 12월 민달리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칼로를 공개했다.
시장에서는 카카오 역시 한국어에 특화된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카카오톡을 비롯한 카카오 서비스가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만큼 주도권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김중한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카카오톡 채널에서도 생성형 AI가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채널에서는 인공지능 챗봇이 고객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미리 입력된 간단한 내용만 응대가 가능한 상황인데, KoGPT가 적용된다면 직원처럼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가능해 입점 업체들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며 “헬스케어도 적극적인 AI 활용이 기대되는 분야로, 카카오 헬스케어는 전문가의 많은 시간이 필요한 흉부 엑스레이를 판독하고 판독문까지 작성해 주는 서비스를 출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고 전했다.

2023년 03월호
'수술대' 오른 국민연금…올해가 마지막 골든타임
4차 추계 땐 보험료율 16% 제시…5년간 부담 껑충
2093년까지 재정 안정 위해 보험료율 두 배 올려야
현행 유지할 경우 2055년부터 보험료율 26.1%
| 이경화 기자 kh99@newspim.com
32년 뒤인 2055년에 국민연금 곳간이 텅 비게 돼 그해 거둔 보험료로 그해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 방식으로 전환된다면 그때부터 가입자들은 소득의 26.1%를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후세대로 갈수록 어깨는 더 무겁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2080년에 부담할 보험료율은 최고 34.9%로 올라 월 100만원을 벌면 34만9000원을 내야 한다.
국민연금은 세대간 연대를 기초로 한 제도인데, 2050년 이후 합계출산율이 1.27명을 밑돌고 평균수명은 90세를 훌쩍 넘는 등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어쩔 수 없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32년 뒤 기금 바닥...2년 뒤 보험료율 9%→18%
지난 1월 27일 제5차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는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의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쌓아놓은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 고갈될 것으로 예측했다. 고갈 시점이 5년 전 4차 추계 때보다 2년 앞당겨진 것으로, 지금이라도 연금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이미 곪아터진 종기가 눈덩이처럼 더 커질 수 있다는 신호다.
국민연금 개혁이 매번 미뤄지면서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는 늘어났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보험료율이 2018년 4차 재정계산 대비 1.66~1.84%p나 상승했다.
가령 추계 기간 말인 2093년에도 기금 소진 없이 ‘적립’ 상태에서 수급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려면 2025년 최소 보험료율은 17.86%(4차 추계 당시 16.02%)까지 올라야 한다. 70년 후 1년치 연금지출액만큼 기금을 남겨두기 위한 전망치(적립배율 1배)로 현행 보험료율의 2배다.
보험료율 인상 시점이 미뤄질수록 적립배율을 1배로 유지하기 위한 보험료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만약 재정추계 10년 뒤부터 보험료율을 올린다고 가정했을 때 내야 하는 보험료율은 20.73%(4차 17.95%)로 뛴다. 적립배율 2배·5배 등 다양한 시나리오별 보험료율은 17~24%를 나타냈다. 4차 재정계산 당시 16~22% 수준이던 걸 감안하면 5년 새 부담이 더욱 커졌다.
만약 2055년 기금 고갈 뒤 ‘부과’ 방식 전환을 대안으로 선택한다면 보험료율은 26.1%에 달하게 된다. 가입자의 월 소득 4분의 1이 연금보험료로 나가는 것이다. 이 비율은 2078년 35%까지 올랐다가 2093년에 29.7%에 머문다.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연금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높은 배경이다.
‘보험료율 인상·가입연령 상향’ 카드 만지작
국회 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 위원들이 곧 내놓을 걸로 보이는 유력 개혁초안조차도 당장의 급격한 인상을 막고자 미래 세대에 부담을 안기도록 설계돼 있다.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노후연금액 비율)을 현행 40%(2028년·40년 가입자 기준)로 유지하는 안에서는 1년마다 0.6%p씩 10년에 걸쳐 보험료율이 15%까지 치솟도록 설계됐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대신 보험료율의 점진 인상을 전제로 한 복수안도 거론되는데, 실제 연금 인상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미래 세대의 재정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65세인 연금 수급연령 연장도 가입자들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하다. 59세인 최종납부연령과의 시차, 즉 소득절벽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년 연장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정년 연장 이슈가 노사 대립이 극심한 사안인 점은 또 다른 뇌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가 폭탄을 떠안게 될 건 자명하다. 이번 정부조차 여론 눈치에 개혁을 미룬다면 손쓰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화 인구구조상 지금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으면 공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며 “재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보험료율은 15% 수준까지 가능한 한 빨리 올라야 미래 세대 부담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가야 한다”며 “이에 더해 은퇴 후 수급 전까지의 소득공백·복지사각 문제가 있는 만큼 지급 연령을 올리는 속도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2023년 03월호
'재정 고갈' 난제 극복...스웨덴·일본의 해법은?
스웨덴, ‘NDC’ 전환...연금보험료 18.5% 유지
일본, 2004년 13.58%→2017년 18.3%로 인상
독일, 사적연금 지원...소득재분배·노후보장
| 이경화 기자 kh99@newspim.com
저출산·고령화와 경기침체에 따른 연금기금 고갈 위기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보다 수십 년은 앞서 연금제도를 도입한 선진국들이 비슷한 과정을 겪고 지속적인 연금개혁으로 재정 안정화를 이뤄냈다. 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미래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스웨덴과 일본, 독일 등은 연금 수령액 자동조절장치를 도입하거나 수급연령을 상향하고 사적연금의 보험료를 정부가 지원하는 등의 식으로 공적연금제도를 손봤다. 악화하는 인구구조 변화상을 고려할 때 연금개혁을 추진해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사례로는 스웨덴이 꾸준히 오른다.
스웨덴 ‘명목확정기여’, 독일 ‘사적연금’
1913년 공적연금을 도입한 스웨덴은 제도개혁 이전까지 전체 노인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의 이중 공적연금체제로 매우 관대한 노후소득보장 제도를 유지해 왔다. 급속한 고령화로 1980년대부터 연금 재정 고갈 위기가 엄습한 스웨덴의 연금개혁은 ‘낸 만큼 돌려받는’ 방향으로 변화된 게 핵심이다.
스웨덴은 1998년 명목확정기여(NDC) 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전환하는 대대적 개혁을 단행했다. 수령액이 정해진 기존 확정급여형(DB)과 달리 가입자가 부담한 보험료에 일정 수준의 이자를 더해 연금을 타는 구조다. 여기에 자동재정조정 장치를 가미해 인구학적 요소를 반영하는 식으로 급여 수준을 하향 조정한 데 더해 연금 수급연령은 상향 조정했다.
무엇보다 1999년 이후 공적연금 보험료를 18.5%로 명문화한 뒤 현재 더는 보험료율 인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자동조정 장치로 급여 수준을 내리는 방법으로 연금재정 안정화를 도모하면서 추후 개혁 필요 시 사회적 진통을 막고 재정 건전성 확보에도 일조하고 있다는 평가다.
일본도 스웨덴 사례를 참고해 2004년 개혁 때 자동조정장치인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 인구·경제상황 변수를 반영해 자동 하향조정되게 했다. 당시 13.58%이던 보험료율을 2017년까지 18.3%로 천천히 올려 국민 저항·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했고 이후 더는 올리지 않고 고정했다.
일본은 더 내고 덜 받는 식으로 개혁한 대신 2040년 뒤에도 50% 수준의 소득대체율을 보장하고 있다. 2025년에는 고용이 의무화되며 이에 맞춰 수급연령도 65세부터 최대 10년까지 선택해 늦추도록 했다. 일본은 공적연금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기반을 확대하고 국고 부담을 강화해 수입을 증대하는 방식으로 재정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1889년 세계 첫 공적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한 독일은 1989년부터 2017년까지 11차례 연금법을 고쳐가며 점진적 개혁을 이어갔다. 리스터 연금이 가장 눈에 띈다. 연금 급여 수준을 낮춰 재정 안정화를 도모하는 대신 사적연금의 보험료를 정부가 지원하고 세금공제를 해주면서 원금을 보장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리스터 연금은 가입자가 연소득의 4%를 넣으면 정부가 그중 약 30~90%를 지원한다. 소득이 적고 자녀가 많을수록 정부 지원이 늘어나는 구조로, 소득재분배와 출산 유인 효과를 동시에 꾀하고 있다. 올해는 주식연금 도입을 추진한다. 정부 예산 일부를 떼어 국가펀드를 만든 뒤 주식 투자 등으로 운용해 공적연금 부족분을 메운다는 복안이다.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한 국민적 합의하에 캐나다는 1997년 연금보험료율을 기존 5.6%에서 2003년 9.9%까지 올렸다. 연금 재정구조도 비적립식에서 한국과 같은 부분적립식으로 바꿨다. 2016년에는 기본 소득비례연금(CPP)에 더해 완전적립식으로 소득대체율을 25%에서 33%까지 인상하는 추가 CPP 제도도 도입했다.
완전적립식은 미래에 나갈 돈을 모두 쌓아두는 형태라 청년세대에게 더 유리했고 세대간 형평성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됐다. 캐나다는 올해까지 보험료율을 11.9%로 올려 공적연금의 낮은 급여율을 상향한다는 계획이다.
프랑스, ‘62→64세’ 개혁 강행...젊은 층 갈등 폭발
국민연금 개혁이 늦을수록 국민 저항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현재 62세인 연금 수급연령을 오는 2030년까지 64세로 늦추고 납입기한을 42년에서 43년으로 1년 늘리는 등의 개혁을 추진 중이지만 시민들, 특히 젊은 층에서 강하게 반발하며 개혁 과정이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온건 성향의 프랑스민주노동연맹조차도 ‘죽을 때까지 일만 할 수는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강경파로 돌아섰다. 기존 연금법에서는 42년 근속 근로자라면 누구나 연금 전액을 지급받을 수 있으나, 연금개혁이 강행되면 1년 늘어난 43년 이상 근속 근로자에게만 연금 100%가 지급된다.
연금개혁안을 두고 젊은 층은 노동시장이 극도로 경직된 상황에서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들 거란 볼멘소리를 낸다. 프랑스 현지 여론도 싸늘하긴 매한가지다. 여론조사기관 엘라베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72%가 마크롱식 연금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앞서 브라질은 2019년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총파업·고속도로 점거 등 거센 저항을 뚫고 수급연령을 남성 기존 60세에서 65세, 여성은 55세에서 62세로 각각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연금개혁에 겨우 성공한 바 있다. 납입기한도 15년에서 20년으로 늘렸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금개혁은 국가재정 긴축·경제 정상화를 내세운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2023년 03월호
오혜연 카이스트 AI센터장 “챗GPT가 바꿀 세상? 인간이 중심 돼야 편향성 극복”
인공지능(AI) 권위자 오 교수
“딥러닝 이용 신뢰도에 문제 생길 수 있어”
| 김용석 전문기자 fineview@newspim.com
오혜연 KAIST 교수는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챗(Chat)GPT’에 대해 “인간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산학과 교수이자 산하 MARS 인공지능통합연구센터 소장인 그는 이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회인 뉴립스(NeurIPS,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오 교수는 뉴스핌 월간ANDA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AI는 도구일 뿐이다. 세상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는 일 등이 있다. AI는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거나 빠른 시간 내에 해준다. 인간이 더 빨리 일을 하게 도와주는 기구인 것”이라고 밝혔다.
챗GPT에 대해선 “불투명한 블랙박스라고 볼 수 있는 딥러닝을 이용하기 때문에 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선 인간이 개입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맞고 틀림을 확인해 줘야 한다. 또 나쁜 의도를 가진 사용자로 인해 악용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챗GPT는 대화형 AI 챗봇이다. 미국 의사면허시험을 통과하는 수준이며 로스쿨 졸업시험에서 평균 C+학점을, 와튼스쿨 MBA 기말시험에선 B학점을 받기도 했다. 오픈AI는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과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사용해 챗GPT를 만들었다. 오픈AI는 2015년 샘 알트만, 일론 머스크, 일리아 수츠케버가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인류에게 이익을 주는 것을 목표로 설립한 기관이다.
챗GPT는 한마디로 말하면 생성AI다. 과거의 AI는 기존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분류만 했다. 하지만 챗GPT는 새로운 글이나 이미지, 오디오, 동영상 등을 만들어낸다. AI가 인간의 창의적인 역할까지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2021년까지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기에 이후의 것들은 처리하지 못한다.
오 교수는 “급속한 AI의 발전을 가지고 온 딥러닝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지 1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발전이 이뤄졌다. 챗GPT의 경우도 기술적으로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챗GPT와 같은 언어 모델은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또 여기에서 인간이 해줘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고 했다.
챗GPT가 네이버나 다음 등의 플랫폼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선 “함께 발전할 것이다. 구글, 네이버 등 각 기업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아직은 다음 세상을 단언하기엔 이르다”며 말을 아꼈다.
오 교수는 최근 흥미로운 연구를 하기도 했다. 정부 담당기관이 20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 조선왕조실록을 현대 표준어로 번역했다. 그가 조경현 뉴욕대 교수와 함께 머신러닝을 접목, 소요된 시간은 단 6개월이다.
최근 챗GPT의 등장과 함께 AI를 활용한 과제나 논문 대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논문 논란에 대한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공계의 경우엔 실험과 함께 결과에 대한 해석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만큼 챗GPT가 개입할 부분은 한정적”이라고 했다. 오 교수는 2017년 가짜 뉴스를 효율적으로 근절하는 알고리즘 ‘커브’를 개발한 바 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류는 바야흐로 ‘공상과학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인간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학습과 훈련이 가능한 인공지능 시대는 온다”며 “하지만 국내의 경우, 이공계 지원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AI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대학 정원도 적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개발된 챗GPT와 한국의 기술 격차를 묻는 질문엔 “언어 모델의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차이는 없다고 본다. 다만 데이터의 차이다. 국내에서만 쓰는 한글에 비해 영어를 쓰는 전 세계 인구는 많다. 최소 10배다. 이 데이터의 차이가 간극을 만든다. 메타의 격차가 나게 된다”고 했다.
오 교수는 “챗GPT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언어 모델이다. 아직 물리적 세계에 대한 이해도 없고 한계가 많다. 하지만 계속 성장할 것이다. 다음 단계는 인간과 유사한 ‘휴먼 레벨 인텔리전스’다. 챗GPT와 같은 언어 모델의 학습 방법, 데이터, 결과에 대한 검증 등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에 나온 챗GPT는 2개월여 만에 월간활성이용자(MAU)가 1억명을 넘어서는 등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은 오픈AI는 언어 모델인 GPT-3.5, 이미지 생성 AI 달리2(Dall-E2), 기계학습 모델 코덱스(Codex) 등을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에 적용한 ‘애저 오픈AI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2023년 03월호
더 내고 얼마 받을까…40% vs 50% 소득대체율 쟁점
소득대체율 40%→10%p 인상 여부 난항
정년연장·연금통합 등 구조개혁 동반돼야
| 이경화 기자 kh99@newspim.com
노후 사각지대 해소와 재정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5%까지 단계적으로 올리는 국민연금 개혁안에 전문가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소속 민간자문위원회는 보험료율을 올려 ‘더 내는’ 방향성에는 공감대를 이뤘다. 다만 소득대체율을 기존 40%에서 50%까지 높여 국민연금을 ‘더 받는’ 방안은 막판 쟁점으로 남겨두고 있다.
보험료율 9%→15% 인상 추진
전문가들 사이에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보험료율을 두고 소득보장강화론과 재정안정강화론이 맞붙었다. 기금 고갈 예측 시점이 2년 더 앞당겨지면서 보험료율을 올려 ‘더 내는’ 쪽으로 개혁의 밑그림은 그려졌다.
자문위원들이 제시한 안 중 가장 유력한 안은 두 가지다. 민간자문위에 따르면 최근 회의에서는 보험료율을 15%로 올리되 소득보장 강화를 위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는 것과, 재정안정 강화를 위해 보험료율은 15%로 올리되 소득대체율을 현재와 같이 40%로 유지하는 안이 제시됐다.
두 안을 두고 충돌하자 막판에는 보험료율 15% 인상에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는 중재안도 나왔지만 현저한 견해차를 확인했다.
노후 소득보장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5% 대비 2.9배 높고, 노인 소득 중 국민연금·기초연금·복지급여 등 공적이전소득의 비중은 2020년 기준 25.51%에 불과하다”며 “노인빈곤율이 비교적 높은 일본·호주에 비해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재정안정론자들은 “보험료 인상 효과는 단기 모르핀 효과로 금방 나타나지만 소득대체율 인상 영향은 70~100년에 걸쳐 천천히 나타난다”며 “소득대체율 인상 시 부과방식 전환이 불가피하고 2093년엔 재정 상황이 현재보다 더 악화돼 올해 기준 6%인 부과방식 비용률이 2078년 35%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봤다.
소득대체율 인상만으론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안서연 국민연금공단 연구원은 “국민연금 수급액은 미래 노인빈곤율 감소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되나, 절대적인 노인빈곤율 수치는 여전히 높을 것”이라며 “공적연금뿐 아니라 공공부조·기초연금·노동시장 정년연장 등 전반적 노후소득보장 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같은 맥락에서 65세인 연금수급연령 연장 역시 59세인 최종납부연령과의 시차, 즉 소득절벽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년연장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가야 한다”며 “이에 더해 은퇴 후 수급 전까지의 소득공백·복지사각 문제가 있는 만큼 지급연령을 올리는 속도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회 “모수개혁 손떼고 기초·퇴직연금 논의 먼저”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 연금특위는 개혁의 쟁점인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 등 모수개혁에 대한 3개월간의 논의를 뒤로하고 구조개혁부터 진행한다고 밝히면서 혼선을 자처했다.
기초연금·퇴직연금 등을 아우른 노후보장체계 개편을 위한 큰 틀부터 정하겠다는 결정이다. 그러나 직역연금은 국민연금과 보험료율 등 설계 자체가 다르고 가입자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긴 합의의 과정이 필요할 거란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정용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집행위원장은 “특수직역 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등 과정에서 국민 반발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지하다시피 연금개혁과 관련된 계획의 추진은 사회적 수용성이 관건이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현재의 구조로는 논의가 재개되더라도 다시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실행 가능한 연금개혁을 위해 지금이라도 국회 연금특위를 각계각층의 국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성명을 통해 “연금개혁을 위해 우리 사회 각 영역을 대표할 수 있는 조직으로 구성된 사회적 논의기구를 다시 만들고, 국민이 수용 가능한 단기적·중장기적 개혁방안을 구상하라”고 촉구했다.

2023년 02월호
월마트에 완패한 아마존, 2023년은 다를까?
시가총액 1년 새 1000조원 허공으로
월마트, 전세계 매장 1만개 상회...인프라 막강
아마존, 이커머스 강자? 인도선 월마트에 쫓겨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때 미국 아마존닷컴 주식은 한국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불과 2년 전인 2020년 말에 한국인의 해외주식 보유 순위 3위가 아마존이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2022년 말 아마존의 순위는 9위까지 내려앉았다. 보유금액 기준으로도 2조5000억원(21억달러)에서 1조1000억원(9억달러)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어찌 된 일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실망스러운 주가 탓이다. 2022년은 미국 나스닥 지수의 폭락으로 빅테크 종목들도 크게 조정받았지만 그중에서도 아마존의 대폭락은 눈에 띈다. -50%로 딱 반토막이다. 문제는 증시가 활황이었던 2021년에도 다른 빅테크 주식들이 폭등할 때 아마존의 수익률은 고작 2%에 불과했다. 아마존에 2년간 장기 투자한 사람들은 지금 분노하며 아마존의 장기 성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마존과 월마트의 2022년 1년간의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극명하게 희비가 엇갈렸다. 아마존 주가는 -50%로 반토막이지만 월마트는 어려운 증시 환경 속에서도 보합으로 한 해를 마감했다. 특히 아마존이 충격적인 3분기 실적을 발표한 2022년 10월을 기점으로 아마존과 월마트의 주가는 크게 엇갈렸다. 수익률로 보자면 아마존의 완패다.
아마존 주가 부진의 원인은 뭘까? 온라인 사업은 오프라인 사업보다 우월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선입견은 사실일까? 만약 아마존의 이커머스 경쟁력이 정말로 우월하다면 오프라인 매장의 대표 격인 월마트 주가가 더 좋았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돈은 냉정하다. 2022년에 투자자들은 아마존보다 월마트의 우세에 베팅했다.
2021년 말에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2000조원이 넘었으나 1년 만인 2022년 말에는 간신히 1000조원을 지켜냈다. 반면 월마트의 시가총액은 변함없이 460조원을 유지했다. 한국 정부 1년 예산의 2배에 가까운 1000조원이 1년 만에 허공으로 사라진 아마존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를 분석하기에 앞서 먼저 월마트의 변함없는 기업 경쟁력을 살펴보는 게 순서일 듯하다.
월마트는 아마존에게 만만한 회사일까?
한국은 오프라인 유통공룡인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대신 이커머스 1위 업체인 쿠팡의 기세가 엄청나다. 미국은 아마존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에서 유추해 본다면 당연히 미국 오프라인 유통공룡인 월마트의 매출액도 정체돼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그럴까?
아마존의 명성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유명세는 덜하지만 월마트 역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소매판매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월마트가 전략적으로 아마존의 명성에 숨어 실속을 챙기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미국에서 월마트는 한국의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를 합쳐 놓은 느낌이다. 그만큼 미국인들에게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미국에서 월마트를 따라갈 오프라인 소매판매기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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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의 매장 수는 5342개로 다른 경쟁사들을 압도한다. 심지어 이 매장 수는 전 세계가 아니라 단지 미국만이다. 월마트의 매장은 총 4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첫 번째로 ‘월마트 할인점(Discount Stores)’은 신선식품을 제외한 모든 제품과 생활필수품, 화장품, 의류, 전자제품, 장난감 등을 갖추고 있다. 두 번째로 ‘월마트 네이버후드 마켓(Neighborhood Market)’은 할인점에는 없는 야채, 과일, 육류 등 신선식품 코너가 구비된 것이 특징이다. 대신 전자제품은 없다. 세 번째로 ‘월마트 슈퍼센터(Supercenter)’는 ‘할인점’과 ‘네이버후드 마켓’에 있는 모든 제품을 취급하는 대형 매장이라 크기가 할인점의 2배 이상이다. 무려 3573개로 미국에서 가장 흔한 매장 형태다. 마지막으로 ‘샘스클럽(Sam’s Club)’은 창고형 할인마트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코스트코’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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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는 미국 외에도 글로벌 각지에 5251개의 매장을 추가로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매장 5342개와 합치면 총 1만593개의 압도적인 매장 수를 자랑한다. 직원 수는 미국에서 170만명, 글로벌 각 지역에서 60만명을 고용해 총 230만명이다. 미국 외에 멕시코, 캐나다, 중국, 인도, 칠레, 중앙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총 24개국에 진출해 있다.
한국의 주요 할인마트 3개사의 합계 매장 수는 405개로 월마트의 캐나다 매장 수 408개와 비슷한 규모다. 미국의 월마트 매장 수 5342개와는 비교도 안 되게 적다. 미국의 인구 수는 한국의 6배인 3억4000만명이다. 그런데 월마트의 미국 매장 수만 계산해도 한국 할인마트 3개사 매장 수의 13배에 달하니 월마트의 미국 인프라가 막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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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보면 한국의 인구밀집도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구밀집도가 현저하게 낮은 미국에서는 아마존이 한국 쿠팡보다 온라인 배송 인프라 구축에 더 불리한 환경이다. 물류비용도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아마존보다 훨씬 먼저 미국 전역에 촘촘히 오프라인 매장망을 구축한 월마트의 인프라 경쟁력을 아마존이 쉽게 뛰어넘기 어렵다는 점도 체크 포인트다.
월마트의 매출액은 얼마나 될까? 2019년 624조원(5199억달러), 2020년 666조원(5552억달러), 2021년 681조원(5678억달러)으로 큰 변화는 없다. 절대금액은 크지만 성장률은 정체 중이다. 2019년 2%, 2020년 7%, 2021년 2%의 소소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아마존의 눈부신 매출 성장률에 비하면 인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미국 온라인 쇼핑의 성장으로 월마트의 매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단순한 분석이 실제 현실세계에서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간 급성장해 온 아마존의 매출액은 얼마나 될까? AWS 부문을 제외한 이커머스 중심의 2021년 아마존 매출액은 489조원(4076억달러)으로 월마트의 2021년(2022 회계연도) 매출액 681조원(5678억달러)보다 고작 192조원 부족할 뿐이다. 이런 속도라면 몇 년 안에 충분히 매출액 역전이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신기한 건 아마존의 매출액은 급성장하고 있는 데 비해 영업이익은 상당히 부진하다는 점이다. 먼저 월마트의 영업이익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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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의 영업이익은 2019년 25조원(206억달러), 2020년 27조원(225억달러), 2021년 31조원(259억달러)으로 매년 큰 폭 증가해 왔다. 2019년에는 연간 성장률이 -6%로 부진했지만 2020년에는 9%, 2021년에는 무려 15% 급증하며 알차게 영업을 잘해 왔다. 2021년의 매출액 증가율이 고작 2%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같은 기간 영업이익 성장률 15%는 기대 이상이다.
월마트는 2021년(2022 회계연도)에 31조원(259억달러)의 영업이익을 달성했고 같은 기간 아마존은 30조원(249억달러)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수치로만 보면 아마존의 영업이익도 양호해 보인다. 하지만 아마존 영업이익 중 전체 비중의 74%인 22조원(185억달러)이 AWS(아마존웹서비스) 부문에서 발생했고 이를 제외한 이커머스 중심의 나머지 사업부문 영업이익은 전체 비중의 26%인 8조원(63억달러)에 불과하다. 수익구조가 심하게 불균형하다는 게 문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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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의 2022년(2023 회계연도) 분기별 매출액은 1, 2, 3분기에 연속으로 6~9%대의 안정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1, 2, 3분기에 연속으로 6조원, 8조원, 3조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월마트의 영업이익 성장률은 1분기 -23%, 2분기 -7%, 3분기 -54%로 심각하게 악화된 모습을 보였다. 2022년에 미국 소매판매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월마트의 이 부진한 수치는 아마존에 비하면 상당히 우수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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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AWS 부문 실적을 제외한 이커머스 중심의 2022년 분기별 매출액 증가율은 전년도보다 크게 낮다. 1분기와 2분기에는 3%, 3분기에는 13% 증가율에 그쳤다. 더 충격적인 건 영업이익이다. 3분기 연속 -3조원씩의 적자를 기록했다. 누적 적자가 무려 -9조원(81억달러)이다. 회사 이름을 감추고 재무제표만 보면 아마존이 아니라 우버나 에어비앤비같이 아직 손익분기점을 달성 못하고 성장을 목표로 계속 달리고 있는 회사의 재무제표가 아닌지 착각할 정도다.
이 엄중한 결과가 바로 2022년의 현격한 주가차이다. 월마트 주식은 어려운 증시 상황에서 보합을 유지했지만 아마존 주식은 무려 -50% 폭락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월마트는 지금의 주가 강세에 만족하고 아마존 뒤에 숨어서 현재의 상황을 즐기고 있을까? 아니면 뒤에서 칼을 갈며 아마존과의 한판 승부를 준비하고 있을까? 월마트가 아마존과 싸우려면 이커머스 시장을 포기해선 안 된다. 월마트의 이커머스 핵심 전략을 살펴보자.
월마트 이커머스 핵심 전략은 옴니채널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 추정치에 따르면 2022년 6월 말 기준 미국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아마존이 37.8%로 1위, 월마트가 6.3%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와 2위의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월마트 입장에서 고무적인 건 3위인 애플의 점유율이 3.9%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월마트의 대표적인 이커머스 핵심 전략 중 하나는 ‘월마트플러스’ 멤버십이다. 이는 ‘아마존프라임’과 유사한 멤버십 서비스다. 당연히 무료배송은 기본이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처럼 ‘파라마운트 플러스’도 이용 가능하다. ‘월마트플러스’의 연간 요금은 98달러로 ‘아마존프라임’의 139달러보다 30%(41달러) 저렴하다. 가격이 저렴한 것 외에 월마트플러스 멤버십이 아마존프라임보다 우수한 부분은 뭘까?
바로 ‘옴니채널(Omni-Channel)’이다. 옴니채널이란 소비자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어떤 채널이든 자유롭게 넘나들며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쇼핑 환경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시작한 ‘CJ올리브영’이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 시 인근 매장에서 당일 배송해 주는 ‘오늘드림’을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월마트는 온라인으로 주문 후 당일에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객이 직접 픽업하는 옴니채널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드라이브 스루(자동차에 탄 채로 픽업)의 인기가 높다. 미국 전역에 촘촘하게 53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건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최대 강점이다. 온라인으로 주문 후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객이 직접 픽업하는 이 황당한 시스템은 쿠팡의 당일배송이 버티고 있는 한국에서는 크게 욕 먹을 시스템이다.
하지만 국토가 한국보다 99배 큰 미국에서는 일부 지역만 당일배송이 가능하고 2일 배송이 일반적이라 의외로 이 전략이 통하고 있다. 월마트는 특히 신선식품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아마존은 월마트를 추격하기 위해 ‘홀푸드마켓’을 16조원(137억달러)에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여전히 신선식품 시장 점유율 격차는 상당하다. 또 월마트의 상품들도 아마존처럼 온라인으로 주문 후 당일이나 2일 이내에 배송받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에서 월마트의 인기를 보여주는 또 다른 의외의 결과가 있다. 2022년 11월의 블랙프라이데이 할인행사에서 온라인 검색횟수 1위는 아마존이 아니라 월마트였다는 점이다. 의외로 미국 내에서 월마트의 브랜드 경쟁력은 생각보다 탄탄하다. 월마트는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추가로 5200여 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갖춘 세계 최대 소매판매 회사다.
월마트가 이커머스 분야에서 이 정도라도 아마존과 경쟁할 수 있었던 원천은 2016년에 아마존킬러로 불렸던 제트닷컴을 약 4조원(33억달러)이라는 비싼 가격에 과감히 인수한 영향이 컸다. 인수 초기에는 실패한 전략이라는 전문가들의 혹평이 많았다. 현재 제트닷컴 사이트는 없어졌지만 제트닷컴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월마트는 미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결국 오프라인 매장에 강점이 있는 월마트는 온라인 분야로 사업을 확장 중이고, 온라인에 강점이 있는 아마존은 신선식품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으로 진출 중이다.
2014년부터 월마트 CEO를 맡고 있는 더그 맥밀런은 현격한 격차에도 불구하고 아마존과의 이커머스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존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최첨단 대규모 풀필먼트 센터를 인디애나, 텍사스, 펜실베이니아에 추가로 신축할 계획이다. 월마트는 2023 회계연도 3분기(2022년 8~10월) 실적 발표 때 “월마트의 이커머스 침투율이 총 매출액의 13%까지 늘어났다”고 자랑하며 “이커머스 침투율이 이미 20%에 달하는 월마트 인터내셔널이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에서 아마존 괴롭히는 월마트? 글로벌도 강해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아마존이지만 월마트에 밀려 크게 고전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어느 나라일까? 곧 기존의 인구대국인 중국을 제치고 새로운 세계 1위를 예약한 14억 인구대국 인도다. 월마트가 미국 시장과 다르게 인도 이커머스 시장에서 아마존과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바로 치열한 인수합병(M&A) 전쟁의 성공 덕분이다.
월마트는 인도에서 아마존과의 물밑 경쟁 끝에 2018년 5월에 인도의 대표적 이커머스 업체인 ‘플립카트’를 전격 인수했다. 19조2000억원(160억달러)에 플립카트 지분 77%를 가져오는 조건이었다. 그 당시에는 인수금액이 비싸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월마트 입장에서 이 M&A는 대성공이었다. 고작 20조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14억 인구대국 인도의 이커머스 시장에 주역으로 진입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 인수 성공으로 최소한 인도에서만큼은 월마트가 아마존에 비해 이커머스 경쟁력이 낮다는 선입견은 완전히 사라졌다. 플립카트는 월마트에 인수된 뒤 인도에서 승승장구 중이다. 월마트는 플립카트 기업가치를 약 84조원(700억달러)으로 평가해 2023년에 미국 증시에서 기업공개(IPO)를 할 예정이나 최근의 증시 부진으로 일정이 늦어질 수도 있다.
인도의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 현지 업계 추정치는 2021년 기준 약 68조원(570억달러)이다. 한국의 187조원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미래의 잠재력은 미국까지 뛰어넘을 기세다. 그렇다면 업계 1위인 ‘아마존 인디아’와 2위인 ‘플립카트’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업계 추정치는 ‘아마존 인디아’ 점유율을 약 45%, 플립카트의 점유율을 약 40%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아마존 인디아’를 긴장시키는 발표가 있었다. 전략컨설팅 업체 ‘레드시어’가 인도 최대 쇼핑 시즌인 ‘2022년 디왈리 축제’ 첫 주의 이커머스 총거래액(GMV) 추정 결과 ‘플립카트’가 67%, ‘아마존 인디아’가 26%의 점유율을 보였다고 발표한 것이다. 2022년 10월에 이 발표가 나오자마자 ‘아마존 인디아’는 불확실한 추측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어쨌든 일시적인 이벤트성 축제라 할지라도 ‘플립카트’의 점유율이 현격하게 높게 추정된 결과로 볼 때 인도에서의 ‘플립카트’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마존은 인도에서 월마트가 인수한 ‘플립카트’와 치열한 경쟁 중이다. 인도에서 아마존을 괴롭히는 건 월마트뿐이 아니다. 또 다른 걸림돌은 바로 인도 정부다. 외국 기업인 아마존과 월마트가 인도에서 활개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도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반독점 조사, 외국인투자법 준수 조사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아마존 인디아’와 ‘플립카트’의 점유율이 워낙 높아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월마트 인터내셔널’ 주력은 멕시코·중국서도 두각
중국은 글로벌 유통업체의 무덤으로 불리는 악명 높은 시장이다. 한국의 롯데마트와 이마트는 고전 끝에 진작에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월마트도 450여 개에 달했던 매장 중 약 100여 개를 철수했다. 하지만 월마트의 자회사인 창고형 할인매장 ‘샘스클럽’은 여전히 중국에서 선전하고 있다.
샘스클럽은 중국에서 현재 4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샘스클럽이 중국에서 통하는 이유는 회원제 창고형 매장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회원제 매장의 주요 소비층이 극소수의 엘리트와 상류층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창고형 할인매장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일반 대중의 회원 가입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일반 연회비는 260위안(4만7000원), 엘리트 연회비는 680위안(12만2000원)이다.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연회원 수가 이미 400만명을 돌파했다. 월마트는 2023 회계연도 3분기(2022년 8~10월) 실적 발표 때 “중국 사업의 이커머스 매출 성장률이 63%였고, 매출액 대비 이커머스 침투율도 무려 41%에 달했다”고 밝혔다.
참고로 중국 전체의 이커머스 침투율은 21% 수준으로 월마트 실적의 절반에 불과하다. 물론 아마존도 오래전인 2004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계속 영업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이커머스 시장은 이미 알리바바나 징둥닷컴이 장악하고 있다. 아마존의 중국 시장 존재감은 월마트와 달리 미미하다. 대신 또 다른 아시아 주요 시장인 일본에서는 아마존이 점유율 1위를 달성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대로 월마트 인터내셔널은 최근 일본 시장에서 철수를 단행했다.
월마트 인터내셔널이 사업을 영위하는 글로벌 23개 국가 중 핵심 전략지는 어디일까? 바로 멕시코다. 멕시코에는 월마트 관련 매장 2589개와 샘스클럽 166개를 합쳐 모두 2755개로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붙어 있는 멕시코에서 월마트의 시장점유율은 약 21%로 압도적이다. 이커머스 시장만 떼놓고 보면 1위인 ‘메르카도리브레’ 점유율이 14%, 2위인 아마존이 12%, 3위인 월마트가 9%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2023년의 경기 침체가 월마트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도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런 경기 침체는 월마트 주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22년(2023 회계연도)의 월마트 3분기(8~10월) 실적을 살펴보면 월마트 매출액은 8.8% 증가했지만 또 다른 미국 오프라인 유통기업인 타겟의 3분기 매출액은 직전분기 대비 1.8% 증가에 그쳤다.
이 두 기업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월마트는 식료품과 생필품 등 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필수소비재 판매 비중이 50%를 훌쩍 넘는다. 반면 타겟은 의류, 전자제품, 완구 등 필수적이지 않은 소비재들을 더 많이 판매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인플레이션이나 경기 침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런 이유로 타겟보다는 월마트가 실적 방어에 훨씬 더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다.
월마트가 새롭게 선보인 유료 멤버십 ‘월마트 플러스’도 고객 확장의 원동력이다. 월마트 고객은 연간 98달러의 플러스 구독료를 지불하면 당일배송과 무료배송, 헬스케어 처방전 제공, 주유비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린다. 현재 월마트 플러스 멤버십의 인기가 지속되며 고객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 월마트의 광고 사업과 풀필먼트 사업 강화도 긍정적이다.
월마트는 대표적인 경기방어주이자 내수주다. 지금같이 빅테크주로 대표되는 고성장주들이 흔들릴 때는 방어적인 투자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경기방어주의 성격상 드라마틱한 큰 폭 상승은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공격적인 투자자라면 작년에 낙폭이 컸던 대형 우량주를 노리는 전략이 더 본인의 스타일에 맞을 수 있다.
아마존은 소매시장에서 월마트를 이길 수 있을까?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 베조스의 위대함을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플라이휠’이다. 냅킨에 플라이휠 구조를 그렸다는 전설적인 일화는 유통업 종사자들에게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는 좀 더 냉정해져야 한다. 아마존은 도대체 점유율을 얼마만큼 더 늘려야 이커머스 분야에서 제대로 된 이익을 낼 수 있는 걸까? 40%나 되는 높은 이커머스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 적자가 지속되니 점점 더 의심이 커진다. 특히 다른 빅테크 기업들의 영업이익과 비교해 보면 유독 아마존의 영업이익이 시가총액 대비 크게 낮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22년에는 액면분할로 주가를 부양해 주주들을 위로해 보려 했지만 저조한 실적 탓에 별 효과가 없었다. 이제 주주들은 어떻게 위로받아야 할까? 가장 중요한 의문은 아마존은 궁극적으로 AWS(아마존웹서비스)를 제외하고 리테일 소매판매시장에서 월마트를 이길 수 있을까? 수많은 투자자들이 이커머스 분야의 압도적 매출액 성장률을 근거로 아마존이 결국 미국 소매판매시장에서 승리할 거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2022년의 아마존 실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매출액으로는 언젠가 월마트를 뛰어넘을지 몰라도 과연 영업이익률에서도 월마트를 추월하는 게 가능할까? 1994년에 창업한 아마존은 29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전통의 기업이다. 창업한 지 이제 10~15년 남짓한 에어비앤비, 우버가 이익을 못 내는 것과는 상황이 질적으로 다르다. 아마존의 계획된 적자라는 주장은 이제 유효기간이 지났다.
어쩌면 2019~2021년까지 아마존 이커머스 분야의 폭발적 매출액 성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이례적인 성장이었는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아마존에게는 아직 고난의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 수 있다. 클라우드마저 받쳐주지 않는다면 아마존의 부진은 2023년에도 계속될 수 있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 가장 큰 호재는 바로 낙폭 과대다. 반토막이 난 아마존 주가가 가장 강력한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아마존 주식 투자자들은 지금 엄청난 평가손실을 기록 중이다. 2022년에 아마존과 월마트의 주식 수익률 대결은 월마트 투자자들의 대승으로 마감됐다. 이제 아마존 투자자들은 아마존이 AWS 외에 이커머스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이익을 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마존의 부진한 이커머스 수익성은 과연 언제까지 용서받을 수 있을까?

2023년 02월호
[아마존 vs 월마트] 아마존, 이커머스 적자 대행진의 끝은?
아마존 3분기 연속 적자 충격
미국 땅 한국의 99배...물류비용 등 눈덩이
3자판매·광고매출 증대 등 속도전 주목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아주 오래전부터 위대한 기업 아마존에 대한 평가는 찬사와 칭찬 일색이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인 ‘플라이휠’은 ‘처음에 가동하기는 힘들지만 계속 돌리다 보면 관성에 의해 저절로 계속 돌아가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아마존의 주주서한에도 매번 자랑처럼 즐겨 사용된다. 그런데 궁금증이 든다. 지금도 아마존 이커머스 분야는 정말 ‘플라이휠’처럼 계속 자동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 게 맞을까?
충격적인 이커머스 부문 적자 전환
미국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40%가 넘는 아마존은 왜 아직도 이커머스 사업에서 의미 있는 이익을 내지 못하고 2022년에는 오히려 적자 전환한 걸까? 아마존은 한참 동생 격인 우버, 에어비앤비처럼 아직 이익을 못 내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기업이 아니다. 이제 설립한 지 29년이 지난 빅테크 기업이다.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전년 대비 반토막 났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말 기준 여전히 1000조원(8600억달러)이다. 반면 아마존 투자자들이 은근히 무시하는 오프라인 소매판매 1위 업체인 월마트의 시가총액은 460조원(3800억달러)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아마존의 미래 성장성을 굳게 믿고 있는 주식분석가들 중 일부는 아마존이 AWS(아마존웹서비스)에서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으므로 아마존 이커머스에서는 아직 이익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투자를 더 늘려 경쟁사들을 압도하는 게 중요하다는 아마존 경영진의 주장과 의견을 같이한다. 하지만 1년 만에 주가가 50% 폭락해 예민해진 아마존 투자자들 중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세계 1위의 이커머스 기업이다. 그런데 설마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이커머스 분야에서는 영원히 이익을 내지 않을 생각으로 아마존을 창업한 것일까? 제프 베조스의 최초 계획에는 지금 아마존 수익의 대부분을 만들어 주고 있는 AWS 사업 모델이 아예 없었다. 냉정히 평가하자면 AWS는 우연히 얻어걸린 사업일 뿐이다.
세상에는 훌륭한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훌륭한 기업들의 주가 수익률까지 늘 훌륭했던 건 아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위대한 기업보다 향후 투자수익률이 더 좋을 기업에 투자하기를 원한다. 투자자는 위대한 기업보다 내 주식계좌를 풍성하게 해줄 기업을 원한다. 아마존은 과연 미래에 돈을 벌어줄 기업인가?
아마존의 전체 매출은 2020년에 코로나19 특수로 인해 무려 38%라는 어마어마한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아마존 같은 거대기업의 연간 매출액이 38% 성장했으니 이 당시 아마존 투자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커머스와 AWS 양쪽에서 고르게 경이적인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그 다음해인 2021년에도 22%라는 고성장을 보이며 매출액이 564조원(3140억달러)을 달성한 점은 투자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마존의 지역별 매출을 살펴보면 미국 비중이 67%로 여전히 높지만 미국 외 글로벌 비중도 전체 매출액의 3분의 1인 33%를 차지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아마존은 미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13억 인구대국인 중국은 뚫지 못했지만 유럽을 이끄는 독일과 영국에서 점유율 1, 2위를 다투며 상당한 매출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시아 쪽은 일본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이커머스 부문 실적만 따로 떼놓고 보면 어떨까? 아마존의 핵심 원천인 이커머스 사업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최고의 효자 사업인 AWS 부문의 실적을 제외하고 아마존 매출액을 다시 계산해 봐도 2019년 295조원(2455억달러), 2020년 409조원(3407억달러), 2021년 489조원(4076억달러)으로 훌륭하다. 매출액 성장률은 2019년 18%, 2020년 39%, 2021년 20%라는 경이적인 성장속도를 보여 왔다.
반면 AWS를 제외한 영업이익 규모는 눈부신 매출액 성장세와 달리 부진했다. 2019년에 6조원(53억달러)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이 2020년에 무려 77% 급증한 11조원(94억달러)을 기록했을 때만 해도 투자자들은 드디어 아마존이 이커머스 부문에서도 제대로 수익을 낸다며 환호했다. 하지만 2021년에는 전년 대비 -32% 감소한 8조원(64억달러)의 실망스러운 실적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투자자들은 아마존 이커머스 부문의 이익창출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혹시 아마존은 구조적으로 이커머스 부문에서는 큰 수익을 낼 수 없는 게 아닐까? 2021년에 매출액은 20% 급증했음에도 영업이익이 -32% 감소했다는 사실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마존의 2021년 AWS 부문을 제외한 영업이익률은 고작 1.6%에 불과하다. 반면 월마트의 2021년(2022 회계연도) 영업이익률은 4.6%로 아마존의 3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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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부진한 아마존 실적은 코로나19 전염병과 엔데믹이라는 변수 때문에 발생한 특이한 결과인 걸까? 이 결과가 2022년에는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2021년에는 소폭이라도 흑자를 달성했지만 2022년에는 아예 적자로 전환했다. AWS 실적을 제외한 아마존의 1분기 영업적자는 -3조원이다.
2분기와 3분기에도 연속으로 -3조원의 영업적자를 지속했다. AWS 실적을 제외한 아마존 매출액도 1분기와 2분기에 3% 남짓한 부진한 성장률을 보였다. 3분기 들어서면서 13%라는 두 자릿수 성장을 달성했지만 아마존의 명성에 비하면 부진한 성장률이다. 특히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 적자폭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실망감을 넘어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 땅 한국의 99배...아마존이 더 불리
이제 아마존 이커머스 부문의 기본적인 경쟁력을 살펴보자. 아마존의 지역별 매출액 비중은 미국이 67%, 글로벌이 33%다. 이 매출 분류에는 이커머스뿐 아니라 AWS도 포함돼 있다. 어쨌든 미국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런데 미국의 넓은 국토는 이커머스 사업자 입장에서는 장점일까, 아니면 단점일까?
한국 땅의 65% 이상은 산지다. 따라서 평지는 35%에 불과하다. 한국은 5160만명의 인구 중 70%가 도심에 몰려 있는 형태다. 반면 미국 땅은 한국보다 99배 넓다. 미국 인구는 3억4000만명으로 한국의 7배에 달해 인구밀도가 한국보다 훨씬 낮다.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다면 이커머스 사업을 영위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유리하다. 물류비용과 물류센터 건립비용이 훨씬 절약되기 때문이다. 대신 경쟁사도 손쉽게 진입이 가능해 경쟁이 치열한 게 약점이다.
반면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고 사람들이 여러 지역에 넓게 흩어져서 살아간다면 물류비용과 물류센터 건립비용이 훨씬 비싸질 수밖에 없다. 미국 각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는 아파트 거주로 촘촘히 밀집돼 있는 한국보다 훨씬 적다. 따라서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전달하는 최종 단계인 라스트 마일 구간에서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국보다 배송 비용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의 높은 인건비, 낮은 인구밀집도로 인한 비효율적 배송 동선, 긴 배송거리로 인한 높은 유류비와 물류비용은 단점으로 작용된다. 대신 미국은 경쟁사가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게 장점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미국 전역에 이미 5300개가 넘는 오프라인 매장을 가지고 있는 월마트의 매출증가세가 왜 꺾이지 않고 계속 증가하는지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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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온라인쇼핑 침투율 격차는 상당하다. 한국의 전체 소매판매액은 551조원, 미국은 15배인 8520조원(7조1000억달러)이다. 반면 온라인쇼핑 침투율은 한국이 37%인 데 비해 미국은 아직 15% 수준이다. 한국은 IT 강국답게 온라인쇼핑 침투율이 전 세계 1위다. 미국과의 격차가 2배 이상 벌어진 이유는 지리적 조건과 인구밀집도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선식품 배송과 관련한 미국의 사업환경은 한국보다 현저히 불리하다. 이런 이유로 아마존이 미국의 신선식품 시장을 열심히 공략하고 있음에도 월마트의 압도적인 신선식품 시장 점유율을 별로 뺏어 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온라인 사업자에게 불리한 사업환경으로 볼 때 아마존의 경쟁사인 월마트의 높은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존이 택배도 한다고?
아마존 이커머스 사업의 가장 큰 장애물은 넓은 국토면적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물류비용이다. 아마존은 물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마존도 사업 초기에는 미국의 메이저 택배회사들에게 택배물량을 전량 위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최종 배송 단계인 라스트 마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또 택배업을 직접 운영하는 게 비용 절감에도 유리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자회사인 아마존 로지스틱스 택배회사를 만들어 직접 택배를 처리하는 물량을 점점 늘려 나가고 있다. 아마존 택배는 수만 대에 달하는 화물 밴이 상징적이다. 최근에는 리비안의 전기 밴도 도입했다. 원래 미국에서 유명한 택배회사는 페덱스와 UPS다. 하지만 머지않아 아마존 로지스틱스가 이들을 뛰어넘을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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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 전문가들은 미래에 아마존 로지스틱스가 택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도 이미 아마존 로지스틱스의 물량 기준 점유율은 페덱스를 제치고 3위다. 아마존 이커머스 판매물량의 자체 배송 비율은 이제 65%를 넘어 70%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에 아마존의 물량을 받아 왔던 UPS와 페덱스의 고민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아마존의 전략을 따라 하는 한국의 쿠팡도 자회사인 쿠팡 로지스틱스의 직접 택배 물량 규모를 늘리면서 쿠팡의 위탁물량을 받아 온 한진택배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아마존 로지스틱스의 경쟁력이 높아질수록 이커머스 분야의 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아마존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아마존의 운송에 대한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항공운송도 직접 하기 위해 2016년에는 ‘아마존 에어’라는 화물항공사를 설립했다. 현재 약 100여 대의 항공기를 보유하며 항공배송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제 아마존의 독자적인 물류경쟁력을 의심하는 경쟁사들은 없다. 오히려 큰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아마존이 이커머스 분야에서 물류비용을 줄여 나가고 있는 부분은 긍정적이다.
아마존의 풀필먼트 서비스 경쟁력은?
풀필먼트 서비스가 뭘까? 물류업체가 판매자 대신 주문에 맞춰 제품을 선택하고 포장한 뒤 배송까지 마치는 방식이다. 주문한 상품이 물류창고를 거쳐 고객에게 배송 완료되기까지의 전 과정(판매 상품의 입고, 보관, 선별, 포장, 배송, 교환·환불서비스 제공 등)을 토탈 서비스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미국 아마존이 제공하는 FBA(Fulfillment By Amazon) 서비스가 유명하다.
아마존은 미국에서만 240여 개의 풀필먼트 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일반인이 ‘아마존 풀필먼트 센터’를 보고 연상되는 단어는 대형화, 자동화, 로봇이다. 아마존은 지속적으로 미국 곳곳에 계속해서 풀필먼트 센터를 새로 짓고 있고 자동화와 로봇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아마존의 직배송 물량을 모두 해결했다. 그런데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마존의 고용인력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계속 증가하는 걸까? 아마존 풀필먼트 센터는 부분적으로는 기계와 로봇으로 자동화됐지만 근본적으로 여전히 수십만 명의 사람 노동력에 의존하는 구조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화와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우려했지만 여전히 아마존 풀필먼트 센터는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구인난의 영향 중 하나는 악명 높은 작업환경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자동화의 효율성 증가 속도보다 매출액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해 왔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매년 풀필먼트 센터의 자동화와 로봇 기술력이 진화되고 있다고 자랑해 왔다.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 중인 선반 로봇 키바 외에도 최근에는 스패로우라는 로봇팔을 새로 선보였지만 여전히 풀필먼트 센터에서 일할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건 아이러니다.
이제 투자자들이 원하는 건 더 이상 로봇 자랑이 아니다. 자동화로 인해 풀필먼트 센터의 비용이 줄어들어 영업이익 흑자가 대폭 증가했다는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자동화와 로봇의 기술력이 얼마나 더 진화해야만 비용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수익성이 증가하는지 무척 궁금해하고 있다.
아마존 마켓플레이스와 광고매출의 성장
아마존의 풀필먼트 센터는 자동화 효율과 관련된 일부의 비난과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경쟁사를 압도하는 아마존만의 강력한 인프라다. 이 풀필먼트 센터 덕분에 아마존은 자사의 직매입 상품 판매 외에도 ‘아마존 마켓플레이스’라는 오픈마켓을 통해 3자판매자(셀러)와 전 세계 소비자를 연결하는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최초 아마존의 이커머스 구조는 아마존이 직접 대량으로 상품을 매수해 고객에게 직배송하는 단순한 구조였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규모의 경제 달성과 폭발적인 매출 증가를 이뤄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추가로 전 세계 셀러(3자판매자)들이 아마존 ‘마켓플레이스’라는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물건을 팔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국의 오픈마켓 사업자인 11번가나 옥션의 사업구조도 유사하다.
초기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이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 ‘마켓플레이스’가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게 바로 FBA(풀필먼트 바이 아마존)다. FBA를 통해 상품 판매의 전 과정(판매 상품의 입고, 보관, 선별, 포장, 배송, 교환·환불서비스 제공 등)을 토탈 서비스로 제공해 셀러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 성공의 결과로 아마존의 전체 매출에서 ‘3자판매 서비스’의 비중은 20%를 돌파했다. 3자판매의 경우 수수료만 매출로 인식되므로 실제 매출 비중은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선순환적인 결과로 풀필먼트 센터의 초기 고정비용은 전 세계의 다양한 셀러들을 아마존 마켓플레이스로 끌어들임으로써 쉽게 회수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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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이커머스 분야의 또 다른 성장 동력으로 광고서비스 매출을 꼽을 수 있다. 아마존의 광고서비스 매출은 2020년에 24조원(198억달러), 2021년에 37조원(312억달러)을 기록하며 2년 연속 각각 57%와 58% 급성장했다. 2022년 3분기까지의 누적매출액은 31조원(262억달러)으로 성장률이 22%로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훌륭하다.
아마존의 광고서비스 매출이 급성장하는 이유는 뭘까? 첫 번째 이유는 애플과 구글의 개인보호정책 반사이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아마존이 높은 광고효율을 보여 광고주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물건을 사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아마존이나 쿠팡 사이트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물건을 구매하려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오픈마켓 판매자들의 경우 아마존 사이트에 자신들의 물건을 광고해 대량으로 판매하고 싶은 니즈가 강하다.
광고 매출이 수익의 대부분인 메타플랫폼즈(페이스북)는 2022년 3분기까지의 누적매출액이 아마존 광고매출액의 3배가 넘는 101조원(844억달러)을 기록했지만 성장률은 0%였다. 상대적으로 아마존 광고 매출이 고성장 중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라면 메타플랫폼즈와 아마존의 광고매출 격차가 점점 더 좁혀질 수 있다. 하지만 아마존 전체 매출에서 광고매출 비중은 아직 7%에 불과해 다른 사업 부문에 비해 미미하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 수는 힘의 원천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은 아마존의 유료구독 모델이다.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2021년 4월에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가 전 세계적으로 2억명 이상”이라고 자랑했다. 그러고 나서 1년도 안 된 2022년 2월에 아마존프라임 멤버십 연회비를 119달러에서 139달러로 17% 인상했다. 아마존의 이런 자신감은 그만큼 아마존프라임 가입자들의 충성도가 높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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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구독 서비스의 매출액은 2020년에 30조원(252억달러), 2021년에 38조원(318억달러)을 기록해 각각 31%, 26% 성장했다. 그런데 2022년 3분기 누적매출액은 31조원(260억달러)으로 10% 성장에 그쳤다. 구독료를 17% 인상했는데 매출액이 10% 성장에 그쳤다는 의미는 가격 인상으로 구독자 증가 수가 둔화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아마존프라임 회원에 가입하지 않는 고객들이 무책임해 보일 정도로 만들고 싶다”던 과거 제프 베조스의 호언장담처럼 아마존프라임의 소비자 혜택은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마존의 이커머스 사업과 관련한 여러 포인트들을 점검해 봤다. 아마존은 막대한 매출로 인해 제조회사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바잉파워를 갖췄다. 또 강력한 풀필먼트 센터의 경쟁력, 미래에 시장점유율 1위를 노리는 택배사업 경쟁력, 급성장하고 있는 3자판매 서비스, 페이스북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광고매출의 급성장, 2억명의 유료 회원 수를 자랑하는 아마존프라임 구독 서비스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아마존이 특별히 변한 건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뭘까? 바로 성장률의 둔화와 수익성의 부진이다. 절대 매출액 규모가 상당히 커진 아마존은 이제 투자자들의 높은 성장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기 사작했다. 국토가 넓은 미국에서 아마존이 과연 월마트의 강력한 오프라인 매장 인프라까지 뛰어넘고 소매판매 넘버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도 다소 의심스럽다. 또 다른 문제점은 AWS 부문 외에 뚜렷하게 성공한 신사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존이 새로운 대박 신사업을 발굴해 내지 못한다면 코로나 엔데믹 이후 평범해진 성장률을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2023년 02월호
SK·메리츠 등 대기업도 ‘KO패’ ‘주가 지킴이’ 최전선 맹활약
주주환원·배당·경영진 교체 등 적극적 행보
보유 목적 경영참여로 변경 임원 선·해임 관여
3월 주총서 소액주주·행동주의 펀드 vs 경영진 대결 예고
| 유명환 기자 ymh7536@newspim.com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이 과거의 ‘기업사냥꾼’ 이미지를 벗고 ‘주가 지킴이’로 나서고 있다. 최근 상장사들은 주주와의 상생이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진다는 인식의 확산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맞춰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고 있다. 시장은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이 과거와 달리 경영진을 존중하는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만큼 주주가치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오너 리스크와 함께 경영진이 지배구조 문제를 일으키거나 경영상 판단 착오로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에 행동주의 펀드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가 방어에 나서고 있다.
자사주 매입·소각 결정 이끌어내
최근 몇 년간 국내 행동주의 펀드와 개인투자자들이 상장사들을 상대로 주주가치 제고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맹활약을 펼치자 기업들이 앞장서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VIP자산운용이 메리츠금융지주의 배당 및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통한 주주친화 정책을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메리츠금융지주는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100%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메리츠금융지주는 배당 및 자사주 매입 소각을 포함해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의 50%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이는 기업의 최근 3개년 주주환원율 평균(지주 27.6%, 화재 39.7%, 증권 39.3%)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이 같은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3년 이상 지속할 예정이다.
메리츠금융지주를 비롯해 메리츠화재·메리츠증권 등 메리츠 3사는 지난 2021년에도 배당을 당기순이익의 10% 수준으로 낮추고 대신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골자로 한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안다자산운용은 지난해 초 SK케미칼에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일부 매각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냈다. 지난해 9월에는 SK디스커버리가 SK케미칼 주식 약 92만주를 주당 10만8000원에 공개 매수하기로 한 데 대해 “SK케미칼의 적정 주가인 25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매수 가격을 15만원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SK㈜의 2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소각 결정 뒤에는 라이프자산운용의 주주 제안이 있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BYC를 상대로 내부 거래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태광산업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막았다. 태광산업 최대주주인 이호진 전 회장이 흥국생명 대주주라는 이유로 증자에 참여하겠다는 판단에 대해 “소액주주 권리 침해”라고 지적했다.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지분이 없다.
트러스톤운용은 BYC에도 부동산 자산 공모리츠화,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배당 확대, 무상증자 등을 요구했다. 자산 수익률을 높이고, 운영상 투명성을 확보하며, 주가를 부양해 ‘소액주주 이익 사수’를 실행하라는 뜻이다. 트러스톤운용은 앞서 2021년 12월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변경하기도 했다. 임원 선·해임, 지배구조 개선에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을 떼내는 작업을 주도했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지속되면서 에스엠(SM)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에는 드림메이커엔터테인먼트, 에스엠브랜드마케팅 등 관계사들에 대한 지분을 늘리라는 의견을 냈다. 주축 사업임에도 그로부터 나오는 수혜를 충분히 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다.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 안다자산운용은 KT&G를 상대로 한국인삼공사 인적 분할, 거버넌스 재정립 등을 실행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작년 4월에는 라이프자산운용이 SK에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냈고, 실제 지난해 8월 2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소각이 결정됐다.
시장은 올해 3월 있을 정기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 펀드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주주가치 제고’를 대원칙으로 삼은 만큼 소액주주의 우군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산시장이 휘청이고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환경에서 수익을 적극적으로 높이려는 행동주의 투자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기업사냥꾼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통해 자신들의 포지션을 강화하고 있다”며 “다만 행동주의 펀드가 언제 기업사냥꾼으로 돌변할지는 늘 유념하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총수·경영진에게 주주들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전략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며 “과거와 달리 경영진을 존중하는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만큼 주주가치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3년 02월호
‘먹튀’ ‘기업사냥꾼’은 옛말 주주가치 제고·주가 견인 일등공신
과거 론스타·엘리엇 등 적대적 경영개입 이미지 탈피
토종 행동주의 펀드 앞장...주주환원 정책 개선 큰 몫
| 이윤애 기자 yunyun@newspim.com
과거에는 행동주의 펀드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비판적이었다.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을 ‘공습’으로 여겼다.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들이 국내 기업들에 대해 적대적인 경영 개입을 하다 이른바 ‘먹튀’한 사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로부터 ‘타깃’이 된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게 최대 과제였다. 실제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취약해지면서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의 한국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 이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론스타가 꼽힌다. 헤지펀드의 일종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지분을 2조1500억원 규모로 사들인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고배당, 매각대금 회수 등을 통해 4조6000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챙겨 떠났다. 여기에 더해 한국 정부의 불합리한 과세로 손해를 봤다며 지난 2012년 5조원대의 투자자 - 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는데 10년 만인 지난해 판결이 내려졌다. 결과는 한국 정부의 ‘일부 패소’.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의 ISD 중재판정부는 론스타 측의 주장 일부를 인용해 우리 정부가 2억1650만달러와 이자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국내 여론에는 또다시 ‘론스타’가 오르내리고,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경각심이 더해졌다.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반대하고, 2018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며 공격적인 경영 개입을 시도해 논란을 빚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사들인 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며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다. 이를 통해 삼성물산의 주가를 올려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고 떠나 ‘먹튀’ 논란을 낳았다. 떠나는 뒷모습도 곱지 않았다. 엘리엇은 한국 정부가 합병과 관련해 부당하게 개입해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봤다며 ISD에 중재를 신청했다. 이 건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엘리엇은 또 2018년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지분 1조500억원 규모를 매입한 후 공격적인 경영 개입에 나섰지만 이듬해 주주총회에서 패배한 후 이를 정리했다.
이 밖에도 SK는 2003년 글로벌 헤지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 개입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지난 20여 년의 기간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으로 국내 기업과 한국 경제는 많은 상처를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의 또 다른 모습에 한국 경제와 투자자들은 기대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 및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다.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에 시장도 즉각 반응한다. 행동주의 펀드가 깃발을 들고 선봉에 나서면 투자자들이 적극 환호하며 그뒤를 따르는 모습이다. 가장 대표적인 모습은 ‘주가 급등’이다. 최근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국내 은행주에 대한 본격적인 주주 행동을 시작하자 은행주의 주가가 급등했다. 얼라인은 새해 첫 영업일인 지난 1월 2일 KB금융·신한지주·하나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JB금융지주·BNK금융지주·DGB금융지주 등 국내 7개 상장 은행지주를 대상으로 공개서한을 통해 주주환원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고금리 환경에서 높은 실적을 거둔 만큼 주주들과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은행주가 큰 폭으로 상승했는데 주주환원 확대 여력이 큰 신한지주, KB금융, 하나금융지주의 주가상승폭이 크게 나타났다”며 “보통주자본비율 12% 초과분을 모두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할 경우 3개사의 연간 평균 추가 주주환원 가능 규모는 약 1조7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이를 30% 배당성향과 합산하면 총 주주환원율은 65% 수준으로 해외 은행과 유사하게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한지주는 화답하듯 자본비율 12% 초과분을 주주들에게 쓰고 배당을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서한에서 요구한 답변기일이 2월 9일인 만큼 다른 금융지주의 추가적인 결정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 얼라인은 은행들이 답변이 없거나 주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답변을 할 경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환원에 관한 주주제안을 진행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2월 트러스톤이 BYC에 대한 투자 목적을 ‘일반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 공시하자 그 당일 BYC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에스엠과 라이크기획 간의 계약 종료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9월 16일 에스엠 주가도 18% 넘게 급등했다.
또 다른 사례로 지난해 12월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해 백지화한 건도 화제가 됐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 지분의 5.80%를 보유한 행동주의 펀드다. 트러스톤은 지분 관계가 없는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은 태광산업 주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며 상법상 금지된 신용공여행위라고 주장했다. 실제 흥국생명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지분율 56.3%)과 특수관계인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태광산업은 흥국생명과 지분관계가 전혀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적대적인 경영 개입을 하다 먹튀한 행동주의 펀드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주였지만 최근에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와 과거에 비해 참여가 활발해진 투자자들이 주주가치 제고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힘을 모으는 모습”이라며 “성공 사례가 쌓이면서 향후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 펀드가 최근 활성화되는 이유는 ‘공정’과 소액주주의 권리에 주목하는 환경에 있다”며 “지난해 트러스트자산운용과 얼라인자산운용 등 일부 행동주의 펀드들이 만든 실질적인 변화가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동주의 펀드의 활성화는 기업들의 주주환원 정책 중요성을 환기하면서 한국 증시의 저평가 요인인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3년 02월호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 “일본처럼 활성화해야 국내 증시도 재평가된다”
SM에 항복 받은 얼라인, 7대 금융지주도 조준
“개인투자자 관심 높아지며 기업도 스스로 변화”
| 김준희 기자 zunii@newspim.com
| 윤창빈 사진기자 pangbin@newspim.com
“국내 주식투자 인구가 1400만명까지 늘었다. 웬만한 사람이면 한 번쯤 주식투자를 해본 시대다. 기업들도 이제 일반투자자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잇따른 승리 비결을 ‘동학개미들의 관심’으로 꼽았다. 이 대표는 “행동주의 펀드 활동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아졌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힘도 생겼다”며 “기업들이 (이전과 달리 경영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주식투자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조금만 투자에 관심을 가지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채널도 많아졌다. 개인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기업들도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에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들의 요구는 대다수 개인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기업가치 제고’, ‘주주환원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 ‘SM 저격수’로 잇단 승전보
이창환 대표가 이끄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지난해 ‘에스엠(SM) 저격수’로 주목받았다. 에스엠 보유 지분은 단 1.1%였지만 공개주주서한 발송, 주주총회 표 대결을 거치며 신임 감사 선임에 성공했다.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있던 이수만 총괄프로듀서 개인회사 라이크기획과 에스엠의 프로듀싱 계약을 조기 종료시키는 성과도 냈다.
이 대표는 “많은 관심 덕에 성과를 낼 수 있던 것”이라며 “사실 누가 봐도 이상한 문제를 지적했고 특별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지만 (주주총회 표 대결 등) 실제 행동까지 했다는 점, 주총 이후로도 바뀌지 않자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한 점 등이 먹힌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에스엠에 대한 문제 제기는 새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얼라인은 지난해 12월 에스엠에 8가지 핵심 요구사항과 4가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제안사항을 담은 비공개주주서한을 발송했다. 관계사에 대한 지배력 강화, 이사회 절반 수준으로 사외이사 확대 등을 과제로 꼽았다.
이 대표는 “에스엠은 이미 주주총회에서 한 번 패했고,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은 상황이기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주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답변이 나오면 주주총회 표 대결로 가거나 지금보다 강력한 공개 캠페인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해는 주요 은행에 대해서도 공개주주서한을 발송하며 주주 활동을 개시했다. 타깃이 된 곳은 KB·신한·하나·우리·JB·BNK·DGB금융지주 등 7개 상장사다. 얼라인은 현재 우리금융과 JB금융에만 각각 지분 1%, 14%를 보유하고 있다.
얼라인은 이들 지주사가 ‘만성 저평가’에 시달리는 이유가 비효율적인 자본배치 정책과 가시성 낮은 주주환원 정책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월 9일까지 주주환원 정책을 도입해 공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부족한 답변이 나올 경우 또 다른 방식으로 주주 활동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투자환경 변했다”...재작년 창업, 행동주의펀드 활동
얼라인은 재작년 9월 창립된 신생 헤지펀드다. 창립자인 이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를 거쳐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서 경력을 쌓았다. 오비맥주 매각과 티몬 투자, LS오토모티브 인수·매각 등에 참여했다.
이 대표는 고등학교 때 어머니의 주식투자를 도우며 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는 가치투자 동아리 ‘스누밸류(SNU VALUE)’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대표의 행동주의 펀드 활동은 학창 시절 가치주에 가졌던 관심과 현업에서 쌓은 인수합병(M&A) 경험이 합쳐지며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원래 가치보다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하면 몇 년 뒤엔 본질에 수렴한다. 미국의 가치주가 그렇다. 그런데 국내 주식은 수십 년 동안 계속 가치주에만 머물고 있다. 말로만 주식이지 주주의 법적 권리가 너무 약하다. 해외 기관투자자들도 국내 투자는 꺼린다. 이 과정을 거쳐 한국 주식은 영원히 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M&A를 할 때는 주식의 본질적인 가치가 완전히 반영된다”며 “본질 가치는 이 정도인데 상장기업이 너무 싸게 거래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은 투자전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최근 조성된 우호적 투자 환경도 행동주의 펀드 활동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개인투자자들이 많아졌고, 공정경제3법이 통과되며 3%룰이 생겼다”면서 “투자자도 늘고 정치권도 바뀌고 유튜브 채널도 활성화됐다”고 회상했다. 행동주의 펀드 활동을 시작하기에는 최적의 시점이었다.
“행동주의 펀드 활성화 필요...日 니케이 지수 참고”
향후 행동주의 펀드의 과제는 ‘상식이 통하는 자본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가치주가 영원히 저평가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 조치도 꾸준히 강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국내 시장에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없다고 말하면 외국 사람들이 놀란다”며 “애국심을 넘어 부끄러운 자존심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제도가 정상으로 변해야 경제도 좋아지고 기관도 돈을 번다”며 “행동주의 펀드 활동으로 똑바로 돌아가는 자본시장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일본 니케이 지수도 엄청 저평가돼 있는데 아베 정권이 행동주의를 장려한 이후 지수가 오르며 기업 배당도 많이 늘었다”며 “행동주의 펀드가 자본시장에서 메기 역할을 잘해 주며 현금만 쌓아두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던 일본 기업들이 변했다. 우리나라도 참고할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을 바꾸기보다는 아베 정부처럼 연성 규제, 즉 거래소 규정이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으로 장려하면서 행동주의 펀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궁극적으로는 미국식 주주보호 제도가 필요하다”며 “상장사 이사들이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에 대해서도 충실 의무를 지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주들에 대해서도 앞으로 목소리를 키울 것을 장려했다. 이 대표는 “본인이 주식을 보유한 기업이 이상하게 운영되고 있다면 그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이 이제는 효과가 있다”며 “주주총회든 무엇이든 참여를 많이 해줘야 기업가치도 제고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22년 12월호
IMF 외환위기·IT버블 붕괴...역사는 반복된다?
IMF 외환위기 때 코스피 하락률 -76%
IT버블 붕괴로 美 나스닥 -78% 대폭락
버블 붕괴 후 코스닥 아직도 전고점 회복 못해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한국 주식시장의 부진이 상당 기간 지속되고 있다. 2021년 6월의 3316포인트를 정점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금리인상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2022년 11월 현재까지 무려 1년 5개월째 반등다운 반등 없이 조정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지루한 조정장세는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과거의 대폭락 사례들을 통해 힌트를 얻어보자.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은 주기적으로 버블과 붕괴를 경험한다. 지난 25년간 한국에서 나타났던 버블 붕괴 중 가장 심각했던 3개 사건은 1997년의 ‘IMF 외환위기’와 2001년의 ‘IT버블 붕괴+9.11 테러’,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꼽을 수 있다. 이 3개의 대폭락 사건 중 가장 최근인 글로벌 금융위기만 해도 벌써 14년 전이다. 지금의 MZ세대 중 상당수는 이 대폭락장을 경험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1997년 IMF 외환위기
한국에서 가장 심각하게 주식이 폭락했던 시기는 바로 1997년의 ‘IMF 외환위기’ 때다. 이 당시 코스피 지수는 1994년 11월에 1145포인트로 정점을 찍은 후 2008년 6월에는 277포인트까지 폭락했다. 고점 대비 하락률은 무려 -76%였다. 증시는 장장 43개월간 장기 하락하며 투자자들을 기진맥진하게 했다.
1997년 초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막대한 대출을 통해 몸집을 불렸던 한국 주요 기업들이 단기 대출을 연장하지 못해 연달아 부도 처리되면서 한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삼미, 진로, 대농, 기아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외국인들의 한국 사업 철수와 주식 투매로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면서 한국 정부는 1997년 12월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유동성 자금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결국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210억달러를 지원받으며 국가부도 위기를 넘겼다. IMF는 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자유변동환율제, 고금리 정책, 외국인 투자 자율화를 내걸었다.
한국 입장에서 고난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한국은 1997년까지 자유변동환율제가 아닌 관리변동환율제를 적용해 왔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1997년 9월까지 850~900원 사이에서 결정됐다. 하지만 1997년 12월부터 IMF의 엄격한 자유변동환율제 적용과 고금리 정책의 영향으로 환율과 금리가 미친 듯이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은 단숨에 2000원 가까이 치솟았고 은행 예금금리는 20% 이상, 대출금리는 30% 가까이 뛰었다.
이 당시 정부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부채가 과다해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한 부실기업들은 과감히 퇴출시켰다. 결국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는 등 대기업들마저도 줄줄이 부도가 났다. 또 과감한 금융 구조조정에 들어가 시중의 종합금융사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은행도 무려 5개나 퇴출됐다.
주식시장만큼은 아니었지만 부동산시장도 대폭락해 하락률이 -15%에 육박했다. 언뜻 하락률이 작아 보이지만 이는 통계수치일 뿐이다. 실제 체감 하락률은 훨씬 더 높았다. 특히 부동산 거래 자체가 얼어붙어 유동성이 필요해 아파트를 처분해야 했던 사람들은 매도 자체가 안 돼 애를 먹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면 부동산 보유자들의 고통도 컸다.
1999년도에 대학을 졸업한 비운의 세대들은 취업경쟁률이 수백 대 1을 기록하는 역대급 취업한파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대부분의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해 수많은 직장인들이 해고됐던 한국경제 역사상 최악의 시기였다. 국가의 달러 부채 상환에 일조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 어떤 희망도 없어 보이던 절망의 1998년 말이 지나면서 증권시장은 급격히 반등을 시작했다. 낙폭 과대에 따른 자율반등이 그 시작이었다. 점차 경제상황이 안정됐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IT섹터를 육성하면서 시장에 돈이 돌기 시작했다. 코스피 지수는 최저점인 277포인트를 바닥으로 13개월이 지난 1999년 7월에는 4배에 가까운 1053포인트까지 상승해 직전 최고점을 거의 회복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위기는 기회였다. 여기서의 교훈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국가는 ‘지도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심스러운 낙관론자들은 절망밖에 없던 IMF 시절에 한국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에 베팅함으로써 주식과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다. 물론 이런 기회를 잡으려면 대폭락 당시에 일부라도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가능했다. 부채가 많았던 사람들은 폭등한 이자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웠던 시절이었다.
2001년 IT버블 붕괴 및 9.11 테러
미국은 한국과 달리 IMF 사태를 겪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S&P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한국의 ‘IMF 외환위기’로 인한 주식 대폭락 시기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 증시가 대폭락한 사건은 언제 발생했을까. 바로 역사상 최고의 버블과 붕괴로 손꼽히는 2000년도의 ‘IT버블 붕괴’다.
IT버블 붕괴로 인한 주가 하락은 2000년 3월부터 시작돼 무려 31개월간에 걸쳐 진행됐다. 미국은 이 하락 기간에 9.11 테러까지 터졌다. 정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미 죽어가던 증시의 숨통이 끊어질 듯한 복합 위기 상황이었다. 이 당시 지수를 관찰해 보면 S&P500 지수의 최고점 대비 하락률은 -50%였던 데 비해 나스닥 지수는 무려 -78% 폭락했다.
개별종목도 아니고 지수의 하락률이 -78%라니 너무 비현실적이다. 이게 가능한 건가. 그 당시의 비현실적인 주가 폭락을 이해하려면 일단 나스닥 지수의 미친 상승부터 살펴봐야 한다. 나스닥 지수는 1998년 10월의 1344포인트를 바닥으로 2000년 3월의 5133포인트까지 불과 17개월 만에 4배 가까이 폭등했다.
문제는 이 당시의 주가 상승은 정말 비이성적이었다는 점이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신경제’라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면서 회사 이름에 닷컴이란 단어만 들어갔다면 사업성은 따지지 않고 미국이든 한국이든 미친 듯이 폭등했던 아주 특이한 대버블의 시기였다. 그 이후 갑작스럽게 발생한 IT버블 붕괴 사건은 이후의 회복기간을 계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나스닥 지수는 워낙 버블이 심해 1108포인트까지 폭락한 지수가 다시 전고점인 5132포인트를 회복하는 데 무려 15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S&P500 지수는 닷컴주식 외에도 전통적인 우량주식들이 많이 포함돼 있어 상대적으로 하락폭이 덜했다. 그래도 주가 폭락 후 5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최고점을 회복했다. 5년이란 회복기간은 다른 폭락 사례들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물론 현재의 나스닥 지수는 탄탄하다. 대폭락에서 살아남은 빅테크 기업들이 지수를 단단히 받쳐주기 때문이다. 애플, 아마존,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기업 실적도 IT버블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올해 하락장을 맞아 약 30%의 조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10월 말의 나스닥 지수는 1만988포인트다. IT버블 당시 고점인 5133포인트보다 2배 이상 높은 지수 흐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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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 상황은 어땠을까. 한국의 주가 하락률은 미국보다 더 심각했다. 한국의 주가 하락기간은 미국보다 짧은 21개월이었지만 하락폭은 더 컸다. 코스피 지수는 최고점 대비 -56% 하락했고, 코스닥 지수는 무려 -84%나 폭락했다. 지수 하락률이 -84%라니 숫자가 잘못된 게 아닌지 눈을 의심하게 된다. 한국 역시 이 당시의 주가 대폭락을 이해하려면 먼저 IT버블 당시의 비이성적 상승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 당시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종목 대부분은 우량주가 아니라 ‘신경제’라는 미명하에 기대감만 가득한 닷컴주식들이었다. 이때 주식 과열을 보여줬던 대표적인 종목이 바로 새롬기술이다.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던 ‘다이얼패드’라는 무료 인터넷전화 서비스는 그야말로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새롬기술은 1999년 8월 코스닥에 상장했는데 그 후 수백 배가 상승했다. 새롬기술의 높은 성장성을 감안해도 너무나 과도한 상승이었다.
그나마 새롬기술은 상당히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던 기업이었다. 그 외에 실체도 없던 수많은 닷컴 기업들의 주가가 버블에 편승해 미친 듯이 치솟았다. 코스닥 지수는 1998년 10월의 605포인트를 바닥으로 16개월 만인 2000년 3월에 6배인 2926포인트까지 폭등했다. 이렇게 경이적인 상승이 먼저 있었기에 경이적인 폭락도 가능했다. 결국 코스닥 지수는 -84%의 하락률을 보이며 457포인트까지 폭락했다. 비이성적이었던 주가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당시 폭락하던 한국 증시를 아예 붕괴시킨 사건은 9.11 테러였다. 미국 날짜로 2001년 9월 11일에 테러범들은 항공기를 납치해 110층 세계무역센터(WTC)와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 워싱턴 국방부 청사 125명, 세계무역센터에서 2500~3000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사건 직후 약 1주일간 미국 증권시장이 문을 닫을 정도로 후유증은 심각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2001년 9월 11일 밤에 사건이 발생했고 다음날인 12일 한국 증시는 장이 열림과 동시에 폭락했다. 한국 코스피 지수는 전날의 540포인트에서 단숨에 -9% 폭락한 490포인트로 개장했다. 이후 하락을 거듭해 그날 종가는 -12% 대폭락한 476포인트로 마감했다.
미국이 공격당한 사상 유례없는 사건에 투자자들은 공포에 질려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대부분의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이미 얻어맞을 만큼 충분히 얻어맞은 상태였다. 이 9.11 테러로 인한 대폭락을 기점으로 한국 증시는 IT버블 붕괴로 인한 하락 사이클상 마지막 최저점을 찍었다. 이 사건 이후 10일이 경과한 시점부터 다시 한국 증시는 완만한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다. IT버블 당시의 코스닥 최고점인 2000년의 2926포인트는 도대체 언제쯤에나 회복됐을까.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2022년 10월 말 기준 한국 코스닥 지수는 695포인트로 여전히 최고점인 2926포인트 대비 무려 -76%의 하락률을 기록 중이다. 2000년의 IT버블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12월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지구촌 악몽의 대폭락
전세계 증시 동시 추락...러시아는 -80%
리먼브러더스 파산, 안 막았나? 못 막았나?
미국,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기사회생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시기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MZ세대(1980년 이후 출생 세대)들은 1997년의 ‘IMF 외환위기’와 2001년의 ‘IT버블 붕괴’와 같은 끔찍한 대세하락장은 경험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 출생 세대) 중에서 주식투자를 남보다 빨리 시작했던 일부 사람들의 경우 겪어봤을 가능성이 있다.
어느 세대이건 상관없이 2008년도에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다면 꼭 주식투자를 직접 안 했더라도 흉흉한 분위기 정도는 충분히 느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 당시의 분위기를 한 번쯤 상기해 보는 것도 투자에 있어 소중한 지식이 될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긴박했던 2008년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2007년은 세계 각국의 증시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행복한 연도다. 한국 역시 2003년부터 시작된 4년간의 대세상승장으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행복했던 시기였다. 주요 국가들의 증시는 2007년 10월에 최고점을 찍으며 행복감이 절정에 달했고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아무도 1년 뒤에 무시무시한 폭락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불과 1년 뒤 전 세계 증시는 나란히 폭락했다. 위기의 근원지였던 미국 S&P500 지수의 최고점 대비 하락률은 단 1년 만에 -58%를, 나스닥 지수는 -55%를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의 근원지가 아니었음에도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최고점 대비 -57%로 S&P500 지수 못지않게 하락했다. 심지어 코스닥 지수는 -71%라는 역대급 하락률을 기록하며 미국 나스닥 지수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미국보다 증시가 더 많이 하락한 나라는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의 고점 대비 하락률은 -73%를 기록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인기리에 판매됐던 차이나펀드의 주요 투자대상이자 ELS 기초자산이기도 했던 홍콩H지수는 최고점인 2만609포인트에서 1년 만에 5000포인트마저 붕괴된 4919포인트를 기록했다. -76%라는 무시무시한 하락률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수많은 중국펀드 투자자들은 심각한 손실을 보게 됐다.
유럽 또한 부진했다. 유로스톡스50 지수는 -53%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한때 유가가 폭등했던 영향으로 2498포인트까지 치솟았던 러시아 RTS 지수는 뒤늦게 폭락을 시작해 2009년 1월에는 최고점보다 -80% 하락한 493포인트를 기록했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 또한 최고점 대비 -62%를 기록하며 미국보다 더 큰 낙폭을 기록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투자자들을 모두 고통 속으로 밀어넣었다. 글로벌 분산투자는 글로벌 증시가 모두 동반 하락하면서 주가 하락 방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역시 과거나 지금이나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은 막강했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나머지 모든 나라들이 중병에 걸리는 구조는 2022년인 현재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위기의 서막
미국 연준은 2001년의 IT버블 붕괴 이후 시장을 살리기 위해 금리를 계속 인하했다. 2003년 말에 미국의 기준금리는 1%까지 인하됐다. 2007년까지 글로벌 증시가 장기 호황을 이어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런 저금리 덕분이었다. 전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장기간 저금리 정책을 지속했다. 이로 인해 시장에 거품이 쌓이고 있었지만 그린스펀은 느긋했다.
드디어 2004년 6월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1%에서 1.25%로 인상한 그린스펀은 2006년 6월까지 불과 2년 동안 기준금리를 5.25%까지 급격히 인상했다. 순차적으로 올리긴 했지만 누적 인상폭이 무려 4%였다. 참고로 2006년 2월부터는 벤 버냉키가 연준 의장 자리를 지켰다. 어쨌든 신기하게도 미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올리는데도 오히려 시장금리는 정책금리와 따로 놀며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 수준을 유지했다.
이런 신기한 현상에 그린스펀조차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원인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현상을 ‘그린스펀 수수께끼’라고 부른다. 나중에서야 이 수수께끼가 풀렸는데 이 당시에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미국 국채를 대거 사들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미국의 정책금리가 인상됐지만 실제 시장의 금리 인상폭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미국 부동산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미국의 전국주택가격은 2002년에 9.6%, 2003년에 10.2%, 2004년에 13.8%, 2005년에 12.9%라는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폭주를 시작했다. 2006년 말까지 5년간의 누적수익률은 무려 43%다.
그런데 케이스-실러 지수를 볼 때는 평균의 함정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의 대도시 기준이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한 주택가격 지수이므로 실제의 높은 체감 상승률과는 온도차가 있다. 통계 범위를 미국 주요 대도시로 좁혀서 살펴보면 실제 5년간의 체감 상승률은 거의 2배에 육박했다.
이런 역대급 부동산 호황기를 미국 금융회사들은 놓치지 않았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신용등급에 따라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세부적으로는 우량 등급인 프라임(Prime) 등급, 다소 위험은 있지만 상환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알트에이(Alt-A) 등급, 상환능력이 거의 없는 비우량 등급인 서브프라임(Sub-prime) 등급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부동산 호황기에 취한 금융회사들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 우량 등급인 프라임 등급 외에 비우량 등급인 서브프라임 등급 고객들에게 상당히 많은 양의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했다. 그러고도 금융회사들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미국 주요 투자은행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 이번에는 여러 사람들의 주택담보대출을 모아서 증권화한 MBS(주택저당증권)를 만들어냈다.
이 상품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판매되면서 MBS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돈 욕심이 극에 달했던 금융기관들은 이제 CDO(부채담보부증권)라는 우량대출증권과 비우량대출증권을 섞은 기상천외한 막장 금융상품까지 고안해 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험회사들이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이 CDO의 원금을 보증해 주는 CDS(신용위험스왑)를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신용파생상품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됐고 주요 금융회사들의 레버리지 비율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관련한 실제 파생상품 구조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지만 대략적으로는 이런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S&P, 무디스, 피치는 한국 같은 이머징마켓의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할 때는 상당히 까다롭게 따져보는 걸로 명성이 높다. 하지만 이 기관들이 어이없게도 미국의 기상천외한 채권과 파생상품에 대해서는 신용등급을 후하게 평가해준 것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규모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CDO나 CDS 같은 상품들은 부동산 가격이 영원히 계속 오르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만약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면 재앙이 시작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그리고 드디어 그렇게 굳게 믿어 왔던 미국 부동산시장이 하락을 시작했다. 2007년도에 미국 케이스-실러 지수는 6.4% 하락했다. 그러면서 서브프라임 계층이 모기지(주택담보대출)로 빌린 대출을 갚지 못하는 끔찍한 상황이 찾아왔다.
2007년 말 기준 전체 모기지의 연체율은 약 4%였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연체율은 그 3배인 약 14%까지 치솟았다. 2008년 상반기 주택 압류대출 대상은 전체 대출자의 20%까지 확대됐다. 모기지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집이 계속 압류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 금융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 시작됐다. CDO를 보유하고 있던 투자은행과 금융기관들의 자산은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됐다. 이 기상천외한 금융상품의 원금을 보증해 주는 CDS를 만들어낸 보험사들도 순식간에 파산 위기에 몰렸다.
갑자기 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위험성을 아예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다. 이미 2007년 봄부터 여기저기서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들은 이 문제를 모기지 문제로만 한정해서 생각했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대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경우가 많았다. 천하의 미국 정부조차도 초기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미봉책만 쏟아내며 정책적 실수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사상 유례없는 대위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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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에 HSBC가 전년도 모기지 관련 손실을 100억달러(약 12조원)로 발표하면서 금융시장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4월에는 미국 2위 모기지 대출회사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을 신청했다. 6월에는 베어스턴스가 운영하는 펀드도 모기지 투자 손실을 고백했다.
2007년 8월에 미국 모기지 대출회사 아메리칸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가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연이어 BNP파리바은행의 자산유동화증권(ABS)펀드가 환매를 일시 중단했다. 9월에는 영국 중앙은행(BOE)이 모기지론 업체인 노던록에 긴급 자금을 투입하면서 사태가 유럽까지 번지게 됐다.
2007년 11월에는 미국 2위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마저 모기지 투자손실이 37억달러(약 4조4000억원)라고 발표하면서 시장을 긴장시켰다. 연이어 미국 주택담보대출업체의 양대 산맥이자 준공공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까지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라왔다.
하지만 아직 미국 정부는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게 전개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08년 1월에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대부기업인 컨트리 파이낸셜의 인수를 발표했다. 2월에는 영국에서 모기지론 업체 노던록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국유화됐다.
2008년 2월에 미국 의회는 1680억달러(약 202조원)의 경기부양안을 승인하며 사태 해결에 나섰다. 그러나 3월이 되자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쏟아지는 모기지 부실로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이에 연준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베어스턴스에 긴급 자금을 지원해 부도를 막아냈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서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2008년 8월에 모기지 업체 인디맥이 부도를 냈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2008년 9월이 다가왔고 사태는 정점을 항해 달려갔다. 9월 7일에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심각한 모기지 부실로 결국 국유화됐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준공공기관을 부도 내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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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리먼브러더스였다. 2008년 9월에 리먼브러더스는 사방팔방으로 투자자를 구하러 다녔지만 결국 자금 유치에 실패했다. 한국에서는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의 인수 협상에 나섰으나 한국 정부의 부정적인 기류로 결국 9월 9일에 최종 인수 포기를 발표했다. 그리고 6일 뒤인 9월 15일에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했다.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미국 투자은행 서열 4위인 리먼브러더스와 5위인 베어스턴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미국 정부 역시 마지막까지 리먼브러더스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최종적으로 부실 규모가 너무나 거대했던 리먼브러더스는 포기하고 그보다 부실 규모가 작은 메릴린치를 구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같은 날 메릴린치는 BOA에 인수됐다. 다음날인 9월 16일에 연준은 CDS 부실로 허덕이던 AIG에 850억달러(약 102조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하며 AIG 지분 79.9%를 인수했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전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당연히 위기도 계속됐다. 9월 21일에 미국 1위와 2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순수 투자은행 모델을 포기하고 은행 지주사로 전환했고 단기 유동성 자금도 공급받았다. 9월 25일에는 상업은행인 워싱턴 뮤추얼이 파산했고 일부 부서는 JP모건에 인수됐다. 전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도 “세기에 한 번 있을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계속되는 신용위기와 금융위기 속에 마침내 미국 의회는 특단의 결단을 내렸다. 미국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을 투입해서라도 붕괴 위기에 빠진 금융시장을 구해내야 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백방으로 뛰며 설득작업에 나섰다. 마침내 7000억달러(약 840조원)라는 막대한 구제금융법안이 9월 28일에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 구제금융법안은 놀랍게도 다음날 하원에서 205 대 228로 부결되고 말았다.
이 부결 소식으로 전 세계 주식시장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S&P500 지수는 이날 하루에만 8.8% 폭락했다. 그 전부터 계속 하락세를 보여왔던 미국 시장이었으나 이날을 기점으로 11월 중순까지 단 2개월 만에 S&P지수는 추가로 40% 이상 폭락했다. 주가 폭락이 다시 추가적인 폭락을 부르며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제 미국 금융회사 전체가 모두 파산할 상황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금융기관들의 모럴 해저드를 방지해야 한다는 대의명분보다 미국 금융시장 붕괴를 막아내야 하는 냉혹한 현실 인식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미국 상원은 10월 1일에 법안 일부를 수정해 다시 통과시켰다. 그리고 10월 3일에 하원도 수정안을 통과시켜 가까스로 연방정부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이 안정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시장은 연방정부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급기야 워런 버핏까지 나섰다. 10월 17일에 워런 버핏은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나는 주식을 사고 있다. 지금은 탐욕을 부릴 시기”라며 주식시장이 극도로 저평가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의 투매는 이어졌고 주가는 계속 하락했다.
미국 정부는 추가적인 시장안정화를 위해 11월 23일 위기에 빠진 시티그룹에 3000억달러(약 360조원)의 지급보증과 450억달러(약 54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또 11월 25일에는 정부보증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채권 GSE와 MBS를 직접 매입하는 공격적인 제1차 양적완화 정책을 단행했다. 결국 워런 버핏이 기고문을 쓴 지 1개월이 지난 11월 21일에서야 S&P500 지수는 최저점을 형성한 후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12월 29일에는 또 다른 위기의 뇌관이었던 제조업에도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 재무부는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해를 넘긴 2009년 2월에 미국 정부가 금융안정정책 및 경기부양책을 추가로 발표하면서 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히 줄어들고 주식시장의 본격적인 반등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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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기의 2008년도에 미국의 기준금리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연준은 위기가 수면 위로 올라온 2008년 1월에 4.25%였던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0.5%포인트 두 차례 연속 인하해 3%까지 낮췄다. 또 3월에도 0.75%포인트를 추가 인하했다. 그 후 4월에 0.25%포인트를 인하해 기준금리를 2%까지 낮췄다. 하지만 위기는 계속됐고 결국 10월에도 연속으로 두 차례 0.5%포인트씩 낮춰 기준금리는 1%가 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8년 12월에 0.75%포인트의 파격 인하를 단행해 기준금리를 0~0.25%의 제로금리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도 부족해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사상 처음으로 양적완화를 실시해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를 결국 위기에서 구해내게 된다. 버냉키 전 의장은 평소 “디플레이션 위기 때는 헬리콥터에서 돈을 살포해서라도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결국 이 공로를 인정받아 위기 대응 이후 한참이 지난 202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참고로 2006년 말에 최고점을 찍은 미국 부동산 가격은 케이스-실러 지수 기준으로 이후 5년간 꾸준히 하락해 2011년 말 누적 하락률은 -26.5%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22년 6월 말 기준으로 다시 계산해 보면 2006년 말의 전고점보다 무려 74% 폭등한 상태다. 미국의 주택시장은 다시 회복됐다. 오히려 너무 많이 회복된 게 문제일 정도다.

2022년 12월호
한국 증시 패닉 또 패닉 "위기 뒤 기회는 온다"
한국 코스피, 고점 대비 57% 대폭락
300억달러 통화스와프 체결로 기사회생
2년 만에 대폭등하며 전고점 회복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미국의 금융 시스템 대붕괴 위기가 시작됐던 2007년도에 한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단어는 용어조차 생소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그로 인해 한국 증시가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도 없었다. 이 당시 한국에서는 국내 펀드 외에도 차이나 펀드, 브라질 펀드, 러시아 펀드, 인도 펀드 등 브릭스 펀드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지금과 달리 미국 펀드나 미국 주식은 거의 투자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2003년부터 무려 4년 이상 상승세를 지속하며 주식투자자들을 행복감에 취하게 했던 글로벌 증시는 2007년 가을부터 갑자기 하락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코스피 지수도 몇 년간의 상승으로 2007년 10월에 2085포인트로 최고점을 형성한 후 하락세로 전환됐다. 한국에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알려지면서 드디어 한국도 2007년 말부터 서서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의 영향권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코스피 지수는 2008년 3월에 직전 고점 대비 26% 하락한 1538포인트까지 내려앉았다. 하지만 미국 연준이 위기에 빠진 베어스턴스를 3월에 구제금융을 통해 지원하면서 한국에서는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워낙 유동성이 좋았던 시기라 한국 코스피 지수는 2차 상승을 시도하며 2008년 5월에는 1900포인트를 회복하기도 했다.
이 당시에 어느 정도 이익실현을 하며 시장을 관망했던 소수의 방어적인 투자자들은 폭락장으로 인해 좋은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반면 뜨거운 상승 분위기에 고무돼 주식을 매도 후 재매수한 투자자와 애초부터 장기투자 관점으로 주식을 계속 보유한 대부분의 투자자들에게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8년 5월을 기점으로 한국 코스피 지수는 죽음의 대폭락이 시작됐다. 2085포인트에서 하락이 시작됐으니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1500포인트에서 하락이 멈출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짧은 기간 안에 1200포인트가 붕괴되자 대출받아 투자했던 사람들의 반대매매가 속출했다. 하지만 그래도 1000포인트가 붕괴될 거라 생각했던 투자자는 거의 없었다.
특히 운명의 2008년 10월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끔찍한 달로 기억된다. 시장은 매일매일 폭락이 일상이었고, 대출받아 주식을 매수한 사람들이 모두 반대매매를 당하고 깡통계좌가 될 때까지 끔찍한 하락은 멈추지 않았다.
10월 내내 선물가격 급등락 시 발동하는 ‘사이드카’가 연일 이어졌다. 더 강력한 ‘서킷브레이커’도 두 번이나 발동됐다. 지나고 나서 보니 오히려 하락 초반에 반대매매를 당한 투자자들이 더 유리할 정도로 폭락은 끝이 없었다. 한국 뉴스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에 대한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2008년 10월 24일 금요일은 기록적인 날이었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한국을 대표하던 초우량 종목 대다수가 하한가를 기록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 당시 하한가 기준은 지금처럼 30%가 아니라 15%라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투자자들은 그저 망연자실할 따름이었다.
금요일 장을 폭락으로 마친 후 주말을 지나 10월 27일 월요일에 다시 장이 열리면서 코스피 지수는 곧바로 900포인트가 붕괴됐고 장중에는 892포인트까지 하락했다. 이때 투자자들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또 주식형 펀드 대신 조금 더 방어적이라고 평가받는 지수형 ELS에 투자했던 투자자들도 모두 사색이 됐다. 한때 2만포인트를 넘어섰던 홍콩H지수가 5000포인트가 붕괴되며 당일에 12% 폭락한 4990포인트에 마감됐기 때문이다.
홍콩H지수는 이 당시 한국 ELS의 단골 기초자산이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발행된 대부분의 ELS는 이날 낙인(Knock-In)돼 투자자들을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한국 투자자들을 괴롭힌 또 다른 문제는 글로벌 증시에 분산투자해 놨던 브릭스 펀드였다. 차이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증시는 모두 사이좋게 동반 폭락했다. 이 당시 누적수익률 -50%면 양호한 편에 속했다.
불과 5개월 만에 코스피 지수는 수직 낙하해 2008년 10월 893포인트까지 곤두박질쳤다. 한국 주식시장 투자자 중에서 코스피 지수 1000포인트가 붕괴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미네르바’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점에 미네르바가 500포인트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전망하자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의 패닉 매물이 속출했다.
한국 주식시장이 안정을 찾은 건 2008년 10월 30일에 미국 연준과 한국은행이 3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해지면서부터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무려 12% 상승한 1085포인트로 마감하며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다.
원·달러 환율은 2008년 1월 초에 940원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2008년 9월 말에는 1200원까지 상승했다. 10월에 외국인들은 한국에 외환위기가 올 것을 걱정하며 무차별 매도에 들어가 환율은 더욱 나빠졌다. 위기가 절정이던 10월 28일에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0원까지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이 안정을 찾은 건 2008년 10월 30일 미국 연준과 한국은행 간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원·달러 환율은 단숨에 200원 이상 하락했다. 이후 11월 말에 다시 1470원까지 치솟으며 잠시 흔들렸지만 12월 말에는 1263원까지 하락하며 안정을 찾았다.
2008년도에 한국의 기준금리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위기가 닥쳤지만 한국의 경우 경기가 과열돼 있었고 원화 약세 현상으로 오히려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이었다. 놀랍게도 한국은행은 위기가 본격화되던 2008년 8월에 5%였던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고 오히려 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결국 2008년 10월에 증권시장이 완전히 붕괴되면서 자금경색이 심화됐다. 이에 따라 10월 9일에 0.25%포인트, 10월 27일에 0.75%포인트를 연속 인하했지만 여전히 기준금리는 4.25%로 높은 편이었다. 11월에 다시 0.25%포인트를 내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러자 12월에는 과감하게 1%포인트를 내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해 기준금리를 3%로 낮췄다. 또 2009년 1월과 2월에 연속으로 0.5%포인트씩을 내려 기준금리를 2%까지 낮추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의 교훈
위기는 단지 위기로 끝나지 않는다. 위기 뒤에는 엄청난 기회가 온다. 투자자들은 과연 그 위기를 기회로 잘 바꿀 수 있었을까. 2008년의 투자자들은 주로 3가지 상황에 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첫 번째 상황은 적절한 시기에 좋은 가격에 주식을 매도해 상당한 현금을 손에 쥐고 있었거나 애초에 주식투자를 하지 않고 은행 예금 등 현금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다.
적절한 가격에 주식을 처분한 사람들의 경우 너무 싸게 사려는 욕심만 내지 않았다면 낮은 가격에 주식을 재매입해 추가적인 수익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너무 싸게 사려 했던 사람들 중에는 매수 타이밍을 놓치고 강하게 반등하는 증시를 차마 추격 매수하지 못하고 구경만 했을 가능성도 있다.
애초에 주식투자를 하지 않고 은행 예금으로만 자금을 운용했던 사람은 이번 대폭락장에도 계속 예금만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밀 가격이 떨어질 때 밀을 가지고 있지 않던 사람은 밀 가격이 오를 때 역시 밀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증시 격언이 있다. 투자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공포의 대폭락기에 주식을 매수하는 용기를 보이는 경우는 현실세계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상황은 여유자금의 대부분을 이미 주식에 투자해 추가적인 투자 여력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이런 경우 주가 하락의 고통을 그대로 받게 된 케이스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선택지는 2개로 나뉜다. 하나는 일단 손실을 보더라도 주식을 처분한 뒤 다시 매수를 노리는 방법이다. 이런 경우 성공확률은 반반이다. 내가 매도한 가격보다 더 싸게 사야 성공하는 전략인데 막상 실전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은 그냥 가만히 있는 전략이다. 시장이 얼마가 하락하든 잊어버리고 다시 원금을 회복할 때까지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에 손실은 회복되기 마련이다. 이 방법이 의외로 현실적인 손실 복구 방법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원금을 회복하기 전에 어느 정도 손실이 줄어들면 매도를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마지막 세 번째 상황은 여유자금만 주식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대출까지 일으켜 투자한 사람들이다. 특히 증권회사의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했다면 폭락의 절정기에서 대부분 반대매매로 가지고 있던 주식을 모두 날리고 깡통계좌가 됐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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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식투자는 가급적 대출을 받지 않고 투자하는 것이 가장 좋고, 부득이 대출받아 투자한다면 만기가 길어야 버티기가 좋다. 그런 측면에서 6개월마다 만기가 도래하고 또 주식 가격이 폭락할 경우 만기와 상관없이 반대매매가 진행되는 증권사 신용대출의 경우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예기치 못한 주가 하락기에는 큰 손실을 입을 확률이 높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끝도 없이 하락해 900포인트마저 붕괴됐던 한국 코스피 지수는 2008년 말에 1124포인트로 마감됐다. 이후 2년간 꾸준히 상승해 2년 뒤인 2010년 말에는 2053포인트까지 회복하며 그동안의 하락폭을 모두 만회했다. 따라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식을 매도하지 않고 2년간 계속 보유한 사람들은 본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당시 다음 아고라에는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쓰는 익명의 경제전문가가 환율 폭락과 증시 폭락을 맞히며 큰 화제가 됐었다. 미네르바가 유명세를 타며 한국 언론은 물론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소개되기까지 했다. 문제는 그가 2008년에 코스피 지수 1000포인트가 붕괴된 주가 하락 막바지에 지수가 500포인트까지 하락한다는 확신에 찬 주장을 펼쳤다는 점이다. 그 전망은 결과적으로 완전히 틀리고 말았다.
이 당시의 혼란과 공포 속에서 미네르바의 코스피 지수 500포인트 폭락 주장을 믿고 주식을 매도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영원히 손실을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 코스피 지수는 그 이후 다시는 1000포인트 밑으로 내려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주식의 저점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분할매수와 분할매도가 더 합리적인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2022년 12월호
우크라 전쟁·인플레 위기...현명한 투자자의 선택은?
연준의 무리수? 7개월 만에 4%로 기준금리 인상
한국 금융시장 자금경색 심화...해결 시점은 언제
과도한 대출 삼가야...분할매수 전략은 유효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2022년에도 증시는 지루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얻은 교훈을 살리려면 투자자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할까. 2022년도의 주가 폭락 사례는 고점 대비 50% 이상 폭락했던 ‘IMF 외환위기’, ‘IT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보다는 2003년에 발생했던 ‘카드채 대란 및 이라크 전쟁’ 상황과 좀 더 유사해 보인다.
2003년도의 ‘카드채 대란’은 지금의 높은 금리로 인한 자금경색 상황과, ‘미국·이라크 전쟁’은 지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물론 디테일에서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카드채 대란 및 이라크 전쟁’ 당시 코스피 지수의 고점 대비 하락률은 -46%였다. 하락기간은 12개월이었으며, 회복기간은 13개월이 소요됐다.
2003년도의 ‘카드채 대란’이 뭘까. 카드사들의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 남발과 연체대금을 갚지 못한 소비자들의 파산이 이어지면서 카드사들의 부실채권 규모가 급증했던 사건을 말한다. 그 당시에는 카드모집인이 길거리 좌판에서 카드 발급 홍보를 했고, 직업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신용카드가 마구 발급됐다.
특히 대출금리가 거의 30%였던 현금서비스가 남발되면서 대출상환능력이 없는 소비자들의 파산이 이어졌다. 2000년 말에 200만명이었던 신용불량자가 2004년 4월에는 무려 380만명을 돌파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당연히 신용카드사들도 무사할 리 없었다. 2003년도의 신용카드사 연체율은 무려 30%에 육박했다. 그리고 카드채를 남발해 그 돈으로 소비자들에게 대출을 해준 신용카드사들은 모두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결국 부실한 카드사들의 매각이 이어졌다. 그중 대표적으로 부실 규모가 컸던 LG카드사는 신한금융그룹에 매각돼 지금의 신한카드가 된다. 이 시기와 맞물려 미국과 이라크 간의 전쟁까지 터지면서 주식시장은 바닥을 찍게 된다. 2003년 3월에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주식시장이 1개월 이상 계속 하락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막상 전쟁이 터지자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이유만으로 본격적인 증시의 반등이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인플레이션 위기, 금리가 문제?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위기 상황이 과거의 대폭락 사례인 ‘IMF 외환위기’, ‘IT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까다로운 이유는 저금리 정책을 쓸 수 없다는 점이다. 시장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금리인하로 유동성을 공급해 위기를 돌파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경제학 이론이다.
심지어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제로금리로도 모자라 무차별 양적완화까지 동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위기 때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오히려 단기간에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위기 대처 방식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21년 말 기준금리는 0~0.25%로 제로금리였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제롬 파월 의장이 이끄는 미국 연준이 선택한 2022년 3월의 첫 번째 금리인상폭은 0.25%포인트로 베이비 스텝이었다. 하지만 2022년 5월에는 0.5%포인트의 빅 스텝으로 분위기가 변했다.
이후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면서 2022년 6월부터 11월까지 무려 4회 연속으로 자이언트 스텝인 0.75%포인트씩을 거칠게 인상하며 기준금리는 무려 3.75~4.00%가 됐다. 파월 의장은 여전히 금리가 낮은 편이라며 내년에 기준금리가 5%를 넘기는 것도 가능하다면서 시장에 계속 엄포를 놓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연준은 2022년 3월부터 11월까지 고작 7개월 만에 무려 4% 가까이 기준금리를 올린 셈이다. 이렇게 급격하게 기준금리를 올리면 약한 고리부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불가피한 상황이라지만 금리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 속도면 미국 내에서도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특정 기업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또는 경제 상태가 취약한 일부 국가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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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준금리는 글로벌 흐름상 미국의 금리정책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그나마 이번 사이클에 한국은 좀 더 선제적으로 움직인 편이다. 이미 2021년에 두 번의 금리인상을 통해 0.5%였던 기준금리를 2021년 말에는 1%로 만들어놓은 상황이었다.
한국은행은 2022년에 들어서면서 1월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해 2022년 10월 말 기준 3%까지 끌어올렸다. 2022년 11월 24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최소 0.25%포인트의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한국 역시 미국보다는 완만하지만 고작 1년 만에 기준금리가 최소 2.25포인트 이상 인상되는 셈이다.
이 정도 속도면 당연히 신용경색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미 시중금리 급등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가능성으로 인해 금융시장에서 자금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회사채 발행 역시 원만하지 않은 상황이다. 절대금리 자체가 높아져 부채가 많은 시장 참여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구간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연준과 한국은행의 높은 금리 정책으로 인해 과거보다 위기 극복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투자자들은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는 기회? 바람직한 투자자의 자세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인플레이션’ 상황으로 인한 코스피 지수 하락은 끝난 걸까. 만약 최고점 대비 -36%의 하락률을 보인 2022년 9월 말의 2134포인트가 코스피 지수의 저점이 맞다면 하락기간은 약 16개월이다. 그런데 2134포인트가 지수 저점이 아니라면 추가적인 하락률은 얼마나 될까. ‘카드채 대란’ 당시의 -46%를 대입해 보면 -10% 정도의 추가적인 지수 하락도 가능하다.
하지만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어보자. 그동안 증권시장 역사에서 얻은 교훈은 급락한 시장은 시간을 두고 반드시 회복한다는 점이다. 만약 지금 현금을 가지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다. 바닥을 맞힐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버리고 분할 매수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도 잊지 말자. 만약 현금이 없다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원금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도 나쁘지 않다.
단 주식담보대출이나 다른 대출을 통해 투자를 유지하고 있는 투자자라면 신중한 행동이 필요하다. 과도한 대출을 받은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이 회복되기 전에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한 경우가 많았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주식담보대출은 절대 좋은 투자방법이 아니다. 주식담보대출은 절대금리 자체가 10% 이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또 대출 만기도 6개월로 짧고 추가적인 주가 폭락 시 반대매매 위험성도 높다. 이런 대출을 활용하고 있는 투자자라면 신중한 후퇴 전략이 필요한 시기다. 일단 주식 반대매매를 당하게 되면 나중에 시장이 회복돼도 손실을 회복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장 상황이지만 좋아진다는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내일 당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다면 시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급반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알 수 없고, 증시의 바닥도 알 수 없다. 현명한 투자자는 예측이 아니라 대응에 초점을 맞춘다. 조심스러운 낙관론자들이 항상 승리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모든 투자자들의 성공투자를 기원한다.

2022년 11월호
[쿠팡] "아직도 배가 고프다"… 쿠팡페이 등 신사업 확장 중
쿠팡플레이, 스포츠 중계로 남자 회원 수 증가
쿠팡이츠는 단건 배달 늘수록 적자 커져
퀵커머스 시장 놓치면 쿠팡 점유율 하락할 수도
| 한태봉 전문기자 longinus@newspim.com
쿠팡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그래서 다양한 신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굵직하고 눈에 띄는 사업들만 살펴봐도 2015년에 간편결제 서비스인 ‘쿠팡페이’를 출시한 데 이어 2019년에는 음식배달 서비스인 쿠팡이츠를, 2020년에는 OTT 서비스인 쿠팡플레이를 론칭했다. 그리고 2022년에는 쿠팡파이낸셜을 설립해 여신전문금융업에 도전하려 한다.
쿠팡이 신사업에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쿠팡만의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아직 쿠팡의 본업인 이커머스조차 지속적으로 적자가 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쿠팡은 개의치 않는다. 쿠팡은 막강한 이커머스 사업을 중심으로 쿠팡만의 생태계를 공고히 해 고객들이 쿠팡 생태계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만들고 싶어 한다.
‘쿠팡페이’는 승산 있는 高마진 사업
쿠팡이 2015년에 론칭한 간편결제 서비스 ‘쿠페이’는 놀랍게도 흑자 사업이다. 쿠팡이 진행하는 대부분의 사업이 아직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쿠팡페이는 효자 사업이라 할 수 있다. 2020년에 35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데 이어 2021년에는 전년 대비 425% 급증한 18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한국에서 이름 있는 유통업체들은 대부분 자사의 ‘페이’ 서비스를 통해 간편결제 시장에 진출했다. 간편결제 시장에 진출하는 첫 번째 이유는 ‘락인 효과’다. 쿠팡이나 네이버의 생태계에 머무르며 돈을 쓰게 하기 위해서는 ‘쿠페이’나 ‘네이버페이’ 사업은 필연적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분야다. 두 번째 이유는 수수료 절감 효과와 추가 수익원 확보다.
쇼핑몰 기능이 강한 네이버나 쿠팡의 경우 간편결제 서비스를 통해 카드결제수수료를 절감하고 소비자에게 추가적인 수수료를 받는 게 가능하다. 2021년에 쿠팡의 총거래 추정액은 약 34조원이다. 이 34조원의 상품을 거래할 때 결제수수료율을 1%만 잡아도 3400억원, 2%를 잡으면 6800억원이 된다. 물론 아직까지 이 결제수수료율은 대부분 신용카드사(PG사, VAN사 등 포함)가 가져가는 구조라 신용카드사 좋은 일만 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쿠페이’의 가장 큰 강점은 ‘원터치 결제’로 결제가 빠르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쿠팡에서 물건을 구매하면서 결제를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본인이 사용하는 신용카드를 등록해 결제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결제는 간편하지만 쿠팡이 고객에게 실질적으로 제공하는 추가 혜택은 없다. 하지만 신용카드가 사용된 카드사에서 0.1~1.5%의 포인트를 적립해 준다. 두 번째는 본인의 은행 계좌를 연결해 ‘쿠페이 머니’로 현금을 환전해 쿠팡에서 결제하면 쿠팡은 결제금액의 1%를 쿠팡 캐시로 적립해 준다.
결국 고객이 ‘쿠페이 머니’를 이용하면 ‘쿠팡’이나 ‘쿠팡이츠’에서 구매하는 모든 생필품을 1% 할인받아 구매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 경우 신용카드사의 포인트 적립 혜택을 못 받게 된다. 따라서 쿠팡 입장에서는 고객들이 ‘쿠페이 머니’를 활용해 상품을 결제해 주면 카드사에 내는 결제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쿠페이 머니’ 사용을 최고의 선택지로 생각하지 않는 구조다.
반면 가맹점 입장에서는 카드결제수수료율에 대한 부담이 크다. 신용카드사(PG사, VAN사 등 포함)가 가맹점에서 받는 결제수수료율은 대략 0.8~2.3% 수준이고,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 결제수수료율도 대략 1~2.5% 수준이다. 대신 네이버나 카카오는 다시 카드사(PG사, VAN사 등 포함)들에게 결제수수료율의 대부분을 재지급한다. 따라서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등 각종 페이 서비스는 고객들 본인이 이용하는 신한카드나 현대카드를 페이결제시스템에 등록해서 사용하면 마진이 거의 없다. 자사의 페이 서비스에 고객이 은행 계좌를 연결해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통해 ‘페이 머니’로 결제해야 높은 마진이 발생하는 구조다.
결국 한국에서는 여전히 높은 카드결제수수료를 대부분 신용카드사(PG사, VAN사 등 포함)들이 가져가고 있다. 대신 신용카드사들은 외상으로 카드대금을 소비자에게 빌려주는 꼴이므로 고객이 연체하면 카드대금 회수를 못해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 외상으로 빌려준 상품결제대금의 이자도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카드회사들의 주 수익원은 결제수수료보다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를 통한 고금리 대출 수익이 더 큰 경우가 많다.
쿠팡은 또 2021년에 일반 신용카드사들처럼 회원들이 자사의 물건을 구매할 때 나중결제(후불결제, BNPL: Buy Now Pay Later)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쿠팡의 ‘나중결제’는 고객의 구매패턴을 분석하고 자체적인 신용평가 시스템을 통해 고객별로 신용도에 따라 최대 200만원 한도 내에서 외상구매를 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하지만 카드사들의 고유 리스크처럼 일부 고객들이 상품결제대금을 연체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금융감독 당국에서도 우려를 표해 최근 할부거래는 일시적으로 중단을 결정했다.
네이버페이 이용자 수는 약 3000만명, 스마일페이(G마켓) 이용자 수는 약 1700만명, SSG페이(이마트) 이용자 수는 약 900만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페이(쿠팡)의 경우 최소 10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유통업체들 입장에서 간편결제 시장은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의 주요 유통업체들은 모두 간편결제 서비스를 도입해 지속적으로 회원 수를 늘려가고 있다. 쿠팡은 강력한 이커머스 경쟁력을 바탕으로 쿠페이를 계속 키워 나가고 있다. 카카오의 카카오페이나 페이스북의 메타페이보다 쿠페이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전망하는 이유는 뭘까. 카카오나 페이스북과 달리 아마존이나 쿠팡 앱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목적은 100% 물품을 구매하려는 의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쿠페이의 간편결제 시장 규모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수익성은 ‘쿠팡파이낸셜’로 확보?
쿠팡페이의 자회사이자 쿠팡의 손자회사인 ‘쿠팡파이낸셜’은 금융업으로 사업 확장을 원하는 쿠팡에게 아주 중요한 회사다. ‘쿠팡파이낸셜’은 400억원의 자본금을 바탕으로 2022년 8월에 여신전문금융업법상 할부금융업 등록 승인을 받았다. 신용카드업을 제외한 여신전문금융업은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이므로 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쿠팡 입장에서는 빠르게 흑자를 낼 수 있는 승산 높은 사업이다.
‘쿠팡파이낸셜’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분야는 당연히 쿠팡의 ‘오픈마켓’이나 ‘제트배송’을 이용하는 온라인 소상공인들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미 네이버가 자사 쇼핑몰인 ‘스마트스토어’를 이용하는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우리은행 같은 금융회사들과 제휴해 대출을 중개하고 있다.
하지만 쿠팡은 단순히 중개만 해줄 생각이 없다. 직접 대출해 주기 위해 ‘쿠팡파이낸셜’을 만들었다. 이런 서비스는 이미 중국에서 알리바바가 진작에 하고 있는 사업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여신전문금융회사들의 수익 규모는 얼마나 될까. 한국 4대 금융지주 계열 캐피탈 회사들의 영업이익을 확인해 보자.
4대 금융지주 계열의 캐피탈 회사별로 영업이익이 매년 몇천억원씩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쿠팡의 경우 엄청난 플랫폼 사용자 수를 보유한 한국 1위의 이커머스 기업이다. 쿠팡 사용자 수는 1800만명, 유료 멤버십인 ‘와우 회원’ 가입자 수는 900만명이 넘는다. 이 고객들을 금융과 잘 연결한다면 추가 수익원 확보가 가능하다.
특히 쿠팡파이낸셜이 가장 핵심적인 타깃 고객으로 생각하는 대상은 쿠팡과 거래하는 소상공인 파트너 16만명이다. 거래금액도 무려 8조원이 넘는다. 이들을 대상으로 쿠팡에서 발생하는 매출채권이나 재고자산 등을 담보로 사업자 대출을 확대해 나간다면 리스크 관리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쿠팡과 거래하는 소상공인들의 경우 이미 쿠팡에 빅데이터가 쌓여 있기 때문에 신용평가와 연체율 관리에서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
쿠팡파이낸셜은 미래에 쿠팡의 핵심 수익원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쿠팡파이낸셜을 제대로 키워내기 위해 법조계와 금감원 출신 인재들을 대거 영입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동안 약점으로 꼽혀온 수익성 부족 문제를 탄탄한 이커머스 생태계를 근간으로 한 금융업 진출로 해결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쿠팡플레이, 스포츠 중계로 남자 회원 증가
쿠팡이 2020년에 새로 론칭한 OTT 서비스인 쿠팡플레이는 돈이 되는 신사업일까. 상당 기간 돈이 되기는커녕 돈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한국에서 OTT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회사는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이다. 이 업체들의 스탠다드 월 구독요금은 기본적으로 1만원이 넘는다.
반면 쿠팡의 ‘와우 회원’ 이용료는 고작 월 4990원이다. 이 유료 멤버십의 핵심 혜택은 OTT 서비스가 아니라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켓배송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쿠팡의 본업이자 최대 강점인 로켓배송을 이용해 매주 1회씩 생수만 배달시켜도 충분히 남는 장사다. 이런 매력 때문에 2021년 말에 가입자 수가 900만명을 돌파했고 현재는 1000만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웬만한 주부들은 다 쿠팡의 ‘와우 회원’에 가입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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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와우 회원’ 혜택에 추가로 OTT 서비스 ‘쿠팡플레이’까지 번들로 제공하다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쿠팡의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지 않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거꾸로 쿠팡 입장에서 손익 계산해 보면 엄청난 적자다. 그런데도 쿠팡이 쿠팡플레이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이유는 고객들을 묶어놓는 ‘락인’ 효과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커머스 최강자 아마존이 OTT 서비스인 ‘아마존비디오’를 운영하면서 락인 효과와 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강력한 경쟁회사 네이버의 ‘네이버플러스멤버십’도 혜택 중 하나로 OTT ‘티빙’ 무료선택권을 제공하고 있다.
손익계산만 따져보면 무모해 보이지만 쿠팡에게는 또 다른 노림수가 있다. 바로 쿠팡플레이를 통해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와 남자 회원 수를 늘리려는 전략이다. 주부들뿐 아니라 다양한 세대를 쿠팡 생태계로 끌어들이려는 영리한 전략이다. 그래서 쿠팡은 작년에 쿠팡플레이를 통해 손흥민 선수가 활약하는 토트넘 홋스퍼의 영국 프리미어 리그 경기들을 무료로 생중계했다.
또 2022년 7월에는 한국에서 열린 토트넘과의 친선경기를 독점 중계하고 경기장 관람티켓도 독점 판매했다. 스포츠 중계권 가격은 상당히 비싸 OTT 서비스의 제왕인 넷플릭스도 진출을 망설이는 데 비해 쿠팡은 거침이 없다. 아무래도 스포츠는 남자들의 관심이 더 많은 편이니 남자 회원 수 증대에는 확실한 보증수표다. 특히 1인 남성가구가 주 타깃이다. 아쉽게도 22-23 시즌에는 토트넘 경기 생중계를 중단했다. 대신 11월의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9월에 열린 국가대표 A매치 평가전 코스타리카, 카메룬과의 2연전을 디지털 생중계하며 구독자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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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인덱스 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8월의 ‘쿠팡플레이’ 사용자수는 380만명으로 넷플릭스 1214만명, 웨이브 432만명, 티빙 429만명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이 리포트에서 주목할 건 ‘쿠팡플레이’가 토트넘 경기를 단독 생중계한 7월 13일에만 무려 45만건의 ‘쿠팡플레이’ 앱 신규설치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쿠팡의 스포츠 중계권 시장 공략은 확실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다.
남자 회원수뿐 아니라 MZ세대 전체를 공략하려는 시도로는 예능 프로그램인 ‘SNL코리아 시즌2’와 6부작 드라마 ‘안나’를 꼽을 수 있다. ‘안나’의 주연배우는 몸값 비싸기로 유명한 ‘수지’다. 쿠팡의 돈자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2년 9월에는 한국영화 화제작인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비상선언’까지 연달아 독점 공개했다. 업계에서는 이 2편의 영화에만 몇백억 이상이 투자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노력으로 젊은층인 MZ세대들의 ‘와우 멤버십’ 가입이 늘어나고 있다.
쿠팡 입장에서 쿠팡플레이는 분명 남는 장사가 아니다. 쿠팡은 OTT 콘텐츠 투자비용을 정확히 공개하지 않지만 업계는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OTT 콘텐츠 구매에 1000억원 이상이 투자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장은 돈 먹는 하마인 ‘쿠팡플레이’지만 쿠팡의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쿠팡 입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쿠팡은 아직도 흑자를 낼 생각이 별로 없다. 여전히 돈을 쓰더라도 쿠팡 생태계를 더 확장하고 싶어 한다.
쿠팡이츠는 여전히 3위...단건 배달 늘수록 적자 커져
쿠팡 입장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신사업은 2019년에 새로 뛰어든 음식배달서비스 ‘쿠팡이츠’로 추정된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2년 8월의 한국 배달 플랫폼 월간 활성사용자수는 ‘배달의민족’이 2152만명으로 압도적인 1위, 요기요가 766만명으로 2위, 쿠팡이츠가 434만명으로 3위다.
문제는 어느 분야건 3위는 피곤하다는 사실이다. 또 쿠팡이츠의 경우 지난해 연말과 비교해 보면 경쟁업체 대비 ‘월간 활성사용자수’가 더 크게 하락했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또 쿠팡의 벤치마크 모델인 미국 이커머스 1위 아마존마저도 2019년에 ‘아마존 레스토랑’이 미국 배달서비스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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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 측면에서도 곤혹스럽다. 2021년에 부동의 1위인 ‘배달의민족’은 무려 2조원이 넘는 매출액을 달성하고도 영업이익은 고작 100억원에 불과했다. 심지어 적자가 심각한 베트남법인 실적을 포함한 연결감사보고서 기준으로는 75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쿠팡이츠서비스(유)’ 역시 6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달성하고도 영업이익은 35억원의 적자다.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배달료가 비싼 ‘단건 배달’ 활성화 탓이다. 쿠팡이츠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2021년에 공격적으로 배달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진 ‘단건 배달’을 진행해 음식배달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전략은 비용 부담이 너무 큰 게 단점이다. 배달의민족이 ‘배민1’이라는 비슷한 ‘단건 배달’ 서비스로 반격을 시작하자 차별화도 많이 줄어들었다. 또 2022년에는 배달음식서비스 시장 자체가 엔데믹으로 다소 주춤한 상황이라 큰 폭의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쿠팡이츠’는 한국 배달서비스 시장에서 과감히 철수해야 할까. 시장 상황만 보면 한국의 배달서비스 시장은 미국보다 더 중요해 보인다. 국토면적이 훨씬 작고 사람들이 밀집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음식배달 서비스는 쿠팡 입장에서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또 이미 투자한 비용이 막대해 쉽사리 철수를 결정하기도 애매하다.
쿠팡 입장에서 배달서비스 사업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향후에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퀵커머스 사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시장은 음식배달 서비스와 퀵커머스 서비스가 결합돼 운용되는 중이다. 퀵커머스 시장을 놓치게 되면 중장기적으로는 쿠팡의 새벽배송 시장점유율까지 갉아먹게 될 가능성도 있다.
퀵커머스 시장 놓치면 쿠팡 점유율 하락할 수도
‘퀵커머스’가 뭘까. 고객이 주문하면 15분~1시간 안에 고객에게 상품을 배송해 주는 ‘즉시배송 서비스’다. 퀵커머스로 배송 가능한 상품은 야채, 과일, 정육 등 신선식품부터 생필품까지 다양하다. 웬만한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다 배송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퀵커머스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필수적으로 도심에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를 여러 개 보유해야 한다.
‘풀필먼트’란 물류센터에서 상품분류, 포장, 배송, 고객응대(AS)의 전 과정을 알아서 처리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MFC)’는 뭘까. 도심에서 수십,수백평 규모의 작은 오피스 부동산을 물류센터처럼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가장 활발하게 퀵커머스를 운영하는 곳은 ‘배달의민족’이다. MFC를 기반으로 한 ‘B마트’ 퀵커머스 사업을 서울 전역과 수도권 일부에서 선보이고 있다.
쿠팡의 ‘새벽배송’과 배달의민족의 ‘음식배달 서비스’는 언뜻 서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배달의민족이 퀵커머스 사업까지 진출하면서 분위기가 살짝 달라졌다. 쿠팡의 새벽배송은 고객이 내일 먹을 음식을 오늘 밤 12시까지만 주문하면 내일 아침 7시 이전에 갖다 주는 편리한 서비스다.
배달의민족의 음식배달 서비스는 1시간 뒤에 먹을 외식 음식을 편리하게 배달해 준다. 추가로 배달의민족의 ‘B마트’ 퀵커머스는 웬만한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파는 물건은 모두 배달해 준다. 여기서 주목할 건 1시간 뒤에 먹을 반조리된 음식(밀키트)을 15~45분 안에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쿠팡의 새벽배송과 비교도 할 수 없이 편리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음식배달 서비스’와 ‘퀵커머스’가 결합되면 효용은 최대가 된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1시간 뒤에 완전히 조리된 음식배달 서비스를 이용할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반조리 밀키트를 이용할지를 선택해 주문하면 된다. 쿠팡의 새벽배송처럼 내일 먹을 음식을 오늘 미리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런 구조가 되니 왠지 배달의민족 B마트 퀵커머스와 쿠팡의 새벽배송은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배달의민족은 앱 상단에는 배달음식점의 ‘조리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배달 서비스(배민1+배달) 버튼을 배치했고, 앱 하단에는 ‘반조리된 음식’ 주문이 가능한 퀵커머스(B마트+밀키트/간편식) 버튼을 배치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크게 높였다. 요즘의 밀키트는 과거와 달리 뛰어난 맛과 다양한 종류로 인기가 많다. 또 인플레이션으로 배달음식 가격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들도 가격이 저렴한 밀키트를 선호한다. 이 양쪽 시장을 다 잡을 수 있는 ‘배달의민족’ 전략은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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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음식배달 서비스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 통계청은 2021년 음식서비스 온라인쇼핑 규모를 25조7000억원으로 발표했다. 여기서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 총거래액은 얼마나 될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업계는 2021년 배달의민족 총거래액을 17조~19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쿠팡의 2021년 총 거래액 34조원(추정치)과 비교해 봐도 만만치 않은 수치다. 음식배달 서비스의 마진은 높지 않지만 시장 규모 자체는 상당히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는 미래의 퀵커머스 시장 규모를 예측해 보자. ‘퀵커머스’를 간단히 정의하면 동네의 슈퍼마켓과 편의점 물건을 온라인으로 구매해 즉시 배송받는 서비스라 할 수 있다. 한국 슈퍼마켓과 편의점의 2021년 매출 현황은 73조원(45조+28조원)이다. 이 73조원에는 식료품 외에 화장품 등의 잡화가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막대한 시장이다. 장기적으로 퀵커머스는 과연 이 중에서 얼마만큼의 규모를 가져올 수 있을까. 퀵커머스 시장이 슈퍼마켓과 편의점 매출액의 15%만 가져와도 무려 11조원이다.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시장 규모다.
퀵커머스 시장에 배달의민족의 ‘B마트’만 뛰어든 건 아니다. 배달 서비스 2위 업체인 ‘요기요’를 인수한 GS리테일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GS25 편의점과 퀵커머스 서비스를 결합한 ‘요마트’를 적극 활용해 공격적으로 퀵커머스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미 전국에 1만5000개가 넘는 점포를 보유한 게 GS리테일의 최대 강점이다.
배달 서비스 3위 업체인 쿠팡이츠도 ‘쿠팡이츠마트’를 1년 전 론칭했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의 송파, 강남, 서초, 강동, 성동구 등 일부 지역에서만 시범 운영하고 있다. 천하의 쿠팡답지 않게 조심하는 모습이다. 본격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 경우 적자가 어마어마하게 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퀵커머스 전쟁...‘승자의 저주’ 위험은?
이 퀵커머스 전쟁에서 과연 누가 승리하게 될까. 혹시 승리하더라도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건 아닐까. 배달의민족 ‘B마트’는 최초 이용 고객에게는 1개월간 무료배송한다. 그 이후에도 3만원 이상 구매 시 배송비는 무료다. 게다가 ‘4만원 이상 구매 시 4000원 할인권’ 등 다양한 할인쿠폰을 발행한다. 한마디로 마케팅비를 무지막지하게 쏟아붓고 있다.
왜 이렇게 마케팅 비용을 화끈하게 쓸까. 소비자들은 편리함을 버리고 다시 불편함으로 돌아가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 일단 점유율을 높여 압도적인 시장 1위가 되면 그때부터 가격을 인상해도 늦지 않다. 플랫폼 기업들의 교과서 같은 전략이다. 따라서 퀵커머스 시장은 적자가 커질지언정 포기할 수는 없는 시장이다. 오히려 빠르게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가야 한다. 배달의민족은 이미 음식배달 서비스 전쟁에서 이 전략을 써 승리한 경험이 있는 회사다.
쿠팡이 승리한 새벽배송 성공 경험 역시 마찬가지다. 쿠팡이 승리한 가장 큰 이유도 속도다. 속도가 빨라 소비자들에게 가장 편리했기 때문이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너무 편리해 사람들이 대형마트에 가는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배송 전쟁의 전선이 크게 확대됐다. 이번엔 퀵커머스다. 새벽배송보다 훨씬 더 빠르다. 굳이 하루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30분이면 충분하다. 이제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에 누가 귀찮게 밖으로 나가 과자를 사올지를 두고 가족끼리 싸우지 않아도 된다. 소비자들은 너무 행복하다.
하지만 퀵커머스는 근본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막대한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MFC)’ 건립비용과 배달원의 인건비 때문에 비용이 무지막지하다. 과연 퀵커머스 시장을 장악하면 언젠가 돈을 벌 수 있는 건 사실일까. 혹시 배달원들의 인건비로 모든 마진이 사라져서 아무리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도 사업자는 돈을 벌지 못하고 모든 편익은 소비자만 가져가는 게 아닐까.
또 다른 문제점은 퀵커머스의 활성화로 동네의 중소형 마트나 편의점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은 필연적으로 정치권의 개입을 부르게 된다. 또 퀵커머스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는 어렵다. 인구가 적은 지역은 비용이 높기 때문에 인구가 밀집돼 있는 도심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서비스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퀵커머스 시장은 새벽배송 시장보다 훨씬 규모가 작을 것으로 보인다.
퀵커머스 사업은 역시 음식배달 서비스와 같이 해야 효율이 높아진다. 둘 중 한 가지만 해서는 높은 효율을 가져올 수 없다. 그래서 쿠팡은 쿠팡이츠를 포기할 수 없고 오히려 더 확대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쿠팡이 쿠팡이츠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일부 전망은 퀵커머스라는 새로운 전쟁을 고려하지 않은 시각으로 보인다. 만약 쿠팡이 음식배달 서비스와 퀵커머스 시장을 완전히 포기해 버리면 장기적으로는 쿠팡의 새벽배송 시장 점유율마저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소비자는 내일 새벽의 배송보다 당장 30분 뒤의 배송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쿠팡은 고민이 많다. 음식배달 서비스 사업에서 철수하지 않는다면 쿠팡이츠의 점유율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현재의 치열한 한국 배달서비스 시장 상황으로 볼 때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B마트와의 본격적인 퀵커머스 전쟁은 더 애매하다. 비용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다. 지금 퀵커머스 시장에서 소비자는 너무 행복하다. 누군가 이 전쟁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 독점이 진행되기 전까지는 그 행복이 유지될 것이다. 반면 배달의민족과 쿠팡 입장에서는 승자의 저주까지 피해야 하니 퀵커머스는 난도가 높은 사업이다.
쿠팡의 대만 진출
한국의 인구는 5160만명에 불과하다. 한국 유통시장을 장악한다 해도 규모의 경제가 나오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쿠팡의 해외 진출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투자 대비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쿠팡은 일본과 대만에 진출했는데 일본은 이미 아마존 점유율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대만 시장에 시선이 간다. 대만의 인구는 2400만명이다. 대만은 도시국가인 홍콩과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전 세계 2위의 인구밀집도를 보이는 나라다. 한국이 전 세계 3위이니 한국과 비슷한 구조임을 알 수 있다. 한국과의 거리도 가까워 상대적으로 물류비용이 절감되는 것도 장점이다.
쿠팡이 한국에서만 사업을 한다면 잠재고객은 한국 인구인 5160만명이 최대치다. 하지만 대만 사업을 한국만큼 성공시킨다면 잠재고객은 대만 인구 2400만명을 더한 7560만명이 된다. 쿠팡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더 커져 대량구매로 인한 단가 인하 협상에 유리해진다. 따라서 쿠팡의 대만 유통시장 진출은 좋은 전략이라 생각된다.
아직은 퀵커머스 시장만 공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처럼 대만 주요 지역에 물류센터를 건립하며 공격적으로 접근한다면 상당한 성과가 기대된다. 쿠팡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쿠팡의 진출로 대만에서 유통업을 영위하는 모든 경쟁회사들의 마진율은 초토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곧 사색이 될 대만의 유통업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