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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오른 일국양제, 멀고 먼 '홍콩의 봄'

2019년 10월호

시험대 오른 일국양제, 멀고 먼 '홍콩의 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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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제 해법’ 대립 여전, 이번엔 송환법 충돌
홍콩정부 양보에도 불씨는 여전


| 강소영 중국전문기자 jsy@newspim.com


‘우산혁명’ 실패 후 5년이 지난 2019년. 민주화 운동의 거센 물결이 다시금 홍콩 반도를 휩쓸었다. 지난 혁명이 결과적으론 실패했지만, 민주화 갈망에 대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홍콩 사회 곳곳에서 화력을 키우고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송환법’으로 불리는 범죄인 인도 조례 개정안 반대로 시작된 시위의 불길은 송환법 철폐 이후에도 꺼지지 않고 있다.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송환법 반대 시위 연속 14주째인 9월 4일 송환법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송환법 철회와 함께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행정장관 직선제의 ‘5대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시위는 이어졌다. 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보다 규모는 축소됐지만, ‘5대 요구 가운데 하나도 빠져선 안 된다(五大訴求缺一不可)’는 구호의 외침은 높아지고 있다.

송환법 철회가 이뤄지고 1주일이 지난 9월 10일 홍콩에선 다시 눈에 띄는 시위가 진행됐다. 홍콩 중고등학생 수천 명으로 이뤄진 ‘인간 띠’가 홍콩 전역에 출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홍콩 120여 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어 ‘5대 요구’ 수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어 대학생들도 ‘인간 띠’ 시위에 동참하며 송환법 철회로 진정되는 듯했던 시위의 불씨가 다시 지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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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소통 부재, 시위 확산 불씨 댕겨

전 세계의 이목을 끈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의 발단은 홍콩 남성의 치정 살인이었다. 민주화 운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흔한’ 사회 사건이 세계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국제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확대 전개된 것이다. ‘조용히’ 타오르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결정적 원인은 홍콩 정부의 송환법 개정 강행이었다.

2018년 2월 홍콩 남성 찬퉁카이(陳同佳)가 임신한 여자친구와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다. 둘은 현지에서 심하게 다퉜고, 찬퉁카이는 여자친구를 살해한 후 홍콩으로 도주했다. 홍콩은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영외에서 발생한 형사 사건을 처벌할 수 없다. 대만 정부가 찬퉁카이를 처벌해야 했지만, 홍콩과 대만이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아 사법 공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잔인한 살해범 찬퉁카이는 절도와 돈세탁방지법 위반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홍콩 정부는 이를 계기로 범죄인 인도 법안 수정에 나섰다. 그간 이 법안의 효력이 제외됐던 중국 본토, 대만과 마카오 등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지역에도 사안별로 형사 사건 용의자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홍콩 정부는 기존의 범죄인 인도 조례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며 찬퉁카이에 대한 구속 기한이 만료되기 전에 송환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홍콩 변호사협회는 홍콩 정부의 이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홍콩 정부가 기존의 ‘조례’를 기반으로 중국 외의 다른 지역 및 국가와 개별적인 사법 공조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 그리고 대만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송환법에 반발했다. 이 법안이 중국 정부가 갖가지 혐의를 적용해 인권운동가 등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인사를 중국으로 송환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 법안이 강력 형사 사건에 한정된다고 ‘항변’했지만 홍콩 시민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콩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대한 반감과 불신도 더욱 깊어졌다. 홍콩 반환 당시 약속했던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을 일으켰지만 좌절되고 말았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일국양제’의 원칙을 위협하는 조짐과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서적을 출판한 언론인 다수가 실종되기도 했다.


결국 올해 3월 홍콩의 시민단체와 인권운동가들이 송환법을 반대하며 시위에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위 규모는 크지 않았다. 반대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었지만, 홍콩 정부는 귀 기울이지 않고 송환법 추진을 강행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범민주파 진영이 송환법 개정 내용에서 ‘중국과 마카오’를 제외하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홍콩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4월 송환법 반대 2차 시위가 발발했고, 시위 규모도 커졌다. 5월에는 미국 등 해외 각지에서도 홍콩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6월 6일에는 홍콩 법조계 인사들도 ‘검은 양복’을 입고 항의 시위에 동참했다.

급기야 6월 9일 100만명이 넘는 홍콩 시민이 빅토리아 공원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때부터 송환법 반대 시위가 본격화됐다. 그간 홍콩 정부가 보여온 ‘불통’, 친중 반(反)민주적 행태와 중국 정부의 홍콩 간섭에 축적된 홍콩 시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지만 캐리 람 장관, 홍콩 정부와 베이징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캐리 람 행정장관은 송환법 반대 시위를 ‘조직화된 폭동’이라고 비난하며 반대파에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캐리 람의 일관된 강경 태도는 지난 2014년 우산혁명 당시 민중의 요구를 꺾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시위대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의 실패로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현실에 대한 분노는 더욱 응축됐고, 홍콩 정부의 일관된 ‘불통’은 홍콩인의 억눌려온 분노를 폭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홍콩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시위대에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며 강경 진압으로 맞섰다. 홍콩 시민은 무력 진압에 더욱 분노했고, 시위의 강도는 한층 세졌다. 결국 8월 15일 캐리 람 장관이 송환법 추진 보류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더 이상 홍콩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식의 대처법을 신뢰하지 않았다. 16일엔 200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집결, 송환법 완전 철회를 외쳤다.

예상외의 반발에 놀란 캐리 람 장관이 16일 공개 사과에 나섰다. 그러나 시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이미 때가 한참 늦었다. 18일 캐리 람 장관이 재차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송환법 반대 시위는 ‘반중 홍콩 민주화 사수’를 위한 운동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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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빙 둘러 인간 띠를 만들어 시위하는 홍콩 중학생들. [사진=로이터 뉴스핌]


당국 양보했지만 불씨 남겨, ‘홍콩의 봄’은 요원

7월 2일 일부 홍콩 시위대가 홍콩 의회에 난입하면서 시위가 더욱 격화됐다. 7월 9일 캐리 람 장관이 ‘사망선고’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시위 무마에 나섰지만, 성난 홍콩 시민은 여전히 민중을 기만하는 정부의 태도에 더욱 분노했다.

캐리 람 장관이 표면적으로는 사과의 뜻을 밝히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시위대에 대한 홍콩 경찰의 무력 진압 수위는 오히려 높아졌다. 시위대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건물의 중국 국가 휘장을 훼손하자, 7월 24일 중국 국방부가 시위 진압 의사를 밝히며 홍콩 사태에 ‘베이징’이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8월 초 금융인·공무원·교사·예술가 등 각계각층 인사가 총파업을 예고, 시위대의 규모와 범위가 확대되는 양상을 띠었다.

경찰도 무차별 진압에 나섰다. 홍콩 경찰이 빈백건(알갱이가 들어간 주머니 탄)을 시위대에 직접 겨눴고, 빈백건에 눈을 맞은 여성이 실명 위기에 처했다. 분노한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 공항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선전에 무장경찰을 배치하면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8월 18일 170만 명의 시민이 재집결했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 진행된 대규모 시위는 우려와 달리 평화롭게 진행됐다. 9월 2일에는 총파업(罷工)·동맹휴학(罷課)·철시(罷市)의 ‘3파(罷) 투쟁’이 전개됐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본격적인 ‘민주화 투쟁’으로 전환된 것이다.

9월 4일 캐리 람 장관이 송환법 완전 철회를 발표하며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송환법 철회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요구사항 수용은 거부하며 또다시 불안의 ‘불씨’를 남겼다. 홍콩의 시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홍콩 시위를 주도해 온 홍콩 민간인권전선은 행정장관 직선제를 포함한 5대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시위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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