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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태로 요동치는 아시아 아트마켓, 그 향배는

2019년 11월호

홍콩 사태로 요동치는 아시아 아트마켓, 그 향배는

2019년 11월호

미술허브 홍콩, 정치불안에 대안 도시 부상
상하이 강력 드라이브, 서울·타이베이도 도전장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홍콩 정부의 ‘범죄인송환법’으로 촉발된 과격시위로 홍콩 경제가 얼어붙고 있다. 다섯 달째 정치 불안이 심화되자 모든 상거래와 무역이 크게 위축됐다. 미술시장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홍콩 상황이 악화되면서 아시아 여타 도시들이 아트산업 선점을 위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참에 홍콩이 가졌던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며 서울, 상하이, 타이베이, 싱가포르가 움직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상하이의 도전은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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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절대강자로 군림 중인 아트바젤 홍콩. [사진=로이터 뉴스핌]


넘볼 수 없었던 아성, 홍콩...그러나

사실 올봄까지도 홍콩은 닷새간의 단일 미술장터(아트바젤 홍콩)에서 1조원이 넘는 미술품이 거래되고,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세계적인 경매사들이 수천, 수백억원대의 낙찰 실적을 기록하는 등 아시아 최대, 최고의 미술 허브로 승승장구했다. 그 어느 도시도 감히 홍콩의 아성을 넘볼 수 없었다. 아트바젤 홍콩이 위용을 떨치자 8개의 위성 아트페어가 열렸고, 세계 톱 화랑들이 앞다퉈 홍콩 지점을 차리며 ‘큰손’ 고객을 손짓했다.

그뿐인가.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에 이어 굴지의 경매사들은 모두 홍콩에서 경매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 본토만 고집하던 중국의 경매사들도 일제히 홍콩에서 경매를 개최 중이다. 한국의 메이저 경매사인 서울옥션도 최근에는 홍콩 경매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좁은 국내 마켓만으론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시아 도시들의 미술시장이 대체로 내수용 시장이라면 홍콩 마켓은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시장인 것이 차이점이다.

그러나 ‘미술 유통의 국제화, 선진화’를 가장 먼저 추진하고 거침없이 달렸던 홍콩 아트마켓에 붉은 신호등이 켜졌다. 예상치 못했던 위기가 도래했다. 홍콩의 심각한 정치·사회적 불안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필수 조건으로 하는 미술 거래를 위축시키기 시작했다. 올가을까지는 아트페어, 경매, 전시회가 일정표대로 간신히 열렸지만 문제는 내년부터다. 당장 내년 3월 홍콩 전시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할 아트바젤 홍콩에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페어에 참가한 36개국 242개 화랑 중 일부가 불참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유력 화랑들이 들썩이는 중이다. 점당 수억,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고가 미술품을 들고 페어에 나가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부스를 꾸며 장사를 하는데 정세가 심각하다면 차라리 접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아들렌 우이 아트바젤 홍콩 디렉터는 200여 개가 넘는 참가 화랑에 “내년 3월 페어는 예정대로 열릴 것이다. 만반의 준비를 통해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몸을 한껏 낮춘 편지를 일일이 띄운 것에서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살필 수 있다. 아트바젤 홍콩에 수년째 참가해 온 국내 한 화랑 대표는 “닷새간의 페어를 위해 1억원에 달하는 부스비를 비롯해 가벽설치비, 운송료, 보험료 등 수억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격렬시위로 과연 판매가 원활히 이뤄지겠느냐”며 우려하고 있다. 홍콩 아트마켓의 구심점인 아트바젤이 이렇듯 흔들리자 근래에 홍콩에 지점을 낸 미국, 유럽의 갤러리들도 너나없이 불안해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트바젤의 모기업인 스위스 MCH그룹이 최근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박람회 전문기업인 MCH는 지난해 메인 투자자였던 스와치그룹이 빠져나가면서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이에 바젤에서의 박람회 사업에 집중하고, 아트바젤사업권은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자는 대책이 나왔다. 박람회에 올인해 재정 위기를 헤쳐 나간다는 복안인데, 이 부문이 수익이 높고 매출도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MCH의 또 다른 축인 아트페어 사업은 근래 들어 매출 비중이 40%로 줄고 수익성도 떨어져 매각이 검토되고 있다. 결국 아트바젤팀은 홍콩의 정치 혼란으로 내년 전망이 비관적인 데다 구조조정까지 목전에 두고 있어 사면초가 상황이다. 오랜 세월 축적된 전문성과 고도의 실행력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화랑, 컬렉터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 가던 아트바젤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예술시장 주도권 잡자...상하이의 빅 피처

결코 넘볼 수 없었던 홍콩 아트마켓이 위축될 조짐을 보이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곳은 상하이다. 수년 전부터 상하이 시당국과 미술 관계자는 “중국의 예술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상하이를 아시아 허브로 키워야 한다. 우리가 소비하는데 구경꾼이 될 순 없다”며 예술특구와 자유무역지구를 만들었다. 35%에 달하는 중국의 미술품 관세를 홍콩처럼 면제해 주는 면세구역을 조성해 외국 화랑을 유인한 것. 그러나 홍콩을 뛰어넘기는 어려웠다. 사회주의 체제 아래선 정책이 매번 달라지며 널뛰니 서양 기업들은 난색을 표해 왔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절호의 기회를 맞아 관과 민이 하나로 뭉쳐 예술중심지로 부상해 보자는 분위기다. 당장 ‘2019 상하이 아트위크’에 맞춰 11월 7일 동시에 개막하는 ‘WestBund 아트&디자인’과 ‘Art021 상하이’에는 활기가 돌고 있다. 중국 내 수백개가 넘는 국제아트페어 중에서도 가장 시스템이 잘 갖춰진 특급 아트페어인 이 둘은 각각 2013, 2014년에 출범한 신생 페어다. 그럼에도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인 가고시안, 페이스, 하우저&워스, 데이비드 즈워너, 화이트큐브 등 세계적 명문 화랑들이 양 페어에 모두 참여 중이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이들 톱 갤러리들이 앞다퉈 상하이 페어를 공략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고가 작품을 척척 사들이는 ‘차이나 억만장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올해 더욱 출품작 선정에 공을 들이고 있어 페어 수준과 매출액이 아트바젤 홍콩 못지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도 국제, 아라리오, 조현, 바톤 등 A급 화랑이 참여한다.

특히 ‘WestBund 아트&디자인’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과거 비행기 제조장이었던 상하이 황푸강 서쪽 쉬후이의 너른 부지에 예술특구가 조성되면서 아트센터와 수준 높은 뮤지엄이 속속 건립됐는데, 바로 그곳이 무대다. 페어가 열리는 WestBund아트센터는 전시장 면적이 홍콩컨벤션센터를 훌쩍 뛰어넘는다. 1층에는 현대미술품을, 2층에는 고가의 디자인 아이템을 전시하고 순수예술과 디자인을 병행한다. 인근의 유즈미술관 등도 메가톤급 전시로 아트위크의 열기를 띄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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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젊은 컬렉터들이 힘을 합쳐 출범시킨 상하이의 ‘ART021’. [사진=ART021]


상하이 도심의 유서 깊은 전시관인 상하이전시센터에서 열리는 ‘Art021 상하이’에도 글로벌 미술시장의 최강자인 정상급 화랑들이 대거 참여한다. 또 중국과 아시아의 특급 갤러리 등 120여 개 화랑이 부스를 꾸민다. 이 페어는 외국서 교육받은 중국의 30, 40대 컬렉터들이 2013년 힘을 합쳐 만들었는데, 인적 네트워크를 치열하게 밀어붙여 단기간에 A급 페어로 발돋움했다. 특히 2016년에는 마리안 굿맨 화랑을 비롯해 유수의 서구 갤러리들이 출품작을 모조리 솔드아웃시키면서 입소문이 크게 났다. 패션디자이너 출신의 컬렉터로, 페어를 공동창업한 칼리 잉(Kylie Ying)은 “Art021의 목표는 상하이와 글로벌 예술을 접목해 독특한 아트신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도 뛰어들다...타이베이에 부는 새바람

대만은 인구(약 2370만명)가 적은데도 아트컬렉터 층은 의외로 두껍고 탄탄하다. 꾸준히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가 꽤 많다. 특히 신흥 부자들은 미술품 수집을 부자의 필수 항목으로 여기며 적극성을 보인다. 이에 아트홍콩을 만들었던 영국의 기획자 매그너스 렌프루(1975~)가 타이베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렌프루는 올 1월 ‘타이베이 당다이 아트페어’를 론칭하고 서양의 유력 화랑들을 끌어들였다. 물론 아직은 대만과 아시아 화랑 비중이 70%대지만 쟁쟁한 특급 화랑을 유치해 수준급 페어를 선보였다. 판매도 호조를 보였다. 1월은 아시아 마켓으로선 완전한 비수기인데 그 허를 찌른 것이 주효했다. 결국 타이베이는 아시아의 차세대 강소 아트도시로 그 가능성을 입증받고 있다. 내년부터는 싱가포르가 ‘ART SG’로 타이베이의 뒤를 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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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당다이 아트페어 현장. [사진=타이베이 당다이 아트페어]


렌프루팀 서울도 접수? 직거래 땐 큰 타격

홍콩 아트마켓이 흔들리자 서울을 최고의 대안으로 꼽는 전문가가 많다. 홍콩처럼 한국은 미술품 통관 시 관세가 붙지 않는 데다 서구 현대미술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분위기여서 매력적인 후보지로 꼽힌다. 공항에서 1시간 거리에 최신 시설을 갖춘 전시장이 확보돼 있고 중국, 홍콩, 일본, 싱가포르에서 접근성이 좋은 것도 그 이유다. 게다가 한국은 K팝 등으로 매혹적인 나라로 인식되면서 최고의 플랫폼으로 부상 중이다. 이에 홍콩과 타이베이에서 성과를 거둔 매그너스 렌프루가 서울에서의 아트페어를 적극 추진하고 나섰다.

렌프루는 오는 2021년 7월 서울에서 국제아트페어를 열겠다며 코엑스에 대관 신청을 했다. 이에 코엑스는 올 연말께 임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영국 런던의 프리즈 아트페어도 서울에서의 아트페어 개최를 검토 중이다. 둘 중 하나만 확정되더라도 서울은 아시아의 아트 허브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에 국내 유통관계자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고객들이야 최신의 변화무쌍하고 수준 높은 미술품을 앞마당에서 볼 수 있고, 작품 가격도 쌀 테니 나쁠 게 없다. 코엑스 또한 지금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초일류 아트페어를 초치하는 게 장기적으론 바람직한 일이다. 세계적 갤러리들이 최고의 작품을 가져와 선보인다면 중국 및 화교권 컬렉터들이 몰려들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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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인 KIAF 전시장을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사진=한국화랑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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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초청받은 VIP관람객들이 KIAF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한국화랑협회]


하지만 한국의 화랑과 경매사들은 거의 울상이다. 국내 컬렉터들의 해외 미술 선호도가 워낙 높아 외국 화랑과 직거래할 경우 국내 업체들은 뒷전으로 밀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KIAF는 특히 심대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이를 ‘기회’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강한 상대를 만나야 지금까지의 낙후된 시스템과 체질을 일거에 개선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KIAF를 주최하는 한국화랑협회의 최웅철 회장은 “미술품에 대한 관세가 없고, 세련된 안목의 컬렉터가 많은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외국 갤러리가 늘고 있다. 올해는 특히 홍콩 사태로 향후 서울 또는 KIAF 진출을 타진하기 위해 해외 유력 화랑 디렉터들이 KIAF 2019를 많이 둘러봤다”며 “서울이 제2의 아시아 미술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전략 수립과 실행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야 재도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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